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탕
14세기에 이미 유럽은 설탕을 소비하고 있었지만, 자수성가한 영국 산업가 헨리 테이트가 설탕을 잘라 작은 큐브로 만드는 방법을 특허출원한 것은 1872년이 되어서였다. 설탕의 인기는 18세기 전반에 걸쳐 이어졌고 설탕이 금값에 비견되던 17세기에 비해 달콤한 사탕수수 생산품에 대한 유럽인의 애호는 훨씬 더해졌다.
낭만적인 전설에 따르면 신대륙 작물에 속하던 설탕은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북미에서 가져왔다. 콜럼버스는 원래 카나리아 제도 고메라에서 잠시 머물 생각이었으나 그 섬의 지배자인 베아트리체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연애는 한 달간 지속되었고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여인은 그에게 사탕수수 가지를 선물했다. 그는 그것을 신대륙에 가져가 재배했다. 사실 콜럼버스는 상품으로서 설탕의 가치를 이미 알고 있었다. 1487년 그가 마데이라에서 제노바로 사탕수수를 운송하는 데 관여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18세기에 설탕 가격이 떨어지며 잼, 캔디, 코코아와 더불어 설탕 가공 식품의 인가가 치솟았다. 당시의 조리법을 보면 닭고기와 쌀밥 등 어울리지 않는 음식에도 설탕이 등장한다. 각설탕 시장의 가능성을 파악한 테이트는 간단하고 효율적인 가공 방식을 고안하여 정확한 타이밍에 과녁을 맞혔다.
신대륙에 얽힌 설탕의 어두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구대륙에서 테이트는 위대한 박애주의자로 기억되었다. 테이트의 예술 컬렉션을 전시하려고 1897년에 문을 연 런던 테이트 갤러리를 비록해 각설탕이 건설한 리버풀 대학 도서관을 생각하는 것은 설탕만큼 달콤하다.
-- 파올라 안토넬리, <디자인, 일상의 경이> 43쪽. '각설탕' 항목
한번쯤은 테이트 갤러리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초아 양도, 승호 오라버님도.... 다들 너무 좋았다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달력을 준다는 말에 낚여 구입한 이 책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딱 이 한 페이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