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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사랑니 둘

 

3주 전에 예약해 두었던 치과엘 갔다. 두려움과 기대를 함께 지니고.

 

 

말걸기가 어디든 9시까지 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 일. 오후 9시도 아니고 오전 9시에 말야. 일찍 일어나서 나름대로 부지런 떨면서 멀지도 않은 세브란스 치과병원 구강외과에 도착한 건 9시 10분. 지각. 제 시간에 갈 리가 없지. 환자도 별로 없고 조용.

 

 

9시 15분 경. "말걸기씨 이리 오세요."

 

9시 20분 경. 매너 좋아 보이는 청년의 등장. "마취하겠습니다. 따끔합니다." 진짜 따끔하고 아픔. 주사바늘로 여기저기 쿡쿡 찌르는데 깜짝 놀라기도 함. 진땀도 등장. 마취될 때까지 기다린다며 매너 청년 퇴장.

 

금새 친절한 간호사 등장. "이거 읽어 보세요." 이 뺀 후에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주의 사항이 적힌 작은 종이. 음... 내가 궁금했던거야... 수술 도구를 주욱 늘어 놓고 나가 버림. 수술 도구에 겁이 덜컥. 나 같이 겁 많은 사람을 혼자 수술 도구 옆에 오래 앉혀 놓는 건 학대인 듯.

 

9시 30분이 좀 지나서 선수 체인지. 한 성격 하게 생긴 아저씨 등장. 의자를 뒤로 젖히더니, "아, 벌리세요."

 

꾹. 꾹. 꾹. 아마도 아래 쪽 잇몸 절개 중인 듯. 잇. 잇. 잇. 언제나 끝날까. 아프지는 않을까. 삐질삐질. 양손은 의자를 꽉 붙잡고.

 

위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사랑니 뽀개는 중인 듯.

 

읏. 읏. 읏. 부서진 이조각을 걷어내는 듯.

 

슥삭슥삭. 아저씨 손이 내 입 안으로 들락날락 하는 거 보니 꼬매는 거겠지. 이때쯤 안심. 다 끝나가는구나.

 

이번엔 윗니 쪽에서 뭐가 흔들리는 느낌. 쑤욱. 혀 위에 뭐가 툭 떨어짐. 뽑은 이를 놓친듯.

 

"입 꽉 다무세요."

 

10분 정도에 다 끝났다. 마취 기다리는 시간보다 짧은 시간에 내 왼쪽 위아래 사랑니를 전부 뽑아버린 것이다. 그 아저씨 완죤 선수.

 

"거즈는 2시간 동안 꽉 물고 계세요." 잉? 거즈? 입 다물라는 게 거즈 땜에 그런거구나. 감각이 없으니 거즈를 물었는지 안물었는지 알게 뭐람.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해야지.

 

"1주일 동안은 절대 술과 담배는 안됩니다. 이건만은 꼭 지키세요." 술 생각 요만큼도 안난다.

 

친절한 간호사에게 다음 진료 예약. 1주일 후에 실밥 빼러 간다.

 

 

마취가 풀리기 전에 죽과 식염수를 사들고 집에 가서 얼음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병원에서 퇴장. 이미 그때는 윗쪽은 마취가 풀리기 시작. 살짝 통증이... 안 돼! 집에 가서 얼음 찜질하기 전까지는 마취가 풀리면 안 돼.

 

집에 가서 언제 어떻게든 쓰러져 잠을 잘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선 냉동실을 뒤졌다. 얼음 만드는 네모네모가 어디에 있는거야? 그때, 아이스 박스에 넣는 냉매 발견. 앗! 이거다. 얇은 수건에 감싸서 마취가 풀리기 전부터 얼굴에 대고 하루 종일 있었다. 이게 어느 정도 마취 효과가 있는지 괴로울 정도의 통증은 아직 없다. 지금은 얼굴을 삐딱하게 기울여서 얼굴과 어깨 사이에 냉매를 끼우고선 타이핑을 하고 있다.

 

밥 먹는 게 불편. 그래도 사랑니 뽑은 위아래 잇몸이 닿질 않으니 씹기는 한다. 하루 종일 입에서 피 냄새 맡으니 그것도 좀 싫다. 열이 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운 것도 불편. 이도 닦아야 하는데 치약이 따가울까봐 겁내고 있다. 뭐 이러다가 점점 통증도 가라앉고 아물겠지.

 

 

아픈 걸 무지 싫어해서 사랑니 빼러 가기를 주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기대'를 갖고 용감하게 치과엘 갔다. 왼쪽 아래 사랑니 근처가 아프기도 하고 항상 그 존재가 신경쓰였었다. 묵직한 게 나를 은근히 괴롭혔던 것이다. 털어내면 시원할 것 같았다. 그 시원함을 상상하니 슬쩍 설레임이 들더라. 이제 잘 아물도록 내 몸 잘 살펴야지. 노하우 개발로 오른쪽 사랑니들 뽑을 때는 좀 더 노련하게 대처하는 것도 잊지 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