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위반이 질서를 가능케 한다
2009/09/09 17:13 베껴쓰기
[한겨레] 모두 '우측통행'땐 체증, 일부 무시땐 흐름 생겨
다양성 관련 물리실험, 백승기·김범준 교수 논문
상식의 역전?
오른쪽·왼쪽 한 길만을 이용하는 보행규칙을 따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더라도 어느 정도에 이르면 통행 체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때엔 보행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체증 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물리학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물리학자인 백승기 박사(스웨덴 우메오대학 연구원)와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등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 피지컬 리뷰 이(E) > 에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엔 무질서였다가 점차 우측통행 규칙의 질서가 갖춰지는 과정에서 보행 체증이 일어날 수 있으며, 좌우 통행을 맘대로 하는 규칙 위반자가 있어야 이런 체증이 해소될 수 있다는 사실을 컴퓨터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통해 밝혔다.
'규칙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관한 기존의 게임이론들에선 어떤 상황에서 출발하더라도 결국엔 효율이 가장 큰 '질서'의 상태로 자연스럽게 나아간다고 설명해왔는데, 이번 연구는 이런 이론에 반하는 사례로서 주목된다.
이번 실험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이뤄졌다. 컴퓨터에선 입자(점)로 표현되는 수천~수만명의 사람들이 어떤 넓은 길의 양 끝에서 무질서 상태로 마주쳐 걷도록 설정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마주치거나 앞사람이 멈출 때엔 오른쪽으로 피해 걷는 규칙을 따르도록 했고, 일부 사람들은 좌우 마음대로 피하도록 설정했다. 김범준 교수는 "좌우 통행 규칙이 없는 지하철 통로에서 출근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마주쳐 걷는 상황과 비슷하다"며 "물론 아무 규칙이 없을 때 처음엔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지만 점차 우측통행 규칙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모의실험에선 규칙이 언제나 원활한 소통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컨대 모든 사람이 우측통행 규칙만을 따르는 상황에서는 서로 자기 길을 찾다 보면 오히려 길 한복판에선 체증이 쉽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규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생기면 꽉 막혀 있던 체증을 흐트러뜨려 결과적으론 규칙이 자리잡는 일을 돕는 것처럼 나타났다.
이 논문은 미국 < 에이비시 > (ABC) 방송 뉴스에서도 흥미로운 연구 결과로 소개됐다. 백 박사는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무질서가 언제나 평탄하게 질서로 바뀌는 게 아니며 규칙 없는 상태가 어떤 조건에선 오히려 더 나은 흐름을 일으킬 수도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며 "워낙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기존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 것 같다"고 말했다.
김범준 교수는 "사람 개인의 규칙은 단순해도 무수한 사람들이 모인 전체 상황은 매우 복잡함을 보여준 연구 결과"라며 "인간사회에서도 한 가지 생각이 절대 우세를 차지하지 않고 여러 다른 생각들이 공존해야 소통이 건강해진다는 인문사회 분야의 견해와도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말했다.
사람이 생각하는 질서나 합리성이 늘 효율적이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다른 컴퓨터 모의실험도 지난해 국내에서 발표된 적이 있다. 정하웅 카이스트 물리학 교수 연구팀은 "모든 운전자들이 빠른 길만 찾는 '자기 중심의 합리적 선택'을 한다고 전제해 모의실험을 해보니, 운전자들의 협조가 이뤄질 때에 비해 도로망의 비효율(운행시간)이 25~30%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연구팀이 수행한 모의실험에선, 일부 도로를 폐쇄하면 교통체증이 오히려 줄어드는 '상식의 역전' 효과가 나타났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 피지컬 리뷰 레터 > 에 발표된 바 있다.
정하웅 교수는 "컴퓨터 모의실험이 실제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선 직접 실험하기 힘든 상황을 쉽게 여러 조건을 달아 해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며 "어떤 조건에서 어떤 패턴을 만들어내는지 간단하고 단순화한 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다양성 관련 물리실험, 백승기·김범준 교수 논문
상식의 역전?
'규칙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관한 기존의 게임이론들에선 어떤 상황에서 출발하더라도 결국엔 효율이 가장 큰 '질서'의 상태로 자연스럽게 나아간다고 설명해왔는데, 이번 연구는 이런 이론에 반하는 사례로서 주목된다.
이번 실험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이뤄졌다. 컴퓨터에선 입자(점)로 표현되는 수천~수만명의 사람들이 어떤 넓은 길의 양 끝에서 무질서 상태로 마주쳐 걷도록 설정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마주치거나 앞사람이 멈출 때엔 오른쪽으로 피해 걷는 규칙을 따르도록 했고, 일부 사람들은 좌우 마음대로 피하도록 설정했다. 김범준 교수는 "좌우 통행 규칙이 없는 지하철 통로에서 출근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마주쳐 걷는 상황과 비슷하다"며 "물론 아무 규칙이 없을 때 처음엔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지만 점차 우측통행 규칙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모의실험에선 규칙이 언제나 원활한 소통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컨대 모든 사람이 우측통행 규칙만을 따르는 상황에서는 서로 자기 길을 찾다 보면 오히려 길 한복판에선 체증이 쉽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규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생기면 꽉 막혀 있던 체증을 흐트러뜨려 결과적으론 규칙이 자리잡는 일을 돕는 것처럼 나타났다.
이 논문은 미국 < 에이비시 > (ABC) 방송 뉴스에서도 흥미로운 연구 결과로 소개됐다. 백 박사는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무질서가 언제나 평탄하게 질서로 바뀌는 게 아니며 규칙 없는 상태가 어떤 조건에선 오히려 더 나은 흐름을 일으킬 수도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며 "워낙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기존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 것 같다"고 말했다.
김범준 교수는 "사람 개인의 규칙은 단순해도 무수한 사람들이 모인 전체 상황은 매우 복잡함을 보여준 연구 결과"라며 "인간사회에서도 한 가지 생각이 절대 우세를 차지하지 않고 여러 다른 생각들이 공존해야 소통이 건강해진다는 인문사회 분야의 견해와도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말했다.
사람이 생각하는 질서나 합리성이 늘 효율적이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다른 컴퓨터 모의실험도 지난해 국내에서 발표된 적이 있다. 정하웅 카이스트 물리학 교수 연구팀은 "모든 운전자들이 빠른 길만 찾는 '자기 중심의 합리적 선택'을 한다고 전제해 모의실험을 해보니, 운전자들의 협조가 이뤄질 때에 비해 도로망의 비효율(운행시간)이 25~30%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연구팀이 수행한 모의실험에선, 일부 도로를 폐쇄하면 교통체증이 오히려 줄어드는 '상식의 역전' 효과가 나타났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 피지컬 리뷰 레터 > 에 발표된 바 있다.
정하웅 교수는 "컴퓨터 모의실험이 실제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선 직접 실험하기 힘든 상황을 쉽게 여러 조건을 달아 해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며 "어떤 조건에서 어떤 패턴을 만들어내는지 간단하고 단순화한 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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