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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 도망가는 건가?" 건강이상설 전에 생긴 일

 

[박철현의 도쿄스캔들④] 이류국가 위기에 놓인 일본, 그리고 설상가상

본문듣기 등록 2020.08.19 08:17 수정 2020.08.19 08:17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연합뉴스

 
"관저는 이미 이마이 비서관이 잡았죠. 역설적이긴 하지만 또 이것 나름대로 관료의 역습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고. 하하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제2파가 창궐하고 있는 도쿄의 백중절 연휴 기간에 일본 정계의 브로커 K씨를 만났다. 그는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 업체를 소개시켜 주고, 계약이 성사되면 업체로부터 커미션을 받는 일을 한다. 하지만 올해 들어 지금까지 관례상 용인되었던 이 로비스트 일이 엉망이라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아베노마스크 때문이다. 기백 억 엔의 예산이 투입된 마스크 사업자 선정에 '유스비오'라는 유령 업체가 들어가는 바람에 지금까지의 관례가 송두리째 깨져 버렸다.
 
"마스크 이후에 한창 문제가 됐던 지속화 급부금 사건. 그거 맡은 서비스디자인추진협의회가 20억엔 중간에 빼돌렸다고 말이 많았는데 그런 게 지금까진 관례였거든요. GO TO 트래블 캠페인 할 때도 니카이 간사장 쪽에 정치헌금 흘러가고 그런 것들 다 용인되는 건데. 이제 끝났다고 봐야죠. 근데 야당 의원들도 그런 거 다 알고 있다는 거죠. 실제로 민주당 정권 잡았을 때도 똑같이 그랬거든요. 지금까지 전혀 몰랐단 식으로 저러는 거 보면 내 입장에서 좀 코미디 같아요."

그는 익명이라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털어놓겠다고 했다. 웬만하면 이런 이야기 잘 하지 않는 사람이다. 미리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술술 말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분하거나 조기 총선거를 확신하기 때문인 듯했다. 아예 그는 총선거 날짜를 못 박기도 했다.
 
"9월말에 총해산하고 10월 25일 선거할 겁니다. 내기해도 좋아요."

왜 구체적인 날짜까지 명시할까. 이유는, 중의원 총선거의 거시적 예측이 쉽기 때문이다. 언론과 집권여당 내부에서 '포스트아베' 이야기가 연일 등장하고, 현 내각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나오면 총리대신은 국민의 뜻을 묻겠다며 내각을 총해산하고 중의원 총선거를 실시한다. 최근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이 다시 합당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설상가상으로 아베 신조 총리의 건강이상설까지 겹쳤다. 스가 관방장관은 총리의 건강이상은 없다고 했지만, 총리의 당내 측근으로 분류되는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은 16일 후지TV에 출연해 "코로나 대책 등으로 쉼 없이 달려와 지금 피로가 극도로 누적된 총리를 쉬게 해야 한다"는 이례적인 발언을 했다. 다음날 아베 총리는 게이오대학병원에 하루 동안 검사입원 했다. 스가 관방장관은 정기적인 검진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발언 도중 '추가' 검진임을 언급해 의혹을 자아냈다. 보통이라면 정기검진에서 뭔가 발견돼 추가로 검진을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도 8시간에 걸친 추가 검사이니 아베 총리의 지병인 대장염 관련 증세가 악화된 것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러한 연유들로 인해 올해 안의 총선거는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날짜로 내기를 한다. 실제로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입헌민주당의 모 지역본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일단은 10월말 혹은 11월초를 총선거로 예상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추락하는 아베에겐 이유가 있다

돌이켜보면 정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아베 정권은 급격하게 망가졌다. 원래대로라면 도쿄올림픽이 성대하게 마무리될 시기다. 물론 코로나19가 없더라도 엄청난 폭염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것 같지만, 그래도 올림픽이다. 치를 수만 있었다면 아베 정권의 아름다운 마무리, 혹은 한 번 더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일군의 사람들은 아베 총리에게 복이 없다고 한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바이러스와 잇따라 터진 자연재해를 만났기 때문이라며 불운으로 퉁치려고 하는 이들도 매우 많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아베 총리가 지난 6월 17일 마지막 기자회견 이후 국회가 휴회에 돌입하자마자 49일간 매스컴 앞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그리고 49일 만에 참석한 두 군데의 원폭 희생자 영령식에서 그가 읊은 추도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지명만 제외하고 똑같다는 것, 그런 부분과 함께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책에 대한 기자단 질의응답은 단 4분에 그쳤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더 질문하려는 기자가 경호원들에게 거친 제지를 당한 것, 오죽하면 "총리! 도망가는 겁니까?"라는 기자의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끝끝내 아베가 도주한 것에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 (나가사키 교도=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9일 마쓰야마마치(松山町) 평화공원에서 열린 나가사키 피폭 75주년 희생자 위령 및 평화 기원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8.9 ⓒ 연합뉴스

 
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마이 다카야(今井尚哉) 비서관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파워게임이 존재한다. 둘 다 2012년 제2차 아베내각 시기에 관저에 발탁됐다.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인 이마이는 총리대신 정책담당 비서관, 스가는 관저의 2인자인 내각관방부 장관직을 맡았다. 이 둘의 협업으로 전후 최대, 최강의 관저정치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애초 300명이었던 관저의 인원이 1200명까지 불어났다. 그 대부분은 내각정보조사실 인원의 확충이었고 이 인사권을 가진 내각인사국의 권한이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에는 내각인사국을 관리하는 공무원제도개혁담당대신 직책이 폐지됐다. 이로써 내각인사국장을 제도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내각관방부 장관, 즉 스가 관방장관이 되었다. 현재 내각인사국장을 맡고 있는 경찰관료 출신의 스기타 가즈히로 역시 내각관방부 부장관 출신이다.

스가가 관방부의 책임자로서 컨트롤하고 각종 정책은 이마이 비서관이 주축이 돼 내각정보조사실 위주로 꾸려 나가면 될 것 같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평시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베일에 감춰져왔던 이마이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거의 모두가 반대했던, 특히 스가 관방장관이 맹반발을 했다는 3월 2일의 '일제휴교조치' 발표는 이마이 비서관의 작품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코로나 이전부터 깨졌다고 한다. K씨가 말한다.
 
"지금 아베 총리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가장 큰 스캔들은 '벚꽃을 보는 모임'이에요. 이건 검찰이 수사 조금만 하면 무조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할 수 있으니까요. 법조계 인사들 수백 명이 고발했으니 수사를 안 할 수가 없죠. 그걸 막아줄 구로가와 도쿄고검장도 마작 문제로 사퇴했으니까 아베 총리를 지켜줄 사람이 없어요. 근데, 웃긴 건 지금까지 없다고 폐기했다고 그렇게 우기던 벚꽃 모임 자료가 올해 1월 21일 갑자기 나왔다는 겁니다. 그것도 3년분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생생한 자료가 말입니다."
 

▲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 연합뉴스

 
그는 이 자료가 스가 관방장관 쪽에서 나왔다고 확신했다.
 
"벚꽃을 보는 모임을 기획한 사람이 이마이 비서관인데, 이게 총리 마음에 아주 들었나 봐요. 또 아베 총리는 관방부의 파워가 날이 갈수록 세지는 것, 차기 총리로 스가 장관의 이름이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 위기감도 느꼈죠. 원래는 세 번만 하려고 했지만 아베노믹스니 뭐니 해서 계속 잘 풀리니까 한번 더하고 싶어진 거죠.<br style="box-sizing: border-box;" /><br style="box-sizing: border-box;" />스가 장관이 모리토모 학원부터 줄곧 터져나온 스캔들 대처도 못하니까, 오히려 그런 스캔들은 관료들이 다 도와줬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마이 비서관이 뒤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 스가 장관이 삐딱하게 나오니까 거슬린 거죠. 그런데 그걸 스가가 모르나? 그 백전노장이. 그래서 스가 쪽이 일부러 그 3년치 자료를 누설했다는 거죠. 이건 자기한테 절대 화살이 날아올 일이 없는, 순수한 아베 총리 개인의 스캔들이니까요."

하긴 잡초의 생명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스가 관방장관이다. 그와 아베 총리의 사이가 갑자기 틀어진 것이 아니라, 아베 총리가 이마이 비서관의 의견을 중용하고 그를 가까이 두는 정권말기적 행태를 보이자 오히려 스가 관방장관 쪽에서 아베 총리를 '손절'했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왜 아베 총리는 이렇게까지 이마이 비서관을 신임하는 것일까. 아베 총리는 내각의 경우 정치인 출신의 대신, 부대신, 정무차관이 참여하는 3역회의 정례화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관저를 보면 각 내각부서의 엘리트 관료들을 대규모로 발탁해 내각정보조사실을 키웠다. 한국으로 치자면 행정부의 엘리트 관료들을 청와대로 모조리 끌어와, 취임 때보다 세 배 이상의 인원을 모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내각정보조사실은 국정원과 국가안보실의 역할도 겸임한다. 가히 일본을 운영하는 초엘리트 규모로 키웠다는 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신문기자>에 이 기관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나오는데, 왜 총리가 이런 관료들에 의존하게 됐는가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케학원 스캔들이 등장한다. 즉 촌탁(忖度)의 악영향이다.
 

▲ 2019년 6월 이마이 비서관은 총리대신 보좌관도 겸직하게 돼 명실상부한 최측근으로 자리잡게 됐다. ⓒ 일본 내각부

 
'총리의 마음 헤아리기'... 촌탁이 불러온 재앙

촌탁은 윗사람의 심중을 헤아려 미리 아랫사람이 알아서 하는 언동을 뜻한다. 2012년 12월 자민당 및 아베 총리가 다시 정권을 잡게 되면서 관료들은 함성을 질렀다. 민주당의 관료경시에 질려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권 시절의 관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공연한 사보타지를 일삼았다. 민주당은 정치와 관료를 분리해서 생각했고, 그 전까지 유명무실했던 '정무차관' 제도를 본격적으로 활용해 관료의 꽃이자 최고 정점인 사무차관을 배제한 3역회의를 신설했다.

지금 아베 총리도 이 제도는 그대로 활용하고 있지만 관료들에 대한 대우 자체는 당시와 비교도 못할 정도로 좋아졌다. 일단 출세를 나타내는 관저 및 내각관방부 관료인원이 300명에서 1200명으로 대폭 늘어나지 않았는가. 민주당의 지옥에서 겨우 탈출한 관료들의 마음가짐은 일단 아베 정권에 우호적이었다. 특히 아베노믹스의 중추기관인 재무성과 경제산업성, 금융청 관료들이 그러했는데, 앞서 언급한 이마이 비서관도 이 경산성 출신이다.

아베노믹스가 진행되면서 관료들에 대한 처우가 확연히 달라지자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잘 하는 촌탁 문화가 자리 잡았다.

가케학원 스캔들은 2017년 5월 17일 <아사히신문>의 "가케학원의 새로운 학부 '총리의 의향' 문부과학성에 기록문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초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이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을 지속적으로 취재할 때 터져 나온 것이기도 해 이 둘을 합성한 '모리가케' 스캔들로 부르기도 한다.
 

▲ <아사히신문>이 입수해 최초 보도한 이후 구글닥스에 PDF 화일로 무료공개한 가케학원 관련 문부성 및 국가전략특구자문회의 관련문서들. ⓒ 아사히신문

 
모리토모 학원이 워낙 큰 사건이었던지라 가케학원 문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넘어갔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때 이미 관료들의 '촌탁'이 횡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때 일본을 이끌어나간다는 책임감으로 무장한 커리어 관료들의 자긍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행위들이 등장한다.

가케학원 문제는, 기본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일단 학부 설치에 관한 인허가이기 때문에 문부과학성의 소관이다. 문부성이 심사해서 결정하면 되는 것인데 왜 이렇게 복잡해졌냐 하면 '수의학부'에 대한 오랜 관행이 아베 정권 들어 급격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은 1966년 도쿄기타사토 대학에 수의학부 신설을 허가한 이후 근 50여 년간 수의학부 신설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5년 6월 다음과 같은 각의결정이, 그야말로 뜬금없이 내려진다.
 
"현재 기존의 수의사 양성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구상이 구체화 되면서 라이프 사이언스 등 수의사가 새롭게 대응해야 할 분야에 대한 구체적 수요가 명확해지고 나아가 그 수요에 대해 기존의 대학 학부로서는 대응이 곤란해질 것이 예상되므로 최근의 수의사 동향을 고려해가며 전국적 견지에서 검토한다."

이 각의결정이 내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1월 에히메 현의 이마바리 시가 지난 9년간 15차례나 요청해도 되지 않았던 '국가전략특별구역'으로 선정됐다. 그 해 11월 열린 내각부 산하 국가전략특구자문회의에서는 "광역적 관점에서 수의사 양성을 위한 학부가 존재하지 않은 국가전략특구에 수의학부를 신설할 수 있도록 한다"는 법개정을 결정했다.

2017년 1월 내각부는 특구로서 이마바리 시를 선정했고, 학교법인 가케학원이 운영하는 오카야마 이과대학 이마바리 캠퍼스에 수의학부를 신설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여기까지만 훑어봐도 지난 수십 년간 안 됐던 것이 불과 2년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마바리 시는 2007년부터 숱한 로비를 해왔음에도 국가전략특구 선정이 불가능했는데 아베 정권의 파워가 절정에 달하던 2016년 너무나 쉽게 통과됐다.

<아사히신문>의 보도는 이 일련의 사건이 마치 시나리오대로 왜 이렇게 잘 풀렸는가, 즉 '특혜의혹'을 제기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등장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총리의 의향'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문서였다. 총 11페이지로 된 이 문서를 보면 이미 2016년 10월 이전에 오카야마 이과대학 이마바리 캠퍼스에 수의학부를 신설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의학부 설치시기는 가장 빠르게 진행할 것이며, 농수산성 및 후생노동성 등의 관련부서는 내각부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문부성은 여타 부서들과의 연계는 신경쓰지 말고 최단시간내에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적혀 있다. 또한 당의 허가절차도 필요 없고 정무조사회장과 상담해서 처리하겠다고 되어 있다. 뭔가에 쫓기듯 매우 급박하게, 그리고 총리의 구체적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라 '의향'을 알아채고 하루빨리 처리하겠다는 기묘한 충성심이 행간마다 느껴진다.

이 기사가 나가자 스가 관방장관은 "출처를 알 수 없는 괴문서"라며 "답변할 가치를 못 느낀다"라고 특혜의혹을 강하게 부정했다. 또한 자료에 거론되는 문부성 및 농수산성, 후생노동성 등도 강력하게 부인했다.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에 비해 당사자들의 태도가 워낙 강력해 이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나 싶었다. 그러나 최초 보도 후 일주일이 지난 5월 25일 문부성 마에가와 기헤이 전 사무차관의 결정적 증언이 등장한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니 다들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있었던 일을 그럼 없던 것으로 하란 말인가. 이게 왜 괴문서냐. 내가 재직할 때 나도 봤던, 그리고 공유한 문서들로 확실히 존재했던 것들이다. 2018년 4월에 수의학부 신입생 모집한다는 결론을 세워놓고 역산해서 최단 스케줄을 짜보자면서 이건 관저의 최고레벨이 지시한 사항이고 총리의 의향이라고 분명히 들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br style="box-sizing: border-box;" />전달사항 같은 구체적인 문서들도 분명히 봤는데, 다들 왜 그러냐. 누구라도 총리의 의향이라고 그러면 긴장하고 압력을 느끼는 것 아닌가. 압력을 받지 못했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물론 당당하게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으므로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는 내 책임도 크다. 반성하고 있다."

그리고 며칠 후 마에가와 씨는 "이즈미 히로토 총리보좌관이 수의학부 신설을 빨리 진행하라고 몇 번이고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며 "그는 총리대신이 자기 입으로 그런 이야기를 직접 못하니까 내가 대신 전하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마에가와 씨가 말한 이즈미 보좌관은 국토교통성 관료 출신으로 2012년 10월 내각관방에 들어가 2013년 1월 총리대신보좌관으로 발탁돼 지금까지 보좌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이런 통화를 한 적이 없다고 부정하지만, 일련의 정황을 보면 이 스캔들은 총리가 직접 관여했다기보다 '총리의 의향'을 알아챈 관료출신 내각부 비서관, 보좌관, 자문회의 구성원들이 마치 돌격전을 치르듯 '촌탁' 전투를 성공시킨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사건에 대해 아베 신조 총리는 자신의 관여를 부정했고, 이름이 거론된 다른 사람들도 한결같이 모르겠다로 일관했다.

오카야마 이과대학 수의학부는 예정대로 2018년 4월부터 신입생을 받고 있으며 작년에는 한국인 유학생 면접점수를 0점으로 처리하고 전원 불합격시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참고로 아베 아키에 부인의 페이스북에 따르면 가케학원의 가케 고타로 이사장과 아베 총리는 엄청난 친구사이(大親友)인 것 같다.
 

▲ 아베 아키에 부인이 2013년에 올린 가케 고타로 이사장과 아베 신조 총리의 사이좋은 모습. "정말 친한 가케 씨와 함께. 릴랙스한 웃음띤 얼굴." 이라소 쓰여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2016년 이후 만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 아베 아키에 트위터

 
대략 짚어봤지만 일본사회의 쇠락 중 하나는 촌탁에서 드러나듯 관료들의 보신주의이다. 물론 이 보신주의 역시 '아베일강'의 장기집권 때문에 나온 현상이다. 영원히 바뀔 것 같지 않으니 안정을 도모하기 마련이고, 그 안정의 정점에 이마이 비서관으로 대표되는 관료출신 내각부 인사들이 스가 관방장관으로 대표되는 정치인 출신과의 경쟁에서 '표면적'으론 이긴 셈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해석일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했듯 스가 장관이 오히려 아베 총리를 손절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말이다.

두어 시간 동안 방역대책을 해가며 대화를 나눈 브로커 K씨가 헤어질 즈음 다시 말한다.
 
"아베 총리로는 뭐 안 되는 건 확실한데 문제는 앞으로 총리할 사람들도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니… 일본사회는 이제 미래가 없다고 봐야죠. 한국은 이것저것 시끄럽긴 해도 다이내믹하잖아요. 코로나 막는 것만 봐도 대단하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아베 총리는 훗날 일본을 이류 국가로 만든 지도자로 기록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땐 박 상이나 나나 이 세상에 없겠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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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이인영 장관을 만난 이유

[논평]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이인영 장관을 만난 이유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0/08/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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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18일 처음으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통일부는 이날의 만남은 해리스 대사가 이인영 장관의 취임 인사차 예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서울청사 내 장관실에서 약 30여 분 동안 비공개로 이뤄졌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언론 보도대로 해리스 대사가 취임 인사차 이인영 장관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본질상 이유는 미국이 남북관계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조급함이 드러난 것이다.

 

이인영 장관이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공식 출근하기까지 그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인영 장관은 지난 7월 21일 남북 회담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과의 대화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으며, 남북 간 물물교환 방식의 교역 등을 통한 남북교류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23일 당일에도 평양 특사로 간다면 “전면적인 대화 복원부터 하고 싶다”라며 “인도적 교류 협력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나아가 남북 간 합의하고 약속한 것들을 이행하는 데 지체 없이 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인영 장관은 제41대 통일부 장관으로서 공식 출근한 27일에는 “전략적 행보로 대담한 변화를 만들고, 남북의 시간에 통일부가 중심이 됩시다”라는 ‘취임 인사’를 통일부 직원들에게 남겼다.

 

미국은 그동안 ‘남북관계 속도조절론’을 주장해 오면서,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남북관계를 가로막아 왔다. 그런 미국이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앞서는 것을 우려해, 이인영 장관의 발언을 그냥 넘길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북이 ‘지금의 남북관계가 경색된 원인은 남측 정부가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시급히 한국을 ‘통제’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남북관계 진전은 ‘한미동맹’을 균열시키고, 향후 미국의 이익을 위해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요구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비공개회의 직전 발언에서도 미국의 이러한 입장이 재차 확인됐다.

 

이인영 장관은 비공개회의에 들어가기 전 모두발언에서 “한·미 워킹그룹은 운영과 기능을 재조정·재편해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책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명확히 하고 지향해나가야 한다”라면서 ‘한미워킹그룹 2.0’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국 쪽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해리스 대사는 “미국은 남북협력과, 그 (남북협력의) 방법을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찾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한다”라면서 즉답을 피했다고 한다. 

 

여전히 해리스 대사가 ‘조선총독’ 행세를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해리스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개별관광을 비롯한 남북협력 구상을 밝혔을 때도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다루는 게 낫다”라고 어깃장을 놓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국제평화지대화, 남북 간 철도 및 도로 연결 등의 남북협력사업은 우리 정부가 결단하면 언제든지 추진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남북협력 구상은) 미국과 협의해 진행돼야 한다”면서 ‘미국의 승인’을 받으라고 압박했다.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만난 것은 ‘미국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압박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해리스 대사는 “남북관계 문제 당사자는 우리”임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해리스는 더 이상 남북관계 간섭하지 말고 이 땅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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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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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18  15: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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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공동행동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시작된 18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훈련을 강행하는 한국과 미국 당국을 규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수도권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방역 비상이 걸리고 훈련에 참가한 20대 육군간부 1명의 코로나 확진 판정에도 불구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이 18일 시작되었다.

민중공동행동 자주평화통일특별위원회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이 개시된 18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하는 한국과 미국 당국을 규탄했다.

민중공동행동은 지난 7월 1일 6.15남측위와 함께 8.15민족자주대회 추진위원회를 주도적으로 결성해 줄곧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과 한미워킹그룹 해체를 주장해왔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아직 남북관계 위기가 끝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명백한 적대행위라고 비판했다.

훈련 명분으로 삼고 있는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비한 검증'에 대해서도 "자주국방은 미국의 검증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실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훈련은 명분으로 삼았던 전작권 전환을 위한 완전운용능력(FOC) 검증도 빠지고 연합방위태세 유지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반발을 사고 있다.

더욱이 해외에서 입국하는 주한미군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지난 15일부터 수도권 확진자도 급증해 대규모 코로나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훈련이 강행되어 물의를 빚고 있다.

엄미경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당연이 되돌려받아야 할 전시작전지휘권을 돌려받기 위해서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하지 않았던 최첨단 무기구입과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하고 있다"고 하면서 "더 이상 평화와 통일의 시대는 포기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코로나19 에 대한 취하는 강도높은 방역조치만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며, "국민을 믿고 촛불정신으로 돌아와 지금이라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약속을 지키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또 미국에 대해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를 전시작전지휘권 전환의 조건으로, 한미워킹그룹을 남북합의 보장의 전제로 내세우는 내정간섭과 협박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최영준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북한을 위협하고 중국을 자극하여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을 위한 것"이라며,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평화와 군사훈련 반대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절실한 생존의 문제라며, 전쟁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와 안전, 남과 북의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과 코로나 확진자가 참가하는 훈련을 강행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장사정포 요격을 위한 한국형 아이돔 구축과 경 항공모함 도입 등에 5년간 300조원의 국방비를 증강하는 계획을 세우고, 2018년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약속을 한 이래 훈련은 더 늘어나서 2019년 한해동안 대대급 기준 100회 이상의 한미훈련을 했으며, 지난해에는 북한 점령 훈련을 수차례 했는데, 이러고도 평화와 안전, 협력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16일 "한미동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 연합지휘소훈련을 8월18일부터 28일까지 시행하기로 했다"고 한미연합군사훈련 일정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훈련은 당초 16일부터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15일부터 수도권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훈련 개시일을 연기했다. 훈련 참가를 위해 대전 자운대에 파견됐던 20대 육군 간부 1명이 확진된  소식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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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참석 후 코로나19 확진된 광진구 어린이집 교사…“근무 중 마스크 안 썼다”

[속보]집회 참석 후 코로나19 확진된 광진구 어린이집 교사…“근무 중 마스크 안 썼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입력 : 2020.08.18 08:45 수정 : 2020.08.18 10:27

 

서울시가 서울 성북구 전광훈 목사와 교회 관계자를 고발키로 결정한 16일 출입이 통제된 사랑제일교회 모습. 이준헌 기자

서울시가 서울 성북구 전광훈 목사와 교회 관계자를 고발키로 결정한 16일 출입이 통제된 사랑제일교회 모습. 이준헌 기자

 

8·15 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광진구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근무 중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진술이 나오고 있다.

18일 광진구 소재 으뜸어린이집 재원생 부모와 광진구청에 따르면 확진된 보육교사 외 근무하는 보육교사들이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으뜸어린이집 재원생 부모 A씨는 “원장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고, 보육교사들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돌봐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광진맘카페에도 관련 글이 올라오고 있다. 관련 게시글 및 댓글에는 “원장의 지시로 보육교사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제보글도 올라오고 있어 확진된 보육교사가 사랑제일교회 예배 중 감염됐을 경우 집단감염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이번에 확진판정을 받은 야간보육교사(오후 2시~10시 근무) B씨는 지난 8~9일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 방문했으며, 지난 15일에는 광화문 집회에도 참석했다. B씨는 집회참석 이틀 뒤인 17일 오전 7시 30분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고 현재 서울의료원에 입원치료 중이다.

B씨는 이달 11일부터 14일까지 오후 1시5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어린이집에 근무했으며, 당시 어린이집 재원생은 13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서울시와 광진구청은 17일 해당 어린이집을 폐쇄하고 교사 및 원생, 가족들에 대해 자가격리 안내를 했다. 또 이날 원생 등 관련자에 대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18일 오전 중으로 나올 예정이다.

으뜸어린이집은 갈보리교회 부속시설로 교회 내에 설치된 서울형 어린이집 인증 교육기관이다.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관련 누적 확진자 수는 17일 기준 319명까지 늘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180845001&code=940100#csidxf334bdd36c7ccc09cf06f8f210204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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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핵태세 검토 보고서⟫의 주어를 바꿔 만든 ⟪조선 핵태세 검토 보고서⟫

<기고> 이영재 /재미 코리아반도 평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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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17  10: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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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1994년부터 8년에 한번씩 ⟪핵태세 검토 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를 대내외적으로 발표한다. 가장 최신 핵태세 검토 보고서는 2018년 2월 트럼프 정부가 발표했다.

   
▲ <핵태세 검토 보고서> 2018 표지 [사진출처 – 미국 국방부]

필자는 비무장이나 비핵으로 코리아반도 평화를 성취할 수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미국 정부가 발표한 “핵태세 검토 보고서”의 핵에 대한 논리에 동의한다.

미국 정부의 “핵태세 검토 보고서”에 나온 대로, 핵보유능력이 모든 갈등을 막을 수 없지만 핵보유능력은 외부 세력들의 핵 및 비핵 공격을 제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비핵력 역시 필수적인 제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비핵력은 핵력만큼 확실한 전쟁 제지력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미국 핵태세 검토 보고서에서 “미국”이라는 주어를 “이북”으로 바꿨을 때 보고서 내용이 이북 정부가 밝히는 핵태세 내용과 거의 같다.

1950년 11월 30일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이북에 핵위협을 시작한 이후 이북은 계속되는 핵위협 속에서 공포의 삶을 살아야 했다.

지난 2017년 11월 29일 이북은 인류역사상 가장 악독한 제재를 무릅쓰고 핵무력을 완성해 67년간의 핵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 핵태세 검토 보고서⟫에서 미국 정부의 주장이 맞다면, 현재 이북의 핵무력이 외부 세력들의 핵 및 비핵 공격을 제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17년 이전까지 미국의 일방적인 핵전략으로 코리아반도가 처했던 핵전쟁 및 비핵 전쟁의 위기가 이북의 핵무력으로 제지되고 있다.

지금 필자는 다름 아닌 미국 정부의 “핵태세 검토 보고서”의 핵논리대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힌다.

미국, 이북을 비롯한 핵보유국들과 비핵국가들이 모두 전세계 핵무기 제거를 장기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 핵태세 검토 보고서에서 언급한 대로, “전세계에서 신중하게(prudently) 핵무기 제거”라는 목표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실제 사용했고 이북 등 다른 나라들에 핵위협을 가했던 미국이 먼저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이 “전세계 핵무기의 신중한 제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핵무기가 전세계에서 신중하게 제거될 때까지 이북은 안전성과 보안성을 갖춘 현대적이면서 융통성 및 탄력성이 있는 핵보유능력을 갖출 필요성이 있다. 미국 정부가 핵태세 검토 보고서에서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미국 핵태세 검토 보고서⟫는 총 100페이지이나 미 국방부가 친절하게 한글 요약본을 제공했다.

필자가 한글 요약본 ⟪미국 핵태세 검토 보고서⟫의 주어를 “미국”에서 “조선(이북)”으로 바꿨고 이북에 해당하지 않는 내용과 문장은 제외했다.

아래 ⟪미국 핵태세 검토 보고서⟫와 주어를 이북으로 바꾼 ⟪조선 핵태세 검토 보고서⟫를 비교해서 읽어보면, 미국의 정확한 논리대로 이북의 핵보유가 코리아반도에서 핵 및 비핵 전쟁을 제지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북의 핵 제거”에만 집착해 실현가능한 평화안을 못 내고 있는 당국자들, 정치인들, 자칭 전문가들,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분들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미국 정부의 ⟪핵태세 검토 보고서⟫에 동의할 수 없다든지, 이는 미국에만 적용되고 이북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등의 논쟁은 언제든지 제기해 주기 바란다.

 

 

미국 핵태세 검토 보고서

 

조선 핵태세 검토 보고서

 

서   문

 

서   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최우선 과제가 미국, 우방국 및 협력국을 보호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신의 최우선 과제가 조선과 조선반도를 보호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핵무기 제거라는 장기적 계획 그리고 핵무기가 전세계에서 신중하게 제거될 때까지 미국이 안전성과 보안성을 갖춘 현대적이면서 융통성 및 탄력성이 있는 핵보유능력을 갖출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또한 핵무기 제거라는 장기적 계획 그리고 핵무기가 전세계에서 신중하게 제거될 때까지 조선이 안전성과 보안성을 갖춘 현대적이면서 융통성 및 탄력성이 있는 핵보유능력을 갖출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은 전 세계의 궁극적인 핵·생물학·화학 무기 제거 지지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조선은 전 세계의 궁극적인 핵·생물학·화학 무기 제거 지지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국제 안보 환경의 진화와 불확실성

 

국제 안보 환경의 진화와 불확실성

 

러시아,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는 새로운 유형의 핵보유역량을 추가하고, 전략과 계획 면에서 핵력의 현저성을 늘렸으며, 우주 공간과 사이버 공간 등에서 점점 더 공격적인 행동을 취해 왔다.  재래식, 화학, 생물학, 핵, 우주 및 사이버 협박 그리고 비국가 차원의 폭력적인 행위를 포함한 유례없는 범위와 다양한 위협들로 불확실성과 위험이 고조되었다.

 

미국은 새로운 유형의 핵보유역량을 추가하고, 전략과 계획 면에서 핵력의 현저성을 늘렸으며, 우주 공간과 사이버 공간 등에서 점점 더 공격적인 행동을 취해 왔다.  재래식, 화학, 생물학, 핵, 우주 및 사이버 협박 그리고 비국가 차원의 폭력적인 행위를 포함한 유례없는 범위와 다양한 위협들로 불확실성과 위험이 고조되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간주하길 원치 않고, 양국과의 안정된 관계를 추구한다.  미국은 양국의 오산과 오인으로 인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오랫동안 대화를 추구해 왔다.  미국은 양국이 이런 관심에 동참하고, 의미 있는 대화가 양국 간에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조선은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길 원치 않고, 양국의 평화 관계를 추구한다.  조선은 미국의 오산과 오인으로 인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오랫동안 미국에 대화를 요구해 왔다.  조선은 미국이 이런 관심에 동참하고, 의미 있는 대화가 양국 간에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이 보고서는 미국, 우방국 및 협력국을 보호하고 전략적인 안정성을 증진하는 데 필요한 융통성, 적응 능력 및 탄력성을 갖춘 미국의 핵 보유능력을 제시한다.

 

이 보고서는 조선을 보호하고 전략적인 안정성을 증진하는 데 필요한 융통성, 적응 능력 및 탄력성을 갖춘 조선의 핵 보유능력을 제시한다.

 

미국 핵보유능력의 가치

 

조선 핵보유능력의 가치

 

미국의 핵보유능력과 제지 전략이 미국, 우방국 및 협력국에게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는 아주 분명하다.

 

조선의 핵보유능력과 제지 전략이 조선에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는 아주 분명하다.

 

미국의 핵보유능력은 핵 및 비핵 공격을 제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조선의 핵보유능력은 핵 및 비핵 공격을 제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미국의 핵보유능력이 제공하는 제지 효과는 적의 핵 공격을 막는데 독특하고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바로 미국의 최우선 순위이다.

 

조선의 핵보유능력이 제공하는 제지 효과는 적의 핵 공격을 막는데 독특하고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의 최우선 순위이다.

 

미국의 핵보유능력이 모든 갈등을 막을 수 없으며 또 그렇게 기대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미국의 핵보유능력은 핵 및 비핵 공격을 제지하는 데 독특한 방식으로 기여를 한다.

 

조선의 핵보유능력이 모든 갈등을 막을 수 없으며 또 그렇게 기대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조선의 핵보유능력은 핵 및 비핵 공격을 제지하는 데 독특한 방식으로 기여를 한다.

 

미국의 핵보유능력은 이런 목적에 필수적이고, 가시적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비핵력 역시 필수적인 제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핵 제지 도래 이전 열강 간의 전쟁을 재래 방식으로 제지하려는 노력이 과거에 주기적으로 비극적인 실패를 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경쟁적인 제지력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조선의 핵보유능력은 이런 목적에 필수적이고, 가시적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비핵력 역시 필수적인 제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비핵력은 경쟁적인 제지력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핵보유력과 지속적인 국가 목표

 

조선의 핵보유력과 지속적인 국가 목표

 

미국의 핵 정책 및 전략의 최우선 순위는 잠재적 적이 행사하는 모든 규모의 핵 공격을 제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핵 공격 제지가 핵 무기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현재와 미래의 위협 환경이 지닌 다양한 위협과 심각한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미국의 핵력은 미국 국가 안보 전략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선의 핵 정책 및 전략의 최우선 순위는 잠재적 적이 행사하는 모든 규모의 핵 공격을 제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핵 공격 제지가 핵 무기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현재와 미래의 위협 환경이 지닌 다양한 위협과 심각한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조선의 핵력은 조선 국가 안보 전략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핵력은 다음에 기여한다:

› 핵 및 비핵 공격 제지

› 우방국과 협력국에 대한 보장

› 제지 실패 시 미국의 목표 달성

› 불확실한 미래 대비 능력

 

조선의 핵력은 다음에 기여한다:

› 핵 및 비핵 공격 제지

› 제지 실패 시 조선의 목표 달성

› 불확실한 미래 대비 능력

 

이 역할은 상호보완적이고, 상관관계가 있으며, 미국의 핵력의 타당성은 각 역할과 그 역할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전략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한다.

 

이 역할은 상호보완적이고, 상관관계가 있으며, 조선의 핵력의 타당성은 각 역할과 그 역할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전략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한다.

 

핵 및 비핵 공격의 제지

 

핵 및 비핵 공격의 제지

 

미국이 핵 공격 및 비핵 전략적 공격을 효과적으로 제지하려면 잠재적 적이 지역적으로 혹은 미국에 먼저 핵 공격을 했을 때 초래되는 결과에 대해 오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비핵 공격 혹은 제한적 핵 고조 시 자신들에게 돌아올 혜택이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오해를 바로잡는 것이 현재 유럽과 아시아의 전략적인 안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다.

 

조선이 핵 공격 및 비핵 전략적 공격을 효과적으로 제지하려면 미국을 비롯한 잠재적 적들이 지역적으로 혹은 조선에 먼저 핵 공격을 했을 때 초래되는 결과에 대해 오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잠재적 적들은 비핵 공격 혹은 제한적 핵 고조 시 자신들에게 돌아올 혜택이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오판을 바로잡는 것이 현재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전략적인 안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다.

 

잠재적 적들은 1) 미국이 새로운 유형의 공격을 포함해 공격 행위를 포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2) 미국이 비핵 전략적 공격을 물리치며, 3) 어떠한 핵 고조 행위도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그 대신 그것이 수용 불가능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잠재적 적들은 1) 조선이 새로운 유형의 공격을 포함해 공격 행위를 포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2) 조선이 비핵 전략적 공격을 물리치며, 3) 어떠한 핵 고조 행위도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그 대신 그것이 수용 불가능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두루 적용되는 한 가지” 제지 방법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은 적, 위협 및 상황에 따라 효과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맞춤식의 융통성 있는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맞춤식 제지 전략은 다양한 잠재적 적에게 그들의 공격이 그들의 위험 및 비용 계산에 비추어 보았을 때 수용 불가능한 위험과 과도한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미국의 핵보유능력 그리고 핵 관련 명령, 통제 및 의사소통은 잠재적 적과 위협에 따라 제지 전략을 맞춤화할 수 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도록 점차 융통성을 갖추어야 한다.

 

“어느 경우에도 적용되는 만능” 제지 방법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조선은 적, 위협 및 상황에 따라 효과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맞춤식의 융통성 있는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맞춤식 제지 전략은 다양한 잠재적 적에게 그들의 공격이 그들의 위험 및 비용 계산에 비추어 보았을 때 수용 불가능한 위험과 과도한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조선의 핵보유능력 그리고 핵 관련 명령, 통제 및 의사소통은 잠재적 적과 위협에 따라 제지 전략을 맞춤화할 수 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도록 점차 융통성을 갖추어야 한다.

 

미국은 미국, 우방국 및 협력국에 대한 핵 혹은 비핵 공격이 목표 달성의 실패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잠재적 적에게 현재와 미래에 수긍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상당한 위험을 가져 온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데 필요한 융통성 있는 핵보유능력 범위를 유지할 것이다.

 

조선은 조선반도에 대한 핵 혹은 비핵 공격이 실패할 뿐만 아니라 잠재적 적들에게 현재와 미래에 수긍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상당한 위험을 가져 온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데 필요한 융통성 있는 핵보유능력 범위를 유지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미국은 핵보유능력을 유지 및 교체하고, 핵 관련 명령, 통제 및 의사소통을 현대화하며, 핵 및 비핵 군사 계획의 통합을 강화할 것이다.  이 임무를 위해 전투 명령과 활동이 조직되고 지원을 받을 것이며, 적의 핵 위협과 사용에 맞서 운영할 미국의 핵·비핵력을 통합할 계획, 훈련 및 활동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조선은 핵보유능력을 유지 및 교체하고, 핵 관련 명령, 통제 및 의사소통을 현대화하며, 핵 및 비핵 군사 계획의 통합을 강화할 것이다.  이 임무를 위해 전투 명령과 활동이 조직되고 지원을 받을 것이며, 적의 핵 위협과 사용에 맞서 운영할 조선의 핵·비핵력을 통합할 계획, 훈련 및 활동이 이루어질 것이다.

 

제지 실패시 미국의 목적 달성

 

제지 실패시 조선의 목적 달성

 

미국은 미국, 우방국 및 협력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핵 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지가 실패하는 경우, 미국은 어떤 갈등이라도 최저 수준의 피해 선에서 그리고 미국, 우방국 및 협력국에게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 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조선은 조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지가 실패하는 경우, 조선은 어떤 갈등이라도 최저 수준의 피해 선에서 조선과 조선반도에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 내도록 노력할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대비

 

불확실한 미래 대비

 

미국은 더 협력적이고 무해한 안보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을 할 것이지만 예기치 못한 미래의 위험에도 대비해야만 한다.

 

조선은 더 협력적이고 무해한 안보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을 할 것이지만 예기치 못한 미래의 위험에도 대비해야만 한다.

 

잠재적 적의 안보 정책과 전략에 핵무기가 점점 중요성을 띠고 미래 위협 환경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미국의 핵보유능력과 이런 보유능력을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예기치 않은 사건을 포함한 위험을 완화하고 극복하는 데 필수적일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잠재적 적들에 대한 안보 정책과 전략에 핵무기가 점점 중요성을 띠고 미래 위협 환경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조선의 핵보유능력과 이런 보유능력을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예기치 않은 사건을 포함한 위험을 완화하고 극복하는 데 필수적일 수 있다.

 

핵전략 삼위일체: 현재와 미래

 

핵전략: 현재와 미래

 

현재의 핵전략 삼위일체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갖춘 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 그리고 중력폭탄과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탑재한 전략적 폭격기로 구성되어 있다.  제지가 실패하는 경우 목적 달성과 대비를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과 융통성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의 증가는 역으로 지금 핵삼위일체와 비전략적 핵보유능력을 유지하고 대체하며 핵 관련 명령, 통제 및 의사소통을 현대화해야만 하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삼위일체의 동반 상승효과와 중복되는 특성은 공격에 대한 우리의 제지 능력의 지속적인 생존 능력과 위기 혹은 갈등이 발생하는 동안 적의 표적을 위협하는 능력의 보장에 기여한다.

 

현재의 핵전략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갖춘 잠수함과 대륙간탄도미사일로 구성되어 있다.  제지가 실패하는 경우 목적 달성과 대비를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과 융통성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의 증가는 역으로 지금 핵전략과 비전략적 핵보유능력을 유지하고  대체하며 핵 관련 명령, 통제 및 의사소통을 현대화해야만 하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핵전략의 동반 상승효과와 중복되는 특성은 공격에 대한 우리의 제지 능력의 지속적인 생존 능력과 위기 혹은 갈등이 발생하는 동안 적의 표적을 위협하는 능력의 보장에 기여한다.

 

➡ 미국 핵 태세 보고서 2018  한글 요약본
https://media.defense.gov/2018/Feb/02/2001872875/-1/-1/1/EXECUTIVE-SUMMARY-TRANSLATION-KOREAN.PDF

➡ 핵 태세 보고서 원본 Nuclear Posture Review 2018
https://media.defense.gov/2018/Feb/02/2001872886/-1/-1/1/2018-NUCLEAR-POSTURE-REVIEW-FINAL-REPORT.PDF

 

이영재(재미 한반도평화활동가)

   
 

- 미국내 한반도 평화운동

- 2007년 이북 국립태권도시범단 미국 초청 5개도시 순회 1차 Goodwill Tour 공동기획 (www.usnktkd.com)

- 2011년 이북 국립태권도시범단 미국 초청 3개도시 순회 2차 Goodwill Tour 공동기획

- 현재 이북 소년태권도시범단과 장애자 예술단 미국 초청 순회 3차 Goodwill Tour 준비 중

www.usnktkd.com, www.facebook.com/younglee8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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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의 통합당에 묻는다...아직도 ILO협약 비준 반대하는가?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노동존중' 공약한 여당과 '경제민주화' 약속한 야당, 못 할 이유 없다


 

1919년 출범한 국제노동기구(ILO)는 1차 대전과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산물이다. 출범 시 ILO는 산업 평화를 비롯한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 첫걸음으로 1919년 가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창립대회에서 하루 8시간과 주 48시간을 규정한 ILO협약 1호(일하는 시간의 규제, Regulation of Hours of Work)를 채택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 국제노동기준의 비준과 준수를 다짐하며 ILO에 가입한 대한민국 정부는 "사회 정의 없이 평화 없다"는 ILO 헌장을 비준했고 그 후 30년 동안 (ILO 190개 협약 중) 29개를 비준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하루 8시간과 주 48시간을 규정한 1919년 1호 협약에 대한 비준은 아직도 맹렬하게 거부하고 있다.

 

 

▲ 1919년 10월과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ILO 창립 총회는 6개 협약을 채택하였다. 하루 8시간과 주 48시간(1호), 실업(2호), 모성보호(3호), 여성 밤일 규제(4호), 공업의 최저 근로 연령 제한(5호), 청소년 밤일 규제(6호)가 그것이다. ILO협약은 1930년대 루즈벨트 행정부 시기 뉴딜 ‘노동 개혁'의 내용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지침으로 작용한다. ⓒILO

'전태일'만 남고 '근로기준법'은 사라져

 

1953년 한국전쟁 와중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은 제정 당시부터 '하루 8시간'과 '주 48시간'을 못 박았지만, 이 조항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1970년 11월 스물두 살 대구 촌놈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자신을 불살랐지만, 50년이 지나도록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의 과반에 육박한다. 근로기준법은 실현되지 않고 '열사'로 화석화된 전태일만 기억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하던 노무현 정권 때 근로기준법이 바뀌어 표준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으로 단축되었지만, 노동자들의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주 40시간제'가 '주 5일제'에 날치기당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도입한 주 5일제의 핵심은 1주를 이루는 이레(7일) 가운데 닷새는 일하고 이틀을 쉰다는 게 아니었다. 황당하게도 근로기준법의 시간 조항은 1주일의 이레 가운데 닷새만 적용되고 나머지 이틀은 법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그 이틀 동안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착취해도 된다는 해석이 허용되었다. 법을 바꾸는 권한은 국회가 행사했지만, 법을 해석하는 권한은 관료들이 행사했다. 관료들은 '행정 해석'을 통해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대통령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지만 주 5일제에 대한 행정 해석은 철폐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명령하고, 장관이 해당 관료에게 지시하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대신에 자신의 책임을 국회에 미루었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국회는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한 주는 이레, 즉 1주일이 7일이라는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을 통해 '주 5일제' 해프닝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하여 이제 근로기준법이 말하는 표준 시간이 하루 8시간과 주 40시간으로 정착되는가 싶었는데, 사태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하여 '주 52시간'이 표준이라는 주장이 언론을 도배했다.

 

통합당은 '주 40시간 + 연장근로 12시간 + 법 적용이 안 되는 이틀 동안의 16시간'을 합친 '주 68시간'으로 회귀하지 않으면 국민경제가 망한다고 징징댔다. 한국노총 출신 '노동 귀족' 임이자 의원이 고달픈 노동자들의 삶을 더 고달프게 만드는 데 앞장섰다.

 

'변호사' 한계에 갇힌 문재인

 

이로써 이승만 정권이 도입한 주 48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허용)는, 노태우 정권의 주 44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허용)와 노무현 정권의 주 40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허용)를 거쳐, 문재인 정권의 주 52시간제(표준 40시간+연장 12시간)로 귀착되었다.

 

근로기준법의 표준시간 문제에서 보인 소심함에서 잘 드러나듯 문재인 정권의 '노동 존중'은 그 말의 화려함에 비해 실속의 부실함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실패에서 연유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는 문재인 정권이다.

 

보수적 자유주의 정권으로서 문재인 정부가 가지는 구조적 한계는 이미 예견한 바고, 이에 더해 법률가 출신이라는 대통령 개인의 한계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듯 하다. 법률(만능)주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청와대
 

ILO협약 비준 손 놓은 '노동 존중' 여당

 

'자유민주적' 노사관계의 입구를 여는 ILO협약 87호(사용자단체와 노동자단체에 대한 결사의 자유 보장, 1948년 채택) 비준 문제도 마찬가지다. 집권 4년 차에 접어드는 올해 들어서야 겨우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올라가 있다.

 

이 협약의 의미는 사용자(자본가)들에게만 보장해온 결사의 자유를 노동자들에게도 보장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노동조합법을 노동조합 활동을 억제하는 법이 아닌, 노동조합 활동을 증진하는 법으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180석에 육박하는 거대 여당이 출현한 지 넉 달이 넘고, 새 국회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넘어가지만 87호를 비롯하여 대통령이 국회에 보낸 ILO 협약 29호(강제노동 금지, 1930년 채택)와 98호(단체교섭권 보장을 위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금지, 1949년 채택) 비준은 감감무소식이다.

 

ILO가 '기본 협약(Fundamental Conventions)'이라 부르며 회원국 정부의 비준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나라에서 이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29호, 87호, 98호 협약들은 특별한 게 아니다.

 

식민 잔재 청산과 민주주의 토대

 

1930년 채택된 29호가 말하는 강제노동(forced labour) 금지는 '식민지 노예 노동을 자유로운 임금 노동으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한일 간에 쟁점이 되고 있는 근로정신대,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가 여기에 속한다. 국가가 전쟁이나 경제발전 등의 명목으로 민간인을 동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1948년 채택된 87호가 말하는 결사의 자유(the freedom of association)는 노동자의 권리가 아니라 사용자(자본가)들에게도 적용되는 일반적 시민권이다. 사용자든 노동자든 자신들이 알아서 단체를 만들어야 하며, 거기에 국가권력이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 밥그릇 지키기 위해 의사들은 자유롭게 하는 파업을 헌법에 파업권이 명시된 유일한 직업군인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헌법이 말하는 자유가 만인(萬人)이 아니라 만명(万名)에게만 적용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평평한 운동장'의 출발점인 단체교섭권

 

노동자를 위한 단체교섭권(the right to collective bargaining) 보장의 내용으로 1949년 채택된 98호를 읽어보면 의외로 단체교섭이 무엇인지에 대한 조항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노동자들이 단체교섭권을 보장받기 위해 사용자가 지켜야 할 의무인 반노조 차별 행위(acts of anti-union discrimination) 금지, 즉 부당노동행위 금지가 무엇을 뜻하는지가 명시되어 있다.

 

이전 칼럼에서 썼듯이(☞관련 기사 : 뉴딜? 문재인과 루즈벨트의 결정적 차이점), 1930년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이 전임 후버 대통령의 정책과 독보적으로 달랐던 것은 사회운동가 출신인 프란시스 퍼킨스 노동부 장관과 손잡고 밀어붙인 사회보장 도입과 노동 개혁이었다.

 

1935년 전광석화처럼 의회를 통과해 시행된 전국노동관계법(National Labor Relations Act)의 핵심은 노동자를 위한 결사의 자유(파업권 포함)와 단체교섭권 보장이었다.

 

▲ 루즈벨트 대통령이 1935년 7월 5일 프란시스 퍼킨스 노동부 장관(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국노동관계법에 서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문재인의 '퍼킨스'는 누구인가?

 

루즈벨트-퍼킨스 '콤비'는 1938년 시행된 공정노동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도 만들어냈다. 이 법은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의 기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원안은 주 40시간이었으나, 의회 내 논의를 거치면서 민주당 우파와 공화당의 합작 공격으로 주44시간으로 통과되었다.

 

법정 표준인 주 44시간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동부 안에 '임금시간국(Wage and Hour Division)'이 설치되었다. 대한민국 관료들처럼 '연장근로' 꼼수를 부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법에서 정한 주 44시간 표준을 공장과 사무실에 관철시키기 위해서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뤄진 87호 협약과 98호 협약 채택에는 미국이 앞장섰다. 1940년대 국제사회는 독일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노사 단체 활동과 단체교섭권 보장을 통한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필요하다는 정신으로 충만해 있었고, 지금과 달리 당시 미국 정부는 ILO가 만드는 진보적 정책의 든든한 후원자로 활약했다.

 

김종인의 조부 김병로와 그의 스승 아데나워

 

정부와 여당이 내세웠던 '노동 존중'이 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국회에 상정된 ILO 기본협약(29호, 87호, 98호) 비준이 시급하다. 노동 존중이 말만 요란한 속 빈 강정 꼴을 모면하려면 여당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는 정기국회에서 협약들을 통과시켜야 한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통합당이 말하는 '경제 민주화'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 한다는 나라치고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김종인 위원장이 유학한 독일이 대표적이다.

 

김종인의 조부인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1888-1864)와 김종인의 이념적 스승인 초대 독일 연방총리 콘라트 아데나워(1876~1967)에게 물어보아도 필자와 같은 말을 할 것이다.

 

▲ 김종인의 조부 김병로(왼쪽)와 독일연방공화국(구 서독)의 초대 연방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오른쪽). ⓒ위키피디아
 

ILO 협약 1호 비준이 시급하다

 

'노동 존중'이든 '경제민주화'든 그 핵심은 노동자들의 삶을 좀 더 인간답게 해주는 데 있다. 이는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 위기에 대응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공유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법정 표준인 주 40시간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자는 1919년 제정된 하루 8시간 주48시간을 규정한 ILO협약 1호의 비준을 제안하려 한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11년 11월, 대한민국 정부는 주 40시간을 규정한 ILO협약 47호(1935년 제정)를 비준하였다. 187개 ILO 회원국 중에서 15개국만이 비준한 47호는 내년이면 대한민국 정부가 비준한 지 10주년을 맞게 된다.

 

주 40시간 협약(47호)도 비준했는데 주 48시간 협약(1호)을 비준 못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노동 존중'을 공약한 여당과 '경제민주화'를 약속한 야당이 장악한 21대 국회이지 않은가.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8171202532800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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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목사와 함께 마이크를 사용했던 사람들, 누군가 봤더니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다고 실토한 전광훈 목사
 
임병도 | 2020-08-18 08:43: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코로나19 사태 확산 경고에도 불구하고 8.15 집회를 강행했던 전광훈 목사가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전 목사는 17일 오후 사랑제일교회 근처 사택에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확진 판정을 받고 앰뷸런스를 탄 전 목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전 목사는 마스크를 턱 밑으로 내린 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앰뷸런스로 향했고, 탑승한 뒤에도 휴대폰을 바라보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17일 정오기준 서울 사랑제일교회 교인 확진자 수는 315명이 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 목사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고 웃으며 앰뷸런스를 타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국민들의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

전광훈 목사가 들었던 마이크, 누가 사용했나 봤더니

▲8월 15일 광화문 집회에서 전광훈 목사 발언 뒤 마이크를 사용한 사람들. (마스크 미착용자들)강연재 변호사는 17일 오전 사랑제일교회 앞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발표했다.

전광훈 목사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밀접 접촉자, 특히 8.15 집회 당시 마이크를 같이 사용했던 사람들의 명단이 올라왔습니다. 게시글을 토대로 당시 영상들을 확인해봤습니다.

전 목사는 발언 도중 김경재 자유총연맹 회장의 손을 붙잡고 머리 위로 번쩍 듭니다. 이때 전 목사는 아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고, 김 회장은 턱 밑으로 내린 상태였습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맨손이었습니다.

발언을 끝낸 전 목사의 마이크는 사회자를 통해 이봉규 시사평론가 등 몇 사람의 발언자를 거쳐 강연재 변호사에게로 건네 집니다. 이때 마이크가 소독되거나 커버가 교체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일부 발언자들은 마스크를 턱 밑으로 착용하거나 아예 없었습니다.

강연재 변호사는 8월 17일 사랑제일교회 입장 관련 기자회견장에서 입장을 밝혔습니다. 강 변호사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고, 기자들도 꽤 가까운 거리에서 취재했습니다.

방역당국 수칙에 따르면 15일 전 목사와 함께 마이크를 사용했던 발언자들과 8월 17일 사랑제일교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 모두 자가격리 대상자로 봐야 합니다. 이들에 대한 자가격리가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2차 3차 감염자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다고 실토한 전광훈 목사

▲전광훈 목사는 8월 15일 광화문 집회에서 구청에서 교회를 찾아 와 자가격리 통보를 했다고 말했다. ⓒ유튜브 화면 캡처

사랑제일교회 측은 “전 목사는 그간 어떤 통보도 받은 사실이 없으며 8월 15일 광화문 집회에서 연설을 마친 후 사택으로 귀가해 쉬던 중 오후 6시께 ‘격리통지서’를 전달받아 서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전 목사의 발언은 이와 달랐습니다.

광화문 집회 영상을 보면 전 목사는 “아까 오후에 구청에서 교회를 찾아와서, 나 이렇게 멀쩡하게 생겼는데 나는 열도 안 오르고 증상도 전혀 없는데, 전광훈 목사를 격리대상으로 정했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이놈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전 목사는 자가격리 대상자로 통보를 받은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본인이 자가격리 대상자임에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이크를 사용하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았다는 행위 자체가 방역 수칙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6일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는 책임 있는 방역의 주체이자 자가격리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가격리를 위반했다”고 밝혔습니다. 서 권한대행은 “전 목사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신도들의 진단검사를 고의로 지연시킨 바 있다. 이는 공동체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명백한 범법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서울시와 보건복지부는 전광훈 목사를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고발조치했습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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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밭 사이에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 있다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8/18 09:31
  • 수정일
    2020/08/18 09: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한탄강 지질공원 포천 멍우리협

20.08.18 08:30l최종 업데이트 20.08.18 08:30l
포천 멍우리 협곡  유네스코 서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포천 멍우리협곡은 길이가 4km, 주상절리의 높이가 30~40m에 이른다.
▲ 포천 멍우리 협곡  유네스코 서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포천 멍우리협곡은 길이가 4km, 주상절리의 높이가 30~40m에 이른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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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일대가 드디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최종 인증을 받았다. 지난 7월 7일 개최된 유네스코 제209차 집행이사회에서 한탄강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최종 승인했다는 소식이다. 

한탄강은 이미 2015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바 있다. 유네스코의 인증이 없더라도 한탄강 일대는 그 자체가 자연이 빚은 천혜의 지질 자원이다. 이제 세계의 권위있는 기관의 인증까지 받았으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

한탄강 유역은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질공원으로 북한의 평강군 오리산 화산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100km 이상 한탄강을 따라 남쪽으로 흘러 형성된 용암대지가 식으면서 4~8각 기둥모양으로 굳어졌다. 그 위를 비와 강물이 흐르면서 침식과 박리가 일어나 현무암 수직 주상절리와 협곡이 형성된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현무암협곡이다.
  

멍우리협곡 -
▲ 멍우리협곡 -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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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유네스코에서 승인한 면적은 경기 포천시 유역 493.24㎦, 강원 철원군 398.72㎦, 경기 연천군 273.65㎦ 등 모두 1165.61㎦로 무려 여의도 면적의 400배에 달한다. 이와 함께 한탄강 유역의 26개 지역이 지질문화 명소로 등재되었다. 

포천 지역에만 11개 명소가 분포되어 있는데 화적연(명승 93호), 비둘기낭 폭포(천연기념물 제 537호), 대교천 현무암 협곡(천연기념물 제 436호), 멍우리협곡(명승 94호), 아우라지 베개용암(천연기념물 제 542호) 등이 대표적이다.

​멍우리협곡 가는 길  포천 백운계곡에서 멍우리협곡을 가기 위해 구비구비 산을 넘는다.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산세는 깊고 험악하기가 이를 데 없다. 고개 정상인 '여우고개'에 포천군 영북면이 시작됨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려 이동면에서 영북면으로 넘어 간다. 도로 안내판에는 철원, 김화 등 낯선 지명들이 자주 눈에 띈다. 철원군과 김화군은 6.25 때 '철의 삼각지대'라고 불렸던 지역으로 일부지역은 전후 수복된 지역들이다. 

인가는 점점 드물어지고, 도로에 차들도 가뭄에 콩나듯 지나갈 뿐이다. 사방에 산들이 첩첩이 솟아 있다. 같은 산하지만 접경 지역의 산하에서는 알 수 없는 생경함이 느껴진다.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분단의  DNA'가 뿌리깊게 심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멍우리협곡 초입에 펼쳐지는 드넓은 들판 -
▲ 멍우리협곡 초입에 펼쳐지는 드넓은 들판 -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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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비는 좁은 농로를 가리킨다. '이 길이 맞겠지. 그런데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인 멍우리 협곡이 이런 논밭 사이에 있다고? 강은 어디에도 없는데?' 다른 길도 없었고 네비도 길이 틀렸다는 신호는 보내오지 않는다. 설사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하더라도 눈 앞에 펼쳐지는 풍광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뒤쪽으로는 산이 보호막처럼 둘러 서 있고 앞쪽으로는 초록색 들판이 막힘없이 펼쳐져 있다. 이 풍경만으로도 험준한 고갯길을 넘어 온 데 대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계속 차 한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농로를 따라 들판을 가로 지른다. 마치 외통수 길을 달려가는 느낌이다. '차 돌릴 데는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 즈음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 멍우리 협곡
  
멍우리협곡 초입에 펼쳐지는 드넓은 들판 산정호수에서 발원한 부소천과 한탄강이 멍우리 협곡에서 합류한다.
▲ 멍우리협곡 초입에 펼쳐지는 드넓은 들판 산정호수에서 발원한 부소천과 한탄강이 멍우리 협곡에서 합류한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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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우리는 '멍+을리'가 합쳐진 지명으로, 멍은 '온몸이 황금빛 털로 덮힌 수달'을 뜻하며, 을리는 한자의 乙(을)자처럼 흐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인데 좀처럼 수긍이 되지 않는다. 협곡이 하도 험해 넘어지면 멍이 남는다고 해서 '멍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주차장 바로 앞에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다리가 보인다. 부소천교다. 부소천은 산정호수에서 발원해 문암리를 지나 흐르다 이곳에서 한탄강과 합류한다. 
  
멍우리협곡 화산폭발과 강의 침식작용으로 생성된 한탄강 지질공원, 멍우리협곡.
▲ 멍우리협곡 화산폭발과 강의 침식작용으로 생성된 한탄강 지질공원, 멍우리협곡.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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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천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세상에!' 라는 탄성밖에 나오지 않는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험준한 협곡이 내 눈 앞에 펼쳐지다니. 협곡의 높이가 30~40m는 될 것 같다. 현무암 바위를 초록색 식물이 통째로 집어 삼킨 듯 절벽이 온통 푸르다. 

혹시 멍우리가 이토록 푸른 절벽을 두고 비유적으로 말한 것은 아닌지. 살짝 몸을 돌려 반대편을 바라보니 부소천이 한탄강 본류와 만나 멀리 멀리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작은 하천들이 흘러들어 큰 물줄기를 이루어 흐르는 모습은 장엄 그 자체다. 
  
한탄강 지질공원 '멍우리협곡' -
▲ 한탄강 지질공원 "멍우리협곡" -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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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하다. 조금만 더 있다가는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다리를 건너 반대편 협곡으로 넘어간다. '인근에 사격장이 있다'는 안내문과 함께 경작지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울창한 나무 숲에 가려 강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강물 흐르는 소리만 들려온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인간사에  얽힌 두려움이 아닌 자연 앞에 선 왜소한 인간의 두려움이다. 10만~50만년이라는 상상도 되지 않는 시간 앞에 선 자의 두려움이다. 
  
멍우리협곡 둘레길 멍우리협곡 한탄강지질공원에는 4개의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 멍우리협곡 둘레길 멍우리협곡 한탄강지질공원에는 4개의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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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잡고 다시 발걸음을 뗀다. 숲 속에는 사용하지 않는 방공호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무엇을 지키고자 푸르른 젊음은 땅구덩이 속에 한껏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어야만 했을까. 한 뙈기의 땅이라도 농경지로 일구고 있는 손길은 또 얼마나 부지런한가. 이 모든 풍경이 강줄기를 따라 무심히 펼쳐지고 있다. 

숲 속의 적막감이 무서워 막 돌아 나가려는 데 산책을 다녀오는 마을 주민들과 맞딱뜨렸다. 이 반가움이란!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셨어요?" 걱정 담긴 물음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진다. "다리 있는 곳 까지만 가보세요. 아주 멋져요." 
  
멍우리 협곡 벼룻교에서 본 한탄강과 멍우리협곡
▲ 멍우리 협곡 벼룻교에서 본 한탄강과 멍우리협곡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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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산책길을 따라 걸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이 말한 다리 '벼룻교'가 나온다. 벼룻교에 올라서니 양 옆에 주상절리를 거느린 협곡이 길게 이어진 모습이 훨씬 더 잘 조망된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강 건너 강변에 사람들이 보인다. '어떻게 저기까지 내려갔을까?' 나 역시 강변으로 내려가 주상절리를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멍우리협곡과 드넓은 들판 구름이 걷히자 눈부신 태양이 멍우리협곡과 들판을 비추고 있다.
▲ 멍우리협곡과 드넓은 들판 구름이 걷히자 눈부신 태양이 멍우리협곡과 들판을 비추고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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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떠나 오려는데 하루종일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걷히면서 눈부신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탄강 협곡과 들판에 빛이 쏟아져 내린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변화무쌍함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멍우리협곡 즐기기 
 

멍우리 협곡 지질공원에는 1코스 구라이길, 2코스 가마소길, 3코스 벼룻길, 4코스 멍우리길 등 4개의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전 구간 5~6km거리로 1시간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인근에 있는 '멍우리 협곡 캠핑장', 화적연 캠핑장 등은 캠핑 애호가들 사이에서 '오지' 캠핑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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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는데... 가해자는 무죄석방, 아들은 무기징역

[경주유족회 김하종의 삶, 첫번째 이야기]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20.08.17 18:25l최종 업데이트 20.08.17 18:25l
 지난 2018년 11월 19일 한국전쟁 전후 경주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를 기리고 추모하는  위령탑  제막식과  합동 추모제가 경주시 황성공원에서 열렸다.
▲  지난 2018년 11월 19일 한국전쟁 전후 경주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를 기리고 추모하는 위령탑 제막식과 합동 추모제가 경주시 황성공원에서 열렸다. 김하종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한국전쟁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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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노크 소리에 이어 직원이 모시고 온 손님을 본 김하종은 "아이고 형님들, 오랜만입니다"라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래, 잘 지냈는가?"라고 안부 인사를 하는 이는 사촌 형님 김하정이다. "형님요, 부산서 사업하는 일은 잘 되십니꺼?" "사업은 무슨... 쬐그만 장사 갖고서리. 남사시롭고." 김하정은 부산 초량시장에서 옹기장사를 하고 있는 터였다. 이어서 뒤에 서 있던 육촌형 김하원과 인사했다. 그와는 딱 11년 만의 만남이었다.

경주민간인 학살 이후

김하원은 1949년 8월 1일 이협우의 민보단이 경북 경주군(현재의 경주시) 내남면 명계리 바탕골에서 김씨 일가족 22명을 학살한 '피의 제전' 때 간신히 살아남았다. 학살 현장에서 탈출한 그는 경주 영안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며 두문불출했다. 그런 김하원이 서울까지 발걸음을 했다. "니는 집안 일가가 모두 학살되고, 심지어 자네 춘부장도 돌아가셨는디, 이 문제는 해결할 생각은 안 하꼬 뭐하는 놈이가!" 김하정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이어서 김하원은 "니는 출세했다고, 이렇게 높은 자리에 있으면 다고!"라고 다그쳤다. 두 집안 형님의 꾸중은 추상 같았다.


두 형의 꾸중을 들은 김하종은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민보단은 경주군 내남면 바탕골에서 김씨 일가를 멸족시킨 후 4km 떨어진 홈실마을로 갔다. 그리고는 그 마을 민보단장 정규준에게 "어제 밤 바탕골에서 빨갱이에게 협조하는 자를 죽였으니 시체를 매장하시오"라고 지시했다. 상급 단체의 명을 받은 정규준은 홈실마을 주민들과 함께 현장으로 갔다.

같은 일가가 몰살 당한 사실을 모르고 이 대열에 합류한 김봉수는 현장에 도착하자 기겁했다. 사촌형과 형수를 포함한 집안 가족들이 마당과 부엌에서 피칠갑을 한 채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봉수는 시신들의 옷을 벗기려 했다. "이 새끼! 뭐 하는 짓이야" 감시자로 남아있던 민보단원이 눈을 부라렸다.

"장례를 치르려면 새 옷으로 갈아입혀야 할 거 아닙니까?"라는 김봉수의 말에 돌아온 것은 매질이었다. '빨갱이 시신 수습하는 데 무슨 격식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민보단원에게 매질을 당한 김봉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이웃의 지게에 실려 집에 온 그는 이미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아내 최일순은 남편을 살리려고 민간요법을 썼다. 그 요법이란 사람 똥을 구워서 먹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노력은 무용지물이었다. 김봉수는 집에 돌아온 지 9일 만인 1949년 8월 10일 세상을 하직했다. 김봉수는 서울에서 출세한 김하종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버지 김봉수가 민보단원의 매질에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인 1949년 8월 8일 밤 10시경 불청객이 바탕골에 왔다. 그는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 누워있던 김하종에게 다가왔다. "네가 김하종이냐?" "네." "이리 와." 불청객은 김하종의 얼굴에 머리를 갖다 댔다.

"앞산에 우리 동지들인 산사람 80명이 3일째 굶고 있는데, 네 집 소를 갖고 가야겠다." "우리 소는 암새 나서 안됩니더."

그러자 불청객은 품안에서 권총을 꺼내며 "이 새끼 죽인다"고 협박했다. 17세 소년 김하종은 자신의 소가 발정나서 다른 사람이 소를 다룰 수 없다고 한 것인데, 불청객은 대뜸 총을 들이댄 것이다. 그때 바탕골 민보단장 정규준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단장님, 그 아는 바봅니다. 이 집 여자가 딸만 셋 놓고 아들 하나 낳은 것이 바봅니다. 내려가시쇼." 정규준의 변명에 불청객은 권총을 집어 넣고 마을을 내려갔다.

불청객은 다름 아닌 내남면 민보단장 이협우였다. 그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 김봉수의 아들 김하종이 똑똑하다는 소문을 듣고, 화근을 없애기 위해 들이닥쳤다. 즉, 소를 순순히 내주면 빨갱이 협조자로 누명을 씌워 죽이려 했다. 아니, 응하지 않아도 죽이려 했다. 그때 정규준이 와 만류를 했기에 김하종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정규준이 돌아와 조금 전의 인물이 이협우임을 알려 주었다. 이틀 후 김봉수는 생을 달리했다. 김하종은 피눈물을 흘리며 언젠가 아버지와 집안 일가의 원수에게 복수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럴 때 내남초등학교 류영태 선생이 김하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니는 신사적 복수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요, 신사적 복수가 뭡니까?" "이협우가 면장이 되면 너는 군수가 되는 거다."

김하종은 류영태 선생의 말을 가슴에 간직하고 공부에 전념했다. 하루 세끼 연명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그는 내남중학교를 거쳐 경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전교 2등으로 입학해 당시 입학금 6050원 중 4000원을 면제받아 2050원만 내면 되는데, 그 돈도 내지 못했다. 다행히 어찌어찌해서 경주고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김하종은 법무부 형정국(지금의 교정국) 시험을 치렀다. 전국에서 합격한 24명 중에 2명만이 광화문에 있던 형정국에 배치되고, 나머지는 전국의 형무소나 지방검찰청에 배치되었다. 그런데 김하종은 광화문 형정국에 배치된 2인 중 하나였다. 말 그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이다.

그의 앞길은 출세가도였다. 1년여 근무하고 난 1960년 4.19 혁명이 발발했다. 혁명 직후 집안 형님인 김하정·김하원이 찾아와 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김하종은 자신의 장밋빛 청사진을 내팽개쳐 버렸다. 17개월을 근무한 법무부 교정국에 사표를 내던졌다. 다음 날 경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4.19 혁명 이후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
▲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
ⓒ 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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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한 일은 이협우를 고소하는 일이었다. 김하종은 경주시 내남면 유족 75명과 함께 이협우를 살인·방화·강도 혐의로 대구지검에 고소했다. 1960년 6월 16일의 일이었다. 이 고소는 그해 5월 11일 있었던 거창군 신원면 전 박영보 면장 사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거창 유가족들은 사건 발생 당시 '주민 성분 검사'에 참관해 생사 갈림길에 섰던 주민들에게 방관적인 행동을 취한 박영보 면장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 (진실화해위원회, 『2009년 하반기 보고서』)

거창 사건은 11사단이 빨치산을 토벌한다며 1951년 1월 10일부터 12일까지 신원면 주민 719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4.19 혁명이 터지자 거창 유족들은 박영보 면장에게 보복을 했고, 이는 전국적인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됐다.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보고서:대한민국 국회
▲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보고서:대한민국 국회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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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 분주해졌다. 4월 혁명 이후 전국에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국회는 1960년 5월 23일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아래 특위)'를 구성했다. 특위는 11일간 경북·경남·전라지역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조사를 했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에 힘입어 경주 내남면 유족들도 이협우를 고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협우는 그해 9월 15일에 전격적으로 구속되었다(대구매일신문 9월 16일자). '경주왕국'의 황태자 이협우가 구속되자 유족들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 다음 김하종은 유족들을 조직, 1960년 9월 5일 '경주유족회'를 결성했다. 유족회 사무실은 경주경찰서 중앙파출소 2층에 얻었다. 유족회는 '피해신고서' 접수를 받았는데, 860명이 이에 응했다. 또 경주 감포에서 드러난 유해를 수습하기도 했는데 매장지에서 '우양현'이라는 도장이 나와 유가족이 시신을 수습해 갔다.
 
 경주 감포 유해매장지에서 발굴된 우양현 도장
▲  경주 감포 유해매장지에서 발굴된 우양현 도장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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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유족회는 그해 11월 13일 오전 10시 계림국민학교에서 '경주지구 피학살자 합동위령제'를 개최했다. 위령제는 경주시교육장과 계림국민학교장의 승인과 경주경찰서장의 집회허가를 받아 치렀는데, 참석자가 4000여 명이나 되었다.

위령제에 걸린 현수막에는 '조국의 산천도 고발하고 푸른 별도 증언한다', '살인마 이협우 일당들아 이 땅 위에서 물러가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운동장에는 흰 소복을 입은 여성과 양복과 한복을 입은 남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김하종 유족회장의 개회사와 추도사, 유족회 회가 낭독, 헌화가 이루어지는 내내 식장은 울음바다였다.

"사형."

1961년 2월 24일 대구지방법원은 오전부터 이협우 재판을 보려는 경주 유족들로 북적였다. 나호진 검사가 30분간 진행한 논고는 추상같았다. 피학살자(피해자)에는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27명이나 포함되었다는 점,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를 총살했다는 점, 피해자들의 재산을 약탈한 점 등을 열거했다. 그런 후에 이협우, 이한우, 이홍렬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 진행 과정 중에 유족들은 아우성을 치고 흐느꼈다. (이창현, 「경주 내남면 민간인 학살사건 진상규명운동에 관한 연구」, 2009)

이어진 3월 6일 결심공판에서 이협우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때부터 이협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박두일을 포함한 내남면 민보단원 3명이 김하종의 어머니 최일순을 찾아왔다.

"대일댁(최일순을 지칭)요. 아들 (유족)회장 하지 마라 하소."
"뭣 때문에 그러는교?"
"아들 회장 안 하면 단장님한테 6천만 원 받아 줄께요. 그걸 갖고 외국 가든지 서울 가서 사세요."
"시끄럽다 마."


최일순의 지청구에 박두일은 발걸음을 돌렸다. 이협우가 부하를 내세워 김하종을 돈으로 매수하려 한 것이다. 1961년 당시 6천만 원은 2020년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22억 원 가량 된다.

1차 매수에 실패했지만 이협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김하종의 내남초등학교 은사 류영태를 동원했다. 류영태 선생이 경주유족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협우가 사형선고 받았응께, 6천만 원 받고 니 편하게 살면 안 되노?"
"무슨 말씀입니까? 선생님께서 예전에 저한테 신사적 보복을 하라고 안했습니까? 이제 와서 제가 돈에 넘어가면 피해자 860명의 유가족들은 우짜란 말입니까?"


얼굴이 벌게진 류영태 선생은 뒷머리를 긁으며 사무실 계단을 내려갔다. 류영태 선생은 염치도 없는지 며칠 후 다시 사무실에 왔다. "이협우가 6천만 원에다 포항 방향 인왕동에 있는 과수원도 주겠다카더라." "선생님 그런 말씀 마세요."

실패한 이협우는 다른 증언자를 매수하려 했다. 그 결과는 법정에서 드러났다. 이협우 측 변호사가 최해준을 대상으로 심문했다.

"증인은 피고가 당신의 처와 자식을 죽인 것을 직접 목격했나?"
"아니오."


재판정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판사와 검사의 눈이 둥그레졌고, 이협우는 입매가 살짝 올라갔다. 판사가 "증인은 지난 번 1심에서 '처와 자식이 이협우에게 학살 당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허허."

최해준은 마치 실성한 사람 같았다. 다른 증인도 비슷했다. 이협우는 2심 재판을 앞두고 고소인들과 증언자들에게 전방위적으로 매수공작을 펼쳤다. 결국 1962년 3월 7일 2심에서 이협우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도 고등법원 원심을 확정, 이협우는 무죄 석방되었다.

아무리 일부 증언자가 돈에 매수되었다 하더라도, 약 200명이 학살되고 증언자가 숱한데 어떻게 무죄 판결이 났을까? 이는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변화된 정세를 반영한 것이다.

5.16 쿠데타 이후
 
 5.16 군사정변.
▲  5.16 쿠데타가 경주유족회에 미친 영향은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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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이협우가 최종적으로 무죄석방 되었는데 피해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경주유족회 임원들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된서리를 맞았다.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은' 박정희 정권은 야당과 민주 인사를 탄압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영남 지역에 조직된 '피학살자유족회'도 탄압을 받았는데 경주유족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족회의 김하종 회장, 김하택 총무, 최영우 부회장, 신경수 상무가 '반국가행위' 혐의로 구속되었다.

김하종은 경주경찰서로 연행되었다가 부산중구경찰서에 이첩되어 40일 구금되었다. 그 후 서울 중구에 있던 혁명재판소에서 박창암 특검부장에게 심문을 받아 서울형무소로 송치되었고 곧 재판을 받았다.

1961년 11월 13일 혁명검찰부 검찰관 윤홍렬은 피고들이 "6.25 동란 시 사망한 좌익분자를 애국자로 가장시키고 우리 국군과 경찰이 선량한 국민을 살해한 것처럼 왜곡선전한다면 일반국민들이 국군과 경찰을 원망하게 되어... 북한공산괴뢰집단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특별법 6조를 위반했다고 공소장을 작성했다. (이창현, 「경주 내남면 민간인 학살사건 진상규명운동에 관한 연구」, 2009)

1962년 1월 29일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윤홍렬은 김하종에게 "극형을 처할 것이로되 청춘이 아까워 무기징역을 구형한다"고 했다. 이어 유족회 총무 김하택에게도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부회장 최형우는 징역 10년을, 상무이사 신경시는 징역 8년을 구형했다.

1962년 1월 31일 있었던 선고공판에서 김하종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김하종은 박정희 정권의 민양 이양 조치 때 정치범 특별석방조치로 1963년 12월 26일 사면되었다. 가해자 이협우가 무죄로 석방되는 와중에 피해자인 경주유족회 주요 임원은 무기징역을 구형받고, 김하종 회장은 최종 7년 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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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합훈련은 중단하고 전작권반환조건은 재협상하라

  • 기자명 현장언론 민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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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1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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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 2017년8월 29일 오후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한미 연합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에 참가한 주한 미군들이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2017년8월 29일 오후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한미 연합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에 참가한 주한 미군들이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지만 자기 권리를 찾아오는데도 구걸을 해야 하는 경우는 한미관계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한미연합훈련이 축소연기되면서 문재인 정부 임기내 전작권 환수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상황이 그것이다. 원래 한국 정부와 국방부는 이번 훈련에서 전작권 반환 '검증'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부인하였고, 실제로 대규모 검증단을 파견하지 않아 검증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최근 악화된 남북관계 상황에서 한미연합훈련의 반대를 외치던 시민들은 전작권 반환 검증훈련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설명에 잠시 주춤하기도 하였으므로 당국의 잔꾀에 화가 난데다가 미국이 훈련은 훈련대로 하면서 검증단은 파견하지 않았다고 하니 양쪽에서 빰 맞은 더러운 기분이다.

전작권을 받으려면 한미연합훈련을 더 크게 해야 하고,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하면 전작권 반환일정에 차질이 빚어진다니, 비가 오면 빙수장수가 걱정이요, 볕이 나면 우산장수가 걱정이라는 식으로 뭘 해도 국민들이 이렇게 불편해 가지고서야, 도대체 뭘 하자는 전작권 환수작업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사실 이 이익의 충돌속에서 득을 보는 자는 따로 있다. 바로 미국이다.

전시작전권은 원래 노태우 대통령 시절 한미가 합의한 것으로 별다른 조건없이 반환하기로 한 것이었다. 평시작전권은 김영삼 정부 시절 1993년에 환수하고,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서 1995년에 전시 작전권까지 완전히 환수한다는 일정까지 합의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북 핵개발을 이유로 연기시켜 놓았다가 노무현 대통령 때 2012년 4월 17일에 전환하기로 합의한 사항이다. 그런데 이걸 이명박 대통령이 2015년 12월로 미루어 놓고,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러서는 이른 바 한국군의 능력과 주변 안보환경 등 <조건>을 달아 사실상 무기한 연기시켜 놓은 것이다.
초대 대통령이라는 자가 손에 쥔 작전권을 미군 사령관 맥아더에 넘겨받친 것도 한심한 일이지만, 돌려주겠다는 작전권을 반대하는 대통령들도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일을 이렇게 꼬아놓으니 주인이 제 물건을 돌려받는데도 협상을 해야 하고, 조건을 달아 그 무슨 검증이라는 것을 받아야 하는 굴욕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바뀌니 이제 미국이 까다롭게 나오는 그 전작권 반환 <조건>이라는 것이 크게 보면 3가지인데, 아주 철저하게 미국의 입맛에 맞게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북 핵·미사일에 대한 초기대응능력, 둘째,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주도능력, 셋째, 한반도 및 지역안보 관리능력이다. 

첫째 조건인 북 핵·미사일에 대한 한국군의 초기 대응능력이란, 킬체인(Kill Chain: 북 탄도미사일 선제적 제거)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북 미사일 공중 요격), 대량응징보복(KMPR: 북한 도발 때 전쟁지도부 제거) 등 3축체제 구축을 말한다. 사실상 북과 전쟁하자는 것이고 선제타격, 참수작전 등 한미연합훈련에 적용하는 미국 작전계획에 대한 집행프로그램들이다. 전작권 반환과정에서 미국이 검증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미국의 대북전쟁계획 수행능력이고,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 전작권을 반환한다는 끔찍한 내용이다.

게다가 킬체인은 F-35A 전투기와 미사일 등으로 북한 이동식 탄도미사일을 타격해야 하므로 미국 전략자산 구입이 필수이다. 한국군은 정찰·탐지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2023년까지 5개의 정찰위성 발사계획을 가지고 있고, 고체연료 개발 승인에 따라 KAMD용 중고도 요격미사일 개발도 속도를 더할 추세이다. 이러한 활동은 9월 평양에서 합의한 남북군사합의서에 정면 위반하는 내용들이다. 미국은 한국이 가져가는 전시작전권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구축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맞게 전쟁을 위해 쓰라고 검증을 통해 강요하고 있다.
 
둘째 조건은 한미연합사와 관련되어 있다. 현재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은 주한미군 사령관인 한미연합사령관이 가지고 있다. 전시작전권이 한국에 넘어갈 경우 한미연합사 구성과 운영, 한미연합군의 합동전력관리상 변화가 불가피하다. 지난해 10월  한미연합사령관을 한국군 대장이, 부사령관은 미군 대장이 맡기로 합의하였지만 미국 부사령관이 다시 유엔사 사령관을 맡고 한미연합사는 유엔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식의 논란이 일면서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형애화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었다. 게다가 한미연합사 사무실을 한국 국방부가 아니라 평택 미군기지에 두어야 한다고 했으니 한국군 출신 한미연합사령과인 평택미군기지에서 유배를 살게될 판이다.

사실 이것은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 사안이다. 한국군은 한국군대로 운용하고, 주한미군은 주한미군대로 운용하다가 필요하고 협력하고 필요 없으면 주한미군은 나가면 그만이다. 독일, 일본 ㅂ두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한미연합사를 유지하는 하는 것을 무너뜨릴 수 없는 대전제로 놓고 문제를 풀려고 하니, 미군 부사령관 위에 한국군 대장이 있고 그 위에 미군 부사령관이 유엔사 사령관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실 이 그림은 공식적인 유엔조직도 아닌 유령조직인 유엔사가 60만이 넘는 한국군과 막강전력을 가진 주한미군을 지휘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희극이다. 그리고 70년이나 넘게 한미연합체제속에서 미군이 시키는대로 굴러먹는데 이골이 난 식민지 한국군대의 노예습성이라는 비극도 보여준다.

셋째 조건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이 전작권을 가져갈 수 있는 조건이 한반도 및 지역안보환경 관리 능력이라는 것인데, 결국 미국의 대중국대북전략의 전초기지 역할을 잘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겠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축으로 주한미군을 운용하고자 하며, 여기에 맞게 한미일 군사동맹을 재편하고 그 하위에 한국군의 역할을 부여하고자 한다. 미국이 말하는 전작권 검증이란 이러한 방향에서 한국군이 움직이면 전작권을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모든 것이 명백해진다. 원래 대한민국의 군사주권이 전시작전권을 받아오는데 그 무슨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전작권을 돌려받는 <조건>, 돌려주는 <검증>이라는 희안한 발상자체가 뼈속 깊은 사대노예근성의 산물이다. 그리고 전작권 반환 <조건>이라는 것도 국민들로부터 탄핵받은 박근혜 정부 시절 합의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여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내 전작권 반환을 원칙으로 삼고, 기존 합의에서 말하는 <조건>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임기내에 전작권을 돌려받아야 한다.

그리고 한미연합훈련속에서 검증이라는 것도 할 필요가 없다. 문재인 정부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이 그 검증이라는 것을 거치면 전작권을 순순히 돌려줄 것 같은가.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한미연합훈련도 계속 하자고 구걸할 것인가. 한미연합훈련은 그 자체로 당장 중지해야 할 일이다. 한미연합훈련은 중국봉쇄와 대북적대정책을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에게만 필요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필요하다. 전쟁을 위한 전작권이 아니라 평화의 길을 개척하는 전작권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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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 불러온 포츠담의 검은 그림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8/17 22:11
  • 수정일
    2020/08/17 22: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 407] 재앙 불러온 포츠담의 검은 그림자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8/1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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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포츠담선언 발표 이전의 상황

2. 포츠담선언 발표 이후의 상황

3. 파죽지세의 진공작전

4. 딘 러스크가 날조한 거짓말

5. 민족분렬재앙은 미국이 저지른 만행 

 

 

1. 포츠담선언 발표 이전의 상황

 

75년 전, 8월 15일 일본제국은 패망했고 식민지조선은 해방되었다. 1945년 8월 15일은 수요일이었다. 그날 아침 서울 시내 곳곳에 벽보가 나붙었다. 당일 정오에 중대방송이 있을 것이므로 “1억 국민이 필청(必聽)하라”는 벽보였다. 그들이 말한 1억 국민은 당시 일본제국 인구에 더하여 일본제국이 식민지로 강점한 조선반도, 남사할린, 중국의 대만과 랴오닝반도 남부의 인구를 모두 합한 총인구를 뜻한다. 

 

벽보에서 필청하라고 했던 중대방송은 일왕 히로히또(裕仁)의 녹음방송이다. 1945년 8월 14일 밤, 히로히또는 도꾜에 있는 자기 거처에서 ‘천황의 조서(詔書)’라는 것을 육성으로 녹음했는데, 그것을 라디오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경성방송국은 히로히또의 조서낭독녹음을 방송했다. 경성방송국은 조선총독부가 1926년 11월에 설립한 라디오방송국이다. 일본제국은 서울을 경성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 일왕이 라디오방송을 통해 항복선언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히로히또가 낭독한 것은 항복서가 아니라 조서였다. 원래 조서는 왕의 명령을 백성들에게 하달하는 왕실문서다. 그날 라디오방송을 통해 전해진 히로히또의 조서는 가와다 미즈호(川田瑞穗)가 현학적인 고어체로 작성한 약 800자의 장문이었기 때문에, 고전문장에 익숙한 일본인들이나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당시 경성방송국 취재기자였던 문제안의 회고담에 따르면, 전파송출상태가 나빠서 히로히또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히로히또의 조서를 방송으로 내보낸 직후, 경성방송국 제1보도과 계장 후꾸다(福田)가 조서를 일본말로 다시 방송했고, 조선인 방송원 이덕근이 조선말로 번역된 조서를 다시 방송했다고 한다. 문제안의 회고담에 따르면, 그날 오후 경성방송국은 히로히또의 조서를 그런 식으로 몇 차례 되풀이하여 방송했고, 조서내용에 대한 해설방송도 했다고 한다. 서울시민들은 1945년 8월 15일 오후에 방송된 해설을 듣고서야 일본제국이 패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놀라운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삽시에 퍼져나갔다. 그렇게 되어 1945년 8월 16일 아침부터 조선 민중들은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다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외치는 격정의 만세소리는 삼천리금수강산에 메아리쳤다.

 

그러나 당시 우리 민족은 패망한 일본제국의 배후에 음흉한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음흉한 그림자의 정체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식민지조선을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에서 해방시키려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분할하려는 흉계를 일찌감치 꾸몄고, 그 흉계를 행동에 옮길 결정적인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서에서 히로히또는 항복의사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짐은 제국의 정부로 하여금 열강들의 공동선언 조항들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게 했노라”라고 언급했다. 히로히또가 조서에서 언급한 공동선언이라는 것은 1945년 7월 26일에 발표된 포츠담선언(Potsam Declaration)이다. 포츠담은 도이췰란드 베를린 근교의 지명이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된 포츠담회의에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 소련공산당 서기장 스딸린이 악수하는 장면이다. 포츠담회의에서 발표된 포츠담선언에서 연합국들은 일본제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촉구했다. 또한 포츠담회의에서는 종전문제와 전후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민족사적 관점에서 8.15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조선인민혁명군이 8.15 직전 함경북도에서 전개한 조국해방전투상황을 고찰해야 하고, 세계사적관점에서 8.15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포츠담회의의 내막을 살펴보아야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포츠담선언 제13항이다. 그 마지막 조항에는 “우리는 모든 일본군이 당장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그로써 적절하고 온당한 선의(good faith)를 확약할 것을 일본 정부에게 촉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에게는 즉각적이고 철저한 파괴만이 차례질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은 일본제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촉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왕 히로히또가 조서에서 공동선언을 수락하겠다고 언급한 것에 항복의사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는 포츠담선언이라고 명시하지 않고 열강들의 공동선언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여 항복의사를 은폐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그런 은폐가 언술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항복문제를 놓고 찬반격론을 벌인 일본제국 전쟁지휘부의 내부분렬을 반영한 것이고, 그와 더불어 종전문제를 놓고 미국과 소련을 각각 상대한 일본제국의 막후교섭사정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항복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제국 전쟁지휘부가 내부분렬을 겪은 내막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종전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제국 전쟁지휘부가 막후교섭을 벌인 내막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5년 6월 전황은 일본제국에게 매우 불리해졌다. 일본제국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소련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막후교섭을 시도했다. 당시 소련은 일본제국과 불가침협정을 맺은 중립국이었으므로, 중재를 부탁할 나라는 소련밖에 없었다. 1941년 4월 13일에 체결되어 5년 동안 효력을 유지하는 소일불가침조약이 만료되는 날은 1946년 4월 13일이었다. 

 

1945년 6월 30일 일본제국 수상 스즈끼 간따로(鈴木貫太郞)는 당시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일본제국 대사 사또 나오다께(佐藤尙武)를 통해 소련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막후교섭을 제안했다. 하지만 소련은 그 제안에 즉답을 주지 않고, 지연전술로 대응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하루가 급한 일본제국은 조바심을 느꼈지만, 소련 외무상 봐쩨슬라브 몰로또브(Vyacheslav Molotov)는 열흘 동안 시간을 끌다가 사또 나오다께를 1945년 7월 11일에 만났다. 

 

소련은 일본제국의 막후교섭제안에 즉답을 피하고 시간을 끌다가 마지못해 응해주는 척하였으므로, 몰로또브와 사또가 만난 회동에서 어떤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회동에서 몰로또브는 전쟁이 일본제국에게 유리하게 끝날 수 있을 것 같은 예상을 사또에게 말해주었다. 소련의 그런 행동은 대일전쟁준비시간을 벌기 위한 기만전술이었다. 소련은 1945년 5월 8일 나치 도이췰란드가 항복한 직후 유럽전선에 전개했던 방대한 규모의 전투병력, 무장장비, 군수물자를 수송렬차편으로 약 10,000km떨어진 원동전선까지 이동시켜 대일전쟁을 준비하는 중이었으므로, 수송작전을 완료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소련의 기만전술에 넘어간 일본제국은 전쟁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끝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했다. 그런 오판에 빠진 일본제국은 항복준비가 아니라 결전준비에 더욱 미쳐 날뛰었다.  

 

미국은 일본제국 수상 스즈끼 간따로와 일본제국 대사 사또 나오다께가 주고받는 도꾜-모스크바 사이의 암호전문을 계속 도청하고 있었다. 1995년에 출판된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옥스퍼드 입문서(The Oxford Guide to World War II)’라는 제목의 책에 따르면, 미국의 암호해독요원들은 도꾜와 모스크바를 오간 일본제국의 암호전문을 해독하기까지 1주일도 걸리지 않았고, 어떤 암호전문은 입수한 당일 곧바로 해독했다고 한다. 미국은 일본제국의 암호전문을 해독하여 일본제국이 항복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하려는 의지를 가졌음을 파악했다.   

 

 

2. 포츠담선언 발표 이후의 상황

 

미국, 일본, 소련이 제각기 급박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고, 1945년 7월 26일 일본제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는 포츠담선언이 발표되었다. 포츠담선언이 발표되자, 일본제국 최고전쟁지도회의는 긴급대책을 세워야 했다. 최고전쟁지도회의 구성원은 6명인데, 수상 스즈끼 간따로, 외무상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 전쟁상 아나미 고레지까(阿南惟幾), 해군상 요나이 미쯔마사(米內光政), 육군참모총장 우메즈 요시지로(梅津美治郞), 해군참모총장 도요다 소에무(豊田副武)가 그들이었다. 

 

일본제국 최고전쟁지도회의 6인방은 포츠담선언을 수락하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를 놓고 오랜 시간 설왕설래한 끝에 그 선언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이른바 ‘국체호지(國體護持)’를 인정하는 내용이 포츠담선언에 들어있지 않다는 해괴한 이유를 들어 포츠담선언을 거부한 것이다. ‘국체호지’라는 것은 ‘천황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1945년 7월 28일 일본제국은 포츠담선언을 “묵살(黙殺)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일본제국이 항복하더라도 ‘천황제’는 종전대로 유지시킨다는 조항이 미국이 제출한 포츠담선언 초안에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 나라들에게 침략전쟁과 식민지강점의 만행을 저지른 최고전범 히로히또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도는, 전범국 일본을 남북으로 분할하지 않고, 피해국 조선을 남북으로 분할하려는 간악한 흉계와 직결된 것이었다. 

 

포츠담회의에서 소련과 영국은 ‘천황제’를 종전대로 유지시키려는 미국의 의견에 반대했고, 그 조항은 삭제되었다. 그렇게 되어, 포츠담선언 제10항에는 “모든 전범들에게 준엄한 심판(Stern justice)을 내린다”라는 모호한 문장이 들어갔다. 미국은 모호하게 규정된 제10항을 근거로 최고전범 히로히또를 처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범처벌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준엄한 심판’을 적당히 끝냈다. 극형을 받았어야 마땅한 일본제국의 전범들을 끼고돌았던 미국의 간악한 전범처리정책 때문에, 7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일본은 침략전쟁과 식민지강점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되레 자기들의 침략전쟁과 식민지강점을 합리화하는 후속범죄를 계속 저지르고 있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미국, 소련, 영국이 포츠담회의를 진행하는 장면이다. 포츠담회의는 미국, 소련, 영국이 진행했지만, 포츠담선언에는 미국, 영국, 중국(장졔스 정부)이 서명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당시 소련은 일본제국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중립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불가침조약이 유효한 조건에서 소련은 일본제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에 서명할 수 없었다. 소련은 나중에 포츠담선언에 서명했다.  

 

1945년 7월 30일 소련군의 전투병력, 무장장비, 군수물자를 유럽전선에서 원동전선으로 옮기는 마지막 수송렬차가 원동지역에 도착했다. 그로써 소련의 대일전쟁준비는 사실상 완료되었다. 마지막 수송렬차가 원동지역에 도착한 바로 그날, 모스크바 주재 일본제국 대사 사또는 일본제국 수상 스즈끼에게 보낸 암호전문에서 “만일 우리가 소련의 참전을 막지 못하면,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항복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을 것”이라고 썼다. 이런 사정은 일본제국에게 가장 두려운 세력이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음을 말해준다. 일본제국의 대소공포증은 그들의 대미적대감을 완화시켰다.   

 

미국은 소련의 전투병력, 무장장비, 군수물자가 유럽전선에서 원동전선으로 이동배치되어 대일전쟁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소련이 대일전쟁을 개시하면, 만주를 점령하고 곧바로 조선반도로 남진할 것이고, 그와 더불어 남사할린을 탈환하고 곧바로 일본 홋까이도에 상륙할 것으로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2개월 3주 동안 미국군이 20,000여 명이나 전사하는 격전 끝에 일본 오끼나와를 간신히 점령한 미국군이 수송함을 타고 북상하여 조선반도와 일본 규슈에 상륙하려면, 작전시간이 1개월 이상 필요했지만, 소련-만주국경과 몽골-만주국경을 동시에 돌파하여 세 방면에서 총공격을 시작한 소련군은 1945년 8월 말까지 식민지조선을 해방하고 일본 홋까이도를 점령할 수 있었다. 소련군의 대일전쟁씨나리오는 일본과 조선반도를 점령하려고 벼르던 미국에게 악몽으로 다가왔다. 

 

미국이 그런 악몽을 떨쳐버리려면, 소련이 대일전쟁에 참전하기 전에 미국의 주도로 전쟁을 속결해야 했다. 그래서 미국은 핵시험 직후 실전배치를 앞둔 핵폭탄을 서둘러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군 B-29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에 첫 번째 핵폭탄을 떨어뜨렸다. 히로시마 전체가 핵참화로 불타고 있던 시각, 기고만장해진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은 대일협박성명을 발표했다. “만일 그들이 우리의 조건을 당장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파멸의 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핵폭탄으로 히로시마를 날려버리면 일본제국이 곧바로 항복할 것이라던 트루먼의 예상은 빗나갔다. 일본제국은 히로시마가 완전히 폐허로 되는 대참화를 당했으면서도 항복하지 않고 계속 버텼다. 

 

 

3. 파죽지세의 진공작전 

 

전쟁준비를 완료한 소련은 1945년 8월 9일 대일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일본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원동지역으로 집결한 소련군은 만주와 남사할린에서 파죽지세로 일본군을 격파하며 노도같이 진격했다. 이 충격적인 소식이 도꾜에 전해진 때는 당일 오전 4시였다. 

 

일본제국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만주를 소련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남사할린이 소련군에게 점령당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남사할린을 점령한 소련군은 약 1,300km의 바다 위에 늘어선 쿠릴렬도를 징검다리처럼 건너 곧바로 일본 홋까이도 북부해안에 상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계 미국인 역사학자 하세가와 즈요시(長谷川毅)는 2005년에 출판된 ‘대적경쟁: 스딸린,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Racing the Enemy: Stalin, Truman, and the Surrender of Japan)'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당시 소련이 홋까이도를 점령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서술했다.    

 

소련이 대일선전포고를 발표한 날, 10만명 병력으로 편성된 소련군 제16군은 남사할린으로 진격했다. 2013년 5월 30일 미국 외교전문지 ‘외교정책(Foreign Policy)’에 실린, 핵안보연구자 워드 윌슨(Ward H. Wilson)이 집필한, ‘일본을 패배시킨 것은 원폭이 아니라 스탈린’이라는 제목의 글에 따르면, 소련군 제16군은 10일 만에 남사할린을 탈환하고 곧바로 일본 홋까이도에 상륙하는 작전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소련군이 만주와 남사할린에서 파죽지세로 진격하고 있었던 1945년 8월 9일 오전 10시 30분, 공포에 빠진 도꾜에서 최고전쟁지도회의가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그런데 비상대책회의에서 포츠담선언을 수락하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격론이 벌어지고 있던 바로 그 시각, 두 번째 핵폭탄을 실은 미국군 B-29 폭격기가 일본 나가사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폭격기는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끼 상공에서 핵폭탄을 투하했다. 나가사끼도 히로시마처럼 핵참화를 입었다. 히로시마 군수공장들과 나가사끼 군수공장들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인들이 핵참화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소련의 대일전쟁개시와 미국의 나가사끼 핵폭탄 투하가 겹치면서 사상 최악의 위급한 상황이 조성되었는데도, 일본제국 최고전쟁지도회의 6인방은 투항파와 항전파로 3명씩 갈라져 말싸움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고전쟁지도회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당일 오후 2시 30분 전시내각 전원회의가 진행되었으나, 그들도 투항파와 항전파로 갈라져 말싸움을 벌였다. 종내 결론을 내지 못하자, 일왕 히로히또가 직접 나서서 항복결정을 내렸다. 

 

이튿날인 1945년 8월 10일 이른 아침, 일본제국 외무성은 스위스를 통해 미국에게 긴급전문을 보냈다. 일본제국 외무성이 소련에게는 긴급전문을 보내지 않고 미국에게만 보낸 것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미국과 거래하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었다. 일본제국 외무성은 긴급전문에서 “천황의 대권을 손상시키는 어떤 조건도 없다면” 포츠담선언을 수락하겠노라고 하면서 조건부 항복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포츠담선언에서 일본제국에게 요구한 것은 조건부 항복이 아니라 무조건 항복이었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1945년 8월 만주해방전투에 참가한 소련군 전투원들이 헤이룽장성 하얼빈을 해방하고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1945년 8월 9일 소련의 대일선전포고로 시작된 만주해방전투는 8월 20일까지 계속되었다. 소련군은 만주해방전투에 전투병력157만명, 야포 27,000문, 방사포 1,150문, 전차 및 자행포 5,500대, 작전기 3,720대를 동원했다. 만주해방전투에서 소련군은 12,000여 명이 전사했고, 일제 관동군은 83,700명이 전사했으며, 약 600,000명이 포로로 잡혔다. 그로써 일제 관동군은 궤멸되었다. 만주해방전투에는 몽골군도 참전했다.  

 

숨막히는 대격변이 줄이어 일어나는 동안, 기세충천한 소련군은 만주와 남사할린에서 각각 일본군 방어선을 돌파하면서 남진했고, 김일성 사령관이 지휘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은 함경북도 각지에 대기 중이던 국내인민무장대들과 함께 일본군 군사거점들을 격파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1945년 8월 12일 조선인민혁명군은 라진인민무장대의 호응을 받으며 함경북도 라진(오늘의 라선)에 있는 일본군 거점들과 식민통치기관들을 공격했다. 라진해방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라진해방전투에 참가한 소련군 제25군 지휘관 우르쥬멜라슈월리는 <조선에서의 수기>라는 제목의 책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들은 조선빨찌산들이 일본군의 퇴로를 막고 그들이 도시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과 빨찌산들 사이에 갇힌 일본 사무라이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포로로 잡히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도시외곽에서 우리쪽으로 급히 달려오는 100여 명의 무장대오와 조우했다. 그들의 지휘관은 아군 땅크부대 대령에게 ‘우리들은 김일성빨찌산 대원들입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소련군과 조선인민혁명군의 급속한 진격을 보면서 당황했지만, 일본제국에 또 다시 투하할 핵폭탄을 미처 만들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제국이 항복하지 않고 계속 버티는 경우,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이어 삿뽀로와 하꼬다떼에도 핵폭탄을 투하할 공격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삿뽀로와 하꼬다떼는 홋까이도의 중심도시들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은 소련군이 홋까이도에 상륙하기 전에 자기들이 먼저 홋까이도 중심도시들에 핵폭탄을 투하하여 전쟁을 끝내보려고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삿뽀로와 하꼬다떼에 투하할 핵폭탄 두 발은 약 3개월이 지난 1945년 11월에나 완성될 수 있었다.  

 

속이 타들어가던 미국은 긴급대책을 꺼내들었다. 1945년 8월 14일 미국군 B-29 폭격기 400대가 일본 각지 상공에 까마귀떼처럼 몰려들어 폭탄을 마구 쏟아부었고, 그날 밤에도 B-29 폭격기 300대가 까마귀떼처럼 몰려들어 일본 각지에 또 다시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 미국의 대공습으로 일본의 도시들이 거대한 화염 속에서 불타고 있는 아비규환 속에서 일왕 히로히또는 일본군 고위지휘관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히로히또는 자신이 라디오방송을 통해 발표할 조서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전시내각은 즉각 히로히또의 최종결심에 찬동했다. 패전을 직감한 그들은 자기들의 전쟁범죄와 관련된 방대한 분량의 문서자료를 파기하기로 결정했다. 

 

1945년 8월 14일 오후 7시, 히로히또가 다음날 라디오방송을 통해 발표할 조서 문안이 완성되었다. 오후 11시 히로히또는 일본 <NHK> 방송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조서를 낭독하는 자기 육성을 레코드판에 녹음했다. 그러는 사이에 일본제국 외무성은 스위스와 스웨리예를 통해 미국에게 포츠담선언의 항복조건을 수락하겠다는 긴급전문을 발송했다.   

 

 

4. 딘 러스크가 날조한 거짓말

 

1945년 7월부터 8월까지 세계적인 대격변기에 미국은 식민지조선을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에서 해방시키려는 게 아니라, 조선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하는 흉계를 꾸몄다. 미국은 그런 흉계를 언제, 어떻게 꾸몄을까? 

 

조선반도분할방안을 작성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딘 러스크(D. Dean Rusk)는 1990년에 출판된 ‘내가 본대로(As I Saw It)'라는 제목의 구술회고록에서 자기들이 조선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한 정황을 극적인 장면으로 서술했다. 그가 구술한 극적인 장면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일본제국이 항복한 1945년 8월 14일(도꾜 시간으로 8월 15일은 워싱턴 시간으로 8월 14일) 백악관에서 국무성-전쟁성-해군성조절위원회(SWNCC = State/War/Navy Coordinating Committee) 전략회의가 진행되었다. 일왕 히로히또의 조서가 라디오방송을 통해 전해진 8월 15일 정오는 워싱턴 시간으로 8월 14일 밤 11시였다. 백악관은 히로히또의 조서발표소식을 듣고 급히 전략회의를 소집했으므로, 전략회의가 시작된 시각은 워싱턴 시간으로 8월 15일 0시를 넘긴 깊은 밤이었다.  

 

2) 국무성-전쟁성-해군성조절위원회는 전쟁성 작전국 정책과에서 근무하던 현역 육군 대령들인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Charles H. Bonesteel, Jr.)에게 미국군이 조선반도에 상륙하여 어느 지역을 점령할 것인지를 정하는 중대한 과업을 맡겼다. 

 

3) 과업을 받은 러스크와 본스틸은 옆방으로 가서 조선반도를 어떻게 분할, 점령할 것인지를 논의했는데, 그들은 조선문제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문외한들이었다. 자기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중압감을 느낀 러스크와 본스틸은 다급한 김에 미국국립지리학회가 발행하는 지리전문지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에 실린 조선지도를 펴놓고 살펴보다가, 서울 바로 북쪽에 그어진 북위 38도선에 눈길을 모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지도는 너무 작아서 북위 38도선이 표시되지 않았는데, 딘 러스크는 그런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되어, 그들은 미국군이 38도선 이남지역을 점령하는 분할방안을 전략회의에 제출했다. 

 

4) 38도선 분할방안을 보고받은 국무성/전쟁성/해군성조절위원회는 별로 논란을 벌이지 않고 그 분할방안을 채택했다.

 

5) 미국은 소련이 38도선보다 더 남쪽에 분할선을 획정하자고 주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소련은 38도선 분할방안을 즉각 수락했다. (당시 소련의 관심은 조선반도가 아니라 일본 홋까이도에 쏠려있었다.)  

 

딘 러스크가 구술회고록에서 38도선 획정사건을 묘사한 장면은 너무 충격적이다. 장장 75년 동안 우리 민족을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38도선 분할이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 두 사람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었다니, 충격적이다 못해 격분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6.25전쟁 중에 미국군 장병들과 한국군 장병들이 38도선에 표지판을 세우는 장면이다. 사진 속의 그들은 한국군 제3사단 관할구역에 38도선 표지판을세우면서 웃고 있다. 신성한 우리 강토를 38도선으로 갈라놓은 미국의 만행 때문에 우리민족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 했는데, 사진 속의 그들은 웃고 있다. 총포성이 울리고 피가 흐르는 6.25전쟁이 미국의 38도선 분할점령으로 일어났는데도, 사진속의 그들은 그저 웃고 있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저들만이 아니라, 오늘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도 아직 미국의 분할점령만행이 얼마나 극악한 반인륜적 범죄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딘 러스크가 구술회고록에서 위와 같이 극적인 장면을 서술해놓는 바람에,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 히로히또의 조서낭독방송 소식을 들은 미국의 전쟁지휘부가 백악관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지도를 펴놓고 30분 만에 38도선 분할을 확정한 줄로 믿었다. 

 

하지만 딘 러스크가 구술회고록에서 서술한, 38도선 분할방안확정에 관한 서술내용은 커다란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백악관이 전후세계질서를 재편하는 중대한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다가, 일왕의 조서낭독방송을 듣고 나서 허겁지겁 심야전략회의를 소집하여 그 문제를 결정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945년 7월 26일에 발표된 포츠담선언 제8항에는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까이도, 규슈, 시고꾸와 우리가 정하는 그 밖의 작은 섬들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었다. 이것은 포츠담회의에서 전후세계질서를 재편하는 문제가 구체적으로, 심도 있게 논의되었음을 말해준다. 전후세계질서를 재편하는 문제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점령문제와 영토귀속문제였다. 다시 말해서, 일본제국이 식민지로 강점한 조선반도, 남사할린, 중국의 대만과 랴오닝반도 남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된 포츠담회의에서 조선반도, 남사할린, 중국의 대만과 랴오닝반도 남부를 처리하는 문제를 논의하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포츠담회의에 수행단 일원으로 참석한 딘 러스크는 회의기간 중에 진행된 38도선 분할방안결정과정에 실무자로 관여한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38도선 분할방안이 1945년 8월 15일 백악관 심야회의에서 황급히 결정되었다는 딘 러스크의 회고담은 날조된 거짓말인 것을 알 수 있다. 

 

 

5. 민족분렬의 재앙은 미국이 저지른 만행 

 

38도선 획정사건에 관한 딘 러스크의 회고담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완범 교수가 집필했고, 2013년 서울에서 출판된, ‘한반도 분할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에서 확인된다. 그 책에서 이완범 교수는 1949년 6월 17일 미국군 해리스 대령이 당시 미국 전쟁성 작전국장이었던 존 헐(John E. Hull)과 진행한 전화통화대담기록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하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포츠담회의에서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번스(James F. Byrnes)는 미국 군대가 조선반도에 상륙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소련과 함께 조선반도를 분할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 전략가들은 3개의 주요항구(원산, 인천, 부산)를 주목했고, 이 중 2개의 항구(인천과 부산)을 우리 쪽에 포함시키고, 서울 바로 북쪽에 (분할)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어) 38선을 따라 (분할)선을 긋는 것이 가장 좋은 위치라고 판단했다.”  

 

1945년 7월 포츠담회의에서 일본점령계획을 수립하는 작업에 참여한 에드워드 로우니(Edward L. Rowny)는 노환으로 사망하기 3년 전인 2014년 서울에서 ‘운명의 1도’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출판했는데, 그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로우니의 회고록에 따르면, 식민지조선을 분할점령하는 전략회의에서 딘 러스크와 앤드루 굿패스터(Andrew J. Goodpaster)는 남북을 39도선으로 분할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39도선은 평양과 원산을 잇는 선이다. 그런데 그들의 직속상관 조오지 링컨(George A. Lincoln)은 남북을 38도선으로 분할하자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조오지 링컨은 당시 미국 예일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였던 니컬러스 스피크만(Nicholas J. Spykman)이 제시한 이론에 근거하여 38도선으로 분할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스피크만은 1944년에 펴낸 ‘평화의 지리학(The Geography of the Peace)’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지구 북반부가 38도선을 경계로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미국의 국익이 지정학적으로 결정된다는 이론을 제시했는데, 그런 이론에 귀가 솔깃해진 조오지 링컨은 스피크만의 이론을 근거를 내세우면서, 남북을 39도선으로 분할하자는 참모들의 주장을 꺾고 자신의 38도선 분할방안을 밀어부쳤다는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위의 사진은 한미연합군이 북침전쟁연습을 벌이는 장면이다. 미국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참가하는 북침전쟁연습이다. 평화협정체결을 거부하고 침략무력증강과 북침전쟁연습을 끊임없이 감행하는 미국은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2020년 8월 16일 오늘도 북침전쟁연습에 여전히 광분하고 있다. 미국의 광기어린 전쟁책동을 물리치고 미국의 집요한 지배관리책동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민족자주를 쟁취하고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고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  

 

위에 인용한 회고담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은 포츠담회의에서 전후 세계질서를 자기들의 제국주의적 이익에 맞게 재편하기 위한 방편으로 38도선 분할점령안을 확정했다. 1945년 8월 15일 직후 해방의 기쁨으로 들끓는 삼천리강토 위에 하루빨리 민주주의통일공화국을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열망과 투쟁이 고조되고 있었을 때, 미국은 우리 강토를 38도선으로 갈라놓고 그 남부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역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의 38도선 분할점령은 우리 민족에게 재앙의 근원이었다. 1,000년 동안 한 나라 강토에서 함께 살아온 우리 민족이 미국의 38도선 분할점령 때문에 남북으로 갈라지는 재앙에 빠졌고, 그로부터 5년 뒤에는 6.25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의 38도선 분할점령으로 시작된 민족분렬의 재앙이 75년 동안 지속되는 바람에 우리 민족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미국은 평화협정체결을 거부하고 침략무력증강과 북침전쟁연습을 끊임없이 감행하면서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악랄하게 반대하고 있다. 우리 강토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미국은 천추에 용납 못할 분단원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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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방역에 성공한 쿠바, 굶주림은 어떻게 방역할 것인가

[쿠바와 코로나19] ④ 불평등과 굶주림이라는 '병'은 치유하는 법은?

여기, 우리가 외면해 온 작은 나라가 있다. '저개발국'이라 치부되던,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의 바깥에 있는 세계, 쿠바에도 코로나19는 찾아왔다. 그러나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2020년 7월 3일까지 쿠바의 누적 확진자는 2400명 이하이고, 총 사망자는 86명이다. 사망률도 WHO의 평균보다 낮은 3.6%이다. 쿠바는 어떻게 코로나를 극복하고 있을까. <프레시안>은 현재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교에 재학중인 김해완 씨가 본 '쿠바의 의료 체계'와 관련된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


 

'쿠바와 코로나19' 연재 보기


 

①우리가 외면한 세계, 쿠바는 어떻게 코로나를 이겼나


 

②쿠바에는 코로나 자가진단 '인간 앱'이 동네마다 있다?


 

③쿠바의 코로나 방역 '사회적 거리 0m'의 쾌거..."이웃간 볼키스를 멈추세요"


 

앞서 연재를 읽으신 분들은 쿠바의 상황이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인 코로나바이러스를 통제하는데 거의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것은 반만 맞는 말이다. 쿠바가 역병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쿠바의 상황이 괜찮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쿠바는 방역을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켰지만, 안전에는 대가가 있었다. 바로 식량난이다.


 

사실 쿠바의 식량 문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었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먼저 식민지가 되었고 또 가장 오래 식민지로 남아야했던 이 섬의 역사가 남긴 카르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쿠바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는 감자의 친척뻘인 유까(Yuca)와 말랑가(Malanga)를 주식으로 삼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콜럼버스를 뒤따라온 스페인인들은 원주민들을 학살했고, 섬의 생태계와 오랫동안 공생했던 그들의 식습관도 말살되었다. 텅 비어버린 섬에는 동남아시아에서 먼 길 건너온 사탕수수가 대신 심어졌다. 금을 대체해서 이윤을 창출할 식민지 상품으로 설탕이 낙점된 것이다. 그 후 쿠바는 약 400년 동안 스페인의 설탕농장으로 기능했다. 쿠바의 번영은 대부분 설탕이 벌어다준 돈으로 이루어졌다.


 

19세기 말까지 왜곡된 경제구조가 계속되었으니, 스페인으로부터 늦은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경제구조가 쉽게 복원되었을 리가 없다. 1959년 쿠바 혁명은 자급자족을 목표로 농업 개혁을 실행했지만, 그때 소련이라는 동구권 시장이 쿠바산 설탕을 후한 값으로 구매해주지 않았더라면 쿠바는 사회주의 정책을 실현할 최소한의 식량조차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중요한 시장이 90년대 초에 사라졌을 때 쿠바는 혹독한 식량난을 겪었다. 이때의 10년은 훗날 ‘특별시기(período especial)’라고 불린다.


 

그리고 2020년이다. 쿠바인들은 식량난을 또 다시 맞닥뜨리고 있다. 이들은 담담한 태도로 코로나라는 재난에 대처하는 중이다. 이 경이로운 인내심은 극한의 시기를 한 번 통과해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쿠바인들의 식탁이 넉넉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또 지금처럼 상황이 어려웠던 적은 특별시기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전국적인 봉쇄가 실행되던 올해 3월, 아바나에서는 식량배급소인 보데가(bodega)에서 쌀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것은 식량 위기의 신호탄과 같았다. 곧이어 배급표 없이는 쌀을 구입할 수 없다는 뉴스가 나왔다. 돈 있는 사람들이 쌀을 사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5월 즈음에는 쿠바에서 가장 흔한 식량이라는 설탕조차 보데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다른 동네를 방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설탕의 생산량 자체가 줄어든 건지, 아니면 유통망에 문제가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필자가 살던 동네보다 부유한 동네에는 아직 쌀과 설탕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지만, 가난한 동네의 사정은 이보다 더 심각해서 그쪽 주민들이 우리 동네까지 걸어와서 시장을 보곤 했다.

 

▲쿠바 트리니다드의 거리 풍경 ⓒ프레시안(박세열)

보데가 뿐만 아니라 마켓의 풍경도 바뀌었다. 물자의 종류는 코로나 이전보다 오히려 더 다양해졌다. 재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가 물건을 더 푼 것 같다. 그러나 물품 당 두 개까지만 살 수 있다는 개수제한이 생겼다. 이 역시 사재기를 막기 위한 조치다. 무엇보다도 물건들을 사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하게 긴 줄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 줄은 최소 두 시간, 평균 다섯 시간 정도 이어진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서 살 수 있는 것은 냉동된 소세지, 다진 고기, 음료수 정도다. 버터나 우유는 들어오자마자 팔려나간다. 냉동 닭이 들어오는 날이면 줄 경쟁은 더욱 심해진다. 새벽 4시에 줄을 서는 사람은 물론이요, 그 전날 밤 9시부터 돗자리를 들고 가게 문 앞에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도 있다.

 

마켓에서 찾을 수 없는 품목들은 블랙마켓에 돌아다닌다. 닭고기와 돼지고기가 가장 인기가 많고, 아예 야채와 과일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생겼다. 이런 불법 식품을 구매하면 평소보다 세네 배는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없어서 못 살 때가 많다.


 

봉쇄가 길어질수록 피로도 쌓인다. 그럼에도 쿠바인들은 이 답답한 시간을 차분히 견디는 중이다. 그 증거로 쿠바에는 아직까지 폭동이 없다. 굶어죽었다는 사람도 없다. 사실 식량을 구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까닭은, 얼마 없는 식량이라도 최대한 균등하게 사람들에게 분배하기 위해서다. 그 덕분일까, 아직은 농담이 통한다. 뙤약볕에서 계속 줄을 서다가는 코로나가 아니라 일사병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킥킥댄다. 마음의 여유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특별시기와 코로나시기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다. 그때는 쿠바만의 위기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동일한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때는 쿠바가 사회주의 경제 정책의 실패를 증명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했다. 이번에는 비판이 통하지 않는다. 쿠바는 지금 지구상에서 최악의 장소가 아니다. 쿠바의 가족이 다섯 시간 동안 줄을 서야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도, 마켓에 가도 물건 살 돈이 없는 멕시코 실업자의 가족만큼 굶주리지는 않는다. 코로나가 퍼지는 자리에 실업과 굶주림도 함께 퍼지고 있다. 수많은 나라들이 경제 봉쇄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생존할 가능성이라도 남겨주지만, 음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굶주림과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식량위기는 지금 전 세계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유엔(UN)은 올해가 5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식량 위기의 해가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런데 이 위기는 식량의 생산량과 상관없다. 2020년은 전체적으로 풍년이다. 경제 잡지 힌두비즈니스라인은 인도의 쌀, 밀, 콩 생산량이 작년보다 1~4% 더 늘었다고 5월에 발표했고, 전세계농산물수급전망보고서(WASDE)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1년에 미국의 옥수수 생산량은 최근 30년 기록의 최고치를 갱신한다. 중국은 7월부터 시작된 기록적인 폭우로 농작물 피해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신화뉴스는 작년보다 에이커 당 수확량이 늘었다는 뉴스를 7월 15일에 발표했다. 이처럼 고약한 농담이 또 있을까? 먹을 게 많은데 먹지를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논리 너머에 있다. 분배와 직결된다. 2021년 식량 정상 회담의 특사로 지정된 유엔 사무총장 아그네스 칼리바타(Agnes Kalibata)는 현재 코로나발 위기로 가장 불안해진 지역으로 카리브해와 남아메리카를 손꼽는다. 이유인즉 상품의 원활한 유통을 보장하는 경제 활동이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작물을 팔 시장에 접근할 수 없고, 노동자는 실업 때문에 식량을 살 돈이 없다. 쿠바처럼 관광업이 수입의 대부분인 섬 국가들은 외화가 바닥나고 있다.


 

식량 분배를 방해하는 것은 무너진 경제뿐만 아니다. FSIN(Food Security Information Network)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라틴아메리카보다 4배 더 많은 인구가 식량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갑작스럽게 닥친 가뭄과 해충의 탓으로,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후변화에는 이산화탄소의 대부분을 배출하는 선진국에 책임이 있지만, 그 결과로 피해를 입는 것은 특정 지역이며 그곳의 사회적 약자들이다. 풍년의 해조차도 풍작의 기쁨은 불균등하게 찾아온다.


 

지금 세계는 세포보다도 작은 RNA 바이러스 COVID-19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초경량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격리를 실행하고, 검진키트를 확보하며, 확진자의 동선을 공유한다. 그러나 시선을 뒤집어보자. 위기의 근본은 정말 바이러스인가? 오히려 세계의 사각지대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만성적인 문제들이 바이러스를 통해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굶주림이다.

 

우리는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굶주림은 코로나 이전부터 모든 인간 사회에서 만연했던 ‘병’이다. 매년 9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사하고, 그로부터 생존한 사람들조차 영양실조 탓에 면역계가 허약해지면서 다른 질병에 노출된다. 굶주림이라는 병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PCR 테스트처럼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질문이다. 어째서 인류는 전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도, 이 기본적인 병을 치유하지 못하는가? 기술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굶주림은 고립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인체는 바이러스를 견디는 최후의 수단으로 면역계를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고립 앞에서는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재간이 없다. 서로가 먹고 또 먹히며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이치는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인간은 기후 없이, 땅 없이, 곡물 없이, 농부 없이, 사회 없이 먹고 살 수 없다. 고립 속에서도 연대를 구축하는 쿠바 의학으로부터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 의료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먹거리는 건강한 삶을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쿠바는 이 삶의 기본을 튼튼하게 보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곳에서도 이 토대가 무너져 있다.


 

자유 시장 경제의 법칙으로 생명의 기본을 지킬 수 없다면 또 다른 질서가 필요할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물리적인 고립을 넘어 식량의 연대가, 나아가 생명의 연대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출처: https [쿠바와 코로나19] ④ 불평등과 굶주림이라는 '병'은 치유하는 법은?

여기, 우리가 외면해 온 작은 나라가 있다. '저개발국'이라 치부되던,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의 바깥에 있는 세계, 쿠바에도 코로나19는 찾아왔다. 그러나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2020년 7월 3일까지 쿠바의 누적 확진자는 2400명 이하이고, 총 사망자는 86명이다. 사망률도 WHO의 평균보다 낮은 3.6%이다. 쿠바는 어떻게 코로나를 극복하고 있을까. <프레시안>은 현재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교에 재학중인 김해완 씨가 본 '쿠바의 의료 체계'와 관련된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


 

'쿠바와 코로나19' 연재 보기


 

①우리가 외면한 세계, 쿠바는 어떻게 코로나를 이겼나


 

②쿠바에는 코로나 자가진단 '인간 앱'이 동네마다 있다?


 

③쿠바의 코로나 방역 '사회적 거리 0m'의 쾌거..."이웃간 볼키스를 멈추세요"


 

앞서 연재를 읽으신 분들은 쿠바의 상황이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인 코로나바이러스를 통제하는데 거의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것은 반만 맞는 말이다. 쿠바가 역병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쿠바의 상황이 괜찮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쿠바는 방역을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켰지만, 안전에는 대가가 있었다. 바로 식량난이다.


 

사실 쿠바의 식량 문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었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먼저 식민지가 되었고 또 가장 오래 식민지로 남아야했던 이 섬의 역사가 남긴 카르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쿠바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는 감자의 친척뻘인 유까(Yuca)와 말랑가(Malanga)를 주식으로 삼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콜럼버스를 뒤따라온 스페인인들은 원주민들을 학살했고, 섬의 생태계와 오랫동안 공생했던 그들의 식습관도 말살되었다. 텅 비어버린 섬에는 동남아시아에서 먼 길 건너온 사탕수수가 대신 심어졌다. 금을 대체해서 이윤을 창출할 식민지 상품으로 설탕이 낙점된 것이다. 그 후 쿠바는 약 400년 동안 스페인의 설탕농장으로 기능했다. 쿠바의 번영은 대부분 설탕이 벌어다준 돈으로 이루어졌다.


 

19세기 말까지 왜곡된 경제구조가 계속되었으니, 스페인으로부터 늦은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경제구조가 쉽게 복원되었을 리가 없다. 1959년 쿠바 혁명은 자급자족을 목표로 농업 개혁을 실행했지만, 그때 소련이라는 동구권 시장이 쿠바산 설탕을 후한 값으로 구매해주지 않았더라면 쿠바는 사회주의 정책을 실현할 최소한의 식량조차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중요한 시장이 90년대 초에 사라졌을 때 쿠바는 혹독한 식량난을 겪었다. 이때의 10년은 훗날 ‘특별시기(período especial)’라고 불린다.


 

그리고 2020년이다. 쿠바인들은 식량난을 또 다시 맞닥뜨리고 있다. 이들은 담담한 태도로 코로나라는 재난에 대처하는 중이다. 이 경이로운 인내심은 극한의 시기를 한 번 통과해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쿠바인들의 식탁이 넉넉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또 지금처럼 상황이 어려웠던 적은 특별시기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전국적인 봉쇄가 실행되던 올해 3월, 아바나에서는 식량배급소인 보데가(bodega)에서 쌀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것은 식량 위기의 신호탄과 같았다. 곧이어 배급표 없이는 쌀을 구입할 수 없다는 뉴스가 나왔다. 돈 있는 사람들이 쌀을 사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5월 즈음에는 쿠바에서 가장 흔한 식량이라는 설탕조차 보데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다른 동네를 방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설탕의 생산량 자체가 줄어든 건지, 아니면 유통망에 문제가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필자가 살던 동네보다 부유한 동네에는 아직 쌀과 설탕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지만, 가난한 동네의 사정은 이보다 더 심각해서 그쪽 주민들이 우리 동네까지 걸어와서 시장을 보곤 했다.

 

▲쿠바 트리니다드의 거리 풍경 ⓒ프레시안(박세열)

보데가 뿐만 아니라 마켓의 풍경도 바뀌었다. 물자의 종류는 코로나 이전보다 오히려 더 다양해졌다. 재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가 물건을 더 푼 것 같다. 그러나 물품 당 두 개까지만 살 수 있다는 개수제한이 생겼다. 이 역시 사재기를 막기 위한 조치다. 무엇보다도 물건들을 사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하게 긴 줄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 줄은 최소 두 시간, 평균 다섯 시간 정도 이어진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서 살 수 있는 것은 냉동된 소세지, 다진 고기, 음료수 정도다. 버터나 우유는 들어오자마자 팔려나간다. 냉동 닭이 들어오는 날이면 줄 경쟁은 더욱 심해진다. 새벽 4시에 줄을 서는 사람은 물론이요, 그 전날 밤 9시부터 돗자리를 들고 가게 문 앞에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도 있다.

 

마켓에서 찾을 수 없는 품목들은 블랙마켓에 돌아다닌다. 닭고기와 돼지고기가 가장 인기가 많고, 아예 야채와 과일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생겼다. 이런 불법 식품을 구매하면 평소보다 세네 배는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없어서 못 살 때가 많다.


 

봉쇄가 길어질수록 피로도 쌓인다. 그럼에도 쿠바인들은 이 답답한 시간을 차분히 견디는 중이다. 그 증거로 쿠바에는 아직까지 폭동이 없다. 굶어죽었다는 사람도 없다. 사실 식량을 구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까닭은, 얼마 없는 식량이라도 최대한 균등하게 사람들에게 분배하기 위해서다. 그 덕분일까, 아직은 농담이 통한다. 뙤약볕에서 계속 줄을 서다가는 코로나가 아니라 일사병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킥킥댄다. 마음의 여유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특별시기와 코로나시기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다. 그때는 쿠바만의 위기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동일한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때는 쿠바가 사회주의 경제 정책의 실패를 증명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했다. 이번에는 비판이 통하지 않는다. 쿠바는 지금 지구상에서 최악의 장소가 아니다. 쿠바의 가족이 다섯 시간 동안 줄을 서야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도, 마켓에 가도 물건 살 돈이 없는 멕시코 실업자의 가족만큼 굶주리지는 않는다. 코로나가 퍼지는 자리에 실업과 굶주림도 함께 퍼지고 있다. 수많은 나라들이 경제 봉쇄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생존할 가능성이라도 남겨주지만, 음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굶주림과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식량위기는 지금 전 세계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유엔(UN)은 올해가 5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식량 위기의 해가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런데 이 위기는 식량의 생산량과 상관없다. 2020년은 전체적으로 풍년이다. 경제 잡지 힌두비즈니스라인은 인도의 쌀, 밀, 콩 생산량이 작년보다 1~4% 더 늘었다고 5월에 발표했고, 전세계농산물수급전망보고서(WASDE)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1년에 미국의 옥수수 생산량은 최근 30년 기록의 최고치를 갱신한다. 중국은 7월부터 시작된 기록적인 폭우로 농작물 피해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신화뉴스는 작년보다 에이커 당 수확량이 늘었다는 뉴스를 7월 15일에 발표했다. 이처럼 고약한 농담이 또 있을까? 먹을 게 많은데 먹지를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논리 너머에 있다. 분배와 직결된다. 2021년 식량 정상 회담의 특사로 지정된 유엔 사무총장 아그네스 칼리바타(Agnes Kalibata)는 현재 코로나발 위기로 가장 불안해진 지역으로 카리브해와 남아메리카를 손꼽는다. 이유인즉 상품의 원활한 유통을 보장하는 경제 활동이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농부는 작물을 팔 시장에 접근할 수 없고, 노동자는 실업 때문에 식량을 살 돈이 없다. 쿠바처럼 관광업이 수입의 대부분인 섬 국가들은 외화가 바닥나고 있다.


 

식량 분배를 방해하는 것은 무너진 경제뿐만 아니다. FSIN(Food Security Information Network)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라틴아메리카보다 4배 더 많은 인구가 식량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갑작스럽게 닥친 가뭄과 해충의 탓으로,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후변화에는 이산화탄소의 대부분을 배출하는 선진국에 책임이 있지만, 그 결과로 피해를 입는 것은 특정 지역이며 그곳의 사회적 약자들이다. 풍년의 해조차도 풍작의 기쁨은 불균등하게 찾아온다.


 

지금 세계는 세포보다도 작은 RNA 바이러스 COVID-19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초경량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격리를 실행하고, 검진키트를 확보하며, 확진자의 동선을 공유한다. 그러나 시선을 뒤집어보자. 위기의 근본은 정말 바이러스인가? 오히려 세계의 사각지대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만성적인 문제들이 바이러스를 통해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굶주림이다.

 

우리는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굶주림은 코로나 이전부터 모든 인간 사회에서 만연했던 ‘병’이다. 매년 9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사하고, 그로부터 생존한 사람들조차 영양실조 탓에 면역계가 허약해지면서 다른 질병에 노출된다. 굶주림이라는 병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PCR 테스트처럼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질문이다. 어째서 인류는 전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도, 이 기본적인 병을 치유하지 못하는가? 기술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굶주림은 고립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인체는 바이러스를 견디는 최후의 수단으로 면역계를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고립 앞에서는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재간이 없다. 서로가 먹고 또 먹히며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이치는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인간은 기후 없이, 땅 없이, 곡물 없이, 농부 없이, 사회 없이 먹고 살 수 없다. 고립 속에서도 연대를 구축하는 쿠바 의학으로부터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 의료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먹거리는 건강한 삶을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쿠바는 이 삶의 기본을 튼튼하게 보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곳에서도 이 토대가 무너져 있다.


 

자유 시장 경제의 법칙으로 생명의 기본을 지킬 수 없다면 또 다른 질서가 필요할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물리적인 고립을 넘어 식량의 연대가, 나아가 생명의 연대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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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 때문에 코로나 대응 실패... 지금 일본엔 '제2의 패전' 필요"

[8.15특집 인터뷰 ②] 한국뉴스를 일본에 알리는 니시다 다카시

20.08.16 11:58l최종 업데이트 20.08.16 11:58l
 니시다 다카시씨(오른쪽)가 스튜디오에서 재일 한국인 공동출연자 김상헌씨와 함께 '일본의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주간한국뉴스'를 촬영하고 있다.
▲  니시다 다카시씨(오른쪽)가 스튜디오에서 재일 한국인 공동출연자 김상헌씨와 함께 "일본의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주간한국뉴스"를 촬영하고 있다.
ⓒ 유튜브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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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너무 모릅니다. 일본 정부나 언론의 말만 믿고 그걸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럼 오해를 낳고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원인이 되죠."

한일 관계가 전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한국 방송의 뉴스를 일본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일본인이 있다.

유튜브에서 '일본의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주간한국뉴스'(日本のメディアが伝えない週刊韓国ニュースhttp://bitly.kr/eBbsTpyELig) 채널을 운영하는 니시다 다카시씨가 그 주인공. 한국에 유리한 얘기를 했다간 단번에 일본 극우들에게 공격을 당하기 십상인 상황에서 그가 이같이 궂은 일을 나서서 하는 이유는 뭘까.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일본을 위해서"다.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한국인들처럼 국민이 나서서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데 일본인들은 너무 순종적"이라는 그는 "내키지 않더라도 이런 건 한국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일본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혐한은 안된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제2의 패전'이 필요하다며 "민주주의를 스스로 버렸기 때문에 선진국이란 평가도, 세계적인 신뢰도, 올림픽도 다 잃어버렸다고 하는 그런 충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점점 심해져가고 있는 일본내 혐한의 원인에 대해서도 명쾌히 설명했다.

"부자집 자식으로 태어나 노력하지 않았고 그래서 스펙이 없는 사람이 지금의 일본의 민낯입니다. 그것을 인정할 용기가 없어 '우리 집은 원래 부자'라고 자랑만 하는 거죠. 그런 사람은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노력해서 스펙을 쌓은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 사람이 한국이죠. 이게 바로 혐한의 이유입니다."

그는 강제징용 판결로 인해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것에 대해서 "한국이 양보할 필요는 없다"며 코로나19 대처로 국제적 신뢰가 높아진 한국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차 한국에 있는 것과 같은 시민언론을 만들고 싶다는 니시다씨는 "일본의 부끄러운 현실을 세계 각국에 알리는 것이 가장 일본 국민을 각성시키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니시다씨와의 일문입답이다.

"일본인들, 한국을 너무 몰라...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
   
 '일본의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주간한국뉴스'가 아베사죄상 설치의 의도에 대해 설명하는 한국 TV 보도를 전해주고 있다.
▲  "일본의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주간한국뉴스"가 아베사죄상 설치의 의도에 대해 설명하는 한국 TV 보도를 전해주고 있다.
ⓒ 유튜브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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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자기소개를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사카에 가까운 효고현 아마가사키시라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인구 50만 명 정도 되는 도시입니다. 빈곤계층 노동자가 많은 도시죠. 특히 제가 사는 지역은 재일 한국인, 조선인 인구 비율이 70%에 이르는 지역이었습니다. 지금은 수도권에 살고 있습니다."

- 한국말을 참 잘하시네요.
"어렸을 땐 이웃에 사는 재일 한국인에게 한글을 배웠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한국인 친구에게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2015년에는 한국에 와서 3개월간 전남대 어학당에 다닌 적도 있습니다."

- '사람니시다(サラム西田)'라는 닉네임을 쓰시는데, 어떤 뜻인가요.
"한국어의 '사람'과, 아라비아어로 평화라는 뜻인 '살람'을 따서 만들었습니다. 저는 시민운동 집회에서 그 닉네임을 내걸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 때문에 시민운동 하는 사람 중에는 제 본명보다 닉네임을 아는 사람이 더 많죠. 지금은 유튜브 일로 바쁘기도 하고, 코로나19 탓으로 노래를 부를 수 없어서 정말 아쉽습니다."

- 지금 운영하시는 '일본의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주간한국뉴스' 유튜브 채널은 왜 시작하셨나요.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너무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나 언론의 말만 믿고 그걸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럼 오해를 낳고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원인이 되죠. 일본에서 보도된 한국과 관련된 뉴스가 실제 한국에서는 어떻게 보도되고 있는지 비교해서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일본 언론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베 정권 들어와서 혐한 뉴스가 몹시 많아졌는데, 특히 2018년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이후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강제징용 문제를 깊게 공부한 적은 없습니다만, 일본 재판소도 '한국인 개인 청구권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아베가 말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다 해결되었다'는 주장은 거짓입니다.

아베 정권보다 언론이 더 문제입니다. 평범한 저도 아는 것을 왜 오랜 세월 취재해 왔던 일본 언론은 보도하지 않는지, '총리의 주장은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단과 다릅니다'라고 질문하고 주장하는 기자가 왜 없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 보도는 '한국인은 거짓말쟁이', '약속을 지킬 수 없는 민족성' 식의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제가 특히 분노하는 것은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등 아베 총리의 수많은 거짓을 보도할 용기도 없는 일본 언론들이 '한국은 거짓말쟁이'라고 보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일본의 언론 자유도가 하락하는 것과 혐한 보도는 뿌리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채널에 동영상을 얼마나 자주 올리십니까.
"'주간뉴스'니까 매주 올립니다. 1시간 분량을 찍어서 전반부, 후반부 두 편으로 나눠서 올립니다."

- 채널의 구독자수는 몇 명이나 되나요.
"구독자는 1890명 정도 됩니다. 아직 많지 않죠. 댓글을 보면 절반 이상이 한국인분들인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에게 한국 뉴스를 전하기 위해 만든 채널이니 일본인 구독자를 더 늘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려 합니다."

"극우 일본인들의 악플 신경 안 써... 독자들 감사 댓글에 보람"
 
 '일본의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주간한국뉴스'가 지난 4월 20일 내보낸 동영상. 일본의 열악한 코로나 대처 현실과 강경화 외교장관의 인터뷰를 담았다.
▲  "일본의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주간한국뉴스"가 지난 4월 20일 내보낸 동영상. 일본의 열악한 코로나 대처 현실과 강경화 외교장관의 인터뷰를 담았다.
ⓒ 유튜브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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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준비하고 직접 출연도 하고 편집도 하려면 쉽지 않겠어요.
"2분 정도 분량의 한국 뉴스 한 개에 일본어 자막을 붙이고 편집하면 한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런 한국 뉴스 영상을 5~6개 정도 만들고, 촬영은 토요일에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편집을 도와주시는 재일 한국인분이 계셔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역시 한국분들이 같이 일하시군요.
"네. 동영상에 같이 출연하고 있는 재일교포 2세 김상헌씨가 큰 도움이 되고있습니다. 이 분은 '재일라디오팟캐스트K방송국(http://bitly.kr/EZ2YTMdbfYE)'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목적이 같으니 서로 협력하는게 좋겠다 싶어서 작년말부터 같이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촬영에 쓰이는 장비 등은 그가 사재를 털어 장만한 것들입니다. 스튜디오도 다른 재일 한국인 분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방송을 도와주고 싶다고 하는 한국인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 방송을 일본어로 번역해 보내주시기도 하고요."

- 그래도 비용이 적지 않게 들텐데, 유튜브 수익이 좀 도움이 되나요.
"지금은 유튜브에서 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작권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 '비영리 목적으로 인용했습니다'라는 설명이 가능해야 하거든요. 아마도 우리가 인용하는 한국 방송국 측에서 저작권을 문제 삼으면 모든 영상을 지워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 때를 대비하는 겁니다. 저는 한 주에 4일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하고 있는데, 유튜브 수익을 얻어서 아르바이트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더 많은 뉴스를 전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것보다 저작권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올린 동영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그리고 그 이유도 설명해주세요.
"4월 20일 내보낸 동영상(http://bitly.kr/zcDfBgS49za)입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긴급사태선언이 내려져 있었지만, PCR 검사를 억제하고 감염자 수를 숨기던 시기였습니다. PCR검사 받는 게 너무 어려운 일본의 현실을 보도한 MBC-TV의 영상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프랑스TV 인터뷰 영상을 내보냈죠.

그랬더니 '검사하면 의료붕괴를 초래한다'는 식의 보도 일색이던 일본 방송에서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 '머리를 숙여 한국에서 도움을 요청해야' '한국처럼 경증 환자를 찾아서 격리시설을 만들어야' 같은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확실치는 않지만 우리 방송을 보는 일본 언론인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한국 시청자 분들은 일본인이 이런 일을 한다며 놀라워하거나 감사한다는 반응입니다. 일본인들은 한일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는 반응입니다. 일본 방송은 너무 정권에 편향돼서 믿을 수 없었는데 다행이라는 댓글도 있고요. 물론 극우성향 악플을 다는 일본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거라서 신경 안씁니다."

- 채널을 운영하면서 어떨 때 가장 보람을 느끼시나요.
"역시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독자분들로부터 감사의 댓글을 받을 때입니다."

"부자자식으로 태어나 노력 않고 스펙 없는 사람이 현재 일본의 민낯"
 
 유튜브 채널 '일본의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주간한국뉴스'가 최근 제작한 동영상들. 한국 방송 뉴스들을 자막과 함께 내보내고 있다.
▲  유튜브 채널 "일본의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주간한국뉴스"가 최근 제작한 동영상들. 한국 방송 뉴스들을 자막과 함께 내보내고 있다.
ⓒ 유튜브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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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이 왜 이런 일을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일본을 위해서라도 혐한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민주주의가 발전됐기 때문에 코로나에 대해서도 대응할 수 있었다, 즉 민주주의의 수준이 일본과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차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한국인들처럼 국민이 나서서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데 일본인들은 너무 순종적입니다. 내키지 않더라도 이런 건 한국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일본 방송은 한국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리고 서점에도 혐한코너가 따로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부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노력하지 않았고 그래서 스펙 없는 사람이 지금의 일본의 민낯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할 용기가 없어 '우리 집은 원래 부자'라고 자랑하는 거죠. 그런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노력해서 스펙을 쌓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한국이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아직도 후진국이라고 생각하고 싶다는 게 바로 혐한 심리입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네가 정말 부끄럽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좋은 자세입니다."

- 재난 대처의 모범생이었던 일본이 코로나19를 맞아서는 정부도, 지자체도, 언론도 도무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혐한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 일본에서 아베 지지율은 30% 안팎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이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확실하게 90%를 넘습니다.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이 아베 정권이며, 그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사람이 아베입니다. 아베 정권의 가장 큰 죄는 능력과 용기있는 사람들을 다 몰아낸 것입니다. 언론인도 대학교수도 관료도 정치인도 올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몰아냈습니다. 대신 능력이 없지만 눈치보기만 잘하는 사람들은 출세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한 겁니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 민주주의도 나라도 망하는 제1호 국가가 되는 것을 막고 싶은데, 그게 현실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 한일관계가 현재 최악이고, 강제징용 관련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하면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되면 한일 관계가 더 악화되겠지만, 한국이 아베 정권에게 양보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얻기 위한 경쟁에서 한국이 승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코로나19 대응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의 국제적인 영향력은 역전됐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G7 가입 가능성이 아직 유동적이지만, 코로나19 대응을 생각할 땐 한국을 거부하는 나라는 일본 이외는 없습니다. 강제징용 문제도 일본 주장대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베 정권은 오히려 곤란할 거예요. 일본 국민에 필요한 것은 '제2의 패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를 스스로 버렸기 때문에 선진국이란 평가도, 세계적인 신뢰도, 올림픽도 다 잃어버렸다고 하는 그런 충격이 진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관심 없는 일본인들 위해 한국과 같은 시민언론 만들고파"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코로나 이전에는 시민의 힘으로 운영되는 한국의 시민언론을 일본에서도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일본에도 있긴 하지만 약합니다. 우리 활동이 일본의 양심적인 언론인과 연계할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탓으로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을 계기로 일본 사람이 각성하는 것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지난 7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극우 성향의 고이케 유리코씨가 다시 당선됐습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도쿄의 확진자가 폭증하는 것을 보면 선거 기간중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았거나 확진자수를 숨겼다는 뜻입니다. 정치인이나 언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국민이 정치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 알리는 보도도 계속하지만, 외국 언론에 일본의 코로나19 은폐, 방사능 은폐 등을 알리는 일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특히 기대하는 나라는 물론 한국입니다. 일본에 대해 가장 관심이 있는 나라이고, 코로나를 계기로 국제적인 영향력도 늘어났으니까요. 일본의 부끄러운 현실을 세계 각국에 알리는 것이 가장 일본 국민을 각성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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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자주의 길로!"

8.15추진위, 광복75주년 8.15민족자주대회 결의 (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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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15  21: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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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75주년 8.15민족자주대회가 15일 오후 한국교회100주년 기념관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주권이 실현되는 새로운 한미관계 재정립을 위해서도 지금 필요한 것은 '민족자주'의 의지이다."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집중호우에 코로나 재확산 흐름, 서울시의 집회금지행정명령 등 악조건을 뚫고 15일 '광복75주년 8.15민족자주대회'와 대표자회의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다음 날부터 한미연합군사훈련이 강행되는 현실은 '민족자주'의 다짐을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은 대회사를 통해 정부가 미국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북측과 합의한 약속, 해내야 할 과제들은 국민을 믿고 과감하게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은 이날 대회사에서 촛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세번의 남북정상회담을 가졌지만 "겨레의 약속보다 미국의 뜻을 중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냉전 적폐세력의 정치적 기반이 곳곳에서 무너졌지만, 한미동맹은 성역으로 철저히 보호받고 있으며, 북은 여전히 대결과 적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 사이의 소중한 만남과 결실이 있더라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 냉전세력의 방해를 넘어서겠다는 결단이 없이는 단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오늘의 현실은 보여주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미국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북측과)합의한 약속, 해내야 할 과제들은 국민을 믿고 과감하게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간통일운동에 대해서도 분발을 촉구하면서 "정부에 기대감을 갖고 기다리며 협력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자주와 평화, 통일을 향한 일관된 방향아래 끊임없이 정부를 견제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청소년, 대학생들이 8.15민족자주대회 결의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대회에 참가한 대표자들도 결의문에서 '각계 시민사회와 풀뿌리 단체들이 7월 1일부터 한미워킹그룹 해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시국 선언을 발표하고 항의행동을 이어갔으나 여전히 한미 당국은 군사훈련 강행, 워킹그룹 유지, 한미동맹 강화 기조를 굽히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민족자주 정신에 기초하여 앞으로도 계속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민족자주 정책(미국의 내정간섭 반대, 한미워킹그룹 해체, 전쟁연습과 무기증강 중단 등) △동족을 적으로 강요하는 한미동맹 반대(세균전 부대와 시설 철거, 사드기지 철거, 주한미군 주둔비 인상 반대 등) △일본 과거사 왜곡과 군사대국화 저지 등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 실현 등 각계각층 온 겨레와 협력하여 주권과 평화, 통일을 위한 공동행동을 적극 펼치겠다고 밝혔다.

8.15민족자주대회를 준비한 8.15민족자주대회 추진위원회(8.15추진위)는 남북관계 위기극복과 한반도 평화 및 주권실현을 위해 지난 7월 1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비롯한 677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결성했다.

지난 한달 보름동안 전국 각지에서 진행한 각계 시국선언에 4,801개의 단체가 참여하고 17개 광역 시도에서 비상행동이 이어졌으며, 실천단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8.15추진위는 박근혜 퇴진운동 당시보다 더 많은 역대 최대 규모의 시국선언이 발표된 것은 현재 남북관계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은 만큼,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도 그만큼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이날 발표된 전국 시국선언 단체 대표자들의 의견을 보더라도 많은 대표자들이 한미워킹그룹 해체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 현 정세에서 절박한 당면과제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또 많은 대표자들이 사드철거, 주한미군주둔비 인상에 대한 강력한 반대, 세균전부대 실상 폭로에서 철거 주장까지, 반미운동은 이 시대의 소명이고 자주권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운동이며, 대중운동으로 전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결단해야 한다. 민족의 이익을 앞세울 것인가. 미국의 이익을 보호할 것인가 답해야 한다.'((사)통일의 길), '곳곳에서 일상적인 통일운동이 가능하도록 깊고 넓은 활동을 하겠다'(서울겨레하나), '우리 겨레의 일은 우리 겨레가 알아서 할 수 있다. 한미워킹그룹을 보란듯이 해체하라'(부산여성회 자주통일위원회), '무엇보다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한다. 나라와 나와 모든 국민을 위해서 한마음으로 나서자'(진보당 노원구위원회), '나라의 운명조차 미국놈들에게 의지하는 간악한 무리가 있다면, 이 나라에서 당장 떠나라'(평화통일불교연대)  등 각 단체의 통일운동 계획과 결심이 눈에 띄었다.

   
▲ 손형근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이 연대사를 보내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족의 자주적 공조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손형근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은 영상으로 보낸 연대사에서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며 내일부터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시작된다"고 하면서 "민족의 위기를 남북해외의 단결된 힘으로 극복하자. 오직 자주만이 살길이다"라고 말했다.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민족자주의 시대정신'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통해 "끝나지 않은 전쟁을 마주한 일상속에서 화해와 용서, 상생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고난에 찬 결단이지만, 우리에게는 이 민족자주와 평화의 길 외에 걸여야 할 다른 길은 없다"고 역설했다.

또 "코로나19 위기로 세계체제가 재편되고 있는 시대의 징조는, 우리로 하여금 친미사대적 외세의존에서 벗어나 민족자주의 길에 설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한반도에서 모든 전쟁연습을 중단하고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결별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족의 자주적 공조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 김정수 6.15여성본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왼쪽부터 김은진 '부산 감만동 8부두 미군부대 세균무기실험실 철거를 위한 남구지역 대책위' 상황실장, 황철하 진해 미군 세균부대 추방 경남운동본부 공동대표, 박석준 6.15대경본부 상임대표, 김성기 평택평화시민행동 대표, 이장희 소파개정국민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8.15민족자주대회에서는 김정수 6.15여성본부 상임대표와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세균전 추방 전국연석회의 대표자들이 각각 '자주적 입장으로 남북합의 이행', '미국 반대, 민족자주실현', '주한미군 세균전 부대 추방'을 주제로 향후 활동 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정수 대표는 16일부터 진행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전작권 전환 검증을 위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훈련내용이 매우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고 지적하고는 전쟁위협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로 한 남북 합의 이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단계적인 조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과감한 평화군축을 통해서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것이야 말로 민족자주 정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박흥식 의장은 "미국은 주한미군을 북한과 중국에 대항하는 전초기지로 써먹으면서도 그 비용은 한국에 전가하고 있다.  한국 민중의 고혈을 짜내서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아 평화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주한미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미국을 넘어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의 유일한 미래는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통일경제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은진 '부산 감만동 8부두 미군부대 세균무기실험실 철거를 위한 남구지역 대책위' 상황실장을 비롯한 세균전 추방 전국연석회의 대표자들은 부산, 서울, 창원 등 미군의 세균전 실험에 대한 전국연석회의 범위를 확대하기로 하고 현재 주한미군기지 세균전 관련 자료 공개와 주한미군 관계자 사법처리을 요구하고 있으며, 미국을 세균전 당사자로 유엔안보리에 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8.15추진위는 이날 오전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에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거듭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8.15추진위는 대회 개최에 앞서 오전 11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광복 75주년을 맞는 절박한 45일간의 비상행동에도 불구하고 16일부터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시작되고 남북합의 이행에 방해가 되어 온 한미워킹그룹도 여전히 건재한 현실에 대해 정부의 입장 전환을 촉구했다.

8.15추진위는 "정부는 민족자주의 입장아래 남북합의 이행에 전면 나서야 한다"며 "합의 이행의 첫 번째 조치로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전격 중단을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 노래패 우리나라가 8.15보급 노래를 선보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노래극단 희망새도 8.15보급 노래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대회사 (전문)

이창복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이곳까지 달려와 주신 각계 대표 여러분 반갑습니다. 교착된 한반도 정세, 코로나 19 로 인한 여러 어려움을 행동으로 극복하고, 이 땅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반드시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대표님들의 굳은 의지에 참으로 마음이 든든합니다.

오늘, 우리는 남다른 과제와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

천만 이상의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불의한 적폐 정권을 심판한 이후, 새 정부가 탄생하여 한 해 동안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 남북합의 이행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기대가 높았지만, 정부는 겨레의 약속보다 미국을 뜻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 냉전 적폐세력의 정치적 기반이 곳곳에서 무너졌지만, 한미동맹은 성역으로 철저히 보호받고 있으며, 북은 여전히 대결과 적대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부는 높은 지지율을 앞세워 개혁을 소리 높여 말하면서도, 기실 적폐 세력의 정책들을 상당부분 답습하면서 남북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남북 사이의 소중한 만남과 결실이 있더라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 냉전세력의 방해를 넘어서겠다는 결단이 없이는 단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오늘의 현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부는 미국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합의한 약속, 해내야 할 과제들은 국민을 믿고 과감하게 실천에 나서야 합니다.

민간통일운동 또한 한층 더 분발해야 하겠습니다. 정부에 기대감을 갖고 기다리며 협력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자주와 평화, 통일을 향한 일관된 방향아래 끊임없이 정부를 견제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상징되는 남북관계의 위기를 맞아, 지난 45 일간 전국 각지에서 남북 관계 위기 극복과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각계 시국선언에 4,801개의 단체가 참여하였습니다. 17개 광역시도에서 비상행동이 이어졌고, 실천단 활동도 왕성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박근혜 퇴진운동 당시보다 더 많은 역대 최대 규모의 시국선언이 발표된 것은 현 국면에 대한 위기의식, 이를 극복하겠다는 실천 의지의 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뜨거운 의지와 열기를 모아 오늘 대표자회의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회의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실천의 결실을 함께 나누고, 앞으로의 결의를 다지기 위한 자리입니다.

사전에 의견서를 통해 다양한 의견들이 취합되었습니다만, 대표들이 공통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주권이 실현되는 새로운 한미관계 재정립을 위해서도 지금 필요한 것은 ‘민족자주’ 의 의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자주’ 는 선언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 겨레의 힘을 총 집중하여 행동에 나설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습니다. 나라와 겨레의 자주권을 침해하려는 모든 불의에 대해 행동으로 맞서지 않고서는 아무리 사소한 문제조차도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늘 민족자주대회와 대표자회의를 통해 다시금 뜻과 의지를 가다듬고 모두가 실천으로 행동으로 다시 나섭시다. 그리하여 민족자주 실현의 역사적 과제를 반드시 이뤄냅시다. 감사합니다.

 

대회 결의문(전문)

광복 75주년 8.15 민족자주대회 결의문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지 75년이 되었다 . 그러나 진정한 광복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광복과 동시에 강대국들의 개입 아래 남과 북이 둘로 갈라지고, 분단이 전쟁으로 이어져 수백만의 겨레가 피를 흘려야 했다.

겨레에게 자주독립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정부의 실무자가 한미워킹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남북 정상들의 합의 이행을 가로막는 한, 주권은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 외국 군대의 주둔 속에서 동족을 향한 전쟁계획에 동원되고, 작전권 환수 능력까지도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검증받겠다고 하는 한, 자주독립도 민주주의의 완성도 불가능하다.

남북관계의 파탄 위기, 미국의 패권적 압력앞에서, 역사의 방관자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각계 시민사회, 풀뿌리 단체들, 다양한 모임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한미워킹그룹 해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시국 선언을 역대 최대 규모로 발표하고, 항의 행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한미 양 정부는 한미연합군사훈련 강행과 한미워킹그룹 유지를 고집하고 있으며, 미국의 패권적 이익을 위한 한미동맹 강화 기조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의 패권을 위해 주권과 평화를 희생하는 동맹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 75년을 넘기고 있는 전쟁과 분단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감염병의 위협 속에서 주권과 안전, 민주적 권리를 지켜야 한다.

지난 역사동안 우리 겨레는 외세의 침략에 단 한번도 순응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여 나라를 지켰으며, 전쟁과 분단, 독재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평화적 통일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모든 남북공동선언들의 첫 머리에 표방된 ‘민족자주’ 정신은 역사의 고비마다 발휘되었던 겨레의 숭고한 넋이다.

오늘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각계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8.15민족자주대회와 대표자회의를 개최하였다. 우리들은 민족자주 정신에 기초하여 앞으로도 계속 행동에 나설 것을 다짐하며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1.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

미국의 내정간섭 반대한다! 남북관계 가로막는 한미워킹그룹 해체하라!

정부는 미국 굴종 그만하고 남북관계 파탄내는 전쟁연습과 무기증강 중단하라! 남북공동 선언 이행하라!


2. 동족을 적으로 강요하는 한미동맹, 미국 패권위한 한미동맹은 필요 없다!

주권과 생명권 위협하는 세균전 부대와 시설 즉각 철거하라! 동북아 군사갈등 격화시키는 사드 기지 철거하라!

주한미군 주둔비 인상 웬말이냐. 단 한 푼도 주지 말자!


3. 강대국에 유린당한 100년 굴욕 이제는 끝장내자!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군사대국화 저지하자! 친일친미 청산하고 민족자주의 한길로 나아가자!


4. 남북관계 개선하고 평화와 통일 실현하자!

평화와 통일은 민주주의와 경제정의, 생존권 실현의 필수 조건이며 겨레의 생명선이다. 적폐를 불태운 촛불 정신으로 분단과 냉전 적폐 태워버리고 평화와 통일 이룩하자!


5. 각계각층, 온 겨레의 공동행동을 적극 펼치자!

변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은 단결에서 나온다. 각계각층 온 겨레의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고 주권과 평화, 통일을 향한 공동행동을 적극 펼치자!

 

2020 년 8 월 15 일

광복 75 주년 8.15 민족자주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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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서울시 “사랑제일교회, 진단검사 일부러 지연시키고 전광훈 없는 명단 제출...고발 검토”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입력 : 2020.08.15 11:29 수정 : 2020.08.15 11:44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목회자와 신자들이 지난 4월 19일 현장 예배를 드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목회자와 신자들이 지난 4월 19일 현장 예배를 드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시는 코로나19 의심이 되는 교인의 검체검사를 의도적으로 지연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관계자에 대해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고발 및 법적검토 등 강력한 조치를 할 방침이라고 15일 밝혔다.

앞서 여러 매체와 서울시 자체 제보 등을 통해 사랑제일교회가 교인의 코로나19 검사를 8·15 대규모 집회 이후로 미루도록 권유하는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성북구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한 보수단체들은 오늘 예정된 8.15 대규모 집회를 준비해왔으며, 서울시의 집회금지명령에도 불구, 일부 단체는 이날 강행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중에는 38명의 확진자가 나온 사랑제일교회도 포함돼 있다.

15일 0시 기준 코로나19 국내 발생 신규 확진자수는 전일 0시 대비 166명이 증가한 1만5039명으로 늘었다. 서울 확진자수는 전일 0시 대비 74명이 증가한 1841명으로 늘었다. 이중 257명이 격리 중이다.

대부분 국내발생으로 특히 종교시설 내 확진자 수가 급증했다.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교인 확진자수는 전일 대비 26명이 증가한 38명으로 늘었다. 용인시 우리제일교회발 서울시 확진자 수는 23명이 증가한 28명이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이틀 연속 세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지난 3월 말 이후 처음이다.

박유미 서울시 방역통제관은 이날 코로나19 관련 긴급 브리핑을 열고 “사랑제일교회의 지역감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교인 및 교회 방문자 4053명에 대해 안전 안내 문자를 발송했으며, 14일 대상자에 대해 코로나19 진단검사 이행명령을 발동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행명령을 받은 대상자가 검사를 받지 않을 경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서울시는 의도적으로 검사를 받지 않아 추가확진자가 발생했을 경우 치료비 등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또 앞서 사랑제일교회로부터 교회출입자 명단을 제출받았으나 이 역시 부정확한 자료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 통제관은 “교회가 제출한 자료에는 (설교를 한) 전광훈 담임목사의 명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자료가 정확하지 않은 만큼 정확한 자료제출 협조를 부탁드리며, 제출하지 않을 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와함께 오늘 예정돼 있는 8.15 광화문 보수단체 대규모 집회를 경찰과 공동대응하며 집회를 강행하는 단체에 대해 주최자 및 참석자들을 고발조치하기로 했다. 확진자 발생시 구상권도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박 통제관은 “15일부터 17일까지는 2차 대유행을 가늠하는 중대 고비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확산기로에서 종교계 및 관련단체의 성숙한 연대의식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151129001&code=940100#csidx1a1316b935bfdf997f292a78f02f9f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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