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突破, 늘 그랬듯이님의 [[이황현아] 왜 '여성노동권'인가] 에 관련된 글.
위 글을 읽고 생각난 김에 쓰는 글. 뭐, 꼭 트랙백까지 할 것인가 싶으나 '연상'이 되어.
그리고 진보네 블로그에서 이황현아씨의 글을 읽을 수 있어 무척 반가왔음.
1.
"여선생이 너무 많아."
내 짝꿍은 2개월짜리 신입 중등교사다. 직장도 몇 개 옮겨다니면서 결국 교사의 꿈을 키웠고 올해야 그 꿈을 이루었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1주일짜리 연수를 갔는데 190명이 넘는 국어과 신규 교사 중 남자는 몇 안되었단다. 그리고 학교로 출근을 했더니 거기도 남자선생이 훨씬 적단다.
"여선생이 너무 많다"는 말을 내 짝꿍이 한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세간에 떠도는 말이기도 하고 내 주변에서도 듣는 얘기다. 더욱 기가막힌 건 "여선생이 너무 많은 건 문제이니 여선생 남선생을 똑같은 수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도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 특히 초등학교 아이들은 학교에 남선생이 별로 없어서 문제를 겪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종의 '아빠' 모델이 학교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 성장에 장애가 된다나? 뭐 꼭 차별적인 성역할이 아니다 하더라도 여자랑 남자는 다르긴 하니까 어른 여자와 어른 남자의 행동이나 감정을 동시에 배우는 것도 좋다고 할 수는 있겠지. 근데 이런게 뭐지 잘 모르니, 여선생이 다수인 학교에서 정말 학생들의 성장에 어려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교사와 같은 공공영역(사립교 빼고)에서 여성들이 훨신 많은 이유가 뭔지 알고는 있으면서 "여선생이 너무 많아" 따위의 말을 뱉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면서 결국 여선생 남선생 동수로 뽑자는 주장을 하기까지 이르는데 난 이 주장은 학생들을 위한 생각이 아니라 공공영역으로 밀려들어오는 여성, 즉 남성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여성을 밀어내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짝꿍이 예전에 다니던 회사도 산업계 성분업상 여성들이 다수인 기업이었는데, 소위 구조조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리해고 되었다. 내 짝꿍도 그 중 하나였다. 정리해고로 회사 밖으로 쫓겨난 동료들의 대부분은 '정규직으로 정규직으로'의 강력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으로 고향엘 내려갔다. 그 바닥에서 갈고 닦은 경력으로 훨씬 안정된 동일계 회사로 간 동료도 있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 '프리랜서'가 된 동료도 있단다.
'여성들이 안정적 일자리로 꼽는'(이건 여성들의 생각이라는 뜻이 아니다) 공공영역은 시험을 치러서 얻는 일자리기 때문에 '차별'이 가장 적은 일자리로 볼 수 있다. 기업에서는 채용에서부터 차별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학력이 비교적 높은 여성들이 교사나 공무원시험에 응시한다. 물론 이런 기회는 저햑력, 저소득, 고령 여성은 제외다.
모든 다른 영역에서 여성을 밀어내 놓고서 공공부문에서 여성이 많다고 한탄하는 게 참 어처구니가 없다. 진정 학교에서의 교육을 걱정해서 여선생 남성생 똑같이 뽑길 바란다면 모든 기업에서 여-남 모두에게 똑같은 질의 일자리를 똑같은 수로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해야 할 것 아닌가. 아마 이 얘기하면 '기업은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능력 있는 사람을 우선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걸? 임용고시나 공무원시험(5급은 아니겠지. 이건 또 다른 사회적 배경이 있어야 가능하니까)에서는 확실히 여성이 능력 있어서 통과한 건데 그건 또 아니란다.
2.
내 후배이기도 한 짝꿍의 친구는 지금 교사다. 근데 비정규직 교사, 즉 기간제 교사다. 사립학교에서 근무하는데, 하는 일은 다른 정규직 교사랑 다를 바가 없단다. 이 친구는 요즘 고민이 많단다. 과연 교사가 자신의 길인가에 대한 고민. 돈을 벌어야 하니까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는데 그 사립학교를 다니면서 교직사회라는 게 실망스러운 모양이다.
이 친구가 겪었을 법한 일상을 나와 짝꿍이 목격한 적이 있다. 신촌에 냉면 잘하는 집이 있어서 가끔 가는데 이곳은 한우전문 식당이다. 진짜 고급스런 음식인데 왕 비싸서 나름대로 주머니 두둑한 사람들이 회식하는 모습을 곧잘 본다. 옆자리에 7-8명이 앉아서 육사시미를 먹으며 술마시고 있었다. 그 중 하나만 여성. 20대 중반 정도. 나머지는 젊은 사람에서부터 아저씨까지 골고루. 분명 직장 회식. 호칭을 '선생' '부장' 따위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교사들 같았다. 공립교 교사들은 이렇게 비싼 데 오길 꺼리기도 하고 남성 비율이 월등한 것으로 보아 사립교 교사들임이 분명했다. 오가는 얘기라고는 듣기 민망한 연애 얘기 따위였는데 그들 눈에는 동료 여교사가 없는 듯했다. 아니면 그 사람 들으라고 더 뻥튀기며 얘기하나? 사립교에서 기간제 교사하는 그 친구도 거절하기 힘든 회식 자리에 불려다닌단다. 임용고시 보려면 공부도 해야 하는데...힘이 없으니 어쩔 수 있나...이렇게 포기하면서도 매번 괴로움과 후회로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면 여성으로서는 사립교는 지옥이다.
반면 짝꿍과 이 친구의 동기 녀석 하나는 사립교 선생인데 그 학교도 뭐 별로 분위기가 좋지는 못한가보다. 학교 생활을 썩 맘에 들어하지 않는 이 녀석은 내 짝꿍을 부러워한다. 임용고시 합격해서 공립학교 갔다고. 근데, 이 녀석은 임용고시 공부하기 싫어서 사립고 갔고, 그것은 남자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약간 도둑놈 심보가 보인다.
3.
내 짝꿍 옛동료는 애기 땜에 프리랜서가 되었다 했다. 학습지를 만드는 일은 그 과정 중 일부는 집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그렇게 되었다. 일이 많은 철과 그렇지 못한 철 사이의 소득 차이는 불안의 원인이 되겠지만 애 키우는 입장에서 그나마 좋은 일거리일 수도 있다.
지난 일요일 밤 <위기의 주부들 2>에서 리네트가 겪는 일이 문득 생각난다. 리네트는 결혼 전 나름대로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훌륭한 주부/엄마로 살고 싶어서 직장을 버리고 네 아이의 엄마로 살았다. 여기까지는 시즌1의 내용이다. 남편의 실직과 함께 다시 옛날의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가 회사일을 한다. 여기에는 부부의 역할 바꾸기 합의도 있었다.
셋째 아들 파커가 엄마의 부재에 충격을 받아 엉뚱한 사람을 상상으로 만들어 내더니 유모라 한다. 엄마로서의 자존심도 상하고 경쟁심이 유독 많은 리네트로서는 두고보기 힘든 일이었다. 리네트는 회사일도 일찍 끝내려고 무지 애쓰며 일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와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한다. 지난 회에서는 파커의 유치원 입학식에 가지 못해 안절부절했는데 결국 사무실에 웹캠을 설치해서 파커 곁에 있지 못함을 보상했다.
아빠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자주 출장을 갈 때는 아빠의 부재는 별일이 아니었다. 근데, 엄마가 출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는 이 난리다. 어린 아이를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유독 엄마만큼은 자기를 챙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어린 아이 때부터 머리와 심장에 새겨지는 건 좋아보이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나레이터는, 일이 많아 늦게 들어와도 아빠는 죄책감이 없고 엄마는 죄책감을 갖는단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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