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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ICBM 시험발사... 쿠바인 수백만 반미 시위

류경완의 국제평화뉴스 19.05.03(301)
  • 류경완 KIPF 공동대표
  • 승인 2019.05.03 13:43
  • 댓글 1
▲ 2018년 5월30일 베네수엘라를 방문한 쿠바의 미겔 디아스카넬 국가평의회 의장(왼쪽)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하면서 악수를 하고 있다. 2018.6.15[사진 : 뉴시스]

1. 수백만 쿠바인들이 미국이 새로 부과한 제재와 베네수엘라 전복을 위한 개입에 분노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석유 및 의료인들을 교환하는 협정을 포함해 다수의 합작 거래 등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베네수엘라는 일 4~5만 배럴의 석유를 보내고 쿠바는 2만2천 명의 의사 및 전문가들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뉴스1>
☞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 "양키 제국의 위협과 도발, 거짓말, 비방 등에 강력하고 단호하고 혁명적인 대응을 할 것"

2. 37명을 참수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형집행에 대해 유엔과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 십대 소년 몇 명은 (반정부 평화)시위에 관한 왓츠앱 메시지를 보낸 이유로 처형당했고, 대부분 잔인한 고문과 가족살해 위협 등으로 거짓 자백을 했지만, 변호인 접근이 거부되고 법정에서도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South Front>

3. 미국이 ICBM '미니트맨3'를 시험발사했습니다. 1970대 실전 배치된 미니트맨3는 히로시마 원자탄의 23배 위력을 보유한 W78 열핵탄두 3기를 실을 수 있고, 무게 35톤, 최고 시속 마하 23, 사거리 1만3천km에 3단 고체연료 로켓을 사용합니다. 미국은 약 400기의 미니트맨3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30년까지 운영할 방침입니다. <통일뉴스>
☞ 미 공군 "21세기 위협과 동맹국을 안심시키기 위한 차원의 시험 발사"

4. (과이도의 군사 봉기 시도를 진압한) 마두로 대통령이 군의 단결을 촉구하며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그는 "베네수엘라에는 워싱턴의 달러에 자신을 판 반역자들의 쿠데타 시도를 물리치고 단합한 군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합>
☞ 마두로 "미, 개입 위해 학살과 내전 이용... 볼리바리안 군대, 쿠데타 시도에 맞서 충성... 세계에 역사적인 교훈 줘"
☞ NYT "트럼프 행정부, 반 마두로 세력의 (군사 봉기)능력 과대평가하는 오류 저질러"

5. 마두로 대통령이 쿠바로 망명할 준비까지 다 마쳤으나 러시아가 만류했다고 폼페오 장관이 주장한 데 대해 마두로는 "폼페오 장관, 제발 좀, 이건 정말 어이없는 소리다"라고 일축했습니다. 자카로바 러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베네수엘라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도덕성을 실추시키려 시도하고 있으며 가짜 뉴스를 정보전의 일환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Sputnik/연합>

6. 사설 군수업체 블랙워터의 설립자인 프린스가 마두로 대통령 축출을 위해 5천 명의 용병 군대 파견을 제안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와 베네수엘라 망명자들로부터의의 개인 투자와 수십억 달러의 베네수엘라 동결자산으로부터 4천만 달러의 자금을 요청했다고 소식통이 밝혔습니다. <Sputnik>

부유한 자동차 부품 재벌가 출신인 프린스는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에 이르는 분쟁 지역에 사설 용병들을 파견했고,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미군을 민간 계약자로 대체하려 시도했습니다. <Reuters>

☞ 볼턴, 1월 "콜럼비아에 5천명의 병사" 메모 노출
☞ 폼페오 "미,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선호하지만, 필요하다면 군사 행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 라브로프 "미국의 공격적인 조치, 심각한 결과 초래할 것"

7.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대해 한층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WSJ이 보도했습니다. '원유 수출봉쇄'에 이어 '달러화 돈줄'을 아예 틀어막겠다는 취지로, 석유화학 제품부터 소비재까지 이란의 무역 전반을 '봉쇄'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란의 석유화학 제품은 원유에 이어 두 번째 수출품으로 연간 360억 달러에 달합니다. <연합>

8.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국제 원유시장에서 이란을 제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현재 이란, 베네수엘라,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 세계 모든 시장에 영향을 끼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우디와 UAE가 미국의 요구대로 대이란 제재로 발생하는 원유 공급 공백을 메우기로 한 데 대해서는 "OPEC은 집단으로 결정하는 기구로, 개별주의는 없다"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습니다. 또 "OPEC은 정치화되지 않으려 한다"라며 "OPEC 회의에 올 때는 여권을 집에 놔두고 오라고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연합>
☞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 "이란은 국익 위해 OPEC에 가입... 다른 회원국이 이란을 위협하거나 국익에 해가 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

9.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우리 정유공장의 기술은 여러 나라의 원유에 적합하지 않다"면서 "이란에서 수입하는 원유를 단기간에 다른 나라 원유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중국도 "이란과 협력하는 것은 국제법 틀 안에서 이뤄지는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것"이라며 이란산 원유를 계속 수입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 로이터 "한국, 인도, 일본 등은 미국 조치 수용"

10. 이스라엘과 미국 당국자들이 향후 10년 간의 이스라엘 원조계획에 관한 협상을 시작했다고 디펜스뉴스가 보도했습니다. 네타냐후는 방위원조 예산을 50% 늘려 2018~2028년 기간 420억~450억 달러를 원하고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가 결정한 2007~2017년 총 지원액은 300억 달러였습니다. <The Times of Israel>

11. 미국 매체 '더네이션'의 탐사보도 기자 팀 셔록은 스페인 주재 북 대사관 습격 사건 전반을 다룬 기사에서 "스페인 경찰과 정보기관 당국자들은 에이드리언 홍 창이 스페인에서 CIA 당국자들과 만났다는 '믿을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는 스페인 당국이 확보한 증거에 사진과 통신기록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합>

한편 미 연방 검찰은 기소장에서 홍 창이 지난 2월 22일 오후 5시쯤 대형 칼과 방어용 스프레이, 가짜 총기 등을 소지한 6명의 용의자와 함께 북 대사관에 침입했으며, 외교관 3명을 포박하고 소윤석 상무관을 폭행한 뒤 화장실로 데리고 가 손을 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용의자들은 소윤석 상무관에게 탈북을 설득했지만, 소 상무관은 "나라를 배신할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이후 용의자들은 펜 드라이브, 컴퓨터, 폐쇄회로 영상이 포함된 하드 드라이브와 핸드폰을 탈취해 밤 9시 40분쯤 도주했습니다. 미국에 입국한 홍 창은 FBI 관계자와 만나 습격 사실을 시인했고, 대사관에서 압수한 물품을 건넸습니다. <통일뉴스>

12. KAL858기 추락 현장을 탐사 중인 신성국 신부는 1990년 미얀마 해양관리청에서 한국 정부에 KAL858기 동체가 나왔다고 연락해 한국 대사관에서 두 명이 나와 동체를 확인하더니 "KAL858기 부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라고 눈으로만 판명하고 끝냈다고 밝혔습니다. 미얀마 바닷가에 방치된 동체들은 결국 태국의 고물상으로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그동안 국토부와 국정원, 외교부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사실을 은폐하고 재수색 문제는 회피하며 사건의 진실을 조직적으로 덮어 직무유기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금년 내 KAL기 동체의 직접 수색을 예고했습니다.

13. 우리민족끼리는 최근 평택 미군기지에서 실시된 사드 모의탄 장착 훈련을 언급, "어렵게 조성된 조선반도의 평화분위기를 깨는 군사적 도발"이며, 북에 대한 "공공연한 위협 공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남 정부를 향해서도 "미국의 무모한 적대행위에 추종하다가는 좋지 못한 결과밖에 차례질 것이 없다"면서 "분별 있게 처신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미국은 남조선당국에 '속도조절'을 노골적으로 강박하고 있으며 북남합의 이행을 저들의 대조선 제재압박 정책에 복종시키려 각방으로 책동하고 있다"며,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바란다면 우리의 입장과 의지에 공감하고 보조를 맞춰야 하며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연합>
☞ 조선의 오늘 "남측 군 당국, 북남관계를 판문전선언 발표 이전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어" 
☞ 던퍼드 미 합참의장 "우리는 (한미연합)훈련을 종료하지 않았다. 훈련 범위를 조정... '오늘 밤 싸울' 준비태세 계속"
☞ 남북연락사무소 소장회의 10주째 불발

14. 조선중앙통신은 "(일본이) 그 무슨 '해상차단 활동', '국제적 압박공조', '납치문제 해결'을 떠들며 부산을 떨어대는 것도 평화 대세의 도래로 말미암아 '알몸'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저들의 군사 대국화 기도를 가리려는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며 "묻건대 가랑잎으로 알몸뚱이를 가릴 수 있는가"라며 일본을 조소했습니다. <자주시보>
☞ 아베 "조건 붙이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15. 시리아를 방문한 박명국 북 외무성 부상은 "우리는 시리아의 역내 재건을 돕는 데 기여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우린 항상 시리아와 같은 편에 서 있고, 시리아의 입장을 지지한다"며 "최근 서방 강대국의 폭력에 맞서 시리아군이 실현한 업적과 시리아 국민의 한결같은 모습을 평가한다"고 말했습니다. <뉴스1>
☞ 조선중앙통신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북 방문 의사 전해"

□ 2017년 대북제재 결의안에서 금지된 인도주의 연관 품목들 <민중의소리>
- 농업용 손도구들(삽, 호미, 가래 등), 농업, 원예, 혹은 삼림 기계용 칼날, 농산품 건조기, 농업용 분사기, 관개용 장비, 쟁기, 씨뿌리기 삽, 수확기와 탈곡기, 과일쥬스용 압착기와 분쇄기, 갖가지 농기구들, 곡식과 콩을 세척하고 분류하는 기계
- 식량과 음료를 개인이 가공하기 위한 기계들
- 트랙터와 트랙터 부품들, 농업용 트레일러, 농업용 차량과 카트
- 조립식 온실, 축사
- 손톱깎이, 의료용 소독기, 휴대용 스프레이, 소독용 자외선 램프
- 앰뷸런스, 장애인을 위한 이동장비
- 초음파장비, 심전도기, 피하주사기, 바늘, 카데터, 치과와 안과용 장비 등 의료장비들
- 인공호흡기와 같은 기계적 치료 장비들
- 장애인을 위한 정형외과 장비들, 엑스 레이 장비
- 의료용, 수술용, 치과용, 혹은 수의과용 가구(수술대, 병원용 침대)
- 금속 물탱크, 가정의 물 공급을 위한 펌프를 포함한 액체용 펌프
- 온수기, 정수기, 우물을 파기 위한 기계
- 금속관, 파이프, 파이프 연결장치
- 지붕공사용 자재, 외장재, 바닥재, 지붕 배수 장비
- 나사, 볼트, 못, 스테이플 등
- 난로, 화덕, 쇠살대, 레인지, 바베큐 시설 등
- 철, 강철, 혹은 알루미늄 철사, 알루미늄 호일
- 냉장, 냉동 장비, 발전기, 변압기, 인덕터, 배터리
- 원심분리기와 원심 건조기
- 전자장비(스위치, 계전기, 퓨즈, 순간고전압방지기)
- 태양전지판, 절연선, 절연케이블, 현미경
- 다양한 사무용품들(프린터, 프린터 카트리지, 플래시 드라이브, 바코드 스캐너, 스테이플러, 가위, 바인더, 종이클립 등)

[단신]
• 비건 8∼10일 방한할 듯…'워킹그룹 회의' 800만 달러 대북지원 등 협의 관측
• 김연철, 개성공단 기업인과 오찬…"앞으로 긴밀 소통"
• 6.15남측위 등 715개 단체, '4.27 민의 평화선언' 청와대와 미대사관에 전달
• 강제동원 피해자들, 전범기업 국내 재산 '강제몰수' 절차 돌입…일 정부 강력 반발
• 민변 "투자자-국가소송 첫 패소 판정문 비공개 약정 있었다"

• 북 자체 개발 스마트폰 '푸른하늘' 호평...'아리랑', '평양', '진달래' 브랜드도 대량 생산... 청년과학자들로 구성된 강력한 연구집단이 국산화 실현 
• 김영재 대외경제상 ""제재를 백 년 천 년 하려면 하라... 신경 쓰지 않는다"
• 미 국무부 "제재 이행이 적법한 대북 인도지원 방해해선 안 돼"
• 미 구호단체 '조선의 그리스도인 벗들'(CFK) 재방북...미 정부, 방북 승인 속도 빨라져
• 국제당뇨연맹 관계자들 방북…치료약·의료장비 전달
• 러, WFP 통해 400만 달러 대북 지원
• 폼페오, 최선희 제1부상의 거듭된 경고에 "위협 제거 시작하는 비핵화" 요구
• 트럼프-민주당, 2조 달러(2천330조원) 규모 인프라 재건 계획 합의
• '김정남 살해' 혐의 베트남 여성 출소…연루 인물 모두 석방, 사건은 미궁으로
• 일대일로, 126개국 이상 지지하는 국제 공동체의 새 얼굴, G20보다 크고 다원화... 중러 실크로드 구상, 유라시아를 대규모 자유무역지대로 전환 <Russian Insider>
• 일 국민 64% "평화헌법 바꾸지 말아야"...아베정권 개헌 반대 52%
•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 "성경에 쓰여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점령 권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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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이 제공하는 평화와 통일 뉴스 큐레이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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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징계’ 답변 피한 황교안, 도망치듯 끝난 30분짜리 광주행

황교안 “지역 간 갈등 있던 시대 있었다, 이제는 정말 한 나라 돼야”

광주 = 김도희 기자
발행 2019-05-03 17:47:38
수정 2019-05-03 23: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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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은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은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부당성을 알리겠다며 광주를 찾았지만, 쇄도하는 시민들의 분노만 맞닥뜨린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황 대표는 이날 광주 일정 내내 눈물과 고성, 생수와 찢어진 피켓 등이 동원된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자유한국당은 황 대표 취임 이후 지난달부터 광화문 집회, 전국 순회 투쟁 등 장외 일정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껏 진행된 장외 일정 중 지지자보다 비(非)지지자가 더 많이 몰렸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 단체 등이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다. 2019.05.03
5·18 단체 등이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다. 2019.05.03ⓒ뉴시스

광주시민 분노만 키운 황교안 방문,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

황 대표에 대한 광주의 감정은 싸늘함과 분노로만 표출됐다. 광주진보연대,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오월어머니회, 광주전남대학생진보연합 등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은 황 대표가 도착하기 30분 전인 오전 10시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현장에는 주최 측 추산 100여 명의 광주시민이 함께했다.

시민단체는 광주 송정역 앞에 모여 피켓을 들고 플래카드를 펼쳤다. 이들은 ‘5·18 역사 왜곡, 적폐 몸통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1700만 촛불, 170만 청원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세월호 7시간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국정농단 이석기 내란 음모 조작 황교안은 감옥으로’, ‘황교안은 박근혜다. 광주를 당장 떠나라’ 등의 문구를 내걸고 자유한국당 해체와 황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시민단체는 황 대표 도착에 앞서 “자유한국당의 5·18 망언에 대한 광주시민의 분노는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은 상태”라고 강조하며 “자유한국당과 황교안에 대한 광주의 마음을 똑똑히 보여주자”고 결의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광장 중앙에서 정부 규탄대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항의를 의식해 변두리로 장소를 옮겨 일정을 진행했다. 황 대표 도착 직전 일부 당원들이 ‘문재인 STOP! 광주·전남 시·도민이 심판합니다!’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며 집회 시작을 예고했다. 이에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는 시민들의 반발도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자유한국당 일부 당원은 “남의 당 대표 행사에 와서 감히 건방지게 뭐 하는 거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황 대표의 등장과 함께 긴장감은 더해졌다. 시민들은 각자 준비한 피켓을 들고 일제히 자유한국당 집회 현장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황교안은 물러가라”, “자유한국당은 해체하라” 구호가 울려 퍼졌고, 광장 한쪽에서는 시민단체가 준비한 차량 스피커를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흘러나왔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를 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이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집회를 하고 있다. 5·18 단체 등이 황 대표 뒤편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2019.05.03ⓒ뉴시스

이에 질세라 황 대표의 주변에 나란히 선 자유한국당 의원 및 당원들은 ‘경제 파탄 문재인 STOP’, ‘지역구의원 줄이는 선거제 반대’, ‘민주주의 파괴하는 공수처 반대’, ‘사법부 장악 공수처 반대’ 등 피켓을 들어 보였다.

황 대표는 가장 먼저 모두발언에 나섰다. 그는 “자유한국당 당원 여러분”을 부르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즉각적인 반감을 보인 시민단체들이 더욱 크게 “황교안은 물러가라”고 항의했다.

이에 황 대표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씀을 들으시라”고 말했다. 그는 몇 차례 발언을 이어가려 했지만, 진정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 더 이상 발언 진행은 어려웠다. 결국 황 대표는 마이크를 조경태 최고위원에게 넘겼다.

조 최고위원, 신보라 청년최고위원을 거쳐 황 대표는 마지막으로 다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광주 전남의 애국시민 여러분께서 피 흘려 헌신하신 거 아니냐. 그런데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말로 할 수 없으니 장외로 나왔다”고 밝혔다.

아울러 황 대표는 “저희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시민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경제를 살리겠다”며 “저희를 믿어달라. 경제 살리는 당은 자유한국당밖에 없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황 대표는 광주시민들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황 대표의 메시지는 광주시민들의 울분 섞인 목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전달되지도 못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 심판합니다' 행사를 마친 뒤 빠져나가고 있다. 지역 5·18 단체 등 시민단체가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촉구하며 황 대표 길을 막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 심판합니다' 행사를 마친 뒤 빠져나가고 있다. 지역 5·18 단체 등 시민단체가 '자유한국당 해체' 등을 촉구하며 황 대표 길을 막고 있다.ⓒ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행사를 한 뒤 5·18 단체 등의 항의를 받고 역무실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다. 2019.05.03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광주 광산구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행사를 한 뒤 5·18 단체 등의 항의를 받고 역무실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다. 2019.05.03ⓒ뉴시스

광주시민 질문에 아무 답도 않은 황교안, 역무실로 피신한 뒤 시민단체 눈 피해 전주행

도착부터 규탄대회 진행까지 20여 분만에 일정을 마친 황 대표는 자유한국당 일행과 함께 급히 역 안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황 대표로부터 ‘왜 광주에 왔는지’, ‘5·18 망언에 대한 사과는 없는지’ 등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한 광주시민들은 황 대표의 이동을 가로막았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진 일부 시민들은 황 대표를 향해 생수병에 든 물을 뿌리기도 했다.

황 대표는 시민들에 둘러싸여 수 분간 옴짝달싹 못 했다. 멈춰선 에스컬레이터를 다 오르기까지 10여 분이 걸렸다.

황 대표는 우산까지 펼쳐 든 경찰들의 보호 속에서 어렵사리 송정역 역무실로 피신했다. 하지만, 그에게 아무런 말을 듣지 못한 5·18 희생자 유가족들은 역무실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5·18 희생자 유가족인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은 “우리가 국회 앞에서 87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우리말 좀 전하고 싶다”, “몇 마디만 하려 한다”며 황 대표와의 대화를 요청했다. 그러나 황 대표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황 대표는 밖에서 기다리던 시민단체와 취재기자들의 눈을 피해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그는 전주행 열차를 타기 직전 기자들을 만나 ‘광주시민들한테 한마디 해달라’는 질문에 “지역 간의 갈등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는 정말 한 나라가 돼야 한다”며 “단일 민족인 한나라가 나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시민 여러분께서도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자유한국당 ‘5·18 망언’ 의원들의 징계와 관련된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남기지 않은 채 열차에 탑승했다.

이날 현장을 지켜본 40대 광주시민 A 씨는 “진상규명은 하나도 안 해주고 와서 얼굴만 비추고 가면 뭐하냐”며 “광주를 어질러놓고만 갔다”고 날을 세웠다.

70대 광주시민 B 씨는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패스트트랙을 해서 반대 운동을 한다고 온 모양인데, 전라도 사람들은 와도 받아주지 않는다”며 “4당이 국회에 돌아오라는데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B 씨는 “질 것 같으니 안 들어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볼 때 자유한국당은 정치를 잘못한 걸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 아마 자유한국당 당원들 빼고는 마음이 다 비슷할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은 많이 각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 =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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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채이는게 기자들이더니 이젠 아무도 안 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5/04 09:26
  • 수정일
    2019/05/04 09: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고성·속초 산불 한 달] 마지막 남은 대피소 가보니... "벌써 잊혀질까 두렵다"

19.05.03 22:40l최종 업데이트 19.05.03 23:09l

 

"시집 와서 60년 동안 맨들어 논 살림살이 눈 깜빡 할 사이에 다 태웠는데 그날을 어떻게 잊어? 농사꾼들인데 기계도 다 탔잖아. 모 심는 기계, 벼 베는 기계, 벼 말리는 기계... 얼른 감자도 숨고 옥수수도 숨어야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우. 이젠 테레비에 여기 불 난 얘긴 나오지도 않잖아? 한달 지나니까나 정치인이란 놈들은 코빼기도 안 비치고..."

고성군 용촌리의 산불 이재민 변아무개(76·여)씨가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지난달 4일 발생한 고성·속초 산불 이후 한 달. 변씨를 비롯한 고성 이재민 959명, 속초 이재민 173명은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남겨진 사람들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 이곳은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대피소다. 이재민 30명이 아직 여기에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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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위치한 이재민 대피소를 찾았다. 대피소 본부 격으로 한때 120명 넘는 이재민을 수용했던 이곳엔 현재 16개 텐트, 30명의 이재민만 남아있다. 각종 부식차, 그리고 기업이나 종교 단체에서 차려놓은 구호 부스들과 수십명의 자원봉사자로 붐볐던 체육관 앞은 이제 밥차와 세탁차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산불 대응 초기 운영되던 3개 대피소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대피소는 천진초 체육관이 유일하다.

고성군 관계자는 "이재민들이 생활하기 더 편한 연수원이나 콘도 쪽으로 대부분 인원을 이동시켰다"면서 "마지막 남은 천진초 대피소엔 주로 고령이라 콘도 생활을 불편해 하는 분들, 또는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데 차량이 없어 이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남아 계신다"고 설명했다. 고성군에 따르면 고성 이재민 959명 중 607명은 연수원과 콘도, 109명은 마을회관, 213명은 친인척이나 지인 집, 그리고 30명은 천진초 대피소에서 임시 숙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천진초 대피소 이재민 변아무개(76)씨는 "이쪽이 그나마 집에서 가깝고 버스가 많이 다닌다, 집은 다 탔지만 집터도 살피고 밭에도 왔다 갔다 해야 하지 않나"라며 "콘도가 편하다지만 우리 같이 차가 없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갈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변씨는 "여기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나처럼 집이 전소된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천진초 대피소에 남아있는 이재민들은 인근 봉포리, 용촌리, 인흥리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천진초 체육관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천진초 체육관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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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났지만 이곳 이재민들에게 그날의 기억은 아직 생생한 듯 했다. 누군가 얘길 시작하자 한 명 한 명 핸드폰을 꺼내 전소된 집터 사진을 내보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저녁 먹고 이렇게 혼자 누워 자고 있는데, 글쎄 동네 집사님이 '불이야!'하고 난리가 난 거야. 놀래서 자다가 그냥 튀어나왔지. 다음날 일 나가려고 옷하고 모자하고 방문 앞에다가 미리 준비해놨었거든. 손에 잡히는 대로 그것만 들고 이렇게 내복 바람으로 나온 거야. 너무 무서웠지.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이리로 휙, 저리로 휙, 그런 도깨비불이 없었다니까. 나오니까 벌써 집 앞에 불똥이 튀어가지고... 그냥 자고 있었으면 그대로 죽을 뻔 했지."

대피소 텐트에서 홀로 생활하는 김순분(81·여)씨가 당시를 회상하며 가슴을 쓸었다. 김씨 집은 결국 전소됐다고 했다. 최영자(65·여)씨도 "집이 다 타고 나니 생전 없었던 몽유병까지 생겼다"라며 "얼마 전엔 내가 새벽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뭘 막 뒤지더니 '우리 집에 불났어'하고 소리를 지른다고 남편이 그러더라, 시간이 좀 지났지만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시뻘겋게 타던 불이 머릿속에 계속 클로즈업 된다"고 호소했다.

이들 집처럼 완전히 불에 타버린 주택은 고성에만 353동에 이른다. 반소된 주택은 56동, 일부분만 탄 주택은 72동으로, 전체 481동의 주택이 산불 피해를 입었다. 속초는 총 84동의 주택이 피해를 봤다.

감기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고성 산불 이재민 김장호씨(65)가 마스크를 쓴 채 불이 나던 당시 상황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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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을 하니까 추운 건 아닌데,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그런지 밤에 잘 때가 되면 여기서 콜록, 저기서 콜록, 다들 감기 때문에 아주 고생들이야." (서아무개, 73세, 여)

"그래도 그나마 지금은 날이 풀려서 훨씬 낫지. 처음에는 날씨가 추워가지고 힘들었수. 늙으면 더 추워. 고맙게도 여기서 약도 주고 해서 맨날 먹고 있는데... 글쎄 한 달이 지났는데 감기가 낫질 않어. 늙은이가 맨날 약 타 먹는 것도 미안하고. 아이쿠..." (함상애, 80세, 여)


천진초 이재민들은 유행하는 감기와 기침 때문에 곤혹이라고 했다. 서아무개(73)씨는 "밥도 제때 주고 잠자리도 마련해줘서 크게 불편한 건 없지만, 불이 나서 경황이 없고 공동생활이 길어지니 아무래도 스트레스도 받고 몸이 약해지지 않겠나"라며 "한번씩 감기 안 걸린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대피소 내부에선 마스크를 쓴 이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노점순(57·여)씨는 "공기가 너무 안 좋아 아침 저녁으로 코피도 나고 감기가 안 떨어진다, 중학생인 딸도 독감에 걸려 병원에 5일간 입원했다"라며 "공기청정기라도 하나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스크 차림의 지아무개(15·여)씨는 "5월이지만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아침엔 아직 춥다"라며 "얼른 집이 복구돼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지씨는 천진초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유일한 학생이다.

더 큰 불안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한때 120명이 넘었던 천진초 대피소 이재민들은 주변 연수원과 콘도로 대부분 떠났다. 현재 천진초에 남은 텐트는 16개. 이곳 이재민들은 인원이 줄자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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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초 이재민들은 감기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점차 관심이 사라져가는 데에 대한 불안"이다.

"처음엔 여기서 아주 발에 채이는 게 기자들이었어. 자꾸 들이대니까 불편하고 싫었지. 근데 지금 봐. 아무도 없잖아, 아무도. 그냥 그때만 딱 '빤짝' 하고 끝인 거야. 이제 우리 얘긴 언론에 나오지도 않고 자꾸 밀리고 잊혀지고... 근데 지금까지 뭐 된 게 있나? 해결된 건 하나도 없는데, 아이고 참. 지금 어떻게 되고 있다고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고. 또 처음에는 대통령이고 장관이고 안 온 사람이 없어 여기. 근데 지금 봐. 며칠 지났다고 오지도 안잖아." (김준환, 61세, 남)

"뉴스 좀 봐봐. 아니 한국당 놈들 싸우는 거만 대문짝만하게 나오지 지금 '불재민'들이 이렇게 죽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하나도 안 나오잖아." (지병소, 63세, 남)

"소외된달까? 아무래도 그런 불안이 있죠. 아직 보상도 다 안 됐는데 벌써 잊혀지는 것 같고... 한전이랑 싸워야 한다는데 관심도 못 받으니... 예전에 여기 대피소에 사람들이 많았을 적에는 높은 사람들도 오고 관심도 많이 받고 그랬어요. 근데 지금은 신경도 안 쓰잖아요. 안 쓰는 텐트도 다 철거해 가고, 괜히 사람들 불안하게... 며칠 전에도 대통령이 왔다 갔는데 여긴 안 들르고 다른 데만 둘러보고 갔잖아요. 그런 게 서운하죠... 다들 사정이 있어서 여기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한연옥, 65세, 여)


이재민들은 피해 복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서 점차 잊혀지는 게 두렵다고 했다. "대피소에 많이 모여 있으면 관리하기도 힘들고 기사도 많이 나갈 테니까 정부에서 일부러 연수원이나 콘도로 분산시킨 것 같다"는 이재민들도 있었다.

지병소씨는 "긴급 재난 상태라고 언론에 말만 할뿐 긴급한 행동은 없었다"면서 "지금쯤 옥수수를 심었어야 사람들이 많이 놀러오는 여름 바캉스 철에 장사를 할 수가 있는데, 지원이 더뎌 벌써 물 건너 갔다"고 하소연했다. 지씨는 "빨리 추경을 하든 긴급 예산을 투입하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며 "한전이든 정부든 다들 무책임하다, 언론도 처음에만 떠들고 지금은 침묵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안은 불신으로 이어졌다. 백아무개(67·여)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4월 26일 산불 피해 지역 방문을 두고 "이제 천진초엔 사람이 얼마 안 남았으니 오지도 않는 것이냐"라며 "산불 피해 지역 온 것도 DMZ 행사 가는 참에 들른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산불 발생 다음날인 4월 5일 피해 지역 방문 시 천진초 대피소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4월 26일 오전 방문 땐 이곳을 찾지 않고 서울시공무원연수원과 성천리 마을을 방문한 뒤 DMZ '평화의 길' 행사로 떠났다.

4월 5일 방문 때 이곳에서 문 대통령과 악수했던 함상애(80·여)씨도 "대통령은 왜 한전 사장에게 보상하라고 한 마디도 못하는 것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지난달 18일 고압전선이 끊어지며 생긴 불티 때문에 산불이 발생했다는 국과수 발표가 나오면서 한전의 책임론이 부각됐지만, 아직 최종 경찰 수사 발표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또 다른 소외

지난 4월 30일, 한숨만 짓던 이재민들 얼굴에 잠시 안도와 감사의 표정이 찾아왔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보내온 성금이 배분됐기 때문이다. 집이 전파된 가구의 경우 계좌이체로 3000만원이 지급됐다. 천진초 대피소 이재민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저기서 "국민들에게 정말 고맙다. 앞길이 막막했는데 당장 굶어 죽진 않을 것 같다", "마음만으로도 고맙다. 이렇게 많은 성금이 모인 게 기적 같다", "국가가 해준 게 뭐가 있나. 다 국민들이 해준 것이다"는 등 탄복이 이어졌다.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천진초 대피소의 이재민들이 모여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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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천진초 대피소 이재민 중에 세입자가 나 포함해서 두 명이 있어. 집주인들은 다들 3천만원씩 성금 받았다는데 우린 아직 못 받았어. 답답하지... 혈압이 팍팍 올라가고... 불안하고..." (임아무개, 72세, 여)

그러나 함께 웃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세입자 이재민들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1일 '강원도 산불피해 종합복구계획 당정협의' 발표 때 "이번 피해와 관련 국민성금은 470억원(4.29, 잠정)이 모금되었으며, 전액 피해 주민을 위해 사용한다. 지난 4월 30일 전국재해구호협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주택 전파 3000만원, 반파 1500만원, 세입자 1000만원 등 주택 피해 복구에 우선 173억원을 긴급 지원했다"고 밝혔지만,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고성군 세입자의 경우에는 아직 1000만원의 모금액이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2일 통화에서 "고성군은 세입자 확인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라 속초, 강릉, 동해 등 다른 지역 세입자에게만 먼저 성금을 지급했다"면서 "고성군 세입자도 명단이 확정되는 대로 성금을 배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4월 30일엔 속초, 강릉, 동해의 총 31세대 세입자에게 성금이 지급됐다"면서 "아직 집계 중이지만 고성군 세입자 이재민은 110명 이상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세입자 이재민인 임아무개씨는 "아직 성금을 못 받은 것도 못 받은 거지만,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준 걸 이런 식으로 배분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집은 똑같이 탔는데 왜 집 가진 사람과 세 사는 사람을 다르게 취급하나"라고 했다. 천진초 대피소 이재민 중 또 다른 세입자인 이아무개(62·남)씨도 "세입자들은 집이 전소돼서 아무것도 없이 목숨 하나 남아있는 건데 국민 성금을 다르게 나눠주는 건 잘못된 것 아니냐"라며 "세입자들은 죽으란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세입자 이재민은 정부의 주택 복구 지원금(전파 1300만원, 반파 650만원)을 받지 못한다. 단, 6개월간 최대 300만원의 세입자 보조금을 지원 받는다. 2년간 무상으로 지원되는 7.3평짜리 조립식 컨테이너 주택 혹은 2년간 임대아파트 입주(관리비 본인 부담) 중 선택 지원은 세입자에게도 다른 이재민들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고성 산불 이재민 박병설씨(62)가 불에 탄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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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라는 거야, 그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거지 뭐. 당장 집 지을 형편은 안 되니까, 정부에서 지원해준다는 컨테이너 집만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거밖에 없어..."

박병설(62·남)씨가 타들어가는 담배를 털며 말했다. 대피소 내 다른 이재민들 얘기도 비슷했다. 하루 빨리 정부가 약속한 컨테이너 주택이라도 지급돼 일상이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고성군 관계자는 5월말이나 6월초께 조립식 주택 지급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대피소 생활이 앞으로도 최소 한 달 정도 더 남았다는 것이었다. 아직 천진초 대피소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 중 위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을 옮긴다.

"68년도 해일 났을 때 이후로 이렇게 심하게 동네가 망가진 건 처음이야. 내가 노가다를 하는데 집 뿐만 아니라 집에 쌓아놓은 자재들도 다 타버렸어. 정부가 원래대로는 못 지어주더라도 살 수는 있게끔만 집 만들어주면 나는 만족해. 내가 살아봐야 20년인데 뭐. 크게 바라는 거 없어..." (김장호, 65세, 남)

"알바 하는 카페에서 어른들이 보상될 거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부모님 걱정 하시지 않게, 다시 집 지을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지아무개, 21세, 남)

"돈 있는 사람들이야 다시 살아갈 수 있겠지만은, 우리 같이 보험도 안 들었고 돈도 없는 사람들은 앞길이 깜깜하우." (함아무, 79세, 여)

"나는 콘테이너 말고 임대아파트 지원 신청했어. 5월 중순부터 입주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근데 지금 가서 뭐해? 가전제품이고 뭐고 다 타서 아무것도 없는데. 들어가서 그냥 벽만 보고 있어? 최소한 다시 생활할 수 있게끔은 해줘야 들어가든 말든 할 거 아냐. 내가 혈압이 원래 없었는데 지금 거의 160까지 올라." (이아무개, 62세, 남)

"걱정은 안 해.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살았으니 됐다고 생각해야지..." (김아무개, 68세, 남)

"우리가 불낸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나서 너도나도 집을 잃었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참... 내가 이런 일 겪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딴 거 없어요.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게 다죠. 집으로요, 집으로." (왕아무개, 75세, 남)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고성 산불 이재민 차광주씨가 불에 타 무너진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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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 차려진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  천진초 대피소의 이재민들은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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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2번째 큰 황제펭귄 번식지 붕괴

남극 2번째 큰 황제펭귄 번식지 붕괴

조홍섭 2019. 05. 02
조회수 1010 추천수 0
 
2만여쌍 번식지 3년째 새끼 못 태어나…폭풍으로 해빙 일찍 녹은 탓
 
an1.jpg» 번식지 해빙 위에서 새끼를 기르는 황제펭귄. 헤엄칠 깃털이 나기 전에 해빙이 깨지면 새끼는 모두 익사할 수밖에 없다. 마이클 반 워르트, 미 해양대기국(NOAA) 제공.
 
남극의 겨울이 시작되는 4월 황제펭귄은 강풍에 떠밀려 빙붕 주변에 형성되는 정착빙에 모여 번식한다. 혹한 속에서 새끼가 태어나면 12월까지 새끼가 헤엄칠 수 있을 때까지 길러 바다로 데려간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황제펭귄 번식지에서 지난 60년 동안 계속된 일이었다. 그러나 남극대륙 북쪽 웨델 해에 위치한 핼리 만의 황제펭귄 번식지는 2016년 새끼를 한 마리도 길러내지 못했다.
 
그해 10∼11월 이례적인 폭풍이 불어 해빙이 너무 일찍 깨졌기 때문이다. 미처 헤엄칠 깃털이 나지 않은 새끼 황제펭귄 수 천마리가 바닷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an2.jpg» 세계 2번째 황제펭귄 서식지였던 핼리만 번식지(지도에 윈디 크리크 ‘Windy Creek’로 표기) 위치. 프레트웰 외 (2019) ‘남극 과학’ 제공.
 
해마다 1만5000∼2만4000 번식 쌍이 모여 ‘기후변화의 피난처’로 기대를 모으던 핼리 만 번식지는 2017∼2018년까지 3년 연속 황제펭귄의 번식에 실패했다. 이런 사실은 영국 남극조사대가 이 번식지를 수년 동안 정밀한 위성사진으로 관측한 결과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펭귄이 흰 눈 위에 남긴 배설물 오염 면적을 800㎞ 상공의 위성으로 관측해 개체수를 추정해 왔다. 피터 프레트웰 영국 남극조사대 연구원 등은 26일 과학저널 ‘남극 과학’에 실린 논문에서 “다른 황제펭귄 번식지에서도 해마다 번식 성공률은 들쭉날쭉하지만 이처럼 장기간 번식 실패가 이어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황제펭귄은 펭귄 가운데 가장 커 키 120㎝, 몸무게 40㎏에 이르며 20년을 산다. 이 펭귄은 얼룩무늬물범의 먹이이지만 다양한 물고기와 크릴을 먹는 중간 포식자로서 남극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an3.jpg» 핼리 만 번식지의 위성사진. 왼쪽 위가 붕괴 전 모습. 지난해 번식기(오른쪽 아래)에 극소수가 돌아왔다. 프레트웰 외 (2019) ‘남극 과학’ 제공.
 
이번에 사라진 핼리만에서는 세계 황제펭귄의 8%가량이 번식해 왔다. 다행히 번식에는 실패했어도 황제펭귄의 상당수는 이웃 번식지로 옮겨간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핼리만에서 55㎞ 남쪽에 있는 도슨-람튼 번식지의 황제펭귄이 평소의 수천 쌍 규모에서 지난해에는 1만4000여 쌍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해리 만 번식 쌍이 모두 이웃 번식지로 옮긴 것은 아니다는 얘기다. 
 
연구자들은 “위성사진을 샅샅이 뒤졌지만 새로운 번식지를 찾지는 못했고, 더 먼 곳의 번식지에 소수가 이동했을지는 모르지만 위성으로 파악은 안 된다”며 “황제펭귄이 번식을 포기하고 몇 년 뒤 다시 핼리 만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남극의 황제펭귄은 금세기 말까지 개체수가 50∼70%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황제펭귄이 해빙이 사라지는 재앙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장차 이 종이 어떤 처지에 놓일지 예측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an4.jpg» 황제펭귄의 번식 일정. 4월에 해빙에 오른 뒤 11월까지 새끼를 기른 뒤 12월 바다로 돌아간다. 폭풍으로 10∼11월 해빙이 깨지면 번식은 실패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eter T. Fretwell and Philip N. Tranthan, Emperors on thin ice: three years of breeding failure at Halley Bay, Antarctic Science (2019), doi:10.1017/S095410201900009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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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의백' 김원봉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였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의열단 '의백' 김원봉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였다

경향신문 선임 기자 https://leekihwan.khan.kr/

입력 : 2019.05.03 09:23 수정 : 2019.05.03 10:16
 

의열단의 초기멤버 사진. 의백(단장) 김원봉과 곽재기·강세우·김기득·이성우 등 창립 초기 단원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곽재기 의사의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를 분석해 확인했다. 1920년 3~5월 사이 중국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租界) 안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을 보면  신분노출을 꺼려 중국식 복장을 한 의백 김원봉 외 단원들은 모두 깔끔한 양복 차림을 하고 있다.

의열단의 초기멤버 사진. 의백(단장) 김원봉과 곽재기·강세우·김기득·이성우 등 창립 초기 단원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곽재기 의사의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를 분석해 확인했다. 1920년 3~5월 사이 중국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租界) 안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을 보면 신분노출을 꺼려 중국식 복장을 한 의백 김원봉 외 단원들은 모두 깔끔한 양복 차림을 하고 있다.

 

“내가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 지 몰라.” 약산 김원봉(1898~1958)과 친일경찰 노덕술(1899~1968)의 악연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물론 1차사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의열단 동지인 유석현(1900~1987)과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정정화 선생(1900~1991)의 회고담, 독립운동가 송남헌(1914~2001)의 <해방3년사>, 그리고 이런 자료들을 재구성한 <김원봉 평전>과 각종 논문 등을 종합해보자. 디테일은 어떨지 몰라도 대강의 윤곽은 잡을 수 있다. 1947년 3월 22일 서울 청계천 은신처에서 변소에 앉아있던 약산 김원봉(1898~1958) 선생이 체포됐다, 김원봉 선생이 누구인가.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의열단 의백(단장)이자, 조선의용대장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낸 불세출의 독립운동가였다. 그런 선생이 변소에서 큰 볼일을 보다가 채 뒷정리도 하지 못한채 엉거주춤 고의춤을 잡고 일어선 채로 붙잡히고 말았다. 이쯤으로도 치욕일진대 천하의 김원봉 선생에게 수갑을 채운 자가 바로 악질친일경찰 출신인 노덕술이었다. 노덕술은 한술 더떴다.

의열단 의백 김원봉 선생. 의열단을 이끈 이를 단장이 아니라 의백이라 했다. 의형제의 맏형이라는 뜻 이다. 남이지만 피를 나눈 형제처럼 유혈투쟁을 벌이겠다는 의미였다.

의열단 의백 김원봉 선생. 의열단을 이끈 이를 단장이 아니라 의백이라 했다. 의형제의 맏형이라는 뜻 이다. 남이지만 피를 나눈 형제처럼 유혈투쟁을 벌이겠다는 의미였다.

■노덕술에게 모욕당한 의열단장 

“의열단이라고 까불지 마라. 지금 이 나라에서는 빨갱이라면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아.”

선생이 “의열단이 너같은 친일경찰 놈을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꾸짖자 노덕술은 선생의 따귀를 때리며 참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었다. 노덕술은 독립투사를 때려잡는 악질경찰에서 해방 후에는 좌익분자를 색출하는 애국경찰로 둔갑해 있었다. 그렇게 노덕술에게 갖은 수모를 당한 김원봉은 의열단 동지인 유석현 선생(1900~1987) 앞에서 통곡했단다.

“조국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놈들과 싸울 때도 한 번도 이런 수모를 당한 일이 없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이런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의해 수갑을 차다니…. 이럴 수 있소. 내가 여기서는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 지 몰라.” 

1923년 1월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과 2월의 폭탄반입 사건을 다룬 동아일보 호외. 왼쪽 사진은 의열단 의백 김원봉 선생의 21살 사진이다.

1923년 1월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과 2월의 폭탄반입 사건을 다룬 동아일보 호외. 왼쪽 사진은 의열단 의백 김원봉 선생의 21살 사진이다.

정정화 선생(1900~1991)의 회고록에도 당시의 이야기가 나온다.

“언젠가 약산(김원봉)이 왜정 때부터 악명이 높았던 노덕술로부터 모욕적인 처우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몹시 분개했던 일이 기억난다. …의열단의 의백(義伯·의형제의 큰형님)이었고… 임시정부의 국무위원겸 군무부장을 지낸 사람이 악질 왜경 출신자로부터 조사를 받고 모욕을 당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민족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분개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이 아무래도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정화 선생은 “그런 약산이 얼마 후(1948년 4월) 월북했다”고 첨언했다. 노덕술과의 악연은 왜 김원봉 선생이 월북했는지를 그 이유를 알려주는 실마리가 된다. 

황푸군관학교 옛 정문. 김원봉 선생은 1926년 의열단원 20여명과 함께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 즉 국공합작으로 창설 운영되던 황푸 군관학교 제4기생으로 입교한다. 코민테른이 파견한 소련 군사고문단도 학교운영에 참여했다. 6개월간 교육받고 10월5일 졸업한 선생의 황푸군관학교 이력은 항일역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황푸군관학교 옛 정문. 김원봉 선생은 1926년 의열단원 20여명과 함께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 즉 국공합작으로 창설 운영되던 황푸 군관학교 제4기생으로 입교한다. 코민테른이 파견한 소련 군사고문단도 학교운영에 참여했다. 6개월간 교육받고 10월5일 졸업한 선생의 황푸군관학교 이력은 항일역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의열단의 맏형, ‘의열단 의백’ 김원봉 

김원봉 선생이 누구인가. 1920년대 이후 김구 선생과 함께 중국내 독립운동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분이다. 

선생의 이름은 12개나 된다. 김약산, 최림, 진국빈, 이충, 김세량, 왕세덕, 암일, 왕석, 윤봉, 김국빈, 진충, 김약삼 등이다. 그만큼 천의 얼굴로 신출귀몰 일제와 싸웠다는 뜻이다. 1918년 중국으로 건너간 선생은 폭력투쟁만이 조국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굳혔다.
 

1919년 11월9일 김원봉을 비롯한 조선의 10대 후반~20대 중반의 청년 13명이 중국 지린성(吉林省) 바후먼(把虎門) 밖의 농가에 모였다. 밤새워 행동강령을 토론한 청년들은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했다. 의열단의 공약 제1조가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는 것이었다. 의열단은 ‘7가살(可殺)’, 즉 암살대상으로 조선총독 이하 고관, 군장성, 대만총독, 매국노, 친일파 거두, 밀정, 반민족적 양반·지주 등을 꼽았다. 또 ‘5파괴’, 즉 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매일신보사·각 경찰서·기타 왜적의 중요기관 등을 파괴대상으로 선정했다. 

동아일보 1924년 4월25일자. 김지섭 의사의 도쿄 일왕 거주지 입구의 니주바시(二重橋) 폭탄투척 사건을 다루고 있다.

동아일보 1924년 4월25일자. 김지섭 의사의 도쿄 일왕 거주지 입구의 니주바시(二重橋) 폭탄투척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제비뽑기로 거사의 주인공을 결정하다 

김원봉은 의열단의 ‘의백(義伯)’으로 추대됐다. ‘의백’은 한마디로 의형제의 맏형을 뜻한다. 즉 남이지만 피의 맹세로 의형제의 결연을 다졌음을 의미한다. 의열단의 파괴·암살 폭력투쟁은 1920년 3월부터 본격 개시됐다. 

즉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투척(1920년 9월),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투척(12월),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탄투척(1921년 9월), 김익상·오성륜·이종암 등의 일본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저격미수(1922년 3월),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후 교전(1923년 1월), 황옥·김시현의 폭탄반입사건(2월), 김지섭의 도쿄 일왕 거주지 입구의 니주바시(二重橋) 폭탄투척(1924년 1월), 베이징에서 일제 밀정 김단하 암살(1925년 3월), 나석주의 동양척식회사 및 식산은행 폭탄투척(1926년 12월)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사건에 가담한 의열단원들은 극적으로 탈옥한 이(오성륜)도 있었지만 끝까지 싸우다 자결한 이(박재혁·김상옥·나석주)들도 있었고, 일제경찰에 게 암살당한 이(김익상)도 있었으며 옥사(김지섭)하거나 사형당한 이(최수봉)도 있었다. 

거사참여는 곧 죽으러 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의열단원들은 서로 “내가 먼저 가겠다”고 손을 들었다. 나중에는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다. 먼저 죽으러 가겠다고 제비까지 뽑은 셈이다.

김원봉 선생은 동지 박문호의 누이이자 여성혁명가인 박차정 선생과 혼인했다. 박차정 선생은 조선의용대 시찰에 나섰다가 적탄을 맞아 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박차정 선생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김원봉 선생은 동지 박문호의 누이이자 여성혁명가인 박차정 선생과 혼인했다. 박차정 선생은 조선의용대 시찰에 나섰다가 적탄을 맞아 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박차정 선생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멋진 친구들 

김산의 전기인 <아리랑>을 쓴 님 웨일스(1907~1997)은 “놀라울 정도로 멋진 친구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의열단원들은 언제나 멋진 스포츠형의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했다. 어떤 경우에도 결벽스러울 정도로 아주 깨끗하게 차려입었다.” 

일제와 친일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일본 외무대신은 “김원봉을 체포하면 즉각 나가사키(長岐) 형무소로 이송할 것이며, 소요경비는 외무성이 직접 지출한다”는 요지의 훈령을 상하이 총영사관에 하달하기도 했다. 

조선에서도 웃지못할 해프닝이 터졌다. 강도들이 재물을 빼앗으면서 ‘난 의열단원인데 군자금으로 가져가니 그리 알라’고 엄포를 놓는 사건이 일어났다. 충청도에서는 경찰이 좀도둑을 잡아놨더니 좀도둑이 ‘내가 의열단이다’라 소리쳤고, 그 소리를 들은 순경들이 놀라 도망쳤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1923년 8월30일 미국 정보기관의 첩보를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일본 상하이 총영사의 첩보는 “의열단 단원이 1000명을 헤아리게 됐다”고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선생의 학맥이 된 국공 합작의 황푸군관학교 

선생은 1926년 의열단원 20여명과 함께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 즉 국공합작으로 창설 운영되던 황푸 군관학교 제4기생으로 입교한다. 코민테른이 파견한 소련 군사고문단도 학교운영에 참여했다. 6개월간 교육받고 10월5일 졸업한 선생의 황푸군관학교 이력은 항일역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 학교를 졸업함으로써 한일운동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강력한 지원세력을 중국 군대와 정부 내에 구축할 수 있었다. 국민당과 공산당을 막론하고 두터운 학맥을 쌓은 것이다. 이 학교 교장이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주석이었고, 정치부 주임은 공산당의 저우언라이(周恩來)였다. 황푸군관학교 출신들은 국공 합작이 깨진 뒤에도 중국 국민당 국민정부에서 장제스 주석의 친위대 역할을 했다. 저우언라이(정치부 주임)와, 선생의 동기생(4기)인 린뱌오(林彪) 등도 공산당의 핵심인물이 됐다.

김원봉 선생의 가족들. 망건을 쓰고 있는 노인인 부친 김주익이다. 선생의 가족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거의 모두 처형됐다.

김원봉 선생의 가족들. 망건을 쓰고 있는 노인인 부친 김주익이다. 선생의 가족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거의 모두 처형됐다.

■골수 보수우익단체의 재정지원까지 받다 

선생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인 안광천(1897~?)의 영향을 받아 1930년 4월 레닌주의 정치학교를 개설했다. 또 공산당 재건동맹에 참여했다. 이때가 선생의 항일투쟁사에서 가장 좌경화 했던 때였다.

그러나 선생의 ‘왼쪽 투쟁’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일본이 1931년 9월 만주를 침략 점령하고 괴뢰국을 세우자(1932년 3월) 선생은 이때야말로 일제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과 제휴해서 과감한 항일투쟁을 전개할 때라고 여겼다. 선생은 1932년 봄 중국 국민정부가 있는 난징(南京)으로 떠났다. 여기서 학맥을 찾았다. 황푸군관학교 동창생들을 찾아다니며 의열단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선생이 접촉한 조직은 국민당 정부의 ‘삼민주의 역행사(三民主義力行社)’ 였다. 남색옷을 입는다고 ‘남의사(藍衣社)’라고도 했던 이 조직은 중국 국민당 산하의 파시즘 비밀조직이었다.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황푸군관학교 출신 20여명이 구성했는데, 공산당을 탄압하고 당 내부의 반대파를 제거하고 숙청하는 우익조직이었다. 

마침내 남의사의 지원이 결정됐다. 중국의 국민당 정부는 난징 교외의 장잉진(江寧鎭) 탕산(湯山)의 사찰에 둥지를 만들어주었다. 김원봉 선생은 그곳에 지도급 독립투사들을 길러낼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열었다. 2년 뒤인 1934년 4월에는 임시정부 지도자인 김구 선생이 학교를 방문해서 ‘조선혁명을 위해 최후까지 분투해 줄 것’을 격려했다. 김구 선생은 학생들에게 만년필 한 자루씩을 선물했다. 졸업생 중에는 항일민족시인 이육사 선생(1905~1944)이 끼어 있다. 학교는 1932년 10~35년 9월까지 3년간 125명의 독립군 간부와 전사를 키워냈다.. 
 

■실용주의적 좌파 민족주의자 

이 대목에서 살펴 볼 것이 있다. 우파로부터 조선공산당 재건동맹 참여와 레닌주의 정치학교 운영으로 골수 공산주의자 소리를 듣고 있는 김원봉 선생이 아닌가. 그런 선생이 이젠 공산당을 탄압한 국민당 정부, 그것도 모자라 백색테러단체인 남의사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선생은 그 때문에 좌파로부터도 배반·변절자로 손가락질 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원봉 선생은 본디 어떤 사람인가. 

훗날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분대장이었던 김학철(1916~2001)의 회고담은 선생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장제스를 암살하는데 협조해달라”고 청하자 김원봉 선생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1938년 10월10일 조선의용대 창립 기념사진. 맨 앞줄 휘장 가운데가 김원봉 대장이다.

1938년 10월10일 조선의용대 창립 기념사진. 맨 앞줄 휘장 가운데가 김원봉 대장이다.

“장개석(장제스)이를 해치우는 것은 우리의 급선무가 아닙니다. 그 자는 백번 죽어 마땅하지만 지금 그 자의 속셈은 우리를 이용해보자는 거요. 우리도 그 자와 맞장기를 두어 안될게 뭐 있소? 일제를 타도하려면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이면 어떤 거나 다 이용해야 하지 않겠소.”

김원봉 선생이 실용주의적 사고를 둔 민족주의자이지 공산주의자는 아니라는 얘기다. 항일투쟁을 위해서는 어떤 단체나 국가와도 연대한다는 유연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김원봉 선생은 ‘뼛속까지 민족주의였다’라는 설명이 맞겠다. 더 정의하자면 김구 선생이 민족주의 우파세력의 지도자라면 김원봉은 좌파세력의 한 축을 이룬 지도자라 할까. 

중국 산시성 쭤취안현 윈터우디촌 마을 입구 절 문 정면에 적힌 조선의용대의 항일선전문구. ‘강제병 끌려나온 동포들 팔노군이있는 곧마당(곳마다) 조선의용군이있으니 총을 하랄노(하늘로) 향하여 쏘시요!’라 했다.  중국군 산하에 소속되어 있던 조선의용대는 주로 후방에서 일본군의 귀순종용 업무 등을 맡았다.

중국 산시성 쭤취안현 윈터우디촌 마을 입구 절 문 정면에 적힌 조선의용대의 항일선전문구. ‘강제병 끌려나온 동포들 팔노군이있는 곧마당(곳마다) 조선의용군이있으니 총을 하랄노(하늘로) 향하여 쏘시요!’라 했다. 중국군 산하에 소속되어 있던 조선의용대는 주로 후방에서 일본군의 귀순종용 업무 등을 맡았다.

■우리 군대, 조선의용대의 창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다급해진 장제스 중국군사위원회 위원장은 한·중 항일 연합 전선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김원봉 선생은 ‘옳다구나’ 했다. 선생은 예의 ‘학맥의 자양분’이었던 황푸 군관학교 출신의 중국 유력인사들을 만나 조선인 부대, 즉 조선의용대 결성안을 추인받는다.

중국은 마침 일본의 침략에 맞서 제2차 국·공 합작을 이룬 때였다. 중국은 군사위원회 정치부에서 이 부대를 관할한다는 조건으로 창설을 승인했다. 마침내 1938년 10월10일 우한(武漢) 한커우(漢口) 중화기독청년회관에서 역사적인 결성식이 열렸다. 조선의용대 창설 소식이 미국의 각 신문에 보도되자 재미교포들이 자진해서 의용대 후원회에 지원했다. 총대장은 김원봉 선생이 맡았다. 비록 남의 땅이고, 200여명의 소수인원이었지만 나라가 망한 후 국제정규전에서 독립군이 직접 참전한 것은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조선의용대는 1940년대 중국 관내에서 한인의 양대군사조직이던 한국광복군과 조선의용군의 창설 및 발전을 선도했다.

김원봉 선생은 1942년 민족혁명당을 이끌고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선생과 조선의용대원 일부는 1942년 7월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개편됐다. 2년 뒤인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 등과 연립정부를 건립하는데 이때 민족혁명당의 김규식은 임정 부주석으로, 김원봉 선생은 임정 군무부장에 추대됐다.

환국하기에 앞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포즈를 취한 김원봉 선생(딧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키 큰 분). 앞줄 오른쪽 두번째부터 신익희, 조소앙, 김규식, 김구, 이시영 선생.

환국하기에 앞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포즈를 취한 김원봉 선생(딧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키 큰 분). 앞줄 오른쪽 두번째부터 신익희, 조소앙, 김규식, 김구, 이시영 선생.

■좌우익 화해를 필사적으로 주도한… 

해방 이후 임시정부 국무위원의 한사람으로 환국한 선생은 일관되게 주요 정치세력들의 연대를 적극 추진했다. 이른바 좌우합작을 향한 의지였다. 하지만 1946년 1월 열린 임시정부의 비상국민회의 주비회가 우익 편향으로 기울자 김원봉 선생 같은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설자리를 잃었다. 선생은 결국 비상국민회의에서 탈퇴하고 말았다. 그것으로 1942년 충칭(重慶)에서 성립된 임시정부를 매개로 한 다양한 단체의 협동전선은 붕괴됐다. 미군정에서 정보를 담당하고 군정청의 공식 전사편수관이었던 리처드 로빈슨은 당시를 이렇게 설명한다. 

“1946년 2월1일 즈음 김구의 임시정부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진보적 분자들이 떠났다. 김규식과 김원봉이 김구의 지도권을 벗어나 그들의 당파를 구성하여 주도했다.”(리처드 로빈슨의 <미국의 배반>) 

그러나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해방정국이 어떤 때인가. 우익과 좌익, 남한과 북한, 미국과 소련 등 대결구도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이분법 진영논리가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우경화한 임시정부에서 벗어난 좌파 민족주의자는 왼편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 좌파 민족주의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좁았다. 

“김원봉은 우익과 좌익 사이에서 화해를 주선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실패하자…확실히 한 개인에 대한 위협은 그를 공산주의 노선에 있도록 했다.”(리처드 로빈슨)

1947년 3월22일 김원봉 선생 등이 체포되었다는 경향신문 25일자. 이때 선생은 미군정청 수사과장으로 변신한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한다.

1947년 3월22일 김원봉 선생 등이 체포되었다는 경향신문 25일자. 이때 선생은 미군정청 수사과장으로 변신한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한다.

■공산주의자와 위험한 동거 

임정을 탈퇴한 임정 군무부장이자 광복군 부사령 출신의 좌파 민족주의자는 조선공산당이 주도한 민주주의 민족전선(민전) 결성에 합류했다. 드디어 공산주의자들와 위험한 동거생활을 했다.

하지만 선생은 민전 내에서도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에 매몰되지 않고 독자적인 정치생존의 길을 도모하고자 했다. 선생은 민전에 참여하면서 “민주주의는 독선이 아니며…남북일체를 규합하여 속히 임시국회를 열어 강력한 우리의 통일정부를 수립하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원봉은…공산당에 가입하기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와 여운형은 민족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중도파였기에 공산당의 고질적인 전체주의와 소련의 권위를 거부했다.…김원봉은 자신이 공산주의자들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 기꺼워 하지는 않았지만 별 도리 없었다.”(리처드 로빈슨)

1947년 1월25일 자유신문 기사. 경남 통영에서 김원봉 선생의 조선의용대 기록영상물이 상영되는 순간 우익잔체 청년들이 몰려와 해설자를 구타하고 필름을 빼앗았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1947년 1월25일 자유신문 기사. 경남 통영에서 김원봉 선생의 조선의용대 기록영상물이 상영되는 순간 우익잔체 청년들이 몰려와 해설자를 구타하고 필름을 빼앗았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만삭의 부인 앞에서 붙잡힌 선생 

그러나 미군정이 박헌영·이강국 등 조선공상당 간부들에 대한 검거령을 내리면서 김원봉 선생 등도 ‘민전’의 지도자라는 이유로 도매금으로 넘겼다. 경남 통영극장에서는 조선의용대 기록영화가 백색테러를 당했다. 

“1월16일 경남 통영에서 김원봉 장군의 대일 실전 조선의용대 기록영화를 상영하던 중 광복청년단원 20여명이 영화관을 습격해서 해설중이던 황용암씨를 무수히 난타한 뒤 통영경찰서에 인도했다. 경찰은 황씨를 4일간 구금했다. 이 영화는 공보부의 검열을 받고 정식으로 허가받아 상영했는데….”(1947년 1월25일 자유신문) 

김원봉 선생은 1946년의 총파업과 10월 대구 항쟁, 그리고 남로당 결성 등을 거치면서 미군정 반공정책의 속죄양이 되어 탄압받았다. 급기야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씻을 수 없는 수모까지 당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노덕술에게 체포되었을 당시 선생의 22살 연하 부인인 최동선은 출산이 임박한 만삭이었다. 둘째에게는 선생이 철창에 구금되었을 때 낳았다고 해서 철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원봉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해방정국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정적을 마구잡이로 암살하고 납치·구금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송진우(1945년 12월 30일)-여운형(1947년 7월19일)-장덕수(1948년 3월12일)에 이어 김구 선생(1949년 6월26일)까지 백색테러에 의해 암살되었던 시절이었다. 어느 한 편도 아닌 민족의 통일을 위해 좌우합작 운동을 끈질기게 폈던 선생의 목숨 역시 풍전등화였다.

김원봉 선생에 대한 인물평 중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평이 하나 있다. “약산 김원봉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군청정의 역사편수관도 “비공산주의 계열의 좌익지도자인 김원봉이…”라든가, “여운형과 더불어 민족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중도파였기에 공산당의 고질적인 전체주의와 소련의 권위를 거부했다”든가 하는 표현을 썼다. 특히 김원봉 선생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에 미군정청 관리는 “미국의 강력한 지도자가 될 

노덕술의 죄상을 낱낱이 까발린 서울신문 기사.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를 3명이나 고문치사시켰다고 한다. 얼마나 혹독한 고문을 가했는지 유진흥이라는 독립투사는 ‘노 놈! 노 놈!’이라 울부짖으며 죽어갔다고 한다.

노덕술의 죄상을 낱낱이 까발린 서울신문 기사.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를 3명이나 고문치사시켰다고 한다. 얼마나 혹독한 고문을 가했는지 유진흥이라는 독립투사는 ‘노 놈! 노 놈!’이라 울부짖으며 죽어갔다고 한다.

수 있었던 한 사람을 잃은 것”이라고까지 했다. 

심지어 “만약 남북조선이 통일되었다면 북조선의 김두봉(1889~?)과 남조선의 김원봉은 조선공산당에 반대해서 민족적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조선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도 나왔다. 더나아가 “그렇게 되었다면 통일협상은 성공적인 결론을 얻고 또한 내전(한국전쟁)까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런 선생에게 후손들이 별 생각없이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을까. 그런 사람에게는 임시정부를 담당했던 미 전략국 요원이었던 클레런스 윔즈의 ‘김원봉 보고서’를 보여주어야 한다.

“김원봉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단체들과 손잡고 일했다. 일례로 그는 황푸군관학교 졸업생들이 결성한 극우파인 남의사의 일원이었으며 그들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다.”

김원봉 선생은 독립을 이룰수만 있다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실용적 좌파 민주주의자였던 것이다. 모든 이데올로기의 장점을 가미하는 민주사회주의를 추구한….

1949년 2월18일 경향신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악질친일경찰 노덕술이 반민특위 특경대에게 붙잡히자 “노덕술이는 나라에 필요한 기술자이니 풀어주라”고 강권했다. 김상덕 반민특위위원장과 김상돈 부위원장이 이 대목을 지적하며 개탄하고 있다.

1949년 2월18일 경향신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악질친일경찰 노덕술이 반민특위 특경대에게 붙잡히자 “노덕술이는 나라에 필요한 기술자이니 풀어주라”고 강권했다. 김상덕 반민특위위원장과 김상돈 부위원장이 이 대목을 지적하며 개탄하고 있다.

■김원봉의 천려일실 

하지만 김원봉 선생에게 천려일실이 하나 있다. 월북이다. 선생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기정사실화하고 신변에 어마어마한 위협을 느끼자 월북하게 된다. 충칭 시절 선생의 비서였던 사마로는 자서전에서 “북한으로 가지말라는 말에 김원봉은 ‘나도 그리 가고 싶은 곳은 아니지만 남한의 정세가 나쁘고 심지어 나를 위협하여 살 수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심지어 노덕술 같은 악질 친일경찰에게 수모를 당했으니…. 

선생이 월북한 것은 1948년 4월9일이다. 선생은 김구·김규식 선생 등도 참석한 이른바 남북한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한 뒤 북한에 남는다. 북한정권에서 초대 국가검열상(감사원장)이 됐다. 선생은 북한에서 남북으로 갈라진 민전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이라는 단일기구로 통합하기도 했다. 

1952년 7월 검열상에서 노동상으로 이동한 선생은 그해 박헌영·이강국 등 남로당계 인사들이 ‘미제 간첩죄’로 처형당했을 때도 건재했다. 57년 9월 노동상에서 해임된 선생은 1958년 9월9일 조소앙의 장례식 때 참여한 뒤 소식이 끊였다. 선생의 최후를 두고 여러 설이 나온다. 국제간첩 혐의로 숙청됐다는 설과, 장제스의 스파이로 몰려 수감됐다가 자살했다는 설, 그리고 은퇴설 등이다.

‘대한민국 상훈’ 홈페이지에 기록된 노덕술의 상훈 기록. 한국전쟁 때 화랑무공훈장 2개, 충무무공훈장 1개를 받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상훈’ 홈페이지에 기록된 노덕술의 상훈 기록. 한국전쟁 때 화랑무공훈장 2개, 충무무공훈장 1개를 받았다는 것이다.

■떼죽음 당한 남한의 가족·친척들 

남한에 남은 가족·친지들은 그야말로 떼죽음을 당했다. 9남 2녀의 형제 중 친동생 4명과 사촌동생 4명이 이른바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죽음을 당했고, 아버지 김주익은 외딴 곳에 유폐되었다가 굶어죽었다고 한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1949년 4월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하기 위해 조직된 관변단체이다. 그러나 이 단체의 좌익전향자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세가 불리해지자 ‘빨갱이’라는 이유로 군과 경찰에 의해 떼죽음을 당했다. 의열단장과 조선의용대장, 임정 군무부장이었던 김원봉 선생이었지만 ‘월북 빨갱이’의 낙인이 이런 참사를 빚었다. 
 

■‘기술자가 필요하다’며 부활한 친일경찰 노덕술 

최근들어 김원봉 선생의 서훈을 두고 해묵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2005년부터 사회주의 운동가라도 항일투쟁을 벌여 나라를 되찾는데 몸과 마음을 받친 분이라면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을 수 있다. 그래서 조선공산당 창당의 주역이지만 6·10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주도한 권오설 선생(1897~1930)과 몽양 여운형 선생(1886~1947)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투사 54명이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이름으로 국가유공자 포상을 하려면 매우 중요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항일투쟁의 공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대한민국 정부를 부정하거나, 또는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한 인물은 포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정권에서 초대 국가검열상과 노동상을 지낸 김원봉 선생은 해당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만 추가해보련다. 노덕술의 케이스다. 노덕술은 일제강점기에 혹독한 고문으로 3명의 독립투사를 죽였던 악질경찰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경험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미군정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으로 중용됐다. 독립투사를 잡는 일제경찰이었던 노덕술은 빨갱이를 탄압하는 반공경찰로 변모했다. 

김구 선생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의 대표주자인 김원봉 선생에게도 모욕을 주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1949년 1월24일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경대가 노덕술을 체포·구금했다. 그러자 이틀 뒤 이승만이 기가 찬 명령을 내린다. 반민특위 임원들을 경무대로 불러 “노덕술이는 나라를 위해 요긴히 쓰일 기술자이니 석방하도록 하라”는 지시했다. 이승만과 이승만의 비호를 받은 친일세력의 방해공작에 따라 반민특위가 와해되고, 마포형무소에 수감돼있던 노덕술은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공소기각으로 처리된다. 

노덕술에 대한 단죄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노덕술은 1년 뒤인 1950년 헌병중령으로 이직하여 1사단 헌병대장과 부산 육군범죄수사대장(CID)으로 경력을 이어갔다. 노덕술은 이후에도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1960년 제5대 민의원 선거에 경상남도 울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노덕술은 1968년 4월 사망했다. 

노덕술은 1960년 7월29일 제5대 국회의원 선거(울산 을)에 출마했다. 그러나 노덕술은 1744표를 얻어 8명 중 6등에 머물렀다. 4·19혁명이 일어난 이후의 대명천지에서도 국회에 진출할 꿈을 꾸었던 것이다.

노덕술은 1960년 7월29일 제5대 국회의원 선거(울산 을)에 출마했다. 그러나 노덕술은 1744표를 얻어 8명 중 6등에 머물렀다. 4·19혁명이 일어난 이후의 대명천지에서도 국회에 진출할 꿈을 꾸었던 것이다.

■노덕술이 받은 훈장과 김원봉이 받지못한 훈장 

그러나 노덕술과 관련해서 한가지 기막한 사실이 있다. 노덕술이 한국전쟁 때의 공로로 세차례나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대한민국 상훈’ 홈페이지는 “노덕술이 1950년 12월 30일과 51년 7월8일 화랑무공훈장(4등급)을 한번씩, 1953년 2월15일에는 충무무공훈장(3등급)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화랑 및 충무 무공 훈장은 한국전쟁 등에 보통 이상이나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주는 훈장이다. 한국전쟁 때 헌병사령부 등 소속이었던 노덕술이 어떤 무공을 세웠을까. 이것도 궁금하다.

악질친일경찰 출신의 노덕술이 단죄는커녕 승승장구하면서 화려한 경력을 이어갔고, 국가가 주는 무공훈장을 세번이나 챙겼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문제는 이들의 상훈을 취소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현행법인 상훈법에서 친일행적이 있다고 서훈을 다 취소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의열단장과 조선의용대장, 광복군 부사령, 임시정부 군무부장의 화려한 독립운동경력에도, 훗날 북한정권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의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김원봉 선생과, 악질친일경찰 출신으로 해방 이후에도 고문치사 등의 죄악을 저질렀지만 친일세력의 비호를 받아 공훈장을 세번이나 

받은 노덕술…. 과연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이 기사는 다음과 같은 논문과 단행본, 자료 등을 두루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참고자료> 

김영범, <한국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 창작과비평사, 1997 

한상도, ‘해방정국기 김원봉의 정치활동-독립운동가에서 정치가의 길로’, <한국독립운동사연구> 6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8 

염인호, ‘김원봉-의열투쟁과 무장독립운동의 선구자’, <한국사시민강좌> 47, 일조각, 2010

김삼웅, <약산 김원봉 평전>, 시대의창, 2008 

문화방송 시사제작국, ‘이제는 말할 수 있다:MBC 특별기획-53년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 MBC문화방송, 2002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030923001&code=960100#csidx56e321c11122efe96605522a6c083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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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김군’도, ‘악질사장’도 없으려면..반드시 필요한 노동인권교육

[전교조 창립 30주년 기획]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 ③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19-05-02 18:01:01
수정 2019-05-02 18: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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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자료사진

5월 28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창립 30주년을 맞습니다. 민중의소리는 다섯 차례에 걸쳐 전교조 30년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세번째 기사에서는 전교조 설립 당시부터 노력해왔지만,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학교 현장 노동인권교육 도입에 관해 살펴봅니다.

1) 전교조 30년, 한국 교육이 변했다
2) 학교 현장이 바뀐다 ‘딥 체인지(Deep Change)’
3) 제2의 구의역 김 군·이민호 군 없으려면..반드시 필요한 노동인권교육
4) 특권과 승리가 아닌 삶과 행복을 위한 교육
5) 싸움만 한다구요? 국민과 함께 하는 전교조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김 군(19)은 달려오는 기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어 숨졌다. 2017년 1월 23일 전주시 덕진구의 한 저수지에서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홍 모(19)양이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다. 홍 양은 2016년 9월부터 전주 소재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엘비휴넷)에서 근무했는데, 사측의 실적 압박과 고객들의 폭언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다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다. 2017년 11월 9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신분 이민호(19) 군은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한 음료 공장에서 기계를 수리하다 제품 적재기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고, 열흘 뒤인 19일 숨을 거뒀다.

2019년 1월 28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 청소년 매체 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청소년 가운데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은 적이 있는 응답자가 34.9%, 임금체불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16.3%에 달했다. 고객으로부터 언어 폭력과 성희롱, 폭행을 당한 경험은 8.5%였다. 그럼에도 응답자의 70.9%는 이 같은 부당처우를 계속 참고 일했다고 답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2주기에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 앞에서 민달팽이유니온 등 청년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김군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 28일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군은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달리는 열차와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2주기에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 앞에서 민달팽이유니온 등 청년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김군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 28일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군은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달리는 열차와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했다.ⓒ김슬찬 인턴기자

일하는 청소년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는 사건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사건이 이어지는 것은 청소년들이 노동의 가치와 의미,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지위와 권리에 대해 충분히 배우지 못한 채로 일터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대책마련하는 현실 안타까워”
“노동인권교육은 학교교육이 담당해야”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초대 사무처장과 9대 위원장을 역임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사회적 비용을 많이 치르고 나서야 대책을 마련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런 걸 예방할 수 있게 교육하고, 교육 과정에 노동 인권에 대한 내용을 반영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학교 교육이 당연히 담당했어야 하는데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수호 이사장은 “학생들 대부분이 고등학교, 대학 졸업 후 노동자가 된다. 그런데 노동자의 권리나 노동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모른다. 살벌한 노동현장 속에 들어가서 어려움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이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다. 자기 사업을 하게 될 학생들도 타인의 노동권을 존중하고, 합법적 경영을 하려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이수호 이사장 지적처럼, 학생 대다수가 노동자가 되지만 적지 않은 숫자는 사장이 된다. 치킨집, 편의점이라도 직원을 두거나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를 하대하며 ‘갑질’을 하거나 법을 지키지 않는 악질사장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노동인권교육은 필수적이다.

그는 “이제 외국 사례를 드는 것도 구차하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또 배우면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 인권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부터 체계적으로 제대로 가르치자”고 말했다.

없음
 

교육 받은 학생들..부당처우에 적극적 대응
현장 교사 다수 “노동인권교육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노동인권교육’을 충분히 받는다면 인권을 침해당하거나 부당처우를 견뎌야만 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실태조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전국 19~24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황여정 외 3인의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연구(2014)’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다 부당 처우를 당했을 때 다양한 대응태도를 보였다. ‘참고 계속 일했다’는 응답이 40.9%, ‘일을 그만 뒀다’는 응답이 36.7%였다. ‘개인적으로 항의했다’는 19.8%, ‘어디에다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지 몰라 아무것도 못했다’는 답변은 12.7%, ‘주변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11.4%, ‘고용노동부나 경찰에 신고했다’는 답변은 6.2% 였다.

2018년 말 국가인권위원회가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와 함께 발간한 ‘노동인권교재 개발 연구’ 용역 보고서에서는 위 실태조사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해 냈다. 학생들이 노동인권교육 경험에 따라 어려움이 닥쳤을 때 대응방법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노동인권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의 경우 ‘개인적 항의’, ‘주변인의 도움’, ‘노동부 경찰 신고’ 등을 하며 비교적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응했다고 답한 비율이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청소년들이 비해 더 높게 나타났다. 노동인권교육을 받으면 부당대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드러난 조사 결과다.

없음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은 교사들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전교조는 자신들의 ‘참교육 실천 강령’에 “우리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교육을 실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는 2015년 11월 조합원 39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노동인권교육 실태 및 조합원 의식 조사 보고서’를 냈다. 이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98%(매우필요하다 77%, 필요하다 21%)가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교사들은 노동인권향상 해결책의 1순위로 ‘학교에서 체계적인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것(76%)을 꼽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교육 자료 발간
전교조 “정식교육과정 내 체계적 노동교육 시작” 평가

이처럼 효용성, 필요성이 대두되자 지자체, 교육청, 단체 등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승욱 교수의 ‘노동인권교육 지원의 실태와 과제(2019)’보고서에 따르면, 현재(2018년 10월 기준) 전국 총 67개 기관과 단체에서 총 211개의 노동인권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중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월 제정된 「서울시교육청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조례」에 따라 올해부터 일반고, 특성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를 발간했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발간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발간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사진 제공 = 서울시교육청

교육청 관계자는 “2019년 일반고·특성화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 활용 연수’를 실시하여 학교 현장에서 활용도를 높일 예정”이라며, ‘2019년에는 중학교용, 2020년 초등학교용을 개발·보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달 16일엔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동영상’을 개발하여 관내 중·고등학교에 보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서울시교육청의 시도에 대해 전교조는 ‘노동인권 교육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정식교육과정 내 체계적인 노동교육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래의 노동자인 아이들에게 노동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자신의 노동을 긍정하며, 노동자의 권리와 책임을 가르치는 것을 공교육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인권교육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승욱 교수는 위의 보고서에서 “중앙정부의 총괄적이고 정책적 지원이 없는 채 각 지역 및 단체 별로 노동인권교육이 진행되기 때문에 교육의 지속성 및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교육대상과 그의 상황에 따라 주무부처가 달라지기 때문에 관할 문제, 예산 배분 문제가 발생한다”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해결책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총괄할 주무 부처를 정할 것, 노동인권교육 지원법을 제정할 것,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정리할 것, 관련 강사 인력을 관리하고 교육할 것, 교재를 만들고 강의안 등을 개발 배포 할 것 등을 제안했다.

‘한국 노동교육의 진단과 미래방향’이라는 보고서(2019)에서 정홍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역시 ‘필요성 제기에 비해 실질적으로 이뤄지는 노동인권교육이 부족하다’ , ‘특성화고를 제외하면 교과목에 노동인권이 없다’, ‘상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특강형태다’,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심어주기보다는 단순 지식 전달에 그치고 있다’, ‘교원들이 충분한 교육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아 외부 강사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등의 한계점을 짚었다.

정 부연구위원은 학교 현장 노동인권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초등~고등학교 과정의 노동교육 커리큘럼을 체계화할 것, 관련해 교육과정을 개편할 것, 교사들이 중심이 돼 노동교육을 수행할 것 등을 제안했다.

2018년 8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프랑스노동총동맹(CGT)본사 본관 중앙 로비의 모습. CGT와 관련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2018년 8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프랑스노동총동맹(CGT)본사 본관 중앙 로비의 모습. CGT와 관련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민중의소리

교육과정에 노동 관련 내용 담은 유럽 국가들
시민의 다양한 정체성 중 하나는 ‘노동자’

해외에서는 어떻게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을까. 이를 살펴보면 우리 학교 교육이 노동인권교육 커리큘럼을 어떻게 정립하고 실행해 나갈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영국에서는 ‘시민교육’이라는 필수교과 안에 노동인권교육 내용을 담아 교육과정 전체에 반영하고 있다, 시민의 다양한 정체성 중 하나를 ‘노동자’로 꼽고 이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교육한다. 프랑스 역시 ‘시민교육’이라는 필수과목을 통해 노동문제에 대해 가르친다. 학생들은 자유, 평등, 인권 등과 함께 노동권에 대해서도 배우며, 교과서는 시위나 파업 등 노동 쟁의가 자연스러운 노동자의 권리행사임을 인식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사회’와 ‘실업’과목에서 노동인권에 대해 다룬다. 사회 과목에서는 노동의 사회정치적 측면에 대해 가르치며, 노동조합 내, 노사관계에서의 민주적 갈등해결 원칙, 공동결정 원리 등에 대해 전달한다. 실업 과목에서는 노동의 기술적 측면에 대해 배우도록 하는데, 인간과 기술·사회 간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하고 장래의 직업 선택 및 노동 생활을 준비토록 교육한다. 각 과목의 교과서에는 노동관 및 직업관부터, 사회 시스템 내에서 노동의 역할, 사회 변화에 따른 노동방식의 변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의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스웨덴의 경우에는 교과서에 노동에 관한 내용을 담는 것은 물론, 초등학교 8~9학년(한국의 중학교 2~3학년)에게 2주간에 걸쳐 ‘진로교육 및 직업체험’(PRAO)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직접 노동현장에 가서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이고, 어떤 일들을 시키는 지를 직접 보게 된다. 직업체험 과정과 교육내용, 규정은 교육적 목적을 고려하여 학생, 학교, 기업 측면에서 모두 세심하게 정해져있다. 청소년들은 해당 과정을 거치며 미성년노동자의 근로조건 등에 대한 기본 내용도 배울 수 있으며, 향후 직업을 위해 어떤 고등학교 프로그램을 선택할지에 대한 판단 기준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유럽의 국가들은 학교에서 개인의 노동관에서부터 노동과 노동자의 사회적 의미, 실제 노동 현장의 분위기와 자기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법 제도에 대해서까지 폭넓게 가르친다. 학생들이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이렇게는 안 된다. 어떻게든 가르쳐 보내자” 
노동인권교육 하러 애쓴 전교조 교사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전교조가 30여년 전 설립 당시부터 학생들을 위해 교육현장에서 노동인권교육을 하려고 애썼던 데 대해 언급했다. 이 이사장은 “전교조에 실업학교 선생님들 중심으로 ‘이거는 안 되겠다. 어떻게든지 가르쳐서 보내자. 따로 교과서라도 개발하자. 어떻게든지 교육과정 속에 넣어보자’며 애썼다.”고 회상했다.

이 이사장은 교직에 몸담을 동안 특성화고인 선린인터넷고(구, 선린정보산업고등학교)의 교사였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현장에 가는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필요했다. 더 문제가 됐던 건, 고교 재학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자신이 당하는 불이익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주들이 이 점을 교묘히 악용해서 이익을 편취했다. 임금을 떼이는 것은 보통이고, 임금에서 일정액을 남겨놓고 ‘그만둘 때 모아서 준다’는 명목으로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치료비용을 기업주가 부담하고 정부가 책임지고 치료해준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필요성이 인식되니 교사들이 ‘노동인권교육’에 나섰다고 회상했다. 그는 “교육과정에 넣고 교과서 만들고 차근차근 진행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당장 나가서 일해야 하고 졸업하면 현장에 가야 하니 꼭 필요한 내용이라도 단시간에 배우게 했다. ‘이런 것이라도 알고 가라’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겸 전태일기념관 관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그는 아직도 학교에서 제대로 노동인권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노동인권교육이 학생들이 취업했을 때나 아르바이트 할 때 사측에 어떻게 대응할 지, 불이익 당하지 않게 어떻게 노력할 지 같은 구체적 현실적 내용과 함께 노동의 가치와 의미 등 본질적 근본적 내용까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짚었다.

“우리 사회가 노동형태나 노동의 질, 이런 것들의 변화가 심하다. 요즘은 IT산업이 발전하고 4차 산업혁명이 와서 노동의 여러 가지 형태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노동을 일반적으로 노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줄어들고 있다. 사회가 변했다. 지금은 플랫폼 노동이란 게 등장했고, 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지 않나. 이런 때일수록 본질적 문제인 노동의 의미와 가치, 노동자로서의 자세나 태도, 사회관계 속에서 노동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가를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전통 속에서 혹은 자본주의 문화에서, 일 안하고 놀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는데 굉장히 문제다. 자기에 맞는 일을 적당히 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좋은 것이다. 일과 놀이, 일과 휴식, 일과 문화생활 이런 것들의 의미와 경계에 대해서도 잘 못 이해하고 있다. 이런 교육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정렬:가운데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정렬:가운데ⓒ김슬찬 기자

학교에 조금씩 뿌리내리고 있는 노동인권교육
“법·제도 개선과 더불어 교사 자율성도 보장되어야”

김경엽 전교조 직업교육위원회 위원장은 “노동인권교육이 현장에 조금씩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며 “선생님들이 노동인권이란 주제를 가지고 각 교과의 특성에 맞게 수업을 진행하고 계신다. 미술과에서는 노동자들의 몸을 그리고, 국어과에서는 인터뷰 글쓰기 부분에서 노동자들을 인터뷰 한다. 사회과에서는 노사 교섭, 사회권으로서의 노동인권, 헌법에 노동인권은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나 등을 가르친다”고 사례를 들었다.

이어 “교과수업 뿐만 아니라 학급활동 시간이라든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영화 등 노동 관련한 자료들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며, “노동절에는 노동절 관련 역사를, 때로는 최저임금에 대해서 짧게 나마 이야기 한다”고 설명했다.

김 직업교육위원장은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이나 교과목 중엔 노동인권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교과영역은 아니지만 범교과영역 범주에 노동인권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고 답하며 “현재 사용되는 교과서의 일부 단원에서도 언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동인권교육 관련법 제정, 교과목 신설, 개별 교과서 편찬만큼이나 중요한 점이 ‘노동문제가 우리사회의 중요한 교육 주제로 자리잡는 것’이라며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더 본질적인 내용을 더 충분하게 가르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또 노동인권교육이 잘 되게 하려면, 그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자율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생님들이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필요한 것을 가르칠 수 있도록 입시교육으로부터 자율성을 부여해 줘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김 직업교육위원장은 “최근 정부에서 일률적으로 ‘안전’, ‘인성’ 교육을 강조해왔지만, 하루아침에 학교 현장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행정적이고 권위적인 사고다”라며, “제도를 바꾸는 것은 물론,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활동 속에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게 좀 더 멀리를 내다보며 준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위한 2019년 전교조의 계획
‘지역 별 편차 없이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게 할 것’

학교 현장에서 노동인권교육을 본격화하기 위한 전교조의 노력은 2019년 더욱 활발해질 예정이다.

전교조는 올해 사업 계획을 통해 ‘참교육 실천 역량을 늘리기 위한 기본사업’으로 ▲계기수업자료 개발·탑재 ▲ 교육활동 자료 제공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계획에는 노동인권교육을 현장에서 실현하기 위한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전교조 교사들은 그간 지속적으로 계기수업(사회적 이슈에 대해 학생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신문기사, 사설, 칼럼 등의 다양한 부교재를 통해 알기 쉽게 가르치는 수업)을 진행해왔다. 올해에는 분과나 지부에서 공동으로 계기수업을 할 수 있도록 자료 개발과 지원에 힘쓰기로 했는데, 이 계기수업 주제들 중 하나에 ‘노동인권’이 포함되어 있다. 또 현장 교사들이 교과수업·비교과수업을 진행하면서 필요한 교육자료도 제공할 예정인데, 여기에도 ‘노동·직업’ 주제가 들어있다.

또 직업교육위원회 차원에서도 계획을 내고 있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노동인권실태 파악 및 대책 활동’을 진행해, 지역별 편차 없이 정규교육과정 내 노동인권교육이 포함되도록 할 예정이다. 또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 제정, 정책 개발, 교육청과의 단체 협약 체결 등을 시민사회와 손잡고 추진해 갈 방침이다. 이외에도 노동인권교육이 학교에 정착할 수 있도록 교사 연구회, 학생 동아리 활동 활성화에 힘쓰기로 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과 김현진 수석부위원장 당선인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에서 열린 당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과 김현진 수석부위원장 당선인이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에서 열린 당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노동인권교육 도입 가로막는 보수언론
전교조, 진보교육감에 대해 이념공세 펼쳐

이처럼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은 분명하고, 학교에 도입하려는 각계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 일각에서는 이를 막아서고 비난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보수언론의 전교조에 대한 공세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이수호 이사장은 “노동인권교육에 대해 전교조가 나름대로 애를 많이 써왔는데, 여러 가지 한계 속에서 좀 어렵게 된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안 알려지고 어쩔 수 없이 ‘법외노조 철회’ 투쟁하면 그것만 보수언론에 나온다. 그러면 정치적 비난이 쏟아진다. ‘교사들이 애들이나 잘 가르칠 일이지, 그런 것 가지고 난리냐’는 것이다”며 답답해했다.

이어 “현장에서 구체적 교육내용으로 고민하는 선생님들이 많고,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실천하는 전교조 선생님들도 많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교교육을 바로 잡고, 학생들을 위해 애쓰는 건 잘 안 알려진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전교조의 상황”이라고 짚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민중의소리

보수언론들은 지난 2월 서울시교육청이 ‘노동인권교육 지도자료’를 냈을때도 몰려들어 포문을 열었다.

한 보수신문은 기사에서 “상생이나 협력을 강조한 분량은 적고 노사 간 대립과 집단 행동을 강조한 분량은 많아 균형이 맞지 않는다”, “기업의 긍정적 역할이나 협상의 중요성을 별도로 다룬 단원이 없다”, “불법 파업이나 파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 언급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야 말로 편향된 것이다. 현재 고등학교 사회과 과목인 ‘법과 정치’, ‘경제’ 등의 교과서에는 기업과 기업가의 긍정적 역할, 파업 등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 내용은 오래전부터 교육과정에서 다뤄왔지만, 노동자와 노동인권에 대해서는 다룬 바가 거의 없으니 이를 가르치기 위해 새로이 교육 자료를 퍼낸 것이다. 지도 자료가 발간된 맥락에 대해서는 교묘히 숨기고 이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보수 신문은 기사에서 더 노골적으로 “좌편향식 교육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보수신문은 사설을 통해 “직접 노동인권 교육 자료를 만든 저의부터 의심스럽다”며 “교육 오염이 현실화하기 전에 전량 회수, 폐기해야 한다”고 까지 주장했다.

한 대학생이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 경총회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통해 최저임금 문제 관련 경총 회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한 대학생이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 경총회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통해 최저임금 문제 관련 경총 회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 같은 보수언론들의 주장은 경영계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2011년, 당시 곽노현 교육감은 학생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겠다며, 이를 위해 교육청 안에 노동인권 교육을 담당할 민주시민교육팀을 신설할 방침임을 밝혔다.

그러자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경총)은 입장문을 내고 “노동인권 교육은 어느 교사들이 맡게 되든지 간에 계급적 성향의 교육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진보 출신의 교육감이 이를 주도하는 것 자체가 이념노동운동가의 양성을 꾀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노동인권교육은 이념적인 편향성과 결부되어 학생들에게 반기업 정서, 반시장경제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두 가지 사건 사이에 8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지만,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경영계의 인식과 보수언론의 인식이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동인권교육이 우리 사회와 학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깊게 뿌리내리려면 이런 장애물들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 ‘전태일’로 노동인권 ‘체험’교육을..전태일 재단의 도전

서울시교육청과 전태일재단은 2018년 11월~12월 동안 공동으로 ‘노동인권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서울시내 노동인권 관련 현장 탐방지를 학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졌다. 중고등학생 900명(30학급)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학생들은 종로구 소재 평화시장 및 전태일다리 주변에 있는 노동인권 관련 장소를 연결한 코스를 다니며 전태일과 노동인권에 대해 배웠다.

이수호 이사장은 이에 대해 “현장체험 중심이고 단기간이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고 최소한의 기본적 경험을 하게 했다. 학생들이 전태일을 알고 노동과 노동자의 여러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굉장히 의미가 있고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게 대다수 평가”라고 밝혔다.

전태일재단에서는 노동인권교육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왔다.

이 이사장은 “아이들이 전태일에 대한 책을 읽고 토론을 한 후에 평화시장과 전태일 다리에 가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여기에 온다. 그럼 강의를 해주고 관련 장소를 보여준다. 그렇게 오기 힘들 경우 재단에 요청을 하면 저희가 강사를 파견한다. 최근에 광주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모둠학습을 한 후에 강사를 파견해달라고 해서 사무총장님이 직접 가서 이야기를 해주고 왔다. 그 학교 학생들의 경우에는 이번에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만드는 애니메이션 ‘태일이’ 제작비용에 저금통을 깨 얼마라도 보태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 구체적인 참여와 행동은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교육 요청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라서, 이에 맞춰 다양한 교육 내용과 형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전태일기념관이 마련돼 교육 여건이 더 나아지자 요청이 폭주하고 있다. 문의와 신청이 많이 온다. 거의 줄이 서 있는 형편이다. 주중과 주말까지 매일 하루 몇 팀씩 온다”

“기념관의 전시물을 통해서 설명해주고, 관련 공연을 보여주며 교육하는 등 프로그램을 더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 방문한 학생들의 형편에 맞춰서 한 시간 가량 기념관 둘러보는 것에서부터 몇시간 투자해 현장에 다녀오는 것까지 만들 계획이다. ‘맞춤형 체험학습 프로그램’인 셈이다”

애니메이션 ‘태일이’
애니메이션 ‘태일이’ⓒ애니메이션 ‘태일이’ 스틸컷 이미지

향후 전태일재단과 전태일기념관은 연극, 음악, 웹툰, 애니메이션 등의 다양한 문화 장르를 통해 전태일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이를 통해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 밖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전태일 50주기인 2020년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개봉할 예정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스스로 희망의 불꽃이 된 대한민국 노동 운동사의 상징적인 인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삶을 그린 감동 드라마다.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성과를 내고, 영화 ‘카트’를 통해 노동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내 온 명필름이 전태일 재단, 스튜디오 루머와 공동제작한다.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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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민들의 참여를 통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모으고 있다. 1만원 이상 후원하면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소개된다. 현재 (4월 25일 기준) 16,727명(단체 포함)의 시민들이 참여해 정성을 보탰다.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
전교조 30년, 앞으로도 참교육ⓒ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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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박근혜가 아니라 나경원이다. ‘TV조선’ 보도 클라스

나경원 의원이 국회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닌 이유
 
임병도 | 2019-05-03 08:54: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자유한국당이 불법을 저지르며 선거제 개혁안과 공수처 신설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고 있던 지난 4월 26일, 사개특위가 열리는 2층 회의장에 앞에 드러누웠던 나경원 원내대표가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계단을 통해 5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당직자로부터 513호라는 얘기를 들은 나경원 원내대표는 보좌관으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복도를 정말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정개특위가 열리는 회의장이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정개특위가 열리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뛴 것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나경원 원내대표를 따라다니면서 든 생각은 과연 이들이 국민을 위해서도 이토록 열심히 뛰어본 적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나경원 원내대표의 이런 열심(?)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나경원의 패션 변화? 박근혜 패션 기사와 흡사했다.

▲(좌)2019년 4월 30일 <머니투데이> 나경원 의원 패션 관련 기사 (우) 2013년 <동아일보> 박근혜 대통령 패션 특집 기사

4월 30일 <머니투데이> 마아라 기자는 ‘패스트트랙 정국 속…’나다르크’ 나경원의 패션 변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를 ‘나다르크’라는 별명을 얻고 있으며 ‘정치계 패셔니스타’라고 칭합니다.

마 기자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입은 셔츠와 슈트, 심지어 신발과 시계까지 어떤 색상의 옷을 입고 착용했는지 아주 세세하게 보도합니다.

<머니투데이>기사를 읽다 보니, 2013년 <동아일보>가 보도한 ‘박근혜 패션 프로젝트’라는 특집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도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을 자세히 소개했었습니다.

도대체 패스트트랙 정국과 나경원 원내대표의 패션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동아일보>가 보도한 ‘유명 디자이너 대신 입이 무거운 개인 디자이너’가 나중에 국정농단 최순실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나경원 원내대표도 뭔가 있나요?

패션을 통해 정치인을 스타로 만드는 기법은 언론이 정치인을 띄어줄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연관기사:박근혜 패션은 찬양했던 중앙일보, 김정숙 여사는 조롱)

평상시 정치인 여러 명의 패션을 비교하는 것도 아니고,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하는 자유한국당 때문에 국회가 난장판이 됐던 시점에서 굳이 패션 관련 기사가 필요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나비어천가? 박비어천가와 똑같았다.

▲2019년 4월 29 <TV조선>보도본부 핫라인 프로그램에 나온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 자막과 2011년 <TV조선> 개국기념 박근혜 의원 특집 인터뷰 자막 ⓒTV조선 화면 캡처

지난 4월 29일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서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활약상(?)을 아래와 같은 자막으로 표현했습니다.

‘쇠지렛대 든 나경원… 엘리트 정치인에서 투사로’
‘한국당 의원 “나경원, 하루에 30분도 안 자”
‘나경원, 육탄전으로 민주당 막아내고 눈시울 붉혀’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나경원 원내대표를 마치 투사처럼 묘사한 <TV조선>을 보면 2011년 개국기념 박근혜 당시 의원과의 인터뷰에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냈던 낯 뜨거운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와 별 차이 없는 아부성 자막입니다.

<TV조선>만 보면 나경원 원내대표가 마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투사나 독재정권에서 민주화투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국회선진화법을 어긴 범죄자로 고발이 된 상황입니다.


언론은 양비론을 버리고, 폭력 사태 책임은 자유한국당에 있다고 보도해야

▲<동아일보> 4월 27일 사설. 여당과 자유한국당이 모두 잘못했다는 양비론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 PDF

언론은 중립을 지키며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도 여당도 자유한국당도 모두 잘못했다는 식의 ‘양비론’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감금하고 법안을 탈취해 파손하고, 팩스를 부수고, 회의장을 점거하는 폭력 사태의 책임은 모두 자유한국당에 있었습니다. 명백한 사실 앞에서 ‘양비론’으로 보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론이 이번 사태를 양비론으로 보도하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언론이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해 발생하는 폐단입니다.

패스트트랙은 법안이 통과된 것이 아닙니다. 최장 330일 동안 토론과 합의를 통해 수정될 수도 있는 합리적인 민주주의 절차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하면 정부가 정당 해산을 청구할 수도 있다’라고 명시돼 있는 헌법의 중요한 항목을 위반한 것입니다.

언론이 정치인을 어떻게 촬영하고 보도하느냐에 따라 투사도 범죄자도 될 수 있습니다. 최소한 불법을 저지른 국회의원을 투사로 포장하는 일만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튜브에서 바로보기: 나경원 의원이 국회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닌 이유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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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다급한 카톡 "진짜 고마운 분들이 나타났어"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5/03 09:11
  • 수정일
    2019/05/03 09: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강릉 산불 이후] 농민 1년 걸릴 일을 한나절에 끝내준 고마운 사람들

19.05.02 20:18l최종 업데이트 19.05.02 22:19l

 

지난 4월 4일 강풍에 불씨가 도깨비불처럼 튀어다녔다. 결국 남양 2리 산등성이는 새까맣게 탔다. 그리고 부모님은 밭을 잃었다. 올해 3월 심었던 1100그루의 엄나무 묘목과 30년을 가꿔온 밤나무 50그루가 자라던 땅이었다.

눈앞에서 잃은 돈만 300만 원이었다. 밤으로 얻을 1년 소득 100만 원과 엄나무 묘목값 200만 원. 앞으로 잃게 될 돈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약 천 그루의 어린 엄나무는 퇴직 앞둔 부모님의 연금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고민거리가 또 있었다. 1381평에 걸쳐 뿌리를 박고 선 숯덩이 나무들이다. 부모님은 나무를 베어 버릴 계획을 짰다. 두 분의 평균 연령은 60세, 가진 장비는 전기톱 한 자루와 포터 한 대. 장년의 근력과 부족한 장비로 벌목하기에는 1년도 부족해 보였다. 게다가 애써 일해도 결국 죽은 나무를 치우는 일이었다. 10원 벌이도 없을 일에 들여야 할 공을 생각하니 앞이 까마득했다. 

'다 잘 될 거예요'라고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근거 없이 희망만 이야기하는 건 계몽적인 태도라 삼갔다.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재해 앞에 두 분은 불행을 묵묵히 견뎌야 했다.
 
 지난 4월 강릉 산불로 새로 심은 천 그루의 어린 엄나무와 30년 된 밤나무 50그루가 불에 탔다. 곧은 가지 위로 개두릅(엄나무 순)을 틔우던 엄나무도 죽었다.
지난 4월 강릉 산불로 새로 심은 천 그루의 어린 엄나무와 30년 된 밤나무 50그루가 불에 탔다. 곧은 가지 위로 개두릅(엄나무 순)을 틔우던 엄나무도 죽었다.ⓒ 최다혜
  
고마운 분들의 등장

산불에 탄 밤나무들이 익숙해질 즈음인 5월 1일, 아빠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진짜 고마운 분들이 나타났어. 이 분들 이야기를 기사로 좀 써줄 수 있겠니. 사람들이 수십 명 와서 불탄 나무를 오전 8시 30분부터 지금(오전 11시)까지 치워주고 있어."

연락을 받은 시간 11시. '어서 와 취재하라'는 아빠의 성화를 피하고 싶었다. 3살, 5살 어린 두 아이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선약도 있었다. 게다가 나는 운전면허 잉크가 막 말라가는 6개월 차 초보 운전자. 허기진 두 녀석을 태우고 어설픈 운전 실력으로 태백산맥 기슭까지 들어오라니! 

그런데도 자원봉사자 이야기라면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박한 세상에 타인을 도우러 온 낯선 이들이라니. 막연했던 '희망' '해피엔딩'이란 단어를 꺼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생겨났다.

결국 글로 남기기로 했다. 선약으로 만난 친구와는 의자에 온기가 스미기도 전에 헤어졌다. 어린 딸들 입에는 닭국밥을 대충 말아 넣었다. 구부정한 강릉시 옥계면 남양 2리까지 좁은 산길을 따라 진땀을 빼며 자동차로 엉금엉금 기어 도착했다. 

그곳에는 다름아닌 공무원들이 있었다.
 
 2019년 4월 30일에서 5월 2일, 3일에 걸쳐 전국 농업기계 안전전문관과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63명이 파견되어, 1.48ha에 달하는 강릉 산불 피해지역 벌목을 지원했다.
2019년 4월 30일에서 5월 2일, 3일에 걸쳐 전국 농업기계 안전전문관과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63명이 파견되어, 1.48ha에 달하는 강릉 산불 피해지역 벌목을 지원했다.ⓒ 최다혜
 
1년 예상한 벌목, 한나절 만에 끝내다

나는 왜 공무원들이라 상상을 못 했던 걸까. 부모님 밭을 정리해주던 분들은 책상 밖으로 뛰쳐나온 '농촌진흥청 공무원'들이었다.

농촌진흥청 공무원들은 '전국 농촌진흥기관의 장비와 농업기계 안전전문관을 활용해 농작업 대행 등 산불 피해지역에 대한 범국민적 복구 및 영농지원'을 목적으로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고 했다. 총 188명. 트랙터, 관리기, 이앙기, 굴착기, 로터베이터, 배토기, 운반차량 등 137대의 농업기계를 들고 강원도로 온 이들은 강릉, 동해, 속초, 고성, 인제 등 산불 피해지역을 복구 대상으로 정하고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 작업을 진행했다.

전기톱 한 자루와 포터 한 대를 갖고 있던 평균연령 60세 부모님 앞에 이들은 영웅이었다.
 
 안동시 농업기술센터 팀장 이청희 씨.
안동시 농업기술센터 팀장 이청희 씨.ⓒ 최다혜

"이 땅(산불 피해 지역)의 터가 좋네요. 풍수지리학상 돈이 빠져나갈 곳이 없어요. 자손 대대로 번성할 거예요."

안동시 농업기술센터 팀장 이청희씨는 풍수지리학까지 거들어가며 덕담을 했다. 덕담뿐이랴. '농업기계 안전전문관'이라 새겨진 형광 노랑 조끼를 입은 공무원들은 나무를 베고 벌목한 밤나무를 운반기로 날라 한곳에 모았다.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한 작업이 오후 3시 30분경 종료됐다.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천 평의 벌목 작업이 공무원들의 도움으로 한 나절 만에 끝이 났다.

이들이 도와준 곳은 부모님의 밭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본 공무원들은 1팀뿐이었다. 같은 시간 2팀은 산불로 농기계가 망가진 주민들을 위해 벼이앙을 하고 있었다. 3팀은 속초에서 벼이앙을, 4팀은 고성에서 논·밭 로터리 작업을, 5팀은 인제에서 순회점검에 나섰다.
 
 미래농업교육원 원장 박순홍 씨
미래농업교육원 원장 박순홍 씨ⓒ 최다혜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나라

문재인 대통령은 4월 6일 강원도 산불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농촌진흥청도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강원도에 복구 지원을 계획했다.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은 응급 대책, 재해 구호와 복구에 필요한 행정·재정·금융·세제 등의 특별 지원을 받는데, 특별 재난지역 선포의 근거는 헌법에 있다. 헌법 제34조 6항에 따르면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는 국가로부터, 국가 기관에 일하는 이들로부터 보호 받고 있었다. 
뜻밖의 재해는 구체적 개인의 힘으로 돌리기 힘들다. 그러므로 국가는 재난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발생한 결과를 신속하게 복구하는 능력과 노력 역시 안전하고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 <지금, 다시 헌법> 중.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지음.
1988년생인 나는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라 생각하라'고 배웠다. 주어진 여건에 분노하기보다 개인의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이번 산불도 마찬가지였다. 산불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수습은 우리 가족만의 몫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가 '고마운 분들이 왔다'고 연락했을 때 자원봉사자들을 떠올렸다. 제도의 도움보다 개인의 품앗이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간 그렇게 위기를 극복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 산불 피해를 수습하면서 공무원의 도움을 받았다. 부모님은 사회 안전망 속에 있었다. 물론 자원봉사자 분들과 멀리서 찾아와 준 관광객분들의 공은 더더욱 값지다. 이해 관계없이 손품, 발품 팔기가 어디 쉬운가. 그런데도 농촌진흥청의 '강원도 산불 피해지역 영농지원 계획'에 감탄했던 이유가 있다. 사회 시스템에 의한 안정감을 오롯이 느꼈기 때문이다.
 
 2019년 4월 30일에서 5월 2일, 3일에 걸쳐 전국 농업기계 안전전문관과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63명이 파견되어, 1.48ha에 달하는 강릉 산불 피해지역 벌목을 지원했다.
2019년 4월 30일에서 5월 2일, 3일에 걸쳐 전국 농업기계 안전전문관과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63명이 파견되어, 1.48ha에 달하는 강릉 산불 피해지역 벌목을 지원했다.ⓒ 최다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 헌법 전문 중에서

다시 헌법을 들여다봤다. 어렵고 두꺼운 데다가 딱히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도 없었기 때문에 멀리해왔다. '우리와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라는 71년 전 쓰인 헌법 전문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귀한 우리 손주들 괴롭히면 혼날 줄 알아!'하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으름장을 놓은 기분도 났다.
 
 한 달이 흘러도 여전히 시커먼 땅에 각시 붓꽃이 피었다. 산불이 나도 봄이 온다는 사실을, 각시 붓꽃과 형광 노랑 조끼를 입은 공무원들 덕분에 체감한다.
한 달이 흘러도 여전히 시커먼 땅에 각시 붓꽃이 피었다. 산불이 나도 봄이 온다는 사실을, 각시 붓꽃과 형광 노랑 조끼를 입은 공무원들 덕분에 체감한다.ⓒ 최다혜
 쉽게 불에 타버린 소나무와 달리 활엽수들은 타버린 밑둥을 치유하며 잎을 틔웠다.
쉽게 불에 타버린 소나무와 달리 활엽수들은 타버린 밑둥을 치유하며 잎을 틔웠다.ⓒ 최다혜
 
강릉 남양 2리의 봄은 더디게 오고 있다. 다른 동네는 노란 민들레로 아파트 화단이 다 덮였는데 여기는 검은 땅에 몇몇 야생식물만 비죽이 싹을 틔웠다. 그래도 봄이 오긴 왔다. 생명력 강한 종들이 기어이 꽃을 피웠다. 꽃뿐이랴. 1년 치 벌목에 대한 갑갑증을 해소한 부모님의 마음에도 봄바람이 들었다. 

아빠는 외손녀의 손을 잡고 밑동만 남은 밤나무밭을 한 바퀴 걸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빠 속이야 알 수 없다. 그래도 삼가왔던 희망적인 말을 건네기엔 충분해진 듯하다. 

"아빠, 이제 다 잘 될 거예요."
 
 1년을 가늠했던 불 탄 밤나무 밭 정리는 한나절 안에 끝났다.
1년을 가늠했던 불 탄 밤나무 밭 정리는 한나절 안에 끝났다.ⓒ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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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찰, 서울시장 보선 때 ‘나경원 비선캠프’ 자임 활동

[단독] 정보경찰, 서울시장 보선 때 ‘나경원 비선캠프’ 자임 활동

등록 :2019-05-02 05:00수정 :2019-05-02 12:04

 

MB청와대 보고 문건 입수 
박원순 공격 ‘색깔론’ 제안하고
보수언론 활용한 ‘여론전’ 조언
강·약점 분석 ‘맞춤 컨설팅’까지…
토론서 종북공세, 문건과 판박이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를 들고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를 들고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정보경찰’이 여당이던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비선 캠프’ 역할을 자임한 경찰 내부문건이 드러났다. 야당 후보 동향 파악, 야권 시민단체 사찰, 선거 판세 분석, ‘나경원 귀족 이미지’ 희석 방안, 선거 전후 청와대의 국정 운영 방안까지 담고 있다. ‘정책정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이뤄진 경찰의 선거개입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정치경찰’이 된 정보경찰 기능의 축소 또는 폐지가 적극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선거 50일 전-“이념 공세로 보수층 결집을”

 

 2011년 10·26 보궐선거는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찬반투표 패배로 물러나며 치러졌다. 청와대와 여당으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선거였지만, 그해 9월6일 ‘박원순-안철수’ 단일화가 이뤄지며 선거 판세가 급격히 요동쳤다. 1일 <한겨레>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당시 정보경찰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들을 확보했다. 이 문건 내용은 당시 이명박 청와대를 거쳐 한나라당 지도부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

 

후보의 선거 캠프에 참여연대 인사가 많은데, 참여연대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서한을 유엔에 보냈다”고 공격했다.

 

같은 문건에는 “보수단체·언론을 활용해 박원순 변호사를 지원하는 측근 인사들의 그간 불법 행위를 재조명, 좌파 진영에 대한 경계심을 조성”해야 한다는 네거티브 공세도 제시됐다.

 

■ 선거 직전-“나경원 귀족적 이미지…확장성에 한계” 분석

 

공식선거운동 기간을 앞두고 나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정보경찰은 ‘맞춤형 정치컨설팅’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망’ 문건(10월7일)에서 정보경찰은 나 후보에 대해 “외모, 판사 출신으로서의 청렴성, 무상급식 주민투표 과정에서 보여준 보수 가치 수호 의지 등”이 강점이라면서도 “‘학원 재벌의 딸’ ‘온실 속 화초’ 등 귀족적 이미지가 강해 서민층으로의 표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신망이 있고 경륜을 갖춘 인물을 정무부지사 등으로 사전 내정, 러닝메이트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조치 고려사항’을 제시했다.

 

“당이 전면에 나서는 대신 확실한 자료를 갖고 보수언론·단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설득력·신뢰성 면에서 유리”하다는 제안도 했다. 실제 그즈음 보수단체 연합체인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는 나경원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박원순 후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 선거 직후-MB, 정보경찰 조언대로 라디오연설 진행

 

서울시장 선거가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끝나자 정보경찰의 보고는 ‘청와대 책임론 차단’과 ‘보수단체를 통한 박원순 공격’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선거 당일 작성된 ‘서울시장 보선 결과 관련 고려사항’ 문건(10월26일)에는 “내년 총선 전 마지막 선거였던 만큼, (대통령은) 일상적 언급보다는 라디오연설 등을 통해 진정성 있는 대국민 메시지를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젊은층의 높은 정치 참여 의식이 확인”됐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문건 작성 5일 뒤인 31일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연설에서 “지난주 재보궐선거에서 변화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갈망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학력보다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정보경찰은 노골적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을 공격할 포인트를 짚어주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 시정운영 관련 평가’ 문건(11월21일)에는 “박 시장이 소통 행보에 힘입어 전반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며 “서울시정이 반향을 일으키며 긍정 평가를 받을 경우 국정운영 및 선거에 부담이 예상된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정보경찰은 대책(조치 고려사항)으로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등 보수 시민단체의 감시 활동을 통해 서울시정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야권에 대한 기대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011년 10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나경원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초청 관훈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1년 10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나경원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초청 관훈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선거관련 문건 작성 수십년 관행”이라는 정보경찰

 

지난 30일 서울중앙지법은 2016년 4월 총선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를 받는 정창배 중앙경찰학교장(치안감)과 박기호 경찰인재개발원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정 치안감은 “선거 관련 문건 작성은 수십년간 계속된 관행이다. 정무직 공무원은 청와대를 보필하러 갔으니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치안감과 정 치안감은 박근혜 정부 당시 각각 경찰청 정보국 정보심의관과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며 청와대와 정보경찰 사이 연락창구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치러진 선거 때마다 정보경찰이 노골적으로 선거에 관여하고, 관련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진박(진실한 친박근혜계) 공천’이 극심했던 2016년 4월 총선 때는 호남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구에서 정보경찰이 선거 동향을 파악해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개혁위원회 정보경찰소위 위원이었던 양홍석 변호사는 “전국적으로 3천명에 이르는 정보경찰이 정부 여당의 승리를 위해 선거에 동원된 것으로,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2328.html?_fr=mt1#csidx79ca2246ac72a28ab5cf65319d892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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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촛불혁명을 부르는 자유한국당 해체 민심

다시 촛불혁명을 부르는 자유한국당 해체 민심
 
 
 
홍덕범 
기사입력: 2019/05/02 [11:0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5월 4일 열리는 자유한국당 해산 '다시 촛불' 집회 선전물     © 홍덕범

 

자유한국당 정당해산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국민여론이 2일 현재 150만을 넘어 현재 160만을 넘어 서고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폭력적으로 국회를 불법점거하며 국회를 마비시키고 오직 당리당략을 추구하며 보이는 망동망언에 대한 국민 심판 여론이 인터넷 공간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에서 국민청원 여론은 북한이 배후에서 조작하고 있다.”, “민주당 동원한 국민청원은 200~300만이 되어도 별 가치가 없다는 등의 음모론을 주장하고 민심을 왜곡하는 망언을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이런 어리석은 대응은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더 이상은 못 참겠다다시 촛불을 들고 자유한국당을 완전히 해체시키자는 댓글이 인터넷에서 넘쳐나고 있다.

 

자유한국당 해체민심이 담긴 인터넷 댓글을  소개한다.

 

*

반성과 사죄는 없고 매순간마다 말도 안되는 논리로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시키더니 이제는 북한배후설까지~~1야당이 가짜뉴스로 국민을 호도하는구나진짜 역겹다~~

 

*

아직도 민심을 읽지 못하는 아둔한 것들.

아니 아예 인심을 왜곡하려는 파렴치들.

 

*

어이없다

징그러운 똥파리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저것들은

내년 총선에서

박멸하는 길뿐

 

to**y

이것들은 지네가 불리하면 북한이 개입했단다~~

 

b***o

뱀꼬리밖에 안되는 능력없는 자가.. 뱀 머리 행세를 하다 한국당을 천리 낭떠러지로 쳐박혔네...소속의원들을 전과자로 몰아놓을 지경에 이르렀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서 ,보수꼴통들이 막다른 곳에 오면 북풍을 조작하는 수법이 전두환과 똑같은 아베 꼴통경원이 그걸 철저히 학습했구나국민이 상위인데.. 뭐가 중헌디 ....그 것도 모르면서 ,오직 관종청치에만 혈안 된 아베경원 ...이제 퇴로가 없다.. 니가 모든 상황을 책임지고 물러나는 수밖에...답이 없구나...

 

V**o

그냥 국민의 목소리를 무겁게 듣겠다...

그 한마디가 그리 힘드나.

국민에게 이기려드는 니들 모습을 보니 내년 총선에선 반드시 니들 왜구놈년들을 다 쫓아내야겠다.

 

*

불리하면 북한 탓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좀 참신한 걸로 핑계꺼리 바꿔 보던가

 

**

이런 썩은 생각으로 정치를 하니 무엇이 이루어지고 개혁을 하겠나지들이 여지껏 써오던 조작이니 남도 그렇다고 생각하나보다또 다시 국민들이 촛불 들고 발정당 해산시위를 하면 그때는 국민들을 모두 북에서 넘어온 간첩이라 말할건가현실을 직시하고 반성하고 개혁할 생각은 안하고 거짓에 호도하고 회피할 생각만 하는구나제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귀울여 행동하라.

 

*

이래도 북한 저래도 북한.

작작좀 하지.

 

*

참 지긋지긋하다.

무조건 북한 타령 징글징글하다.

그동안 많이도 써먹었던 수법.

이제는 안 통한다.

 

*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할 말인가?

그래서 자한당 해체 표를 받는거닷

말이가.. 막걸리가.. 어이가 없어서

 

*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이리도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귀를 닫고

국민을 빨갱이라고 얘기할까

빨갱이라는 단어도 이젠 지겹다

너무 답답하다

 

*

어휴 찌찔한 지긋지긋한 음모론 또 제기 니들은 빨리 공중분해되어야

 

*

북한 없었으면 존재이유가 없는 정당의 나대표.

 

*

미쳐도 단단히..... 얘네들은 국민이 뭘로 보이나?? .....

 

*

한국당은 말할 것이 그것밖에 없지.

지겨워

 

*

니들 g럴 옘병하는거는 일본이 개입했냐?

 

*

정말 꼴보기 싫은 인간들사회 분열 조장세력.

 

*

친일매국노들

참 징글징글하다

 

아름*

나경원도 삭발 하겠지?

기대된다~~~~^^

 

**

ㅎㅎ.

북한 팔이 이제 그만좀 하자

진짜 욕 나오네.

 

**

어러니

청원 하는 거다.

초등 수준 한국당

 

*

진짜 이러고 싶을까.

아침부터 화 날라고 하네요.

민심이 천심입니다!

할베 할미들 또 정치공작으로 우롱하시네요

이제는 164만 명 국민들도 우롱허시고 무시하시네요.

이럴수록 청원수 는 계속 올라갑니다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반성하세요!!

북한 없으면 정치 못하네 이집

 

h**n

예전 같았음 평범한 나같은 아줌마

간첩 만들었겠네이뤈~

 

**

너는 일본 사주 받았냐?

1야당 수준이 이 모양이니 박근혜가 대통령 해먹지

어디서 개소리를..

 

c**2

원내 대표가 리더쉽이 저 모양이니 160만이 넘는 국민이 청원에 동의를 하지!!!!!!!

 

**

나베 말대로 한국에는 4천만명 이상의 종북 세력이 살고있다~

나베를 비롯한 1천만의 토착왜구 우경화세력을 가까운 대마도로 추방시키는 게 맞는듯 하다~

  

이러한 국민들의 분노를 담아 매주 토요일 4.16 연대에서 자유한국당 해산’ 촛불집회를 개최한다. 5월 4일 토요일 6시를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산’ 촛불집회가 진행된다.

 

5월 25일에는 범국민 대회를 개최해 전 국민적인 자유한국당 해체 민심을 제대로 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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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시대

 
양기철  | 등록:2019-05-02 09:38:30 | 최종:2019-05-02 09:38:5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철학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시대
양기철의 [21세기의 철학과 경제학을 하자]
(다른백년 / 양기철 / 2019-05-02)

 

새로운 인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인류는 무한한 재화생산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를 바탕으로 인류는 영장류의 한 종으로서, 20만년 호모사피엔스의 종의 역사를 마감하고 전혀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하였습니다. 하늘을 날 수 있고 바다 속에도 들어가고 심지어 지구둘레를 하루 만에 주파하고 우주 밖에까지 진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개체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정도의 능력을 월등히 넘어서, 맘만 먹으면 지구의 육지와 해양을 바꾸고 다른 종을 절멸시킬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진 가공할 종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단일 개체로서의 인간은 아직도 하찮아서 호랑이나 사자, 곰과 같은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에도 힘듭니다. 하지만 집단 존재로서 인류는 지구상의 다른 생물종과는 완전히 다른 격의 존재로서 주변 환경에 적응하던 종이 아니고 지구환경을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대로 바꿀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새로운 인류로 진화의 원천은 산업혁명을 통해 이룬 자본주의 생산력입니다. 그것은 조건만 맞으면 거의 무한대의 재화 생산을 가능케 하고, 그 발전의 끝도 없습니다. 인류는 자신이 가진 새로운 힘, 체계화되고 집중된 기술을 바탕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즉 물질의 개벽입니다(이것이 왜 자본주의 하에서 가능하게 되었는지는 다음 기회에 다룹시다).

과학과 기술

기술발전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라고들 말합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기술만으로 산업혁명을 추동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은 인류의 이전 역사 속에서도 꾸준히 발전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아닙니다.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서 과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일단 과학은 단순히 기술의 집약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술은 현상을 발견하고 그를 다시 이용하지만 과학은 기술과 다르게 원인을 찾아내고 인과를 설명합니다. 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기술로 가능하지만 연소를 설명하는 것은 과학입니다. 발화물질, 산소와 산화과정에 대한 이해, 기술이 쌓이고 쌓인 후에 여러 현상들을 일반화하는 한 차원 높은 사고 속에서 인과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기술진화 속에서 나오지만 과학으로 정리된 기술은 그 발전 단계를 폭발적으로 올리는 계기를 맞이하게 합니다. 전자의 발견은 1897년의 오늘, 4월 30일, J.J. 톰슨이 실시한 음극선 실험에 의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발견으로 인해 양자세계가 바로 우리 앞에 실제함을 밝힐 수 있었고 라디오 > 진공관 > 트랜지스터 > TV > 컴퓨터 > AI 까지 연결되어 오늘날의 전자 산업이 가능해 졌습니다.

공학과 마찬가지로 한의학도 임상에 기반한 기술적 요소가 있습니다. 왜를 묻지 않습니다. 왜를 묻는 경우, 더 이상한 상황을 맞이합니다. 황당한 인과를 끌어 대는 것입니다. 사대적이고 음습한 음양오행, 주역의 세계관이 21세기에도 죽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물질은 개벽해도 정신이 못 따라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한의학은 찬 성분, 뜨거운 성분, 나무의 성질, 불의 성질 등 개똥철학의 범주화를 뛰어넘어서야 발전이 있습니다. 진화와 세포학을 받아들이고 경험적으로 의미있는 데이터에 기반한 임상결과를 깊이 연구하여 약초나 약성 성분을 분석하고 그를 인체내부의 물질대사와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이 과학적 방법이고 이것이 병의 이유와 근원을 따져서 치료하는 것, 과학적 의료의 시작입니다.

물질을 범주로 구분하고 계통화를 할 때 과학적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반화를 통해서 공통분모를 찾고 그것의 추상화를 통해 상위 계층을 찾는 것입니다. 우렁숭이(멍게)의 일생을 관찰하여 유생때는 올챙이처럼 생겼고 척색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로 하여 척추동물과의 연관성을 알아내는 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추상화, 일반화, 범주, 계통적 사고 등 과학적 방법론은 근대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고대 철학의 합리적 추론에서 보듯이 맹아적으로 존재하기도 했지만 실제 의미있는 방법론으로 신인류로의 진화에서 핵심이 된 것은 근대 이후의 철학의 발달에 의존합니다. 유물론의 발전과정이 바로 과학적 방법론의 형성과정과 같습니다. 유물론 철학의 교조인 맑스조차 신인류의 도래까지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학발전에서 양자영역에 도달하고 물질이 운동한 궤적이 데이터가 되어 물질의 고유한 성질이 될 것이라는 것은 19세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물질세계의 질적 도약 앞에 인간의 인식체계, 철학은 현재 시점으로 더욱 빈곤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철학다운 철학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학과 기술은 인과의 블랙박스를 이미 만들어진 프로세스로 간주합니다. 그냥 가져다 사용해도 되고 결과가 같으면 만사형통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설이나 상상은 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하지 않은 추론에서 출발한 가설은 망상이 되어 혹세무민, 음모설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요즈음의 천체물리학은 가설이나 상상의 천지입니다. 빅뱅이론을 우리나라처럼 열렬히 믿는 곳도 없는 듯합니다. 우주의 모양에 대한 나름의 이론도 없이 빅뱅을 믿다니 참으로 불쌍합니다.

우리 주위에 박사들, PhD는 널려 빠졌는데 과연 이들이 과학(+철학)을 이해하고 사물의 원리에 대해 연구했기에 박사가 되고 그만한 인정을 받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세계와 자신에 대한 사유를 해 본 적이 있으며 자신의 학위 논문이 세계의 운행 질서 속에 어디를 다루는 것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 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박사님, 철학 한 번 해 보았습니까? PhD인데!’

철학은 어렵다, 과학도 어렵다

진실로 철학은 쉽지 않습니다. 철학의 시작은 세계에 대한 설명이므로 과학은 철저히 철학의 구성부분이 됩니다. 기술과 과학이 발달하기 전부터 인간은 세계관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신이고 신학입니다. 불교인식론이 관념적이지만 변증법적이라는 것은 2600년 전의 인간들도 열심히 사고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그 뿐입니다. 그렇지만 불교는 어렵습니다. 범인들은 무지 노력을 해도 이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당시의 기술발전 수준에서 과학은 싹이 틀 수 없는 시점, 즉 유물적 세계관이 만들어 질 수 없는 상황에서 변증법적 방법론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마무시한 노력이 필요한 과정의 산물입니다.

오늘날의 인간에게도 철학은 쉽지 않습니다. 인간 사고체계는 역사이래로 일관되게 발전해 왔는데, 오래된 생각이 값비싼 골동품처럼 더 희소성이 있다는 망상들로 가득차서, 200년 전도 부족해서 2000년 전의 인간들의 사고체계를 더 숭상하고 있습니다. 많은 증거와 사실들 앞에서도 진화의 세계를 믿지 않으려 하고,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세포의 군체로부터 생물기관이 분화되어 개체로 발전했다는 사실 앞에서, 전생을 믿거나 윤회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죽어서 천당을 믿고 싶은 것이 현재 인간의 정신 수준입니다.

신앙과 믿음의 세계를 넘어 현실의 과학과 철학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도 알고보면 푸닥거리 미신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상상은 자유이나 인터스텔라나 빅뱅이 판을 치고 있는 사이비 과학의 세계가 그다지 아름답지만 않습니다. 블랙홀이 구멍이라서 화이트홀로 연결되는가요? 블랙포인터라고 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을까 싶습니다? 우주모양은 구형인가, 도넛인가, 말안장 모양인가요? 팽창하는데 끝이나 경계는 없는가요? 우주의 모양도 말하지 못하는 팽창론, 무엇을 위해 그 덧없는 이론을 존재하는가요? 양자세계가 시간여행을 이끌어요? 양자도 운동하고 궤적을 만들니다. 빛이 파동과 입자 성질을 모두 띠는 것은 그것이 공전하면서 전진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물질에 고유한 성질로 그것이 운동한 궤적입니다. 따로 시간이 물질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그 무언가가 아닙니다. 수학적으로 궤적을 읽어서 그래프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상이한 공간 속에서 물질의 운동이 빠르고 느리고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일관되게 운동합니다. 모든 물질은 운동합니다.

시간여행을 믿는다면 사람을 과거로 보내지 말고, 통 크게 40억전 태양이 생기는 시점으로 돌아가서 현재의 태양이 마침 만들어지고 있는 태양의 기본물질들을 삼켜버리는 좀 더 큰 상상은 어떠할까요?

하지만 철학은 아름답다

인간사고 속에서 과학은 항상 거리를 두고 서 있습니다. 사람들이 철학을 멀리하는 것은 철학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영혼이나, 내세에 대한 생각, 영생과 신앙을 대신하여 과학을 받아드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빨간 알약은 유물적 세계, 과학적 세계로 당신을 인도합니다. 파란 알약의 세계, 비과학과 철학없는 세상.

AI만능을 주장하는 이들은 실상 AI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드라마 Humans에 나오는 사람을 닮은 안드로이드 로봇은 개체별로 사고(?)합니다. 인간의 사고작용은 현재 컴퓨터의 프로세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구분된 중앙처리장치나 지워지지 않는 메모리, 외부로의 네트워크 장치 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집단으로 생활하고 집단으로서 진화를 해 왔지만 기본적인 사고체계는 모두 개체로서 독립적이다. (따라서 철학과 과학이 어려운 것이고) 로봇은 개체로 구분될 이유가 없습니다. 연결되어 전체로서 계산하는 것이 가능한데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알파고와 왓슨는 프로세스이자 좀 더 발전된 전문가 시스템입니다. 지극히 제한된 영역에서, 인간이 가진 제한된 데이터 저장능력에 대비하여 (인간을 이겼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인지능력보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수준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자원입니다. 우리 뇌가 1200조 개의 시냅스에 포도당을 공급하는 순간, 현재 그 정도 역할을 하는 컴퓨터 프로세스를 돌리려면 원자력발전소 10개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발전소를 달고 다니는 로봇! 상상은 자유지만 우울하고 진실이 밝혀진 현실은 도리어 유쾌합니다.

현대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세계관을 말하지 않습니다.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나 없나를 잠시 생각하게 하는 사회학 혹은 심리학을 하면서 먹고 삽니다. 현대철학에서 현실의 과학적 발전 상황은 논외입니다. 계통이 아니라 계보를, 그리고 인식론 대신 심리학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합니다. 모든 과학의 출발로서 세계의 물질로서의 통일, 운동과 변화, 발전, 추상과 일반, 범주화… 이 모든 것이 인간역사의 진화의 산물입니다. 당신이 기술자라면 과학을 배우고 과학자라면 철학을 배우고 그리고 철학자라면 세계를 설명해야 합니다.

철학은 아름답습니다. 철학이 설명하는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철학을 하는 당신도 아름답습니다.

양기철 
협동조합 큰바위얼굴 이사장. 다른백년 이사. ICT 전산기술자. 중소제조기업 컨설팅.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철학서(세계철학사 2~3권) 대표번역과 '80년대 학생운동사' 대표집필을 하였다. 2014년 협동조합 큰바위얼굴을 설립하고 주된 사업으로 청년과 학생들의 주거공간을 마련해 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나 국토부와 협력하여, 협동조합 임대주택을 보급하는 일을 협동조합의 최우선 사업으로 하고 있다.


출처: http://thetomorrow.kr/archives/9741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761&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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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의 반격, 미묘하게 엇갈린 헤드라인

검찰총장의 반격, 엇갈린 헤드라인

문무일 검찰총장이 1일 수사권 조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국회가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지 이틀 만이다. 대다수 신문이 이를 1면에 전했다. 그러나 헤드라인에서 사안을 대하는 관점차가 미묘하게 드러났다.

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주는 것이 골자다. 검찰의 직접수사를 줄이는 방안도 들어갔다. 이 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경찰은 혐의를 확인한 사건만 검찰에 송치하고 자체 수사종결할 수 있게 된다. 

문무일 총장은 1일 대변인을 통해 “형사사법 절차는 반드시 민주적 원리에 의해 작동돼야 하는데, 현재 패스트트랙안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며 “(관련 법안은) 특정한 기관에 통제받지 않는 1차 수사권과 국가정보권이 결함된 독점적 권능을 (경찰에) 부여한다. 올바른 형사사법 개혁을 바라는 입장에서 이 방향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 동아일보 2일자 3면
▲ 동아일보 2일자 3면
 

국민·동아·조선·중앙·세계일보는 수사권 조정 패스트트랙 지정이 “민주주의 위배에 어긋난다”는 발언을 제목에 따옴표로 인용했다. 그 외 아침신문들은 “반기”(서울신문・한겨레・한국일보) “반대”(경향신문) 등 단어를 썼다. 

한국일보는 “검찰 내에서는 ‘경찰의 권한 남용을 통제할 수사지휘권이 사라지면, 제2의 버닝썬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 결국 국민들이 피해보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왔다”고 해석했다. 한국은 이날 유일하게 관련 사설을 내 “(관련 법안을) 면밀히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며 경찰 수사권한 남용 제한,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 축소를 주문했다.

검찰의 내부 목소리에 부응했다는 풀이도 있다. 서울신문은 “검찰 내 반발 여론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어 검찰총수가 총대를 멨다”고 봤다. “검찰이 가진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중 수사권 일부만 경찰로 옮겨간 것을 놓고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나다고 한 것도 과잉대응이란 지적이 있다”고도 했다.  

조선일보는 1면 칼럼 ‘팔면봉’에서 문 총장의 이런 발언이 ‘뒷북’이라며 “옛날 총장이면 벌써 옷 벗었다”고 문 총장의 반응을 미온적으로 평가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국회에서 관련 공방이 한창이던 지난달 말 문무일 총장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대검찰청 간부회의를 열었고, 문 총장 거취에 관한 논의가 오갔다며 비중을 둬 전했다.

 

▲ 조선일보 2일자 1면
▲ 조선일보 2일자 1면
 

한겨레는 이날 1면 머리에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치·선거개입한 경찰 내부문건을 보도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정보경찰은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사실상 ‘비선 선거캠프’ 구실을 했고 ‘맞춤형 정치컨설팅’과 함께 국정운영 방안까지 담겼다. 한겨레는 “국회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이 법안심사 과정에서 ‘정치경찰’이 된 정보경찰 기능의 축소 또는 폐지가 적극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밝혔다.

대통령 노동계에 메시지, 한겨레 1면 “삼성편향 정책” 지적 

문재인 대통령이 1일 노동절을 맞아 노동계에 메시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노동계가 우리 사회의 주류라는 자세로 함께해달라. 과거 기울어진 세상에서 노동이 ‘투쟁’으로 존중을 찾았다면, 앞으로 세상에서 노동은 ‘상생’으로 존중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신문들은 환영했다. 동아일보는 “민노총은 강경한 태도를 거두고 있지 않다”며 “정부가 노동친화적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풀이했다. 

중앙일보는 ‘문 대통령의 정책기조가 친재벌로 돌아섰다’는 비판에 정부 고위관계자 말을 빌려 “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친시장주의자에 가까웠다. 오히려 운동권 출신의 장관이나 핵심참모들이 대통령 뜻과 달리 노동계 등 기존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적극 행동하지 못해왔다”고 했다. 국민일보와 매일경제, 세계일보도 관련 사설을 내 ‘정부 정책의 친기업 전환’을 촉구했다. 

 

▲ 중앙일보 2일자 3면
▲ 중앙일보 2일자 3면
 

서울신문과 한겨레는 비판 사설을 냈다. 서울신문은 “최근 경기둔화에 따라 노동 개혁정책의 강도가 약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노동계에서 나온다”며 “노동계가 우리 사회 주역이 되려면 그들에게 양보를 요구하기 전에 정부와 사회가 기본적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 시작은 ILO 핵심협약 비준”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노동절을 기념하는 사설에서 “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노동계의 인식과 격차가 크다”며 최저임금 산입범위 변경, 주 52시간을 상쇄하는 탄력근로제 추진 등 ‘줬다뺐기 식’ 정책이 노동계 비판을 산다고 했다. 

한겨레는 1면에서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지원정책이 ‘삼성 감세’가 핵심이라고 지적하는 기사를 냈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시장 주자’가 되는 핵심인데, 삼성에 전폭 법인세 공제혜택을 주는 반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기초 토양인 팹리스(설계전문) 중소기업들은 이같은 지원과 무관하다는 지적이다.

 

▲ 한겨레 2일자 1면
▲ 한겨레 2일자 1면
 

나루히토 일왕 즉위, 가장 많이 보도한 신문은

전쟁을 겪지 않은 첫 전후세대 일왕 나루히토(59)가 1일 즉위했다. 다수 신문이 1면이나 국제 주요지면에서 사진과 기사로 이 소식을 전했다. 신문들은 즉위식에서 나루히토가 “세계의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언급한 점을 강조했다. 다만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현행 헌법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레이와(命和・나루히토 일왕의 연호) 시대를 여는 일왕의 첫 메시지를 이처럼 주목하는 이유는 일본의 최근 정세가 심상치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은 2012년 말 아베총리 집권 이후 급격히 우경화하면서 과거 침략을 부인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루히토 일왕도 아키히토를 따라 아베 총리의 헌법개정 의지에 맞서 평화주의를 지키는 구심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가장 많은 건수의 보도를 낸 건 조선일보다(9건). 일왕 나루히토 즉위 10면 이어지는 기사에서 즉위식 현장 묘사와 나루히토 일왕 다음 서열 1위인 동생 후미히토의 성향, 나루히토가 즉위식에서 탄 차량 가격까지 자세히 보도했다.  

한편 이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1일 법원에 일본제철과 후지코시 국내 재산을 매각해달라고 신청했다. 이에 조선과 중앙은 ‘외교적 파장’을 우려하는 제목과 부제를 달았다. 

 

▲ 조선일보 2일자 10면
▲ 조선일보 2일자 10면
 
▲ 중앙일보 2일자 4면
▲ 중앙일보 2일자 4면
 

다음은 2일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10・26’ 김재규 사진 출신부대 다시 건다” 
국민일보 “노동계도 사회 주류… 투쟁 대신 상생해야” 
동아일보 “‘민주주의 위배’ 청에 반기 든 검찰총장” 
서울신문 “‘사법개혁 패스트트랙 우려’… 반기 든 문무일” 
세계일보 “중・고생 27% ‘우울’… 음주・흡연 늘었다” 
조선일보 “‘살림 팍팍해졌다’ 1년새 29%→59%” 
중앙일보 “백제인의 평화사상 레이와에 담겨 있다” 
한겨레 “정보경찰, 서울시장 보선 때 ‘나경원 비선캠프’처럼 활동”
한국일보 “검 ‘동물국회’ 수사, 총선판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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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노동자 자주교류 전면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129회 세계노동절 대회 개최...사회대개혁 투쟁 결의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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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1  22: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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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은 1일 세계 노동절을 맞아 서울광장을 비롯한 전국 13개 지역에서 'ILO핵심협약 비준· 비정규직 철폐·재벌개혁·한반도 자주통일'을 주제로 '2019 세계노동절 대회'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김명환, 이하 민주노총)은 1일 세계 노동절 129주년을 맞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비롯한 전국 13개 지역에서 '국제노동기구(ILO)핵심협약 비준·비정규직 철폐·재벌개혁·한반도 자주통일'을 주제로 2019 세계노동절 대회를 개최했다.

서울, 경기, 인천, 강원 지역본부가 참가해 서울광장에서 개최한 이날 수도권대회에서 민주노총은 ILO핵심협약 비준을 비롯한 4대 요구를 중심으로 연대와 투쟁을 통해 사회대개혁의 길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노동시간 단축, 야간노동 규제, 노동안전 강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지급, 결사의 자유 인정과 단결권 보장은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 파리에 모인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공동실천과 연대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한 129년 전 선배 노동자들의 요구"라고 하면서 "주 5일 노동과 주당 최대 52시간 노동을 법제화한지 얼마 되지 않아 탄력근로제 개악을 강요받고,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률로 올린지 얼마되지 않아 저임금 노동을 강요받으며, 산업안전법보다 뒤쳐지는 시행령으로 노동자 생명과 건강권을 위협받는 지금의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쟁취하려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100년전 ILO의 제1호 협약이 8시간 노동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는, 100년이 지난 2019년에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넘어 결정구조를 개편하려는 등의 노동개악이 시도되고 있으나 이러한 퇴행적인 편법 개악 시도는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ILO핵심협약 비준과 온전한 노동기본권 쟁취 △비정규직 완전 철폐 △모든 민중진영, 민주시민사회단체, 을들의 연대를 통해 재벌개혁, 사회공공성·사회안전망 강화, 정치제도 개혁, 한반도 자주통일 등 사회대개혁 투쟁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퇴행적인 편법 노동개악 시도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고 사회대개혁 투쟁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대회에서 전체 참가자들은 '민주노총 129주년 세계노동절 선언문'을 채택해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가감없이, 온전히 보장도리 때까지 거침없이 투쟁할 것"이며, "교사, 공무원은 물론 화물노동자, 운전노동자, 간병인,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방과후 교사 등 노동기본권을 가로막는 반헌법적 노동법률과 노동관행에 의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노동자의 권리를 누릴 수 있을 때까지 모든 노동자가 연대하고 단결하여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이어 ILO핵심협약 비준과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동안 정부와 자본의 잘못을 노동자가 모두 책임져야 하는 사회구조적 모순 속에 "경제위기를 핑계삼아 자리잡은 비정규직은 임금차별, 고용차별, 신분차별의 새로운 신분제가 되어 극단적인 사회 약극화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면서 "비정규직을 완전히 철폐하기 위해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차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헬조선'이라 불리는 오늘의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만들어 낸 양극화의 뒷편에 재벌 특혜 일변도의 정부 정책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며, "재벌특혜를 끊어내야 우리는 비로소 노동자를 피를 먹고 사는 낡은 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재벌 세상에서 고통받는 중소상공인, 빈민, 장애인 등 세상의 모든 약자들고 굳건한 연대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4.27판문점선언 1주년에 즈음해 "정상간의 교류가 노동자의 자주 교류로 확대될 때에 평화는 되돌릴 수 없는 봄처럼 찾아올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해서는 남과 북 노동자의 자주교류가 전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북측 조선직업총동맹은 이날 '5.1절 129주년 기념 남북노동자 3단체 공동성명'을 발표해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단결하여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의 활로 개척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무력화 시도에 맞서 투쟁 △남북 노동자 연대성 공고히 해 새로운 높이의 노동자 통일운동 개척 등을 결의했다.

   
▲ 엄미경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이 남북 노동 3단체 공동성명서를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그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는 긴장과 대결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남북의 노동자가 앞장서서 선언 이행의 환경과 조건을 열어내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며, "당면하여 4.27부터 9.19까지 '남북선언 이행을 위한 실천투쟁 기간'을 선포하고,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기 위한 환경을 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비상대책위원장, 최영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위원장, 최을상 전국노점상연합 의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회 의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 등이 화면을 통해 민주노총과 사회대개혁에 대한 연대를 약속했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민주일반연맹이 정부서울청사로, 건설산업연맹이 서울고용노동청으로, 서비스연맹이 신세계백화점으로, 공공운수노조는 대한상공회의소로 각각 행진한 후 민주노총 대표단을 비롯해 화섬, 보건, 사무, 금속외 지역본부 등이 결합한 청와대 방향으로 합류해 마무리 집회를 개최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수도권대회에 민주노총 지도위원들, 민주노총이 지지를 표명한 진보정당인 정의당과 민중당 지도부, 50여 민중공동행동으로 연합해 있는 50여개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과 함께 조합원 2만 7,000여명이 참가했으며, 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을 포함한 전국 13개 지역 대회에 5만7,000여명의 조합원이 참가했다고 집계했다.

   
▲ 이날 민주노총은 'ILO핵심협약 비준과 비농규직 쳘폐, 재벌개혁, 한반도 자주통일'을 핵심구호로 제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노동자 문선대의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16개 노조 및 연맹 대표들이 투쟁선언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노동자대회 후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는 민주노총 본부 행진 대열.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노동법 개악 저지, 노동기본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 재별개혁, 자주통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합할 권리 쟁취.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청와대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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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도 '노동의 새벽'인가, 물으신다면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헌법에서도 지워진 '노동'의 복원을 기다리며

19.05.01 11:07l최종 업데이트 19.05.01 11:17l

 

 

"만국의 노동자(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문구죠. 너무 유명해서 공산당 선언을 다 읽지 않은 사람들도 한두 번 쯤은 들어 봤을 익숙한 말입니다.

최근에도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거나 광장에 모여 시위를 할 때 자주 사용되는 구호이기도 합니다. 매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이할 때마다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이 외침을 떠올리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가슴 한 켠에서 힘이 솟아납니다.

당대의 시대 정신을 꾹꾹 눌러 담은 공산당 선언은 출판된 후 오랜 시간 동안 노동자 민중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분업과 기계화로 인해 단순한 도구나 부품처럼 사용되던 노동자들은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사회변혁을 이뤄냈던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 등의 동유럽 국가들, 그리고 남미 등지에서 이 선언이 혁명으로 실현되기도 했습니다.

<공산당 선언>만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도 당대의 시대정신을 담아내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저작이 있습니다. 당시 노동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박노해가 쓴 시집 <노동의 새벽>입니다.

1984년 현장 노동자의 손에서 나온 이 시집은 '잊혀진 계급'이라는 노동자들의 "영혼의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이 목소리들이 모여 87년 6월 항쟁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책 표지
▲  책 표지
ⓒ 느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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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의 노동자 vs 2019의 노동자

노동자 박노해가 노동 현장의 아픔과 분노, 그리고 희망을 시에 담아낸 지 35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얼마나 나아진 환경에 있을까요?

평균적으로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 환경이 좋아진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노동현장에선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하철역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어서, 석탄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서…
 
"인간의 삶이란, 노동이란
슬픔과 분노와 투쟁이란
오래되고 또 언제나 새로운 것"
 - 스무 살의 새벽 노래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대기업 혹은 공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여전히 '잊혀진 계급'인 것 같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각종 임시직 노동자로 잘게 나누어져 노동자들끼리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해야 하는 대한민국 노동현실은 세월이 흘러가는 것만큼 비례해서 나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노동현장엔 오래된 슬픔과 분노와 투쟁이 존재합니다.

박노해 시인이 '멈출 수 없지'라는 시에서 보여준 노동자의 모습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노동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사장님, 경찰, 판검사, 공무원 등 힘있는 사람은 박노해 노동자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입니다. 박노해 시인이 꿈꾸던 "서로를 받쳐 주는, 모두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세상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가면 갈수록 바쁘게 뛰어야 하는
갈수록 가진 것 없고 졸라매야 하는
고도로, 번영으로
급성장하는
우리는 복지국가 대한민국
뺑이치는
노동자" 
-멈출수 없지

'노동'의 자리를 꿰어찬 '근로'

더구나 우리 사회는 박정희 개발 독재 시대를 보내면서 '노동'을 지우고 그 이름을 '근로'로 대체했습니다. 여기에는 노동자를 부지런히 그리고 성실하게 국가에 부역하는 근로자로 삼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정치, 경제, 사회의 주인공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가 아니었고 권력과 부를 가진 사용자들이었습니다. 이 국가적 세뇌에 노동자들 스스로도 저항하지 못하고 노동이란 이름을 빼앗긴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노동절'도 '근로자의 날'로 바꿔버렸습니다. 노동자는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산업 역군인 근로자가 된 것입니다. 노동법도 근로기준법입니다. 심지어 헌법에서조차 노동은 지워지고 근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국회의원들도,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노동부 공무원들도, 신문도, 방송도, 심지어 노동자를 스스로도 '노동자'나 '노동'이라는 단어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형식적인 민주화를 이뤄냈다고 하는 87년 이후로도 노동자는 언제나 사회의 주변인이었습니다. 극우 언론들에선 귀족노동자라는 말을 만들어냈지만 노동자는 여지껏 귀족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자 박노해가 꿈꿨던 '노동의 햇새벽'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이 시집을 읽으며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를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어떻게 노동자로 살 것인가?

노동자 박노해는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깊은 불안을 느꼈습니다. "죄진 적도 없고/ 노예살이 머슴살이하는 것도 아닌데/ 풍요로운 웃음이 하늘에 닿는/ 안정과 번영의 대한민국 땅에서/ 떳떳하게 생산하며 살아가는데/ 왜 이리 종놈처럼 불안한 세상살이인가?"라면서 마음을 토로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노동자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자 박노해가 평온한 저녁을 가질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하루를 보낸 후 조촐한 밥상을 앞에 두고 평온한 저녁을 맞이할 소박한 꿈을 갖기 위해 노동자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에서 시작하면 좋을지 실마리를 35년전 박노해 시인의 시 속에서 찾아봅니다.

당시 20대였던 박노해 노동자는 생각하지 못하는 삶은 삶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말만 앞세우는 것도 물론 허울 뿐인 삶이라 봤습니다. 우선은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생각도 못 하고 사는 놈은 죽은 송장이여
말도 못 하는 놈은 썩은 괴기여
테레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
이빨만 까는 놈은 좆도 헛물
실천하는 사람,
동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자만이
진실로 인간이제
진짜 노동자이제" 
- 진짜 노동자
"그래, 어둠에서 어둠으로
끝없는 노동 속에 절망하고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서
슬픈 눈물로 기름 부어 타오르며
우리들 손에 손 맞잡고
사랑과 희망을 버리지 말자
우리 품에 안아야 할
포근한 석양빛의 휴식과 평화
우리들의 권리를 찾을 때까지
슬픔과 절망의 어둠 속에서
마주 잡은 손들을 놓치지 말자" 
- 석양

연대를 통해 노동의 햇새벽으로

의식이 깨어난 노동자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는 함께 손을 마주잡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극도로 분열되어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노동자 계층. 이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마땅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외쳤던 것처럼, 박노해 시인이 노래했던 것처럼 힘을 모으는 것 뿐입니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이 먼저 손을 내밀어 취약한 환경에 있는 노동자들을 품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랑스러운 노동자의 이름을 되찾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헌법에서 '근로'를 지우고 '노동'을 되찾고, '근로기준법'을 '노동법'으로 바꾸고,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도 이뤄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먼 일인 것 같아 보이지만 내년 총선에선 노동자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후보자들을 면밀히 살피고 투표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참말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알았던 20대 박노해 시인의 고백을 되새기며 2019년 '노동절'을 보내고 싶습니다.
 
"노동운동을 하고부터
동료와의 깊은 신뢰와 나눔과 사랑 속에
참말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알았네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신뢰와 사랑 속에
동료를 위해 사는 것처럼 큰 희열이 어디 있을까
라면 한 개 쓴 소주 한 병을 노놔 먹어도 웃음꽃이 피고
불안함과 경계가 없이 너나가 우리로 다 함께
환히 열린 하나 됨 속에서 해방의 기쁨을 나는 맛보네
나의 눈물이 동료들의 웃음이 되고
나의 고통이 동료들의 기쁨이 되고
나의 아픔이 우리들의 희망이 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답고 뜻깊은 생인가" 
- 아름다운 고백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태그:#노동절#노동의새벽#박노해 #노동자#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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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일 등지 해외동포들도 4.27선언 1주년 행사 진행

인간띠잇기, 토론회 등 열려

6.15 미국위원회 각 지역위들인 뉴욕지역위(대표위원장: 김대창), 워싱턴지역위(대표위원장: 양현승), 서부지역위(대표위원장: 박영준), 시애틀지역위(대표위원장: 홍찬)에서도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였다. 미국 각 지역에서는 국내의 '4.27 민(民)+평화손잡기’ 에 대한 참여를 통해 판문점선언이 이행되기를 함께 염원했다. 또한 독일에서도 40여개 단체가 모여 4.27선언 1주년을 기념했다.

▲ 맨하탄 유엔 본부 정문 건너편 랄프번취공원에서 열린 뉴욕지역위 4.27선언 1주년 행사
▲ 맨하탄 유엔 본부 정문 건너편 랄프번취공원에서 열린 뉴욕지역위 4.27선언 1주년 행사
▲ 6.15 뉴욕위원회 회원들이 공동 참여한 유엔 함마슐드광장의 '4.27 민(民)+평화손잡기 뉴욕' 행사
▲ 6.15 뉴욕위원회 회원들이 공동 참여한 유엔 함마슐드광장의 '4.27 민(民)+평화손잡기 뉴욕' 행사

6.15 뉴욕지역위는 4월27일 오후 1시 맨하탄 유엔 함마슐드광장에서 '4.27 민(民)+평화손잡기' 뉴욕추진위원회 주최의 주유엔 남북 대표부를 잇는 인간띠잇기 행사에 참여하였다.

오후 3시에 마친 평화손잡기 행사 후 6.15 뉴욕위 회원들은 몇 분 거리에 있는 유엔본부 정문 건너편 랄프번취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3시 30분부터 <4.27 판문점선언 제 1주년 기념식>을 약식으로 가졌다. 김대창 대표위원장의 개회인사말, 김용철 목사의 판문점선언문 낭독, 김수복 공동위원장의 6.15 미국위의 판문점선언 1주년 성명서 발표, 자유발언, 통일의 노래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자유발언에서 한 참가자는 동포사회의 보수성으로 인한 통일운동의 어려움, 극복해야 하는 과제 등을 언급하고, 다른 참가자는 4.27 시대에 접어들어 차차 통일 분위기가 고조되어 갈 것이라며 지난 10년 간 이명박 박근혜 시기의 통일운동의 어려움에도 지켜왔던 흔들림 없는 자세와 변함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특히, 뉴욕지역의 한 원로 인사는 참가자들에게 더욱 수고, 노력, 분발해서 당대에서 못 이룬 통일을 참가자들의 대에서 이뤄 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하여 참가자들이 숙연히 의지를 다지기도 하였다.

▲ 엘리콧시티 성공회에서 열린 워싱턴지역위 4.27선언 1주년 행사
▲ 엘리콧시티 성공회에서 열린 워싱턴지역위 4.27선언 1주년 행사
▲ 엘리콧시티 성공회에서 열린 워싱턴지역위 4.27선언 1주년 행사

6.15 워싱턴지역위(대표위원장: 양현승)는 DC 인근 엘리콧시티 성공회에서 양현승 대표위원장의 사회로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기념행사 1부 기념식은 6.15 남북공동선언 낭독에 이어 이완홍 신부와 안은희 함석헌사상연구회장의 축사, 이흥노 6.15 워싱턴위 공동위원장의 판문점선언 1주년 미국위원회 성명 발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선언의 실현을 위해 미주동포가 나서야 한다”는 신필영 6.15 미국위 대표위원장의 격려와 당부 발언이 있었다.
이어 2부 토론회에서는 “통일은 민족의 사명이며, 민족문제이므로 외세의 개입은 안된다”며 “평화운동인 통일운동에 대한 고삐를 더 조여 통일을 앞당기자”는 노병원(함석헌사상연구회), 강창구(사람사는세상 워싱턴), 안병순(6.15 워싱턴위) 위원의 발언이 있었으며, 이어서 참석자들의 판문점선언에 대한 생각 나누기 시간을 가졌다.
끝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것으로 1,2부 순서를 마쳤다. 행사 후 참석자들은 ‘4.27 민(民)+ 워싱턴 DMZ 평화 인간 띠잇기’의 순서를 가졌다.

▲ 시애틀 드림교회에서 열린 시애틀지역위 4.27선언 1주년 행사
▲ 6.15시애틀지역위 4.27선언 1주년 행사

6.15 시애틀지역위(대표위원장: 홍찬)는 다른 지역보다 하루 전인 4월 26일 금요일 저녁 6시, 시애틀 드림교회에서 기념행사를 가졌다. 1부 기념식은 대표위원장의 인사말, 판문점선언문 전문 낭독, 6.15 미국위 성명서 발표, 통일의 노래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2부 정세토론에서는 “4.27 판문점선언 이후 현 정세와 재미동포의 할일”에 대한 정세 강연과 토론이 있었다. 토론회 후 ‘4.27 민(民)+ 시애틀 DMZ 평화 인간 띠잇기’의 순서를 가졌다.

▲ 그리피스공원에서 열린 서부지역위 4.27선언 1주년 행사
▲ 그리피스공원에서 열린 서부지역위 4.27선언 1주년 행사

6.15 서부(LA)지역위(대표위원장: 박영준)는그리피스공원에서 기념행사를 가졌다. 1부 행사로 "한반도의 평화가 오는 그날까지 손에 손 잡고 함께해요”라는 주제의 <‘4.27 민(民)+ LA DMZ 평화 인간 띠잇기>행사를 갖고 판문점선언문 낭독, 6.15 미국위 성명서 발표의 순서를 가졌다. 2부 행사로는 이미 계획되어 있던 진보단체 단합 차원의 최광배 족구대회를 개최 하였다.

▲ 베를린 브란덴부어그 광장에서 시작하여 인간띠잇기로 이어진 독일 4.27선언 1주년 행사
▲ 베를린 브란덴부어그 광장에서 포츠담광장으로 행진 중

독일에서도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 독일 인간띠 잇기 행사가 27일 14시부터 독일통일의 상징 베를린 브란덴부어그 광장에서 400여명의 동포들과 현지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사회자는 “기념비적인 선언의 1주년을 맞아 세계 평화와 직결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인간띠 잇기’ 행사를 베를린에서 시작한다”고 선언하며, “국내에서 휴전선을 따라 서해의 강화에서 동해의 고성까지 ‘인간띠 잇기’를 하려 하였으나 지난번 강원도 고성지역은 화재로 연결 1KM가 끊어졌는데 이 부분을 오늘 우리가 베를린에서 연결해 주기로 국내에 알렸다”고 하였다.

행사는 브란덴부어그 광장을 떠나 옛 동서 베를린 장벽자욱을 따라 약 1KM 떨어진 포츠담 광장까지 한반도기를 들고 손과 손을 맞잡고 풍물패와 장고패의 장단을 따라 행진하였다.

포츠담광장에서 베를린 가야무용단의 신나는 장고공연이 웅장하게 열렸다.
성악가 목진학 선생이 준비한 남성합창단의 노래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는 코리아 협의회 주관으로 베를린 한인교회, 독일금속노조, 6.15 유럽지역위원회, 한민족유럽연대, 재도이췰란트동포협럭회, 베를린간호협회, 베를린 유학생회 등 40여개 단체가 참여하였다.

김장호 기자  jangkim21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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