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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과 명상 찬양

  • 등록일
    2005/05/13 10:06
  • 수정일
    2005/05/13 10:06

마석 꼬빌이 출입국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마붑의 친한 친구가 5개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하고 공장을 나왔다.

진작에 그 공장에서 나왔어야 했는데...

지금 이 친구는 피씨방과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핸폰마저 잊어버려서 당장 친구들과 연락할 수도 없게 되었다.

회사에서 6시 땡치자마자 불이 나케 나와 테크노마트 중고폰 가게로 가서

5만원에 애니콜 폰 하나를 사고 나니 7시 30분이 넘었다.

요가학원에 가야하는데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강 테크노마트 지하 푸드코트에서 2천5백원짜리 통만두를 사먹고

또 부리나케 학원으로 향했다.

 

요즘엔 풀무호흡이라는 걸 배우고 있는데,

15번정도 복식호흡을 강하게 하고 난 다음에

크게 들이쉰 숨을 최대한 오래 참는 호흡법이다.

이때 X꼬를 함께 조여주고 배도 안으로 넣어야 한다.

요가장에는 약 여덟명 가량의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리듬으로

호흡을 한다. 코에서 나는 소리도 서로 너무 다른데,

어떤 이는 색색하는 소리가, 또 어떤 이는 흥흥하는 소리가 난다.

어떤 이는 들어마시는 숨이 태풍같고, 또 어떤 이는 내쉬는 숨이 폭포같다.

풀무호흡을 약 20분정도 하고 어깨를 떨구고 3분 정도 명상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슬퍼지면서 나와 세상에 대한 자비스러운 연민에 휩싸이면서 눈물이 나는 거다. 하루종일 쌓아두고 있는 감정의 형태들이 눈에 잡히는 듯.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는 전세 계약 건이나,

공장에서 나온 마붑의 친구에게  핸드폰을 그냥 주지는 말아야지, 하는 계산과,

꼬빌이야 어차피 캐나다에 가서 살 거니까 도와주거나 신경쓸 건 없어, 하는 합리화 등등

감정 그 자체에만 매몰되던 일상에서 벗어나 감정의 형태와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가지는 "객관적"인 슬픔이라고 하면 말이 되나?

 

정리해보니

친구이니 뭔가 도와줘야 한다는 심적 압박 VS 손해보지 않겠다는 이기심의 대결이다.

이 감정이 옳다 저 감정이 바르다 라는 판단할 수는 없는 일.

도와줘야 한다는 이타심이 옳고 손해보지 말아야 한다는 이기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도와줘야 한다는 이타적 강박이, 손해보지 말아햐 한다는 이기적 강박을 기르는 경우가 많고, 손해보지 말아야 한다는 이기심이 도와줘야 한다는 이타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음... 정말 써보니 그렇다.

치우침과 강박이 마음의 병을 키우고 몸도 상하게 한다.

너무 착한 척을 하는 건 위선이고, 너무 나쁜 척 하는 것은 위악이다.

위선과 위악 모두 마음과 몸의 균형이 깨졌을 때

어떻게든 그 균형을 찾기 위한 마음의 자구책일 터.

하지만 궁극적인 치유는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까지 살펴보고

그릴 수 있을 때 시작되는 듯 하다.

 

나중에 듣고 보니 호흡수련이 어느정도 진행되면 수행중 종종 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한다.

처음엔 졸음이 오고, 그 다음엔 눈물이 나고... 허!

호흡과 명상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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