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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날' 국방부로 몰려간 태극기부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10/02 09:06
  • 수정일
    2018/10/02 09:0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문재인 물러가라" 등 원색적인 비난 쏟아져

18.10.01 19:27l최종 업데이트 18.10.01 20:27l

 

국군의 날 국방부 앞 찾은 태극기부대 국군의 날 국방부 앞 찾은 태극기부대
▲ 국군의 날 국방부 앞 찾은 태극기부대 국군의 날 국방부 앞 찾은 태극기부대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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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6시 20분 국군의 날 행사가 진행될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행사 2시간 전인 오후 4시 30분에도 전쟁기념관 앞은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정복을 입은 채 행사를 기다리는 군인 수십 명이 비표 분배소 근처에 서있었다.

그 뒤로는 대형 무대의 뒷모습이 보이고 마이크에서는 가수 싸이의 노래가 연신 흘러나왔다. 전쟁기념관 위로 풍선 하나가 둥둥 떠다니기도 했다. 이처럼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전쟁기념관 맞은편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대열이 "이게 국군의 날 행사냐"라고 외쳤다.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는 1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민원실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당초 집회 신고는 국방부 정문 앞 오후 3시였으나 실제 집회는 오후 4시 30분쯤 국방부 민원실 건물 앞에서 열렸다. 이날도 집회 참가자들은 여느 집회와 마찬가지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거나 온 몸에 둘렀다. 간간이 이스라엘 국기도 보였다.

 

이들은 지난 평양선언은 '항복 선언'이고 남북군사합의는 '국군 무장해제 합의'이며 국가해체 작업이라고 주장하며 "문재인은 물러가라"라고 외쳤다. 이와 함께 이들은 70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국군의 날 행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오후 6시 20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렸다. 예전과 달리 퍼레이드가 생략되고 야간행사로 진행되는 것이 '북한 눈치보기' 아니냐는 것.

이에 대해 청와대는 국군의 날이 평일이라 많은 국민이 기념식을 직접 시청할 수 있도록 예년과 달리 오후 시간대에 행사를 진행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국군의 날 관련 행사만 이날 세 개를 소화했다.
 
태극기집회 참여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태극기집회 참여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 태극기집회 참여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태극기집회 참여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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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태극기집회는 원색적인 비판을 이어나갔다. 민중홍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은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하지 않고 전쟁기념관 구석에서 몰래 행사 치르듯이 국군의 날 행사하는 것에 비분 분통을 금치 못한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도 이 같은 주장에 목소리를 보탰다. 김 의원은 "아주 잘 차려입고 좋은 건물에 들어가 앉아서 가수를 불러다 공연을 관람한다고 한다"라며 "이게 국군의 날 행사냐"라고 되물었다.

태극기 집회에 항상 참가한다는 한 시민(85)은 "슬픈 날이다"라고 심정을 표현했다. 그는 "국군의 날은 국군이 38선을 다시 넘어간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라며 "군인들의 사기를 올려주지는 못할망정 어디서 하는지도 모르게 똥뚜간(변소) 같은 데서 하면서 국군의 날을 없애려고 하고 있다"라고 했다. 청와대와 국군의 해명에 대해서도 "듣고 싶지도 않다"라고 말을 끊었다.

자신을 우익 시민이라고 밝힌 또 다른 집회 참가자는 "올해는 70주년으로 의미있는 날이다"라며 "군대가 퍼레이드 등을 통해 자주국방의 의지를 드러내 국민에게 안심을 줘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실내에 들어가서 쇼를 한다고 한다"라며 "이게 말이 되냐"라고 했다.
 
국방부 정문 앞 시위 벌인 군에서 자식 잃은 유족들 국방부 정문 앞에서는 군에서 자식을 잃은 유족들이 고인이 된 아들의 사진을 목에 건 채 "책임자 처벌 촉구", "제대로 된 수사"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국방부 정문 앞 시위 벌인 군에서 자식 잃은 유족들 국방부 정문 앞에서는 군에서 자식을 잃은 유족들이 고인이 된 아들의 사진을 목에 건 채 "책임자 처벌 촉구", "제대로 된 수사"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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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방부 정문 앞에서는 군에서 자식을 잃은 유족들이 고인이 된 아들의 사진을 목에 건 채 "책임자 처벌 촉구", "제대로 된 수사"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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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당 배제한 남북 정당교류 무슨 의미?

민중당 배제한 남북 정당교류 무슨 의미?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10/02 [01: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중당과 조선사회민주당이 지난 20~21일 중국 심양에서 실무회담을 진행했다. [사진출처-민중당 홈페이지]     ©

 

오는 10월 4일부터 6일까지 ‘10.4선언 11주년 남북공동행사가 평양에서 열린다.

 

이번 ‘10.4선언 11주년 남북공동행사는 최근 변화하는 한반도 정세에 맞춰 열리는 행사라 참으로 의미가 크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615 남측위가 참여하기로 결정해 민과 관이 함께 10.4 선언을 기념하기로 한 것은 뜻 깊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남측에서 참가하는 정당의 면모이다.

 

통일뉴스 보도에 의하면 이번 ‘10.4선언 11주년 남북공동행사에 참가하는 남측 정당 대표단 20명의 명단이 확정되었는데 더불어민주당 11민주평화당 3정의당 3무소속 1국회출입기자 2명으로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그리고 구체적인 인물 명단을 보면 더 의아스럽다.

 

2000년 이후남북관계가 좋을 때남측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북과 이야기하려 했었다.

당시에는 누구나 북을 방문하려 애썼다솔직히 이번 정당 대표단 명단은 딱 그 모양이다정당을 대표하는 20명 중에서 평상시 통일에 대해 얼마나 많은 활동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이 방북을 안하니 구색 맞추기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솔직히 남북의 정당 간 교류에서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민중당과 북의 조선사회민주당과의 교류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지난 민주당 신임 지도부 선출 이후에도 조선사회민주당은 축하 서신을 보냈으며지난 7월 실무회담에서 두 당은 여러 가지 정당 간 교류를 합의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 ‘10.4선언 11주년 남북공동행사의 당 교류 명단에 민중당은 없다남북의 정당 간 교류에서 가장 앞장서서 교류를 하고 있는 정당을 배제해놓고 남북 간의 정당교류가 어떠한 의미가 있을 것인가.

 

단 1석의 국회의원이 있더라도혹은 의원이 없더라도 지난 기간 남북 정당 간의 교류를 위해 애썼던 정당을 먼저 앞세우는 것이 옳지 않은가.

 

진짜 남북의 정당 간 교류를 하려고 한다면 남측의 이런 소인배적 행태부터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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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정부가 적폐 정부들과 비슷한 작태, 용납 못해”

전쟁반대국민행동, ‘욱일승천기’ 단 일본군함 국제관함식 참석 규탄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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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1  15: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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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은 1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욱일승천기를 단 일본군함의 국제관함식 참석을 규탄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일본의 군함은 욱일승천기를 달든 안달든 침략전쟁 범죄국가로서 아무런 사과와 책임도 없이 한국 땅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은 1일 오후 1시 주한 일본대사관이 있는 서울 율곡로 트윈트리타워 앞에서 ‘욱일승천기를 단 일본군함의 국제관함식 참석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은 그 어떤 군사적 무기도 앞세우고 한국 땅에 오면 안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에서 10~14일 열리는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행사에 15개국 해군 함정이 참가할 예정이며, 우리 해군은 참가국들에 자국 국기와 태극기를 함께 달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은 자국 국기 대신 일본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달고 입항할 예정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 참가자들은 욱일승천기를 '전범기'라며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참가자들은 예수살기 최헌국 목사가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침략전쟁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승천기를 달고 어떻게 한국땅에 올 수 있는지 상상이 안 간다”며 “일본은 침략전쟁과 그로 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그 어떤 사과조차 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한국 정부도 국민의 분노가 이러한데 ‘협조’니, ‘공문’이니 하지 말고 적극 나서야 한다”며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국민의 분노는 보지 못한 채 공문으로 협조만 하는 수준인가”라고 반문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지난달 28일 “자위대 함대기의 게양은 국내법으로 의무화돼 있고, 유엔 해양법 상으로도 군대 선박의 국적을 나타내는 외부표기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며 욱일승천기 게양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더구나 <아사히신문>은 익명의 방위성 관계자를 인용, “비상식적 요구다. 내리는 게 조건이라면 관함식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일 국회 답변과정에서 “관함식에 자위대 함정이 오는 것은 합당하다”고 전제하고 “다만 식민지배의 아픔을 기억하는 한국인의 마음에 욱일기가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는 일본도 섬세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완곡하게 일본의 태도변화를 촉구했다.

   
▲ 엄미경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엄미경 위원장, 최헌국 예수살기 목사, 박행덕 전농 의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엄미경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우리 민족에게는 치떨리는 이 깃발은 상처이며, 고통”이라며 “태평양 일대를 총칼로 짓밟을 때 앞세워 들고왔던 전범기”라고 규정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10월 10일, 11일, 1박2일 제주도로 총력 집중해서 이걸 막는 투쟁을 전개해나가겠다”며 “많은 시민사회 연대단체들과 어깨를 걸고 진정한 평화의 나라로 나가기 위해서 일제식민지 역사부터 청산하는 투쟁에 당당히 걸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선경 청년민중당 대표는 “욱일기를, 이 전범기를 일본 해군의, 자위대의 상징으로 달고 있는 것이 비상식이고 몰염치이고 예의없는 것 아니냐”며 “일본 대사관은 이 발언 즉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정부에서 적극 막아나설 것을 요구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다시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앞으로 온 국민이 달려가 싸울 것이다. 민중당, 국민들의 분노에 함께 행동하고 연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은 “전농에서는 그같은 부랑무식한 자들을 절대로 입항시켜서도 안 되고, 정부에 요구하기를 그들과 외교를 단절하는 한이 있어도 그들을 입국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대한민국이 국교를 수립하고 소통하고 왕래하고 있는 국가는 평화국가인 일본국이다. 전범국가인 일본제국이 아니다”고 전제하고 “욱일기라고 쓰는 거 앞으로 전범기로 다시 이름을 바로세우는 정명(正名)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이 무례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가 자초한 것 아니냐”며 “미국 항공모함이 들어온 것도 모자라서 전범국가인 일본 자위대가 왜 들어오느냐. 그런 국제관함식 안 해야 한다. 차제에 이번 기회에 국제관함식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국민적 투쟁이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아예 강정을 말그대로 평화의 항구로 만들기 위한 국민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을 촉구한다”면서 “촛불 정부가 적폐 정부들과 비슷한 작태를 보이는 것 용납할 수 없다.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함께 투쟁하자”고 호소했다.

   
▲ 기자회견은 욱일승천기를 칼로 베는 퍼포먼스로 마무리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와 박행덕 전농 의장 등이 욱일승천기를 베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욱일승천기를 칼로 베는 퍼포먼스를 갖고 욱일승천기를 단 일본 자위대 군함의 제주 강정 국제관함식 참석을 반대하는 의사를 강하게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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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의 ‘양비론’이 위험한 이유

언론이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말은 충분히 사건을 취재해야 한다는 의미
 
임병도 | 2018-10-01 08:39:3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사설] ‘심재철 논란’, 정쟁화 말고 차분히 진위 가려야

진보 신문으로 분류되는 한겨레신문의 9월 29일 사설 제목입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심재철 의원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비공개 예산 정보 공개 사건을 철저하게 양비론으로 다룹니다.

사설을 보면 청와대의 해명이 이해된다고 하면서도 심재철 의원 사무실의 압수수색이 사태를 키운 측면이 있다는 이도 저도 아닌 얘기가 나옵니다.

한겨레는 ‘더 이상의 소모적 논란은 국가적 낭비인 만큼 양쪽은 정쟁을 자제하고 차분히 진위와 적법성을 가리는 게 낫다.’라며 이 사건을 ‘소모적 논란’, ‘ 정쟁’이라고 부릅니다.

한겨레 사설을 보면 별거 아닌 그냥 일상적인 정치적인 공방처럼 느껴집니다. 과연 그럴까요?


9단계 뚫고 190여 차례 내려받았는데.. 이 모든 게 우연?

▲9월 29일 한겨레 사설은 심 의원 사무실 압수수색이 사태를 키운 측면도 있다고 했지만, 10월 1일 한겨레 보도를 보면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자료 취득에 문제가 있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심재철 의원 사무실 압수수색이 사태를 키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0월 1일 한겨레 보도 내용을 보면 압수수색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습니다.

심 의원은 예산 정보에 우연히 접속했다고 주장하지만,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확률로 따지면 무한대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심 의원의 주장을 보면 불법으로 자료를 획득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합니다. 이 상황에서 심 의원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은 당연하면서도 빠르게 진행됐어야 할 정상적인 절차였습니다.

야당 국회의원이 내부고발자와 제보 등에 의해 자료를 공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는 것은 그 자체가 처벌받아야 할 사안입니다. 그러나 한겨레는 자꾸만 ‘쟁점’ 등이라는 단어를 통해 서로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몰고 갑니다.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언론이 사실을 알려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셈입니다.


불법이 아니라고 단정 짓는 언론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자료 공개 관련 노컷뉴스 기사(좌) 이정렬 전 판사의 2017년 위법성 조각 사유 칼럼(우)

9월 30일 노컷뉴스는 ‘[뒤끝작렬]심재철 사태와 헐리우드 액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법조인의 말을 인용해서 심 의원의 공개가 불법이 아니며, 오히려 기재부의 고발 조치가 야당의 공격을 봉쇄하기 위한 정략적 대응이라고 보도합니다.

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업무추진비는 공익차원에서 공개해도 위법성이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청와대 납품 내역도 국가적으로 큰 위해가 된다고 보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재부의 고발 조치가 야당의 공격을 봉쇄하기 위한 정략적 대응으로 읽힐 여지가 다분하다. 노컷뉴스 ‘[뒤끝작렬]심재철 사태와 헐리우드 액션’ 기사 중에서

그런데 기사 내용을 보면 진짜 법조인의 말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위법성이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라는 문장입니다.

2017년 10월 11일 이정렬 전 부장판사는 ‘[야! 한국 사회] 위법성 조각 사유’라는 제목으로 한겨레에 칼럼을 기고합니다. 칼럼을 보면 이정렬 전 판사는 위법성이 제거되는 것을 ‘위법성 조각 사유’라며 ‘기각’이라는 말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법조인이라면 위법성이 기각된다고 하지 않고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기자가 법조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썼던지, 아니면 ‘정략적 대응’이라는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갖다 붙였는지 둘 중의 하나로 풀이됩니다.

CBS 정영철 기자도 한겨레 사설처럼 ‘여야가 치열하게 아전인수격 여론전을 펼치고 있고, 국민 여론은 답 없는 국회라며 여의도의 먼지가 하루빨리 가라앉길 바란다’라며 정치적 다툼 정도로 이번 사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론과 정치권이 물타기에 즐겨 사용하는 ‘양비론’

양비론의 위험은 이런 형식적 공정성에 있다. ‘큰 잘못’과 ‘작은 허물’에 대등한 책임의 비중을 부여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그러니 둘 다 문제”라는 식의 결론으로 유도한다. 그래서 언론과 정치권이 ‘물타기’에 양비론을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 한국일보 ‘양비론의 교활함’

양쪽의 주장을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을 가리켜 언론이 객관성을 위해 취해야 할 방식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양비론은 언론과 정치권이 물타기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여야가 대립할 때 언론은 ‘여야가 정쟁을 벌이고 있다’, ‘타협할 줄 모르는 정치’, ‘ 민생은 뒷전’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언론의 이런 보도 방식은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다 똑같은 놈들이다’라며 정치적 혐오를 불러일으키거나 진실을 훼손하여 가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언론이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말은 충분히 사건을 취재해야 한다는 의미이지, 기계적인 중립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이 사건을 보도할 때 우선해야 할 것은 ‘모두가 나쁜 놈이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일이 돼야 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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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도둑잡아라' 하승수 "심재철 본인 업추비 공개는?"

"민주국가에서 인정 않는 방식 자료 입수…정보공개 청구했어야"
2018.10.01 12:30:18
 

 

 

 

뜨거운 현안이 된 이른바 '심재철 예산정보' 논란에 대해, 입법부·행정부의 특수활동비 등 예산 정보공개 운동을 펼쳐온 시민단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자료를 획득한 방식은 그간의 정보공개 운동의 취지에도 맞지 않고, 더구나 심 의원이 과거 국회 사용 예산 공개 등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만큼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는 주장이다. 

국회 특활비 공개를 추진해온 시민단체 연대체 '세금도둑잡아라'의 하승수 공동대표(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심 의원이 이번에 택하고 있는 이런 방식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하 공동대표는 "일반적으로 자료 공개를 할 때는 자료 입수 경위도 상당히 중요하다"며 "시민단체들은 정보공개법에 따른 정보공개청구라든지, 내부고발 같은 제도를 활용해서 그동안 자료를 입수하고 그것을(통해) 사회적 문제 제기를 해 왔다. 그리고 국회도 국회법에 따라서 자료 요구권을 활용해 왔는데, 이번에 심 의원이 자료를 입수한 경위 자체가 그런 통상적인 자료 입수 방법과는 너무나 다른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 대표는 심 의원 측이 '정상적 접속을 통해 자료를 다운로드받았다'고 하고 있는 데 대해 "만약에 집 대문에 시스템 오류가 있어서 그 대문이 열려 있는 상태인데, 아무나 그 집에 들어가서 자료를 가지고 나와도 되는 것이냐, 이런 비유를 하신 분도 있다"며 "자료 자체가 일반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자료가 아닌 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원들이 의정활동 목적으로 접근하는 시스템에 들어가서 평소에 접근할 수 없는 자료들이 접근이 됐다면, 그건 확연하게 (비정상적 경로임이) 구분되는 자료"라고 부연했다. 

하 대표는 "국회 같은 경우에도 저희가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어떤 자료는 내부 기준상 비공개기 때문에 못 해 준다고 한다. 그러면 그 일부 비공개되는 부분을 가지고는 또 결국 소송을 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며 "이런 과정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국회법을 개정하든, 아니면 정보공개법을 강화하든 그렇게 문제를 풀 일이지, 이렇게 임의로 무단으로 자료들을 가져와서 활용한다는 것은 오히려 알 권리 차원이 아니라 정쟁의 수단으로 자료들을 활용하는 게 아닌가"라고 그는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하 대표는 심 의원의 '진정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작년에 언론·시민단체가 국회의원 발주 정책연구용역 조사를 하면서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해) 자료를 보내온 의원들이 많았는데 심 의원은 안 보낸 의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야당 중진의원이고 국회 부의장, 상임위원장도 지냈는데, (그동안) 국회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를 공개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어본 적 없다"며 "국민 알 권리를 위해 노력해온 바도 없고, 오히려 시민단체·언론 요구에 대해 응답을 안 하셨던 분이 지금에 와서 국민 알 권리를 강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하 대표는 '심 의원실에서는 어떻게 업무추진비를 썼는지 모르느냐'는 질문에 대해 "지금 소송 중"이라며 "20대 국회에서 사용한 업무추진비에 대해서 소송 중이고 아마 연말 정도에는 공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이번에 심 의원이 그렇게 아주 높은 기준으로 청와대 업무추진비를 봤기 때문에, 국회 업무추진비도 동일한 기준으로 검증을 해야 되지 않을까"라며 "정부 지침에 위반되는 부분이라든지,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집행은 없는지 철저하게 검증할 생각"이라고 예고했다.  

하 대표는 다만 심 의원의 자료 입수 경로가 어쨌든 업무추진비 투명성 제고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그런 일정 정도 긍정적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이 논쟁을 마무리하면 좋겠다. 청와대도 공개하고, 국회도 공개하고, 앞으로는 모든 업무추진비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쪽으로 정리가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언급했다. 

한편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같은날 YTN 라디오에 출연해, 심 의원의 자료 입수 경위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이라면 자료 확보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할 수 있다"고 일면 감싸면서도 "심 의원도 사실 경미한 사항들을 가지고 전체인 양 떠드는 것도 문제가 있었지 않았나, 이렇게 본다"고 꼬집어 눈길을 끌었다. 심 의원이 입수·공개한 자료 내용이 "말단지엽적"이고 "소위 말하는 '한 방'이 없지 않느냐"고 평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사실 심 의원도 국회부의장 재임시에 특수활동비를 많이 쓴 게 있지 않느냐"며 "오히려 부의장실 업무추진비나 특수활동비가 사용된 게 더 부적절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말단지엽적인 걸 가지고 국민이 청와대를 불신할 수 있게끔 지나치게 침소봉대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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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철군명령 유보시킨 백악관의 철군논쟁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10/01 12:34
  • 수정일
    2018/10/01 12: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 316] 트럼프의 철군명령 유보시킨 백악관의 철군논쟁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10/01 [09: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전쟁광신자들의 망언에 반대의사 표명한 트럼프

2. 거짓말로 대통령을 속인 국가안보보좌관

3. 트럼프, 조미정상회담 제의 직후 백악관에서 철군문제 거론했다

4. 트럼프의 철군의지 돌려세우려는 매티스의 궤변

5. 트럼프의 철군명령 유보시킨 백악관의 철군논쟁

 

 

1. 전쟁광신자들의 망언에 반대의사 표명한 트럼프

 

요즈음 미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화제의 책이 있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가 백악관의 전현직 관료들에게서 들었다는 일화들이 수록된 그 책의 제목은 ‘두려움: 백악관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다. 그 책에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일화들이 가득하다. 그 책에 수록된 많은 일화들 가운데서 주한미국군 철수문제에 관한 일화들만 추려내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2017년 2월 어느 날 조섭 던포드(Joseph F. Dunford) 미국군 합참의장이 전쟁광신자로 악명이 높은 린지 그레이엄(Lindsey O. Graham) 공화당 연방상원의원을 만났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던포드 합참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에게 대조선선제타격계획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미국 군부가 조선에 대한 군사정보를 충분히 갖지 못했으므로, 대조선선제타격계획을 작성하기에 앞서 조선에 대한 군사정보를 충분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팔짱을 끼고 무언가 주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슴과 요즈음 미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화제의 책 겉표지를 함께 담은 합성사진이다. 그 화제의 책은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백악관의 전현직 관료들에게서 들었다는 일화들을 수록한 책인데, '두려움: 백악관의 트럼프'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그 책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일화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책이 거짓말로 엮어졌다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그 책에 수록된 많은 일화들 가운데서 주한미국군 철수문제에 관한 일화들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현재 상황이 어느 방향으로 전진하는지를 말해주는 풍향계로 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트럼프 대통령이 던포드 합참의장에게 대조선선제타격계획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우드워드가 그레이엄에게서 듣고 자신의 책 ‘두려움’에 수록한 이야기인데, 그레이엄의 그 이야기는 사실일까? 아래에 서술된 정황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니라 전쟁광신자로 악명 높은 그레이엄이 자기 의도에 맞춰 왜곡한 이야기를 우드워드에게 말해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만일 던포드 합참의장이 대조선선제타격계획을 작성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는 엄청난 군사비밀을 사석에서 어떤 외부인에게 털어놓았다면, 그것은 군사기밀누설죄에 해당한다. 그레이엄은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에 소속된 상원의원이므로, 던포드가 군사기밀누설죄에 걸려 자신이 처벌당할 위험을 무릅쓰면서 대통령의 극비지시사항을 말해줄 만한 대상이 아니다. 던포드는 그레이엄을 만난 자리에서 조미핵대결이 극한점으로 다가서고 있었던 2017년 당시 워싱턴의 조야에서 뜬소문처럼 떠돌던, 조선에 대한 여러 가지 군사적 선택방안들에 대해 거론하였을 가능성은 있지만, 대조선선제타격계획을 작성하라는 대통령의 극비지시를 그에게 말해주었을 가능성은 없다.  

 

둘째,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연방상원의원들이 두 차례 비공식 회동을 가졌던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이 비공식 회동은 2017년 봄, 당시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해가던 긴박한 상황에 미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심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의회의 견해를 들어보려고 마련한 회동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난 연방상원의원들은 린지 그레이엄과 2018년 8월에 지병으로 사망한 존 맥케인(John S. McCain)이다. 

 

2017년 3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은 그레이엄 연방상원의원을 백악관에 초대하여 오찬을 나누었다. 트럼프-그레이엄 오찬에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허벗 맥매스터(Herbert R. McMaster)와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이었던 라인스 프리버스(Reinhold R. Priebus)도 동석하였다. 그레이엄 연방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면서, 미국이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게 되면 연방의회가 무력사용을 승인할 것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입에 담지 못할 도발적 망언을 늘어놓았다. 오찬석상에 동석한 맥매스터는 그의 망언에 맞장구를 쳤지만, 프리버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사용도 불사해야 한다는 그레이엄과 맥매스터의 도발적 망언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그 문제를 이제껏 생각해오고 있다고 하면서, “나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허풍을 떨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레이엄의 도발적 망언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던 것이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2017년 4월 어느 날, 트럼프 대통령은 맥케인 연방상원의원과 그 부인을 백악관으로 초대하여 만찬을 나누었다. 원래 트럼프와 맥케인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하였던 그레이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맥케인 부부를 백악관으로 초대하여 만찬을 나누면 좋겠다고 제의하였고, 그 제의에 따라 트럼프-맥케인 만찬회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레이엄도 만찬에 동석하였다. 그날 만찬회동에서는 당시 국가핵무력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조선에게 미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급박한 국가안보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맥케인 상원의원은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는데,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만일 100만 명이 죽어도 거기서 죽는 것이지 여기서 죽는 것은 아니다”고 떠들어댔다. 미국이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저지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도발해도, 한반도에 사는 조선사람 100만 명이 죽게 될 것이므로, 전쟁을 도발해도 괜찮다는 극악무도한 폭언이었다. 이 전쟁광신자는 2017년 11월 29일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 시험발사에서 성공하여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음을 입증해보였을 때, 언론매체와 대담하면서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북조선과 전쟁을 하게 된다”느니 뭐니 하면서 극악무도한 폭언을 또 다시 늘어놓았다. 그런 극악무도한 폭언을 상습적으로 늘어놓으며 8천만 겨레를 모독한 그레이엄이야말로 천추에 용서받을 수 없는 전쟁광신자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전쟁광신자 그레이엄이 트럼프-맥케인 만찬석상에서 극악무도한 폭언을 토해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그건 매우 오싹하다”고 하면서 그의 폭언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변에 이성을 잃고 미쳐날뛰는 전쟁광신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은 백악관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수록된 위의 두 일화를 읽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광신자들이 마구 떠들어대는 대조선선제타격설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거짓말로 대통령을 속인 국가안보보좌관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은 미국 언론매체들이 보도하지 않은 비밀스럽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주는데,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각료들에게 전쟁을 끝내고 미국군을 철수하는 문제를 언급한 일화도 있다. 

 

그 책에 따르면, 2017년 7월 어느 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사위이자 대통령 선임비서관인 재럿 쿠쉬너(Jared C. Kushner), 자신의 장녀이자 대통령 비서관인 이방카 트럼프(Ivana Marie Trump), 그리고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허벗 맥매스터, 당시 대통령 비서관이었던 밥 포터(Robert R. Porter) 등과 함께 뉴저지주 벳민스터에 있는 골프장을 출발하여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소형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막대한 자원을 이 나라들에서 지속적으로 소모하고 있다! 우리는 승리를 선언하고, 그 전쟁을 끝내고, 우리 군대를 철수해야 한다.” 

 

우드워드는 그 책에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고 미국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말한 나라들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수리아라고 지적하였다. 씨리아(Syria)는 미국이 제멋대로 부르는 자의적 명칭이고, 수리아(Surya)는 그 나라의 공식 국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수리아에서 전쟁을 끝내고 철군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전쟁종식과 철군을 반대하는 전쟁광신자 맥매스터는 “풀이 죽은 듯” 보였다고 한다. 그 책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때로부터 줄곧 그 세 나라에서 전쟁을 끝내고 미국군을 철수하는 것을 바랐다고 한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비서관이었던 밥 포터에게 아프가니스탄전쟁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은 재앙이다. 그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 우리는 완전하게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드워드는 자신의 책 ‘두려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백악관 각료들에게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수리아에서 전쟁을 조기에 끝내고 철군하려는 의지를 표명해왔다고 기록하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려는 의지를 표명해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맥매스터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철군의지를 표명하였던 일화가 간략하게 적혀 있을 뿐이다. 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허벗 맥매스터 당시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백악관 정원을 걸어가는 장면이다. 맥매스터는 2018년 4월 9일 국가안보보좌관직에서 물러났으므로, 이 사진은 2017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2017년 7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맥매스터를 또 다시 호되게 꾸짖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말했고, 맥매스터는 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였는데, 그 두 사람이 철군문제를 놓고 의견충돌을 벌일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호되게 꾸짖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각료들에게 자기의 철군의지를 지속적으로 표명해왔을 뿐 아니라, 자기의 철군의지에 반론을 제기하는 국가안보보좌관을 호되게 꾸짖을 만큼 확고부동한 철군의지를 가졌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2017년 7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맥매스터를 또 다시 호되게 꾸짖었다”고 한다. 여기서 “또 다시 호되게 꾸짖었다”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표현은 맥매스터가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을 이전에도 몇 차례 반대하는 바람에 대통령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받은 적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맥매스터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을 몇 차례 호되게 꾸짖었던 것일까? 우드워드의 책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군의 한국 주둔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말하면, 맥매스터는 반론을 제기하곤 했는데, 두 사람이 철군문제를 놓고 의견충돌을 벌일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호되게 꾸짖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각료들에게 자기의 철군의지를 지속적으로 표명해왔을 뿐 아니라, 자기의 철군의지에 반론을 제기하는 국가안보보좌관을 호되게 꾸짖을 만큼 확고부동한 철군의지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맥매스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국군 철수의지에 제동을 걸 때마다 늘어놓은 반론이 있었다고 한다. 만일 조선이 미국 본토를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경우, 그 긴박한 정황을 알래스카의 미국군기지에서 포착할 때까지는 15분이나 걸리지만, 주한미국군기지의 포착시간이 7초밖에 걸리지 않으므로,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주한미국군을 철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맥매스터의 상투적인 반론이었다. 

 

그러나 맥매스터의 그런 반론은 군사정보를 잘 알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속이면서 그의 철군결정을 가로막으려고 조작해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만일 조선이 미국 본토를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경우, 그 긴박한 정황을 포착하는 것은 주한미국군기지의 지상레이더망이 아니다. 조선만이 아니라 러시아나 중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를 향해 발사하는 경우에도, 미국은 우주공간에 배치된 조기경보위성으로 그 긴박한 상황을 포착한다. 주한미국군이 운용하는 지상레이더들은 조선이 발사하는 단거리탄도미사일이나 중거리탄도미사일을 포착하고, 미사일방어국(Missile Defense Agency)이 운용하는 조기경보위성은 조선이 발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착한다. 

 

2018년 1월 현재, 미국 미사일방어국은 10개의 조기경보위성을 우주공간에 띄워놓고 지구 전역을 감시하는 ‘우주추적감시체계(Space Tracking and Surveillance System)’를 운용하고 있다. 이 조기경보위성들은 적외선감지장치를 가동하여 대륙간탄도미사일 로켓엔진이 뿜어내는 분사화염을 포착한다. 그런데 적외선감지장치는 구름을 뚫지 못하므로, 조선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구름층을 뚫고 올라가 10km 정도의 고도로 상승해야 대륙간탄도미사일 로켓엔진 분사화염을 포착할 수 있고, 그것이 미국 본토를 향해 발사된 대륙간탄도미사일인지 아니면 그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다른 타격목표를 향해 발사된 중거리탄도미사일인지를 식별할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발사된 후 고도 10km 정도로 상승비행하는 시간은 약 35~40초이므로, 만일 구름이 낀 날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경우 미국의 조기경보위성은 발사시각으로부터 약 35~40초 뒤에 포착, 식별할 수 있다.   

 

그런데 맥매스터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추적, 식별하는 시간이 15분이나 걸린다는 거짓말을 하였고, ‘우주추적감시체계’에 대해서는 전혀 말도 꺼내지 않고, 지상배치레이더망이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포착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군사정보에 어두운 트럼프 대통령을 거짓말로 속인 것이다. 

 

또한 맥매스터는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조기에 끝내고 그 나라에 파병한 미국군을 전면 철수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가로막으려고 속임수를 썼다. 그는 1970년대에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어느 길거리에서 서양옷 차림으로 걸어가는 3명의 현지 여성이 촬영된 사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주면서, 탈레반이 그 전쟁에서 이겨 집권하면 이런 ‘평화로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것은 평소에 여성문제에 남달리 예민하게 반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심리를 파고들어 그의 철군의지를 돌려세우려는 교활하기 짝이 없는 속임수였다. 하지만 그런 속임수로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의지를 돌려세우려고 책동했던 전쟁광신자는 결국 2018년 4월 9일에 국가안보보좌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3. 트럼프, 조미정상회담 제의 직후 백악관에서 철군문제 거론했다

 

2018년 1월 6일 판문점에서 서훈 국정원장과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비밀회담을 진행하였는데, 서훈 국정원장은 그 비밀회담결과를 그 날 밤 전화통화를 통해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당시 중앙정보국장에게 전했다.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은 서훈 국정원장으로부터 받은 비밀회담결과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하였다. 그런데 팜페오 중앙정보국장으로부터 서훈-김영철 비밀회담의 결과를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싶다는 자신의 의사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하라고 팜페오 국장에게 즉석에서 지시하였다. 팜페오 국장으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전달받은 서훈 국정원장은 2018년 1월 16일 판문점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을 다시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전했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그 중대한 제의에 대해 자신이 답할 수 없다고 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즉각 보고하겠다고 하였다. 김영철 부위원장으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정상회담 제의를 전달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제의를 수락하였다. 이렇게 되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시작되었다.  

 

제2차 서훈-김영철 비밀회담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2018년 1월 19일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 각료회의가 진행되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당시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존 켈리(John F. Kelly) 백악관 비서실장, 허벗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조섭 던포드 합참의장, 개리 콘(Gary D. Cohn)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 참석하였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8년 1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2018년도 첫 각료회의가 백악관에서 진행되는 장면이다. 새해 첫 각료회의라서 그런지, 각료들만이 아니라 대통령 비서관들도 배석하였다. 2019년 1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회의에서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철군문제를 놓고 각료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철군문제에 답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주한미국군 주둔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안정화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주한미국군은 한국의 안보를 틀어쥔 강력한 지배수단인 동시에 조선을 위협하는 핵전쟁도발의 인계철선인데, 그런 주한미국군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안정시킨다니, 거짓말도 그처럼 새빨간 거짓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그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들에게 “우리가 한반도에 수많은 미국군을 주둔시키면서 얻는 게 무엇인가?”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그는 계속해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우리가 대만을 보호해주면서 얻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던졌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팜페오-서훈-김영철 연락선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미정상회담을 제의한 직후,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각료회의에서 정식으로 제기하였다는 사실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조선의 국가핵무력이 완성되었음을 선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정상회담을 제의하였고, 각료회의에서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였던 것이다. 2018년 1월 중에 조미관계에서 발생한 이런 놀라운 정황은,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종식되었음을 말해주는 가장 뚜렷한 증좌다. 

 

그런데 우드워드의 책에는 “우리가 한반도에 수많은 미국군을 주둔시키면서 얻는 게 무엇인가?”라는 대통령의 질문을 받은 매티스 국방장관이 어떻게 답변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책에는 2018년 1월 19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각료회의가 아닌 다른 기회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주한미국군을 주둔시켜 미국이 얻는 이익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매티스 국방장관이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매티스 국방장관은 “우리는 안정된 민주주의(stable democracy)가 정말로 필요한 세계의 한 부분에서 바로 그런 민주주의를 얻는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하였다고 한다. 이 아리송한 답변을 정확한 어법으로 정리하면, 주한미국군 주둔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안정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주한미국군은 한국의 안보를 틀어쥔 강력한 지배수단인 동시에 조선을 위협하는 핵전쟁도발의 인계철선(tripwire)인데, 그런 주한미국군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안정시킨다니, 거짓말도 그처럼 새빨간 거짓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 국방장관이라는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국군 철수의지를 돌려세우기 위해 그런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늘어놓았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언론인 조쉬 로긴(Josh Rogin)은 2018년 6월 7일 <워싱턴포스트>에 발표한 자신의 글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고위관리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한미국군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시키려고 애써왔으나 실패하였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위에 서술된 것처럼, 매티스 국방장관이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국군 철수의지를 돌려세우려고 분별없이 책동하였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4. 트럼프의 철군의지 돌려세우려는 매티스의 궤변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8년 5월 1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되기 전인 2018년 1월 하순 어느 날,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을 미국 국방부에 하달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NBC>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을 미국 국방부에 내리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만류했고, 그 바람에 트럼프 대통령은 철수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요미우리신붕> 2018년 5월 5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4월 17~18일 미국 플로리다주 대통령 사저에서 진행된 미일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주한미국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했을 때 일본의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2018년 5월 3일 보도에 따르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몇 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감축방안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미국 국방부에 내렸다고 한다.  

 

위에 서술된 사실들을 종합하면, 2018년 1월 1일부터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었던 6월 12일까지 여섯 달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1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정상회담 제의(1월 6일), 각료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문제 공식 제기(1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국군 철수명령 하달 시도(1월 하순), 미일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문제 거론(4월 17일), 주한미국군 감축방안을 준비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 하달(5월 초) 등 획기적인 사변들이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획기적인 사변들 속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확고부동한 주한미국군 철수의지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7년 12월 20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각료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매티스 국방장관이 담화하는 장면이다. 표정이 좀 심각해 보인다. 그 두 사람의 관계는 2017년 중반 이후 극도로 나빠졌고, 올해 들어오면서 미국 언론매체들은 매티스 경질설을 보도하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매티스 국방장관의 관계가 악화된 결정적인 이유는, 매티스 국방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국군 철수의지를 돌려세우려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격렬한 논쟁을 여러 차례 벌였기 때문이다. 2017년에 미국 공군이 조선에게 핵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폭격기 편대를 동원한 공중폭격연습까지 벌려놓았는데도, 매티스 국방장관은 핵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주한미국군을 주둔시킨다는 궤변을 꺼내들고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국군 철수의지를 돌려세우려고 수작질을 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매티스 국방장관은 주한미국군 주둔의 전략적 가치를 묻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3차 세계대전을 예방하기 위해” 주한미국군을 주둔시킨다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그 책에서는 그가 언제, 어느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렇게 답변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매티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철수의지를 표명할 때마다 반론을 늘어놓았으나 그것이 통하지 않자, 제3차 세계대전을 예방하기 위해 주한미국군을 주둔시킨다는 궤변을 꺼내놓은 것이다. 

 

매티스 국방장관이 언급한 제3차 세계대전이 핵전쟁을 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가 제3차 세계대전을 운운하는 궤변을 꺼내놓았던 2017년 당시 미국 군부는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저지하기 위해 핵전쟁도발을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었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2017년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미국 공군은 조선과 지형이 비슷한 미국 본토 미주리주 오작스(Ozarks)에서 조선을 공격하기 위한 공중폭격연습을 진행하였는데, 폭격기들이 지상으로부터 150m 상공에서 초저공비행으로 폭격을 감행하여 적국의 지하시설로 가정한 제퍼슨씨티공항의 격납고를 파괴하는 모의연습을 벌였을 뿐 아니라, 2017년 4월에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사용한, 무게가 15t이나 되는 거대한 지하관통폭탄(Massive Ordnance Penetrator)을 실은 폭격기들이 가상적진상공을 깊숙이 파고들어가는 침투비행연습도 감행하였다고 한다. 

 

미국 공군이 조선에게 핵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공중폭격연습까지 벌여놓았는데도, 매티스 국방장관은 핵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주한미국군을 주둔시킨다는 궤변을 꺼내놓고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국군 철수의지를 돌려세우려고 수작질을 하였다.  

 

 

5. 트럼프의 철군명령 유보시킨 백악관의 철군논쟁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제3차 세계대전을 예방하기 위해 주한미국군을 주둔시킨다는 매티스 국방장관의 궤변을 듣고 나서, 아무 말이 없이 약간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제3차 세계대전을 운운한 매티스의 답변이 자기의 주한미국군 철수의지를 돌려세우려고 꾸며낸 궤변이라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은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겁이 난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매티스 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과 각료들의 심각한 철군논쟁으로 확대되었다. 그 논쟁은 다음과 같다.  

 

매티스 - “우리는 28,500명의 군대를 (한국에) 전진배치하여 우리 본토를 방어하는 능력을 가졌다. (한국에 전진배치한) 정보능력과 군대가 없다면, 전쟁위험이 굉장히 증대될 것이고, 한국과 일본을 방어하는 수단들은 감소될 것이다. 만일 이런 자산들이 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유일한 선택방도는 핵선택이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는 동일한 억제효과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효과적으로 비용을 댈 수도 없다.”  

 

트럼프 - “그렇지만 우리는 한국, 중국,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에서 많은 적자를 보고 있다. 나는 그 돈을 우리나라를 위해 쓰고 싶다. 우리와 안보관계를 맺은 다른 나라들은 우리에게서 많은 돈을 가져가기 때문에 그런 관계를 맺은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돈을 거의 훔쳐가다시피 하고 있다.”

 

매티스 - “전진배치한 군대는 우리의 안보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수단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철군은 우리의 동맹국들이 우리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어버리게 만들 것이다.” (바로 이 때, 던포드 합참의장이 논쟁에 끼어들면서, 매티스 국방장관이 주장했던 요점들을 “열정적으로”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다시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 “우리는 재정을 분담하지 않는 부유한 나라들을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렉스 틸러슨도 대통령과 각료들 사이에서 벌어진 철군논쟁에 끼어들었다.)

 

틸러슨 - (미국군의 해외주둔이 지니는 가치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은 최선의 본보기다. 세계체제다. 무역과 지정학에서 (동맹국들과) 함께하는 것은 유익한 안보결과를 가져온다.“

 

던포드 - “우리가 한국에 우리 군대를 전진배치하는 비용은 약 20억 달러다. (2017년 7월 20일 미국 국방부를 시찰할 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주한미국군 주둔비로 38억 달러를 지출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우리에게 8억 달러 이상을 돌려준다. 우리는 그들이 지불하는 것처럼 우리 군대의 주둔비용을 보상받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본토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매년 40억 달러의 분담금을 (동맹국들로부터) 받아내고 있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5년 11월 2일 조섭 던포드 미국군 합참의장이 비무장지대 일대를 시찰하는 장면이다.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각료들이 철군논쟁을 벌였을 때, 던포드는 주한미국군 철수를 반대하는 매티스 국방장관을 열정적으로 지지했다. 게는 가재편이라는 속담이 말해주듯,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언제나 같은 편이다. 매티스와 던포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의지를 돌려세우려고 온갖 궤변과 거짓말을 꾸며냈지만, 그들이 철군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을 내리면, 주한미국군 고위지휘관들의 어깨에 달린 수많은 '별'들이 우수수 떨어져 퇴역군인으로 전락하게 되고,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국군에게 제공하는 군사장비와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지출해온 막대한 경비가 사라지고, 한국에 미국산 무기를 팔아서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정기수입원이 끊기고, 그에 따라 군산복합체의 결착고리가 느슨해지게 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트럼프 - “우리가 바보짓(미국군의 해외주둔이라는 뜻-옮긴이)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부유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바보처럼 놀고 있다. 특별히 네이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뜻-옮긴이)가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벌이는 전쟁들, 미국군의 해외주둔, 중동나라들에 대한 지원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들에 대해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 “우리는 중동지역에서 7조 달러를 지출했다. 우리는 국내의 사회간접자본을 위해 1조 달러도 모으지 못하고 있다.” 

 

각료회의가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회의실에서 나가자, 그 자리에 남아있던 각료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각료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해야 했고, 자기들이 대통령과 철군논쟁을 하고 있는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왜 이런 짓(대통령과의 철군논쟁을 뜻함-옮긴이)을 계속하고 있는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면 자기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는지 탄식했다고 한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각료들이 벌인 철군논쟁에서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매티스 국방장관은 남달리 격앙되었는데, 그는 자기 보좌관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초등학교 5~6학년생”의 이해수준을 가지고 행동했다고 하면서 그를 비방했다고 한다. 미국의 온라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Politico)> 2018년 9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의 철군의지를 가로막으면서 철군논쟁을 벌인 매티스 국방장관을 “유순한 개(Moderate Dog)”라고 비하하면서, 2018년 11월 6일 중간선거 이후에 그를 경질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들이 워낙 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을 유보하였지만, 앞으로 조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사항들이 이행되어 종전선언이 발표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반도에서 전쟁위험과 군사적 긴장이 사라진 평화체제가 수립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과 각료들의 철군논쟁도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을 내릴 결정적인 기회를 맞을 것이다. 미국에게 철군의 길이 열리면, 한반도에서는 통일의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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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측위, 평양 10.4 민족공동행사 불참 결정

“당국이 민간 선별 초청...정상적인 협력 실현 못해”
김치관/조정훈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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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30  20: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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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공동선언 11주년 기념 민족공동행사가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6.15남측위원회가 불참을 결정했다.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회' 회의에서도 10.4 기념행사 추진 상황을 점검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이하 6.15남측위원회)는 30일 상임대표회의를 갖고 평양에서 열리는 10.4선언 11주년 기념 민족공동행사에 불참키로 결정했다.

남북 당국은 지난 28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회의’를 통해 10.4선언 11주년 민족공동행사를 10월 4~6일 평양에서 개최키로 합의하고, 남측 대표단 규모는 150명 수준으로 하되 방북 경로 등은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 앞서, 남북 정상은 평양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10.4 선언 11주년을 뜻깊게 기념하기 위한 행사들을 의의있게 개최”키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통일부는 노무현재단(이사장 이해찬)과 6.15남측위원회(상임대표의장 이창복) 등과 협의하여 민관 공동행사로 10.4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6.15남측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현 시점까지 당국의 입장과 추진과정을 볼 때, 당국과 정당, 민간 등 제 주체들이 함께 준비해 가는 민족공동행사의 위상과 정신에 부합되지 않고, 당국이 민간을 선별적으로 초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민족공동행사의 민간측 추진 당사자인 6.15남측위원회와 당국 사이에 정상적인 협력이 실현되지 못하는 이와 같은 조건에서는 이번 행사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6.15남측위원회는 “6.15남측위원회는 판문점 선언의 합의에 기초하여 제 단위가 함께 하는 민족공동행사의 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며,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실현, 6.15공동위원회의 강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6.15남측위원회 관계자는 “대외적으로 공식적인 기자회견은 하지 않기로 했다”며 “참가자 숫자 배정 문제가 아니라 행사 추진과정에서 공동 협의, 결정하는 과정이 없었다”고 문제점을 짚었다.

판문점선언 이후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내부 기류는 6.15남측위원회를 민간교류단체의 대표격으로 보지 않고 여러 민간단체 중의 하나로서 ‘참여’시키면 된다는 분위기가 강했고, 평양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에도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 서울에서 열린 2005년 6.15민족공동행사는 6.15민족공동위원회가 주최하고 남북 당국대표단이 참석했다. 김기남 북측 당국 대표단장 등은 역사상 처음으로 현충원을 참배해 화제가 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러나 6.15남측위원회는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2008년까지 6.15, 8.15 등의 계기에 민족공동행사를 주관해 왔고, 특히 2005~2006년에는 6.15민족공동위원회가 주최하는 6.15, 8.15 민족공동행사에 정부대표단이 참석한 적도 있다.

정부는 6.15남측위원회의 과거 역사가 있다 하더라도 달라진 남북관계 상황에서 6.15남측위원회를 굳이 대표단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10.4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참 결정이 불거진 것.

6.15남측위원회는 10.4 민족공동행사 불참 결정을 이날 오후 통일부에 전달했고, 6.15북측위원회(위원장 박명철)에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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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간 '기소중지' 반란 주역, 군인연금은 계속 수령

[추적] 수사 피해 95년 해외로 달아났던 조홍 전 육본 헌병감... 망각 속에 홀로 연금혜택

18.10.01 07:43l최종 업데이트 18.10.01 08:33l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지만 해외로 도피해 22년 동안 '기소중지' 상태로 남아있는 피의자가 그동안 군인연금은 계속 수령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해 반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고있는 조홍 전 육군본부 헌병감(육사 13기, 준장 예편)이 최근까지 군인연금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군인연금과는 '조홍씨에 대한 군인연금 지급 현황을 알려달라'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실(비례대표) 질의에 "조홍 전 헌병감은 군인연금수급대상자"라고 확인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구두로도 "조홍 전 헌병감은 지금까지 계속 군인연금을 수령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유족연금이 아니라 군인연금이 지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조홍씨는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방부 측은 군인연금 수령 규모 등에 대해서는 "개인정보와 관련된 사항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군인연금법 제33조는 군인 또는 군인이었던 사람이 내란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로 도피해 기소중지 상태인 조씨는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인연금 수급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조홍 전 육군본부 헌병감은 누구?] 반란의 시작과 끝에 모두 관여
  

1995년 12월 5일 자 경향신문 1995년 12월 4일 12.12 관련자로는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된 조홍 전 수경사 헌병단장.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던 조씨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같은 달 16일 캐나다로 출국했다. 검찰은 해외로 도피해 귀국하지 않고 있는 조씨를 기소중지했고, 그는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2.12 군사반란관련자 중 사법처리를 받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다.
▲ 1995년 12월 5일 자 경향신문 1995년 12월 4일 12.12 관련자로는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된 조홍 전 수경사 헌병단장.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던 조씨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같은 달 16일 캐나다로 출국했다. 검찰은 해외로 도피해 귀국하지 않고 있는 조씨를 기소중지했고, 그는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2.12 군사반란관련자 중 사법처리를 받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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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는 검찰이 12·12 군사반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에 대해 본격적으로 재수사를 시작했던 지난 1995년 12월 4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한 차례 조사를 받았다. 이후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자 조씨는 같은 달 16일 딸들이 거주하는 캐나다로 출국해버렸다. 조씨는 출국 직후 "돌아가지 않겠다"는 편지를 검찰에 보내기도 했다.

 

검찰 수사기록에 의하면, 조홍씨는 1979년 12월 12일 합법적 지휘계통에 있던 육군본부 측 지휘관들의 격리와 체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12·12 당시 수도경비사령부(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 아래 수경사) 헌병단장(대령)이었던 그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군사반란 당일 저녁 자신의 장군 진급 축하모임을 빙자해 서울 연희동의 한 요정으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 등을 유인해 1시간 이상 붙잡아두고 있었다. 정식 명령계통에 있던 이들 장성들을 부대로부터 떨어지게 해서 신군부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불법연행에 대응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 조씨는 같은 날 오후 11시쯤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수경사에 모여있던 육군본부 수뇌부의 무장을 해제하고 이들을 전원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부하인 신윤희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에게 하달해 실행토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수경사령관실로 진입한 헌병들에 의해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 총상을 입었고, 윤성민 육군참모차장·문홍구 합참 대간첩대책본부장·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이 무장해제된 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갔다. 반란의 시작과 끝에 모두 조씨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셈이다.

쿠데타의 주역들은 반란 이틀 뒤 보안사에 모여 자축 샴페인을 터트린 후 기념 촬영을 했다. 이 사진 속에는 조씨의 모습도 보인다.

조씨는 신군부가 군권을 장악한 직후 육군본부 헌병감에 올랐다가 1982년 준장으로 전역했다. 이후 재향군인회 사업국장과 도로교통안전협회 감사를 지냈고, 1983년부터 1989년까지 6년간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2.12 쿠데타 이틀 뒤인 1979년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 구내에서 기념촬영한 12.12 쿠데타 핵심인물들. 빨깐 동그라미 안의 인물이 조홍 당시 수경사 헌병단장.
▲  12.12 쿠데타 이틀 뒤인 1979년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 구내에서 기념촬영한 12.12 쿠데타 핵심인물들. 빨깐 동그라미 안의 인물이 조홍 당시 수경사 헌병단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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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검찰 조사 후 캐나다로 도피... 기소됐다면 중형 불가피

검찰은 12.12 반란 당시 조씨의 행위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봤고, 반란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기려 했지만 그가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기소중지했다. 만약 조씨가 재판에 넘겨졌다면 유죄 선고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조씨의 명령을 받고 육군본부 측 장성들을 불법 연행했던 신윤희씨가 징역 4년형(항소심에서 3년 6월로 감형)을 선고받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자신의 직속상관인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기망하고 체포하도록 명령했던 조씨의 범행은 한층 더 무겁다고 볼 수 있다.

내란(반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12·12와 5·18 관련자 18명 중 12·12 반란 당시 20사단장이었던 박준병씨 한 사람만 무죄를 선고받았을 뿐, 나머지 피고인 전원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씨처럼 검찰 수사의 칼날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던 박희도·장기오씨의 경우도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있던 1998년 뒤늦게 귀국, 이듬해 7월 1심에서 군 형법상 반란지휘 혐의로 각각 징역 5년과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내란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등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12·12와 5·18 관련자 전원에 대해 정부는 군인연금 지급을 중단하고 이미 지급된 연금에 대해서도 환수 조치(예편 후 바로 선거직공무원인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전두환씨와 대법원 유죄 판결 전 사망해 공소 기각된 유학성씨는 연금환수 대상에서 제외)했다.

망각 속에 홀로 누려운 연금혜택... 김종대 "부실했던 '역사바로세우기' 사례"
 
1995년 12월 4일 자 경향신문 지난 1995년 12월 3일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의 소환통보에 불응,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검찰 영장집행팀에 체포되어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튿날 검찰은 12.12 군사반란에 참가했던 신군부 인사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작했다. 검찰의 첫 번째 소환 대상이 된 사람이 바로 조홍씨였다.
▲ 1995년 12월 4일 자 경향신문 지난 1995년 12월 3일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의 소환통보에 불응,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검찰 영장집행팀에 체포되어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튿날 검찰은 12.12 군사반란에 참가했던 신군부 인사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작했다. 검찰의 첫 번째 소환 대상이 된 사람이 바로 조홍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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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정호용(5.18 당시 특전사령관)·황영시(12·12 당시 1군단장)·장세동(12·12 당시 수경사 30경비단장)·허화평(12·12 당시 보안사 비서실장)·허삼수(12·12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 등 10명은 국방부를 상대로 2014년 1월 서울행정법원에 연금지급 거부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같은 해 6월 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들이 낸 군인연금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역시 각하했다(관련 기사: 12·12군사반란 가담자 10명 "군인연금 달라" 소송).

이보다 앞선 2003년 7월에도 서울행정법원은 12·12반란 가담자 중 장세동·허화평·허삼수씨 등 3명이 "군사반란 등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퇴역군인연급 지급을 중단한 것은 부당하다"라며 공무원 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무고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과 명예회복도 다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보위의 막중한 책임을 저버린 원고들에게 퇴직급여 청구권을 인정해주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라며 "당시 반란수괴인 전두환을 비롯해 헌정질서 파괴의 반란군에 불과한 원고들이 진실로 반성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라고 꾸짖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유독 해외로 도피한 조씨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존재조차 까맣게 잊혔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망각 속에서 숨어 연금 혜택까지 누려왔다.

군인연금 재원은 이미 1973년 고갈됐고, 지난 2010년부터는 해마다 1조 원이 넘는 적자를 세금으로 보전하고 있다. 군권을 불법으로 찬탈하고,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댔던 군사반란 피의자에게 국민 혈세로 꼬박꼬박 연금을 지급해온 꼴이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그동안 우리 역사바로세우기가 얼마나 부실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특히 군인연금을 계속 지급해왔다는 사실은 반란사범을 노골적으로 비호하겠다는 의도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조씨에게 지급된 연금에 대한 환수조치와 함께 반드시 사법처리도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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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입력 : 2018.09.29 06:00:03 수정 : 2018.09.29 14:07:27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출산드라’는 그만 찾으세요

인구절벽에 온 나라가 출산 구호…가임지도까지 
경기 침체가 과연 저출산 탓만인지 따져볼까요

인구 문제는 21세기 한국의 ‘공인’된 공포 중 하나다. 포털 사이트에 인구절벽을 검색하면 이를 언급한 언론보도가 지난 6년간 1만건이 넘는다. 공포스러운 미래는 대개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한국은 8년 후 다섯 명 중 한 명이 고령자(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빠른 속도다.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인구(15~64세·생산가능인구)는 지난해부터 이미 줄고 있다. 곧 내수는 얼어붙는다. 사회보장제도로 부양해야 할 노인 규모가 커 국가재정도 악화한다.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경기는 침체하고 모두가 신음한다.

그러나 두려울수록 따져봐야 한다. 인구 고령화와 인구감소는 상수지만 나머지는 ‘변수’일 수도 있다. 인구와 국내총생산(GDP)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인구절벽이 일본식의 ‘잃어버린 세월’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견되곤 하지만, 일본 내에서조차 저출산·인구감소와 ‘잃어버린 세월’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또 ‘65세 이상’을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고령자로 보는 것은 적절할까. 한국이 다민족사회가 된다면 저출산이 정말 재앙일까.

온 국가가 ‘출산’을 외치고 있다. ‘출산력’이라는 단어가 적힌 공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정집에 붙어 있거나, 가임여성지도가 만들어지는 등 여성을 출산기계 취급하는 장면이 종종 매스컴을 탄다. 정책 목표가 태어난 아이의 행복할 권리가 아니라 ‘출산’이 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잠시라도 ‘출산’이라는 구호는 접어두자. 대신 주어진 인구 구조와 규모를 가지고 그럭저럭 잘 살아볼 수 있는 방법을 한번 생각해보자.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당신의 미래 상상에 영감을 줄 만한 역사적 사례, 연구, 통계 등을 모았다. 지금 절실한 건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받아들이고 힘을 합해 잘 헤쳐나가기 위한 ‘건강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경기 침체, 과연 저출산·고령화 탓인가

‘소멸해가는 나라’ ‘출산파업·임신파업·결혼파업’ ‘자기중심 사회’….

2018년 한국 언론보도가 아니다. 2006년 독일의 유력 일간지와 시사주간지들이 앞다퉈 쓴 표현들이다. 당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아이 안 낳는 나라 중 하나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차 대전 직후에도 독일에선 인구 문제가 걱정이었다. 

■ 독일 타산지석 삼는 ‘인구감소 생각법’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왜 문제인지 당시 독일인에게 묻는다면 대체로 ‘민족’을 얘기했을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에 따르면 독일에서 공개적으로 ‘인구감소’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1911년부터다. 1932년엔 인구통계학자인 프리드리히 부르크되르퍼가 <청소년 없는 민족>을 펴냈다. 민족 사멸에 대한 우려가 스며들던 시기였다. 

이후 나치 치하에서 인구학은 우생학과 부적절하게 결합했다. 나치는 “우월한 혈통”(아리아인)에 국한해 대대적인 출산장려책을 펼쳤다. 논문 ‘나치 독일의 가족과 인구정책’(유정희)에 따르면, 낙태를 한 여성은 실형에 처했고 수천명의 매춘부를 체포했다. 이어 ‘결혼 자금대여’ 정책을 시행했는데, 여성이 직장에 다니고 있다가 결혼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대출원금은 자녀를 4명 낳으면 사라진다. 다섯 번째 아이부터는 매달 자녀양육비를 줬고 나중엔 세 번째 아이로까지 확대했다. 여섯 번째 아이를 낳는 여성은 저명인사를 아이의 대부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대출을 받은 부부들은 대개 아이 한 명을 낳고 현금으로 갚았다. “가치 있는” 집단으로 여긴 당 간부의 기혼자조차 평균 자녀 수가 1.1명이었다. 반면 나치는 “유전적으로 열등한 자손의 출산을 금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독일 민족 이외 민족의 출산을 막았다. 205개의 우생학 재판소를 설치해 5만6000건의 강제 불임시술을 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거쳐 1950~1960년대 독일에서도 베이비붐이 일었다. 그러나 이내 출산율은 또 떨어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다시 저출산이 도마에 올랐다. 

민족 소멸 우려 돈 주며 출산장려 
이후 국가·미래 불안 내세웠지만
유럽서 가장 아이 안 낳는 나라돼 
현재 독일, 인구정책 없지만 풍요

 

유럽 국가, 저출산·고령화 대책 
개인 삶 겨냥한 구체적 전략 없고
가족·노동·이민·재정 정책 간 
유기적 결합이 성장 돕는다 인식

 

<모성애의 발명>의 저자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은 2006년 당시 언론과 저명인사들이 주도했던 저출산 논란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논쟁을 바라보면 빠진 게 무엇인지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21세기 독일의 저출산 논의에서 “국가적 호소”나 “민주주의적 어조”는 적어도 “공식 공간”에서만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대신 ‘세대 간 합의의 파기’ ‘불안한 연금’ ‘사회복지 체계의 과중한 부담’ ‘경기침체’ 같은 표제어가 전형적인 공포의 시나리오가 되었다”고 말한다. 즉 민족이나 국가적 사명 같은 자리를 대신 메운 것은 인간 누구나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였다.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전상진 교수는 “무려 100년간 자신들이 없어질까봐 걱정을 했던 독일에서 교훈을 얻자”고 말한다. 지금 독일이 소멸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다. 전 교수는 “인구 때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일컬어 ‘인구 종말론자’라고 한다”면서 “공적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 사적연금 시장을 키우거나, 세대 간 갈등을 부추겨 특정 세대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정치적 노림수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인구학회 학술세미나에서 독일의 인구학자 베른하르트 코펜 교수(코블렌츠대학)는 “인구축소(decline)에 적응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개별 시민을 직접 겨냥해 (그들의 삶에) 개입하려는 인구정책은 현재 독일에 없다”고도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영국·프랑스·네덜란드·일본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대해 비교연구한 2010년의 보고서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한 명시적인 성장전략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진은 그러면서 “(이들 유럽 국가는) 가족정책, 노동정책, 이민정책, 재정정책 간 유기적 결합이 지속 가능한 성장에 기여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압축성장에 이어 ‘압축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 대응 자세도 압축적으로 배울 수는 없을까. 
 

■ 경제는 진짜 망할까 
 

저출산·고령화와 인구감소의 가장 문제는 ‘경제’라고들 한다. 한창 일할 나이의 인구(생산가능인구)가 곧 ‘노동자’이자 ‘소비자’인데 이들의 인구규모가 움츠러드니 만들어 팔 제품도 줄어든다는 논리다. 하지만 상식은 때로 입증이 어렵다. 

한 나라의 경제적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GDP다. 그동안 경제학계에선 GDP와 인구의 상관관계에 대해 오랜 논쟁을 해왔다. ‘인구감소=GDP 하락’ 논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일본의 대표적 거시경제학자로 꼽히는 요시카와 히로시 릿쇼대 교수는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것은 인구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라는 책에서 150년간의 일본 인구추이와 실질 GDP 통계를 제시했다. 일본의 실질 GDP는 1950년 즈음부터 급격히 치솟았다. 그러나 인구는 거의 그 자리를 맴도는 수준으로 천천히 증가했다. 요시카와 교수는 “경제성장과 인구는 거의 관계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괴리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요시카와 교수가 노동력 인구 대신 주목하는 것은 ‘노동생산성’이다. 그는 “노동력 인구가 변함없더라도 (혹은 조금 감소하더라도) 한 명의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증가하면(즉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은 플러스가 된다”고 말한다. 

노동생산성은 주로 기술이 진보할 때 큰 폭으로 뛴다. 일본이 고도성장을 이루기 직전 일본 취업자의 절반 남짓이 농업·임업·수산업 등 1차 산업에 종사했다. 만약 1차 산업 위주로만 국가경제가 돌아간다면 노동력 규모가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고도’ 성장은 어렵다. 핵심은 공업화였다. 일본에서 ‘신기 3종’이라 불린 흑백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는 초창기엔 가격이 비싸 대중화되기 어려웠지만 기술 발전과 함께 가격이 떨어졌다. 노동자 1인당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물이 증가(노동생산성이 상승)한 것이다. 제품이 잘 팔리니 노동자들의 임금도 올랐다. 고도성장기 일본 ‘노동력 인구’의 증가율은 연평균 1.3%였고 이후 1차 오일쇼크부터 버블이 끝날 때까지(1975~1990년)는 1.2%였다. 거의 변화가 없다. 

한국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명 애널리스트 중 한 명인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도 <인구와 투자의 미래>에서 인구절벽 가설을 반박했다. 그는 일본의 1960~2015년의 토지·주식시장을 분석하면서 “‘인구절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1990년 이후 일본의 긴 불황이 ‘인구감소에 따른 수요부진’ 때문에 나타났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인구가 아니라 자산시장의 거품 그리고 정책의 연이은 실패가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평론가인 이원재 랩2050 대표도 일본의 요시카와 교수처럼 노동력 규모보다 노동생산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21세기의 급격한 기술진보 흐름을 들여다보면 기술이 기존의 인간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투입 노동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따라서 GDP가 인구 때문에 떨어지지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앞으로 인간이 책임져야 할 노동으로는 돌봄과 관리노동 등이 남을 텐데 이런 노동은 시니어들도 잘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생산가능인구(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의 인구)를 15~64세로 계속 묶어두는 것이 옳으냐는 지적이다.

노동력 규모보다 노동생산성 중요 
로봇 등 기술진보가 생산성 뒷받침
일본 150년간의 성장·침체기 통해 
‘인구감소 = GDP 하락’ 논리 깨져

 

미래 공포 내세워 출산 강요하는 
‘인구지상주의’는 도움 안돼
‘저인구 시대’ 대응 복잡하지 않아 
보편 복지·노동 정책 재설계를

 

오히려 문제는 분배와 복지다. 예를 들어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그동안 8시간이 걸렸다가 기계화에 따라 4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기업들이 일자리 총량을 줄여버릴 수 있다. 그럴 경우 노동자들은 타격을 입는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앞으로 수량적 노동인구가 생산력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성과를 배분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적극적인 분배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오 위원장은 “1차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분배가 필요하고, 2차적으로는 중심부의 노동자들과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실업자와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사회수당 등의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쉽게 복지를 확대할 수 있을까. 오 위원장은 “미래엔 경제를 위해서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수에 어느 정도 의존하려면 대다수 인구에 소비여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원재 대표 역시 “지금처럼 65세를 기준으로 잘라 그 이전까지는 복지가 거의 없다가 65세부터 연금수령이 시작되니 ‘등산이나 다니라’고 권유하는 식의 정책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면서 “새로운 인구구조에선 보편적 복지정책과 노동정책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 이주민에 빗장 건 한국…앞으로도? 
 

기술이 진보해도 ‘노동력 인구’의 문제가 다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고령자 비중이 커지면 강도 높은 체력이 요구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3D 업종의 인력난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 노인이 많아질수록 간병인 수요도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거론되는 대안이 이민자 유입의 확대다. 경제적 이유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주로 생산가능인구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령화 속도를 늦춰 인구구조 변화의 충격을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였던 호주, 캐나다, 미국, 독일, 스페인에선 그렇지 않았던 일본에 비해 고령화가 완만하게 진행됐다. 특히 독일은 1990년대엔 일본보다 고령화가 더 심각했으나, 이후 20여년간 이민자를 대규모로 받아들인 이후 고령화 속도를 늦췄다. 1990년 독일의 이주민 비중은 전체 인구의 7.51%였는데, 2015년에는 14.8%에 이르렀다. 스페인도 일본보다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 대비 고령자 인구수) 규모가 컸다. 하지만 25년간 이주민 비중이 6배 늘었고, 2015년 노년부양비는 일본보다 낮은 28명이다(한국은행 2017년 보고서). 대규모 이주민 유입이 이들 국가의 노인 부양 ‘부담’을 줄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주민에게 폐쇄적인 국가다.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서 ‘정주민’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영주권을 쉽게 발급받을 수 있는 이들은 이른바 고급인력들뿐이다.
 

◆이민자에 적대적이던 일본, 초고령사회 이후 “일본어 못해도 오라”

터키 출신으로 일본에서 일하는 해체공사 전문가 카르타르 바틴은 일본어를 능숙히 구사한다.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은 이주민을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박철현 제공

터키 출신으로 일본에서 일하는 해체공사 전문가 카르타르 바틴은 일본어를 능숙히 구사한다.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은 이주민을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박철현 제공 

1980년대 민족 강조했지만 
인구 줄며 폐쇄주의 사라져
“신속한 이민 시스템 구축” 
아베 총리 2016년 선언

이민자 더 많이 받아들인 
호주·캐나다·미국·독일 등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 더뎌
 

애초 외국인 노동자를 받을 때부터 한국은 이들의 정주화를 차단하기 위한 정책을 설계했다. 현재의 고용허가제는 3년간 특정사업장에서 일하도록 하고 있는데, 사업장 변경은 사업주의 폭행, 상습폭언, 임금체불 등을 정부가 인정한 경우에만 3회 가능하다. 그러나 입증이 쉽지 않아 합법적 이동이 어렵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대한민국은 현재의 노르웨이·스웨덴처럼 외국계 인구가 총인구의 17~18%를 구성하는 이민사회가 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존립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자가 많은 나라’가 멀게 느껴진다면 초고령사회 ‘선배’ 국가인 일본을 참고할 수 있다. 일본 역시 한국처럼 이민자에게 적대적인 국가였다. 1980년대엔 근면, 성실 등 일본 민족 특성 때문에 경제대국이 됐다는 내용의 ‘니혼진론’이 유행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폐쇄주의는 사라졌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이후엔 이주민에 개방적인 나라가 되려 힘쓰고 있다.

일본이 이민정책 변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 시점은 2016년 즈음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해에 “세상에서 가장 신속한 이민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요즘 일본은 ‘일본어 못해도 일하러 오라’고 손짓한다. 전문·기술직을 우대했던 그동안과는 달리 단순노동 분야에서도 취업문을 활짝 열기로 했는데, 일본은 이들에게 “300시간 학습하면 도달할 수준”의 쉬운 일본어 시험을 치르게 할 예정이다. 건설, 농업 분야에선 기준을 더 낮췄다. 일본어로 “제초제를 갖고 와 달라”는 말을 듣고 알아맞히는 사진을 고를 수 있으면 된다. 

그 결과 일본 사회의 풍경은 꽤 달라지고 있다. 일본에서 17년째 살고 있는 칼럼니스트 박철현씨는 “산업폐기물과 일반쓰레기 처리업에서 일본인을 본 적은 거의 없고 공사장 인부, 빌딩 관리도 점점 외국인이 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외국인과 타 문화에 대해 개방적인 사회는 융성하고 폐쇄적인 사회는 쇠락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민자 권리보호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발언이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10년 펴낸 ‘다문화 사회 정착과 이민정책’의 한 대목이다. 이 보고서는 다문화·다인종 국가일수록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지식기반산업, 첨단산업을 일궈가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것을 기존의 연구들을 근거로 주장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 가운데 절반은 이민자가 창업했다고 한다. 당장의 노동력 부족 문제가 아니더라도, 적극적인 이주민 정책은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얘기다.

저출산·고령화와 이에 따른 인구감소는 분명 ‘충격’에 가까운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하지만 적응만 잘한다면 재앙은 아니다. 대응책을 생각해보는 것도 실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무작정 공포스러운 미래를 그린 후 ‘출산’을 강조하는 지금의 인구 지상주의식 공론화는 다양한 상상을 위축시킨다. 인구가 감소해도 꽤 괜찮은 미래, 어쩌면 지금 우리가 무엇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고 논의하느냐에 달렸다. 
 

◆시대 따라 구호 달라진 대한민국 인구 캠페인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출산율에 따라 국가의 인구 캠페인 기조는 급격히 바뀌었다. 1970년대에는 ‘두 자녀’(위 사진 첫번째), 80년대에는 ‘한 자녀’(두번째)를 강조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출산율 제고가 관건이었다. 한 백화점이 개최한 출산장려 캠페인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한반도 지도 모양 조형물 위에 올랐다(세번째). 2015년 한국생산성본부가 출산장려 공모전 수상작으로 선정한 포스터는 ‘외동이 비하’라는 비판을 받았다(아래 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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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290600035&code=940100&sat_menu=A070#csidx1f3950986176104af58be2bfcce54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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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검사들은 왜 ‘공익’을 싫어하나

공안검사들은 왜 ‘공익’을 싫어하나

등록 :2018-09-29 15:44수정 :2018-09-29 17:17

 

 

다시 도마 오른 검찰 공안부
‘서울시 간첩 조작사건’과 관련해 간첩 혐의를 받은 유우성씨가 2014년 4월14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간첩증거조작 수사결과가 부실하다고 주장하고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서울시 간첩 조작사건’과 관련해 간첩 혐의를 받은 유우성씨가 2014년 4월14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간첩증거조작 수사결과가 부실하다고 주장하고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검찰 공안부가 다시 개혁 대상에 올랐다. ‘공익부’로 이름을 바꾸고 노동 사건을 분리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공안부 개편 방안이다. 한때 독재정권의 전위대 노릇을 하며 승승장구했던 공안부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점차 존재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공안부의 55년 ‘흑역사’와 향후 개편 전망을 짚어봤다.

 

“서울 시내에만 고정 간첩이 수십만명입니다. 국가안보가 정말 중요합니다.” ㄱ부장검사는 몇년 전 후배 검사가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고정 간첩 수십만명이라니. 얘가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그 후배 검사는 소위 ‘정통 공안’으로 분류되는 검사였다. ㄱ검사는 “평소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던 그 아무개가 맞는지 다시 봤다”며 “너무 진지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다 보니 자기 생각이 망상에 가깝다는 것을 깨우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같은 검사들 사이에서도 ‘적응이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공안검사들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검찰 공안부 개편 논의에 다시 물꼬가 터졌다. 공안부는 검찰 안에서 대공, 선거, 집회·시위, 노동 관련 사건을 다루는 부서다. 대검 공안부를 비롯해 일선 검찰청 12개 공안부(서울중앙지검 3개부, 서울 남부·수원·인천·부산·대구·창원·울산·광주·대전지검 각각 1개부) 등에 100명이 훨씬 넘는 검사들이 포진해 있다. 서울지검에 1963년, 대검에 1973년에 처음 설치돼 특별수사부(특수부)와 함께 검찰 내 ‘양대 산맥’, 에이스 집단으로 불리워 왔다. 법무부와 대검은 최근 검찰 공안부를 ‘공익부’로 바꾸고 노동 사건을 공안부에서 형사부로 이관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공안검사들의 반발로 현실화할지는 불투명하다. 진보성향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개혁대상’에 올랐지만 그때마다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던 공안부가 이번에는 정말 개혁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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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공안부 개편 추진

 

 

1993년 김영삼 정부는 출범 직후 당시 성역에 가까웠던 검찰 조직에 칼을 대 대검 공안부장 출신 이건개(77) 대전고검장 등 현직 고검장 3명의 옷을 벗겼다. 하지만 2년 뒤 신군부의 12·12사태와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사건 처리를 맡기며 되레 공안검사들을 중용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도 인권을 중시하는 새로운 공안정책, 즉 ‘신공안’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공안검사 물갈이를 시도하고 조직도 축소했다. 하지만 1985년 김근태 당시 민청련 의장을 구속했던 ‘성골 공안’ 김원치(2008년 사망)를 검사장으로 승진(1998년)시켰고, 박근혜 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해 논란을 일으킨 ‘마지막 구공안’ 고영주(2015~2017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69)를 대검 감찰부장으로 중용(2004년)했다.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정권의 ‘탄압’에 맞서 공안검사들은 오히려 더 크게 목소리를 냈다. 1993년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 적용 범위 축소 등이 추진되자,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 부장 등 공안부 소속 검사 5명이 기자실로 우르르 내려와 “간첩 수사의 난관을 초래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03년 송두율 교수에 대한 법무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에 대해서도 송광수(68) 당시 검찰총장부터 정점식(53) 공안부 평검사까지 사표를 내겠다고 버텨 결국 구속수사를 관철시켰다.

 

현재 법무부와 대검이 추진하는 공안부 개편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대검은 지난 7월 전국 공안검사들에게 공문을 보내 “선거, 노동 사건을 공안적 시각에서 편향되게 처리한다는 오해와 비판을 불식하겠다”며 ‘공안부’라는 이름을 ‘공익부’로 바꾸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검찰이 파업 등에 업무방해죄를 과도하게 적용하고, (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는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등 노동 사건을 공안의 시각으로 처리했다”는 지난 6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노동 사건을 공안부 담당에서 형사부로 이관시키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공안부를 개편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공안검사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이나 국정원·기무사의 불법적 정치개입 행위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 용산 참사·쌍용자동차 파업 진압같은 공권력 남용 사건에 대한 편향적인 처리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검찰 공안부가 보여준 행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공안검사 출신 한 검찰 간부는 “과거 정부에서 공안부가 잘못한 일들을 철저히 분석해서 공안검사들을 재교육하고 다시는 그런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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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존재감

 

 

하지만 개편 방안의 각론에는 반대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노동 사건을 형사부로 이관하는 방안과 관련해 “노동 사건을 떼어내면 공안부가 검찰 내 하나의 독자적인 ‘부’로 존립하기 힘든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엿보인다.

 

역대 공안부는 대공·선거·집회시위 사건보다 노동 사건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다른 사건들은 급감한데 비해 노동 사건은 계속 증가해 그 비중이 커졌다. 지난해 기준 공안부 처리 사건의 89.2%를 차지할 정도다. 최근 들어선 공안부로 매일 꾸준히 사건이 송치되는 유일한 ‘일감’이기도 하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한겨레> 자료사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한겨레> 자료사진
특히, 공안부 사건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대공 사건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과거 공안검사에게 간첩 사건 수사는 ‘가문의 영광’이었다. 특수부 검사에게 재벌총수나 유력 정치인·관료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와도 같았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 등 정치사회적 환경이 바뀌면서 대공 사건은 가뭄에 콩 나듯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1997년 한 해 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람은 897명에 달했지만, 2017년엔 14명까지 줄었다. 1970∼80년대 맹위를 떨쳤던 공안검사의 ‘무기’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돼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검찰이 재판에 넘긴 대공 사범은 2명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2013년)의 70명이나 지난해 14명과 비교해서도 크게 감소했다.

 

집회·시위 관련 사건 역시 문재인 정부 들어 집회·시위의 권리가 기본권으로 존중되고 있는 추세여서 많이 줄고 있다. 만약 노동 사건을 떼어낸다면 공안부가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대검 공안부 관계자는 “과거 공안부의 노동 사건 처리가 잘못됐다면 그걸 바로잡으면 될 일이지, 전문성이 없는 형사부에 노동 사건을 넘기게 되면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게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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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보위’하며 승승장구

 

지금은 궁지에 몰린 듯한 모습이지만, 공안부는 1963년 서울지검에 설치된 이래 검찰 내 최고 ‘노른자위’였다. 특히 군사독재 정권 시절엔 법의 이름으로 독재 체제를 뒷받침해주는 전위대 노릇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작곡가 윤이상(1995년 작고) 등을 간첩으로 몰았던 동백림 사건(1967년)을 비롯해 이후 과거사 조사 및 재심 결과 ‘조작사건’으로 드러난 사건들이 모두 공안검사들의 손끝에서 처리됐다.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를 시작으로 법무부 검찰3과장(현 공안기획과장), 대검 공안과장,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거치면 검사장 이상 검찰 고위직으로의 승진은 물론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까지 넘볼 수 있는 ‘출세 코스’로 인식됐다. 공안검사들이 특수부 검사들과 달리 정권 교체에 따른 부침이 큰 이유도 출세 지향적 사건 처리에 따른 자승자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이런 공안검사의 전형이 바로 김기춘(79)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대학 3학년 때인 1960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소년 등과’한 김 전 실장은 유신헌법을 제정(1972년)하는데 기여해, 이듬해 부장검사급인 법무부 인권옹호과장으로, 1975년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에 올랐다. 당시 그는 36살이었다. 1976년 ‘민주구국선언’ 발표로 구속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김광일(2010년 작고) 변호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김 전 실장은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겠다. 김대중 앞잡이 노릇 집어치워라”라고 김 변호사를 협박했다고 한다. 김기춘은 5공 때 서울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6공 때인 1988년 40대 검찰총장이 됐고 곧바로 법무부 장관(1991년)에 올랐다. 당시 기사를 보면 김기춘은 총장 시절 대검·서울지검 공안 관계자 전원을 총장실로 불러 “좌경세력은 무좀과 같아서 약을 바르면 일시적으로 치유된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곤 한다. 체제 수호에 검찰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특수부와 함께 검찰 내 양대산맥 
간첩·선거·집회시위 사건 등 다뤄 
독재정권 시절 체제유지 전위대 
검사장 등으로 올라가는 승진코스 
김기춘, 이건개, 고영주 등 ‘배출’

 

 

김대중·노무현 정부선 개혁 제자리 
문재인 정부, ‘공익부’로 이름 바꾸고 
노동 사건 형사부로 분리 방안 추진 
“전문성 없어 누구도 득 안돼” 반발 
일각선 “아예 없애야 한다” 주장도

 

 

이건개 전 국회의원. <한겨레> 자료 사진.
이건개 전 국회의원. <한겨레> 자료 사진.
이건개 전 의원 역시 대표적인 공안검사다. 서른살 때인 1971년 서울시경 국장(현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발탁됐고, 5공·6공 때 서울지검 공안부장과 대검 공안부장을 맡았다. 1989년 서경원 의원 방북 사건으로 몰아친 공안정국 땐 공안합동수사본부 본부장을 맡아 77일 동안 국가보안법으로 85명을 구속하는 ‘신기’를 보여줬다.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제1 야당인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에게 불고지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긴 주역들로, 김기춘·이건개·당시 안강민(77)서울지검 공안1부장·이상형(69) 공안1부 검사를 묶어 ‘공안 4인방’이라고 부른다.

 

출세욕에 눈먼 일부 공안검사들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했다.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김근태(2011년 작고) 전 의원은 이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조사한 김원치 검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려움에 얼어버린 채 남영동에서 검찰로 왔을 때, 교양 있는 검사를 끊임없이 짝사랑하게 된다. 그래도 끔찍한 고문을 안 해서 고맙고 감사하고 때로는 슬쩍 가족 얼굴을 보게 해주고 우리의 검사님은 너그러움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올가미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이다.” 당시 김원치 검사는 김 전 의원이 경찰에게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김원치 전 검사장. <한겨레> 자료 사진
김원치 전 검사장. <한겨레> 자료 사진

 

스스로 ‘거악’으로 규정한 반체제사범을 향해 돌진했던 ‘돈키호테 검사’의 후예들은 지금도 검찰 조직 곳곳에 포진해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가 확정됐음에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유우성씨를 여전히 간첩이라고 믿는 부류가 ‘정통 공안’들이다. 한 고위 검사는 사석에서 기자들을 만나 “유우성 사건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무죄가 선고됐지, 유우성은 100% 간첩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사 사건 재심 청구로 무죄가 선고돼 수십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은 이들을 향해서도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뿐 간첩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 검사’는 일부일 뿐 대다수의 공안부 검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건처리에 파묻혀 살고 있다는 항변도 나온다. 1980년대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근무했던 한 원로 법조인은 “당시 공안검사를 너무 화려하게 포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대다수는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후배들 밥 사주고 술 사 주느라 월급봉투 한번 제대로 집에 가져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 간부급 검사는 “변호사로 돈을 벌고 싶으면 공안검사보다는 금융·조세·특수 쪽으로 가는 게 맞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공안을 한다고 검사장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공안검사를 하려는 검사들은 정말 공안 관련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꼭 해보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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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안 바뀌면 개편 무의미”

 

문재인 정부의 공안부 개편도 일선 공안검사들의 반발로 지지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익부로 개명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안녕하세요, 대검 공익부장입니다’라고 소개하면 ‘소집해제는 언제 되나요’라고 할지 모른다”는 비아냥이 돌아다닌다. 공익부를 ‘공익요원’에 빗댄 것이다. 공익부라는 명칭이 수사기관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름에 ‘수사’를 넣자는 의견이 많아, 대검에서는 ‘공익수사부’ 등 수정안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 사건 분리에 대한 반발도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우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법조계 안팎에선 개편 방안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유우성씨 등 대공 사건 피의자 변호를 전문적으로 맡아온 장경욱 변호사는 “공안부 특유의 극우보수적인 ‘공안적 시각’을 갈아엎지 않는 이상, 공안부 개편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원로 변호사는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가진 공안검사들 대상 강연 자리에서 “공안부는 아예 없애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공안부가 찾아야 하는 자리는 어디일까.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3766.html?_fr=mt1#csidx381e6bf6e493a74928737c87aa070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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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박근혜 옆으로 보내자" 광화문 채운 '분노의 목소리'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시민 수백명 모여 행진... "사법부 전면 개혁해야"

18.09.29 19:22l최종 업데이트 18.09.29 19:30l

 

사법적폐 청산 '분노의 펀치'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사법적폐 청산 '분노의 펀치'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지난겨울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더한 놈이 있었다. 우리 국민이 나서서 양승태 꼭 구속시키자."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사법적폐 청산'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젊은 층부터 유모차를 끌고 온 여성, 휠체어를 타고 온 노인 등 다양했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단체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가 주최하는 '이게 사법부냐! 국민들은 분노한다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가 열렸다. 광화문에서는 처음 진행되는 사법농단 의혹 집회에 시민 700명(경찰 측 추산 인원 400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오후 5시 10분께 보신각부터 오후 6시께 세종문화회관 옆까지 약 1시간 가까이 행진을 하며 "양승태 구속"을 외쳤다.

주최 쪽은 "사법부 적폐가 만천하에 드러났고, 이를 바로 잡고자하는 국민 열망에도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사법적폐를 국민이 바로 잡고자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며 "지난 9월 1일 대법원 앞에서 국민대회를 한 뒤 광화문에 진출하자고 해 드디어 오늘 열렸다"라고 집회 목적을 밝혔다.

이어 "검찰이 사법농단을 수사한 지 100일 됐는데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되고 있다"라며 "국정농단 청산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다시 사법 적폐청산을 위해 국민이 모였다. 분노한 목소리를 들려주자"라고 외쳤다.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참가자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강아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손에 줄이 매여있는 피켓 등을 들고 "양승태, 박근혜 옆으로 보내자", "양승태를 구속하라", "적폐법관 파면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종로 거리 행진에 도보를 지나던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행진을 지켜보기도 했다.

행진에 참가한 강아무개(26)씨는 "촛불시위 이후 광화문 집회에 처음 참석한다"라며 "사법개혁은 국정농단 적폐청산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촛불 들기 전에 사법적폐 청산돼야"
 
행진을 마친 뒤에는 세종로 공원에서 국민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선 사법부 전면 개혁이 거론됐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가 먼저 발언에 나섰다. 박 상임대표는 "지금 사법부가 하고 있는 짓거리가 가관"이라며 "이렇게 됐으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석고대죄를 해야 하는데 지금 자기들 동료들 범죄를 감춰주느라 법을 깔아뭉개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판사들이 90% 영장을 기각하고 있으니 국민이 나서서 특별재판부 설치를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참에 사법부 전면 개혁을 촉구한다"라고 강조했다.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또, 양동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은 "양승태 사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재판거래로 아직 우리 노동자들이 땅을 치고 있다"라며 "김명수 사법부는 사법농단 척결의 주역이 돼야 하고, 국회는 헌정질서 파괴를 바로잡을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행정권력은 피해 보상 응급조치에 나서라"라고 요구사항을 밝혔다.

참가자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피켓과 휴대폰 플래시를 켜며 응했다. 주최 쪽은 "오는 10월 20일에도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있다. 그때는 촛불을 들 것"이라며 "그전까지 사법적폐가 청산된다고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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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귀결될까?

[기고]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귀결될까?
 
 
 
이채언(전남대 명예교수, 경제학) 
기사입력: 2018/09/29 [18: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1. 미국이 했던 약속; 핵무장의 해제
2. 비핵화는 ‘핵 없던 나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다.

3. 북미정상회담의 성격
4. 세계비핵화로의 길

1. 미국이 했던 약속핵무장의 해제

미국은 지난 1970년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다음과 같이 약속한 바 있다“NPT 4: (2) 핵무장의 해제와 핵개발경쟁의 조기중단을 위한 효과적 조치에 관한 국제협상과전반적이고도 완전한 (general and complete) 무장해제를 엄밀하고도 효과적인 국제적 관리통제 하에 이루기 위한 조약에 관한 국제협상을본 조약당사국은 각자 선의를 갖고 모색하기로 약속한다.”

이 약속은 적어도 국제적으로 공식적인 핵보유국의 인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다미국이 1970년 NPT를 맺으면서 핵무장해제를 위한 협상을 모색하기로 국제사회에 약속했는데 북한도 마찬가지로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약속하였다.

미국이 NPT에서 약속한 핵무장의 해제는 조약당사국들이 핵무장해제를 위한 국제협상을 각자 알아서 준비하기로만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약속이었다. ‘핵개발의 중단과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협상을 조속히 모색하기로’ 약속했으니 아직 그것을 모색하는 중이라고만 답하면 그만이다그래서 아무도 미국더러 아직도 그것을 가시적으로 모색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도 않고 있다.

북한이 서명한 북미공동성명의 제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는 약속은 48년 전에 미국을 비롯한 핵강대국들이 한 약속의 본질을 다시금 상기시켜주고 있다북한도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한다는 약속이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한다.”고만 약속하였다.

지금 북한은 미국이 핵개발의 중단과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협상을 조속히 모색하기로’ 약속했던 사실을 일깨워주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강제하게 될 것이다미국은 아직도 핵협상 방안을 모색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지만 북한은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국제협상에 미국보다 한발 앞서 이미 착수했다핵보유국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명과 책임을 솔선수범하는 쪽은 오히려 북한이다.

원래 법률적 문서에서 ‘A를 재확인한다.’고 했으면 나중에 가서 난 A에 관해서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발뺌할 수가 없다북미공동성명에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했으면북미 두 나라는 나중에라도 판문점선언의 내용에 대해 모른 척하면 안 된다.

미국도 판문점선언의 당사국은 아니지만 판문점선언의 내용 가운데 꼭 알아둘 것이 3가지 있다.

(1) 남과 북은 앞으로 상대방에 대해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미국은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한에서는 함부로 허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2) 남과 북은 금년 중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남··미 3자 또는 남···중 4자회담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미국도 금년 중에 정전선언 및 평화협정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

(3)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남북의 핵무기와 핵시설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비핵화가 될 수 없다한반도에 미지상군이 존재하는 한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언제라도 한반도 근처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아예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주한미군을 그대로 존치하려면 미본토의 핵무기와 핵시설까지도 제거해야 한다).

2. 비핵화는 핵 없던 나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다.

북미공동성명 제3항에 명시된 비핵화노력의 주체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미국은 한반도비핵화과정을 지지해주기만 하면 된다물론 비핵화를 지지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어도 많이 있다.

유일하게 이스라엘만 공개적으로 이번에 북미공동성명에 새겨놓은 한반도비핵화약속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다자칫하면 그것이 미본토의 핵무기와 핵시설까지도 제거하는 걸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한반도비핵화과정을 전략적으로 주도하는 북한이 세계비핵화에 대해서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

아래 표는 비핵화된 나라와 원래부터 핵이 없는 나라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핵보유국은 핵으로 타국을 위협할 수도 있고 타국의 핵위협에 핵으로 맞설 수도 있지만비핵화국은 핵으로 타국을 위협할 수도 없고 타국의 핵위협에 핵으로 맞설 수도 없다.

그러나 몰래 감추어둔 핵이 있을 수 있고 다시 핵무장을 할 능력도 있기 때문에 핵으로 보복할 능력도 있다그래서 비핵화국은 핵으로 다른 나라를 선제공격은 못하지만 다른 나라의 핵공격을 핵으로 보복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핵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는 타국의 핵위협에 대응해서는 다른 핵보유국의 핵우산 아래에 들어가야만 한다그 대가로 핵우산을 제공해준 나라에 종속되고 그들의 패권적 지배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이에 비해 비핵화국은 핵우산도 필요하지 않고 타국에 대해 핵우산도 제공하지 않는다.

 

 
핵 보유국
핵 미개발국
비핵화국
세계비핵화
 
타국에 대한 핵공격위협
 
가능
 
불가
 
불가
 
불가
타국의 핵공격위협
핵 방어 가능
핵우산 이용
(숨긴 핵으로)
핵 방어가능
필요 없음.
 
타국의 재래식공격
핵사용 가능
핵우산 이용불가
재래식 방어
재래식 방어
 
핵 우산
 
동맹국에 제공
 
동맹국에 구걸
 
필요 없음
 
필요 없음
 
패권주의
 
패권으로 지배
 
패권에 피지배
 
불가
 
불가
 
<표 1> 핵 미개발국과 비핵화국의 차이 
 

이 차이는 세계질서의 새로운 재편을 의미한다비핵화국은 핵을 몰래 보유할 수는 있어도 핵으로 남을 위협하거나 남에게 핵우산을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패권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그러나 타국의 핵공격 시에는 언제 (숨긴핵으로 보복 공격할지 모른다는 암묵적 위협은 줄 수 있다따라서 비핵화국에 대해서는 핵보유국도 함부로 핵공격을 할 수 없다그러나 세계비핵화가 이루어지면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에 대해 핵으로 위협할 수가 없기 때문에 타국의 핵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숨긴)핵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하다핵우산 같은 패권놀음도 없어지고 패권국가의 갑질도 사라진다.

북한이 한 비핵화약속은 앞으로 이웃나라나 지역에 대해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지핵이 없던 옛날의 북한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약속이 아니다미국을 제외한 다른 핵보유국들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도 사실은 공표를 안 했을 뿐이지 사실은 이미 비핵화과정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다른 나라에 대해 핵으로 위협하지도 않고 다른 나라에 대해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미국을 제외하곤 다른 어느 나라도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런 단순논리도 이해하지 못해 비핵화 프로그램의 제출(이것까지는 가능하다), 핵 신고핵 반출핵 해체의 검증 등을 요구하는 것은 도를 넘은 망발이다미국이 NPT에서 핵무장의 해제를 약속한 것도 이런 방식의 무장해제는 아니기 때문이다북한도 미국처럼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하기만 하면서 고주알미주알 말싸움만 하면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면 어쩔 셈인가?

3. 북미정상회담의 성격

북미공동성명에 명시된 쌍방의 의무사항은 비대칭적이다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노력을 약속한 것은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의무조항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그러한 약속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즉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의 전면적인 대전환과 한반도의 공고한 항구적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북미 간의 공동노력 등을 북미공동성명에서 약속했다

구체적으로는 판문점선언의 이행에 대해 남북한의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이러한 비대칭관계를 가려주고 마치 북한이 굴복한 것 같은 외관을 던져주는 것이 바로 트럼프대통령이 구두로 확인해준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어느 정도 비가역적 지점에 이를 때까지는 유엔의 대북경제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는 언급이다

그의 이 언급은 북미공동성명을 아예 뒤엎어 버리는 매우 모순적인 발언이다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하려면 미국도 동시에 북미관계를 단계적으로 개선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수립도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가야한다

미국이 경제제재를 계속하면 북미관계가 그때까지 개선될 리 없고 북미관계가 그때까지 개선되지 않으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노력을 어느 누구도 다그칠 명분도자격도능력도 없다이런 식이면 북한의 대응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미국에 대한 단계적 접근보다는 일괄해결이 효과적이다.

북한이 평소 요구해온 경제제재의 해제주한미군의 철수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 같은 사안에 대해 북의 언론매체가 일체 언급을 않는 것에 대해 트럼프는 속으로 깊이 감사하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을 협상의 천재로 치켜세우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런 사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트럼프가 자진해서 북미관계를 전환하기 위해 주동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떠밀려 억지로 실천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북미정상회담은 무슨 협상을 통해 결론을 내린 회담이 아니다협상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bottom-up) 방식으로 하나씩 밀고 당기면서 결정된다그런데 이번은 정상회담의 날짜부터 먼저 정한 뒤에 시작되었으니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top-down) 방식으로 기본원칙이 먼저 정해지고 세부실천계획만 나중에 협의된다양쪽 정상이 무엇 때문에 만나는지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다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회담결과가 한반도비핵화라는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쪽이 결의한 공동의 약속을 천명한 공동성명에서 드러났다그러나 미국에서는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탑다운 방식이 아닌 마치 바텀업 방식이나 되는 것처럼 미행정부의 하부단위에서 시비를 걸고 아예 뒤집어버리려는 사태가 일어났다

비핵화약속에 대한 세부프로그램이 없고핵 리스트가 없으므로 무효라는 것이다어쩌란 말인가자기들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았으니 무효로 돌리자는 소리인가그러면 왜 하필 정상회담을 했단 말인가국무장관 아니면 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 같은 맨날 그런 급의 사람이나 파견해서 일일이 따지며 세월을 보낼 일이지?

미국의 그런 시비질은 북미정상회담의 성격을 몰라서거나 아예 모르는 척하기에 나온 것이다이미 북한은 핵 무력의 완성을 선포하여 더 이상 핵·미사일의 시험발사는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마치 총이나 대포는 이미 완성된 무력이므로 더 이상 시험발사를 필요로 하지 않듯이북한의 핵·미사일도 더 이상 시험발사는 필요 없고 앞으로는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만 태평양을 무대로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동해상에서 재개한다면 북한은 미국의 핵전략자산(핵전투기)에 대응하여 괌 인근에서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하겠다고 밝혔다북한이 태평양을 무대로 핵·미사일훈련을 한다면 미국은 그때마다 북한이 군사훈련을 핑계로 미국을 불시에 핵·미사일로 공격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간과할 수 없으므로 초비상경계태세를 취해야 한다

사실은 그동안 북한도 한미합동군사훈련이 1년 내내 쉬지 않고 이어지는 바람에 그에 걸맞는 초비상경계태세로 곤혹을 겪었고 특히 농번기에는 그 때문에 늘 농촌일손이 부족하여 농사에도 많은 애로를 겪었다.

북한이 태평양상에서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1년 내내 쉼 없이 이어간다면태평양을 오가는 해상무역이 1년 내내 통제될 수밖에 없고 미국은 미국대로 늘 초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가야 하며 해상무역의 잦은 중단으로 늘 수입물자의 부족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이미 그것을 트럼프도 알고 있었기에 금년 초부터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군사적 대립관계의 해소를 미국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다그러나 당시 북미 간에는 모든 대화통로가 막혀 있었다북한은 미국의 대화요청을 거부하며 미국이 먼저 대북적대행위부터 중단해야 북미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답해왔다

남북대화가 신년 초에 재개된 것을 누구보다 반가와 한 사람은 바로 트럼프였다남북대화를 축복한다고까지 말했다미리 2월에 있을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도 도리어 우리에게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관계를 이대로 둔 채로는 남북관계를 한 걸음도 진척시킬 수 없다.’는 남측특사의 간곡한 권유에 민족의 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무언들 못 하겠는가라는 취지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본다이번에 한국의 중재가 없었다면 4월의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부터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이 태평양상에서 전개되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비핵화약속에 대한 세부프로그램을 따지고 핵 리스트를 제출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지금 미국이 과연 할 때인가그러면 미국은 왜 1970년의 NPT조약에서 한 약속을 4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프로그램조차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가핵무장의 해제는 당사국의 선의에 맡길 일이지 남의 나라가 이러쿵저러쿵 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전쟁에서 패한 패전국이라면 당연히 승전국으로서 각종사찰까지나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북한은 패전국이 아니지 않은가북한의 언론보도가 그런 시비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는 것은 미국의 그런 어리석은 짓이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4. 세계비핵화로의 길

북한의 갈 길은 아직 멀다종전선언평화협정주한미군철수나 기다리며 비핵화과정을 무작정 뒤로 미루면 자칫 세월만 낭비한다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을 북한에서 눈감아 주기로 한 것은 북이 비핵화를 완료하기 이전까지는 미국의 핵우산을 필요로 하는 남쪽 사람들의 심리를 감안한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모순이 개재되어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첫째주한미군의 계속주둔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남쪽이나 미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쪽에 있다는 사실을 한국과 미국이 다 같이 인정했다는 점이다이런 식이면 앞으로 주한미군의 계속주둔도 북한의 허락 없이는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둘째한반도의 비핵화는 주한미군의 비핵화까지도 포함된다그러나 주한미군의 비핵화는 미국본토가 비핵화 되지 않는 한 아예 불가능하다주한미군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한반도비핵화를 달성하려면 미국본토의 비핵화가 필요하고 이는 곧 세계비핵화까지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본토의 비핵화만은 미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한반도비핵화를 위해서라면 주한미군부터 미리 철수시킬 각오를 해야 한다한국 국민들의 대북 심리적 불안을 달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면 한반도비핵화를 위해서라도 미국이 먼저 세계비핵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셋째미국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위해 북한의 비핵화를 아예 포기하고 핵을 가진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택하면 어찌 되는가주한미군이 있는 한 북의 완전한 비핵화는 이루어질 수 없고 북의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신고반출점검감추어 둔 핵을 핑계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계속 고집하면 어찌 될까

북한의 목표는 100%의 완전한 한반도비핵화에 있기 때문에 당분간 주한미군철수문제는 건너뛴 채 미국을 과녁으로 한 장거리 핵미사일만 제외하고 다른 모든 비핵화과정을 조속히 밟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보인다

장거리 핵미사일의 해체는 주한미군의 철수와 맞바꾸는 미국과의 일괄해법을 모색할 때까지 시간을 그대로 계속 끄는 것이다아직은 주한미군을 그대로 둔다고 해서 한반도비핵화과정의 장애로까지는 되지 않는다

주한미군철수문제만 건너뛰면 다른 수순은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 듯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미국만 제외하면세계의 다른 핵보유국들은 이미 사실상 비핵화의 문턱에 거의 다 왔다그들은 핵을 보유하고 있어도 타국에 대해 핵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협하지도 않고다른 나라에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으며패권국가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외적으로 비핵화를 선언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비핵화를 선언한 나라나 마찬가지이다문제는 미국이다미국만 다른 나라를 핵으로 위협하고 있고 미국만 핵우산을 제공하여 그것을 근거로 패권을 행사한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가 지금 세계비핵화를 선언하기만 한다면 다른 나라를 핵으로 위협할 나라는 미국 외에는 안 남아 있다그러면 구태여 미국의 핵우산 아래로 핵 없는 나라들이 모여들어 미국의 패권적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핵우산이 불필요하면 미국의 패권이 저절로 와해된다미국이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미국이 남게 되었을 때 그것이 미국에게 무슨 이점이 있을까아래 표는 맨 앞에서 제시한 핵보유국핵미개발국비핵화국의 비교를 미국만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았을 때의 상황에 맞추어 다시 비교해 본 것이다맨 아래 줄부터 읽어나가자.

 
유일한 핵 보유국
핵 미개발국
비핵화국
세계비핵화
 
타국에 대한 핵공격위협
가능
불가
불가
불가
 
타국의 핵공격위협
소멸
소멸
소멸
소멸
 
타국의 재래식공격
()테러전쟁
재래식 방어
재래식 방어
재래식 방어
 
핵우산
무용지물
필요 없음
필요 없음
필요 없음
 
패권주의
불가
불가
불가
불가

<표 2> 미국만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았을 경우

미국이 아직도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아 있지만 핵보유국의 패권주의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미국 외에는 핵공격을 할 나라가 없으니까 미국의 핵우산을 필요로 않고미국의 핵우산이 불필요하니 미국의 패권적 지배도 불필요하다

이제 국제간의 분쟁이 일어나면 미국 외에는 전부 재래식 무기로만 싸울 것인데 핵을 가진 미국과 재래식 무기로 싸울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그러나 자기 민족을 지키기 위해 재래식 무기를 갖고도 미국과 전쟁을 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이 바로 테러전쟁이다테러전쟁에는 아직 대응방법이 없다테러와 반()테러 사이의 전쟁방법만 날로 지능화되고 현대화되고 있지만 미국은 아직도 초비상경계태세를 1년 365일 쉴 틈 없이 이어가고 있다.

미국도 미국 이외에는 다른 어느 나라도 핵이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부터 핵공격의 위협을 받을 일이 없다비핵화국도 핵공격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미국과 같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처음부터 핵을 보유한 적 없는 나라들은 미국으로부터의 핵공격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진다이들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가?

세계비핵화는 이를테면 총기소지가 불문율에 의해 금기시된 사회와 같다불문율이기 때문에 누군가 그 금기를 깨트리고 공개적으로 총기를 소지해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누가 총기를 몰래 갖고 있다가 강도가 집안에 들어왔을 때 총기를 난사해도 그것이 정당방위였느냐 아니었느냐만 문제되지 총기사용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같은 원리에 의해 비록 세계비핵화의 문턱에 들어섰더라도 유독 미국만 끝까지 핵을 가지겠다고 우기면 어쩔 수 없다미국은 총기소지가 금기시된 사회에서 유독 혼자 총기를 공개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람과 같다

그러나 혼자 공개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깡패노릇을 한다면 같은 깡패노릇이라도 더 주목을 받고 더 나쁜 사람으로 지탄을 받는다그것이 쌓이면 결국엔 주변으로부터 몰매를 맞을 수밖에 없다

같은 원리로 세계비핵화흐름을 거부하는 유일한 나라로 미국만 남아 아직 핵무기 개발의 근처에도 못 가본 약한 나라들만 골라가며 국제분쟁을 일으킨다면 정말로 미국을 불로 다스릴 날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한국이 주한미군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미국을 불로 다스릴 때 한국도 유감스럽지만 미국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한국의 민초들이 한 목소리로 판문점선언의 이행을 요구하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구원하자고 나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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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평양공동선언과 2019년 예산안

  • 이정희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집행위원장
  • 승인 2018.09.29 17:07
  • 댓글 0

3차 남북정상회담과 평양공동선언을 보면서 ‘속도전’이 뭔지 실감하게 된다. 
올해만 벌써 3번째,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방문이 성사되면 한해에 4차례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게 된다. 분기별 1회, 최소한 최고지도자급에서는 통일이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일상적 만남과 합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만나야 통일이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만남 자체를 넘어 형식과 내용 또한 겨레에게 민족의 단합과 통일의 희망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판문점회담 때 손을 맞잡고 금단의 선을 넘어서고 도보다리에서 흉금을 터놓는 대화의 모습을 보여주더니, 평양정상회담에서는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문재인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민족의 영산 백두산천지에서 남북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판문점선언에서는 10년의 공백을 넘어 6·15와 10·4선언을 단숨에 복원했으며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머뭇거리던 미국을 회담장으로 이끌어내고 9월 평양선언을 통해서 종전선언과 2차 북미정상회담을 선도하고 있다.

9월 평양공동선언 부속합의서로 채택된 군사분야 합의서는 대규모 군사훈련의 중지, 군사분계선 인근의 포사격 및 기동훈련 중지, 해안포와 함포의 포신 덮개 설치, 비행금지구역 설치등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의 일체의 충돌과 긴장조성행위를 금지하는 등 획기적인 조치가 포함되었다.

문재인대통령은 평양회담의 성과를 안고 UN으로 달려가 총회연설에서 ‘지난 1년 동안 한반도에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제 국제사회가 북한의 새로운 선택과 노력에 화답할 차례’라고 호소했다. 3차 정상회담의 결과 교착된 북미협상과 2차 북미정상회담도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감동과 감격을 넘어 이제 한국사회에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실질적으로 이행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우선 7월말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개혁 2.0>과 8월말 정부가 발표한 <2019년 정부예산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국방개혁 2.0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북적대정책, 선제공격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국방개혁 2.0은 유사시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지휘부를 점령하기 위한 입체기동작전을 추진하고 있으며 킬체인-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대량응징보복을 포함하는 한국형 3축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입체기동작전과 한국형 3축체계는 한국군 독자전력으로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전략일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첨단군사장비구축을 위한 천문학적 예산을 요구한다.

▲ 2019년 정부예산안[그래픽 : 뉴시스]

실제 국방부는 국방개혁 2.0을 실현하기 위해 5년간 270조원의 소요재원과 년평균 국방예산 7.5% 증가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9년 국방예산으로 올해 대비 8.2% 늘어난 46조 7천억원을 제출했다.
이는 2008년 8.8% 인상 이후 11년 만에 최고수준이며 이명박정부 평균 5.2%, 박근혜정부 평균 4.1%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국방전략과 대규모 첨단무기 구입을 위한 국방비증액은 판문점선언-평양선언정신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문재인정부의 국정철학과 방향에도 맞지 않으며 정치적으로도 방향착오다.

3차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문재인정부 지지율이 급상승했지만 불과 한 달 전에는 50%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6월 지방선거 시기 80%를 넘나들던 문재인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임금 공약 파기,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둘러싼 정책혼선, 재벌개혁의 포기와 규제완화를 통한 친재벌 성장정책 회귀, 고용상황 악화, 수도권 부동산 폭등 등으로 지지율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결국 경제문제,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법과 실질적인 개선 없이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확인했다.

문재인정부 지지율하락의 주요원인이 된 두 가지 사안을 돌아보면 철학의 불명확함, 정책수단의 혼선, 재원마련의 부재가 드러나고 있다. 
최저임금문제는 재벌중심 경제구조극복이라는 전략방향이 없는 상태에서 한계에 내몰린 중소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상가임대차보호,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 카드수수료문제 등의 정책이 함께 제시되지 않아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부동산폭등은 높은 지지율에 취해 보유세 현실화 등 부동산 불로소득근절이라는 정책방향을 외면한 채 주택임대사업활성화와 대규모 개발계획 발표 등의 헛발질을 한 결과다.

문재인정부는 8월말 정부예산안 제출과 9월초 당정청 전원회의를 통해 소득주도성장의 유지· 보완, 사회복지의 확대를 통한 ‘혁신적 포용국가’로 정책방향을 정비했다. 
이러한 정책방향을 뒷받침하기 위해 2019년 예산안을 9.7% 증액했지만 저출산 고령화, 대외경제환경의 악화, 고용상황 개선, 복지국가 기반구축을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변화된 한반도정세와 포용적 복지국가건설을 위해서는 재정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북한이 핵-경제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집중노선으로 전환했듯이 한국판 병진노선의 전환, 노동-민중복지 집중노선으로 전환해야 한다. 
평양선언 이전에 마련된 국방개혁 2.0과 2019년 예산안을 변화된 정세에 맞게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국방예산중 최소한 F-35A도입, 한국형 3축 체계도입 등 공격형 무기도입을 위한 방위력개선비 15조 4천억원에 대해 대폭 삭감하고 복지, 일자리예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주한미군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식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문재인대통령을 극찬하면서도 ‘연합훈련에 당신들이 돈을 내야 한다’, ‘엄청난 무역흑자를 보는 부자나라들의 군대에 돈을 주는 것은 안된다’ 라면서 1조원의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어렵고 국민의 부담이 큰데 왜 연합훈련을 계속하고 주한미군주둔비를 부담해야 하는지 근본질문을 해야 할 때다.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한미연합훈련을 전면중단과 주한미군의 철수, 최소한 감축을 공론화해야 한다. 
북의 새로운 선택과 노력에 국제사회의 화답을 호소하기 전에 남이 먼저 화답해야 한다.

이정희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집행위원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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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평화주의자 할아버지를 말하지 않는다

등록 :2018-09-29 09:24수정 :2018-09-29 09:44

 

 

아베 신조가 선택한 길
가운데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왼쪽이 그의 할아버지 아베 간, 오른쪽이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가운데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왼쪽이 그의 할아버지 아베 간, 오른쪽이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3연임에 성공해,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맡을 수 있게 됐다. 아베는 전쟁 금지와 군대 보유 금지를 명확히 한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일본을 바꾸려 하고 있다. 개헌은 아베가 존경하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이루지 못한 숙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친할아버지인 아베 간은 일본 군국주의에 맞선 평화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아버지 아베 신타로도 평화헌법을 옹호했다. 아베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바람에 어긋나는 길을 선택했다. 아베는 왜, 어떻게 우익의 길을 걸었을까.

 

64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큰 선물을 받았다. “필생의 과업”(lifework)을 수행할 기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61) 전 자민당 간사장을 꺾고 3연임에 성공했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은 다수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다. 아베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맡을 수 있다. 1차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 2·3차 내각(2012년 12월~현재)에 이어 앞으로의 임기(3년)까지 더하면 10년 동안 집권하는 일본 역대 최장기 총리가 된다.

 

아베는 당선 뒤 인사말에서 “드디어 여러분과 함께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민당의 개헌안을 가을 임시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해왔다. 아베는 2013년 <엔에이치케이>(NHK)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헌법 개정은 내 라이프워크다. 국민투표법은 만들었지만 개헌까지는 이루지 못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정치가가 됐는지 생각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는 2020년까지 개헌을 끝내고 싶어 한다.

 

헌법 개정을 놓고 일본 정치세력들의 투쟁이 조만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겪은 한국과 중국 등은 불안한 눈으로 이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아베는 지난해 5월 헌법 시행 70주년 연설에서 “헌법 9조 1항, 2항을 그대로 둔 채 자위대를 명문으로 써넣는 것에 대해선 국민적 토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9조 1항은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초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해당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그 행사를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 영원히 포기한다”, 2항은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과 그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를 수정할 경우 거센 비판과 반발이 불어닥칠 것이 뻔하다. 아베는 ‘우회로’를 택했다.

 

자민당이 지난 3월 낸 시안은 ‘9조의 2’를 신설해, 9조의 2-1항을 “전조의 규정은 우리나라의 평화와 독립을 지켜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자위의 조치를 갖는 것을 막지 않으며, 이를 위해 실력조직으로서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내각의 수장에 해당하는 내각총리대신을 최고 지휘감독자로 한 자위대를 보유한다”, 9조의 2-2항 “자위대의 행동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회의 승인, 그밖의 통제에 따른다”고 규정하자고 했다. ‘군대’나 ‘전력’이라는 말을 쓸 수 없으니 ‘실력조직’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해 군대를 보유하겠다는 얘기다.

 

 

아베가 가지 않은 길

 

아베는 2013년 9월 미국의 한 보수적인 싱크탱크에서 연설하며 “나를 ‘우익 군국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도 괜찮다”고 말했다. ‘우익 군국주의자’의 길이 아베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니었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뿌리를 살펴보면 다른 길도 있었다.

 

아베는 할아버지·아버지로부터 선거구(시모노세키가 포함된 야마구치 4구)를 물려받은 3대 세습의원이다. 부모, 장인·장모(시아버지·시어머니), 조부모 또는 3촌 이내의 친척 가운데 국회의원이 있고, 이들의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 이를 세습의원이라고 한다.

 

기시 노부스케(앞줄 가운데) 전 일본 총리가 손자인 아베 신조를 무릎에 앉히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앞줄 맨 오른쪽이 신조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뒷줄 오른쪽에 서 있는 여성이 어머니 요코, 그리고 앞줄 맨 왼쪽이 형 히로노부다. 일본 총리관저 제공
기시 노부스케(앞줄 가운데) 전 일본 총리가 손자인 아베 신조를 무릎에 앉히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앞줄 맨 오른쪽이 신조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뒷줄 오른쪽에 서 있는 여성이 어머니 요코, 그리고 앞줄 맨 왼쪽이 형 히로노부다. 일본 총리관저 제공
아베는 할아버지 때부터 닦아놓은 지역구를 물려받고 있지만, 할아버지 아베 간(1894~1946)을 언급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간은 신조가 태어나기 전에 숨졌다. 그러나 신조는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고 있다. “내 친할아버지는 아베 간이라는 분이다. 익찬선거라는 것에 반대해 익찬회가 아닌 비익찬회로서 당선된 매우 드문 의원이었고, 반 도조 (히데키) 정권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온 의원이기도 했다.”

 

‘익찬선거’는 1942년 4월 치러진 중의원 선거를 말한다. 일본은 1941년 12월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하며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시작했다. 도조 히데키(1884~1948, A급 전범으로 기소돼 교수형) 내각은 전쟁 수행을 위해 ‘익찬정치체제협의회’를 만들어 군부의 정책에 협력하는 이들만 중의원 후보에 추천했다. 앞서 1940년 모든 정당이 해산되고 관제 국민통제조직인 ‘대정익찬회’가 만들어졌다. 협의회는 ‘대동아공영권 확립’이라는 이념에 불타는 인물 등을 후보로 추천했다. 비추천 후보들은 경찰의 탄압을 받았다. 아베 간은 도조 내각과 전쟁에 반대한 평화주의자였다. 협의회 추천 후보 466명 가운데 381명이 당선했고, 비추천 후보는 613명이나 됐으나 당선자는 85명에 그쳤다. 간은 중의원에 재선됐다.

 

야마구치현 오쓰군 헤키초(현재 나가토시)에서 태어난 간의 집안은 대대로 간장 등을 만드는 양조업을 하고, 논밭과 산림을 많이 소유한 지주였다. 간은 도쿄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정치자금을 만들기 위해’ 도쿄에서 자전거를 만들어 파는 상회를 설립했다. 이웃마을 유력가문의 시즈코와 1921년 결혼했지만 1924년 이혼하고 갓 태어난 아들 아베 신타로(1924~1991)를 안고 귀향했다. 이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주민들이 찾아와 촌장을 맡아달라고 간청했을 정도로 신망이 높았다고 한다. 그는 1937년 4월 무소속으로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할아버지의 반전·평화·친노동

 

이때 간의 선거 공보물에는 “이번 총선거는 시대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각오를 묻는 중대한 총선거” “국제 정세가 극도로 긴박해 2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잉태하고 있는 상태” “해가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져… 아무리 일을 해도 생활의 안정을 얻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등의 문구가 담겨 있다. 또 “국민의 이익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재벌 특권계급의 앞잡이가 되고 있다”고 기존 정당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신흥정당”을 만들고 싶다며 군부와 선을 그었다.

 

1961년 11월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가운데)가 총리관저 만찬회에서 기시 노부스케(왼쪽) 등을 만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1961년 11월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가운데)가 총리관저 만찬회에서 기시 노부스케(왼쪽) 등을 만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간은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 전 건강이 악화해 고향으로 돌아가 병상에 누웠다. 뜻을 채 펴보지도 못하고 1946년 1월 숨졌다. 아들 신타로는 당시 나이가 되지 않아 피선거권이 없었다. 1946년 4월 선거를 앞두고 ‘원 포인트’ 후계자가 필요했다. 친척인 의사 기무라 요시오가 낙점됐다. 기무라는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중의원에 만들어진 제국헌법개정안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해 평화헌법 제정에 기여했다. 간의 후계자로서 그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다.

 

간이 병상에 있던 1945년 봄, 아들 신타로가 찾아왔다. 신타로는 도쿄대 법학부 진학이 결정됐으나, 학교에는 가지 못하고 1944년 10월 해군 시가항공대에 징병됐다. 그리고 자살공격을 뜻하는 ‘특공’에 지원했다. 군대에서는 부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오라고 했다. 간은 아들에게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다. 쓸데없이 죽거나 하진 말거라”라고 당부했다. 신타로는 7월 특공훈련을 받고 출격을 기다리다 종전을 맞았다. 그는 나중에 “조금만 늦었어도 나는 특공대로 출격해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평화는 소중한 것이기에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신타로가 정치인이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다. 그는 “아버지는 대정당(익찬회)을 적으로 돌리고 금권부패를 규탄했으며, 평생 일관되게 전쟁에 반대하는 자세를 이어갔다. 아버지에게 정치가로서의 신념과 청렴결백함을 배웠다”고 했다.

 

 

“나는 기시의 데릴사위가 아니다”

 

신타로는 대학 졸업 뒤 “살아있는 정치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기자가 되기로 하고 1949년 <마이니치신문>에 입사했다. 2년 뒤 선배의 소개로 기시 노부스케(1896~1987)의 큰딸 요코(99)와 결혼한다. 신타로는 “내가 (전범 용의자의 딸과) 결혼을 해준 것”이라고 주위에 말했다고 한다. 1956년 기시가 외무상이 되자 신타로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기시의 비서관이 됐다. 1958년 5월 아버지의 지역구에 출마해 중의원에 당선됐다. 기시 가문의 후광을 입고 신타로는 출세의 길을 달렸다. 관방장관, 외무상, 자민당 간사장 등을 역임하고 총리 물망에 올랐다. 그래도 그는 입버릇처럼 “나는 기시 노부스케의 데릴사위가 아니다. 아베 간의 아들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1991년 췌장암으로 숨지면서 총리의 꿈도 스러졌다.

 

신타로가 숨진 뒤 <마이니치신문>은 “기시 노부스케, 후쿠다 다케오라는 자민당의 매파 계보를 이어 보수의 본령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평화헌법 옹호론자로서 야당과의 관계에서도 유연한 노선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보수 정치인이었지만 평화주의를 추구했다. 1985년 12월 외무상이었던 신타로는 중의원 외교위원회에서 “세계대전은 일본을 망국의 위기에 빠뜨린 매우 잘못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도 이 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는 엄혹한 비판이 있다. 정부도 그런 비판을 충분히 인식하며 대응해가야 한다”며 전향적인 역사인식을 내보였다. 그는 아들에게도 “신조야, 나는 기시의 데릴사위가 아니다. 나는 아베 간의 아들이다. 난 반전평화니까”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조가 택한 길은 ‘아베 간의 길’이 아닌 ‘기시 노부스케의 길’이었다.

 

신조는 1996년 공저로 낸 <보수혁명선언>에서 “아버지는 전쟁이라고 하는 지극히 비극적인 경험을 했던 당사자로서 그 체험이 사상 형성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기시)의 경우는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어떤 의미로 일본이 대단히 비약적인 전진을 달성했던 영광의 시절이 청춘이었으며 젊은 날의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라고 썼다. 아버지의 전쟁 체험을 ‘사상 형성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것’으로 평가한 반면, 외할아버지의 청춘 시절 일본이 러일전쟁, 한반도 식민지배, 만주 침략 등으로 나아간 때를 ‘영광의 길’이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기시 노부스케의 길

 

‘쇼와의 요괴’로 불린 기시는 1896년 11월 야마구치현 구마게군 다부세초에서 태어났다. 기시의 동생은 ‘비핵 3원칙’(핵무기는 만들지도 않고, 갖지도 않으며,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을 선언해 197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쿠(1901~1975) 전 총리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관료가 된 기시는 1936년 10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총무사장이 됐고, 국가 주도형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했다. 이는 이후 한국에서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모델이 되었다. 1941년 만주군 출신의 도조 히데키가 총리가 되자 상공대신에 임명됐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뒤 전시물자를 통제하는 군수차관을 맡았다. 그러나 1944년 사이판이 함락되자 조기 종전을 주장하며 도조와 대립했고, 이 대립이 도조 내각의 붕괴를 불렀다. 일본의 각의(한국의 국무회의)는 만장일치제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일이 그가 전후 전범으로 기소되는 것을 면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이 무렵 기시는 아베 간을 문병했다. 사상적으로 정반대였던 간을 찾아간 이유는 분명치 않다. 기시의 직계 중의원 의원으로 자치상 등을 지낸 후키다 아키라(1927~2017)는 “기시 선생은 아베 간 선생이 훌륭한 분이었다며 평생 존경했다. 정치가로서보다 인간으로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는 “(기시는) 아베 간의 아들이라면 괜찮다, 똑바른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며 신타로와 요코의 결혼 배경을 설명한다.

 

기시는 1945년 9월 에이(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3년여 동안 형무소에 수감됐으나 기소를 면하고 1948년 12월24일 석방된다. 도조 등은 하루 전 처형됐다. 기시는 1953년 3월 야마구치현에서 출마해 중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총리는 요시다 시게루(1878~1967)로,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일본은 경제부흥에 집중한다’는 이른바 ‘요시다 독트린’을 내놓았다. 요시다는 “새 헌법(평화헌법)은 일본이 세계에 자랑스러워해야 할 참으로 훌륭한 헌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시는 평화헌법을 ‘점령국이 강요한 헌법’으로 봤다. 그는 “현재의 헌법은 (미국이) 점령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것이었다. 기시는 보수대연합을 주도하며 1955년 자민당을 탄생시키고, 초대 간사장을 맡았다. 1957년 총리가 된 기시는 1960년 5월 미-일 안보조약 개정안을 의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켜 거센 반발을 불렀다.(아베 신조도 2015년 9월 안보법제를 날치기 통과시켰다.) 시민들은 일본 내 미군기지가 아시아에서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사용될 수 있는 것에 반대했다. 기시는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살해당한다면 바라는 바다”라고 말하며 버텼다. 결국 두달 뒤인 7월 총리에서 물러났다. 헌법 개정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다정했던 외할아버지, 차가웠던 아버지

 

기시는 ‘요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신조한테는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신조는 1954년 도쿄에서 신타로와 요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기시는 손자들을 자주 불러서 함께 놀았다. 요코는 “아버지는 손자들을 귀여워해 시간이 되면 언제든 함께했다”고 말했다. 기시는 손자들을 등에 올려 말을 태워주곤 했다. 신조는 “외할아버지는 에이급 전범 용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고, 그러한 분위기에 반발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교도통신> 정치부 기자 출신의 노가미 다다오키는 “신조의 기시에 대한 사상적 편향을 이해하기 위해 놓쳐서는 안 되는 게 아버지와의 관계”라고 말한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기시한테 쏠린 게 아니냐는 얘기다. 신조는 소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부유한 집의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 세이케이학원에서 다녔다. 자동적으로 상급학교로 진학해, 입시를 치른 적이 없다. 신조는 이른바 명문대로 불리는 도쿄대나 게이오대, 와세다대를 갈 성적이 못 됐다. 할아버지·외할아버지·아버지는 모두 도쿄대를 나왔다. 신타로가 “도쿄대에 가라”고 신조를 닦달하고, “대학은 도쿄대밖에 없다고 생각하라”면서 두꺼운 사전으로 신조의 머리를 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다.

 

지난 20일 치러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박수를 치는 동료 의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지난 20일 치러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박수를 치는 동료 의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한 아베 
“드디어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싶다” 
‘실력조직’이란 말 만들어 자위대를 
명시하는 개헌안 임시국회 제출 뜻

 

 

아베 “나를 군국주의자라 불러도 돼” 
할아버지는 ‘평화주의’ 길 걸으며 
‘전범’ 도조 히데키 내각·전쟁에 반대 
참전한 아들에게도 “쓸데없이 죽지 마라”

 

 

기시 노부스케 딸과 결혼한 아버지 
“나는 기시의 데릴사위가 아니다” 
평화헌법 옹호하며 반전·평화 노선 
아베는 정반대 ‘기시의 길’ 선택

 

 

“일본의 영광의 시절이 외조부 청춘” 
도쿄대에 가라는 아버지와의 갈등도 
기시에게 편향되게 했다는 분석도 
평범했던 아베, 정계에서 우익 노선

 

 

일본인 납치문제 계기 총리직 올라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헌법 해석 바꾸고, 안보법제 날치기 
반대여론 커 개헌 이뤄질지 불투명

 

 

신조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세이케이대 법학부를 다닌 동창생들은 “아무리 기억해보려고 해도 인상이나 기억에 남는 게 없다”고 할 정도다. 신조는 대학 졸업 뒤 미국으로 어학연수 겸 유학을 갔다 2년 만에 귀국해 고베제강소에 ‘정략 취직’했다. 1982년 외무상이 된 신타로는 신조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비서관이 되라고 했다. 아베는 잠시 저항했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과 회사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회사가 퇴직 설득에 나섰고, 신조는 정계에 발을 디뎠다. 1993년 아버지의 지역구에서 중의원에 당선됐다. 이 선거에서 자민당은 1955년 이후 처음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추락했다.

 

신조의 형 히로노부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가가 되기 싫었다”고 하면서, 큰아들인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잇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신조가 정계에 입문한 뒤)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는 사이에 기시의 사고방식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고베제강소에서 신조의 상사였던 야노 신지는 “그(신조)가 확고한 신념을 가진 우파라는 것은 전혀 느낀 적이 없다. 정치권에 들어간 다음에 몸에 익힌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강아지가 늑대 새끼 무리에 들어간 것처럼, 이후 그렇게 돼버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5년 9월19일 안보법제 제정·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국회 앞에서 “위헌” “폐안”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2015년 9월19일 안보법제 제정·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국회 앞에서 “위헌” “폐안”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도련님에서 매파의 기수로

 

1993년 8월 비자민당 연합세력으로 집권한 호소카와 모리히로(80)는 총리 취임 기자회견에서 “(지난 전쟁은) 침략전쟁,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인식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발한 자민당의 우파 의원들은 ‘역사·검토위원회’를 만들어 1995년 ‘대동아전쟁의 총괄’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일본이 수행한 대동아전쟁은 자존·자위의 아시아 해방전쟁으로 침략전쟁이 아니고, 난징대학살이나 위안부는 날조로 사실이 아니며, 가해·전쟁범죄는 없다”고 했다. 이 위원회에 초선이던 아베도 참여했다. 아베는 이후 우익활동에 적극 나서면서 ‘부잣집 도련님’에서 ‘매파의 귀공자’로 변해갔다.

 

아베가 스타가 된 결정적 계기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였다. 2002년 9일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76) 총리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북-일 국교정상화를 위해서였다. 이날 오전 북한은 일본이 납치 피해자라며 조사를 요청한 이들에 대해 ‘5명 생존, 8명 사망’이라고 통보했다. 8명 사망 소식에 고이즈미 등은 망연자실했다. 관방부장관으로 회담에 참가했던 아베는 “(사망자에 대한) 설명과 사죄가 없다면 공동선언에 서명하지 않는 게 좋다. 그때는 자리를 박차고 돌아가자”고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음을 솔직히 사죄하고 싶다”고 했고, 고이즈미는 평양선언에 서명했다. 두 나라는 국교정상화 회담도 재개하기로 했다.

 

일본 사회는 8명 사망 소식에 충격에 빠졌다. 아베는 최대 수혜자였다. 평양에서 강경론을 주도한 게 알려지면서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납치 피해자 5명이 일본에 일시 귀국한 뒤 이들을 북한에 돌려보내는 것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정부는 피해자들한테 맡기자는 태도였다. 아베는 “국가가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결국 정부는 돌려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북한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때 아베한테는 ‘납치의 아베’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타가 된 아베는 2003년 자민당 간사장에 발탁됐고, 2005년에 관방장관에 임명돼 사실상 고이즈미의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다.

 

2006년 9월 총리에 취임한 아베는 전쟁을 겪지 않은 첫 총리였다. 아베는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와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을 내세웠다. 전후체제에서 벗어나겠다는 건 연합군총사령부(GHQ)가 ‘강요한’ 평화헌법 등을 해체하겠다는 뜻이다. 교육기본법을 개정하고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키고, 국민투표법을 제정하며 한걸음씩 나아갔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도 무력화하려 했으나, 미국 하원이 2007년 7월 일본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좌절됐다. 각료들의 정치자금 스캔들 등으로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고 궤양성 대장염으로 건강이 악화된 아베는 9월 총리에서 물러났다. 아베는 “어떤 칼럼니스트가 학교에서 ‘아베한다’는 말이 유행하는 현상에 대한 글을 썼다. ‘아베한다’는 도중에 일을 내던지는 뜻이라고 했다”고, 당시의 참담한 심경을 말한다.

 

 

참담한 실패와 재기

 

아베는 산에 오르며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신약으로 궤양성 대장염도 치료됐다. 재기에 나선 아베는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 당선했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으로 지진해일(쓰나미)이 발생해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쳤다. 주위에선 경제를 파고들어야 재집권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때부터 아베는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라 할 양적완화(대규모 유동성 공급)를 주장했다. 2012년 9월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 아베가 도전할 것이라는 예상은 적었다.

 

아베의 마음을 돌린 것은 기시 노부스케의 선거구를 물려받은 후키다 아키라로 알려졌다. 그는 아베에게 “기시 선생은 정치가는 일단 정치가가 됐으면 완전 연소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네. 기시 선생은 ‘다시 한번 총리가 돼 헌법을 개정하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셨다네. 당신에게도 미련이 있을 것이네. 승패는 신경쓰지 말고 나서게”라고 했다. 아베는 올해도 맞붙은 이시바한테 1차 투표에서는 뒤졌으나 국회의원만 투표권을 갖는 2차 투표에서 이겨 당선됐다.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는 2013년 4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침략’의 정의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도 국제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문제제기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침략’ 전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995년 8월15일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 도미이치(94) 총리는 종전 50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라고 밝혔었다. 아베는 2013년 12월 야스쿠니신사도 방문했다.

 

 

최종 목표, 개헌

 

역대 일본 정부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외국이 무력 공격을 받으면 이를 무력으로 저지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헌법상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아베는 2014년 각의 결정으로 이를 뒤집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허용된다고 헌법 해석을 바꿨다. 이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2015년 자위대법, 중요영향사태법 등 이른바 ‘안보법제’를 개정·제정했다. 9월18일 한밤중에 참의원 본회의에서 날치기 통과시켰다. 자위대는 미군이 가는 곳이면 세계 어느 곳이든 따라가 미군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2015년 9월23일 일본 도쿄에서 2만5000여명의 시민이 아베 신조 정권의 안보법제 제정·개정 강행처리와 원전 재가동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2015년 9월23일 일본 도쿄에서 2만5000여명의 시민이 아베 신조 정권의 안보법제 제정·개정 강행처리와 원전 재가동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이제 아베는 헌법 자체를 바꿔 외할아버지의 염원을 실현시키려 한다. 그러나 실제 개헌에 이르는 길은 평탄하지 않다. 개헌 찬성 세력이 중의원과 참의원의 3분의 2 이상이지만, 국민투표를 통과할지는 알 수 없다. <교도통신>이 지난 20~2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아베가 가을 임시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 응답자의 51%가 “반대한다”고 답했고, “찬성한다”는 35.7%였다. 상당수 일본인들이 개헌에 동의하지 않는 셈이다.

 

스즈키 게이스케(41) 자민당 청년국장(중의원 의원)은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 저널>이 개헌 찬성이 어느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묻자 “높게 나오면 60%가 나올 수 있지만, 투표 당일 북한이 미사일을 쏴주면 80%는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과 핵실험,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 등을 빌미로 힘을 키워온 일본 우익의 셈법이다.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개헌을 추진하는 그들에겐 탐탁지 않다. 섣불리 국민투표를 밀어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투표에서 부결되기라도 하면 다시 개헌을 추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베가 국민들의 반대와 주변국들의 반발 등을 무릅쓰며 사활을 걸고 개헌을 강행할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참고자료

 

<아베 삼대>(아오키 오사무 지음)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노가미 다다오키 지음)

 

<아베는 누구인가>(길윤형 지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863747.html?_fr=mt1#csidx391df401b70d33db677c7d01be22b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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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색한 폭로전과 대정부 투쟁에 되레 폭탄 끌어안은 심재철과 김성태

자유한국당, 정부·청와대와 정면충돌...법적 공방까지 가시화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8-09-28 20:49:02
수정 2018-09-28 20: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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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자료를 불법으로 다운 및 열람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재부 자료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재부 자료를 불법으로 다운 및 열람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재부 자료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정부의 비공개 예산 정보에 접근해 확보한 청와대 업무추진비 자료를 마구잡이로 공개하며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의혹을 제기했다가 오히려 역공을 맞는 모양새다.

자료 확보 경위를 둘러싼 위법 논란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심 의원의 잇따른 폭로전으로 인해 청와대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의혹으로 번졌다.

하지만 심 의원이 제기한 의혹의 근거가 다소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여론만 더 악화된 꼴이다. 심 의원과 함께 대정부 투쟁에 당력을 집중하던 자유한국당도 덩달아 머쓱해진 형국이다.

비인가 자료 유출 논란 속에서 막무가내 청와대 자료 공개한 심재철

당초 비인가 자료 유출 경위를 둘러싼 논란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사태가 더 심각해진 건 심 의원이 내려 받은 자료를 언론에 잇따라 공개하면서다. 

심 의원은 기획재정부와 재정정보원으로부터 고발 당한 다음 날인 지난 18일 '청와대가 업무추진비를 불법적으로 집행한 증거'라며 디브레인 접속을 통해 확보한 일부 자료를 언론에 전격 공개했다. 해당 자료 확보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심 의원은 '국민의 알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사실이 아니다'라며 즉각 반박했음에도, 심 의원은 21일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수행원들이 업무추진비 예산을 한방병원에서 사적으로 사용했다'며 추가 의혹을 제기했고, 2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에서 업무추진비를 심야시간이나 주말에도 쓰는 등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검찰은 21일 심 의원의 국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이후 추석연휴를 보낸 27일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은 "야당 탄압"이라고 반발하며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이에 탄력을 받은 듯, 심 의원은 28일에는 급기야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청와대 내부 회의에 참석을 하면서도 회의 참석을 명목으로 부당한 수당을 받아왔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당사자 실명까지 모두 공개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 사실"이라며 심 의원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대응 수위를 높였다. 심 의원과 청와대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 것이다.

청와대는 인수위원회 없이 작년 대선 다음 날 곧바로 출범했던 정부 특성상 신정부 출범 초기에 한해 각 분야 전문가를 정식 임용에 앞서 정책자문위원 자격으로 월급 대신 최소수당을 지급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심 의원은 "청와대 신원조회 기간인 약 한 달간은 봉급이나 수당을 지급할 법적 근거가 없다"라고 재반박에 나섰지만, 청와대 역시 "예산집행지침을 한 줄도 읽어보지 않은 주장"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정도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이 2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참모진들이 내부 회의 참석 수당을 부당하게 지급받았다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폭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정도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이 2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참모진들이 내부 회의 참석 수당을 부당하게 지급받았다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폭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뉴시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짠돌이'라는 별명을 안고 있는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이날 작심한 듯 업무추진비가 미용 서비스 등에 부적절하게 사용됐다는 심 의원의 의혹 제기에 직접 반박에 나서면서 청와대에 힘을 실었다.  

심 의원이 마치 청와대가 '미용업종'에서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의혹을 몰아갔으나, 청와대 확인 결과 카드사의 오류로 업종이 잘못 분류됐을 뿐 평창동계올림픽 관계자 격려금 등으로 사용된 것이었다는 해명이다.  

게다가 사용 규모도 '1인당 목욕비 5,500원', '치킨・피자 제공 6만원', '고깃집 오찬 6만원' 등으로 약소했고, 내역 역시 부당한 사용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심 의원의 거창해 보이던 의혹 제기가 다소 궁색해 보이는 대목이다.  

이로 인해 정치권 밖에서는 심 의원이 국회 부의장을 지낼 때 받은 업무추진비와 특수활동비부터 공개하라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업무추진비로 따지자면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이 합쳐서 연간 71억원 수준이고, 국회가 103억원으로 국회가 더 많다"라며 "자유한국당이 국민의 알 권리를 얘기하던데, 그렇다면 자기들이 국회에서 써 왔던 업무추진비부터 공개하는게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심재철 의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항의 방문을 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심재철 의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항의 방문을 하고 있다.ⓒ뉴시스

자유한국당 "업무추진비 부정 사용 고발" 으름장 
민주당 "가짜뉴스 생산 말라" 비판
 

이런 상황에서 여야는 대치하고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를 필두로 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예고한대로 이날 대대적인 대정부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이날 오후 검찰의 심 의원 사무실 압수수색과 관련해 대법원과 대검찰청을 항의방문했다. 앞서 김 원내대표는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 발의를 검토하고,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면밀히 검토해서 부정 사용이 발견되면 공금유용 및 횡령 혐의로 전원을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반박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정국을 흔들 정도의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내역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자유한국당은 되레 여론의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불법자료 유출도 모자라 기초적인 검증도 없이 자료를 공개한 것은 또 다른 범죄 행위"라며 심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민주당 강병원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심 의원은) 오히려 국가기밀을 무분별하게 유출하고, 심지어 탈취한 국가기밀로 '유흥주점에 결재했다', '꼼수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는 등의 온갖 가짜뉴스까지 생산하고 있다"라며 "전대미문의 국회의원 '국가기밀 불법탈취 사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야당 탄압'을 내세운 물타기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왼쪽)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우 의원이 28일 국회 의안과에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국가기밀 탈취 관련 윤리위 징계 요청안을 제출하고 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왼쪽)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우 의원이 28일 국회 의안과에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국가기밀 탈취 관련 윤리위 징계 요청안을 제출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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