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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호건 주지사, 내가 한국에서 진단키트 50만개를 구입한 이유

심각한 상황에서도 대책 없는 트럼프의 호언장담에 실망
 
뉴스프로 | 2020-07-20 10:45:5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WP 호건 주지사, 내가 한국에서 진단키트 50만개를 구입한 이유
– 심각한 상황에서도 대책 없는 트럼프의 호언장담에 실망
– ‘한국의 사위’ 문대통령의 스스럼없는 호칭, 큰 의미 돼
– 트럼프의 한국 비판 발언, 방위비 협상 불만 표현한 가십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6일 매릴랜드 주지사 호건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Fighting alone (외로운 싸움)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 딸린 I’m a GOP governor. Why didn’t Trump help my state with coronavirus testing? (나는 공화당 소속 주지사다. 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와 관련하여 우리 주를 돕지 않았을까?)라는 부제는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의문과 비난으로 가득하다.

먼저, 기사는 호건 주지사의 말을 빌어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과소 평가하고 검사전략과 물자 조달을 각 주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떠맡겼으며 원하는 사람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지사들이 검사를 간절히 요청하는 상태에서도 각 주에서 해결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매사추세츠의 경우 주에서 구입한 마스크 300만개를 연방정부에 압수당한 상태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에, 호건 주지사는 점점 심각해져 가는 매릴랜드의 코로나 사태를 트럼프의 미온적인 대처에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한국인 아내의 힘을 빌어 문대통령에 도움을 요청해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를 위한 긴밀한 협조와 50만 개의 진단키트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기사에 의하면, 트럼프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언급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주지사들은 연례회의를 위해 워싱턴에 모였고 이 때 각 부문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코로나가 얼마나 심각한 질병인지에 대해 충격적인 의견을 들었으며, 공화당 소속의 주지사들은 따로 트럼프를 초청해 사적인 만찬을 가졌다는 것이다. 기사는, 이 자리에서 트럼프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자신의 친구인 일본의 신조 총리와 골프를 친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북한의 독재자인 김정은과 얼마나 잘 지냈는지에 관해 언급하면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상대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인들은 “끔찍한 사람들”이라며 왜 미국이 지금까지 한국을 보호해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한국은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라고 불평했다. ‘ 고 언급하고 있다.

이후, 기사는 이수혁 주미대사가 주최하고 모든 주지사와 배우자들이 참석한 리셉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한미간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감사함을 전하고 특히 미국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매릴랜드 주지사 부인에게 자랑스러움을 표했으며, 호건 주지사를 한국의 사위라 칭했다면서 이런 따스한 말이 매릴랜드와 한국 간의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전조가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후 매릴랜드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주정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진단검사를 누구나 받을 수 있다”는 거짓말은 계속되었으며 지난 정부에 대한 비난 등 으로만 대응했다고 말하고 있다. 호건 주지사는 스스로 국립보건원에 공동 검사 실시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알고 한국인 아내의 도움을 빌어 한국에 진단키트 구입을 의뢰해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호건 주지사는 기고문에서 ‘대통령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절망적이었다. 주지사들은 알아서 하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 양자택일의 문제였다. 내가 극적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매릴랜드는 충분한 검사량에 근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 라는 말로 미국 연방정부와 트럼프 대통령의 미흡한 조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항구적 우정작전이라고 명명된 프로젝트에서, 호건은 문재인 대통령의 팀이 얼마나 신속하고 긴밀하게, 또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해 주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 기사는 ‘ 트럼프 대통령은 “매릴랜드 주지사는 검사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불평하며 “매릴랜드 주지사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전화할 수도 있었고, 상당한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나는 주지사가 한국까지 갈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주지사가 약간의 지식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라고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브리핑의 상당 부분을 호건을 비난하고 주정부가 한 일을 무시하는 데 썼다고 비판했다. (글, 박수희)

다음은 뉴스프로가 래리 호건 매릴랜드 주지사가 기고한 워싱턴포스트 기사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번역: 이소민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wapo.st/30pUImL

Fighting alone
외로운 싸움

I’m a GOP governor. Why didn’t Trump help my state with coronavirus testing?

나는 공화당 소속 주지사다. 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와 관련하여 우리 주를 돕지 않았을까?  

Maryland Gov. Larry Hogan (R) says that President Trump played down the severity of the coronavirus outbreak, leaving states to come up with their own testing strategies and supplies. (Gabriella Demczuk for The Washington Post)
래리 호건 매릴랜드 주지사(공화당)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여 각 주들에 검사 전략 수립과 물자 조달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떠맡겼다고 말한다.

By Larry Hogan

JULY 16, 20

My wife, Yumi, and I stood on the tarmac, waiting in cloth masks, on the morning of April 18. Finally, a Boeing 777 landed and taxied to the far corner of Baltimore-Washington International Marshall Airport. It was the first Korean Air flight ever to land at BWI, but it didn’t have a single passenger aboard. The crew of five had flown 14 hours, straight from Seoul.

4월 18일 아침, 나의 아내 유미와 나는 천마스크를 착용하고 공항 한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보잉 777기가 볼티모어 워싱턴 국제 마셜 공항(BWI)에 착륙한 후 제일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 비행기는 BWI 공항에 착륙한 최초의 대한항공 소속 항공기였지만 탑승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5명의 승무원 만이 서울에서 14시간 동안 직항으로 비행했다.

“Congratulations, honey,” I told Yumi as the pilot turned off the engines. “You helped save a lot of lives.”

파일럿이 엔진을 끄자 나는 아내 유미에게 “축하해요, 여보. 당신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왔어요”라고 말했다.

The plane was filled with 500,000 test kits for my state, where the coronavirus had already infected 12,308 Marylanders and killed 463 of them. The numbers were still climbing, and we would never be able to contain them without mass testing. “Anybody that wants a test can get a test,” President Trump had declared the previous month. In reality, only 2,252 Americans had been tested at that point in March. Across the country, my fellow governors were desperately pleading for help on testing. But in early April, Trump said it was the states’ job.

비행기에는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 12,308명의 주민이 감염되고 그 중 463명이 사망한 우리 주에서 사용할 50만 개의 검사 키트가 실려 있었다. 감염자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었고, 대대적인 검사 없이는 결코 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달 앞서 “검사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라고 선언했었다. 실제로는 3월 당시 단 2,252명만이 검사를 받았었다. 미국 전역에 걸쳐 나의 동료 주지사들은 바이러스 검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4월 초, 트럼프 대통령은 이는 각 주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Yumi was born and raised in South Korea, a country that had, by then, erected a well-coordinated testing regime. So, with nowhere else to turn, Yumi and I asked President Moon Jae-in for help. He arranged the sale of a half-million test kits from LabGenomics, one of the world’s leading medical testing firms, for $9 million. It was a bargain considering the $2.8 billion in revenue we projected the pandemic would cost Maryland.

나의 아내 유미는 당시 이미 체계적인 검사를 시행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렇기에 달리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던 유미와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의료 검사기 제조 업체인 랩지노믹스로부터 50만 개의 검사 키트를 900만 달러에 살 수 있도록 조율해 주었다.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인해 매릴랜드 주가 입을 피해규모 추정치가 28억 달러에 달한 것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금액이었다.

Now the kits had arrived. The crew members came down together, walked over and stopped six feet away. Yumi bowed, and the crew bowed in return. Following their lead, so did I. Then a caravan of Maryland National Guard trucks escorted by the Maryland State Police drove the tests from the airport to a refrigerated, secure warehouse at an undisclosed location. The federal government had recently seized 3 million N95 masks purchased by Massachusetts Gov. Charlie Baker. We weren’t going to let Washington stop us from helping Marylanders.

이제 그 검사 키트가 도착했던 것이다. 승무원들은 비행기에서 내려 우리쪽으로 걸어와 6피트 거리에 섰다. 유미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자 승무원들도 답례로 고개를 숙였다. 나도 그들을 따라 인사를 했다. 매릴랜드 주 방위군 트럭이 매릴랜드 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와 공개되지 않은 모처에 위치한 냉장설비를 갖춘 보안 창고로 검사기를 운반했다. 연방정부는 최근 찰리 베이커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구입한 N95 마스크 300만 개를 압수한 바 있었다. 우리는 매릴랜드 주민을 위하는 일에 워싱턴의 연방정부가 끼어들어 방해하도록 가만두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This should not have been necessary. I’d watched as the president downplayed the outbreak’s severity and as the White House failed to issue public warnings, draw up a 50-state strategy, or dispatch medical gear or lifesaving ventilators from the national stockpile to American hospitals. Eventually, it was clear that waiting around for the president to run the nation’s response was hopeless; if we delayed any longer, we’d be condemning more of our citizens to suffering and death. So every governor went their own way, which is how the United States ended up with such a patchwork response. I did the best I could for Maryland. Here’s what we saw and heard from Washington along the way.

이러한 일은 필요하지 않았어야 한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러스 발병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면서, 백악관이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고취하거나, 50개 주의 전략을 수립하거나 국가 비축물로 있던 의료장비나 인공호흡기를 미국의 병원으로 보급하는 것에 실패하는 것을 보았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적인 대응을 실행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헛된 일이었다는 것이 명백했다.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지체했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고통 받고 사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주지사들이 각자 방법을 모색했고, 그리하여 결국 미국은 일관성 없이 주마다 각각의 다른 대응을 하게 되었다. 나는 매릴랜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워싱턴에서 보고 들은 것은 다음과 같다.

President Trump is joined by Vice President Pence, Health and Human Services Secretary Alex Azar and members of the coronavirus task force for a briefing at the White House on Feb. 26. Early in the pandemic, Trump assured that the United States had the outbreak under control. (Jabin Botsford/The Washington Post)
트럼프 대통령이 2월 26일 백악관에서 펜스 부통령과 알렉스 아자르 보건복지부 장관, 코로나바이러스 태스크포스(TF) 위원들과 함께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바이러스 대유행 초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발병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장담했다.

Trump’s first public utterance about the coronavirus set the tone for everything that followed. He was in Davos, Switzerland, on Jan. 22, after the first American diagnosis. “Are there worries about a pandemic at this point?” asked CNBC anchor Joe Kernen.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 최초의 공개적인 발언은 그 뒤를 따라 일어난 모든 일의 방향을 설정해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직후인 1월 22일 스위스 다보스에 있었다. CNBC의 조케르넨 앵커가 “현 시점에서 대유행 우려가 있는지” 질문했다.

“We have it totally under control,” Trump responded unhesitatingly. “It’s one person coming in from China, and we have it under control. It’s going to be just fine.” And off the president went for the next eight weeks. The rest of January and February were peppered with cheerful or sarcastic comments and tweets, minimizing the outbreak’s severity and the need for Americans to do much of anything.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라고 주저 없이 대답하며, “중국에서 입국한 한 사람일 뿐이며 우리는 이를 통제하고 있다.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후 8주간 손을 뗐다. 그 이후 남은 1월과 2월에는 바이러스 발병의 심각성과 미국인들이 무엇이든 해야 하는 필요성을 최소화시키며, 쾌활하거나 빈정거리는 발언과 트윗이 쏟아졌다.

Only days after his first dismissal, we got our first scare in Maryland. A traveler who’d been in China landed at BWI with sniffles, coughs and lung distress. The passenger tested negative, but we were already making decisions in the governor’s office about how we should react when the first positive cases arrived. “It won’t be long,” I assured our team.

트럼프 대통령이 첫 일축을 한지 불과 며칠 후, 매릴랜드에서 처음으로 공포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을 방문한 이력이 있는 여행자가 BWI 공항에 도착했는데, 콧물, 기침, 폐질환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해당 승객은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주지사실에서 이미 우리는 첫 번째 양성 환자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얼마 걸리지 않아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우리 팀에 말했다.

So many nationwide actions could have been taken in those early days but weren’t. While other countries were racing ahead with well-coordinated testing regimes, the Trump administration bungled the effort. The test used by the federal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early on was fraught with inaccuracies, and onerous regulations hindered the nation’s private labs. The resulting disorganization would delay mass testing for almost two months and leave the nation largely in the dark as the epidemic spread.

초창기에 전국적으로 많은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이 잘 조직된 검사 체계로 앞서 나가는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그런 노력을 망쳤다. 초기에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사용한 검사기는 부정확성으로 문제가 되었고 부담스러운 규제 때문에 전국의 사설 실험실은 행동하지 못했다. 이렇게 초래된 혼란은 대대적인 검사를 거의 두 달간 지연시키고 전염병이 확산됨에 따라 미국을 암흑으로 빠뜨릴 것이었다.

Meanwhile, instead of listening to his own public health experts, the president was talking and tweeting like a man more concerned about boosting the stock market or his reelection plans.

한편, 자신의 공중 보건 자문가들의 조언을 듣는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주식 시장의 부양이나 자신의 재선 계획을 더욱 염려하는 듯 말하거나 트윗을 날리고 있었다.

America’s governors took a different approach. In early February, we descended on Washington for the annual winter meeting of the National Governors Association. As chairman, I had worked closely with the staff for months assembling the agenda, including a private, governors-only briefing at our hotel, the Marriott Marquis, to address the growing viral threat. We brought in Anthony Fauci, the director of the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s, who was already widely admired but whose awesome knowledge and straight-talking style hadn’t yet made him a national rock star; CDC head Robert Redfield; Ken Cuccinelli, the acting deputy secretary of homeland security; Jay Butler, the CDC’s deputy director for infectious diseases; and Robert Kadlec, assistant secretary for preparedness and response at the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미국 주지사들은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2월 초, 우리는 주지사협회의 연례적인 겨울 회의를 위해 워싱턴에 모였다. 나는 의장으로서 점점 커져가는 바이러스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가 묵었던 매리어트 마키스 호텔에서 주지사들만을 위한 비공개 브리핑을 비롯하여 회의 안건을 취합하는 등 직원들과 몇 달간 긴밀히 협력했다. 우리는 이미 널리 존경받고 있지만 엄청난 지식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아직 전국적인 스타가 되지 못한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 로버트 레드필드 질병통제예방센터 국장, 켄 쿠치넬리 국토안보부 차관 대행, 제이 버틀러 질병통제예방센터 전염병 부국장, 로버트 카들렉 보건복지부 준비 및 대응 차관보를 불러들였다.

They hit us with detailed presentations and the unfiltered truth, as well as it was known then. I remember hearing many dire claims: “This could be catastrophic. . . . The death toll could be significant. . . . Much more contagious than SARS. . . . Testing will be crucial. . . . You have to follow the science — that’s where the answers lie.”

그들은 자세한 프리젠테이션과 당시 알려진 만큼의 여과 없는 진실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나는 비관적인 의견을 많이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것은 재앙이 될 수 있으며…. 사망자 수가 상당히 많을 것이며…. 사스보다 전염성이 훨씬 강하며…. 검사가 아주 중요할 것이며…. 과학을 따라야 한다-그곳에 답이 있으니.”

It was jarring, the huge contrast between the experts’ warnings and the president’s public dismissals. Weren’t these the people the White House was consulting about the virus? What made the briefing even more chilling was its clear, factual tone. It was a harrowing warning of an imminent national threat, and we took it seriously — at least most of us did. It was enough to convince almost all the governors that this epidemic was going to be worse than most people realized.

전문가들의 경고와 대중을 향한 대통령의 일축은 충격적으로 큰 대조를 보였다. 이 사람들은 백악관이 바이러스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명확하고 사실적인 어조는 브리핑을 더욱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임박한 국가적인 위협에 대한 끔찍한 경고였으며 우리는, 혹은 적어도 우리 중 대부분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 전염병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는 점을 거의 모든 주지사들에게 납득시키기에 이는 충분했다.

During the retreat in D.C., the Republican Governors Association sponsored a private dinner with the president. Backstage beforehand, I said hello to him. We took a photo together. He was perfectly cordial, even though we’d criticized each other in the past. Then he came out and gave one of his unscripted rally speeches that seemed to go on at least an hour too long. I don’t remember him mentioning the virus, but he talked about how much he respected President Xi Jinping of China; how much he liked playing golf with his buddy “Shinzo,” Prime Minister Abe of Japan; how well he got along with North Korean dictator Kim Jong Un.

워싱턴에서 머무는 동안 공화당 소속 주지사 협회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사적인 만찬을 주최했다. 사전에 단상 뒤에서 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과거에 서로를 비난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친절했다. 그리고 그는 나와서 원고 없이 연설을 했는데 적어도 한 시간은 되는 듯 너무 길었다. 대통령이 바이러스를 언급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자신의 친구인 일본의 “신조” 총리와 골프를 친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북한의 독재자인 김정은과 얼마나 잘 지냈는지에 관해 언급했다.

Then, the jarring part: Trump said he really didn’t like dealing with President Moon from South Korea. The South Koreans were “terrible people,” he said, and he didn’t know why the United States had been protecting them all these years. “They don’t pay us,” Trump complained.

그런 다음 불쾌한 부분이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상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인들은 “끔찍한 사람들”이라며 왜 미국이 지금까지 한국을 보호해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한국은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라고 불평했다.

Yumi was sitting there as the president hurled insults at her birthplace. I could tell she was hurt and upset. I know she wanted to walk out. But she sat there politely and silently.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모국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는 동안 유미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유미는 속상하고 화가 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나가고 싶었을 것이지만 예의바르고 조용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If I didn’t do something dramatic, we simply would not come close to having enough tests in Maryland,” Hogan writes. (Gabriella Demczuk for The Washington Post)
호건 주지사는 “만약 내가 극적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매릴랜드는 충분한 검사량에 근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The next night, Saturday, Lee Soo-hyuck, the South Korean ambassador to the United States, hosted a reception at his official residence for all the governors and their spouses. Yumi had worked with the ambassador to plan the event. Moon delivered a video message, welcoming the governors and thanking them for Korea’s very special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다음날인 토요일 밤,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는 모든 주지사와 배우자들을 위해 관저에서 리셉션을 열었다. 유미는 그 행사를 기획하기 위해 이 대사와 함께 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 통해 주지사들을 환영하고 한미 간 특별한 관계에 대하여 감사함을 전했다.

Speaking in Korean with English subtitles, he said how proud he was of Yumi as the first Korean American first lady in the United States. Then he referred to me as the son-in-law of the Korean people. It meant a lot to us to hear him say that, though it would take a couple of months before we would learn just how much his warmth would truly mean to the people of my state.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어를 하는 동안 영어 자막이 달렸고, 대통령은 미국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주지사 부인인 유미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말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나를 한국의 사위라고 칭했다. 비록 대통령의 온정이 우리 주의 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깨닫게 되기까지 몇 달이 더 걸릴 테지만, 대통령이 그렇게 말한 것을 듣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큰 의미였다,

In the days and weeks that followed, as the coronavirus hit Maryland, we worked frantically, issuing executive orders, holding news conferences, calling other governors and federal infectious-disease experts, talking to local officeholders, strategizing with my senior staff — and constantly sanitizing our hands.

코로나바이러스가 매릴랜드 주에 발생하며 그로부터 몇 주 동안 우리는 행정명령을 내리고,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다른 주지사들 및 전염병 전문가들과 연락하고, 지방 공무원들과 대화하고, 우리 주 고위직 직원들과 전략을 세우는 등 꾸준히 손을 씻어가며 미친 듯이 일했다.

But the president was all over the place. He avowed, falsely, that “anybody” could get a test, even as my fellow governors were desperately pleading for help on testing. Then he shifted from boasting to blame. “We inherited a very obsolete system” from the Obama administration, he claimed, conveniently ignoring the fact that his own CDC had designed the troubled U.S. testing system and that his own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had waited a full month before allowing U.S. hospital labs to develop their own tests.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두서가 없었다. 나의 동료 주지사들이 검사를 위해 간절히 도움을 요청할 때 조차 대통령은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거짓을 공공연히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과시에서 비난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한물 간 시스템을 물려받았다”라고 주장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문제가 많은 미국의 검사 시스템을 설계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식품의약청이 미국 병원 실험실의 자체 검사기 개발을 허가하기까지 꼬박 한 달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무시해버렸다.

On March 25, the president was back to bragging again. “We now are doing more testing than anybody by far,” including South Korea, whose widespread testing program was being praised around the world. This was true in absolute numbers, since we are a much bigger country, but we’d tested far fewer per capita than the Koreans had — 1,048 tests per million people vs. South Korea’s 6,764 per million — and of course that was the only figure that mattered. During one White House briefing in late March, Trump said the issue had been dealt with. “I haven’t heard about testing for weeks,” the president insisted.

3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다시 자랑하는 것으로 돌아와서 광범위한 검사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로부터 칭찬을 받던 한국을 포함해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가 더 많이 검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훨씬 더 큰 나라인 까닭에 이것은 절대적인 수치로는 사실이지만, 1인당 검사 수를 비교하면 – 우리는 100만 명당 1,048회, 한국은 100만 명당 6,764회로 – 우리가 훨씬 더 적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것이 유일하게 중요한 수치였다. 3월 말 백악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며 “나는 몇 주 동안 검사에 관해 들은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Really?
정말일까?

As Trump was making these comments, I was requesting his approval to conduct joint testing at th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I even called Francis Collins, the head of NIH, to make this request, but he stopped me before I could. Not to argue but to plead: “Actually, Governor,” he said, “I’m glad you called, because I was going to ask you for help.” At NIH headquarters, he explained, his people had the capacity to perform only 72 tests a day. “I don’t even have enough tests for my immune-compromised patients or for my staff,” he said. He wondered if I might prevail upon Johns Hopkins, whose Suburban Hospital is across the street from NIH, to do some testing for him.

트럼프 대통령을 이런 발언을 하는 동안 나는 대통령이 국립 보건원과의 공동 검사 실시에 대해 승인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요청을 하기 위해 프란시스 콜린스 국립 보건원 원장에게 연락하기도 했지만, 내가 말하기도 전에 원장이 나를 제지했다. 논쟁이 아니라 부탁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주지사님,” 원장은 “전화 주셔서 감사하다, 왜냐하면 제가 도움을 요청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원장은 국립 보건원 본부에서 하루에 수행할 수 있는 검사가 72건 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면역결핍 환자나 보건원 직원을 검사하기 위한 검사기조차 충분히 보유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원장은 내가 국립 보건원의 길 건너편에 분원을 가지고 있는 존스 홉킨스를 설득하여 국립 보건원 측의 일부 검사를 해줄 수 있을지 알고자 했다.

Hogan is joined by his wife, Yumi Hogan, in Annapolis on April 20 to announce the state’s purchase of 500,000 coronavirus tests from South Korea. The first lady, a Korean American, played a pivotal part in securing the deal. (Michael Robinson Chavez/The Washington Post)
호건 주지사는 부인 유미 호건이 함께 하는 가운데 4월 20일 안나폴리스에서 한국의 코로나바이러스 검사기 50만개를 구입한 사실을 발표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주지사 부인은 이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It was hopeless, waiting around for him. Governors were being told that we were on our own. It was sink or swim. And if I didn’t do something dramatic, we simply would not come close to having enough tests in Maryland.

대통령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절망적이었다. 주지사들은 알아서 하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 양자택일의 문제였다. 내가 극적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매릴랜드는 충분한 검사량에 근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Luckily, I had a special ally on my side: Yumi Hogan.

다행히도 내 편에 유미 호건이라는 특별한 동맹이 있었다.

We’d all seen how South Korea, hard hit at first by the virus, conquered its outbreak with a swift program of social distancing, testing and contact tracing. Yumi was almost a celebrity in her home country. (I remembered the cheering people waiting on the sidewalk once outside our hotel in Seoul: “First lady! First lady!”) And hadn’t Moon recently called me a Korean son-in-law? Maybe the Koreans would be willing to help.

우리는 모두 애초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심하게 타격을 입었던 한국이 어떻게 사회적 거리두기, 검사, 접촉자 추적 등 신속한 프로그램으로 발병을 극복했는지 봤다. 유미는 조국에서 거의 유명인사였다.(나는 서울에서 우리가 머물던 호텔 밖 인도에서 “주지사 부인!”을 환호하며 기다리던 사람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에 나를 한국의 사위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아마도 한국인들은 우리를 도와주려 할 것이다.

On Saturday, March 28, I asked Yumi to join me on a call with Ambassador Lee. We spoke about the special relationship between Maryland and Korea, and Yumi made a personal plea in Korean, asking for the nation’s help.

3월 28일 토요일, 나는 유미에게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와의 통화를 함께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한국과 매릴랜드 사이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고, 유미는 한국의 도움을 요청하며 한국어로 개인적인 간청을 했다.

That request set in motion what we called Operation Enduring Friendship, 22 days of vetting, testing and negotiating an unprecedented set of protocols. Our scientists and doctors spoke to their scientists and doctors. Eight Maryland government agencies got involved, as did their counterparts in Korea. It took dozens and dozens of phone calls, night after night — sometimes it seemed like all night — working through language barriers and a 13-hour time difference.

그 요청은 항구적 우정 작전(Operation Enduring Friendship)으로 불리며 추진되었고, 22일간 전례 없는 프로토콜을 조사하고, 검사하고, 협상했다. 우리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한국의 과학자들과 의사들과 대화했다. 8개의 매릴랜드 주정부 기관이 개입했고, 한국의 상응하는 기관도 개입됐다. 언어 장벽과 13시간이라는 시차를 두고 일하며 수십 통의 전화 통화를 밤마다 했다- 때로는 밤새도록 한 듯하다.

Moon’s team helped to cut through miles of bureaucratic red tape and connected us directly with executives at LabGenomics, a molecular diagnostics company. We explained what we were trying to achieve in Maryland and how desperate our need was. The LabGenomics people seemed to understand.

문재인 대통령의 팀은 관료적인 갖가지 절차를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우리를 분자 진단 기업인 랩지노믹스의 경영진과 직접 연결시켜주었다. 우리는 매릴랜드에서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과 우리의 필요성이 얼마나 절실한지에 대해 설명했다. 랩지노믹스의 경영진이 우리를 이해하는 듯 보였다.

The scramble eventually culminated in the arrival of those half-million tests. I could finally breathe a sigh of relief: We had the tools at least to learn the scope of the outbreak.

이 쟁탈전은 결국 그 50만 개의 진단기가 도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나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우리는 적어도 발병 범위를 알아낼 수 있는 도구를 가졌다.

I thought we might get a congratulatory word from the president. Trump always had a taste for bold gestures — but, apparently, only for bold gestures he could claim. The president spent much of the following Monday’s White House briefing criticizing me and dismissing what we had done. “The governor from Maryland didn’t really understand” about testing, Trump grumbled. “The governor of Maryland could’ve called Mike Pence, could’ve saved a lot of money. . . . I don’t think he needed to go to South Korea. I think he needed to get a little knowledge.”

나는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대담한 행동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명백히 본인이 취한 대담한 행동만 좋아했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월요일 백악관 브리핑의 상당 부분을 나를 비난하고 우리가 한 일을 무시하는 데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릴랜드 주지사는 검사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불평하며 “매릴랜드 주지사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전화할 수도 있었고, 상당한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나는 주지사가 한국까지 갈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주지사가 약간의 지식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The president’s comments that day seemed to confuse test kits with testing labs, but whatever. It was a great day for Maryland.

그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검사키트와 검사실을 혼동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어쨌든 매릴랜드에게는 멋진 날이었다.

Pence called me a few days later. We had a friendly and productive conversation on a range of topics related to Maryland and the National Governors Association. At the end of the call, I jokingly said: “By the way, the president said that instead of working with South Korea, I should have just called you to get tests. If I had known it was that easy, I could have saved a heck of a lot of effort!” He chuckled, but there wasn’t much else to say.

며칠 후 펜스 부통령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매릴랜드와 전국 주지사 협회와 관련하여 다양한 주제에 대해 친근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통화 마지막에 내가 농담조로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함께 일하는 대신에 부통령께 전화해서 검사기를 받았어야 했다고 말하셨는데, 그렇게 쉬울 줄 제가 알았더라면 엄청난 노력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자 그는 웃었지만 별 달리 할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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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주가 급락’한 틈 타 증여 나선 재벌가들

CJ·LS·GS 그룹 등 코로나19 사태에 가족·친인척 등에 주식 증여

윤정헌 기자 yjh@vop.co.kr
발행 2020-07-20 19:49:46
수정 2020-07-20 19: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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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 본사 자료사진
CJ그룹 본사 자료사진ⓒ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식 시장이 급락하자, 이 시기를 틈타 일부 재벌가들이 주식 증여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주가 하락을 이용해 절세 효과를 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증여 주식에 붙는 세액은 증여일 기준 전후 2개월간 종가 평균액을 토대로 산정된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이뤄졌던 두 자녀에 대한 주식 증여를 취소하고 올해 4월 재증여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딸 이경후 CJ ENM 상무와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에게 각각 CJ 우선주 92만주씩 총 184만여주를 증여한 바 있다. 당시 증여 시점 전후 2개월 동안 평균 주가는 6만5962원으로 총 증여액은 1,214억원 규모다. 이에 따른 증여세도 약 724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올해 3월 30일 증여를 취소하고, 4월 1일 재증여했다. 재증여 주식수는 기존과 동일했다. 증여 시점만 작년 12월에서 올해 4월로 바뀐 셈이다. 다만 5월 말까지의 평균 주가가 5만5555원인 점을 고려하면 증여세 규모는 609억원으로 당초(약 724억원)보다 증여세를 115억원 절감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증여세 과세표준 신고기한은 증여가 발생한 월의 마지막 날로부터 3개월로 이 기간 당사자간 합의에 따라 증여 취소가 가능하다.

CJ그룹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 19 사태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부득이 이같이 결정했다”면서 “4월 주가 수준으로는 증여하는 주식의 전체 가격과 세금이 비슷해 증여의 의미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LS그룹 사옥
LS그룹 사옥ⓒLS그룹 제공

LS그룹 총수 일가도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급락한 상황에서 가족과 친인척 등에게 주식을 대거 증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자열 LS그룹 회장과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은 LS엠트론 회장,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 구근희 씨 등은 지난 5월 이후 자녀와 친인척 등에게 LS 주식 총 95만9천주를 증여했다.

증여는 지난 5월 11일과 12일 집중해서 이뤄졌다. LS 주가는 11일 3만5천900원, 12일 3만4천900원으로 코로나19 여파가 있기 전인 지난해 말 대비(4만7천800원) 25%가량 하락했다.

구자열 회장은 두 딸에게 10만주씩, 구자홍 회장은 두 명의 조카에게 6만주씩 증여했다. 구자엽 회장은 아들과 친인척 등에게 12만7천주를, 구자은 회장은 두 자녀에게 10만주씩을, 구자균 회장은 두 자녀에게 5만주씩을 각각 넘겨줬다. 총 335억원대의 증여가 이뤄진 셈이다.

GS그룹 총수 일가도 비슷한 시기 가족들에게 주식을 증여한 바 있다. 지난 4월 28일 허연수 GS리테일 대표이사 부회장은 아들에게 19만2,000주를, 5월 12일에는 허 부회장 누나인 허연호씨가 아들에게 8만28주를 넘겼다. 작년 말 5만원대를 웃돌던 GS의 주가는 코로나 이후 20% 이상 내린 상태다.

또한 허영인 SPC 삼립 회장도 지난 4월 장남에게 주식을 증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 회장은 지난 4월 8일 SPC삼립 보통주 40만주를 장남인 허진수 부사장에게 증여했다.

당시 SPC삼립의 주가는 6만6,300원으로 코로나19 발생 전인 지난해 말(8만7,200원) 대비 23.9%나 급락한 상태였다.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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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국회 통째로 세종시 내려가야" 행정수도 개헌 필요성 시사

김태년 "국회 통째로 세종시 내려가야" 행정수도 개헌 필요성 시사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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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56)가 20일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며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행정수도 완성을 제안했다. 김 원내대표는 ‘개헌’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국회 이전을 고리로 사실상 개헌 이슈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세종시로) 이전해야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은 일자리와 주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지방소멸은 대한민국 전체의 성장과 발전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그동안 공공기관을 대거 지방으로 이전하며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충분치 않았다”며 “행정수도 완성이 지체되면서 효과는 반감됐다”고 밝혔다. 그는 “공공기관 이전에 따라 수도권 집중이 8년 가량 늦춰진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시 한 번 균형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행정수도 완성의 명분을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부동산 문제 해결에서 찾았다. 그는 “(행정수도를 완성하면)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며 “행정수도 완성은 국토균형발전과 지역 혁신성장을 위한 대전제이자 필수 전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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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내대표는 “서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제도시·세계도시로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국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01040001&code=910100#csidx087f233937e5eeaabdc4b9164f00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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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외교안보팀이 해야 할 일, 한미 훈련 중단

[황재옥의 '한반도 톡'] 남북대화, 북미대화 살리기 위해 결단해야

우리의 차후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것은 대북 전단 살포 문제와 한미연합훈련 중단 여부에 따라 향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북의 태도가 결정될 것이라는 일종의 예고이다. 우리의 태도가 결정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메시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말을 끌고 갈 외교 안보라인을 대폭(국가안보실장,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교체했다. 이는 임기 말까지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해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새롭게 교체된 외교안보라인에 기대를 나타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북한도 남북대화나 북미대화의 문이 아주 닫혀버리는 것을 원치 않아 보인다.

 

북한이 문제 삼은 대북 전단 문제는 일단 지난 17일 전단 살포 단체의 법인 설립이 취소됐고, 대북 전단 살포를 강력 규제할 관련 법제정 절차는 진행 중이다. 그러나 북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통상적으로 매년 8월 중하순에 실시했던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해서는 아직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

 

새로 지명된 통일부장관과 국정원장 내정자는 청문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7월 하순에나 취임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바꿔 말해, 새로 취임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정경두 국방장관의 결단으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동안 남북관계는 후퇴할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취임을 해도 이인영 통일부장관이나 박지원 국정원장이 한반도 평화·번영을 향한 문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한편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1일 한미연합방위 태세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올해도 대규모 연합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같은 주장 외에도 전작권 환수, 한미동맹 강화 이유로 한미 연합 훈련을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판문점 선언이나 평양공동선언 남북군사분야합의서에 상대방에 위협적인 군사훈련을 안 하기로 한 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것 같다.

 

사실, 매년 8월에 실시됐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등 한미 연합 훈련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부터 축소되거나 중단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하겠다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약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올 2월에 예정됐던 한미 연합 기동 훈련은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됐다.

 

이렇게 한미 양국 정부의 정무적 판단으로 중단할 수도 있고, 축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는 것이 한미 연합 훈련이다. 그렇다면 새 외교안보팀은 청문회가 끝나기 전이라도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시키는 문제를 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는 새 외교안보팀의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미 연합 훈련은 중단돼야 한다. 15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망자는 58만 5619명, 확진자는 1366만 2667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중 미국이 사망자 수 압도적 세계 1위로, 2위인 브라질의 7만 5366명보다 두 배 많고, 전 세계 사망자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부에 따르면 이달 9∼15일 미국에서 들어온 주한미군 장병 12명과 가족 2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현재 주한미군 관련 누적 확진자 수는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8월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은 코로나19 때문에라도 취소되어야 할 것이다.

 

마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지난 1일,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인도주의 휴전" 결의문을 15개 이사국 전원합의로 채택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안보리가 휴전 결의문을 낸 것은 다행이다. 코로나19가 극복될 때까지 온 인류는 총을 내려놓고 공동의 적인 코로나19와 전투에 임해야 한다.

 

한미 연합 훈련 몇 번 안 한다고 한미동맹이 약화되지 않을 것이고, 한미 연합 훈련 안 하면 전시작전지휘권 전환이 어렵다는 것도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을 다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테이블로 불러 낼 수 있다면, 올해 한미 연합 훈련은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노력해 왔던 성과가 후퇴하지 않게 새 외교안보팀은 결단해야 한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200934204406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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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놓고 욕해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7/20 10:39
  • 수정일
    2020/07/20 10:3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너는 박원순 욕할 자신 있느냐
 
이기명  | 등록:2020-07-20 08:44:32 | 최종:2020-07-20 09:04: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마음 놓고 욕해라.
-너는 박원순 욕할 자신 있느냐.

마음 놓고 욕해 보거라. 벼락 안친다.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가 있다고들 믿는가. 나도 그렇게 불러보자. ‘창조자’라고 하자.

창조자 님.

귀가 따가 우시죠. 뭐 이 따위 세상이 있느냐고 욕들을 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세상 만든 장본인들이기도 한 인간들이 그 소리를 합니다. 뻔뻔한 놈들입니다. 물론 저도 그 중에 한 놈입니다.

개판 세상.

개판입니다. 새삼스럽게 그 이유를 설명하면 저만 못난 놈이 됩니다. 내가 민주당을 지지하니 누가 민주당 욕을 하면 듣기 싫죠. 그러나 욕을 먹는 이유가 타당한데도 듣기 싫다고 하면 그건 나한테 문제가 있습니다. 욕먹을 이유가 있으면 개 소리 말고 받아 드려야 합니다. 다만 개들이 왜 우리만 욕을 하느냐고 물어뜯으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박원순이 자살을 하고 들것에 실려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저게 혹시 자신이 아닌가 착각을 했다면 양심적인 인간입니다. 나 자신을 비롯해서 수많은 인간들이 아니라고 할 놈이 있으면 손 들어 보라고 하세요. 놈들에겐 실려 내려 올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자학이 아닙니다. 고백입니다.

요즘처럼 남성들이 도덕군자로 살아야 하는 때가 없습니다. 길을 가면서 이쁜 여성을 보면 기분이 좋아서 한 번 볼 거 두 번 봅니다. 이제 이쁜 여성이 나타나면 미리 시선을 피하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만약에 제 시선과 눈이 마주친 여성이 왜 자꾸 쳐다 보느냐면서 성추행이라고 하면 어쩝니까. 아니라고 해도 자기가 그렇게 느꼈다면 복잡해집니다. 더구나 고소라도 하면 저 잘난 변호사 나부랭이들과 기레기들과 무슨 무슨 단체들이 벌떼처럼 덤빌 테니 무슨 재주로 버티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다음은 태어나자 바로 죽는 것이라는 끔찍한 말이 떠오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애가 태어날 때 응아 하고 웁니다. 고생문이 열렸다고 슬퍼서 운다고 하고 이제 캄캄한 뱃속에서 광명을 찾았다고 기뻐서 운다고 합니다. 편한대로 해석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어도 공과는 있다.

천하의 명성을 날린 큰 도둑놈이 마침내 잡혔다. 검사가 물었다. 세상을 위해서 공헌한 것 하나만 말 해 보라고. 도둑놈이 입을 연다.

‘도둑질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헌데 검사님은 어떤 공헌을 하셨습니까.’

아니 이 자식이 함부로 아가리를 놀려. 검사는 화가 났지만 입을 닫았다. 가만, 정말 내가 세상에 공헌할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말기로 했다. 그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지금 이 말은 검찰개혁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윤석열 한동훈 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 해 둔다. 괜히 시비 붙을까 겁이 난다.

▲(사진출처 -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SNS)

박원순이 세상을 떠났다. 사람마다 공과는 있기 마련인데 박원순의 공은 눈 씻고 봐야 겨우 몇 개. 내 눈이 인색한가. 반면에 그의 과(?)는 아아 끔찍하다. 박원순의 추행을 욕하는 자들에게 너는 어떠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까. 묻는 사람이 바보다. 참 대단한 놈들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래도 살아 있는 자들의 입이 있다. 살아 있는 인간의 눈도 있다. 눈과 입을 악세사리로 달고 다니는 인간도 있다.

민주당은 거울을 한번 보라.

이 놈 저 놈 가려서 뭣하랴. 다 똑같은 놈이다. 이 말은 국민들이 하는 소리지만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왜냐면 스스로 아는 자들이 너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에 흉터가 있다. 음주운전 하다가 벽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술을 못 끊다가 어떤 계기로 술을 끊고 지금은 거짓말 보태지 않고 한 방울도 입에 안 댄다. 술고래에 알콜 중독이면서도 과음을 욕하던 나의 위선은 지금 온갖 못된 정치 다 하면서 호박씨 까는 정치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180석을 가지고도 미통당에 질질 끌려 다니는 민주당을 보면서 당 대표를 비롯해서 원내 대표를 엄청 비난한다. 국민의 비난은 안 들리는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제대로 지킨 기억이 몇 번이나 되는가. 선거 때는 개똥이라도 먹을 것 같은 인간들이 당선되면 국민 알기를 개 똥 보듯 한다.

박원순을 비난하는 거 좋다. 자기를 존경하고 따르던 국민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트린 잘못을 어찌 면할 수 있으랴. 그는 스스로 삶을 청산함으로써 죄를 빌고 용서를 구했다. 그렇다고 끝날 수도 없다. 얼마나 잘나고 깨끗한 인간들이 많은 대한민국이냐. 뒷구멍으로는 별의 별짓을 다하는 인간들이 박원순 비난에 앞장 서는 꼴을 보면 도둑놈이 죄 없다고 설치는 걸 보는 것 같다. 그 어떤 변호사 놈 보는 거 같다.

대표적인 악덕 변호사로 국민이 알고 있는 인간이 설쳐대는 꼴이라니 벼락은 뒀다가 뭘 하려는지 의심이 든다.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밝혀질지 모르나 피해자라는 여성도 처음 성추행을 당했을 때 들고 일어났으면 오늘의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은 처음 붙었을 때 끄는 게 상책이다.

민주당이 절대 다수 석을 차지했을 때 기대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미통당 억지에 끌려 다니며 비실거리는 꼴을 보면 그 놈이 그 놈이라고 탄식하는 국민들 또한 얼마나 많았으랴. 미통당이 집권을 하면 세상이 어찌 될 것인지는 안다. 내가 점쟁이는 아니더라도 대충 알아 마친다.

거짓말 하는 놈에게 천벌을.

기왕에 말을 했으니 털어놓자. 인간에게 남성과 여성을 구별해 놓고 성욕이란 것을 빼 버렸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말 말거라. 성욕이란 것이 힘의 원천이란다. 성욕이 없으면 인간은 송장이란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눈살 찌푸리는 인간들이 보인다. 아이구 저기 여성의원님들과 무슨 전화 대표님들. 점잖은 체면에 입에 담기도 거북하신가.

그래도 인간에게 양심 쪼가리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개가 되는 것을 면하게 해 준 게 양심이다.

주둥이에서 단 냄새 나도록 떠들어라. 나는 가슴속에 양심밖에 없노라고 떠들어라. 아니 저기 저 양반. 왜 얼굴이 붉어지는가. 맞다. 그게 바로 양심의 색깔이다. 그럼 아가리 닥쳐라.

박원순이 잠시만 살아났으면 좋겠다. 모두 밝혔으면 좋겠다. 아아 박원순.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4996&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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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 결정한 비공개회의

[개벽예감 404]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 결정한 비공개회의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7/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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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날로 심각해지는 한반도 주변정세

2.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을 토의, 결정한 비공개회의

3.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

 

 

1. 날로 심각해지는 한반도 주변정세

 

2020년 6월 23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예비회의가 화상회의로 진행되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예비회의에서는 최근 조성된 정세가 평가되었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제출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이 보류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언론보도기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예비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조성된 최근 정세를 평가하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에 제기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하였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제출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승인되어야 하므로, 6월 23일에 화상회의로 진행된 예비회의에서 그 계획들이 보류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비회의에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하기로 결정하기 직전에 최근 조성된 정세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최근 정세에 대한 평가가 대남군사행동계획들에 대한 보류결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궁금증이 생긴다. 최근 조성된 정세가 얼마나 중대하고 심각하기에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할 만큼 중대하고 심각한 최근 정세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누구나 아는 것처럼, 최근 남북대화가 재개될 만한 정세가 조성되지 않았고, 조미협상이 재개될 만한 정세가 조성된 것도 아니다. 남북관계와 조미관계는 전혀 변화되지 않았고, 지난해부터 계속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명백하게도, 최근 한반도 정세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6월 23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는 최근 조성된 정세를 평가하고 대남군사행동계획을 보류했으니, 궁금증이 더욱 커질 만하다. 최근 한반도 정세에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지난 6월 23일 예비회의에서 최근 조성된 정세를 평가하고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한 것은, 그 예비회의에서 한반도 정세가 아니라 한반도 주변정세를 평가하고 보류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대남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할 만큼 한반도 주변에 조성된 심각하고 중대한 정세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누구나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날로 악화되어 이제는 무력충돌이 거론될 만큼 악화되어버린 중국과 미국의 관계다. 한반도 주변에 조성된 중미대립관계는 그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정세와 세계 정세를 변화시키는 중대한 요인이다. 요즈음 날로 악화되는 중미대립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지난 시기 무역부문, 금융부문, 기술공학부문 등에서 경쟁하거나 갈등하던 중미관계는, 홍콩 언론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2020년 5월 21일 보도에서 드러난 것처럼, 공식 외교통로가 완전히 차단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비공식 외교통로마저 단절된 적대적 대립관계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2019년 6월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게 적대감을 느끼지 않았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이 2020년 6월에 펴낸 회고록에 따르면, 중국 텐안먼사건 30주년을 맞았던 2019년 6월 4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공산당의 텐안먼사건 유혈진압을 비난하는 백악관 성명을 발표되지 않도록 막았으며, 2019년 6월 9일 홍콩에서 범인송환법 제정을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개입하고 싶지 않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인권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내정불간섭원칙을 지켰고,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까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기회에 시진핑 주석을 만나 정상회담을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자기의 재선을 도와달라고 청탁하면서 시진핑 주석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추켜올렸다는 것이다. 

 

▲ <사진 1> 위의 사진은 2020년 5월 26일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데이쓰공군기지에서이륙한 미국 공군 소속 B-1B 전략핵폭격기 2대가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태평양 상공을가로질러 남중국해로 날아가는 장면이다. 요즈음 미국은 거의 매일 같이 전략핵폭격기와 항모타격단들을 동원하는 전례 없는 군사위협으로 중국을 압박, 자극하고 있다.이런 악조건에서 중국은 미국의 군사위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전략핵폭격기와 항모전투단을 서태평양으로 출동시켜 대응공세를 펼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대립관계가 그처럼 격화된 배경에는 대만문제가 놓여있다.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시키려는 책동을 광란적으로 벌이는 와중에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이 가시화되었으며,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을 가로막으려는 미국의 군사행동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20년에 들어와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싹 달라졌다. 미국은 중국에게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군사위협과 경제제재로 중국을 극심하게 압박, 자극했다. 이를테면, 미국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는 2020년 7월 7일 국가방위전략을 수행하는 데서 미국군이 2020년 말까지 실행해야 할 임무와 목표를 명시한 10대 지침을 전군에 하달했는데, 10대 지침의 초점은 중국에 대한 군사위협에 맞춰져 있다. 미국군에 하달된 10대 지침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1) 중국과 로씨야에 대한 미국의 군사계획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수정보완하고, 승인할 것.

2) 즉시대응무력, 급변사태대응무력, 역동적 군속부대는 준비태세개념을 향상시킬 것.

3) 국가방위전략에 따라 미국군을 재배속하고, 재조정하고, 재배치할 것.

4) 고도의 준비태세를 계속 유지할 것.

5) 동맹국들을 강화하고, 우호관계를 맺기 위한 조율된 계획을 수립할 것.

6) 미국 국방부를 개혁하고, 정치문제를 다루는 언론계를 관리할 것.

7) 미국 국방부 산하 중국부(Department on China)에 관심을 집중할 것.

8) 미국군을 현대화하고, 판세를 뒤집을 군사과학기술에 투자할 것.

9) 현실적인 전쟁모의실험, 군사훈련 및 훈련계획을 확립할 것.

10) 현대적인 전투개념과 전쟁교리를 개발할 것. 

 

요즈음 미국군은 위에 열거된 10대 지침에 따라 거의 매일 같이 전략핵폭격기들과 항모전투단들을 동원하는 전례 없는 군사위협으로 중국을 압박, 자극하고 있다. 이런 악조건에서 중국은 미국의 군사위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대응공세를 펼치고 있다. 중국도 전략핵폭격기들과 항모전투단을 서태평양으로 출동시켜 반격능력을 시위하는 것이다. 

 

영국의 통신사 <로이터즈> 2020년 5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국가안전부는 2020년 4월 말 중국 최고지도부에 제출한 내부보고서에서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서구식 민주주의체제에 대한 경제적, 안보적 위협이자 도전으로 인식하면서 중국공산당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깎아내리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미국의 반중정서에 의해 중미갈등이 증폭되어 무력충돌 같은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중국은 무력충돌에 대비해야 한다고 건의했다는 것이다. 중국국가안전부가 무력충돌에 대비해야 한다는 건의를 중국 최고지도부에 제출하기 전에, 중국인민해방군은 무력충돌에 대비하는 군사준비태세를 오래 전부터 갖추고 있다. 

 

지금 중미대립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들은 대만문제, 홍콩문제, 남중국해문제, 신장-위구르문제 등 여러 가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하고, 가장 중대한 요인은 대만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시키려는 책동을 광란적으로 벌이는 와중에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이 가시화되었으며,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을 가로막으려는 미국의 군사행동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이처럼 심각하고 중대한 한반도 주변정세를 바라보는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제출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신중히 검토하기 위해 일단 보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을 토의, 결정한 비공개회의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확대회의를 소집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0년 7월 18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확대회의 및 비공개회의가 조선로동당 본부청사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지도한 확대회의에는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위원들, 조선인민군 고위급 지휘관들 및 고위급 정치위원들, 총정치국, 총참모부, 인민무력성 지휘성원들과 각 무력기관의 지휘성원들, 당중앙위원회 주요부서 부부장들이 참가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중대보도가 나왔다. 확대회의에 이어 곧바로 비공개회의가 진행되었다는 보도였다.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비공개회의를 진행했다는 보도는 처음 듣는 놀라운 보도였다.  

 

비공개회의는 당중앙군사위원회 작전회의실로 보이는 별도의 장소에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의 주재로 진행되었는데, 15명 위원들만 그 회의에 참가했다. 비공개회의에 참가한 15명 위원들 중에서 남측 언론매체가 북측 언론의 보도사진을 보고 신원을 확인한 참가자들은 리병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오수용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최부일 당중앙위원회 군사부장, 김수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조경철 조선인민군 보위국장, 정경택 국가보위상, 조용원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정길 조선인민군 상장 (군직은 알려지지 않음) 등 9명이다. 남측에서 알지 못하는 나머지 6명 위원들도 국방부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고위급 간부들이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15명 핵심위원들만 참가하는 비공개회의를 소집한 것은, 100여 명이 참가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토의, 결정할 수 없을 만큼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들을 비공개회의에서 토의, 결정했음을 의미한다. 그날 비공개회의에서 토의, 결정된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비공개회의 소식을 알려준 조선의 언론보도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다. <사진 2> 

 

 

▲ <사진 2> 위쪽 사진은 2020년 7월 18일 조선로동당 본부청사에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확대회의가 진행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확대회의직후 당중앙군사위원회 작전회의실로 보이는 별도의 장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비공개회의가 진행되는 장면이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위원장의 주재로 진행된 비공개회의에는 15명 핵심위원들만 참가했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15명 핵심위원들만 참가하는 비공개회의를 소집한 것은, 100여명이 참가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토의, 결정할 수 없을 만큼 최고로 중대한 극비안건들을 토의, 결정했음을 의미한다.  

 

1)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7월 18일 비공개회의에서는 “조선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가 토의되었다고 한다.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가 아니라, 조선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를 토의한 것이다. 조선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는,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이 국가분렬책동을 더욱 광란적으로 벌이는 복잡한 상황에서 그들의 국가분렬책동을 제압하려는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이 가시화되었고,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을 가로막으려는 미국의 군사행동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군사정세를 뜻한다. 만일 한반도 주변의 군사정세가 더욱 격화되어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해방작전을 전개하면, 조선인민군도 대남군사행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해방작전이 임박했으면, 조선인민군의 대남군사행동도 임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지난 7월 18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조선인민군의 대남군사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국-미국-대만의 3각 관계의 군사정세를 비공개로 토의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7월 18일 비공개회의에서는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기 위한 핵심문제들”이 토의, 결정되었다고 한다. 핵전쟁억제력이 아니라 전쟁억제력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이것은 핵무력이 아니라 비핵무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중대한 의제들이 토의, 결정되었다는 뜻이다. 조선인민군의 핵무력이 미국군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조선인민군의 비핵무력은 한국군을 상대하는 것이다. 조선의 핵무기는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는 무기이지, 동족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7월 18일 비공개회의에서 조선인민군의 비핵무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중대한 의제들이 토의, 결정된 것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제출했으나 지난 6월 23일 예비회의에서 보류되었던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이 이번 비공개회의에서 토의, 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7월 18일 비공개회의에서 “토의, 결정된 핵심과업들을 집행시키기 위한 여러 명령서들에 친필서명”했다고 한다.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친필서명한 여러 명령서들 가운데는, 위에서 언급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대남군사행동계획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23일에 진행된 당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예비회의에서 일단 보류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이 이번 비공개회의에서 토의, 의결되었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 결재까지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조선인민군이 결정적인 시기에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조선인민군이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실행에 옮길 결정적인 시기는 언제인가?   

 

 

3.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

 

조선의 언론보도를 읽어보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작성한 대남군사행동계획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이라고 복수로 표기된 것이다. 이런 사정은 대남군사행동계획이 단계별로, 아주 세밀하게 작성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번에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작전계획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군사행동계획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썼다. 작전계획(Operation Plan)이라는 용어는 조선인민군의 적인 미국군이 쓰는 용어이므로, 그것을 피해서 군사행동계획(Military Action Plan)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쓴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2년 8월 25일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은 동부전선에서 소집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작성, 제출한 작전계획에 최종 수표했었다. 그 작전계획은 대남작전계획이 아니라 대미작전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 18일 비공개회의에서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최종 수표한 군사행동계획은 대미군사행동계획이 아니라 대남군사행동계획이다. 대미군사행동계획은 핵무기와 비핵무기를 모두 사용하는 전쟁계획이고, 대남군사행동계획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비핵무기만 사용하는 전쟁계획이다.    

 

대남군사행동계획이 몇 단계로 작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세 단계 군사행동계획인 것으로 추정된다. 교전상대의 저항정도에 따라 한 단계씩 높여가는 식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대남군사행동계획 제1단계는 군사분계선에서 우발적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 조선인민군의 전투행동을 규정하는 것이고, 제2단계는 우발적 무력충돌이 국지전으로 확대되었을 때 조선인민군의 전투행동을 규정하는 것이고, 제3단계는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전되었을 때 조선인민군의 전투행동을 규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작성한 대남군사행동계획의 목표는 조국통일이다. 조선에서 쓰이는 용어를 빌리면, 그것은 조국통일대전을 수행하기 위한 대남군사행동계획인 것이다.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은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이 동시다발로 전개되어야 조선과 중국의 공동의 적인 미국의 전투력을 분산, 약화시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70년 전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조선의 서울해방작전과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이 동시에 전개되었다면, 미국의 전투력은 분산,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70년 전 공군력과 해군력을 갖지 못했던 중국인민해방군은 6.25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대만해협을 가로막은 미국 해군 제7함대 소속 군함 10여 척의 차단선을 돌파할 수 없었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오늘 중국인민해방군은 미국이 항모타격단(carrier strike group)을 출동시켜 대만해협을 가로막는 상황에 대비하여 항모타격단을 격파할 공군력, 해군력, 미사일능력을 대폭 강화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려면 반드시 항공모함을 출동시켜야 한다. 항공모함이 없으면 미국은 전쟁을 하지 못한다. 항공모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미국의 최대 강점이 아니라 되레 최대 약점으로 된다. 왜냐하면 미국이 유사시 항공모함을 출동시키지 못하는 뜻밖의 사태가 일어나거나, 작전지대에 출동한 항공모함이 교전 중에 격침당하는 경우 전쟁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기 항공모함이 절대로 격침당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항공모함이야말로 적의 공격을 집중시켜 격침당할 위험이 높다고 지적한다. 만일 항공모함이 격침당하면, 항모타격단은 무용지물로 되고, 미국은 전쟁에서 패한다. 

 

대만의 국가분렬책동이 지금보다 더 격화되어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에 나설 징후가 보이면, 미국은 즉각 항모타격단을 대만 인근 해역으로 급파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항모타격단을 몇 개나 출동시킬 수 있을까? 미국 해군은 항모타격단을 9개 운용한다. 미국 해군이 보유한 항공모함은 11척이지만, 항공모함 2척은 교대로 정기적인 정비-수리를 받아야 하므로, 항모타격단은 9개밖에 운용하지 못한다. 미국 해군이 운용하는 9개의 항모타격단 중에서 5개의 항모타격단은 북태평양에 배치되었고, 나머지 4개의 항모타격단은 북대서양에 배치되었다. 미국은 북태평양에 5개의 항모타격단을 상시적으로 배치해놓고 있다.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를 중심으로 북쪽, 남쪽, 서쪽 3개 방향에 배치해놓은 것이다. 이를테면, 제1항모타격단과 제11항모타격단은 북태평양 북쪽에 배치되었고, 제3항모타격단과 제9항모타격단은 북태평양 남쪽에 배치되었고, 제5항모타격단은 북태평양 서쪽에 배치되었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2020년 6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3개의 항모타격단을 북태평양에 출동시켰다고 한다. 그에 맞서 중국도 2개의 항모전투단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배치했다. 

 

그런데 전시에 미국은 3개의 항모타격단만으로는 중국의 2개 항모전투단을 이기지 못한다. 따라서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에 나설 징후가 보이면, 미국은 현재 북태평양에 배치한 항모타격단 3개에 항모타격단 1개를 추가하여 모두 4개의 항모타격단을 대만 인근 해역으로 출동시켜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산술적인 계산일뿐이다. 실제로는 더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9년 8월 17일 중국인민해방군 전투부대들이 대만상륙을 상정한 대만해방작전을 연습하는 장면이다.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은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이 동시다발로 전개되어야 조선과 중국의 공동의 적인 미국의 전투력을 분산, 약화시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공격을 원천봉쇄할 핵방패를 가진 조선이 대남군사행동을 전개해도,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를최소화하는 단기속결전으로 전개될 것이다.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은 대만해협, 대만섬, 동중국해를 포괄하는 매우 넓은 작전지대에서 전개될 것이므로, 단기속결전으로끝나기 힘들고,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와 다르게, 조선의대남군사행동은 작전종심이 매우 짧은 한반도에서 전개될 것이므로, 단기속결전으로끝날 것이고, 따라서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가 매우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중국인민해방군도 대만해방작전을 준비했고, 조선인민군도 대남군사행동을 준비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을 실행에 옮기면, 미국은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에 무력개입을 감행할 것이고,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미국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동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과 미국의 전쟁은 조선인민군이 대남군사행동계획을 실행에 옮길 결정적인 기회로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조선인민군의 대남군사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2개의 항모타격단을 한반도 인근 해역에 급파해야 한다. 

 

2)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에 나설 징후가 보이면, 원동지역에 배치된 로씨야군도 고도의 대미경계태세를 취할 것이다. 원동지역에 배치된 로씨야군의 공군력과 해군력이 북태평양으로 대거 출동하면, 미국 알래스카주에 주둔하는 미국 공군은 대만 인근 해역까지 남하하지 못하고, 북태평양 상공에서 뱅뱅 맴돌아야 한다.    

 

3) 미국이 대만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항모타격단을 대만 인근 해역으로 급파하는 경우, 중국은 그에 대응하여 해군 함대를 하와이 인근 해역과 괌 인근 해역으로 급파하여 미국의 군사전략거점들을 동시에 위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중국이 해군-공군합동작전으로 하와이와 괌을 공격할 것에 대비해 하와이 방어와 괌 방어에 각각 항모타격단 1개씩 배치해야 한다. 

 

위와 같은 전시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미국이 북태평양에 출동시켜야 할 항모타격단은 8개로 늘어난다. 하지만 항모타격단이 9개밖에 없는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하기 위해 8개의 항모타격단을 북태평양에 출동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미국은 항모타격단을 어디에 출동시켜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다가 중국의 대만해방작전도 저지하지 못하고, 조선의 대남군사행동도 저지하지 못하는 바람에 동중국해와 한반도에서 연패할 가능성이 크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을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핵보유국이고, 중국도 그런 핵타격력을 가진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9년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성된 대외의 형세 하에서 우리의 당면한 투쟁방향에 대하여’라는 첫째 의정에 대한 “력사적인 보고”에서 “미국의 핵위협을 제압하고 우리의 장기적인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강력한 핵억제력의 경상적 동원태세를 항시적으로 믿음직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미국 본토 전역을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조선의 강력한 핵억제력은 미국이 조선에게 핵공격을 감행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핵방패다. 중국의 강력한 핵억제력도 똑같은 핵방패 역할을 수행한다.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은 2013년 3월 3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억제력만 든든하면 천만대적이 덤벼들어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의 핵공격을 원천봉쇄할 핵방패를 가진 조선이 대남군사행동을 전개해도,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조선의 대남군사행동은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를 최소화한 단기속결전으로 끝날 것이다.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은 대만해협, 대만섬, 동중국해를 포괄하는 매우 넓은 작전지대에서 전개될 것이므로, 단기속결전으로 끝나기 힘들고,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와 다르게, 조선의 대남군사행동은 작전종심이 매우 짧은 한반도에서 전개될 것이므로, 단기속결전으로 끝날 것이고, 따라서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가 매우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2004년 4월 7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지시한 ‘전시사업세칙’ 제2장 제92조에는 조선인민군이 대남군사행동을 실행에 옮길 때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을 비롯한 각급 정치기관들은 모든 작전과 전투에서...적군을 포섭, 전취하기 위한 조직, 선전공작을...작전단계별로...군사적 타격과 배합”해 전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인민군이 대남군사행동에서 한국군을 타격하는 전투만 벌이는 게 아니라 한국군을 포섭, 전취하는 비전투공작도 배합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사정을 예견하면, 조선의 대남군사행동이 민간부문에 대한 전쟁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조선이 대남군사행동을 오랜 세월 미루어온 까닭, 그리고 중국이 대만해방작전을 오랜 세월 미루어온 까닭은, 미국이 핵공격을 감행하지 못하게 하고 핵참화를 막아줄 강력한 핵방패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조선과 중국이 미국이 핵공격을 감행하지 못하도록 막아줄 강력한 핵방패를 각각 가졌으니,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고, 가장 유리한 정세가 조성될 때 결행시기를 선택하는 문제만 남아있는 것이다. 

 

조선의 대남군사행동과 중국의 대만해방작전은 군사적 측면에서만 논할 수 없으며, 정치적 측면에서도 논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측면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대남군사행동의 직접적 담당자인 조선인민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도를 받는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국가를 영도하는 최고조직인 조선로동당의 영도를 받는 당의 군대이므로, 조선군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은 자기를 영도하는 조선로동당의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 길에서 피를 흘릴 각오를 한 혁명군대다. 그런 점에서, 중국인민해방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조선로동당과 중국공산당은 평화통일도 준비해왔고, 무력통일도 준비해왔다.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은 2016년 5월 6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 데는 평화적 방법과 비평화적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언명한 바 있다.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을 서로 대치시키거나, 어느 한쪽만 인정하는 것은 오류다. 평화통일이냐 무력통일이냐 하는 양자택일문제는 조성된 정세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평화통일에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면, 평화통일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고, 무력통일에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면, 무력통일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분렬세력이 평화통일의 약속을 끝내 이행하지 않아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사라지면,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게 아니라 국가분렬세력을 제압하고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는 무력통일의 길을 택하게 되고, 무력통일에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는 때에 맞춰 무력통일계획을 실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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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광산왕은 자가용으로 납시고, 조선중아일보 여운형은 걸어서 뚜벅뚜벅”

<기고> 신창기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신창기  |  drshin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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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9  23: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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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양 여운형 선생 73주기 추모식이 19일 수유리 몽양 묘에서 열렸다. [사진제공-신창기]

19일 수유리 몽양 여운형 선생 묘에서 올해는 코로나19로 유족과 정부, 사회단체 인사들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추모식이 열렸다.

올해로 벌써 가신 지 73주기 되는 해이건만
마치 하늘도 슬퍼하는 듯 새벽녘에 내리는 빗줄기에 행사를 앞두고 걱정이 되었지만
11시 쯤 서서히 비가 멈춰서 또 한 번 하늘조차 몽양 선생님을 기리는 듯했다.

지난 5월 이사장으로 새로 취임하신 강창일 이사장님은 인사말을 통해 “선생께서 온몸을 바쳐 이루려던 남과 북, 좌와 우, 갈등과 대립을 넘어선 하나 된 조국의 모습은 아직도 이루지 못하고 또다시 추모식을 하게 되어 안타깝다”는 소회를 밝혔다.

   
▲ 인사말을 하고 있는 강창일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사진제공-신창기]

이어서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은 “우리의 민주역량이 집결되지 않고는 끊임없는 우리 선열들의 희생과 세계인민의 정의의 피가 허사가 되기 쉽다”는 선생님의 유훈(遺訓)을 되새기며 “이제 우리가 그 유훈을 깊이 새겨 모든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정의로운 대한민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얼마 전 간도특설대 활동으로 수많은 독립군을 때려잡고, 해방 후 한국전쟁을 통해 민간인을 학살한 백선엽의 죽음과 그의 현충원 안장을 놓고 벌였던 모습을 보며 “선생께서 간절히 염원하던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낙원’은 한반도의 완전한 통일국가 건설이며, 이는 더디더라도 반드시 우리민족 스스로 자주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함세웅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회장은 “조선일보 광산왕은 자가용으로 납시고, 동아일보 송진우는 인력거로 꺼떡꺼떡, 조선중아일보 여운형은 걸어서 뚜벅뚜벅”-1936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조선중앙일보가 폐간된 후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말을 인용하며 지금도 좌우 논쟁으로 옳고 그름을 탓하는 현실이 부끄럽고 죄스럽다 했다.

김영배 성북구갑 국회의원은 “선생이 실천으로 보여줬던 대화와 타협의 정치, 오로지 인민들의 이익을 우선에 두는 민주정치의 회복이 시급”함을 피력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이밖에도 정동균 양평군수, 박겸수 강북구청장, 김거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천준호 강북구갑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모두 표현은 달라도 ‘진정한 지도자였던 몽양 여운형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민족화합과 통합의 길을 다지는 데 최선을 다할 때’임을 밝히며 추모의 마음을 바쳤다.

   
▲ 이날 추모식은 코로나19로 유족과 정부, 사회단체 인사들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열렸다. [사진제공-신창기]

끝으로, 여운형 선생의 동생인 여운홍 선생의 손자인 여인영 본사업회 이사는 “할아버지의 위대하신 민족 사랑과,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라면 이념의 좌우도, 땅의 남북도 뛰어넘어 소통하고, 정적도 탄복하게 만들었던, 통합과 융화의 정신을 본받아 국난극복의 지혜를 얻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어느새 빗방울은 그치고 푸르고 푸른 우이동 몽양 선생님 묘소에 하얀 국화꽃 한 송이 올리고 돌아서는데, 방금 전 기타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던 ‘담쟁이’ 노랫말이 가슴에 파고드는 듯하다. 아! 이 뭉클함은 또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중략)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벽을 넘는다/벽을 넘는다/벽을 넘는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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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동안 기억에도 없었던 곳, 한반도의 최북단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두만강 국경도시, 투먼(圖們)과 남양

2020년 6월 7일,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봉오동 전투'가 있은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해 8월에는 독립군 활동을 주제로 한 영화가 개봉된다고 연일 언론에 보도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봉오동 전투'는 한국인이라면 역사책에서 한 번쯤 본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단어다.

 

중국 연변지역 답사 코스 가운데 훈춘 코스는 관광만을 했다는 가벼움을 독립운동 사적지가 지그시 눌러주는 묵직함을 곁들인 여정이다. 그 시작이 봉오동 전적지이며 정점은 삼국 접경 지역인 방천이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심도시인 연길의 북시장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연길과 도문 간 고속도로 이정표가 나온다. 연길-도문 간 고속도로는 한국의 속도광들이 꿈에 그리는 질주 본능을 자극할 수 있는 곳인데, 총 길이 26km로 차량이 거의 없다. 2001년 개통 당시에는, 좀 과장하면 1km마다 차 한 대가 다닐 정도였다. 도문 17km 이정표를 지나면 도문에서 베이징까지 가는 철교를 볼 수 있다. 장안터널과 소반령 터널을 지나 약 25분을 달리면 도문 이정표가 보인다.

 

도문 나들목에서 왕청 방향 이정표를 따라 1.3km가면 도로 오른쪽에 수남촌(水南村) 팻말이 나온다. 길을 따라 곧바로 올라가면 3km 지점에 도문시 수도국 봉오동 저수지 관리소 대문이 굳게 빗장을 걸어놓고 있다. 여기를 지나야 비로소 봉오동 기념비를 볼 수 있다. 지금 세워져 있는 봉오동기념비는 2013년에 건립한 것이며, 이미 1989년에 도문시에서 건립한 것은 다른 곳으로 치워진 상태다.

 

멋진 소나무를 감상하면서 10여 분을 위로 올라가면 봉오동 저수지가 찾는 이를 맞이한다. 이곳에서 멀리 보이는 갓모양의 봉우리, 즉 초모정자가 보이는 지점이 홍범도, 최진동 부대가 일본군과 격렬하게 전투를 펼친 봉오동 전투의 현장이다. 지금은 저수지를 돌아가야만 볼 수 있는 곳이다.

 

1920년 6월 7일 홍범도와 최진동이 지휘한 독립운동 연합부대는 봉오골 저수지에서 북쪽 10km 지점에서 유격전으로 일본군 수십 명을 살상했다. <독립신문> 85호에는 봉오동 전투의 상황이 명료하게 정리돼있다.

 

6월 7일 상오 7시에 북간도의 주둔한 우리 군 700명이 북로사령소재지인 왕청현 봉오동을 향하여 행군할 새 불의에 동 지점을 향하는 적군 300명을 발견한지라. 동군을 지회하는 홍범도, 최명록(최진동) 양장군은 직접 적을 공격하여 급 사격으로 적의 120여의 사상자를 내었으며, 적의 궤주함에 따라 바로 추격전을 펼쳐 현재 전투중에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에서 발표한 봉오동 전투의 일본군 사망자는 100여 명이며, 독립군 희생자는 3명이라고 했다.

 

일광산에서 바라본 투먼, 남양, 간도

 

봉오동에서 불과 10km 떨어진 곳에 국경 도시 투먼과 남양이 있다. 두 도시를 좀 더 자세히 보려면 일광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일광산은 해발 약 450미터 높이의 산으로 사찰 일광사가 있다. 정상에 오르면 도문시와 북한의 온성군 남양읍이 한눈에 보인다.

 

일광산 정상에서 10시~11시 방향으로 바라본 도문과 남양은 한눈에 보기에도 도시 규모가 확연하게 차이 났다. 도문과 남양은 해방 전까지 거의 같은 규모의 도시였지만 현재는 누가 보더라도 경제적인 규모면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의 색채 역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도문이 컬러라면, 남양은 흑백이었다. 그 사이에 두만강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흘러갔다.

 

일광산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간평지역이 한눈에 들어오고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면 사잇섬(일명 간도)라는 지명으로 유명한 곳이 눈에 들어오는 데 지금은 사잇섬이 아니라 붙어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다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홍범도 장군이 습격한 강양동 초소가 성냥갑 만하게 보인다. 그곳을 통과하는 함경선 기차가 남양에서 힘겹게 달려오고 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한국에 사는 우리들은 경부선을 비롯한 남쪽 철도에만 익숙하다. 당연한 현상이다. 공간을 이해하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북선철도인 함경선은 함경북도 청진을 지나 경원, 온성, 회령을 거쳐 무산까지의 산악지대를 힘겹게 달리는 노선이다.

 

국경도시 투먼과 남양

 

도문은 중국어 발음으로 '투먼'인데, 1712년 백두산정계비의 비문 가운데 <서위압록 동위토문>에서 토문(토문) 역시 중국어로 투먼이다. 중국에서 투먼은 도문강의 국경도시이다. 도문은 만주어로 모든 물의 근원이라 한다. 도문의 원명은 회막동이었는데, 1933년 도문으로 고처 불렀다. 현재도 도문시 10만 인구 가운데 50% 이상이 조선족일 정도로 민족적 색채가 강한 도시이다. 도문 톨게이트에서 중심거리를 따라 9.6km에 위치한 도문해관은 주로 북한과의 무역창구이다.

 

도문 시내에서 남양과 도문을 잇는 철교로 가기 전에 국경로 회전교차로에서 좌측으로 돌면 도문 해관 건물이 보인다. 40m 정도 들어가면 양 옆에 가짜 러시아제 물건과 북한산 우표 등 기념품 상점이 자리 잡고 있다.

 

주차장도 아니고 광장도 아닌 용도가 묘한 나대지를 지나 둔덕에 오르면 바로 두만강이 눈

앞에 있다. 2010년에는 폭 150cm의 기단에 <중국도문변경>이라고 음각한 오석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전에는 중조변경이라고 쓴 표지석을 설치했는데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 중국 투먼과 북한 남양 사이에 위치한 국경 표지석 '중국도문변경' ⓒ김주용

그 옆에 1991년 5월 8일 강택민이 쓴 <중국전문구안(中國前們口岸)>이 주위의 변화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두만강 상류로 눈을 돌리면 철교가 보이고 하류에는 해관 정문이 북한의 남양 쪽을 응시하고 있다.

 

10여 년 전에는 한국관광객들이 압도적이었지만 요즘은 중국의 신장된 경제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국경을 체험하기 위해서 삼삼오오 북녘을 향해서 카메라 세례를 퍼붓고 있다. 해관 정문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의 남양을 보다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상록에 묻힌 남양의 모습은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수수하지도 않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우리에게 국경선이란

 

도문 외곽을 지나 두만강 하류를 끼고 가는 길은 중국 땅과 한반도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길이다. 두만강을 따라가는 길은 이곳 이외에도 도문에서 간평을 지나 개산툰, 용정으로 빠지는 길과, 삼합에서 북한 무산이 보이는 숭선까지 가는 길이 있는데 각 구간마다 특징적인 아름다움이 있지만 하류 쪽은 넉넉한 두만강의 수량과 한반도 최북단 온성과 경원을 감상할 수 있어 마치 동해바다로 빨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70여 년간 잊혀진 곳, 눈에서만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식 저장 공간에도 없는 곳, 다만 아직까지도 초등학교 사회과 부도에는 한반도 전체의 식물의 북방한계선, 지하자원 지도 등이 실려 있지만 정작 가상세계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 북녘땅의 현주소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1718152910192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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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지금 뭐 하는가...왜 수구 적폐들에 끌려 다니는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7/19 13:46
  • 수정일
    2020/07/19 13:4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에드워드 리 | 기사입력 2020/07/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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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Edward S. Lee) 선생이 SNS에 올리는 우리 사회에 대한 단평을 소개합니다.

 

민주당, 지금 뭐 하는가? 

180석에도 존재감 없는 민주당

대전환 짊어진 용병 의식 가져야 

 

일주일 넘게 우울감에 시달리다가 억지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고백건대, 이명박이 압도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다시는 한국 정치와 시민사회에 기대를 걸고 싶지 않았다. 불의한 사람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경제'라는 허구에 기대 몰표를 주었던 한국 사회. 

 

지금도 그런 비슷한 감정이다. 민주당을 보면서 갑갑함을 넘어 아프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정부도 지나치게 수구 세력의 눈치를 살핀다. 왜 절대 다수당이 여전히 수구 적폐들에 끌려 다니는가? 결국은 박원순이라는 사회적 타살(로 본다)도, 고통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조국과 그 가족의 린치도 이런 토양 위에서 비롯된 현실 아닌가? 늘 침묵해버리는 민주당, 책임정치가 없다. 이재정이 최고위원에 출마하면서 개혁의 스피커를 자임하자 시민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민주당 정말 뭐 하는가? 국민들이 180석을 몰아주어도 아직까지 공수처를 비롯해 개혁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 시대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민주당을 보면서 시민들은 화병이 도진다. 얼굴도 없는 고소인에 대해 "피해자의 2차 가해 안 된다"는 여성가족부 성명은 참 고루하고 비겁하다. 무슨 정치가 이런가? “사실 규명이 먼저다. 좀 기다리자”라고 해야지, 가짜 여론에 밀려 눈치를 보면 사회는 아류로 전락한다. 좀비들이 들끓는 우리 사회 현실은 당정의 무기력이 불러온 것이다.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란 말인가? 누군가 고소만 하면 범죄가 성립되는가?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 보자면, 오히려 박 시장이 피해자에 가깝다. 숨어서 공작하듯이 말도 안 되는 허접한 증거(라고 할 수나 있나?)물로 정치공세를 하는 게 미투고 진실규명인가? 망자에게 뒤집어씌워 벌이는 정치공세는 당장 중지해야 한다. 민주당도, 여성가족부도 담대한 책임정치를 해야 옳다. 

 

왜 항상 우리만 참고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는가? 이것은 사회적 타살에 다름 아니다. 특히 여론에 기대 여성의 성적 수탈사까지 소환해 망자를 심판하려는 입진보(학자)들의 이중성에 절망한다. 누구라도 그 자신의 죄로만 판단되어야 옳다. 그가 시장이라고 해서 역사성까지 소환해 여론으로 그를 단죄하는 건 옳지 않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인권은 가해자의 죄가 밝혀진 후에 차분하게 사회적 어젠다로 다루어야 옳다. 거대 담론으로 한 사람을 미리 여론 재판하고 범인시해선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2차 가해다. 

 

정치권과 여성계가 시민들의 왜곡된 시선을 바로 잡아주어야 혹세무민이 그치고 사람이 사는 사회, 즉 진실이 바탕을 둔 정의로운 세상이 될 것이 아닌가? 전제한다. 모든 정권은 유한하다. 5년짜리다. 그 5년 안에 하나의 미술 작품을 완성하는 게 아니다. 정치는 영원히 미완이고, 그저 진행되어 갈 뿐이다. 그것이 정치의 숙명이고 정당정치의 속성이다. 정책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수권 정당의 책무다. 

 

그런데 지나친 결벽증으로 할 일을 못 하고 눈치를 살핀다. 정치란 완전체가 아니다.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는 게 정치고 삶이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집합체가 정당이고, 그걸 조정해나가는 게 정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정치가 작동하나? 그저 대립뿐이다. 그래서 국가 법질서가 무섭게 살아있어야 한다. 그것이 검찰 및 사법개혁의 당위다. 그런데 모두 그늘아래 누워있다. 참담하다. 

 

현재의 민주당이 국민과 약속하고 수권했으면 그 공약을 지켜나가야 한다. 적폐 청산과 재벌개혁 등이다. 그런데 가시적인 성과물이 없다. 시민들이 지치고 원성이 깊어진 이유다. 물론 시민사회가 직접민주주의를 작동할 만큼 깨어난 것은 이 정권의 공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시민들이 떠안아야 하는 정권은 엄밀하게 말해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사회 아닌가? 

 

정치는 누가 해도 욕을 먹는다. 모든 사람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두를 품겠다는 발상은 난센스다. 신도 그렇게 못한다. 단지 더 많은 시민들에 지지를 받은 정책을 수행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정치는 이런 공방의 연속이다. 그러니 대국민 공약이 수권정당의 가장 주요한 책무다. 도덕이나 윤리는 정치가 아닌 다른 부문, 시민사회의 몫이다. 국가는 그렇게 정부와 시민사회를 축으로 이루어진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비정상 중의 비정상이다. 사람은 고사하고 개망나니 수구 적폐에 끌려다니는 당·정·청이라니? 시민들 미치지 않고 사는 게 기적이다. 민주당은 역사의 대전환 앞에 선 용병이다.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 뭐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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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만에 1억 오른 아파트... 제 선택은 다시 '전세'입니다

대출·카드빚·부부싸움에서 벗어난 지금... 집 없다고 기죽어 있을 당신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20.07.19 10:52l최종 업데이트 20.07.19 10:52l양정숙(hayun99)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퇴근길에 찍은 우리 동네 이 많은 집 중에 내집이 없다는 것이 새삼 서러웠다
▲ 퇴근길에 찍은 우리 동네 이 많은 집 중에 내집이 없다는 것이 새삼 서러웠다
ⓒ 양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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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주택자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가장 조롱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아마도 나와 같은 무주택자였을 것이다. 무주택은 내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며,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8년 전 그 결정에 대해 정말 내 손목을 부러뜨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후회가 분노, 좌절로 바뀌고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몰려왔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잊고 있었던 나의 무주택 기간 8년이 떠올랐다.

내가 무주택자로 전락(?)한 것은 2012년이다. 그리고 2020년이 된 지금까지 약 8년간을 전세로 살아왔다. 나는 생애 첫 집을 5년간 살다가 팔았다. 입주하던 날 가슴이 벅차 잠을 못 이뤘던 그 집을 결국 팔기로 결정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슴 벅차게 집을 사고 알게 된 것들

첫째, 빚이 너무 많았다. 24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약 1억2000만 원가량의 대출을 받았다. 나와 남편은 IMF 직후인 1998년 결혼했는데, 그때 얻었던 신혼집이 전세 3000만 원이었다. 출발 금액이 적었으므로 2억 원가량의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도저히 빚을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 주택담보대출의 금리가 5%가량이었다. 
 

매달 이자로만 50만 원을 내면서 5년을 버텼다. 5년이 지나자, 원금상환부담이 덮쳐왔다. 매달 80만~90만 원을 상환해야만 해야 했다. 그것도 약 30년 동안이나. 60살이 넘도록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게다가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 맞벌이를 하지 못했던 때라 원금을 미리 상환할 여력도 없었다. 둘째, 신용카드로 생활비 돌려막기를 했다. 빚만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달 대출금 상환하는 것만 신경 쓰고 나머지 가정 경제는 엉망이었다. '생각 없이 신용카드를 긁는다→명세표가 날아온다→월급으로 카드값을 꾸역꾸역 갚는다→다시 신용카드를 쓴다' 이 패턴이 매달 반복되고 있었다.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카드회사에서 퍼가니까 늘 집에 현금이 말랐다. 그래서 또 카드를 긁다 보면 내가 매달 얼마를 쓰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중에는 카드 명세표를 열어보는 것이 성적표 받는 것처럼 두려워졌다. 그래도 집이 있다는 안도감과 집값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것에 만족해서 이 패턴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셋째,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당시 내가 살던 신도시는 특정 대기업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대기업 사원을 남편으로 둔 그들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씀씀이를 가지고 있었다.

사교육비로 아이 하나당 백 단위를 쓰는 것은 보통이었고, 중형 이상급의 자동차를 전업 주부 엄마들도 타고 다녔다. 연말에 상여금이라도 받고 나면,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명품가방을 하나씩 장만해서 모임에 나타났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부내와 경제적 안정감은 나의 처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들볶는 일이 많아졌고, 없는 살림을 쥐어짜서 아이를 사교육에 몰아넣었다.

나의 열등감을 가족을 통해 해소해 보려는 짓을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내가 괴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집을 팔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 같다.

결국 집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집은 있어야 되지 않느냐"는 시가 어른들의 걱정은 그냥 무시했다. 대출금 일부를 도와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했다. 그분들의 노후 자금을 내 집 밑에 깔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집값이 더 뛰면 어쩔래"라고 길길이 반대하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서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그리고 집을 내놓은 지 약 10개월 후, 집이 드디어 팔렸다!

그동안 집값이 올라서 얼마 정도 시세 차익을 남겼지만, 대출금을 상환하고 세금, 복비를 제하고 나니까 변두리 지역에 전세를 얻을 돈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전세자금 대출을 약 3000만 원가량 더 받았다.

집을 팔지 않았더라면 못했을 것들

집을 전세로 옮기면서 가지고 있던 빚을 모두 청산했다. 주택담보대출은 물론이고 마이너스 통장도 없앴으며, 신용카드를 가위로 잘라 버렸다. 그리고 오로지 현금만을 가지고 생활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때 제윤경씨의 <착한 소비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를 읽었는데, 가정 경제를 구조적, 가시적으로 만드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신용카드를 썼을 때는 보이지 않던 수입과 지출의 현황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생활비를 항목별로 나누어 통장을 만들어 관리하고 정해진 금액 내에서만 돈을 썼다. 그리고 월급이 들어오면 저축부터 했다(전세자금 대출은 주택담보대출보다 금리가 싸고 그나마 소액이라 금방 갚았던 것 같다).

현금이 돌기 시작하자, 저축과 노후 준비를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국민 연금에 임의가입자(당시 나는 전업주부였다) 자격으로 가입하고 개인연금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약관내용과 보장액도 모르고 난잡하게 넣어놓았던 보험 중 과도한 보험은 해지하고 손품을 팔아 직접 보험을 설계하여 필수적인 보험만 남겨놓았다.

아이들의 사교육비도 줄였다. 그러기 위해서 전에 살던 아파트 엄마들은 의도적으로 '손절'했다. 그리고 소득을 늘리기 위해 파트타임 강사일을 시작했다. 자동차는 '굴러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지 않았고, 온 가족 휴대폰도 현금을 주고 사고 알뜰 통신사에 가입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할부금이나 빚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8년을 살다 보니, 이제 남편과 나의 월급이 입금되면 자동으로 돈이 각 항목에 맞게 착착 이체되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12월이 되면 다음 해의 변화된 소비 항목에 맞춰 각 통장에 이체될 금액을 조금씩 수정해 두기만 하면 되었다. 저축액도 상당히 늘어갔으며, 검소한 소비 패턴은 생활화되었다.

남의 집 자식들과 비교할 일이 없어지니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게 되었고, 다행히 아이들도 사교육비를 많이 들이지 않아도 나름대로 알아서 공부를 했다. 남편과의 다툼도 줄어들고 우리의 노후 준비를 위한 대화도 가능해졌다.

이렇게 가정 경제도 안정되고 여유자금도 확보되어서 슬슬 외곽의 집이라도 사볼까 했는데, 이번에 부동산 문제가 터진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와 단기간 투기성 매매자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사진은 5일 오전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2020.7.5
▲   5일 오전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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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세를 선택하다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의 매매가가 1억 원 이상 오른 가격으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그게 최근 두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겨우 두 달 말이다. 남들은 오른 집값에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는데, 나 혼자만 복장이 터져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집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서러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내가 그동안 헛짓을 했구나... 부동산은 경제 이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사회 각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사람들의 공포, 불안, 욕망 등의 심리가 함께 맞물려서 돌아가는 게 부동산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경제책 몇 권 읽고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울분과 좌절이 잦아들면서, 조금씩 이성을 찾게 되었다. 세상은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전세를 살 뿐이고, 남들은 1억 이상을 벌었지만, 아직 그 집에서 살고 있으므로 1억을 실제로 손에 쥔 집은 사실 몇 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괴로웠던 이유는 '이제 집을 사야겠다'라는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마침 집을 사려고 했고, 모아둔 돈도 준비되었는데 턱없이 올라버린 집값이 나의 상실감을 자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간단했다. 집을 안 사면 된다.

8년 동안, 큰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독립을 했고, 작은 아이는 고1이므로 2년 후에는 그도 독립을 할 것이다. 학군이나 통학거리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까 전셋집 선택이 매우 자유로워진다. 게다가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책상, 옷가지 등의 짐들이 사라지므로 더 작은 평수의 집으로 이사가도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몇 번씩이나 이사를 다녔는데, 그 짬밥으로 두 명 사는 집을 이사하는 건 껌이다. 그리고 집을 사지 않아서 남는 여유자금은 노후 준비자금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도 전세 살아?"라는 말에서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나는 집을 살 기회를 놓쳤지만, 그동안 저축으로 모은 꽤 많은 종잣돈을 집을 사는데 '꼬라박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다.

"낼모레 오십인데 아직 전세 살아?"라는 남들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지금 바로 집을 사지 않아도 별문제는 없다. 남들에게 내가 몇 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지, 어떤 브랜드의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지 알게 하고 싶은 욕망만 잠재우면 된다.

남들이 자신이 소유한 것을 떠벌릴 때 자존심을 버리고 '부럽네'라며 가볍게 말해줄 수 있는 멘탈만 갖추면 된다. 그리고 남들에게 자랑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이 8년간 단련했던 검소한 생활은 앞으로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그 산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다.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기회다. 그러나 탄탄하고 검소한 가정 경제를 만들어 놓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둘을 한꺼번에 할 수 있으면 더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아직 집이 없다고 기죽지 말자.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만약 집이 없다면 어떨까?
집이 없다고 죽지는 않는다.
대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면 된다.
내 노동과 자유를 남들의 시선과 바꾸면 된다.
- <내일의 부>, 조던 김장섭, 트러스트북스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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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안 돼도 좋으니 더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했는데..."

[나의 꿈은 '노동자'입니다 ⑨] 이태성 한국발전산업노조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 사무국장 20.07.17 20:20l최종 업데이트 20.07.17 20:20l정현주(chamir) 

정치인, 지식인, 혹은 스타들의 목소리만 넘쳐나는 속에서 진짜 이 사회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살려내고자 합니다. 노동자 개인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어릴 적 꿈과 직장을 구하는 과정, 일터에서의 보람, 힘든 점,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의식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진솔한 삶을 기록합니다.[기자말]
'비정규직 대표 100인 기자회견'에서 김용균 사망 소식 전하는 이태성씨 2018년 12월 11일, 이태성씨는 태안화력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막 열릴 참이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 "비정규직 대표 100인 기자회견"에서 김용균 사망 소식 전하는 이태성씨 2018년 12월 11일, 이태성씨는 태안화력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막 열릴 참이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 이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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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친한 동생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어요. 태안화력에서 함께 일하다가 승진해서 보령화력으로 갔는데, 거기서 그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나기 일주일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조금 있으면 딸이 백일이 되니까 보령에 와서 술 한잔하자고 했어요. 그때 그 동생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노조 일을 하고 있었는데, 노조는 그런 사망 사고가 나면 사실을 알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싸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고작 위로금이나 걷고 있었어요."

한국발전산업노조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 사무국장 이태성씨, 그가 이렇게 긴 직함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전력공사의 복잡한 하청구조와 관계 있다. 한전은 효율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1990년대부터 발전소 설비정비, 운전 업무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근무하는 한전산업개발은 발전사의 9개 하청 업체 중 하나다.

하청업체들은 원칙적으로 3년마다 공개 입찰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회사는 입찰에서 떨어질까 봐 산재가 발생할 때마다 사고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사고 원인을 노동자 개인의 과실로 돌렸다. 하청노동자들은 회사가 입찰에서 떨어지면 직장을 잃는다는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2014년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이태성씨와 노조는 무력했다.

"제가 1998년도에 입사했는데, 20년째 작업 환경이 변하지 않았어요. 저와 동료들이 일하는 작업장은 초속 5m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석탄 가루로 앞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한 곳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4km 정도의 거리를 왕복하며 안전 점검을 하고 탄가루 치우는 일을 하고 있어요. 컨베이어 벨트가 도는 속도가 빨라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기에 접근 방지 펜스와 자동제어 스위치를 달아줄 것과, 시야 확보를 위해 조도를 높여달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회사는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2년 전인 2018년 김용균 사망사고 이후에야 펜스와 조명이 설치됐습니다."
  
 
▲ 태안화력 발전소 내부
ⓒ 이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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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마다 입찰을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태성씨가 근무하는 동안 실제로 태안화력에서 공개 입찰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3년마다 재계약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회사는 비용 절감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위험한 근무 환경은 20년 이상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 12월 31일에 태안화력에서 처음으로 입찰이 나왔다. 노조의 반대를 우려해서 어수선한 연말연시에 입찰을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한전산업개발은 이 공개 입찰에서 떨어졌다. 태안화력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 전원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낙찰받았던 기업들이 숙련된 인력을 다 채울 수가 없어서 차례로 낙찰을 포기했다. 결국 3순위였던 한전산업개발이 다시 낙찰을 받고 직원들은 회사에 남았다.

"발전소는 1급 보안시설로 폐쇄된 공간이에요. 발전소 출입을 위해서는 신원확인을 하고 서약서를 써야 할 정도로 출입도 통제되죠. 전쟁 나면 타격 1번이 될 만큼 국가의 존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가 기간산업입니다. 국민의 생명 안전과도 직결되고요. 그런데 여기에 민간기업의 이윤추구라는 개념을 끌고 들어와 민영화와 외주화를 한 겁니다.

노동자가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가능할까요? 외주화 결과 20년 30년씩 노후된 시설이 안전 설비도 없이 방치되고, 근무 조건이 열악해서 수많은 산재가 발생했고요. 더 심각한 것은 그런 현실을 '입찰에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숨겨왔다는 거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도 받아왔고요."

  
한전산업개발 발전노조는 2016년 입찰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소 민영화의 문제점을 지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2017년 11월에 태안화력에서 또 보일러 밸브에 머리가 끼여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담당자들은 태안화력방재센터에 사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다친 노동자는 구급대원의 안전조치 또한 받지 못했고, 구급 차량이 아닌 협력 업체 소장의 차로 이송됐다. 입찰에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는 산재 사고를 은폐하기 위함이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인한 죽음 막아야
  

산업사회에서 '공기'와 같이 필수적인 '전력'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비용절감과 효용성 제고라는 명목 아래 다치고 죽어가는 하청 시스템은 반드시 바뀌어야만 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전분야 비정규직 연대회의'가 만들어졌다.

발전 노동자들은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의 국회간담회를 시작으로 기자회견과 국회의원 면담을 이어나가며, 정규직화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이태성씨는 노조 사무국장으로 이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11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기다리던 그는 전날 밤 태안화력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막 열릴 참이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관련기사: "취임 초 문 대통령 행보에 펑펑 울었는데 지금은..." http://omn.kr/1exkg)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비정규직 대표 100인 기자회견에서 이태성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한전산업개발 발전지부 사무처장은 "오늘도 또 동료를 잃었다"라며 울먹였습니다.
▲  2018년 12월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비정규직 대표 100인 기자회견에서 이태성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 사무국장은 "오늘도 또 동료를 잃었다"라며 울먹였습니다.
ⓒ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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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동료를 잃었습니다. 정규직 안 돼도 좋으니 더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했는데 꽃다운 젊은 청춘이 또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용균은 12월 10일 밤, 혼자 일하다가 석탄을 이송하는 설비에 끼어 사망했으며 발견되기까지 4시간 동안 방치됐다. 2019년 작성된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는 39명이고, 부상을 포함한 사고 발생 건수는 428건에 이른다. 그리고 2018년 이후 현재까지 사망 사고만 3건이 더 발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산재 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으나, 최근 5년간 산재 사고의 97%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김용균 사망 이후 올해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어요. 28년 만에 처음으로 개정되었습니다. 개정된 법안에 '위험 작업은 2인 1조'라는 조항이 담겼지만, '위험 작업'의 기준이 명시되지 않아서 여전히 혼자 일하는 곳도 있고요. 이 법은 재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12월 12일 '당정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발표'로 한전산업개발을 공기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한전의 상시적 업무인 발전소 설비정비, 운전 업무를 원청이 직접 관리하고 책임지도록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이 요청이 있은 지 7개월이 지나고 있는 현재 시점까지 현실적인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태성씨는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지 570일이 넘어가는 현재에도 김용균의 동료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덧붙여 집권 여당이 약속을 지키고, 노동자가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김용균 사망 이후 하루하루 날짜를 세면서 천막농성부터 일인 시위까지 노동자들은 아직도 거리를 지키고 있다.
  
당당하고 차별받지 않는 노동을 위하여
  
“가족의 힘이 없었더라면, 사실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힘들어하는 이태성씨의 모습에 안타까워 하면서 노조활동을 반대했던 가족들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했다. 딸들은 집회현장에도 함께 하고 아빠를 존경한다며 위로한다. 아내도 "열악한 노동현장을 알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발전소 현장이 바뀌고 있다"며 신뢰를 담은 응원을 해주고 있다.
▲ “가족의 힘이 없었더라면, 사실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힘들어하는 이태성씨의 모습에 안타까워 하면서 노조활동을 반대했던 가족들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했다. 딸들은 집회현장에도 함께 하고 아빠를 존경한다며 위로한다. 아내도 "열악한 노동현장을 알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발전소 현장이 바뀌고 있다"며 신뢰를 담은 응원을 해주고 있다.
ⓒ 이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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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엔 어촌 특화사업을 해보고 싶어 했던 이태성씨는 1992년 태안에 건설된 화력발전소에 1998년 12월 한전산업개발로 입사해 화력발전소 운전 분야에서 일해 왔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나 학창 시절에는 막연히 '노조는 과격하고 불온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그는, 비정규직의 부조리를 겪고 동료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변해갔다.
   
2019년 이태성씨는 '허위사실을 무차별적으로 언론에 유포해서 회사의 명예를 실추했다' 하여 원청 정규직 노조 관련자로부터 명예 훼손 혐의로 고발당했다.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경찰서에 가서 몇 시간씩 조사받고 마음고생을 했다. 조사 결과 '기소 의견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관련 기사: "노동자가 김용균 대책위 노동자 고발... 의도가 다분하다" http://omn.kr/1j8rl)

"가족의 힘이 없었더라면 사실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힘들어하는 이태성씨의 모습에 노조 활동을 반대했던 가족들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했다. 딸들은 집회 현장에도 함께 하고 아빠를 존경한다며 위로한다. 아내도 '열악한 노동 현장을 알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발전소 현장이 바뀌고 있다'며 신뢰를 담은 응원을 해주고 있다.
   
"정규직은 위험한 일을 시켰을 때 거부권이 있지만, 비정규직은 없어요. 이것도 변해야 합니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다뤄서는 안 되죠. 노동자의 목숨이 깃털은 아니거든요. 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법 제정으로 기업들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비정규직 사용제한법' 같은 것들이 제정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기업은 엄히 처벌해야 하고, 비정규직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쓰는데 악용되는 일도 막아야 합니다."

이태성씨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무임승차'라고 비난하는 시선에 대해, 특히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들은 지금 당장 거부감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규직화는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일임을 알아줄 것을 당부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90%는 노동하는 사람들인데, 왜 어떤 노동의 가치는 천박하게 인식되는 걸까요? 특히나 우리 생존에 필수적인 생산직 노동을 더 그렇게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우리나라도 노동교육을 의무화하고 어릴 때부터 노동은 소중하고, 나는 기업이 주는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내 당당한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기업과 노동자는 평등한 계약관계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노동자가 마치 기업의 소유물처럼 인식되고 있으니 이건 아주 잘못된 거죠. 우리나라는 10년째 OECD국가 중 산재 사망률이 1위라고 해요. 경제 대국인 나라에서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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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세균전’에 ‘부산 폭로전’으로 맞선다

  • 기자명 선현희 기자
  •  
  •  승인 2020.07.17 18:38
  •  
  •  댓글 0
    •   
  • <h4 class="subheading"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875rem; padding: 0px 0px 0px 0.75rem; font-weight: bolder;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line-height: 1.25; font-size: 1.25rem; letter-spacing: -0.075em; border-left: 3px solid rgb(174, 174, 174);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18일 미군 세균전부대 추방을 위한 전국연석회의와 부산시민 원탁회의 열려</h4><article id="article-view-content-div" class="article-veiw-body view-page font-size17" itemprop="articleBody"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063rem; letter-spacing: -0.05em; margin-bottom: 5rem;">

    ‘부산 8부두 미군 세균전부대 추방하라’는 목소리가 전국에 퍼진다.

    오는 18일 미군 세균전부대 추방을 위한 전국연석회의와 부산시민 원탁회의가 연달아 개최된다.

    3시 전국연석회의에서는 미군 세균전 계획을 꾸준히 추적한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미군 세균전계획’을, 소파협정 전문가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미군 세균전계획과 소파협정’에 대해 발제할 예정이다.

    또한 부산 8부두 미군기지에 맹독세균샘플을 반입한 주한미군 사령관을 검찰에 고발한 것과 관련된 보고가 이뤄지며, 2015년 탄저균 밀반입을 겪은 경기도 평택의 단체대표를 통해 경험과 현황을 청취한다.

    이날 회의에서 오는 8월 15일 미 대사관 앞 항의 기자회견과 9월 UN총회 미국 제소 등 향후 투쟁계획을 확정하게 된다.

    7시 부산시민 원탁회의에서는 장마와 코로나19의 여파로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된다.

    회의결과는 ‘부산시민 원탁회의 결정문’으로 발표되며 ▲하반기 대규모 ‘추방 궐기대회’ 결의, ▲9월까지 주한미군 사령관 고발인단 1천인 모집, ▲풀뿌리 소모임까지 관련 교육 확대, ▲규모있는 선전홍보진행 등을 논의 의결할 예정이다.

    [세균전부대 추방 부산시민 화상 원탁회의 참가안내]

    장마로 인한 불확실한 기상조건과 코로나19 부분확산에 대한 우려에 따라, 7월 18(오후7시 백운포에서 개최 예정이던 부산시민원탁회의를 아래와 같이 화상(온라인)회의로 전환하여 진행됨을 알려드립니다.

     

    1. 소속단체로 참가신청하신분 자신이 속한 테이블 조장이 별도로 안내해 드린 회의장소로 오후 7시까지 모여주세요.

    2. 온라인으로 개인참가 신청하신분 오후 7시 노동복지회관 2층 대강당

    구글로 참가신청을 하신 개인에 한 함. (현장 참가자 접수는 없습니다)

    3. (참관유투브주소 https://youtu.be/LbonuZPX_vs

    </article><article id="article-view-content-div" class="article-veiw-body view-page font-size17" itemprop="articleBody" style="box-sizing: inherit; font-size: 1.063rem; letter-spacing: -0.05em; margin-bottom: 5r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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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여섯째 이야기, 사드 가고 평화 오라(2)

<정해랑 연재소설> 노동자 신돌석씨의 하루 (35)
정해랑  |  jhr13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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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8  01: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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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58년 개띠 노동자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잠시 쉰다는 것이 1년을 넘겨 버렸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도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완강하게 버티며 변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그보다도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소소한 일상을 통해 그려 보고자 합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

 

   
▲ [삽화-백소(白笑)]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앞 분수대로 가는 길을 가면서 신돌석씨는 촛불시위가 한참이던 2016년 겨울의 마지막 토요일을 떠올렸다. 그날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이 시위하는 군중에게 노상에서 음식을 대접하였다. 거기까지 오는 데도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0월 말부터 11월까지에는 경찰에 막혀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계속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전진했다. 그 과정을 보면서 신돌석씨는 이렇게도 역사가 진전하는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느꼈었다.

그렇게 시위 등의 압력과 합법적인 절차를 병행하는 전술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신돌석씨 주위에는 많았다. 특히 8-90년대의 거친 상황을 지나오면서 노동운동,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그래봤자 저들이 굴복하냐고 하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러한 전술은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있었다. 신돌석씨는 그것을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집단지성이 창출해낸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었다.

그때 불만을 말한 사람들은 막상 박근혜가 탄핵이 되자 별 말이 없다가 그 뒤 새 정부 들어서 적폐청산이 더디게 되자 다시 비판의 칼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그때 국회를 해산시켰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돌석씨는 그런 전략 전술에 대해서 명쾌하게 이야기할 지식도 부족하고 논리력도 없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그때 국회를 해산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었는데도 안 했단 말인가?

청운동 동사무소를 지나서 사랑채에 갔다.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서도 들어갈 때 발열체크를 하고 이름을 썼다. 나와서 보니 분수대 앞에는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11시 10분 전에 도착해서 한번 죽 둘러보았다. 작년에 했을 때 보았던 신천지 피해자 가족이라는 사람은 아직도 있었다. 동일한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딸이 집을 나갔는데 신천지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작년에만 해도 좀 황당하게 생각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신천지에 대해 보도가 많이 되면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11시 정각이 되자 장선우가 피켓을 들고 왔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전쟁의 불씨 사드 배치 문재인 정부 규탄한다’ 라는 구호가 적힌 것들이었다. 부근의 시민단체에 피켓을 갖다 놓고 매일 시위할 때마다 가지고 왔다가 가져가는 모양이었다. 보통 1인 시위는 1시간을 하는데 이번에는 두 시간을 하였다. 바람이 좀 세차게 불었다. 피켓이 자꾸 날아가려고 하였다. 그것을 꽉 붙들고 있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였다.

여기서 보면 촛불혁명 뒤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한눈에 보였다. 바로 옆에 여자 두 사람이 있었는데, 방위비 인상 반대와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사드반대와 가장 가깝게 느껴졌는지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역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참사피해 유가족들이 노란 점퍼를 입고 서 있었는데 7명이 와 있었다. 이곳에 터줏대감이라고 장선우가 소개한 사람은 전교조 조합원이었다. 교직에서 은퇴한 뒤 전교조 합법화를 요구하며 여기서 살다시피 한단다. 아예 의자를 갖다 놓고 가림막도 쳐 놓은 사람은 ‘이석기 전의원 석방’을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다 아는 주장들인데 조금도 진전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평소에는 잘 모르던 요구사항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돈 농가의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과 토지강제수용을 하지 말라는 요구도 있었다. KT 전 회장 황창규를 구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 1인 시위했던 사진을 내걸고 있었다. 억울한 관청 피해에 대해 호소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사람들의 피켓일수록 작은 글씨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제일 특이한 사람은 신돌석씨의 왼쪽에 있는 사람인데 라엘 오르그라는 프랑스인의 방한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말을 걸어오기에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후쿠시마에 있다가 오키나와로 옮긴 사람인데 1983년에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서 한국에 못 들어온다고 하였다. 오키나와에서도 주일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단다. 거기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가 UFO를 보았고, 그것이 후쿠시마 지진도 유발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1인 시위의 요구가 꼭 진보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를 우한 폐렴이라고 하면서 중국인을 막지 않은 문재인이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현수막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곳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들이 몰려와서 시위를 할 가능성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에 이곳에서 죽치던 성조기 부대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되면 정말 민주주의는 죽 쒀서 개 주는 것 아닐까?

장선우가 먼저 가고 남아서 1시까지 1인 시위를 하고, 피켓을 들고 다시 청운동 주민센터 쪽으로 나왔다. 피켓이 두 개를 이어 붙인 것이라서 들고 가기에 쉽지 않았다. 장선우는 한 정류장 정도 거리이니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는데 그것도 뭐해서 그냥 들고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보곤 하였다. 이전에는 부자들이 살던 동네였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이 사람들은 아마 정치적 구호에 꽤 익숙하리라. 온갖 시위가 다 이곳에 와서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 어딘가에 외할머니가 살았었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외삼촌을 여의고 며느리인 외숙모와 손주들과 사셨다. 주로 아니 거의 대부분 외할머니가 찾아왔지 신돌석씨 형제가 외할머니한테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신돌석씨에게는 항상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면서 어머니를 옥죄는 사람이라는 양면적 이미지가 있었다. 그 외할머니도 세상을 뜬 뒤에는 외숙모나 외사촌들과는 경조사 때나 보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사진을 찍고 나서 조금 있다 보니 상황실장이 왔다. 올 때마다 보는 사람이었다. 대구에서 평화와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인데 벌써 4년째 이곳에서 먹고 살면서 상황실장을 하였다. 처음 오던 때 그의 안내에 따라 기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달마산에 올랐었다. 걸어서 가기에도 좁게 보이는 산길을 그가 운전하는 경차를 타고 갔다. 어느 지점에 가서 내린 뒤 걸어 올라갔는데 그는 빨치산이 연상될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비탈진 산을 올라갔었다.

   
▲ [삽화-백소(白笑)]

사드가 배치되고 해가 바뀐 2018년 지방선거가 있던 6월 13일이었다. 신돌석씨는 장선우와 지역 문화 단체 활동가인 최운영과 함께 소성리에 내려갔다. 그때는 최운영이 가져온 차를 타고 갔다. 그래도 명색이 그랜저였는데 오래 되어서 기름값이 너무 많이 든다고 최운영이 투덜대었다. 그래서 좀처럼 타지 않는데 장거리를 가야 하니 몰고 간다는 것이었다. 지방선거라 공휴일인데도 길은 그렇게 막히지 않았다. 그래서 2시간 조금 넘어서 소성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전해에 있었던 기습 배치 이후에 매주 토요일에 김천역 앞에서 집회가 있었고, 소성리에서는 수요일마다 집회를 하였다. 수요 집회 주관을 공동행동에 소속된 여러 단체가 돌아가면서 하였다. 그날은 신돌석씨의 지역에서 하기로 했는데 막상 갈 사람이 별로 없어서 신돌석씨와 최운영이 가게 되었다. 집회를 주관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소성리 지역 대책위원들, 현지의 상황실과 원불교 성지 수호 대책위원들이 다 준비해 놓았다.

가자마자 집회에 참석하였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 커다란 차양이 쳐져 있었다. 들어서 옮길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주민들이 앞자리에 앉았다.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이 동네 할머니들이었다. 경북 지역의 개신교나 천주교 목회자 활동가들, 지역에서 평화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왔다. 집회에 참석한 인원이 40여 명 되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 동네는 100가구가 안 되고, 인구 수도 200명 안 된단다. 사실상 마을 주민 모두가 사드반대 투쟁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고 발언을 시켰다. 장선우나 최운영더러 하라고 했는데 굳이 신돌석씨가 가장 연장자니까 해야 한단다. 그래서 나가서 발언을 했다. 오늘이 지방선거 날이다. 지방자치를 잘 하자고 선거를 하는 날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반대하고 있는 사드를 왜 엉뚱한 동네 사람이 결정해서 하려고 하냐? 한 마디 묻지도 않고 이래도 되는 거냐고 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잘 한다고 박수를 쳤다. 장선우도 최운영도 말 잘 했다고 하면서 이제 기회만 되면 하란다. 신돌석씨는 손사래를 쳤다.

그날은 1박하기로 하고 가서 집회가 끝나자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교무의 안내로 원불교 성지를 둘러보았다. 원불교 사원이 있는 곳과 2대 종사인 정산송규종사의 생가는 좀 떨어져 있었다. 사드만 아니면 평온하기 그지없는 곳일 듯하였다. 신돌석씨 일행을 안내한 교무는 원불교 내에서도 사드 반대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성지를 수호한다는 뜻에서 출발했다가 이제 사드 배치 자체가 교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반대를 한다고 하였다.

저녁 5시 반이 되자 부대 앞으로 이동하였다. 마을회관에서 진밭교까지 10분 정도 걸었고, 거기서 부대 앞까지는 걸어서 가기에는 꽤 멀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돌석씨 일행도 걸어가다가 도중에 상황실장의 차가 와서 거기에 동승해서 갔다.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져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드 기지는 미군 기지임이 분명한데 우리 군이 지키고 있단다. 그것도 최정예부대의 하나라고 하는 특공대 장병들이 지킨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협정의 어느 조항에 우리 군이 미군부대를 지켜 주기로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상황실장은 이야기하였다. 법이나 규정이 별 소용이 없는 것이 한미관계인 것 같다.

원불교 교무의 사회로 진행된 집회는 낮에 있었던 집회와는 달리 참석한 사람들이 플랭카드를 들고 부대 앞에서 노래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참석한 사람 모두가 짧게라도 연설을 하거나 구호를 선창하였다. 오는 도중에 보았던 가지각색의 현수막에 적혀 있는 구호가 소리가 되어 나오는 듯하였다. 전국의 모든 운동단체들이 다 현수막을 내건 것 같은데 왜 저지할 힘이 되지는 못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집회를 끝낸 뒤에는 진밭교로 내려와서 공사하는 사람들의 차량을 막았다. 여기서도 약식으로 집회가 있었다. 집회가 끝날 때까지 차량에 탄 사람들은 기다렸다. 매일 있는 일이라서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경찰들은 그냥 보고만 있었다. 서로 암묵적으로 약속이 되었는지 약식 집회가 끝나고 그들을 향해 우리 민족을 위험에 빠뜨리고 미국의 이익만을 위한 사드기지공사를 하지 말라고 한 뒤 길을 터주었다. 일단 이 사람들은 명분상 사드기지공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지 내 장병들을 위한 편의시설 공사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밤에는 주민들이 마련해준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마을회관에서 잤다. 세 사람과 상황실장이 함께 잤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상황실장이 차려 준 아침 식사를 한 뒤 진밭교에서 하는 예배를 드리러 갔다. 아침마다 거기서 개신교 목사 집도로 예배를 본다고 하였다. 어제 저녁과는 달리 진밭교에는 경찰 수십 명이 와 있었다. 할머니들인 주민들 10여 명과 상황실장, 원불교 교무, 개신교 목사 그리고 거기서 잔 신돌석씨 일행 세 명이 전부였다. 경찰의 절반도 안 되는 수였다. 경찰을 보자 신돌석씨는 갑자기 긴장감이 느껴졌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찬송을 부르고, 목사의 기도가 있고, 설교가 있었다. 7시 40분쯤부터 차들이 오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에 퇴근한 사람들이 다시 공사장에 출근하려는 것이었다. 입구를 막고 예배를 보고 있는데 차들은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 7시50분이 되자 경찰 지휘관인 듯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입구를 열어 달라고 하였다. 신돌석씨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끝까지 막고 싸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켜 주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외부에서 온 사람이 싸우자 말자 하기도 뭣하였다.

원불교 교무가 귀띔을 해주었다. 그냥 일어설 수는 없고 경찰이 옮겨 줄 테니 거기에 몸을 맡기시라고 했다. 지휘관이 지시를 내리자 경찰 세 명이 일조가 되어 의자채로 들어서 옆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특별한 저항을 하지 않고 ‘사드 가고 평화 오라’라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 어찌 보면 형식적인 싸움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비참한 현실이기도 하였다. 저항을 해봤자 들려 나가는 것은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 [삽화-백소(白笑)]

상황이 종료되고 상황실장에게 물으니 공사를 우리가 막고 있다는 것을 아침 저녁으로 보여준다는 데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해는 되었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렇다고 신돌석씨에게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 말하기도 어려웠다. 예배가 끝나고 마을회관으로 돌아가서 쉬고 있는데 상황실장이 기왕 오셨으니 시간이 되면 달마산에 한번 가보자고 하였다.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사드 기지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란다. 그래서 그의 차를 타고 달마산에 가게 되었다. 상황실장이 운전하느 경차를 타고 마을 밖으로 나가서 산을 빙 돌아서 갔다.

그러다가 산길로 접어들었다. 경차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을 한참 올라갔다. 차를 세워 놓고도 걸어서 산길을 타고 올랐다. 세 사람은 상황실장을 따라가기가 힘겨울 정도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이럴 때 자주 나오는 말이 나왔다. 운동 좀 해야 하는데. 산에만 가면 중년의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산만 내려가면 다시 잊어버리고 음주에 찌들어 버리곤 했다. 상황실장은 산을 잘 타는 것뿐만 아니라 이 산에 아주 익숙한 듯 평지에서 뛰듯이 올라가다가 뒤돌아보고 기다려 주곤 하였다.

정상에 올라 너럭바위 위에 앉으니 정말 기지가 한눈에 보였다. 상황실장은 망원경을 들고 갔다. 매일 한 번씩 여기에 올라와서 상황을 체크한단다. 사진도 여러 장을 찍었다. 신돌석씨도 핸폰으로 몇 장 찍었다. 헬리콥터가 오르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반대쪽에 출입구가 없다고 한다. 출입구가 이쪽에만 있는데 우리가 막고 있으니 병사들의 부식 등을 헬리콥터로 나르는 것 같다고 한다.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기지 내 도로를 따라 차들이 이동하는 것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지된 느낌을 주었다.

달마산에서 본 기지는 정말 천혜의 요새였다. 어떻게 산 꼭대기에 그런 평지가 있는지 희한하게 느껴졌다. 롯데에서 이 땅 내놓기가 아까웠을 것도 같다. 어쩌면 더 큰 것을 받아내기 위해 알아서 준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쉽게 주기에는 아깝게 보였다. 원래 그 자리에 목장이 있었는데 롯데가 사들여서 골프장을 운영한 지 얼마 안 돼서 사드 기지로 낙점되었다고 한다. 상황실장이 망원경을 건네주면서 저게 바로 문제의 사드니 잘 봐두라고 하였다. 저게 무엇이기에 이 마을 주민들을, 우리 국민들을 괴롭게 하는 것일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코로나19 때문에 마을회관이 폐쇄되어서 어디서 묵고 있냐고 물었더니 상황실장은 웃으면서 소성리가 다 자기 집이라고 하였다. 대구에서 평화운동, 통일운동을 하다가 이곳에 파견되어 왔던 이 사람은 벌써 햇수로 5년째 여기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신돌석씨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 사람처럼 말없이 헌신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쉽게도 오늘은 대구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하였다.

점심때가 되니 할매들이 점심 먹기 위해 나타났다. 진밭교를 지키던 사람들과 할매들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장선우가 오늘은 마을회관도 닫히고 해서 빵으로 점심을 때우자고 했는데 뜻밖에도 갈비탕이 점심으로 왔다. 함께 둘러앉아서 갈비탕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이지만 여러 번 오니 낯이 익은 할매들도 많았다. 그 중 한 할매가 지난 번 경찰의 침탈 이야기를 하면서 성주경찰서가 괘씸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장선우가 술 마시다 간 날도 이 조그마한 동네에 무려 4천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고 하였다. 그것도 의경들이 아니라 기동대 소속인 듯 거구들만 모였단다. 순식간에 마을회관부터 통제해서 진밭교로 못 올라오게 하고, 진밭교에 이중으로 진을 쳐서 장비를 진출입시켰다고 한다. 분을 못 삭이며 이야기를 하는 할매는 지방선거 이기고, 국회의원 선거 이기면 뭐하냐고 하면서,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말을 몇 번씩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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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말리는 연장전 끝에 되살아난 오뚝이…이재명표 정치 날개달다

등록 :2020-07-16 16:21수정 :2020-07-17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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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하게 괴롭힌 모든 혐의서 벗어나
16일 경기도청 신관에 출근 중인 이재명 경기지사. 경기도 제공
16일 경기도청 신관에 출근 중인 이재명 경기지사. 경기도 제공

피말리는 연장전 끝에 이번에도 되살아난 오뚝이 정치인.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벌금 300만원의 당선 무효형을 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의 파기 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이 지사는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4가지 모든 혐의에서 벗어났다. 다시 한번 정치인으로 기사회생에 성공하면서 코로나19 대응으로 높아진 인지도와 지지도를 기반으로 대선가도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 지사는 지방선거 이후인 2018년 12월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공표 외에도 성남시 분당 대장동 개발 관련 업적을 과장하고, 2002년 검사를 사칭했던 전력을 부인했다는 공직선거법(허위사실유포) 위반 등 4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한 허위 사실 외에 나머지 3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1,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선 성남시장에서 경기도지사로 당선되면서 시작된 재판과 곧이어 터진 여배우 스캔들, 조폭 연루 의혹 등을 한꺼번에 받았던 지난 2년은, 이 지사의 말처럼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였다. 특히 여배우 스캔들은 대형 악재였다. 이 지사는 사건을 조사중인 경찰에 신체 감정을 요구한 뒤 거부되자, 자신이 직접 아주대 병원으로 이동, 의료 전문가와 언론이 참관한 현장에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내기도 했다.

숱한 고비를 넘겨온 이 지사지만 항소심 재판 이후 대법원 선고가 지연되면서는 “단두대에 올라간 심정”이라며 극도의 긴장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확정할 경우, 지사직 상실은 물론 여권 잠룡에서 추락하며 정치적 앞날이 불투명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지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수사·재판에 시달려왔던 이재명표 경기도정이 활력을 얻는 동시에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날개를 달게 됐다.

피말리는 송사 외에도 그의 삶엔 고난을 딛고 일어선 장면이 여럿이다. 경북 안동 출신의 이 지사는 가정의 어려운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성남 상대원공단에서 5년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산재로 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았던 이 지사는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고시에 합격,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당시 생활을 담은 책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에서 그는 “고통스럽고 혼란한 미래에 두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리틀 이재명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이후 시민운동가로 성남시립의료원 건립에 나섰으나 현실의 벽에 부닥치면서 정치의 길로 나선 이 지사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성남시에서 재선 시장을 지냈다. 당시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과 극복, 성남시 청년수당 등 3대 무상복지를 통해 점차 ‘변방 사또’에서 ‘스타 시장’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 지사는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 당시 문재인, 안희정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치면서 최종 후보가 되지 못했다.

다음해인 2018년 지방선거에서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를 24%의 큰 표 차이로 누르고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이 지사는 ‘억강부약’을 기조로 공정과 평화의 가치가 담긴 자신의 정책을 쏟아냈다. 경기도 청년수당의 지급과 경기도 내 하천 불법 시설물 일제 철거 등의 강력하고 신속한 정책 등이 그 예들이다. 특히 자타 공인 국내의 대표적인 ‘기본소득론자’인 그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명실상부한 대선주자급 정치인으로 체급을 늘렸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재난지원금 지급을 한 것은 물론, 집단 감염의 진앙지로 거론된 신천지 고발과 현장 점검 등의 강력하고 선제적 대처, 남북 간 대치 국면 속에서 대북 전단 살포 강력 대응 등을 통해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받아왔다.

이는 이 지사에 대한 지지도 상승으로 귀결됐다. 취임 직후 각종 의혹 등 악재에 시달리며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29.2%로 전국 17개 시도 단체장 중 꼴찌로 시작했던 그는, 지난달 조사에서는 71.2%로 1위에 오르는 등 드라마 같은 지지율 변화를 끌어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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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키워드로 본 이인영 후보자 통일관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 인도적 지원은 "꾸준히"... 북한인권법엔 "실효성 없다"

20.07.17 08:25l최종 업데이트 20.07.17 08:25l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밝은 얼굴로 출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로 출근하고 있다. 2020.7.6
▲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로 출근하고 있다. 2020.7.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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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이인영 후보자는 평소 북한과의 적극적 교류협력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이래 4선(17·19·20·21대) 의원인 이 후보자는 20대 국회 전·후반기 모두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에서 활동했고, 21대 국회에서도 외통위를 희망해 배정됐다. 민주당 남북경제협력 특별위원회 위원장, 남북관계 발전 및 통일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때문에 여권에선 이 후보자가 통일부 장관으로 취임하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본격 발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야당에서는 이 후보자를 가리켜 "과거 편향적인 대북관을 가졌던 분"(박진 미래통합당 의원), "그동안 행적을 보면 굉장히 북한에 편애를 많이 보였던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김기현 미래통합당 의원)고 공격하기도 한다.

이 후보자의 과거 발언과 저서, 발의했던 법안들을 중심으로 몇 개의 중심 키워드를 추린 다음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여다봤다.

[① 대북 인도적 지원] 정치·군사 상황 떠나 꾸준히
 북한은 지난 2019년 5월 4일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쏜 데 이어, 9일에도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두 차례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 당시 여당 원내대표였던 이 후보자는 남북·북미 대화 소강 국면에서 대북 식량 지원 카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후보자는 북한의 군사적 행동과 식량 지원은 별개라는 의견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2019년 5월 10일 이 후보자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지체 없이 인도적 지원을 해서 (남북) 서로의 신뢰를 강화하고, 또 그런 남북관계를 통해서 북미 관계가 개선되는 쪽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긍정적 기여를 해야 하는 때"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이 후보자는 현장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 문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흔쾌히 하겠다는 입장이었다"라며 "미사일 문제와는 별개로 식량 지원 문제는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북한의 소출 상황도 좋지 않고, 많게는 150만 톤의 식량이 부족하다고 한다"라면서 "어린이·산모·노약자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에 식량 지원은 인도적 차원에서 즉각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도적 교류와 협력'을 강조한 이 후보자는 관련 법안 발의에도 적극적이었다.

지난 2016년 12월에는 일관성 있는 대북 인도·협력사업 추진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남북한 간의 인도지원과 개발협력에 관한 법률안'은 대북 인도·협력사업을 정치·군사적 상황에 연계하지 않고 인도주의 원칙에 기반해 중립적으로 이뤄지도록 한다는 기본원칙을 법에 명시했다.

2019년 4월에 발의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2017년 9월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안'에선 각각 '남북 간 교류와 관계 발전에 필요한 사업'을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명시하고, 남북경협기업의 사업이 경영 외 사유로 중단됐을 때 보상 범위를 넓히는 조항을 넣었다.

다만 이들 법안은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대부분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② 북한 미사일] 합의 위반, 도발은 이제 그만

이인영 후보자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지난 2019년 5월 10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북한의 발사체 발사가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보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는 정신적으로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법률적으로는 위반이냐 아니냐를 따질 수 있겠지만, 정신적 측면에서는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합의의 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군사적 행동은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북미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는 데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북한이 더 이상 도발적 행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③ 대북전단] 접경지역 주민에 위협이자 피해 
 
박상학 대표가 북한에 보낸 전단 박대표가 북한에 살포한 전단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세습수령절대독재를 위해 형님(김정남)까지 독살한 희대의 악마, 인간백정'이라고 규정했다.
▲ 박상학 대표가 북한에 보낸 전단 박대표가 북한에 살포한 전단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세습수령절대독재를 위해 형님(김정남)까지 독살한 희대의 악마, 인간백정"이라고 규정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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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쟁점이 된 적이 있었다. 2016년 9월 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대북전단 살포의 적합성 유무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개진했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중 대북전단 살포행위 규제를 협력법으로 규율하는 것을 놓고 정부·여야의원들의 입장이 엇갈렸던 것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은 대북전단 살포를 법으로 금지할 경우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이에 대해 이인영 후보자는 외통위 회의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해당지역 주민에게는 명백한 위협이고 재산상 피해가 있을 수 있다"라며 "정부와 통일부는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30일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대북전단 살포행위 등 남북합의서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하고, 미수범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해 사전적 차단조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21대 국회 첫 번째 법안으로 발의했다.

개정안에서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확성기 방송행위, 시각매개물 게시행위 및 북한 전단 살포행위 등 남북합의서에 위배 되는 금지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후보자는 12명의 민주당 소속 외통위원들과 함께 이 법안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④ 북한인권법] 실효성 없다, 북한 개방이 더 현실적

이인영 후보자는 북한인권법에 대해 "미국, 일본의 북한인권법과 같이 한국의 북한인권법은 압박 수단일 뿐 실효적이지 않다"라면서 "북한을 압박 및 고립하는 정책은 그동안 효과적이지 않고 실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2011년 12월 김재원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펴낸 <진보 보수 마주보기>에서 "법의 실효성이 있어야 하는데, 남한에서 북한인권법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북한에서 실효성이 없지 않나요. 미국의 북한인권법이든, 일본의 북한인권법이든 모두 일종의 북한 압박 수단이지 그 법 자체가 실제로 북한의 인권을 증진시키는 실효적인 지배력은 없지 않을까요"라고 꼬집었다.

이 후보자는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북한과 소통하고 문호를 열어서 북한 사회 전체에 변화가 생기도록 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같은 책에서 "'(우리가 북한 인권을 개선하자는) 말을 하는 것까지도 인색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사실 저는 그것조차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라며 "북한 인권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으면서도 북한 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어 동반해 간다고 하면 당연히 그리 가자는 것이죠"라고 주장했다.

[⑤ 한미워킹그룹] 독자 추진 가능한 일 하겠다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 사진은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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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워킹그룹은 지난 2018년 11월 남북 교류협력 사업 관련 대북 제재 면제를 효율적으로 협의하기 위한 채널로 출범했지만, 실제로는 북미 비핵화 협상보다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앞서나가지 못하도록 막은 측면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상 한미워킹그룹의 제재 면제 '승인' 없이는 철도·도로 연결, 이산가족 화상 상봉, 양묘장 건설,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 사업 등 남북 정상이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합의한 사안들을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인영 후보자는 지난 6일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이 차려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할 수 있는 일과 우리 스스로 판단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면서 "(대북)제재 자체가 목적이 아니므로 창의적 해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라면서 "우리 입장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남북 간의 대화와 북미 간의 대화가 끊기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한미간 대북정책 조율 기능을 담당하는 한미워킹그룹의 틀을 벗어나 통일부가 독자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독자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오는 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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