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중단하고, 북미공동성명 이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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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8 11: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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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매우 생산적 담화,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의견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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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 사실을 알렸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5시20분께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을 잘 방문해 김 위원장과 만났다"며 "우리는 (올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들에 계속 진전을 이뤄갈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처] | |
| ⓒ 연합뉴스 |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의 4차 방북 비핵화협상 결과에 대해 북한 쪽에서도 즉각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매우 생산적이고 훌륭한 담화",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가를 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8일 오전 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을 접견한 소식을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폼페이오 장관을 만난 김 위원장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을 "역사적인 조미수뇌상봉(북미정상회담)과 두 나라 사이의 관계발전을 위하여 여러 차례 평양을 래왕(왕래)하며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했다"고 이 보도는 전했다.
이어진 접견에서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6.12 북미공동성명이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고 "진심어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시했다. 이 보도는 김 위원장이 "예정된 제2차 조미수뇌회담을 계기로 전 세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해결과 지난 회담에서 제시한 목표달성에서 반드시 큰 전진이 이룩될 것이라는 의지와 확신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어 함께 오찬을 한 뒤 폼페이오 장관과 작별하면서 김 위원장은 "양국 최고 수뇌들 사이의 튼튼한 신뢰에 기초하고 있는 조미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앞으로도 계속 훌륭히 이어져나갈 것"이라며 "조만간 제2차 조미수뇌회담과 관련한 훌륭한 계획이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보도는 북한 매체로선 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의 만남을 상세히 보도한 편이고, 김 위원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반복해 실었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에 대한 북한의 환영입장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지난 8월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직후 북한 외무성은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담화를 냈고 북한 매체들은 비난 보도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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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신고보유세 무력화도 이명박의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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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법부에 의해 다스 실소유자임이 드러나고 징역 15년 형을 언도받자, 그의 개인 비리와 소위 '사·자·방' 비리를 다루는 기사가 언론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다. 모두 중요한 사안이고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런 기사들이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잘못된 정책으로 제도를 심각하게 후퇴시켰던 일이다. 사람 몸에 빗대 표현하자면, 부패와 비리는 피부에 상처를 내지만, 제도 개악은 뼈를 손상시킨다. 그만큼 영향도 오래갈 수밖에 없다.
보유세 혐오는 노무현에 대한 반감의 발로
대선 후보 시절부터 보유세 강화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정책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드러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후 노골적으로 ABR(Anything But Roh: 무조건 노무현과 반대로 한다는 뜻)을 표방했다. 취임 후 첫 사업으로 전봇대를 뽑더니 곧바로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작업에 착수했다. 종부세를 노무현 정부가 설치해 둔 전봇대쯤으로 여기는 듯 했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애오라지 전임자에 대한 반감으로 국가 대사를 결정했으니 정말 기가 막힐 일이었다.
이명박 정권에서 종부세 무력화의 총대를 맨 사람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그는 야인 시절 한때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토지가치세를 알리고 지지하는 신문 칼럼까지 썼던 인물이다. 권력을 갖자마자 과거 자신의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정책을 앞장서서 밀어붙이는 돌격대장 역할을 했으니 참 특이한 인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권좌에서 물러난 지금 두 사람 다 감옥에 들어가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렸던 권력자들의 말로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이명박 정부가 노골적으로 종부세 무력화 의지를 밝히고 있던 당시에 때마침 헌법재판소가 종합부동산세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과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려서 이명박 정부를 도왔다. 2018년 11월 13일 헌법재판소는 종부세 위헌 심판 판결에서 종부세 자체에 대해서는 합헌 판정을 내리면서도, 세대별 합산 과세에 대해 위헌 판정을, 주거 목적으로 1주택을 장기 보유하는 자에 대한 무차별적 과세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명박 정부는 '이게 웬 떡이냐!'는 듯이 즉각 종합부동산세법을 개정하여 원하던 종부세 무력화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종합부동산세법 개악의 내용과 결과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세기준 금액을 낮춰서 과세 대상자를 줄이고, 세율을 전반적으로 인하하는 동시에 과표 구간을 조정하여 세 부담을 경감했다. 그 뿐이 아니다. 소유 부동산 가액 계산 방식을 세대별 합산에서 인별 합산으로 변경하고, 2009년까지 100%로 올리도록 되어 있던 과표 현실화 계획을 중단해 버렸다. 이 또한 과세 대상을 축소하고 세 부담을 경감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 마디로 이때 이명박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종부세를 형해화시키는 조치를 취한 셈이다.
그 결과 2007년 48만 명에 달했던 종부세 납세 인원은 2008년에 41만 명으로 줄었고, 2009년에는 21만 명으로 격감했다. 그와 함께 2007년에 2조 7671억 원에 달했던 종부세 세수는 2009년에 9677억 원으로 줄었다. 그 과정에서 개별 납세자의 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2007년 종부세 납세자를 기준으로 계산한 1인당 평균 납세액은 2007년과 2009년 2년 사이에, 주택의 경우 330만 원에서 51만 원으로, 종합합산 토지의 경우 814만 원에서 392만 원으로, 별도합산 토지의 경우 4033만 원에서 2272만 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그림 1> 종부세 세수 구성의 변화

<그림 1>에 나타나 있듯이,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법 개정으로 종부세 세수 구성도 크게 바뀌었다. 개정 전에는 종부세 세수의 중심은 주택이었고, 그 다음 종합합산 토지, 별도합산 토지의 순이었다. 하지만 개정 이후 주택 종부세 세수는 셋 중 꼴찌로 밀려나고 만다. 한때 1조2000억 원을 초과했던 주택 종부세 세수의 크기도 2000-3000억 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는 주택 투기를 억제하던 종부세의 기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참여정부 때의 종부세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강남에서 시작되어 서울 전체를 집어삼킨 작금의 부동산 광풍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때 이명박 정부가 재산세에 대해서는 주택분을 제외하고는 감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참여정부가 세웠던 장기 강화 계획을 중단시켰을 뿐이다. 주택분 재산세의 경우에도 세율을 낮추고 과표 구간을 조정하여 세 부담을 경감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종부세보다 훨씬 약했다.
<그림 2>에 따르면, 종부세와 그 부가세(Sur-tax)인 농어촌특별세를 합한 중앙보유세 세수는 2009년에 급격히 감소한 다음 2016년까지 아주 완만하게 증가한 반면, 재산세와 그 부가세를 합한 지방보유세 세수는 한 번도 감소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009년 이후 두 세금의 세수가 증가한 것은 제도 변화가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자연적인 결과였다. 종부세는 소수의 부동산 과다 소유자에게 부과되고 재산세는 모든 부동산 소유자에게 부과되는 만큼, 두 세금의 세수 변화에 이런 차이가 드러난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 보유세 무력화 정책의 본질이 '부자 감세'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림2> 지방보유세 세수와 중앙보유세 세수의 추이 (단위: 천만 원)

이명박이 좌초시킨 노무현의 담대한 계획
더 큰 문제는 이때의 개정이 2007년 시점의 종부세만 후퇴시킨 것이 아니고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중장기 보유세 강화 정책 전체를 무력화시켰다는 사실이다. 종부세는 2007년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고 계속 강화되던 중이었다. 참여정부는 보유세 강화 정책의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두고 있었는데, 그에 의하면 2005년 현재 0.15%였던 보유세 평균 실효세율은 2017년까지 1%로 올라가고, 3.5조원이었던 보유세 세수는 2017년에 34.5조원으로 증가하게 되어 있었다. 이 담대한 계획이 이명박 정부의 보유세 무력화 조치 때문에 좌초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이 도중에 좌초하지 않고 2017년까지 지속되었다면, 한국에서 더 이상 부동산 투기가 발을 붙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대폭 감소했을 것이고 토지와 집은 이용할 사람들만 구입하는 물건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기업들이 생산적 투자는 하지 않고 토지시장을 기웃거리는 일과, 노동자들이 힘에 넘치도록 대출을 받아서 무리하게 집을 사고 땅을 사는 일은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부동산공화국'은 해체되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되었을 것이다.
이명박 집권은 역사의 비극
노무현 대통령 다음에 이명박이 집권한 것은 여러 모로 역사의 비극이다. 이명박 정권은 종부세를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종부세 도입과 보유세 강화의 선봉장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까지 죽음으로 몰고 갔다. 노무현의 죽음이 온 국민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면, 종부세 무력화는 이 나라 경제제도의 골간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명박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밀어붙인 뉴타운 사업은 전국 곳곳에서 흉물을 남기고 중단되었다. 서민이 거주하던 저렴한 주택들이 대량 멸실된 것은 그 대가였다. '보금자리 주택'이라는 미명을 내걸고 공공주택 공급을 추진했지만, 실상은 공공분양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이었을 뿐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반토막났다. 뉴타운 사업과 보금자리 주택 정책의 결과는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지속된 살인적인 전월세난이었다. 거기다가 사대강 사업으로 국토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으니, 무자격자 모리배를 대통령으로 뽑은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노무현을 잃고 아파했던 많은 국민들의 마음은 제법 치유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명박이 국토에 남긴 상처와 부동산 제도에 남긴 결함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많이 소홀하다. 종부세와 노무현 대통령이 함께 운명했음을 기억한다면, 그리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분발을 촉구한다.
이란군 부사령관 미국은 허약하고 나약한 존재라고 비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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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외신기자들의 코멘트를 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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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현장] 박지원 코리아타임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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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월1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에서 각국 취재진이 대형모니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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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가 되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기자들 책상 앞쪽에 온통 파랗게 칠해놓은 단상에 올라 대표단이 북한에서 보낼 하루 일정을 브리핑했다. 이는 미리 고지되지 않아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에 따라 기사의 주제가 결정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윤 수석은 브리핑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손을 든 기자를 지목하고 바로 매체명과 기자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아는 청와대 기자들’의 정해진 질문만 받는다는 불만도 나왔다. 종종 끈질기게 손을 든 기자의 질문도 받았지만 수석은 대체로 ‘현지 상황에 따라서 스케줄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내가 확인해 줄 만한 정보는 없다’ 내지는 ‘미국 측과도 긴밀하게 협의를 해오고 있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추가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그 자리에서 문제제기한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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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월18일 오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마련된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정상회담 첫날 일정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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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사인 영자신문도 영어로 기사를 쓰는 점에선 외신과 같을지 모르나 출입처에 나가고 국내 이슈를 더 긴밀하게 보도한다는 점에서는 외신과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자국의 시선이 크게 반영되는 외신기사들보다 한국의 논리와 관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보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매체다. 일련의 외신기자 인터뷰 거절 과정을 겪으며 한반도 문제를 보도함에 있어 영자신문 기자로서의, 혹은 나의 ‘시선’이 부재했음을 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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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원 코리아타임스 기자 |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의 진짜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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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가폭력과 유해 발굴의 사회문화사' 펴낸 노용석 교수
지난 노무현정부 시절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장동료' 노용석 교수가 최근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출간했다. 그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을 연구했고 유해 발굴 사업을 주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 전후기 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개 과정, 피학살자들의 유해 발굴 과정, 그리고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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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표지 | |
| ⓒ 산지니 | |
그는 현장에서 얻게 된 풍부한 사례와 자료에 이론을 더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순으로 유해발굴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유해발굴의 의미를 단순히 가족의 시신을 발견하는 '좁은 단위'에서 국가와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이야기하는 '넓은 단위'로 확장하여 해석하고 있다.
지난 9월 8일부터 10월 1일까지 저자와 이 책과 관련하여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유해 발굴, 국가기구가 아닌 민간단체에 의해 실시
| ▲ 노용석 교수 | |
| ⓒ 노용석 | |
- 지난 1950년 7월경 대전지역 민간인 학살의 진실은 국가 공권력의 명백한 잘못이었음이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 입증되었다. 하지만 지난 2015년의 학살피해자들의 유해발굴은 정작 국가기구가 아닌 민간단체에 의해 실시되었다. 왜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유해발굴이 국가기구가 아닌 민간단체에 의해 실시되었다고 보나?
"국가가 가해자임에도 민간단체에 의해 발굴이 실시된 것은 외형적으로 볼 때 법적, 정치적으로 과거사 청산에 대한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의례적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 국가는 민간인 피학살자와 같은 죽음에 대해 국가의 의무를 수행할 근본적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발굴이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방치된 죽은 자의 유해를 발굴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적군이라 할지라도 전사한 이들의 유해를 발굴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의 문화적 조건이며 의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한국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과정으로서의 유해 발굴이 아니라 사회의 의례를 완결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유해 발굴이 필요한 것이다."
- 많은 시간 동안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들은 사회의 밝은 부분으로 나오지 못했다. 왜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학살 피해자들이 어둠속에서 살아야 했다고 보는가?
"민주화과정 이후에도 본질적으로 유해 발굴이 필요한 부분은 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데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민간인 피학살자의 죽음은 개인이나 가족 혹은 공동체에게는 크나큰 아픔일 수 있지만, 국가에게 이 죽음으로 인해 얻어지는 효과는 미미할 뿐이었다. 민주화된 정권 역시 피학살자에 대한 유해 발굴이 큰 범주에서 볼 때 새로운 집단 정체성을 창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민주화와 반민주화의 문제가 아니라 과도하게 국가정체성만을 강화하려는 것이 문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인식은 바뀌어야 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큰 범주에서 '민주화' '반민주화'라는 카테고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단정체성이 자리 잡는 순간에 '개인의 기억과 위령'이 얼마나 보장되는가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그 죽음들이 국가에 의해 희생된 것이라면, 당연히 국가는 집단성 이외에 개별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의례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또한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은 개별적 위령의 보장을 떠나 사회적으로 기념되어, 다시는 그러한 악행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 기념 구조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개인의 기억과 위령', 그리고 '사회적 의례'를 형성하기 위한 기반이 부족하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죽음들이 아직까지 정착할 수 없는 것이다."
유해 발굴, 악행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기제로서의 역할
| ▲ 노용석 교수 | |
| ⓒ 노용석 | |
- 지난 200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민간인 학살관련 유해발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해발굴은 우리 사회의 역사와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또한 어떠한 문화적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나?
"유해발굴의 상징성은 단순히 인간의 뼈를 지상으로 수습한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실 유해발굴은 고고학적이고 법의인류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행위로 인해 얻어지는 것은 잊힌 소수자의 기억과 진실을 사회적으로 공유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유해발굴은 의례적으로 볼 때 비정상적인 죽음을 당하여 누구도 모르는 곳에 암매장되어있던 이들에게 편안한 안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의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결국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발굴은 비정상적 죽음을 당하여 암매장되어 있던 이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의례적 행위이며, 또한 이들의 기억과 존재를 사회적으로 승화시켜, 다시는 이러한 악행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기제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유해 발굴 업무를 담당하면서 다양한 지역의 유해 발굴을 주도하였는데 당시 민간인학살 희생자들의 유해발굴을 현장에서 직접 실시하면서 느낀 점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유해발굴을 실시하면서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현재까지 한국에서 유해발굴을 실시하는데 있어서 시스템적인 측면이 많이 보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발굴을 실시하는 조직 및 체계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지만, 유해발굴을 바라보는 입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은 유해를 발굴하여 진실을 규명하고 싶어 하지만, 발굴된 유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기념하고 위령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지식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단지 유해발굴의 역사가 짧아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기념과 위령에 대한 사회적 합의 및 체계가 원숙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은 전국적인 규모로 자행되었다. 그러나 1960년 4.19혁명 이후 특별히 경상남북도를 중심으로만 민간인 학살 유족회 결성과 진상규명 요청 운동이 진행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우선 경상남북도의 많은 지역은 한국전쟁 중 인민군이 들어오지 않은 지역이었으며, 설사 인민군이 들어왔다 할지라도 오랜 시간 동안 인민군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이것은 한국전쟁 초반 낙동강을 중심으로 약 3개월간의 지난한 교전이 지속되었으며, 이후 1950년 9월 이후 전황이 빠르게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의 많은 지역은 이승만 정부가 전쟁초기 빠르게 후퇴를 하는 바람에 제법 긴 '인공' 시기를 겪었으며,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민간인들이 북한군에 동조하거나 '부역'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역혐의'는 1950년 9월 이후 다시 남한정부가 인민군 점령지역을 재수복했을 때 상당히 많은 보복과 학살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이러한 유형의 사건을 '부역혐의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라고 말한다.
부역혐의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다른 유형의 학살과 비교해 볼 때 개인적 원한과 보복이 짙게 깔려 있으며, 상당히 잔인한 형태의 린치가 가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해당 사회의 전반적 경향은 공포와 침묵으로 바뀌게 되고, 많은 경우 누구도 학살과 관련한 담론을 거론하지 않게 된다.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의 경우 1950년 9월 재수복 이후 상당수의 부역혐의자에 대한 보복이 행해졌고, 이로 인해 해당 지역의 피학살자 유족 혹은 주민들은 4.19혁명이 발생했다 할지라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어떤 규탄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향후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 노용석 교수는 2005년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 사업을 총괄하였다. 현재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 <폭력과 소통>(공저), <트랜스내셔널 노동이주와 한국>(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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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신고“내가 전쟁물자를 취급했나? 난 나무를 심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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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6 13: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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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에너지자립 마을인데 실업률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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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28] 독일의 경험 (상)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 말
독일 동부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에 있는 펠트하임(Feldheim)은 주민 수가 130명 남짓인 농촌이다. 통일 전 동독 지역이었던 이 마을은 수도 베를린에서 자동차로 약 두 시간이 걸리는 시골인데도 세계 각지에서 방문객이 꽤 찾아온다. 주민들이 쓰는 모든 전기와 난방을 태양광·풍력·바이오연료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에너지전환(에네르기벤데) 모범마을'이기 때문이다.
돼지와 양, 옥수수와 밀을 키워 생계를 꾸려온 이 마을에는 현재 55개의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여기서 연간 250기가와트시(GWh)의 전기를 만든다. 옛 군용부지에 조성한 태양광단지에서는 연간 2.75GWh의 전력을 생산한다.
또 농가의 돼지분뇨에서 바이오가스를 추출하고 이것으로 열병합발전기(CHP)를 돌려서 연간 4.15GWh의 전기를 얻는다. 1GWh는 4인 가족 기준으로 300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전력량으로, 이 마을에서 생산한 전기는 1퍼센트(%) 정도만 주민들이 쓰고 나머지는 판매된다. 마을 사람들은 또 폐목재에서 나온 우드칩을 태우는 바이오매스 시설과 열병합발전소에서 얻은 열에너지로 난방과 온수를 쓴다.
쓰고 남는 전기 팔아 농가소득 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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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 펠트하임 마을의 태양광단지. 과거 군용부지였던 45만제곱미터(㎡), 축구장 약 60개 규모의 초지에 태양광 모듈 1만여개를 설치했다. 주민들이 방목하는 양떼가 태양광 패널 아래를 오가며 풀을 뜯고 있다. | |
| ⓒ 펠트하임 신에너지포럼 | |
주민들이 쓰고 남은 전기는 '에네르기크엘러(Energiequelle)'라는 지역에너지 회사를 거쳐 독일 내 다른 도시에 판매된다. 지역에너지 회사는 판매 수익을 마을 주민과 나눈다. 주민들은 풍력·태양광 발전시설 부지 임대료도 받는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얻는 수익은 평균적인 독일 가정이 내는 연간 전력요금(2014년 기준 978유로·약 128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7월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BMWi) 초청으로 펠트하임을 방문했던 권필석(44)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지난달 10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로 마을에서 쓰는 에너지를 모두 충당하고, 이익까지 얻을 수 있으니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더라"고 전했다. 그는 "독일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정부의 꾸준한 정책 지원과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미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는 2009년 설립된 신재생에너지 전문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30여년 꾸준히 추진해온 '에네르기벤데'
독일에는 펠트하임처럼 '에너지 자립'과 '소득 보전' '일자리 창출'에 두루 성공한 마을의 사례가 많다. 이런 마을과 도시들이 모여 독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에너지전환을 이루고 있다. 석탄과 석유를 줄이는 '탈화석연료',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탈원전'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산업경쟁력도 세계 최강수준으로 유지하는 나라로서 각국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독일은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를 오는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는 탈핵일정을 지난 2011년 이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2050년까지 생산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원에서 얻는다는 목표로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을 줄여가는 중이다.
오는 2030년까지 1990년도 탄소배출량 대비 55%를 감축하기로 하는 등 기후변화대응에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러면서도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자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탄탄히 하고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탈원전을 확정한 2011년 이후 6년간 독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47%로, EU 평균 1.38%를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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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은 신축건물의 재생에너지 활용 및 에너지 효율화를 의무화하고,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수도 베를린에 있는 연방의회 의사당은 1999년 재건축을 계기로 지붕의 유리 돔과 거울 기둥을 통해 자연채광 효과를 극대화하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전력 수요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 |
| ⓒ 제정임 | |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독일 에너지전환의 뿌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전력의 80%를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에서 얻었다. 하지만 1970년대 두 차례의 세계적 석유파동으로 충격을 받은 후 '에너지원 다양화' '에너지 효율화'를 고민하게 됐다.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원자력발전이 부상했지만 방사능의 위험성과 핵산업의 비민주적 의사결정에 불안을 느낀 시민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격렬한 반핵운동에 나섰다. 여기에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지자 '원전 역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자리를 잡았다. 체르노빌 사고 후 독일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이 추진되지 않았다.
1990년대 기후변화의 위협이 세계적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독일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정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주된 방향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규제하고 재생에너지에는 경제적 유인(인센티브)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독일 정부는 1991년 세계 최초로 재생에너지 판매가격을 보장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했다. 또 화석연료·원자력보다 재생에너지를 우선 이용하도록 하는 규제를 만들었다.
1998년에는 전력시장 자유화로 발전(생산)과 송·배전(공급) 업무를 분리해 민간에 개방했다. 전기를 생산하고 전송, 판매해 공급하는 과정을 특정 회사가 독점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전력 도·소매 시장에서 경쟁을 촉진한 것이다. 같은 해 집권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사회민주당(SPD)-녹색당 연정은 1999년 화석연료로 발전한 전기와 휘발유에 환경세를 도입했고, 2000년에는 기념비적인 재생에너지법(EEG)을 제정했다. 이 법은 재생에너지 생산자가 향후 20년간 킬로와트시(kWh)당 고정된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관련 산업 발전에 기폭제가 됐다.
원전의 경우 사민당-녹색당 연정이 '2022년 무렵까지 100% 탈원전에 도달한다'는 합의를 이뤘으나 2005년 사민당과 대연정을 통해 집권한 기독민주당(CDU)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10년 자민당(FDP)으로 연정 파트너를 바꾼 뒤 이 기조가 흔들렸다.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탈원전에 따른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원전 가동기간을 2036년까지 연장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독일 정부는 정계·학계·산업계·종교계·시민사회 대표로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했고, '끝장토론' 등을 거쳐 '2022년까지 모든 원전 폐쇄'를 확정했다. 2011년 당시 남아 있던 원자로 17기 중 10기가 지난해까지 폐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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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2주 후인 2011년 3월 26일 독일 시민들이 수도 베를린에서 원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베를린 외에도 함부르크, 쾰른, 뮌헨 등 주요 도시에서 약 25만명이 거리로 나와 ‘중단 없는 탈원전’을 촉구했다. | |
| ⓒ Flickr | |
'프로슈머'가 이끄는 에너지 민주주의
독일이 '탈화석연료'와 '탈원전'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게 된 원동력의 하나는 지역자치와 민주주의 전통에 뿌리를 둔 '분산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석연료·원자력 등 대규모 발전소를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보다 소규모 분산배치가 쉬운 재생에너지 시설의 특성상 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던 에너지 생산·공급 시스템이 지역 단위로 원활하게 나누어졌다.
독일 재생에너지기구(AEE)에 따르면 2001년 66개에 불과하던 지역에너지협동조합이 2015년 1000개로 급증했다. 독일의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현재 독일 전체 재생에너지 시설 중 42%가 지역에너지협동조합·농민·일반가정 등 시민 소유다. 독일의 4대 메이저 발전회사(E.ON, RWE, Vattenfall, EnBW) 소유 시설은 5.4%에 불과하며, 지역 군소회사 등으로 범위를 넓혀도 기업 소유 발전소 비중은 15.7%에 그친다.
자기가 사는 곳의 에너지 시설을 소유한 시민들은 에너지 사업의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해 지역 여건에 맞는 시스템을 능동적으로 설계·통제하고, 판매이익을 나눈다. 일반 시민이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에너지 프로슈머'가 되고, 전기를 소비하는 지역과 생산·전송하는 지역이 분리되지 않는 '에너지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규모 원전이 들어선 바닷가 마을 주민들이 생태환경 파괴와 방사능오염 등의 피해를 겪고, 도시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산골마을 등에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갈등이 빚어지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비민주주의'와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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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한적한 산길에 자리 잡은 주택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전력 소비자인 지역주민들이 가계나 마을협동조합 단위로 생산에도 참여하기 때문에 이익 공유와 함께 ‘에너지 민주주의’가 증진되고 있다. | |
| ⓒ 제정임 | |
지역에서 쓰는 전력을 자급해 수익을 내는 분산형 시스템은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 기반이기도 하다. 2016년 AEE 조사에 따르면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독일 시민들의 지지도는 93%에 달한다. 권필석 부소장은 "독일에서 풍력·태양광 등 발전시설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높은 이유도 재생에너지의 경제적 이익을 (프로슈머인 주민들이) 함께 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50년 재생에너지 목표는 전체 발전량의 80%
독일 정부는 2016년 기준 전체 발전량 중 33.9%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20년 35%, 2030년 50%를 넘어 2050년에는 8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 7월 12일 독일에너지·물산업협회(BDEW)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수력발전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이미 36.3%까지 늘어나 석탄발전(35.1%)을 추월했다. 1990년 재생에너지 전체 전력생산 비중이 3.6%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장세다. 세부 에너지원별로는 풍력이 17.6%, 태양광 7.3%, 바이오가스 7.1% 등이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은 탈원전 정책이 확정된 2011년 당시 17.6%에서 7년 만에 11.3%로 줄었다.
| ▲ 1990년과 2018년 1~6월 독일의 전체 발전량 대비 발전원별 비중 변화. 석탄·원자력발전은 크게 줄고 풍력·태양광·바이오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 ⓒ IEA, BDEW, 나혜인 | |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추진된 에너지전환정책의 결과, 독일은 2016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7% 줄이는 데 성공했다. 향후 감축 목표는 2020년 40%, 2030년 55%, 2050년에는 80%~95%다.
독일 재생에너지산업은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함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재생에너지 분야에 고용된 노동자 수는 약 33만명으로, 2004년 대비 두 배 이상이다. 연방경제에너지부는 2020년까지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매년 1만8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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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신고10.4기념 민족통일대회 “평화·번영·통일 새역사 써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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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공동호소문 채택… 김영남·리선권·조명균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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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5일 평양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 발표 11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면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해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역사를 써나갈 것을 다짐했다. 남북은 이날 오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민족통일대회를 갖고 공동호소문을 채택, “남북 정상이 두 손을 굳게 잡고 확약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분열과 대결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진로를 밝혀주는 민족공동의 이정표”라며 이같이 밝혔다. 남북이 10.4선언 발표를 기념한 공동행사를 열어 함께 호소문을 발표하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언을 발표한 이래 처음이다. 남북은 또 공동호소문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계속 전진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펼쳐 나가야 한다”면서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남북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늘의 경이로운 성과들은 우리 민족 스스로 주인이 되어 이루어낸 귀중한 결실이고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땅에서 전쟁위험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우리의 강토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은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엄숙히 천명하였으며 9월 평양공동선언은 그 실천방안을 명백히 밝혀주었다.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철저히 준수하고 이행해 삼천리강토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남과 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접촉과 왕래를 활성화해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해나가야 한다”면서 “남북 사이의 협력과 교류, 접촉과 왕래는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하나로 이어주는 실천적 방안이다. 각계각층의 왕래와 접촉, 다방면적인 대화와 협력, 다양한 교류를 활성화하여 민족적 화해와 통일의 큰 강물이 더는 거스를 수 없이 남북 삼천리에 굽이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뉴시스에 따르면, 민족통일대회에선 앞서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연설을 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10.4선언의 계승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는 새로운 희망으로 높뛰는 민족의 박동이 있고, 강렬한 통일 의지로 빛나는 겨레의 넋이 있고, 머지않아 현실로 나올 우리의 소망과 꿈이 담겨져 있다”며 “온 겨레는 사상과 제도 차이를 초월하고, 누구나 다 평화와 번영, 통일의 대업을 위한 민족적 대의에 모든 것을 복종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분열의 고통과 대결을 겪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자기의 힘, 자기의 지혜, 자기의 뜻으로 하나 된 강대한 조국을 일떠세우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평화와 번영, 통일로 가속화하려는 성스러운 여정에 언제나 지금처럼 두 손을 꼭 잡고 민족의 휘황한 앞날을 앞당겨나가자”고 호소했다. 다음 연설에서 리선권 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은 민족의 생사가 달린 것으로, 북남 관계의 개선과 발전의 최대 문제”라며 “북남 당국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시켜 군사분야 합의서의 이행을 점검하고 전쟁위협을 완전 종식시키고 실천적 대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빠른 시일 안에 철도와 도로 현대화 착공식을 가져 9월 평양선언을 힘차게 이행해야 한다”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이 지금까지 중단된 것은 안타깝다. 북남당국은 이들 사업의 새로운 길을 마련하고, 이행 의지가 얼마가 확고한가를 세상 사람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쪽을 대표해선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연설했다. 조명균 장관은 연설에서 “난관이 있을 때마다 남북은 협의하면서 어려움을 넘어서 왔다. 앞으로도 남과 북은 이 땅의 공고한 평화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 함께 해나갈 것”이라며 “11년의 시간을 넘어 남북 정상이 만났다. 이제 남북은 분단 70년을 넘어 누구도 가지 못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이다. 동해에서 서해까지, 한라에서 백두까지 번영의 결실을 거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해찬 이사장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선언부터 평창올림픽, 4·27판문점선언, 9월 평양선언에 이은 일련의 과정은 분단 70년을 청산하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향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족은 적대와 분단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한반도에서 살게 될 것”이라며 “어떠한 일이 따를지라도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씩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꾸준히 내딛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회 주석단 앞줄엔 남쪽 공동대표단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 오거돈 부산시장, 원혜영 의원, 지은희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 이창복 6.15공동실천선언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등이 앉았다. 북쪽에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 박명철 6.15북측위원장 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안명국 조평통 부위원장 등이 자리했다. 대회가 열린 인민문화궁전엔 평양 시민 30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관련기사icon10.4선언 기념 평양 ‘민족통일대회’ 남쪽 참가단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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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중심 통일론 30년, 이제 '동독'에서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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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베를린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인근에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의 잔해. 베를린 시내 곳곳에 장벽이 보존되어 있다. ⓒ특별취재팀
▲ 본 기획은 독일 신연방주에서 분단과 재통일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별취재팀
“다스는 MB것” 인정 못하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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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적폐청산 그만하자는 중앙·동아, 아직 멀었다는 한겨레·경향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이고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점이 넉넉히 인정된다.” 11년만이다. 2007년부터 지금껏 수없이 반복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에 대해 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것이라고 결론 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제 92세까지 복역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는 5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16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대통령에게 7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 7070만원을 선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의 실소유주로 인정되며 중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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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 6일자 1면 사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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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이번 재판의 핵심은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을 1987년 설립된 알짜 자동차부품회사 다스(설립 당시 대부기공)의 실소유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16개 혐의 중 절반에 가까운 뇌물, 횡령 등 중형이 불가피한 7개가 다스와 얽혀 있고,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실소유주로서 각종 불법 행위에 따른 이익을 받은 것으로 인정됐다”고 보도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이자 최종결정권자로 관여하면서 95년부터 2007년까지 12년간 회삿돈 246억 원을 빼돌린 것으로 결론 냈다. 한국일보는 “검찰 공소사실에 적시된 횡령액 339억 원 중 73%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스와 관련해 삼성으로부터 받은 585만 달러 중 522만 달러 부분도 뇌물로 판단했다. 청와대 공무원에게 다스 미국 소송을 지원하게 했고 국가정보원 자금을 상납 받고 탈세 방안까지 검토·보고하게 했다는 검찰 측 주장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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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일보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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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자인=안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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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자 종합일간지는 1면 머리기사로 또 다른 전직대통령의 1심 선고를 일제히 보도했다. 한겨레·경향신문을 비롯해 동아·중앙일보까지 대다수 신문이 “다스는 MB것”이란 대목을 1면 제목으로 뽑았다. 반면 조선일보는 ‘이 전 대통령 징역 15년·벌금 130억’이란 제목을 달았다. “다스는 MB것”이란 대목이 제목에 없는 이유는 사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설 제목은 ‘이 전 대통령 다스 실질적 소유자 맞는가’였다.
조선일보는 “기업 소유권은 주식 보유 여부가 핵심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스 주식은 이 전 대통령의 형 등 친척들이 대부분 갖고 있고 이 전 대통령은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뒤 “만약 이 판결대로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면 민사소송을 통해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나. 그럴 수도 없다고 한다. 형사적으로 실소유주이니 처벌받고, 민사적으로 실소유주가 아니니 되찾을 수 없다면 법리를 떠나 일반의 상식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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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6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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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다른 보수신문과 대조적인 논조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국가 원수의 권력 사유화”…착잡한 MB 중형’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판결은 세상에 없다. 정치적 사건일수록 찬반양론이 거세다. 법관에 대한 인신공격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날 재판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밝힌 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보수 정부 9년에 대한 법적 심판이 이어지면서 철저한 과거 청산도 좋지만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MB 징역 15년, 청산과 단죄 이젠 매듭지을 때’란 제목의 사설에서 “많은 사람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적폐 청산에만 언제까지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어제 MB에 대한 1심 선고로 노무현 정부와 현 정부 사이에 낀 보수정권의 두 수장에 대한 단죄가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이제 청산과 단죄를 매듭짓고 대한민국의 부강한 미래를 보고 나아갈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두 명의 전직대통령에 대한 재판결과를 끝으로 적폐청산을 그만하자는 반면, 조선일보는 판결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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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 6일자 6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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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성향의 신문들은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이제야 20여년 국민 속인 ‘죗값’ 받은 MB’란 제목의 사설에서 “그는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이라 주장하며 옥중 수사를 거부했고 이날 선고공판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측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한때나마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최소한 다스 문제에서 국민을 속인 데 대해서만이라도 이제는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영포빌딩에서는 각종 사찰과 정치공작 관련 자료들이 대거 압수됐다”며 “후속 수사도 성역 없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직 멀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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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신문 6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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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법의 심판을 받음으로써 이 땅의 정의는 한 발짝 더 나아가게 되었다”며 이번 판결을 높게 평가한 뒤 “1심 재판은 끝났으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국정원과 군·경찰 등의 인터넷 댓글 공작과 관련해 직접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에 대한 강경 진압 등 국가폭력 사건의 책임자로도 지목되는 터다.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한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수리아, 조선 양국 의회관계발전방안 논의-우호친선 과시, 《추가》
본문
| 수리아-조선 두 나라 우호친선관계발전 논의 | ||||||||||||||||||
| 기사입력: 2018/10/05 [20:1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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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아, 조선 양국 의회관계발전방안 논의-우호친선 과시
현재 수리아 의회대표단이 조선을 방문 중에 있다. 수리아 의회대표단의 조선 방문에 대해서 당사국인 수리아의 《사나통신》과 인방(隣邦)인 이란의 파르스통신, 레바논의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가 관련 사실을 비중있게 다루어 보도하였다. 사나통신은 두 차례에 걸쳐 수리아 의회 대표단이 조선을 방문하여 양국 관계 특히 의회 간의 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한데 대해 비중있게 다루어 보도를 하였다. 또 레바논의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 역시 두 번째 수리아 의회 대표단이 최태복 조선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회담을 한데 대해 상세히 보도를 하였다.
우선 수리아 사나통신은 10월 3일 자에서 평양발로 “(수리아)인민회의대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대표들과 수리아와 조선의 의회관계발전강화방안을 협의하였다.”라는 제목으로 관련 사실을 첫 보도하였다. 계속해서 사나는 “조선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안동춘은 수리아인민들의 용기 있는 의지(원문-입장)와 테러에 맞서 싸우고 있는 수리아 지도부의 지도력을 열렬히 칭찬하였다.”며 조선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안동춘이 이스라엘,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지원하고 있는 국제 테러조직들에 맞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리아 인민들과 지도부들에 대해 존경의 말을 하였음을 전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안동춘은 수리아 대표단의 조선 방문은 두 나라의 튼튼한 우호친선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수리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우호친선위원회를 통해 양국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는 수리아는 테러주의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라의 화해를 이루며, 테러주의에 의해 파괴된 나라를 재건하는 등의 세 가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수리아 의회 대표단은 화요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양국 의회의 관계를 강화하고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조선의 경험을 배워(원문-통하여) 수리아의 국익을 증대해나가기로 하였다고 사나통신이 보도를 하였다.
한편 레바논의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은 수리아 인민회의 의원대표단의 조선방문에서 가진 수리아와 조선과의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 논의를 한데 대해서 상세히 보도를 하였다.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는 “조선 대표단장 수리아와 정부차원의 회담”라는 제목으로 관련 사실을 자세히 보도하였다.
AMN는 보도에서 “(수리아)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오늘 오전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이번 새로운 회의는 수리아 의회대표단이 조선의 수도를 방문한 그 주(週)에 이루어졌다.”고 보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력에 대하여 그들 나라의 경의를 표하였으며, 이어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가 수리아 대표단의 방문은 두 나라 사이, 특히 의회 간의 관계 발전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보도는 수리아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들에 대한 수리아의 입장과 수리아에 대한 조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고 전하여 수리아가 비록 국제테러집단들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의 침략으로 대단히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조선과의 우호친선관계를 더욱더 발전시켜 나갈 의사를 표명하였음을 전하였다.
한편 수리아 사나통신도 10월 4일 평양에서 있었던 최태복 조선최고인민위원회 의장과 수리아 인민회의 대표단과 열린 회담에 대해서 상세히 보도를 하였다. 사나통신은 “수리아, 조선 양국관계발전방향에 대해 논의”라는 제목으로 관련사실을 전하였다.
계속하여 통신은 “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그 회담은 수리아 의회대표단들이 조선을 방문하여 이루어졌다.”고 하여 조선 최고인민회의 의장인 최태복과 수리아 인민회의 대표단과의 회담이 열렸음을 전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자들의 지도력에 대해 그 나라의 경의를 표명 양국 관계를 더욱더 강화할 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조선 관리들의 수리아에 대한 경의를 표시한데 대해 수리아 인민회의 의원 대표단을 이끌고 조선을 방문한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는 수리아 대표단의 방문은 두 나라 사이, 특히 의회 간의 관계 발전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고 사나통신은 전하였다.
마지막으로 양 국의 대표들은 회담에서 조선인민들을 지지하는 수리아의 입장과 수리아에 대한 그들의 지지 입장을 각각 표명하였다고 사나통신이 보도하였다.
사실 본 보도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수리아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우호친선을 가진 우방이라고 하여 쉽게 방문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수리아 의회 대표단들이 조선을 방문하여 양국의 우호친선을 더욱더 발전시키기 위해 회담을 진행했다는 것은 두 나라가 어떤 관계에 있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우선 조선과 수리아는 두 나라가 우호친선관계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중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조선과 수리아의 관계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은 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가 수리아 대통령으로 있을 때인 1971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수리아는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위기에 빠진 수리아에 구원의 손길을 보낸 나라가 바로 조선이고 김일성 주석이다. 당시 조선은 수리아에 구원병을 파병하여 <제 1차 수리아-이스라엘 전쟁>에서 수리아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는 사실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수리아에 패배를 한 것이 아니라 조선에게 패배를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조선의 도움으로 제 1차 수리아 이스라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은 조선과의 우호친선관계를 맺게 되었다. 당시 승리를 거둔 수리아는 2011년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자신들이 조직, 육성, 군사훈련, 정보자료 제공, 전투지휘, 폭격 또는 특수군파견, 미사일 포격 등의 지원을 하는 고용병 테러집단들과 반군세력들의 침략에 의해 나라가 위기에 빠지기 직전까지 40년 이상을 아랍세계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전하게 인민들이 생활을 하는 살기 좋은 나라를 꾸려왔다.
이렇게 조선과 수리아는 40년 이상을 두 나라 사이에 형제우애와 같은 우호친선국이었다. 물론 수리아가 위기에 빠져들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나라의 우호친선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두 나라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기념일이면 빠짐없이 친서를 보내어 상대국을 축하하였다.
물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수리아전 역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조선의 지원이 커다란 지탱점이 되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사심이나 편견없이 이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실제 2016년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수리아 정부당국과 반군세력들이 긴장완화를 위한 회담을 가졌었다. 그때 회담장에서 반군세력 대표단을 이끌고 있던 대표단 단장이 수리아 정부당국 대표에게 “수리아에 조선의 특수부대가 비밀리에 들어와서 수리아 정부군들을 돕고 있다. 그 조선의 특수부대는 <찰마-1> <찰마-6>이라고 한다.”고 하여 수리아를 배후에서 조선이 지원을 하고 있다고 지적을 하였다. 참고로 여기서 <찰마>는 아마도 조선 말 <철마>를 잘 못 발음해서 그렇게 불려진 듯 하다.
이와 같이 수리아가 위기에 빠진 현재에도 조선과 수리아는 끈끈한 우호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번 수리아 인민회의 의원들이 조선을 방문한 것은 두 나라 사이의 변치않 는 우호친선과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아마도 머지않아 수리아는 서방제국주의세력들이 지원하고 있는 테러분자 및 반군세력들과의 전쟁에서 승래를 거둘 것이다. 그 이후에 조선과 수리아의 우호친선관계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 끈끈한 관계로 발전을 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수리아전에서 이러한 조건들도 함께 고려하면서 수리아전에 대한 본지의 보도를 접하면 수리아전 및 예멘정에 대해 훨씬 더 이해가 빠르고 깊게 될 것이다. 실제 자주진영의 가장 강력한 보루이자 지탱(중심)국가는 조선이다.
10월 10일 조선로동당창건 73주년을 기념하여 수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조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내왔다. 조선 중앙통신은 10월 5일 자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보내온 축전의 내용을 보도하였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축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수리아 대통령은 "로동자,농민,지식인들을 비롯한 인민대중속에 깊이 뿌리박고 자기의 민족적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투쟁하고있는 혁명적이며 대중적인 당들은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온갖 도전들에 맞서 조국을 부강하게 건설하고 나라의 독립과 자주권을 수호해나가고있습니다."라고 하여 오늘 날 조선이 적대세력들의 온갖 제재와 고립압살정책에도 불구하고 인민대중이 령도자와 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견디기 힘든 고난의 고비를 넘기고 비단 정치와 군사력에서 뿐 아니라 비약적으로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경제부분 등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발전하는 조선에 대해 칭송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축전에서 "나는 귀 당의 령도를 받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계의 온갖 테로분자들과 맞서 싸우는 수리아인민을 지지해주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면서 수리아에서의 반테로전이 거의 마감단계에 들어섰으며 수리아가 온갖 테로와 침략,식민주의세력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것을 확언합니다."라고 하여 현재 수리아에서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과 그 주구들인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 나라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디마스쿠스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준동을 하고 있는 테러집단들과 소위 반군세력이라는 무장집단들과의 7년 여간의 기나긴 전쟁에서 승리가 눈 앞에 다가서 와 있음을 강조하였다.
조선 로동당창건 73주년을 기념하여 수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가 보낸 축전의 내용은 이미 아래에서 보도한 기사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즉 축전의 "로동자,농민,지식인들을 비롯한 인민대중속에 깊이 뿌리박고 자기의 민족적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투쟁하고있는 혁명적이며 대중적인 당들은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온갖 도전들에 맞서 조국을 부강하게 건설하고 나라의 독립과 자주권을 수호해나가고있습니다."라는 내용은 바로 10월 3일 자에서 사나통신이 보도한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조선의 경험을 배워(원문-통하여) 수리아의 국익을 증대해나가기로 하였다."라는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즉 조선이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비약적으로 이룩하고 있는 성과들 그리고 그 과정들을 수리아도 따라 배워 자국도 자주적이고 부강번영하는 수리아를 건설하겠다는 말이다.
또 축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나는 귀 당의 령도를 받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계의 온갖 테로분자들과 맞서 싸우는 수리아인민을 지지해주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면서 수리아에서의 반테로전이 거의 마감단계에 들어섰으며 수리아가 온갖 테로와 침략,식민주의세력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것을 확언합니다."라고 한 내용은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가 한 "수리아는 테러주의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라의 화해를 이루며, 테러주의에 의해 파괴된 나라를 재건하는 등의 세 가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고 한 내용을 역시 구체화하였으며 확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국제적 테러주의자(행동-테러리즘)들이 극렬하게 수리아에서 준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결고 수리아의 미래가 담보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가 한 세 가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국제테러주의에 승리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나즈다뜨의 간접화법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수리아에서의 반테로전이 거의 마감단계에 들어섰으며 수리아가 온갖 테로와 침략,식민주의세력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것을 확언합니다."라고 직접적이고 확정적으로 언급을 하였다.
또 조선로동당창건 73주년을 축하하는 축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나는 귀 당의 령도를 받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계의 온갖 테로분자들과 맞서 싸우는 수리아인민을 지지해주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한다고 한 내용은 이미 보도된 아래 기사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자들의 지도력에 대해 그 나라의 경의를 표명(10월 5일 자 사나통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력에 대하여 그들 나라의 경의를 표하였다.(10월 5일 자 알 마스다르 소식-AMN)" "조선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안동춘은 수리아인민들의 용기 있는 의지(원문-입장)와 테러에 맞서 싸우고 있는 수리아 지도부의 지도력을 열렬히 칭찬하였다.(10월 5일 자 사나통신)"이 보도한 내용이다.
수리아 사나통신과 레바논의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 그리고 알 마스다르 소식지(AMN)의 내용을 인용하여 보도한 이란의 파르스통신의 보도 내용들과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조선로동당 창건 73주년을 축하하여 보낸 축전의 내용은 똑같은 내용이다. 이렇게 중동의 세 나라인 수리아, 레바논, 이란 등이 이번 수리아 인민회의 의원단의 평양방문 소식을 크게 보도를 한 것은 해당 하나들과 조선 사이에 얼마나 끈끈한 우호친선관계를 맺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본지에서는 바로 조선과 중동의 자주적인 나라들과 또 세계 자주적인 나라들 사이에 우호친선관계가 어떻게 맺어졌고, 또 온갖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변치 않고 이어가는 지를 잘 알고 있기에 수리아전, 예멘전 그리고 베네주엘라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온 인류의 미래와 관련된 대단히 중요한 인류사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날 펼쳐지고 있는 국제정세를 대해야 옳바른 이해를 할 수 있으며, 미래에 어떤 세계가 펼쳐지게 될 지에 대해서 전망을 할 수가 있다.
----- 번역문 전문 -----
수리아, 조선 양국관계발전방향에 대해 논의
2018년 10월 4일
평양, 사나-(수리아)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그 회담은 수리아 의회대표단들이 조선을 방문하여 이루어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자들의 지도력에 대해 그 나라의 경의를 표명 양국 관계를 더욱더 강화할 것을 강조(원문-촉구)하였다.
다음은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가 수리아 대표단의 방문은 두 나라 사이, 특히 의회 간의 관계 발전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조선인민들을 지지하는 수리아의 입장과 수리아에 대한 그들의 지지 입장을 표하였다.
마나흐 알-쁘리예흐/마날
----- 번역문 전문 -----
조선 대표단장 수리아와 정부차원의 회담
레이쓰 아보빠델 - 2018년 10월 4일
베이루트, 레바논 (오전 4시 50분) - (수리아)인민회의대표는 최태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오늘 오전 양국 관계발전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이번 새로운 회의는 수리아 의회대표단이 조선의 수도를 방문한 그 주(週)에 이루어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수리아에서 치열한 전쟁에 직면하여 수리아 인민들의 확고한 입장과 그 나라의 지도력에 대하여 그들 나라의 경의를 표하였다.
다음은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가 수리아 대표단의 방문은 두 나라 사이, 특히 의회 간의 관계 발전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국민들에 대한 시리아의 입장과 시리아에 대한 조선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 번역문 전문 -----
수리아, 조선 양국 의회관계발전방안 논의
2018년 10월 3일
평양, 사나-(수리아)인민회의대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대표들과 수리아와 조선의 의회관계발전강화방안을 협의하였다.
조선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안동춘은 수리아인민들의 용기 있는 의지(원문-입장)와 테러에 맞서 싸우고 있는 수리아 지도부의 지도력을 열렬히 칭찬하였다.
안동춘은 수리아 대표단의 조선 방문은 두 나라의 튼튼한 우호친선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수리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우호친선위원회를 통해 양국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 부분을 위해서 수리아 인민회의 부의장인 나즈다뜨 안조르는 수리아는 테러주의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라의 화해를 이루며, 테러주의에 의해 파괴된 나라를 재건하는 등의 세 가지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고 말했다.
수리아 의회 대표단은 화요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양국 의회의 관계를 강화하고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조선의 경험을 배워(원문-통하여) 수리아의 국익을 증대해나가기로 하였다.
Shaza/Manal 사자/마날
----- 원문 전문 -----
Syria, DPRK discuss further steps to improve bilateral relations
4 October، 2018
Pyongyang, SANA-A delegation from the People’s Assembly discussed with Supreme People’s Assembly Speaker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Choe Thae Bok means of bolstering bilateral relations.
The meeting came within the Syrian parliamentary delegation’s visit to DPRK.
The DPRK’s official affirmed his country’s admiration for the great steadfastness of the Syrian people and its leadership in the face of the fierce war on Syria, calling for strengthening bilateral relations between both countries.
In turn, Deputy Speaker of the People’s Assembly Najdat Anzour said that the visit of the Syrian delegation comes within the framework of developing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especially the parliamentary ones.
He also expressed Syria’s appreciation for the DPRK’s people and their stances towards it.
Manar al-Frieh/Manal
----- 원문 전문 -----
North Korean delegation heads to Syria for meeting with gov’t
By Leith Aboufadel - 2018-10-04
BEIRUT, LEBANON (4:50 P.M.) – A delegation from the People’s Assembly discussed with the Supreme People’s Assembly Speaker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Choe Thae Bok the means of bolstering bilateral relations earlier today
This new meeting comes just weeks after a Syrian parliamentary delegation visited the capital of the DPRK.
The DPRK’s official affirmed his country’s admiration for the steadfastness of the Syrian people and its leadership in the face of the fierce war on Syria
In turn, Deputy Speaker of the People’s Assembly Najdat Anzour said that the visit of the Syrian delegation comes within the framework of developing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especially the parliamentary ones.
He also expressed Syria’s appreciation for the DPRK’s people and their stances towards it.
----- 원문 전문 -----
Syria, DPRK discuss developing parliamentary relations
3 October، 2018
Pyongyang, SANA-A delegation from the People’s Assembly discussed with members from the Supreme People’s Assembly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means of developing parliamentary relations between Syria and DPRK.
Vice-Chairmen of the Supreme People’s Assembly An Tong-chun hailed the courageous positions of the Syrian people and their leadership in the fight against terrorism.
An Tong-chan considered that the visit of the Syrian delegation shows the strength of the friendly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stressing the importance of enhancing them via the Syrian DPRK friendship committee.
For his part, Deputy Speaker of the People’s Assembly Najdat Anzour said that Syria continues to work on three principles which are eliminating terrorism, achieving national reconciliation and reconstructing what has been destroyed by terrorism.
The Syrian parliamentary delegation is on a current visit to DPRK which started on Tuesday with the aim of bolstering parliamentary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benefiting from the DPRK experience in various levels.
Shaza/Man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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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민족통일대회 방북단, 북측 환영만찬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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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4 23: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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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는 ‘자백’한다…5월 학살, 시작과 끝은 ‘전 장군’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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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신군부 비밀 책자 입수]신군부는 ‘자백’한다…5월 학살, 시작과 끝은 ‘전 장군’이라고
강현석·배명재 기자 kaja@kyunghyang.com
입력 : 2018.10.05 06:00:19 수정 : 2018.10.05 06:01:01
1980년 5월19일 군수뇌부 회의서 공수여단 투입 승인
21일 계엄군 자위권 발동·최규하 25일 광주행 ‘결정’
“전두환의 합수부에 매일 광주 상황 보고” 낱낱이 기록
“광주사태는 6·25 이래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국민적 비극이었다.” <제5공화국 전사> 4편 ‘광주사태의 교훈’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4일 현재 정부로부터 5·18민주화운동 사망자로 인정받은 시민은 353명(사망 166명·상이 후 사망 111명·행방불명 76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비극을 초래한 자들은 누구인가. 경향신문이 전권을 모두 입수한 <제5공화국 전사>는 ‘비극’의 주모자로 전두환 전 대통령(87)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 장군’은 <5공 전사> 5·18 부분에서 모두 3번 직접 언급된다.
그는 2개 공수여단의 광주 추가 투입이 결정된 5월19일부터 군 수뇌부 회의에 참석했다.
5월21일에는 발포명령과 다름없는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을 결정하는 회의에도 참석했다. 전남도청 무력진압작전을 이틀 앞둔 5월25일 최규하 대통령의 광주행을 결정한 것도 그였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발간한 회고록에서 자신을 “(5·18)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라고 했다. 그는 “나의 유죄를 전제로 만들어진 5·18특별법과 그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에서조차도 광주사태 때 계엄군의 투입과 현지에서의 작전지휘에 내가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집요한 추궁이 전개됐지만 모두 실패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신군부 세력이 직접 기록한 <5공 전사>는 그의 유죄를 입증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5월19일부터 하루 걸러 열린 군 수뇌부 회의에 참석했다. <5공 전사>에 따르면 그날 계엄사령부는 전북에 위치한 35사단에 전북과 전남의 도로를 통제할 것을 지시해 광주 소식이 ‘북상’하는 것을 막았다. 또 20일부터는 20사단을 광주에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노태우(수경사령관)·정호용(특전사령관) 등 신군부 핵심도 참여한 회의 분위기에 대해 <5공 전사>는 “이들의 논의는 신중하면서도 진지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5월21일에는 국방장관실에서 발포명령인 ‘자위권 발동’을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도 참석했다. <5공 전사>는 “2군사는 육본으로 올라와 참모총장을 뵙고 현장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자위권 발동을 건의하였다. 건의를 들은 참모총장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하면서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자고 하여 국방장관실로 갔다. 장관실에는 장관을 비롯하여 합참의장,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 수경사령관, 육사교장, 특전사령관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또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 문제는 그 회의에서 자동적으로 결정되었다”고 적었다.
전남도청 무력진압작전을 이틀 앞둔 5월25일 최규하 대통령의 광주 방문도 전 전 대통령이 최종 결정했다. <5공 전사>는 “최 대통령의 대광주시민 방송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합수본부 안전처장은 24일 당시 국방장관 및 각 군 참모총장과 광주사태에 관한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합수본부장 전두환 장군께 보고키 위하여 국방부로 갔다”면서 “‘최 대통령의 광주 선무활동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건의를 하자 전 장군은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라고 희색을 띄우면서 국방장관에게 건의했고 국방장관은 그 길로 청와대로 직행, 최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다”고 기록했다.
전 전 대통령은 “5월19일 이후 정보 기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 합수부와 보안사가 ‘눈과 귀’ 역할을 했다. <5공 전사>에는 “매일 광주로부터 사태 진전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었던 합수본부 안전처”나 “현지 상황을 직접 보고받고 처리하는 육본이나 합수본부의 실무처장급 참모”라는 표현이 나온다. 계엄군의 모든 작전 상황이 전 전 대통령이 본부장이던 합수부로 동시에 보고되고 있었던 것이다.
보안사는 도청 무력진압작전계획인 ‘상무충정작전’에 대해 육군본부의 계획을 먼저 보고받은 뒤 동의하기도 했다. 육본은 보안사의 동의를 받은 뒤 계엄사령관을 찾아가 작전을 건의했다. 또 보안사는 국방부 보안부대장을 통해 무력진압계획이 조기에 실시될 수 있도록 장관을 압박했다.
전 전 대통령의 5·18 지휘는 <5공 전사> 외에 계엄군에 지급된 격려금을 기록한 보안사 문건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 문건에 따르면 최규하 대통령과 이희성 육군참모총장이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부대에 각각 3000만원씩 격려금을 지급했고, 전두환 보안사령관도 이들과 함께 300만원의 격려금과 소 7마리를 중식용으로 내려보냈다.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전두환은 당시 군을 비롯해 국내의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던 실권자였다”면서 “신군부가 기록한 <5공 전사>에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최고 실권자의 행적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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