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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이 다음 월요일인 줄 알고 있다가
점심 먹으러 나서던 길에
혹시나 하고 확인했더니 오늘 오전까지란다.
허걱...화들짝 놀라서는 부리나케 써서 보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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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왔다. 추풍낙엽이라더니, 바람이 건듯 불 때마다 노란 은행잎과 플라타너스의 갈색 이파리들이 허공으로 나부낀다. 저 낭만적 풍경도 곧 황량한 겨울로 치달을 것이다. 사람들이 짐짓 가을을 타는 한편에서 겨울을 알리는 찬바람이 틈틈이 몰아치는 이맘때면 유난히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젊은 노동자 전태일을 기리는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뿐만 아니다. 정치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이 땅의 경제․사회․문화의 민주화를 외치며 헌신했던 많은 사람들이 전태일을 기억하고 그의 뜻을 기리며 오늘을 살고, 해마다 11월을 숙연하게 맞이한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사독재정권이 노동자들을 극단적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종교, 학계, 사회단체 등 민주화운동에서는 노동자들의 실태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태일의 분신을 맞았고, 한국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전태일은 '나를 죽이고', '나를 버리고', '나약한 나를 다 바치며' 그렇게 먼저 가고, 그가 가고 난 다음에 70년대는 새롭게 열렸다. 위수령, 휴교, 10월 유신, 계엄령으로 얼어붙은 시대를 가로지르며 그는 활활 불꽃이 되어 세상을 녹였다. 고시를 준비하던 대학생들이 그의 분신으로 말미암아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투신하였고,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열악한지 미처 몰랐던 지식인들은 뒤늦게 피눈물로 오열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전태일을 일러 '인간성의 원형', '나의 표상', '죽비'라고 표현하는 것은 전태일을 통해서 그 자신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것은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의 자양분이 되었다. 감히 말하거니와 80년 5월의 광주민주항쟁부터 87년 6월항쟁, 그리고 7․8․9 노동자대투쟁은 전태일의 분신에서 싹이 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년대 이후 '공돌이'와 '공순이'라는 이름으로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노동자들이 87년 이후 마침내 역사의 한 주체로서 시민권을 획득하고 나서 전태일 정신을 내걸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오는 11월 13일은 전태일이 분신한지 40주기가 되는 날이다. 지난 40년동안 우리 사회는 참 많이 변화하고 발전했다. 그러나 과연 모두가 함께 살맛나는 세상이 되었는지,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이 골고루 높아졌는지, 되물어보면 대답이 무척 궁색하다. 국민소득이며 무역수지 따위, 정부가 내세우는 현란한 수치들이 무색하게, 사회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여 가난은 대물림될 뿐만 아니라 갈수록 확대된다. 자랑할 것 없는 자살율과 저출산율 같은 것은 세계 1위이다.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공장과 하청공장, 사무직과 생산직, 고학력과 저학력, 남성과 여성 등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있다.
노동탄압과 착취에 저항하는 분신과 투신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 KEC 구미 1공장에서 또 한 사람의 노동자가 몸에 불을 붙였다. 전태일은 자신의 결단이 끝이기를 바랐겠지만, 지금 민주노총에서 노동열사로 부르는 노동자만 150명이 넘는다. 2010년 11월은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40년 전으로 돌아가게 한다. 전태일 정신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11월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귀기울여 본다. 전태일이 다시 살아나, 돈보다는 인간이 더없이 귀중하다고, 경쟁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소중한 가치라고, 나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이 사람아, 당신이 전태일 목소리를 어떻게 알아?' 하고 따지고 싶으면, <전태일 평전>을 한번 읽기를 권한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전태일의 분신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인생행로를 바꾼 고 조영래 변호사가 전태일보다 더 생생하게 전태일의 삶과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2010.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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