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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게시판에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어느 연구소의 비정규직 연구원이라고 했고, 불똥이 튈까봐 어느 연구실인지는 밝히지 않는다고 했다. "주 5일제를 시행하는데 팀장이 토요일에 쉬지 말고 나오라고 강요합니다. 격주 쉬는 것도 아니고... 비정규직이라서 그런가요... 만일 안나오면 본인이 직접 관리하겠다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야간 늦게까지 일하고 이젠 개인의 사생활 시간도 강제로 뺏어 가는데... 도와 주세요." 이것이 편지의 대강이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원자력연구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는 최근의 일시적인 현상이 결코 아니다. 출연연구기관에 노동조합이 설립되기 시작한 87년 이후 수년간 각 노동조합들은 전일제, 위촉직, 촉탁직, 계약직 등 다양한 이름으로 착취당하고 있던 비정규직들을 노동조합에 가입시키고 처우를 개선하는 한편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는데 역점을 두었고, 그것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출연연구기관의 공공·공익적 연구기능보다 산업경쟁력 강화가 더 우선이라는 경쟁의 논리가 본격화된 90년대 중반 이후로 사용자들은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러 형태의 비정규직들을 양산하였다. 비상근, 시간제, 도급, 용역, 인턴, 연수생, 연구생, Post-Doc(박사후 연수연구원), 석사후 연수연구원 등, 출연연구기관의 비정규직들은 그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천차만별의 노동조건 아래 형편없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숫자도 전체 인력의 50%를 웃돌고 있다.
지난 봄에 출연연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395명의 비정규직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노동조합이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나이(30-34세, 45.8%; 23-29세, 42.8%, 35세 이상, 8.9%)와 학력(석사 졸업 38.7%, 학부 졸업 28.6%, 박사 졸업 7.1%)이 여느 젊은 정규직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도 불구하고, 임금은 학력과 근무형태별로 큰 차이를 보여(석사과정 75만원, 박사과정 109.1만원, 석사졸업 157.2만원, 박사졸업 179.6만원; 학연과정 69.5만원, 연수생은 76.5만원) 전체 평균 128만원에 불과하였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해마다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 그리고 비정규직 채용을 엄격하게 제한할 것을 단체교섭의 주요 요구사항에 포함하고 있고 비정규직까지 조직대상에 포함하고 있는 노동조합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출연연구기관의 실태가 이러하니, 명색이 노동조합 간부로서 앞서 소개한 류의 편지나 호소를 접할 때마다 참담한 심경에 빠져 어쩔 줄을 모른다. 이미 늦은 지도 모르지만, 기득권의 벽에 갇힌 정규직 노동조합의 한계를 뛰어넘을 어떤 결단과 투쟁이 없으면 노동자로서의 나 자신의 정체성조차 덧없이 사라질 듯하여 마음이 조급하고 답답한 날들이다. 열대야만 고통은 아니어라. (2004.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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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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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덧글은 1등입니다.중집게시판에서 읽고 참 황당하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마을 어귀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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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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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모카님, 반갑습니다. 그리고 덧글 대단히 고맙습니다. 건강하소서.^^부가 정보
neosc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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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또 투쟁을 시작하면 언론들과 사측은 '귀족들의 투쟁'으로 항시 포장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더운 날들 몸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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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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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이 없는 건가요? 블로그 개소를 축하드립니다.부가 정보
sk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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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 왔다가 감..나두 블로그 생성함..히.
근데 포스트 글은 색깔을 넣었는데, 넘 이상하네요..그거 삭제하는 방법 혹시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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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ar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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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란 걸 첨 와봤는데 너무 어렵네요..후후..(또 컴맹 티 내지요..ㅋㅋ)눌러도 똑같은 것만 나오는것 같고..우헤헤..부가 정보
kanjang_gong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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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만드셨군요.들렸다가 흔적남기고 갑니다.
저도 오늘 블로그라는 것을 만들어보았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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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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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사진을 올려 놓으셨네요 아.. 이쁘다..^^ 아빠랑 많이 닮았어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