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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정상회동 폄하하는 자유한국당 속내는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7/07 07:09
  • 수정일
    2019/07/07 07:0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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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 등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 등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미국과 한국, 한·미동맹은 전례 없이 더욱 굳건함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지난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차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한 얘기다. 이 발언은 화제를 모았다. 

의식하지는 않았겠지만 미 대통령이 한국 보수야당의 ‘동맹 훼손’ 주장을 직접 나서 반박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전날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한·미동맹 관계 훼손에 대한 우려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직접 ‘동맹외교’에 나서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청과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인터넷에서는 그 와중에 자유한국당의 ‘북핵외교안보특위’가 긴급 소집됐다는 속보가 관심을 모았다. 특위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당 공보실은 회의 결과와 관련해 황교안 당대표 명의의 세 문장으로 된 짧은 논평만 발표했다. 핵심은 마지막 문장이다. 

“미·북 정상의 만남이 진정한 한반도 평화로 이어지려고 한다면 북핵 폐기라는 본질적 목표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그 뒤 이틀간 침묵이 이어졌다. 

7월 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에 이어 북·미 간에도 문서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며 이번 판문점 북·미회담에 의미를 부여했다. 

비로소 자유한국당은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 자유한국당 “문재인 정권 안보 탈선 막아야” 

“북핵 폐기, 시작도 안 했다. 어느덧 ‘북핵 동결’이 미국에서 언급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대통령은 한마디도 말 못하는 객, 손님을 자처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7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 발언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역할에 대한 폄하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7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7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7월 3일 아침 국회 본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당대표 최고·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한 황교안 대표는 “판문점 회담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지만, 이거 하나로 평화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황 대표는 그 ‘적지 않은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김무성 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안보 탈선’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미 정상이 만나서 합의하고 도출해야 할 문제의 핵심은 오직 북핵 폐기 합의의 결과물”이라며 “지금 이 시간도 북은 핵폭탄 제조를 계속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의 우리민족끼리 식의 대북접근이야말로 우리 안보에 가장 큰 위협요인임을 국민들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심재철 의원은 “실제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평화 쇼’에 도취돼 종전선언 운운한 문 정권 발언은 매우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나 원내대표가 언급한 ‘객(客)’ 발언은 원유철 당 북핵외교안보특위 위원장으로부터 나왔다. 

“북핵 위협의 최대 당사자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런데 북핵문제를 다뤘던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 두 정상이 북한지역이었던 판문각에서 회담했으면 몰라도 대한민국의 영토인 자유의집에서 회담했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 대통령은 참석하지 못한 채 벤치만 지키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운전자 또는 중재자를 자임했던 한국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손님’ 역할밖에 못했다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사실일까. 

보수성향 통일전문가의 인식은 비슷하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조영기 국민대 초빙교수는 “남·북·미 정상회동의 핵심의제는 북핵 폐기인데, 그에 대한 합의 없이 사진 찍기만을 위한 회동이라면 차라리 안하는 것이 낫다”며 “미국이나 북한이나 자신들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대한민국에겐 ‘돈만 내고 너네는 빠져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데, 실질적인 종전선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성급했다”고 말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 북·미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은 ‘객’이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6월 30일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6월 30일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정상 간의 회동이나 외교에서 많은 부분은 공개되지 않는다. 

53분간 진행된 북·미회담에서 두 정상 간에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전체 내용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 내용을 간단히 전했지만 여기서 오간 내용 역시 전부 공개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북·미회담 개최에서 한국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7월 2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회담이 열린 장소가 판문점 북측의 통일각이 아니라 자유의집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의전에 따라 북·미회담이 북측 통일각에서 열렸다면 문재인 대통령이나 우리 측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지고 그야말로 ‘객’의 입장이 된다는 설명이다. 

회담이 열린 자유의집은 통일부가 관할한다. 성조기와 인공기를 교차해 진열하고, 좌석을 마련하는 등의 의전과 동선까지 북·미 모두 사전에 청와대와 실시간으로 조율할 수밖에 없다.

이정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회동은 내가 해석하기로는 한국 정부가 집요하게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워싱턴 노딜’이라며 지난 4월 12일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가장 큰 성과가 6월 말 한국에서 다시 한·미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한 것이다. 당시 질의응답 때 한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미 정상회담도 가능하냐’고 물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가능은 한데, 김정은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고 답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그때부터 복기해보면 지금 이 상황은 한국 정부가 집요하게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 모아 정치실장은 “북측이 잡아놓은 남·북·미 대화의 시한이 연말이고 아직 7·8월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게 본격적인 종전협상으로 나갈지 예측하기는 이르다”며 “남·북·미 정상회동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자유한국당의 태도가 예전과 변함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거와 달리 그 톤은 상당히 낮아졌다”고 말했다.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서 비판은 하지만, 그 비판이 설득력 없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강진웅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복기해보면 현재 문재인식 접근으로 가지 않았다”며 “처음부터 북·미가 다른 셈법을 가지고 자기 식을 고집했던 셈인데, 여전히 합의 불발의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대화의 유효성을 확인하고 다시 실무회담을 열게 된 데는 남측의 물밑 노력이 상당히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남·북·미 정상회동 폄하와 관련해 강 교수는 “지금 북·미 사이의 입장 차는 한반도 비핵화 또는 북핵 폐기라는 최종목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인데, 그 최종목표를 이번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성과가 없었다’든가 ‘쇼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인식하지 못하고 북한의 기만전술에 미국과 우리가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집토끼 보수층만 의식해 강경발언만 쏟아내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다 공개되지 않은 북·미 회담 내용과 관련해서 그는 “미국 사람들은 스몰톡(small talk)이라고 해서 50분 했으면 5분에서 10분 동안 가벼운 개인적인 이야기를 본론 전에 하는데, 그 후 40분이면 중요한 의제는 충분히 다 논의했을만한 시간”이라며 “이를테면 종전선언이나 평양연락사무소 개설 등 논의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접근이 남·북·미 사이에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국제외교 특성상 함부로 공개하거나 밝힐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보도된 것 이상의 성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7061704001&code=910100#csidx9b3a4aad0f68748a1b10fc32ce75c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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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서울의 옛 철길 흔적을 찾아 걷다

프레시안 조합원 모임, '서울의 옛 철길, 경성 순환선을 따라 걷다'
2019.07.06 22:55:40
 
 

 

 

 

"오늘은 서울을 가볍게 산책해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했는데요. 아주 가까운 동네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 그러나 잊혀진 과거를 알고 나면 '사실은 이게 아주 색다른 공간이었구나' 느껴지게 되는 곳들을 찾아가겠습니다." (박흥수 기관사)

프레시안 조합원들이 한적한 토요일 오후 동네 산책에 나섰다. 경의선에서 뻗어 나간 서울의 지선 경선 순환선의 역사를 알아보고 그 흔적이 남은 길을 걷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의 옛 철길, 경성 순환선을 걷는 행사가 협동조합 프레시안 주최로 지난달 29일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철도의 눈물>(후마니타스 펴냄), <시베리아 철도여행>(후마니타스 펴냄)의 저자 박흥수 기관사가 산책 가이드 겸 강연자로 나섰다. 

 

 

경성 순환선이란 경의선 신촌역과 용산선 서강역 사이에 신촌 연결선을 설치해 순환선 형식으로 운행하던 노선을 일컫는다. 1929년 9월 20일에 개업한 이 노선은 1944년 3월 31일에 폐업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짧은 역간 거리로 도시철도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던 노선이었다. 원정, 미생정 등의 일본인 거주구역에 역을 많이 설치한 것으로 보아 일본인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목적도 있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특이한 점은 단선임에도 양방향 순환 운행을 했고, 그에 따라 거의 모든 역에서 '교행'(단선 구간에서 마주 보고 운행하는 두 열차를 역이나 신호장에서 서로 비켜 가게 하는 것을 뜻한다)이 필수였다. 그러나 1944년, 일제가 전쟁물자 공출을 위해 서소문역, 아현리역, 원정역, 미생정역, 공덕리역을 철거하면서 교행이 불가능해지고 설상가상으로 모든 열차를 일제가 가져가면서 노선이 폐지됐다. 

 

 

▲ 6월 29일 프레시안과 경의선 범대위가 함께 답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레시안(최용락)

 


눈물 젖은 조선 철도의 시작, 그리고 경성 순환선의 개통

모름지기 잊혀진 것을 보는 눈을 가지려면 알아야 하는 법. 본격적인 산책에 앞서 박흥수 기관사가 조합원을 상대로 마이크를 잡았다. '경인선의 역사'에 대한 박 기관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경성 순환선을 걷는데 웬 경인선의 역사?' 의문은 강연을 들으면서 풀렸다. 

 

조선 최초의 철도 노선인 경인선에는 일제강점기 철도 건설 과정에서 조선인이 겪은 아픔이 그대로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픔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모든 철도에 서려있는 아픔이었다. 


조선 철도의 역사는 일본의 침략과 함께 시작됐다. 경인선은 일본이 러일전쟁에 대비해 군대를 이동시키기 위해 지은 것이었다. 1904년에 시작한 경인선 공사는 2년 만에 끝났다. 박흥수 기관사는 "아마 세상에 있는 철도 노선 중에 이 정도로 빨리 완공된 선로는 없을 것"이라며 당시 철도 공사는 "인력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철도 건설 현장에 끌려가면 죽어나간다'는 말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철도 건설 현장을 감독하고 업무를 지시한 것은 일본군이었지만 일본인만 조선인을 못 살게 군것은 아니었다. 조선 관료 중에는 일본인보다 악질적으로 구는 사람도 있었다. 박흥수 기관사는 송병준을 예로 들었다. 

"일진회 대표였던 송병준이 '일진회는 성전을 수행하는 일본에 신뢰 의지를 표시하며 그에 따라 황해도민을 경인 철도 공사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라고 편지를 써요. 이때 일본군은 '고맙다. 그런데 공짜로 쓸 수 있냐. 최소한의 임금은 지급하겠다'고 답해요. 그랬더니 일진회는 '임금을 어떻게 다 받냐. 밥값만 빼고 다 방위성금으로 내겠다'고 하죠."

수탈을 못 견딘 사람들은 싸움을 택하기도 했다. 교하에서는 일본군이 모내기철에 철도 공사 인부를 동원하려 하자,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평양에서는 조선 관료가 보상금을 빼돌린 데 항의하는 사람들이 관찰사를 둘러싸고 집회를 열었다. 일본군은 조선인의 이 같은 움직임을 총칼로 진압했다. 

경인선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마무리하며 박흥수 기관사는 경성 순환선이 개통된 1929년의 연표를 보여줬다. 원산 총파업, 신간회 전국대회 금지, 그리고 광주 학생 학쟁까지. 그 해도 여느 때의 일제강점기와 같이 "일제의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이 비빔밥처럼 얽히던 시기"였다. 
 

▲ 박흥수 기관사가 경인선의 역사와 경성 순환선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표지석 하나 남아있지 않은 옛 역사와 철길의 흔적들 

개통 이래 도시 철도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던 경선 순환선은 1944년에 폐선됐다. 전쟁에 대비하여 철 등의 물자를 조달하려는 일본의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그 뒤로 7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산책길에 철도 건설 과정에서 조선인이 겪은 아픔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역사나 철길이 있었다는 흔적도 희미했다. 

"우리는 지금 100년 전 철길을 걷고 있는 거니까요. 나카무라나 이런 일본 경찰들 다 못 오게 막아놨습니다." 

박흥수 기관사의 너스레를  들으며 우리는 경성 순환선이 지나던 길을 따라 걷기 위해 출발했다. 먼저 도착한 곳은 경성 순환선의 연희역이 있던 자리였다. 역사가 세워져 있던 자리 앞에는 철망이 처져 있었다. 철망 너머 계단 위로 잡초가 무성했다. 따로 설명을 듣지 않으면 역사가 있던 자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연희역 자리를 본 뒤 맞은 편으로 난 골목길을 걸으며 박흥수 기관사는 철길의 흔적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네이버 지도나 구글 지도로 이곳을 보면 주변 골목은 다 반듯한데 여기만 구불구불해요. 철길이 있던 흔적이죠."  

골목을 빠져나온 우리는 방송소(放送所)앞 역으로 향했다. 방송소앞 역은 옛 당인리선이 지나던 자리이지만 철길의 흔적이 재미있는 형태로 남아있는 자리이기에 택한 곳이었다.

홍대 한복판에 위치한 방송소앞 역 자리에도 표지석은 없었다. 그러나 높게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3층 건물들이 꼭 기차 모양으로 서 있었다. 역시 옛 철길의 흔적이었다. 기차 모양 건물을 보며 재미있어하는 우리에게 박흥수 기관사는 말했다.

"이 건물들이 수십 년간 철거 위기를 겪었는데 버티고 버텨서 지금은 홍대의 가장 핫한 거리가 됐어요." 

이어 우리는 종착지인 옛 당인리선과 경성순환선이 만나는 지점으로 향했다. 경의선 숲길이 바로 그곳이었다. 보존된 철길 위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경의선 숲길은 시민의 쉼터가 되고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에 아직 남아있는 옛 선로 전환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우리의 산책은 끝났다.

 

 

 

▲ 프레시안 조합원과 답사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옛날 철길이 있었던 골목을 걷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사라지고, 마침내는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맡겨두었던 짐을 챙기기 위해 다시 경의선 공유지의 작은 가건물로 돌아온 우리에게 박흥수 기관사는 말했다. 

"이곳 경의선 공유지도 또 하나의 잊혀질 수도 있는 공간입니다."

알고 보니 산책의 거점이 되어 준 염리동 경의선 공유지도 사라지고 잊혀질 위기에 처한 공간이었다. 

경의선 공유지는 지상으로 다니던 기차가 지하로 지나게 되며 생긴 땅이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국공유지는 시민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인문학 연구단지와 같은 공적 용도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마포구청은 이곳의 사용권을 민간 사업자에게 넘겨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시민 대토론회 등을 기획하며 염리동 경의선 공유지를 지키는 중이다. 

 

박흥수 기관사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오늘 찾아간 공간들을 봤더니 표지석 하나 없잖아요. 기억하고 지키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인데도요. 경의선 공유지도 제가 운전하면서 계속 다녔던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이 대재벌의 마케팅 공간으로 변하고 숲이 없어지고 있어요. 이런 건 슬픈 일이 될 것 같아요. 나중에는 ‘철길이 다녔고 숲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간이 돼버릴까봐 무서워요."

우리는 철도의 건설 과정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잊고 산다. 옛 역사와 철길이 있던 자리 또한 잊혀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적인 공간이 사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해 잊혀질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70년이 지나면 이곳 또한 흔적도 없게 될까.  

 

 

▲ 염리동 경의선 공유지 안 작은 건물 앞에 달린 답사 프로젝트 현수막. ⓒ프레시안(정경아)

 
최용락 기자 ama@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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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진의 "진격" 명령... 우리공화당, 광화문광장 다시 점거

[현장] 폭염에도 총동원령 태극기집회... 광화문에 천막 4동 세워

19.07.06 16:47l최종 업데이트 19.07.06 21:40l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최종신: 6일 오후 6시 55분]

결국 광화문 광장에 우리공화당 천막이 다시 설치됐다.

"광화문 광장으로 진격하자!"

6일 오후 5시 47분께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의 말이 끝나자,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있던 수천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일제히 일어섰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이들은 곧 건너편 광화문광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세종대왕 동상 앞부터 광화문 해치마당은 금세 우리공화당 당원들과 박근혜 지지자들로 들어찼다. 조원진 공동대표는 "동지들이여 일어나라, 우리가 반드시 이긴다"는 구호를 외치며 광장 이동을 독려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가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희훈
 
공화당 당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텐트를 들고 기민하게 오갔다. 그리고 오후 6시께 푸른색 텐트 4동이 순식간에 광화문 광장에 세워졌다. 텐트는 세종대왕 동상 앞(KT 빌딩 방면)에 자리잡았다. 서울시가 대형 화분을 설치하지 않은 곳이었다. 앞서 서울시는 천막 설치를 막기 위해 2억원을 들여 광화문광장에 대형 화분 100여개를 3미터 간격으로 세운 바 있다.

텐트가 세워지자 집회 참가자들은 "우리 땅이다, 우리가 이겼다"라며 환호했다.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도 서로 손을 맞잡고 텐트 주변을 돌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외치며 환호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공화당 천막이 일주일 만에 다시 광화문광장에 섰다.

조원진 공동대표는 "우리는 정당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당은 국민들의 억울함이 있으면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 박원순 시장은 25일(서울시의 텐트 강제 철거일)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천막을 다시 설치한 후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광화문 천막 논란은 현역의원이 2명뿐인 우리공화당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라는 평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보수세력을 끌어모을 동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홍문종 공화당 공동대표도 이날 "(언론들이) 나중에 우리공화당이 집권하게 되면 '우리 좀 봐달라' 하고 오는 것"이라며 "우리가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왔기 때문에, 불쌍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오면 잘해달라"며 언론의 관심에 한껏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2신: 6일 오후 5시 20분]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태극기 집회를 열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태극기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6일 오후 4시 2분께, 서울역을 출발한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무리의 선두에는 지난 2017년 3월 탄핵무효집회에서 사망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상여가 섰다.

이들은 앞서 천막이 세워진 세종문화회관 앞부터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5일 저녁 우리공화당 측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기습적으로 천막 5동을 설치했다.  참가자들이 자리를 잡자 우리 공화당 당가가 울려 펴졌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이희훈
 우리공화당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이용해 과녁을 만들고 다트 던지기를 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이용해 과녁을 만들고 다트 던지기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집회로 인해 세종문화회관 앞부터 광화문 광장 남측 끝자락 200여 미터 구간 2개 차로가 통제됐다. 건너편 광화문광장에 배치된 경찰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경찰들은 지난 5월 우리공화당 천막에 세워졌던 지점에 집중 배치됐다. 집회가 열리는 주변은 철체 펜스로 둘러싸여졌고 3미터 간격으로 경찰이 배치됐다.

집회 발언자들은 문재인 정부와 북한에 대한 규탄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참가자들도 "싸우자" "이기자"라고 구호를 외치며 호응하고 있다. 아직까지 천막을 광화문광장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밤늦게까지 집회를 하는데 (천막을) 밤에라도 옮길까 생각 중"이라며 "정당으로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서울시 조례를 근거로 (천막 설치를 막고) 헌법을 무시한 것은 박원순 대단히 잘못한 행동"이라고 밝혔다. 
   
 우리공화당 당원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도로로 나와 항의를 하고 있다.
우리공화당 당원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도로로 나와 항의를 하고 있다.ⓒ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태극기 집회를 열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태극기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태극기 집회를 열고 천막 설치를 예고해 경찰이 방패를 들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태극기 집회를 열고 천막 설치를 예고해 경찰이 방패를 들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이희훈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태극기 집회를 열고 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문종 공동대표와 당원들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태극기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1신: 6일 오후 4시 45분]

 
 6일 오후 서울역 광장 앞에서 우리공화당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제 132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6일 낮 서울역 광장 앞에서 우리공화당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제 132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 이희훈
 6일 오후 서울역 광장 앞에서 우리공화당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제 132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6일 낮 서울역 광장 앞에서 열린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 이희훈
 6일 오후 서울역 광장 앞에서 우리공화당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제 132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6일 낮 서울역 광장 앞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우리공화당 홍문종, 조원진 대표.ⓒ 이희훈
 
6일 낮 1시 구(舊) 서울역 앞 광장. 34도가 넘는 폭염으로 그늘에 있어도 땀이 흐를 지경이었지만 서울역 앞 광장에는 주최 측 추산 1만 명에 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대부분 60, 70대 고령층이었고, 손에는 태극기를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날 132차 태극기 집회는 참가자들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우리공화당이 당원 총동원령을 내리고 광화문광장 천막을 재설치하겠다고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공화당은 지난 6월 10일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친 이후로 장기간 농성을 계속하다가 6월 2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을 이유로 청계광장으로 옮겨갔다. 이후 서울시가 천막 재설치를 막기 위해 광화문광장에 대형 화분 수십개를 설치하자 우리공화당이 반발하는 등 갈등을 빚어왔다.

우리공화당은 하루 전날인 5일 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천막 4동을 설치하기도 했다.

집회에 앞서 사회자는 "박원순(서울시장)이 깡패 용역을 동원해, 천막을 짓밟았다"면서 광화문광장 천막 철거 당시 동영상을 틀었다. 동영상을 보던 한 참가자는 "아니, 공권력이 어떻게 저렇게 하냐"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이후 사회자가 "박원순을 처단하자"는 구호를 외치자 집회 참가자들은 힘껏 복창했다. 연설에 나선 정치인들도 '승리'를 강조했다.

 
 6일 오후 서울역 광장 앞에서 우리공화당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제 132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6일 낮 서울역 광장 앞에서 열린 태극기집회에서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이희훈
 6일 오후 서울역 광장 앞에서 우리공화당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제 132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6일 낮 서울역 광장 앞에서 우리공화당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제 132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 이희훈
     
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는 "광화문은 우리 땅, 포기할 수 없다"며 "승리의 그날까지 광화문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태극기를 사랑하는 위대한 혁명군들이 자유민주주의와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는 대한민국으로 회복시키는 일을 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다.

조원진 공동대표도 "우리가 천막당사를 치는 것은, 패배 의식에 젖어 언제 정권을 잡을까 하는 그런 의식을 가진 우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라며 "또 좌파들에게 우파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두려움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했다.

조 대표가 "광화문 진격할 준비가 됐나"라고 묻자 참가자들은 힘찬 목소리로 호응했다. 이어 지난 2017년 탄핵 반대집회에서 사망한 사람 5명을 추모하는 진혼제 이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6일 오후 서울역 광장 앞에서 우리공화당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제 132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6일 낮 서울역 광장 앞에서 우리공화당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제 132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 이희훈
 6일 오후 서울역 광장 앞에서 우리공화당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제 132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6일 낮 서울역 광장 앞에서 우리공화당 총동원령이 내려진 가운데 제 132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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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방문기<5>-과학기술 전당 등

김정희 파리특파원 | 기사입력 2019/07/0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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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기술전당  © 자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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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우리는 드디어 다시 평양의 대동강변에서 아침 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 저녁에 오늘 일정계획을 들으면서 조찬전에 대동강변을 아침 뛰기를 하겠다고 안내원에게 말하니 문제없다고 한다. 북에서는 아직도 어디를 가려면 안내원과 상의를 해야 한다. 우리가 무단으로 나가면 안내원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므로 안내원의 역할은 아주 다양하다.

 

안내원에게 이런 저런 부탁을 하면 무리한 것이 아 닐 경우 대부분은 다 들어주고 있다. 바쁜 아침길에는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과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 배드민턴을 치는 무리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편이다. 옆에는 김책 종합 공업대학 옆에 있는 과학중시 인재중시건물을 지나 양각다리가 있는 지점까지 아침 뛰기를  하고 돌아왔다.

▲     © 자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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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대혁명전시장을 방문한다. 순안 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토성의 원형모형이 눈에 뛰는 곳이다. 이곳에는 6개의 상설전시관과 야외전시관이 있는데 우리는 중공업관을 방문하였다. 중공업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주요 전력 공업 분포도였다. 북은 높은 산과 좁은 계곡의 강이 많은 북동쪽에는 수력발전소를 집중적으로 건설하고 탄광이 많은 북서쪽은 화력발전소들이 집중되어 있는 안내판이었다.

 

특히 평안북도의 갈지자형 태천발전소나 함흥의 성천강 계단식 발전소는 자연의 지형을 파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이용해서 건설하고 계획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다음에 본 것은 토성의 모양을 한 인공지구 위성관 이었다. 중고등생과 대학생들이 바글바글했는데 광명성3호 인공위성 실모형과 위성운반 은하 로켓트의 모형을 볼 수 있었다. 광명성 3호는 신호를 잘 보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문수 물놀이장을 갔다. 아직은 날씨가 쌀쌀해 야외 물놀이장에는 사람이 없었지만 실내 물놀이장에는 벌써 어른들과 아이들이 즐기고 있었다.

▲     © 자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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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이번 기사 내용과 다를 수 있으나 김정희 특파원이 직접 찍은 사진이라  게재 했음을 밝힙니다>

 

오늘 점심은 청류관 식당으로 갔다. 청류관 식당은 보통강 강변에 있는 식당으로 다양한 요리와 냉면으로 평양사람들이 애용하는 식당이라 점심때는 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가 있다. 작년에 왔을 땐 너무 줄이 길어 못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안쪽으로 들어가 마침 식사를 마친 이들이 떠나간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 이곳은 오리, 우설 훈제요리와 즉석에서 구워주는 오징어(낙지)구이는 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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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건축물에 인민생활향상이라는 구호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가 써있는 은하수 평양화장품공장 방문에서 북도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전 생산공정을 통합생산체계로 관리하면서 최첨단의 기술로 화장품을 생산한다고 했다. 피부관리화장품이나 색조 화장품 및 염색약, 샴푸, 비누까지 미용관리를 위한 제품들을 종합적으로 생산하는 공장라인은 ㄷ자 공장건물의 공정라인을 구석구석 보게 되었다.

 

대동강의 하구 쪽 충성의 다리를 지나면 쑥 섬에 있는 원자모양의 과학기술전당이 있다. 이 건축물은 2015년에 완공이 되여 2016년 1월 1일 준공되었다. 건물 앞 광장에는 과학기술전당을 상징하는 펜모양의 탑과 분수가 있어 시원해 보였다. 내부는 5층으로 중앙홀은 원형으로 계단으로 내려가면 중앙바닥에는 안내판 역할의 우주모양이 있고 유리로 된 돔 식 천정은 아래까지 자연채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되어있고, 은하 로케트 모형이 설치 되어있다. 과학기술전당에서는 생물, 농업, 임업, 어업과 수학과 물리, 화학 등 과학과 기술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 있고 약 3000개의 단말기로 연결 되어있어 누구든지 와서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다고 한다. 주말에는 전당을 찾는 아이들로 메어진다고 한다.

 

이날 저녁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부부가 같이 식사를 한 평양 대동강 수산물식당에 가서 국가정상이 이용한 두번째 식탁에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앉았던 자리와 남편은 김정숙 여사가 앉았었던 자리에서 철갑상어회와 각종회, 생선찜, 게장요리와 매운탕으로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식당의 일층은 전체가 철갑상어, 무지개 송어 및 각종 어패류 등 각어종별 풀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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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방안, 결혼 제도처럼 유연하게 생각하자”

 
<통일뉴스 기획강좌①>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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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6  13: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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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통일방안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4일 광화문 조영래홀에서 '2019 통일뉴스 기획강좌 - 통일방안을 논하다' 첫 강연자로 나서 '과정으로서의 통일 -남측의 통일방안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사진 - 조천현]

“왜 통일방안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통일 방안은 경로로서 ‘우리가 어떻게 간다’는 것을 알면 됐고, 지금은 어느 단계냐. 화해협력으로 가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다. 전혀 못 가고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까 ‘지금 당면한 과제를 실현하는데 중점을 두자’ 그렇게 된 거다.”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4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조영래홀에서 열린 ‘2019 통일뉴스 기획강좌’ 첫 강연자로 나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보수·진보 상관없이 역대정부가 이 통일방안을 거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남측의 경우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89.9)을 계승한 김영삼 정부에서 제시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94.8), 즉 ‘화해협력 → 남북연합 → 통일국가’라는 사실상 남북연합 방식의 통일방안이 크게 바뀐 게 없다는 것이다.

이종석 전 장관은 강연 제목처럼 ‘과정으로서의 통일’에 방점을 찍었다. “우리가 통일을 염원하기 때문에 통일방안을 이야기 하지만 나는 경로로서의 통일을 중시여기고 있다”는 것.

그가 통일 보다는 ‘과정’이나 ‘경로’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분단을 해소하면 통일”인데, “분단이 굉장히 중층적이고 복잡”하다는 진단 때문이다.

핵심은 “한반도에서의 냉전 대결 구조는 요소로 따지면 하나는 남북 간의 적대관계와 불신이고 또 하나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적대관계와 불신”이라고 짚었다.

특히 한국전쟁이 “민족혼 자체를 대패질해 버렸다”며 남북간 불신과 증오, 적대감에 주목하며 “분단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공동성명 이후 일련의 과정에 대해 “남북간 북미간에 한반도의 냉전구조의 본질적인 두 개의 모순이 연쇄적인 정상회담을 통해서 동시에 해소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해소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갖고 있는 상황 관리능력이라는 것, 그가 보고 있는 한반도를 어떻게 끌어가겠다는 것, 아버지 김정일은 상상도 못한 능력을 갖고 있는 거다”라며 “북한 지도자가 변수가 아니라 상수화 되고 있다. 트럼프도 그렇다. 사실은 우리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정도”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장 더 중요한 것은 평화”

   
▲ 통일부 장관 재직시 19차 남북 장관급회담(2006.7, 부산)에서 북측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와 건배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참여정부 시기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2003.3~2006.2)과 통일부장관 겸 NSC 상임위원장(2006.2~2006.12)을 맡아 통일외교안보 정책 수립과 집행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이종석 전 장관은 “적대적 분단을 극복하고 완성된 통일국가로 나아가는 모든 과정”을 통일로 보자고 제안했다. “현재의 대결상태가 해소돼서 화해협력을 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시작되면 그 순간부터 통일로 보자”는 것.

그는 “통일을 최소한 남과 북이 적대적 관계와 적대적 불신과 심리상태를 해소하고 나서 함께 유기적인 협력을 시작하는, 서로 오갈 수 있는 그 시점이 되면 ‘아, 이 정도면 우리는 통일로 들어간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원론적으로 보면 “통일은 모든 방면에서 남북의 주민이 하나의 삶의 양식과 정신, 문명을 공유하는 것”인데, “이게 어느 날 되겠느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리적으로 분단된 국토가 하나로 되는 것 △적대적으로 이질화된 남북 문화를 하나로 회복하는 것 △경제적으로 상이한 체제를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묶는 것 △남북의 주민이 심리적으로 ‘우리는 같은 국민’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 모두 충족된 통일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것.

따라서 그의 눈길은 ‘평화’에 머물러 있다. 그가 참여정부 인수위 시기 명명한 통일외교안보 정책도 ‘평화번영 정책’이다. 특히 2004년 최초로 『평화안보와 국가안보』를 발간, 한국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이후 역대 정부 정책, 특히 민주정부의 정부 정책에서는 통일방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놓아두고, 현단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일을 해왔다 보면 될 것 같다”고 설명하고 “적대 관계를 해소하지 않고 연목구어 식으로 맨날 저기 있는 그림을 가져다 이야기하는 것을 경계한 측면이 크다”고 전했다.

결국 “현재 한반도는 사실은 통일이 중요하지만 당장 더 중요한 것은 평화”라는 것. “평화의 실현이 통일로 가는 것”이라는 확고한 지론이다.

그는 “아직도 정전상태에 있고, 비핵화를 협상하고 있지만 전쟁의 원인을 안고 있다”며 “이것들을 해소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통일과정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자신이 노무현 정부 시기 통일외교안보 비망록으로 남긴 책 제목과 같은 ‘칼날 위의 평화’임을 상기시켰다.

그는 “일단 평화가 실현되려면 어느 정도까지 분단 실타래가 풀어져야 할까?”라고 자문하고 “한반도 평화실현의 당면 조건은 비핵화를 통한 대결상태 해소, 그리고 남북한의 적대상태 해소”를 들었다.

“남북 간에 적대성 요소들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 기본”이고 “그 다음에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유기성, 협력적 요소가 있어야 그 평화가 지속가능한 쪽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고 제시했다.

역시 방점은 적대관계 해소다. “남북의 주민이 상대방을 적이라고 여기는 이상 아무리 비핵화되고 평화협정 맺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 “남북의 주민이 상대를 최소한 이웃으로 생각해야 한다. 형제로 생각하면 더 좋다”고도 했다.

“통일방안, 결혼 제도처럼 유연하게 생각하자”

   
▲ 통일뉴스와 21세기민족주의포럼이 공동주최하고 평화3000과 6.15남측위원회가 후원하고 있는 '2019 통일방안 기획강좌'는 모두 네 차례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 - 조천현]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 가고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본격화 된다면 통일방안도 보다 본격적으로 논의되겠지만 “통일을 너무 엄격하게 규정하지 말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는 “결혼 제도처럼 유연하게 생각하자”는 것.

그는 “어쩌면 남북이 중간단계의 연합국가가 완성된 통일국가일 수도 있는 거다”며 “서로 불편하지 않으면서 너와 내가 하나의 이해집단을 이루고 살면 되는 거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민족은 5천년 동안을 같이해 왔기 때문에 사실은 엄청난 구심력을 향한 DNA가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통일을 강조하지 않고 하나가 되고 이렇게 안 해도 결국은 서로 얽혀 살게 만들고 하나의 유기적 구조를 만들어 내면 결국 그리로 가는 것은 그 어디보다 강하다고 본다”며 “그런 믿음 때문에 더 그런지 모르지만 통일을 너무 엄격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여지를 남겼다.

그는 역대 정부의 통일방안을 논하면서 정두환 정권의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1982.1)은 “그냥 체제 경쟁하려고 즉 통일이 안 되는 통일방안을 내놓은 거다”고 일축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결과적으로 북한 망하기 기다리거나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언급을 회피했다.

‘남북대화 통한 신뢰회복 → 과도적 통일체제로서 ’남북연합‘의 결성 → 남북 총선거에 의한 통일국가 건설’ 경로를 제시한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89.9)에 대해서는 중간단계인 ‘남북연합’을 상정한 것을 평가하고 “김대중 야당 총재의 생각과 거의 같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김영삼 정부에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94.8)이 나왔고, 역대 정부가 이를 계승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후 6.15공동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통일방안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는 평가다.

그는 직접 참석했던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6.15공동성명 2항이 합의된 과정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이 고려민주연방제 보다 더 완만한 것, 더 연합에 가까운 쪽으로 갔다. 그래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북한이 그 안을 받은 거다”라고 설명했다.

남북 통일방안 합의와 계승

<6.15공동선언 (2000년)>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10.4선언 (2007년)>
1. -- 남과 북은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며 --
2. --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나가기로--.

<4.27 판문점 선언 (2018년)>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열어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 선언하였다.
1.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


“우리 국가 제일주의, 일국주의를 생각하고 있는 것”

   
▲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4일 밤 통일방안을 담은 '6.15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또한 “김정일 때는 ‘조선(우리) 민족 제일주의’를 주장했다. 지금 김정은 시대에 작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우리 국가 제일주의’다. 우리 국가는 사회주의 북한이다”며 “김정은은 현실주의자”라고 규정했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국주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은 ‘통일’이라는 말을 잘 안 쓰고 4.27 판문점선언 명칭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으로 ‘평화와 번영’이라는 남측의 정책을 수용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지난달 20~21일 북한을 국빈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을 듣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한 내용 중 “새로운 전략적 노선에 따른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외부환경이 개선되길 희망한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그는 “북한이 바뀐 현실, 자기가 가야 할 현실에 대해서 김정일 위원장 때는 여전히 통일과 허장성세 때문에 잘 안 됐는데, 김정은은 자기 현실에 딱딱 맞춰가는 거다”라며 “김정은 위원장도 사실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아니고 사실은 ‘남북연합제 안’이나 거의 같은 식으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측 입장에서 “예전에 북이 남을 압도하고 체제나 여러 가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연방제가 맞다”며 지금은 연방제적 ‘구심력’을 견제하는, “금방 하나가 돼 대 혼란이 나면 안 되니까 따로따로 살다가 조금 조금씩 가까이 가자”는 절제되고 통제된 ‘연합제 안’에 가까울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 체제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가 북한에 먹힐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우리 체제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남과 북이 하나의 공동이해 주체가 돼야”

   
▲ 이날 첫 강좌에서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가 여는말을 했고,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과 노중선 통일뉴스 상임고문, 정해랑 21세기민족주의 포럼 대표 등이 참석했다.[사진 - 조천현]

그는 남북연합이 가능한 ‘평화번영 상황’이 되려면 △평화협정 체결과 이행 △군비통제 통한 남북공동안보 체제 구축 △남북한 유기적 경제협력체의 완성 △남북간 사회문화적 교류의 일상화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물론, 남북연합을 뛰어넘는 단일형 통일국가가 되려면 이 보다 심화된 △정치·군사적 주권의 통합 △경제공동체 형성 △남과 북이 하나의 삶의 양식과 정신, 문명 공유가 필요하고, 이같은 여건이 성숙되었을 때 남북 주민의 주체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남북연합 단계에서 군비통제를 통한 ‘남북공동안보 체제’ 구축이 중요하다며 ‘대결적 군사안보 관계 → 비적대적 군사안보 관계 → 협력적 군사안보관계 구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과 북이 하나의 공동이해주체가 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라며 “남과 북이 공동 이해주체가 되고 나서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한반도에서, 이 동북아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를 우리가 협의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동북아 다자안보’의 실현을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우리 주변에 그야말로 엄청난 강대국들이 존재한다”며 미사일과 항공전력과 같은 ‘전략적 거부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군비통제를 통해서 남북이 서로 싸우지 말자고 끝나면 안 되고 한반도 공동안보 체계로 남북의 군사상황이 재편돼야만 그때 남북연합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 방향 속에서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다자안보로 간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남북미중 4자가 결국은 한반도의 정전협정을 해소하고 평화협정을 맺는 당사자가 되는 거다”라고도 했다. “포괄적으로는 남북미중이 평화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안에서 부속적으로 북미 간에는 어떻게 하고, 남북 간에는 어떻게 하고, 이런 이야기는 가능할지 모른다”는 것.

미국이나 주변강대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참여정부 시기 경험을 들며 “3년간 NSC에 있었을 때는 내가 하는 일의 7,80%는 미국과의 관계였을 것 같다. 미국 때문에 힘들었다”면서도 “통일문제가, 통일 과정이 미국에 의해 좌절될 가능성은 별로 생각이 안 들더라”고 전하고 남북관계 진전과 한국사회의 내부 분열구조 극복이 더 우선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솔직히 주한미군 문제는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라고 보는 편”이라며 “우리 대한민국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한미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 문제라고 보는 편”이라고 밝히고 “(남북이) 공동안보를 이야기할 정도가 되면 미국과의 관계가 일정하게 극복하든 정리하든 돼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통일방안 보다 더 중요한 건 ‘공존’

   
▲ 이종적 전 통일부 장관은 남측 내부와 남북 간의 갈등과 대결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며 '공존'과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강조했다. [사진 - 조천현]

그는 “우리 한국사회 내의 엄청난 분열구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안의 문제점들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우선”이라며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 내부에서의 분열을 극복하고 최소한 전부는 아니더라도 주류가 되는 큰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나름대로 통일의 방향과 인식을 잡자는 것이 하나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남과 북이 하나의 공동이해주체가 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일 것”이라며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이고 통일에 대한 염원을 키우게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존”이라고 전제하고 “나와 다른 북한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함께할 수 있는 그 문화와 심성을 만드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나와 다른 형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다름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 그럴 수 있는 제도, 그런 것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개발하고 그런 것들을 규정해서 만들어내는 그런 것이 상당히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것.

또한 “공존 속에서 다름을 줄여가는 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을 상당히 길게 잡고 있다”며 “남북연합이라는 제도가 있는 것도 그런 거다. 그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그런 것들이 심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좌 참석자들과의 질문답변 과정에서 ‘민족’이라는 개념 보다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데 대해 그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남북연합이건 통일국가건 민족이 아니라 국이기에 국민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민족이라는 용어를 내세우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굳이 민족을 내세워서 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 자체가 논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남과 북이 최소한 우리가 가져 왔던 전통적 사상들이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 공유할 수 있는지 찾아서 함께 남과 북 학생들이 같이 배운다거나 이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시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 정책과 관련해서는 “최근에 대통령 연설을 보면, 평화경제 말씀을 하시더라. 그런 것들을 조금 비전화시키면 어떨까”라고 조언하고 “구호성에 가깝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부가 겸허히 듣고 조금 더 구체화시켜서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솔직히 말하면, 비핵화에서 한국 정부가 예를 들어서 남북관계를 팍팍 진전시키고 이렇게 못하는 건 나도 유감”이라면서 “우리 한국사회 내의 엄청난 분열구조”를 장애로 인정했다.

통일뉴스와 21세기민족주의포럼이 공동 주최하고 평화3000과 6.15남측위원회가 후원한 ‘2019 통일뉴스 기획강좌 - 통일방안을 논하다’ 첫 번째 강좌로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가 여는말을 했고,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과 노중선 통일뉴스 상임고문, 정해랑 21세기민족주의 포럼 대표 등이 참석했다.

기획강좌 두 번째 강연은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이 8월 8일 오후 7시 광화문 조영래홀에서 ‘공존단계를 거친 통일 -북측의 연합연방제 통일방안’을 주제로 진행할 예정이며, 세 번째 강연은 9월 5일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이 ‘한반도 평화체제 로드맵과 통일방안’을 주제로, 네 번째 강연은 10월 10일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 ‘민족주의적 통일방안 모색’을 주제로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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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통령에게 있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것은 하나의 특권

트럼프, "오바마는 거듭 면담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주장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7/0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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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것이 하나의 특권이 되는 시대가 미국에 도래했다. 지금 미국에서는 김위원장 면담자격 여부를 놓고 정치권에서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국내시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두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면담을 거듭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주장해 한창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자신은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김 위원장과의 관계에 대해 "지금 우리는 아주 좋은 관계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해냈다. 무슨 일이 있을지 지켜보자”고 기대에 찬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오바마 전 대통령 측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이에 반발하고 있다. CNN방송은 이같은 분위기에 대해 황급히 진화작업에 나서면서 이를 부인하려 애쓰고 있으나 이미 논쟁은 김위원장을 알현할 자격을 놓고 벌이는 힘겨루기 양상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참으로 기특하다. 또 솔직하다. 그는 ‘신비로운 권위’를 가진 조선 최고령도자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숨기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한 김위원장과의 기막힌 궁합(chemistry)의 시발점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또한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익으로 돌아 갈수밖에 없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꽤나 정직하지 못하다. 외교관계에 있어서 그들의 위선은 하늘을 찌른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이중성을 초래하는 치명적인 덫으로 작용한다. 트럼프는 참으로 예외인 인물이다. 사실 미국 역대대통령들에게 있어서 조선의 최고령도자들을 어려워하는 자세는 공개된 비밀에 다름아니다.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등 미국 대통령들은 조선 앞에만 서면 작아졌다. 큰소리를 치다가도 막상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꼬리를 내린다. 왜인가? 바로 상대방 지도자의 권위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권위는 바로 그를 믿고 따르는 인민들의 일치단결된 응집력에서 나온다. 일심단결, 미국의 대통령들은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게된다. 조선이 얼마나 최고령도자로부터 인민들이 혈연적인 관계로 결속되어진 사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분위기는 좋은 현상이다. 이제서야 조선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는 징조이고,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조짐인 것이다. 트럼프라는 솔직한 대통령의 출현으로 미국이 그동안 숨겨왔던 그같은 비밀의 문이 열리고 있는 중이다.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박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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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속셈이 드러났다..."선거 연설에 이용하라"

'혐한' 이용 선거 운동 지침 내려간 듯...北 도발 없으니 '한국 때리기'
2019.07.06 00:38:45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법원 판결을 빌미로 '경제 보복'에 나선 것과 관련해, 자민당이 이를 선거에 이용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결국 '혐한 감정'을 이용, 일본 집권당이 '경제 보복'을 선거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셈이다. 
 
5일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 간부의 발언을 인용, "참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선거 연설 등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언급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간부는 위안부 문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규제 등을 거론하며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등 수입 규제 조치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일본이 수입 규제 조치를 발표한 날은 공교롭게도 오는 21일 있을 참의원 선거 고시일(선거운동 개시일)이었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4일 사설을 통해 "아베 정권이 한국에 강경 자세로 임해 보수층에 호소하려는 노림수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며 "눈앞의 인기를 얻고 장기적인 국익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아베 정부는 현재 '개헌론'을 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 승리해 개헌에 유리한 의석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 남북미 화해 기류 때문에 북한발(發) 미사일 실험 등 '도발'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 아베 정부가 난감해하고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다. '북한이 조용하니 한국이라도 때린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번 '수입 규제' 조치가 '경제 보복'임을 구태여 숨기지도 않고 있다. 아베 총리는 NHK에 출연해 이번 수입 규제 조치의 계기 중 하나가 '강제 징용 배상' 문제였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하며 "볼은 한국 측에 있다. 국제사회의 상식에 따라 행동해줬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를 보는 것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다. 대부분 고령인데도 일본은 "개인 청구권 문제는 1965년에 이미 해결이 된 것"이라는 빈약한 논리를 되풀이하고 있는 등 문제의 해결을 회피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국가 간 청구권, 개인 피해자의 경우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이 소멸됐을 뿐, 개인이 청구할 권한이 소멸된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이 같은 해석을 한국의 대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심지어 고노 다로 외무상도 지난해에 '한일협정에서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은 '개인 청구권은 정부(한국)을 통해 청구될 수밖에 없으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데, 이는 한국 대법원과 3권 분립을 무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이날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 정권은 역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규탄했다. 
 
일제 강점기 피해자, 연구 단체 등 10여 개로 구성된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기자회견과 함께 서명운동에도 돌입했다. 공동행동은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는 매우 부당하다"며 "아베 정부는 지금 피해자들은 물론 자국민과 세계를 상대로 거짓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동행동은 "2012년 한국의 대법원은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적인 강점이고 피해자들이 당한 강제 동원, 가아제 노동 등 인권 침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고, 2018년 대법원은 이 판결을 촛불의 힘으로 다시 확인했다"며 "하지만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기업은 이를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하여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동행동은 "한국 최고 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8개월이 지나도록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국제법 위반'이라는 근거 없는 변명만을 되풀이하며 판결 이행을 가로막는 일본 정부를 규탄한다"고 했다. 
 
공동행동은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해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일 간 갈등을 부추기고 '혐한' 분위기를 선동하고 있다"며 "아베 정권은 역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동아시아 평화를 함께 만드는 동반자인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편협한 배외주의를 부추기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놀음에 절대 이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공동행동은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의 적반하장격인 이러한 태도는 일제가 일으킨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음을 재차 확인시킬 뿐"이라며 "일본이 끝까지 이러한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일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공동행동은 "일방적 규제로 갈등을 부추기는 대결의 자세가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간 존엄을 회복하고, 역사 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세계 시민들과 함께 행동할 것"이라며 오는 8월 15일 광복절까지 강제 징용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서명운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일본 제품 불매 여론도 거세다. 이날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옛 일본대사관 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제품의 판매 중단을 시작한다"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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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보신탕 먹겠다고? 동물단체 대표의 고발

[스팟인터뷰]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개식용 철폐 전국 대집회를 여는 이유"

19.07.06 11:41l최종 업데이트 19.07.06 11:41l

 

 

 지난 7월 1일, 60년 된 부산 구포 개시장이 폐쇄되는 현장 모습이다. 이날 현장에서 86마리의 개들이 구조됐다.
▲  지난 7월 1일, 60년 된 부산 구포 개시장이 폐쇄되는 현장 모습이다. 이날 현장에서 86마리의 개들이 구조됐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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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일, 60년 된 부산 구포 개시장이 폐쇄되는 현장 모습이다. 이날 현장에서 86마리의 개들이 구조됐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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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마리의 개들이 죽음에서 벗어났다. 지난 1일, 60년 된 부산 구포 개시장이 폐쇄됐다. 구포 개시장은 성남 모란시장과 대구 칠성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시장으로 알려졌다. 이곳의 개들은 모두 도살 직전에 처했거나, 보신탕 집 앞에 전시되는 용도였다. 하지만 이 같은 개시장의 명성도 점차 막을 내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전국 최대 규모인 경기도 성남 태평동 개도살장도 영구 철거됐다.

구포 개시장 폐쇄 작업은 동물자유연대와 동물권 행동 '카라', 동물 단체들이 함께 했다. 앞선 두 단체는 오는 7일 서울시청 광장서 개식용 철폐 전국대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초복 당일인 12일에는 대구 칠성시장 앞에서 집회를 연다.

구포 시장 폐쇄 작업에 함께했던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지난 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하지만 아직 '개 식용' 산업에 대한 법 규제가 미비하다"며 "현재 개 도살은 불법도, 합법도 아니다. 어떤 규제책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개 식용금지 관련) 20만 명이 넘는 국민청원을 받았음에도 정부 차원에서의 대책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조희경 대표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식용 개 농장,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

 

- 국내 개 도살시설 혹은 식용 개 농장 현황은 어떤가.
"전 세계적으로 개를 식용 목적으로 사육하는 '식용 개 농장'이라는 개념이 있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 식용을 목적으로 한 시설에 대한 공식적인 수치는 집계된 게 없다.

개 도살 시설도 마찬가지다. 개를 죽이는 행위들은 주로 재래시장에서 이뤄진다. 모란시장, 경동시장, 칠성시장 등 큰 재래시장의 경우 우리가 이를 확인해서 구조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재래시장까지 모두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통계가 명확하게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에 이런 목적의 시장들이 크게 줄었다. 이전에는 서울 신당역, 영등포 쪽에도 개시장이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졌다."

- 식용 개 농장에 있는 개들은 어떤 상태인가.
"생각보다 더 열악하다. 기본적으로 개들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뜬 장(철창)에 가둬놓고 사육한다. 배변을 뜬 장 아래로 떨어뜨려 버리려는 건데, 그러다보니 위생적으로 매우 안 좋다. 지금과 같은 여름에는 개들이 뜨거운 땡볕에 방치된다. 뜬 장은 모두 철제다. 개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없는 환경이다. 개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교감이 가능한, 정서적 욕구가 있는 동물이다. 이런 것을 모두 차단시킨 공간이다.

대체로 음식물 찌꺼기가 식량으로 나온다. 음식물 찌꺼기 자체도 문제지만,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대체로 짜고 맵지 않나. 개들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이런 것을 종합했을 때 식용 개 농장 자체를 '동물 학대'라 봐야 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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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농장에 있는 개들은 어떻게 되나.
"평균 1년 6개월 정도 지낸다. '농장'이라는 표현보다, '유통'이라 보는 게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이 개들은 여기서 지냈다가 식용 업소로 팔려간다. 자체적으로 도축해서 업소로 공급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 지난 1일 부산시 구포 개시장에 있는 개들을 구조했다.
"협상 과정에서 일부 업주들의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상인들은 본인들의 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상인들 중에는 "차마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하신 분도 있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지자체의 강한 의지다. 이 분들이 이 직업을 접을 수 있도록,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산 구포 개시장 사례를 특히 바람직한 사례로 보는 이유다. 부산시의 적극적 의지와 동물단체, 상인회의 협상이 잘 이뤄졌다. 반려동물에 대한 변화한 사회인식이 반영된 결과였다.

개시장이 있던 자리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복지시설과 근린공원이 세워진다. 상인들을 위한 대책도 충분히 마련됐다. 부산광역시 북구청에서는 상인들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급하거나 관련 근린생활 시설에 입주할 수 있는 조건을 줬다."
 
 지난 7월 1일, 60년 된 부산 구포 개시장이 폐쇄되는 현장 모습이다. 이날 현장에서 86마리의 개들이 구조됐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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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장의 살아 있는 개들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도살 당한다. 개시장은 일종의 유통지로, 개 도살과 판매가 모두 이뤄진다. 하지만 지난 1일 이후 부산 구포 개시장에서는 개 도살과 지육판매 모두 중단됐다. 17개 상점의 상인들은 모두 업종 전환에 동참했다. 동물단체들은 이 사례를 개식용 관련 영업을 완전히 끝낸 완결성을 갖춘 모델로 평가했다.

구포 개시장과 달리, 성남 모란시장과 서울 경동시장의 경우 도살시설은 폐쇄되었지만 지육판매는 여전히 유지 중이다. 대구 칠성시장에서는 도살과 지육판매 모두 이뤄지고 있다.

- 구조된 개들은 이후 어떻게 되나.
"먼저 아픈 개들을 대상으로 단체에서 치료를 진행한다. 이후 사회성 교육을 시켜 국내외 입양 절차를 밟는다. 대체로 해외로 입양 보낸다. 미국, 캐나다로 가는 경우가 다수다. 우리 단체에서는 안락사는 하지 않는다. 입양이 안 되면 우리가 다 품는다."

폭력은 유죄, 전기도살은 무죄?... '관련 법 여전히 미비'

- 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화했다. 의식변화와 함께 제도도 정비되고 있다고 보나.
"아니라고 본다. 식용견과 관련된 사회적 제도는 계속 사각지대다. 물론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사회적으로 개를 먹는 수요가 상당히 줄었다. 관련 사업장들도 폐업하는 추세다. 수요가 줄었으니, 공급하는 개 농장도 줄어든다.

하지만 관련법이나 제도는 여전하다. 과거에 '개 식용'을 용인해 왔던 관행 때문이다. 반려견을 때리는 건 불법으로 보면서도 식용 목적으로 죽인 것에 대해서는 규제가 미비하다. 지난해 9월, 서울고등법원이 전기로 개를 도살한 사건을 무죄로 판단한 게 그 예다."

앞선 사례는 개를 묶어 놓고 쇠꼬챙이로 감전시켜 죽인 도축업자가 1, 2심에서 무죄를 받은 사건이다. 1심은 전기도살이 동물보호법 8조 1항 1호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항소심에서도 전기도살이 동물의 고통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지난해 9월 13일,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했다. 당시 대법원 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이 사건의 도살방법을 허용하는 것이 동물의 생명존중 등 국민 정서에 미칠 영향, 사회 통념상 개에 대한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심은) 도살방법이 잔인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섣불리 단정 짓고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6월 17일에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 '개, 고양이 식용 종식'을 위해 법 개정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21만 명 넘는 국민들이 청원에 동참했다.
▲  지난해 6월 17일에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 "개, 고양이 식용 종식"을 위해 법 개정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21만 명 넘는 국민들이 청원에 동참했다.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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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법상 개를 도살하는 것은 합법인가, 불법인가?
"합법도, 불법도 아니다. 일단 '불법'이라고 하려면 법이 금지한다는 것을 명시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관련된 법적 규정은 아무것도 없다. 현행법에서는 죽이는 방식의 일부만 규제하고 있다. 때려죽이거나, 목을 조여 죽이는 것은 불법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명확하게 어떻게 죽여야 한다는 것도 없다.

그렇다고 개를 죽이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도 아니다. 식용 목적으로 개를 죽이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도 없다. 이는 즉, 현행법에서 개를 죽이는 것 자체를 방치하고 있다는 말이다. 죽이는 방식에 대해서만 문제만 삼을 뿐이다. 법이 어정쩡한 상태다."

- 지난해 6월 17일, 개·고양이 식용 종식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당시 20만 명 넘는 국민들이(21만 4634명) 청원에 동참했다. 해당 청원에서는 식용 종식을 위해 '축산법의 가축에서 개를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 이게 가능해질 경우, 개는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의 개념으로만 남게 된다. 개 농장도, 지육 판매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법적인 부분이 뒷받침되면 이후 후속조치 및 규정이 마련되어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현존하는 개농장의 모습이다. 아직 식용 개 농장 및 관련 산업 문화는 남아있다.
▲  현존하는 개농장의 모습이다. 아직 식용 개 농장 및 관련 산업 문화는 남아있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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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는 개농장의 모습이다. 아직 식용 개 농장 및 관련 산업 문화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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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만 명 청원에도 변한 것 없는 개 식용 산업... "아직 갈 길 멀어"

- 관련 청원에 대해 청와대는 "이를 계기로 가축에서 개를 제외하도록, 축산법 관련 규정 정비를 검토 하겠다"고 답변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개선된 바가 있나?
"전혀 없다. 해양수산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서 논의는 하고 있는데, 아직도 진척된 바가 없다. 법률적인 자구책이 논의돼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으니 결국 단체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거다."

- 오는 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식용 철폐 전국대집회를 연다.
"전국에 남아 있는 개 농장 철폐, 개식용 문화 반대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구포 개시장에 이어 전국의 모든 개 도살장 폐쇄를 촉구하려 한다. 개식용 산업의 동물학대 실상을 알리고, 잘못된 동물들의 희생을 막는 게 목적이다.

청와대에도 불법 개 도살을 없앨 수 있도록 정책적인 관심을 촉구하려 한다. 개를 가축에서 제외하겠다고 한 지난 청원의 답변도 다시 언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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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반하장 아베정권! 배상판결 이행하라!

강제동원 공동행동, '아베정권, 갈등과 대결의 정치를 당장 멈춰라'(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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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5  17: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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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강행한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자와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5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배상판결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일본 아베 정권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강행되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의 아베 정권 규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겨레하나,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해 18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강제동원 공동행동)은 이날 오전 주한 일본대사관이 위치한 중학동 트윈트리A빌딩 앞에서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강제동원 피해자·시민사회단체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아베 정권이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지난 4일부터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작해 한일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먼저 8개월이 지나도록 한국 최고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피고 일본 기업(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과 '국제법 위반'이라는 근거없는 변명만을 되풀이하며 판결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는 일본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일본 정부와 피고 일본 기업이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여 하루 빨리 판결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또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한일 갈등을 부추기며 '혐한'분위기를 선동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우리들은 강제동원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 일방적인 규제로 갈등을 부추기는 자세가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간 존엄을 회복하고 역사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세계시민들과 함께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요구를 반영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강제동원의 사실 인정을 통한 진상규명 △일본 정부와 피고 기업의 사죄·배상을 포함한 피해회복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와 역사교육을 통한 재발방지 등 과거사 해결의 기본원칙을 끝까지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이들은 △8월 15일 일본정부에 제출하는 일정으로 목표로 '시민서명운동'(http://bit.ly/20190815) △광복절, 한일 시민들이 강제동원 사죄배상을 외치며 일본대사관 앞으로 행진하는 '8.15국제평화행진' △일본 기업의 강제노동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영상 배포 및 해시태크(#JapanApologyNow) 캠페인 등 시민행동을 제안했다.

   
▲ '적반하장 아베정권! 배상판결 이행하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수십년간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 것은 돈 몇 푼 받자고 한 것이 아니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고생한 것에 대해 일본 정부나 기업이 그것을 인정하고 사죄를 받자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하면서 "아베 총리가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우리를 식민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제징용공동행동 운영위원장인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본과 아베 총리가 한국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이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년전 군함도를 산업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유네스코 총회에서 일본 대사가 '조선인 뿐만 아니라 중국인을 포함한 강제노동이 있었다'라고 공식 인정했으나, 바로 그 다음날 일본 정부는 '강제노동이 없었다'고 사실을 뒤집었으며, 이번 오사카 G20정상회의에서도 자유무역을 하겠다고 약속한 서명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일본은 또 다시 세계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1965년 한일기본조약 등을 거론하면서 한국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방귀뀐 놈이 성낸다'는 격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논박했다.

과거 신일본제철 회장이 직접 '한국 사법부의 판결에 따르겠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주주총회에서도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행하겠다'고 해 놓고도 지금은 그 말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불이행 원인이 한국정부에 있는 것으로 돌리고 있다고 분개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아베 총리는 한국 사법부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되풀이 주장하면서도 국제법의 어떤 내용을 위반한 것이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힐난했다. 또 20년 이상 재판 당사자로 참여했던 일본 기업이 일체의 판결 이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육군 군속으로 강제동원되어 전시에 병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의 야스쿠니 합사를 철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이명구(83살) 선생은 "유족들의 동의도 없이 2만1,000여명의 조선인을 야스쿠니에 합사해 놓고는 출입도 막고 있어 제사도 못 지내게 하는 나라가 일본"이라며, "나도 싫고 아버지도 싫어하실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위패를 야스쿠니에서 빼달라"고 호소했다.(아래 별도박스 참조)

엄미경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100만 민주노총이 일본에 맞서 광범위한 불매운동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분노가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근본적으로 일본과의 적대적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대결을 부추기는 아베 정권이 한일관계를 파탄내고 있으나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사회는 식민지 역사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며 "일본은 지금이라도 겸허히 강제동원 역사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문(전문)>

아베 정권은 갈등을 부추기는 대결의 정치를 당장 멈춰라!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4일부터 한국산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우리는 일본 국내의 비판마저 무릅쓰며 한일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아베 정권의 일방적인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 아베 총리는 이번 조치가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이 없다며 강변하였지만,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항조치라는 것은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먼저 8개월이 지나도록 한국 최고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피고 일본 기업-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와 ‘국제법 위반’이라는 근거 없는 변명만을 되풀이하며 판결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는 일본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일본 정부와 피고 일본 기업은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여 하루 빨리 판결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매년 1천만 명의 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있다. 누구보다 가까운 이웃이며 동아시아 평화를 함께 만드는 동반자인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편협한 배외주의를 부추기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놀음에 결코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한일 간의 갈등을 부추기며 ‘혐한’ 분위기를 선동하고 있는 아베 정권에게 강력하게 경고한다. 아베 정권은 더 이상 역사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 

우리들은 강제동원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 일방적인 규제로 갈등을 부추기는 대결의 자세가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간 존엄을 회복하고 역사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세계 시민들과 함께 행동할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돈 몇 푼을 받기 위해 70년 이상을 싸워 온 것이 아니다. 

강제동원의 사실 인정을 통한 진실규명, 일본 정부와 피고 기업의 사죄, 배상을 포함한 피해 회복,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와 역사교육을 통한 재발방지 등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과거사 해결의 기본원칙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요구를 반영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이 원칙들을 끝까지 지켜 나갈 것이다. 

반인도적인 범죄인 강제동원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하루 빨리 인권을 회복할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시민들과 손잡고 행동할 것이다. 


2019년 7월 5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겨레하나,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선학교와함께하는사람들 몽당연필, 청년시대여행, 평택원폭피해자2세회, 평화디딤돌, 포럼 진실과정의,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합천 평화의집, 흥사단,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KIN(지구촌동포연대)

 

<이명구 선생 발언 전문>

   
▲ 이명구 선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나는 일본 전쟁 때 일본 사람들의 손에 강제로 끌려가 전쟁에 참여하다가 돌아가셔서 해방이 된지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아버지의 이름이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계신 이낙호(창씨 개명 '송본낙호')의 아들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황민화 정책으로 우리나라도 아닌 일본 나라로 가족을 두고 가기 싫어하시던 아버지께서 1944년 1월 20일 추운 날씨속에 강제로 끌려 가셨다. 일년이 넘도록 어디서 무엇을 하셨는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패망하고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어 살아계신 분들은 모두가 집으로 오셨는데 아버지께서는 오시지 않았다. 

온 가족이 아버지께서 돌아오시기만 기다렸는데 기다리던 아버지께서는 오시지 않고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사 통지서가 왔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유품도 없이 아버지의 유골이라고 하면서 재만이 종이에 쌓여서 왔다. 가족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너무한 것이 아닌가? 자기들의 부모라면 이렇게 하겠는가? 묻고 싶다.

나는 돈이 없어서 일본에 가서 아버지의 기록을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1997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단체인 태평양전쟁보상추진협의회에 참여하여 아버지의 기록을 찾아보니 아버지는 육군 군속 제3선박 수송 사령부 팔라우 지부 소속으로 팔라우 섬에서 전쟁을 하다가 1945년 4월 12일 전병사(戰病死)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팔라우 섬이라니! 들어보지도 못한 땅이 아닌가? 어떻게 내가 이 사실을 믿겠는가. 아버지께서 어떠한 병으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기록에 나와 있지 않았다. 답답하고 슬픈 마음뿐이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유족들의 마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자기들의 부모를 합사하는 것 같이 유족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아버지의 이름을 야스쿠니에 넘기고 야스쿠니에서는 합사를 해 버렸다.

일왕을 위해서 희생하고 일본을 위해 희생한 자기 나라 사람들조차 거부하는 야스쿠니에 우리나라 유족들 아버지들의 위패가 21,000명이나 합사되어 있다. 내 아버지도 식민지 역사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는 일본에 의해 창씨 개명된 '송본낙호'라는 이름으로 야스쿠니에 위패가 모셔져 있다.

야스쿠니에서는 우리 유족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 일본 정부는 참배를 해서는 안되는 아베 총리나 일본 관리들은 참배를 하게 하고, 조상들을 참배해야 할 유족들은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러는지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

야스쿠니에서는 종교의 침해 우려가 있기 때문에 참으라고 하고 있다. 종교는 무슨 종교! 종교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종교의 침해를 이유로 빼내지 못할 외국 사람들의 영혼을 야스쿠니에 합사시켜 놓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언제까지 참으라는 것인가?

나도 종교를 갖고 있는 유족이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기도할 적 마다 나도 이 세상을 마치고 하나님 나라에 가면 나의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을 꼭 만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하고 있다. 

특별히 어린 동생을 꼭 만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하고 있다. 

어린 동생을 돌봐주지 못하였기에 이 세상을 일찍 마친 동생이 그래도 내가 형이라고 나는 9살, 동생은 5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 거기게 많은 동네 사람이 있었지만 어머니 제사상에 차려놓은 과일이 먹고 싶다고 나한테 와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어린 동생은 형이니까 자기가 먹고 싶은 과일을 갖다 줄줄 알고 믿고 말하는 것을 갖다 주지 못한 것, 나도 살아가기가 힘들고 어려워서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나도 이 세상을 마치는 날 하나님 나라에 가서 동생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또는 아버지 어머니도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말도 하고 사랑하고 싶은 것을 다 아시고 계신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실 줄 믿고 기도할 적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어 살아계신 사람들은 다 돌아오셨는데, 돌아가신 분들은 아직도 야스쿠니에 묶여서 돌아오시지 않고 있으므로 유족들은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있는 조상들을 해방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가셔서 집에 오시지 못한 것도 억울한테 영혼들을 합사시켜 놓고 추도식과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나라가 일본이 아닌가?

지금도 유족들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그때 일본을 위해서, 일왕을 위해 돌아가신 분들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돌아가신 영혼들을 해방된지 74년이 넘도록 집에다 모시지 못하고 추도식을 지내지 못하고 참아왔는데 언제까지 참으라는 것인가?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유족들의 아버지들이 그때는 일본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일본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분통이 터지고 피가 거꾸로 솟아 오른다. 그렇다면 야스쿠니에 합사된 일본 유족들에게는 일본 원호법에 따라 막대한 보상을 해 주면서 왜 우리나라 유족들에게는 보상은 커녕 아버지의 영혼을 야스쿠니에서 빼달라고 하는 정당한 요구도 묵살하는가?

나의 아버지께서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나라는 연합군이 승리함으로써 해방이 되어 살아계신 분들은 다들 돌아오셨는데 해방이 된 후 14년이 지난 1959년 4월 6일에 야스쿠니에 합사되었다는 것이다. 

해방이 된지 14년이 지났음에도 왜 우리 아버지의 영혼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야 하나? 이것이 일본의 법인가? 

해방이 된지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야스쿠니에 가두어 놓고 참배를 해야 할 유족들은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참배를 해서는 안될 일본 총리와 관리들은 참배를 하고 있다. 왜 우리 아버지가 그들의 참배를 받아야 하나? 나도 싫고 우리 유족들의 아버지 영혼들도 싫어하실 것이다.

일본 정부나 야스쿠니에서는 우리 유족들보고 합사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가? 또 그때는 일본사람이기에 야스쿠니에 합사했다는 것이다. 그럴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화가 많이나서 참을 수가 없다. 그때라니, 그때가 어느때인가. 해방이 된지 14년이 지난 1959년 4월 6일에 야스쿠니에 합사시키지 않았는가. 해방이 된지 14년이 지난 그때도 내 아버지가 왜 일본 사람인가?

해방이 되기 전이라면 식민지에 속한 나라이기에 일본사람이라 합사를 했다고 할 수가 있겠지만 그때가 언제인가?
해방된지 14년이 지난 뒤에도 유족들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합사시켜놓고, 일본 정부나 야스쿠니에서는 일본 나라에 감사해야 된다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일본 사람의 조상도 아니고, 일본 사람도 아닌데 나의 아버지의 위폐를 빼내지 않고 우리나라 유족들의 영혼들에게 참배한들 일본 나라에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내 나이 83세, 나도 건강이 좋지 않다. 언제까지 이 세상에 살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을 마치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야스쿠니에서 이름을 빼지 못해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으로 모시지 못하였기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만나보지 못할까봐 날이 갈수록 잠도 자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마치기 전 꼭 빼내야 한다.

야스쿠니에서 아버지 이름을 빼서 해방이 된 대한민국으로 오시고 싶어 하시는 이름을 빼고, 이 세상을 마쳐야 하나님 나라에 가서 아버지를 만날 것이다. 우리나라 유족들도 다 이러한 마음일 것이다. 어서 속히 야스쿠니에서 우리나라 유족들의 아버지의 이름을 빼내 주길 바란다.

아들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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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산원, "488번째 세쌍둥이 탄생"

평양산원, "488번째 세쌍둥이 탄생"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9/07/06 [08:33]  최종편집: ⓒ 자주시보
 
 

 

 

최근 북에서 488번째 세쌍둥이가 태어났다.

 

김일성 주석은 "세쌍둥이가 태어나면 나라가 흥할 징조입니다"라고 말했으며 세쌍둥이에 대한 특별관리를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평양산원이 개원된 때로부터 수십 년 동안 현대적인 의료설비들과 산꿀, 곰열, 녹태고, 잣을 비롯한 보양제들과 영양식품들을 끊임없이 보내주었으며 세쌍둥이들에게는 대를 이어 길이 전할 ‘사랑의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세쌍둥이가 태어나면 남자에게 은장도를, 여자에게는 금반지를 선물로 보내고 은장도와 금반지를 선물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은장도와 금반지에 어려서 헤어졌다가 나중에 다시 만나도 자기 형제를 확인할 수 있도록 3개를 모두 합쳐야 전체 출생년월일을 알 수 있도록 생일을 새겨 넣는 것을 창안했다.

  

인터넷 소식에 따르면 북 매체 ‘조선의 오늘’은 “지난 4월 20일 고고성을 울린 평양시 서성구역에 사는 김은경 여성이 낳은 딸 세 쌍둥이들은 태어날 당시 몸무게가 각각 1.88kg, 2kg, 1.82kg이었다”고 말했다.

 

매체는 “해산 후 김은경 여성은 다 태자 산모들에게 베푸는 당의 뜨거운 사랑 속에 각종 보약제들과 영양제들을 쓰며 건강을 회복하였으며 사랑의 보육기 안에 생의 첫 보금자리를 편 세쌍둥이들은 산원의료일꾼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재 아기들의 몸무게는 평균 4kg에 달한다”고 말했다.​

 

‘조선의 오늘’에 따르면 평양산원은 여성들에 대한 해산방조와 부인병치료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전문과적인 의료봉사를 진행하는 종합병원으로서 평양시 대동강구역에 자리잡고 있다.

 

평양산원은 산부인과분야의 전국적인 치료예방사업과 기술방법적지도, 과학연구사업과 림상교육 및 후비양성사업을 통일적으로 맡아하는 표준화된 대규모의 산원이며 여성들을 위한 종합적인 의료봉사기지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평양산원은 1980년 3월에 완공, 7월 30일부터 개원했다. 건축면적(당시)은 1만여㎡이고 연건평은 6만여㎡이다. 

 

산원은 13층의 기본건물인 1호동(환자치료건물)과 그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잇달린 2호동(관리호동)과 3호동(제약생산기지) 그리고 기본건물과 떨어져있는 보조호동인 4, 5, 6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너비 21m에 길이 45m의 1호동 중앙홀에는 수만 개의 구슬을 단 직경 5m의 커다란 무리등과 천연보석바닥으로 꾸며져 있다. 건물 안에는 2천개를 훨씬 넘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형태의 방들이 치료활동과 과학연구사업에 편리하게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평양산원에는 임신, 해산을 취급하는 산과와 여러 가지 부인병들을 예방 치료하는 부인과, 내과, 비뇨기과, 구강과, 구급소생과, 안과 등 여러 가지 전문과들이 있다. 

 

매 해산실에는 무통해산장치와 해산감시장치들이 하나의 체계로 꾸려져 있으며 갓난애기과에는 갓난애기방, 특히 조산아들을 위한 수십 대의 최신형보육기들이 갖추어진 방이 따로 꾸려져 있다.

 

‘조선의 오늘’은 평양산원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발기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현대적인 유선종양연구소가 생겨 산원의 면모와 능력을 최상의 수준에서 더욱 일신하였다고 강조했다.

 

유선종양연구소는 유선질병들에 대한 예방과 치료, 과학연구사업을 진행하는 의료봉사 및 과학연구기지로서 2012년 2월에 착공하여 8개월 만에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일떠섰다고 매체는 소개했다.

 

2012년 10월 8일에 준공한 유선종양연구소는 건축면적이 1,974㎡, 연 건축면적이 8,500여㎡이다. 유선종양연구소에는 유선촬영실, 렌트겐촬영실, 항암치료실, 물리치료실, 초음파실, 수술장을 비롯한 진단 및 치료실들과 입원실, 연구실들이 있고 방마다 첨단의료설비, 기구들이 충분히 구비돼 있다.

 

특히 북은 평양산원은 여성건강을 위한 일류급치료예방기지로서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대규모적이며 종합적인 의료봉사기지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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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돗물'이 노후 관로 탓? 국민을 속이지 마라

[기고] 진짜 원인 두고 기승전'시설투자'만... 서울시까지 엉뚱한 해법, 환경부가 중심 잡아야

19.07.05 07:30l최종 업데이트 19.07.05 07:30l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의 물 관련 정보들에는 터무니없는 오류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은 UN이 정한 물부족 국가다'라거나, '한국인들은 물을 물 쓰듯 한다'거나, '한국의 물 값이 지나치게 싸다'거나 하는 따위다.

조금만 자료를 찾거나 비교해도 쉽게 드러날 거짓말을 일부 국민은 상식이라고 알고 있다. 정부와 언론,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주입해온 결과다. 국민 탓만 하는 이들 논리가 횡행하니 정부는 가뭄이 들어도, 수질이 나빠도, 홍수가 나도 기승전 '시설투자'로 일관해 왔다. 

물 정책에는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 환경부가 생긴 이후 25년간 환경부 예산의 2/3가 물 분야였을 정도다. 하지만 그 기간 강의 수질은 개선되지 않았고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댐, 제방, 정수장, 상하수 관로의 규모는 세계적인 성취를 이뤘는데 수돗물은 별로 개선되지 못했으며 물 환경은 더욱 나빠졌다.

그런데 이번 '붉은 수돗물 사태'에서 또다시 잘못된 방향이 등장하려고 한다. '노후관로 탓'이다. '녹물 수돗물의 원인이 노후 관로 탓이고 대책은 노후 관로 교체다'라는 주장이다. 국가가 노후 관로 교체를 외면해 왔던 것이 문제고, 노후 관로만 아니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기사들이다.

가뭄이 들어도, 수질이 나빠도, 기승전 '시설투자'
 

 6월 27일 인천시 서구 청라동 한 아파트 유출부에서 채수 한 수돗물에 대한 탁도 및 잔류염소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  6월 27일 인천시 서구 청라동 한 아파트 유출부에서 채수 한 수돗물에 대한 탁도 및 잔류염소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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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살펴보자. 인천 서구의 녹물이, 서울 문래동의 녹물이, 노후 관로 탓인가? 사고가 난 인천 서구는 겨우 20년 된 신도시다. 서울의 문래동도 공급받는 수도 관로는 2005년에 설치된 것이다. 문래동 관로에 유입되기 전 단계 관로가 오래됐으나, 그 노후 관로를 통해 수돗물을 공급받은 지역 중 일부에서만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노후 관로 탓일까? 

인천의 녹물 발생에 대해서는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6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정확히 밝힌 바 있다.
 

"수계 전환 전  10시간 정도 (준비 시간이) 걸리는데, 10분 만에 밸브를 열어 압력을 2배까지 올리고 2~3시간 만에 물을 다른 방향으로 보냈다. 탁도 역시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부유 물질을 빼내는 것도 대응 가능한데, 그 모든 것을 다 놓쳤다. 100% 인재라고 본다." 


대단한 원인이 있었던 게 아니라, 수계(수돗물 공급체계) 전환 과정에서 업무를 엉망으로 했다는 뜻이다. 특히 열흘 동안 아무런 수습도 못한 채, 시민들에게 수돗물이 기준을 충족한다고 거짓말을 한 게 본질이다. 게다가 시민들의 민원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이리저리 돌리며 책임을 떠넘긴 것이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인천 사고 후 20일 만에 발생한 서울 문래동 녹물 사태 대응이 전혀 진화하지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깝다. 성급하게 수돗물의 수질이 안정화 됐다고 주장하고, 노후 관로 개선을 위해 727억 원을 추경으로 편성하고 올 해 내에 시작하겠다고 한 것도 스텝을 꼬이게 했다. 사실이 아니거나 대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서울시 문래동의 녹물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수질 측정치는 들쭉날쭉한다. 그런데 노후 관로가 문제라고 발표했으니 다른 이유를 찾는 것도 이상하고 다른 대책을 앞세울 수도 없게 됐다.

 

서울시는 아직도 문래동 일대의 수질을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대책회의에 주민들을 참여시키지 않고 있다. 이는 정보를 공개할 만큼 자신이 없는 상태고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것이 많은 탓일 테다. 하지만 이렇게 감추고 숨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서울시도 그렇고 인천시도 그렇고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시민들은 아직도 생수로 음식을 하고 수돗물의 탁도를 시시각각 확인해야 하는 불편 속에서 살고 있다. 그제도 인천 서구 곳곳에서 녹물이 나온다는 방송이 나왔다. 사고 때 발생한 노폐물들이 수도 관로 속에 가득한 상태에서 이를 제거하지 못한 탓이다.

평소 수도관 관리 할 인력이 없는 게 문제

소화전이나 가정의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빼내고 있지만, 이들은 관로 속의 녹물 배제를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가 아니다. 의당 수도 관로라면 있어야 할 이토(泥土, 빛깔이 붉고 차진 흙) 밸브가 없는 탓이다. 이들을 설치하지도 않았고, 이를 운영해본 경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예 관로의 세척이나 청소를 위한 계획이 없었으며, 설혹 이토 밸브를 설치하더라도 이를 개방했을 경우 나오는 물과 배제된 용수를 받아 낼 하수 관로를 어떻게 운영할지 모르고 있다.

20년 된 인천 서구 관로나 14년 된 문래동 관로나 단 한 번 세척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사고를 낸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녹물은 또 나오게 되어 있다. 평소 관로 관리를 해서 노폐물을 제거하고, 이 업무를 무리없이 할 수 있도록 관리 인력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재발할 수밖에 없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6월 23일 서구 공촌정수장을 방문해 수돗물 정상화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박남춘 인천시장이 6월 23일 서구 공촌정수장을 방문해 수돗물 정상화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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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인천 사고 10일이 지날 때까지 현장에 접근하지도 못했다. 보름이 지난 서울시에 대해서는 아직도 사태 파악에 나서지도 않았다. 수십 만의 시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개입하지 못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있는 환경부가 과연 인천시를 질책할 자격이 있는 걸까?

환경부의 이런 무기력과 무능은 지난 10년 이상 수돗물 정책을 포기하다시피한 관행의 결과다. 올 초까지 있었던 수도정책과의 주요 업무는 대구의 물산업클러스터(물산업공단) 조성이 주축이었고, 생수와 정수기 산업 육성 등이 또 주요 업무였다. 이렇게 수돗물 정책이 변방이다 보니, 지금 물이용계획과에는 수도 업무에 능통한, 아니 2년 이상 근무 경력이 있는 관료들을 찾아볼 수 없는 정도가 됐다.

필자가 노후 관로 교체 주장을 거칠게 비판한 것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대책 마련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수도 관로는 무려 20만 9000km이고, 20년이 넘은 관로는 6만 8000km에 달한다. 이를 교체하려면 수십 조의 예산이 들 뿐더러 공사하면서 겪는 불편 등을 감안할 경우 이걸 실제로 진행한다면 대규모 재앙에 해당될 것이다. 단순히 재정 뿐만아니라 시민 생활에 혼란을 일으키기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도관로의 대규모 교체 주장은 전혀 현실성이 없으며 결국 수돗물 불신으로 이어지게 할 것이다. 또 지나치게 어려운 원인과 대책 때문이었다면서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책임을 덜어주게 될 것이다. 

노후 관로를 교체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와 노후 관로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니 논점을 이탈하지 말자는 것이다. 노후 관로라는 개념이 어디 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은 40년, 미국은 75년, 영국·캐나다는 100년을 쓰는데, 한국에선 20년 이상 쓰고 있어서 문제라는 건 과잉이다. 특히 수돗물을 처음 만들어 쓴 로마의 관로는 2000년이 된 것도 있고, 로마시대에 만든 수도꼭지 중 960개는 아직도 사용 중이다.

서울시까지 엉뚱한 길로 들어서... 환경부라도 제 역할 찾기를
 
 박원순 서울시장이 6월 21일 새벽 '붉은 수돗물'이 나온 영등포구 문래동을 긴급 방문해 관계자에게 철저한 조치를 당부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6월 21일 새벽 "붉은 수돗물"이 나온 영등포구 문래동을 긴급 방문해 관계자에게 철저한 조치를 당부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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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정책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조금 어려운 영역이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첨단기술이거나 심각하게 복잡한 산업이 아니다. 전문가들이나 정부가 독점할 일이 아닌데도 자기들끼리 속닥여가면서 성급히 대책을 내놓는다. 이는 국민의 불안과 불만을 해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차분히 진단하고, 국민의 도움을 얻어가며 풀어야지, 갑자기 무슨 비법이나 있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사고는 관리 인력의 역량 부족이 발단이고, 사태 처리 능력의 부재가 일을 키운 것이다. 문제는 시설이 아니고 돈도 아니다. 사람을 키우지 못했고, 체계를 정비하지 못했으며, 시민과 동떨어진 정책을 펼쳐 온 것이 문제다.

논리적으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책을 세우자.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속에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관리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관리 매뉴얼을 정비하며, 시민과의 소통체계를 개량하자. 그리고 관로와 정수장 등의 문제까지 살펴보자.

서울시까지 엉뚱한 길로 들어선 지금 환경부라도 제 역할을 찾기를 바란다.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서울과 인천과 같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수십년간 비뚤어진 수도 정책을 다시 세우기 위해 너무 성급하게 진단하고 대책을 내놓는 일을 참자. 진지하게 논의하고 책임 있게 대책을 낼 정부 기구를 구성해 운영했으면 한다. 그리고 노후 관로 교체만 강조하고픈 이들은 빠져주셨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염형철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수돗물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입니다.

 
 
태그:#수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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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삭감안에 쏟아지는 맹비난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7/05 12:37
  • 수정일
    2019/07/05 12:3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7월4일] 노동동향브리핑
▲ 사진 : 뉴시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노동자위원들이 내년 최저임금 1만원을 제시한데 반해 사용자위원들은 지난 3일 8차 전원회의에서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올해보다 4.2% 삭감한 8,000원으로 제시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먼저 민주노총은 사용자위원들을 향해 “인면수심 그 자체”라고 맹비난했다. 민주노총은 3일 논평에서 “최저임금을 8천원으로 낮추자는 망언을 하려거든 재벌 곳간에 쌓여있는 1천조 사내유보금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약속을 먼저 해야 한다. 수백억 연봉을 받는 재벌 총수의 셀프임금을 삭감하겠다는 선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곤 “최저임금을 깎자는 주장은 재벌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원하청 불공정거래 등 반민주 경제종속체제와 재벌 경영으로 나타나는 경제실패를 저임금 노동자에게 전가하겠다는 만행”이라고 비판했다.
이주노동자에게 숙식제공을 포함한 현물급여를 최저임금에 산입하자는 사용자위원들의 주장에 대해선 “이중차별 여부를 떠나 극우 파시스트나 할 법한 발상”이라고 질타했다.

○ 최저임금연대도 4일 입장문을 통해 “사용자위원들은 한국 경제상황이 어려우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상공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최저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중소상공인의 어려움은 최저임금 인상이 원인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임대료, 가맹본부의 착취, 불공정한 카드수수료 등이 근본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최저임금연대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소상공인 500개사를 대상으로 시행한 「소상공인 경영실태 및 정책과제 조사」 결과(2019.5.6.)를 근거로, “경영수지 악화의 원인은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판매부진(83.5%), 제품, 재료비 원가 상승(27.8%) 동일업종 소상공인간 경쟁 심화(27.3%), 인건비 증가(22.3%) 순이었다”고 알리곤 “최임위는 경제위기를 핑계로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태롭게 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550만 최저임금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에 적정한 임금수준이 얼마인지 논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은 4일 성명을 내고 “최저임금 삭감안은 최저임금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저소득, 비정규 노동자들을 우롱한 것”, “적정한 최저임금의 수준과 을과 을이 상생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기에 삭감안을 제시한 사용자위원들은 ‘저소득 노동자의 보호’라는 최저임금의 제도적 가치와 헌법적 가치를 부정한 것”이라고 지적하곤 “이런 발상을 즉각 멈추고 시대정신에 맞는 상식선의 최저임금 안을 들고 협상장에 나오라”고 촉구했다.

○ 노동자위원들은 또 “기획재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의 파행을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일 기획재정부(기재부)와 관계부처가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을 발표하며 ‘보완할 경제 과제’ 중 하나로 사용자단체가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요구해온 “경제·고용 영향, 부담능력, 시장 수용성 등을 고려”하고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되도록 적극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한 것에 대해 노동자위원들은 “올초 최저임금의 근본취지를 벗어난 ‘기업의 지불능력’, ‘경제고용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결정기준 개편안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 노동계의 반대와 사회적 비판에 부딪히며 입법에 실패한 것을 또다시 들고나오는 것은 연초 공익위원 전원사퇴라는 파행에 이어 27명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을 ‘일회용’으로 무시하는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동자위원들은 이어 “최임위 심의 논의가 한창인 와중에 기재부가 주도해 현행 법적 기준을 무시하고 사용자의 입장만을 대변한 것은 결코 용납될수 없다”면서 “최임위에서 최임제도의 근본취지인 저임금노동자의 생활안정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상생의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기재부는 외부에서의 어떠한 개입도 중단하고 자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최저임금위원회 박준식 위원장은 노사 양측에 오는 9일 열리는 전원회의에 수정안을 내 달라고 요청했다.

☞ 최저임금 관련 논평·성명 전문 보기 : https://drive.google.com/file/d/1d60i_XXbfHAZQ35oyuQpIje_bkNrG4Ul/view?usp=sharing

편집국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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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적폐 청산의 시작은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의 통합

김현미 장관께 충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철도 적폐 청산의 시작은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의 통합
 
 

 

나는 순진했다. 탄핵정국이 끝나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을 때 편의점으로 달려가 맥주를 사서 축배도 들었다. 국토교통부 장관에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각하자 더 희망에 부풀었다. 386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는 없었지만 오영식 전 민주당 의원이 코레일 사장으로 취임하고 철도 공공성,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SR)의 통합을 이야기하자 한국철도의 미래가 낙관적으로 보였다. 더구나 남북 정상이 만나고 합의문 한 가운데 남북철도 연결 사업을 추진하자고 할 때에는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동안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김현미 장관의 강단과 능력, 의지를 볼 때 관료들의 포위망을 제대로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 착각이었다. 한국철도의 희망은커녕 더 확장된 관료들의 놀이터로 전락한 철도의 현실에 자괴감만 쌓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4대강 사업으로 임기 내내 건설사들은 주머니를 두둑이 챙겼다. 강물은 온통 녹조류로 덮여 썩고 있는 동안 그나마 혜택을 본 것은 철도다. 이 전 대통령 취임 초기 철도민영화를 언급했으나 4대강 사업에 매진하느라 수서고속철도 민영화는 레임덕에 빠진 임기 말에 추진됐기 때문이다. 결국 수서 발 고속철도 민영화는 불발되었다. 그러나 바통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권이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 출범을 이뤄냈다. 

두 정권이 '철도 개혁'이란 이름 아래 추진한 정책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국토부 관료들은 수서고속철도 출범으로 한국철도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그 실체가 어떤 것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지역에서는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여수, 순천, 창원, 마산, 진주, 포항, 전주 같은 도시에서는 도약했다는 철도가 왜 수서까지 직통 고속열차를 이용할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촛불정신을 계승한 개혁 정권으로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국토부는 철도에까지 미쳐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집권 초기 전격적으로 진행될 것 같던 철도 개혁은 관료들의 벽에 부딪혔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철도정책을 추진했던 관료들이 하루아침에 자신들이 집행한 철도 정책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장관의 결단과 추진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집권 초 폭등하는 아파트 값을 잡지 못해 허둥지둥하더니 개혁정부가 집값만 올려놨다는 서민들의 아우성에 변명도 제대로 못 할 지경이 되었다. 

나는 진즉에 서울 시민들의 소박한 바람인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겠다는 꿈을 버렸다. 내가 사는 구의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 값은 10억이 훌쩍 넘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폭등한 결과였다. '노동귀족'으로 불리는 나 같은 사람도 지난 20년간 받은 임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이렇게 노동을 배신하는 정책이 재테크란 이름으로 진행되도록 놔둔 책임을 정치인이 지지 않으면 누가 져야 할 것인가? 더구나 학업도 취업도 어려운 230대 젊은이들에게 현재의 부동산 가격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성벽이다. 이런 현실에서 꿈을 갖거나 도전을 하라거나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것은 성안에 똬리를 튼 자들의 기만적 언사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관료들은 자신감을 갖고 역공을 펼쳤다. 철도 개혁을 위한 연구 용역을 중단시키더니 아예 사장시켜 버렸다. 한국철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네트워크 산업인 철도에 가장 적합한 체제인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의 통합여부에 대한 연구가 좌초된 것이다. 국토부 관료들은 장관도 통합에 대한 문제 의식이 바뀌었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관료들에 둘러싸여 통계수치와 그동안 정립된 논리들을 들으면 장관 입장에서도 그럴듯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장관이 철도 통합을 주장하는 전문가나 시민사회단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부동산도 철도정책도 김현미 장관체제에서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의문이다.  


김현미 장관에게 더 실망스러운 것은 그가 수도권 광역 고속 철도인 GTX 기공식을 자신의 치적처럼 선전하는 모양새로 만든 것이다. 수도권 이동을 수월하게 하는 광역고속철도망은 그 효용성 때문에 철도 중심 교통체제로의 전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추진 방식이다. 민자 사업으로 추진되는 GTX는 결국 대기업의 수익보장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지하철 9호선부터 신분당선까지 민자 철도 사업이 일으킨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 그 폐해는 고스란히 이용 시민들의 몫이었다. 

민자 사업으로 진행되는 GTX는 사업자들이 높은 이용요금을 책정할 논리와 여지가 충분하다. 고속열차로 빠른 이동시간을 보장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수도권 광역 교통체계 요금을 훨씬 초과하는 요금을 책정할 것이다. 정부는 가능하면 GTX 사업을 재정사업으로 돌리거나 최소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치를 내걸어 기업들과의 실시 협약 단계에서부터 시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장관이나 정책부서의 할 일은 자신의 정치적 치적거리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모아 스펙으로 쌓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에 이익이 가는 정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늘 고민하고 실천하는 호민관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정신이다. 

김현미 장관은 총선 출마설도 있고 총리 기용설도 있다. 정치권이나 일부 시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소한 국토부 장관으로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소신과 비전을 가진 정치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김현미 장관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정치인의 이미지와 철학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다는 것이었다. 국토부는 마음 떠난 장관 눈치 안보고 마음 놓고 자신들의 기존 정책을 추진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것이 단지 소문이길 바란다. 김현미 장관에게 충심으로 부탁한다.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시민을 위한 정책을 고민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최소한 철도 정책만큼은 이명박근혜 정권 당시 추진된 적폐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의 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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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수소제조기, "당뇨병 및 피부미용에 효과"

휴대용 수소제조기, "당뇨병 및 피부미용에 효과"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9/07/05 [11: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부에서 개발한 수소제조기.     

 

▲ 북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부에서 개발한 수소제조기.     

 

▲ 북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부에서 개발한 수소제조기.     

 

 

 

 

 

 

 

북 주민들이 지난해 개발한 수소제조기를 이용해 만든 수소수를 꾸준히 마시고 난 후 건강이 좋아지고 피부미용에도 효과를 보았다고 북 매체 ‘서광’이 소개했다.

 

수소제조기를 이용한 한 남성은 “나는 당뇨병으로 오래 앓으면서 여러 가지 약을 써 보았지만 잘 낫지 않았다. 수소제조기로 수소수를 정상적으로 마셨더니 아무런 불편 없이 장외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피부미용에 효과를 본 한 여성은 “수소수제조기로 수소수를 만들어 마시고 세면도 해보았는데 피부의 탄성과 광택이 좋아져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4월 북 매체 ‘조선의 오늘’은 “공화국의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부에서 우리 식의 성능 높은 휴대용수소수제조기를 연구 개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소개했다.

 

매체는 “수소수란 먹는 물에 수소를 분자상태로 용해시킨 물을 말한다. 수소수속에 포함되어 있는 분자수소는 비타민C, E를 비롯한 천연항산화제들과 달리 반응성이 센 유해로운 활성산소들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며 부작용이 없고 침투성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활성산소들과 반응한 다음 물로 되어 배설되기 때문에 축적성과 잔류독성이 전혀 없는 가장 안전하고 이상적인 천연항산화제로 공인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수소수를 매일 1. 5~2L정도씩 정상적으로 마시면 심장혈관계통 질병, 소화기 및 비뇨기질병, 변비와 부인병, 당뇨병, 암을 비롯한 각종 병의 예방과 치료에서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북에서는 휴대용 수소제조기로 만든 수소수를 과일, 야채를 씻는데 사용하고 화분물주기, 밥짓기 등 일상적으로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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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기고> 전재진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대표
전재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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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4  11: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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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4년 동안 풍화될 위기에 놓여있던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을 김진홍 감독이 다큐영화를 제작하여 8월에 개봉한다 하니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이에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는 다음과 같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 국민관람에 이해를 돕고자 한다. /필자 주

 

①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이 지금까지 베일에 싸인 이유

   
▲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을 위한 상징물. [자료사진 - 통일뉴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은 2차세계대전 전쟁총지휘본부인 대본영의 전쟁지휘·지도자 히로히토를 살려야 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연합국가들의 조사관이 일왕 히로히토의 전쟁범죄를 조사하여 제소하려 한 일제관동군731부대 인간생체실험, 난징대학살, 일본군 세계여성성폭행범죄, 조선인강제징용·강제노동, 아시아를 대규모로 약탈한 황금백합작전 그리고 각종 제노사이드 등의 진상조사를 미국이 직접 나서서 방해하고 차단함으로서 A급 전범자인 히로히토를 극동전범재판소에 회부하고자 하는 연합국의 주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소련과 중국의 사회주의 팽창을 저지하고 일본의 민주화를 내세웠으나 비겁한 전후처리였다는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없으며 일본제국의 천황제 유지를 인정한 미국의 행위는 지구 생성 이래 최악의 범죄였다.

우리는 여기서 1945년 5월 스위스에서 일본과 미국 사이에 전개된 화평공작이 우키시마호 폭침사건과 직접 관련됨을 알아야 한다. 당시 스위스 주재 무관 후지무라 중령과 미국 국무성의 아렌 달레스 사이에 비밀공작이 있었다.

그 비밀공작에서 미국은 일본측에 요구사항이 없었으나 일본은 미국측에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하나는 천황주권을 유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이 섬나라이기 때문에 배가 없으면 먹고 살길이 막막하니 현재 남아 있는 상선은 그대로 일본에 남겨 둘 것을 요구했다.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대만과 조선을 그대로 둘 것 즉 대만과 조선은 일본인의 식량이 있는 땅이니 일본 영토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 일본에서 건너온 물건. 일본제국의 대륙침략은 멈춰진 시계가 아니다. [자료사진 - 전재진]

바로 첫 번째 요구사항인 천황제를 유지토록 하려면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처리하면 안 되었다. 이렇게 일본이 항복하기 전부터 미국은 일왕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처리할 방침이 아니었다.

그런데 전쟁시기가 아닌 평화시기에 대본영의 군사적 조치에 따라 대형 제노사이드인 우키시마호 폭파사건이 자행되었다. 이 초대형 제노사이드가 국제사회에 알려지면 히로히토의 방패막이가 돼야 할 미국으로서는 난감해지면서 치명타를 맞을 판국이었다.

스위스 화평공작 첫 번째 사항으로 천황제 유지 약속이행으로 히로히토를 살리려고 일제관동군731부대 인간생체실험, 난징대학살, 일본군 세계여성성폭행범죄, 조선인강제징용·강제노동, 아시아를 대규모로 약탈한 황금백합작전 그리고 각종 제노사이드 등을 조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이다.

그래서 연합국총사령부 맥아더를 이용하여 일주일만인 9월1일에 이 사건의 전말을 덮었고 74년이 지난 지금까지 검은 베일에 싸여 있다.

② 시모키타반도에서는 왜 서둘러서 조선인을 내보냈나?

일본의 아오모리현 시모키타반도는 우키시마호에 승선했던 조선인들의 강제노역장이라는 점에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의 발상지이다. 이 시모키타반도에는 일본의 4대 군항인 오미나토해군경비부가 주둔해 있었다.

미국의 전함이 북태평양에서 동해로 진격하려면 홋카이도와 시모키타반도 사이에 있는 츠가루해협을 통과해야 했다. 이 해협의 제해·제공권 확보와 일본 북방지역의 방위를 담당한 하코다테 해군기지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려면 시모키타반도의 군사요새화는 필연적이었다.

하여 대본영은 각종 군사설공사장에서 필요한 인력으로 조선인 9천명을 투입하라는 공문을 오미나토 해군경비부에 하달했다. 이 지역에는 대본영 공문 지령 이전에 이미 강제징용된 조선인과 아베시로 광산에서 일하던 조선인을 합하면 1만5천에서 2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일본군의 억압과 핍박과 학살과 고문치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조선인이 일제 항복 후 귀국하려고 우키시마호를 타게 된다. 이 때 일본 대본영은 9월 중순부터 조선인 송환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시모키타반도에서 만큼은 8월13일 조선인긴급소개 명령이 떨어졌다.

   
▲ 연합국 소련, 미국, 영국, 중국의 일본 본토 분할점령(안). [자료사진 - 전재진]

1945년 7월 26일 공포된 포츠담선언 제7항은 연합국은 일본 영토의 보장점령 즉 분할점령을 의미하고 있었다. 이렇게 영국과 중국, 소련과 미국 네 나라가 일본 본토를 분할통치하기로 돼 있었으나 영국의 처칠이 미국의 트루먼에게 “소련이 극동에서 교두보를 설치하려 한다”고 통보하자 미국은 일방적으로 분할통치를 취소했다. 그 날이 8월 13일이었다.

하지만 소련군은 사할린에서 홋카이도와 일본 본토를 향해 진격해 내려왔다. 이 때 일본 본토 아오모리현에는 강제징용과 강제노동과 고문치사 학살로 억압받아 온 조선인이 집중돼 있었다. 이들 민족성이 강한 조선인이 진격해 내려오는 소련군과 합세하면 대규모 군단을 이뤄 소련에 할당되었던 일본 본토 북방지역이 소련군에 점령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했다.

그래서 홋카이도와 마주보고 있는 시모키타반도 일대 군사시설에 투입되었던 1만여명의 조선인을 긴급 소개해야 했다. 당시 오미나토 일대로 몰려든 조선인을 소련군 스파이로 몰아붙이는가 하면 조선인을 음해하는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모두 유도된 음모였다. 그러면서 고향으로 보내준다며 우키시마호에 모두 태워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만에서 폭파침몰시켰다.

③ 우키시마호 침몰원인

미사와 비행장을 포함한 시모키타반도 일대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조선인이 오미나토항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멀리 이와테현 채석장과 홋카이도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 조선인들은 멀리 정박해 있는 우키시마호까지 거룻배로 오가며 승선하는데 3일이 걸렸다.

일본 군부는 검은 페인트를 칠해 배의 이름을 지웠고, 기관실 옆 창고에 자폭장치를 설치했다. 해군승무원들이 승선을 거부했으나 군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협박하여 250명의 승무원도 탔다. 이 협박성은 조선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일부 강제승선임을 주장하게 된다.

승선을 완료한 배는 출항하지 아니하고 24시간을 해상에서 머물다가 22일밤 10시에 오미나토항을 떠났다. 무츠만을 빠져나온 배는 부산항을 향하는 직항로를 택하지 아니하고 일본 본토를 따라 남하하다가 마이즈루만으로 들어갔다.

이 때 해군 승무원들이 연료가 부족하여 보충해야 한다. 물을 실으려고 마이즈루로 들어간다고 수단을 피웠으나 모두 거짓이었다. 마이즈루만으로 들어간 배는 마이즈루방비부의 부두 접안을 회피하고 시모사바가 해변 3백미터 전방에 멈춰섰다. 기관실 기계도 껐다.

   
▲ 무츠만을 빠져나온 배는 부산항을 향하는 직항로를 택하지 아니하고 일본 본토를 따라 남하하다가 마이즈루만으로 들어갔다. [자료 출처 -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 우키시마호 침몰원인. [자료 출처 -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곧 구명보트가 내려져 고위급 장교들이 빠져 나가자 나머지 승무원들은 마치 송사리떼처럼 헤엄쳐 모선을 빠져 나갔다. 그러자 굉장한 폭발소리와 동시에 중간 부분이 꺾이며 앞뒤가 들려 V자 형으로 가라앉았다. 선실에서는 화약냄새가 퍼졌고 미쳐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아비규환을 이뤘다. 기관실 연료탱크가 터져 바다는 온통 중유로 덮였고 죽은 사람이 바다를 메웠다.

해군들은 구조에 나서지 않았으며 주변을 오가던 다른 배들도 사건 현장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렇게 수 천 명의 사람의 생명을 집어삼킨 마이즈루만은 어둠이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침몰사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닿아(촉뢰:觸雷) 침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가 기뢰성상, 생존자들의 증언, 현장정황을 분석해 본바 일본 정부의 주장은 허위일 뿐이다.

당시 미군이 부설한 기뢰는 감응기뢰로서 수압, 전파, 음향의 영향으로 폭발하게 되어있다. 앞서 기술한대로 우키시마호는 멈춰 섰기에 수압이 발생하지 아니하고 기관을 껐기에 음향과 전자파가 발생하지 아니한다. 그렇다고 기뢰가 배 밑으로 다가와 부딪쳐 폭발할 논리도 아니다. 더구나 폭발소리는 2회였고 물기둥이 없었다.

따라서 침몰원인은 대본영의 조선인 긴급소개라는 군사적 조치에 따라 오미나토 해군경비부가 주도하여 출항 이전에 기관실 옆 창고에 설치한 자폭장치가 폭발하여 침몰되었다.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닿은 침몰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이를 반박하려면 한국 정부와 한국의 진상규명회측에 반박자료를 제시하라. 그 증거는 74년이 지난 지금도 마이즈루만 해저에 있다. 일본 정부가 이를 인양 수습하여 그 증거로서 제시하기 바란다. 그 때 국제무대에서 혹독하게 따지겠다.

④ 사후처리의 부당성

우키시마호 침몰은 여행선 타이타닉호 침몰과는 그 정황이 질적으로 다르다. 타이타닉호는 여행객들이 타고 대서양을 건너다 빙산과 충돌하였으나 우키시마호는 일본이 일으킨 2차대전 전쟁터로 강제징용당한 조선인이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일본 대본영의 명령에 따라 일본군부가 의도적으로 자행한 외국양민계획적대량학살(Genocide)이다.

그럼에도 2차대전 전후처리기구인 연합국총사령부에서 이 사건을 조사조차 하지 아니하고 단 일주일만에 사건의 전말을 조작•발표하고 마무리했다. 당해 12월 7일 일본 조선인연맹 아오모리지부 손일 위원장이 GHQ(연합국최고사령부)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소했다. GHQ 법무국 검찰과는 “사건발생 증거불충분”이라며 소를 기각했다.

마이즈루만에는 몇 명이 될지 모를 시체가 선실에 가득한 우키시마호가 마스트를 수면위로 내밀고 있었는데도 증거불충분이라며 기각한 것은 미국의 양심이 얼마나 비겁했는지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대목이었다.

배를 즉시 인양하여 사망자의 신분도 확인해야 했고 부상자와 실종자도 조사해야 했으나 이런 일은 없었다. 해안가에 밀려든 시신을 굴비처럼 엮어 바닷가에 매뒀다가 타이라해병단 뒷산 골짜기로 옮겨 기름을 붓고 태워 그 자리에 매립했다. 고구마 밭에도 묻었고 인근 무인도 자연동굴에도 방치했다.

침몰한 우키시마호를 해저에 방치했다가 9년만에 인양할 때도 조일우호협회에서 유해를 원형 그대로 인양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묵살하고 다시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하였다. 9년 전에 죽은 사람을 다시 다이나마이트로 산산조각 내 죽인 것이다.

그 뒤로 일본 정부는 피해자와 진상규명회가 요구하는 지료를 단 한건도 제공하지 아니했으며 피해자 원고단이 승소한 교토지방재판소 판결도 결국 오사카고등법원 항소심에서 피해자 패소로 판결했다.

이 일본 군부의 계획적 대량수장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는 74년이 지나도록 사죄도 보상도 전혀 아니했다.

⑤ 한·미·일 정부의 책임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의 피해에 대한 제반 법적·인도적 책임은 한·미·일 3국 정부에게 있다.

한국 정부는 1965년 이전 한일 수교 협상 과정에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종결되지 아니하였는데도 그 뒤로 사건 해결에 힘쓰지 아니한 책임이 있다.

일본에 대해 “과거는 묻지 않겠다”, “일본과 외교적 마찰이 우려되는 부분은 조사하지 않는다”고 해 온 한국 정부의 자세는 자국민의 존엄과 인권을 무시한 독재적 발상에서 나온 굴욕적 소치이므로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일본은 자국이 감행한 태평양전쟁에서 자국민이 인간 이하의 만행을 저지른 점에 수치인지 자긍인지는 몰라도 패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해외에 있는 자국민의 유해를 찾는데 600억엔을 투자했고, 유해를 찾지 못하면 죽은 장소의 모래와 자갈을 파다가 전쟁인양기념관 전시실에 전시해 놓고 추모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 정부는 일제에 강제연행되어 귀국 도중 억울하게 죽은 수백 수천구의 조선인 유해가 한 장소에 있는데도 발굴·수습·봉환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미국 정부도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일본도 수락한 포츠담선언을 미국이 위반했다. 2차세계대전 전후처리에 대한 연합군국의 의사를 무시한 미국은 동북아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사회주의의 팽창을 막는다는 일방적인 전략으로 패전국 일본의 위신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전쟁총지휘자였던 일왕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처리하지 아니하였으며, 특히 당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이 국제문제로 확산되면 일본과 히로히토를 엄호하는데 국제사회에서 불리하게 될 것이므로 일왕 히로히토의 침략전쟁 행위 가운데 일본이 불리한 사건은 덮었고, 조사하는 것조차도 방해하였으므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

나치 동맹국인 일본의 전범처리를 유기한 점과 같은 2차대전 전범인 독일에 대해서는 조사·공개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호했으며 특히 우키시마호 사건을 인지하고도 사후처리를 하지 않는 것은 연합국 대표국격으로서 인권유린에 해당되므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일본의 아시아 약탈에 대한 공식조사 역시 한 번도 없었다. 1945년 5월 스위스에서 미국과 일본이 화평공작을 전개하던 시기에 골든릴리작전이 완료되었고, 175개의 황실보물창고 건설을 담당했던 175명의 토목건축기술자 전원이 생매장되었다. 골든릴리를 진두지휘한 왕자들과 야마시타 장군은 잠수함을 타고 필리핀을 탈출하여 본국으로 귀환했다.

마닐라항에는 황금을 가득 실은 7천톤급 군함을 고의적으로 가라앉혔고 마이즈루만에도 같은 방식으로 가라앉혔다. 7천톤급 함대 몇 척 분량의 금괴가 미국으로 넘어갔는지를 추정해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이 외 얼마만큼의 금괴가 미국에 제시됐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스위스 화평공작에서 미국은 일본측에 요구사항이 없었던 것은 이미 뒷거래로서 황금도색시공이 끝난 뒤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미국이 전후처리를 어떻게 했을지는 뻔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일본의 천황제유지와 비공산화에만 열을 올린 나머지 조사를 하자는 연합국의 요구를 반대했으며, 일본에 불리한 어떤 조사도 실시되지 않도록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러므로 전범국을 비호하여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을 조사하지 못하도록 한 책임이 미국 정부에게도 주어진다. 일본 정부의 책임은 지구상에서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일본 정부에게는 원천적인 책임인 원상회복이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종결하지 아니하였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외교문제와 경제문제였지 인도에 관한 사항은 없었고 시행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외국양민계획적집단학살은 국제법에 따른 인도적 책임이 있다.

일본 정부가 GHQ에 보고한 ≪今後의 日本政府의 自主的인 處理方針≫에서 《…鮮人의 편승 수송은 해군의 의무는 아니고 완전한 호의에 근거하는 것이며 아울러 조난사건은 완전히 불가항력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는 완전한 조작이므로 책임이 있다.

《便乘者의 員數에 관해 日鮮兩者의 조사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지만 二復(후생성제2복원과)으로서는 當部調査의 성과를 현 단계에 있어서 최선의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鮮人측의 6천 수백 명 또는 8천 수백 명 등과의 망언에 대해서는 특히 명확한 근거를 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하 생략>》는 완전한 조작이므로 책임이 있다.

일본은 조선인에 대해 「내선일체(內鮮一體), 황국신민(皇國臣民)」을 외치며 “동원”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인을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그러다가 패전 뒤에 일본군(일본인전쟁피해자)에게는 일반연금과 장애연금을 지급하고 있으나 재일조선인전쟁피해자에게는 「일본 국적이 아니다」는 이유로 연금지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본 정부는 2차대전과 태평양전쟁이 남긴 조선인 피해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일본은 폭파 침몰 자체의 잘못 외에도 사건은폐, 사체 유기라는 중대한 잘못이 있다. 70년여 동안 피해자를 기만한 잘못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다.

⑥ 우리국민의 유해를 봉환해야 한다.

   
▲ 우키시마호를 삼킨 바다는 말이 없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금도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시 인근 바다 마이즈루만에는 우리국민의 유해가 《수중표류(水中漂流), 해저매몰(海底埋沒), 선실적체(船室積滯), 집단매립(集團埋立), 유기방치(遺棄放置)》된 상태이다. 한국 정부만이 발굴하여 수습할 수 있는 《유해봉환(遺骸奉還)》을 언제 하려는지?

9백 년 전에 서해 항로를 따라 개성으로 가던 조공선이 태안 앞바다에서 강풍을 만나 침몰하면서 가라앉은 밥그릇과 접시는 잘도 건지는데, 일제의 전쟁터로 강제연행 당해 죽을 고생을 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여 귀국하던 도중에 일본군들의 집단학살만행으로 돌아가신 우리국민의 유해는 건지지 않고 있다. 아마도 세월이 9백년쯤 지나야 가능할 일인가 보다.

그 날이 1945년 8월 25일이었다. 아내와 두 딸을 잃은 장종식씨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이즈루만 바닷가로 가족을 찾아 나섰다. 살아남기를 바람이 간절했지만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나갔으나 찾지 못했다. 시신은 온통 검은 중유로 덮였고 얼굴과 온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해변에는 시체가 겹겹이 쌓였고 바위틈이나 돌 틈에도 끼어 있었다.

해군은 아니었고 공무원인 듯한 일본인들이 시신을 굴비 엮듯 밧줄로 엮어 끌고 다니다가 말뚝에 매놓았다. 그리고는 트럭에 실어 타이라해병단 뒷산 골짜기로 옮겨 기름을 붓고 태워 그 자리에 묻었다. 유골함에 담는다거나 보자기로 싸서 따로 보관하지도 않았다. 그저 보이는대로 고구마 밭에도 묻고 무인도 동굴에도 넣었다.

해저에 9년 동안 방치한 우키시마호를 인양하면서 건져낸 유해는 화장하여 9년 전에 발표한 사망자 수에 맞춰 나눠 담았다. 이를 분골이라 한다. 이 분골의 일부가 아직도 도쿄 우천사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조상의 뼈라고 소중하게 할 이는 아무도 없다. 마이즈루만 해저 갯벌 속에는 아직도 유해가 가득하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나 정부기관으로 된 피해자재단에서는 우천사에 가서 추모식을 하잔다. 이에 경남 거창에 거주하는 유족 한영용씨는 “마이즈루만 해저에도 팽개쳐 있고, 해병단 뒷산 골짜기에도 묻혀있고, 무인도에도 있을 것이고, 고구만 밭에도 묻혀있고, 우천사 납골당에는 몽땅 합쳐 태운 것을 나눠 담은 것인데 내 어찌 거기에 절을 하겠는가!”고 항변했다.

   
▲ 2016년 8월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 상 제막식 및 합동추모제’ 대표단이 우키시마호 침몰 현장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2016년 8월 우키시마호 침몰 희생자 합동 추모행사에 참가한 양대노총 대표단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리국민의 유해가 무주고혼으로 구천을 헤매는 것은 비단 우키시마호폭침 희생자(수장학살) 뿐만이 아니다. 일제 항복 이후의 학살만 치더라도 사할린 가미시스카 경찰서 학살(화염학살)과 미즈호 학살(냉동학살)을 자행했고 제주도 땅굴진지 공사장에 투입되었던 옥매광산 광부들도 귀향하는 도중에 청산도 앞바다에서 수장학살 당했다. 남태평양과 사할린에는 더 많은 유해가 구천을 헤매고 있으며 탄광, 채석장, 철도공사장, 지하군수공장, 비행장 등지에서 죽어간 우리국민의 수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이 지면을 통해서 한국 정부에 말한다. 제발 이제는 질질 끌지 말고 마무리 짓자. 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의 대일투쟁이 얼마나 간고한가 말이다. 일제침략피해문제 즉 대일청구권문제 해결이야말로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투쟁해 온 비영리민간단체는 또 얼마인가.

1945년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권이 식민역사, 식민문화, 식민법제, 식민정치, 식민경제, 식민잔재, 미국의 패권과 일본의 군국·제국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모두 정치권의 잘못과 정치인의 역사인식 부재였다. 너무 긴 세월이 흘렀다. 민족반역자·친일파·일제동조파·친일동조파·일제침략동조파를 처단하지 못한 자멸현상이다.

이제라도 태평양전쟁 피해자(사망자·실종자·부상자·생존자 유족회) 5백만 유족이 하나로 뭉쳐 역사정의(歷史正義)가 정치권을 능가해야 한다. 그래야 통일이 가능하고 민족번영과 동양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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