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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 stopcrackdown.net에서 아낰과 매닉의 "근대성" 에 관한 대화이다. 후man이라는 이주노동자 안티사이트에서 온 사람이 어떻게 하면 논리를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지지쪽으로 몰고갈까 하는 매우 나이브한 방해로 중간중간 끊기긴 했지만, 나름대로 나에겐 중요한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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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낰의 글
저는 일단은 이주노동자의 소득 증진이라는 측면에서의 한시적인 무역을 생각하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것 또나 지적하고 싶습니다. 당장 군단위만해도 자립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군단위의 인구 약 5000에서 2만먕 정도의 인구면 충분히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공동체를 만들수 있다더군요. 그리고 외국에서 혹시나 웹을 통해서 아는 친구가 자신이 만든 공예품을 선물한다면 그건 무역이라기 보다는 기부행위라고 봐야 겠지요. 그게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요. 그것은 전지구적인 네트워크의 구추과 지역적인 행동이라고 말하는 거 같기도 합니다. 이탈리아나 중국 대리의 값비산 대리석들이 이 자그마한 공동체에 필요하지 않다고 보지요. 그보다는 공동체 근교의 산에서 나오는 황토가 훨신 집짖기에 좋은 소재이고 아름답기 까지 합니다. 모두가 대리석을 선호하는 건 곧 다양성을 훼손하는 일은 아닐까요. 그리고 적송은 예전부터 궁궐의 소재로 스였지만 요즘은 수입산 미송이 대체로 건축 자제로 쓰이나 봅니다. 이또한 문제라고 봐야지요. 다른예는 국게 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칼로리 량은 놀랍게도 서사모아 인은 섭취했다고 하지만 유럽의 빈민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그러니 문명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발전해 왔는가에 관해서 다시한번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자동차를 타고 멀리 간다는 것 만큼이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자건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에서 보여주는 미세한 세계의 다양성을 발견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요. 머 잘아시리라 생각하지만 근대성이 가져다 준 가치나 고대부터의 상업주의가 가져다 준 이른바 계량적 합리성의 가치에 대한 재고를 해볼 필요 또한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이주노동자의 문제 또한 돈을 위해 이주할 것이 아닌 자신의 공동체를 어떻게 다져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가치 이전이 필요하다고 보지요. 자본의 이동의 자유 만큼의 이주노동자의 이주의 자유를 보장하라라는 말은 먼가 근대성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예는 사빠티스타가 왜 원시림으로 들어가서 자립과 자치를 선언하고 그것을 반대하는 맥시코 정부와 싸웠는지에 대한 일고찰을 하시면 쉽게 이해하리라고 봅니다.
매닉
그리고 아낰,
"자본의 이동의 자유 만큼의 이주노동자의 이주의 자유를 보장하라라는 말은 먼가 근대성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말은 "함정"이라는 말의 어감밖에는 느낄 게 없군요. 함정이 아니라 근대성을 어쩔 수 없이 "통과"하는 겁니다. 지금 아낰의 입장도 '근대화'를 통과하는 과정속에서 나온 거라는 거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낰
매닉 맑시즘적인 착오를 범하고 있군요. 결국 매닉 또한 생산력론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있었던 논쟁이자 맑스를 고민으로 몰아 넣었던 논쟁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맑스의 만년에 러시아의 혁명가들이 맑스를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하더군요. 과연 러시아 처럼 생산력이 낮은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과연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에 대해서 맑스는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엥겔스는 여전히 사민주의적인 방식으로의길을 모색햤던 것 같고요. 카우츠키와 플라하노프 역시 이러한 엥겔스의 길을 따라 던 듯 합니다. 단지 레닌과 트로츠키 만이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지요. 이른 바 약한고리론이라는 것을 매닉 또한 잘 알고 있으리라고 봅니다. 어째거나 인구의 90%가 농민인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연방이 만들어 지고야 말았지요. 그리고 레닌은 급격한 국유화를 시작하였나 봅니다. 그리고 레닌은 포디즘에 대한 사회주의적 이용가능성과 집단적인 생산의 전망을 내놓을 뿐 아니라 컨베이어 시스템을 대거 도입했나 봅니다. 화폐관계는 잠깐 폐지 되었다가 다시 복구 되었나 보고요. 그리고 생필품에 대한 배급경제와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멸령경제가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전국적 단위의 생산 소비 교환 분배 관계에서의 러시아 공산당은 무소불위의 권위와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또한 잘 아실 것이리라고 봅니다. 자 러시아는 다른 길을 갔지요. 관료 독점의 길 말이지요. 그리고 이 관료들은 근대화를 서구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았난 봅니다. 이 방식은 제3세계 국가 즉 개발 도상국가가 공통적으로 취한 방식 즉 국가 주도형의 개발론으로 안착되기 시작했지요. 물론 이 과정에서의 부패는 만연한 사회문제가 되었으며 러시아에서 또한 관료의 부패는 똑 같은 사회문제로 대두 되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점에서 이 관료들의 부패와 공산당의 이념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는 마지막 케인즈주의의 개발 독재의 시험장이라고 하는 중국 관료 들의 부패상을 보면 쉽게 이해되시리라고 봅니다. 이들 제3세계의 주변부 국가 종속적인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가 혹은 약한 고리에 걸려 있는 국가들은 공히 중화학 공업 우선 정책과 군비 강화정책을 쓴것 또한 잘 아시리라고 봅니다. 북한의 강성대국이라는 구호는 이러한 구사회주의권의 관료들의 의지를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자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과연 산업화가 안되었다면 그것이 필연적인 통과의례라는 당대의 생산력론이라는 시각을 넘어 섰다면 과연 러시아등의 민중들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였을까. 그것인 브레즈네프 체제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나서 고르바초프에게서 터 져 나옵니다. 인류의 공동의 과제를 당파성 보다 우선시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기후 온난화 숲의 파괴 등의 생태 환경의 문제를 당파성 보다 우선시 하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라는 사회정의의 구현이라는 공동의 과제를 우선시 한다는 선언으로 외현되기도 하였지요. 마르크스가 만년에 미르라는 러시아의농업 공동체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은 매닉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봅니다. 과연 러시아가 국가 관료 당관료 중심의 사회주의 종주국을 향한 혹은 사회주의적 패권주의를 향한 근대화 산업화를 하지 않고 미르 식의 공동체적 발전과 지금의 생태 공동체적인 발전의 길을 갔다면 하는 역사적인 가정을 들어 봅시다. 지나친 권력과 생산수단에의 국가 독점의 길이 아닌 지역의 자립 기반의 강화민 소비에트 연방 내의 모든 민족의 자립 기반의 강화 쪽으로 길을 걸어 갔다고 생각해 봅시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에서의 이러한 시도가 있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중국은 다른 형태의 개발주의 성장지상주의의 길을 가고 있으며 세계의 패권을 향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동북 공정은 이러한중국 공산당의 야심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고 티벳 문제나 대만문제 신장의 문제 등등은 이러한 중국 공산당의 야심을 보여주고 잇는데 러시아 공산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북한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 시도는 유로 꼬뮤니즘인데 이른바 68 혁명의 공장 점거 운동 풀뿌리 자치 운동 지역 공동체 운동 탈국가적이자 탈 자본주의적이니 자립 자치의 운동 등등을 들수가 있고요. 그 다음 이러한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인도이 소공동체들 ,일본 유럽등지의 소 공동체운동들 ,그리고 사파티스타라고 하는 자립 자치를 지향하는 인디오 공동체 운동들, 한국의 두레마을 가나안 농군학교들의 공동체운동 녹색대학 한녹 복구회 한살림등의 생태 공동체 운동들, 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운동들은 전반적으로 근대화 성장과 개발 독재라는 생산력 우선주의적인 등소평과 스탈린의 태도를 극복한 운동들이며 이른바 근본 생태주의 심층 생태주의적인 운동들이라고 봐야 맞을 것이겠지요.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러한 운동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 같지요.
각설하고 근대성은 통과의례가 아니다라는 점은 맑스이 자본론에서의 원시적 축적 본원적인 축적이라는 챕터만 보셔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핸리 5세의 유민법이라는 폭력적인 입법의 결과이며 엔클로져라는 자본의 폭력적인 방식의 결과이자 일본의 식민지에서의 곡물 수탈이라는 폭력적이 수탈의 결과이지 절대 목가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아실 것이리라고 봅니다. 이것은 경제 외적 강제로 부터 경제 내적 강제로의 전화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슬럼은 근대화의 결과이지 애초부터 슬럼으로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아니지요. 이 과정에서는 소농 혹은 채집 경제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일종의 소외와 열등감의 조장이라는 기독교과 근대 교육 및 미디어의 선동의 결과라는 것 또한 잘 아실 것입니다.
매닉 또 하나는 생태적으로만 봐도 근대화는 통과의뢰이다라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 발상이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을 정당화 시키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니다. 러시아와 똑같이 식민지 국가는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 할때까지 제국주의의 수탈이라는 지옥을 견뎌야 한다는 맨새비키류의 오류에 빠지고 마는 것이기도하지요. 붕면 공동체적 자립의 길이나 농업 기반으 강화와 경공업 생필품 위주의 자립적 발전의 갈과 가내수공업 및 소농 기반의 경제발전 전략이라는 가능성에 대한 포기로 다가 오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들 작은 것들은 아래로 부터의 전통적인 상호부조의 경제 사회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으며 수천 년 동안 이어온 바로 이러한 경제 사회적인 공조의 시스템을 깬 것이 서구자본주의라는 것은 이미 오래된 미래 라다크에서 들어 났고 네루의 세계사 편력에서 또한 뱅갈 문제를 이야기 한 부분에서도 나옵니다. 그것은 간디의 스와힐리 운동의 이론적인 정식화로 이어진 것이라고 봐야 할 듯하고 이는 비동맹국가 라는 수평적인 국제연대의 결과로 나타 나기도 하였답니다.
매닉의 통과의례라는 근대화에 대한 숙명론은 정부로 들어 가자 마자 곧바로 자본의 먹이가 되어 버린 낼슨 만댈라와 룰라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국가 단위의 운동 보다는 지역 공동체 단위의 꼬뮨적인 지향성 대항 국가나 대안 국가적인 지역 공동체적인 발상으로 부터 출발하여야 하며 이것은 곧 바로 꼬뮨적인 체제나 시스템으로 전화하지 않고서는 싶게 자본의 먹이가 될 것이며 다수의 미시적 저항단위의 수평적인 연대라는 공동체적인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되고 이것은 공동체를 향한 게릴라적인 길 기동전이라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 각성되 다중이지요.
그러니 꼬뮨을 향한 투쟁은 자치투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경제투쟁에서 단련되 부위들은 빠르게 이 다수의 자치 투쟁의 단위로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 점에서 한국와 외국노동자간의 구분은 없어 진다고 봅니다만..
매닉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한 "통과"의 의미는, "통과의례"라거나 "통과해야한다"의 당위론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었고, 모든 이즘이든 근대에 태어난 이즘은 근대화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반응"한 이즘들, 근대에 대한 이즘들이라는 맥락에서 그렇습니다. 그것이 적극적으로 근대를 끌어안든, 끌어안고 싸우든, 밀쳐내든, 도망치든... 말입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며 전 지구가 겪게 되는 근대화, 산업화, 식민화, 서구화의 과정 그리고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후기 자본주의 혹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이러한 자본주의의 고도화에 이르면 더 이상 식민지 아닌 것이 없고, 더 이상 "자연"이라 부를만한 것도 없어지게 됩니다. 심지어 우리의 몸과 정신 하나 하나 까지 쪼개고 수량화되어 시장경제 체제의 판매/구매 단위가 됩니다. 그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소외되지 않은 어떤 삶을 원하게 되고, "어머니 자연"과의 합일감을 얻기 원합니다. 이러한 욕망이 때로는 상품화되어, 동남아 관광, 오지 탐험과 같은 관광 상품이 되어 더욱더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악순환을 낳기도 하고, 또 스스로 생태적인 삶을 일궈 나가는 귀농공동체가 생기고 거기에 기반하여 저항이 자라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초근대적 욕망 또한 근대를 통과하면서 나타나는 반응들이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반응의 총체를 일컬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합니다만, 근대 이후, 혹은 근대를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을 기술하려는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대부분 근대 재해석에 뛰어듭디다. 그러나 대부분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도 서구, 도시, 백인, 산업화된 나라 출신이며 그들이 몸담고 있는 경제, 문화, 사회 체제를 재현 혹은 대변한다는 한계, 혹은 의도적인 정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초근대성을 서술하며 빌려오고 있는(혹은 전유하는) 각종 비근대적 이미지, 요소들은 그들 자신의 초근대적 욕망의 거울에 굴절되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굴절이 꼭 나쁜 거라고는 볼 수 없다고 봅니다. 그들 자신의의 정치적, 문화적 지형에서 생겨난 산물로써 때로는 해방담론으로도 기능하니까요. 예를 들어, 유럽에서의 마오이즘이 그렇고 아나키스트 씬에서의 사파티스타 민중봉기가 그렇습니다.
예전에 명성 들머리에서 보았던 다큐멘터리에서 이주노동자 한 명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이 분이 말하길, 한국 사람은 "방글라데시에는 TV도 없는 줄 안다."고 하며 우릴 바본인줄 안다라고 한탄합디다. 또 예전에 네셔널 지오그라피에서 봤던 자연 다큐였는데, 너무 아름다운 남미의 정글, 그 속에서 낚시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꿈과 같은 광경이었습니다. 이 다큐는 분명 미국과 유럽 그리고 몇몇 '선진' 산업국들의 시청자를 타겟으로 하고 있겠지요. 다큐 말미에 그곳 어린 아이와의 인터뷰 씬이 잠깐 나오더군요. 커서도 계속 이곳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에, 아이는 아버지는 그러길 바라시지만, 여기는 너무 지겹고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대답하더군요. 초근대적 욕망으로 접근하고 있는 카메라의 시선이 바로 근대적 욕망을 캡쳐합니다. 대안달거리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대를 통과한 여성들에게 대안달거리대는 "대안"입니다.
마리아 미즈같은 에코페미니스트에 따르면 근대화를 통한 따라잡기 개발의 신화는 시골/도시, 여성/남성, 유색인/백인, 남/북을 분리 지배하기 위한 백인 남성의 지배전략이라고 진단합니다. 왼쪽이 오른쪽을 왜 따라잡을 수 없는지, 또 왜 따라잡으려고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지를 조목조목 따집니다.(<에코페미니즘>참조) 동시에 북의 초근대적 욕망이 어떻게 남에 투사되고, 그곳을 파괴하고 착취하는 지를 보여주며, 초근대적 욕망은 자기 안에서 먼저 이루라고 조언을 하더군요. 그러니까 초근대적 욕망이 근대적 욕망같이 외부 식민지로 모든 비용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자동차를 타고 멀리 간다는 것만큼이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에서 보여주는 미세한 세계의 다양성을 발견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요."
위와 같은 즐거움은 초근대적 욕망의 일례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욕망이 자전거 등을 개조해서 만든 택시나, 한국에서 수입한 다 낡아버린 중고 버스 등을 털털거리며 타고 다녔던, 혹은 차가 없어 웬만한 거리는 매일 걸어서 다니던 이주민에게는 어떠한 울림을 가질 지는 미지수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주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안티들은 '황금에 눈이 어두웠다'는 표현을 쓰더군요) 이주하기도 하지만, 이미 자국에서 초국적 자본에 의해 삶의 뿌리가 뽑혔기 때문에 오기도 합니다. 돌아가지 않는 게 아니라, 돌아 갈 수 없어서 있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여기 스탑크랙다운 사람들은 이주노동자운동을 단순히 노동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반자본주의 차원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겁니다.
제 얘기가 맑스주의에서 나온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맑스는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 대해 죄가 있다"는 명제를 잊지 않게 해주는 훌륭한 인식의 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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