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 찾기를 숨쉬기처럼.
편집자들은 종종 한 뭉치의 원고를 한 권의 책으로 변신시키는 작업을 출산에 비유합니다. 아기가 뱃속에 있는 열 달 동안 엄마들은 예쁜 것만 보고 듣고, 좋은 음식만 먹습니다. 모두 아이가 어디 한 군데 탈난 데 없이 무사히 태어나기를 바라는 한결같은 정성의 마음에서 비롯한 일입니다. 요즘 엄마들에겐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방부제나 인공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아 먹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공해가 너무 심한 탓이지요. 태어나면서부터 한국어를 쓰고, (영어 못지않게) 초·중·고 그리고 대학에서까지‘국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배우기까지 했음에도, 정확하지 않은 언어 구사를 창피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나라, 이 나라에서 편집자로 사는 일도 특수한 공해에 시달리는 일입니다(띄어쓰기에 눈을 뜬 다음부터 버스나 지하철 광고를 읽는 일이 너무나 괴로워지는 일은 많은 새내기 편집자들의 공통 경험이죠). 그래서 교정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출산을 위해 특별한 운동도 배우지요? 그렇다면 편집자들이 공해 많은 세상에서 애를 잘 낳으려면, 그러니까 문제없는 책(사실 제일 어려운 과제입니다)을 만들려면 어떤 숨쉬기 방법이 필요할까요? 5, 4, 3, 2, 1. 네~. 정답입니다. 출산, 아니 출간을 앞둔 편집자에게 최고의 운동은 바로 사전 찾기입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 http://www.korean.go.kr, 'O'로 표시된 부분들이 활용도가 높습니다.>
국어사전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종이사전도 있고, 전자사전도 있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전도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어를 알기만 하고, 기본적인 인터넷 사용법만 알면 누구나 쓸 수 있는(음성으로도 제공되어 시각장애인도 이용 가능합니다) 사전을 소개합니다. 바로 세금 걷어 만든 국어사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매일 아침 저는 출근하면, 차를 한잔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그러고는 그날 볼 교정지를 (가끔은 그날 얼마만큼 볼지 수를 세서) 펼쳐 놓고, 만년필에 잉크를 채웁니다. 만년필 옆에는 수정액과 교정지에 기타 사항을 적을 연필 한 자루, 그리고 지우개와 교정지에 다시 살펴볼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한 포스트잇을 꺼내 놓습니다. 그러고는 국어사전 검색창을 열어 놓습니다. 사제가 성경을 대하듯 교정교열을 특별하게 만드는 의식 준비 완료입니다.
자, 그럼 이제 실제 교정 중에 국어사전을 어떻게 쓰는지 말씀드려야겠죠?
첫째, 남들처럼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원고를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습니다. 뜻을 알아야 글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책을 읽을 때는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그냥 지나가거나 주변 맥락으로 대강 추론해도 되지만, 교정을 볼 때는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모두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그렇겠지”, “그럴거야” 하고 지나가 버렸다가는 꼭 그 부분에서 오류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번역서를 다룰 때는 더욱 신중해집니다. 한국어에는 없는 단어를 옮기다 보면, 비슷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단어가 선택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최소화하는 데는 사전의 여러 항목을 비교하고, 단어의 유래 등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범주를 생각해 봅시다. 천주교, 가톨릭, 구교 혹은 개신교, 프로테스탄트, 신교 등의 범주가 떠오르지요? 기독교가 어떨 때는 개신교를 의미하기도 하고,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뜻하기도 합니다. 또 (우선 카톨릭이라는 영어 발음을 가톨릭이라는 외래어 표기로 적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의 일입니다만) ‘가톨릭’을 쓸지 ‘천주교’라 바꿔야 할지, 원고의 성격과 단어가 쓰인 맥락 그리고 사전에서 소개된 의미를 파악한 다음에야 정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국어사전을 숨 쉬듯 찾아야 하는 둘째 이유는 띄어쓰기입니다. 사실 정확한 한국어라고 하면 글자 받침 정확하게 쓰고, 용언 변화 틀리지 않게 쓰는 정도를 떠올릴 분들이 많겠지만, 띄어쓰기도 분명 한글 맞춤법의 일부랍니다. 그러나 총 6장과 부록으로 이루어진 한글 맞춤법 5장 띄어쓰기 항목은 불과 10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문 규정이란 본디 기본만을 알려주는 법이라 어떤 단어들이 실제로 붙여 쓰는지, 띄어 쓰는지, 아니면 붙여도 되고 띄어도 되는지 확인하려면 이 또한 사전을 확인해야 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전에서 복합어를 붙여서 검색해 봅니다. 붙여 써도 되면, 결과가 나옵니다. 붙여도 되고 떼어도 되는 단어는 중간에 아치(⌒) 모양의 붙임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붙이거나 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검색 결과가 없다고 하면? 답은 아시겠지요?
국어사전에서 알려주는 정보, 그 셋째는 한자입니다. 문장 가운데 동음이의어가 있어서 읽다가 혼동할 여지가 있을 때, 혹은 특별히 그 어원을 독자에게 알려 주어야 할 때 편집자는 저자를 대신해서 한글 단어 옆에 한자를 함께 적습니다. 한자를 아주 잘 아는 편집자라 할지라도, 이럴 때는 본인의 상식과 추측을 맹신 말고 사전을 한번 찾아보아야 합니다. 삐침이나 파임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니까요.
넷째는 외래어 표기입니다. 우선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외래어의 정의를 배울 때 나왔듯, 외래어는 외국어가 아닙니다. 외국어에서 온 한국어입니다. 한국 어문 규정에서 정하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외국어를 옮겨 적은 말이지요. 실제 영어 사용자들이 ‘orange’를 ‘어륀지’에 가깝게 발음할지는 모르지만, 밝은 주황색이 감도는,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동그랗고 새콤한 감귤류의 한 종류를 한국어에서는 오렌지라고 적고, 읽습니다. 50만 항목을 자랑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외래어들을 원어와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늘 혼동하는 Hollywood의 경우 ‘헐리우드’가 맞을 듯싶지만, ‘할리우드’라 적어야 한다고 알려 준답니다. *(^^)*
이 밖에도 국어사전은 용언 변화 확인, 옛 한글 검색(별도로 서체를 내려받아 설치해야 합니다만), 낱말별 품사를 확인해서 문법에 맞게 쓰기, ‘-ㄹ는지’나 ‘-ㄹ런지’, ‘-던지’와 ‘-든지’처럼 따로 알려주는 사람도 없이 늘 아리송한 어미들의 차이, ‘너댓’과 ‘네댓’, ‘네다섯’ 중에 무엇이 틀린 표기인지 등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답니다(너댓이 틀린 표기입니다).
출산을 할 때는 (경험은 안 해봤습니다만) 진통이 올 때 숨을 조금씩 내뱉으면서 배에 힘을 주면 아기가 조금씩 밀고 나온다고 합니다. 교정을 볼 때도 문장이 꼬여 있고, 뜻 모를 단어 때문에 머리가 아플 때, 그때 사전을 꼼꼼히 읽어 보면서 낱말의 뜻을 이해한 다음, 문장을 새로 쓰는 게 아니라 조금만 고치면 그 태아(원고)는 출생(출간)의 순간에 곧 가까워진답니다. 그래서 오늘도 숨 쉬듯 국어사전을 찾습니다.
.................................................................................................................................회사 블로그 출판/편집 이야기 게재문
sara : 사실 대체로 한국 어문 규정은 대체로 띄어 쓰기를 권장하지만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해. 제일 좋은 건 사전을 찾는 것이지만, 사전에서 모든 용례를 다 제공하지는 않으니까, 편법으로 <띄어쓰기 사전>이나 <띄어쓰기 편람> 같은 참고서를 이용해도 좋아. 웬만한 건 대부분 나오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