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옛날 편지를 '서간'과 '척독', 두 종류로 구별할 수 있다 한다.
서간은 사실을 상세히 알리거나 상대를 설득할 목적으로 쓴 장황한 편지인 반면, 척독은 보낸 이의 심경과 감정의 토로를 특징으로 한다. 그런 형식상의 이유로 높은 예술성과 품격을 지녀 긴 여운을 느끼게 하는 척독이 적지 않다. 보낸 이의 정취를 잘 드러내는 척독을 옛 문집에서 우연히 발견해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안대회, <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샘의 쏠쏠한 재미를 몇 줄 빌어다가 필자에게 보내는 메일에 옮겨 적었다.
편지가 마침 도착하여 뜯어보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마음속에 그리던 사람이 이렇게 이르렀으니 무엇으로 보답할까요?
창 모서리에 뜬 봄 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답장편지 속에 넣어 바로 보내고 싶습니다.
- 18세기, 조희룡이 임자도 유배 생활 중에 서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맛깔 난 번역 덕분인지 봄 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할 때
글자 모양이 비슷해서인지, 봄볕의 따사로운 기운이 생동한다.
웬지 나도 까르르 웃고 싶어졌다. 이런 편지 한 장 적어 보낸 것이 언제이던가?
그만한 글재주는 없어 겨울 편지에 비슷한 때의 그림을 붙여 보냈다.
여항화가 전기의 그림이다. 산에는 눈도 녹지 않았는데, 매화가 가득하다.
조희룡도 같은 주제의 그림을 명품으로 남겼지만, 나는 이 작품이 더 좋다.
벗을 찾아가는 이의 따스한 마음을 주홍색 옷을 입혀 표현한 것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이런 데 눈을 뜬 후에는, 심미적 태도 없이 세상을 사는 이들의 무심함이 나를 상처 입히곤 한다. 티를 낼 수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