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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차방정식’ 해법이 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10/08 12:59
  • 수정일
    2018/10/08 12:5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 317] ‘고차방정식’ 해법이 있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10/08 [09: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2. 오바마의 경고와 클래퍼의 조언, 1년 뒤에 일어난 변화

3. ‘고차방정식’ 푸는 해법이 있다

4. 평화협정과 철군, 핵동결과 이익대표부

5. 가슴 벅찬 전환시대의 흐름 속에서

 

 

1.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부쉬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를 두루 거치며 한때 미국 국가정보계를 주름잡았던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라는 퇴직관료가 있다. 1963년 6월 미국 공군 소위로 임관되어 군사정보기관에 들어간 이후 1991년 11월 공군 중장 군직에 오르기까지 줄곧 군사정보분야에서 근무해온 그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국방정보국 국장, 2001년부터 2006년까지 국가지구공간정보국 국장,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국방부 정보담당 차관, 2010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정보실장으로 재직하였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가정보실장의 지위와 역할은 크게 축소되었으나, 클래퍼가 국가정보실장으로 재직했던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국가정보실장은 16개 국가정보기관들이 분석한 정보를 종합하여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다. 

 

클래퍼가 쌓아온 경력을 보면, 그가 조미핵대결이 지속된 1993년부터 2017년까지 25년 동안 미국 군사정보기관들에서 고위관료로 근무하면서 조선의 핵문제에 관한 심층정보를 다루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미국 국가정보계통에서 클래퍼만큼 조미핵대결 25년 역사에 정통한 관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바마 행정부 임기가 끝나가고 있었던 2016년 10월 25일 당시 퇴임을 앞둔 국가정보실장 클래퍼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외교자문기관으로 알려진, 뉴욕 맨해튼에 있는 대외관계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주최한 토론회에 단독발언자로 출연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가 내던진 ‘폭탄발언’은 당시 워싱턴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워싱턴 정가의 기존관념을 뒤흔들어놓은 클래퍼의 ‘폭탄발언’은 다음과 같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3년 8월 9일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실장으로부터 국가정보를 보고받는 장면이다. 클래퍼는 조미핵대결 25년 동안 미국 군사정보기관들에서 고위관료로 근무하면서 조선의 핵문제에 관한 심층정보를 다룬 사람이다. 그런 그가 2016년 10월 25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대외관계협의회가 주최한 토론회에 단독발언자로 출연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폭탄발언'을 던졌다. 그는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기 않을 것이므로, 미국은 조선의 핵능력을 제거하려는 비핵화를 추구하지 말고, 조선의 핵능력을 제한하는 핵동결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도이며, 조선에게 핵동결을 요구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요구해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고, 핵동결에 상응하는 중대한 양보조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그저 웃고 넘겼지만, 그 '폭탄발언'은 조미협상의 해법을 예고한 중대발언이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이후 조미협상은 2년 전 클래퍼의 지론대로 전개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나는 북조선의 비핵화가 가망 없는 생각이라고 본다. 북조선은 비핵화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핵능력을 포기하는 것은 북조선으로서는 고려할 가치가 없는 생각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그러면서 그는 “(비핵화과정에서 미국이 조선에게) 바랄 수 있는 최선의 방도는 일종의 마개를 씌우는 것(some sort of a cap = 핵동결을 뜻함-옮긴이)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미국이 북조선에게 요구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요즈음 한국 언론매체들이 쓰는 말을 빌리면, 조선의 핵동결이란 현재 핵은 폐기하지 않고 미래 핵만 폐기한다는 뜻이다.

 

토론회 발언기록은 클래퍼가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전한다. 국가정보실장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조미핵대결에 관해 심각한 발언을 하는 순간, 뜻밖에도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 이 기괴한 장면은 미국의 외교전문가들이, 아니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조미핵대결에 대해 얼마나 무지몽매하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런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 클래퍼의 심각한 발언은 계속되었다. 그는 만일 미국이 조선에게 핵동결을 요구하려면, 핵동결에 상응하여 조선에게 내놓아야 할 “어떤 중대한 유인책들(some significant inducements)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에 인용된 클래퍼의 ‘폭탄발언’을 좀 더 정확한 어법으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미국은 조선의 핵능력을 제거하려는 비핵화를 추구하지 말고, 조선의 핵능력을 제한하는 핵동결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도이며, 조선에게 핵동결을 요구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요구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고, 핵동결에 상응하는 중대한 양보조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클래퍼의 ‘폭탄발언’이다.

 

‘폭탄발언’의 충격파가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었던 2016년 10월 당시는 물론이고, 그로부터 오늘까지 2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사변들이 줄이어 일어나는 조미협상국면에 들어왔는데도, 클래퍼의 ‘폭탄발언’은 워싱턴 정가에서 그 누구도 말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로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의 금기어 속에 조미협상의 해법이 들어있다. 클래퍼의 ‘폭탄발언’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이후 진행되고 있는 조미협상의 해법을 예고한 중대발언이었던 것이다.  

 

 

요즈음 미국에서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의 책 ‘두려움: 백악관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를 펼치면, 클래퍼라는 이름을 또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국가정보실장으로 재직하던 클래퍼는 미국이 조선에게 협상조건으로 제시한 조선의 비핵화는 실현될 수 없으며, 미국이 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방안 같은 비현실적인 대책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현실적인 대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6.25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협정이며, 평양에 미국의 이익대표부가 설치되기 바란다는 지론을 폈다고 한다. 클래퍼는 당시 오바마 행정부가 은밀히 논의하고 있었던 군사적 선택방안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평화협정 체결과 이익대표부 설치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클래퍼가 제시한 새로운 대안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당시 대통령은 클래퍼가 제시한 새로운 대안을 철저히 외면하였고,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회의 각료들도 그것을 무시하였던 것이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공연무대 위에서 그 무슨 ‘전략적 인내’라는 제목의 해괴한 요술을 벌여놓고, 무대 흑막 뒤에서는 조선의 미사일시험발사를 교란시키는 이른바 ‘특수접근프로그램(Special Access Program)’이라는 작전명칭의 싸이버공격기회를 노리다가 성공확률이 보이지 않자, 이전 행정부들이 이미 불가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포기했던 대조선선제타격을 다시 검토해보라는 무모한 지시를 내리며 광분하고 있었다고 한다. 

 

 

2. 오바마의 경고와 클래퍼의 조언, 1년 뒤에 일어난 변화

 

클래퍼가 제시한 새로운 대안을 외면한 채, 조선을 공격하려는 군사적 선택방안들에 미련을 두면서 화약고 안에서 은밀한 불장난으로 허송세월했던 핵제국의 호전광 오바마는 백악관을 떠났고, 정치권과 거리가 먼 부동산재벌총수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가 그의 뒤를 이어 백악관의 새 주인으로 등장하였다. 대통령선거일로부터 이틀 뒤인 2016년 11월 10일 대선승리도취감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대통령당선인 트럼프는 의기양양하게 백악관에 들어가 오바마를 만나 상견례를 하였다. 

 

그런데 백악관 상견례에서 트럼프는 대선승리도취감에서 깨어나 정신이 버쩍 드는 기이한 체험을 하였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트럼프는 오바마를 만나 10분 동안 상견례를 하려고 하였는데, 예정시간을 훌쩍 넘기며 무려 1시간 이상 회담하였다고 한다. 트럼프와 오바마는 측근들을 대통령집무실 밖으로 내보내고, 1시간 이상 단독회담을 진행한 것이다. 취재진 앞에서 악수하며 웃는 얼굴로 기념사진을 찍는 상견례가 뜻밖에 심각한 단독회담으로 바뀐 까닭은 정신이 버쩍 드는 매우 심각한 국가안보현안이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우드워드는 자신의 책 ‘두려움’에서 트럼프와 오바마가 심중하게 논의한 국가안보현안이 무엇이었는지를 오바마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서술해놓았다. 

 

“조선은 당신이 직면할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문제로 될 것이다. 오바마는 대통령당선인에게 말했다. 그 문제는 내게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후일 트럼프는 오바마가 자신에게 조선이 가장 큰 악몽으로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백악관 참모들에게 말했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날 트럼프와 오바마가 단독회담에서 심중하게 논의한 것은 조미핵대결 심층정보와 대처문제였다. 하지만 그 심층정보와 대처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우드워드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드워드는 자기 책에 위와 같이 간략한 서술만 남긴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대통령선거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6년 11월 10일 대선승리도취감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대통령당선인 트럼프가 의기양양하게 백악관에 들어가 오바마를 만나 상견례를 하는 장면이다. 취재기자들이 상견레 장면을 촬영하였다. 그런데 트럼프는 오바마를 만나 10분 동안 상견례를 하려고 하였지만, 예정시간을 훌쩍 넘기며 무려 1시간 이상 단독회담을 하였다. 그렇게 된 까닭은, 그 자리에서 매우 심각한 국가안보현안이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오바마가 단독회담에서 심중히 논의한 것은 조미핵대결 심층정보와 대처문제였다. 그로부터 12일이 지난 2016년 11월 22일 퇴임을 앞둔 국가정보실장 클래퍼는 대통령당선인 트럼프에게 국가정보를 보고하면서 이전에 오바마에게 제기하였으나 외면당했던 새로운 대안을 조언했다. 클래퍼의 새로운 대안이란 조선의 핵동결을 추진하고, 평화협정 체결과 이익대표부 설치를 추진하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백악관에서 트럼프-오바마 단독회담이 진행된 날로부터 12일이 지난 2016년 11월 22일 퇴임을 앞둔 국가정보실장 클래퍼는 대통령당선인 트럼프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정보를 해설했다. 그 자리에서 트럼프는 12일 전 오바마와 만난 단독회담에서 자기의 정신을 버쩍 들게 하였던 조미핵대결 심층정보를 클래퍼의 자세한 해설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조미핵대결 심층정보를 심중히 듣고 난 트럼프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클래퍼에게 조언을 구했다. 클래퍼는 이전에 오바마에게 제기하였으나 외면당했던 새로운 대안을 트럼프에게 조언했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클래퍼의 새로운 대안은 조선의 핵동결을 추진하고, 평화협정 체결과 이익대표부 설치를 추진하는 것이다.   

 

오바마와 달리, 트럼프는 클래퍼의 조언을 귀담아들었지만, 2017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11월 29일까지 11개월 동안 클래퍼에게서 들었던 새로운 대안을 자기 정책에 반영하지 않았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2017년 11개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무대 위에서는 조선에게 적대발언을 늘어놓으면서, 무대 뒤에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각료들에게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철군을 반대하는 그들과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2017년 11월 29일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사정권으로 끌어들인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성공하여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던 날, 트럼프 대통령은 1년 전에 들었던 오바마의 경고와 클래퍼의 조언을 상기하였다. 

 

트럼프가 대통령당선인 신분으로 클래퍼와 마주앉은 자리에서 들었던 새로운 대안, 트럼프가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에서 충격을 받고 상기하였던 새로운 대안은 평화협정 체결과 이익대표부 설치였다. 오바마의 경고와 클래퍼의 조언을 상기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1월 초부터 조선에 대한 자기의 태도를 어떻게 급변시키기 시작했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이 포괄하는 서술범위는 2017년 12월에 끝나기 때문에, 아쉽게도 그 책은 2018년 1월부터 조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어떻게 급변하였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우드워드가 2018년 1월 이후 조선을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서 일어난 극적인 변화들을 새로운 책으로 엮어낸다면,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장면들이 수록될 것이다. 

 

제1장면 - 2018년 1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듣고 충격을 받는 장면.

제2장면 - 2018년 1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팜페오-서훈-김영철 연락선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미정상회담을 제의하는 장면.

제3장면 - 2018년 1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새해에 처음 소집된 국가안보회의 각료회의에서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거론하는 장면. 

제4장면 - 2018년 1월 하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방장관에게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을 하달하려고 하였으나, 존 켈리(John F. Kelly) 백악관 비서실장이 강하게 만류하는 바람에 명령하달을 보류하는 장면.

제5장면 - 2018년 4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培晋三) 일본 총리와 진행한 미일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사람들은 6.25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었던 남측과 북측을 뜻함-옮긴이)은 종전문제를 논의하고 있는데, 나는 이 논의를 축복한다. 이 논의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말하고, 미일정상회담 중에 아베 총리에게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거론하는 장면.

제6장면 - 2018년 5월초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미국 국방부에 내리는 장면. 

제7장면 -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중에 진행된 38분 간의 단독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중대현안들을 논의하는 장면. 

 

위에 열거한, 트럼프 대통령의 극적인 행동변화를 보여주는 일곱 장면들은 마음속으로 그려본 상상장면들이 아니라, 미국 언론매체들에 보도된 사실장면들이다. 그런 사실장면들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당선인 시절에 클래퍼에게서 들었던 조언을 1년 뒤에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클래퍼가 조언했던 평화협정 체결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구상에 주한미국군 철수로 반영되었고, 클래퍼가 조언했던 이익대표부 설치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구상에 조미관계정상화로 반영되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평화협정 체결은 주한미국군 철수 이외에 다른 게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지금은 백악관 각료들의 반대를 물리칠 만한 정세가 아직 무르익지 않아서 철군결정을 보류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의지는 변함없이 확고하다. 예컨대, 그는 자신의 철군의지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 현장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표명하였는데, 취재기자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약속한 안전담보에 주한미국군 감축도 포함되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변하였다. 

 

“아니다. 감축이 아니다. 어떤 점에서 나는 솔직해야 하는데, 나는 대선기간 중에 감축 이상의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나는 우리 군대가 철수되기 바란다. 나는 우리 군대를 철수하고 싶다. 지금 32,000명 병사들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데, 나는 그들을 철수하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당면문제가 아니다. 어느 시점에 가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때가 아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조미관계정상화는 이익대표부를 설치하고 국교를 수립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Axios)> 2018년 6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조선의 공식관계를 고려하고 있으며, 나중에는 평양에 미국 대사관을 개설하는 문제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그의 철군의지와 관계개선의지를 확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 직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주한미국군 철거문제를 협의하였다. 일본 <아사히신붕> 2018년 7월 5일 보도에 따르면, 2018년 6월 19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3차 조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주한미국군 철거를 위해 전략적으로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3. ‘고차방정식’ 푸는 해법이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주한미국군을 철거하고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는 전략적 목표를 추진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철수와 조미국교수립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구상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그 공감대 위에서 상호신뢰를 유지하면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백악관, 연방의회, 언론계에 우글거리는 잡다한 극우인사들이 공감대→상호신뢰→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진전과정을 일시적으로 지체시킬 수는 있어도 중단시킬 수는 없다.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일정에 오른 것은 그런 사실을 입증해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구상 사이에 형성된 공감대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두 개의 외피개념 속에 담겨졌다. 그 외피개념을 문서화한 것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조미공동성명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외피개념을 열어보면, 그 속에 들어있는 두 개의 내실개념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곧 주한미국군 철수와 조미관계정상화다. 이 내실개념을 이해하면, 주한미국군이 철수하고 조선과 미국이 국교를 수립하는 ‘고차방정식’, 다시 말해서 한반도에서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되고,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고차방정식’을 풀 수 있다. ‘고차방정식’을 푸는 해법은 다음과 같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공화국 쌘토사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진행한 역사적인 조미정상회담 장면이다. 클래퍼가 2016년 11월에 조언했던 평화협정 체결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2018년 전략구상에 주한미국군 철수로 반영되었고, 클래퍼가 2016년 11월에 조언했던 이익대표부 설치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2018년 전략구상에 조미관계정상화로 반영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주한미국군을 철거하고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는 전략적 목표를 추진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철수와 조미국교수립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주한미국군 철수와 조미국교수립은 10년 뒤에 이루어질 전망목표가 아니라, 2~3년 안에 이루어질 중대하고 시급한 당면과업이다. 그 당면과업이 수행되는 2~3년 안에 8천만 겨레의 운명과 동아시아 정세에서 격동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몇 주 뒤에 열릴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중시해야 하는 까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조미국교를 수립하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해법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차방정식’을 푸는 해법은 두말할 나위 없이 평화협정 체결이다. 종전선언 발표가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종전선언을 발표한 뒤에도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을 수 있고, 조미관계정상화를 뒤로 미룰 수 있지만,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주한미국군을 이른 시일 안에 반드시 철수해야 하고 조선과 국교를 수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고차방정식’을 모르는 한국 언론매체들은 요즈음 종전선언을 집중적으로 거론하지만, 사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몇몇 선행조치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더욱이 종전선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자발적으로 약속한 것이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박스(Vox)> 2018년 8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명을 받고 2018년 6월 1일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종전선언을 약속하였고, 그로부터 11일이 지난 뒤에 열린 조미정상회담 단독회담 중에 회담을 마친 뒤에 곧바로 종전선언문에 서명하겠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약속하였는데, 존 볼턴(John R. Bolton)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문에 서명하려는 것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 서명을 보류해놓았으므로,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발표문제를 합의하고 말고 할 것도 없고,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보류를 중지하고 서명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종전선언과 달리, 평화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수십 년 동안 조선은 미국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예컨대, 조선외무성은 2015년 10월 17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미국이 먼저 용단을 내려야 할 문제이며, 조미 사이에 우선 원칙적 합의를 보아야 할 문제”라고 밝혔고, <조선중앙통신사>는 2015년 11월 11일에 발표한 ‘조속히 평화협정체결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조선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것은 현 시기 모든 문제해결의 관건이며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단언하였다.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남과 북이 군사대결을 중지하는 일련의 선행조치들을 취하면, 평화협정이 체결될 충분조건이 성숙되는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국군이 철수되어야 하므로,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매우 꺼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언제까지나 묻어둘 수는 없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직전 일각에서 평화협정 체결문제가 거론되었다. 일본 <교도통신> 2018년 4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8년 3월 9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남북미중 4자가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제의하였다고 한다. 조선을 모독하는 도발망언으로 악명 높은 미국 연방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Lindsey O. Graham)도 2018년 4월 1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에서 남북미중 4자 평화협정 체결이 조미정상회담의 목표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이런 선례를 보면, 제2차 조미정상회담 이후 평화협정 체결문제가 공론화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4. 평화협정과 철군, 핵동결과 이익대표부 

 

2018년 5월 2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주한미국군은 한미동맹의 문제이므로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평화협정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말이다. 평화협정은 평화라는 두 글자를 써넣은 종잇장이 아니다. 2018년 4월 12일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출석한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당시 국무장관 지명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의 안전을 보장하는 종잇장 같은 약속만으로는 안 되고,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는데, 팜페오 국무장관이 말한 종잇장은 평화협정문을 뜻하고, 그가 말한 종잇장 이상의 것은 주한미국군 철수를 뜻한다. 

 

평화협정 체결은 평화를 실현하는 정책변화를 동반하며, 국제법적 구속력에 따른 규범적 행동을 요구한다. 그런 정책변화와 규범적 행동이 수렴되는 총결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이 내려지는 것이다. 조선은 주한미국군을 철거시키기 위해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것이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반드시, 전면적으로 철수해야 한다. 

 

베트남전쟁이 종식된 경험을 보면, 평화협정이 체결되기도 전에 미국군이 먼저 자발적으로 철수했음을 알 수 있다. 1973년 1월 17일 프랑스 빠리에서 체결된 ‘베트남에서의 전쟁종식과 평화회복에 관한 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그 협정을 체결한 날로부터 60일 안에 남베트남에 주둔하는 모든 미국군과 군사장비를 전면 철수하고 남베트남에 설치한 모든 군사기지들을 해체하도록 규정되었다. 베트남 평화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1973년 3월 20일까지 철군을 완료하여야 하였는데, 미국은 1969년 7월 8일부터 15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972년 11월 30일에 철군을 완료하였다. 미국은 철군을 완료한 뒤에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정전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던 베트남의 경우와 달리 한반도에서는 정전협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해야 주한미국군을 철수할 수 있다. 정전협정에 철군문제가 명기되었으므로, 정전협정을 교체하는 평화협정에 철군문제가 명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정전협정은 제60항에서 철군문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조선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조선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 및 조선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이 조항에 따르면, 1953년 10월 이전에 조선과 미국이 정치회의를 소집하여 철군문제를 해결해야 하였지만, 미국은 정전협정이 규정한 철군문제를 외면하는 뻔뻔스러운 작태를 지난 65년 동안 버리지 못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들은 판문점 북측 지역에 있는 조선정전협정 조인장 외부와 내부를 각각 촬영한 것이다. 65년 전 조선인민군 공병들이 급조한 건물의 출입문 위쪽에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하얀 비둘기 문양이 평화의 상징으로 새겨져있다. 그 건물 안에는 1953년 7월 27일 조선과 미국이 정전협정문을 조인하였던 탁자들이 원상대로 보관되어 있다. 조인탁자 위에 각각 놓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와 유엔기가 그 날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그 장소에서 체결된 정전협정에는 철군문제가 명기되었는데, 미국은 지난 65년 동안 철군문제를 철저히 외면하는 뻔뻔스러운 작태를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뻔뻔스러운 작태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보류해둔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을 미국 국방장관에게 하달할 것이고, 조선과 미국은 국교수립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은 철군문제를 외면해왔지만, 조선은 철군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2018년 4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언론사 사장들과 오찬간담회를 하면서 “북한은 주한미군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오로지 적대정책의 종식, 안전보장을 말할 뿐”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조선에게 철군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르는 말이다. 

 

지난 날 조선은 철군문제를 외면해온 미국을 철군협상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한 적도 있었다. 1998년 10월 21일부터 24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제3차 4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각각 논의하는 두 개의 분과위원회를 구성하는 문제가 합의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분과위원회에서 철군문제를 논의할 수는 있지만, 협상할 수는 없다고 미리 금지선을 그었다. 조선측과 미국측은 제3차 4자회담 기간 중 네 차례에 걸쳐 별도로 양자회담을 진행하면서 철군문제를 협상하였다. 제3차 4자회담이 끝난 뒤, 김계관 조선측 수석대표는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질문 - 의제를 먼저 정해야 한다는 기존 방침을 북측이 양보했는데...

답변 - 의제를 먼저 정해야 한다는 우리의 기본방침에는 변함이 없다. 조미평화협정과 주한미군철수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근본문제다. 우리는 이러한 자세로 앞으로의 협상에서 이를 반영시켜 나갈 것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4자회담에서 제기하겠다.

 

질문 - 주한미군문제는 어느 분과위원회에서 논의되는가?

답변 - 앞으로 계속 논의돼야 할 문제다. 분과위의 성격을 보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곁에 있었던 리근 조선측 차석대표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논의하는 분과위원회에서 철군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보류해둔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을 미국 국방장관에게 하달할 것이고, 조선과 미국은 국교수립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일본 <아사히신붕> 2018년 10월 7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보도 당일 네 번째로 평양을 방문한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에 맞춰 미국의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는 시설을 평양에 설치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고 한다.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라고 명시하지 않고,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는 시설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 시설이 이익대표부(interest section)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핵동결을 실행하면, 조선과 미국은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 이익대표부를 설치한다는 말이다. <사진 5>

 

▲ <사진 5> 현재 미국과 이익대표부 수준의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나라는 이란이슬람공화국이다. 1979년 이란혁명으로 테헤란에 있는 미국대사관이 점거되자, 미국은 워싱턴에 있는 이란대사관을 압류하였다. 이란과 미국은 1981년 1월 19일 알제리에서 협정을 체결하고, 서로 이익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안전문제 때문에 이란 이익대표부는 워싱턴에 있는 파키스탄 대사관 안에 설치되었고, 미국 이익대표부는 테헤란에 있는 스위스 대사관 안에 설치되었다. 위의 사진은 이란 이익대표부가 들어있는 파키스탄 대사관 청사를 촬영한 것이다. 조선과 미국이 이익대표부를 각각 워싱턴과 평양에 설치하면, 다른 나라 대사관 안에 설치하지 않고 독자적인 청사를 갖게 될 것이다. 남홍색 오각별이 선명한 공화국기가 워싱턴에 휘날리고, 50개 별과 13개 붉은 줄이 그려진 성조기가 평양에 휘날리게 되는 것이다. 이란 이익대표부는 미국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이란국적자들을 위한 영사업무를 맡아보면서 이란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입국사증을 발급하는, 사실상 영사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조선 이익대표부가 워싱턴에 설치되면, 그런 영사관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2016년 11월 22일 클래퍼 국가정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당선인에게 국가정보를 해설하는 기회에 조선의 핵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평화협정 체결과 이익대표부 설치를 조언한 바 있었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평화협정 체결과 이익대표부 설치가 제2차 조미정상회담 의제로 된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트럼프는 클래퍼의 조언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익대표부 설치는 국교수립 직전 단계의 조치다. 1973년 5월 연락사무소를 워싱턴과 베이징에 각각 설치한 미국과 중국은 연락사무소를 이익대표부로 격상시키지 않고 곧바로 1979년 1월 1일 국교를 수립하였다. 미국과 이익대표부 수준의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나라는 이란이슬람공화국이다. 

 

 

5. 가슴 벅찬 전환시대의 흐름 속에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 이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평양과 워싱턴에 이익대표부가 각각 설치되면, 주한미국군 철수가 일정에 오르게 될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철수되지 않은 평화협정은 있을 수 없고, 조미국교수립을 촉진시키지 않는 평화협정도 있을 수 없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국군이 철수하고, 남북군비감축이 시작되고, 이익대표부가 설치되면, 적대관계가 불가역적으로 해소되고, 최종적이고 완전한 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런 상태를 한반도 평화체제라 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국군은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반환하고 단계적으로 철수해야 한다. 지난 시기 조선은 미국에게 3단계 철군을 요구하였다. 

 

평화협정 체결은 주한미국군을 철거시킬 뿐 아니라, 남북군사대결도 중지시킬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철수하면, 남북군사대결이 격화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남북군사대결이 중지된다. 그렇게 예견하는 근거는,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부터 남북군사대결을 중지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들이 이미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18년 9월 19일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직후, 그 자리에서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남측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측 인민무력상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에 서명하고, 합의문을 교환하는 장면이다. 군사분야합의서에는 남북군사대결을 중지하는 조치들이 담겼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설치하는 획기적인 조치도 담겼다. 남북군사대결이 중지되고 신뢰관계가 조성되는 가운데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군사대결을 완전히 중지하는 최종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인데, 그것이 바로 남북군비감축이다. 2018년 10월 현재 종전선언 발표는 이미 예정되었고, 남과 북은 군사대결을 중지하는 일련의 조치를 이행하기 시작하였으니, 평화협정이 체결될 날도 멀지 않았다. 8천만 겨레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역사적 전환을 2019년에 맞을 것이다. 조미관계는 평화공존으로, 남북관계는 통일실현으로 나아가는 위대한 전환이 다가오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8년 9월 19일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직후, 그 자리에서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남측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측 인민무력상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에 서명하였다. 이 군사분야합의서에는 남북군사대결을 중지하는 조치들이 담겼고, 합의사항들을 이행하고 점검하고 평가하는 상설군사기구인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설치하는 획기적인 조치도 담겼다. 군사분야합의서에 담긴 조치들은 조선이 1990년 5월 31일에 발표한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에 이미 명기된 조치들인데, 조선은 남북군사대결을 중지하는 과업을 무려 28년 만에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남북군사대결이 중지되고 신뢰관계가 조성되는 가운데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군사대결을 완전히 중지하는 최종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인데, 그것이 바로 남북군비감축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과 더불어 남북군축협상이 시작될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국군은 주한미국군으로부터 작전통제권을 반환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주한미국군사령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남북군축을 추진할 수 있다. 

 

2018년 10월 현재 종전선언 발표는 이미 예정되었고, 남과 북은 군사대결을 중지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이행하기 시작하였으니, 평화협정이 체결될 날도 멀지 않았다. 8천만 겨레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역사적 전환을 2019년에 맞을 것이다. 조미관계는 평화공존으로, 남북관계는 통일실현으로 나아가는 위대한 전환이 다가오고 있다. 가슴 벅찬 전환시대의 흐름 속에 우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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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중단하고, 북미공동성명 이행하라!”

7차 반미월례집회, 6일 미대사관 앞에서 진행
이기영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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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8  11: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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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7차 반미월례집회는 ‘대북적대정책 철회! 경제제재 해제! 판문점선언 이행 방해·내정간섭 중단!’을 주요 구호로 제시했다. [사진제공-미국규탄대회 준비모임]

지난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제5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역사적인 ‘9월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표한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또한 남북관계 발전을 통일로 이어갈 것을 바라는 온 겨레의 지향과 여망을 정책적으로 실현하기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조명균 장관을 비롯한 남즉 대표단이 군 수송기를 타고 10.4 11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길에 올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10월 5일, 평양에서는 10.4선언 발표 11돌을 맞아 ‘10.4선언발표 11돌 기념 민족통일대회’(이하 10.4기념대회)가 진행되었으며 공동호소문이 채택되었다.

이번 10.4기념대회는 10.4선언 이후 남북이 갖는 첫 남북공동 기념행사로서 무엇보다도 양 정상이 합의하고 발표한 ‘9월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열리된 것으로 역사적인 평양공동선언 이행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6.15남측위원회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명균 통일부장관 등 남측의 민관방북단 160여명을 비롯하여 남·북·해외 대표 3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과적으로 개최된 10.4기념대회는 ‘4.27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의 이행을 적극적으로 추동하고 8천만 겨레에게 조국통일을 향한 필승의 신념과 낙관을 더욱 높여주었다.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 민족적인 대단합이 반드시 요구되며, 우리 민족문제에 미국의 개입과 간섭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민족자주를 철저히 실현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대북제재를 극복하고 민족단합과 민족공조를 실현해 나가지 못한다면, 이번 ‘10.4기념대회’에 참가했던 방북단이 군수송기에 실려 평양으로 향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이 다시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와 번영, 자주통일 실현이 기대와 바람이 아닌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중대한 사변기인 지금 예속적인 한미관계를 청산하고 민족자주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실천해 나가는 것은 민족구성원으로서의 당연한 일이다.

   
▲  6일 오후 맑은 날씨 속에 오후 4시부터 200여명의 참가자들은 지난 3월부터 매월 진행해온 일곱 번째 반미월례집회, ‘미군철수! 평화협정 실현!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미국규탄대회’를 진행했다. [사진제공-미국규탄대회 준비모임]
   
▲ ‘미군철수! 평화협정 실현!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미국규탄대회’ 참가자들. [사진제공-미국규탄대회 준비모임]

다행히 태풍 콩레이의 영향에서 벗어난 6일 오후 맑은 날씨 속에 오후 4시부터 200여명의 참가자들은 지난 3월부터 매월 진행해온 일곱 번째 반미월례집회, ‘미군철수! 평화협정 실현!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미국규탄대회’를 진행했다.

‘대북적대정책 철회! 경제제재 해제! 판문점선언 이행 방해·내정간섭 중단!’을 주요 구호로 제시한 이번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적극 이행하고 민족자주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의 개입과 간섭, 방해를 철저히 배격하고 반미자주 구호를 더욱 높이 들 것을 결의했다.

   
▲ 배종렬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은 ‘북을 고립·압살하려는 미국에 맞서 승리하는 길은 민족공조와 민족대단결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미국규탄대회 준비모임]
   
▲ 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민족의 밝은 미래를 위해 힘차게 투쟁하자’고 호소했다. [사진제공-미국규탄대회 준비모임]

전농 전 의장을 역임한 범민련 남측본부 배종렬 고문은 첫 번째 발언에 나서 “북을 고립·압살하려는 미국에 맞서 승리하는 길은 민족공조와 민족대단결에 있다”며 “더 큰 단결을 위해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의 노동자 민중의 참여가 가장 우선”이라고 말하고, 미국규탄대회에 민주노총과 전농을 비롯한 각계의 참여를 호소했다.

이어 “휴전협정 제4조 60항의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해 휴전협정이 조인되어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 대표를 파견, 고위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반도에서 외국군 철수와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들을 협의할 것’이라는 조항을 지적한 뒤,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며 미국은 지금 즉시 ‘평화협정 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협정운동본부 지창영 집행위원장은 ‘우리 민족문제에 사사건건 방해와 훼방을 놓고 있는 미국의 행태’를 하나하나 지적하고, “양 정상이 백두산 정상에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높이 치켜들고 민족의 밝은 미래를 제시한 모습이야말로 외세를 배제한 우리 민족의 완전한 민족자주의 실현”이라고 감격해했다.

“제국주의 나라가 스스로 대화에 나서는 경우는 없었다”고 일갈하고, “우리 민족의 통일의지와 노력이 불가항력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핵추진 엔진을 달고 자강이라는 철판을 두른 자주통일의 기관차가 힘차게 출발했기 때문”이라며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온 힘의 원천은 바로 조선의 핵무력 완성에 있으며 작년 11월 29일 화성-15호 발사 성공과 핵무력완성이 이룩된 역사적인 날을 전후로 바뀐 미국의 태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백두산 정상에서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것처럼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치면 못 해낼 일이 없다”며 “민족의 밝은 미래를 위해 힘차게 투쟁하자”고 호소했다.

   
▲ 참가자들은 구호판을 내세우며 요구사항을 외쳤다. [사진제공-미국규탄대회 준비모임]
   
▲ 노래극단 희망새를 비롯해 민중민주당 학생위원회, 민대협 소속 대학생들의 율동과 노래공연이 진행되었다. [사진제공-미국규탄대회 준비모임]

‘한미동맹 폐기! 주한미군 철수!’ 발언을 한 민대협 대학생은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한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에서 밝힌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비무장지대 안에 감시초소(GP)를 전부 철수하기 위해 시범적 조치를 하기로한 우리 민족의 합의’에 미국은 어깃장을 놓고 있다”고 지적하고 “신임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내정된 로버트 에이브람스가 유엔사의 관할·판단하에 집행 및 감독하겠다는 망언은 미국의 허락을 받으라는 명령”이라며 “제 나라의 민족 문제를 제3자의 동의를 받아서 풀어나가는 주권국가는 없다”고 일갈했다.

이어 “미국이 우리 민족문제에 개입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며 “북미간의 문제를 남북관계와 억지로 연관시켜서 남북 상호간에 합의를 이행하는 문제에 개입하지 말고 북미간의 합의나 잘 이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참가자들은 미국 대사관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사진제공-미국규탄대회 준비모임]
   
▲ 평화협정운동본부 이적 상임대표, 범민련 서울연합 노수희 의장이 미대사관측에 서한을 전달했다. 경찰은 참가자들의 대사관 진입을 막았다. [사진제공-미국규탄대회 준비모임]

민중민주당 학생위원회, 민대협 소속 대학생들의 율동공연이 진행되었으며 노래극단 희망새도 북녘노래와 우리 민요를 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대회의 마지막 순서로 미국에게 보내는 서한이 낭독되었으며 평화협정운동본부 이적 상임대표와 범민련 서울연합 노수희 의장이 미대사관측에 서한을 전달했다.

대표단들과 참가자들이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미대사관 쪽으로 행진하자 경찰이 이를 제지하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구호와 함성을 외치며 미국에 대한 규탄을 이어갔다.

참가자들은 8차 반미월례집회를 오는 11월 3일 오후 4시 미대사관 앞에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7차 반미월례집회를 마무리했다.

 

[미국에게 보내는 서한(전문)]
미국은 대북제재 중단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 실현을 위해 적극 나서라!!!

지난 9월 18-20일 평양에서 제5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9월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이번 평양공동선언에서는 남북관계를 더욱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고,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안전지대로 만들기로 하였다. 무엇보다 남북관계 발전을 통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벌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경의선, 동해선 도로 철도연결과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정상화,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등 남북 교류협력사업을 전면적으로 벌여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번 유엔총회를 계기로 조미의 외교수장들의 접촉이 있었고, 귀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0월 7일 네 번째 방북이 예정되어 있으며, 조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이렇듯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조미 사이의 대화와 접촉이 다시금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정착에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고 있지 않으며, 조미 사이의 신뢰관계 구축의 우선적 조치인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일방적으로 조선의 비핵화를 요구하거나, 여전히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평양공동선언의 합의에 따라 남북관계 발전과 우리민족끼리 조국통일 실현에 방해하지 말고 내정간섭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조미 사이의 대화와 협상에 적극 나서 한반도를 평화의 땅으로 만들고 한반도 평화정착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한다. 우리 민족의 문제는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어 풀어갈 것이다. 우리는 민족자주권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적극 투쟁할 것임을 천명하며 다음과 같이 미국에게 요구한다.

1. 미국은 우리 민족의 문제에 방해하지 말고, 내정간섭을 즉각 중단하라!

남북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또한 조미정상회담에서 판문점선언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남북관계 발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으며, 끊임없이 한반도에서 내정간섭을 벌이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 지명자가 평양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인 휴전선 내 GP 철수에 대해 문제를 걸고 드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이제라도 미국은 우리 민족에 대한 부당한 개입과 간섭을 중단해야 한다.

2. 미국은 대조선적대정책과 경제제제를 완전 중단하라!

미국은 6.12 조미공동성명 합의에 위배되는 대조선 적대정책과 경제제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번 평양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인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정상화는 미국이 대조선제제를 풀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다. 미국이 대조선 제재를 지속한다면 남북관계 발전에 중대한 장애가 조성될 수 밖에 없다. 또한 대조선제제가 지속된다면 조선과의 신뢰관계가 구축될 수 없으며, 한반도 비핵화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남북관계 발전과 조선과의 신뢰관계 구축을 위해 대조선 적대정책과 경제제제를 완전 중단해야 한다.

3. 미국은 종전선언을 시작으로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적극 나서라!

6.12 조미공동성명에서 미국은 조선과 전 세계에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예정되어 있으며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약속되어 있다. 이번 조선과의 대화와 접촉을 통해 반드시 종전선언을 시작으로 평화협정 체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정착은 선결적 과제이다.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정착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대화와 접촉을 지속될 수 없으며, 언제든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이 다시 높아질 수 있다. 미국은 조선의 비핵화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즉각 나서야 한다.

4.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즉각 폐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

미국은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통해 한반도 이남에서 온갖 범죄와 패악질을 부리고 최상의 특권을 누리며, 동북아에서 정치군사적 영향력를 확대 강화해왔다. 예속적인 한미동맹으로 인해 한국은 자주국가로 설 수 없었으며,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조공 받치듯 모두 수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이미, 6.12 조미공동성명이 발표되었고,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한반도는 이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한미관계는 여전히 냉전시대에 머물러 있고, 예속적 한미동맹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통일과 공동번영을 가로막고, 조미공동성명과도 공존할 수 없는 예속적 한미동맹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이제 미국은 한미동맹의 근간이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스스로 폐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

2018년 10월 6일
미국규탄대회 준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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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매우 생산적 담화,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의견 교환"

북한 매체 폼페이오 4차 방북 직후 긍정적 보도 내놔

18.10.08 08:39l최종 업데이트 18.10.08 10:07l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 사실을 알렸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5시20분께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을 잘 방문해 김 위원장과 만났다"며 "우리는 (올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들에 계속 진전을 이뤄갈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처]
▲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 사실을 알렸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5시20분께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을 잘 방문해 김 위원장과 만났다"며 "우리는 (올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들에 계속 진전을 이뤄갈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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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의 4차 방북 비핵화협상 결과에 대해 북한 쪽에서도 즉각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매우 생산적이고 훌륭한 담화",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가를 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8일 오전 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을 접견한 소식을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폼페이오 장관을 만난 김 위원장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을 "역사적인 조미수뇌상봉(북미정상회담)과 두 나라 사이의 관계발전을 위하여 여러 차례 평양을 래왕(왕래)하며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했다"고 이 보도는 전했다.

이어진 접견에서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6.12 북미공동성명이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고 "진심어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시했다. 이 보도는 김 위원장이 "예정된 제2차 조미수뇌회담을 계기로 전 세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해결과 지난 회담에서 제시한 목표달성에서 반드시 큰 전진이 이룩될 것이라는 의지와 확신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은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방침뿐 아니라 그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매우 생산적이고 훌륭한 담화를 진행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된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며 만족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이어 함께 오찬을 한 뒤 폼페이오 장관과 작별하면서 김 위원장은 "양국 최고 수뇌들 사이의 튼튼한 신뢰에 기초하고 있는 조미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앞으로도 계속 훌륭히 이어져나갈 것"이라며 "조만간 제2차 조미수뇌회담과 관련한 훌륭한 계획이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보도는 북한 매체로선 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의 만남을 상세히 보도한 편이고, 김 위원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반복해 실었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에 대한 북한의 환영입장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지난 8월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직후 북한 외무성은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담화를 냈고 북한 매체들은 비난 보도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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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세 무력화도 이명박의 죄악이다

[기고] MB가 국토와 부동산 제도에 끼친 해악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법부에 의해 다스 실소유자임이 드러나고 징역 15년 형을 언도받자, 그의 개인 비리와 소위 '사·자·방' 비리를 다루는 기사가 언론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다. 모두 중요한 사안이고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런 기사들이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잘못된 정책으로 제도를 심각하게 후퇴시켰던 일이다. 사람 몸에 빗대 표현하자면, 부패와 비리는 피부에 상처를 내지만, 제도 개악은 뼈를 손상시킨다. 그만큼 영향도 오래갈 수밖에 없다. 

보유세 혐오는 노무현에 대한 반감의 발로 

대선 후보 시절부터 보유세 강화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정책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드러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후 노골적으로 ABR(Anything But Roh: 무조건 노무현과 반대로 한다는 뜻)을 표방했다. 취임 후 첫 사업으로 전봇대를 뽑더니 곧바로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작업에 착수했다. 종부세를 노무현 정부가 설치해 둔 전봇대쯤으로 여기는 듯 했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애오라지 전임자에 대한 반감으로 국가 대사를 결정했으니 정말 기가 막힐 일이었다.  

이명박 정권에서 종부세 무력화의 총대를 맨 사람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그는 야인 시절 한때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토지가치세를 알리고 지지하는 신문 칼럼까지 썼던 인물이다. 권력을 갖자마자 과거 자신의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정책을 앞장서서 밀어붙이는 돌격대장 역할을 했으니 참 특이한 인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권좌에서 물러난 지금 두 사람 다 감옥에 들어가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렸던 권력자들의 말로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이명박 정부가 노골적으로 종부세 무력화 의지를 밝히고 있던 당시에 때마침 헌법재판소가 종합부동산세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과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려서 이명박 정부를 도왔다. 2018년 11월 13일 헌법재판소는 종부세 위헌 심판 판결에서 종부세 자체에 대해서는 합헌 판정을 내리면서도, 세대별 합산 과세에 대해 위헌 판정을, 주거 목적으로 1주택을 장기 보유하는 자에 대한 무차별적 과세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명박 정부는 '이게 웬 떡이냐!'는 듯이 즉각 종합부동산세법을 개정하여 원하던 종부세 무력화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종합부동산세법 개악의 내용과 결과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세기준 금액을 낮춰서 과세 대상자를 줄이고, 세율을 전반적으로 인하하는 동시에 과표 구간을 조정하여 세 부담을 경감했다. 그 뿐이 아니다. 소유 부동산 가액 계산 방식을 세대별 합산에서 인별 합산으로 변경하고, 2009년까지 100%로 올리도록 되어 있던 과표 현실화 계획을 중단해 버렸다. 이 또한 과세 대상을 축소하고 세 부담을 경감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 마디로 이때 이명박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종부세를 형해화시키는 조치를 취한 셈이다.  

그 결과 2007년 48만 명에 달했던 종부세 납세 인원은 2008년에 41만 명으로 줄었고, 2009년에는 21만 명으로 격감했다. 그와 함께 2007년에 2조 7671억 원에 달했던 종부세 세수는 2009년에 9677억 원으로 줄었다. 그 과정에서 개별 납세자의 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2007년 종부세 납세자를 기준으로 계산한 1인당 평균 납세액은 2007년과 2009년 2년 사이에, 주택의 경우 330만 원에서 51만 원으로, 종합합산 토지의 경우 814만 원에서 392만 원으로, 별도합산 토지의 경우 4033만 원에서 2272만 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그림 1> 종부세 세수 구성의 변화 

 


<그림 1>에 나타나 있듯이,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법 개정으로 종부세 세수 구성도 크게 바뀌었다. 개정 전에는 종부세 세수의 중심은 주택이었고, 그 다음 종합합산 토지, 별도합산 토지의 순이었다. 하지만 개정 이후 주택 종부세 세수는 셋 중 꼴찌로 밀려나고 만다. 한때 1조2000억 원을 초과했던 주택 종부세 세수의 크기도 2000-3000억 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는 주택 투기를 억제하던 종부세의 기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참여정부 때의 종부세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강남에서 시작되어 서울 전체를 집어삼킨 작금의 부동산 광풍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때 이명박 정부가 재산세에 대해서는 주택분을 제외하고는 감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참여정부가 세웠던 장기 강화 계획을 중단시켰을 뿐이다. 주택분 재산세의 경우에도 세율을 낮추고 과표 구간을 조정하여 세 부담을 경감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종부세보다 훨씬 약했다.  

<그림 2>에 따르면, 종부세와 그 부가세(Sur-tax)인 농어촌특별세를 합한 중앙보유세 세수는 2009년에 급격히 감소한 다음 2016년까지 아주 완만하게 증가한 반면, 재산세와 그 부가세를 합한 지방보유세 세수는 한 번도 감소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009년 이후 두 세금의 세수가 증가한 것은 제도 변화가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자연적인 결과였다. 종부세는 소수의 부동산 과다 소유자에게 부과되고 재산세는 모든 부동산 소유자에게 부과되는 만큼, 두 세금의 세수 변화에 이런 차이가 드러난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 보유세 무력화 정책의 본질이 '부자 감세'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림2> 지방보유세 세수와 중앙보유세 세수의 추이 (단위: 천만 원)

 

이명박이 좌초시킨 노무현의 담대한 계획 

더 큰 문제는 이때의 개정이 2007년 시점의 종부세만 후퇴시킨 것이 아니고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중장기 보유세 강화 정책 전체를 무력화시켰다는 사실이다. 종부세는 2007년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고 계속 강화되던 중이었다. 참여정부는 보유세 강화 정책의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두고 있었는데, 그에 의하면 2005년 현재 0.15%였던 보유세 평균 실효세율은 2017년까지 1%로 올라가고, 3.5조원이었던 보유세 세수는 2017년에 34.5조원으로 증가하게 되어 있었다. 이 담대한 계획이 이명박 정부의 보유세 무력화 조치 때문에 좌초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이 도중에 좌초하지 않고 2017년까지 지속되었다면, 한국에서 더 이상 부동산 투기가 발을 붙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대폭 감소했을 것이고 토지와 집은 이용할 사람들만 구입하는 물건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기업들이 생산적 투자는 하지 않고 토지시장을 기웃거리는 일과, 노동자들이 힘에 넘치도록 대출을 받아서 무리하게 집을 사고 땅을 사는 일은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부동산공화국'은 해체되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되었을 것이다. 

이명박 집권은 역사의 비극 

노무현 대통령 다음에 이명박이 집권한 것은 여러 모로 역사의 비극이다. 이명박 정권은 종부세를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종부세 도입과 보유세 강화의 선봉장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까지 죽음으로 몰고 갔다. 노무현의 죽음이 온 국민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면, 종부세 무력화는 이 나라 경제제도의 골간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밀어붙인 뉴타운 사업은 전국 곳곳에서 흉물을 남기고 중단되었다. 서민이 거주하던 저렴한 주택들이 대량 멸실된 것은 그 대가였다. '보금자리 주택'이라는 미명을 내걸고 공공주택 공급을 추진했지만, 실상은 공공분양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이었을 뿐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반토막났다. 뉴타운 사업과 보금자리 주택 정책의 결과는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지속된 살인적인 전월세난이었다. 거기다가 사대강 사업으로 국토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으니, 무자격자 모리배를 대통령으로 뽑은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노무현을 잃고 아파했던 많은 국민들의 마음은 제법 치유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명박이 국토에 남긴 상처와 부동산 제도에 남긴 결함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많이 소홀하다. 종부세와 노무현 대통령이 함께 운명했음을 기억한다면, 그리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분발을 촉구한다.

 

onscar@pressian.com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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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군 부사령관 미국은 허약하고 나약한 존재라고 비하 발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10/07 11:32
  • 수정일
    2018/10/07 11: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테러분자들의 심장”에 대한 미사일 공격 이란의 힘 과시
 
번역, 기사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8/10/06 [11:22]  최종편집: ⓒ 자주시보
 
 

이란군 부사령관 미국은 허약하고 나약한 존재라고 발언

 

현지 시간 지난 10월 1일에 있었던 수리아 동부 유프라테스강 동쪽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던 《이슬람국가(ISIS)》 무장테러분자들의 강력한 근거지를 6기의 미사일과 7대의 무인공격기를 동원하여 공격을 단행한 후 이란에서는 정치, 군, 최고 종교지도자들이 일제히 나서서 그 의미와 파장 그리고 그에 담긴 이란의 힘 등의 역학관계 등에 대해 발언들을 연일 폭포처럼 쏟아내고 있다.

 

아래 이란국영 《이슬람혁명통신(IRNA)》가 보도한 이란이슬람혁명수비대의 부사령관인 준장 호쎄인 살라미가 금요일에 이란 중부 도시인 이스파한에 대규모로 집합되어 있는 이란군 지원병들에게 연설을 하면서 한 말은 현 세계사와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슬람혁명통신(IRNA)》은 “‘테러분자들의 심장’에 대한 미사일 공격 이란의 힘 과시: 이슬람혁명수비대 부사령관“라는 제목으로 관련 사실을 상세하게 보도하였다. 통신은 “‘테러분자들의 심장에’ 가한 미사일공격은 지하드(무장분자들), 반정부저항세력들에게 이란의 힘과 이란 인민들의 강한 인내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부사령관인 준장 호쎄인 살라미가 금요일에 말했다.”고 보도하여 이란이 현재 자주적 나라인 이란을 무너뜨리려고 준동을 하고 있는 세력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낸 사실을 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호쎄인 쌀라미 장군은 이란 중부 도시 이스파한에서 대규모로 집합되어있는 지원병들에게 연설을 하던 살라미 장군은 최근 이란이슬람혁명수비대(이란군)가 수리아의 테러분자들의 강력한 근거지를 미사일로 공격한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보도를 보면 쌀라미 장군은 계속해서 이란의 미사일들은 미국군들의 바로 근처로 낙하하였고 “그들은 우리와 미국 사이에 적어도 직통전화만이라도 개통해줄 것을 우리에게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테러분자들을 타격할 때마다 (타격사실을)미국인들에게 그 정보를 통보해줄 것이다.”고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발언을 하였다. 쌀라미 장군의 이와 같은 발언은 현재 겉으로 드러난 최강 미국, 이란 대 미국과의 군사적 대립관계에서 미국은 강자, 이란 약자라는 등식을 완전히 깨버리는 사실이 아닐 수가 없다.

 

물론 이란군에 지원을 하는 지원병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서 한 발언이겠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적어도 한 나라 군대의 부사령관이라는 위치에 있는 관계자가 허위사실을 말 할 수는 없다. 이미 쌀라미 부사령관의 발언은 언론을 통해 온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쌀라미 장군이 허위사실을 말 할 수는 없다.

 

결국 쌀라미 장군의 위와 같은 발언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란과 미국의 군사적 대결에 있어서는 이란 강자, 미국 약자가 된다. 참으로 논라운 사실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쌀라미 장군은 “그들은 우리와 미국 사이에 적어도 직통전화만이라도 개통해줄 것을 우리에게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이란이 테러집단들을 목표로 타격을 할 때마다 미국에게 그 사실을 통보해주겠다고 강자의 여유로운 입장에서 말을 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가 없다.

 

어차피 위 쌀라미 장군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지 시간 지난 10월 1일에 거행된 수리아 동부 유프라테스강 동쪽에 자리잡고 있던 이슬람국가 무장 테러집단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할 때 그러한 관계를 포함해서 모든 변수를 치밀하게 고려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그의 “이란의 미사일들은 미국군들의 바로 근처로 낙하하였다.”는 말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결국 미군 주둔지 바로 근처로 미사일이 낙하를 했다는 것은 미국을 간접공격한 것이 되며, 만약 미군이 이란에게 군사적 행동을 한다면 이란의 미사일과 무력은 가차없이 반공격을 가하여 미군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무언의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보도는 마지막으로 현 세계사에 있어 군사력의 힘의 균형에 대해 적나라하게 밝혀주는 호쎄인 쌀라미 장군의 발언을 전하여주었다. 이란 중부도시인 이스파한 시에서 있었던 이란군 지원병들에게 한 연설에서 쌀라미 장군은 아래와 같이 하나 하나 따로 따로 발언을 하면서 현 국제사회의 군사력의 힘의 역학관계를 밝혔다. 쌀라미 장군이 한 말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구별하여 보기로 한다.

 

첫째 그들은 수리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다.

둘째, 이라크는 통제 할 수 없다.

셋째,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의 장성강화(長成强化)를 막을 수는 없었다.

넷째, 예멘전의 교착 상태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구하는데 실패했다.

다섯째, 시온주의 정권의 안보가 나날이 약해지고 있다. 

여섯째, 그들은 이란 인민들의 저항을 깨뜨리는데 실패하였다. 

일곱째, 그들의 동맹국을 지킬 수 없었고, 그들 중 일부는 이란을 향해 우호적인 방향으로 기울기까지 하였다.

여덟째, 심지어 유럽의 동맹국들까지도 지키는데 실패를 하였고, 러시아와의 신 냉전이 시작되었다.

 

이란이슬람혁명수비대 부사령관인 호쎄인 쌀라미 장군의 위 여덟 가지로 구분하여 한 발언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가 없다. 위 쌀라미 장군이 한 여덟 가지의 발언을 간단히 요약하면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시대는 이미 기울어버렸다.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있다.”라는 내용이 된다. 

 

이 쌀라미 장군은 그동안 약 500여 년 동안 세상을 쥐락펴락 하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지구상의 이곳 저곳의 약소국들을 침략하여 식민지 지배를 일삼았으며, 현재도 그러한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을 대단히 나약하고 허약한 존재로 사정없이 무시하는 발언을 하였다. 

 

쌀라미 장군의 이 말은 이란도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과 무력대결을 벌인다면 절대 밀리지 않고 승리를 할 수 있다는 힘의 과시이며, 경고를 한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쌀라미 장군의 발언이라고 밖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쌀라미 장군이 한 발언과 대비해서 조선에 대해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주축이 된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강력한 힘을 위와 같이 형편없는 존재로 얕잡아보는 이란이 조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하는가 이다. 이미 어제 수리아 인민의회 의원대표단들이 조선을 방문하여 양 국간의 회담을 가졌다는데 대해 보도를 하면서 이란의 파르스통신과 IRNA도 관련 사실을 전하였다고 하였다. 

 

이란의 국영 및 관영 매체들이 자국과는 직접적으로 연관도 없는 《조선-수리아》와의 관계에 대해 보도를 할 정도면 이란이 조선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두 나라는 어떤 관계에 있는 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조선은 이란 무력의 스승이다.” “조선이 이란에 핵 기술과 미사일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라면서 반 조선 선전전을 벌여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선전전에 대해 조선은 가타부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선이 무대응을 하고 있지만 이란이 실험하는 미사일과 자체 개발했다고 이란에서는 주장하는 첨단무기들을 보았을 때 과연 그 무기들이 이란이 자체적으로 설계, 제작, 관리 운용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선뜻 대답할 수가 없다.

 

몇 일전에 이란이 자체적으로 개발, 제작했다면서 공개한 두 척의 잠수함을 보도를 통해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곧 조선에서 그동안 공개를 해왔던 잠수함과 판에 박은 듯이 똑같았다. 심지어 잠수함에 칠 하는 칠의 색깔까지 유사하였다. 물론 조선의 잠수함들의 색깔이 좀 더 진한 녹색을 띄고 있고, 이번에 공개한 이란의 잠수함 색깔은 약간 옅은 녹색이었다는 차이는 있다. 하지만 한 눈에 보아도 그 잠수함은 조선이 제작 또는 기술 지도로 이란이 제작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란과 조선의 이러한 관계, 쌀라미 장군이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무력에 대해 형편없는 존재로 비하하는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현 국제사회에서의 진정한 강국이 어느 나라인지, 미래 세계는 어디로 흐르게 될 지를 전망해볼 수가 있다. 본 지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를 하고 있지만 미래 세계는 각 나라의 주권을 존중하는 자주적인 세계로 발전해나갈 수 밖에 없다. 그 길로 나가는 것은 오로지 한 길 외통길이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펼쳐지고 있는 중동정세, 세계정세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우리 조선반도와의 관계를 연결지어 보아야 한다.

 

 

----- 번역문 전문 -----

 

“테러분자들의 심장”에 대한 미사일 공격 이란의 힘 과시: 이슬람혁명수비대 부사령관

 

이스파한, 10월 5일, 이슬람혁명통신(IRNA) - “테러분자들의 심장에” 가한 미사일공격은 지하드(무장분자들), 반정부저항세력들에게 이란의 힘과 이란 인민들의 강한 인내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부사령관인 준장 호쎄인 살라미가 금요일에 말했다.

 

▲ 이란이슬람혁명수비대 부사령관 호쎄인 쌀라미 장군은 미국은 수리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다.: 이라크는 통제 할 수 없다.: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의 장성강화(長成强化)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예멘전의 교착 상태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구하는데 실패했다.: 시온주의 정권의 안보가 나날이 약해지고 있다.: 그들은 이란 인민들의 저항을 깨뜨리는데 실패하였다.: 그들의 동맹국을 지킬 수 없었고, 그들 중 일부는 이란을 향해 우호적인 방향으로 기울기까지 하였다.: 심지어 유럽의 동맹국들까지도 지키는데 실패를 하였고, 러시아와의 신 냉전이 시작되었다고 이란군 지원병들에게 한 연설에서 말하였다.     ©이용섭 기자

 

이란 중부 도시 이스파한에서 대규모로 집합되어있는 지원병들에게 연설을 하던 살라미 장군은 최근 이란이슬람혁명수비대(이란군)가 수리아의 테러분자들의 강력한 근거지를 미사일로 공격한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란의 미사일들은 미국군들의 바로 근처로 낙하하였고 “그들은 우리와 미국 사이에 적어도 직통전화만이라도 개통해줄 것을 우리에게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테러분자들을 타격할 때마다 (타격사실을)미국인들에게 그 정보를 통보해줄 것이다.”고 장군을 말했다.

 

오늘 날 미국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으며 너무나도 나약하고 무기력해 (국력을 다시 회복할)시간이 없다고 장군을 말했다.

 

그는 미국은 [그 지역(미국 지칭)에서의] 100년 동안의 이란 원유수입액과 맞먹는 엄청난 재정을 탕진하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인정하였다.

 

그들은 수리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다.: 이라크는 통제 할 수 없다.: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의 장성강화(長成强化)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예멘전의 교착 상태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구하는데 실패했다.: 시온주의 정권의 안보가 나날이 약해지고 있다.: 그들은 이란 인민들의 저항을 깨뜨리는데 실패하였다.: 그들의 동맹국을 지킬 수 없었고, 그들 중 일부는 이란을 향해 우호적인 방향으로 기울기까지 하였다.: 심지어 유럽의 동맹국들까지도 지키는데 실패를 하였고, 러시아와의 신 냉전이 시작되었다.

 

9341**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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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전문 -----

 

Missile attack on “heart of terrorists” shows Iran’s might: IRGC deputy cmdr

 

Isfahan, Oct 5, IRNA – Iran’s missile attacks on the “heart of terrorists” was indicative of might, jihad, resistance and perseverance of the Iranian nation, Deputy Commander of the Islamic Revolution Guards Corps (IRGC) Brigadier-General Hossein Salami said on Friday.

 

▲ 이란이슬람혁명수비대 부사령관 호쎄인 쌀라미 장군은 미국은 수리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다.: 이라크는 통제 할 수 없다.: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의 장성강화(長成强化)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예멘전의 교착 상태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구하는데 실패했다.: 시온주의 정권의 안보가 나날이 약해지고 있다.: 그들은 이란 인민들의 저항을 깨뜨리는데 실패하였다.: 그들의 동맹국을 지킬 수 없었고, 그들 중 일부는 이란을 향해 우호적인 방향으로 기울기까지 하였다.: 심지어 유럽의 동맹국들까지도 지키는데 실패를 하였고, 러시아와의 신 냉전이 시작되었다고 이란군 지원병들에게 한 연설에서 말하였다.     © 이용섭 기자

 

General Salami, who was addressing a large gathering of Basij (volunteer) forces in central Iranian city of Isfahan, made the remarks in reference to recent IRGC missile attacks on terrorists’ strongholds in Syria. 

 

 

Iranian missiles are descending just near the American forces and “they are calling us desperately asking for operating at least a direct phone line between us and them so that each time Iran wants to target the terrorists, the Americans will be informed,” the general said. 

 

Today the US is on its path to decline and it has no time been so much weak and powerless, he added. 

 

He said that the Americans have spent as much as an amount equivalent to 100 years of Iran’s oil revenues [in the region], but they admit that they have gained nothing.

 

“They failed to get their wishes in Syria; Iraq is not in their control; they could not prevent the growth of Hezbollah in Lebanon; failed to save Saudi Arabia from the Yemeni stalemate; the security of the Zionist regime is becoming weaker day after another; they failed to break the resistance of the Iranian nation; couldn’t keep their allies, and some of them leaned towards Iran; even failed to keep the accompaniment of Europe, and their cold war with Russia has begun once again,” General Salami said. 

 

9341**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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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외신기자들의 코멘트를 딸까

[미디어 현장] 박지원 코리아타임스 기자

박지원 코리아타임스 기자 media@mediatoday.co.kr  2018년 10월 06일 토요일
 
3000여 명의 내외신 취재진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 모였다. 평양에서 열린 기념비적인 3차 남북정상회담을 누구보다 빨리 취재하기 위해서다. 지난 4월 일산 킨텍스에 마련된 1차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에 모인 4000여 명의 취재진 숫자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취재 열기는 식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도 국내 많은 매체가 외신 기자들을 붙들고 의견을 물었다. 외신 기자들의 반응을 기사로 쓰기 위해서다.

 

▲ 지난 9월1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에서 각국 취재진이 대형모니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지난 9월1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에서 각국 취재진이 대형모니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나도 동료 기자들에게 외신기자의 반응을 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외신기자들의 강한 반발에 번번이 인터뷰에 실패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유럽계 외신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당신도 상사가 시켜서 했겠지만 나는 외신의 반응을 취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고 의미 없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에 기여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당신의 인터뷰를 거절하겠다.” 그의 반응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실례였다면 미안하다”고 머쓱하게 자리를 떠났지만, 순간 이들의 반응에 대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침 9시가 되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기자들 책상 앞쪽에 온통 파랗게 칠해놓은 단상에 올라 대표단이 북한에서 보낼 하루 일정을 브리핑했다. 이는 미리 고지되지 않아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에 따라 기사의 주제가 결정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윤 수석은 브리핑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손을 든 기자를 지목하고 바로 매체명과 기자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아는 청와대 기자들’의 정해진 질문만 받는다는 불만도 나왔다. 종종 끈질기게 손을 든 기자의 질문도 받았지만 수석은 대체로 ‘현지 상황에 따라서 스케줄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내가 확인해 줄 만한 정보는 없다’ 내지는 ‘미국 측과도 긴밀하게 협의를 해오고 있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추가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그 자리에서 문제제기한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 지난 9월18일 오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마련된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정상회담 첫날 일정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지난 9월18일 오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마련된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정상회담 첫날 일정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국내 언론이 서구권의 반응을 취재해왔던 구태의연한 관성 역시 외신기자들의 강한 반발과 맞닿아 있었다. 물론 외국인들의 반응을 마침 옆에 있는 외신기자를 통해 간편하게 취재해 보도하려고 한 점이 있겠지만 애초에 왜 다른 나라 사람들, 특히 ‘파란 눈의 외국인’들의 반응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기사가 되는가는 새삼스러운 의문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최초의 역사를 굳이 외부의 시선 속에서 기록할 필요도 없었다.
 

국내 언론사인 영자신문도 영어로 기사를 쓰는 점에선 외신과 같을지 모르나 출입처에 나가고 국내 이슈를 더 긴밀하게 보도한다는 점에서는 외신과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자국의 시선이 크게 반영되는 외신기사들보다 한국의 논리와 관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보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매체다. 일련의 외신기자 인터뷰 거절 과정을 겪으며 한반도 문제를 보도함에 있어 영자신문 기자로서의, 혹은 나의 ‘시선’이 부재했음을 통감했다.

 

▲ 박지원 코리아타임스 기자
▲ 박지원 코리아타임스 기자
DDP에서 같이 취재한 동료들의 볼멘소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3차는 프레스센터가 작아지고 외신기자의 수도 반으로 줄어든 것을 보면 사람들이 남북정상회담에 관심이 없어졌다느니, 겨울에 서울에서 이 취재를 또 해야 한다느니, 너무 일이 많아서 힘들다느니 말이다.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남북정상회담이 ‘일상적’이 돼간다는 방증이었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내가 시선을 두고 써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입만 쳐다보는 기사만을 생산하는 것이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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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4758#csidxf1c4cb7d18f4957bab97778296cb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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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의 진짜 의미는

[인터뷰] '국가폭력과 유해 발굴의 사회문화사' 펴낸 노용석 교수

18.10.06 20:06l최종 업데이트 18.10.06 20:07l

 

지난 노무현정부 시절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장동료' 노용석 교수가 최근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출간했다. 그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을 연구했고 유해 발굴 사업을 주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 전후기 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개 과정, 피학살자들의 유해 발굴 과정, 그리고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책표지
▲  책표지
ⓒ 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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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장에서 얻게 된 풍부한 사례와 자료에 이론을 더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순으로 유해발굴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유해발굴의 의미를 단순히 가족의 시신을 발견하는 '좁은 단위'에서 국가와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이야기하는 '넓은 단위'로 확장하여 해석하고 있다.

지난 9월 8일부터 10월 1일까지 저자와 이 책과 관련하여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유해 발굴, 국가기구가 아닌 민간단체에 의해 실시
 

 노용석 교수
▲  노용석 교수
ⓒ 노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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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50년 7월경 대전지역 민간인 학살의 진실은 국가 공권력의 명백한 잘못이었음이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 입증되었다. 하지만 지난 2015년의 학살피해자들의 유해발굴은 정작 국가기구가 아닌 민간단체에 의해 실시되었다. 왜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유해발굴이 국가기구가 아닌 민간단체에 의해 실시되었다고 보나?
"국가가 가해자임에도 민간단체에 의해 발굴이 실시된 것은 외형적으로 볼 때 법적, 정치적으로 과거사 청산에 대한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의례적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 국가는 민간인 피학살자와 같은 죽음에 대해 국가의 의무를 수행할 근본적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발굴이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국가는 많은 자본을 투여해 전사자 유해 발굴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것은 국가정체성을 강화하고 국가위주의 역사의식을 고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인 피학살자의 유해 발굴은 위와 같은 취지로 볼 때 국가에게는 커다란 반사이익이 없는 행위이다.

그러나 방치된 죽은 자의 유해를 발굴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적군이라 할지라도 전사한 이들의 유해를 발굴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의 문화적 조건이며 의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한국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과정으로서의 유해 발굴이 아니라 사회의 의례를 완결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유해 발굴이 필요한 것이다."

- 많은 시간 동안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들은 사회의 밝은 부분으로 나오지 못했다. 왜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학살 피해자들이 어둠속에서 살아야 했다고 보는가?
"민주화과정 이후에도 본질적으로 유해 발굴이 필요한 부분은 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민간인 피학살자의 죽음은 개인이나 가족 혹은 공동체에게는 크나큰 아픔일 수 있지만, 국가에게 이 죽음으로 인해 얻어지는 효과는 미미할 뿐이었다. 민주화된 정권 역시 피학살자에 대한 유해 발굴이 큰 범주에서 볼 때 새로운 집단 정체성을 창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민주화와 반민주화의 문제가 아니라 과도하게 국가정체성만을 강화하려는 것이 문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인식은 바뀌어야 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큰 범주에서 '민주화' '반민주화'라는 카테고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단정체성이 자리 잡는 순간에 '개인의 기억과 위령'이 얼마나 보장되는가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그 죽음들이 국가에 의해 희생된 것이라면, 당연히 국가는 집단성 이외에 개별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의례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또한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은 개별적 위령의 보장을 떠나 사회적으로 기념되어, 다시는 그러한 악행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 기념 구조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개인의 기억과 위령', 그리고 '사회적 의례'를 형성하기 위한 기반이 부족하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죽음들이 아직까지 정착할 수 없는 것이다."

유해 발굴, 악행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기제로서의 역할
 
 노용석 교수
▲  노용석 교수
ⓒ 노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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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민간인 학살관련 유해발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해발굴은 우리 사회의 역사와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또한 어떠한 문화적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나?
"유해발굴의 상징성은 단순히 인간의 뼈를 지상으로 수습한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실 유해발굴은 고고학적이고 법의인류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행위로 인해 얻어지는 것은 잊힌 소수자의 기억과 진실을 사회적으로 공유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유해발굴은 의례적으로 볼 때 비정상적인 죽음을 당하여 누구도 모르는 곳에 암매장되어있던 이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의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결국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발굴은 비정상적 죽음을 당하여 암매장되어 있던 이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의례적 행위이며, 또한 이들의 기억과 존재를 사회적으로 승화시켜, 다시는 이러한 악행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기제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유해 발굴 업무를 담당하면서 다양한 지역의 유해 발굴을 주도하였는데 당시 민간인학살 희생자들의 유해발굴을 현장에서 직접 실시하면서 느낀 점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유해발굴을 실시하면서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현재까지 한국에서 유해발굴을 실시하는데 있어서 시스템적인 측면이 많이 보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발굴을 실시하는 조직 및 체계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지만, 유해발굴을 바라보는 입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은 유해를 발굴하여 진실을 규명하고 싶어 하지만, 발굴된 유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기념하고 위령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지식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단지 유해발굴의 역사가 짧아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기념과 위령에 대한 사회적 합의 및 체계가 원숙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은 전국적인 규모로 자행되었다. 그러나 1960년 4.19혁명 이후 특별히 경상남북도를 중심으로만 민간인 학살 유족회 결성과 진상규명 요청 운동이 진행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우선 경상남북도의 많은 지역은 한국전쟁 중 인민군이 들어오지 않은 지역이었으며, 설사 인민군이 들어왔다 할지라도 오랜 시간 동안 인민군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이것은 한국전쟁 초반 낙동강을 중심으로 약 3개월간의 지난한 교전이 지속되었으며, 이후 1950년 9월 이후 전황이 빠르게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의 많은 지역은 이승만 정부가 전쟁초기 빠르게 후퇴를 하는 바람에 제법 긴 '인공' 시기를 겪었으며,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민간인들이 북한군에 동조하거나 '부역'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역혐의'는 1950년 9월 이후 다시 남한정부가 인민군 점령지역을 재수복했을 때 상당히 많은 보복과 학살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이러한 유형의 사건을 '부역혐의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라고 말한다.

부역혐의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다른 유형의 학살과 비교해 볼 때 개인적 원한과 보복이 짙게 깔려 있으며, 상당히 잔인한 형태의 린치가 가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해당 사회의 전반적 경향은 공포와 침묵으로 바뀌게 되고, 많은 경우 누구도 학살과 관련한 담론을 거론하지 않게 된다.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의 경우 1950년 9월 재수복 이후 상당수의 부역혐의자에 대한 보복이 행해졌고, 이로 인해 해당 지역의 피학살자 유족 혹은 주민들은 4.19혁명이 발생했다 할지라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어떤 규탄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향후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 노용석 교수는 2005년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 사업을 총괄하였다. 현재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 <폭력과 소통>(공저), <트랜스내셔널 노동이주와 한국>(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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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쟁물자를 취급했나? 난 나무를 심었을 뿐이다”

 남북경협 피해 불구 ‘가짜서류’ 오명 억울한 성재경 제일유통 대표
고성=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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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6  13: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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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98년부터 북녘에 나무심기 사업을 해 온 심재경 제일유통 대표. 최근 정부의 남북경협기업에 대한 피해지원 과정에서 지원은 커녕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쓰고 울분을 삭이고 있다. 성 대표가 북에 보내기 위해 키우고 있는 우산고로쇠 나무를 어루만지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대진항에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낮밤을 가리지 않고 나무심기와 정치망 어장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성재경(74)이라는 농사꾼이 살고 있다.

그는 한때 전기, 건설자재상을 업으로 삼기도 했지만 나무 심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32년 전에 이미 경남 사천 2만평 임야에 편백림을 조성했고, 산청군 지리산에도 1만2,000평에 나무를 심었다.

‘나무쟁이’를 자처하는 성재경씨의 운명은 1996년 황해남도 옹진이 고향인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고향 땅에 나무 심는 일을 당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북으로 이어졌다.

1998년 처음엔 중국 훈춘에서 북으로 1,450만주(그중 150만주는 백두산과 나진지역)의 묘목을 넘겼고, 황해북도 개풍군 묘목장에서 1,450만주의 어린 나무를 키웠다. 평양의 내버려진 땅 11군데 41헥타르를 수습해 5만5,000주의 과수를 심었다.

그는 ‘통일부 승인번호 제2005-45호 남북경제협력사업자’인 제일유통을 세워 당시 엔지오(NGO)들이 하던 무상지원 방식이 아니라 철저히 남북경협사업 방식으로 나무심기를 시작했다.

북쪽이 토지와 인력을 대고 성재경 대표는 묘목과 비료, 농약 등 초기투자와 관리비, 기술을 전적으로 책임진 후 목재로 팔 때 수익을 나누는 독창적인 방식이었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대규모의 장기적인 투자였지만 ‘나무가 기본’이라는 믿음이 강했던 그는 ‘사람에 앞서 나무부터 통일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에 매진했다.

소 목장과 버섯농장으로 확대되던 경협사업은 2005년 북 강원도 고성에 정치망 어장을 설치하는 사업에 합의함으로써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관광과 연이어 터진 2010년 5.24 대북제재 조치는 경협사업으로 향했던 그의 운명에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입혔다.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사업의 앞날이 뿌옇게 흐려지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은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자라는 나무가 있었고 매일 나가는 동해 고성 앞바다 정치망에서 걷어 올리는 고등어가 있어 견딜만했다.

올해 들어 남북 사이에 조성된 평화분위기와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묵혀 두었던 북측과의 계약서를 들여다보는 날이 많아졌다.

지난달 초 정부가 5.24조치와 금강산관광 중단 조치로 인해 피해를 당한 남북경협기업에 1,200여억 원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재기의 의지를 가다듬었다. 

앞서 영국으로 건너 간 막내딸을 불러들여 묵은 서류도 다시 정리하고 자신은 직접 중국 단둥으로 건너가 북측에 있는 나무 등 자산 확인서도 받아서 제출한 터였기 때문에 다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국가의 책임성 차원의 지원’이라는 정부의 발표도 있었기 때문에 여러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해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협조하자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피해 규모를 줄이고 줄여서 서류를 제출했는데 최종 지원액을 확정하는 심사평가위원회로부터 제출한 서류가 가짜라는 날 벼락같은 통보를 받았다.

피해 입증 서류를 발급해 줄 수 있는 단둥 민경련 대표는 과거 개풍묘목장 사업 담당자였던 만큼 사업경과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류 보완요청을 했을 때에도 다른 기업들에는 해주지 않던 민경련 명의의 확인서(2018년 3월 23일자)까지 발급해 주었고, 이걸 심사평가위원회에 제출했던 터였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2005년 북측 강원도 고성 앞 바다에 정치망을 설치하기로 했다가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지금까지 표류하고 있는 어장사업과 평양과수농장, 평양 중화군 소 목장 등 피해 청구조차 하지 않은 사업도 많았다.

사실 피해지원을 받아봐야 실제 피해를 복구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지만 최소한 자식들에게만큼은 아버지로서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진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오히려 정부 돈 받아내려고 가짜 서류나 들이미는 이상한 늙은이 취급을 당한 것이 두고두고 분하고 억울했다.

이제 곧 북에 가서 마무리하지 못한 사업을 재개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러다간 모든 게 무너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아득했다.

지난 2일 오후 철조망 사이로 하늘과 동해 바다가 보이는 강원도 고성 대진항에서 만난 성재경 대표는 정치망 어장 사업하는 이곳 선원들과 먹고 자고 하면서 새벽 2시면 일어나 배를 타는 ‘금수’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정말 억울한 것은 제가 전쟁 물자를 취급했습니까? 저는 나무심기, 소 목장, 과수농장, 고기잡이(정치망 어업), 묘목장사를 했습니다”라고 꾹꾹 담아두었던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또 “그동안 저는 정부에서 돈 한 푼 지원받지 않고 저와 가족의 자금으로 사업을 했습니다. 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남과 북 당국에 호소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가급적 성 대표의 입말을 그대로 살렸다.

나는 나무 심는 사람...아버지 당부가 북으로 이끌어

   
▲ 몸은 굽었지만 강건한 정신은 형형한 눈빛과 표정으로 여전히 표표하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통일뉴스 : 북쪽과 경협사업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 성재경 : 1997년에 중국에 들어가서 1998년도부터 시작했죠.

□ 1998년부터 처음 시작한 일이 나무심기 사업인가.
■ 나무 심는 것부터 했는데. 처음에는 북한에 신경도 안 썼어요. 우연치 않게 연길 연변대학과 연결이 되어서 3년 동안 거기에 가지는 않고 장학금만 조금씩 주었죠. 그러는데 우리 얘가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이왕이면 아는데 가보자고 해서 중국에 가게 됐어요. 딸 둘이 연변대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나는 나무 심는 사람이니까 거기서 나무를 심었어요. 98년부터 나무 심을 땅을 구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에 이렇게 까지 빠져들 생각은 없었어요. 처음엔 북쪽을 목적으로 한 일이 아니었어요."

□ 그때는 진주에 계셨던 때인가.
■ 그렇죠. 그걸 검증 많이 받았어요. 정보기관에서 따라 붙어서는 전기사업을 하던 당신이 어째서 나무 심는 일을 하겠다고 북쪽에 가느냐며 뒤를 캐기 시작했어요. 그게 말이 안 되지 않느냐는 거였죠. 그땐 부산에서 두 사람이 왔었어요. 나도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어서 답답하더라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나무 기르던 곳(경남 사천, 지리산 산청)이 있어서 거길 알려주었더니 그 사람들이 양복에 구두 차림으로 지리산 속을 다 타고 다녀보고 나서는 '당신 나무 심는 사람 맞다'고 인정하더라고요. 

나무는 거짓말을 못하지 않아요. TV나 냉장고처럼 옮겨 놓을 수도 없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야 크니까. 그러고 나서는 북쪽에 보낼 목적으로 중국에 묘목장을 했는데 정보기관에서 거기까지 와서도 확인을 하더라고. 거꾸로 북쪽에서도 똑같은 의구심을 가지고 '네가 나무 심으러 오는 목적이 무엇이냐'며 직접 오지는 않고 전화로 다 확인을 했어요.

□ 중국 농장은 어디 있었나.
■ 주로 훈춘이죠. (북쪽과)가까우니까.

□ 북과의 사업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 96년에 돌아가신 아버님 고향이 황해남도 옹진군입니다. 내가 거기서 국민학교 1학년 때 나와서는 연평도로 피난 와서 교육을 받았어요.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에 나무 심는 일을 당부하셨어요. 처음에는 그다지 심각하게 듣지 않았었는데... 

중국에 나무를 심다보니까 그때는 거기 사람들도 나를 좀 이상하게 생각했었어요. 무슨 공장을 하던지, 뭘 갖다 내다 팔던지 하는 것도 아니고 나무를 심겠다고 하니 이해가 안 되었던 모양이라. 한국 사람이 내가 처음인 것 같더라고. 

□ 쉽게 이해가 안 되는데, 중국에 땅을 구해서 나무를 심으면 어떤 이익이 남나.
■ 여기서 나무를 심으려면 땅을 사야 되는데, 땅값이 비싸지 않아요. 그런데 거기는 땅을 공짜로 주지 않아요. 그때 중국 훈춘 쪽에 계약한 땅이 김포공항(약 300만평) 10개 정도 면적이었어요. 원대한 꿈을 꾸고 들어갔죠. 

전부 임업만 한 것은 아니고 소, 양도 키우고 해 나가면서 임업도 한 부분으로 진행했는데, 실제로 중국 사람들하고는 사업이 잘 안되더라고. 

그래서 그 너른 땅에 철조망을 얼추 다 쳐주었잖아요. 내가 친 철조망만 1,000~2,000 헥타르 정도 됐어요.

□ 원래 계획은 그곳에 묘목심어서 크고 나면 중국에 팔려고 했던 것인가.
■ 그렇죠. 그런데 묘목심어서 판다고 하니까 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해요. 그때는 그 사람들이 나무를 잘 몰랐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나무가 쌀보다 수확이 낫다는 걸 알고는 '아 여기에 도리가 있다'고 하면서 나를 따라서 나무를 많이 심었죠.

□ 소나 양 키우는 일도 직접 하셨나.
■ 내가 직접 했죠. 그런데 한국에도 사업체가 있으니까 자주 못가지 않아요. 이 사람들이 자꾸 잡아먹고는 병들어 죽었다고 하는데... 

북쪽에도 소 농장이 있지만 거기도 똑 같은 원리이더구만요. 안되겠더구만. 그렇게 투자는 실컷 하고 손해는 많이 봤어요.

□ 그때 투자해서 얼마나 손해를 보셨나.
■ 손해 많이 봤죠. 중국과 북한을 140번을 갔습디다. 얼마 전까지 단둥 민경련 대표부하고 북쪽의 묘목장 다닌데다가 훈춘 농장하고 베이징도 다녔죠. 중국 쪽에는 토지를 30년 쓸 수 있도록 계약이 되어 있었으니까. 요즘은 중국엔 안다닙니다.

그때 연길에서 교회에 다닐 때 보면 예배 마칠 때까지 북에서 온 분들이 문 앞에 있곤 했었는데 당시에는 예사로 생각했어요. 뭐 고향이 거기니까 다른 사람보다는 많이 생각을 했었지만 나무를 심으러 북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중국에서 나무를 심다보니까 북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내가 북쪽에 나무를 심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무가 기본이라요. 뭐이든지. 내가 지금 고기 잡고 있지만 북쪽에도 산에 나무를 심어야 고기가 많습니다. 숲이 우거져야 거기서 뭐가 나오지, 맨 흙탕물만 나오면 그게 뭐이 되나요. 아무 영양분이 안 내려오는데. 그래서 아하! 내가 할 수 있는 게 나무구나 하는 걸 빨리 캐치했죠. 나무를 해야겠는데 우리 쪽에서 나무하시는 분들은 그냥 주더만요. 무료로. 그래서 나는 그때 통일부에 들어가서 경협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협력과와 의논했습니다.

나무를 경협으로 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말을 안 할려고 하데요. 무슨 사업 같은 게 경협이지, 나무가 경협이 되겠냐고 그래요. 

나무가 기본, 나무 심기는 지원 아니라 경협으로 해야

   
▲ 성재경 제일유통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대부분 나무심기 사업은 지원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 나무를 지원으로 하게 되면 계속 죽어나는 것으로 끝이 나지 않습니까. 나무는 주었다고 해서 끝이 나는 게 아니고 한 5년 동안 돌봐줘야 돼요. 그런데 그냥 주고 끝나버리니까 여기서 준 나무가 근 90~95% 정도 죽었습니다. 다 실패작이에요.

(단호한 어조로)그냥 주는 것은 안 되죠. 내 자식같이 돌봐야 되는데. 그래야 나무가 한 대 서는 거요. 그것도 내가 직접 가야 돼요. 그런데 묘목장에서 심어가지고 북쪽으로 넘기니까 경비가 무지무지하게 들어요. 

2000년도에 그때는 내가 중국에서 북쪽으로 1,450만주 정도를 넘겼는데, 북쪽에선 나무가 죽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300만주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1,100만주(과수 10만주는 별도)만 인정해 줍디다. 그래서 (정부 피해지원 실태조사에서)타협을 했죠. 나무를 한 개인이 1,000만주 넘긴다는 건 간단치가 않거든요. 내가 알기로는 나처럼 심은 사람이 아직은 없어요.

성 대표는 나중에 산림청 관계로부터 나무심기를 경협 모델로 진행한데 대해서 평가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발상이 좋았다고 하더라구요. NGO는 나무만 주면 끝이 나는데, 나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 계속 왔다 갔다 해야 되잖아요. 매번 가서 잘못되면 이야기를 하고 다시 시정하고 또 오고 이래 해야 되잖아요. 무슨 벌거지가 있으면 약가지고 가서 싹 쳐야 되고. 내 나무인데. 그렇지 않아요. 그게 왜 죽어요. 그런데 그걸 아는 사람도 그렇게 안했어요. 그러니까 고생은 많지.

□ 그럼 나무는 돈을 받고 넘긴 건가요.
■ 아니죠. 나무를 키워서 목재로 팔 때 몇 대 몇으로 나눈다고 되어 있죠.

정부의 피해지원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성 대표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빠르고 높은 말투로 답변이 치고 들어왔으며 때로 공허한 듯 허공을 응시하기도 했다.

□ 피해 기업중 유일하게 북측 민경련에서 확인서를 써주었다는데.
■ 그런 게 아니고 거짓말이라고 그러죠. 북쪽에서 1,100만주 심었다고 보내준 서류도 전부 가짜라는 거예요.

□ 통일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건가.
■ 중국 서류는 인정하는데, (옛날부터 원산지증명서 같은 걸 가짜로 많이 발행했기 때문에)북한에서 내려온 서류는 전부 다 가짜라고 그럽디다. 나보고.

□ 결론적으로 피해지원금으로 나온 금액 중에 한 푼도 못 받은 건가.
■ 네. 가짜라고 하는데 뭐 방법이 있나요.

□ 서류를 제출은 하셨네요.
■ 제출했죠. 그런데 가짜라고 그러잖아요. 기업 중에 단둥 민경련에서 확인 서류를 떼 준 곳은 피해지원 대상기업 중에 나 하나 밖에 없거든요. 경협은 민경련 아닙니까. 민경련에서 인정한다고 (확인 도장) 찍은 건 나 하나 밖에는 없어요.

□ 민경련 확인서류도 제출하셨나요.
■ 냈죠. 다른 사람들은 그것 하나도 못 받아왔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받았느냐 하면 예전 개풍묘목장을 담당하던 사람(계봉길)이 출세를 해서 단둥 민경련 대표가 되어 있더라구요. 내용을 훤히 다 아니까 확인서를 써 준거에요.

피해금액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을 하려고 하자, 울컥 했는지 "아휴 뭐 피해금액이고 뭐고 전부 다 가짜라고 하늗데"하고 하면서 말을 끊는다. 울화가 치미는 모양이다.

■ 내가 또 다른 생각을 해 봤어요. 기자님이 오신다길래 무슨 생각을 했느냐면 내가 지금 소 목장도 있고, 평양에 과수농장도 있고, 또 1,100만주 나무 심은 것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5.24조치로) 쫓겨나올 때 (묘목장에) 묘목이 1,450만주 있었어요. 전부 2,550만주가 되죠. 통일부에 보고한 것은 1,100만주에요. 10년 만에 단둥에 가서 계봉길 씨를 만나서 쫓겨나올 때 1,450만주가 있었던 것은 당신이 담당자이니까 잘 알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대로 인정을 해 주더라고요.

민경련 확인서 제출했는데 ‘가짜’라니...

□ 제일유통의 피해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 1,700억 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더 되지요. 그런데 처음에는 70억 원까지 인정한다고 하더니 맨 마지막에는 35억 원까지만 지원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청구 안했다 아이요. 나무 값이 한 10~20년 크니까 지금 보면 1,100만주라고 해도 한해에 크는 게 60억~70억씩 크더라고. 내가 자는 동안에도 나무는 클 것 아니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처음에 들어간 묘목 값만 준다고 하기에 그것도 100억이 넘지만 30 몇 억만 요구를 했거든요. 그것도 못주겠다고 하는 것이고.

□ 그 이전에 피해 확인 서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 그렇죠. 내가 서류를 보완했죠.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들과 계약하고 한 것이 다 있잖아요. 그런 서류가 뒷받침이 되고 하니까 (통일부에서) 말 못하다가 심사평가위원회에 나와 소명하라고 하더니 (피해지원을)해 주겠다고 했어요. 그 뒤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피해지원 발표가 나기 며칠 전에 전화가 와서는 못준다고 하더라구요.

   
▲ 북측 민경련 단둥대표부가 지난 3월 성재경 대표에게 발급한 북측 투자자산에 대한 확인서. [사진제공-성재경 대표]

□ 못준다는 이유는 뭐라고 설명하나.
■ 가짜라 그러는 거죠.

□ 어필을 하셨겠는데.
■ (흥분해서) 강하게 어필을 하나마나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요. 처음엔 1,700여억 원을 피해금액으로 이야기했다가 이건 뭐 내가 봐도 그렇더라고. 그래서 묘목 값만 말하라고 거기서 그러길래 최소한 경비만 쳐서 백 몇 십억으로 고쳐 써넣었는데 100억 원은 인정을 못한다고 하고 35억만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내가 1천만 주를 심었을 때 묘목 값 포함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를 쳐주는지 알아봤더니 330억 준다고 그러더라. 그 뒤로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이야긴 합니다.

□ 묘목장에 백합나무를 심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 다른 사람들은 정부 지원금 같은 걸 받아서 일을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질 못하니까 북쪽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신문사 하나하고 방송사 하나를 데리고 와서 묘목장을 촬영을 해서 이걸 퍼뜨리라고 하더라고. 나라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좀 알게끔. 그래서 내가 교회 다니니까 국민일보하고 방송국은 CTS를 데리고 가서 5.24조치 전에 촬영하기도 했어요. 그때 나온 기사일거요.

□ 지금까지 말씀을 정리하면, 훈춘 묘목장에서 키운 묘목 1,100만주를 북측에 넘겼고, 이건 북에서는 인정하지만 통일부는 가짜라고 하는 상황이다. 또 개풍묘목장 등에도 1,450만주가 있다는 것이다. 
■ 개풍쪽 1,450만주는 제출할 증빙서류가 없어서 넣지도 못했다 아이요. 그런데 1,100만주는 북쪽 민경련에서도 확인을 해 준 일입니다. 그것도 사실은 나는 안받았을텐데, 통일부에서 자꾸 나무는 심어놓고 왜 북쪽에서 인수증을 안받아오느냐고 하길래 '그러면 한장 보내 달라'고 해서 평양에서 통일부로 팩스를 부쳤어요. 그래서 통일부에서 전화가 왔더라고. 북측에서 나무 심었다는 인수증 왔으니까 찾아가라고. 그것 때문에 인정을 받은 거요. 

□ 인수증 날짜는 언제인가
■ 거기 다 적혀 있어요. 

민경련 개선총회사는 2009년 11월 24일자 제일유통에 보내는 ‘묘목반입정형’ 팩스에서 2000년 4월부터 2009년 4월까지 제일유통이 이깔나무 1,054만 그루, 과일나무 10만 그루를 보냈다고 확인했다. 심사평가위원회에서 북측 민경련과 우리 통일부가 직접 확인한 이 서류를 보완하라고 해서 지난 3월 단둥 민경련에 다시 의뢰해 재확인서를 발부받았다. 재 확인서에는 2009년 11월 24일 팩스와 함께 2004년 묘목협력 종자 파종실적과 2007년 과수협력 등을 추가로 확인했다.

□ 묘목은 나무 심기를 해서 전량 보낸 것이고 이걸 목재로 판매할 때 남는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계약이 되어 있는데, 이런 경협방식은 처음인 거죠.
■ 북쪽은 토지와 인력을 대고 나는 묘목과 비료, 농약 등 관리비와 기술을 대도록 되어 있는데, 누구도 나무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줄을 몰랐어요. 묘목을 사다가 주면 끝나는 식이었죠. 내가 왜 거저 가져다주는 그런 방식을 더 무섭게 생각했느냐 하면 북쪽 사람들보고도 그랬어요. '(NGO들에게)나무를 올리지 말라고 그러시오. 나무를 올리면 안 됩니다. 우리(북)쪽에 나무가 있으니 이걸 사다 쓰시오' 라고 제안을 했어요. 

(NGO들이)한 주에 5,000원씩 사다 주는 걸 우리는 500원에 주어도 경쟁력이 있단 말입니다. 인건비가 싸니까요.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이야길 해도 내 나무는 아무도 안사가요. 차에 실어서 북쪽까지 옮겨 오는 것 보다 거기서(북쪽 묘목장) 바로 옮겨 심으면 살기도 좋지 않아요. 그런데도 한대도 안 팔아주는거요.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한동안 북쪽에서 묘목농사가 절단이 났습니다. 벼고 배추고 콩이고 일절 농산물은 팍 내려앉은 적이 있어요. 왜 그랬냐면 우리나라(남쪽) 묘목이 넘어 갔잖아요, 이때 진딧물이 같이 갔어요. 그런데 그쪽은 농약이 없다 아이요, 여기는 아주 고독성 농약을 칩니다. 이게 살아서 북쪽으로 갔지 않아요. 그런 농약이 없으니까 이 진딧물이 어지간히 농약을 쳐도 죽지도 않는 거요. 요즘엔 괜찮을 거예요. 그런데 그거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그때 북쪽 사람들이 그랬어요. 어휴 어째서 세상천지가 진딧물 천지가 되었냐고.

농약이 없으니까 진딧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번졌어요, 개성공단 세관장이 나한테 수동식 농약분무기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어요,  남쪽에서 심어준 나무에 전부 '벌거지'가 붙었다 이거요. 개성공단은 더 심했죠. 거긴 계속 나무가 들어갔으니까.

□ 지금도 같은 상황인가요.
■ 아니. 이젠 괜찮죠. 이게 이제 몇 대가 지나면 생전 농약을 맞아보지 않은 내성이 없는 후대가 나온다고. 원래 북쪽 진딧물 같은 순한 놈이 된다 이 말이여. 인자 그쪽 사람들이 걱정 안하겠죠. 요새 북에 갔다 온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북쪽에서 농약 보내달라는 이야기는 안하거든요. 그동안 나무를 하나도 안주었잖아요. 계속 줬으면 계속 망하는 거요. 그게. 우리 식량 원조 아무것도 안줘도 괜찮아요. 그것만 막았어도 자체적으로 해서 어느 정도 먹고 살건대, 사실 총칼보다 무서운 걸 보낸 거에요.

□ 뭐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 아니, 사람이 300만 명 굶어죽었니 어떠니 하지만 우리가 진딧물 같은 것 묻어 들어간 나무 보내서 농사 망친 것도 말해야 하지 않나요. 

□ 북쪽도 경험이 있으니까 검역 같은 걸 신경쓰지 않을까요.
■ 북쪽은 개인 소유도 아니고 우리 쪽에서는 주지 못해 안달인데요 뭘.

□ 현지 토지에 어린 묘목을 가져다가 잘 정착하도록 관리하는 방식이 더 낫다는 것이죠.
■ 무상지원 방식으로 나무를 보내는 건, 주고 나서는 관계 안하는 거요. 그 나무가 죽어도 진딧물은 퍼진다 이거요. 그러니까요 얼마나 이게 무지한 것이, 우리는 북한을 돕자고 하는 일인데 차라리 아무 것도 안주고 나무만 보냈어도 그 사람들 먹고 살았어요. 북쪽도 아직 그걸 몰라요. 알면 큰일 나지. 

‘사람 통일은 늦게 해도 나무부터 통일시키자’ 

   
▲ 2008년 개풍묘목장을 방문해 나무를 살펴보는 성재경 제일유통 대표. [캡쳐사진-북녘땅 나무심기-4000만 그루의 사랑 CTS 다큐멘터리]

□ 다시 백합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난 나무쟁이잖아요. 거기(북쪽) 가보니까 멸종된 나무가 많아요. 고난의 행군할 때 땔나무로 다 써서 그런 것 같애요. 그래서 백합나무 그거, 처음에 1만5,000주를 가져갔어요. 우리 농장에 심었더니 북에서 완전히 난리가 났어요. 거기도 나무를 사랑하는 식물학자들이 있더라고. 나무가 없어서 이렇게 망했다는 걸 아는 사람이 거기도 있어요.

북쪽 전역에 나눠 주려고 보니까 한 곳에 3그루 밖에 못주겠어.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광주로 내려가 백합나무 증식에 성공한 분한테 씨앗을 몇 자루 사서 가을에 갖다 주었어요. 

그 지배인이 나무를 살리려는 의욕이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지배인한테 '백합나무는 추운 곳에 가면 다 죽는다고 하는데 당신이 살려봐라'고 했다. 그랬는데 이 사람이 그걸 살렸더라고. 우리(남) 쪽에서는 그걸 비닐하우스 씌워서 키워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가보니까 파란 싹이 쫙 살아있는거요. 

나는 '사람통일은 늦게 해도 나무부터 통일시키자'는 걸 내걸고 나무심기를 했어요. 그래서 멸종된 것 위주로 가져가려고 하여튼 악을 썼어요. 나무통일을 누군가는 해야 되는데, 우리 제일유통의 슬로건이 '나무부터 통일하자'는 거였어요. 멸종이 되서 없으니까. 그리고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산소도 발생시키고 하는 나무의 이점이라는 건 다 알잖아요.

그래서 그 지배인한테 물었어요. 비닐하우스도 없는 그 추운데서 당신은 이걸 어떻게 살렸냐고 물었더니 '이걸 심어놓고 위에다 볏짚을 싹 깔았다'고 그래요. 우리는 비닐하우스에 해도 다 죽이는데, 그 사람이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하겠어요. 그 사람이 그렇게 다 살렸더라구요. 

그 뒤엔 간격이 너무 좁아서 이렇게 해서는 나무가 제 구실을 못한다, 가지도 뻗고 해야지 작대기만 올라가면 묘목 구실을 못하니 적어도 30~50cm 이상은 떨어 뜨려야 되니까 다시 옮겨 심어야 한다는 정도로 말했지요.

백합나무 잎은 하나가 굉장히 커요. 학자들 이야기로는 몇 십 미터씩 크니까 그 나무는 한마디로 참 국보죠. 국보.

□ 나무를 잘 아시니까 즐거운 일도 많이 있었을 것 같다.
■ 북한 가기 10년 전부터 길러놓은 나무가 있었어요. 내가 농사짓는 걸 좋아해요. 나무 심는 걸.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풀 베고 또 밥먹고 일찍 또 가게 문을 열어야 되지 않아요. 그러면 옷에 땀이 절어서 짜면 물이 나올 정도라 아이요. 그런 식으로 진주 사천에 편백을 심었어요. 지금은 다 편백 좋다고 하지만 그때는 그게 좋다고 말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그게 없었으면 나중에 북쪽하고 나무 심기한다고 했을 때 우리 쪽 정보부에 낭패당할 뻔 했어요.

□ 그게 나무심기의 첫 인연인가요.
■ 철쭉의 한 종류인 연산홍이 처음이었어요. 많이는 아니어도 묘목심어서 제법 팔았어요. 논농사, 밭농사는 남한테 내주고, 그런 거는 재미가 없는 거요. 지금 내 나이가 74살이니까 나무 심은 지도 한 35년 됐네요.

□ 공부를 따로 하셨나요.
■ 공부는 따로 안했고 그저 나무 심는 게 재미가 있어서 했어요. 내가 공부를 못했으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진주 임업시험장에 가서 물어보죠. 그럼 잘 가르쳐 주었어요.

그때 인연이 된 금 박사가 울릉도에서 찾아낸 '우산고로쇠'를 지금 강원도에서는 처음으로 여기에 4만평 땅을 사가지고, 그 나무를 동해시로 실어다가 6천주인가 8천주를 심었다니까요. 이건 북쪽에 없으니까 거기다 심을라고. 그럼 내가 또 처음 가는 것 아니요. '나무부터 통일'인거지. 그렇지요. 그게 벌써 9~10년이 되었다 아이요. 

나는 그거 금방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자꾸 못가게 하니까니...저렇게 나무가 크면 안 되거든. 옮기기 힘들어서 안돼요. 아이고 참.

고로쇠 수액에 사포닌 성분이 들어있고 인삼향이 나는 이 나무에 대해서 금 박사는 '누가 빨리 이 나무를 심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빈부의 차이가 생긴다'고 하더라고. 북쪽에 가서도 우리처럼 고로쇠나무가 많이 있는 걸 알게 됐는데 빼먹을 줄 모릅디다. 그래서 내가 고로쇠나무 빼먹는 방법을 다 알려주었어요.

묘향산에도 가보니까 고로쇠나무가 많더라고. 내가 고로쇠 나무를 가져가서 말통에 담긴 고로쇠 수액을 먼저 먹어보고는 20리터 한말에 5만원씩 팔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이 고로쇠 수액만 빼서 팔면 돈이 이렇게 나온다, 또 건강해진다고 알려주기도 했어요. 지금은 더 비싸죠.

한참 신나게 이야기하던 성 대표는 "나무에 미치면 이렇게 되는 거라요. 돈도 벌도 못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집안 식구들은 얼마나 울었겠나요"라고 허공을 쳐다본다.

□ 개풍묘목장도 하셨는데 옹진 고향에도 가 보셨나
■ 못갔죠. 전에도 그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 내가 그랬어요. 고향에 갈 것 같으면 빈손으로 어떻게 가겠냐. 쌀이라도 몇 차 싣고 가고 소라도 몇십 마리 갖고 가야 내가 멋이 있지. 어찌 그냥 가겠냐고.

□ 개풍에 나무가 쑥쑥 자라고 있을 텐데요
■ 그러니까 거기 돈이 많잖아요. 이 정부에서도 이리 안 막나요. 그래서 처음에는 숨이 딱 막히고 그랬어요. 그 전에는 내가 간첩신고를 당해가지고...내가 한문도 잘 모르고 중국어도 잘 모르니까 우리 막내딸이 따라다니면서 서류 같은 것 뒷바라지를 좀 해주었거든요. 2007년인가에 결혼하고 곧 가택수색을 당하고는 바로 영국으로 가버렸다 아이오.

신랑하고 영국에 가서 목사가 되어 있는데, 아이 셋 키우느라고 마트에서 일해 가면서 고생하고 있어요. 내가 돈 다 내버리고...진짜 내가 나쁜 놈이지. 내같은 놈 하나 있으니 집안이 안되더라고...또 돈 있어봐야 나무 심는데 다 잡아넣고 말지...

내가 뭐...내가 원래 참 돈 안 쓰는 사람이요. 나를 잘 안 멕이고  잘 안 입히고 좋은데서 안 재우고...죄 짓는 것 같아서 그렇게 안했다 아이오. 여태까지 그렇게 살았다 아이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억울해요. 

나도 단둥 계 대표한테 그렇게 이야길 했어요. 계 대표는 그렇게 이야길 하데요. '(서류를)가짜로 넣었으면 체포를 해서 영창에 넣어야 할 것 아니냐. 없는 사실을 가지고 내가 돈 달라고 했으면 잡아넣어야 될 것 아니라요'라고. 왜 수사의뢰를 안 시키는거요.

북쪽에 관리비도 못줬는데 빼앗기는 건 아닐까...깊어가는 시름

   
▲ 지금도 새벽 2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지만 심신이 예전 같지는 않다. 북에 보내기 위해 심어 놓은 우산고로쇠 나무가 자꾸 커지면 보내기 힘들어지는데...차단봉을 들어올리면서도 고민은 깊어간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북쪽에서 중단된 사업은 어떻게 되었을까.
■ 나무 1,100만주면 큰 것은 2,000억원 규모에요. 그리고 이번에 박근혜 정부 때 북쪽에 전화하지도 말고 받지도 말라고 했거든요. 그렇게 딱 북쪽에서 쫓겨나면서 관리비를 내가 주기로 했는데 비료나 농약 한 톨 못주고 인건비도 못주고 나왔다 이거에요. 

그래서 저 사람들이 이걸 뺏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가니까 인정해 주더라고. 단둥 민경련에 가서 내 묘목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니까 물어볼 것 아니요. 자기 나라에서 보면 국보적인 나무인데, 처음 간 나무니까... 제일유통 묘목장이라고 다 있는데 내가 가질 못하니까 국토부(국토환경보호성 또는 임업성 일 듯)로 묘목을 넘겼다고 그래요. 

북쪽 국토부에서 관리를 해서 그쪽 소유로 했다고 하는데, 2년생 되는 걸 인정하겠다는 이야기를 (서류로) 받아오지는 않았지만, 1,450만주를 준다고 자기가 말을 했어요. 1,450만주만 해도 500억원이 넘는다고.

또 평양과수나무도 있다. 평양은 쭉 다녀보면 평평하더만. 서울같이 악산도 없고. 그런데 '줴버리는' 땅이 많더라. 우리는 노는 땅이라고 하는데. 저기다 나무를 심자고 했더니 좋은 생각이라고 해서, 100% 과일나무를 심고 식료품회사를 만들어서 이걸 외국으로 수출하자는 보고서를 꾸며서 승낙을 받았어요. 나무 빨리 갔다 넣어라 이거라요.
그래서 나무를 5만5,000주를 쫙 깔았다고. 2, 3헥타르씩 노는 땅을 모았더니 11군데 41헥타르가 나오더라고요. 그걸 계산해보니까 5만5,000주 심으면 딱 맞겠더라고.

뭐 필요한지 적으라고 해서 요구대로 사과, 배, 추리(자두) 등을 보냈어요. 이 일도 10년전 일이에요.

□ 과수도 역시 경협방식으로
■그렇지. 갈라먹기죠. 그쪽도 관심 있고 나도 관심 있고 그렇지 않아요. 민경련에서도 거기 밖으로 떠나버리면 그걸 신경 쓰나요. 경협방식으로 하니까 민경련에서도 신경 쓰고 나도 신경 쓰는 거죠. NGO단체는 쌀이니 뭐니 꼭 싣고 가야 되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없이 농약 몇 병들고 갈 수가 있다 이말이에요. 왜? 나무보러 가야되니까.

또 평양시 중화군에 소목장도 있었어요. 버섯농장도 있었고 황해남도 옹진군에 벌인 바지락농장도 있고 한데 그런 건 놔두더라도...

□ 통일부 피해지원금 1,200억 원을 다 드려도 피해가 회복이 안 될 것 같은데.
■ 자기들이 이렇게 큰 거는 못준다고 처음부터 이야길 합디다. 처음에 투자한 것만 따지자고 하데요. 뒤에 들어간 돈 그런 건 내버려두고. 그렇게 생각해도 규모가 큰데 많이 줄였어요. 우리나라에서는 1,000만주에 330억원으로 평가하더라구요.

□ 통일부에서는 피해지원 금액 한도가 있었으니까 그 범위에 맞추려고 한 건데 그마저도 가짜라고 하면서 인정하지 않았다는 거죠.
■ 얼마 전에 마흔 넘어 결혼한 아들은 한 10년 동안 도청 당한 일이 있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 집 새끼들은 아버지를 간첩으로 아는기라. 그러니까 인제 아버지 전화하지 마라고 하고. 공무원인 사위가 있는데, 우리 딸은 퇴직금 갖고 살 수 있으니까 이제 전화하지 말라고, 아 이런단 말이요. 아버지가 들을 때는 어떻겠나요. 이번에도 내가 수리가 어두워서 얘들 도움을 받아가지고 서류를 만들었는데, 정부에서 돈을 준다고 했다가 안준다, 가짜다 이러니까 참 속상하죠.

얘들은 지금까지 아버지가 묘목 심은 것에 대해서도 알고, 서류작성을 해 왔기 때문에 그게 가짜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현 정부에서 인정을 못 받고 나이는 들었지 소문은 났지 하니까 정부 돈 받아먹으려고 하다가 이런 가짜 서류나 넣고 하는 이런 놈으로 취급당하는 것 같아서 참 어지럽습니다. 

그런데 그건 1,100만주 들어간 건 맹세코 확실합니다. 맞아요. 이거는. 그리고 개풍묘목장에 자라는 1,450만주. 합해서 2,450만주를 인정받은 거죠. 1,450만주 그것만 해도 앞으로 어떨지는 모르지만 북쪽에서 남쪽 나무를 못 오게 하고 우리처럼 나무를 심은 사람들 것 팔아줄 것이거든요. 그걸 남쪽시세로 받는다면 1,450만주가 1,000억 원 가까이 돼요.

□ 가장 최근 방북은.
■ 2010년 5.24이후로는 못 들어갔죠. 

□ 최근 남북관계 분위기로 보면 곧 들어가실 수 있지 않겠나.
■ 단둥 민경련에서는 나를 보내줄려고 난리가 났는데 평양에서... 단둥은 아무 힘이 없다 아이요.

   
▲ 강원도에선 성 대표가 처음 심은 우산고로쇠나무. 벌써 많이 커져서 힘들긴 하지만 하루빨리 북쪽 묘목장에 보내고 싶은 것이 성 대표의 소망이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남아있는 또 하나의 꿈...동해 정치망 어장사업

성 대표가 관심을 갖고 추진했던 일중의 하나가 정치망 사업이다.

북쪽 동해안에 물고기가 지나다니는 길에 정치망을 설치하면 멸치를 따라 올라가는 온갖 회유성 물고기를 다 잡을 수 있고 여기엔 고래까지 잡힌다고 한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충무 앞바다에 멍게가 썩어가는 상황인데 지금 북에서는 가능하다는 것도 기회인 셈.  

북에서 관심을 가질 물고기 대풍의 획기적인 솔루션인 셈인데, 이미 2005년 제안을 해서 관계만 회복되면 바로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도 다 되어 있다.

2010년 5.25조치 이후 군사분계선 바로 아래 강원도 대진항에서 양양 쪽으로 8군데 72헥타르 규모의 어장을 운영하면서 정치망 남북협력사업을 준비한 것이 벌써 10년이 다되어간다.

북쪽에는 나진 앞바다까지 100군데 정치망을 설치하면 된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일이 진행되면 정치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북측을 위해 기술지도도 해야 하지만 우선 그물부터 놓아야 하는데, 그동안 바닥이 난 자금 사정 때문에 걱정이 앞서기도 한 상황이다. 
 

   
▲ 또 하나의 야심찬 계획이 북쪽 동해안에 '정치망' 어장을 설치하는 일이다. 한달에 한번씩 그물을 건져 올려 손질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의 노고가 헛되지 않길 바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북쪽에는 정치망이 하나도 없나요
■ 예. 우리가 가서 확인했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뭐 알아듣지도 못하더구만요. 못 알아듣길래 옛날 왜정시대에 어장에서 근무한 나이 많은 사람이 살아 있을 테니까 다음에 우리가 올 때까지 그 사람을 찾아서 어디서 고기를 잡았는지 그 위치를 딱 알아놓으라고 그랬거든요. 거기가 고기길이다. 

그 뒤에, 내가 좀 미숙하니까 우리 선원 세 명하고 해서 네 명이 함께 갔죠. 북쪽 선원 15명하고 한배에 타고 안 나갔습니까.  카~ 여기가 자리다 하니까 우리 선원들이 야~ 했습니다. 물 반, 고기 반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하데.

□ 나무 심기나 물고기 잡는 일 모두 북쪽에서 관심 있어 하는 사업들인데.
■ 이거요. 그 사람들이 그전에는 모르다가 요새 이해를 했어요. 이거 한 틀만 하면 기름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들어가는 게 없으면서 수확은 많아서 한 도시를 먹여 살릴 수 있어요. 처음에는 못 알아듣다가 요즘 알아들은 거요. 민경련 참사도 이해하고 난 후에는 단둥에 있지 않고 고기 잡는 데 거기서 일하겠다고 하면서 빨리 배가 몇 대 올라올 건지 사업계획서 올리라 이거요.(웃음) 

내가 그 이야기를 듣다가 '야, 유엔제재도 안 끝났는데 그런 걸 올리면 통일부에서 좋아하겠나'하고 말았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성 대표는 얼마 전 강연장에서 받은 질문을 거꾸로 던졌다. 

‘북쪽에 묘목 1,100만주를 심었다고 하는데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느냐'는 것. 사람들이 그걸 제일 궁금해 하더란다. 

대답은 이렇다. "나는 교회를 다녀서 사람들한테 돈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예수님한테, 하나님한테 돈 달라고 기도했더니 돈 다 주시더라."

답을 듣고 어리둥절해 하는 기자에게 "그렇다고 내가 주식해서 돈 벌었다고 할 수 있나요"라고 적당히 눙친다. 1997년 IMF 사태를 맞아 시중은행 주식이 천 몇 백 원까지 곤두박질 칠 때 사두었던 주식이 효자노릇을 했단다. 다 옛날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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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에너지자립 마을인데 실업률은 0%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28] 독일의 경험 (상)

18.10.06 12:01l최종 업데이트 18.10.06 12:01l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 말

독일 동부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에 있는 펠트하임(Feldheim)은 주민 수가 130명 남짓인 농촌이다. 통일 전 동독 지역이었던 이 마을은 수도 베를린에서 자동차로 약 두 시간이 걸리는 시골인데도 세계 각지에서 방문객이 꽤 찾아온다. 주민들이 쓰는 모든 전기와 난방을 태양광·풍력·바이오연료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에너지전환(에네르기벤데) 모범마을'이기 때문이다.

돼지와 양, 옥수수와 밀을 키워 생계를 꾸려온 이 마을에는 현재 55개의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여기서 연간 250기가와트시(GWh)의 전기를 만든다. 옛 군용부지에 조성한 태양광단지에서는 연간 2.75GWh의 전력을 생산한다.

또 농가의 돼지분뇨에서 바이오가스를 추출하고 이것으로 열병합발전기(CHP)를 돌려서 연간 4.15GWh의 전기를 얻는다. 1GWh는 4인 가족 기준으로 300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전력량으로, 이 마을에서 생산한 전기는 1퍼센트(%) 정도만 주민들이 쓰고 나머지는 판매된다. 마을 사람들은 또 폐목재에서 나온 우드칩을 태우는 바이오매스 시설과 열병합발전소에서 얻은 열에너지로 난방과 온수를 쓴다.

쓰고 남는 전기 팔아 농가소득 보전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 펠트하임 마을의 태양광단지. 과거 군용부지였던 45만제곱미터(㎡), 축구장 약 60개 규모의 초지에 태양광 모듈 1만여개를 설치했다. 주민들이 방목하는 양떼가 태양광 패널 아래를 오가며 풀을 뜯고 있다.
▲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 펠트하임 마을의 태양광단지. 과거 군용부지였던 45만제곱미터(㎡), 축구장 약 60개 규모의 초지에 태양광 모듈 1만여개를 설치했다. 주민들이 방목하는 양떼가 태양광 패널 아래를 오가며 풀을 뜯고 있다.
ⓒ 펠트하임 신에너지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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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쓰고 남은 전기는 '에네르기크엘러(Energiequelle)'라는 지역에너지 회사를 거쳐 독일 내 다른 도시에 판매된다. 지역에너지 회사는 판매 수익을 마을 주민과 나눈다. 주민들은 풍력·태양광 발전시설 부지 임대료도 받는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얻는 수익은 평균적인 독일 가정이 내는 연간 전력요금(2014년 기준 978유로·약 128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일부 주민은 지역에너지 회사에 고용돼 태양광설비를 점검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다. 옛 동독 지역은 통일 후 한때 30%까지 치솟은 실업률로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일자리 사정이 나쁜 편이지만, 이 마을은 펠트하임 재생에너지사업 덕에 실업률 0%를 자랑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 1994년 주민과 지자체·에너지회사·중앙정부·유럽연합(EU)이 자금을 분담해서 시작했다.

지난 7월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BMWi) 초청으로 펠트하임을 방문했던 권필석(44)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지난달 10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로 마을에서 쓰는 에너지를 모두 충당하고, 이익까지 얻을 수 있으니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더라"고 전했다. 그는 "독일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정부의 꾸준한 정책 지원과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미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는 2009년 설립된 신재생에너지 전문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30여년 꾸준히 추진해온 '에네르기벤데'

독일에는 펠트하임처럼 '에너지 자립'과 '소득 보전' '일자리 창출'에 두루 성공한 마을의 사례가 많다. 이런 마을과 도시들이 모여 독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에너지전환을 이루고 있다. 석탄과 석유를 줄이는 '탈화석연료',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탈원전'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산업경쟁력도 세계 최강수준으로 유지하는 나라로서 각국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독일은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를 오는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는 탈핵일정을 지난 2011년 이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2050년까지 생산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원에서 얻는다는 목표로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을 줄여가는 중이다.

오는 2030년까지 1990년도 탄소배출량 대비 55%를 감축하기로 하는 등 기후변화대응에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러면서도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자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탄탄히 하고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탈원전을 확정한 2011년 이후 6년간 독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47%로, EU 평균 1.38%를 웃돌았다.
 
 독일은 신축건물의 재생에너지 활용 및 에너지 효율화를 의무화하고,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수도 베를린에 있는 연방의회 의사당은 1999년 재건축을 계기로 지붕의 유리 돔과 거울 기둥을 통해 자연채광 효과를 극대화하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전력 수요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  독일은 신축건물의 재생에너지 활용 및 에너지 효율화를 의무화하고,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수도 베를린에 있는 연방의회 의사당은 1999년 재건축을 계기로 지붕의 유리 돔과 거울 기둥을 통해 자연채광 효과를 극대화하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전력 수요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 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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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독일 에너지전환의 뿌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전력의 80%를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에서 얻었다. 하지만 1970년대 두 차례의 세계적 석유파동으로 충격을 받은 후 '에너지원 다양화' '에너지 효율화'를 고민하게 됐다.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원자력발전이 부상했지만 방사능의 위험성과 핵산업의 비민주적 의사결정에 불안을 느낀 시민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격렬한 반핵운동에 나섰다. 여기에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지자 '원전 역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자리를 잡았다. 체르노빌 사고 후 독일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이 추진되지 않았다.

1990년대 기후변화의 위협이 세계적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독일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정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주된 방향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규제하고 재생에너지에는 경제적 유인(인센티브)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독일 정부는 1991년 세계 최초로 재생에너지 판매가격을 보장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했다. 또 화석연료·원자력보다 재생에너지를 우선 이용하도록 하는 규제를 만들었다.

1998년에는 전력시장 자유화로 발전(생산)과 송·배전(공급) 업무를 분리해 민간에 개방했다. 전기를 생산하고 전송, 판매해 공급하는 과정을 특정 회사가 독점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전력 도·소매 시장에서 경쟁을 촉진한 것이다. 같은 해 집권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사회민주당(SPD)-녹색당 연정은 1999년 화석연료로 발전한 전기와 휘발유에 환경세를 도입했고, 2000년에는 기념비적인 재생에너지법(EEG)을 제정했다. 이 법은 재생에너지 생산자가 향후 20년간 킬로와트시(kWh)당 고정된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관련 산업 발전에 기폭제가 됐다.

원전의 경우 사민당-녹색당 연정이 '2022년 무렵까지 100% 탈원전에 도달한다'는 합의를 이뤘으나 2005년 사민당과 대연정을 통해 집권한 기독민주당(CDU)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10년 자민당(FDP)으로 연정 파트너를 바꾼 뒤 이 기조가 흔들렸다.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탈원전에 따른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원전 가동기간을 2036년까지 연장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독일 정부는 정계·학계·산업계·종교계·시민사회 대표로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했고, '끝장토론' 등을 거쳐 '2022년까지 모든 원전 폐쇄'를 확정했다. 2011년 당시 남아 있던 원자로 17기 중 10기가 지난해까지 폐쇄됐다.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2주 후인 2011년 3월 26일 독일 시민들이 수도 베를린에서 원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베를린 외에도 함부르크, 쾰른, 뮌헨 등 주요 도시에서 약 25만명이 거리로 나와 ‘중단 없는 탈원전’을 촉구했다.
▲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2주 후인 2011년 3월 26일 독일 시민들이 수도 베를린에서 원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베를린 외에도 함부르크, 쾰른, 뮌헨 등 주요 도시에서 약 25만명이 거리로 나와 ‘중단 없는 탈원전’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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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슈머'가 이끄는 에너지 민주주의

독일이 '탈화석연료'와 '탈원전'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게 된 원동력의 하나는 지역자치와 민주주의 전통에 뿌리를 둔 '분산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석연료·원자력 등 대규모 발전소를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보다 소규모 분산배치가 쉬운 재생에너지 시설의 특성상 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던 에너지 생산·공급 시스템이 지역 단위로 원활하게 나누어졌다.

독일 재생에너지기구(AEE)에 따르면 2001년 66개에 불과하던 지역에너지협동조합이 2015년 1000개로 급증했다. 독일의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현재 독일 전체 재생에너지 시설 중 42%가 지역에너지협동조합·농민·일반가정 등 시민 소유다. 독일의 4대 메이저 발전회사(E.ON, RWE, Vattenfall, EnBW) 소유 시설은 5.4%에 불과하며, 지역 군소회사 등으로 범위를 넓혀도 기업 소유 발전소 비중은 15.7%에 그친다.

자기가 사는 곳의 에너지 시설을 소유한 시민들은 에너지 사업의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해 지역 여건에 맞는 시스템을 능동적으로 설계·통제하고, 판매이익을 나눈다. 일반 시민이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에너지 프로슈머'가 되고, 전기를 소비하는 지역과 생산·전송하는 지역이 분리되지 않는 '에너지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규모 원전이 들어선 바닷가 마을 주민들이 생태환경 파괴와 방사능오염 등의 피해를 겪고, 도시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산골마을 등에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갈등이 빚어지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비민주주의'와 대조된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한적한 산길에 자리 잡은 주택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전력 소비자인 지역주민들이 가계나 마을협동조합 단위로 생산에도 참여하기 때문에 이익 공유와 함께 ‘에너지 민주주의’가 증진되고 있다.
▲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한적한 산길에 자리 잡은 주택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전력 소비자인 지역주민들이 가계나 마을협동조합 단위로 생산에도 참여하기 때문에 이익 공유와 함께 ‘에너지 민주주의’가 증진되고 있다.
ⓒ 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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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쓰는 전력을 자급해 수익을 내는 분산형 시스템은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 기반이기도 하다. 2016년 AEE 조사에 따르면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독일 시민들의 지지도는 93%에 달한다. 권필석 부소장은 "독일에서 풍력·태양광 등 발전시설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높은 이유도 재생에너지의 경제적 이익을 (프로슈머인 주민들이) 함께 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50년 재생에너지 목표는 전체 발전량의 80%

독일 정부는 2016년 기준 전체 발전량 중 33.9%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20년 35%, 2030년 50%를 넘어 2050년에는 8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 7월 12일 독일에너지·물산업협회(BDEW)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수력발전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이미 36.3%까지 늘어나 석탄발전(35.1%)을 추월했다. 1990년 재생에너지 전체 전력생산 비중이 3.6%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장세다. 세부 에너지원별로는 풍력이 17.6%, 태양광 7.3%, 바이오가스 7.1% 등이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은 탈원전 정책이 확정된 2011년 당시 17.6%에서 7년 만에 11.3%로 줄었다.
 
 1990년과 2018년 1~6월 독일의 전체 발전량 대비 발전원별 비중 변화. 석탄·원자력발전은 크게 줄고 풍력·태양광·바이오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1990년과 2018년 1~6월 독일의 전체 발전량 대비 발전원별 비중 변화. 석탄·원자력발전은 크게 줄고 풍력·태양광·바이오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IEA, BDEW, 나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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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여년간 꾸준히 추진된 에너지전환정책의 결과, 독일은 2016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7% 줄이는 데 성공했다. 향후 감축 목표는 2020년 40%, 2030년 55%, 2050년에는 80%~95%다.

독일 재생에너지산업은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함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재생에너지 분야에 고용된 노동자 수는 약 33만명으로, 2004년 대비 두 배 이상이다. 연방경제에너지부는 2020년까지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매년 1만8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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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기념 민족통일대회 “평화·번영·통일 새역사 써나가자”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공동호소문 채택… 김영남·리선권·조명균 연설
▲ 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에서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남북은 5일 평양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 발표 11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면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해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역사를 써나갈 것을 다짐했다.

남북은 이날 오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민족통일대회를 갖고 공동호소문을 채택, “남북 정상이 두 손을 굳게 잡고 확약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분열과 대결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진로를 밝혀주는 민족공동의 이정표”라며 이같이 밝혔다.

남북이 10.4선언 발표를 기념한 공동행사를 열어 함께 호소문을 발표하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언을 발표한 이래 처음이다.

남북은 또 공동호소문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계속 전진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펼쳐 나가야 한다”면서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남북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늘의 경이로운 성과들은 우리 민족 스스로 주인이 되어 이루어낸 귀중한 결실이고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땅에서 전쟁위험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우리의 강토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은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엄숙히 천명하였으며 9월 평양공동선언은 그 실천방안을 명백히 밝혀주었다.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철저히 준수하고 이행해 삼천리강토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남과 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접촉과 왕래를 활성화해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해나가야 한다”면서 “남북 사이의 협력과 교류, 접촉과 왕래는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하나로 이어주는 실천적 방안이다. 각계각층의 왕래와 접촉, 다방면적인 대화와 협력, 다양한 교류를 활성화하여 민족적 화해와 통일의 큰 강물이 더는 거스를 수 없이 남북 삼천리에 굽이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 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 열린 10.4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에 참석한 평양 시민들이 박수하고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민족통일대회에선 앞서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연설을 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10.4선언의 계승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는 새로운 희망으로 높뛰는 민족의 박동이 있고, 강렬한 통일 의지로 빛나는 겨레의 넋이 있고, 머지않아 현실로 나올 우리의 소망과 꿈이 담겨져 있다”며 “온 겨레는 사상과 제도 차이를 초월하고, 누구나 다 평화와 번영, 통일의 대업을 위한 민족적 대의에 모든 것을 복종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분열의 고통과 대결을 겪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자기의 힘, 자기의 지혜, 자기의 뜻으로 하나 된 강대한 조국을 일떠세우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평화와 번영, 통일로 가속화하려는 성스러운 여정에 언제나 지금처럼 두 손을 꼭 잡고 민족의 휘황한 앞날을 앞당겨나가자”고 호소했다.

다음 연설에서 리선권 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은 민족의 생사가 달린 것으로, 북남 관계의 개선과 발전의 최대 문제”라며 “북남 당국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시켜 군사분야 합의서의 이행을 점검하고 전쟁위협을 완전 종식시키고 실천적 대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빠른 시일 안에 철도와 도로 현대화 착공식을 가져 9월 평양선언을 힘차게 이행해야 한다”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이 지금까지 중단된 것은 안타깝다. 북남당국은 이들 사업의 새로운 길을 마련하고, 이행 의지가 얼마가 확고한가를 세상 사람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쪽을 대표해선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연설했다.

조명균 장관은 연설에서 “난관이 있을 때마다 남북은 협의하면서 어려움을 넘어서 왔다. 앞으로도 남과 북은 이 땅의 공고한 평화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 함께 해나갈 것”이라며 “11년의 시간을 넘어 남북 정상이 만났다. 이제 남북은 분단 70년을 넘어 누구도 가지 못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이다. 동해에서 서해까지, 한라에서 백두까지 번영의 결실을 거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해찬 이사장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선언부터 평창올림픽, 4·27판문점선언, 9월 평양선언에 이은 일련의 과정은 분단 70년을 청산하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향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족은 적대와 분단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한반도에서 살게 될 것”이라며 “어떠한 일이 따를지라도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씩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꾸준히 내딛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회 주석단 앞줄엔 남쪽 공동대표단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 오거돈 부산시장, 원혜영 의원, 지은희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 이창복 6.15공동실천선언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등이 앉았다.

북쪽에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 박명철 6.15북측위원장 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안명국 조평통 부위원장 등이 자리했다.

대회가 열린 인민문화궁전엔 평양 시민 30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 5일 오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 열린 10.4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에서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김영남 북한(조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참석해 박수하고 있다.

10.4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공동호소문

남북 정상이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의 실천방안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10.4선언을 채택하고, 온 겨레가 통일조국의 밝은 미래를 그려보던 그날로부터 어느덧 11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련과 난관이 있었지만 10.4선언 이행을 위한 겨레의 힘찬 발걸음은 한 순간도 멈춤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도래한 따스한 올해 4월의 봄기운에 평화의 새싹은 기운차게 움트고 통일의 길에서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는 민족번영의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였습니다.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빛나는 계승이며 온 겨레의 통일지향과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획기적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가기 위한 민족공동의 새로운 통일 이정표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온 겨레의 일치된 염원을 반영하여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들이 채택, 발표된 여기 평양에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지키고 과감히 실천하기 위하여 10.4 선언 발표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성취하려는 온 겨레의 지향과 의지가 일관되고 확고하다는 것이 오늘의 민족통일대회장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여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과 평화번영을 향한 겨레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해 나가려는 확고한 실천의지를 담아 온 겨레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1.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계속 전진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펼쳐 나가야 합니다.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하였습니다.

남북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늘의 경이로운 성과들은 우리 민족 스스로 주인이 되어 이루어낸 귀중한 결실이고 소중한 자산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실현해 나가는 데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은 민족우선, 민족중시, 민족존중의 관점과 입장에서, 주인인 우리 민족의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풀어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 어떠한 난관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주인이 되어 새로운 역사를 힘차게 열어 나가야 합니다.

2. 이 땅에서 전쟁위험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우리의 강토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전 세계에 우리 겨레보다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갈망하는 민족은 없습니다.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은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엄숙히 천명하였으며 9월 평양공동선언은 그 실천방안을 명백히 밝혀주었습니다.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철저히 준수하고 이행하여 삼천리강토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70여 년 동안 이어져온 불신과 적대에 마침표를 찍고,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확고히 전환하여 대결과 전쟁의 근원을 완전히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3. 남과 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접촉과 왕래를 활성화하여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해 나가야 합니다.

남북 사이의 협력과 교류, 접촉과 왕래는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하나로 이어주는 실천적 방안입니다.

각계각층의 왕래와 접촉, 다방면적인 대화와 협력, 다양한 교류를 활성화하여 민족적 화해와 통일의 큰 강물이 더는 거스를 수 없이 남북 삼천리에 굽이치도록 해야 합니다.

민족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들을 시급히 해결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남과 북에 다 같이 의의 있는 날들에 남북당국과 대내외의 각 정당, 단체들,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개최하여 겨레의 확고한 통일의지를 전 세계에 과시해야 합니다.

우리 겨레의 항일역사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전민족적 거사인 3.1운동 100주년을 남과 북이 공동으로 기념하여 우리 민족의 불굴의 기개를 다시 한 번 떨쳐야 합니다.

국제적인 체육경기들과 문화예술축제들에 남과 북이 함께 진출하여 민족의 슬기와 재능, 단합된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4. 온 겨레가 뜻과 힘을 합쳐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지키고 이행해 나가야 합니다.

남북 정상이 두 손을 굳게 잡고 확약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분열과 대결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진로를 밝혀주는 민족공동의 이정표입니다.

선언은 길지 않아도 여기엔 새로운 희망으로 벅차오르는 민족의 숨결이 있고 통일의지로 뜨거워진 겨레의 넋이 있으며 머지않아 현실로 펼쳐질 우리 모두의 꿈이 담겨져 있습니다.

역사적 교훈은 남과 북이 아무리 훌륭한 선언들을 채택하고 좋은 합의들을 내놓아도 그것을 지키고 이행해 나가지 못한다면 빈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던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미래는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철저한 이행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남에 살든, 북에 살든, 해외에 살든 누구나 뜻과 마음을 합쳐 남북공동선언들의 이행에 저마다의 형편에 맞게 기여해야 합니다.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남북공동선언들을 확고히 지지하고 일관되게 실천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노력을 힘차게 기울여 나가야 합니다.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여!

지금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비상한 각오와 결단력을 가지고 평화와 번영, 통일의 큰 길로 힘차게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시대가 우리를 주시하고 역사가 우리를 평가할 것입니다.

모두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여 세계가 보란 듯이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역사를 써나가야 합니다.

10.4선언발표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2018년 10월5일 평양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관련기사icon10.4선언 기념 평양 ‘민족통일대회’ 남쪽 참가단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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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중심 통일론 30년, 이제 '동독'에서 바라보기

[장벽 너머 사람들을 만나다 ①] 독일 신연방주 사람들을 만난 이유는?

 

 

올해 초만 해도 이 같은 반전이 일어나리라곤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남북은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해빙의 물꼬를 텄다.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중요한 변수인 북미관계 역시 화해의 전기를 맞았다. 
 
지금 필요한 건 공존과 교류의 길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세밀히 닦는 것이다. 그간 북한은 어떤 한국인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한국에는 남극만큼이나 먼 땅이었다. 한국이 사실상 섬이었던 까닭이다. 이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남북이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만 그 다음(통일)을 본격적으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 통합'이 먼저 선행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정부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교류가 시작된다면 정부는 필연적으로 뒤로 물러나게 된다. 시민 각자가, 인민 각자가 교류의 주체가 된다. 이제 질문을 준비해야 할 때다. 과연 우리는 북한과 교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는 2019년은,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진지 꼭 30년째 되는 해다. 그 30년간, 이를테면 베를린 장벽을 넘어 온 동독의 스무살 청년은 이제 50살이 됐다.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떻게 직업을 구했고, 어떻게 서독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을까?  
 
교류는 상호 동등히 이뤄져야 한다 
 
<프레시안>은 지난 9월 7일부터 약 이주일에 걸쳐 독일을 둘러봤다. 정확히는 독일 신연방주, 즉 옛 동독 지역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모두 동독 체제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만난 이유는 간단하다. 분단 시절 동서독이 얼마나 달랐는지, 재통일 후 두 체제가 어떻게 하나로 융합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를 개개인 삶의 여정을 통해 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독일 재통일은 어느 정도 익숙한 주제다. 모두가 대략적인 재통일 이야기를 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1년여 후인 1990년 10월 3일, 분단됐던 서독과 동독은 다시 하나의 독일로 통일됐다. 서독의 동독 흡수 통일이었다. 독일은 급박했던 재통일의 비용을 치르느라 한때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고생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탄탄한 통일 국가로 다시 섰다. 지금도 유럽 경제를 견인하는 선진국 독일의 역사에 관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줄거리다.  
 
이 이야기에서 빠진 내용이 사람이다. 우리는 오랜 기간 이어진 동서독의 교류를 서독 정부, 서독 체제 중심적으로 들어왔다. 서독 정부가 이른바 '동방정책'을 이어왔고, 때맞춰 소련을 정점으로 한 공산 체제가 무너졌기에 재통일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실제 사람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 통일은 당시 극단적으로 다른 체제를 살던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동서 교류가 정말 동독 사람들에게 통일에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는지 등의 이야기를 통일의 약자였던 동독의 입장에서 우리는 정리해보고자 했다.  
 
통일 후 교류의 경험 역시 중요하다. 동서독 통일 후 이어진 동서 독일 사람들의 교류는 일방적이었다. 서독 자본이 주역이었고, 서독 정치가 주역이었고, 서독 사회가 주역이었다. 흡수 통일의 결과다. 동독은 철저히 조연에 머물렀다. 그 차이가 잘못된 교류로 이어졌다. 독일은 지금도 이 격차를 극복하는 중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반면교사다. '흡수통일은 안 된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강자 주도의 일방적 교류는 안 된다'는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남북한 사람이 동등하게 교류할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통일로 북한 시장이 열리면 남한에도 일자리 기회가, 추가 투자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식의 통일 설득론은 자칫 북한을 단순한 투자 대상으로만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 독일 베를린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인근에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의 잔해. 베를린 시내 곳곳에 장벽이 보존되어 있다. ⓒ특별취재팀

다른 체제는 다른 사람을 만든다 
 
물론 독일과 한반도 사정은 다르다. 이제는 둘의 역사가 다르다는 점 때문에 두 분단 상황의 동질성이 오히려 논의되지 않을 지경이다.  
 
다른 체제는 다른 사람을 만든다. 오늘날 북한을 '우리의 이웃'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오늘날 청년세대 중 일본인, 미국인, 유럽인보다 북한사람을 더 가까운 이로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북한에는 이제야 기초적 자본주의 체제가 이식되고 있다. 자생적으로 피어난 '장마당 자본주의'다.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체제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최선봉에 선 나라다.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다시 말해 세계 경제에 밀접하게 접목된 나라다.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몰아낸 경험을 한 민주주의 국가다. 이처럼 다른 체제가 70년 이상 잦은 교류를 하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리며 이어졌다. 우리가 남북 교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건, 화성인과 금성인의 만남이다. 
 
때로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살펴야 숲이 살아난다. 정부가 숲을 조성하지만, 나무를 건강하게 자라게끔 하는 힘은 민간에서 나온다. 우리는 독일의 사례에서, 민족 통일의 당위론 차원에서 오직 큰 이야기만 하다 놓친 세밀한 이야기들이 결국 커져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친구 사이에서, 연인 사이에서 작은 갈등이 큰 싸움으로 벌어지는 것과 같다. 한국 사회는 이에 관한 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동독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최대한 세밀히 정리할 것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동독에서, 통일 독일에서 한국의 과거사를, 북한의 오늘을, 미래에 평화로운 공존이 보장되는 한반도를 상상해보고자 했다. 동독인의 삶을 거울로 삼아, 우리는 다가올 교류의 시간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인터뷰이 각자의 관점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는 각자의 삶만큼이나 제각기다. 그럼에도 화자들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북 교류에의 단초를, 반면교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11편의 이어질 이야기는 크게 통일 당시 성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 통일 당시 청소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로 나뉜다. 마지막으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독일 분단이 낳은 아주 특별한 기업사 한 편도 준비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 바란다.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본 기획은 독일 신연방주에서 분단과 재통일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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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는 MB것” 인정 못하는 조선일보

아침신문 솎아보기] 적폐청산 그만하자는 중앙·동아, 아직 멀었다는 한겨레·경향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8년 10월 06일 토요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이고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점이 넉넉히 인정된다.” 11년만이다. 2007년부터 지금껏 수없이 반복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에 대해 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것이라고 결론 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제 92세까지 복역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는 5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16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대통령에게 7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 7070만원을 선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의 실소유주로 인정되며 중형을 받았다. 

 

▲ 한겨레 6일자 1면 사진기사.
▲ 한겨레 6일자 1면 사진기사.
 

한국일보는 “이번 재판의 핵심은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을 1987년 설립된 알짜 자동차부품회사 다스(설립 당시 대부기공)의 실소유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16개 혐의 중 절반에 가까운 뇌물, 횡령 등 중형이 불가피한 7개가 다스와 얽혀 있고,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실소유주로서 각종 불법 행위에 따른 이익을 받은 것으로 인정됐다”고 보도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이자 최종결정권자로 관여하면서 95년부터 2007년까지 12년간 회삿돈 246억 원을 빼돌린 것으로 결론 냈다. 한국일보는 “검찰 공소사실에 적시된 횡령액 339억 원 중 73%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스와 관련해 삼성으로부터 받은 585만 달러 중 522만 달러 부분도 뇌물로 판단했다. 청와대 공무원에게 다스 미국 소송을 지원하게 했고 국가정보원 자금을 상납 받고 탈세 방안까지 검토·보고하게 했다는 검찰 측 주장도 받아들였다. 

 

 

▲ 한국일보 1면 기사.
▲ 한국일보 1면 기사.
 
▲ 디자인=안혜나 기자.
▲ 디자인=안혜나 기자.
 

6일자 종합일간지는 1면 머리기사로 또 다른 전직대통령의 1심 선고를 일제히 보도했다. 한겨레·경향신문을 비롯해 동아·중앙일보까지 대다수 신문이 “다스는 MB것”이란 대목을 1면 제목으로 뽑았다. 반면 조선일보는 ‘이 전 대통령 징역 15년·벌금 130억’이란 제목을 달았다. “다스는 MB것”이란 대목이 제목에 없는 이유는 사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설 제목은 ‘이 전 대통령 다스 실질적 소유자 맞는가’였다.

 

조선일보는 “기업 소유권은 주식 보유 여부가 핵심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스 주식은 이 전 대통령의 형 등 친척들이 대부분 갖고 있고 이 전 대통령은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뒤 “만약 이 판결대로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면 민사소송을 통해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나. 그럴 수도 없다고 한다. 형사적으로 실소유주이니 처벌받고, 민사적으로 실소유주가 아니니 되찾을 수 없다면 법리를 떠나 일반의 상식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 조선일보 6일자 사설.
▲ 조선일보 6일자 사설.
 

이는 다른 보수신문과 대조적인 논조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국가 원수의 권력 사유화”…착잡한 MB 중형’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판결은 세상에 없다. 정치적 사건일수록 찬반양론이 거세다. 법관에 대한 인신공격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날 재판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밝힌 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보수 정부 9년에 대한 법적 심판이 이어지면서 철저한 과거 청산도 좋지만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MB 징역 15년, 청산과 단죄 이젠 매듭지을 때’란 제목의 사설에서 “많은 사람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적폐 청산에만 언제까지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어제 MB에 대한 1심 선고로 노무현 정부와 현 정부 사이에 낀 보수정권의 두 수장에 대한 단죄가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이제 청산과 단죄를 매듭짓고 대한민국의 부강한 미래를 보고 나아갈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두 명의 전직대통령에 대한 재판결과를 끝으로 적폐청산을 그만하자는 반면, 조선일보는 판결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보인 것이다.  

 

▲ 한겨레 6일자 6면 기사.
▲ 한겨레 6일자 6면 기사.
 

진보성향의 신문들은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이제야 20여년 국민 속인 ‘죗값’ 받은 MB’란 제목의 사설에서 “그는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이라 주장하며 옥중 수사를 거부했고 이날 선고공판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측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한때나마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최소한 다스 문제에서 국민을 속인 데 대해서만이라도 이제는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영포빌딩에서는 각종 사찰과 정치공작 관련 자료들이 대거 압수됐다”며 “후속 수사도 성역 없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직 멀었다는 의미다.  

 

▲ 경향신문 6일자 사설.
▲ 경향신문 6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법의 심판을 받음으로써 이 땅의 정의는 한 발짝 더 나아가게 되었다”며 이번 판결을 높게 평가한 뒤 “1심 재판은 끝났으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국정원과 군·경찰 등의 인터넷 댓글 공작과 관련해 직접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에 대한 강경 진압 등 국가폭력 사건의 책임자로도 지목되는 터다.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한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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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아, 조선 양국 의회관계발전방안 논의-우호친선 과시, 《추가》

수리아-조선 두 나라 우호친선관계발전 논의
 
번역, 기사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8/10/05 [20:1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수리아, 조선 양국 의회관계발전방안 논의-우호친선 과시

 

현재 수리아 의회대표단이 조선을 방문 중에 있다. 수리아 의회대표단의 조선 방문에 대해서 당사국인 수리아의 《사나통신》과 인방(隣邦)인 이란의 파르스통신, 레바논의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가 관련 사실을 비중있게 다루어 보도하였다. 사나통신은 두 차례에 걸쳐 수리아 의회 대표단이 조선을 방문하여 양국 관계 특히 의회 간의 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한데 대해 비중있게 다루어 보도를 하였다. 또 레바논의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 역시 두 번째 수리아 의회 대표단이 최태복 조선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회담을 한데 대해 상세히 보도를 하였다.

 

우선 수리아 사나통신은 10월 3일 자에서 평양발로 “(수리아)인민회의대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대표들과 수리아와 조선의 의회관계발전강화방안을 협의하였다.”라는 제목으로 관련 사실을 첫 보도하였다. 계속해서 사나는 “조선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안동춘은 수리아인민들의 용기 있는 의지(원문-입장)와 테러에 맞서 싸우고 있는 수리아 지도부의 지도력을 열렬히 칭찬하였다.”며 조선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안동춘이 이스라엘,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지원하고 있는 국제 테러조직들에 맞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리아 인민들과 지도부들에 대해 존경의 말을 하였음을 전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안동춘은 수리아 대표단의 조선 방문은 두 나라의 튼튼한 우호친선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수리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우호친선위원회를 통해 양국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는 수리아는 테러주의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라의 화해를 이루며, 테러주의에 의해 파괴된 나라를 재건하는 등의 세 가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수리아 의회 대표단은 화요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양국 의회의 관계를 강화하고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조선의 경험을 배워(원문-통하여) 수리아의 국익을 증대해나가기로 하였다고 사나통신이 보도를 하였다.

 

한편 레바논의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은 수리아 인민회의 의원대표단의 조선방문에서 가진 수리아와 조선과의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 논의를 한데 대해서 상세히 보도를 하였다.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는 “조선 대표단장 수리아와 정부차원의 회담”라는 제목으로 관련 사실을 자세히 보도하였다.

 

AMN는 보도에서 “(수리아)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오늘 오전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이번 새로운 회의는 수리아 의회대표단이 조선의 수도를 방문한 그 주(週)에 이루어졌다.”고 보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력에 대하여 그들 나라의 경의를 표하였으며, 이어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가 수리아 대표단의 방문은 두 나라 사이, 특히 의회 간의 관계 발전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보도는 수리아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들에 대한 수리아의 입장과 수리아에 대한 조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고 전하여 수리아가 비록 국제테러집단들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침략으로 대단히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조선과의 우호친선관계를 더욱더 발전시켜 나갈 의사를 표명하였음을 전하였다.

 

한편 수리아 사나통신도 10월 4일 평양에서 있었던 최태복 조선최고인민위원회 의장과 수리아 인민회의 대표단과 열린 회담에 대해서 상세히 보도를 하였다. 사나통신은 “수리아, 조선 양국관계발전방향에 대해 논의”라는 제목으로 관련사실을 전하였다.

 

계속하여 통신은 “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그 회담은 수리아 의회대표단들이 조선을 방문하여 이루어졌다.”고 하여 조선 최고인민회의 의장인 최태복과 수리아 인민회의 대표단과의 회담이 열렸음을 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자들의 지도력에 대해 그 나라의 경의를 표명 양국 관계를 더욱더 강화할 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조선 관리들의 수리아에 대한 경의를 표시한데 대해 수리아 인민회의 의원 대표단을 이끌고 조선을 방문한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는 수리아 대표단의 방문은 두 나라 사이, 특히 의회 간의 관계 발전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고 사나통신은 전하였다.

 

마지막으로 양 국의 대표들은 회담에서 조선인민들을 지지하는 수리아의 입장과 수리아에 대한 그들의 지지 입장을 각각 표명하였다고 사나통신이 보도하였다.

 

사실 본 보도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수리아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우호친선을 가진 우방이라고 하여 쉽게 방문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수리아 의회 대표단들이 조선을 방문하여 양국의 우호친선을 더욱더 발전시키기 위해  회담을 진행했다는 것은 두 나라가 어떤 관계에 있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우선 조선과 수리아는 두 나라가 우호친선관계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중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조선과 수리아의 관계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은 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가 수리아 대통령으로 있을 때인 1971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수리아는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위기에 빠진 수리아에 구원의 손길을 보낸 나라가 바로 조선이고 김일성 주석이다. 당시 조선은 수리아에 구원병을 파병하여 <제 1차 수리아-이스라엘 전쟁>에서 수리아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는 사실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수리아에 패배를 한 것이 아니라 조선에게 패배를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조선의 도움으로 제 1차 수리아 이스라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은 조선과의 우호친선관계를 맺게 되었다. 당시 승리를 거둔 수리아는 2011년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자신들이 조직, 육성, 군사훈련, 정보자료 제공, 전투지휘, 폭격 또는 특수군파견, 미사일 포격 등의 지원을 하는 고용병 테러집단들과 반군세력들의 침략에 의해 나라가 위기에 빠지기 직전까지 40년 이상을 아랍세계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전하게 인민들이 생활을 하는 살기 좋은 나라를 꾸려왔다. 

 

이렇게 조선과 수리아는 40년 이상을 두 나라 사이에 형제우애와 같은 우호친선국이었다. 물론 수리아가 위기에 빠져들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나라의 우호친선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두 나라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기념일이면 빠짐없이 친서를 보내어 상대국을 축하하였다. 

 

물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수리아전 역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조선의 지원이 커다란 지탱점이 되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사심이나 편견없이 이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실제 2016년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수리아 정부당국과 반군세력들이 긴장완화를 위한 회담을 가졌었다. 그때 회담장에서 반군세력 대표단을 이끌고 있던 대표단 단장이 수리아 정부당국 대표에게 “수리아에 조선의 특수부대가 비밀리에 들어와서 수리아 정부군들을 돕고 있다. 그 조선의 특수부대는 <찰마-1> <찰마-6>이라고 한다.”고 하여 수리아를 배후에서 조선이 지원을 하고 있다고 지적을 하였다. 참고로 여기서 <찰마>는 아마도 조선 말 <철마>를 잘 못 발음해서 그렇게 불려진 듯 하다. 

 

이와 같이 수리아가 위기에 빠진 현재에도 조선과 수리아는 끈끈한 우호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번 수리아 인민회의 의원들이 조선을 방문한 것은 두 나라 사이의 변치않 는 우호친선과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아마도 머지않아 수리아는 서방제국주의세력들이 지원하고 있는 테러분자 및 반군세력들과의 전쟁에서 승래를 거둘 것이다. 그 이후에 조선과 수리아의 우호친선관계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 끈끈한 관계로 발전을 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수리아전에서 이러한 조건들도 함께 고려하면서 수리아전에 대한 본지의 보도를 접하면 수리아전 및 예멘정에 대해 훨씬 더 이해가 빠르고 깊게 될 것이다. 실제 자주진영의 가장 강력한 보루이자 지탱(중심)국가는 조선이다. 

 

10월 10일 조선로동당창건 73주년을 기념하여 수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조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내왔다. 조선 중앙통신은 10월 5일 자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보내온 축전의 내용을 보도하였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축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수리아 대통령은 "로동자,농민,지식인들을 비롯한 인민대중속에 깊이 뿌리박고 자기의 민족적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투쟁하고있는 혁명적이며 대중적인 당들은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온갖 도전들에 맞서 조국을 부강하게 건설하고 나라의 독립과 자주권을 수호해나가고있습니다."라고 하여 오늘 날 조선이 적대세력들의 온갖 제재와 고립압살정책에도 불구하고 인민대중이 령도자와 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견디기 힘든 고난의 고비를 넘기고 비단 정치와 군사력에서 뿐 아니라 비약적으로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경제부분 등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발전하는 조선에 대해 칭송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축전에서 "나는 귀 당의 령도를 받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계의 온갖 테로분자들과 맞서 싸우는 수리아인민을 지지해주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면서 수리아에서의 반테로전이 거의 마감단계에 들어섰으며 수리아가 온갖 테로와 침략,식민주의세력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것을 확언합니다."라고 하여 현재 수리아에서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과 그 주구들인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 나라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디마스쿠스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준동을 하고 있는 테러집단들과 소위 반군세력이라는 무장집단들과의 7년 여간의 기나긴 전쟁에서 승리가 눈 앞에 다가서 와 있음을 강조하였다.

 

조선 로동당창건 73주년을 기념하여 수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가 보낸 축전의 내용은 이미 아래에서 보도한 기사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즉 축전의 "로동자,농민,지식인들을 비롯한 인민대중속에 깊이 뿌리박고 자기의 민족적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투쟁하고있는 혁명적이며 대중적인 당들은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온갖 도전들에 맞서 조국을 부강하게 건설하고 나라의 독립과 자주권을 수호해나가고있습니다."라는 내용은 바로 10월 3일 자에서 사나통신이 보도한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조선의 경험을 배워(원문-통하여) 수리아의 국익을 증대해나가기로 하였다."라는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즉 조선이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비약적으로 이룩하고 있는 성과들 그리고 그 과정들을 수리아도 따라 배워 자국도 자주적이고 부강번영하는 수리아를 건설하겠다는 말이다.

 

또 축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나는 귀 당의 령도를 받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계의 온갖 테로분자들과 맞서 싸우는 수리아인민을 지지해주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면서 수리아에서의 반테로전이 거의 마감단계에 들어섰으며 수리아가 온갖 테로와 침략,식민주의세력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것을 확언합니다."라고 한 내용은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가 한 "수리아는 테러주의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라의 화해를 이루며, 테러주의에 의해 파괴된 나라를 재건하는 등의 세 가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고 한 내용을 역시 구체화하였으며 확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국제적 테러주의자(행동-테러리즘)들이 극렬하게 수리아에서 준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결고 수리아의 미래가 담보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가 한 세 가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국제테러주의에 승리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나즈다뜨의 간접화법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수리아에서의 반테로전이 거의 마감단계에 들어섰으며 수리아가 온갖 테로와 침략,식민주의세력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것을 확언합니다."라고 직접적이고 확정적으로 언급을 하였다.

 

또 조선로동당창건 73주년을 축하하는 축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나는 귀 당의 령도를 받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계의 온갖 테로분자들과 맞서 싸우는 수리아인민을 지지해주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한다고 한 내용은 이미 보도된 아래 기사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자들의 지도력에 대해 그 나라의 경의를 표명(10월 5일 자 사나통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력에 대하여 그들 나라의 경의를 표하였다.(10월 5일 자 알 마스다르 소식-AMN)" "조선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안동춘은 수리아인민들의 용기 있는 의지(원문-입장)와 테러에 맞서 싸우고 있는 수리아 지도부의 지도력을 열렬히 칭찬하였다.(10월 5일 자 사나통신)"이 보도한 내용이다.

 

수리아 사나통신과 레바논의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 그리고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의 내용을 인용하여 보도한 이란의 파르스통신의 보도 내용들과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조선로동당 창건 73주년을 축하하여 보낸 축전의 내용은 똑같은 내용이다. 이렇게 중동의 세 나라인 수리아, 레바논, 이란 등이 이번 수리아 인민회의 의원단의 평양방문 소식을 크게 보도를 한 것은 해당 하나들과 조선 사이에 얼마나 끈끈한 우호친선관계를 맺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본지에서는 바로 조선과 중동의 자주적인 나라들과 또 세계 자주적인 나라들 사이에 우호친선관계가 어떻게 맺어졌고, 또 온갖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변치 않고 이어가는 지를 잘 알고 있기에 수리아전, 예멘전 그리고 베네주엘라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온 인류의 미래와 관련된 대단히 중요한 인류사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날 펼쳐지고 있는 국제정세를 대해야 옳바른 이해를 할 수 있으며, 미래에 어떤 세계가 펼쳐지게 될 지에 대해서 전망을 할 수가 있다.

 

 

----- 번역문 전문 -----

 

수리아, 조선 양국관계발전방향에 대해 논의

 

▲ 수리아 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회담은 수리아 의회대표단들이 조선을 방문하여 이루어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자들의 지도력에 대해 그 나라의 경의를 표명 양국 관계를 더욱더 강화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용섭 기자

 

2018년 10월 4일

 

평양, 사나-(수리아)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그 회담은 수리아 의회대표단들이 조선을 방문하여 이루어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자들의 지도력에 대해 그 나라의 경의를 표명 양국 관계를 더욱더 강화할 것을 강조(원문-촉구)하였다.

 

다음은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가 수리아 대표단의 방문은 두 나라 사이, 특히 의회 간의 관계 발전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조선인민들을 지지하는 수리아의 입장과 수리아에 대한 그들의 지지 입장을 표하였다.

 

 

마나흐 알-쁘리예흐/마날

 

 

----- 번역문 전문 -----

 

조선 대표단장 수리아와 정부차원의 회담

 

레이쓰 아보빠델 - 2018년 10월 4일

 

▲ 수리아 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오늘 오전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회의는 수리아 의회대표단이 조선의 수도를 방문한 그 주(週)에 이루어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력에 대하여 그들 나라의 경의를 표하였다.     ©이용섭 기자

 

베이루트, 레바논 (오전 4시 50분) - (수리아)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오늘 오전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이번 새로운 회의는 수리아 의회대표단이 조선의 수도를 방문한 그 주(週)에 이루어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력에 대하여 그들 나라의 경의를 표하였다.

 

다음은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가 수리아 대표단의 방문은 두 나라 사이, 특히 의회 간의 관계 발전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국민들에 대한 시리아의 입장과 시리아에 대한 조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 번역문 전문 -----

 

수리아, 조선 양국 의회관계발전방안 논의

 

▲ 수리아 인민회의대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대표들과 수리아와 조선의 의회관계발전강화방안을 협의하였다. 조선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안동춘은 수리아인민들의 용기 있는 의지와 테러에 맞서 싸우고 있는 수리아 지도부의 지도력을 열렬히 칭찬하였다.     ©이용섭 기자

 

2018년 10월 3일

 

평양, 사나-(수리아)인민회의대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대표들과 수리아와 조선의 의회관계발전강화방안을 협의하였다.

 

 

조선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안동춘은 수리아인민들의 용기 있는 의지(원문-입장)와 테러에 맞서 싸우고 있는 수리아 지도부의 지도력을 열렬히 칭찬하였다.

 

안동춘은 수리아 대표단의 조선 방문은 두 나라의 튼튼한 우호친선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수리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우호친선위원회를 통해 양국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 부분을 위해서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는 수리아는 테러주의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라의 화해를 이루며, 테러주의에 의해 파괴된 나라를 재건하는 등의 세 가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고 말했다.

 

수리아 의회 대표단은 화요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양국 의회의 관계를 강화하고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조선의 경험을 배워(원문-통하여) 수리아의 국익을 증대해나가기로 하였다.

 

Shaza/Manal

사자/마날

 

 

----- 원문 전문 -----

 

Syria, DPRK discuss further steps to improve bilateral relations

 

▲ 수리아 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회담은 수리아 의회대표단들이 조선을 방문하여 이루어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자들의 지도력에 대해 그 나라의 경의를 표명 양국 관계를 더욱더 강화할 것을 강조하였다.     © 이용섭 기자

 

4 October، 2018

 

Pyongyang, SANA-A delegation from the People’s Assembly discussed with Supreme People’s Assembly Speaker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Choe Thae Bok means of bolstering bilateral relations.

 

 

The meeting came within the Syrian parliamentary delegation’s visit to DPRK.

 

The DPRK’s official affirmed his country’s admiration for the great steadfastness of the Syrian people and its leadership in the face of the fierce war on Syria, calling for strengthening bilateral relations between both countries.

 

In turn, Deputy Speaker of the People’s Assembly Najdat Anzour said that the visit of the Syrian delegation comes within the framework of developing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especially the parliamentary ones.

 

He also expressed Syria’s appreciation for the DPRK’s people and their stances towards it.

 

Manar al-Frieh/Manal

 

 

----- 원문 전문 -----

 

North Korean delegation heads to Syria for meeting with gov’t

 

By Leith Aboufadel - 2018-10-04

 

▲ 수리아 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오늘 오전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회의는 수리아 의회대표단이 조선의 수도를 방문한 그 주(週)에 이루어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력에 대하여 그들 나라의 경의를 표하였다.     © 이용섭 기자

 

BEIRUT, LEBANON (4:50 P.M.) – A delegation from the People’s Assembly discussed with the Supreme People’s Assembly Speaker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Choe Thae Bok the means of bolstering bilateral relations earlier today

 

This new meeting comes just weeks after a Syrian parliamentary delegation visited the capital of the DPRK.

 

The DPRK’s official affirmed his country’s admiration for the steadfastness of the Syrian people and its leadership in the face of the fierce war on Syria

 

In turn, Deputy Speaker of the People’s Assembly Najdat Anzour said that the visit of the Syrian delegation comes within the framework of developing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especially the parliamentary ones.

 

He also expressed Syria’s appreciation for the DPRK’s people and their stances towards it.

 

 

----- 원문 전문 -----

 

Syria, DPRK discuss developing parliamentary relations

 

▲ 수리아 인민회의대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대표들과 수리아와 조선의 의회관계발전강화방안을 협의하였다. 조선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안동춘은 수리아인민들의 용기 있는 의지와 테러에 맞서 싸우고 있는 수리아 지도부의 지도력을 열렬히 칭찬하였다.     © 이용섭 기자

 

3 October، 2018

 

Pyongyang, SANA-A delegation from the People’s Assembly discussed with members from the Supreme People’s Assembly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means of developing parliamentary relations between Syria and DPRK.

 

 

Vice-Chairmen of the Supreme People’s Assembly An Tong-chun hailed the courageous positions of the Syrian people and their leadership in the fight against terrorism.

 

An Tong-chan considered that the visit of the Syrian delegation shows the strength of the friendly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stressing the importance of enhancing them via the Syrian DPRK friendship committee.

 

For his part, Deputy Speaker of the People’s Assembly Najdat Anzour said that Syria continues to work on three principles which are eliminating terrorism, achieving national reconciliation and reconstructing what has been destroyed by terrorism.

 

The Syrian parliamentary delegation is on a current visit to DPRK which started on Tuesday with the aim of bolstering parliamentary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benefiting from the DPRK experience in various levels.

 

Shaza/Ma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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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민족통일대회 방북단, 북측 환영만찬 참석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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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8/10/05 11:42
  • 수정일
    2018/10/05 11:4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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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통일대행진 추동하는 역사적 계기”
남 “소중한 약속들 구체적으로 실현”
10.4민족통일대회 방북단, 북측 환영만찬 참석
평양=공동취재단/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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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4  23: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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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선언 11주년 민족통일대회 방북단을 위한 북측 주최 환영만찬이 4일 오후 7시경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렸다. [사진-평양 사진공동취재단]

남측을 대표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소중한 약속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하자”고 강조했다.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은 “통일대행진을 추동하는 역사적 계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0.4선언 11주년 민족통일대회 방북단을 위한 북측 주최 환영만찬이 4일 오후 7시경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북측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은 만찬사에서 “감개무량함을 금할 수 없다”며 “10.4선언은 발표되자마자 온 겨레의 심금을 완전히 틀어잡고 조국통일성업실현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불미스럽게도 안팎의 반통일세력의 도전에 의해 북남선언들은 전면부정당하고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는 10년 간의 공백이 조성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 북측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은 “우리모두 어깨걷고 평화와 번영, 통일의 성스러운 여정을 다그쳐 나가자”고 호소했다.[사진-평양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리 위원장은 3차례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우리민족끼리정신에 기초하여 북남관계 발전을 더욱 가속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를 열어나가는데서 새로운 장을 펼친 역사적 장거이며 민족사적 특대사변”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라는 4.27 판문점선언 당시 방명록 글을 언급한 그는 “우리모두 어깨걷고 평화와 번영, 통일의 성스러운 여정을 다그쳐 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우리모두는 정치를 해도 민족을 위하고 통일을 위한 정치를 해야하며, 정당활동을 해도 민족의 이익을 도모하고, 평화번영을 위한 당 활동을 해야 하며, 종교적 신앙도 동족에 대한 사랑과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것으로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 환연만찬사 

남측대표 여러분!
해외측대표 여러분!
이 자리에 참가한 각계인사 여러분!

삼천리 강토를 크나큰 격정과 환희로 들끓게 하고 전세계를 진감시킨 력사적인 9월 북남수뇌상봉이 진행된 여기 평양에서 이렇게 10.4선언발표 11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여러분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보니 감개무량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민족의 화해단합과 평화번영의 새로운 리정표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하여 통일번영의 미래를 앞당겨오기 위해 민족통일회합에 참가한 남측과 해외의 대표 여러분들을 북녘의 전체 인민들의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담아 다시한번 열렬히 환영합니다.

감회도 깊은 11년전 10월 평양에서는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과 로무현 대통령 사이의 력사적인 평양수뇌상봉과 회담이 진행되고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의 표대인 10.4선언이 채택되였습니다.

10.4선언은 발표되자마자 온 겨레의 심금을 완전히 틀어잡고 조국통일성업실현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였습니다.

만약 6.15공동선언의 실천강령인 10.4선언이 정상적인 궤도에서 추진되였더라면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시간표는 훨씬 앞당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미스럽게도 안팎의 반통일세력의 도전에 의해 북남선언들은 전면부정당하고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는 10년간의 공백이 조성되게 되었습니다.

이 잃어버린 10년을 선대 수뇌분들의 숭고한 통일애국의 뜻을 이어가시는 북남수뇌분들에 의해서 되찾게 되고 오늘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은 력사의 새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4월과 5월에 이어 9월 평양에서 진행된 북남수뇌상봉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채택은 우리민족끼리정신에 기초하여 북남관계발전을 더욱 가속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를 열어나가는데서 새로운 장을 펼친 력사적 장거이며 민족사적 특대사변입니다.

우리의 경애하는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지난 4월 판문점에 남기신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라는 명언이 현실로 되고 있습니다.

북남수뇌분들이 마련하신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이야말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계승한 새시대의 통일대강이며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새 력사, 공동번영의 새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다시한번 온 세상에 선포한 위대한 선언입니다.

사상과 제도, 정견과 신앙, 당파와 소속이 다른 북과 남의 당국과 해내외의 각계층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북남선언관철을 위한 의지를 모으는 오늘의 민족통일대축전은 온 겨레의 의사와 념원에 맞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통일강령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정당성과 력사적 의의를 다시금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북남수뇌분들의 애국의 뜻과 불같은 열정, 하나된 통일강국에서 살려는 온 민족의 철의 의지와 힘찬 투쟁에 의해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북과 남, 해외의 우리 겨레모두가 새로운 평화의 궤도, 통일의 궤도를 따라 힘차게 나아갈 때 평화의 락원, 통일된 강산에서 행복하게 살려는 민족의 세기적 숙원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모두 어깨겯고 평화와 번영, 통일의 성스러운 려정을 다그쳐 나갑시다.

우리가 마주한 연희탁의 그릇들이 북과 남이나 다름없듯이, 우리가 좋아하는 민족료리들도 같고같듯이 우리가 품고있는 생각도, 나아갈 길도 하나입니다.

우리모두는 정치를 해도 민족을 위하고 통일을 위한 정치를 해야하며 정당활동을 해도 민족의 리익을 도모하고 평화번영을 위한 당활동을 해야 하며 종교적 신앙도 동족에 대한 사랑과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것으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번 민족통일대회합이 우리 민족의 통일대행진을 더욱 추동하는 력사적인 계기로 되리라고 확신하면서 평화번영과 통일의 새시대를 열어주신 북남수뇌분들의 건강을 위하여, 남측과 해외의 귀빈들과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 잔을 들 것을 제의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공-통일부)

남측을 대표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남과 북이 이렇게 같은 마음으로 한결같이 노력해 왔기에,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의 평화를 만들어내고 오늘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답사를 했다.

조 장관은 “오늘 개막한 10.4민족통일대회를 시작으로 평양공동선언은 이미 이행되기 시작했다”며 “앞으로도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을 더욱 확대하여 남북관계를 새롭고 높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남측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제 민간과 당국이 힘을 합쳐 평화와 번영의 나무를 튼튼하게 가꾸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평양 사진공동취재단]

특히, “두 분 정상께서 굳게 약속하셨듯이, 우리가 살아왔고 우리의 후손이 살아갈 한반도는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며 “남과 북은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서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더욱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 민간과 당국이 힘을 합쳐 평화와 번영의 나무를 튼튼하게 가꾸어 나갈 것”이라며 “남과 북도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자라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 조명균 통일부 장관 환영만찬 답사

리선권 위원장, 북측 모든 관계자 여러분, 
바쁜 중에도 우리 대표단을 따뜻하게 맞아 주시고 정성껏 대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9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2주 만에 다시 평양에 왔습니다. 7월 통일농구경기를 포함해 금년 세 번째 방문입니다. 평양의 거리, 그리고 이곳 인민문화궁전이 서울의 여느 곳인양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북측 관계자 분들도 일상을 함께하는 동료처럼 반갑습니다.

남과 북, 평양과 서울이 이렇게 가깝습니다. 같은 민족인 우리의 만남도 이렇게나 편안한 일입니다.

이렇게 가까운 우리 남과 북이 10.4선언을 함께 기념하게 되기까지, 1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만은 언제나 함께 있었습니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만난 남과 북의 대표단 분들이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시는 모습에 저도 가슴이 뭉클한 장면이었습니다.

남과 북이 이렇게 같은 마음으로 한결같이 노력해 왔기에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의 평화를 만들어내고 오늘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10.4선언의 정신을 소중하게 지켜 오신 남과 북의 모든 분들게 마음으로부터의 감사를 드립니다.

남과 북의 대표 여러분,

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바탕 위에서 남북의 두 분 정상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으로 평화와 번영의 새 길을 열었습니다.

특히, 평양공동선언을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실천’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의 소중한 약속들을 이제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자는 것이 평양공동선언의 핵심입니다.

오늘 개막한 10.4민족통일대회를 시작으로 평양공동선언은 이미 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을 더욱 확대하여 남북관계를 새롭고 높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남측과 북측, 그리고 해외에서 민간과 지역을 대표하는 분들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오늘을 시작으로, 남과 북의 곳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번영을 함께 만들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남북은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준비도 시작했습니다. 대립의 경계선을 공존의 공간으로 넓혀 나간다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한반도 전체가 평화의 땅이 되고 동해에서 서해까지 번영의 물결이 일렁일 날도 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두 분 정상께서 굳게 약속하셨듯이 우리가 살아왔고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한반도는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이어야 합니다. 남과 북은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서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더욱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

남과 북, 북과 남, 그리고 해외 대표 여러분,

지난 2007년, 남과 북은 이곳 평양에 우리 민족을 닮은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습니다. 올해 4월, 판문점에도 1953년생 소나무를 함께 심으며 70년의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시작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9일에는 풍성한 번영을 상징하는 ‘모감주나무’를 함께 심었습니다.

이제, 민간과 당국이 힘을 합쳐 평화와 번영의 나무를 튼튼하게 가꾸어 나갈 것입니다. 한 그루 한 그루가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처럼, 남과 북도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함께 자라날 것입니다.

모든 분들이 우애와 희망을 나누시는 2박 3일이 되기 바라며, 행사를 준비해 주신 남북의 관계자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공-통일부)

이날 만찬장 주탁에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 박명철 6.15북측위 위원장, 이창복 6.15남측위 위원장,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장, 오거돈 부산시장, 이동제 6.15해외측 부위원장, 강지영 조선종교인협회 회장, 차상보 6.15중국측 부위원장, 정학필 6.15캐나다측 부위원장, 선경석 재독남부회 히장, 안명국 조평통 부위원장,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전 이사장, 양철식 6.15북측위 부위원장, 손형근 6.15해외측위 위원장,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앉았다.

   
▲ 환영만찬이 열린 평양 인민문화궁전. [사진-평양 사진공동취재단]

이해찬 이사장은 건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에 정상회담이 이뤄졌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점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이번에 여기 오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선을 긋고 있구나, 줄을 긋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분단과 대립의 시기를 끝내고 평화와 번영으로 넘어가는 선긋기에 모든 분들이 함께해준다는 것에 감사하다”며 “이 잔이 선이 돼서 선이 한바퀴 돌면 통일이 완전히 되는 것”이라며 “평화통일을 위하여”라고 외쳤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만찬 테이블에는 쉬움떡, 쌀강정 깨강정, 인삼정과, 김치, 칠면조향료찜, 칠색송어물고기 알랭묵, 무지개 나물, 언감자떡, 대구 튀기과일즙, 사과 풍미 돼지 종다리 곰, 송이버섯 볶음, 메밀국수, 과일, 우메기, 인삼차, 들쭉아이스크림 등이 올랐다.

한편,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애초 이날 오후 6시경 남북국회회담과 관련한 면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 조명균 장관과 리선권 위원장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평양 사진공동취재단]
   
▲ 환영만찬은 북측이 주최했다. [사진-평양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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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는 ‘자백’한다…5월 학살, 시작과 끝은 ‘전 장군’이라고

[단독-신군부 비밀 책자 입수]신군부는 ‘자백’한다…5월 학살, 시작과 끝은 ‘전 장군’이라고

강현석·배명재 기자 kaja@kyunghyang.com


입력 : 2018.10.05 06:00:19 수정 : 2018.10.05 06:01:01

 

1980년 5월19일 군수뇌부 회의서 공수여단 투입 승인
21일 계엄군 자위권 발동·최규하 25일 광주행 ‘결정’
“전두환의 합수부에 매일 광주 상황 보고” 낱낱이 기록

“광주사태는 6·25 이래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국민적 비극이었다.” <제5공화국 전사> 4편 ‘광주사태의 교훈’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4일 현재 정부로부터 5·18민주화운동 사망자로 인정받은 시민은 353명(사망 166명·상이 후 사망 111명·행방불명 76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비극을 초래한 자들은 누구인가. 경향신문이 전권을 모두 입수한 <제5공화국 전사>는 ‘비극’의 주모자로 전두환 전 대통령(87)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 장군’은 <5공 전사> 5·18 부분에서 모두 3번 직접 언급된다. 

그는 2개 공수여단의 광주 추가 투입이 결정된 5월19일부터 군 수뇌부 회의에 참석했다.

5월21일에는 발포명령과 다름없는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을 결정하는 회의에도 참석했다. 전남도청 무력진압작전을 이틀 앞둔 5월25일 최규하 대통령의 광주행을 결정한 것도 그였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발간한 회고록에서 자신을 “(5·18)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라고 했다. 그는 “나의 유죄를 전제로 만들어진 5·18특별법과 그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에서조차도 광주사태 때 계엄군의 투입과 현지에서의 작전지휘에 내가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집요한 추궁이 전개됐지만 모두 실패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신군부 세력이 직접 기록한 <5공 전사>는 그의 유죄를 입증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5월19일부터 하루 걸러 열린 군 수뇌부 회의에 참석했다. <5공 전사>에 따르면 그날 계엄사령부는 전북에 위치한 35사단에 전북과 전남의 도로를 통제할 것을 지시해 광주 소식이 ‘북상’하는 것을 막았다. 또 20일부터는 20사단을 광주에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노태우(수경사령관)·정호용(특전사령관) 등 신군부 핵심도 참여한 회의 분위기에 대해 <5공 전사>는 “이들의 논의는 신중하면서도 진지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5월21일에는 국방장관실에서 발포명령인 ‘자위권 발동’을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도 참석했다. <5공 전사>는 “2군사는 육본으로 올라와 참모총장을 뵙고 현장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자위권 발동을 건의하였다. 건의를 들은 참모총장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하면서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자고 하여 국방장관실로 갔다. 장관실에는 장관을 비롯하여 합참의장,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 수경사령관, 육사교장, 특전사령관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또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 문제는 그 회의에서 자동적으로 결정되었다”고 적었다. 

전남도청 무력진압작전을 이틀 앞둔 5월25일 최규하 대통령의 광주 방문도 전 전 대통령이 최종 결정했다. <5공 전사>는 “최 대통령의 대광주시민 방송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합수본부 안전처장은 24일 당시 국방장관 및 각 군 참모총장과 광주사태에 관한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합수본부장 전두환 장군께 보고키 위하여 국방부로 갔다”면서 “‘최 대통령의 광주 선무활동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건의를 하자 전 장군은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라고 희색을 띄우면서 국방장관에게 건의했고 국방장관은 그 길로 청와대로 직행, 최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다”고 기록했다.

전 전 대통령은 “5월19일 이후 정보 기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 합수부와 보안사가 ‘눈과 귀’ 역할을 했다. <5공 전사>에는 “매일 광주로부터 사태 진전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었던 합수본부 안전처”나 “현지 상황을 직접 보고받고 처리하는 육본이나 합수본부의 실무처장급 참모”라는 표현이 나온다. 계엄군의 모든 작전 상황이 전 전 대통령이 본부장이던 합수부로 동시에 보고되고 있었던 것이다. 

보안사는 도청 무력진압작전계획인 ‘상무충정작전’에 대해 육군본부의 계획을 먼저 보고받은 뒤 동의하기도 했다. 육본은 보안사의 동의를 받은 뒤 계엄사령관을 찾아가 작전을 건의했다. 또 보안사는 국방부 보안부대장을 통해 무력진압계획이 조기에 실시될 수 있도록 장관을 압박했다.

전 전 대통령의 5·18 지휘는 <5공 전사> 외에 계엄군에 지급된 격려금을 기록한 보안사 문건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 문건에 따르면 최규하 대통령과 이희성 육군참모총장이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부대에 각각 3000만원씩 격려금을 지급했고, 전두환 보안사령관도 이들과 함께 300만원의 격려금과 소 7마리를 중식용으로 내려보냈다.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전두환은 당시 군을 비롯해 국내의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던 실권자였다”면서 “신군부가 기록한 <5공 전사>에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최고 실권자의 행적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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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050600195&code=940100#csidx5ea7ea819194dc69cd7d9611970e9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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