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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20
    [펌] 범죄의 신화(1)
    손을 내밀어 우리
  2. 2004/08/06
    7월...(1)
    손을 내밀어 우리
  3. 2004/08/05
    [흔적] 블로그...
    손을 내밀어 우리
  4. 2004/07/30
    어떤 교육요청...누가 도움말씀 좀 주셔요.^^
    손을 내밀어 우리
  5. 2004/07/29
    [환영] 작은나무
    손을 내밀어 우리
  6. 2004/07/27
    비정규직 연구원의 편지(8)
    손을 내밀어 우리

[펌] 범죄의 신화

...지난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펴낸 보고서 ≪살인범죄의 실태에 관한 연구(Ⅱ)≫를 보면, 살인 사건 피해자 가운데 우연히 만난 모르는 사람에 의해 희생된 경우는 9.8퍼센트에 불과했다. 살인 사건의 70퍼센트 이상이 부모, 배우자, 형제, 자녀, 친척, 애인, 친구, 이웃 등이 저지른 것이었다. 강간 사건 역시 대부분 잘 아는 가까운 관계에서 저질러진다. 이런 양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의 특징이다. 폭력성 범죄가 주로 낯선 자에 의해 일어난다는 얘기는 범죄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신화일 뿐이다. ...따라서 주류 언론들이 주문하는 범죄에 대한 경찰의 강경 대처와 인력 확충 따위는 결코 범죄 예방책이 될 수 없다. 실업이 넘쳐나고 해고와 임금 삭감, 복지 축소가 자행되는 상황에서 ‘범죄 근절’은 연막탄일 뿐이다. 경찰 인력과 장비 등 범죄 통제 예산은 갈수록 증가하는데, 왜 범죄는 갈수록 증가한다는 말인가. 범죄 신화에 가려진 범죄의 사회적 근원 ― 실업·빈곤·억압·소외 등 ― 에 맞서 싸우는 것이 진정한 범죄 예방책이다. <다함께> 제37호에서 퍼왔습니다.


범죄의 신화 정진희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에 뒤이은 경찰 피살 사건은 범죄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부르주아 언론은 일제히 “묻지마 살인”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도 “상대적 박탈감과 여성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을 품은 남성들이 여성들을 겨냥해 무차별적이고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강력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며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가 ‘반사회적’ 개인들의 화풀이에 희생당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은 명백한 과장이다. 정부의 범죄 통계에서 범죄는 전체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살인 범죄 증가율은 미미하다. 대검찰청의 범죄 통계인 ≪범죄분석≫을 보면, 2002년 인구 10만 명 당 살인범죄 발생건수는 2.1건이다. 이것은 범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64년의 1.8건, 1965년 2.0건에 비해 거의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살인 사건은 부르주아 언론이 가장 빈번하게 보도하는 범죄이지만,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은 편이다. 살인이 형법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18퍼센트에 불과하다. 살인, 강간, 강도, 방화, 폭행 등 강력범죄는 재산범죄보다 더 적게 일어난다(36.7퍼센트 대 52.1퍼센트, ≪범죄분석≫, 2003). 그런데 공식 범죄 통계는 폭력성 범죄 비중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공식 통계는 실제 일어난 범죄가 아니라 경찰에 신고된 범죄만을 집계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가벼운 범죄보다 ‘강력 범죄’를 더 자주 신고하는 경향이 있다. 경찰에 신고된 범죄가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집계하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범죄피해조사(≪한국의 범죄피해에 대한 조사연구(Ⅳ)≫, 2003)를 보면, 절도 사건의 비중이 강도 사건보다 훨씬 높다. 한 해에 살인 사건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는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 수(인구 10만 명 당 16.9명)나 자살자 수(19.1명)보다 적다(2002년 통계청). 더욱이 연쇄살인 사건은 그야말로 희귀하다.(바로 이런 희소성 때문에 연쇄살인 사건이 그토록 언론에게 ‘보도 가치’가 큰 것이다.) 우리 나라 범죄의 주된 양상이 ‘선진국형’ “묻지마 살인”(무동기 살인)으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부풀리기다. 선진국이든 우리 나라든 살인 사건의 대다수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 친척, 애인, 친구, 이웃 등 잘 아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다. 속임수 지난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펴낸 보고서 ≪살인범죄의 실태에 관한 연구(Ⅱ)≫를 보면, 살인 사건 피해자 가운데 우연히 만난 모르는 사람에 의해 희생된 경우는 9.8퍼센트에 불과했다. 살인 사건의 70퍼센트 이상이 부모, 배우자, 형제, 자녀, 친척, 애인, 친구, 이웃 등이 저지른 것이었다. 강간 사건 역시 대부분 잘 아는 가까운 관계에서 저질러진다. 이런 양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의 특징이다. 폭력성 범죄가 주로 낯선 자에 의해 일어난다는 얘기는 범죄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신화일 뿐이다. 경찰은 “치밀한 범죄”, “범죄의 지능화” 운운 하지만, 살인 사건을 포함한 폭력성 범죄의 대부분은 절망에 빠진 개인들이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서 저지르는 ‘우발적’인 것이다. 살인 범죄의 검거율이 다른 범죄보다 검거율이 월등히 높고 검거 기간도 짧은(75퍼센트가 하루 이내에 체포) 것은 이 때문이다. 부르주아 언론의 범죄 보도는 언제나 사건의 원인보다 범죄 행위 자체와 범인의 행적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 열을 올린다. “쇠망치 살인의 충격” “엽기적” “한니발 렉터를 꿈꿨다” 따위의 자극적 문구를 표제로 뽑는가 하면, ‘전문가’들을 등장시켜 범죄자들의 ‘이상 심리’를 분석하기도 한다. 이런 선정적 보도 행태가 단지 돈벌이에 유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인의 행위나 심리에 초점을 두는 부르주아 언론의 보도 방식은 범죄의 사회적 근원을 감추는 데 이바지한다. 신문과 방송에 등장하는 범죄 ‘전문가들’이 하는 구실도 이것이다. 근래에는 범죄의 원인을 범죄자의 뇌 구조에서 찾는 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온갖 전문 과학 용어를 써가며 “살인을 부르는 유전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는 범죄자의 ‘유전적 취약성’을 제기하는 신경과학연구자의 글을 실었고, ≪시사저널≫은 범죄의 원인을 유전자에서 찾는 서구 연구들을 소개했다. ≪시사저널≫은 서구의 실험 결과들을 인용해 “뇌파 검사를 해 보면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은 정상인보다 비정상적 전기 신호가 더 많이 나타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범죄를 유전자 탓으로 돌리는 ‘과학’ 연구는 죄다 속임수다. 폭력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았다는 실험 결과를 믿는 것은 신을 봤다는 얘기를 믿는 것과 같다. 무엇이 범죄인가 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들 과학자들이 대량 학살을 저지르는 부시 일당들의 뇌파를 검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파업 노동자들을 두들겨패는 경찰들과 이들을 지휘하는 지배자들의 뇌파도 검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유전자를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가? 범죄의 근원은 개인의 심리나 유전자 따위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사회적 원인을 갖고 있다. 많은 연구는 인명과 재산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정도의 온갖 범죄가 결국 경제 상태와 관련돼 있음을 보여 준다. 1971년에 유엔 사회보호연구소(Social Defense Research Institute)는 경제 불황이 모든 형태의 재산범죄와 다른 형태의 “사회적” 범죄를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공식 통계에서도 범죄의 뚜렷한 증가는 IMF 공황 이후부터다. 실업과 빈곤은 범죄를 낳는 주요 원인이다. 가난은 대중의 삶을 갈기갈기 찢는다. 그들의 인간관계는 무너지고, 대중이 느끼는 소외감은 깊어진다. 빈곤과 소외에 따른 절망과 좌절감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범죄로 내몰린다. 따라서 주류 언론들이 주문하는 범죄에 대한 경찰의 강경 대처와 인력 확충 따위는 결코 범죄 예방책이 될 수 없다. 실업이 넘쳐나고 해고와 임금 삭감, 복지 축소가 자행되는 상황에서 ‘범죄 근절’은 연막탄일 뿐이다. 경찰 인력과 장비 등 범죄 통제 예산은 갈수록 증가하는데, 왜 범죄는 갈수록 증가한다는 말인가. 범죄 신화에 가려진 범죄의 사회적 근원 ― 실업·빈곤·억압·소외 등 ― 에 맞서 싸우는 것이 진정한 범죄 예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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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아침, 냉장고에서 유효기간을 막 넘기고 있는 장조림용 홍두깨살을 발견하고는 뜬금없고 새삼스럽게 7월을 되돌아본다. 31일에서 주말과 주일 9일은 빼고 나머지 22일 중에서 대전에만 머물러 있었던 날은 1, 2, 5, 7, 15, 16, 27, 28, 8일에 불과하구나. 창원과 광주와 일산 사이에 빗금을 쳐서 다각형 하나 만들 정도로 여기저기 많이도 싸돌아 다녔다. 교육과 집회와 교섭과 파업과 수련회와 회의와 술까지. 주말은 장인 49재도 있었고 부모형제들 모시고 집들이도 있었고 아이들 방학에 맞춘 피서까지 있었으니 그 역시 대전에서는 부재중이었네. 이렇게 살면 힘들어도 세월이야 쏜살같이 잘 가지만, 내 하고픈 일들과 내 꿈들은 어디에 쳐박혔나. 꿈이라는 게 있기나 하나. 8월은 또 어떤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내 참고 버티는 악행은 언제까지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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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블로그...

1.

블로그라...

그동안 이용했던 꼬마게시판에 비해서

뭔가 현란하다, 그 현란함이 어색하다.

 

꼬마게시판은

어느 정도 나와 일상에서

소통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면

블로그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면서

나를 흉보거나 내 삶을 비웃거나 할지도 모른다는

내 선입견 또는 편견이 그러하고...

 

텍스트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종의 시청각 매체들을 동원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겠다는 생각과

그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좀 더 부지런해야겠다는 괜한 의지가

부질없을 수도 있다는 내 독선과 아집이 그러하고...

 

부대끼고 휩쓸리면서도

어차피 인생이 표류하는 세상,

한 사람 중심의 매체가

서로 어우러지면 어디까지 가겠느냐

내 꿈꾸던 원시의 공동체를 회복하겠느냐 하는

지레 짐작과 냉소가 그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기는 하지만 진보넷에도 블로그 세상이 열렸다지

하면서 부리나케 달려온

충동과 유혹에 편승해 온 내 어줍지도 않은 열정이 그러하고...

 

그렇다니까.

 

2.

어느 날 늦은 밤에

전화 속에서 울고 있는 동지,

술마시다가 막 헤어지는 시간에

뒷모습 넘치게 어깨를 들썩이는 동지,

더운 공기를 함께 숨쉬다가

사무실을 나서는 바로 그 순간

엉엉엉 울고 가는 동지,

차라리 나도 동지와 같이 펑펑 울기나 했으면 좋겠다.

 

미안하다는 말을 수백번 해도

여전히 미안하기만 한 동지들이 많이 있다.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미안한 까닭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못하는

내 습관, 나태는 더욱 미안한 일이다.

 

3.

깊은 밤에

전화를 받고 문자를 받는다.

소주와 맥주를 뒤섞어 마시고

가차없는 비판을 듣는다.

 

내 피와 살이다.

내 팔자요,

저항해야 할 내 존재 그 자체이다.

 

4.

블로그라...

내 마음이 닫혀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얘기가

나름대로의 반성과 성찰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내가 지금 취한 것에 불과하다면

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누구의 마음 하나 온전하게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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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육요청...누가 도움말씀 좀 주셔요.^^

지난 달에 아래와 같은 교육요청 메일을 받았다. 그 전에 전화가 왔는데 얼떨결에 그러겠노라 하고 나서 막상 메일을 받고서는 걱정이 덜컥 되었다. 그저 입으로만 떠드는 교육이 아니라 서로의 삶과 노동의 경험들이 어우러지면서 노동자로서 교감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쨋거나 8월이 낼 모레로 다가왔고,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가다듬어야겠다. 누구라도 조언 좀 해 주시면 술이라도 한 잔 사리다. ------------------------------------------------------------------------ 8월조합원 정기교육입니다. 참여인원은 7월 마지막주쯤 되어야 최종 확인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참가대상은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목수, 철근, 견출, 조적등의 직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름이면 새벽6시,7시~ 저녁6시,7시까지 일을하고 체불임금,산재 등 불이익, 무권리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주5일제, 퇴직금, 연장근로수당 등의 권리는 먼미래, 남의 얘기처럼 들릴테고 일요일에도 휴일없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체불임금, 산재등 해결과정에서 조합에 가입하거나 조직가들의 아파트 현장활동을 통해 가입한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연령은 50대 중후반이 대부분이며 조합에 대한 이해가 낮고,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아직 가셔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강의목적은... 노동조합의 역사를 돌아보며 노동조합 초기 출발시기의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와 긍지 조합원이라는 자부심등을 심어 줄수있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가는 미래에 대한 확신과 사회개혁에 대한 청사진도 말미에 들어가면 좋겠구요 담에 술자리를 한번 가져야겠네요 글로는 너무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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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작은나무

게시판에 좀처럼 글을 쓰지 않는 작은나무님, 블로거로 짜짜잔 등장을 하시니 참 반갑습니다. 사무실에서 느끼는 일상의 작은 느낌들, 투쟁의 현장에서 겪는 나름의 분노와 공감들, 블로그를 통해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kambee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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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연구원의 편지

노동조합 게시판에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어느 연구소의 비정규직 연구원이라고 했고, 불똥이 튈까봐 어느 연구실인지는 밝히지 않는다고 했다. "주 5일제를 시행하는데 팀장이 토요일에 쉬지 말고 나오라고 강요합니다. 격주 쉬는 것도 아니고... 비정규직이라서 그런가요... 만일 안나오면 본인이 직접 관리하겠다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야간 늦게까지 일하고 이젠 개인의 사생활 시간도 강제로 뺏어 가는데... 도와 주세요." 이것이 편지의 대강이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원자력연구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는 최근의 일시적인 현상이 결코 아니다. 출연연구기관에 노동조합이 설립되기 시작한 87년 이후 수년간 각 노동조합들은 전일제, 위촉직, 촉탁직, 계약직 등 다양한 이름으로 착취당하고 있던 비정규직들을 노동조합에 가입시키고 처우를 개선하는 한편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는데 역점을 두었고, 그것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출연연구기관의 공공·공익적 연구기능보다 산업경쟁력 강화가 더 우선이라는 경쟁의 논리가 본격화된 90년대 중반 이후로 사용자들은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러 형태의 비정규직들을 양산하였다. 비상근, 시간제, 도급, 용역, 인턴, 연수생, 연구생, Post-Doc(박사후 연수연구원), 석사후 연수연구원 등, 출연연구기관의 비정규직들은 그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천차만별의 노동조건 아래 형편없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숫자도 전체 인력의 50%를 웃돌고 있다. 지난 봄에 출연연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395명의 비정규직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노동조합이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나이(30-34세, 45.8%; 23-29세, 42.8%, 35세 이상, 8.9%)와 학력(석사 졸업 38.7%, 학부 졸업 28.6%, 박사 졸업 7.1%)이 여느 젊은 정규직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도 불구하고, 임금은 학력과 근무형태별로 큰 차이를 보여(석사과정 75만원, 박사과정 109.1만원, 석사졸업 157.2만원, 박사졸업 179.6만원; 학연과정 69.5만원, 연수생은 76.5만원) 전체 평균 128만원에 불과하였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해마다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 그리고 비정규직 채용을 엄격하게 제한할 것을 단체교섭의 주요 요구사항에 포함하고 있고 비정규직까지 조직대상에 포함하고 있는 노동조합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출연연구기관의 실태가 이러하니, 명색이 노동조합 간부로서 앞서 소개한 류의 편지나 호소를 접할 때마다 참담한 심경에 빠져 어쩔 줄을 모른다. 이미 늦은 지도 모르지만, 기득권의 벽에 갇힌 정규직 노동조합의 한계를 뛰어넘을 어떤 결단과 투쟁이 없으면 노동자로서의 나 자신의 정체성조차 덧없이 사라질 듯하여 마음이 조급하고 답답한 날들이다. 열대야만 고통은 아니어라. (2004.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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