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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5/17
    아듀! 사랑니 둘(2)
    말걸기
  2. 2006/05/12
    빨래 삶는 방법(2)
    말걸기
  3. 2006/05/11
    터미네이터 T1000의 고통을 체험하다(5)
    말걸기
  4. 2006/05/10
    푸른빛 속옷(7)
    말걸기
  5. 2006/05/03
    "직업이 뭐예요?" - (2)(2)
    말걸기
  6. 2006/05/01
    나, 요즘 이런 거 좋아.(2)
    말걸기
  7. 2006/04/27
    "직업이 뭐예요?"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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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4/12
    별거 다 세 보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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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4/12
    4만원 남았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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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4/05
    짝꿍과 지음님께 감사 : 자전거 생기다(4)
    말걸기

아듀! 사랑니 둘

 

3주 전에 예약해 두었던 치과엘 갔다. 두려움과 기대를 함께 지니고.

 

 

말걸기가 어디든 9시까지 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 일. 오후 9시도 아니고 오전 9시에 말야. 일찍 일어나서 나름대로 부지런 떨면서 멀지도 않은 세브란스 치과병원 구강외과에 도착한 건 9시 10분. 지각. 제 시간에 갈 리가 없지. 환자도 별로 없고 조용.

 

 

9시 15분 경. "말걸기씨 이리 오세요."

 

9시 20분 경. 매너 좋아 보이는 청년의 등장. "마취하겠습니다. 따끔합니다." 진짜 따끔하고 아픔. 주사바늘로 여기저기 쿡쿡 찌르는데 깜짝 놀라기도 함. 진땀도 등장. 마취될 때까지 기다린다며 매너 청년 퇴장.

 

금새 친절한 간호사 등장. "이거 읽어 보세요." 이 뺀 후에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주의 사항이 적힌 작은 종이. 음... 내가 궁금했던거야... 수술 도구를 주욱 늘어 놓고 나가 버림. 수술 도구에 겁이 덜컥. 나 같이 겁 많은 사람을 혼자 수술 도구 옆에 오래 앉혀 놓는 건 학대인 듯.

 

9시 30분이 좀 지나서 선수 체인지. 한 성격 하게 생긴 아저씨 등장. 의자를 뒤로 젖히더니, "아, 벌리세요."

 

꾹. 꾹. 꾹. 아마도 아래 쪽 잇몸 절개 중인 듯. 잇. 잇. 잇. 언제나 끝날까. 아프지는 않을까. 삐질삐질. 양손은 의자를 꽉 붙잡고.

 

위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사랑니 뽀개는 중인 듯.

 

읏. 읏. 읏. 부서진 이조각을 걷어내는 듯.

 

슥삭슥삭. 아저씨 손이 내 입 안으로 들락날락 하는 거 보니 꼬매는 거겠지. 이때쯤 안심. 다 끝나가는구나.

 

이번엔 윗니 쪽에서 뭐가 흔들리는 느낌. 쑤욱. 혀 위에 뭐가 툭 떨어짐. 뽑은 이를 놓친듯.

 

"입 꽉 다무세요."

 

10분 정도에 다 끝났다. 마취 기다리는 시간보다 짧은 시간에 내 왼쪽 위아래 사랑니를 전부 뽑아버린 것이다. 그 아저씨 완죤 선수.

 

"거즈는 2시간 동안 꽉 물고 계세요." 잉? 거즈? 입 다물라는 게 거즈 땜에 그런거구나. 감각이 없으니 거즈를 물었는지 안물었는지 알게 뭐람.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해야지.

 

"1주일 동안은 절대 술과 담배는 안됩니다. 이건만은 꼭 지키세요." 술 생각 요만큼도 안난다.

 

친절한 간호사에게 다음 진료 예약. 1주일 후에 실밥 빼러 간다.

 

 

마취가 풀리기 전에 죽과 식염수를 사들고 집에 가서 얼음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병원에서 퇴장. 이미 그때는 윗쪽은 마취가 풀리기 시작. 살짝 통증이... 안 돼! 집에 가서 얼음 찜질하기 전까지는 마취가 풀리면 안 돼.

 

집에 가서 언제 어떻게든 쓰러져 잠을 잘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선 냉동실을 뒤졌다. 얼음 만드는 네모네모가 어디에 있는거야? 그때, 아이스 박스에 넣는 냉매 발견. 앗! 이거다. 얇은 수건에 감싸서 마취가 풀리기 전부터 얼굴에 대고 하루 종일 있었다. 이게 어느 정도 마취 효과가 있는지 괴로울 정도의 통증은 아직 없다. 지금은 얼굴을 삐딱하게 기울여서 얼굴과 어깨 사이에 냉매를 끼우고선 타이핑을 하고 있다.

 

밥 먹는 게 불편. 그래도 사랑니 뽑은 위아래 잇몸이 닿질 않으니 씹기는 한다. 하루 종일 입에서 피 냄새 맡으니 그것도 좀 싫다. 열이 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운 것도 불편. 이도 닦아야 하는데 치약이 따가울까봐 겁내고 있다. 뭐 이러다가 점점 통증도 가라앉고 아물겠지.

 

 

아픈 걸 무지 싫어해서 사랑니 빼러 가기를 주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기대'를 갖고 용감하게 치과엘 갔다. 왼쪽 아래 사랑니 근처가 아프기도 하고 항상 그 존재가 신경쓰였었다. 묵직한 게 나를 은근히 괴롭혔던 것이다. 털어내면 시원할 것 같았다. 그 시원함을 상상하니 슬쩍 설레임이 들더라. 이제 잘 아물도록 내 몸 잘 살펴야지. 노하우 개발로 오른쪽 사랑니들 뽑을 때는 좀 더 노련하게 대처하는 것도 잊지 말구.

 

 

빨래 삶는 방법

 

말걸기[푸른빛 속옷] 에 관련된 글.

 

 

진경맘을 위한(?) 빨래 삶기

 

*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말걸기도 배우게.

* 말걸기는 기저귀나 애기옷을 삶아 본 적이 없다는 점을 참고하시길.

 

 

1. 빨래감을 분류한다.

 

(1) 삶을거냐 아니냐

- 면으로 된 속옷, 티, 수건, 기저귀 등을 골라낸다.

- 행주는 면이 아닌 것도 있는데 삶아도 된다.

- 속옷(주로 여성용) 중에 100% 면이 아닌 게 있는데 말걸기는 삶아버린다.

 

(2) 삶을 빨래감을 색깔별로 분류한다

- 색이 거의 없는 것, 붉은 것, 노란 것, 푸른 것

- 색이 너무 진하면 같은 색 계열의 빨래감도 흉하게 물드니 이런 건 아예 따로 삶아야 한다. 이런 빨래감(주로 수건)은 여러 번 삶으면 색이 약간 빠지면서 물이 잘 배어나지 않게 된다.

 

 

2. 한번에 삶을 빨래감을 모은다.

 

(1) 삶는 통(나는 들통을 사용한다)에 마른 빨래감을 가득 채운다

- 너무 꾹꾹 누르지도 말고 설렁설렁 채우지도 말고. 딱 요만큼이 적당하다.

- 마른 빨래감이 물에 젖으면 부피가 확 줄어든다.

 

 

3. 빨래감를 치댄다.

 

(1) 제대로 삶으려면 색소없는 빨래비누로 치댄다.

- 빨래비누를 묻힌 다음에 빨래판에서 치대어 거품을 낸다.

- 지지 등 이물질이 많이 묻었다면 한번 헹구고 다시 치댄다.

- 허리 아프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2) 그냥 맹물에 치댈 수도 있다.

- 하나씩 빨래판에 치댄다.

- 이것도 귀찮다면 빨래감들이 마치 하나라고 생각하고 뭉탱이로 치댈 수도 있다. 그래도 이물질이 많이 묻는 게 있다면 그것만 따로 치대야 한다. 다른 빨래감에 이물질이 섞이지 않도록.

- 대부분 따뜻한 물로 치대나, 피가 묻었다면 찬 물로 치대야 한다.

 

 

4. 삶는 통에 빨래감을 넣는다.

 

(1) 비누기, 물기를 빼지 않고 넣는다.

 

(2) 빨래 양쪽끝을 잡고 한 바퀴 살짝 돌려서 넣는다.

- 빨래 짜듯이 돌리면 안된다. 그냥 모양만 꽈배기로 만든다.

- 꼬지 않고 넣으면 삶을 때 풍선처럼 부푸는 빨래감이 생긴다. 삶을 때 물이 잘 넘친다.

 

(3) 빨래감을 도너츠 탑을 쌓듯이 바닥부터 차곡차곡 넣는다.

- 빨래감들이 들통안벽 따라 붙어, 가운데는 구멍이 뻥 뚫린 모양이다.

- 빨래감의 높이는 들통의 높이에 비해 5cm 정도 낮다. 이보다 빨래감의 높이가 높으면 물이 넘친다.

 

 

5. 세제를 넣는다.

 

(1) 빨래비누 조각을 넣는다.

- 비누 조각을 그냥 넣으면 빨래감이나 삶는 통에 붙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면 양말에 넣으면 좋다.

- 예전엔 빨래비누를 많이 써서 찌꺼기가 많았는데 이런 걸 양말에 모아놓으면 좋다.

- 표백 효과를 위해 옥시크린을 조금 넣을 수도 있다.

 

(2) 귀찮다면 옥시크린만 넣어도 된다.

- 물의 양에 비례하여 넣는다. 옥시크린에 설명이 붙어 있다.

- 들통에 삶는다면 옥시크린 용기 뚜껑의 2/3에서 3/4정도면 된다.

 

 

6. 물을 채운다.

 

(1) 빨래감 높이의 2/3정도, 틍통 높이의 1/2정도 넣는다.

- 빨래감이 물에 다 잠길 필요는 없다.

- 물이 너무 많으면 삶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물도 넘친다.

 

 

7. 삶기

 

(1) 센불에서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10여분 삶는다.

 

(2) 작은 불에서 10여분 삶는다.

 

- 말걸기는 대체로 각각 10분을 초과하여 삶는다. 그래도 15분은 넘기지 않는다. 너무 오래 삶으면 물이 다 증발해 버려서 태우는 수가 있다.

- 빨래감이나 물이 좀 많으면 물이 넘치는데 넘치는 모양을 살펴보면, 빨래감을 들통안벽에 붙여 쌓았기 때문에 들통안벽과 빨래 사이에 끓는 물이 솟아서 넘친다.

- 이럴 때는 나무 주걱(말걸기는 빨래 삶기 전용 나무 주걱이 있다. 재질이 좋지 않아서 음식 만들기엔 별로인 주걱)같은 것으로 빨래감을 살짝 가운데 쪽으로 모아준다.


 

8. 헹구기

 

(1) 세탁기로 헹구기와 탈수를 한다.

- 세탁기에서 헹굴 때는 어떤 세제도 넣지 않는다. 또한 샤프란같은 섬유유연제도 넣지 않는다.

- 말걸기는 세탁기에서 어떻게 헹구는 게 가장 적절한지 실험해 보지 않았다.

- 귀찮아서 보통의 빨래 빨듯이 기본값으로 맞춰져 있는 빨래 버튼 눌러버리고 만다.

 

 

 

* 기저귀나 애기옷의 경우에는 어떤 세제도 사용하지 않고 물로만 삶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새하얗게 삶아지지는 않지만 민감한 아기 피부에는 약간의 세제도 좋지 않다는 얘기다.

 

* 빨래비누로 치댄 후 빨래비누 조각만 넣어서 삶는 게 젤루 좋은 것 같다. 말걸기는 힘들고 귀찮아서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하지는 않지만.

 

 

터미네이터 T1000의 고통을 체험하다

 

손가락이 너무 아파!

 

 

<터미네이터 2편>에서 업그레이드된 터미네이터가 등장한다. T1000. 이 금속 덩어리는 몸을 늘리고 펴고 제 맘대로다. 사람, 사물, 주변에 반응을 어찌나 잘 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 뛰어난 반응은 아마도 훌륭한 신경계가 있으니 가능할 거다.

 

T1000이 고통스럽게 용광로에서 녹아버리기 전, 운명을 달리할 듯한 위기를 맞았더랬다. 액화질소 탱크로리의 파열로 온몸이 얼어버린 것이다. 액화질소의 기화로 몸의 열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 피부(껍데기?)에서부터 전해오는 차가운 기운이 신경계에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었을까? 상상해 보라! 물기 없는 마른 손으로 냉동실에서 방금 꺼낸 얼음조각을 쥐어보라. 살이 떨어져 나가는 그 아픔.

 

하지만 몸뚱이가 순식간에 얼어버리는 아픔만 있는 게 아니다. T1000은 용광로의 열로 얼어버린 조각조각이 다시 녹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아픔이 없을까? 얼었던 몸이 녹는 다는 것은 차디찬 냉기가 조금씩 빠져나간다는 것. 신경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면 살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다시 겪어야 한다. 얼기보다 녹는 게 오래 걸리니 그만큼 고통의 시간도 길다.

 

 

여차여차 우여곡절 끝에 세브란스 피부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가 주 목적이기는 했으나 오른손의 세 손가락에 솟은 사마귀 치료도 받았다. 의사는 사마귀 치료 방법 중 그나마 재발율이 낮은 냉각치료를 처방했다. 냉각치료란 사마귀를 얼려 죽이는 것이다.

 

치료실에서 젊은 의사가 약간 큰 솜봉에 액화질소를 묻히더니,

그 솜봉을 내 손에 난 첫번째 사마귀에 지진다.

사마귀가 순식간 얼어버린다. 아~악!

두번째 사마귀에도 지진다. 으~윽!

세번째 사마귀도 마저 지진다. 흐윽!

"이제 한 번 했습니다. 이렇게 두 번을 더 하면 됩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버린 사마귀와 신경들이 녹기 시작한다.

냉기가 빠져나가면서 고통은 점점 심해진다.

이 통증에 익숙해지려는 순간 다시 아~악! 으~윽! 흐윽!

내 몸의 일부는 얼어버리고 있는데 다른 모든 곳에서는 땀이 솟는다.

또 다시 아~악! 으~윽! 흐윽!

 

 

병원에서 나와서 타이레놀 두 알을 먹었다. 한두 시간 후 쯤에 약효가 나타났다. 참을 수 있는 통증으로 바뀌었다. 온몸이 순식간 얼었다가 서서히 녹는다면 타이레놀이 몇 알이나 필요할까? T1000은 터미네이터답다.

 

 

푸른빛 속옷

 

지난 4일 이후에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불편하다. 진보네 블로그에 오면 답답하고 갑갑하고... 진정할 수 없는 작은 떨림 내지는 긴장이 계속된다. 이러다 블로그에서 도망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은 다 생까고 별 일 없는 듯 시시껄렁한 일상이나 얘기해 보련다.

 

 

 

푸른빛 속옷? 나와 짝꿍의 속옷을 다 합쳐봐도 푸른빛이 도는 속옷은 없다. 이거 내 취향까지 드러내자니 민망하기는 한데, 내 속옷은 다 하얗다. 나의 이런 취향은 그냥 어려서부터 하얀 속옷 입고 살다보니 그리 된 것 같다. 뭐 별로 속옷에 관심도 없고.

 

나의 하얀 속옷은 하얀 면옷이기 때문에 좋은 점이 있다. 열라 삶아도 끄덕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면은 적절히 삶아 주면 수명도 더 길어진다. 뽀송뽀송한 느낌은 상쾌하다. 면의 좋은 질감을 오래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삶기! 그래서 나는 속옷과 수건은 항상 삶아 빤다.

 

내가 너무 게을러서 짝꿍이 '네가 삶을 때까지 못 기다리겠다'며 쌓여 있는 속옷과 수건을 통째로 세탁기에 돌려버린 적은 몇 번 있었으나, 그래도 꾸준히 속옷과 수건은 부지런히 삶아왔다. 삶기 경력이 늘다 보니 몇 가지 속성 삶기 등 얍삽한 수도 늘었지만 피해야 하는 빨래 삶기도 알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색깔 짙은 수건은 따로 삶아야 한다는 것.

 

나는 짙은 빨강색과 파란색 수건을 싫어한다. 이건 삶으면 색소를 왕창 내뱉어 다른 빨래를 물들인다. 곱게 물들이면 모를까 얼룩이져 기분이 상한다. 물론 사용하기에 불편은 없지만. 그래서 색깔 있는 수건들은 비슷한 색깔끼리만 삶고 아주 짙은 건 아예 따로 삶는다. 가끔 아차해서 내 속옷이나 하얀 수건 중 분홍빛이 도는 것도 있긴 하다.

 

조금 전에 빨래를 삶았는데 이번엔 속옷 삶기. 부엌에서 사용하는 행주와 작은 수건도 함께 삶았다. 근데 삶다보니 푸른빛이 돌기 시작했다. 뭘 잘못 넣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하얀빨래가 대부분이었고 색깔이 있긴 하지만 여러 번 삶았어도 색이 묻어나지 않았던 옅은 빛깔의 행주 뿐이었다.

 

세탁기로 헹구고 탈수한 다음에 빨래를 널어보니 범인이 잡혔다. 부엌에서 사용하는 작은 크기의 수건이었다. 이 수건은 옅은 연두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물이 배어나지 않을 소재로 보였다. 그러나 같이 삶은 게 화근이었다.

 

왼쪽 사진에도 보이듯이 가늘지만 짙은 녹색의 선, 불과 5mm밖에 되지 않는 선에서 푸른빛 물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 수건은 처음 사용한 건데 이럴 줄 몰랐다. 들통 안에서 함께 부글대던 다른 하얀 속옷 모두를 푸른빛이 돌게 만들어 놓고 뻔뻔하게 널려 있는 모양새도 얄밉다.

 

어찌되었든 내가 사고를 쳤으니, 살짝 푸른빛 도는 내속옷은 입고 다녀야지 어쩌겠나. 하지만 짝꿍 속옷 망친 건 어쩌나. 짝꿍이 어디가서 속옷 자랑할 일은 없겠지만 옷이라는 게 안에 입나 밖에 입나 자기 만족인데 그리 이쁘지도 않은 푸른빛 속옷이 만족스러울까 싶다. 착한 짝꿍은 괜찮다고 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좀 미안하다.

 

 

아직도 빨래 삶기 내공이 모자란가 보다. 살림의 수련은 끝이 없나.

 

 

&quot;직업이 뭐예요?&quot; - (2)

 

말걸기["직업이 뭐예요?" - (1)]에 이어 본격적인 얘기를 풀어야겠다. 나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의 관심은 보통 직업을 물을 때와는 다르다. 이 사람들의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은 사실 다양한 변종이 있다.

"직업이 뭐예요?"

"무슨 일 하세요?"

"무슨 회사 다니세요?"

"그렇게 하고 다녀도 회사에서 뭐라 안해요?"

"평범한 일을 하시지는 않은가 봐요?"

"머리 모양이 참 독특하시네요?"

"한 번 만져봐도 돼요?"

 이 서로 다른 내용의 질문들을 나에게 물었을 때는 사실 거의 같은 의미이다.

 '네 머리 참 희한하게 생겼다. 너 뭐 하는 놈이냐?'

 

 

일명 '꽁지머리'라 불리는 이 머리칼들은 워낙 거칠고 푸석푸석해서 우수사랑은 '옥수수 수염'이라고 부른다. 이 노란 머리칼은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난 항상 머리가 짧은 걸 좋아했다. 그렇다고 짧게 자르고 다녔다는 건 아니다. 귀차니즘은 언제나 나로 하여금 미용실에 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귀와 목을 덮는 일은 자주 있었다. 그러다가 길어진 머리를 견디다 못해 미용실에 가서는 짧게 깎아 버린다.

 

어느날 문득 머리를 길러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목과 눈 주변을 찌르는 머리칼을 견디지 못할 듯했다. 그러다 문득 특정한 곳만 기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래저래 머리 모양을 구상해 보았다. 결국 뒷머리 왼쪽만 기른 다음 빨갛게 물을 들이기로 작정했다. '좌익빨갱이'니까.

 

요즘 같으면 소위 실력 있는 스타일리스트를 수소문해서 나의 구상을 설명한 다음 제대로 된 머리 모양을 만들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걸 못해서 그냥 가던 미용실에서 목을 덮고 있던 내 뒷머리 일부를 손으로 움켜쥐고선 "이거 빼고 싹 밀어주세요" 했다. 난 아주 왼쪽으로 머리가 남길 바랬으나 어정쩡한 곳에 남아버렸다. 별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패스. 다시 목을 덮을 때까지 머리를 기른 후 처음부터 시작할라니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이대로 기르자.

 

상상을 해 보라. 한 4~5cm밖에 되지 않는 머리가 왼쪽 뒷머리에 요만큼만 붙어있으면 얼마나 흉할까를. 집에서 한 마디씩 돌아가면서, "잘라라. 이게 뭐냐." 이 한 마디 돌아가가가 몇 달이었다. 내가 돌 지경이었으나 개겼다.

 

이 머리칼은 빨갛게 물들이지 않고 제 머리색대로 기르고 있었다. 2002년이 되니까 꽤 길어졌는데 그 때 처음으로 염색을 했다. 애초 계획대로 빨강색으로 염색을 했었는데, 이를 위해서 검은색을 한참 빼고 나서 빨강색을 들였다. 이날이 언제였냐면 월드컵 한-이태리 16강전이 있던 날이다. 축구 중계가 시작하기 전에 물을 들이기 위해 집 근처 미용실에 갔는데, 아무래도 이 아저씨 축구 중계 보려고 맘이 급했는지 뚝딱뚝딱 물을 들이는 게 아닌가. 원래 빨리 물이 들도록 제작한 약품이란다. 믿었지. 이틀동안 머리도 안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머리를 감을 때 물 싹악 빠졌다. 젠장. 다신 그 집 안가.

 

빨강물을 제대로 들인 건 2003년도다. 3월에 결혼식을 했었는데 내가 신경쓰고 준비한 것 중에 하나가, 딱 그 부분만 빨갛게 물들여 쫙쫙 편 머리 모양이다. 돈 좀 쎈 미용실에 가서 물 안빠지게 당부하고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도 비싼 걸로 했다. 내 결혼식 사진 보면 가관이다. 결혼식에 온 하객들이 내 머리 모양 보고 신기해 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 할머지 아저씨 아줌마들에겐 얼마나 재미 있었을까.

 

난 머리숱도 별로 없고 잘 빠져서 한참 지나면 물을 들였던 머리칼은 다 빠지고 검을 머리만 남는다. 그럴 땐 가끔 물을 들이곤 했는데, 빨강물은 몇 번 들이지 못했다. 머리가 너무 푸석푸석해서 좋지 않단다. 그래서 검은물만 빼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옥수수 수염'이 된 것이다.

 

 

내가 뒷머리의 한 부분만 기르고 다닌 게 5년 반쯤은 된 것 같다. 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길렀으니 말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장난스레 뭐든 해보고 살았던 것 같다.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직접 해보는 실험정신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잃어버린 것 같아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는 그 실험정신 말이다.

 

어쨌든 난 이 실험에서 깨달은 게 있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자기와 관련 있는 사람이, 여태껏 보지 못한 어색한 행동을 하는 걸 싫어한다. 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온갖 구박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엄니는 6년 가까이 머리 자르라는 말씀을 하셨다. 짝꿍도 내 머리 모양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당에서 일할 때 처음에는 부총장까지 나서서 머리 자르라고 했다. 반면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이 희한한 짓을 하면 재밌어 한다. 물론, 자기에게 피해가 없으니까.

 

한편으로는 희한해서 꺼리는 나의 머리 모양을 계속 보면 익숙해진다. 그냥 그렇구나 해버린다. 짝꿍도 언제부턴가는 익숙해졌는지 하는 얘기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이쁘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내 머리칼 건강에 신경쓴다. 또는 내 머리를 뒤로 젖히고선 긴 머리칼로 내 등을 쓰다듬을 때가 있는데 이런 행동은 귀엽단다. 그리고 가끔 내 머리를 정성스레 따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익숙한 걸 좋아한다. 그게 편하다고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은 건 보기도 듣기도 싫어하고 해보는 것도 싫어한다. 그게 나쁜거라고 생각한다.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게 보수성이다. 눈앞의 작은 변화도 싫어하는 것이다. 변화가 다 진보고 옳고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가 될 이유도 없는 걸 익숙치 않다고 꺼리고 배제하는 태도는 그야 말로 폭력이다. 난 5년 반 동안 일상적으로 폭력을 당했다. 자기들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난 수없이 조롱과 비웃음과 '머리 잘라'라는 강요와 무거운 시선을 느끼고 살았다.

 

"직업이 뭐예요?"는 나에 대한 호의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희한한 놈으로 여기는 시선이기도 한다. 또는 자기가 갖을 수 없는 자유를 누리는 나에게 부러움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난 불쾌할 때가 많았다. 내가 어찌하고 다니건 그대와 상관없는 나에게 왜 쓸데없는 간섭을 한단 말인가.

 

내 머리 모양에 대한 반응으로 알게 된 건, 운동권이나 아니나 똑같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익숙하냐 익숙하지 않느냐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건 매한가지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 성격 따라 다른 거지 이념에 따라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결국 난 실험으로 몇 가지 결론을 얻었다.

1. 사람들은 익숙치 않은 것을 싫어한다. 특히, 자기와 관련 있는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면 부끄러워한다.

2.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 싫어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3. 익숙치 않은 것에 대한 경기는 사회변화를 추구한다는 운동권도 똑같다.

난 여기에서 더 나아가, 즉 비약이 될지 모르는 결론을 추론하고 있다. 이제는 진보운동한다는 것들 다수도 변화나 다양성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 자기들 익숙한 대로 운동한다는 것. 그게 현재 속성이라는 것.

 

 

이제 내 머리 모양도 달라질 때가 되었다. 6년이 다 되어가니 주변 사람들 반응도 별거 없다. 실험은 끝났다. 어떤 결론을 내리려고 시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결론까지 얻었으니 고만 됐다. 모가지에 기승을 부리는 아토피 피부염도 치료할 때 되었고 하니 겸사겸사 꽁지머리를 잘라버릴 거다. 귀차니즘의 작동으로 인하여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조만간 얘도 내 머리에서 떨어질 거다. 좀 아쉽긴 하다. 안녕.

 

 

나, 요즘 이런 거 좋아.

 

레이님의 [뒤늦게 자미두수.] 에 관련된 글.

 

점치는 거라고나 할까. 예전에는 이런 거 별로였는데, 요즘은 너무 좋다. 나 스스로 나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그런가부다. 누구든, 이런 거 있으면 언능언능 알려 주시길, 꼭 해보게. 앙겔리마, 레이님에게 감사.

 

이런 거는 여럿이 함께 읽으면서, '맞아맞아!' 내지는 '글쎄..'하면서 맞장구치는 게 재밌는데... 혹시, 날 관찰하신 분 있음 덧글로 달아보는 것도 좋것소.

 

자미두수 보실 분 : http://www.egosan.com/menu_02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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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걸기의 자미두수]

 

 

*파랑색 : 맞아맞아!

*빨강색 : 글쎄...

*초록색 : 주석

 

 

이 사람은 인물이 잘 생기진 않았지만(나 잘 생겼는데... 나이 먹으면 못생겨지나?)볼수록 싫증이 안 나고 귀티가 나는 타입이라 하겠고 그릇된 일을 싫어하며 묵뚝뚝하고 저돌적이지만 정직한 편이다. 사람이 포부가 크며 무슨 일이든 능숙하게 처리하는 재능이 있으며 남다른 특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욕심이 과해 이해관계가 얽히면 형제간에도 단절을 할 수 있는 성격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성급하게 돌진하는 형이고 학벌보다는 실무능력이나 지혜를 위주로 살아가는 사람이며 누구에게 구속받거나 간섭받지 않고 제멋에 자율적으로 삶을 사는 타입이라 하겠다.


대개 맏이나 막내가 많고 효자효녀로 자상하고 포근한 맛은 없지만 생각보다 깊이가 있고 속정이 많은 편이며 생각이 봉건적인 면이 있어 어른에게 예의가 있고 경우가 밝다. 이런 사람 중에 투기업이나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 많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형도 많은데 재물도 좋지만 욕심을 과하게 부리다 위험한 상태에 이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목적이나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를 않는 타입이며 학교다닐 때는 수학을 못하는 편이지만 실생활에선 숫자 개념이 확실하고 계산이나 이재에 밝다고 하겠다. 이상이나 막연한 것보다는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격이고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최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끈기도 있으며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은 양보를 하지 않는 사람(난 내가 양보 많이 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이 아픈가?)이다.


이 사람은 속말을 안 하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가 힘들고 겉으로는 부드럽게 보이나 무엇인가 결정한다던가 하면 냉정하게 판단을 하는 사람이고 득이 별로 안 된다고 생각하면 친구로 사귀지도 않는다. 원체 주관이 강하고 고집이 세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남의 말을 전혀 안 듣기 때문에 간혹 득보다 손해를 볼 때가 많고 자신의 계획은 혼자만 알고 남 모르게 진행을 하는 편이라 남들이 볼 때 비밀이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사람은 남에게 신세를 져도 겉으로는 표현을 안 하는 성격이 많고 자존심은 세지만 상황에 따라선 내숭 떨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상대의 기분을 맞춰가며 다 하는 타입(예전엔 안 그랬는데 몇년 일하다 이렇게 되었다)이다. 또한 평소 눈물이 별로 없으며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속으로 울지언정 겉으로는 내색이 없는 편이고 일이나 계획도 먼 앞날이나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꼼꼼하게 추진하는 것이 많다. 여성은 귀걸이나 메니큐어, 쌍꺼풀을 되도록 안 하는 것이 좋은데 왜냐하면 부부궁이 불안하거나 일이 안 풀리는 경향이 있다.


이 사람의 종교는 불교가 잘 맞지만 천주교(난 어머니쪽으로 따져보면 모태신앙으로서 5대째다. 지금은 신앙심이 없지만.)도 괜찮으며 직업의 귀천을 가리는 사람은 아닌데 일반 월급생활은 적성에 안 맞으고 특수직이나 사업 등 자영업이 잘 맞는다. 사업도 굵고 특색이 있는 것으로 외국을 상대하는 고가의 제품이나 기계, 금속, 전자 등 정밀성이 있는 것이 좋고 음식 장사를 한다면 한식이나 고급 요리를 취급하는 것이 잘 된다. 직업으론 국가 관직(나 솔직히 이건 진짜 자신 있다), 금융업, 무역업, 제조업, 디자이너(이것도 잘 할 자신 있다. 근데 왜 예술가는 없지?), 외국인 회사, 무관, 호텔업 등 특수한 쪽으로 빛을 발한다.


이 사람은 공부도 간섭하지 말고 스스로 맡겨놓으면 알아서 노력하는 타입이라 놀다가도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몰아서 하는 경향이 있다. 나중에라도 반드시 외국어를 기본으로 익혀두면 크게 도움이 되고 대학은 국립대를 위주로 고대, 성균관대, 홍대, 한양대, 건대, 단대, 명지대, 세종대, 이대, 숙대 등(어, 나 학교 잘못 나왔나봐)과 지방대나 전문대도 괜찮고 전공은 미술 디자인, 경영, 경제, 법률, 금융, 무역, 어학, 기계 금속, 호텔 경영 등 전문성이 있는 것을 전공해야 한다.


결혼은 서기로 홀수 년에 만나서(97년도에 만났네) 홀수 년에 결혼(2003년에 결혼했네. 근데 2002년부터 같이 살았는데...)해야 이상이 별로 없지만 연애는 실패가 많으니(두번 실패했었지) 소개나 중매를 받아 궁합을 보고 결혼하는 것이 좋다(벌써 연애 결혼했는데). 이 사람은 대인관계에서는 이성간 대화가 잘 되(이게 너무 잘 되서 문제가 생기긴 하지)지만 연애관계에선 서로 속을 잘 안주며 파악이 안돼 진전이 없으니 주변에서 소개하고 궁합이 잘 맞으면 반강제성으로 보내는 것이 좋다. 상대는 맏이 막내에서 많고 부모를 모시는 효자효녀이며 주관이 강하고 예의가 있으며 정직한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면 애로가 많아 이루기 어렵고 또한 결혼 후 힘들어도 이혼이 별로 없이 속을 썩으면 썩는대로 견뎌나가는 사람이지만 궁합만 잘 맞으면 자수성가하고 잘 사는 팔자라 하겠다.

 

 

[짝꿍의 자미두수]

 

 

*파랑색 : 맞아맞아!

*빨강색 : 글쎄...

*초록색 : 주석

 

 

일단은 똑똑한 사람이나 공부할 때 미루다가 보면 못하고 나중에 후회를 한다. 이 사람은 꼭 공부를 많이 해야만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이라 어디까지 학교를 나왔냐에 따라서 팔자가 틀려진다(나름대로 명문대 나왔고 석사까지 했으니 다행인가?). 일반적으로 힘든 일은 못하고 머리나 말로 먹고 살 사람(딱, 샘이네)이라 아는 것이 없으면 평생 한이 된다. 성격은 좀 까다롭지만 싹싹한 맛이 있고 인정도 있는 사람('까다롭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이 꽤 많을 듯하나, 나로서는 맞다고 할 수밖에)인데 환경 적응을 잘 못하고 남의 집에 가서는 잠도 잘 못 자는 사람(업어 가도 모를텐데, 무슨)이다. 일이 아무리 많더라도 처음에는 다 할 것 같이 시작 하지만 나중에 싫증을 빨리 느껴 마무리가 약하고 포기도 잘하며 현실에 이상적인 경향이 있어 뜬구름만 잡다가 세월만 보내는 일도 허다하다. 처음은 큰돈을 벌 것처럼 하지만 이 사람은 꾸준한 가운데 돈을 모으는 사람이라 인내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인정은 많아서 남의 초상집에 가서 대신 우는 격으로 똑똑하지만 헛 똑똑일 때가 많고 참을 때는 잘 참다가도 갑작스레 폭탄터지듯 하는 성격이 있어 손해를 본다. 아무리 바빠도 바쁠수록 돌다리도 두드리고 돌아서 가라.

 

맞는 직업은 서비스 계통이나 교직(내가 보기에도 천직이다. 역시 샘), 관직, 일반 사무직, 관광, 방송, 광고, 관리직이 어울리고 사업은 안 맞지만 꼭 한다면 자본이 많이 투자되는 사업은 삼가고 서비스 업, 아이디어 사업 쪽이 괜찮다. 아무튼 일이나 거래나 끝까지 들은 다음 신중하게 검토를 해보고 나서 가부를 결정해야지 무턱대고 다할 것 같은 마음으로 덥석 시작하면 미스가 많고 실수를 하게된다(최근 이런 비스므레한 일이 있었는데).무조건 내 생각이 옳다고 밀고 나가지 말고 남의 말이나 의견을 듣는 것도 필요하며 내 상황이 안 좋다고 주위 사람들을 피하지만 말고 그럴수록 많은 사람과 접촉해 보면 도움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에게 맞는 학교는 연고대(이거대로라면 학교 제대로 나왔네), 경희대, 외대, 서강대, 중앙대, 이대 쪽이 좋지만 실력은 모자라는데 일류대만 고집하지 말고 노력을 더하거나 현실에 맞춰가라. 대개 이런 사람은 어려서 부모의 교육열 때문에 과보호 속에 자란 사람이 많은데 부모를 잘못 만나 공부를 많이 못한 사람은 나중에 일어서기가 힘들고 파란이 많다.


종교는 기독교나 자유스럽고 결혼은 서기로 홀수 년에 만나 홀수 년에 해야 문제가 없다(나랑 같다. 이렇게 맞을 수가)연애결혼이 많고 눈이 높아 항상 자기보다 나은 상대만을 찾아 학벌이나 인물을 많이 따지는 편이고 싫증을 빨리 느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혼도 쉽지 않은데 이리 저리 많이 재다가 제 짝은 놓치고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여 나중에 이혼하는 경우도 많다. 상대는 대체로 미남미녀가 많고 성격이 정직하며 깔끔한 타입이지만 융통성이 없고 낮선 환경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성격이 여리고 작은 정이 많은 사람(이게 나다.ㅋㅋㅋ)이다. 남녀 공히 장남이나 맏며느리 감은 아니고 중간이나 외동이 잘 맞는다. 부모를 멀리 떨어져서 효도하는 것이 좋고 신랑감은 사업가보다는 서비스 쪽이나 직장인이 잘 맞으며 잔재미가 있는 사람으로 다정다감한 성격에 집안 일도 거드는 남자가 제격이다. 교포나 외국인, 혹은 연하의 남자도 잘 맞으나 나이가 훨씬 더 많은 남자가 좋다. 신부 감으로는 남자 의견에 잘 따라주는 여자라야 하고 외동이나 막내딸이 어울린다. 연상의 여인도 잘 맞고 모성애가 많은 여자로 싹싹하고 정직해야 편히 산다. 단 남자는 가정 일은 여자에게 주권을 모두 일임하고 간섭하지 않아야 하며 월급은 봉투 째 갖다주어야 돈도 모으고 잘 살게된다. 남녀 공히 연애 시절에는 궁합을 무시하지만 궁합이 안 맞으면 여자는 살다가 애를 두고도 떠나며 실패가 많으니 주의하라(헉! 나랑 짝꿍은 우리의 궁합을 모른다! 어째 불안).

 

 

&quot;직업이 뭐예요?&quot; - (1)

 

나의 게으름과 귀차니즘은 상당한 깊이가 있다. 얼마나 질질 끌었는지 3년이나 되었다. 아마 그 정도 되었으려니 기억하고 있다. 3년 전에 사무실 근처 치과엘 갔었다. 어금니 때운 금덩어리가 떨어져나가서였다. 결국 어금니 전체를 덧씌우는 치료를 받았다. 그때 치료를 담당한 의사가 사랑니 빼란다.

 

"빼 주세요."

"이건 큰 수술이라 종합병원 가세요."

 

미루다 미루다 3년이 지난 어제서야 세브란스 치과병원엘 갔다. 외출 준비를 미적미적대다가 낭패를 당할 뻔했다. 사실은 지난 월요일에도 갔었는데, 미적대다가 접수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한 것이었다. 그날은 설마 5시면 접수는 받겠지 했었다. 어제는 마감시간이 4시 30분인 걸 알고 있었느니 좀 일찍 나가자 맘 먹었지만, 몸은 어슬렁어슬렁 움직이기도 싫어 치과병원 로비에 도착한 시각이 4시 21분 경이었다. 접수대기표 뽑고 내 차례가 되어 접수처에 갔더니,

 

"저기가서 신청서 작성해 주세요. 빨리 하시면 진료 받으실 수 있습니다."

"네"

 

어디서 어떻게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지 몰라 살짝 헤맸다. 어쨌든 접수를 마친 시각은 거의 4시 30분. 이것저것 한보따리를 건네주었다.

 

"서둘러 5층 구강외과로 가세요."

"5층이요? 네."

 

5층. 로비 접수처에서 받은 한보따리를 구강외과 접수창에 들이밀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사랑니 빼러 왔는데요."

"이거 가지고 4층 수납을 들렀다 방사선과로 가세요. 사진 찍고 올라오시면 됩니다."

"네."

 

4층에도 수납하는 데가 있었다. 주로 X-레이 찍는 돈을 내는 곳인 듯. 돈 내고 방사선과에 가서 조금 기다렸다 사진을 찍었다. 오, 신기하대. 내 구강구조를 입체적으로 찍기 위해서 그런지, A5만한 검은색 판이 내 왼쪽 뺨쪽에서 정수리를 넘어 오른쪽 뺨까지 '지잉~'하면서 움직였다.

 

"다 되었습니다. 구강외과로 가시면 됩니다."

"네."

 

이 공정을 마치니 4시 40분 정도 되었다. 병원에 와서 20분도 안되서 진료 준비를 완료했다. 3년 기다린 것 치고는 좀 짧았다. 하지만 의사를 만난 것 한참 뒤였다.

 

5시가 다 되어서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의자에 앉혀 놓고 기다리란다. 처음에 기다리는 건 지겹지 않았다. 내 바로 앞 LCD 스크린에 좀 전에 찍었던 X-레이 사진이 이따만하게 나와있지 않은가. 아~ 내 이들이 저렇게 생겼군. 재미와 함께 걱정이 드는 내 이들. 양쪽 아래에 있는 사랑니가 장난이 아니었다. 90도로, 진짜 90도로 누워있었다. 게다가 옆에 있는 어금니 뿌리에 바싹 붙어 있었다. 내가 저것들을 빼러 왔다 이거지...

 

그러다 X-레이 사진을 보는 것도 지겨워졌다. 앉아서 졸았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한참 기다리는 내게 눈치가 보였는지,

 

"선생님들이 다 어디 가셨지?"

(부산하게 돌아다니다) "선생님, 저기 초진환자 좀 봐주실 수 있었요?"

 

5시 30분이 다 되어서 젋은 의사가 들어왔다.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사랑니 빼는 얘기를 한다. 1-2주간 통증이 있고, 한달은 되어야 불편함을 못 느끼고, 6개월 정도는 되어야 완치된다고 할 수 있단다. 완치란, 이가 없어졌으니 남은 이들이 제자리 찾는 시간이라나. 그리고 겁나는 얘기를 또 한다. 내 사랑니 뿌리 근처에 신경이 지나가고 있는데, 수술 중에 그게 상처 입을 수도 있단다. 그러면 아랫입술과 그 아래 안면의 감각이 둔해진단다. 대략 6개월에서 1년 정도 있으면 자연 치유되는데 소수의 경우는 영구적으로 그렇게 된단다. 으이그~.

 

"한쪽 뽑고 나서 얼마나 있어야 다른쪽 뽑을 수 있죠?

"한달은 기다려야죠. 음식 씹는 게 불편하지 않을 때까지요."

"저 6월 25일 경에 한 달 동안 시베리아 가는데요."

"가기 전에 한쪽 뽑고, 갔다 와서 마저 뽑아도 돼요. 예약을 하시면 한 달 후 정도에 뽑을 수 있을 겁니다."

"5월 말이라... 한쪽 뽑고 갈래요. 왼쪽부터 뽑아주세요."

 

예약은 간호사가 담당이었다.

 

"지금은 6월예약밖에 없는데, 시베리아 가신다니 5월 17일로 해드릴게요. 하지만 오셔서 좀 기다리실지도 몰라요. 9시까지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근데, 직업이 뭐예요?"

 

 

자, 이제까지가 서론 격이다. 애초에 하고싶은 얘기는 이보다 짧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중에 쓸란다. 지금은 알바를 해야 한다. 오늘 해 뜨기 전에 끝내지 못하면 괴로와지는 알바다. 왜냐고? 깊은 게으름과 귀차니즘으로 미루고 또 미룬 알바이기 때문이다.

 

 

별거 다 세 보았다

 

요즘 해야 할 일이 은근히 많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바쁘게 살 만큼 할 일은 많다. 그런데 난 별 생각없이, 별로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될 답들을 얻으려고 애쓰곤 한다. 내가 방금 전에 갑작스레 궁금해진 건...

 

'내 블로그는 진보net에서 몇 번째로 만들어졌을까?'

 

내 방식대로 세 보았더니 1,703개 중 588번째였다.

 

'그래서?'

'뭐, 별루... 그렇다구... 좀 세 보면 안돼?'

'돼! 그러고 살어!'

 

나는 이렇게 살다가 재미있는 취미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4만원 남았다

 

내 주거래 계좌가 하나 있다. 나머지 자잘한 것들은 정리했다. 오늘 은행엘 갔다. 노동넷에 빚진 게 있어서 8만원 입금하러. 그리고 지갑이 털털 비어 있는 걸 보고선 3만원 인출했다. 명세표가 좁은 틈에서 찌익 등장하더니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이제 4만원밖에 없어!"

 

목요일부터 본격적인 채권추심에 나설 예정이다. 채권 회수 전까지는 내 인생 처음으로 유사빈털털이 신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로서는 생경하다. 외출도 자제하고, 가까우면 걷거나 자전거 타고, 멀어도 버스-지하철만 타고, 지방엔 가지 말고. 밥도 왠만하면 먹고 나가고 밖에서는 싼 것만 찾아 먹고. 지름신은 멀리 하고.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병원엔 가야겠다. 병 키우지 말고...

 

에공.

 

 

짝꿍과 지음님께 감사 : 자전거 생기다

 

새 자전거가 생겼다. 이 포스트가 먼저 올라가고 '오랜만에 자전거 타다'가 나중에 올라가는 게 순서일 터이나, 요즘 시간순이란 게 별로 재미가 없어서 이러기도 한다. 이것도 이유지만 보다 사실에 가까운 이유는, 자전거가 생기자마자 해가 져버려서 자전거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새 자전거 소개하는데 사진이 없으면 밍숭맹숭하잖아.

 

 

1. 감사의 인사

 

새 자전거는 짝꿍이 교사 첫월급으로 쐈다. 내 자금 사정이 말라가는 가운데 얼마짜리 자전거를 사야하나 고심고심하고 있었는데 숨통이 확 트이는 선물을 받은 것이다. 어찌나 고마운지. 내가 이렇게 호강하고 사는 것도 다 짝꿍이 복덩어리라서 그런 것 같다. 짝꿍 만세!

 

이번 자전거 마련에 좋은 정보를 제공해 준 분이 지음님이다. 지음님 블로그의 잔차 코너에서 자전거에 대한 이런저런 글을 읽어보았다. 특히 '생활자전거 소개'글들은 내가 어떤 자전거를 선택해야 할까 한번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뒷샥없는 유사MTB를 선택할 수 있었다. 특별히, 이 자리에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2. 새 자전거 사기

 

지음님의 글을 읽고 알톤의 '알로빅스500'을 점찍어 두었다. 내가 워낙 인터넷 쇼핑을 믿지 못해 돈 몇 푼 더주고서라도 매장에서 직접 눈으로 고르는 걸 선호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팔리는 가격을 알아두고선 동네에서 눈에 띠는 자전거 가게에 갔다. 짝꿍과 함께.

 

"알톤 '알로빅스500' 얼마예요?" '알톤 알로빅스500'은 매장가격과 인터넷 쇼핑몰 가격의 차이가 많이 났다. "29만 원." 자전거집 싸장님이 그 정도 투자할 거라면 다른 자전거를 사는 게 어떠하겠냐 한다. 이것 저것 약간씩 가격이 더 높은 자전거들을 소개해 주는데, 매장마다 팔고 싶은 자전거가 있기 마련이라는 걸 알면서도 귀가 얇은 나와 짝꿍은 그 자리에서 가볍고 폼나게 생긴 녀석 하나를 찝었다.

 

레스포의 '하운드3000'

 

 

3. 하운드3000

 

이게 27단이고, 시마노 기어가 달렸고, 나중에 업그레이드 하기 좋고 등등. 뭐 이런 소개는 자전거집 싸장님이나 자전거 고수들이나 하는 얘기고, 난 잘 모르는 얘기니까 다 접어버리자. 내가 몇 시간 달려보니,

 

(1) 가볍다.

(2) 잘 나간다.

(3) 안정감이 있다.

 

이 세 가지만으로도 난 만족한다. 전에 타던 자전거는 뒷샥이 있었는데 사실 승차감은 전에 타던 자전거가 조금 좋긴 하다. 그렇지만 무게에 있어서나 속도를 내는 데 있어서는 새 자전거에 비할 게 못된다.

 

가벼우니 약간의 수고만으로 자전거를 들고 120여 개의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다. 12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자전거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집 앞이 나온다. 가벼워서 육교나 계단 오르내릴 때 편하겠다. 고생은 덜 하고 더 많은 곳을 가게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

 

뒷샥이 없어서 그런지 확실히 페달을 밟는 느낌이 다르다. 내가 힘 주는 만큼 자전거가 앞으로 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27단까지 사용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상황이 받쳐주어 27단 놓고 달릴 일이 있다면 유사 MTB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감을 맛볼 것 같다.

 

그리고, 가볍고 균형이 잘 잡힌 데다가 단단한 이미지도 있어서 타는 느낌이 안정적이다.

 

 

내가 자전거 곳곳의 명칭은 아는 게 없으니 설명은 못하겠고 옥상에서 찍은 사진이나 주욱 늘어놓아야겠다.

 

 

 

 

 

 

 

이 친구하고 올해 하고 싶은 일은 서울시 한강변, 지천변 자전거 도로는 죄다 달려보는 거다. 시간이 지나 구리구리해져도 예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