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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값’이 된 불공정…청년들 “분노해봤자 바뀌는 것 없다”

등록 :2019-12-09 04:59수정 :2019-12-0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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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 ③‘조국 사태’로 절감한 한국 사회는

월세 30만원 못낼까 ‘학원 알바’
그곳엔 인서울 ‘수천만원 컨설팅’
‘그들만의 리그’ 내겐 기회 안 와

386세대에 대해 64명 “잘 모른다”
386보다는 50대 포괄적 지목
기성세대들이 청년 탓하기보다
가진 힘으로 세상 바꾸길 바라

 

 

 

지역과 성비, 학력과 학벌 등을 고려해 분류한 만 19~23살 청년 100명을 만나 심층 설문과 인터뷰를 한 기획 시리즈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 3회는 한국 사회의 현재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언론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불공정 담론’이 마침내 폭발했다고 여겼지만, 청년들은 그 전부터 이미 온몸으로 불공정한 세상을 체감하고 있었다. 다만 그런 세상에 대한 반응은 자신이 처한 ‘지위’에 따라 분노 혹은 냉소로 분화했다.

 

 

 

 

 

 

 

 

지난여름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조국 서울대 교수 자녀의 입시 특혜 의혹이 불거진 뒤 많은 언론은 청년들의 실망과 분노를 다뤘다. 그렇게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반응은 천둥과 돌풍을 몰고 오는 거대한 적란운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조명됐다. 하지만 <한겨레>가 전국을 오가며 만난 100명의 청년들은 한 덩어리가 아니었다. 100명의 청년들은 쪼개진 대나무 살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있었다.

 

뿌리는 같았다. 19~23살 청년 100명 중 79명은 ‘조국 사태’를 보고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박탈감이 분노로 이어졌느냐는 물음 앞에서 청년들은 분화했다. ‘조국 사태’에서 불공정을 읽은 청년들의 절반쯤 되는 40명만 분노를 말했다. 설문 결과를 보면, 분노한다는 응답이 더 많은 유일한 집단은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전체 16명 중 9명이 ‘조국 사태’에 ‘분노했다’고 말했다. 비서울권 4년제 국립대 학생들의 경우 10명 중 절반인 5명이 분노한다고 했다. 비서울권 4년제 사립대 학생의 경우 29명 중 12명, 전문대 학생은 28명 중 11명이 분노한다고 답해 앞선 두 유형의 청년들보다 분노 정도가 낮아졌다. 그리고 고졸 취업이나 창업, 또는 무직인 17명 가운데 분노한다고 답한 청년은 겨우 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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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당 30만원’ 입시 컨설팅 세계가 안긴 냉소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스무살 윤민정(가명)은 분노하지 않은 청년 중 하나다. “연세대 다니는 남자친구는 너무 화를 내는데 저는 화가 안 났어요. 그냥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입시 비리가 있었다고 해도 제가 받은 불이익은 없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저한테는 그런 기회 자체가 오지 않았을 거니까…. ‘스카이’ 학생들만 되게 분노하는 것 같아요.”

 

스물한살 대학생 진혜지(가명)도 윤민정과 마찬가지로 분노하지 않았다. 진혜지는 직접 ‘그들만의 리그’를 생생하게 목격한 뒤 현실에 대한 냉소가 찾아왔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그는 넉달 전부터 사교육 시장의 상징인 대치동의 입시 컨설팅 학원에서 일주일에 네번 ‘알바’를 한다. 진혜지는 그곳에서 자주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고 했다. 그가 일하는 학원은 수강생에게 자기소개서 첨삭, 면접 연습, 대학 진학 상담을 해준다. <한겨레>가 확인한 이 학원의 ‘상담 매뉴얼’을 보면, 면접 컨설팅 비용은 시간당 30만원이다. 12시간과 24시간 상품만 선택할 수 있고, 의대나 ‘스카이’ 대학 등 면접 컨설팅은 24시간 진행자만 받는다. 에누리는 있다. 12시간짜리는 300만원, 24시간짜리는 600만원이 ‘할인가’다. 시급으로 1만원을 받는 진혜지가 600시간 가까이 일해야 벌 수 있는 큰돈이지만 학원은 늘 문전성시다. 이 학원에는 의대를 희망하는 학생을 위한 1년짜리 프로젝트도 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를 신청하면 자기소개서에 쓸 스펙을 만들어준다. 수강생에게 의학 상식을 설명하는 유튜브 채널을 열고 영상을 찍어오라고 한 뒤 편집 등을 도와준다. 유튜브 채널 링크를 학원 누리집에 올려 홍보하고 구독자를 학원 돈으로 산 뒤 ‘알바’들이 댓글을 다는 작업까지 해준다.

 

진혜지는 이 일을 하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그냥 서울권 대학에 가기 위해 학부모들이 몇천만원을 아무렇지 않게 쓰더라고요. 저는 월세 30만원도 구하기 어려워서 마음이 안정이 안 되는데…. 대한민국에서 대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상담 전화를 해오는 부모들이 ‘왜 그렇게 비싸냐’고 화내면서 전화를 끊기도 해요. 그분 자녀가 대학에 잘 가면 다행이지만, 떨어지면 ‘내가 600만원을 안 써서 우리 애가 대학을 못 갔다’고 생각할까 봐 마음이 좀 그래요. 진짜 ‘헬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국의 딸과 아들 같은 이들이 넘쳐나는구나 싶었어요.”

 

진혜지는 한국 사회에서 ‘불공정’은 이미 디폴트(고정)값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조국 교수를 둘러싼 의혹이 특별히 더 불공정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조국 교수 정도의 죄는 죄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정치인이 많으니까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제가 화가 나는 건 돈과 권력만 있으면 이런 불공정을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현실이에요.”

 

‘그들만의 리그’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혜지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조국 사태’ 이후 정부가 내놓은 정시 확대 정책 역시 역효과만 낳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시제도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바뀌면 이런 학원은 더 잘 살아남아요. 교육정책이 카멜레온처럼 샥샥 변하고 불안정할수록 학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다니는 학원에서는 정시 컨설팅도 해요. 정시가 확대되면 그런 수요가 더 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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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없는 곳에선 분노도 폭발하지 않는다

 

분노는 기대에서 불씨를 품었다가 그것이 꺼지려 하면 화산처럼 폭발한다. 기대가 아예 없는 곳에선 분노가 폭발할 불씨조차 없다.

 

“부모를 잘 만나서 특혜를 누린 건 불공정한 일이긴 하지만 워낙 그런 일이 많잖아요. 제가 아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제가 뭘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으니까요. ‘너네들끼리 놀아라’ 이런 생각? 화가 나는 건 아니고, 저랑은 별로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경기 고양시 일산의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일하는 스물세살 신지영(가명)이 ‘조국 사태’에 분노하지 않은 이유다.

 

음악을 하고 싶었던 신지영은 한때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입시 비용을 마련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이 필요해 일하게 되면서 입시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1년6개월의 악순환을 겪은 뒤 그는 결국 대학을 포기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신지영은 명절에 집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좋은 대학에 간 자녀를 둔 친척들이 “너는 왜 취업했니?”라고 물을 때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몸이 움츠러들었다. 취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격증 불필요. 초보 환영’ 공고를 낸 한 디자인회사에 지원했더니, 회사는 “전문대 이상 졸업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을 삭제하다 보니 남는 일은 서비스직이나 사무보조밖에 없었다. “집에선 기술을 배우라거나 일이라도 빨리 해서 살림에 보태라고 하죠. 실제로 일을 하면 왜 월급이 그것밖에 안 되냐고 하고. 취업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어요.”

 

신지영은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감정노동으로 채워지는 판매직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집세와 생활비 160만원이 발목을 잡았다. 월급 180만원에서 남는 돈은 20만원뿐인데, 이 돈으로는 다른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 “돈 있는 사람들만 돈을 벌고 없는 사람은 계속 없는 것 같아요. 저처럼 어떤 일을 준비하다가 잘 안됐을 때 사회가 보장을 해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당장이면 돌아올 월세에 헐떡일 수밖에 없는 신지영에겐 이 세상을 둘러싼 그 수많은 불공정에 분노할 여유가 없다.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스물세살 한인경(가명)도 신지영과 비슷한 생각이다. “분노했냐 안 했냐로 따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분노를 이미 뛰어넘어 해탈 단계예요. 체념하는 상태죠. ‘조국 사태’에 화가 나지 않았고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어요.”

 

<한겨레>가 만난 청년들에게 불공정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의 책임이 어느 세대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100명 중 31명은 50대, 21명은 60대를 꼽았다. 청년들이 주로 50대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는 그 세대에 대한 박탈감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스무살 강진석(가명)은 50대가 가장 싫다. “경제성장기에 제일 호황을 많이 누린 세대라고 생각해요. 공무원도 지금은 어려운데 그때는 쉽게 됐잖아요. 심지어 그때 사둔 땅도 다 값이 올랐어. 그렇게 누릴 것은 다 누린 사람들이 ‘꼰대’처럼 하니까 싫은 거죠. 받은 것은 많고 힘도 있는데 청년정책 같은 걸 위해 힘을 쏟는 사람은 없고, 돈을 풀지도 않고.”

 

대구에서 대학에 다니는 스물한살 김예지(가명)도 같은 생각이다. “50대는 전형적인 기득권 세대잖아요. 편하게 취직해서 그렇게 많은 부를 축적했는데, 지금 세대에 대해서 열정이 부족하다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사회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의 한 전문대를 다니는 스무살 정수진(가명)도 “50대는 너무 꽉 막혀 있어요. 이야기가 안 통해서 깊은 이야기를 안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고위 관료로 있으니까 더 답답해지는 느낌이에요. 학교 교수들도 마찬가지죠. 구구절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만 해요. 문제는 자기들도 자신의 문제가 뭔지 모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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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386세대’를 모른다

 

하지만 청년들은 ‘조국 사태’ 때 언론이 여러 청년들의 목소리를 인용해 사태의 책임자들로 지목했던 ‘386세대’에 대해서는 되레 잘 몰랐다. ‘386세대’가 주로 지금의 50대를 일컫는 말인데도 말이다. <한겨레>가 만난 100명 중 64명(전혀 모른다 40명, 잘 모른다 24명)은 ‘386세대를 모른다’고 했다. 나머지 36명 중에서도 15명은 ‘들어본 적이 있다’ 수준이었다. 안다고 대답한 사람은 21명(어느 정도 안다 12명, 정확히 안다 9명)뿐이었다. ‘386세대를 안다’고 대답한 서울지역 대학생 스물한살 이영우가 “제도정치나 정당, 각종 시민단체, 기업을 주도하고 있는 게 지금의 586세대인데, 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맞지만 그들만의 카르텔을 공고하게 하면서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고 말하고, 전북대에 다니는 스물두살 이종현이 “민주화운동이 위대한 일인 것은 알겠는데 그런 경험을 긍정적으로 활용한다기보다 20대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하는 정도였다. <한겨레>가 만난 대부분의 청년은 ‘조국 사태’ 이후 여러 언론이 호출한 386세대 집단의 ‘정치적 위선’보다 호황을 독점했던 50대라는 좀 더 포괄적인 범위의 세대를 지목한 뒤 이들이 불황을 버티는 20대를 현실감 없이 타이르는 것에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울러 우리는 ‘조국 사태’ 때 언론이 내세운 청년 담론이 기성세대의 눈높이에서 조립됐고, 지금의 20대 청년들이 주류 언론의 담론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년들은 힘있는 기성세대들이 20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힘으로 먼저 세상을 바꾸길 희망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새로 들어선 정부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그 기대는 흐릿해지고 있다. 이종현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지만, 지금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밝혔다. “10대 후반부터 민주당을 지지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뽑았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그냥 대통령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만루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한 거죠. 대통령과 여당도 힘들겠지만, 너무 바뀌지 않는 게 많으니까 실망스러워지고 있어요. 내년 총선에는 어디를 뽑아야 하는지 확신을 못 하겠어요.”

 

실망을 기대로 바꿀 주문을 이번 정부는 이미 가지고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 여기에 더해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까지 ‘결과의 평등’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되길 청년들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강재구 김윤주 김혜윤 서혜미 기자 j9@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0074.html?_fr=mt1#csidx55a33b05cb3f79b834c1a522608a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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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 무마 전문집단’ 검찰이 청와대 감찰 조준하는 아이러니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19-12-09 07:50:09
수정 2019-12-09 07: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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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의 감찰 무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을 향해 연일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 검찰 내부의 무수한 ‘감찰 무마’ 사례들을 애써 묵인한 채 청와대 감찰 관련 의혹엔 강제수사까지 동원해 범죄로 이끌어내려는 행태가 모순적이라는 지적이다.

없음
ⓒ뉴시스

‘사표 수리’된 성폭력 검사, 1심에서 실형 
법조 명문가 출신이라 ‘봐주기 감찰’ 있었나
 

검찰은 감찰 무마 의혹으로 전·현직 검찰 간부들이 고발당한 사건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성폭력 사건’ 은폐 의혹이 대표적이다. 진 모 검사는 2015년 4월 회식 자리에서 후배 검사를 성추행했다. 대검 감찰본부의 감찰이 있었으나, 별도의 징계 처분 없이 진 검사의 사표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당시 쉬쉬하는 분위기에 사직 이유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사건 직후 대기업 법무팀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진 검사 사건은 ‘미투’ 국면에서 재조명됐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출범한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당시 서울동부지검장)은 진 검사를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진 검사는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사건 은폐 의혹이 불거졌다. 감찰을 통해 성범죄를 인지했음에도, 법조 명문가 출신인 진 검사를 봐줬다는 주장이다. 진 검사의 아버지는 전직 공안부장이고, 매형은 현직 대검 검사장이다. 자신도 서울중앙지검과 법무부 요직을 거치며 검찰 내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이에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이 사건 은폐 의혹에 연루된 간부들을 수사·감찰해달라고 대검에 요청했다. 그러나 대검은 이를 무시했고, 임 부장검사는 지난해 5월 김진태 전 검찰총장, 김수남 당시 대검 차장, 오 모 전 서울남부지검장, 이 모 전 감찰본부장 등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후 1년여가 지나도 수사 진척이 없자 임 부장검사는 지난 2월 언론을 통해 해당 간부들의 실명을 공개하고, 이들을 징계하기는커녕 요직에 발탁했다며 문무일 검찰총장을 비판했다. 

검찰마크
검찰마크ⓒ뉴시스

‘고소장 위조’ 검사 늦장 기소하면서도 반성 없어 
“그 검사, 아버지 KB 윤종규 회장 덕 봤다더라” 
 

‘고소장 위조 사건’ 은폐 의혹도 있다. 부산지검 소속 윤 모 검사는 2015년 12월 고소인의 고소장을 다른 사건 고소장으로 바꿔치기해 무혐의로 종결했다. 고소인의 이의제기로 사건이 알려지자 윤 검사는 다음 해 3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언론 보도로 윤 전 검사에 대한 고발까지 이어지자 검찰은 지난해 1월에서야 그를 공문서위조 및 위조공문서 행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최소 징역형인 공문서위조 혐의를 받는 윤 검사에 대한 징계 없이 사표 수리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의심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임은정 부장검사는 지난 4월 김수남 전 검찰총장, 김주현 전 대검차장, 황철규 당시 부산고검장, 조기룡 당시 청주지검 차장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윤 검사의 집안이 사건 은폐 배경으로 지목됐다. 임 부장검사는 “윤 검사는 아버지인 KB 윤종규 회장의 덕을 봤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5월 고발인으로 경찰에 출석한 그는 “고소장 사건 이전에도 (윤 전 검사에 대한) 문제가 있어서 감찰하려고 하다가, 윤 회장이 부산지검에 다녀간 뒤로 분위기가 덮였다고 들었다”라며 “아버지인 윤 회장의 존재를 부산지검에서 모르지 않았고, 자주 다녀간다는 소문도 들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윤 검사를 기소하면서도, 내부 감찰 무마 의혹에는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검찰은 경징계 수준으로 보고 윤 검사 사표를 수리했다는 판단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으론 경찰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 검찰은 임 부장검사의 고발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신청한 부산지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재차 기각했다. 

고 김홍영 검사 사건 축소 의심 
변호사협회가 가해 검사 고발
 

‘고 김홍영 검사 사건’ 역시 윗선에서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김홍영 전 검사는 서울남부지검 형사부에 근무하던 2016년 5월 업무 스트레스와 직무 압박감을 토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서른셋의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사건 발생 후 해당 지검의 자체 진상조사 과정에서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이 가해자로 지목된 김대현 부장검사의 언행에 대해 진술서를 쓴 검사들을 개인적으로 불러 타이르는 등 부적절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김 전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에 착수해 해임 청구를 권고하면서도 “형법상 형사처벌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라며 별도의 고발 조치는 하지 않았다. 이에 김 전 부장검사는 최근 변호사로 개업했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는 그를 폭행 등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양지웅 기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검찰 논리라면, 검찰의 감찰이 수사 대상”
 

이뿐만 아니라 안태근 전 검사장 성추행 사건, 스폰서 검사 사건 등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식 감찰 역사는 유구하다. 그런데도 혐의점이 뚜렷하지 않은 청와대 건에만 열을 내는 검찰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견해가 나온다.  

검찰개혁에 힘써온 한 변호사는 “검찰의 논리라면, 검찰의 감찰이 수사 대상”이라며 검찰이 청와대와의 힘겨루기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해 무리한 압수수색을 펼쳤다고 비판했다.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이 주도하는 검찰개혁 작업을 저지하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렸다는 것이다.

당장 ‘선별 수사’라는 비판부터 제기됐다. 임 부장검사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 고발 사건은 전직 검찰총장들과 현직 검사장 등이 관여된 사건이라 중요성에 있어 결코 유 전 부시장 사건에 밀리지 않는다”라며 “무엇보다도 2018년 5월에 고발한 사건이라 방치된 지 무려 1년 7개월째”라고 꼬집었다.  

이어 “일각에서 제기하는 공정성 시비는 중앙지검이 자초한 것이고, 여론 다수의 지지를 받는 공수처 도입은 검찰이 자초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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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대단히 중대한 시험" 발표..트럼프에 '최후의 경고장'?

트럼프 "북한이 적대적 행동하면 놀랄 것"...재선가도에 재뿌릴까 초조감
2019.12.08 13:50:05
 

 

 

 

'한반도 불바다' 경고가 무성했던 2년 전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간 갈등이 재고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11시부터 30분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청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북한과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는 청와대의 발표를 일축하듯, 북한은 이날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8일 밝혔다.

서해발사장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과 관련된 곳이다. 지난 5일 북한이 폐쇄를 약속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미사일 엔진 시험 재개 준비로 추정되는 활동이 포착됐다는 외신보도 이틀 뒤에 북한이 확인해 준 것이다. 

앞서 미국 CNN방송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엔진시험' 재개를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됐다"면서 상업용 위성업체 플래닛랩스가 5일 촬영한 동창리 발사장의 위성사진에서 '엔진시험대에 전에 없던 화물 컨테이너가 보이는 등 새로운 활동'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위성발사대와 ICBM에 동력을 공급하는 데 쓰이는 엔진의 시험을 재개하려는 준비작업일 가능성이 있으며, 엔진시험이 미사일이나 위성 발사시험과 같은 수준의 도발행위는 아니지만 활동을 재개하는 것 자체가 중대한 변화로 미사일 시험발사의 전 단계일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 북한이 영구 폐쇄를 약속했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8일 발표하면서,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허물어뜨릴 변화가 일어날 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AP=연합


'ICBM 도발'로 미국에 '원치 않는 크리스마스 선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기지 폐쇄에 동의했다"면서 이를 회담의 최대 성과라고 자평했다. 석달 뒤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를 영구 폐기한다는 내용을 담은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북한의 이번 발표는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을 목전에 두고 미국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 강도를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언급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의 수준에 따라 지난 2년 간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완화와 비핵화를 위한 남.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허물어지는 중대한 젼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은 "2019년 12월 7일 오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되었다"면서 "국방과학원은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이번 시험의 성공적 결과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고하였다. 이번에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은 시험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당 중앙위원회 보고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됐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험이 인공위성의 발사체나 ICBM용 고체연료 엔진의 연소 시험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신형 무기 개발을 담당하는 국방과학원이 시험 사실을 발표했고 북한의 '전략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 시험이 북한이 그동안 유예해온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 수 있음을 암시해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시험 당일 낸 성명에서 미국이 '국내 정치적 어젠다'를 위해 '시간벌기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주장하며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고 말했다. 김 대사가 언급한 '국내 정치적 어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재선 행보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3일 리태성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이 담화에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며 미국의 선제적 결단을 촉구한 이후 북미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 외무성 담화에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2년만에 '로켓맨'이라고 부르고, '필요시 군사력 사용'을 언급하고, 다시 이튿날인 4일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담화를 통해 북한은 "만약 미국이 우리를 상대로 그 어떤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 역시 임의의 수준에서 신속한 상응행동을 가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힌다"고 반격했다.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성 북한 대사의 성명을 의식한 듯 즉각 반응을 보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는 내가 다가올 선거를 치른다는 것을 안다"며 두 차례나 "나는 그가 선거에 개입하길 원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 질문에도 없는 대선 문제를 갑자기 꺼낸 것은, 김성 대사의 성명이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를 미국 대선의 성과로 삼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경고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ICBM 발사나 핵실험 중단을 외교정책의 성과로 내세워 왔다. 따라서 트럼프는 북한이 '레드라인'으로 여겨지는 ICBM이나 핵 실험을 재개할 경우 대선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북한이 이런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경고를 거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적대적으로 행동한다면 나는 놀랄 것"이라면서 "나와 김정은과의 관계는 매우 좋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약간의 적대감이 있다"며 "그것에 대해선 어떤 의심도 없다"고까지 말해 북한의 도발이나 긴장 고조 행위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승선 기자 editor2@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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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후 3번째, 박원순이 쏘아올린 '대연정'

[取중眞담] 50년간 4차례, 독일 정치가 한국과 다른 점

19.12.09 08:19l최종 업데이트 19.12.09 08:19l

 

 박원순 서울시장이 11월 21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미세먼지 시즌제'를 발표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11월 21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미세먼지 시즌제"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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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3일 오후 7시 국회에서 열린 토크쇼에서 내년 총선 이후 연정 수립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 시장은 이틀 뒤 라디오 방송에서도 이 얘기를 또 했다.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뚱맞은 얘기'였던 것은 틀림없다. 서울시장은 정치인이기보다는 행정가로 받아들여지고, 그런 사람이 여야가 날카롭게 대치하는 분위기에서 연정 얘기를 계속 꺼냈으니 말이다.

미리 밝히자면, 기자는 박 시장이 연정이라는 화두를 언젠가는 던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시점이 이렇게 빠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박 시장은 그냥 행정업무를 챙기려고 서울시장이 된 사람이 아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열망이 그를 시민운동으로, 더 나아가 정치에 발을 담그게 했다. 그런 사람의 눈에 앞으로 가지도, 뒤로 빠지지도 못하고 '꽉 막힌' 국회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게 보였겠는가?

 

최근 박 시장은 독일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연합(아래 기민당)이 사회민주당(사민당)과 2013년 총선 뒤 체결한 합의문을 입수했다. 양측이 4년 임기 동안 할 일을 나열한 합의문은 경제와 복지, 교육, 노동, 에너지, 사회통합, EU, 그리고 연방정부의 운영방식까지 240페이지(한국어 번역본 기준)에 걸쳐 세세한 부분을 짚어냈다.

"2022년까지 독일의 마지막 원전을 정지할 것"이라는 탈원전 담론부터 2015년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시급 8.5 유로)과 근로자파견법 확대 등등 다양한 이슈들이 정리되어 있다. 계약서 만들어놓고도 '문구 해석'으로 날 새우는 식의 싸움은 안 하려는 독일식 합리주의가 묻어나온다.

"의회 내에 설치되는 각종 위원회에서 연정의 참여노선과 의결 사항에 반하는 의사 표명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의 연정을 시행하려고 하면 당장 '연정독재'라는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어쨌든 이 정도로 깊이 있는 합의를 한 독일식 연정이 박 시장은 꽤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그가 이 문건을 읽은 사실을 언급하며 '총선 후 연정' 얘기를 꺼낸 이유다.

박 시장이 감명받은 독일의 대연정

2013년 합의문은 "약 50년 전 이루어진 첫 번째 대연정이 당시에 직면한 경제적 도전에 대한 대책으로 경제안정법과 성장법을 통과시켰다"고 기록했다. 양쪽 모두 이득을 본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만족스러운 '대연정 협상'을 이뤄냈다는 평가인 셈이다.

독일 대연정의 역사는 1966년 11월 28일 서독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민당 쿠르트 키징거 총리가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와 칼 실러를 부총리 겸 외무장관과 경제장관에 각각 기용하는 등 내각의 알짜배기 요직들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기민당은 전통적으로 중도노선의 자민당을 연정 파트너로 삼아왔는데, 자민당이 예산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연정을 탈퇴하자 정국 안정을 위해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신문들은 '서독 대연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4.19 이후 의원내각제로 정체를 바꿨다가 1년 만에 실패하고 대통령제로 회귀한 상황에서 대연정은 '너무 먼 얘기'로 들린 듯하다.

독일(서독) 정치는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편 가르기'와 이념 갈등은 이곳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1875년 4월 22일 창당된 사민당은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활용하여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마르크스주의 강령으로 무장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증오했던 히틀러가 집권하자 사민당 당원들 상당수가 유대인과 함께 척결 대상으로 지목돼 모진 박해를 받았다.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 반(反)히틀러 노선의 콘래드 아데나워가 우파의 새로운 기수로 기민당을 이끌었지만, 좌파정당 사민당과의 보혁 대결 구도는 그대로 이어졌다.

전후 두 번째 총선(1953년)에서 아데나워의 기민당은 표면상 마르크스주의를 철회하지 않은 사민당을 겨냥해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고 공격했다. 선거 때마다 색깔론 공격을 견디다 못한 사민당은 아데나워 집권 10년 만에 '생산수단의 사회화' 같은 마르크스주의 강령을 벗어던졌다.
  
 1953년 서독 연방의회 선거 포스터. 콘래드 아데나워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은 표면상 마르크스주의를 철회하지 않은 사민당을 겨냥해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 그러니 기민당에 투표하라”고 선전했다.
▲  1953년 서독 연방의회 선거 포스터. 콘래드 아데나워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은 표면상 마르크스주의를 철회하지 않은 사민당을 겨냥해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 그러니 기민당에 투표하라”고 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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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당은 미국의 지원(마셜 플랜)과 세계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장기집권했지만, 히틀러 집권 시절 나치의 편에서 좌파를 탄압하거나 수수방관한 우파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1953년 연방의원에 당선된 509명 중 129명이 나치당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었다.

'1966년 대연정'의 두 주인공을 디트릭 올로 교수는 <독일현대사>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젊고 야심 찬 직업 외교관이던 키징거는 1933년 나치당에 가담했다. 제3제국 시기 외무부의 선전 부서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명목상 당원 자격을 유지했다. 반대로 빌리 브란트는 10대에 나치 독일에서 도망쳤고, 2차대전 시기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망명하는 동안 나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 강점기 해외를 떠돈 좌파 독립운동가와 전직 친일 관료의 '야합'이었지만 이들은 서로의 과거나 노선을 묻어두는 길을 택했다.

개성이 강한 두 지도자의 연합은 오래 가지 못했다. 3년 뒤 총선(1969년)에서 빌리 브란트의 사민당이 중도파 자민당과의 연합해 의회 과반수를 얻게 되자 키징거의 기민당은 다시 야당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대연정의 경험이 헛수고는 아니었다.
 
 1966년 11월 28일 서독연방의회 1당(기민당)과 2당(사민당)이 대연정에 합의했다.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기민당 쿠르트 키징거 총리, 다섯번째가 사민당 출신 외무장관 빌리 브란트
▲  1966년 11월 28일 서독연방의회 1당(기민당)과 2당(사민당)이 대연정에 합의했다.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기민당 쿠르트 키징거 총리, 다섯번째가 사민당 출신 외무장관 빌리 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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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불의 조화... 한국에선 왜

1982년 새 총리에 오른 기민당 헬무트 콜 총리는 TV에 나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념이 다른 정파가 권력을 잡으면 전 정권의 성과를 일체 부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악순환'을 벗어나는 선택을 한 셈이다.

앙겔라 메르켈이 기민당을 이끈 최근 14년 동안에는 원내 1당과 2당이 연합하는 '대연정'이 세 차례(10년)나 성사됐다. '조정의 달인' 메르켈의 개인기 덕이겠지만, 대연정은 큰 잡음 없이 순항했다(대연정 유지에 비판적인 사민당 새 지도부가 최근 등장하며 메르켈은 이들과 재협상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독일인들은 대연정을 '물과 불의 조화'라고 지칭한다. 여야의 긴장 관계 속에서 권력의 감시와 균형을 이루는 의회민주주의의 본질을 거스른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험을 복기해 보면, 거대 양당의 연합 정치가 불필요한 감정 소모전을 상쇄시키고 분단 독일이 통일로 가는 분기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정(1998년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DJP)은 있었지만 '대연정'은 실현된 적이 없다. 그러나 두 차례의 중요한 시도가 있었다.

2005년 7월 28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선거제도 개편을 고리로 한 대연정을 제안한 것은 유명하다. 당시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 '깜짝 제안'이었다. 그해 8월 29일 경남 통영에서 열린 연찬회에서 유시민·윤호중·이목희·정청래·조경태 의원은 대연정을 지지했지만, 강기정·김영춘·문학진·송영길·우원식·이은영·임종인 의원 등은 반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7월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정관련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을 피력하고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7월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정관련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을 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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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해 보겠다"며 구애했지만, 키를 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청와대 회담 자리에서도 "안 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잇따른 재보선의 승승장구로 정권 탈환을 확신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꼼수' 정도로 치부했다.

박근혜 대표와의 회담 다음날 UN 총회 참석 및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한 노 대통령은 전용기에서 내리면서 "당분간 대연정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말문을 닫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대연정을 공론화할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않았다. 대연정을 제안한 노 대통령에겐 "야당 기 살려주고 지지층만 분열시켰다"는 멍에가 씌어졌다.

두 번째 시도는 대중들의 기억에 그다지 선명하진 않지만, 2013년 1월 21일 문희상 민주당 비대위원장 입에서 나왔다. 민주당은 2012년 대선에서 졌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자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에서 진보진영에서도 관심을 가질 공약들을 많이 내놓았으니 박 후보 공약과 민주당 공약 중 합의를 도출할 '대선공약실천위원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양측이 대선공약 실천에 대한 포괄적 합의에 이른다면, 박근혜 정부로서는 국회를 무력화 시킬 정도의 거대 의석(127석)을 가진 제1야당의 도움을 받아 순항할 기회였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머뭇거리는 사이 2012년 대선 직전에 터진 '국정원 댓글' 사건은 취임 첫 해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며 정국을 흔들어놓았다. 2013년 4월 21일 문 위원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중 좌천된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언급하며 "양심선언을 한 '광주의 딸'을 당력을 총동원해 지키겠다"고 정권과의 투쟁을 선언했다. 두 달 가까이 회자됐던 '대선공약실천위원회'도 없던 얘기가 됐다.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이른바 '경제활성화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했지만, 민주당의 벽을 넘지 못하자 2016년 총선에서 '판 갈이'를 시도했다. 박 대통령의 구상은 실패했고, 최순실 게이트까지 터지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우린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

촛불 집회의 열기에 힘입어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현재 힘을 못 쓰기는 마찬가지다. 법을 임의로 통과시킬 수 있는 허들이 150석에서 180석으로 올라간 상황에서 선거법을 고쳐서라도 내년 총선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겠다는 심산이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한국 정치다.

물론 내각책임제에 기반을 둔 '독일식 대연정'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려면 풀어나가야 할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의 난맥상을 근본적으로 풀어보겠다는 논의가 진행된다면 발화자가 누구든 나는 일단 환영한다.

시민운동 시절에는 '아이디어 뱅크'였던 박 시장이 3선 시장을 거치면서 "기대에 못 미친다"는 얘기가 들리는 요즘이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제로페이 등에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마이뉴스>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월례 조사에서 하위권을 맴도는 상황은 안타까움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기왕 얘기를 꺼냈으니 박 시장이 정치 분야에서도 전인미답의 성과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독일현대사:1871년 독일제국 수립부터 현대까지>(미지북스), <2013 독일대연정 합의문>(국회도서관),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 : 앙겔라 메르켈 공인 전기>(한솔수북)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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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사변이 다가오고 있다

[개벽예감 373] 중대사변이 다가오고 있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12/09 [09:0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불라쵸브가 전해준 중요한 정보

2. 핵능력 70~80%를 불능화하려는 파격적인 제안

3. 특이한 움직임들이 보인다

4. 백두산에서의 결심, 그리고 제5차 전원회의 소집

 

 

1. 불라쵸브가 전해준 중요한 정보

 

“미국이 지금처럼 문제를 헤집고 딴 길에서 헤매이면서 우리가 제시한 시한부 내에 자기 립장을 재정립해가지고 나오지 않는 경우 미국은 참으로 원치 않는 결과를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갈 길을 알고 있지만, 미국에 시한부를 정해준 만큼 선택을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우리가 올해 말까지 시한부를 준 의미를 깊이 새기고 향후 경로를 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2019년 4월 30일 최선희 조선 외무성 제1부상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답변에서 최선희 제1부상은 미국이 자기 입장을 재정립하여 협상에 나와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미국의 입장을 재정립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밝히지 않았다. 조선이 미국에게 무엇을 요구하였는지를 미국이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조선이 조미협상 중에 미국에게 무엇을 요구하였으며, 미국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쩔쩔매는 조선의 요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확히 보도하는 언론매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조미협상의 운명을 판가름하게 될 그 심중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선희 제1부상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에게 위와 같이 답변한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5월 13일 로씨야인 전문가 한 사람이 평양에 나타났다. 그는 아시아태평양안보협력회의 로씨야위원회 연구위원 게오르기 불라쵸브다. 아시아태평양안보협력회의는 아시아태평양지역 20여 개 나라의 전문가들과 외교관들이 참가한 민간국제기구다. 불라쵸브는 5월 17일까지 평양에 머물면서 조선 외무성 인사들을 만났는데, 2019년 5월 23일 <연합뉴스>와 진행한 대담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정보를 전해주었다. 

 

불라쵸브가 <연합뉴스> 대담 중에 말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중에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조치에 상응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협정체결요구에 응할 것으로 기대했었고, 그와 더불어 선의의 표시로 대조선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할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조선 경제제재의 부분적 해제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조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해보면 그 무슨 제재해제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라고 하면서, “적대세력들의 제재돌풍은 자립, 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합니다”고 언명하였다. 이런 언명은 앞으로 조미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대조선 경제재재의 부분적 해제를 더 이상 미국에게 요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로씨야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최선희 조선외무성 제1부상이 2019년 11월 21일 로씨야 국방부 청사에서 알렉싼드르 포민 로씨야 국방차관(현역 대장)과 회담하는 장면이다. 최선희 제1부상은 그 전날 쎄르게이 라브로브 로씨야 외무장관을 비롯한 로씨야 외무성 인사들과 연쇄회담을 진행한 바 있는데, 로씨야 국방차관을 만나 "전략적 대화"를 진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런 정황은 조선과 로씨야의 전략적 대화가 외교부문에서 군사부문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상황을 오판하여 연말시한을 넘기면 2020년에 조미핵대결이 재발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조선이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로씨야와 전략적 대화를 진행한 것은 2020년에 재발될 수 있는 조미핵대결을 준비하기 위한 선제행동으로 보인다.     

 

불라쵸브가 <연합뉴스> 대담 중에 말한 바에 따르면, 조선 외무성 인사들은 미국에게 경제제재를 해제하라고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라쵸브의 말에 따르면, 미국이 선전하는 것과 달리, 대조선 경제제재는 조선에게 심각한 위기가 아니며, 조선은 경제제재를 자력으로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위에 서술된 내용을 살펴보면, 조미협상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요한 것은, 미국이 대조선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조선의 평화협정체결요구에 응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따라서 최선희 제1부상이 2019년 4월 30일 답변에서 미국이 입장을 재정립하여 협상에 나와야 한다고 말한 것은,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므로 그에 상응하여 미국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뜻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선희 제1부상이 2019년 4월 30일 답변에서 위와 같은 의사를 밝힌 까닭은, 이미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안, 다시 말해서 미국이 평화협정체결요구를 받아들이면, 그에 상응하여 조선은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제안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말시한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안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까닭은, 녕변핵시설폐기가 얼마나 커다란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인지를 알지 못한 채, 상황을 오판하였기 때문이다. 녕변핵시설폐기에 상응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그 협정에 의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자기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 미국의 국가안보가 큰 손해를 볼 것으로 오판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저지른 그런 전략적 오판이 지금 조미협상을 파국으로 끌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적 오판에 빠져 파국을 자초하고 있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해결책, 다시 말해서 녕변핵시설폐기와 그에 상응한 평화협정체결이라는 해결책이 가져올 긍정적인 결과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핵능력 70~80%를 불능화하려는 파격적인 제안

 

평안북도에 녕변군에 있는 핵시설단지에는 크고 작은 각종 핵시설들이 390개동이나 있다. 조선의 시각으로 보면, 녕변핵시설 390개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조선의 핵과학자들과 핵기술자들이 지난 40여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건설해놓은 귀중한 국가자산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핵시설 7개동을 손꼽으면,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 건설이 중단된 50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 30메가와트급 경수로, 사용후 핵연료봉 재처리시설, 우라늄농축시설, 핵연료가공공장, 고준위방사성폐기물저장시설이다.  

 

2019년 3월 29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5메가와트급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은 2017년 1월에 재가동되었다가 2018년에 가동이 중단되었고, 우라늄농축시설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녕변핵시설폐기는 조선이 가장 아끼는 국가자산 390개동을 전부,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뜻이다. 최선희 제1부상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인 2019년 3월 1일 현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녕변핵단지 전체, 모든 플루토늄시설과 우라늄시설을 포함한 핵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영구적으로, 되돌릴 수 없게 폐기하는 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면, 미국이 바라는 조선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26일 내외통신사들과 진행한 서면대담에서 녕변핵시설이 완전히 폐기되면, 조선의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라고 명백히 지적한 바 있다. 

 

지난 시기 녕변핵시설단지를 네 차례나 방문하였던 미국의 저명한 핵과학자 씩프릿 헥커는 2019년 3월 18일 <동아일보>와 진행한 서면대담에서 녕변핵시설이 조선의 전체 핵능력에서 70~8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제안”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헥커의 말마따나,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면, 조선의 핵무기생산능력 70~80%가 불능화되는 것이므로,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이야말로 조선이 미국에게 제안하는 최대값의 비핵화조치가 아닐 수 없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지난 시기 조선의 핵기술자들이 평안북도 녕변군 핵시설단지에 있는 흑연감속로 통제실에서 일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확인 또 확인"이라고 쓴 붉은 색 글씨가 보인다. 2019년 8월 21일 국제원자력기구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흑연감속로가 2018년 8월 중순까지 가동된 징후가 위성사진에 나타났고, 2018년 4월 말과 5월 초 사이에 재처리공장이 가동된 징후가 위성사진에 나타났으며, 우라늄농축시설이 가동된 징후도 위성사진에 나타났다고 한다. 미국의 언론매체 <38노스> 2019년 12월 6일 분석기사에 따르면, 30메가와트급 경수로가 2019년 12월 초 두번째 시험가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위에 열거된 사실들은 녕변핵시설단지에서 핵물질생산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평화협정체결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므로,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의 가동을 멈춰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파격적인 조치에 상응하여 미국이 실행해야 할 평화협정체결은 과연 어떤 실효성을 가지는 것일까? 평화협정에는 반드시 철군문제가 명시되기 마련이므로, 조선이 미국에게 제기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요구는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라는 요구와 같은 것이다. 

 

철군문제를 명시한 세계 각국의 평화협정 또는 평화조약을 열거하면, 1973년 1월 27일에 체결된 빠리평화협정, 1979년 3월 26일에 체결된 에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 1988년 4월 14일에 체결된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 1991년 10월 23일에 체결된 캄보쟈 평화협정, 1994년 10월 26일에 체결된 요르단-이스라엘 평화조약, 1995년 12월 14일에 체결된 보스나 평화협정 등이다. 

 

그런데 실효성을 비교하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조선의 핵무기생산능력 70~80%를 불능화하는 것이지만, 평화협정에 의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것은 미국의 대조선 핵공격능력을 70~80% 불능화하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수해도, 조선을 공격할 수 있는 미국의 핵전략자산들은 주일미국군기지들과 괌의 미국군기지에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더라도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공격능력은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이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주한미국군철수를 명분으로 주일미국군기지들과 괌의 미국군기지에 핵전략자산을 더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선은 자국의 핵무기생산능력 70~80%를 포기하는 데, 미국은 조선에 대한 핵공격능력을 포기하지 않고 되레 더 증강할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므로, 조선이 주한미국군철수를 조건으로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미국에게 크게 양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녕변핵시설폐기와 주한미국군철수가 등가적 상응조치로 될 수 없다는 불만을 제기해야 할 쪽은 미국이 아니라 조선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트럼프 행정부의 각료들과 백악관 안보보좌관들은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대가로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 미국의 국가안보이익이 침해될 것이라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트럼프 대통령을 속였고,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요미우리신붕> 2019년 4월 6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면, 종전선언을 채택하겠다고 제안하였다고 한다. 협정은 협정으로 대체되어야 하므로, 정전협정은 오직 평화협정으로만 대체될 수 있는 것인데, 정전협정을 종전선언으로 대체하겠다는 말 자체가 헛소리이고, 게다가 조선의 핵무기생산능력 70~80%를 불능화하는 대가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지킬 의무가 없는 종전선언문이나 한 장 써주겠다는 것이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한 헛소리가 또 어디 있으랴!

 

<요미우리신붕> 2019년 4월 6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중에 종전선언을 채택하겠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얼굴을 붉히면서 “일방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오판과 실책을 저지르는 바람에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었는데, 게오르기 불라쵸브가 <연합뉴스> 대담 중에 말한 바에 따르면, 조선은 어떤 협상에도 나서지 않겠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조선은 미국과의 협상을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조미협상을 준비하는 연락통로마저 폐쇄해버리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다. 조미협상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국민일보> 2019년 11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2019년 9월 중순 뉴욕연락통로를 폐쇄하였다고 한다. 뉴욕연락통로는 유엔주재조선대표부와 미국 국무부를 연결하는 기존 연락통로를 뜻한다. 지난 시기 조선 외무성과 미국 국무부는 뉴욕연락통로를 통해 의사소통을 해왔는데, 조선은 지난 9월 중순 그 연락통로마저 폐쇄해버린 것이다. 

 

게오르기 불라쵸브가 <연합뉴스> 대담 중에 말한 바에 따르면, 그가 평양에서 만난 조선 외무성 인사들은 조선이 2019년 말까지 미국의 태도변화를 기다리다가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새로운 길”을 택하겠다고 밝혔는데, 새로운 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자신에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조선은 핵시험이나 미사일 발사보다 더 심각한 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입장을 재정립하여 협상에 나오지 않으면 올해 연말에 미국은 참으로 원치 않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최선희 제1부상의 엄중한 경고가 나온 때로부터 일곱 달이 지난 오늘도 미국이 입장을 재정립하였음을 보여주는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이 상황오판으로 연말시한을 넘길 경우에 대처하려는 조선의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은 최근 언론보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특이한 움직임들이 보인다

 

<중앙일보> 2019년 1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연말을 기해 중대사변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지난 11월부터 조선의 움직임을 주시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연말시한을 앞두고 조선이 중대사변을 준비하는 것은, 상황을 오판한 미국이 조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협상재개시한을 넘기는 경우 조선은 이미 예고한대로 “새로운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조선이 대미정책에서 전략적 방향전환을 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길”을 준비하는 조선의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1) 일본 <아사히신붕> 2019년 12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탄도미사일을 실은 발사대차(TEL)가 들어설 콘크리트 토대를 올해 여름부터 전국 각지에 수십 군데 설치해왔다고 한다.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때 로켓엔진분사구에서 엄청난 화염폭풍이 분사되면서 발사대차 뒤쪽의 땅바닥이 파이고, 자칫 잘못하면 발사대차가 기울어져 2탄을 발사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예정된 발사점에 콘크리트 토대를 미리 만들어놓는 것이다.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조선은 탄체길이가 20m가 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탑재한 대형 발사대차가 들어설, 넓이가 수 십㎡나 되는 콘크리트 토대를 올해 여름부터 각지에 설치해놓았다고 한다.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한 콘크리트 토대가 조선 각지에 설치되었다는 정보는, 일본 정보수집위성이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것이다. 2019년 현재 일본은 정보수집위성 7기를 운영하고 있는데, 낮에만 촬영할 수 있는 광학위성이 3기이고, 밤에도 촬영할 수 있는 적외선위성이 4기다. 일본 텔레비전방송 <NHK> 2018년 2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정보수집위성 7기를 운용하는 일본은 지구상의 모든 지점을 하루에 한 차례 이상 촬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한다. 

 

일본의 정보수집위성보다 성능이 더 좋은 첩보위성을 80기나 운용하는 미국은 일본의 위성감시망보다 훨씬 더 촘촘한 위성감시망을 운용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콘크리트 토대를 각지에 설치해놓은 것은 탄도미사일 발사점들을 미국의 위성감시망과 일본의 위성감시망에 일부러 알려주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조선은 탄도미사일 발사징후가 적국에 노출되지 않도록 발사대차를 비행장 활주로 또는 포장도로에 세워놓고 기습적으로 발사하곤 하였다. 이처럼 탄도미사일 발사는 적국의 탐지망에 포착되지 않도록 은밀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조선이 콘크리트 토대를 설치하여 미국과 일본에게 발사점을 미리 노출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선이 콘크리트 토대를 각지에 설치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미국이 상황을 오판하고 연말시한을 넘겨 2020년에 조미핵대결이 재발되면, 미국과 일본의 위성감시망들은 조선에 집중될 것이고, 특히 조선이 각지에 설치해놓은 콘크리트 토대들을 24시간 감시할 것이다. 

 

그러나 탄도미사일을 실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발사대차들은 콘크리트 토대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임의의 발사점으로 이동하여 기습적으로 미사일발사훈련을 진행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예견하면, 조선이 각지에 설치해놓은 콘크리트 토대들은 미국과 일본의 위성감시망을 붙잡아두는 유인점 이외에 다른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위성감시망이 그 유인점들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임의의 발사점에 나타난 조선의 발사대차들은 기습적으로 탄도미사일을 쏘아올릴 것이다. 다른 한편, 미국과 일본은 조선의 발사대차들이 어느 순간에 콘크리트 토대에 나타날지 알 수 없으므로, 긴장을 풀 수 없게 되었다. 조선이 각지에 콘크리트 토대를 설치한 것은 미국과 일본을 지속적인 긴장 속에 몰아넣을 뿐 아니라, 조선의 탄도미사일이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발사되는 것을 탐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묘책인 것이다.  

 

(2)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지와 오판으로 결렬된 직후인 2019년 3월 7일 그는 백악관에서 체코공화국 총리와 회담하기 직전 기자회견 중에 서해위성발사장 복구공사와 관련하여 실망했는가고 물은 취재기자에게 “실망스럽다”고 답변했다. 이 답변은 당시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 복구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연합뉴스> 2019년 3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보도 당일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은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여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직전인 2019년 2월 중순에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복구공사가 시작되었는데, 2019년 3월 말 현재 복구공사 대부분이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그 복구공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위와 같은 보고발언에 따르면, 조선은 2019년 3월 말 서해위성발사장 복구공사를 완료해놓은 것이다. 

 

<동아일보> 2019년 4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오끼나와에 있는 가데나공군기지에서 이륙한 미국 공군 정찰기 RC-135S 한 대가 서해 상공에서 5시간 동안 정찰비행을 하고 기지로 돌아갔는데, 이것은 2019년 3월 말 조선이 복구공사를 완료한 서해위성발사장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수행한 정찰비행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서해위성발사장 복구공사는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와 위성운반로켓수직발사대를 원상복구하여 임의의 시각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동아일보> 2019년 3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서방측 상업위성이 서해위성발사장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조섭 버뮤데즈 연구원은 “수직엔진시험대와 발사대”가 복구되었다고 하면서, 이런 복구공사는 조선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비상계획의 첫 단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2016년 4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조선국방과학원이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신형 대출력 로켓엔진분사시험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 나오는 신형 대출력 로켓엔진은 고체연료로켓엔진이 아니라 액체연료로켓엔진이다. 당시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이 분사시험이 대성공이라고 하면서 "주체조선의 핵공격능력을 비상히 강화하는 데서 이룩한 또 하나의 사변"이라고 대서특필하였었다. 그로부터 3년 6개월이 지난 2019년 12월 7일 조선국방과학원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진행하였다. 이 중대한 시험은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신형 대출력 고체연료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이었다. 이번에 신형 고체연료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에서 성공하였으므로, 앞으로 그 신형 로켓엔진을 장착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중대사변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9년 4월 이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특이한 동향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2019년 12월 초에 이르러 특이한 동향이 나타났다. <CNN> 2019년 1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로켓엔진시험을 준비하는 듯이 보이는 정황이 위성사진에 나타났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로켓엔진시험을 준비하는 듯이 보이는 정황은, 대형 철제함을 실은 수송차량 한 대가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 옆에 나타났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9년 12월 7일 조선국방과학원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진행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날 조선국방과학원 대변인은 “이번에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선국방과학원은 중대한 시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시험이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에서는 두 종류의 시험이 진행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하기도 하고, 정지위성운반로켓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2019년 12월 7일에 있었던 시험은 조선국방과학원이 진행하였으므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정지위성운반로켓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은 조선국방과학원이 아니라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진행한다.   

 

조선국방과학원이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선국방과학원은 2016년 4월 7일과 2017년 3월 17일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각각 진행한 바 있다. 그런데 그 두 차례의 시험은 고체로켓엔진이 아니라 액체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이었다. 조선국방과학원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고체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진행한 것은 2016년 3월 23일 한 차례밖에 없는데, 그 시험장소는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가 아니라 어딘지 알 수 없는 평지에 설치된 수평분사대였다.  

 

위에 열거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조선국방과학원은 2019년 12월 7일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신형 대출력 고체연료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진행한 것이 확실하다. 이번에 신형 고체연료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에서 성공하였으므로, 앞으로 그 신형 로켓엔진을 장착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중대사변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3) 2019년 8월 21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유엔총회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2018년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가 2018년 8월 중순까지 가동된 징후가 위성사진에 나타났고, 2018년 4월 말과 5월 초 사이에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재처리공장이 가동된 징후가 위성사진에 나타났으며,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우라늄농축시설이 가동된 징후도 위성사진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 우라늄농축시설에는 약 4,000기에 이르는 원심분리기가 설치되어 있다.  

 

2019년 11월 14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들이 발표한 분석기사에 따르면, 서방측 상업위성이 촬영한 녕변핵시설단지 위성사진을 분석하였더니, 차체길이가 약 10m인 궤도차(railcar) 1대, 차체길이가 약 13m이고 대형 철제함 4개를 실은 궤도차 1대, 차체길이가 약 13m이고 대형 철제함 4개를 실은 궤도차 2대, 차체길이가 약 12m인 궤도차 2대가 각각 녕변핵시설단지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 궤도차들은 방사성물질을 운반하는데 쓰이는 특수차량이므로, 궤도차들의 출현은 녕변핵시설이 가동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언론매체 <38노스> 2019년 12월 6일 분석기사에 따르면, 조선은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경수로를 시험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전기출력이 30메가와트급인 그 경수로는 조선이 독자적으로 설계하여 건설한 것이다. 위의 분석기사에 따르면, 그 경수로는 2019년 3월 22일과 6월 30일 사이에 처음으로 시험가동을 시작하였고, 2019년 12월 초에 두 번째 시험가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수소폭탄을 만드는 무기급 플루토늄 또는 트리튬을 그 경수로에서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위에 열거된 사실들은 녕변핵시설단지에서 핵물질생산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평화협정체결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므로,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의 가동을 멈춰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4. 백두산에서의 결심, 그리고 제5차 전원회의 소집

 

2019년 12월 3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오는 12월 하순에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할 데 대한 결정서를 발표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전략로선 또는 대내외정책을 결정하려고 할 때 전원회의를 소집한다. 이를테면, 2018년 4월 20일에 소집된 제3차 전원회의에서는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유예하는 방침을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연말에 전원회의를 소집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소집되는 전원회의에서는 미국이 상황을 오판하여 연말시한을 넘기는 사태에 대처할 새로운 정책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2월 하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회의가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하면, 그 동안 조선이 예고해온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견된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회의가 연말에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한다고 발표한 날, 리태성 조선외무성 미국담당 부상은 담화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최대의 인내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중대조치들을 깨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결심에 따라 중대사변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미국이 올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를 지켜보겠다고 하였으므로, 조선이 “새로운 길”을 결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12월 26일부터 12월 31일 사이에 소집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본 소식이 전해졌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9년 12월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수행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눈 덮인 백두산 고산지대에 올라 지난 항일전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이 일제와 전투를 벌였던 혁명전적지들, 숙영지들, 밀영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보았고,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사진 4> 

 

▲ <사진 4>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12월 3일 수행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눈덮인 백두산지구 항일혁명전적지를 돌아보고,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항일혁명전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이 일제와 전투를 벌였던 혁명전적지들, 숙영지들, 밀영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보면서 새로운 혁명열과 투쟁열을 느끼고 새로운 의지를 다졌으며 혁명적 공격정신으로 난국을 타개하고 새로운 길을 가려는 결심을 가졌다고 한다. 오는 12월 하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에서 결심한 "새로운 길"은 그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중대사번이 다가오고 있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49일 전인 2019년 10월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에 오른 소식을 전하면서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보도하였었는데, 이번에는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보도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을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9일 전에 백두산 정상에 오를 때 탔던 바로 그 백마를 이번에 다시 타고 백두산 혁명전적지를 돌아보았음을 알 수 있는데,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이번에는 백마가 아니라 군마라는 말을 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번에 백두산지구를 시찰한 것은 지난번에 백두산 정상에 오른 것과 달리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군종사령관들. 군단장들을 비롯한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을 대동하고 항일전쟁전적지들을 돌아보는 군사적 의의가 큰 활동이었으므로, 군마라는 말을 쓴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지구 항일혁명전적지에서 남긴 의미심장한 말들 가운데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백두산은 언제 와 보아도, 걸으면 걸을수록 몸과 마음에 새로운 혁명열, 투쟁열이 흘러들고 새로운 의지를 다지게 되는 곳이다.”

 

“우리가 어떤 각오를 안고 우리 혁명의 전취물을 지켜야 하겠는가,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를 이어서라도 끝까지 이 한 길만을 가야 하겠는가 하는 결심이 더욱 굳어진다.” 

 

위에 인용된 두 문장은,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지구 항일혁명전적지에서 새로운 혁명열과 투쟁열을 느끼고 새로운 의지를 다졌으며, 혁명의 길을 끝까지 가리라고 더욱 굳게 결심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제국주의자들과 계급적 원쑤들의 책동이 날로 더욱 우심해지고 있는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언제나 백두의 공격사상으로 살며 투쟁하여야 한다.”

 

“불굴의 공격사상으로 혁명의 난국을 타개하고 개척로를 열어제끼자는 것은 우리 당의 일관한 결심이고 의지이다.”

 

위에 인용된 두 문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지구 항일혁명전적지에서 혁명적 공격정신으로 난국을 타개하고 새로운 길을 가려고 결심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오는 12월 하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하면, 그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에서 결심한 “새로운 길”이 공식적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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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보신각 앞서 마네킹이 된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12/08 11:16
  • 수정일
    2019/12/08 11: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안전한 일터’ 위한 퍼포먼스 열어

“학교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 밀려드는 업무 폭탄! 위험한 약품 취급!”

7일 보신각 앞.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30여 명이 스스로 마네킹이 됐다. “다치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일하기 위해 ‘마네킹 챌린지’를 연 것.

‘마네킹 칠린지’는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사람이 마네킹처럼 부동자세(스톱 모션)를 유지하는 퍼포먼스를 뜻한다.

이날은, 지난해 12월10일, 故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지 1년을 앞두고 추모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마네킹 챌린지 참가자들은 “‘김용균 법’이 만들어지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서 “아이들과 생활하고 교육하는 학교 현장 또한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학교 급식실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는 곳이 됐지만 높은 배치기준(급식노동자 1인당 평균 150명에 달하는 급식인원 수)으로 인해 엄청난 노동강도에 노출”돼 있고, “아이들의 안전한 실험을 준비한 과학실에선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위험한 일터에 놓여 있는 급식실 노동자, 유해물질에 노출된 과학실 노동자, 갑질과 차별에 노출된 교무실 노동자 등의 모습을 마네킹 챌린지로 담았다.

“학교에서 비정규직을 배운 청년! 사회에 나와 비정규직이 된 청년! 비정규직이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청년, 김용균을 추모합니다.” 故 김용균 노동자를 향한 추모 인사를 한 참가자들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장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일하다 다치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마네킹 챌린지 스톱모션을 시작했다.

▲ 식판을 들어올리고, 1인당 150인분의 밥을 짓고.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급식실 노동자
▲ 위험물질 약품 처리하는 과학실 노동자
▲ 관리자의 직장 갑질, 업무 폭탄에 힘들어하는 교무실 노동자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잠시 서 있다가 팻말을 내려놓고 스톱모션을 진행한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옆엔 “나는 매일 150인분의 밥을 짓습니다”, “나는 매일 위험약품을 만집니다”, “나는 매일 업무폭탄에 시달립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 청년 노동자들이 또다시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학교부터 안전한 노동환경 만들자”, “비정규직의 설움을 물려주지 않는 학교를 만들자”고 외치며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날 민주노총과 故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는 종각역 사거리에서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열고 “죽지 않을 권리, 안전하게 일할 권리”,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 이행”을 요구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1년 전 그날처럼 노동자 김용균이 점검하던 컨베이어 벨트는 돌아가고, 석탄가루 뒤덮인 현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고, ‘더 이상 죽음의 외주화를 방치하지 말라’, ‘산재사망 살인기업을 처벌하라’는 노동자, 시민의 준엄한 요구는 문재인 정부에 의해 철저히 기만당하고 있다”고 규탄하곤 “김용균과 우리 모두가 꾸었던 꿈, 비정규직 철폐, 직접고용 쟁취, 위험의 외주화 금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위해, 하루에 6명, 매년 2400명이 일하다 죽어나가는 죽음의 행진을 끝내기 위해 노동자 시민이 함께 촛불의 바다를 만들자”고 외쳤다.

선현희 기자  shh4129@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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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운동 지도자'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별세

[부고] 7일 밤 건강악화로 운명, 10일 광화문광장 영결식

19.12.08 09:47l최종 업데이트 19.12.08 09:47l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8·15 자주통일대회의 의의에 대해 강조했다.
▲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2019년12월7일 향년 81세로 운명했다.
ⓒ 진보연대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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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7일 별세했다.

한국진보연대는 이날 "2019년 12월 7일 오후 10시 57분, 전선과 교사운동에 일생을 바친 오종렬 의장님께서 건강악화로 인해 열사의 곁으로 떠나셨다"라고 밝혔다. 

고인의 장례는 8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진 빈소에서 조문을 받으며 진행된다.  이후 10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진행하고 오후 4시부터 광주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빈소를 옮겨 조문을 받는다. 발인은 11일 오전 8시로 예정돼 있다.

 

고인은 지난 1938년 11월 28일 전남 광산군(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고등학교와 광주사범대 과학교육과, 전남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교원에 임용돼 교단에 섰다. 진도고성중학교, 전남고등학교, 광주동명여자중학교, 전남대학교 사대부속고등학교, 전남여고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그는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조의 전신) 출범에 참여해 대의원 대회 의장을 지냈고, 1989년 전교조 초대 광주지부장을 역임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전교조 탄압 과정에서 구속돼 1989년 7월 옥중에서 파면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고인은 이후 1991년 지방선거에서 제1대 광주시의회 의원(무소속)으로 당선됐고, 같은해 11월 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연합 공동 의장으로 선출됐다.

민중운동과 통일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고인은 199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돼 2년 8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 1998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대의원대회 준비위원장을 맡았고, 1999년에는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연방통일조국 건설'을 내세운 '군자산 정치 방침'을 발표했다.

그는 2001년 통일연대 상임대표와 전국민중연대의 상임공동대표를 지내면서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범대위 대표를 맡았고 2003년에는 한·칠레FTA저지 범대위 공동위원장, 2005년 APEC반대 국민행동 공동대표, 2006년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특히 한미FTA 저지 활동으로 인해 2007년 7월 세 번째 구속을 당했다. 그해 9월 출소 후 그는 통일운동과 민중운동 진영을 통합한 전선운동조직인 한국진보연대를 출범시키고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명박 정권에서도 그의 활동은 계속됐다. 2008년 5월 '미국산소고기 수입반대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를 맡았고 촛불집회의 배후로 지목당해 그해 8월 구속됐다. 그의 일생에 네 번째 '옥살이'였다. 2009년 2월 출소한 구는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을 맡으며 민중운동 일선에서 물러서 2015년 전남 담양군에 5.18민족통일학교를 설립하고 후진양성을 위해 힘을 쏟았다.

고인은 생전 5.18민족통일학교 설립을 앞둔 시점에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이 무엇인지 공유하고자 한다"라며 "일본 식민사관에 따른 치욕스럽고 자기 부정적인 역사관을 걷어내고 배타적이지 않은 호혜평등 민족주의를 복원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5·18 학교 세우려고 자식 주머니까지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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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노동자 '이모님', 헌법재판소 간다

[단독]노동자의 노동자 '이모님', 헌법재판소 간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입력 : 2019.12.08 09:03 수정 : 2019.12.08 09:08
돌봄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 회원들이 2013년 6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캠페인’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에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보호협약 비준’과 ‘가사노동자 인정 않는 근로기준법 예외 규정 개정’ 등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

돌봄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 회원들이 2013년 6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캠페인’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에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보호협약 비준’과 ‘가사노동자 인정 않는 근로기준법 예외 규정 개정’ 등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

 

채선자씨(가명·64)는 매일 오전 5시에 눈을 뜬다. 집안 살림을 대강 정리하고 집을 나서는 시각은 오전 6시 10분. 지하철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가정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오전 7시 1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꼬박 12시간을 근무한다. 그가 월~금요일 꼬박 일해 매달 받는 급여는 200만원이다. 

이곳에서 일한 지 4개월 됐다. 이전에는 한 곳에서 10년을 근무했다. 조선족인 채씨는 2007년 말 한국으로 건너와 직업소개소를 통해 한 가정집을 소개받았다. 2007년 12월 말부터 그곳에서 일한 채씨가 처음 받은 급여는 120만원, 가끔 ‘뜻밖의 보너스’도 있었다. “바깥 사장님이 미국을 자주 왔다갔다 하셨는데 몇 개월에 한 번씩 집에 오실 때마다 ‘고생이 많다’며 50만원씩 주고는 했어요.” 일한 지 6년째 되던 해 받은 월급이 160만원이었다. 그런데 고용주의 결혼한 딸의 집에서 일하던 한국인 가사도우미가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딸이 후임을 구하지 못하자 고용주는 채씨에게 “딸의 집에서 일해달라”고 했다. 채씨는 2014년 5월부터 고용주 딸의 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입주 도우미로 꼬박 4년 일해 

채씨는 입주 도우미로 이곳에서 4년을 꼬박 일했다. 월급은 220만원. 외출은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일요일 오후 7시까지 주어졌다. 급여가 160만원에서 60만원 더 올랐지만 관리해야 할 일 역시 늘었다. “아파트가 80평대라 혼자 청소하려면 고생했지요.” 

채씨의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해 오후 10시에 마무리됐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부부 내외와 오전 7시 10분이면 초등학교 통학버스를 타야 하는 첫째 아이 식사를 먼저 챙겨 보냈다. 이어 둘째를 씻기고 먹여 오전 9시 30분까지 어린이집에 보냈다. 오후 6~7시쯤 퇴근하는 엄마의 저녁까지 챙기고 나면 채씨가 식사를 했다. 설거지 및 청소를 마치면 채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잤다. “애들이 나랑 자려고 하니까 우리 셋이 모여 잤지요. ‘자기 전에 책 읽어줄 테니 책을 방에 가져다 놔라’ 하면 네 권씩 들고 오는데 읽어주다 보면 하나씩 꾸벅꾸벅 졸아요. 그러면 나도 같이 잠들었지요”라고 말했다.

채씨는 그러나 지난해 3월 이곳을 나왔다. 퇴직 의사를 먼저 밝힌 것은 채씨였다. 아파트 이웃이 고용주에게 “채씨가 아이에게 너무 강하게 말한다, 주차장에서 전화하느라 아이 손을 놓았다” 등의 말을 전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채씨는 해명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왔다. 얼마 뒤 채씨의 통장에는 채씨가 일한 ‘근무일수×7만7000원(일당)’의 급여가 들어왔다.

채씨는 결국 지난해 6월 고용주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소송을 냈다. 소송 결과는 당연히 채씨의 패소였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이 보호하는 근로자가 아니다. 1심 재판부는 기각사유 한 줄 없이 패소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퇴직급여법 제3조 단서는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및 가구 내 고용활동에는 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고, 원고는 ‘가구 내 고용’에 해당하므로 퇴직급여법이 적용됨을 전제로 한 소송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9월 패소판결을 내렸다. 

또 채씨가 낸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명시했다.

“퇴직급여법상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퇴직급여제도의 설명의무를 어느 범위의 사업 또는 사업장까지 인정할지는 그 당시 사회·경제·문화적 여건을 고려하여 입법기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으므로 위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 

즉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근로기준법 및 퇴직급여법이 처음 제정된 지 6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사회·경제·문화적 여건’상 헌법이 정한 기본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용주 상대 퇴직금 청구소송 패소 

가사노동자는 일을 하고, 이에 따른 급여를 받더라도 ‘노동자’로 보호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이 예외로 정한,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대명제는 1953년 이 법이 처음 제정된 이후부터 확고하게 우리 삶에 자리 잡았다. 가사노동자가 노동자가 아니면 가사일 역시 노동이 아니다. 가정주부를 흔히 ‘집에서 논다’고 표현하는 편견 가득한 문장 역시 법이 보장하는 한도 내에서 ‘맞는 말’이 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가사노동자는 노동관계법이 정한 그 어떤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퇴직금·최저임금·산재보험 적용에서도 모두 제외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다. 행여 일을 하다 다쳐도 고용주는 이를 부담할 법적 책임이 없고,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도 ‘가사노동’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고용주를 고발할 수도 없다. 채씨와 같이 퇴직금 소송을 내본들 패소다. 법이 그렇게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채씨에게 퇴직금을 줄 의무도, 법적 책임도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이다. 18대 국회에서 처음 제정법안으로 발의됐다. 그러나 18·19대 국회 모두 ‘임기만료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재발의됐지만 역시나 임기만료 폐기를 앞두고 있다. 입법자들은 가사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고, 이들을 여타 노동자들과 같이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위한 법안 통과에는 소극적이다. 

농촌 10대 여성들의 무작정 상경과 식모 취직 실태를 다룬 경향신문 1965년 2월 6일자 보도.

농촌 10대 여성들의 무작정 상경과 식모 취직 실태를 다룬 경향신문 1965년 2월 6일자 보도.

이유는 복잡하다. 가사노동자의 업무 형태, 고용방식 등이 각기 달라 이를 하나로 포괄하는 법 제정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지난 3월 18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소위 제1차 회의록 등을 살펴봐도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은 직업소개소나 O2O(Online to Offline)를 통해 가정에 파견되는 가사노동자 외에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알선업체 및 공공기관을 통해 파견된 것이 아닌, 개인이 자체적으로 계약을 맺어 근로하는 노동자)’까지 보호해주는 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종국에는 비공식적으로 근무하는 가사노동자들도 사업체 안으로 들여와 보호하고, 이용자는 불만사항 등을 사업체에 알려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법이 공표돼도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는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들을 포섭하고 보호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마냥 ‘가사노동자 보호’만을 주장하기도 어렵다. 가사노동자의 권리보호 이면에는 기혼 직장여성의 노동권 보장이라는 문제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상용노동자 5인 이상 사업체의 여성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44만9000원이다. 또 여성 임금근로자 10명 중 4명 이상은 일자리 안정성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이다. 임금 역시 남성임금의 69% 수준에 불과하다.

2019년 12월 5일 기준 강남지역 가사도우미 월 급여(출퇴근)는 200만~300만원 후반대까지 다양하다. 13년차 가사노동자 권모씨(65)는 “한국인 베이비시터는 주 5일 10시간 기준으로 220만원 이상은 받으려 한다”면서 “요즘 한국인은 입주 도우미로 잘 안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대부분 조선족들이 입주 도우미를 한다. 주 6일 근무 토~일 반일 휴무를 주면 적어도 250만~300만원은 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시세만으로도 맞벌이 부부 중 한 사람의 월급이 고스란히 가사노동자 급여로 들어가야 하는 셈이다. 
 

‘노동자’로 보호 못 받는 가사노동자 

무역 관련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송모씨(38·여)는 월급의 3분의 2를 아이 돌보미 선생님 급여로 쓴다. 송씨의 월평균 급여는 300만원대 초반이다. 돌보미의 월 급여는 210만원이다. 여기에 명절마다 20만원씩 상여금을 주고, 생일 때도 10만원을 챙겨준다. 송씨는 “집에 와서 저녁을 차릴 여유가 없다 보니 사 먹는 비율이 높은데 식비까지 합하면 내 월급을 전부 시터비용과 식비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의 월급의 상당액을 가사노동자 급여로 지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송씨가 지급하는 가사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2019년 최저임금 8350원보다 낮다. 송씨는 “만약 시터 이모님 월급을 최저임금에 맞춰서 드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송씨의 사례처럼 여성의 노동에 기대 여성이 노동할 수 있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가사노동자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 및 법 개선은 기존 직장여성의 경력단절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지난 11월 26일 발표한 ‘2019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중 경력단절여성 현황’에 따르면 직장을 그만두는 사유 중 육아(64만9000명·38.2%)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결혼(52만2000명·30.7%), 임신·출산(38만4000명·22.6%), 가족돌봄(7만5000명·4.4%), 자녀교육(6만9000명·4.1%) 순으로 나타났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고 응답한 경력단절 여성의 비중은 2017년 58만6000명(32%), 2018년 61만9000명(33.5%)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가사노동자 보호와 직장여성 노동권 

부모들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와 가사를 대신 맡아줄 가사노동자는 사실상 ‘최후의 보루’다. 간병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 및 법을 통한 보호는 필요하지만 이들의 처우 개선이 또 다른 여성 경력단절자를 만들 수 있는 한계선 안에서 두 ‘여성’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가사노동자도 법이 정한 노동자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 그러나 그들이 노동자로 인정받는 노력과 동시에 기존 직장여성들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보호장치 마련을 위한 노력도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채선자씨는 지난 9월 26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2019헌바454). 헌법재판소는 이제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 제3조 단서 중 “가구 내 고용활동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결과는 알 수 없다. 가사노동자들이 여전히 1953년에 머물러 ‘식모’로 살아야 할지, 법이 보장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달렸다.
 

[단독]노동자의 노동자 '이모님', 헌법재판소 간다
노동권·사회보장권·건강권·인격권이 뭐예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5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한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노동권과 사회보장권, 건강권, 인격권을 모두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근무시간 탓에 장시간 근무를 하고, 4대 보험 가입 역시 되지 않았다. 가사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근골격계 이상 증상을 경험했고, 간병인의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았다. 인격권 침해사례도 많았다.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란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노동권 8년째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한동숙씨(61)는 지금까지 근로계약서를 한 번도 작성하지 않았다. 산후도우미로 처음 일을 시작해 아이가 5살 되던 해에 첫 집에서 일을 그만뒀다. 앞으로 등·하원 도우미만 있으면 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아서다. 한씨는 월 180만원의 급여로 생계를 꾸려갔기 때문에 등·하원 도우미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한씨는 오전 7시 30분부터 아이 부모 중 한 명이 퇴근할 때까지 근무했다. 하루 12시간 근무한 날도, 부부가 모두 야근을 해 15시간 이상 근무한 날도 있었다. 별도의 추가수당은 없었다. 현재 일하고 있는 집 역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친한 언니가 넘겨준 가정집 일을 하면서 친한 언니가 받던 급여 180만원을 동일하게 받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가사노동자 가운데 육아도우미는 전체 응답자(139명)의 절반 이상인 54.7%(76명)가 주당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도 29.5%(41명)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노인 간병인들은 전체 응답자(23명)의 65.2%(15명)가 40시간 이상, 26.1%(6명)가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1회 방문당 2~3시간 근무를 미리 약속하는 경우가 많은 가사도우미는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이 67.3%(138명), 15시간 이하 24.4%(50명)로 전체 응답자(205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회보장권 이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4대 보험 가입에서 배제돼 있다. 이들은 의무 가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집은 사업주 등록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고용주가 보험 가입을 해주려 해도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박귀자씨(58)는 “애 아빠가 사업하시는 분은 회사 명의로 4대 보험 가입을 해주는 집도 있다”면서 “그런데 세금 떼어 가는 것도 싫고, 애 봐주러 가면서 무슨 보험이냐 싶어 보험에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강권 많은 가사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쳐도 고용주로부터 치료비 등을 요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전체 가사노동자 응답자의 55~77%가 근골격계 이상을 겪고 있다고 답했지만 치료비는 사실상 각자의 몫이다. 권모씨(63)는 “애를 업다 보면 손목 인대가 자주 나간다. 그러면 파스라도 붙이고 일을 해야 하는데 파스값을 달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친척이 간병인 일을 하는데 어깨와 허리, 무릎까지 다 아파도 일을 쉴 수가 없으니 토요일마다 한의원에 가서 자주 침을 맞는다더라”고 했다. 

●인격권 신체적 고통보다 가사노동자들이 가장 고통받는 부분이 인격침해다. 박귀자씨는 “아이 엄마가 음식을 해놓으면 내가 퇴근 전까지 먹이는 일만 하기로 처음 약속을 했는데 점점 ‘그 정도도 못 해주시냐’는 식으로 변해갔다”며 “아이 돌보는 일만 하기로 계약해도 결국 살림살이까지 해주길 요구하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동숙씨는 “독감이 유행할 때 아픈 애 보면서 끼니를 거르다 보니 속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났는데 애 엄마가 말을 하다 말고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적으로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4.6%(가사)~60.2%(육아)가 ‘업무 이상의 지나친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14.8%(육아)~31.8%(가사)가 과도하게 감시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인의 경우 특히 인간적인 무시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31.2%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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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면 25살 청년 김용균, 일하다 죽지 않길"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 받지 않게"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
2019.12.07 22:10:33
 

 

 

 

"사랑하는 아들 용균아. 너 사고 소식을 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 되었구나.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꽃보다 더 이쁜 내 새끼. 꿈도 한 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내 아들. 애달픈 내 아들 용균아." (하략. 기사 아래 김미숙 이사장 편지 전문 게재)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아들의 1주기를 맞는 심정을 담은 편지를 읽었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아있었다. 그들이 거리에 앉은 것은 일하다 사람이 죽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오늘도 3명의 노동자가 직장에서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을 것이다.

7일 종각역 사거리에서 고김용균1주기추모위원회가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 받지 않게"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열었다. 하루 전인 6일은 김용균 씨의 생일이었다. 사흘 뒤인 10일은 김용균 씨의 기일이다. 

 

 

▲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는 용균이 엄마 김미숙 씨. ⓒ프레시안(최형락)

 


"용균아 미안하다. 너에게 한 약속 꼭 지킬게" 

이날 김용균 씨에게 편지를 쓴 것은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발전소 노동자 장근만 씨도 동료였던 김용균 씨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용균아. 어제가 너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이었네. 작년 12월 6일 생각나지? 그날 우리는 너의 생일을 기념하며 호프집에서 웃고 떠들었지. 그날 같이 술을 마시고 많이 친해졌던 것 같아. 컨베이어벨트가 너를 삼키지 않았다면 우리는 작년처럼 또 호프잔을 들었겠지. 그런데 너는 저 하늘나라에서, 아니 광화문광장에서 많은 시민이 생일 축하해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거고, 나는 현장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있구나. 1년 전 그날이 정말 그립다.

2월 9일. 62일만에 용균이 너를 묻넌 날. 우리는 네가 들었던 피켓처럼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용균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정말 미안하다." 

이어지는 편지에는 장 씨의 지난 1년이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고김용균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는 것을 보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대책이 나오리라 기대했던 일, 김용균특조위가 "김용균은 시키는 대로 일을 했기 때문에 죽었고, 죽음의 근원은 위험의 외주화"라며 22개 권고안을 내놓은 일, 권고안 발표 이후에 꿈쩍도 하지 않는 정부를 보며 기대가 무너진 일, 김용균 씨가 죽은 후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온몸이 떨리고 괴로웠던 일 등이었다. 김용균 씨의 죽음을 애달파한 사람들의 1년 그대로였다.


장 씨는 아직 지키지 못한 용균이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용균아. 정말 미안하다.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네가 하늘나라로 떠나지 못하고 차가운 광화문광장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런데 너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너의 죽음을 묻어버리고 무시하고 있구나. 그래. 질 수 없다. 우리는 다시 용균이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려고 한다. 여기 계신 시민들과 함께 말이야.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지 잘 봐줘. 우리를 응원해줘,

용균아, 너에게 한 약속이 또 있었지. 용균이 너의 어미니가 외롭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 말이야. 그 약속 꼭 지킬게. 늦었지만 스물다섯번째 생일 축하한다."

 

 

▲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한 사람들. ⓒ프레시안(최형락)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비정규직 이제 그만" 

이날 추모대회에는 2000여 명이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촛불을 든 이유를 밝히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애령 예수회 수녀는 "고 김용균 님의 수의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수의를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라고 적었다. 박상은 사회적참사 연구자는 "위험은 줄일 수 있고 사람은 살릴 수 있습니다. 비용과 효율을 이유로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를 바꾸고자 함께 촛불을 듭니다"라고 적었다. 

추모대회 말미에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건설과 조선소 하청 노동자 등으로 이루어진 비정규직100인대표단이 연단에 올랐다. 이들은 "한국사회 40대 기업의 산재사망 사고 95%가 비정규이지만, 그 죽음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재벌은 한명도 처벌되지 않았다"며 "이 무도한 죽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이윤만을 위한 자본가의 끝없는 탐욕 때문이고, 사람을 죽여도 벌금 500만 원이면 땡처리되는 세상 때문이고, 파견, 용역, 도급, 특수고용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이 면죄부를 받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100인대표단은 "탐욕의 자본이 만든 사회를 끝장내기 위해, 내 부모, 내 자식, 내 친구가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게 하기 위해, 김용균의 이름으로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 것"이라며 "기업살인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이 참혹한 죽음을 멈추고, 노조법 2조 개정과 직접고용 쟁취로 생명이 우선되고 차별 없는 평등한 길을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추모대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분향소로 행진해 묵상했다. 이어 "더 이상 죽지 않게. 기업살인법 제정하라",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비정규직 이제 그만"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향했다. 대열의 맨 앞에는 고 문중원 마사회 기수 유족, 고 김동준 특성화고 실습생 유족, 고 이한빛 PD 유족 등 일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김미숙 이사장 곁에 서있었다. 

 

 

▲ 일하다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비정규직100인대표단. ⓒ프레시안(최형락)

 

 

 

▲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마치고 행진 중인 사람들. ⓒ프레시안(최형락)

 

 

 

▲ 행진 대열 앞에서 선전 방송을 하고 있는 김수억 현대기아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 ⓒ프레시안(최형락)

 

 

 

▲ 피켓을 들고 앉아있는 추모대회 참가자. ⓒ프레시안(최형락)

 


아래는 김미숙 이사장이 아들 용균이에게 쓴 편지 전문. 

사랑하는 아들 용균아. 너 사고 소식을 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 되었구나.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꽃보다 더 이쁜 내 새끼. 꿈도 한 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내 아들. 애달픈 내 아들 용균아. 엄마는 너 없이 사는 세상 꿈에도 생각 못해봤고, 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아낼 수 있을지 아직도 마음은 갈팡질팡이구나.

엄마이기에 강할 수 있고, 또 그러기에 한없이 무너짐을 느끼며. 내 가슴속에선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지게 만든 이 나라가 한 없이 원망스럽고 너를 지켜내지 못한 내 스스로가 아직도 살아보겠다고 꾸역꾸역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게 그 자체가 비참하구나.

아무리 좋은 먹거리와 환경을 접하더라도 내 분신을 잃어버렸기에 허망한 삶이 되어버렸고. 이 세상은 더 이상 나에게 큰 의미도 없고. 즐거움과 행복은 이미 남들만이 가질 수 있는 나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끼며 살고 있단다. 

단 한번만이라도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이 되면 별을 보며 너를 찾았고, 매일 꿈속에서 만나길 기도하며 잠을 청했단다. 서너 번의 꿈속 너의 모습은 늘 유치원 이전의 모습이었고, 위태로운 환경에서 너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그런 꿈을 꾸었단다.

지난번에 아빠 꿈에 너의 모습은 온화한 얼굴로 "다른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아빠에게 말했다고 얘기를 들었을 땐 평소의 너의 성품을 생각하면, 엄마 아빠가 아들 걱정할까봐 걱정말라며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꿈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어.

너는 이곳에서 부족한 부모 만나서 힘들게 살았지만 너가 있는 그곳에서는 좋은 부모 만나서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엄마는 바란단다. 

너가 그렇게 떠나간 뒤 엄마는 그동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단다. TV 속에 보여지는 세상과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이런 현장은 구조적으로 안전이 방치되어 너처럼 억울하게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그동안 수만 명에 달한다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랍고 분노스러웠던지. 지금도 매일 산재 사고를 접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단다.

너를 닮은 또 다른 용균이들은 사회에 나와도 좋은 일자리는 한계가 있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규직 혹은 일용직으로 내몰려,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서 일할 게 뻔하고,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해서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불이익을 당해도 말도 못하는 억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수많은 너의 삶과 비슷한 용균이들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단다. 

내 소중한 아들 용균아. 엄마는 너를 잃고 너무 큰 충격이라 살아내는 것조차 겁이 났었어.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좋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분들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살고 있단다. 

너와 함께 일했던 발전소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건설업, 조선소, 철도, 마사회, 우정사업소. 우리 나라 구석구석 어느 한 군데도 안전한 곳이 없는, 그래서 더 처절한 삶을 다들 살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며, 꺼져가는 생명의 시급함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단다. 

엄마는 얼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뭉쳐서 연대로 우리들이 바라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를 기원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단다. 그리고 이분들을 마음을 담아 동지라고 부르고 있단다. 동지라는 말이 이렇게 많은 마음이 담긴 좋은 말인지 이제는 느끼며, 이 말의 귀함에 누가 될까 조심스레 부르려 하고 있단다. 

아들아. 지난해에 너의 죽음의 부당함을 바꾸고자 많은 동지들과 사회 여러 단체들과, 유가족들과, 일반 시민들이 뭉쳐서 너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정부와 맞서 싸웠었어. 물론 너도 알겠지만. 그래서 원만한 합의안도 이끌어냈고, 많이 부족해서 너에게 부끄러운 법이긴 하지만 산안법도 통과시켰고, 특조위 진상조사를 통해 사측이 너에게 누명을 씌웠던 것을 완전히 벗기게 되었단다. 

그렇지만 업무수칙을 다 지키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 원청은 하청을 주었으니 책임이 없다 하고, 하청은 내 사업장이 아니어서 권한이 없다 해서 책임 공백이 생겼고. 그 속에서 일하는 아들은 목숨 지킬 권한조차 없었던 이 비정규직들의 억울함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참담한 심정이었단다. 그래서 억울함을 참지 못해 또 울고 말았어. 너는 그곳에서 다 보고 있겠지. 

아직 엄마는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단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유가족 앞에서 약속했던 것도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서 합의 이행, 약속 지키려고 해야 하고, 특조위 권고안도 현장에 이행되는지 지켜봐야 하고, 너를 죽게 만든 책임자들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단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너를 비록 살릴 순 없지만, 다른 사람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단다. 

엄마는 이제 우리와 같이 처지에 놓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길을 위해 걸어갈 것이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밝은 빛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곳에서 너도 엄마 잘 하라고 응원하고 지켜봐줘.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아들 용균아.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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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의 외침 “감옥에서 7년째,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2만의 외침 “감옥에서 7년째,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12/07 [19: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7일 오후 3시부터 광화문과 청와대 인근에서 ‘감옥에서 7년째!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이하 석방대회)’가 열렸다. 석방대회는 69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주최, 주관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시민 2만여 명이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 김영란 기자

 

▲ 석방대회는 69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주최, 주관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시민 2만여 명이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 김영란 기자

 

▲ 광화문에서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는 석방대회 참가자들     © 김영란 기자

 

▲ 석방대회는 오후 2시부터 서울역, 독립문, 을지로, 종로 총 4개 방향에서 출발한 대열은 300인 바투카다(브라질 타악기) 대열을 선두로 서울 시내를 행진해 3시에 광화문 광장에 집결하였다. [사진제공-이석기의원 구명위원회]     © 김영란 기자

 

▲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     © 김영란 기자

 

▲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     © 김영란 기자

 

▲ 석방대회에는 ‘이석기 의원 석방’을 염원하는 피아노 50대, 통기타 100대, 하모니카 100대, 오카리나 100대, 우쿨렐레 100대로 구성된 450인 합주단의 공연이 펼쳐졌다. [사진제공-이석기 의원 구명위원회]     © 김영란 기자

 

7일 오후 3시부터 광화문과 청와대 인근에서 ‘감옥에서 7년째!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이하 석방대회)’가 열렸다.

 

석방대회는 69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주최, 주관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시민 2만여 명이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했다.

 

이에 앞서 오후 2시부터 서울역, 독립문, 을지로, 종로 총 4개 방향에서 출발한 대열은 300인 바투카다(브라질 타악기) 대열을 선두로 서울 시내를 행진해 3시에 광화문 광장에 집결하였다.

 

청와대 앞에서 열린 석방대회에는 ‘이석기 의원 석방’을 염원하는 피아노 50대, 통기타 100대, 하모니카 100대, 오카리나 100대, 우쿨렐레 100대로 구성된 450인 합주단의 공연이 펼쳐졌다.

 

석방대회에 즈음해 이석기 의원은 옥중 편지를 보냈다.

 

이석기 의원은 편지에서 “이제 다가올 2020년대는 우리에게 자주를 실현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이를테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나 방위비 분담금, 대북제재에 막혀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평화협력과 같은 문제들은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와 잇닿아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이 충돌하는 시대에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법,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입니다. 자주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계속해 이 의원은 “자주는 우리 스스로 자기 발로 선다는 의미입니다. 누구에게 의존하지도, 누구를 배척하지도 않고, 오직 스스로의 두 발로 지구를 딛고 서서 모두와 평화롭게 협력하자는 발상입니다. 친미냐, 반미냐, 친중이냐 반중이냐는 질문을 거부하고, 우리 스스로 서서 우리 민중의 이익을 중심으로 협력하자는 것이 자주입니다”라고 편지에서 밝혔다.

 

이 의원은 편지 마무리에서 “미래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금 이 광장에 모여 선 것처럼 자주 평등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는 이들이 하나의 정치적 힘으로 단결한다면 민중의 새날은 어느새 닥쳐올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의 싸움에서는 미래가 이깁니다. 낡은 것은 결코 새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여기에 계신 동지들이 있는 한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현실이 됩니다. 여러분이 미래입니다. 당신이 봄입니다. 다가오는 새봄에 우리 뜨거운 가슴으로 만납시다”라고 희망찬 메시지를 보냈다.

 

▲ 450인 합주단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 맞춰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는 석방대회 참가자들     © 김영란 기자

 

▲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 김영란 기자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를 부르는 노동자들     © 김영란 기자

 

▲ 450인 합주단, 피아노 연주자들     © 김영란 기자

 

▲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     © 김영란 기자

 

이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이태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이 의원 석방을 촉구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그는 독방에 갇혔고 그것은 통합진보당 해산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런 국정농단의 잔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정권의 잘못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이 촛불정신 회복의 첫걸음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태호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유엔 인권선언에는 신념의 자유, 정치 활동의 자유가 있다. 이것이 인권의 제1원칙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이석기 의원을 가두어 둔다면 촛불정신과 민주주의는 제 길을 갈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상규 민중당 상임공동대표는 결의문을 통해 “수천수만의 이석기가 힘차게 뻗어가는 이 행진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며, “민중의 친근한 벗 이석기 의원과 함께 새로운 백 년을, 자주의 정치인 이석기 의원과 함께 새로운 천년을 만들어나가자”라고 주장하였다.

 

석방대회의 대미는 450인 합주에 맞춰 2만 참가자가 함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합창이 장식하였다.

 

이날 대회에 앞서 10시에는 이석기 의원이 복역하고 있는 대전교도소 앞에서 '감옥에서 7년째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대전교도소 결의대회'가 2천여 명 규모로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날 석방대회에 즈음해 각계의 이석기 의원 석방 탄원서가 청와대에 전달되었다.

 

최근 제출된 1차 탄원서에는 김희중 대주교,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오도철 원불교 교정원장 등 주요 종단 지도자와 정강자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김민문정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백미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신철영 경실련 공동대표, 김호철 민변 회장,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자가 이름을 올렸다.

 

한편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는 다음 주에 사회 원로들의 2차 탄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하는데 이어, 14일(토)에도 청와대 앞에서 석방 촉구 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 김영란 기자

 

▲     © 김영란 기자

 

아래는 석방대회에서 낭송된 이석기 의원 옥중 편지 전문이다.

 

--------------------------아래---------------------------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운 동지들.

 

동지들과 떨어져 감옥 안에서 맞는 7번째의 겨울입니다. 달력을 보니 이제 2010년대의 마지막 겨울입니다. 지나온 2010년대를 저는 시련 속에서 동지를 찾은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며 고난의 세월을 함께 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차가운 바람은 우리를 위축시키기도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찬바람 속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 농민이 있습니다. 촛불 혁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민중이 거리에서 찬바람과 맞서야 하는 현실입니다.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로 나아가자는 열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지들이 저의 석방을 외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시간들이 우리 사회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하고 우리 자신을 발전시키는 소중한 시간들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현실을 직시하면서 감옥의 찬 기운을 견디고 있습니다. 이 시간들이 쌓여 결국 지금 광장의 칼바람을 따뜻한 봄바람으로 바꾸어낼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계 역시 크게 변화하였습니다. 변화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민족이 지난 100년간 감내해야 했던 예속과 분단이 이제 종착점에 이르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 다가올 2020년대는 우리에게 자주를 실현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이를테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나 방위비 분담금, 대북제재에 막혀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평화협력과 같은 문제들은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와 잇닿아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이 충돌하는 시대에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법,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입니다. 자주입니다.

 

자주는 우리 스스로 자기 발로 선다는 의미입니다. 누구에게 의존하지도, 누구를 배척하지도 않고, 오직 스스로의 두 발로 지구를 딛고 서서 모두와 평화롭게 협력하자는 발상입니다. 친미냐, 반미냐, 친중이냐 반중이냐는 질문을 거부하고, 우리 스스로 서서 우리 민중의 이익을 중심으로 협력하자는 것이 자주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을 믿고 일어설 때 미국도 우리를 존중하고, 중국도 우리를 가볍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하나같이 자주의 원칙위에서만 제대로 된 해법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의 지배세력들은 지금도 지난 70년처럼 미국을 섬기면서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살고자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지난날처럼 미국을 섬기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당장 미국의 트럼프 정부조차 이런 발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이제 동맹이라는 낡은 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가 한미동맹의 낡은 틀을 고집할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국의 그 어느 역대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별다른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동지 여러분,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실망할 일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가 물 위로 올라와 그 실체를 그대로 드러냈을 뿐입니다. 필요한 것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서 자주의 길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기 전에 우리가 민중의 정치적 열망을 하나로 단결시켜 나간다면 우리는 오래지 않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정권교체를 뛰어넘는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은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도 분명합니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생각해봅니다. 구조적인 불평등, 그러한 불평등의 세습, 그리고 이와 같은 계급의 문제에서 여당과 야당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우리 사회의 진면목, 가진 자들의 민낯을 우리는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가진 자들과 민중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졌고, 이를 거슬러 올라갈 사다리가 끊어졌기 때문이 아닙니까? 돈이 돈을 벌고, 기득권에 속하지 않은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서는 아예 새로운 꿈조차 꿀 수 없는 사회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심각하다면 해답도 심각해야 합니다. 문제가 구조적이라면 대안도 구조적이어야 합니다. 그 동안 진보진영이 주장해 왔고, 현 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각종 수당 도입이나 즉자적인 교육 및 부동산 정책과 같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책으로는 이런 구조적 불평등에 아무런 균열을 내지 못합니다. 지금은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대지주의 땅을 무상 유상으로 거둬들여 소작인들에게 나눠줬던 해방 이후 농지개혁은 농촌의 계급관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이러한 농지개혁처럼, 자산재분배 정책과 같은 대담하고 근본적인 발상이 필요합니다. 구조적 불평등, 세습되고 있는 계급관계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들지 않고서는 우리는 한 치도 전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롯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몫입니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우리사회의 견고한 기득권에 뿌리내리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어떤 정치세력도 자신의 존재적 기반을 배신하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의 굳건한 불평등 구조를 깨자면, 이 불평등 구조에서 피해받는 대중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을 건설해야 합니다. 우리가 낡은 양당체제를 혁파하자고 하는 건 애매한 중간파 정당과 이런저런 지역정당들이 함께하는 다당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중의 정당, 민중 속에 깊이 뿌리박은 정당, 민중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참다운 진보정당이 나오는 것이야말로 낡은 양당체제의 혁파일 것이며, 자주 평등 평화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운 동지들.

미래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금 이 광장에 모여 선 것처럼 자주 평등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는 이들이 하나의 정치적 힘으로 단결한다면 민중의 새날은 어느새 닥쳐올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의 싸움에서는 미래가 이깁니다. 낡은 것은 결코 새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여기에 계신 동지들이 있는 한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현실이 됩니다. 여러분이 미래입니다. 당신이 봄입니다. 다가오는 새봄에 우리 뜨거운 가슴으로 만납시다.

 

2019. 12. 1. 대전 옥에서

이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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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안, 대법원 판결에 반한다”

강제동원 해결방안 토론회에서 법조.학계 전문가들 지적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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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06  17: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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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 정의기억연대와 강창일.박지원.장병완.천정배.최경환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에 관한 정책토론회’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기억.화해.미래재단법’을 다음 주 발의할 예정인 가운데, 법조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문희상 안’이 대법원 판결에 반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 정의기억연대와 강창일.박지원.장병완.천정배.최경환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에 관한 정책토론회’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문희상 안’, 대법원 판결 원칙에 반한다”

발제자로 나선 김민철 경희대 교수는 “강제동원 기업에게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며 “존중의 형식은 강제동원.강제노동에 대한 인정과 사죄, 배상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대법원이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고 판결한 점에서, 일본 기업의 인정.사죄.배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문희상 안’은 일본 기업 혹은 정부가 강제징용에 대한 인정과 사죄에서 출발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전날 최광필 국회 정책수석비서관은 언론설명회에서 “대법원 판결 정신에 대한 존중”이라며 “민법상 화해절차를 통한 대위변제 방식의 전제는 대법원의 사법적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대리인인 이상갑 변호사는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수행과정에서 행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여 부담하는 손해배상채무를 대위변제하는 것이 현행헌법 전문에 합치된다고 볼 수 있느냐”며 “‘문희상 안’은 역사적 진실 기록, 피해자의 사과와 그 실행방법으로서의 금전배상과 관련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다. 이 부분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창록 경북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대법원 판결에 의해 손해배상의 의무가 확정된 일본 기업이 배상하고 그 공모자로 명기된 일본 정부가 피해자의 권리 실현에 나서야 한다”며 “‘문희상 안’은 한국 정부, 한국기업은 물론이고 한국 국민에게까지, 심지어 세계 시민에게까지 책임을 떠넘기면서 일본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면탈하게 하는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의 원칙에 반한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문희상 안’의 초점은 소송을 통해 확정된 혹은 확정될 가능성이 있는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얼버무리는 것”으로 “책임이 없는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재단을 통해 책임이 없는 한국기업, 한국 국민의 기부금을 섞어 일본 기업의 법적 책임을 세탁하자는 구상”이라고 말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문희상 안은 위자료 지급만으로, 지급과 등가적 관계에 있지 않은 피해자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소멸시키려고 하는 것으로 국제인권법, 헌법 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사죄 선결조치 성취 못 해 갈등 위험 높다”

‘문희상 안’에는 일본 정부의 사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일본 정부가 ‘기억.화해.미래재단’을 설립하기 전에 사죄를 표명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사죄가 전제되지 않은 채 설립된 재단의 법적 효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상갑 변호사는 “문희상 안이 적시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 정치인의 진솔한 사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할 뿐 아니라 일본 정부 및 전범기업들의 공식입장이라고 볼 수 없다”며 “현재 일본 정부의 입장이나 일본 여론 등을 보면 법 통과 이전에 (일본의 사죄라는) 사전조치가 실제로 실행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사전조치 없는 법 통과 시 법의 효력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군함도’로 대표되는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과 관련해 강제징용자를 ‘일본의 산업을 지원한 한반도 출신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가 사죄할 리 없다는 것.

결과적으로 “문희상 안은 역사적 진실 기록, 일본 정부 및 기업들이 사과를 사실상 포기한 해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이 변호사는 진단했다.

그러면서 “먼저 선결조치 이행을 위한 노력을 하여 외교적 합의를 일정 정도 이끌어낸 다음, 국내적 조치로서 관련 법을 논의하여야 한다”며 “선결조치는 전혀 성취하지 못한 채, 법 시행에 따른 혼선과 국내적 갈등, 한국 정부의 책임만 발생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문희상 안’ 위자료 3천억 원 아닌 42조 원 필요”

‘문희상 안’에 1인 당 2억 원으로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원칙으로 소송진행자 약 990명, 소송예정자 약 500명 총 1천5백 명을 피해자로 선정해 약 3천 억 원의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는 구상에도 문제가 제기됐다.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21만 8천639건이 피해자로 인정됐는데, ‘문희상 안’이 제시한 1천 5백 명의 숫자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인당 2억 원의 위자료 책정액수를 환산하면 42조 원이 넘는다.

이상갑 변호사는 “전체 피해자들 중 1천5백 명에게만 위자료 신청권을 인정하겠다는 발상의 근거가 무엇인가. 평등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42조 원을 자발적 기부금으로 조성할 수 있겠는가. 자발적 기부금으로 위자료를 조성해도 일본 측이 부담해야 할 절대 금액 또는 비율에 대한 하한선도 없다. 금액 기부 이행을 담보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이날 토론회에서는 일본군성노예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나와 “‘문희상 안’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반대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토론회에서는 일본군성노예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나와 “‘문희상 안’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반대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문희상 의장을 만나보니 영어로 원 플러스 원이라는 말을 하더라”며 “들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국회의장 문희상은 그런 소리를 집어치우라고 분명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희상 안을) 뜯어보니 아무것도 없다”며 “원 플러스 원으로 해결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무얼 한다는 말이냐”고 꼬집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민철 경희대 교수, 이상갑 변호사, 김창록 경북대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고,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 이나영 중앙대 교수, 송기호 변호사가 토론자로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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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획총에도 살아남은 찡찡이…여기, 도시가 버린 ‘유기구역’

등록 :2019-12-07 09:15수정 :2019-12-07 09:23

 

[토요판] 커버스토리
유기구역: 버려진 개와 사람의 땅 ① 살아남기 위해

인간 손길 안 미친 곳 없는 북한산
버려져 산으로 올라가 번식한 ‘들개’
인간을 피해 올라간 산으로 그들을
잡으려는 인간 덫도 따라 올라왔다
사진 권도연 작가
사진 권도연 작가

 

 

 

인간에게 버려져 산으로 올라간 ‘들개’가 어둠 내린 산봉우리에서 불 밝힌 인간들의 도시를 내려다본다. 북한산. 평지 인간의 눈높이에선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 산 위에 있었다. 버려지고, 잡혀가고, 쫓기면서도, 살아남는 한 멈추지 않는 이야기가 고도를 높여 펼쳐졌다. 도시는 골라내고 솎아내며 팽창했다. 도시가 품지 않는 개와 인간의 운명은 다르지 않았다. 번영과 발전에 끼지 못한 존재들이 도시가 시선을 거둔 ‘유기구역’에 모여들어 생존을 구했다.

 

들개는 인간의 다른 얼굴이었다. <한겨레>는 외톨이 들개 ‘찡찡이’의 길을 따라가며 팽창하는 도시와의 상관관계를 추적했다. 버려진 개들의 운명과 그 개들을 떨구며 질주하는 개발, 개들의 처지에 투영된 사람들, 인간 중심의 세계와 ‘우리’가 밀어낸 소수자들의 얼굴을 그 길에서 만날 수 있길 소망한다.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등장하는 개들의 이름은 사진작가 권도연과 북한산 주변 주민들이 지었다. 찡찡이와 들개들의 시간을 기록해온 권도연 작가의 개인전 ‘북한산’(서울 종로구 평창동 누크갤러리)이 12월5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

 

 

 

 

 

 

버려진 존재들의 땅이 있었다.

 

도시가 ‘받아들여진 자들’만의 세계가 될수록 ‘거부된 자들’의 구역이 도시 언저리에 생겨났다. 앞으로만 내달리는 도시가 안에 들이지 않는 존재들은 위로 올라가거나 밖(▶2회에서 계속)으로 밀려나거나 아래(▶3회에서 계속)로 내려갔다. 번영과 발전과 융성에 끼지 못한 그들이 도시가 시선을 거둔 ‘유기구역’에 모여들어 생존을 구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숨어든 야생

 

 

그 구역은 ‘위’에 있었다.

 

끄응…, 끼잉끼잉…, 왕왕.

 

목에서 쇳소리를 내며 발을 구르던 새끼 개들(지난 5월)이 어미를 보고 짖었다. 등산로를 벗어난 가파른 산비탈을 가시철조망이 둘러치고 있었다. 새끼 ‘들개’ 두마리가 철조망으로 다가가다 뒷걸음쳤고, 낑낑거렸다. 가시를 잔뜩 세운 철조망이 둘둘 말린 덩굴풀처럼 포복하며 그들의 접근을 막았다.

 

철조망을 훌쩍 뛰어넘은 어미 들개 단비가 너머에서 가만히 새끼들을 기다렸다. 철조망을 통과하는 일은 오직 새끼들의 몫이었다. 통과하지 않고 철조망을 건널 길은 없었다.

 

깊은 산속이었지만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인간의 영역에서 내몰린 개들이 숨어든 야생조차 인간이 관리하는 영역이었다. 길목마다 포획틀이 입을 벌리고 그들을 유혹했다. 인간에게 버려진 개들이 인간을 피해 올라간 산으로 그들을 잡으려는 인간의 덫도 따라 올라왔다.

 

마취총을 맞고도 살아남은 들개 찡찡이(수컷)가 멀찍이서 단비와 새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단비는 함께 포획(2018년 10월)된 무리의 대장과 그 짝이 낳은 새끼였다. 무리가 해체된 뒤 ‘무리의 왕따’였던 찡찡이가 부모 잃은 단비를 돌보며 가족을 이뤘다.

 

북한산. 평지 인간의 눈높이에선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 산 위에 있었다. 버려지고, 잡혀가고, 쫓기면서도, 살아남는 한 멈추지 않는 이야기가 고도를 높여 펼쳐졌다.

 

뾰족한 경고 앞에서 쩔쩔매던 새끼들이 가시에 몸을 내주며 철조망 사이를 빠져나갔다. 긁히고 찔리길 두려워해선 넘을 수 없는 경계들이 있었다. 경계를 넘지 않고선 생존할 수 없는 땅에 그들은 있었다.

 

바다로부터 560m 솟아오른 꼭대기(A봉우리) 주변이 무리의 활동 영역이었다. 인간의 오랜 영토분쟁의 흔적(삼국시대)이 비석에 새겨진 봉우리에서 허락된 영토가 없는 들개들이 뛰어다녔다. 뿔뿔이 흩어지기 두달 전(2018년 8월) 흰다리 무리가 봉우리 주변에서 나무를 올려다보며 짖어댔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히말라야원숭이(지난해 6월부터 북한산에서 목격돼 그해 8월 포획)가 나무를 타고 다니며 봉우리 아래까지 와 있었다. 나무에 매달린 2급 멸종위기종이 개들을 향해 송곳니를 세웠다. 무리 앞에서 흰다리(수컷)가 이빨을 드러내며 원숭이를 노려봤다. 개들과 원숭이가 사납게 겨루는 소리가 등산객들을 불러 모았다.

 

흰다리는 이 봉우리 들개 무리의 대장이었다. 하얀 왼쪽 다리가 갈색의 몸과 구분됐다. 성견이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힘세고 용맹해 경쟁 무리와 대결할 땐 먼저 달려 나가 싸웠다. 미간에 흰색 번개무늬가 있었다. 잘생긴 외모로 암컷들의 구애를 받았다. 흰다리가 이끄는 개들은 모두 암컷이었다.

 

짱짱이(암컷)는 말랐지만 몸을 쭉 펴고 서 있으면 풍모가 짱짱했다. 비쩍 말라 불쌍해 보일 때도 있었고 외계 생물처럼 낯설어 보일 때도 있었다.

 

사자털(암컷)은 강아지로 혼자 다니다 무리에 섞였다. 새끼 때 보송보송했던 털이 성견이 됐을 땐 멋진 갈기털로 변했다.

 

검은입(암컷)은 입 주위가 까맸다. 흰다리 무리 중 가장 덩치가 컸다.

 

모두 산에서 태어난 그들은 각자의 부모로부터 떨어져 자란 독립 개체들이었다. 제각기 살아가던 그들이 어느 날 무리를 이뤘다.

 

그리고 찡찡이가 있었다. 사람 앞에 가면 찡찡거리는 소리를 낸다고 찡찡이를 목격한 등산객들이 이름 붙였다. 찡찡이는 독특한 외모를 가졌다. 광대가 툭 불거진 얼굴은 위협하는 듯도 했고 우는 듯도 했다. 눈은 찡그린 것처럼 찌그러져 있었고 눈물이 그렁그렁해 눈 주위가 늘 축축했다. 등엔 홍반이 있었다. 찡찡이의 생김새는 그가 겪은 시간의 결과물이었다.

 

 

북한산 외톨이 ‘최약자 들개’ 찡찡이
대장이 잡혀가며 무리가 해체된 뒤
마취총 맞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무리의 새끼들 보살피며 가족 꾸려

 

 

북한산 들개 ‘흰다리’ 무리. 뒷줄 왼쪽부터 무리의 대장 흰다리(수컷), 사자털(암컷), 찡찡이(수컷). 아랫줄 검은입(암컷). 무리의 일원인 짱짱이(암컷)는 사진에 찍히지 않았다. 권도연 작가
북한산 들개 ‘흰다리’ 무리. 뒷줄 왼쪽부터 무리의 대장 흰다리(수컷), 사자털(암컷), 찡찡이(수컷). 아랫줄 검은입(암컷). 무리의 일원인 짱짱이(암컷)는 사진에 찍히지 않았다. 권도연 작가

 

북한산 외톨이

 

찡찡이는 외톨이였다. 북한산에서 가장 약한 들개 중 한마리였다. 물리고 찢기고 상처 난 흔적들이 그의 얼굴에 남아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 사력을 다하는 개들과 달리 찡찡이는 개들이 으르렁거리고 접근하면 먹고 있던 것들도 내줬다. 혼자 다니다 다른 개들을 만나면 머리를 낮추고 우회하는 것으로 싸울 뜻이 없음을 표현했다.

 

그 찡찡이가 언제부턴가 흰다리 무리를 따라다녔다. 험하고 깊은 산은 무리에 끼지 않고 혼자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찡찡이는 흰다리 무리의 ‘더하기 일’과도 같았다. 무리를 쫓아다녔지만 무리 안에 잘 들지 못했다. 들개는 인간 세계가 허락하지 않는 존재였고 찡찡이는 그 들개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의 처지가 ‘왕따 들개’ 찡찡이에게 투영됐다.

 

봉우리 위로 반달이 떠올랐다.

 

봉우리에서 달을 이고 선 짱짱이의 모습이 짱짱했다. 북한산은 서울 은평·서대문·종로·성북·강북·도봉구와 경기 고양·양주·의정부시로 뻗으며 32개 봉우리를 잡아당겼다. 인간에게 버려져 산으로 올라온 개들이 그 봉우리들을 뛰어오르며 인간들보다 먼저 달빛을 받았다. 도시보다 먼저 있었던 산도 도시의 침범으로 졸아들고 있었다. 도심을 빽빽하게 채운 아파트들이 북한산 밑까지 몰려와 산을 파먹었다. 도시가 팽창하며 산을 조여 오자 산도 깎이고 압박당하며 쫓겨 올라갔다. 도시가 밀어올린 산과 개들이 달빛 아래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산에서 나고 자란 흰다리 무리가 어떤 뿌리에서 기원했는지 아는 인간은 없었다. 새끼를 내며 몇 대까지 번식했을지 모를 그 개들의 첫 세대는 분명 인간들 곁에 있었다. 인간에게 유기된 개들이 생존을 위해 야생화되면 ‘들개’라 불리며 제거 대상(아래 상자기사)이 됐다. 개발이 들끓는 땅에서 들개들이 태어났고, 도시가 확장되는 경로를 따라 들개들도 번식했으며, 들개의 발생 경로를 따라 자치단체들의 포획 사업도 전국으로 번져갔다. 서울시 뉴타운사업은 한국 사회에 들개를 퍼뜨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너희도 살길 찾아서….’

 

사업 착공(2004년 12월) 2년 뒤 은평뉴타운 철거민 원정자(68)는 북한산 기슭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세입자였던 그는 갈 곳 없는 주민들과 마지막까지 버티다 철거 직전 개울 건너 지축(고양시 덕양구)으로 이주(2005년 2월)했다. 빚을 내 시작한 호프집은 주민들의 이사로 손님이 줄어 오픈 1년 만에 폐업했다. 생계 수단을 잃은 그는 새로 심은 나무들 사이를 기며 잡초를 제거(공공근로)했다. 호미질을 하다 산속에 숨어 자신을 지켜보는 개들과 눈이 마주쳤다.

 

‘나처럼 산까지 올라왔구나.’

 

삶터를 잃고 쫓겨날 때 원정자는 자신처럼 쫓겨나는 개들을 봤다. 집들이 헐리고 땅이 뒤집힌 동네(은평구 진관내동)에서 주인에게 버려진 개들이 풀밭과 둑을 떼 지어 돌아다녔다. 그 개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텅 빈 집에서 목줄에 묶인 채 굶어 죽거나, 주인 떠난 집을 맴돌다 개장수에게 잡혀가거나, 배고픈 노숙인들에게 잡아먹히는 과정을 원정자는 지켜봤다. 그렇게 살아남은 개들이 산으로 올라와 살기 위해 산으로 올라온 원정자를 지켜봤다.

 

산 아래에서 산에 의지해 살았던 원정자가 산에서 처음 보는 개들이었다. 그들이 야생화되기 시작한 개들의 초기 세대(북한산관리사무소의 들개 포획 기록도 2007년 처음 등장)라고 원정자는 짐작했다. 도토리 줍고 버섯 따러 북한산을 오르내렸지만 뉴타운개발 전까지 산에서 번식한 개를 본 적이 없었다.

 

‘타운’은 골라내고 솎아내며 팽창했다. 2002~2006년 지정된 서울시 26개 뉴타운 사업지구(23.8㎢)는 지난 30년(1973~2003년) 동안 완료된 주택재개발 시행 면적(10.1㎢)의 2.4배였다. 내몰린 사람(2008년 당시 사업지구 내 35만가구 중 23만가구(69%)가 세입자)과 버려진 개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도시가 품지 않는 인간과 개의 운명은 다르지 않았다. 거부당한 인간과 거부당한 개가 밀려나고 밀려올라가 산에서 만났다.

 

원정자가 풀을 뽑다 말고 도시락을 먹으면 굶주린 개들이 혀를 빼물고 입맛을 다셨다. 하루 일을 마친 뒤 원정자는 일부러 남긴 밥덩이를 산에 두고 내려왔다. 멧돼지와 싸우다 죽은 개들을 산속에서 발견했을 땐 나뭇잎으로 덮어주며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 개들의 후손이 서로 섞여 새끼를 낳고 다시 여러 세대를 건너며 종류와 출신지를 알 수 없는 흰다리 무리로 이어졌는지도 몰랐다. 원정자는 버려진 개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도 개들도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했다.

 

 

개발 과정에서 버려져 야생화된 개들
개발에서 배제돼 밀려난 철거민들
들개들을 포획하는 마취총 전문가
그들이 얽힌 ‘우리 세계’의 이야기

 

북한산에서 바라본 은평뉴타운. 2002년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뉴타운 개발 사업은 한국 사회에 들개를 퍼뜨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권도연 작가
북한산에서 바라본 은평뉴타운. 2002년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뉴타운 개발 사업은 한국 사회에 들개를 퍼뜨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권도연 작가

 

버려진 개와 내몰린 사람

 

사진작가 권도연(39)의 발 앞으로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이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권도연이 눈을 들어 개들이 굴러오는 쪽을 올려다봤다. 짱짱이가 사는 바위굴에서 갓 태어난 새끼들이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권도연은 2년 가까이 흰다리 무리를 쫓으며 그들의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가 놓아둔 먹이를 먹으며 흰다리 무리는 오랫동안 숨어서 그를 지켜봤다. 어느 날부터 무리가 권도연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조금씩 그와 거리를 좁혔으며, 가끔 곁에 앉아 놀기도 했다.

 

짱짱이의 새끼들이 울며 엄마(아빠는 흰다리)를 찾았다. 권도연이 나뭇잎으로 새끼들을 감싸 굴 앞에 놓아줬다. 새끼들은 미끄러진 것이 아니라 선택받지 못한 것이었다. 짱짱이가 새끼들을 입으로 물어 바위굴 밖으로 버렸다. 새끼 8마리 중 살아남을 만한 한마리만 남기고 도태(2018년 7월)시켰다. 권도연이 올려준 새끼들도 다시 밀어 떨어뜨렸다. 낙엽에 묻힌 새끼들 위로 파리떼가 날아와 달라붙었다. 구더기가 하얗게 슬어 새끼들의 진을 빨았다. 짱짱이의 행동과 새끼들의 죽음을 사자털이 멀찍이서 지켜봤다.

 

짱짱이의 선택은 산에서 태어난 개들이 산에서 대를 잇는 방식이었다. 산에서는 강한 개들만 굶어 죽거나 영역 다툼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미들은 생후 3개월쯤 되면 새끼들을 독립시켰다. 먹이가 한정된 국립공원은 새끼들을 위협하는 야생의 공간이었다. 어미와 떨어진 새끼들을 까마귀들까지 떼로 덤비며 낚아채려 했다. 새끼들은 부모의 도움 없이 혹독한 생존경쟁과 인간의 추적을 이겨내야 성견으로서 한 무리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죽지 않고 어른이 된 개들은 대부분 대형견들이었다. 크고, 강인하고, 늠름했다. 덩치가 작아도 도시를 떠돌며 살 수 있었지만 덩치가 작아선 정글 같은 산속에서 버티지 못했다. 번식도 살아남은 개들만의 특권이었다.

 

찡찡이가 검은입에게 다가가다 흰다리에게 물렸다. 놀란 찡찡이가 찡찡거리며 물러섰다. 검은입도 찡찡이의 접근을 거부했다. 검은입을 향한 찡찡이의 구애는 흰다리의 방해로 언제나 실패했다. 대장 흰다리는 무리의 암컷들과 모두 교미했다. 흰다리가 검은입과 교미 중일 때 멀리서 지켜보던 찡찡이가 다가와 힘들어하는 검은입의 귀를 핥았다. 흰다리-검은입 사이에 끼어들지 못한 찡찡이와 머지않아 짝을 이룰 단비(검은입 포획 전 출생)가 그때 잉태되고 있었다.

 

타앙.

 

몇달 뒤 총성 한발이 북한산을 울렸다. 짧은 비명이 뒤따랐다. 흰다리는 자신만만한 대장이었다. 활달하고 겁이 없었다. 무리를 이끌고 등산로 주변으로 자주 나타났다. 혼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자털과 짱짱이가 대장을 따라 사람들에게 노출되곤 했다. 봉우리 울창한 산을 쏘다니던 흰다리가 어느 날(2018년 10월) ‘그 남자’가 쏜 마취총에 맞았다. 무리 동료들과 달빛을 받던 봉우리 기슭에서 흰다리는 포획됐다. 검은입도 같이 잡혀갔다.

 

 

뉴타운은 들개 확산의 결정적 계기
2002~2006년 지정 26개 사업지구
1973~2003년 완료 재개발의 2.4배
사업지구 거주 가구 69%가 세입자

 

사자털은 목에 멋진 갈기털을 갖고 있다. 흰다리가 포획됐을 때 그의 새끼를 임신한 상태였다. 권도연 작가
사자털은 목에 멋진 갈기털을 갖고 있다. 흰다리가 포획됐을 때 그의 새끼를 임신한 상태였다. 권도연 작가

 

“들개는 인간의 다른 얼굴”

 

‘겁을 내면 달려든다.’

 

동물을 잡으려면 기싸움에서부터 이겨야 한다는 문장은 ‘그 남자’ 채만철(가명·68)이 엽사로 산 50년 동안 마음에 새겨온 철칙이었다. “들개에겐 자기보다 센 놈인지 약한 놈인지를 구분하는 제6의 감각이 있다”고 그는 믿었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뒷산(295m 높이의 안산)에서 잡은 50㎏짜리 개도 그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도망쳤”다. “너무 커서 소방관들도 뒷걸음치게 만든 개”였다.

 

채만철은 북한산관리사무소와 서울시가 들개 포획을 위탁한 마취총 전문가였다. 야생화된 개들은 미끼 물린 포획틀로는 잡히지 않았다. “1세대 유기견은 배가 고프면 틀 속으로 기어들어갔지만 산에서 태어난 개들은 자라는 동안 포획틀의 정체를 학습”(북한산관리사무소)했다. 틀을 처음 보는 새끼들이 주로 걸려들었다.

 

2015년부터 증가한 서울시의 들개 포획 건수(2014년 8마리→2015년 32마리→2016년 115마리→2017년 153마리→2018년 154마리)는 채만철의 ‘솜씨’ 덕이었다. 사거리가 짧고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주사기로 개의 엉덩이를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엽사는 그뿐이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들개가 목격되는 전국 자치단체들로부터 포획 요청이 잇따랐다. ‘등산로나 동네에 들개가 나타나 무섭다’는 민원을 전달받으면 채만철은 잡을 뿐이었다. 그동안 붙잡은 개체 수를 굳이 세지 않았고, 포획한 개들 중 흰다리와 검은입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발견 장소: 북한산 ○○봉우리 인근. 특이사항: 양 귀 쫑긋. 코 검정. 눈곱. 경계 심함. 겁 많음.”

 

지난해 10월 서울시 유기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흰다리의 사진이 떴다. 위엄 넘쳤던 대장의 모습 대신 겁 먹은 얼굴의 흰다리가 철장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20일 뒤 흰다리는 안락사(포획 뒤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됐다.

 

인간 세계는 배제된 존재들을 위험시했다. 인간에게 버려진 개들이 산으로 올라가 생존력을 확보하는 순간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몰려 박멸 대상이 됐다. “들개는 인간의 다른 얼굴”(동물권행동 카라 전진경 상임이사)이었다. ‘인간들 밖’으로 밀려난 존재였지만 인간을 반사하는 거울로서 ‘인간들 안’에 있었다.

 

흰다리와 검은입이 잡혀가자 무리도 해체됐다. 흰다리의 새끼를 임신한 사자털은 혼자 떠돌았고, 짱짱이와 찡찡이는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권도연은 자괴감을 느꼈다. 그는 본래 흰다리 등을 무리가 아닌 개별 강아지 시절부터 만났다. 그가 주는 먹이를 먹으며 그의 뒤를 따르던 각각의 새끼들이 성견이 된 어느 날 한 무리가 돼 그의 앞에 나타났다.

 

“내가 무리 형성의 계기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잡혀가는 일도 없었을까.”

 

찡찡이도 채만철의 마취총에 맞았다. 엉덩이에 주사기를 꽂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텐데 채만철의 눈에 띄지 않았다.

 

채만철은 “호랑이와 표범 빼곤 다 잡아봤”다. 그의 들개 포획은 스무살 때부터 단련해온 “사냥꾼의 본능적 감각”에 의지했다. 포획의 적기는 겨울이었다. 수풀이 제거돼 마취총을 맞고 도망간 개를 찾기 좋았다. 들개 민원이 발생하면 주변 산 위로 올라가 “먹이(냄새가 강렬한 고등어 통조림)를 뿌리며 포획에 유리한 장소로 유인”했다. “나무가 듬성해 시야 확보가 쉬운 곳을 택해 매복”했다. ‘목사냥’(동물의 이동경로를 파악해 목을 지켜 잡는 방식)은 기다림이었다. 마취총 사거리(최대 40m) 안에 개가 들어올 때까지 밤새 끈질기게 기다렸다. “우두머리가 나타나면 다른 개들이 짖고, 핥고, 배를 깔았”다.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무리의 체계를 허물 수 있었”다. 표적을 발견하면 즉시 쐈다. “허락된 시간은 단 1초”였다. “개보다 아래쪽에 자리 잡고 위를 보며 사격”했다. 빗나가더라도 개가 산 위로 뛰어야 추적이 용이했다.

 

“나는 개돼지 백정이오.”

 

‘그 일’이 있고부터 채만철은 자조적인 말로 자기소개를 했다. 지난해 9월 월드컵공원(마포구 상암동)에서 잡은 개 4마리 중 한마리가 쇼크사(마취총을 맞은 채 달아나다 심장압박으로)했다. 비난 여론이 일었고 마취총 포획을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있었다. 채만철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고의로 죽였다는 이야기까지 듣자 낙담해” 포획 작업을 그만뒀다. 그는 “짐승은 무섭지 않았지만 여론은 무서웠”다. “사람도 만나기 싫어 강원도 양구에서 멧돼지만 잡고 지냈”다. 채만철이 일을 중단하자 올해 서울시의 들개 포획 건수는 급감(2018년 154마리→2019년 7월말까지 44마리)했다. 채만철도 개들의 운명이 안쓰러웠다. 그가 잡은 개들은 대부분 입양되지 못하고 안락사됐다. 그래도 “사람의 안전이 개보다 우선”이란 생각은 변함없었다.

 

 

존재하나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의
처지가 왕따 들개 찡찡이에게 투영
도시가 지우고 싶은 ‘얼룩’이지만
지우려 할수록 선명해지는 존재들

 

찡찡이가 눈 덮인 산속을 가로지르고 있다. 권도연 작가
찡찡이가 눈 덮인 산속을 가로지르고 있다. 권도연 작가

 

지우려 할수록 선명해지는

 

닦아내려 해도 말끔하게 닦이지 않는 얼룩 같았다.

 

채만철의 마취총을 맞고 모습을 감춘 찡찡이가 몇달 뒤 북한산 B봉우리에 살아서 나타났다. 회색뾰족귀(수컷)가 다가와 찡찡이를 위협했다.

 

B봉우리는 뾰족귀 무리가 지배했다. 무리의 대장인 흰뾰족귀는 수컷을 바꿔가며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다. 수많은 새끼를 낳아 A·B봉우리 들개들의 어머니로 통했다. 흰다리도 흰뾰족귀의 새끼로 추정되기도 했다. 시베리안허스키를 닮은 회색뾰족귀는 최근 몇년 동안 흰뾰족귀의 짝으로서 곁을 지키며 행동대장 몫을 했다. 싸울 일이 생기면 무리를 대표해 싸웠다. 두 뾰족귀의 새끼 중 한마리가 지난해 겨울 그들의 은신처인 낭떠러지 바위굴 앞에서 얼어 죽었다.

 

B봉우리엔 탁 트인 풍광을 보며 쉬거나 점심밥을 먹으려는 등산객들이 몰렸다. 들개들이 음식을 얻어먹기 좋은 장소였다. 힘세고 서열 높은 개들이 B봉우리를 차지했다. 흰다리도 B봉우리로는 올라가지 않았었다. 뾰족귀 무리는 찡찡이의 출현을 ‘침범’으로 간주했다. 회색뾰족귀가 찡찡이를 물어 쫓아냈다. 회색뾰족귀에게 쫓겨나길 되풀이하면서도 찡찡이는 먹이를 얻으러 B봉우리에 계속 접근했다.

 

살아 돌아온 찡찡이는 더 이상 찡찡거리지 않았다. 찡찡이에겐 지켜야 할 가족이 생겼다. 흰다리와 검은입의 새끼 단비가 곁에 있었다. 찡찡이가 어른이 된 단비와 낳은 새끼 두마리도 함께였다. 무리의 대장과 그 짝이 잡혀간 뒤 무리의 최약자였던 찡찡이가 그들의 새끼를 지켰다. 괄시 받던 개가 가장 오래 살아남아 보호자 노릇을 했다.

 

찡찡이 가족이 통과한 철조망 근처에 빈 고등어 통조림 깡통이 떨어져 있었다. 위험이 가까이 왔다는 신호였다. 좀 더 안전한 은신처를 찾아야 했다. 찡찡이가 단비와 새끼들을 이끌고 산을 가로질렀다.

 

산기슭에 안긴 절이 저녁 타종을 했다. 어둠이 내리는 산속에서 개들이 종소리에 맞춰 컹컹거렸다. 찡찡이도 따라 짖었다. 밝고 맑은 도시는 혼자 힘으로 밝고 맑을 수 없었다. 더럽고 위험한 것들을 몰아넣은 땅이 있어야 그들 없는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도 완성됐다. 들개들은 도시가 지운 존재들이었지만 도시가 그들을 지우려 할수록 그들의 존재는 선명해졌다.

 

인간들에게 쫓겨 올라간 깜깜한 산에서 들개 찡찡이가 인간들의 불 밝은 도시를 내려다봤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정체 없는 유령 같은 존재

 

 

한국에 종(種)으로 자리 잡은 들개는 없다. 동물권 단체 등은 ‘들개’가 인간의 유기 책임을 개에게 돌려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는 용어라며 ‘야생화된 유기견’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자란 개는 ‘법적 정체’가 없다. 주인이 있는 유기견(동물보호법 적용)도 아니고 유해야생동물(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적용)도 아니다. 유해야생동물처럼 사살할 수 없어 구조·포획한 뒤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시킨다.

 

정확한 개체수도 파악되지 않는다. 북한산관리사무소는 현재 산속에 99마리가 서식 중이라고 추정했고, 서울시는 자치구(북한산 서식 개체 포함) 안의 잡히지 않은 개를 200여마리로 추산했다. 서울시 등 전국 자치단체들은 “위협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있으므로 발생한 개체들은 모두 포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근본적으로는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는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무엇을 야생화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지만 합의된 적도, 연구된 적도 없다”며 산의 개들을 중성화해 인간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돕는 보호소 설치를 요구한다.

 

버려진 개들이 산으로 올라간 시기, 발생 원인이 된 도시 개발과의 관계, 세대 분화 정도,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은 국내에서 체계적으로 조사된 적이 없다. 현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환경부 용역으로 보고서(‘산에 사는 유기견 서식 실태 및 관리 방안’)를 쓰고 있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자료와 언론 보도 등을 취합하는 정도다.

 

 

 

 

 

 

▶2회 ‘유기의 기원’에선 개들이 버려진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 도시 밖으로 세번째 밀려나는 원정자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찡찡이는 무리의 대장 흰다리와 그 짝 검은입이 잡혀간 뒤 그들의 새끼인 단비(오른쪽)를 돌봤다. 단비와의 사이에서 새끼도 낳았다. 권도연 작가
찡찡이는 무리의 대장 흰다리와 그 짝 검은입이 잡혀간 뒤 그들의 새끼인 단비(오른쪽)를 돌봤다. 단비와의 사이에서 새끼도 낳았다. 권도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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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9941.html?_fr=mt1#csidx271cebeee4853959329eb9dfb74d3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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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베에 면죄부 주는 건 절대 안 돼!”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 ‘문희상 안’ 저지 활동에 나서

아베규탄 부산시민행동 소속 단체들이 ‘문희상 안’을 막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12월5일 부산지역 18개 국회의원 사무실 앞 1인시위를 시작으로, 국회의원에 항의서한 쓰기, 공개질의서 보내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문희상 안은 한일 경제갈등의 씨앗이 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희상 국회의장이 낸 법안으로, 기본 골자는 ‘한국기업의 기부금, 일본기업의 기부금, 그리고 국민성금을 모아 기억인권재단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주자’는 것이다. 이 안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이 빠져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기억인권재단’에 출자되는 일본기업의 기부금은 말 그대로 ‘기부금’이지 배상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일본에게 영원한 면죄부를 주는 법안이라는 것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만약 이 안이 입법되면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등 모든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이 조기 소멸한다”고 했다. 이나영 교수(정의기억재단 이사)는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책임과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은 사라져버린다. 왜 가해국 일본정부가 고민하고 요청해야 할 사안을 한국 국회가 나서서 구걸한단 말인가”라고 참담해 했다. 강제동원의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는 “나 거지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무시하는 식으로 그렇게는 안 받을랍니다”라고 절절하게 말했다.

입법되어선 안 될 ‘문희상 안’을 막기 위해 아베규탄 부산시민행동 소속 단체들이 나섰다. 입법에 대한 찬반 의견을 던질 수 있는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뜻을 전하기 위해 국회의원 사무실 앞 1인시위, 공개질의서 전달, 항의서한 쓰기 등의 계획을 세웠다.

▲ 부산 서·동구 유기준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1인시위 하는 김종기 민주공원 관장(왼쪽), 부산 기장군 윤상직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1인시위 하는 지은주 부산겨레하나 공동대표(오른쪽).

5일, 아베규탄 부산시민행동 소속단체 대표와 회원들은 부산지역 18개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일본에 면죄부 주는 문희상 안 절대 안 돼!” 1인시위에 나섰다. 1인시위 팻말에 담긴 문구를 유심히 살피기도 하고, “추운데 고생 많다”면서 응원의 인사를 전하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최근의 국회 상황을 두고 무능한 국회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는 시민들도 더러 있었다.

정한철 부산겨레하나 회원(전교조 부산지부 전 지부장)은 사상구 장제원 의원 사무실 앞에서 1인시위 후 사무실을 방문했다. 담당보좌관에게 문희상 안을 설명하고 “장제원 의원이 반드시 국민을 위한 판단을 해달라”는 의견을 전했다.

▲ 장제원 의원 사무실 보좌관에게 문희상 안을 설명하는 부산겨레하나 정한철 회원(오른쪽).

1인시위에 참가하지 못한 회원들은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지역 국회의원에게 항의서한을 보내는 활동에 참여했다. “짧게라도 국회의원들에게 뜻을 전달할 수 있어 좋다”는 소감, “항의서한을 보고 국회의원들이 반드시 제대로 된 판단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문희상 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공개질의서도 전달했다. 오는 10일까지 답변을 요청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1인시위에 참여한 한 회원은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듣는지, 안 듣는지도 모르는 국회의원 300명에게 맡겨야 한다는 게 억울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올 한해 국회 파행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대 국회가 마지막까지 역사의 오점을 남기지 말라며 ‘문희상 안’에 대한 제대로 된 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렇게 되라고 그 뜨거운 여름 반아베 촛불을 든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뜨거웠던 10만 촛불의 뜻을 잇기 위해선 ‘문희상 안’이 아닌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김유란 담쟁이기자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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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향배는 차기 한국당 원내대표 손에?

한국당서 '협상론' 솔솔…민주, 10일까지 시한
2019.12.06 14:33:00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9일 국회 본회의를 공개 제안하며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5당 협의체인 '4+1' 채널을 통한 예산안·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유한국당 차기 원내대표가 9일에 선출되는 만큼, 민주당이 차기 한국당 원내지도부의 협상 의지를 판단해 본 후 막판 한국당과의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다음 주 월요일(9일) 본회의 개최를 제안한다. 국회의장에게 간곡히 요청드린다"며 "월요일 오후 본회의가 열리면 당면한 예산안 처리를 필두로 검찰개혁·정치개혁 법안, 민식이법과 유치원3법 등 민생법안들이 함께 상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다만 "새로 선임되는 한국당 원내대표가 '4+1' 합의 내용을 존중하고 함께 추가 협상에 나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와 관련, 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한국당과 '추가 협상'을 하더라도)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는 다 상정하고 통과시킨다는 것"이라며 "처리 순서는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 이런 순서"라고 못박았다.  

이 수석부대표는 예산안은 9일에 상정하더라도 한국당 새 원내지도부의 태도에 따라 다른 법안들은 추가 협상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그런데 그것(시한)은 늦어도 10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당이) '연동형을 수용하겠다'는 정도(의 변화)가 나오면 협상이 완전히 바뀌지 않겠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당 차기 원내대표 선거는 현재 4파전 양상이다. 구 친박계 주자로는 유기준·윤상현 의원이, 비박계에서는 강석호·심재철 의원이 출사표를 냈다. 대여 강경론이냐 협상론이냐는 노선상의 문제를 놓고 보면, 강 의원이 가장 '협상' 쪽에 기운 태도를 보이고 있고 유 의원이 가장 강경하다.  

강 의원은 출마선언에서 "협상을 통해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도 모자란 판에, 협상 주도권은 고사하고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손에 얻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유 의원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패스트트랙 좌파독재 장기집권 시도를 철저히 막아내겠다"며 "패스트트랙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윤상현 의원은 "투쟁, 협상, 전략에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을 압도할 수 있다"고 양 측면을 모두 강조하면서도 "저는 일 잘한 원내수석부대표였다. 이기는 협상의 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해 미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나경원 원내지도부 임기 연장 불가를 주도한 황교안 대표의 의중이 원내대표 선거의 관건이 되고 있는 가운데, 황 대표와 가까운 성향의 초·재선의원 모임 '통합과 전진'에서 윤 의원 지지 발언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황심'이 윤 의원 쪽으로 기운 게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황 대표도 전날까지는 "이 정권과 싸워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강력한 투쟁력을 가진 원내대표가 선출되기 바란다"고 '투쟁' 쪽에 방점을 찍었으나,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는 "정치의 생명 중 하나는 협상"이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황 대표는 서울대 특강 후 기자들과 만나 "잘 협상을 하고, 기본적으로 투쟁력이 있어서 이 정부 정책을 고쳐나갈 수 있도록 잘 이겨내는 분이 원내대표가 돼서 원내 투쟁을 잘 이끌어 가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황 대표는 이날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도 "원내대표는 투쟁을 강하게 하면서도 경우에 따라 협상을 통해 주고받는 것도 필요하다"며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한 협상의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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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가 윤석열을 잡는 유일한 방법… 문재인 대통령이 숨겨 놓은 묘수가 있었다.

임병도 | 2019-12-06 08:58: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은 시대적 요구입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국민은 국격에 걸맞은 인권과 민생 중심의 법무행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제안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함께 해결해 가자는 무거운 제안으로 생각합니다.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해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이후 50여 일 만에 판사 출신 5선 정치인 추미애 의원을 내정했습니다.

추 내정자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 시대적 요구이자,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을 법무장관으로 내정한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추 내정자는 “제가 20여 년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한 번도 제 사심을 실어보거나 당리당략에 매몰돼 처신해본 적 없다”며 “사심 없이 법무행정을 해낼 것을 기대하고 추천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추미애 내정자는 윤석열 검찰 총장과 어떻게 호흡을 맞춰 나갈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개인적 문제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며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이나 대립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민주당을 탈당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제가 한 번도 당을 옮겨본 적이 없다”라며 “당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추 내정자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장악한 검찰을 되돌릴 수 있는지, 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검찰 요직을 장악한 윤석열 사단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하루 뒤인 7월 26일, 검찰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 인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대검찰청 검사장급 인사 7명 중 3명이 ‘윤석열 사단’ 검사들이었습니다. 이어서 7월 31일 이루어진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서도 윤석열 사단이 요직을 차지했습니다.

윤 검찰총장과 함께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23기 동기’인 송상현 서울남부지검장,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 등도 검찰 최고 실세로 떠올랐습니다.

‘윤석열 사단’이 검찰 요직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가 윤 검찰총장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윤 검찰총장이 검찰개혁 대신 조직을 위해 칼을 휘두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윤석열의 검찰은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을 향해 과잉 수사를 하거나 별건 수사를 하는 등 적폐검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패스트트랙 당시 법을 위반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의적으로 청와대를 압수수색하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윤석열 검찰총장 해임을 청원하고, 여전히 거리에서 검찰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나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해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남아뒀던 검사장급 인사 6명, 내년 2월 검찰 정기인사 예정

지지부진했던 검찰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가진 힘의 원천을 잘라내야 합니다. 바로 요직을 차지한 ‘윤석열 사단’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31일 검찰 인사를 단행하면서 고검·검사장 등 고위 간부직 6자리를 비워 뒀습니다. 검찰에게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인사를 통해 힘을 빼겠다는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내년 2월은 검찰 정기 인사가 이루어집니다. 남아 있던 검찰 고위급 간부 인사와 내년 정기 인사를 주도할 막강한 인사권이 추미애 법무장관 내정자에 주어진 칼입니다.

추 내정자가 인사권을 행사할 명분은 확실합니다. 검찰 개혁의 부실함, 윤석열 사단이 장악한 비정상적인 검찰 내부 상황, 수사의 불공정성 등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의원을 법무부장관으로 내정하자, 경향신문은 ‘단독’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충심에는 변화가 없고,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가 악역을 맡은 것”이라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국민들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요구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충심이 아닙니다. 그동안 쌓이고 쌓여 썩은내가 진동하는 부패한 검찰의 개혁입니다.

추미애 법무장관 내정자가 검찰개혁을 제대로 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과거에도 수차례 검찰개혁을 시도했지만, 매번 조직의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추미애 내정자가 판사와 당 대표, 5선 정치인의 경험을 얼마나 잘 녹여 검찰과 법무부를 개혁할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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