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일째 열리고 있는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에서 사회주의 문화분야와 대남문제, 대외관계에 대해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를 하고 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3일째 열리고 있는 7일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에서 사회주의 문화 분야와 대남문제, 대외관계에 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업총화 보고가 계속됐다.
<노동신문>은 "1월 7일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 3일회의가 진행"되었으며, "김정은동지께서 2일회의에 이어 당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보고를 계속하시었다"고 보도했다.
3일회의 보고는 문화건설 분야에서 지난 5년간 사업과정을 분석 평가했으며, 교육, 보건, 문학예술을 비롯한 사회주의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전기를 바련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제기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조성된 형세와 변천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대남문제를 고찰하였으며 대외관계를 전면적으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우리 당의 총적방향과 정책적 입장을 천명하였다"고 알렸다.
신문은 "우리 혁명발전에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문제들에 대한 참가자들의 비상한 관심과 열의가 고조되는 속에 보고는 총결기간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히 하고 그 영도적 역할을 높이는데서 이룩된 성과에 대하여 분석하였으며 현시기 당사업에 내재되어 있는 편향들을 시급히 바로잡고 당과 혁명대오를 더욱 강화하며 혁명과 건설에 대한 당적지도를 심화시키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을 제기하였다"고 3일째 이어진 사업총화 보고에 대해 소개했다.
2일회의 사업총화 보고때와 같이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고 의제 중심으로 간략하게 보도했다.
전체 총화보고에 대해서는 "우리 혁명의 내적동력과 발전잠재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직면한 모든 장애와 난관들을 성과적으로 극복해나갈 방략을 명철하게 밝"혔다고 요약했다.
신문은 이날 사업총화에 대해 "우리 혁명의 내적동력과 발전잠재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직면한 모든 장애와 난관들을 성과적으로 극복해나갈 방략을 명철하게 밝혔다"고 요약했다. [캡쳐사진-노동신문]
이날 사업총화 보고에서는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건전하고 혁명적인 우리식 생활양식을 확립'하는 문제와 '비사회주의적 요소들을 철저히 극복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도 다루었다.
또 '국가관리' 개선과 '법무사업·법투쟁' 강화를 강조하면서 '국가사회제도의 우월성과 위력을 높이 발양시키기 위한 실천적 방도'들도 제시되었다.
청년동맹을 비롯한 근로단체들이 제 역할을 다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동맹 내부 사업과 사상교양사업을 중심으로 모든 동맹을 사회주의건설의 핵심역량으로 강화하는 문제들도 언급됐다.
신문은 대회 참가자들이 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에 입각하여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현 실태를 돌이켜보면서 당성, 혁명성, 인민성의 견지에서 지난 시기 사업정형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새로운 발전기, 도약기에 들어선 우리 혁명이 제기하고있는 무겁고도 책임적인 투쟁과업들을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사업과 결부하여 깊이 연구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외교 소식통 “최 차관 방문, 억류 선박에 좋은 영향”
“국민 목숨 달려…10억 달러 의료장비 구입 의사”
“이란 대통령, 문 대통령에 두차례 친서 보냈지만
답장에 실질적 조처 없어…태도에 아쉬움 느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이란이 “한국의 외교 방문이 필요 없다”는 공식 견해와 달리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의 10일 방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4일 이뤄진 한국 선박 억류가 ‘해양 오염과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라면서도 한국에 동결돼 있는 이란 자산 70억달러(약 7조6000억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명한 계획’을 가져오길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이란 관계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6일 <한겨레>와 만나 “최 차관의 이번 방문이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 차관이 이란에 동결 자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명한 계획을 가져가면 좋겠다. 목적을 분명히 하고 (구체적) 프로그램을 가져오면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란은 ‘자신들의 돈을 자기들이 쓸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이란이 현재 한국에 “동결 자산 가운데 10억달러 정도를 의료장비를 구매하는데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을 했다. 차관 방문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이란 현지 언론 <테헤란 타임스>는 3일 호세인 탄하이 한-이란 상공회의소 회장 등 이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의 은행에 있는 석유 수출 동결 자금과 코비드19 백신과 다른 물품을 교환(barter)하도록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협조할 의사가 있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이란이 원하는 구체 물품으로 코로나19 백신, 원자재, 약품, 석유화학제품, 자동차 부품, 가정용 전자제품 등을 열거했다.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이란 6만명 코로나로 숨졌는데 의약품도 없어…문 대통령 친서에 답은 했으나 구체적 실천 없었다”
이 소식통은 나아가 지난 2년 반 동안 한국이 취해 온 무신경한 태도에 대한 이란의 실망감을 자세히 소개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한국 외교에 아쉬움이 많다. 6만명의 이란 국민이 코로나19로 죽었고, 의약품이 없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두번이나 보냈다. 한국 정부가 그때마다 답장은 보냈지만 적절한 조처, 실질적 조처가 없다. 석유대금 70억달러에, (이란의) 멜라트 은행이 한국은행에 지불준비금으로 예치한 돈까지 합치면 (한국에 물려 있는 이란 돈이) 90억달러가 넘는다. 이란 국민들의 목숨이 걸린 돈이다.”
이 소식통은 이란이 미국의 경제제재로 많이 어려운 상황에서 동결 자금 문제를 2년 넘게 해결하지 않는 한국의 태도에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있고, 버려진 느낌이라 말도 한다. 그 좋던 관계가 이런 상황 때문에 악화됐다”고 말했다.
“선박 나포는 순전히 기술적 문제…돈 받으려 납치한 것 아냐” 주장
하지만, 지난 4일 이란혁명해상수비대(IRGCN)의 한국의 화학물질 운반선 ‘한국케미호’(1만7426t급) 나포와 관련해선 순전히 기술적 문제라는 이란의 입장을 재차 대변했다. 그는 “선박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물을 넣고 빼는 과정이 있는데 큰 바다에선 문제가 없지만, 페르시아만은 특별한 지역이라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위반 사항이 있으면 벌금을 부과하고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항해에 대한 보상도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동결 자금 회수와 연결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는 이란의 입장을 전했다. 실제, 이란 외교부는 이 문제는 반다르 아바스 주정부에서 조사 중인 기술적 사안인만큼 ‘정치적 타협’을 모색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소식통은 이란이 돈을 받으려 한국 선박을 납치했다는 일부 한국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얘기를 그렇게 쉽게 쓰는 것 자체가 이란에겐 너무 불쾌하고 치욕스런 일이다. 한국이 이란에 비우호적인 자세를 보였을 때도 참았는데 관계가 개선되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끝나가는 지금 왜 이란이 악수를 두겠냐”는 견해를 밝혔다.
“한국에 묶인 70억달러는 이란 국민의 목숨”
한편, 이란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 국제 프로젝트인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 백신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한국과 교섭을 진행했지만, 한국 정부와 은행이 ‘이란 자금이 코벡스 퍼실리티 수금 계좌가 있는 스위스 은행으로 송금되는지 보증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은행은 직접 코벡스 퍼실리티의 수금 계좌가 있는 스위스 은행으로 직접 송금할 수 없고, 달러로 바꾸려면 다른 은행을 거쳐야 한다며 미국의 한 은행을 소개했다. 하지만, 이란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 관련 법률에 의해 이란 돈이 미국 은행에 들어가면 자동 동결되기 때문에 이에 동의할 수 없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5일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 재무부의 특별승인을 받아 우리가 대금을 지불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란이 송금 과정에서 미국에 의해 이 돈이 압류될 것을 우려해 결정을 못 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 문제에 대해 당 대변인 공식 논평을 통해 뚜렷한 입장을 밝혔다. 앞서 이낙연 민주당 대표 등 여권 지도자들이 개인의 정치적 견해임을 전제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6일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위로를 넘어선 생존의 문제"라며 최근 확진자 감소세를 언급하고는 "(아직)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면 민생 회복, 소비 회복, 경제 회복을 위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허 대변인은 "국가적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국민은 없다. 그 무게와 깊이도 다르다"면서 "선별적 지원과 보편적 지원이 병행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허 대변인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가능성 검토에 대해 야당이 재정 건전성과 보궐선거 영향 등을 우려해 비판하고 있는 것과 관련 "국민이 살아야 재정건전성도 있는 것"이라고 반박하고는 "지원금 지급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적정성 여부를 검토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3일 한국방송(KBS) <뉴스9>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가 쉽게 잡히지 않고 장기화될 경우에는 늦지 않은 시점에 또 한 번의 추경을 편성해서 (선별적) 지원금을 드릴 용의가 있다. 그것을 검토하겠다"며 "그리고 또 하나는, 코로나가 진정된다면 경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전 국민께 지원금을 드리는 것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었다.
이 대표는 그 배경에 대해 "코로나가 한참 퍼지고 있는데 '소비하십시오' 그러면 자칫 방역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코로나가 진정되고 경기를 진작해야 된다고 할 때에는 전 국민 지원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4일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에서 "재난지원금의 경우에는 가능하면 차등 지원을 하는 게 옳다. 피해가 더 큰 업종이나 자영업자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는 게 옳다"면서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경제 진행 상황이나 코로나 상황(을 고려하면) 월급 생활자 등 피해를 본 국민이 굉장히 많다. 그런 부분에 대해 잘 봐가면서 꼭 필요한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하면 될 것"이라고 여지를 뒀다.
정 총리는 "선별적 지원을 통해 피해가 많은 분들에게 지원하는 재난지원금과는 별도로, 경기가 좀 진작돼야 하지 않겠나"라며 "앞으로 필요하면 경기 진작을 위한 예산 집행도 있어야 될 것"이라고 부연해 눈길을 끌었다.
여당 내에서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보편 지급을 주장해온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날 SNS에 쓴 글에서 "정 총리에 이어 이 대표께서도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을 말씀하신 데 대해 환영과 감사를 드린다"며 "최악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지역화폐를 통한 전 국민 보편지급이 꼭 이뤄져야 한다"고 재강조했다.
국민의힘 등 야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부여당의 전략"(전날, 국민의힘 이종배 정책위의장)이라고 하는 등 보편 지급 주장이 4월 보궐선거를 염두에 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정부 재정당국은 여당의 '보편 지급 검토' 주장에 대해 말을 아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경제중대본 회의 후 관련 질문을 받고는 "정부가 언급하기엔 이른 시점"이라며 "지금으로선 방역의 고삐를 조이고 이번에 마련한 9조3000억 원 규모의 맞춤형 지원대책을 신속히 집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만 했다.
태어난 지 16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정인이가 죽기까지, 한국 사회의 어떤 아동 보호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은 세 차례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도 무혐의 처분했고, 아이와 부모를 분리조치 하지 않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역시 세 차례 현장조사를 하고 작성한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서'에서 9점 만점에 각각 3점, 2점, 2점을 줬다(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4점 이상이면 즉각적인 아동보호 조치를 고려할 수 있지만, 아보전의 판단은 그렇지 않았다.
세 번째 신고 때 정인이를 진료한 소아과 의원의 의사가 '구내염'이라는 소견을 내면서 아동학대가 입증되지 못했고, 정인이 입양을 담당한 홀트아동복지회 또한 두 차례 학대 사실을 파악했지만 가정 방문을 하지 않고 양부와 통화만 했다. 이렇게 정인이를 살릴 수 있는 기회들은 허무하게 날아갔다.
이 때문에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정인이 사건'이 보도된 이후,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 역시 3일 동안 무려 11개의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형량강화, 신상공개, 부모와 아동 '즉시 분리(원스트라이크 아웃)' 등을 담았다. 여야는 8일 '정인이법'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방송이 나간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속전속결로 입법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법이 개정되면 '제2의 정인이 사건'을 막을 수 있을까? 아동 학대 사건을 전문적으로 담당해온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발 진정하세요!!"라며 국회가 '여론 잠재우기식 무더기 입법'을 한다고 썼다. 지금의 갑작스러운 입법이 오히려 아동학대를 막는 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권한과 책임을 정확하게 나누고, 매뉴얼대로 일하게 만드는 것이 법을 순식간에 개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쉼터' 등의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즉시분리를 추진하는 것이 해법이 아니며, 오히려 정작 꼭 분리되어야 할 아이들이 분리가 안 되는 상황을 초래해 "아이들이 또 죽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형량 강화'의 경우, 높은 형량을 인정할 정도의 엄격한 증명책임이 요구되므로, 오히려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상 불가능한 아동학대의 경우는 증거부족으로 불기소나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도 국회의원들이 '현장을 망쳐놓는 입법'을 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며 "국민적 공분이 있을 때 형량강화나 신상공개를 이야기할 게 아니라, 아동학대 현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국회에서 아동학대 형량을 두 배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이유가 궁금하다.
"형량을 강화하면 그 형량을 인정할 정도로 엄격한 증명책임이 발생한다. 동시에 가해자도 극렬하게 부인을 하게 된다. 증거가 부족해서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사건은 더욱 더 혐의의 입증이 어려워진다. 장애인 성폭력도 형량이 높아진 뒤로 불기소가 늘어나고 있다.
피해 아동들은 집에서 맞는다. 게다가 부모를 떠나서 사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아동들은 자신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 어떻게 유죄를 너끈하게 입증하려는 건가? 피해자를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무책임하게 형량 올리는 게 너무 화가 난다. 오히려 불기소나 무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강력처벌에는 동의한다"라면서도 "이미 무기징역까지 상한선이기 때문에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권고양형을 상향조정하면 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분리'하는 게 왜 문제라고 보나.
"과거에도 '즉시 분리'는 처음 신고받았을 때도 가능하게 매뉴얼이 있었다. 정인이 역시 즉시 분리할 수 있었다(영유아). 그러면 법은 현장에서 매뉴얼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건데, 천안 가방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2회 신고시 무조건 분리'로 개정(지난해 12월)했다. 참고로 천안 사건은 신고가 1번밖에 안 됐다.
사실 즉시 분리해 봤자 아이가 갈 곳이 없다. 현재 쉼터가 분리아동의 10%도 수용하지 못하는 처참한 상황이다. 가출청소년 쉼터나 보육원에서는 아이들을 선뜻 수용하지 않고, 가서도 적응하기가 힘들다. 아이들은 차라리 집에 가고 싶어하기도 한다. 실효성 있는 분리조치를 위해 아이들을 도대체 어디로 보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는 '2회 신고 즉시분리'도 '개악'이라고 강조했다. 이혼소송하는 집에서 서로 양육권을 가지려고 신고를 악용하는 사례까지도 나오며 아이가 물건 취급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한 정확하게 나누고, 아특대 만들어서 전문성 키워야"
▲ 김창룡 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권한을 너무 분산 시켜놓는 데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수사·조사 할 수 있는 주체(경찰, 아동학대전담 공무원, 아보전)가 많을수록 피해자가 겪는 2차피해가 커지고, 가해자에 의해 진술이 오염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서로 책임도 떠넘기게 된다. 그 사이에 아이는 죽는다.
아동학대 조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책임감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저도 10년 동안 현장을 봐왔지만 조사가 제일 어렵다고 느낀다. 지난 10월부터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맡고 있는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에게는 전문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일단 각 기관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만 더 잘 하게 해서 서로 협력하게 해야 한다.
먼저 공무원은 데이터 베이스를 성실하게 구축하고,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서류 행정처리를 해야 한다. 아보전은 피해자 지원과 사례 관리를 하면 된다. 조사와 수사는 경찰이 해야 한다. 경찰서에 부서를 둘 게 아니라, 전문성 있는 인력으로 '아동학대특별수사대'(아특대)를 만들어야 한다."
- 그렇다면 아특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2013년에 광역청 단위로 만들어진 성폭력특별수사대(현재는 여성범죄특별수사대-여특대)가 전문성과 역량이 키워지면서 2차 피해가 줄어들었다. 현재 여특대는 13세 미만 성폭력, 장애인 성폭력 등을 전담하고 있는데, 이 역량이 일선 경찰서에도 전달되고 있다.
비슷하게 광역청 단위에서 아특대를 운영하면서 미취학아동 사건, '2회 이상 신고 사건'부터 먼저 다뤘으면 좋겠다. 계속 업무를 맡다 보면 역량이 향상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충분히 전문성을 갖출 때까지 최소 2년은 기다려줘야 한다."
-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법이 무엇일까.
"아동학대 현장에서 분리조치 등을 방해해도 과태료 처분을 하는데 그치고 있다. '방해 행위'를 형사 처벌을 하는 방향으로 바꿔서 분리조치가 실효성 있게 이뤄지게 해야 한다. 또한 쉼터를 더 만들기 위해서 법적인 근거도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 국회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법을 무작정 바꿀 게 아니다. 법이나 정책이 마구 바뀌어서 일하기 힘든 상황이 되면, 현장의 분위기는 자포자기나 보신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국민적 공분이 있을 때 형량강화나 신상공개를 이야기할 게 아니라, 아동학대 현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법과 매뉴얼대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제발 이런 식의 입법을 멈춰달라."
신원 미상 여성 총격 사망, 워싱턴 일대 통금령... 바이든, ”시위가 아니라 반란“ 규탄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21-01-07 09:29:19
수정 2021-01-07 09: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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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6일(현지 시간) 미 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저지하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뉴시스/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하는 시위대들이 미국 의회 의사당을 난입해 수 시간 점거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트럼프 지지 시위대 수천 명은 6일(현지 시간) 워싱턴DC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던 도중 인근 의사당 건물에 난입했다. 이 과정에서 의회 경찰 등과 충돌해 수 명이 부상을 당하고 총격을 받은 한 명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미 연방의회는 상·하원 합동회의를 열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을 인준하는 회의를 진행 중이었지만, 초유의 난입 사태로 회의는 중단됐다. 난입 과정에서 상원 회의를 주재하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일부 상원의원들은 회의장에서 대피했다.
다른 상원의원들은 의자 밑으로 몸을 숨기거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방독면을 착용하기도 했다. 일부 유리창 파편이 깨지고 최루탄이 발사됐으며, 이 과정에서 의회 경찰들은 권총을 겨눈 채 시위대들과 대치했다.
대치 과정에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한 여성은 가슴에 총탄을 맞아 중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됐으나, 사망했다고 주요 외신들은 전했다. 다른 부상자들의 경중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뮤리얼 바우저 워싱턴DC 시장은 이날 오후 6시부터 전격 통행 금지를 명령했다. 미 국방부도 워싱턴D.C 일대 주방위군을 전원 동원시켰다고 현지 매체들이 보도했다. 현지 경찰 당국은 의사당 내에서 사제 폭탄도 발견해 해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시위대들이 6일(현지 시간) 위싱턴DC 의사당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일부 시위대들이 의사당 안으로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뉴시스/AP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난입 사태는 “시위가 아니라 반란 사태”라며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가 현대사에서 본 적이 없는 전례 없는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사태를 끝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난입 사태 발생 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여러분의 고통과 상처를 안다”면서 “하지만 여러분은 지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그는 “여러분은 매우 특별하다”면서 “우리는 도둑맞은 선거가 있다”고 대선 사기 주장은 고수했다.
미 주요 언론들은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한 지 4시간여 만에 일단 의사당에서 퇴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시위대들은 현지 시간 오후 6시에 발효된 통금령에도 불구하고 경찰 등과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가 추가 불상사 없이 마무리될지도 주목된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4일(현지시각) 중동 산유국의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1만7426t급)를 나포하는 과정을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헬기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에는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소형 고속정이 한국케미에 가까이 접근하는 장면 등이 담겼다. 파르스(FARS) 뉴스 동영상 갈무리
혹시 이란의 진짜 의도는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대리 구매’?
이란이 6일 한국 선박 억류 문제가 해양 오염과 관련된 “완전히 기술적 문제”임을 재차 강조하며, 한국의 방문 계획에 “필요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란의 표면적 주장대로 이 문제가 완전히 ‘기술적 문제’라고 하기엔, 억류 시점이 너무 미묘하고 대응 또한 지나치게 거칠어 이란의 ‘진짜 속내’가 뭘지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서 큰 관심을 모은 사실은 이란이 한국이 보관 중인 원유 대금 약 70억달러(7조6000여억원) 중 일부를 활용해 코로나19 백신을 구매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이란은 2010년부터 한국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의 계좌를 통해 원화로 무역 결제를 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2019년 9월 이란을 특별지정 국제테러조직(SDGT)으로 선정하며 양국 간 교역이 사실상 중단됐다. 그에 따라 이란 돈 약 70억~80억달러(약 7조7600억~8조7000억원)가 한국에 묶여 있는 상태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이란은 지난해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한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고 호소하는 등 자금 반환을 강력히 요청해 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5일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란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24만9507명이고 이 가운데 5만5605명이 사망했다. 백신 구입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외교부는 5일 한국과 이란 사이에 관련 논의가 진행돼 왔음을 시인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 국제 프로젝트인)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 백신을 확보하려고 했다. 대금 납입을 하는데 한국 원화 자금을 이용해 납부하는 문제로 미국 재무부와 우리가 다방면으로 협의했다. 미국 재무부의 특별승인을 받았고 그에 따라 우리가 대금을 지불하려고 했었는데 이란 측이 송금 과정에서 달러로 바꾸면 미국 은행으로 돈이 들어가는데 미국 정부에서 혹시 이 돈을 어떻게 할지 하는 우려 때문에 아직 결정이 안 내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즉, 이란이 한국이 보관 중인 동결자금으로 인도적 물품인 코로나19 백신을 사려했고 그에 대해 미국의 승인까지 떨어졌지만, 미국을 믿지 못해 최종 결정을 못 내렸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이란 역시 한국이 선의에 기초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상당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백신 확보를 이유로 선박 억류와 같은 거친 압박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란이 한국과 동결 자금과 코로나19 백신을 교환(바터)하는 협상을 추진할 계획임을 알리는 3일치 <테헤란 타임스> 기사
이 지점에서 곰곰이 음미해 봐야 할 이란 당국자의 발언이 있다. 이란의 영자 언론 <테헤란 타임스>는 지난 3일 에스하그 자항기리 이란 제1부통령과 호세인 탄하이 한-이란 상공회의소 회장이 전날 만나 “한국 은행에 있는 석유 수출 동결 자금과 코비드19 백신과 다른 물품을 교환(barter)”하도록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이란이 ‘물물교환’을 뜻하는 바터(barter)란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탄하이 회장은 “한국에 있는 우리 돈과 코로나 백신을 어떻게 교환할지 제안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리스트에 있는 특정한 물품들을 바터하는데 한국인들이 얼마나 협조할 의사가 있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기사는 전했다. 이어 <테헤란 타임스>는 당국자를 인용해 이란이 원하는 구체적 물품으로 코로나19 백신 외에 원자재, 약품, 석유화학제품, 자동차 부품, 가정용 전자제품 등을 제시했다.한국 정부 당국자의 발언과 <테헤란 타임스>에 나온 이란 당국자들의 발언을 묶어 보면,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 이란은 자국 내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서둘러 백신 구매에 나섰으며, 미국의 심각한 경제제재 아래 있는 이란은 한국이 보관 중인 7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재원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1차 계획은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 이란이 직접 구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란 자금이 미국 은행을 거치는 과정에서 미국이 이 돈을 재차 압류할 위험을 인식했고, 결국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그렇다면, 한국이 백신을 대리 구매해 이를 한국 내 동결 자금과 바꿔주는 것(바터)은 어떨까. 그러나 각국이 백신 확보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한국이 협조해 줄 것인지 이란은 확신하지 못했다. 탄하이 회장 역시 “지켜볼 것”이라 말하고 있다. 결국 한국 정부를 움직일 수 있을만한 ‘외교적 지렛대’가 필요했을 수 있다. 물론 외교부 당국자가 거듭 밝혔듯 “예단은 금물”이며 다양한 시나리오를 갖고 사태에 대응해야 함은 물론이다.현재 이란은 이번 선박 억류 문제가 철저한 기술적 문제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살벌한 중동의 국제 정치판에서 ‘철천지 원수’ 미국, ‘숙적’ 이스라엘, 그에 못지 않게 미운 ‘라이벌’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대치하며 생존해 온 이란의 고된 역사를 생각해 볼 때 그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한-미 동맹 아래서 ‘온실 속 외교’를 해 온 한국과 외교적 기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백신과 선박 억류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직접 교섭을 피해가며 협상력을 높인 뒤, 단숨에 코로나19 백신의 교환(바터) 등의 요구를 쏟아낼 가능성도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지난해는 거대한 전환의 서막으로 기억될 법하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면서 인류는 삶의 양식을 등 떠밀려 급격히 바꿔야 했다. 이 사태가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비대면 회의와 비대면 강의의 증가, 배달 시스템의 고성장과 그에 따른 서비스업 구조 변화, 게임을 비롯한 실내 여가 산업의 고도성장, 공공의료 서비스 중요도의 부각 등도 일시적 수요 폭발이었다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유럽의 팬데믹이 중세를 닫고 근세의 문을 열었던 것처럼, 지난해는 훗날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로 기억될 것이다.
코로나19가 크게는 장기간 이어진 인류의 환경 파괴와 그로 인한 기후 변화의 단면이었듯, 이미 거대한 변화는 진행 중이다. 기후위기가 하나의 축이라면, 다른 한 축에는 첨단 산업의 질주가 있다. 두 변화에 따른 여파를 어떻게 조화하느냐가 앞으로 인류에게 큰 숙제가 될 것이다.
<프레시안>에 장기 연재한 '유라시아 견문' 시리즈를 통해 독자에게 익숙한 역사학자 이병한 작가가 생태 전환을 모색하는 신산업 최고경영자(CEO)와의 인터뷰를 담은 'DEEP FUTURE' 연재를 새로 시작한다. 연재명은 과거의 생태주의와 미래의 기술이 조화하는 방향에서 전환을 모색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병한 작가는 생태운동과 미래 혁명을 조화하자는 뜻에서 앞서 비정부기구(NGO) 'EARTH+'를 출범해 '새로운 백년'을 고민하는 운동을 시작한 바 있다.
누구보다 앞서 '전환을 위한 스타트업'에 뛰어든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번 연재는 매주 수요일 발행된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 바란다. 편집자.
▲사성진 마이셀프로젝트 대표. ⓒ사성진 제공
1. 바이오테크 : 공업과 농업 사이
스토리가 있는 창업가이다. 본디 자동차를 만들던 사람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에서 설계 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자동차는 20세기 산업문명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제 마이카 문화는 기후온난화를 초래한 원흉으로 지목되고 지탄받는다. 자동차가 확산됨으로써 개개인의 탄소발자국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과연 엔지니어를 접고 새로이 시작한 일은 정반대 방향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로 2020년 3월 창업했다. 공장식 축산을 대신하여 대체단백질을 배양한다고 한다. 요즘말로 푸드테크(Foodtech)나 애그리테크(Agritech), 바이오스타트업의 CEO가 된 것이다. 지구를 망치는 하이테크(High Tech)에서 지구를 살리는 딥테크(Deep Tech)로 전향했다. 오래된 미래, 농업의 최전선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대반전이 인생의 변화와 절묘하게 포개짐도 흥미롭다. 그 전환의 계기에 미래세대, 딸이 있었음은 창업 스토리에 감칠맛을 더한다. 환경 관련 다큐와 전시를 본 세 자매가 물었단다. "아빠는 왜 하필이면 자동차 만드는 일을 해?" 딸들은 임박한 기후재앙에 며칠이나 두려움 속에 울먹였다. 그 모습에 딸부자 딸바보 아빠는 진즉부터 품고 있었던 창업을 결심하고 결행한다. 이미 EBS 다큐멘터리 지식채널 e의 <딸이 울었다> 편으로도 제작된 훈훈한 일화이다.
사업 아이템은 더더욱 흥미롭다. 버섯을 이용하여 대체고기를 만들고 대체가죽을 만든다. 햄버거와 핸드백을 균사체로 제조한다. 의식주 가운데 둘,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긴요한 음식과 옷을 생산하는데 뛰어든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생각하면 화석연료를 사용한 이동수단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다. 정작 삼시세끼, 우리가 먹는 아침과 점심, 저녁의 결과라고는 쉬이 상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식량 체계는 정교하고 복잡하다. 식탁에 최종 음식물이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곰곰 따져보면 트랙터, 어선, 수송, 가공, 화학 처리, 포장, 냉동, 슈퍼마켓, 부엌에 연료를 공급하기까지 이 모든 공정(value chain)에 화석연료가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화학비료는 강력한 아산화질소를 발생시켜 대지를 오염시키고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
육류에 대한 인류의 열렬한 선호 탓에 600억 마리가 넘는 동물이 사육되고 있으며, 그 동물들을 위한 식량과 목초지를 위해 농지의 거의 절반이 할애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이제 제법 널리 알려졌다.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 메탄을 포함한 축산 배출물은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20퍼센트를 차지한다. 농업에서 삼림 벌채, 음식물 쓰레기에 이르기까지 다른 모든 식품 관련 배출에 축산까지 추가한다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야말로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가령 전 세계에서 키우고 있는 소들을 하나의 국가로 친다면,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 될 정도이다. 그야말로 인류는 지구의 온 생명을 게걸스레 갉아먹어치워 왔다. '먹방'은 동시대 인간의 생활방식에 대한 가감 없는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사성진 대표의 경기 여주 자택 전경. ⓒ이병한
따라서 식습관의 변화는 지구의 진로를 변경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강력한 한방,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억 명이 여러 차례 식사를 하고 있으니, 판세를 역전시킬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가 날씨다(We are the Wether)."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오로지 고기가 되기 위하여 일생을 공장형 축사에서 사육되는 수십억 마리의 동물도 해방시킬 수 있다. 가축을 먹이기 위하여 사용되던 어마어마한 크기의 토지를 탄소는 먹어치우고 산소는 내뿜어주는 숲으로 가꿀 수도 있다. 땅도 살리고 동물도 살리고 동물성 단백질의 과다 섭취로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건강도 되살릴 수 있는 일거다득의 첩경이다.
그러나 입맛만큼 쉽사리 바뀌지 않는 습성도 없음이 커다란 복병이다. 미각은 오감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감각이다. 어릴 적 엄마의 손맛, 그리운 고국과 고향의 맛은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고 근원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삼겹살에 소주, 치킨에 맥주는 이미 수많은 이들의 소울푸드(soul food)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고급진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와인과 스테이크의 우아한 조합도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그만큼 결기어린 결단이 수반되지 않으면 결행부터가 어렵다. 설혹 결심했더라도 작심삼일에 그치기 일쑤이다.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채식주의자 비율에 허수가 적지 않은 까닭이다. 채식주의자를 장기적으로 추적해보면 다시 본디의 식습관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8할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그래서 육식과 채식 사이 양단간에 선택하라는 윽박지름은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육식과 채식 사이 샛길을 열어주고 징검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 육식의 대안이 채식이라는 설교만으로 타박하기보다는, 기왕의 육식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를 폭넓게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인류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해왔던 일 만년이 넘는 오래된 습관을 바꾸려면 그만큼이나 영리하고 지혜로운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손쉬운 선택지를 제공하고, 눈에도 잘 띌뿐더러, 매력도 갖추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새로운 기술의 역할이 필요하다.
2. 대체육 : 육식과 채식 사이
정육점에 널린 시뻘건 생고기는 갈수록 낡은 상품(old-fashioned meat)으로 간주될지도 모른다. 고기가 아닌 고기, 전통적이지 않은 고기, 동물의 살점에서 뜯어내지 않은 고기를 제조하고 생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아니겠는가. 인간은 저 지구 밖에서 공전하고 있는 인공별, 인공위성도 만들어낸 영특한 존재이다. 46억년 지구의 진화 끝에 산출된 가장 복잡한 기관이라는 뇌(brain)의 기능을 인공적으로 가동시켜 가상의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도 창출해내는 영민한 동물이다. 하물며 지구 위, 이 땅에서 인공적인 고기쯤이야 제작해낼 수 있다. 생명체의 고통을 수반하지 않고도 청결한 방법으로 단백질을 배양하는 것이 가능함을 증명하고 있다. 엄선된 식물성 대체 식품은 이미 식료품점의 육류 코너로 진출하고 있다. 대학은 연구에 뛰어들었고, 벤처 자본은 과감하게 투자되고 있으며, 소비자의 관심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기술혁명과 소비시장의 공진화로 상품의 품질 또한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비육류 시장은 벌써 붐이며, 대체육 시장은 이미 봄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2020년이 중대한 변곡점이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왕의 식품생산 생태계가 극적으로 붕괴한 탓이다. '비거노믹스'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했다. 서점에는 비건 관련 책들이 날마다 새로 깔리고 있고, 온라인에는 비건 상품을 소비하는 모습을 인증하고 과시하는 이미지가 흘러넘친다. 관련 기업들을 망라하는 비건 박람회도 여러 차례 열렸다. 달아오르는 시장만큼이나 백가쟁명, 이름도 다양하다. 'Beyond Meat', 'Clean Meat', 'Cultured Meat', 'Advanced Meat' 등 정명을 둘러싼 패권다툼이 치열하다. 고로 마이셀프로젝트의 사성진 대표에게서도 한참 핫한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는 기민하고 세련된 스타트업 CEO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미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선정하는 '사내벤처 육성 프로젝트' 우수 벤처팀에 선정되었을 만큼 공적인 인정도 받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분을 'DEEP FUTURE'를 열어가는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로 꼽은 이유는 소소하고 사소한 일상다반사 때문이다. 사업의 방향성과 일상의 전환이 어울어지는 점 때문이었다. '글로벌 그린 뉴딜'로 그린테크(Green Tech)에는 벌써 뭉칫돈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성진 대표는 녹색 돈 냄새를 맡고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여느 사업가들과 결이 다르다. 라이프스타일도 통째로 바꾸고 있다. 대기업을 떠나면서 사무공간과 거주공간이 바꾸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던 강남역 근방의 서울사무소도 올해 홍역을 겪었다고 한다.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건물 전체가 오래 폐쇄되었고, 수백 명 근무자 전원이 검사를 받아야했다. 밀집되고 밀폐된 공간에서 밀접하게 접촉하는 기왕의 오피스 문화의 대안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팬데믹이 지나가더라도 또 다른 역병의 출현이 숱하게 일어날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서울 행렬에 동참해 새 거처로 삼은 곳은 경기도 여주이다. 여전히 수도권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의 보금자리가 터하고 있는 집은 여주시하고도 강천면, 강천하고도 외곽의 적막한 산골짜기였다. 여주 역에서 내려 터벅터벅 두어 시간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사방은 이틀 전에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500평 남짓한 텃밭에는 들깨며 파며 고구마며 올 한해 농사를 지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대문이 없는 외딴 집에 당도하자 나를 가장 먼저 맞아준 이는 하얀 털 강아지이다. 유기견이라고 한다. 이름을 '우주'로 지어주었다. 이 녀석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는 뜻이란다. 잡종이라고 하니 유니버스(universe)보다는 멀티버스(multiverse)가 어울리겠다. 짬이 날 때마다 세 딸과 강아지와 함께 이산 저산 산책하는 것을 즐긴다. 버섯 전문가 아빠이니 여기저기 소상히 살펴보며 고사리도 캐오는 재미가 제법 쏠쏠할 법하다. 도시아이, 벌레를 지독히도 무서워하여 시골로 이사하는 것을 꺼려했던 딸들이 이제는 뱀도 잡아 놀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한 반에 열 명 남짓, 전교생이 100명도 안 되는 산골 초등학교에 줄줄이 총총히 다니고 있다.
생체역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답게 2층집 자택 또한 직접 설계했다고 한다. 태양광으로 모든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친환경 에코하우스이다. 외출할 때에는 태양광으로 생산된 전기로 충전된 전기차를 몰고 다닌다. 세 딸의 방에는 산과 하늘이 내다보이는 커다란 창문을 달아주었고, 방마다 딸린 문을 열고 나가면 곧장 마당으로 이어진다. 2층에는 다락방도 꾸며주었다. 까르르르 세 자매가 웃는 소리가 들리는데 정작 어디 숨어있나 했더니, 그들만의 비밀 아지트, 다락방에서 놀고 있었다. 다락방과 함께 가장 공을 들인 곳은 주방 겸 거실이다. 주방은 가족 모두가 함께 쓰는 개방형 공유공간이고, 다락방은 고유하고 은밀한 사적 공간이다.
하얀 눈이 깔린 마당이 훤하게 내다보이는 주방 한 켠에 걸터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변함없이 노란색 둥근 안경테를 콧등에 걸쳤고, 후줄근한 회색 후드티에는 파란색 글씨로 MYCEL 로고가 박혀 있다. 마침 공장에서 배양된 버섯 균사체 고기로 만든 스튜를 한 접시 내어주신다. 본래는 지난 12월에 출시할 예정이었던 'Independence Table'의 상품일 것이다. 더 맛있는 균을 찾아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설비를 정비하는 등, 기술적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공급을 미루었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제품을 선보이고 시장을 선점하고 싶을 성싶은데, 신중한 성품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덕분에 나는 시장 출시 이전의 신상품을 미리 시식해볼 수 있는 특혜, 특권을 누렸다.
채소들 사이로 저 동글동글한 물체가 바로 '고기'렸다. 지긋하게 첫 눈맞춤을 나누었다. 다음은 입맞춤 차례. 사뭇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숟가락을 들고 '고기'를 떠 담았다. 그릇에서부터 내 입 속까지, 최대한 천천히 이동시켰다. 자연적 진화의 소산인 내 몸뚱아리와 기술적 진화의 산물인 '균사체 고기'가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과거와 미래가 접속하는 현재이자, 땅 속의 미생물이 내 위장 속의 미생물과 접촉하는 신토불이(身土不二)의 현장이었다. 경건한 자세로 입 속에서 오래 궁글리며 차근차근 잘근잘근 씹어보았다. '고기'가 잘게 부수어져 나가며 그윽한 버섯향이 입가에 서서히 퍼져나갔다. 치아에 스며들고 혓바닥을 촉촉이 적시는 이 액체를 '육즙'이라고 해야 할까? 매끄럽게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이물감까지 또렷하게 음미해 보았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맛일 터이다. 여섯 번째 대멸종이 임박했다는 오늘의 인류를 되살려낼 수도 있는 인공의 입맛이며 첨단공학의 참맛이다.
테크놀로지의 테이스트(taste)인 동시에 매우 오래된 구수한 맛이기도 했다. 균류는 인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상에 살기 시작한 미생물인 탓이다. 우리의 오랜 선조이고 선배이다. 이 묵은 미물이 최신의 생명공학과 결합함으로써 장차 100억 인구를 먹여 살리면서도 지구 환경을 푸르게 푸르게 보존할 수 있는 히든카드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자연스레 첫 질문은 버섯 균사체로부터 출발했다. 장엄한 지구의 역사, 장대한 지질학적 진화사의 지평에서 우리의 키친 토크는 시작되었다.
▲마이셀프로젝트 대체육의 원료인 버섯 균사체. ⓒ사성진 제공
이병한 : 사명이 '마이셀프로젝트(mycelproject)'입니다. '마이셀', 즉 버섯 균사체가 핵심 물질인데요. 왜 이 바이오 소재를 주목하셨는지부터 듣고 싶습니다.
사성진 : 마이셀이 곰팡이에 속하는 버섯균류를 핵심소재로 사용하는 이유는 곰팡이류가 생태계에서 자연 순환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역할을 확장하여 자연계와 사람들과의 연결을 통해 산업적 순환성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화는 거대한 시간의 축적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고, 지구라는 행성과 지구상의 생물에게 새로운 생명의 기회들을 제공해 왔습니다. 지질시대 중 석탄기에는 목재를 분해하는 곰팡이(균)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구 표면에는 대량의 목재 쓰레기가 쌓여 있었죠. 석탄기 말, 진화의 결과로 백색 부후균이 나타나면서, 쌓여 있는 쓰레기들을 분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균류의 등장으로 마침내 자연자원의 순환성이 완성된 것이지요. 균류의 등장이 없었다면 지구 표면은 지금까지도 나무 쓰레기로 뒤덮여 있을 것입니다. 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류가 산업폐기물,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를 자연의 순환 고리 안에서 분해하고 새로운 자원으로 탄생시켜 우리의 미래를 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곰팡이 균류가 산업시스템과 자연생태계의 핵심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함으로써 현재의 산업 체제를 선형구조에서 자연시스템의 순환 구조로 바꾸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것이 궁극적으로 마이셀이 하고 싶은 일입니다. (계속)
언론인 출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자들에게 친화적인 편이다. 4일 오후에도 그는 국회 본청 당대표실 앞에서 '뻗치기'하는 취재진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추운데 고생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때 한 기자가 "질문하면 받아주시나요"라고 조심스레 묻자, 이 대표는 '말해보라'는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기자 :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 관련해서..." 이낙연 대표 : "추가로 할 얘기는 없는데... 어제 다 (얘기) 했잖아요?"
곧이어 열린 당 고위전략회의 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사면 관련 질문에 다시 한 번 "어제 최고위원회 간담회 입장문에 다 담겨 있다"며 답을 피했다. 실제로 민주당 지도부는 3일 긴급 회동으로 입장문을 발표한 뒤 사면 관련 얘기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관련 기사 : 이틀 만에 봉합된 이낙연의 '이명박·박근혜 사면론', 그러나...).
당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4일 당대표실에는 연신 항의 전화가 왔고, 민주당 의원들도 언론 인터뷰, 페이스북 글 등으로 공개 반대를 표명했다. 5일에도 '클리앙' 등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낙연 대표를 비판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당내 분란으로까지 번져나간 건 아니지만, 아예 없던 일로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표 이낙연 vs 후보 이낙연'대선주자' 이낙연은 다르다. 그는 같은 날 KBS <9시 뉴스>에 출연해 거듭 "(사면 건의는) 절박한 심정에서 말씀을 드렸다"라고 밝혔다. 그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전쟁을 치르러가는데, 국민의 마음을 둘·셋으로 갈라지게 한 채 그대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한 충정에서 말씀드렸다"며 "유·불리만 생각했으면 말 안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낙연 대표와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동교동계'로 꼽히는 김한정 의원은 "이낙연 대표가 해야 될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국난 극복을 위한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 좀 양보를 해야 한다"며 "그중 가장 뜨거운 감자 내지는 참 곤혹스러운 과거사가 바로 두 전직 대통령 문제"라고 짚었다.
김 의원은 또 이 대표가 먼저 사면이란 화두를 꺼낸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준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 1부속실장으로서 김대중 대통령 임기 말을 지켰던 경험에 빗대어, "문 대통령께서 (관련해) 참 답답하고 억울한 면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빈부격차, (아동)학대, 방역 대응 등 얼마나 일이 많냐"며 "대통령이 좀 편하게, 정파적 이해를 떠나서 일할 수 있도록 정치권도 (여건을) 만들어 드려야 한다"고 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낙연 대표가 손해를 감수하고 문 대통령의 '안전판 역할'을 했다"고 봤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최종판결이 나오는) 14일이 지나면, 여기저기서 (사면) 얘기가 나올 것"이라며 "그러면 대통령은 사면하든 안 하든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 민심과 당심을 읽는 데에 상당히 도움을 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대표가 '대선주자'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사면 주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은 당 최고위에서 (논의가) 정리됐지만, 이낙연은 대표이면서 대선주자"라며 "자신이 신념이라고 말한 것을 철회한다면 대선주자로서의 지위가 흔들린다"고 말했다. 또 "이낙연 대표에게는 위기이면서 기회일 수 있다"며 "이걸 잘 풀어내면 정치력으로 인정받는다"라고 했다.
이낙연 vs 이재명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30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이낙연 대표는 "저의 이익만 생각했다면 이런 이야기는 안 했다"(4일, KBS 9시 뉴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대선주자' 이낙연의 승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강력한 경쟁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입장이 갈리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는 사면 논란을 두고 "나까지 입장을 밝히는 것은 대통령께 부담을 드린다"며 명확히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3일 페이스북에서 다큐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를 언급하며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하기엔 기시감이 든다"고 했다. 그는 "기득권 카르텔(담합)을 개혁하는 것이 곧 민생이며, 이들을 내버려 두고는 그 어떤 민생개혁도 쉽게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며 더 선명한 개혁을 강조했다.
이낙연 대표로선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국민 통합에 더욱 힘을 실어야 한다. 이 대표 쪽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사면은 통합의 부분적 카드일 뿐"이라며 "국민 통합 이슈는 더 정리하고 강화하는 측면으로 간다"고 했다. 그는 "(이 대표 메시지는) 이념과 갈등, 냉소와 조롱을 넘어서겠다는 의제이고,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의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만사가 정쟁으로 치달으면 아무 것도 진전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 조선중앙통신은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 인민군 장병들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 뜨거운 열망 속에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가 2021년 1월 5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개막되었다”라고 6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은 6일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했으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김재룡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대회 사회를 보았다고 전했다.
북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가 5일 개막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 인민군 장병들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 뜨거운 열망 속에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가 2021년 1월 5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개막되었다”라고 6일 보도했다.
통신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우리 혁명 발전의 새로운 고조기, 장엄한 격변기가 도래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당 중앙위원회의 사업을 전면적으로 엄정히 총화하고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 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 실제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 당의 성스러운 역사에서 여덟 번째로 되는 당 대회를 소집하였다”라고 밝혔다.
통신은 “조선 혁명의 새로운 투쟁의 앞길을 밝힐 당 제8차 대회의 소집은 사회주의 위업을 승리의 다음 단계로 이행해나가려는 우리 당의 확고한 자신심의 표출인 동시에 영광스러운 조선노동당의 전투적 행로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특기할 정치적 사변으로 된다”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통신은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는 혁명 발전의 추이와 조성된 주·객관적 정세의 요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데 기초하여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건설에서 획기적인 도약을 일으키기 위한 새로운 투쟁노선과 전략 전술적 방침들을 토의 결정하게 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통신은 대회에 제7기 당 중앙지도기관 성원들과 전 당의 각급 조직에서 선출된 대표자들이 참가했다고 전했다.
이날 대회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했으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김재룡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대회 사회를 보았다.
통신은 당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당 규약 개정 ▲당 중앙지도기관 선거 등의 의제를 승인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이 당 중앙위원회 7기 사업총화 보고를 했다고 전했다.
대회 집행부로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해 최룡해·리병철·김덕훈·박봉주·박정천·김재룡·리일환·최휘·박태덕·김영철·최부일·김수길·태형철·오수용·김형준·허철만·박명순·조용원·김여정·김정관·정경택·김일철·임철웅·리룡남·김영환·박정남·양승호·리주오·동정호·고인호·김형식·최상건·오일정·김용수·리상원·리영길·김명길·강윤석 등이 선출됐다.
박용일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리명철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박수철 반제민족민주전선 평양지부 대표가 주석단에 초대됐다.
대회 서기부로 신룡만·함룡철·서경남·김봉철·강종관·김정민·리형진 등이 선출됐다.
당 대회에는 제7기 당 중앙지도기관 성원 250명과 전 당의 각 조직에서 선출된 대표자 4천750명, 방청자 2천 명이 참석했다.
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첫째 의제로 당 중앙위 사업총화를 했다며 “대회는 계속된다”라고 전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는 제7기 당 중앙지도기관 성원 250명과 전 당의 각 조직에서 선출된 대표자 4천750명, 방청자 2천 명이 참석했다.
“생산 라인 세우면 누가 책임지나” 위험 감수하며 작업하던 외주업체 직원 협착사...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
홍민철·강석영 기자
발행 2021-01-05 18:28:20
수정 2021-01-06 08: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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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생산 라인을 정비하던 외주업체 노동자가 압축 기계에 상반신이 끼여 목숨을 잃었다. 압착 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A급 위험작업’이었지만, ‘라인을 멈추면 손해가 막심하다’는 경제 논리 앞에 위험을 감수하던 50대 하청 노동자는 결국 지난 3일 세상을 떠났다.
사고는 어디서 발생했나
사고가 발생한 곳은 철판을 압축해 차체 부품을 만드는 프레스 공정이다. 넓은 철판을 필요한 모양으로 눌러 구부리고 필요 없는 부분은 잘라낸다. 잘린 철판 찌꺼기는 3~4m 아래에 있는 컨베이어벨트로 떨어진다. 철판 찌꺼기 크기는 다양하다. 손바닥만 한 철판이 있는가 하면 폭 5cm 길이 1m 이상 되는 대형 조각도 있다. ‘타당’ ‘우당탕’ 컨베이어벨트에 쉼없이 떨어지는 쇠붙이 소리에, 고함을 쳐도 바로 옆 사람과 대화하기 힘들다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설명이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한 철판 찌꺼기는 베일러머신이라 불리는 압축기에 들어간다. 압축기는 모인 철판을 블록 형태로 압착해 배출한다. 대형 압축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철판 찌꺼기 부피를 줄인다. 전면에는 압축기가 과도하게 내려오지 않도록 막는 원기둥 두개가 있다. 압축기와 원기동 사이에는 40~50cm가량의 틈이 있는데 이 틈에 완전히 압축되지 않은 철판 찌꺼기가 쌓이곤 한다. 고인은 이 찌꺼기를 제거하려다 압축기와 원기둥 사이에 몸이 끼이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현장을 처음 목격한 동료는 “압축기 스토퍼(원기둥) 옆에 고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압축기 전면에 설치된 안전 철문. 문이 열리면 전원이 차단되면서 압축기가 멈춘다.ⓒ민중의소리
압축기 안전 문 뒷편 45cm 가량의 공간. 현대차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민중의소리
압축된 철판 찌꺼기들이 큐브 형태로 배출되고 있다.ⓒ민중의소리
안전조치, 제대로 진행됐나
원청인 현대자동차도 위험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대차가 외주업체에 발급한 ‘안전작업허가서’를 보면, 사고가 발생한 작업은 최고 위험 등급인 A등급이었다. 허가서엔 추락·누전 등과 함께 협착이 주요 위험요인이라고 명시됐다. 현대차가 작성한 ‘위험성평가표’에도 ‘보수·점검시 동력차단을 하지 않을 경우 협착·충돌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평가표는 안전 대책으로 ‘동력을 차단하고 조작 스위치를 잠가야 한다(Lock out/tag out)’고 권고했으나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았다.
외주업체 관계자는 “동력을 차단한다는 말은 라인을 세운다는 뜻인데, 지금껏 단 한 번도 우리 작업 때문에 라인을 세운 적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분 50초마다 차가 한 대씩 생산되는데, 우리가 보수한다고 라인을 20분 멈추면 그 손해를 누가 어떻게 감당하나. 라인 정지 요청은 엄두도 못 낼 일”이라고 토로했다. 손해를 우려해 인명 피해를 강요하는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다.
사고가 발생한 압축기계 앞에도 긴급 안전장치는 있었다. 수리를 위해 작업자가 진입하는 노란 철문에는 감지기가 달려 있다. 작업자가 문을 열면 전원이 자동으로 차단되면서 동작을 멈춘다. 혹시나 모를 압착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전원이 차단되면 라인이 멈추고 손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은 알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안전장치가 달린 문으로 출입하지 못했다. 대신 문 옆에 난 45cm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작업했다. 작업 내내 압축기는 쉴새 없이 오르내렸다.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라인을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은 작업자도 외주업체에도 없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작업했다. 사고가 난 김모씨는 이 틈에서 작업 하다 상반신이 기계에 끼어 변을 당했다.
외주업체에선 안전 펜스로 틈을 막아야 한다고 여러차례 건의했다. 원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주업체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개인 과실로 묻히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2인1조 작업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2017년 외주화 이전에는 2인 1조로 했던 업무였는데, 외주화 되면서 비용 때문에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안전 의무를 지키지 않은 채 위험천만한 작업으로 노동자를 내몬 현대차의 살인행위”라고 비판했다.
금속노조가 공개한 현대자동차의 안전 작업허가서. 위험등급이 A등급이고 추락, 협착 등의 주요 위험요인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제공 : 금속노조
작업은 왜 시작됐나
작업이 시작된 이유도 석연치 않다. ‘민중의소리’가 확보한 통화 녹음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후 12시40분께 외주업체 간부는 “안전쪽 중역들(현대자동차 울산공장소속 임원)이 작업 확인을 나온다고 하네, 그 전에 지저분한거 정리좀 해달라”고 지시한다. 작업자는 “어제 엄청 치워 놓았다”고 말했지만 관리자는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사람들 오기 전에 정리 부탁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지시를 받은 작업자들은 오후 1시경 현장으로 향했고, 30분 뒤 고인은 쓰러진 채 발견됐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대대장 온다니 닦았던 곳 또 닦으려다 끔직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와 정규직 노동조합은 안전교육실시, 재해예방 전문 요원 배치, 관련 임원 징계 등 재발방지 대책에 합의했지만, 안전펜스 설치가 합의에 포함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지난 4일 신년사에서 “진심으로 깊은 애도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안전한 환경조성과 안전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짤막한 입장을 내놨다.
아랍에미리트(UAE)로 향하던 한국 국적의 케미컬 운반선(석유 화학제품 운반선)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이란의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됐다. 정부는 사실을 확인하고 선박의 조기 억류 해제를 이란 측에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4일 외교부는 "이날 오후(현지 시각)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에서 항해 중이던 우리 국적 선박(케미컬 운반선) 1척이 이란 당국의 조사 요청에 따라 이란 해역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해당 선박에는 20명의 선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 중 한국 국적 선원은 5명이며 나머지는 각각 미얀마 11명, 인도네시아 2명, 베트남 2명의 선원이 탑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들은 이란 남부의 항구 도시인 반다르아바스에 구금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외교부와 주이란 대사관은 선박 억류 관련 상세 상황 파악과 함께 선원 안전을 확인하고 선박 조기 억류 해제를 요청 중"이라며 "현재 청해부대(최영함)가 사고 해역으로 이동 중이며 인근 해역을 항해 중인 우리 선박에 대해 안전조치를 취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이란에 의한 우리 선박 억류 상황을 접수한 직후 청해부대를 즉각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으로 출동시켰다"며 "외교부, 해수부 등 유관부서 및 다국적군과 긴밀히 협조하여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영함은 5일 오전 작전 해상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 한국 국적 케미컬 운반선이 4일(현지 시각) 호르무즈 해협 오만 인근 해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됐다. ⓒ연합뉴스
앞서 이란 혁명수비대 측은 성명을 통해 이날 오전 10시경(현지 시각) 걸프해역(페르시아만)에서 한국 선박을 나포했다며,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어긴 데에 따른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혁명수비대는 "선박 나포는 호르무즈 주 검찰과 항만청의 요구에 의한 것이며 이번 사건은 사법 당국이 다루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들은 또 해당 선박에 7200톤의 화학 물질이 담겨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당 선박의 선사인 디엠쉽핑(DM Shipping)은 선박과 혁명수비대가 접촉했던 해역은 공해상이었다면서, 소속 선박은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번 선박 나포가 이란과 미국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 발생함에 따라, 향후 사건 추이를 두고 긴장감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최근 이란 내부에서는 미군의 공격으로 숨진 거셈 솔레이마니 전 쿠드스군(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의 1주기를 맞아 반미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지난 2일(현지 시각) 군에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핵 추진 항공모함과 핵 잠수함 등을 페르시아만 인근에 배치한 상황이다.
오기태는 잠을 설치다가 몸을 일으켰다. 새벽 2시, 사방이 깜깜하다. 동생 조상이는 어제 일이 고되었는지 이불을 저만치 밀어내고 곤하게 잔다. 오기태는 이불을 덮어주고 그의 손을 잡아보았다. 거칠고 팍팍하다.
오기태가 1930년생이고 조상이가 50년생이니 올해 90세와 70세, 두 사람은 북에서 남파되었다가 전주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다. 1989년 12월 24일 같이 출소했고 2000년부터는 전주 평화동 주공아파트에서 20년을 함께 살고 있으니 특별한 인연이다.
오기태는 오른쪽으로 굽은 허리를 일으켜 책상에 앉았다.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쓰겠다고 마음 먹은 지 벌써 한 달. 눈은 컴컴하고 손마디는 힘이 없어 글씨는 엉망이었다. 컴퓨터를 들여 자판 연습을 해보다가 하루 만에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볼펜을 잡고 여러 날 동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오늘은 어떻게든 마무리 지을 참이다. 갑자기 새된 기침이 나온다. 그는 조상이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소리를 낮추고 휴지를 입에 갔다 댔다. 그리고 첫 줄을 적었다.
대통령님께 부탁드립니다. 제 나이 올해 구십입니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죽기 전에 북녘땅,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오기태는 노동당 문화부의 소환을 받고 남파되었다. 1969년 7월 황해도 해주에서 달빛을 안고 내려와 전남 장흥의 수문리 해안가에 닿았다. 그날 밤은 야산에서 남해 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몸을 뉘였다. 다음 날 일찍, 전남대 출신의 조장 이봉로와 함께 기차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그곳에서 두 달간 노동자와 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임무였다.
오기태는 광주 대인동 근처 여인숙에 숙소를 잡고 일당 잡부로 건설 현장에 나갔다. 노동자들과 담배를 나눠 피며 "내 고향은 신안군 임자도요"라고 통성명을 했고 국밥집에서 대포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일요일에는 이봉로 조장과 전남대 앞 서점에 들러 책도 사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금세 다가온 9월 하순의 귀환 날, 오기태는 해가 졌을 때 장흥군 월암리 바닷가에서 땅굴을 팠다. 무전기를 켜고 접선을 시도하려는 참에 "동무, 마을에 가서 담배 한 갑 싸게 사 오겠소"하며 조장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바닷가에는 달빛을 실은 파도가 밀려왔다가 잔 물방울을 뿌려댔다. 사위는 물소리와 간혹 꾸룩대는 기러기 소리뿐이었다. 무전을 쳐야 할 시간이 넘었는데 조장의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기태가 마을 쪽 어둠을 근심스레 바라볼 때 정적을 깨는 총성이 한 발, 곧이어 대여섯 발이 '드드드' 울렸다.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바닷가 마을을 뒤흔들었다. 오기태는 무전기를 집어 들고 땅굴에서 솟구쳐 나왔다. 지금 가까운 보성역으로 서둘러 가면 경전선 새벽 첫차를 탈 수 있다. 만일에 대비했던 계획이 현실이 될 줄이야...
오기태가 가까스로 순천행 기차에 올랐을 때에서야 역전 마당에 호루라기가 울리고 경찰이 경계망을 펼쳤다. 그는 순천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2차 접선지인 부산 형제 바위로 갔다. 여기서도 접선에 실패한 그는 3차 장소인 광주로 되돌아왔다.
예전 여인숙에 행장을 풀었을 때, 그는 월암리 바닷가에서부터 일주일이나 옷을 갈아입지 못해 상거지 꼴이었다. 몇 시간 뒤 나타난 경찰 서너 명이 그를 에워쌌고 그날로 그는 서울 대방동 미군첩보부대로 이송되었다. 총상을 입고 치료받던 이봉로 조장도 거기서 다시 만났다. 그때는 몰랐다. 이 날이 길고 긴 징역생활의 첫째 날이 될 줄은...
▲ 오기태 선생
오기태는 눈을 비비며 다음 문장을 썼다.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어 89년 12월 24일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할 때까지 21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일본놈 앞잡이처럼 민족을 팔아먹지 않았습니다. 살인을 한 흉악범도 아닙니다. 나는 분단된 땅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내려왔을 뿐입니다. 남쪽에 와서 노동자와 학생들을 만나 조직사업을 했으나 불과 2개월, 그저 이름 석자 주고 받고 친분을 나눈 정도입니다. 과연 20년 넘게 징역을 살아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을 한 건가요?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충분한 댓가를 치루지 않았나요?
어렵게 한 자 한 자 써가던 오기태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는 2005년 급성폐렴에 걸려 중환자실에서 두 달이나 있었다. 가까스로 회복이 되었지만 그 후 목소리는 새되졌고 마른 기침을 달고 살았다. 창문에는 한밤중의 한기가 달라붙어 성에를 수놓았고 그 위로 달빛이 실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오기태는 기침을 억누르고 다시 펜을 들었다.
2000년 9월 장기수들이 송환될 때, 이 사람은 ‘전향’을 했다고 제외되었습니다. 정녕 그 실상을 모르는 겁니까? 전주교도소에서 있을 때 간수들은 한 겨울에 열두 명을 한 평도 안 되는 방에 몰아넣고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얼음칼이 옆구리를 찌르고 등 뒤로는 무수한 바늘이 파고드는 듯했습니다. 입이 쩍쩍 벌어지고 우리는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돌아온 건 비웃음과 찬물세례, 구두발자국이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내 허벅지에 전선줄이 감겼고 땅바닥에 내평개쳐진 물고기 마냥 살점이 퍼덕거렸습니다. 전주교도소의 전향은 이런 고문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미 수없이 증언한 이야기들이고 나는 2001년 내 양심에 따라 ‘강제전향무효’ 선언을 한 바 있습니다.
오기태는 다시 옆구리를 쥐었다. 급성폐렴으로 사경을 헤맨 지 얼마 안되어 2008년 대장암이 발견되었다. 나이 팔순이 가까워 얻은 큰 병이었다. 가까스로 치료는 되었지만 그 후로 설사와 변비가 되풀이 되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동네 학산을 오르내렸건만, 올해는 설사기가 심해져 이마저 그만두었다. 새벽이면 통증이 찾아오는 횟수가 늘었다. 오기태는 배를 어루만지며 잠시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창가에는 여전히 어둠이 웅크리고 새벽 햇살을 가로막았다.
오기태의 집은 9평 임대주택, 방·거실·부엌이 모두 하나다. 부엌 옆에는 손마디 같은 복도와 손뼘 같은 화장실이 전부다. 그나마 요런 임대주택이라도 있었기에 오기태와 조상이는 숨 쉬고 살았다.
89년 출소 후 오기태는 신원보증을 섰던 전주 남문화방 사장 밑에서 먹고 자며 일을 했다. 교도소 목공반에 있었던 그는 표구와 액자 일을 잘했다. 주변에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들어왔냐”“할 정도로 성실하게 일을 했고 상점과 창고 등 열쇠 다섯 개를 도맡아서 관리했다.
하지만 IMF로 남문화방은 문을 닫았고 오기태는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 ‘나눔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살면서 그는 영세민들과 노숙자를 위해서 밥 짓는 일을 하고 상담 일을 맡았다. 어떤 신용불량자는 오기태에게 ”회장님 저 100만 원만 빌려주세요”라고 손을 벌렸다. 주방 아주머니도 “삼촌 30만 원만 꿔주세요”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오기태는 쉼터에서 받은 월급으로 이런 부탁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당시 전주에는 열 명 정도의 출소장기수들이 있었다. 오기태가 있는 쉼터는 이들에게 사랑방이었다. 와서 점심도 먹고, 안부도 물을 수 있는...그 무렵, 다행히 임대아파트가 배정되었고 쉼터를 나와 평화동으로 오게 된 것이다. 출소 후 두 번이나 결혼사기를 당했던 조상이도 오기태의 임대아파트로 들어왔고 그때부터 두 장기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조상이가 교도소에서 건축 1급 메달을 딸 정도로 실력이 있어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임대아파트 관리비래야 한 달 5만 원 안쪽이었고 두 노인네 쓰임새는 담배 한 갑 정도였다.
▲ 오기태 선생
오기태는 책상에 묻었던 얼굴을 들고 다시 볼펜을 잡았다.
저는 89년 12월 24일 출소해서 제일 먼저 고향 임자도엘 갔습니다. 아버지는 총살당하고 형님은 조계산 어느 골짜기에선가 숨졌다고 누이 동생이 일러주더군요. 고맙게도 임자도 초등학교 동창들이 아버지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저는 선산에 가서 아버님께 술잔을 올리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자식들 때문에 총 맞아 돌아가신 그 한이 눈을 감으시고서라도 풀렸을까요?
아버님 눈에 임자도 푸른 물이 핏빛으로 일렁거렸을 것이고 바다 갈매기는 시체 위를 떠도는 독수리 떼처럼 보였을 겁니다. 분단은 우리 가족에게 큰 한과 아픔을 주었습니다. 상처를 삭히기 쉽지 않았습니다.
오기태는 1950년 전쟁이 일어나면서 빨치산이었던 형의 권유로 인민군에 입대했다. 목포에서 남해여단에 편입되어 낙동간 전선으로 가려던 차에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했다. 그는 여단을 따라 목포, 장흥, 지리산, 오대산을 거쳐 강원도 양양으로 후퇴했다. 여기서 인민군 2군단 9사단 32연대로 소속이 바뀌었다. 이때가 10월 말이었다. 당시 32연대는 국군 대대장 출신으로 대대병력 전체를 데리고 월북한 강태무였다. 32연대의 주요임무는 금강산 일대에서 미군의 남쪽 퇴로를 막는 것이었다.
50년 10월 27일, 원산에 상륙한 미 제1해병사단이 개마고원의 장진호까지 전진했다. 10월 25일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 제 9병단의 3개 군단이 장진호 일대에 집결해서 이들에 대한 포위 공격에 들어가자 미군은 수세에 처하게 되었다. 전황은 압록강 방면도 마찬가지여서 11월 30일 맥아더는 모든 전선에서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오기태가 속한 32연대는 이들의 퇴각 길목을 막으며 원산으로 진공했다. 원산항이 막히자 미군은 흥남항을 택해 12월 15일부터 ‘흥남 철수’를 시작했다.
오기태는 참전 후 이곳에서 처음으로 전투를 치렀다. 51년 여름에는 장티푸스에 걸려 큰 고생을 했다. 고열에 시달리며 6개월간 생사를 넘나들었다. 어렵게 회복한 그는 전방에 있을 때 노동당에 화선입당을 했다. 1953년 7월 27일 그는 강원도 철원군 오성산에서 정전협정을 맞았다. 이후 4년간 복무를 더하고 1957년 중사로 제대해 함경북도 온성에 있는 탄광으로 가게 되었다. 당시 북은 1차 5개년계획(1957~1961)에 따라 중공업 부문에 청년들을 집중배치했었다.
그는 온성 탄광에서 근무한 지 얼마 안 되어 탄광지도원으로 승진했다. 1959년 초에는 청진 공산대학에 입학해 당의 정강 정책, 항일유격투쟁사들을 배웠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온성군 인민위원회 상업 검열국으로 배치받아 상점들의 부정행위들을 단속했다. 그 후 국토청 토지관리지도위원이 되어 온성군 내 토지, 산림 실태를 조사했다.
이래저래 온성에서 일을 하던 오기태는 1959년, 군수방직공장에 다니던 김외식을 만나 혼례를 치렀다. 3남매를 낳고 막내가 아내 뱃속에 있을 때 문화부의 소환을 받았다. 그 후 6개월간 야간행군, 태권도, 무전기 사용법을 훈련받고 이봉로 조장과 함께 내려 왔다 귀환 길에 체포된 것이다.
▲ 오기태 선생
새벽 4시에 예약 취사를 한 전기밥솥에서 쉬쉬 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새벽일 나가는 조상이의 아침상을 차려줘야 한다. 오기태는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일어났다. 청국장을 끓이고 겨울 시금치를 무쳤다. 후라이팬을 달궈 꽁치도 올렸다. 맛나게 먹이고 싶은데 나이가 들어선가 간을 맞추는 게 힘들어져 속상할 때가 많다. 요즘 들어 그를 보면 안쓰럽다. 칠십이 넘은 나인데 공사장 일을 나가고 전주에서 대전 유성까지 그 먼 길을 다니니... 오기태는 그를 깨우려다 조금 더 자게 놔뒀다. 밥상 준비를 얼추 마친 그는 책상에 앉아 다시 펜을 잡았다.
대통령님, 2018년 평양 능라동 경기장에서 하셨던 감동적인 연설을 기억합니다. 온 겨레가 가슴 벅차게 들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더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특히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사무치게 와 닿았습니다.
오기태는 ‘닿았습니다’에 구두점을 찍고 다시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사실 오기태는 1차 송환이 좌절되자 혼자 온성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섰다. 2004년부터 여러 번 연변 조선족 자치구로 넘어가서 온성군이 마주 보이는 도문(圖們)시 쪽으로 이동했다. 어찌어찌 중국 공안과도 선을 연결해 가족들의 생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신통한 결과가 없자 그는 두만강을 그냥 건너가려 했다. 강만 건너면 바로 온성이고 그는 10여 년 이상 그곳에 근무했기에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너갈 수 있는 길목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기태는 발걸음을 거두었다. 그는 판문점을 통해서 동료 장기수들과 함께 당당히 돌아가고 싶었다. 그게 올바른 길이고 다른 장기수들에 대한 도리라고 여겨졌다. 포기하고 연변에서 전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눈물이 안개비처럼 고이고 가슴에는 검은 비가 흘렀다. 그러면서 늙은 몸은 오른 쪽으로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오기태의 기침이 더욱 심해지더니 오장육부를 게워낼 듯 소리마저 커졌다. 휴지를 급히 뜯어 입을 막았는데도 피가 한 움큼 쏟아진다. 기침을 할 때마다 오줌이 조금씩 새어 나와 속옷 마저 축축하다. 오기태는 옷을 갈아입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이제 몇 줄만 더 쓰면 된다. 얼른 마무리하고 새벽밥 먹여서 조상이를 출근시켜야 한다.
쿡 쿡 찌르는 배를 움켜잡고 기침을 억누르며 다시 볼펜을 꽉 쥐었다.
저는 부탁드립니다. 적대를 청산하는 큰 뜻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2차 송환을 간절히 바라는 어느덧 구순을 넘나드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둘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도 강담선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두화 선생을 비롯 여러 동지들이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올해 구십 살인 나도 오늘, 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
2차 송환을 바라는 우리들을 보내주는 일은 평화를 위한 중요한 걸음입니다. 615선언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미국놈들 눈치 볼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할 수 있는 일, 대통령님이 결심하면 할 수 있는 일조차 늦추면 안됩니다. 우리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창문으로 슬그머니 어둠을 뚫고 달빛이 들어왔다. 조각같은 그 빛은 오기태가 벽에 붙여놓은 두 장의 사진을 비췄다. 한 장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이 평양순안공항에서 악수하는 장면이고 나머지 한 장은 2018년 백두산 천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이 두 손을 잡고 하늘로 치켜올린 장면이다.
오기태는 두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침이 계속되었다. 고개가 자꾸 떨궈지고 눈마저 감긴다.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니 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쓰러질 듯 다시 책상에 앉았다. 감기는 눈을 치뜨고 떨궈지는 고개를 가누며 마지막 줄을 써내려갔다.
죽기 전에 아내 김외숙과 춘자, 정자, 성일 그리고 이름조차 모르는 막내를 죽기 전에. 죽기 전에...
마지막 구절을 남겨두고 그의 손에서 볼펜이 툭 떨어졌다. 동시에 고개가 푹 책상으로 떨궈졌다. 기침과 숨이 가느다랗게 몇 번 이어지더니 이내 잦아들었다. 오기태의 눈은 어느새 감겨버렸다. 시계는 3시 5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오기태 선생 추도식 [사진 : 통일뉴스]
<못다한 이야기>
⓵ 오기태선생은 2020년 12월 4일 필자에게 생애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날 힘주어 문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올릴 것이고 그 요지를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청원서를 올렸는데도 2021년까지 송환이 안 되면 연변을 통해 온성으로 가서, 죽기 전에 가족을 만나겠다고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는 생애 구술 삼일 후인 새벽 4시에 숨졌습니다.
⓶ 이 글에서 흥남철수 부분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현실문화 간)을 참고했습니다.
③ 아래 추모시는 정충식_전농 전북도연맹 정책위원장이 오기태 선생을 추모하며 남긴 시다.
오기태 선생님을 추모하며
새벽 4시에
당신은
북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농사짓던 땅
아이들의 살 내음
부인이 초가 살 밖에서 부르던 소리 담아오면
잠 못 이루고 일어났지
간수가 휘두르면 살덩이 떨어져 나오던 매질
의지를 꺾으려 육신을 가두었던
독방의 쇠창살도 막지 못했지
버스 타면 한나절
기차 타면 반나절
갈 수만 있다면 기어서라도 갔을
그러나 기어이 당신의 걸음으로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고
의연히 걸어가고자 했던
해가 갈수록 사무치게 잠을 깨우던 그 시간
당신의 몸이
북녘에 있을 때도
그리움은 남녘의 바다 고향
회귀하는 민어를 품은 임자도 너른 물결따라
뜨겁게 심장이 뛰었으니
처자식을 뒤로 하고 내려왔었을 당신
당신이 사랑했던 조국은
당신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을 안겼는지
이제
누구에게 물어보고 대답하지 못해도 돌아보리다
남아있는 자들이
슬픔을 머금고
모여
오늘 이제야 북녘으로
마지막 통일의 배 띄우네
철새의 날갯짓이 부러워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을
당신의 숨결을 싣고
얼어붙은 통일광장의 매운 먼지마저 삭삭 털어 담아
미련하도록 깊고 컸던 조국 사랑의 의지까지
남김없이
영원히 안기고 싶었던
새벽 한기마저 따습게 데우는 아궁이 연기 피어오르는
꿈에 그리던 당신의 땅으로 훨훨
세상에 나온 것은 천명이었지만
기꺼이 고난의 운명을 선택하여
깃발처럼 펄럭이며
살았던 시대마저 태우고
님이여
당신이 떠났던 자리 뒤로
한겨울 추위를 물리며 꽃이 필 것이외다
통일의 꽃
해방의 꽃
눈물 대신에
뜨거운 심장으로 오늘을 사는 사람마다
다시는 마르거나 시들지 않을 꽃이 되어
남녘의 한라부터 북녘 백두산 골짜기까지
해마다 계절 구분 없이
되살아나 필 것이외다
당신의 걸음마다 뿌린
씨앗이
뿌리를 뻗고 땅의 숨통을 틔웠으니
본디
하나였던 반도
하나의 하늘 아래서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
민중의 땅에서 영영 필 것이외다
민병래 작가
1999년에 광고대행사 ‘황소와 나비’를 창업하여 현재까지 운영중이다. 1998년부터 문해교실과 다문화도서관을 운영하는 시민단체 ‘푸른’의 이사를 맡고 있고 2000년에 <호암미술관에 있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파란자전거 출판)을 썼다. 2015년부터 군함도의 작가 이재갑 사진가와 함께 생각하는 사진모임 '포피엔스'에서 활동하고 있고 2017년 공동전시 ‘마포, 사진을 품다’에 참여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에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 <사수만보>를 2019년부터 연재중이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1월 초로 예정돼 있는 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김여정의 입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여정은 노동당 제1부부장과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훨씬 뛰어넘는 위치에 이미 도달했다. 그가 행사하는 권한이 그의 실질적 위상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3월 3일에는 김여정 명의의 대남 담화가 나왔다. 담화에서 그는 "불에 놀라면 부지깽이만 보아도 놀란다고 하였다"며 "어제 진행된 인민군 전선 포병들의 화력전투훈련에 대한 남조선 청와대의 반응이 그렇다"고 한 뒤 '나는'이란 표현을 사용했다."나는 남측도 합동군사연습을 꽤 즐기는 편으로 알고 있으며 첨단 군사장비를 사오는데도 열을 올리는 등 꼴보기 싫은 놀음은 다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같은 달 22일엔 김여정 명의로 대미 담화도 발표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코로나19 방역과 관련된 협력 의사를 밝혔다는 점 등을 언급한 뒤 그는 '개인적인 생각'을 거론했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두 수뇌들 사이의 친서가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력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평형이 유지되고 공정성이 보장되여야 두 나라 관계와 그를 위한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 담화에 '나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 북측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사진은 2018년 2월 10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대 스위스 관전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는 모습.
지도자 1인의 권위가 절대적인 북한 체제에서, 김여정은 '나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과 같은 표현을 공식 문건에 사용했다. 이는 김정은의 신임이 매우 두터움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지위가 김정은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돼 있음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최고 권력이 동일 혈통에서 2대나 3대째 승계되면, 그 가문은 남다른 정치적·사회적 지위를 갖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공식적인 정권 핵심부와 더불어 지도자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권력 분배에 간여할 여지가 넓어진다. 그래서 김일성 가문 사람들이 김정은의 건강이나 자녀 나이 등을 고려해 김여정에게도 힘을 실어준 결과로 '나는' '개인적인 생각' 같은 표현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김여정은 김정은과의 공식 동행을 통해서도 위상을 드러낸다. 2019년 8월에는 초대형 방사포 시험발사 현장에서 김정은을 수행했고, 2020년 3월에는 전술유도무기 시범사격 현장에서 김정은을 수행했다. 정치국 후보위원이나 노동당 제1부부장 같은 공식 직함과 관계없이 이미 2인자 지위를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런데 그의 2인자 지위가 곧바로 후계자 지위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2인자에 더해 후계자 지위까지 확보했는지를 판단할 때는 두 가지 선례를 참고할 만하다.
그동안 북한이 후계자를 띄운 방식
북한은 세습이 사실상 두 번이나 일어났지만 '공식적'으로는 세습이 용인되지 않는 국가다. 북한 헌법과 노동당 규약 내에서 김일성·김정일이 특별한 위상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은 공식적으로 인민공화국의 국체를 띠고 있다. 2019년 8월 개정된 북한 헌법 제4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을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일어난 두 차례 권력 승계는 그런 구도를 반영했다. '법적으로 세습 불허, 사실상 세습 허용'이라는 이 구도에 맞게 김일성의 권력이 김정일에게 승계되고 김정일의 권력이 김정은에게 승계됐다.
세습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국가에서는 후계자에게 태자나 세자 같은 지위를 부여한다. 이런 지위를 받은 후계자들은 국정에 개입하지 않고 공부나 자기수양에만 전념해도 된다. 이런 유형의 후계자들은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가 잦다. 세습이 인정되는 국가에서는 그렇게 하고도 후계자 지위를 안정시킬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런 방법으로는 후계자 지위를 안정시키기 힘들다. '내 후계자로 인정한다'는 지도자의 언명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법적인 후계자 지위가 없기 때문에, 그런 언명만 갖고는 지도자의 사후에 후계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북한이 그동안 사용해온 방식은 후계자에게 실질적 국가권력의 상당부분이 넘어갔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누구도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후계자의 양 어깨에 실질적 권력을 얹어주는 방식을 사용했다.
남한에서 박정희 유신체제가 등장한 1972년 4사분기에 북한에서는 김일성 유일체제가 확립됐다. 그런 뒤에 북에서는 김정일을 후계자로 만드는 작업이 전개됐다. 1972년 10월에는 김정일이 노동당 중앙위원이 되고 1973년 7월에는 당 중앙위원회 부장이 됐다. 같은 해 9월엔 중앙위원회 비서국 비서가 됐다. 그리고 1974년 2월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이 되면서 '김심'이 김정일에게 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그것은 내부적인 후계자 공인에 그쳤다. 북한은 그후 6년간 김정일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문에 1974년 11월 남한에서는 도쿄 국제의원연맹(IPU) 총회에 김정일이 참석했다는 오보까지 나왔다. 1974년 11월 18일 치 <경향신문> 기사 '북괴 김정일 동경에'는 김정일이 이종혁이란 가명으로 총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기사 사진 속의 이종혁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외교관 리종혁과 비슷했다. 리종혁이 IPU 총회에 참석했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당시에는 김정일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 오보가 나왔다.
북이 김정일 후계 작업을 내부적으로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명시한 시점은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 때였다. 김정일의 얼굴이 남한과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은 이때부터다. 이 해에 김정일은 묵직한 포스트를 받았다. 그는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노동당 비서국 비서, 노동당 군사위원회 군사위원이었다.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쓴 <북한의 역사 2>는 "조선노동당 총비서인 수령 김일성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정치국·비서국·군사위원회라는 당내 3대 권력기구에 모두 선출된 것"이라며 "당시 김정일의 당 중앙위원회 공식 서열은 김일성·김일·오진우에 이은 4위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그가 2인자임이 확실했다"라고 짚었다.
1974년에는 정치위원에 임명되면서 '김심'의 향방이 확인됐고, 1980년에는 노동당 3대 기구 지도부에 진입함에 따라 국가권력의 상당부분이 김정일에게 넘어갔다는 점이 확인됐다. 김정일이 군사위원 직까지 차지하면서 그의 후계자 지위는 국내외적으로 공고해졌다.
국가권력을 넘기는 방식
▲ 2011년 9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노농적위대 열병식 모습.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김정일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9년부터 김정은 후계 작업이 진행될 때도 유사 현상이 나타났다. 그해 1월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은 2010년 9월 인민군 대장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되면서 명확한 후계자 지위에 올랐다. 군사권을 비롯한 국가권력 상당부분을 김정은에게 넘기는 방법으로 지위를 명백히 했던 것이다.
1980년에 김정일이 차지한 포스트보다 2010년에 김정은이 차지한 포스트가 훨씬 묵직했던 것은 상황의 긴급성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의 김일성 건강과 2010년의 김정일 건강이 확연히 달랐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두 가지 선례는 김정은의 후계자를 공식화할 때도 되풀이 될 수 있다. 김정은의 권력이 새로운 인물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사 조치가 그 신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의 김여정은 2인자 지위는 분명히 확보했지만, 1980년 김정일이나 2010년 김정은에는 아직 근접하지 못했다. 1974년 김정일에도 접근했다고 보기 힘들다. 국가권력의 상당부분이 김여정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증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현재 지위는 2인자일 뿐, 후계자는 아니다.
현재는 2인자일 뿐
▲ 2019년 7월 8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김일성 주석 사망 25주기 중앙추모대회 당시 모습. 김여정 당 제1부부장(가운데)이 리수용 부위원장(왼쪽), 최휘 부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주석단에 앉아있다.
향후 김여정이 2인자에 이어 후계자 지위에 도달할 경우에도, 영속적인 지위일지 아니면 한시적인 지위일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선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1974년에 김정일의 후계자 지위가 내부적으로 확정되기 직전까지는, 김일성 동생인 김영주가 후계자가 될지 모른다는 관측이 많았다. 1974년 2월 16일 치 <동아일보> 기사 '김일성 후계로 부각'은 김영주가 부총리에 임명된 사실을 보도하면서 "김일성이 실제(實弟)인 김영주를 이 자리에 앉힌 것은 김영주에게 노동당과 행정부의 실권을 모두 장악시켜 그의 후계자로 삼으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았던 김영주는 그해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되면서 자연스럽게 2선으로 밀려났다.
김정일 집권기에는 동생 김경희가 한때 주목을 받았다. 김정일이 "김경희는 곧 나이고, 김경희의 말은 곧 나의 말이다"라고 발언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을 정도다. 하지만 김경희의 지위는 노동당 경공업부장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자기 자녀에게 권력을 넘기기 전에 형제들에게 힘을 실어준 적이 있었다는 선례가 김정은-김여정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향후 김여정이 후계자가 된다 해도, 김정은이 살아 있는 한 한시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정권 하에서 김여정의 존재를 더욱 더 부각시키는 요인 중 하나는 김정은의 자녀가 아직 장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녀가 장성하게 되면 김여정의 위상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
설령 김여정이 후계자가 된다 해도 그가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처럼 될지 아니면, 일시적인 후계자로 그칠지를 판단해야 한다. 한시적인 후계자에 그친다면, 한국의 국무총리나 미국의 부통령처럼 최고지도자의 유고 및 궐위에 대비하는 대타일 가능성이 크다.
정경원 민주당 부산시당 사무처장, 박화국 정책실장은 시민들과 면담에서 ‘윤석열 탄핵과 이명박, 박근혜 사면 완전철회’에 대해 “아직 논의를 해보지 않아 입장을 밝히기 조심스럽다”라며 이후 부산시당 회의를 통해 대책 및 입장 정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부경주권연대와 부경대진연은 “국민들이 민주당에 180석 의석수라는 권력을 준 이유는 이를 누리는 것이 아닌 적폐 청산을 위해 싸우라고 준 것”이라며 “혹자는 이번 이낙연 대표의 발언을 중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권모술수가 아닌 정공법으로 적폐 청산에 나설 때 국민이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면담에 참여한 민주당 부산시당 인사는 이낙연 대표의 사면 발언에 대해서는 “개인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면담요청서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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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과 이명박근혜 사면 완전철회를 요구하는 면담 요청서
"이낙연 대표님께 호소드립니다"
지난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처분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윤 총장은 검찰총장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재가한 징계를 뒤집은 사법쿠데타’라며 분노했고, 검찰개혁과 사법적폐 청산 여론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제 국회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탄핵해야 합니다.
촛불국민의 염원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입니다.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하신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적폐를 완전히 청산하라고 집권여당에 압도적인 180석 의석을 몰아주었습니다.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간절한 외침에 이제 국회가 과감하게 나서야 합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적폐청산의 최대 걸림돌이자 검찰개혁 저지의 선봉장입니다.
윤석열이 검찰총장 자리에 있는 한 개혁은 온갖 방해에 직면하게 됩니다. 윤석열을 중심으로 검찰과 사법적폐, 보수언론과 수구세력은 더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각종 개혁조치들은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윤석열 정치검찰은 보궐선거와 대선에 개입해 반개혁 반정부 동맹을 형성해 민주개혁을 뒤엎으려 할 것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 요건은 이미 차고 넘칩니다.
국민을 위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윤석열을 탄핵해주십시오.
지금 윤석열을 끌어내리지 못하면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은 숱한 방해와 반대 속에 좌절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또 다시 후퇴하게 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또 누군가를 잃고 피눈물을 흘리는 슬픈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논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적폐청산과제는 산처럼 쌓여있고 검찰개혁의 상징인 공수처 출범은 이제 걸음마를 뗀 상태입니다. “적폐를 청산하자!”,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촛불국민의 염원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고개 숙여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두 전직 대통령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이명박근혜 사면은 있을 수 없으며 사면논의는 즉각 중단, 완전 철회되어야 합니다.
‘다시는 지지 않겠다’며 촛불을 들고 일어선 국민과 함께 해주십시오. 철저한 적폐청산, 중단 없는 사회대개혁의 길에 이낙연 대표님과 더불어민주당이 함께 하리라 기대하고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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