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차라리 똑 떨어졌으면 좋겠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성공은 한국의 기업(방송사도 포함)에게 월드컵 특수가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게 해 준 모양이다. 돈벌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념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와서는 거대 통신사끼리 민망한 응원가 경쟁을 벌이게 한다. 온갖 사은품 잔치로 월드컵 판매 전략은 끝이 없다. 기업이 돈 벌겠다는데 짜증부릴 게 뭐냐고 한다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무엇보다도 낯뜨겁고 민망하고 짜증나게 하는 게 바로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이다.

 

방송사는 이미 언론 보도의 사회적 기능 따위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4주나 남은 월드컵 관련 보도를 내보내기 위해 이 사회의 '갈등'은 씹는다(<레디앙>'9시 뉴스가 스포츠 뉴스로 바뀌었나'). 사회를 구성하는 제각각의 주체들이 갑론을박, 티격태격 하는 갈등이 있어야 사회는 굴러간다. 사실 갈등은 자신의 이해에 따라 살아가는 구성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현상이다. 언론 보도는 이에 충실해야 '공익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갈등의 보도를, 그 크기와 중요성에 비추어 누가 왜 무엇을 했는지를 심층적으로 제공해야 언론은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2006년 한국 언론은 핑계 거리가 생겨 아주 노골적으로 '공익성'을 부정하고 있다. 씹쌔들. 공익방송이라는 말을 뻔뻔스럽게 내뱉는 MBC와 KBS가 SBS보다 재수없다.

 

 

한국의 월드컵 대표팀은 나름대로 매력적인 팀이다.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는 듯하고 본선에서 매번 잼나는 경기를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 즉, 열렬한 응원을 받을 만한 팀이고 16강, 8강, 쭉쭉 올라가는 것도 무척 익사이팅한 일이 될 것이다. 짜증 만땅 2006년도에 그나마 즐거움을 제공해줄지도 모른다. 물론, 축구팬에 한해서.

 

하지만 난 요즘 한국 월드컵 대표팀이 16강에 똑 떨어졌으면 좋겠다. G조 리그에서도 시큰둥하게 경기를 해서 일말의 기대도 받지 못한 채 똑 떨어졌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다소간 16강 실패의 원인을 찾아낸답시고 각 언론사들이 개지랄 떨겠지만 얼마나 가겠는가. 그냥 축구가 좋아서 월드컵 좋아하는 사람들만 늦은 밤 다른 나라 경기에 몰두하는 조용한(?) 월드컵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론이 주목해야 할 건 월드컵 16강이 아니다. 6월이면 지방선거 직후이다. 줄줄이 부정선거로 걸려들어 시끄러울 때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권력 재편의 본격적 서막이 오를 시기이다. 6월엔 임시국회도 열린다.  FTA나 평택이 갈등도 깊어질 것이다. 또 무슨 일이 있을까?

 

월드컵은 월드컵이고 이에 대한 언론 보도의 태도는 별개일 수 있다. 한국 월드컵 대표팀이 승승장구한다고 해도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공익적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이 그럴까? 월드컵을 방패 삼아 더더욱 자본과 권력이 숨기고자 하는 문제를 열심히 숨길 것이다. 월드컵이 없다 하더라도 일부러 숨기는 게 있기는 하지만 '뉴스 거리'를 위해 가끔은 소개하지 않던가.

 

 

공중파 방송사들이 공익 보도를 저버리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KBS는 그나마 수신료도 받고 나름대로 '한국방송'이라는 자존심도 있으니 좀 덜 밝히긴 한다. 그러나 KBS가 공익방송에 투여한다해도 부족할 수신료를 거의 독점하고 있으니, MBC는 KBS와 SBS 사이에서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한다. 가장 공익적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공중파 방송인 EBS는 수능 교재 팔아서 돈 안되는 프로그램 만들고 있으니, 한국의 공중파 방송은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디지털 방송을 미국식으로 합의해준 방송계는 그 때문에 지상파 DMB 정책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위성 DMB와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위성 DMB의 위험성은 가장 공공성이 보장되어야 할 통신 영역에 가장 상업적인 통신사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돈이 썩을 만큼 많은 통시사와 DMB로 경쟁해야 할 공중파 방송사들의 운명은 무엇이 될까? 이 바보 새끼들은 이런 경쟁이 한국의 공익 언론의 미래를 갉아먹을 걸 알면서도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공중파 방송사들에게 돈 될 일만한 것들은 되도록 없었으면 좋겠다. 돈이 더 궁해서 피골이 상접할 정도가 되어야 그 쯤 가서 '공익성'을 내걸고 언론 개혁을 얘기할 것 같다. '돈 버는 일 포길할테니 공익 방송은 보장해 달라'며.

 

 

그래서 그 1탄이 한국 월드컵 대표팀의 졸전이었으면 좋겠다. 실질적 효과도 없는 허망한 기대일 뿐이라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