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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걸기의 ["직업이 뭐예요?" - (1)]에 이어 본격적인 얘기를 풀어야겠다. 나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의 관심은 보통 직업을 물을 때와는 다르다. 이 사람들의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은 사실 다양한 변종이 있다.
"직업이 뭐예요?"
"무슨 일 하세요?"
"무슨 회사 다니세요?"
"그렇게 하고 다녀도 회사에서 뭐라 안해요?"
"평범한 일을 하시지는 않은가 봐요?"
"머리 모양이 참 독특하시네요?"
"한 번 만져봐도 돼요?"
이 서로 다른 내용의 질문들을 나에게 물었을 때는 사실 거의 같은 의미이다.
'네 머리 참 희한하게 생겼다. 너 뭐 하는 놈이냐?'
일명 '꽁지머리'라 불리는 이 머리칼들은 워낙 거칠고 푸석푸석해서 우수사랑은 '옥수수 수염'이라고 부른다. 이 노란 머리칼은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난 항상 머리가 짧은 걸 좋아했다. 그렇다고 짧게 자르고 다녔다는 건 아니다. 귀차니즘은 언제나 나로 하여금 미용실에 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귀와 목을 덮는 일은 자주 있었다. 그러다가 길어진 머리를 견디다 못해 미용실에 가서는 짧게 깎아 버린다.
어느날 문득 머리를 길러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목과 눈 주변을 찌르는 머리칼을 견디지 못할 듯했다. 그러다 문득 특정한 곳만 기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래저래 머리 모양을 구상해 보았다. 결국 뒷머리 왼쪽만 기른 다음 빨갛게 물을 들이기로 작정했다. '좌익빨갱이'니까.
요즘 같으면 소위 실력 있는 스타일리스트를 수소문해서 나의 구상을 설명한 다음 제대로 된 머리 모양을 만들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걸 못해서 그냥 가던 미용실에서 목을 덮고 있던 내 뒷머리 일부를 손으로 움켜쥐고선 "이거 빼고 싹 밀어주세요" 했다. 난 아주 왼쪽으로 머리가 남길 바랬으나 어정쩡한 곳에 남아버렸다. 별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패스. 다시 목을 덮을 때까지 머리를 기른 후 처음부터 시작할라니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이대로 기르자.
상상을 해 보라. 한 4~5cm밖에 되지 않는 머리가 왼쪽 뒷머리에 요만큼만 붙어있으면 얼마나 흉할까를. 집에서 한 마디씩 돌아가면서, "잘라라. 이게 뭐냐." 이 한 마디 돌아가가가 몇 달이었다. 내가 돌 지경이었으나 개겼다.
이 머리칼은 빨갛게 물들이지 않고 제 머리색대로 기르고 있었다. 2002년이 되니까 꽤 길어졌는데 그 때 처음으로 염색을 했다. 애초 계획대로 빨강색으로 염색을 했었는데, 이를 위해서 검은색을 한참 빼고 나서 빨강색을 들였다. 이날이 언제였냐면 월드컵 한-이태리 16강전이 있던 날이다. 축구 중계가 시작하기 전에 물을 들이기 위해 집 근처 미용실에 갔는데, 아무래도 이 아저씨 축구 중계 보려고 맘이 급했는지 뚝딱뚝딱 물을 들이는 게 아닌가. 원래 빨리 물이 들도록 제작한 약품이란다. 믿었지. 이틀동안 머리도 안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머리를 감을 때 물 싹악 빠졌다. 젠장. 다신 그 집 안가.
빨강물을 제대로 들인 건 2003년도다. 3월에 결혼식을 했었는데 내가 신경쓰고 준비한 것 중에 하나가, 딱 그 부분만 빨갛게 물들여 쫙쫙 편 머리 모양이다. 돈 좀 쎈 미용실에 가서 물 안빠지게 당부하고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도 비싼 걸로 했다. 내 결혼식 사진 보면 가관이다. 결혼식에 온 하객들이 내 머리 모양 보고 신기해 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 할머지 아저씨 아줌마들에겐 얼마나 재미 있었을까.
난 머리숱도 별로 없고 잘 빠져서 한참 지나면 물을 들였던 머리칼은 다 빠지고 검을 머리만 남는다. 그럴 땐 가끔 물을 들이곤 했는데, 빨강물은 몇 번 들이지 못했다. 머리가 너무 푸석푸석해서 좋지 않단다. 그래서 검은물만 빼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옥수수 수염'이 된 것이다.
내가 뒷머리의 한 부분만 기르고 다닌 게 5년 반쯤은 된 것 같다. 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길렀으니 말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장난스레 뭐든 해보고 살았던 것 같다.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직접 해보는 실험정신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잃어버린 것 같아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는 그 실험정신 말이다.
어쨌든 난 이 실험에서 깨달은 게 있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자기와 관련 있는 사람이, 여태껏 보지 못한 어색한 행동을 하는 걸 싫어한다. 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온갖 구박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엄니는 6년 가까이 머리 자르라는 말씀을 하셨다. 짝꿍도 내 머리 모양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당에서 일할 때 처음에는 부총장까지 나서서 머리 자르라고 했다. 반면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이 희한한 짓을 하면 재밌어 한다. 물론, 자기에게 피해가 없으니까.
한편으로는 희한해서 꺼리는 나의 머리 모양을 계속 보면 익숙해진다. 그냥 그렇구나 해버린다. 짝꿍도 언제부턴가는 익숙해졌는지 하는 얘기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이쁘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내 머리칼 건강에 신경쓴다. 또는 내 머리를 뒤로 젖히고선 긴 머리칼로 내 등을 쓰다듬을 때가 있는데 이런 행동은 귀엽단다. 그리고 가끔 내 머리를 정성스레 따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익숙한 걸 좋아한다. 그게 편하다고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은 건 보기도 듣기도 싫어하고 해보는 것도 싫어한다. 그게 나쁜거라고 생각한다.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게 보수성이다. 눈앞의 작은 변화도 싫어하는 것이다. 변화가 다 진보고 옳고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가 될 이유도 없는 걸 익숙치 않다고 꺼리고 배제하는 태도는 그야 말로 폭력이다. 난 5년 반 동안 일상적으로 폭력을 당했다. 자기들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난 수없이 조롱과 비웃음과 '머리 잘라'라는 강요와 무거운 시선을 느끼고 살았다.
"직업이 뭐예요?"는 나에 대한 호의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희한한 놈으로 여기는 시선이기도 한다. 또는 자기가 갖을 수 없는 자유를 누리는 나에게 부러움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난 불쾌할 때가 많았다. 내가 어찌하고 다니건 그대와 상관없는 나에게 왜 쓸데없는 간섭을 한단 말인가.
내 머리 모양에 대한 반응으로 알게 된 건, 운동권이나 아니나 똑같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익숙하냐 익숙하지 않느냐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건 매한가지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 성격 따라 다른 거지 이념에 따라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결국 난 실험으로 몇 가지 결론을 얻었다.
1. 사람들은 익숙치 않은 것을 싫어한다. 특히, 자기와 관련 있는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면 부끄러워한다.
2.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 싫어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3. 익숙치 않은 것에 대한 경기는 사회변화를 추구한다는 운동권도 똑같다.
난 여기에서 더 나아가, 즉 비약이 될지 모르는 결론을 추론하고 있다. 이제는 진보운동한다는 것들 다수도 변화나 다양성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 자기들 익숙한 대로 운동한다는 것. 그게 현재 속성이라는 것.
이제 내 머리 모양도 달라질 때가 되었다. 6년이 다 되어가니 주변 사람들 반응도 별거 없다. 실험은 끝났다. 어떤 결론을 내리려고 시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결론까지 얻었으니 고만 됐다. 모가지에 기승을 부리는 아토피 피부염도 치료할 때 되었고 하니 겸사겸사 꽁지머리를 잘라버릴 거다. 귀차니즘의 작동으로 인하여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조만간 얘도 내 머리에서 떨어질 거다. 좀 아쉽긴 하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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