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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 미즈타후, 히모리, 나카지마

  • 등록일
    2009/03/09 16:58
  • 수정일
    2009/03/09 16:58

어제 돕이 알려줘서 알았다.

빈집에 나카지마의 친구가 와 있으며,

미즈타 후 상이 아프다는 사실을.

그래서 부랴부랴 언니가 보내준 한라봉과 천혜향(흐미 이 귀한 것슬)을 싸들고

빈집으로 향했다.

빈집은 비어있고 (처음 본 빈 빈집)

옆집에 여성들이 왁자지끌 모여 수다를 떨고 있네.

그리하여 한라봉과 천혜향은 그녀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여튼 맛있게 먹으니까 기분 좋더라.)

 

나중에 빈집에 다케시씨를 비롯한 고노와 일본인 친구들이 왔는데,

몇몇은 한국말을 잘하고 몇몇은 못하고.

이럴때만 일본어 공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나.

하지만 손짓, 발짓, 어설픈 일본어와, 고노다이스케 사전을 이용해서

대강 의사소통은 되더라.

다케시는 혹시 몇년전에 억수로 더운 날 나카지마와 함께 온 7명의 아나키스트 무리 중

하나일까 생각도 했는데,  그날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날씬한 체구의 살짝 펑크스런 느낌, 짙은 쌍커플이 인상적인

참 매력적으로 생긴 젊은이였다. (ㅎㅎ)

 

너 얘 아니, 재는 아니, 하면서 인맥조사도 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잠깐 얘기도 하다가

후 상이 아프다는 얘기로 이어지고,

빈집을 떠날때 후상에게 전하는 나의 메시지를 동영상기능이 되는 카메라에 담았다.

 

후상, 마니꾸데스. (후상, 매닉이에요)

겐키니 잇데 쿠다사이. (건강하게 계세요)

아토데 아소비니 이키타이데스카라  (나중에 놀러갈고 싶으니까요)

사요나라 (안녕히 계세요)

 

후상에 대한 기억은, 2001년 그 무덥던 여름날,

오사카의 집에 놀러가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할아버지와 나, J, 윤, 정, 김 등 몇명의 아나키즘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존경해마지 않는 '폭력론 노트'의 저자이자 아나키스트인 무카이 코를 만나러 갔었다

(무카이 코는 몇년 전 고령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무카이코와 함께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이가 무카이코의 나이어린 파트너 미즈타 후상(당시 50대)과,

무카이 코와의 대화를 방해한다며 할아버지로부터 타박을 들었던 무카이 코의 광팬 히모리씨였다.

히모리씨는 댜음해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이스라엘 철수를 부르짖으며 어느 공원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히모리씨의 유서 --> http://www.dopehead.net/board/view.php?id=dmz&page=1&sn1=&divpage=1&sn=off&ss=on&sc=off&keyword=모리&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6 )

 

나카지마는 그중 유일한 젊은이에다, 해사하게 생긴 꽃미남이었기에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몇 년 후 나카지마가 한국에 왔을땐  거의 40이 다 된 그의 모습에서

해사한 꽃미남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였지만 (어우 야, 난 너무 얼굴만 보나 봐)

그날 밤 오사카의 아파트에서 나카지마가 입은 일본식 가운(파자마라고 해야하나)이

바람에 살랑이던 모습이 강하게 인상에 남아있다.

그는 무카이코, 미즈타후에겐 거의 '가족'과 같은 존재로, 무카이코가 예전부터 만들어온

아나키스트 소책자인 "흑"의 편집을 맡고 있었다. 물론 글쓴이로도 활동하면서.

미국, 특히 서부연안 아나키스트, 밥블랙이니 존저잔이니 하는 이들의 논쟁과 논객들을 다룬 특별판은

나에게도 보물 1호 중 하나였다. ('과거'형이던가 - -;)

 

미즈타 후는 18살 무렵 조그만 마을에서 무작정 상경을 하여

당시 반전운동을 하던 오다마코토([전쟁인과 평화인가]의 저자,  녹색평론) 의 사무실을 찾아가

무조건 여기서 일하고 싶으니 날 좀 써달라며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다 무카이코를 만나고 둘은 생의 반려자이자 동지가 되었다.

 

그녀의 콧소리 섞인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뽀얀 피부 (나보다 더 좋더라 헐),

특히 신기한듯 쳐다보는 소녀같은 동그란 눈동자가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경험과 연륜에서 나온 지성과

경험과 연륜에도 불구하고 넘쳐나는 천진난만함과

권위에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당돌함

이런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울려보이는 인물을 만나기란 흔치 않을 거다.

 

미국이 이라크에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의 편이냐 우리의 편이냐를 전 세계 에 강요할 때,

후는 폭탄테러를 저지른 소녀의 일화 속에서

소녀를 둘러싼 '폭력적 세계'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 하며

자신은 결단코 '테러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했던 그 글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그분이 아프다는 말에 가슴이 아팠다.

세계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인 되는 사람이 있다.

할아버지와 미즈타 후상이 그런 인물들인데,

나는 그들에게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싶은 후회가 밀려든다.

다케시가 갈때 조그마한 마음의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은데, 언뜻 떠오르는 게 없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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