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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면 맞는다?

  • 등록일
    2006/07/10 19:37
  • 수정일
    2006/07/10 19:37

그렇다.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공권력을 이길 수 없다. 당해낼 수 없다. 새까맣게 도열한 전경들 앞에, 힘으로 내리누르는 그들 앞에 우리는 절대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원초적으로 비폭력이다. 상황이 그렇다는 거다. 힘센 A와 약한 B는 본래적으로 폭력/비폭력의 상황에 처해 있는 거다.

 

그렇다고 맞아야 하는 것인가?

안정리 상인들로부터 돌을 맞고 밀려나고 난 후, 평택역에서 어느 연설자가 말한다. "그들이 때리면 맞고, 죽이면 죽자"라고. 나는 그 연설자의 결의에 찬 발언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연설자에게 "그건 아니다"라고 소리치고 싶다. 비폭력은 어쨌건 개인 각자가 즐거워야 하고, 강요되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고 싶다. 강요된 비폭력은 개인의 자위권을 무시한 또 하나의 자기 폭력이고, 그게 전체화되면 전체주의적 폭력의 근간이 된다고 웅변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런 저런 말은 떠나,

나는 아프고 싶지 않다. 다치고 싶지 않다.

나는 생각한다. 비폭력은 내 몸에 대한 비폭력 감수성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내가 다치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아프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으로 나는 다른 사람도 다치지 않았으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공감력이 생겨난다. 그것이 비폭력의 출발이 아닐까?

 

폭력에 나를 무방비하게 내놓은 채,

그들이 때리면 맞고, 죽이면 죽는 것이 비폭력이 아닐게다.

그들이 날 때리려고 각목을 내리치면 나는 몸을 돌려 피하거나,

무언가로 내 몸을 보호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비폭력 행위와 회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폭력이란 것이 우리의 예정된 행진을 중단하거나, 아예 공권력에 맞서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우리에게 가해오는 폭력을 막으면서 우리의 길을 가야한다. 

비폭력은 직접행동과 함께 가는 것이다.

 

어 떻 게?

 

여기에서부터 비폭력은 그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비폭력과 직접행동이 만나면서 생겨나는 '딜레마'로부터, 그 딜레마가 있기 때문에, 비폭력은 다양한 상상력과 방법론으로 즐겁게 우리의 머릿속에서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폭력이 '아닌' 방법은 맞는 것 말고도 많을 거다.

맞지 않는 방법, 비폭력의 방법을 고안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비폭력은 원칙이라기 보다는 방법론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어제 안정리 상인이라고 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우리에게 돌을 던질때

나는 왜 어제 가지고 갔던 우산을 펼쳐들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들의 폭력에 압도되어 상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우산은 비올 때만 쓰는 거라고 틀에 박힌 사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절대 지레압도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맞는 것, 다치는 것은 불상사일뿐 비폭력의 방법일 수 없다.

첫째 즐겁게 상상하고

둘째 단단히 준비하자.

 

꽃구경하며 게릴라전을 하는 것이 비폭력 직접행동이라고 일본의 아나키스트가 말했다. 

목숨을 걸고 하는 싸움은 소수만이 할 수 있는 싸움이다.

목숨을 지키는 싸움이야말로 보다 많은 이들에게 공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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