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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계속된 전쟁은 없다. 더 기다릴 수 없다"

한반도 종전·평화 집중행동, "남북·북미합의 이행,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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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4  21: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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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들은 14일 오후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2주동안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평화선언 서명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계기에 시작된 '한국전쟁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국제 캠페인'이 9월 평양공동선언 2년을 맞아 14일부터 26일까지 세계 시민과 함께 하는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으로 추진된다.

7대 종단을 포함해 전국 353개 시민사회가 참여하고 있는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들은 1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주민들이 나서 70년간 지속된 한국전쟁 완전 종식과 조속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한반도 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 서명운동'에 함께 할 것과 이를 위해 앞으로 2주동안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에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들은 이날 김삼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과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에서 지난해 하노이 북미회담이 합의없이 끝난 이후 사실상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멈춰선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지만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위주 처방에 묶여 정작 남북간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며, "이제 정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이땅에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 할 한반도 주민 스스로 평화만들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냉전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것은 지난 70면으로도 충분하니,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고 함께 외치자고 제안했다.

정부의 대북 접근법과 정책이 지금과 달라져야 한다며, "군사적 불신을 가중시키는 군사훈련이나 군비증강 정책은 자제하고 변경"해야 하며, "(제재 일변도의 압박정책을 펴는)미국의 논리와 주장을 관성적으로 따르기보다 불가피한 차이는 국민앞에 과감히 드러내고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사회를 맡은 이현숙 여성평화외교포럼 명예대표를 비롯해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들은 국내외 온 겨레와 세계 평화를 지지하는 모든 세력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행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 왼족부터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지은희 전 여성가족부 장관,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한반도 분단은 민족내부의 갈등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외세에 의한 것"이라며, "우리는 일제 식민지 36년만해도 서러운데, 끝난 뒤에도 2차세계대전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우리가 일본 대신 분단되어 70년간 민족상잔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반도 평화와 종전이 아니라 완전히 '휴전' 그 자체를 없애는 평화체제를 이룩하는 것. 그것은 결국 외세에 의존해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 70년 분단을 겪은 오늘날 우리들의 각오여야 한다"며,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지은희 전 여성가족부장관은 "평양공동선언 2주년이 되는 이 시점에 이런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것은 그동안 진전이 하나도 없이 국민모두를 실망시키고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일들만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 원인을 따져보고 지금 생각하는 바는 "미국이 과연 한반도 평화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그리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진정으로 맺고자 하려고 하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직격했다.

이어 "70년을 지속되면서 종전되지 않은 전쟁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북미나 한국정부에만 맡겨놓아서는 힘들고 한반도 뿐만 아니라 세계시민 모두가 나서 70년간 계속되는 이런 전쟁을 막아내고 평화를 만들어 내자고 호소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최근 미국이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를 축으로 아시아판 나토, 안보동맹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면서,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열심히 우리 당국자들을 워싱턴으로 불러들이고 있는데, "절대로 한국정부는 그런 일에 응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있기도 전에 또 다시 미국과 중국간 대결의 구체적인 표현인 아시아판 나토결성에 참여한다면 종전협정도 평화협정도 다 날라가는 그런 결과가 생길 것"이라며,"그런 것을 거부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선언을 확고하게 만들어 가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번에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대대적인 서명을 해보자는 것은 새로운 발상이고 효과가 어찌되었든 한번 해볼만하다고 판단하여 미력이나마 돕고자 하는 생각"이라고 기자회견에 참여한 소회를 밝혔다.

백 교수는 '왜 70년이 가깝도록 한반도 평화협정이 안되고 있느냐'라는 질문앞에서 '인식의 전환', '좀 더 새롭고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한반도의 이런 현실이 오래 지속되는 원인은 한편으로 실제 전쟁 재발위험은 크지 않지만 전쟁위험은 끊임없이 남아있는 이런 세상을 너무 즐기는 소수의 세력이 있고, 그 뿐만 아니라 이런 현실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거기에 길들여져서 다른 생각을 잘 하지 않으려는 다수의 사람들이 합작해서 (이런 분단체제를) 이루어놓고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단체제의 삶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전환이 좀 더 일찍 일어난다면 "3년 후 정전협정 70년이 되기 전이라도 평화협정이 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서명운동 시작이 동시에 한층 깊은 공부와 삶에서 큰 전환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한반도평화선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이날 유튜브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6일까지 2주일간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을 진행한다며 앞으로 온라인을 통해 한반도 종전과 평화를 위한 선언에 대한 지지와 서명, 홍보를 위한 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18일에는 경기도가 주관하는 2020DMZ포럼의 평화운동협력 6개 세션에 함께 참여하고 평양공동선언 2주년을 맞는 19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집중행동으로 종전 평화 피케팅 1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21~25일까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종전 평화 릴레이1인 시위가 진행되고 전국 곳곳에 한반도 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 포스터를 부착한다.

26일에는 그간 성과와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대선 후보들에게 한반도 평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낼 계획이다.

남북, 북미 합의 이행하라.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전문)
 
9월 평양공동선언 2년,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 주간 시작을 알리며

오는 9월 19일은 남과 북이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한 지 2년째 되는 날입니다. 앞서 남북 정상은 온 겨레와 국제사회의 관심 속에 만나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우리가 잡고 이 땅에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의 시대를 열겠다고 전 세계에 선언했고, 온 겨레와 약속했습니다.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 선언이 촉매제가 되어 북미 정상은  싱가포르에서 만나 새로운 북미 관계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실현해나간다는 데 합의하고,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 속에서 남북 정상이 다시 9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회담이 합의이행의 순서와 상응 조치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합의 없이 끝난 이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사실상 멈춰 섰습니다. 북미 간 협상이 교착되는 가운데 북한에 대한 미국 주도의 국제 제재는 더욱 엄격해지고 있고, 남북 간의 최소한의 교류 협력조차 번번이 가로막히면서 남북 간에도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 현실을 둘러싸고 이견과 불신이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 6월에는 일부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계기로 남과 북의 군사적 긴장이 충돌 직전까지 치달아 남과 북이 맺은 군사분야합의서의 효력마저도 위태로운 위기 상황이 초래되었으며, 북한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현재 남북 간에는 대부분의 대화와 협력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심지어 코로나19,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 같이 함께 마주하고 있는 재난에 관한 협력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 상황을 방치한다면 합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합니다.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수준을 넘어 한반도에는 새로운 차원의 군비경쟁과 위기가 일상화할 것입니다. 반목하고 대결하는 남과 북은 갈수록 심화되는 미중 간의 냉전적 대결의 대리전에 손쉽게 휘말리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한반도 주민들의 삶은 다시금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 크게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2017년의 위기를 넘어서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돌파구를 열었던 그 지혜와 결단력이 다시금 절실합니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주변국, 특히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실현해나갈 것을 확인하면서도, 남과 북이 합의하여 추진할 수 있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교류 협력만큼은 남과 북, 스스로의 힘으로 전진시켜나갈 것을 천명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과연 이 합의와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은 우리 정부와 시민의 판단보다는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전달되는 미국의 제재 위주의 처방에 묶여 있습니다. 한미워킹그룹은 정작 미국 조야에 조성된 북한에 대한 근본주의적이고 강퍅한 입장을 변화시키고 조율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자극적인 대남비난을 불편해하면서도, 정작 남북 간의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는 제대로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군은 9.19 군사합의 이후에도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규모만 축소한 채 지속하고 있고, 북한의 총 GDP 이상의 규모에 도달한 지 오래된 군사비를 매년 대폭 인상하면서 미국으로부터 공격적 신무기를 연이어 도입하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체제경쟁은 끝났다고 선언한 마당에, 코로나19와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에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토록 많은 재원을 공격적 군비 확장에 투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직 남북, 북미 간 합의가 파기된 것은 아니고, 소통과 연락이 완전히 단절된 것도 아닙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 희망을 살리자면 정부의 접근법과 정책이 지금과 달라져야 합니다.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주인이 되어 해결하겠다는 초심을 더욱 분명히 다지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남북 대화와 협력을 능동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여 일방주의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군사적 불신을 가중시키는 군사훈련이나 군비증강 정책은 자제하고 변경해야 합니다. 미국의 제재 일변도의 압박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미국의 논리와 주장을 관성적으로 따르기보다 불가피한 차이는 국민 앞에 과감히 드러내고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톱다운 방식으로 당국 간 진행하는 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 정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 할 한반도 주민 스스로 평화 만들기에 나서야 합니다. 냉전과 전쟁의 한가운데서 고통받는 것은 지난 70년으로도 충분합니다.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70년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고 함께 외칩시다. 우리의 평화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줍시다. 70년 이어온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이 땅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올 평화협정을 조속히 체결할 것을 남북 정부와 미중 등 전쟁 당사국 정부에 촉구하는 한반도 평화 선언(Korea Peace Appeal) 서명운동에 함께 해 주십시오. 9월 평양공동선언 2년을 맞아, 오늘로부터 9월 26일까지 2주 동안을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 행동주간으로 정해 전쟁 종식과 한반도 평화를 향한 우리의 열망을 내외에 드러내 보여주고자 합니다. 한반도와 전 세계 시민 여러분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합니다. 


2020년 9월 14일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

구중서(기지평화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김경민(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김삼열(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김영순(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문정현(신부), 백낙청(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윤정숙(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이기범(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 이부영(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이현숙((사)여성평화외교포럼 명예대표),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조성우(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정강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정기섭(개성공단기업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지은희(전 여성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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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마이트작전과 월미도방어전 70주년

[개벽예감 411] 크로마이트작전과 월미도방어전 70주년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9/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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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1950년 6월 19일 미국의 북침작전계획

2. ‘작전계획 크로마이트’에 담긴 네 가지 씨나리오

3. 맥아더의 극비작전계획 빼돌린 조선인민군 정찰병 

4. 75,000명 대 400명의 싸움

5. 월미도의 마지막 혈전

6. 금성-4 순항미사일과 익명의 탄도미사일

 

 

1. 1950년 6월 19일 미국의 북침작전계획 

 

1950년 6월 25일 38도선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고속기동전으로 한국군 방어선을 돌파한 조선인민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공격을 중지했다. 남북무력충돌은 조선인민군의 서울점령으로 3일 만에 종식되었다.  

 

그런데 남북무력충돌이 종식된 이튿날인 1950년 6월 29일부터 미국 원동군 소속 폭격기들이 일본에서 바다를 건너와 폭격을 감행하면서 전쟁을 도발했다. 남북무력충돌은 사상자를 많이 내지 않고 3일 만에 종식되었는데, 미국의 전쟁도발로 조선은 새로운 전면전에 돌입해야 했다. 만일 미국이 무력침공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6.25전쟁은 3일 만에 끝났을 것이다. 

 

1950년 6월 당시 일본을 점령하고 있었던 미국 원동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원동사령부 산하 합동전략기획단에게 조선을 침공할 작전계획을 수립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맥아더는 3일 만에 끝난 6.25전쟁을 재발시키고 확전시킨 전쟁도발의 주범이다. 1950년 7월 4일 합동전략기획단은 자기들이 완성한, ‘블루하츠(Bluehearts)’라는 제목의 작전계획을 맥아더에게 보고했다. 그 작전계획에 따르면, 미국 해병대가 1950년 7월 22일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을 점령하고, 미8군은 남부전선에서 북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떠오른다. 1950년에는 컴퓨터도 없었는데, 합동전략기획단은 어떻게 그처럼 짧은 시간에 ‘작전계획 블루하츠’를 후닥닥 완성할 수 있었을까?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작전계획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개념계획을 작성한 다음, 세부적인 작전씨나리오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시켜 작전계획을 완성하려면 몇 달이 걸린다. 그런데 합동전략기획단은 불과 5일 만에 작전계획을 완성했다. 졸속작업이었을까?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1940년대 말 일본 도꾜 치요다구 유라구초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청사의 모습이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점령지였으므로, 그 건물에서 일본을 지배하는 최고권력이 행사되었다. 이 석조건물은 1938년에 건립되었는데,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고,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원동사령부 청사로사용했다. 태평양전쟁 이후 원동사령부의 공식명칭은 연합국 최고사령부였고, 더글러스 맥아더가 총사령관이었다. 그 건물에 맥아더의 집무실이 있었다. 1950년 6월25일 38도선에서 남북무력충돌이 일어나자, 맥아더는 특별기획참모단을 조직하고그들에게 조선을 침공할 작전계획을 수립하라고 명령했다. 남북무력충돌은 사상자를 많이 내지 않고 3일 만에 종식되었는데, 미국은 바다를 건너와 무력침공을 감행하면서 전쟁을 도발했다.  

 

몇 달 걸리는 작전계획수립을 5일 만에 완성한 이변의 내막은 미국 역사학자 스탠리 웨인트롭(Stanley Weintraub)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2000년 미국에서 출판된 ‘맥아더의 전쟁: 코리아와 미국 영웅의 파멸(MacArthur's War: Korea and the Undoing of an American Hero)'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는 미국 국방부가 6.25전쟁 직전에 ’SL-17‘이라는 제목의 작전계획을 마련해두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작전계획 SL-17'에 따르면, 38도선에서 일어난 남북무력충돌에서 패한 한국군이 남쪽으로 후퇴하여 부산방어선을 구축하면, 미국군은 인천에 상륙하여 북진한다는 것이다. 이 작전계획을 일정별로 정리하면, 미국군 1개 군단이 1950년 9월 30일까지 인천을 점령하고, 10월 15일까지 서울을 점령하고, 1951년 1월 31일까지 남포와 원산에 동시상륙하여 평양을 점령한 다음, 1951년 6월까지 38도선 이북 전역을 점령하는 것이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6일 전인 1950년 6월 19일, 미국 국방부는 이 작전계획을 승인했다.   

 

이처럼 미국 국방부가 6.25전쟁 직전에 작전계획을 완성해놓았기 때문에, 미국 원동사령부 산하 합동전략기획단은 6.25 전쟁 직후 맥아더의 명령을 받은 때로부터 5일 만에 ‘작전계획 SL-17'의 재판인 ‘작전계획 블루하츠’를 맥아더에게 보고했던 것이다. 

 

그런데 1950년 7월 당시 조선인민군은 고속기동전을 벌이며 부산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고, 미국군은 참패를 거듭하며 낙동강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1950년 7월 3일 한강을 도하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는 7월 5일 오산전투에서 미국군 제24보병사단 선견대를 궤멸시켰고, 7월 14일부터 16일까지 금강을 도하했고, 7월 20일에는 미국군 제24보병사단을 궤멸시키고 대전을 점령했다. 

 

맥아더는 합동전략기획단이 자기에게 보고한 ‘작전계획 블루하츠’가 ‘작전계획 SL-17’의 재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작전계획 블루하츠’를 폐기하고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라고 명령했다. 맥아더의 명령을 받은 합동전략기획단이 ‘크로마이트(Chromite)’라는 제목의 개념계획(conceptual plan)을 완성한 날은 1950년 7월 23일이다.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경상북도 포항으로 진격하고 있었던 1950년 8월 15일 맥아더는 개념계획을 작전계획으로 완성하기 위한 사업을 극비리에 추진할 것을 합동전략기획단에 명령했다. 그런 명령에 따라 개념계획을 작전계획으로 완성할 특별기획참모단(Special Planning Staff)이 조직되었다. 

 

 

2. ‘작전계획 크로마이트’에 담긴 네 가지 씨나리오

 

1950년 8월 23일 일본 도꾜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청사에서 중요한 전략회의가 진행되었다. 맥아더가 소집한 전략회의에는 육군참모총장 육군 대장 조섭 콜린스(Joseph L. Collins), 원동군 참모장 육군 소장 에드워드 알몬드(Edward L. Almond), 해군참모총장 해군 대장 포레스트 셔먼(Forrest P. Sherman), 원동군 해군사령관 해군 중장 터너 조이(C. Turner Joy), 상륙전단사령관 해군 중장 제임스 도일(James H. Doyle), 제7함대사령관 해군 중장 아서 스트러블(Arthur D. Struble), 공군사령부 작전국장 공군 중장 아이드월 에드워드(Idwal H. Edward)가 참석했다. 맥아더는 합동전략기획단이 작성한 개념계획을 꺼내놓고 인천상륙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바꿔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은 인천 앞바다의 수로가 함대가 들어가기에 비좁다는 점,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세계 최고 수준이므로 함선이 개펄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점, 인천항 해안에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방조제가 있어서 상륙하기에 매우 불리하다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맥아더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런데도 맥아더는 고집을 부리며 45분 동안 그들을 설득하더니 이런 해괴한 말도 했다.

 

“나는 제2운명의 손길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만일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지 모른다. 인천(상륙전)은 성공할 것이고, 100,000명의 목숨을 구할 것이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고, 나는 적들을 짓밟을 것이다.”

 

맥아더와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이 인천상륙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낙동강 전선에서는 조선인민군의 격렬한 공격을 받은 미국군 방어선이 무너질 위험에 빠졌다. 낙동강 방어전을 지휘하던 미8군사령관 육군 중장 월튼 워커(Walton H. Walker)는 맥아더에게 미국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지만, 맥아더는 인천상륙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더욱이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맥아더에게 인천지역 이외에 다른 지역에 상륙하는 것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는데도, 맥아더는 그런 지시를 따르지 않고 인천상륙을 고집했다.  

 

1950년 9월 1일 맥아더는 인천상륙전의 공식명칭을 크로마이트작전(Operation Chromite)으로 정했다. 크로마이트라는 말은 황연(Chrome)원광석을 뜻한다. 맥아더의 특별기획참모단이 작성한 ‘작전계획 크로마이트’는 1950년 8월 28일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승인을 거쳐 당시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의 최종승인을 받았다. ‘작전계획 크로마이트’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작전씨나리오로 구성되었다.   

 

1) 100-A: 미국 해병대가 전라북도 군산에 상륙하여 금강계선에서 조선인민군을 공격하는 작전씨나리오.

2) 100-B: 미국 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을 점령하고,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여 북진하는 미국 육군과 합세하여 38도선 이남지역에서 조선인민군을 공격하는 작전씨나리오.

3) 100-C: 미국 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하였으나, 미국 육군이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지 못하는 경우 미국 해병대가 군산에 상륙하여 대전을 점령하는 작전씨나리오.

4) 100-D: 강릉-주문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고 북진하는 미국 육군과 합세하여 조선인민군을 공격하는 작전씨나리오.   

 

 

3. 맥아더의 극비작전계획 빼돌린 조선인민군 정찰병 

 

맥아더가 인천상륙전 준비를 다그치던 1950년 8월 30일 평양에 있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무전실로 한 장의 무전통신문이 날아들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정보가 담겨있었다. 

 

“최고사령부 앞. 

미 극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으로 아군의 배후를 타격하고 압록강 계선까지 북진하기 위한 작전이 결정되였음. 

상륙개시날자는 9월 13일. 

상륙지점은 인천.”

 

맥아더가 극비 중의 극비라고 하면서 철저한 정보보안조치로 은폐하였던 인천상륙전 극비정보를 빼돌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사람은 당시 일본 도꾜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 침투한 조선인민군 정찰병이었다. 조선은 그로부터 67년이 지난 2017년 12월 5일 온라인매체 <조선의 오늘>에 실린 ‘특집 - 전쟁과 녀인’에서 6.25전쟁 중에 배출된 여성영웅 14명을 소개하면서 맥아더의 극비정보를 빼돌린 여성정찰병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 여성정찰병의 이름은 로남교다. 특집방송에 따르면, 1950년 8월 30일 로남교가 무선통신으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것은 ‘작전계획 크로마이트’ 중에서 인천상륙전씨나리오인 ‘100-B’였다고 한다. 

 

특집방송에서는 평양에 있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영웅의 묘비를 방송화면을 통해 보여주었는데, 네 줄로 새겨진 묘비명에 영웅이 걸어온 한생이 비껴있었다. 

 

로남교 동지

남조선혁명가, 공화국 영웅

1907년 3월 3일 생 

2006년 1월 25일 서거

 

이 짤막한 묘비명만 읽어보면, 6.25전쟁의 운명을 바꿔놓은 극비정보를 빼돌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하기까지 로남교 영웅이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날 김일성상 계관인 허문길 작가는 로남교의 영웅적 투쟁을 형상한 장편소설 ‘포성 없는 전구’를 창작했고, ‘눈보라 창작단’은 그녀의 영웅적 투쟁을 형상한 다부작 영화 ‘포성 없는 전구’를 2014년에 창작했다. 조선의 특집방송에서 해설자는 일본 도꾜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 침투한 로남교 영웅이 “사랑하는 자식을 멀리 떼어두고 피눈물을 삼키며 적후활동을 벌였다”고 하면서, “몇 글자 안 되는 그 무전문에서 그가 넘어야 했던 아슬아슬한 순간들, 뛰여난 지략과 용감성으로 헤쳐야 했던 나날들과 죽음의 고비들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1950년 8월 30일 맥아더의 인천상륙전 극비정보를 평양에 있는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조선인민군 정찰병 로남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그녀는 미국 원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 침투하여 극적인 정찰활동을 벌였다. 그녀가 무전통신으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것은 맥아더의 '작전계획 크로마이트' 중에서 인천상륙전씨나리오인 '100-B'였다. 그런 공로로 로남교는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았다. 그녀의 극적인 정찰보고를 통해 '크로마이트작전'에 관한 정보를파악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미국군이 1950년 9월 13일 인천상륙전을 개시할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로남교 영웅의 극적인 정찰보고를 통해 ‘크로마이트작전’에 관한 정보를 파악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미국군이 1950년 9월 13일 인천상륙전을 개시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두 가지 해결하기 힘든 작전적 난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 조선인민군 주력부대를 낙동강 전선에 집결시켜 부산으로 진격하는 마지막 고비를 넘어서고 있었던 결정적인 시기에 주력부대 일부를 차출하여 인천으로 급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주력부대 일부를 인천으로 급파하면, 미국군은 조선인민군의 공격이 약화된 틈을 타서 낙동강 전선에서 총반격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었고, 조선인민군 주력부대 일부가 인천으로 이동하는 중에 미국군의 공습을 받아 인명손실을 입을 위험도 있었다. 

 

둘째, 조선인민군 주력부대 일부가 인천으로 이동하여 방어선을 구축한다고 해도, 미국군은 계획을 바꿔 인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 기습적으로 상륙할 수 있었다. 만일 미국군이 인천상륙-서울점령계획을 포기하고 남포상륙-평양점령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조선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난제들이 가로놓였기 때문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미국군이 인천에 상륙할 것이라는 정보를 알았으면서도 주력부대 일부를 인천에 증파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바야흐로 결전의 시각은 다가오고 있었다. 

 

4. 75,000명 대 400명의 싸움

 

지도에서 월미도를 찾아보면, 그 섬을 중심으로 사방에 펼쳐진 묘한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원래 월미도는 면적이 0.7㎢밖에 되지 않은 작은 섬이었다. 그 섬의 가운데에는 해발고가 108m인 월미산이 있다. 1950년 9월 당시 월미도에는 주민 6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월미도에서 마주보이는, 면적이 104㎢인 영종도는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영종도에는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섰고,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가 영종도와 육지를 연결해주었지만, 1950년 9월에는 영종도와 월미도는 월미수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다. 6.25전쟁 당시 미국군은 월미수로를 날치수로(Flying Fish Channel)라고 불렀다. 미국군이 인천을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하려면 반드시 월미수로를 통해 월미도에 상륙해야 한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에게 월미도는 인천과 서울을 방어하는 전략요충지였고, 미국군에게 그 섬은 인천과 서울을 점령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상륙지점이었다. 

 

미국과 한국에서는 인천상륙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그들의 상륙지점은 인천이 아니라 월미도였다. 조선에서는 인천방어전이 아니라 월미도방어전이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는 인천상륙전을 월미도상륙전으로 고쳐 부른다.   

 

미국 해군 제7함대사령관 아서 스트러블이 월미도상륙전 지휘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럽의 노르망디상륙전에 지휘관으로 참전했고, 필리핀의 레이트상륙전에도 지휘관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어서 ‘상륙전의 백전로장’으로 자처했다. 

 

그는 1950년 8월 18일과 8월 20일 인천 앞바다에 있는 덕적도와 영흥도에 정찰병들을 침투시켜 조선인민군의 해안방어태세를 파악했다. 그는 정찰보고를 통해 월미도에 소수의 조선인민군 방어대가 주둔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월미도상륙전에 참가한 제7합동타격단은 제77항모타격단, 제91해상봉쇄단, 제99해상정찰단, 제79전투비행단, 제90상륙공격단, 해상수송단, 한국군 해군부대로 편성되었다. 

 

제7합동타격단은 1950년 9월 4일부터 인천지역을 폭격하면서 동시에 군산지역과 남포지역도 함께 폭격했다. 월미도가 상륙지점이라는 정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군산과 남포도 함께 폭격한 것이다. 그들은 매일 같이 B-29 폭격기를 출격시켜 인천 중심부로부터 반경 50km 안에 있는 모든 대상물을 파괴했다. 

 

제7합동타격단은 월미도상륙전 직전인 1950년 9월 10일 항공모함에서 이함한 함재기 43대를 출격시켜 주민 600여명이 사는 월미도에 소이탄(napalm tank) 93발을 투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미국 해병대 여단장으로 월미도상륙전에 참전한 에드윈 씨몬즈(Edwin Simmons)는 2013년에 출판된, ‘해안벽을 너머(Over the Seawall)’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날 소이탄 폭격으로 월미도에 있는 집들이 모두 완파되었다고 회고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1950년 9월 초 미국군 항공정찰기가 촬영한 월미도 사진이다. 당시 월미도는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작은 섬이었다. 그 섬의 가운데에는 월미산이 있다. 월미도는 월미수로를 사이에 두고 영종도와 마주보고 있다. 6.25전쟁 중에 조선인민군에게 월미도는 인천과 서울을 방어하는 전략요충지였고, 미국군에게 그 섬은인천과 서울을 점령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상륙지점이었다. 1950년 9월 13일 미국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400명이 싸운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인민군 월미도 방어대에게는 물리력으로 싸울 수 없는 전투였고, 죽음을 각오한 정신력으로 싸워야 하는 혈전이었다.  

 

결전의 날, 월미도상륙전에 참가할 제7합동타격단의 총병력은 75,000명이었다. 그들의 무장력은 다음과 같다.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 상륙정, 상륙함, 보급함 - 261척 

함포, 견인포, 기관포 - 1,600문 

전차 - 500대 

함재기 - 500대

 

제7합동타격단의 상륙을 저지할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제918포병련대 일부병력, 제3보병대대 일부병력, 제226륙전대 일부병력을 합쳐 400명으로 편성되었다. 그들의 무장력은 다음과 같다.

 

76mm 견인포 - 5문

37mm 견인고사포 - 2문

37mm 박격포 - 소량

 

1950년 9월 13일 마침내 결전의 날은 왔다. 바다를 건너와 남의 땅을 침공하는 ‘미제침략군’ 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조국의 작은 섬을 피로써 사수하는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400명이 싸운 전투였다. 항공모함을 비롯한 방대한 규모의 최신식 무장장비로 중무장한 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견인포 7문밖에 갖지 못한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400명은 세계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피의 결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에게 그것은 물리력으로는 싸울 수 없는 전투였고, 죽음을 각오한 정신력으로 싸워야 하는 혈전이었다. 

 

1950년 9월 13일 오전 10시 10분, 전운이 감도는 월미수로에 순양함 4척과 구축함 6척으로 편성된 함대가 나타났다. 10척의 거함들은 40mm 기관포를 쏘아 월미수로의 부유기뢰를 하나씩 폭파하면서 서서히 월미도로 접근했다. 

 

오후 12시 20분, 순양함 4척은 월미도에서 11~16km 떨어진 먼 바다에서 기동을 멈췄고, 구축함 6척은 월미도에서 730m 떨어진 해상까지 바짝 접근했다. 그러는 사이에 수평선 넘어 항공모함에서 이함한 함재기들이 까마귀떼처럼 하늘을 뒤덮으며 월미도 상공으로 몰려들어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이미 9월 4일부터 계속되어온 9일 동안의 연속폭격으로 월미도는 폐허로 변했건만, 함재기들은 폐허 위에 또 다시 폭탄을 투하했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가 보유한 37mm 견인고사포 2문은 포신을 85도 각도로 세워 공중으로 사격하는 방공무기인데, 유효사고도는 3km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월미도상륙전에 출격한 코쎄어(Corsair) 함재기의 비행고도는 10km 정도였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37mm 견인고사포로 코쎄어 함재기를 격추할 수 없었다. 미국 해군 항공모함 한 척에는 날개가 접히는 코쎄어 함재기를 100대나 실을 수 있었는데, 그 함재기에는 20mm 기관포 4문이 장착되었고, 127mm 로켓탄 8발 또는 1,800kg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코쎄어 함재기의 집중폭격이 끝나자, 구축함 6척이 1시간 동안 월미도를 향해 127mm 함포를 집중사격했다. 폭격과 포격이 끝났을 때, 타래치는 포연과 불길 속에서 희미한 모습을 드러낸 월미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제7합동타격단 지휘관들은 완전히 파괴된 월미도에서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으로 여겼다. 포연과 불길 속에서 희미한 모습을 드러낸 월미도는 죽음의 침묵을 말해주는 듯했다.   

 

 

5. 월미도의 마지막 혈전

 

그런데 상상을 초월한 ‘기적’이 일어났다. 집중타격을 받고 전멸한 줄 알았던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의 75mm 견인포 5문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불을 뿜었다. 수백 발의 포탄과 폭탄을 맞아 산산이 부서지고 불타버린 작은 섬에서 불사조처럼 살아남은 월미도방어대가 75mm 견인포를 지하진지 밖으로 끌어내 미국 구축함에게 기습타격을 시작한 것이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의 반격은 어떤 전과를 가져왔을까? 미국 역사학자 로이 애플먼(Roy E. Appleman)이 집필했고, 미국육군군사연구소가 1961년 워싱턴에서 초판을 발행한 ‘남으로는 낙동강, 북으로는 압록강(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가 포탄 9발을 명중시킨 2,200t급 미국 구축함 콜렛함(USS Collett)은 화력통제장치가 파괴되었고 승조원 5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또한 포탄 3발이 명중한 3,400t급 구축함 걸크함(USS Gurke)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었고, 승조원 3명이 부상당했으며, 2,200t급 구축함 스웬슨함(USS Swenson)은 포탄이 함체에 스치면서 승조원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당했으며, 2,000t급 구축함 드 헤이븐함(USS De Haven)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가 사용한 76mm 견인포의 사거리는 13km다. 주목되는 것은, 그 견인포가 BR-350A 철갑탄을 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철갑탄을 쏘면 2km 밖에 있는 타격대상을 60도 각도로 직격하는 경우 43mm 두께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부대가 쏜 76mm 철갑탄이 명중했어도 거대한 미국 구축함은 부분적으로 파손되었을 뿐 격침되지는 않았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의 기습반격을 받고 놀란 미국 구축함들은 오후 1시 47분 견인포 사거리 밖으로 달아났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미국 순양함들은 오후 1시 52분부터 월미도를 향해 1시간 30분 동안 203mm 함포를 미친 듯이 쏘아댔고, 함포사격의 뒤를 이어 함재기들이 까마귀떼처럼 또 다시 날아와 월미도를 맹폭했다. 폭격이 끝나자 미국 순양함들은 오후 4시 10분부터 30분 동안 또 다시 함포를 쏘아댔고, 오후 4시 40분이 되어서야 수평선 너머로 물러갔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1950년 9월 15일 월미도 전투가 끝난 직후 촬영된 월미도의 모습이다. 상상을 초월한 격전이 3일 동안 벌어진 월미산에는 온전한 나무가 한 그루도남아있지 않았다. 그날 아침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76mm 견인포를 지하진지에서 끌어내 해안으로 몰려드는 미국 해병대 상륙정들을 향해 마지막 남은 철갑탄을쏘았다. 해안으로 밀려든 상륙정들에서는 미국 해병대원들이 긴 사다리를 해안방조제 곳곳에 걸쳐놓고 개미떼처럼 기어올랐다. 사흘 간의 격전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300여 명은 해안방조제를 기어오른 미국 해병대원 수 천 명에 맞서마지막 순간까지 혈전을 벌였다.  

 

이튿날인 1950년 9월 14일 오전 11시경 제7합동타격단 함대가 다시 월미수로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전날과 달리 순양함들이 먼저 월미도를 향해 203mm 함포를 집중사격했고, 그 다음에 함재기들이 날아와 월미도를 맹폭했고, 마지막으로 구축함들이 월미도를 향해 127mm 함포를 집중사격했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반격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철갑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0년 9월 15일은 월미도 전투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오전 5시 함재기들이 날아와 월미도를 폭격했고, 순양함과 구축함들이 포격했고, 203mm 로켓포를 탑재한 군함 3척이 월미도 해안으로 접근하여 로켓포탄 1,000여 발을 난사했다. 오전 6시 25분, 월미도 해안에서 약 2km 떨어진 해상에 집결한 상륙정 17척과 상륙함 3척이 연막탄을 터뜨리며 일제히 해안으로 돌진했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부대는 76mm 견인포를 지하진지에서 끌어내 해안으로 몰려드는 상륙정들을 향해 마지막 남은 철갑탄을 쏘았다. 마지막 철갑탄은 벌떼처럼 몰려드는 상륙정 3척에 명중했다. 

 

이제 월미도방어대에게는 소총과 수류탄 같은 개인화기들, 그리고 37mm 박격포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군 상륙정들은 해안방조제에 접근했다. 해병대원들은 꼭대기에 갈고리가 달린 긴 사다리를 해안방조제 곳곳에 걸쳐놓고 개미떼처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포연이 자욱한 월미도 해안에 운명의 시각이 왔다. 지난 사흘 동안 맥아더의 75,000명 대군을 상대로 벌인 격렬한 방어전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300여 명은 미국 해병대원 수 천 명을 상대로 마지막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미국 역사학자들이 서술한 많은 기록들은 월미도방어대의 마지막 전투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날 해병대원들과 함께 월미도에 상륙한, 미국의 저명한 여성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Marguerite Higgins)가 남긴 목격담이 월미도방어대의 마지막 전투를 증언해주는 유일한 역사기록이다. 

 

“우리가 사다리를 타고 수직에 가까운 해안방조제에 기어올랐을 때, 치명적인 함포사격과 폭격 속에서 살아남은 북조선 병사들이 해안 가까이에서 소총과 박격포로 쉴 새 없이 공격하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히긴스의 목격담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300여 명은 해안방조제를 기어오른 미국 해병대원 수 천 명에 맞서 마지막 순간까지 혈전을 벌였다. 미국측 기록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210여 명은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했고, 나머지 136명은 부상당하거나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6. 금성-4 순항미사일과 익명의 탄도미사일

 

월미도가 피로 물들었던 그날로부터 세월은 흘러 7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월미도에서 혈전의 흔적은 사라졌고, 포탄화염이 작열했던 바닷가에는 유원지가 들어섰다. 

 

그러나 조선은 월미도 혈전을 잊지 않고 있다. 2014년 7월 23일과 7월 26일 <로동신문>은 “조국해방전쟁시기 47개 주요전투들”을 간략하게 해설한 기사를 실었는데, 거기에는 월미도방어전이 들어있다. 1982년 조선에서 첫 상영의 막을 올린 영화 ‘월미도’는 월미도방어대 400명이 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맞서 혈전을 벌이며 최후를 맞는 이야기를 담은 명작인데, 요즈음도 그 영화는 가끔 <조선중앙텔레비죤> 전파를 타고 방영된다. 

 

월미도 혈전은 조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만이 아니다. 조선은 미국과 또 다시 결전을 벌여 그들을 기어이 꺾어버릴 강한 힘을 키워왔다. 월미도방어전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강한 힘이다. 70년 전 조선인민군에게는 눈앞의 적함을 격침시키지 못한 72mm 견인포와 철갑탄밖에 없었지만, 70년이 지난 오늘에는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적함을 격침시킬 타격력이 있다. 금성이라고 불리는 순항미사일이다. 

 

조선인민군은 금성-1 지대함순항미사일, 금성-2 공대함순항미사일, 금성-3 함대함순항미사일, 금성-4 지대함순항미사일을 해안지대 지하기지들 안에 대량으로 실전배치했다. 2017년 6월 8일 강원도 원산 인근 해안에서 동북방향으로 시험발사된 금성-4 지대함순항미사일은 레이더망을 피하여 낮은 고도로 200km를 날아가더니 표적에 가까운 상공에 이르러 공중에서 1~2차례 선회비행을 하고 아주 작은 표적에 명중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도화된 정밀타격력이다. 이런 적아식별능력과 선회비행능력은 섬 뒤쪽에 숨은 적함까지 쫒아가 타격한다는 뜻이다. 금성-4 지대함순항미사일은 2020년 4월 14일과 7월 4일에도 시험발사되었다.  

 

그런데 미국이 자랑하는 100,000t급 핵추진항공모함은 함체길이가 332m인 거함이므로, 금성 계렬 순항미사일로는 격침하지 못한다. 조선인민군의 항모격침미사일은 따로 있다.

 

2017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 중에 세계 군사전문가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특이한 모양의 탄도미사일이 등장했다. 조선은 그 탄도미사일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미국은 ‘KN-18’이라는 자의적 명칭으로 부른다.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2017년 5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로 진행된 시험발사에 다시 등장했다. 비행거리가 450km이었으므로, 실제 사거리는 500km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다음과 같은 절묘한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17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에 등장한 특이한 모양의 탄도미사일이다. 이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2017년 5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로 진행된 시험발사에 다시 등장했다.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초정밀타격력을 지난 항모타격미사일이며,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항모타격미사일이며,500km 밖에 있는 거대한 핵추진항공모함을 단 한 방에 격침시킬 수 있는 고체연료탄도미사일이다. 70년 전 월미도에서 견인포와 철갑탄을 쏘며 혈전을 벌였던 조선인민군은 70년이 지난 오늘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항모타격미사일을 보유했다.  

 

1) “적함선을 비롯한 해상과 지상의 임의의 바늘귀 같은 개별적 목표들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정밀조종유도체계가 도입되었다. 중간비행구간에서 소형 열분사발동기에 의한 속도교정 및 자세안정화계통의 정확성이 재확증되였고, 보다 정밀화된 말기유도체계에 의한 재돌입구간에서의 초정밀유도정확성이 확증되였다.” 그리고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예정목표점을 7m의 편차로 정확히 명중하였다.” 

 

(해설 -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대기권을 벗어나 120km 고도에서 중간비행을 하는 동안, 미사일 탄체에 장착된 여러 개의 소형 열분사발동기로 비행속도와 비행방향을 조절했다. 또한 대기권 밖에서 대기권 안으로 재돌입할 때, 말기유도장치로 비행방향을 조절했다. 그리하여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450km 밖에 있는 작은 해상표적을 7m의 편차로 맞추는 초정밀타격능력을 과시했다.)

 

2) 시험발사에서는 “조종전투부의 말기유도단계까지 세밀한 원격관측”을 할 수 있었다. 

(해설 -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대기권 밖 120km 고도에서 해상표적을 향해 극초음속으로 낙하돌진비행을 했는데, 조선국방과학원 과학자들은 낙하돌진비행을 원격관측했다. 이것은 450km 밖에 있는 해상표적 인근 상공에 무인전략정찰기를 날려보내 원격관측을 했다는 뜻이다. 450km 밖에 있는 작은 해상표적은 레이더로 포착할 수 없으므로, 무인전략정찰기를 날려 보내야 포착할 수 있다. 이로써 익명의 탄도미사일과 무인전략정찰기가 연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이 운용하는 방현-5 무인전략정찰기는 시속 200km의 속도로 10시간 동안 비행하는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다. 이런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를 날려 보내 원격관측을 하지 않으면, 익명의 탄도미사일로 450km 밖에 있는 작은 표적을 맞추기는커녕 포착할 수도 없다. 조선은 2016년에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를 개발했고, 2017년에 그것과 연동되는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

 

3) “발사 전 준비공정이 고도로 자동화되여 발사시간을 훨씬 단축하도록 체계가 완성”되었다. 

(해설 - 발사준비공정이 고도로 자동화되었다는 말은 고체연료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탄도미사일은 액체연료를 주입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발사준비시간이 대폭 단축된다.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탄도미사일이다.)

 

4)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에 탑재되었다. 

(해설 -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는 차륜식 자행발사대와 달리 길이 없는 산악지대로 들어갈 수 있다. 미국의 위성감시는 도로망을 따라 진행되므로,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가 도로를 멀리 벗어나 산악지대로 들어가면 미국의 위성감시망은 ‘먹통’이 된다. 또한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는 모래사장에서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다. 차륜식 자행발사대가 모래사장에 들어가면 차체 중량으로 발사대가 기울어져 미사일을 쏠 수 없지만,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는 모래사장에서도 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다.)  

 

2018년 2월 12일 미국의 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는 2017년 7월 중국에서 발행된 해군전문지에 실린 분석기사를 인용하면서, 2016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화성-9 탄도미사일이 적함을 정밀타격하기 위한 무기로 생산되었는데, 이 탄도미사일은 중국의 둥펑(東風)-21D처럼 고도화된 정밀타격력을 지닌 탄도미사일이며,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항공모함을 격침시킬 수 있다고 해설했다. 그런데 그 분석기사의 필자는 미국이 'KN-17'이라고 부르는 탄도미사일, 다시 말해서 조선에서 2017년 5월 29일에 시험발사된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화성-9로 착각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익명의 탄도미사일이 중국의 둥펑-21D처럼 초정밀타격력을 지닌 항모타격미사일이며,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항모타격미사일이며,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탄도미사일이라는 사실이다.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조선의 항모타격미사일은 500km 밖에 있는 핵추진항공모함을 단 한 방에 격침시킬 수 있다.

70년 전 월미도에서 사거리가 13km밖에 되지 않는 견인포로 철갑탄을 쏘며 혈전을 벌였던 조선인민군은 70년이 지난 오늘 사거리가 500km인 항모타격미사일에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했다. 그런 엄청난 위력 앞에서 미국의 핵추진항공모함은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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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 앓는 청년들…2030 자해·우울증 확 늘었다

등록 :2020-09-14 04:59수정 :2020-09-14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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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자해, 20대 213건 30대 161건
전년 동기보다 두배 가까이 증가
확진 많은 대구·경기 증가율 높아
우울증 진료도 28~15% 증가
“취업난·거리두기에 스트레스 커져”
이은주 의원 “정부 차원 지원책을
우울증과 자해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은주(가명)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lt;한겨레21&gt;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우울증과 자해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은주(가명)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우울증을 앓고 있는 대학생 이아무개(23)씨는 지난달 23일 다시 자해를 했다. 이날은 이씨가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을 1년 만에 만날 약속이 있었지만 돌연 취소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에서 397명이 나왔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기대에 부풀었던 이씨는 크게 실망했다. 이씨는 <한겨레>에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렸는데 최근엔 혼자 사는 좁은 방에서 매일 온라인 강의만 듣다 보니 우울함이 계속 커진다. 대형서점에서 종일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코로나19 재확산 이후엔 그마저도 할 수 없어 너무 힘들다”고 했다.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이후 청년층의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2020년 상반기 청년층의 자해 발생 진료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아 13일 공개한 ‘(고의적) 자해 발생 현황’ 자료를 보면 2020년 상반기에 20대가 자해로 병원 진료를 받은 건수는 213건으로 지난해 118건에 견줘 80.5% 증가했고, 30대는 161건으로 전년(86건) 대비 87.2% 증가했다. 20, 30대 다음으로는 60대가 자해 건수 증가율(69.2%)이 높았다. 전체 나이를 놓고 보면 올해 상반기에 1076명이 자해로 진료를 받아 지난해(792건)에 비해 35.9% 늘었다. 지역별로는 대구(87.5%↑)와 서울(36.9%↑), 경기(73.2%↑) 등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많은 지역에서 자해 건수 증가율이 높았다.
우울증도 지난해에 견줘 늘었다. 2020년 상반기 동안 20대 우울증 진료 건수는 9만3455건으로 전년도(7만2829건)에 비해 28.3% 늘었다. 30대 우울증 진료 건수도 지난해 6만7394건에서 올해 7만7316건(14.7%)으로 늘었다.전문가들은 병 분류를 위해 파악한 수치는 최소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 청년층의 자해 건수와 우울증 건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 장창현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코로나19 이후 진료를 받으러 오는 2030 청년들이 늘고 있는데 감염병 유행 이후 커진 취업 어려움과 줄어든 대인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며 “혼자 사는 청년들이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스트레스 관리와 마음 건강 챙기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감염병 유행 상황이 장기화되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자해 경험을 공유하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게시글이 잇따르고 있다. 대학생 ㄱ(24)씨는 “코로나19 이후 반년 가까이 집에만 갇혀 지내면서 주먹으로 벽을 치는 등의 자해를 하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이 의심된다. 심리상담 선생님이 약물치료를 권장하는데 전문가의 조언을 더 듣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중학생 ㄴ(14)씨는 “지난 1월 이사하면서 새 친구를 만들지 못해 우울감이 찾아왔고 살이 많이 찌면서 자해도 하게 됐다”며 역시 조언을 구하는 글을 남겼다. 이은주 의원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심리적 불안감과 고립감이 커지고 있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청년층과 저소득층에 대해선 (정신과) 상담과 치료비 지원 등 구체적인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1983.html?_fr=mt1#csidxffe6f6fae419f0aad3528250b699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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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짜장면의 고향은 인천이다

개항 이후 인천에 정착한 화교들, 그들이 남긴 짜장면 

20.09.13 18:10l최종 업데이트 20.09.13 18:1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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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화루 그냥 짜장면  예나 지금이나 제일 잘나간다. 가격 5,500원. 몇 알씩 올라가던 완두콩이 빠져 조금 서운하다
▲ 복화루 그냥 짜장면  예나 지금이나 제일 잘나간다. 가격 5,500원. 몇 알씩 올라가던 완두콩이 빠져 조금 서운하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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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의 위대한 탄생

인천은 항구다. 백여 년 전 근대적 개항을 단행했다. 우리의 뜻은 아니었다. 호시탐탐 한반도를 넘어 중국을 노리던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인천항을 통해 외래문물과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행렬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항구는 잠들지 않는다. 덩달아 그곳의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늘 뜬 눈이어야 한다.

그 몇 해 전부터 중국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았다. 화교라 불렸다. 그들 중 대부분은 남성이었고, 배움이 짧았으며 가진 게 없었다. 그들은 집단생활을 하며 고된 육체노동을 주로 했다. 항구의 짐꾼도 대다수 그들이었다. 그들을 따로 '쿨리'(苦力)라 불렀다. 고객들은 시도 때도 없이 그들을 불렀다.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야 했다. 밥을 먹다가도 뛰어 가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먹을 수 있는 게 필요했다.

 

 항구 주변에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꽤 있었다. 아주 고급스러운 몇 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점상 수준이었다. 그 중 한 곳에서 부두 노동자를 위한 신메뉴를 개발했다. 중국 산동지역의 '자지앙미엔(炸醬麵)'을 조선식으로 재해석한 비빔국수였다. 그 이름 자체가 튀긴(炸) 장(醬)이다. 돼지기름을 두른 무쇠 웍에 춘장을 달달 볶아, 삶은 면 위에 얹어 냈다. 짜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위키백과 '짜장면' :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p193-195, 인천광역시, 2015).


그런데 정말로 자지앙미엔이 짜장면의 원조인지, 중국본토에는 우리식 짜장면이 없다는 말은 맞는 건지 등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남아 있다. 짜장면을 한국음식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의견은 갈린다. 논쟁을 불렀던 한글 표기 문제는 지난 2011년 국립국어원이 '짜장면'과 '자장면'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면서 일단락됐다.

어쨌든 짜장면의 고향은 인천이다, 그건 아무도 토 달지 못하는 명백한 사실(fact)이다. 인천항 인근의 차이나타운은 그걸 증거한다. 명칭만 남은 다른 도시와 달리 인천 차이나타운은 지금도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식당과 중국 식료품 가게 등이 즐비하다. 짜장면을 처음 개발했다는 옛 '공화춘' 자리엔 짜장면 박물관도 있다. 지금이야 코로나로 뜸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경향 각지에서 짜장면 마니아들이 몰려들었다.

짜장면이 가장 대표적인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한국인에게 짜장면은 추억이다. 졸업식, 첫 데이트, 이삿날 등 추억의 디테일은 달라도 각자의 역사와 감성이 그 한 그릇에 오롯이 담겨있다. 있는 사람들보단 없이 산 사람들에게 특히 그렇다. 지금은 서민음식이 되었지만 모두가 곤궁한 시절에는 큰 사치였다. 특별한 날 아니면 먹을 수 없었다. 그런 애틋한 심정은 그룹 GOD의 <어머님께>란 노래에 잘 담겨 있다.

사실 짜장면 조리법은 간단하다. 면 삶고, 춘장과 재료 볶아 얹으면 그만이다. 누구나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맛은 아무나 내지 못한다. 면 반죽, 삶는 시간 등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장도 식자재의 신선도, 볶는 시간, 불의 온도 등이 다 중요하다. 면과 장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중식당의 평가 기준은 으레 짜장면이다. 짜장면이 맛있으면 다른 메뉴도 틀림이 없다. 동네 배달전문 중국집도 짜장면이 맛없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짜장면의 성지인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짜장면 잘하기로 소문 난 집이 한 집 건너 하나씩이다. 백년짜장, 유슬짜장 등 다른 곳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짜장면 메뉴도 다양하다. 그러나 짜장면 잘하는 집이 거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인천 곳곳에 은둔고수들이 일가를 이루고 있다. 이주 초기 그들은 토박이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들은 대개 수십 년 이상 한 자리를 지켜오며 단골들의 사랑을 대물림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라, 부평시장 '복화루'
 
  1945년 처음 문을 열었다. 3대 째 한 자리에서 짜장을 볶고 있다. 손주가 물려받으면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   1945년 처음 문을 열었다. 3대 째 한 자리에서 짜장을 볶고 있다. 손주가 물려받으면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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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화루도 그중 하나다. 중국 산동성에서 건너온 이곡충씨가 1945년 문을 열었다. 아내와 함께 인천항에 내린 그는 화교들이 많은 바닷가 동네를 마다하고 내륙 깊숙이 들어갔다. 부평이었다. 행정구역은 인천시 관내지만 지금도 부평을 별개의 도시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큰 재를 넘어야 오갈 수 있어서 그랬는지 문화와 정서가 사뭇 다르다. 부평에는 규모가 큰 시장이 있었다. 이곡충씨는 그곳 부평시장에 터를 잡았다.

시장 뒷골목의 테이블 서너 개짜리 작은 가게였다. 처음엔 한국말이 서툴러 애를 많이 먹었다. 거친 시장사람들의 텃세도 힘들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손님이 들기 시작했다. 비결은 냄새였다. 돼지기름에 춘장을 볶을 때 나는 냄새는 강렬하고 강력하다. 침샘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는 아주 멀리까지 퍼져 나간다. 시장사람들은 그 냄새에 홀린 듯 가게 문을 열었다. 장 보러 나온 아낙들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무리해서 사람이 많이 모인 시장에 가게를 낸 전략은 과연 효과가 있었다. 일종의 향(香) 마케팅이었다. 사람들은 난생처음 맡는 희한한 향기의 유혹에 넘어간 거였다. 짜장면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장사 시작한 지 2년 만에 아들 이본위가 태어났다. 아기가 복덩어리였다. 매출이 몇 배는 올랐다. 그 아들이 가게를 맡겨도 될 만큼 장성하자 아버지는 미련 없이 열쇠를 넘겼다.

이 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예나 지금이나 짜장면이다. 그중 가장 저렴한 그냥 짜장면(5500원)이 제일 많이 나간다. 물론 가장 맛있어서다. 그 맛은 참 담백하다. 기름진 느낌이 별로 없다. MSG 첨가를 최대한 자제하는 듯 쓴맛이 남지 않는다. 아무리 주문이 많아도 재료는 순서대로 볶는다. 양파와 호박을 맨 나중에 넣는다. 아삭거리는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 있다. 면은 부드럽고 매끈하다. 전분과 밀가루의 배합이 기막히다.

"우리는 매일 새벽에 두 내외가 장을 보러 가요. 신선한 재료야말로 좋은 음식의 첫째 비결이죠. 이건 우리 시아버지께서 가장 강조하신 가르침이에요. 작년(2019년)에 큰아들에게 사업자는 물려줬지만 건강이 허락 되는 대로 계속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단골들은 꼭 우리만 찾거든요."

안주인 왕수영씨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복화루엔 나이 지긋한 단골들이 많다. 모두 수십 년 동안 인연을 맺어 왔다. 식구나 다름없다. 두 부부는 그들의 소소한 것들도 기억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네들은 다른 집에선 짜장면 못 먹는다며 맞장구친다. 맛도 맛이지만 정 때문에 그런단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발길을 끊는 단골들이 늘어 속이 많이 상한다. 사람 생명이야 영원한 게 아니니 어쩔 도리는 없다.

신흥동 제일에서 대한민국 제일로, '신일반점'
 
신흥로터리 신일반점 1950년 문을 열었다. 지금은 수석주방장이었던 유방순 사장이 주방과 경영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 신흥로터리 신일반점 1950년 문을 열었다. 지금은 수석주방장이었던 유방순 사장이 주방과 경영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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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반점은 신흥동 로터리에 있다. 가게 이름은 '신흥동 제일'을 표방한다. 신흥동을 넘어 인천 최고라 해도 과하지 않다. 1950년 즈음에 산동성 옌타이 출신인 임서약씨가 문을 열었다. 지방의 식자재 상에서 일 하던 그는 거래처 식당 딸과 결혼하면서 다시 인천으로 올라왔다. 그의 아버지가 청관거리 부근에서 하던 호떡집을 업그레이드 해 신일반점을 차렸다. 물론 처가댁은 중국식당을 하던 화교 집안이었다(한국일보 '한국의 노포 14회', 2003년 12월 23일자 기사 참조).

2000년대 초 아들 헌일씨에게 가게를 물려주었다. 몇 년 동안 그가 운영하다가 수석주방장이던 유방순 현 사장에게 넘겼다. 유방순 신임 사장은 그 세계에선 꽤 유명한 실력자다. 젊은 시절 태화관이나 국일대반점 같은 유명 업소에서 실력을 닦았다. 임 사장에게 인정받아 스카우트 됐다. 오기 전부터 자타가 인정하는 고수였지만 이곳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유 사장은 임씨 가문의 비방에 자신의 노하우를 접목했다.

신일반점은 일찍이 유명세를 탔다. 유 사장 취임 후에도 언론매체나 블로거들이 자주 찾아 자발적으로 홍보해 주었다. 지난해(2019)엔 공중파 방송사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인'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달인의 메뉴는 탕수육이었다. 탕수육은 전임 임 사장 시절부터 유명했다. 그로부터 전수 받은 비법과 자신만의 노하우를 더 했다.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초마면도 유명하다. 초마면은 말하자면 짬뽕의 원조다. 국물은 하얗고 걸쭉하다.
 
 맨 상단에 유니짜장이 있다. 다른 집들은 짜장면이 있는 자리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말이다
▲  맨 상단에 유니짜장이 있다. 다른 집들은 짜장면이 있는 자리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말이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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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 사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놓는 건 유니짜장이다. 식당 벽에 붙은 메뉴판의 최상단에 유니짜장이 있다. 예전엔 다른 집처럼 그냥 짜장면이 그 자리에 있었다. '유니'는 '간다'는 뜻이다. 모든 재로를 곱게 갈아서 춘장과 볶는다. 하지만 신일반점 유니짜장은 고기만은 갈지 않는다. 식감 때문이다. 고깃덩이가 제법 두툼하니 씹는 맛이 좋다. 면은 말도 못 하게 차지다. 쫀득쫀득 씹히는 식감이 풍성하다. 면과 장을 비비면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된다.

"임 사장님은 제겐 시부이자, 친할아버지 같은 존재죠. 함께 일하는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중 제일이 정직입니다. 거짓은 손님이 먼저 알아챈다고 가르치셨죠. 앞으로 해삼 쥬스나 불도장 같은 고급 중식을 대중화해 많은 분이 드실 수 있게 하는 게 꿈입니다."

유 사장은 화교 3세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국말이 부자연스럽다. 사장뿐 아니라 가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 보조 주방장도, 카운터도 하물며 서빙하고 배달하는 사람들까지 다 똑같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땐 순 중국말만 쓴다. 매장은 늘 떠들썩하고 분주하다. 내용을 모르고 들으면 싸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 함께 웃음을 터뜨린다. 그들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활기찬 대화에는 중화민족의 자긍심이 한껏 묻어난다.

화교들에겐 에너지를, 한국인에겐 추억을

이 땅 화교들의 삶은 여전히 신산하다. 재산권은 근 100여 년 이상 제한 받았다. 영주권이 주어진 건 불과 20여 년 전이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화교로 국한 되어 있다. 아직도 교육이나 복지 혜택에서 상당 부분 소외되고 있다. 세금은 대한민국 국민과 똑같이 내는데도 그렇다. 그들을 비하하는 모욕적인 별칭들은 아직도 듣기 괴롭다. 그래도 그들은 특유의 만만디 정신과 강한 생활력을 무기로 지금껏 꿋꿋하게 버텨오고 있다.

짜장면은 그런 그들의 삶을 상징한다. 모질고 힘들지만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하소연하지 않고 온전히 제 몸뚱이로만 역경을 이겨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들은 선 채로 후다닥 짜장면을 먹고는 다시 일터로 달려 나갔다. 짜장면은 그렇게 고생하는 동족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우리에게도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GOD의 어머니는 짐짓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지만 속내는 아니었을 거다. 단언컨대 진짜 짜장면을 싫어하는 한국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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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 서부는 '기후 재앙 현주소'...100여개 산불 동시다발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9/14 08:01
  • 수정일
    2020/09/14 08:01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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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면적 약 20% 초토화, 사망자 최소 28명...트럼프 14일 캘리포니아 방문 예정

<뉴욕타임스> 등 전세계 주요 언론들이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한 미 서부 3개 주 일대를 화마에 휩싸이게 한 전대미문의 산불 사태를 '기후변화 재앙'으로 규정하며 연일 대대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전국합동화재센터(NIFC)에 따르면 미 서부 지역에서는 약 100여 건의 대형 산불이 동시다발로 진행 중이다. 특히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주가 피해가 심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 캘리포니아 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8월 초부터 현재까지 산불로 희생된 사망자 수는 최소 28명이며, 최근 며칠새 사망자가 집중적으로 늘었다. 실종자가 수십명이어서 수색작업이 끝나면 실제 인명피해는 훨씬 더 클 전망이다. 산불 피해 면적은 1만9125제곱미터에 달한다. 남한 면적 약 5분의 1(19.1%)에 해당한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만 주 역사상 피해 규모가 1·3·4위에 달하는 대형 산불 3건이 한꺼번에 발생하는 등 현재 확산세를 잡지 못해 애를 먹는 주요 산불만 28개 달한다. 오리건 주에서도 겨울 우기가 될 때까지 최소 8건의 대형 산불이 진화되지 않을 것으로 당국은 예상했다. 워싱턴 주에서는 16개의 대형 산불이 진행 중이다. 아이다호·몬태나 주까지 포함하면 미 서부 지역에서 약 100여건의 산불이 진행 중이다.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캘리포니아는 존재론적 기후 위기의 한 가운데 서 있다"며 "캘리포니아 주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산불이 나타난지 고작 2년이 지났는데, 또 다른 거대 산불이 몇 마일 밖에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선후보를 포함한 민주당 진영은 "산불 사태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것"이라면서 "미래를 위해 이제 행동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기후 전문가들도 미 서부 대형 산불은 온난화에 따른 '지구의 경고'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속된 건조한 날씨 속에 벼락이 떨어지며 시작된 산불이 높은 기온과 강풍이 지속되면서 산불 피해가 더 크게 확산됐다는 것이다. 산불로 인한 연기로 이 지역의 대기질은 현재 전세계 최악인 상황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131400576731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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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과 미국의 전후 신탁통치 구상

<연재> 임영태의 ‘다시 보는 해방 전후사 이야기’(20)-제2부 해방과 외세(1)
임영태  |  ytlim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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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4  00: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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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올해 2020년은 광복(또는 해방) 75주년이자 6.25전쟁(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에겐 해방이 곧 분단이었으니 분단 75주년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3/4세기 동안이나 분단된 상태로 살아야 했던가? 왜 우리는 해방과 함께 분단이라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맞아야 했던가? 우리는 왜 해방 3년 만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고 마침내 5년 만에 전쟁이라는 참화를 겪어야 했던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해방 전후사에 들어 있다. 해방 75주년, 한국전쟁 70주년의 해에 해방 전후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이유다. 이 연재는 매주 월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한반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반도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해방과 함께 분단되는 운명에 처했다. 우리로서는 억울하고 분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절충된 결과였다. ‘역사의 저주’라고 해야 할지, 해방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근대 이후 축적된 역사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해방과 함께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고, 3년간의 수많은 분란 끝에 결국 한반도는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되고 말았다. 한반도가 해방 3년 만에 두 개의 정부로 분단되고, 다시 2년 뒤 참혹한 전쟁을 치를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더욱이 그렇게 시작된 분단과 대결 상태가 70년을 넘어 한 세기를 향해 나아갈 줄 누가 꿈에라도 생각이나 했을까. 분단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인 가운데 그걸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단은 외부의 힘, 그러니까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강대국들에 의해 이뤄졌다. 김구가 ‘일제의 패망 소식을 듣고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고 했을 때 이미 강대국의 영향력을 염려했었다. 다른 독립운동가와 독립세력들도 2차 대전이 끝나기 전부터 전후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게 될 것이며, 한반도는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분란과 갈등이 한반도의 양단과 전쟁으로까지 치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역사에서 한반도와 비슷한 운명에 처한 나라들은 종종 있었다. 독일(프러시아)과 러시아, 오스트리아제국(합스부르크 왕가) 사이에서 고통받았던 폴란드가 대표적이다. 18세기 이들 강국들에 의해 수차례에 걸쳐 영토가 분할되면서 한때 폴란드는 아예 지도상에서 사라진 적도 있었다. 서유럽과 러시아의 세력 교차점에 위치한 유고슬라비아는 자신의 주도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후 여러 민족, 국가들이 한 나라로 통합되었다가 냉전체제가 와해된 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거쳐 이제 또 다시 7개의 나라(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로체고비나, 코소보)로 쪼개졌다. 역시 서구와 러시아의 교차점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분단되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두 개의 세력이 충돌하며 내전을 치르고 있다.(주1) 그럼에도 현대사에서 우리처럼 세계 최강국이 모두 참여한 전쟁을 3년간이 치르고 70년 동안 계속 분단된 경우는 없다. 전후 세계질서 재편 과정에서 분단되었던 독일도, 전후 재식민화를 위해 개입했던 제국주의와의 전쟁 과정에서 분단되었던 베트남도 통일을 이뤘으나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 상태에 있다.

대체로 강대국과 강대국의 사이, 문명권과 문명권, 세력권과 세력권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나라들이 외세의 개입으로 고통받거나 심할 경우 분단을 겪었지만, 근대 이후 한반도만큼 지독하게 그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경우는 없다. 왜일까? 그것은 한반도가 근대 이후 그만큼 중요한 세력권의 충돌지점,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며 세계 최강국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미소에 의한 분할 점령으로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할 점령된 나라는 여럿 있었지만 미국과 소련 두 나라에 의해 양분된 것은 한반도밖에 없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미국과 소련은 전후 자유주의(자본주의) 세계와 공산주의(사회주의) 세계라는 두 진영을 대표하는 초강대국으로서 전후 냉전체제를 이끌었다. 한반도가 두 나라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냉전 대결이 첨예한 곳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가 이처럼 강대국의 이해관계의 충돌점이 된 것은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근대 이후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반도는 오랫동안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차점으로서 강대국의 첨예한 대결장이 되었다.

   
▲ 폴란드의 분할. 오스트리아(분홍색 계열), 프로이센(노란색 계열), 러시아(하늘색 계열)에 의해 분할되었던 18세기의 폴란드.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중국대륙을 장악한 중원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조공-책봉 관계가 국제관계의 골격으로 유지되었다. 중국 중원을 지배한 제국은 한족뿐만 아니라 북방의 여러 민족들이었다. 몽골은 몽고 초원지대를 통일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중앙아시아와 중동지역, 지금의 러시아와 동유럽까지 포괄하는 광대한 세계제국을 구축하면서 중국대륙에 원이라는 몽골제국의 종주국을 구축했다. 이때 고려는 몽골제국(원)의 부마국으로서 반예속국(주2)이었으나 독자적인 왕조를 인정받았다. 그 외에도 한반도에 있던 국가는 중원의 제국 또는 강국의 침략을 숱하게 받았지만 한번도 완전히 독립성을 잃은 적은 없었다. 한편으로 조공-책공 관계는 그러한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이기도 했다.

   
▲ 몽골제국과 고려. 
   
▲ 근대 청나라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 관계.


조선시대 명과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국가는 중원국가로부터의 형식적인 책봉관계를 인정하되 중원국가가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공-책봉관계의 불문율이었다. 만일 이를 무시하고 중원국가가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하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해야 했는데, 이는 양자 모두에 적지 않은 타격이 되었다. 중원국가는 한반도와 전쟁을 치를 경우 항상 북방민족, 배후를 걱정해야 했으므로 외교(외형)·정치적으로는 황제국과 제후국의 책봉관계를 유지하면서 교역·경제관계는 조공무역의 형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원래 조공은 중국 내에서 제후(또는 제후국)가 천자(황제. 또는 황제국)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진상)을 의미했지만,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설명해주는 의미로 확장되면서(주3) ‘조공무역관계’로 그 내용이 변화되었다. 황제국과 제후국의 무역과 교역, 문물교류의 수단으로 통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제후국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근대 이후 강대국의 충돌점이 된 한반도

동아시아에서 조공-책봉관계라는 국제질서가 가장 안정적으로 운용된 것이 근세 명·청시대라 할 수 있다. 특히 조선의 경우 명과의 관계에서 사대를 분명히 천명하였고, 외부적인 외교상의 안정을 바탕으로 국내의 경제·문화 발전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명·청 시대 중국 주변의 여러 국가들, 몽골, 신장티베트, 신강위구르(서역)지역,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이 그 관계를 유지했다. 일본열도국가의 경우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때로는 중원국가와 조공책봉 관계를, 때로는 고립단절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근세가 되면서 이러한 대륙중원국가 중심의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세계사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니 유럽국가들이 주도한 ‘대항해 시대’와 이른바 ‘신대륙’의 발견이었다.(주4) 로마제국 이후 중세기 동안 낙후를 면치 못하던 유럽은 ‘대항해 시대’에 ‘신대륙 발견’을 통해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였고, 근대 이후 서세동점의 상황을 연출하며 제국주의·식민지 시대를 연출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일차적으로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그 여파가 세차게 몰아쳤다.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시대를 거쳐 일본열도를 통일하고 그 기세를 몰아 조선과 중국을 공략하러 나섰는데 이때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총기 성능을 개량한 조총을 비롯해 네덜란드 등을 통해 받아들인 유럽 문물이 큰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크게 한번 흔들었으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주5) 그럼에도 300년 뒤 동아시아 역사를 근본적으로 뒤바꾸게 될 해양세력의 기세를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점에서 중대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임진왜란이 있고 300여년 뒤인 1894년 일본은 중국(청)과 동아시아 패권을 두고 다시 붙었고, 이 싸움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중국(청) 중심의 전근대적인 조공-책봉관계가 완전히 붕괴되고 이른바 ‘만국공법’ 체제(주6)가 등장하게 되었다. 1904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아시아 패권국가가 되었으나 일본의 야욕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본 일본제국주의는 조선·대만을 식민지로 확보, 경영하면서 1931년에는 9.18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장악함으로써 일본제국의 지배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 야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은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중국 본토 침략에 나섰고, 나아가 동남아와 태평양으로 진출하여 세계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였던 미·영과 세계패권을 두고 전면전을 벌였다. 일본은 마지막 순간에는 자본주의국가인 미·영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로서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신흥 초강국으로 등장하고 있던 소련도 상대해야 했다. 일본이 아무리 강국이라 하더라도 이들을 모두 상대해서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일본은 패망하고 말았다.

   
▲ 근대 이후 한반도는 미국, 일본, 러시아(소련) 등 세계강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근대 이후 한반도는 미국, 일본, 러시아(소련) 등 세계강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일본이라는 해양세력과 중국이라는 전통적인 대륙국가가 맞붙은 전쟁에서 해양국가 일본이 승리했다. 유라시아 국가 러시아제국과 해양국가 일본이 맞붙은 러일전쟁에서는 해양세력인 영국과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고, 그 후 상당기간 이들 세 나라는 상호 경쟁하면서도 기본적으로 협조,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영향력을 확장, 유지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만주를 넘어 중국 대륙으로 침략을 확대하며 중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확보하려 하면서 미국, 영국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침해하기 시작했고, 결국 일본은 동남아와 태평양으로 진출하면서 같은 해양세력인 미국·영국과 전면적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독일·이탈리아 등 파시즘 동맹에 대항하여 대륙세력인 소련·중국과 해양세력인 미국·영국이 반파시즘 연합전선을 형성해 싸운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직전까지의 대립 관계를 바꿔놓은 전쟁이었다. 이 세계전쟁에서 연합국이 승리함으로써 파시즘 추축국 동맹은 몰락했지만 전후 동아시아에서는 재차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충돌하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미국은 과거 적이었던 일본을 동맹 관계로 돌아섰다. 냉전체제가 성립되면서 패전국가 일본은 미국·영국 등 해양세력의 동맹국이 되어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한반도는 일본 대신 분단국가가 되고 말았다. 동아시아에서 두 세력권은 한반도를 접점으로 하여 첨예하게 부딪쳤고, 그 결과 한반도는 분단과 전쟁이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대응한 미국의 전후 구상

한반도 분단의 출발점이자 결과물이 된 냉전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이른바 ‘전통주의’는 냉전체제의 형성과 한반도 분단의 1차적 책임을 소련의 팽창주의에서 구하는 반면, ‘수정주의’는 이와 반대로 미국의 전세계적인 정치·군사적 패권전략 추구에서 냉전 및 한반도의 분단이 비롯되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우선 전통주의적 시각은, 미국에 의한 세계체제의 재편과 자본주의 질서의 확립은 전 세계적으로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냉전은 결국 소련의 ‘팽창야욕’에서 비롯되었고, 미국은 이에 수동적으로 대응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은 결국 공산주의로부터 자유세계를 지켜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전통주의적 입장을 강력히 비판하며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재고를 요구한 수정주의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수정주의적인 시각은 미국의 팽창주의적 외교정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냉전질서의 기원을 소련이 아니라 미국에서 찾고 있다. 이들은 트루만 이전에는 미국과 소련의 협조분위기가 비교적 잘 유지되었는데 이를 먼저 깨뜨린 것은 바로 ‘트루먼 독트린’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소련은 방어적 위치에 있었고 전후 복구사업에 급급하여 미국의 정책에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해방 후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한국민의 자주적이고 통일적인 민족국가 수립을 거스르는 미국의 국가이익의 실현 과정이었다고 본다.(주7)

이처럼 서로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이 문제는 결국 미국과 소련 모두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에 책임이 있지만, 누가 책임 더 큰가 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미국과 소련 모두 자신이 점령한 지역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체제를 세우고자 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전체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기를 원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 양측의 대한반도 정책은 서로의 국가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동일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나라에 모두 꼭 같은 비중의 책임이 있다고 ‘균등한 양비론’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 문제는 저울로 물건의 무게를 재듯이 비교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급적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살펴봄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분단의 출발점이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현실화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과 소련, 특히 미국 전후 한반도 정책 구상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동아시아에서 일본과의 전쟁(중국에서 장제스 국민당군 지원, 동남아 버마전선 지원, 태평양에서 일본과의 직접적인 전쟁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미국이었고, 전후 질서 재편에서도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일제는 중일전쟁을 시작한 뒤 대만, 만주, 중국 등 침략 전쟁으로 확보한 지역에 대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지배를 목표로 한 구상을 제기했는데 거기서 발전한 것이 바로 ‘대동아공영권’ 주장이었다. 대동아공영권의 선구는 1938년 11월 3일과 12월 22일 일본 수상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磨)의 ‘동아신질서 구상’이었다. 이는 원래 구미제국주의와 공산주의를 배격한다는 명분 아래 ‘일만중(日滿支)블록론’을 통해 중국에 대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지배를 구축하겠다는 논리를 제창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이 조선과 만주, 중국을 넘어 동남아와 태평양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의 범위도 확대되었다. 이것은 나치즘의 ‘생활권’ 이론과 마찬가지로 파시즘 국가들에 의한 세계분할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다. 대동아공영권 구상은 대아시아주의로 분식(위장)되었지만 그것은 손문이나 안중근 등이 주장했던 것처럼 구미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피억압민족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구미열강을 대신한 지배자가 되는 것에 불과했다.(주8)

   
▲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지도(지도=김득중/ 사진=한겨레21, 2019.9.12.)

태평양전쟁에서 일제에 대항해 연합국의 군사적 대응을 주도한 미국은 이 무렵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대체할 만한 구상을 내놓았다. 미국은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분할방식이나 태평양전쟁 이전 동아시아에 대해 미국이 취했던 세력균형책과는 질적으로 다른 단일한 세계체제에 입각한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를 구상하였고, 동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을 미국이 주도하는 이 신세계질서의 핵심지역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전후 미국 중심의 신세계질서와 세계전략의 기획을 주도한 것은 미국의 독점자본가집단의 이해관계를 대외정책으로 구체화시키는 기능을 맡고 있던 대외관계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 : CFR, ‘협의회’)가 2차 대전 발발 후 만든 ‘전쟁과 평화 기획’(War and Peace Project, 약칭 ‘기획’)과 태평양 전쟁 발발 후 국무부 내에 조직한 ‘전후 대외정책에 관한 자문위원회’(The Advisory Committee on Postwar Foreign Police, 약칭 ‘자문위’)였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는 이 ‘기획’과 ‘자문위’를 주도한 인사들을 늘 ‘나의 전후고문들’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유엔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전후 미국의 세계전략과 대외정책을 만들어냈다.(주9)

미국의 전후 동아시아정책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전후 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패권과 주도권을 염두에 두고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문제 해결의 일방적 방안으로 마련된 것이 신탁통치안이었다. 이는 전후 유럽의 구제국주의 국가들과 다른 강대국이 동아시아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점, 그리고 이 지역의 각성한 민중들에 의해 민족주의운동이 점차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독립열망을 일정하게 개량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안전밸브’가 필요하다는 점이 고려되어 마련된 방침이었다. 미국의 신탁통치안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와 미국 자본의 자유롭고 안전한 전세계적 활동을 위한 장치이자 식민지역에 대한 새로운 관리방식으로 고안된 것이었다.(주10)

   
▲ 전략첩보국(OSS)이 제작한 지구본을 바라보고 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1942년)(사진= 김득중/ 한겨레21, 2019.9.12.) 루즈벨트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대응하여 미국의 신질서 구상을 내놓았다.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안은 루즈벨트의 신질서 구상의 한 부분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태평양 전쟁과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근대 이후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동아시아의 전근대적 국제 질서는 새롭게 재편되었다. 20세기 전반기 제국주의 국가들은 동아시아를 분할, 지배하는 데서 일정한 타협점을 찾았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중국을 두고 갈등하고 대립했지만 큰 틀에서는 협력적 관계, 연합 관계를 이어갔다.(주11) 한반도와 대만은 일본이, 필리핀은 미국이, 동남아지역은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식민지로 차지했다. 문제는 중국이었다. 중국을 두고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그 누구도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타협하였다. 일차적으로 만주를 두고 일본과 러시아가 치열하게 경쟁했고, 산둥반도를 두고는 일본과 독일이, 화북과 화남, 연안지역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가 각축전을 폈다. 192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의 경제력이 세계 최강으로 부상하고, 그 뒤를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가 뒤쫓는 형국이었다. 러시아 혁명 후 사회주의 국가가 된 소련은 이들 자본주의 국가들의 공동의 견제를 받으며 독자적인 길을 걸었지만 만주에서의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런데 1930년대가 되면서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힘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최강국의 위치를 차지한 가운데 일본과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를 능가하는 공업생산능력을 바탕으로 강국으로 부상했고, 서구열강들은 당시에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소련은 ‘스탈린 혁명’을 통해 공업 강국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국 본토 침략으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열강의 분할, 협력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으나 1940년 중반까지도 미국은 일본에 항공유를 제공하는 등 갈등 속에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협력적 관계를 이어갔다.(주12) 1940년 하반기 마침내 미국이 일본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경제적 봉쇄조치를 취함으로써 일본으로서는 미국과 패권을 위한 일전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일본·독일·이탈리아 삼국동맹을 축하하기 위해 국기를 높이 들고 있는 일본 아이들(1940년). (사진=김득중/ 한겨레21, 2019.9.12.) 삼국동맹에 대응하여 미국과 소련, 영국, 중국 등이 국제반파시즘민주연합을 이루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격돌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영국-프랑스라는 제국주의 국가와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국가, 그리고 중국이라는 반식민지국가가 연합해 일본제국과 싸우는 전선이 형성되었다. 물론 이 전쟁의 주역은 미국과 일본이었다. 미국과 일본은 자신의 모든 국력을 총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세력과 연대, 동맹했다. 미국은 체제가 다른 사회주의 국가 소련과 연합했고, 유럽전선에서 독일에 묶여 힘을 쓰지 못하고 있던 영국과도 손잡았다. 일본의 침략을 받고 있던 중국은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으로 나뉘어 항일전쟁을 치렀고, 미국은 장제스의 국민당과 연합했다. 미국이 좀 더 넓은 시야로 마오쩌둥의 공산당도 포섭할 수 있었다면 전후 상황도 달라졌겠지만 미국은 그걸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이 시기의 미국과 중국의 선택에 뿌리를 둔 동아시아 냉전체제는 20세기 전반부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대륙 침략이 남긴 역사적 상처와 결합하면서 전후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주13)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주14)

   
▲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일본은 미국과 격돌했다. 유럽전선에서 독일과 격돌했던 소련도 독일 항복 후 대일전에 참전함으로써 전후 냉전의 단초를 열었다.

20세기 초반 러일전쟁에서 일본과 연합한 뒤 1940년까지 갈등하면서도 협력-연합관계를 유지했던 미국·영국의 해양세력은 동아시아에서의 이해관계와 세계패권을 둘러싸고 소련과 일시적인 제휴를 선택하며 일본과 전면전을 시작했다. 미국은 전쟁을 시작한 뒤 얼마 있지 않아서 전쟁이 끝난 후의 동아시아에 대한 정책 구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그 핵심은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 일본의 패권 준동을 막고 중국을 견제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중국 대륙에서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을 지원함으로써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 일본 군국주의체제를 해체하고 민주적으로 개조하는 것을 방향으로 잡았다. 그러나 전후 중국 대륙에서 장제스의 국민당이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패배함으로써 미국으로서는 일본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고, 결국 일본 파시즘 체제의 완전한 해체를 통한 민주적 개조 대신 소련과 공산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국으로 확보하는 반공전략으로 선회하였다.(주15)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전후 동아시아 구상 및 정책의 큰 카테고리 안에서 마련되었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부차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쉽게 버릴 수 없는 요충지였지만 일본처럼 반드시 독점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사활적 이해관계에 비해서는 부차적인 지역이었고, 그 때문에 소련과 분할점령이라는 타협책을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 남단을 소련의 팽창과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고 일본과 미국의 이해를 지키기 위한 동아시아 반공전선의 보루로 만드는 것이 미국의 전후 대한반도 정책의 기본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주16)

미국의 전후 정책 -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

전후 일본이 점령, 지배했던 동아시아 문제의 처리에 대한 미국의 구상은 우선, 중국 대륙과 부속지(대만)은 중국에 넘기되, 동남아시아 등 인접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중국이 간섭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점령지였던 만주와 한반도의 처리는 주변국가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다소 복잡했지만, 미국은 만주와 한반도를 일본에서 분리시키는 것이 기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분리하는 방식에서 만주는 중국에 귀속시키기로 했으나 한반도에 대해서는 신탁통치를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만주는 소련과 일정한 타협이 필요하지만 중국에 귀속시킴으로써 소련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전략적으로 중요하고 주변국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느 한 강대국의 독주를 막고 미국 주도하의 지역안보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안은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것이었다.(주17)

미국의 대외관계협의회(협의회)와 대외정책자문위원회(자문위)는 1942년 중반 이후 국제신탁통치안을 다각도로 검토하였고, 이를 한국에 적용하기 위해 세부적 방안들을 마련했다. 자문위 정치소위는 1942년 여름 한국에 대해서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독립시키되 기간 중 연합국 공동관리(국제기구)에 의한 신탁통치를 통해 자치능력을 배양시킨다’는 결정을 내렸다. 또한 자문위 영토소위는 1943년 5월 한국 독립의 실현 방안, 국내 정치구조, 독립에 대한 주변 강대국의 태도, 경제자립 전망, 영토와 국경선 문제 등을 검토하였다. 정치소위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요구와 처리방침을 정리했다면, 영토소위는 한국문제에 대한 각론적인 검토를 신탁통치와 연결시켜 정리했다. 미국의 전후 기획집단은 1942년에서 1943년 중반 사이에 한국의 전후 처리에 관한 일반적 원칙과 세부적 문제점들에 대한 검토를 일단락 지었다.(주18)

루즈벨트는 카이로회담을 앞두고 열린 준비모임에서 “신탁통치의 가능성을 매우 강조하고 이를 모든 종류의 상황에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 안보의 관점에서 세계의 많은 부분을 국제신탁하에 두어야 한다”는 점과 “여러 가지 상이한 신탁통치안을 식민지역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참모들에게 강조하였다. 결국 카이로 회담에서 발표했던 “한국 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절차를 거쳐’(in due course) 조선을 자주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은 미국 정책기획 집단이 내린 결론을 그대로 관철시킨 것이었다.(주19)

미국은 태평양 전쟁 기간 중 대일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전후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골몰했다. 미국은 카이로회담, 얄타회담, 포츠담회담 등 전시 연합국 회담에서 영국, 중국, 소련으로부터 신탁통치안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려 하였고, 종전이 가까워오면서 소련으로부터 신탁통치안에 대한 확약을 받아두려고 했다. 전후 한국의 장래에 대한 최초의 국제공약인 카이로선언(1943.11)의 “한국 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절차를 거쳐’(in due course) 조선을 자주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는 조항은 미국의 주도 아래 이뤄진 것이었지만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안에 대해서는 영국, 중국, 소련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었을 뿐 종전까지 명문화된 국제 협약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주20)

   
▲ 한국의 독립을 최초로 명시한 카이로 회담(1943.11.) 때의 각국 영수들. 좌로부터 장제스, 루즈벨트, 처칠, 쑹메이링(장제스 부인).

카이로에 뒤이어 열린 테헤란 회담에서 루즈벨트가 한국에 대한 결정사항을 언급하며 신탁통치를 주장하자, 스탈린은 “한국은 마땅히 독립해야 한다”는 소감을 피력하였다. 하지만 루즈벨트는 1944년 1월 12일 태평양전쟁위원회 회의에서 스탈린이 한국에 대한 40년간의 신탁통치 필요성에 동의했다고 했다고 전했다.(주21)

1943년 가을 국무부 내에 ‘동아시아에 관한 국간위원회’(FEAC. ‘국간위원회’)가 설치되어 일반 방침에 따른 실무문제를 조율했다. 국간위원회는 1944년 2〜4월 한국에 관한 계획을 한층 발전시켰다. 신탁통치안이라는 상위안에 입각해 그 실현경로와 방법들을 검토했고, 군정(軍政)과 군사적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했다. 국간위원회는 군사적 점령과 군정에 대한 일반적 방침과 그것을 적용할 때 필요한 고려사항들을 점검했으며, 육군부 작전국(OPD)과 민정국(CAD)에서도 한국의 민정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국간위원회는 연합국 공동점령과 공동군정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이때까지도 분할점령안은 본격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주22)

그러나 미국이 이 지역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정치·군사 상황을 준비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군사적으로 주도했을 뿐 아니라 다른 연합국들의 전쟁 수행을 위한 군비 지원도 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 지역의 막강한 소련 지상군의 존재와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 가져올 정치적 영향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군부는 이러한 불투명한 상황에 대비하여 연합국 공동점령 방침 또는 분할점령안을 마련하였다. 38선 분할점령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고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 현실적인 군사적 배치 상황, 소련의 대응 등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나온 것이었다.(주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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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이들 강대국의 충돌로 내전이나 분할, 분단의 고통을 겪는 경우와 달리 세력권이 교차하는 완충지점에서 독립을 유지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태국이다. 태국은 제국주의 시대 영국과 프랑스가 동남아를 침략, 식민지로 만들는 과정에서 완충점에 있어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태국의 대응도 중요한 측면이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교차점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말 영국과 러시아의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 와중에 완충국이 되었으나 결국 영국의 침략을 받았으며, 냉전시대에는 소련으로부터, 냉전 해체 이후에는 미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고통당하고 있다.

2) 몽골제국의 영역 내에서 상대적 독립성을 인정해준 상태에서 간접지배 방식을 유지한 나라는 고려가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몽골의 영역 안에 들어가게 되면 직접통치가 대부분이었고, 이를 거부하게 되면 전쟁에 의한 복속이나 항쟁을 통한 물리침이 있을 뿐이었다. 고려는 30여년간 몽골의 침략에 저항하다가 복속되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하여 독자적인 왕조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간섭을 받는 속국으로 남았다.

3) 이 과정에 대해서는 임기환, 고대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조공·책봉, 동북아역사재단 엮음, 『동아시아의 역사 Ⅰ』, 2011, 377〜386쪽 참조

4) 엄밀하게 말해 아메리카 대륙은 신대륙도 아니고 발견도 아니지만 유럽 중심의 역사를 일정부분 차용하지 않을 수 없기에 그냥 사용한다.

5)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정두희·이경순,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2007, 휴머니스트; 하우봉, 16세기말 동아시아 국제전쟁, 동북아역사재단 엮음, 『동아시아의 역사 Ⅱ』, 2011, 201〜269쪽; 한명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사비평사, 1999 참조

6) 만국공법(萬國公法)이란 국제관계가 국가 간의 상호 조약과 국제법 등에 기초하여 이뤄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말이 좋아 ‘만국공법 체제’이지 사실은 총과 대포, 협박에 의한 약소국 침탈과 식민지화 등 서구자본주의 열강 중심의 ‘제국주의 체제’를 의미했다.

7) 한국역사연구회, 『한국현대사 1』, 풀빛, 1991, 27〜28쪽

8) 정용욱·박진희, 해방 전후 미국 대한정책의 변화와 임정의 대응, 한국역사연구회 37, 2000.9., 200〜201쪽

9) 정용욱, 1942〜47년 미국의 대한정책과 과도정부형태 구상,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96, 14〜15쪽

10) 정용욱·박진희, 해방 전후 미국 대한정책의 변화와 임정의 대응, 201〜202쪽

11) 이삼성,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한길사, 2018, 806〜807쪽

12) 이삼성, 위의 책, 807쪽

13) 이삼성은 분단체제를 한반도가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질서 전반을 개념화하기 위해 사용했는데, 백낙청 교수가 ‘한반도 분단체제’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감안해, 이와 구분하기 위해 ‘대분단체제’라는 표현을 썼다.(이삼성,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806쪽)

14)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한길사, 2009, 505〜506쪽

15) 오수열·김광수·류영구, 종전 후 중국 대륙 형세와 미국의 전후 아시아 구상에 관한 연구, 『한국동북아논총』 81호, 2016년 12월, 38〜39쪽

16) 신복룡, 군정기 미국의 대한반도 점령정책: 1945-1948,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0권 2호(2009), 8〜12쪽

17) 정용욱, 1942〜47년 미국의 대한정책과 과도정부형태 구상, 20〜21쪽

18) 정용욱, 위의 논문, 21〜23쪽

19) 정용욱, 위의 논문, 23쪽

20) 정용욱·박진희, 해방 전후 미국 대한정책의 변화와 임정의 대응, 202〜203쪽

21) 정용욱, 1942〜47년 미국의 대한정책과 과도정부형태 구상, 23쪽

22) 정용욱, 위의 논문, 24쪽

23) 정용욱·박진희, 해방 전후 미국 대한정책의 변화와 임정의 대응, 202〜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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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세입자 권리금 빼앗은 건물주에 '철퇴' 내렸다

재판부 "건물주는 세입자의 권리 회수 기회 보장해야" 판결

이때 세입자들 사이에서 거래되던 권리금이 사라진다. 일부 건물주들은 이를 악용한다. 리모델링한다고 기존 세입자와 계약 해지를 한 뒤 새 세입자와 계약하면서 자신이 권리금을 받거나, '무권리 점포'로 임대료를 높게 책정해 계약한다.

 

'리모델링'하겠다고 나가라던 건물주...권리금 회수 기회도 빼앗아

 

서울시의 한 대학가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던 황상민(가명) 씨도 그런 경우였다.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나고 당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보장하던 5년의 계약갱신요구권도 사라졌을 때, 건물주는 리모델링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권리회수기회'를 보장한다. 즉, 세입자가 다음 세입자를 구해 권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황 씨도 리모델링 이후 들어오겠다는 세입자를 구했다. 새 세입자가 건물주와 계약을 하면 새 세입자로부터 권리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건물주는 이를 거절했다.


 

이후 황 씨의 일상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명도소송에서 승소한 건물주는 3차례의 강제집행을 시도했고 지난해 12월, 불법 강제집행으로 황 씨는 가게 밖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지난 8일, 2심은 원심을 엎고 황 씨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 제33민사부(재판장 정재오)는 "황 씨가 새 세입자를 주선했음에도 건물주가 이를 거절해 황 씨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했다"며 건물주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심 선고가 나기 불과 며칠 전, 대법원에서는 "계약갱신요구권 소멸 여부와 관계없이 건물주는 세입자의 권리회수기회를 보장 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심은 이를 반영하지 않고 "리모델링으로 인한 계약해지는 정당하다"며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었다. 그러나 2심은 앞선 대법원의 판결을 따랐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건물에 붙어 있는 점포 임대 안내문 모습. 기사와 상관없다. ⓒ연합뉴스

재판부, "리모델링해야 할 이유 없다"


 

2심 재판부는 건물주가 계약 해지의 이유로 든 리모델링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우선 "건물주가 대수선 또는 리모델링해야 할 정도로 상가건물이 노후·훼손 또는 일부 멸실되는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해당 건물은 지난 2016년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다. 건물주도 리모델링의 이유로 이 화재 사고를 들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화재 사고가 상가건물의 전기시설 노후화로 말미암아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전기시설을 소홀하게 다루어서 발생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상가건물의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을 해야 비로소 예방할 수 있는 정도의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건물주의 뜻에 따라 리모델링한다고 하더라도 "건물을 대수선 또는 리모델링한다는 사정이 곧바로 '건물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즉, 리모델링한다 하더라도 기존 세입자와의 계약을 해지해야만 한 건 아니라는 판단이다.


 

엉터리 견적서에 실체 없는 회사...'가짜 리모델링'


 

재판부는 나아가 건물주가 주장한 리모델링이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리모델링을 이유로 세입자를 내쫓은 뒤 실제로 리모델링을 하지 않는 경우는 허다하다.


 

재판부는 "건물주가 황 씨에게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서 공사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기간 등을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더욱이 공사 명세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특히 리모델링 공사를 맡은 회사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견적서를 작성한 회사와 실제 존재하는 회사의 이름이 다르다"며 "실제 회사는 상업등기부로 확인할 수도 없을뿐더러 인테리어 회사로 보일 뿐, 상가건물을 철거하고 대수선 공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회사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이유로 기존 세입자들과 계약을 해지하는 중에 새로운 세입자를 받았다는 점도 들었다. 재판부는 "건물주는 황 씨에게 가게 인도를 요구하면서 해당 건물 지하에 스포츠 마사지 점포를 임대하고 건물 1층에 친누나의 약국 개업을 허용했다"며 "상가건물이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원고의 실질적 경영자의 친누나에게 임대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짚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건물주에게 "황 씨에게 임대차 종료 당시의 권리금 감정가 1억9822만9000원과 이 돈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세입자 "묵묵히 일을 열심히 했을 뿐"


 

황 씨는 판결에 대해 "법원이 제 권리를 모두 인정해줘서 다행"이라면서도 "2015년 건물주가 바뀌고 2017년에 소송, 2019년에 강제집행까지 마음고생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했다. 10년 동안 그 자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쌓은 게 모두 날아갔다"고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저 같은 세입자들은 그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했다는 것밖에 없다"며 "이 판결로 법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세입자들의 손을 잡아준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쌔미 민생문제활동가(황상민 씨 대리인)는 "거짓 재건축, 거짓 리모델링을 이유로 세입자와 계약을 해지하고 권리회수기회를 빼앗은 건물주들이 많다"며 "이번 판결이 그런 사례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112009016003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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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 눈이 빨개 흉측했다" 1800명 죽어나간 '해골광산'

기자 강창덕과 최승호의 경산 코발트광산 진실규명 투쟁기

20.09.12 20:44l최종 업데이트 20.09.12 20:4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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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1950년 한국전쟁 발발직후 3500여명의 민간인이 학살돼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경산코발트광산의 수평갱도 입구. 이 갱도를 따라 50여미터를 걸어가면 아직도 수십구의 유골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90년대 초반부터 이곳에서는 유족들이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올해에도 7월 첫째 주 일요일 이곳에서는 위령제가 열리게 된다. [사진1]-1950년 한국전쟁 발발직후 3500여명의 민간인이 학살돼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경산코발트광산의 수평갱도 입구. 이 갱도를 따라 50여미터를 걸어가면 아직도 수십구의 유골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90년대 초반부터 이곳에서는 유족들이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올해에도 7월 첫째 주 일요일 이곳에서는 위령제가 열리게 된다.
▲  한국전쟁 직후 민간인들이 대량 불법학살된 경북 경산시의 코발트광산의 수평갱도 입구.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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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8일. 날씨는 화창했다. 굴 앞에 마련된 제사상에는 갖은 음식이 놓였고, 주변에는 여러 기관에서 보낸 조화가 줄지어 있었다.

이태준 경산코발트광산민간인희생자 유족회장의 초헌과 송기인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의 추모사로 이어진 '제8회 한국전쟁전후 경산지역 민간인 피학살자 합동위령제'는 엄숙함 그 자체였다. 비좁은 굴 입구에 세워진 천막은 햇빛으로부터 참석자들의 얼굴을 겨우 가렸지만, 그들의 타오르는 가슴을 식힐 수는 없었다.

위령제는 개토제(開土祭)를 겸해서 열린 행사였기에 약식으로 끝났다. 드디어 한국전쟁 때 국가폭력에 의해 학살된 이들의 유해를 국가가 57년 만에 처음으로 발굴하는 날이 온 것이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내빈들과 소복을 입은 이태준 회장이 삽을 뜨자 개토제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지금부터 굴 안에 들어갈 것입니다, 굴 안에는 물이 흘러 발이 진흙에 빠질 수 있으니 장화로 갈아 신으세요"라는 이상길 경남대 교수의 당부에 일행들은 무릎까지 오는 노랑색 장화로 갈아 신었다. 이상길 교수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 발굴 책임자였다.

"천장이 낮아 위험합니다. 모두 헬멧을 쓰세요"라는 이 교수의 말과 함께 일행 선두가 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두에는 이상길 교수와 송기인 위원장, 노용석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 담당자, 최승호 경산신문사 사장이 섰고 뒤를 이어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따랐다. 굴 안으로 50m쯤 들어갔을 때였다.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의 학살지 무덤을 발굴했을 때 나온 유골의 모습.
▲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의 학살지 무덤을 발굴했을 때 나온 유골의 모습.
ⓒ 경남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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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주위가 캄캄해 서로 얼굴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한숨과 비통의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굴 양쪽 흐르는 물 위에 시커먼 물체가 빼곡하게 보였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유해였다.

살은 썩은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두 눈과 코, 치아의 위치가 선명한 두개골이었다. 마치 원혼이 '왜 이제야 찾아왔나?'라고 항의하는 듯했다. 두개골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양쪽 가에는 두개골이 나뒹굴었으며 팔, 다리뼈와 가슴뼈들이 널려 있었다. 비전문가가 육안으로 보기에도 백여 구의 유해가 굴 안에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굴 안 양쪽 가에는 작은 도랑물이 흘렀다. 굴 깊숙이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와 실내외 기온 차이로 인해 돌에서 흐르는 석간수가 합쳐졌다.

"저 위에 보이는 곳이 수직굴 입구입니다. 수직굴 입구에서 총살해 밑으로 던져 버리면 여기 주변에 떨어집니다. 그렇게 수천 구의 시신이 떨어져 수평굴로 떠밀리게 된 것입니다."
 
산위에서 본 경산코발트 광산의 수직갱도 입구- 이 수직갱도는 100여미터 깊이로 우물처럼 구덩이가 나있고, 당시 학살은 이곳에서 이뤄져 100미터 아래의 수직갱도로 시신을 던져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산위에서 본 경산코발트 광산의 수직갱도 입구- 이 수직갱도는 100여미터 깊이로 우물처럼 구덩이가 나있고, 당시 학살은 이곳에서 이뤄져 100미터 아래의 수직갱도로 시신을 던져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  산위에서 본 경산코발트 광산의 수직갱도 입구.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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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아니 어떤 공포 영화나 소설에도 나오지 않았던 일이 1950년 7월 경북 경산시 평산동에 위치한 코발트광산에 펼쳐졌다. 코발트광산에서 나온 수백구 유해는 대체 누구인가? 1950년 7, 8월에 경북 경산·청도·대구·충북 영동군의 보도연맹원들과 대구형무소 재소자 일부가 이곳에서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학살됐다.

57년 동안 햇볕을 쬐지 못한 유해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말로만 전해지던 '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 사건'이 국가에 의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연속으로 이 지역에서 유해발굴을 실시, 총 363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강창덕 기자의 취재수첩
 
강창덕 옹이 쓴 경산 코발트 폐광 학살 사건 보도 기사 매일신문 기자로 근무하던 1960년 5월 22일 전국 최초로 경산 코발트 폐광 민간인 대량 학살 사건을 취재해 보도했다.
▲ 강창덕 옹이 쓴 경산 코발트 폐광 학살 사건 보도 기사 매일신문 기자로 근무하던 1960년 5월 22일 전국 최초로 경산 코발트 폐광 민간인 대량 학살 사건을 취재해 보도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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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21일. 아침 일찍 집을 나온 강창덕 대구매일신문 기자는 싱숭생숭했다. 그는 경북 경산시 코발트광산에서 10년 전에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되었고, 그 유해가 광산 주변에 널려 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에 나서는 길이었다.
 
"대구서 경산을 지나 자인방면으로 가는 국도에서 우측으로 향하여 약 3킬로 들어가면 일제강점기에 '돈방석'이라고 알려졌던 코발트 광산 터가 있다. 이곳에는 6.25사변 당시 그해(1950년) 여름 8월경 현재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총 가진 사람들에게 총살되어, 그 시체가 광산 곳곳에 널려 있는데, 1,500구에 달하고 있어 '해골광산' 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구매일신문> 1960년 5월 22일자 기사. 원문을 필자가 현대적 표기법에 맞게 일부 고쳤음)
 
이날 경산 코발트광산을 찾은 강창덕 기자는 인근 주민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외지인의 눈을 피하며 묵묵부답이었다. "광산을 안내해주시오"라는 요청에도 손가락으로 방향만 가르치고는 "혼자 가시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들에서 뛰놀던 아이들만이 뒤쫓아 왔다. 강 기자는 혼자서 굴 주변을 둘러보다가 우연찮게 마을 청년을 만났다. 그 청년은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갑자기 평산 1, 2구 주민들을 몰아내고, 포장을 친 트럭이 하루 5대씩 6일에 걸쳐 왔습니다. 매일 총소리가 들렸고, 총을 쏜 군인들의 눈이 빨개, 흉측했습니다"(경산신문사, 『경산코발트광산의 진실』, 2008)

이렇게 대구매일신문에 강창덕 기자의 특종기사가 나가면서 코발트광산 주민들만 알고 있던 역사의 진실이 급속히 전파되었다. 강창덕 기자는 자신이 취재한 역사적 진실을 어떻게 규명할지를 놓고 고심했다.

그러던 끝에 그는 뜻 맡는 이들과 함께 실태조사반을 꾸렸다. 이른바 '경산군하 피학살자 실태조사회'가 그것이다. 대구매일신문에 코발트광산 기사가 보도된 지 10일 만인 1960년 6월 1일의 일이었다.

강창덕은 1읍 10면에 접수창구를 개설했다. <대구매일신문> 1960년 6월 1일자에 피해신고를 받는다는 광고를 대문짝만하게 내보냈고, 전단 1만장을 제작해 마을마다 배포했다. 또 지프차에 확성기를 달아 "가족 중에 6.25 때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은 없습니까? 피해자의 신청을 받습니다"라는 방송을 목이 쉬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접수된 피해자가 354명이었고, 이 신청서는 제4대국회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 경북반에 제출되었다. 피해접수 활동의 공은 유족들에게 넘겨졌다. 강창덕은 유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강창덕 대구매일신문 기자(94세)
▲  강창덕 대구매일신문 기자(94세)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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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960년 6월에 '경산유족회'(회장 김종석)가 결성됐고 8월 7일에는 경산중앙국민학교에서 합동위령제도 치렀다. 위령제에는 경북유족회 이원식을 포함한 임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 8월 13일에는 코발트 현장을 찾아 유해를 수습했다(물론 2000년도 이후의 유해발굴과는 달리 이때는 현장을 확인하고 수습하는 정도였다).

유족들의 진실규명운동이 순탄하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8월 7일 경산중앙국민학교에서 열린 위령제에는 경산경찰서 1개 소대의 경찰들이 동원되었다. 경비를 선다는 명분이었지만 주최 측 항의를 받은 경찰들은 학교 뒤편으로 물러갔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흥분한 남천면 유족들이 경산경찰서에서 투석전을 벌이기도 했다(진실화해위원회, 『2007년 유해발굴보고서 3권 』, 2008).

또 위령제가 열리기 두 달 전인 1960년 6월 6일 저녁에는 당시 경산군 안심면 유족 30여 명이 전쟁 기간에 불법학살을 저지른 전 민보단 부단장 김만석의 집을 습격해 가재도구 20여 만환 어치를 파괴하는 일도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유족 5명이 재물손괴죄로 구속되었다. (<대구매일신문> 1960년 6월 8일자. 노용석,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사』, 2018 산지니에서 재인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쿵 쿵 쿵."
 

굴삭기 기사는 경산 코발트광산 수평굴 입구 콘크리트 벽을 뚫기 위해 초봄의 날씨에도 비지땀을 흘렸다. 그리고 갱도 입구를 막고 있는 흙더미를 걷어내는 데는 불과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 후부터였다. 굴삭기를 포함한 중장비를 총동원했지만 단단한 콘크리트 벽은 철옹성이었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는 주민이 귀띔을 해주었다. "그 콘크리트 벽은 벼농사를 짓기 위해 주민들이 1m 이상 막아 놓았기 때문에 중장비로는 안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팀은 급하게 화약 전문가를 수소문해,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벽을 폭파시켰다. 반세기 만에 금단의 땅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1960년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이 세상에 알려진 지 40년도 지난 2001년 3월 9일의 일이었다. 

수평 갱도를 따라 30여 미터를 가자 유골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3일간 작업해 유해 40구를 수습할 수 있었고, 이는 MBC에 의해 전국으로 전파를 탔다.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팀이 경산유족회와 시민단체에 보도연맹 학살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유족들이 제기하는 3500구의 유골이 과연 존재하는지 발굴을 해보자는 제안이 성과를 이룬 것이다.

이 보도로 경산 코발트광산 사건은 전국 언론과 시민사회로부터 조명을 받았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경산지역 시민단체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특히 <경산신문> 최승호 기자의 노력이 컸다.

최승호 기자는 1960년 4.19 혁명 직후 활동한 <대구매일신문> 강창덕 기자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강창덕 기자가 최초로 경산 코발트광산 문제를 공론화했지만, 1년 후 발발한 5.16 쿠데타로 코발트광산 사건은 오랫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1993년 코발트광산 사건을 접한 최승호 기자가 그해 8월에 <경산신문>의 전신인 <경산향토신문>에 학살의 진실을 알렸다. 그 후로 경산지역사연구회가 만들어졌고, 1995년 4월 2일에는 코발트광산 앞에서 최초의 진혼제가 열렸다. '경산시민모임'은 전국의 유족회·시민단체와 함께 '통합특별법' 제정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2005년 5월 30일 국회에서 '과거사법'이 통과되었다.

2020년 현재에도 <경산신문> 사장을 맡고 있는 최승호 기자는 처음 코발트광산 사건을 접한 때로부터 만 27년째 이 사건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탐방객들을 안내하고, 코발트광산 사건을 사회적 이슈로 공론화해 '역사의 기억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유족회는 전 이태준·박의원 회장과 현 나정태 회장이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진실규명과 기억화 사업에 주력해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정부는 2009년 '경산 코발트광산 등지에서 발생한 민간인희생 사건'을 진실규명 했고, 사건 현장에는 자그마한 위령공간이 경상북도와 경산시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곳 코발트광산에서 죽은 이는 누구이고, 어떻게 죽었는가?

'고바루도' 광산에서 학살되었소
 
 제4대 국회에 제출한 윤목의 피해신고서
▲  제4대 국회에 제출한 윤목의 피해신고서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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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윤목의(1925년생. 경산군 고산면(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산3동) 신매리)가 1950년(이하 불명) 경산경찰서에 연행 후 불명되었사오나 그 후 소식에 고바루도 광산에서 피살된 줄 알았음'

1960년 6월 4일 윤목의 형 윤현우가 제4대국회 양민학살특위 경북반에 제출한 '피해자 신고서'다. 여기서 말하는 고바루도 광산은 코발트 광산을 말한다.

윤목의를 포함한 경산군(현재의 경산시) 보도연맹원들은 경산경찰서를 거쳐 경산수리조합 창고에 구금되었다. 그리고 즉석에서 살생부(殺生簿)가 작성되었다. 경산경찰서 사찰과와 CIC 경산파견대는 구금된 보도연맹원들을 갑·을·병 등급으로 분류해, 병은 석방하고, 갑·을 등급은 코발트 광산으로 이송해 학살했다.

당시 예비검속 된 후 병 등급을 받아 풀려난 김○○의 증언이다.

"1950년 모내기가 끝나갈 무렵 경산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어 사찰계 형사와 육군 중위로부터 봉화불을 놓는 데 동원된 사실이 있는지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갑과 을로 분류된 사람은 경산코발트 광산에서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학살 정황은 당시 코발트광산 인근 마을인 압량면 갑제동에 살았던 문○○이 증언했다.

"전쟁이 나고 7월 20일이 지났을 무렵 (트럭) 덮개를 씌우고 군인들이 올라탄 트럭들이 경산코발트광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광산으로 올라간 차들은 수직 굴 밑에 삼베 및 모시옷 등을 입고 실려 온 사람들을 하차시켰으며 약 10명씩을 수직굴로 데려가 총살을 시켰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경북 청도와 대구지역 보도연맹원들도 마찬가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대구형무소 재소자 약 800명과 경북 경산·청도·대구·충북 영동군 보도연맹원 약 1000명, 총 1800명이 학살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경산유족회와 경산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인근지역 주민들과 생존자의 증언을 종합해 3500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다고 추정한다.

최소 1800명에서 최대 3500명이 학살된 코발트광산 사건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정확한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는 것과 더불어 아직도 차가운 광산 안에 묻혀 있는 유해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음습한 굴 안에 갇혀 있는 원혼들이 "유골이 아닌 진실을 발굴해 주이소"라고 외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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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COVID-19 총 사망자 및 감염자 수(모든 국가 사례)

인도는 오늘도 감염자와 사마자 발생에서 모두 1위를 차지

이용섭 기자 | 기사입력 2020/09/12 [11:39]
 

현재까지 COVID-19 총 사망자 및 감염자 수(모든 국가 사례)

 

▲ 세계척도《(Worldometer)》에 의하면 9월 12일 8시 00분 현재 전 세계적으로 COVID-19전염병에 감염된 사람들의 누적 총계는 28,637,593명으로 어제보다 300,298명이 증가하였으며, 사망자는 918,892명으로서 어제 하루 5,602명 증가하였     ©이용섭 기자

 

세계척도(Worldometer)에 의하면 9월 12일 8시 00분 현재 전 세계적으로 COVID-19전염병에 감염된 사람들의 누적 총계는 28,637,593명으로 어제보다 300,298명이 증가하였으며사망자는 918,892명으로서 어제 하루 5,602명 증가하였다. 20,560,145명이 회복되었다.

 

어제 자료상 감염자 발생은 어제 하루 감염자 발생은 그제 발생 수치보다 1,982명 추가로 더 늘어났다반면 사망자 발생은 오늘 자료상으로 어제 하루 188명이 추가로 더 줄어들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이 9월 12일 오전 8시 32분에 올린 자료에는 전 세계적으로 COVID-19 전염병에 감염이 된 사람들의 누적 총계가 28,316,230명이며 어제 하루 321,542명의 감염자 발생하였다사망자의 누적 총계는 912,212명으로 어제 하루 6,01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오늘 통계자료 상 감염자 발생자는 어제 통계자료보다 25,966명 추가로 늘어났으며사망자 발생은 25명 추가로 늘어났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의 우리 시간 9월 12일 오전 3시 08분 기준으로 올라온 자료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누적 감염자 총수는 28,040,853명으로 어제 하루 288,787명 감염자가 발생하였다사망자의 누적 총수는 906,092명으로 어제 하루 6,176명의 사망자 발생하였다.

 

감염 발생자는 어제 자료보다 38,784명 추가로 늘어났다사망자 발생자는 어제 통계자료보다. 1,198명 추가로 늘어났다.

 

세 자료를 보면 오늘 자료상으로도 누적 감염자 수에서는 여전히 차이를 보이고 있다세계척도는 28,637,593존스 홉킨스대학 28,316,230세계보건기구 28,040,853명으로서 가장 많은 세계척도와 세계보건기구와는 무려 596,740명이나 세계척도가 많다반면 세계척도와 존스 홉킨스 대학 간에는 321,363명 세계척도가 많다존스 홉킨스대학과 세계보건기구 간에도 275,377명 존스 홉킨스대학이 많다.

 

세 자료의 어제 감염자 발생에서는 세계척도 300,298명 증가존스 홉킨스대학 321,542세계보건기구 288,787명으로서 세계척도와 존스 홉킨스대학 사이에는 21,243명 존스 홉킨스대학이 많으며세계척도와 세계보건기구 간에는 11,511명 세계척도가 많다존스 홉킨스대학과 세계보건기구 간에는 32,755명으로 존스 홉킨스대학이 많다.

 

세 자료의 사망자 누적 총계에서는 세계척도 918,892존스 홉킨스대학 912,212세계보건기구 906,092명이다세계척도와 존스 홉킨스대학 간에는 6,680명 세계척도가 많고세계척도와 세계보건기구 간에는 12,800명 세계척도가 많다존스 홉킨스 대학과 세계보건기구 간에는 6,120명 존스 홉킨스 대학이 많다.

 

어제 하루 사망자 발생에서는 세계척도 5,602존스 홉킨스대학 6,017세계보건기구 6,176명으로 세계척도와 존스 홉킨스대학 간에는 415명 존스 홉킨스대학이 많으며세계척도와 세계보건기구 간에는 574명 세계보건기구가 많다반면 세계보건기구와 존스 홉킨스 대학 간에는 159명 세계보건기구가 많다.

 

세 자료에 의하면 어제 자료상의 수치보다 오늘 자료상으로 보면 어제에 이어 세계적으로 COVID-19 전염병에 감염된 감염자나 사망자 발생이 모두 약간 증가하였다.

 

COVID-19전염병에 감염된 나라들의 수에서도 존스 홉킨스대학은 188개국이지만 Worldometer의 자료상에는 215개국세계보건기구 216개국으로서 세 자료 사이에는 27, 28개국이라는 차이가 난다.

 

같은 자료상 미국의 COVID-19 전염병 감염자 및 사망자 누적 총계를 보면 존스 홉킨스 대학의 우리 시간 9월 12일 오전 8시 32분 자료상으로는 감염자는 6,440,541명이며어제 하루 44,938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였다사망자는 오늘 자료상 192,886명이며, 1,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미국 역시 어제 하루도 COVID-19 전염병 감염자 및 사망자 발생이 그제와 비교해 약간 늘어났다.

 

반면 Worldometer의 9월 12일 오전 8시 00분 현재 자료상으로 미국의 감염자 누적 총계는 6,634,306명으로서 어제 하루 44,659명 감염자가 발생하였고사망자 누적 총계는 197,361명으로 어제 하루 1,03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세계척도의 통계상으로는 어제 하루 미국의 COVID-19 전염병 감염자 및 사망자 발생자에서 감염자는 8,309명 추가로 늘어났으며사망자 발생은 127명 추가로 늘어났다.

 

본인이 판단하기에는 존스 홉킨스 대학이나 세계보건기구의 통계자료보다 COVID-19를 전문으로 분석하고 또 통계자료를 수집하는 Worldometer의 자료가 더 최신이며정확한 것으로 판단된다. Worldometer는 아래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때그때 감염자 및 사망자의 증가자 수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물론 Worldometer의 자료에는 그 외에도 각 나라별로 회복자 총수활성화 사례경증중증총 검사 수각 나라별 인구수 등이 기록되어 있다다만 본 기사에서는 그 많은 것들을 분석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탓에 국가별누적 총 감염자감염 증가자누적 총 사망자사망 증가자 등 4부분에 대해서만 분석을 한다.

 

우리 시간 9월 12일 오전 8시 00분 기준 Worldometer의 자료상으로 한국은 감염자가 총 21,919명으로서 어제보다 176명 증가하였으며사망자는 350명으로 어제 하루 사망자가 4명 발생하였다오늘 한국의 총 감염자 순위는 76위로 어제와 같다.

 

같은 시간 중국은 총 감염자가 총 85,168명으로서 어제보다 15명 증가하였으며사망자는 4,634명으로서 역시 변함이 없다중국은 감염자 순위에서 39위로 변함이 없다.

 

예멘은 우리 시간 9월 12일 오전 8시 00분 기준으로 감염자가 총 2,007명으로 어제 하루 감염자가 4명이 발생하였으며사망자는 582명으로 어제 하루 사망자가 2명 발생하였다사망률은 29.00%이다예멘의 이와 같은 사망률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사우디 연합국들의 끔찍한 예멘 침략에 의해 5년 7개월여간 진행되고 있는 전쟁으로 의료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도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사정이 이러함에도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여전히 예멘 후티군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자비하게 폭격과 포격 그리고 해상과 공중 등을 봉쇄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건데 9월 12일 현재까지도 COVID-19 전염병의 확산은 중남미와 아시아 일부 나라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급격하게 진행하고 있다.

 

각 대륙별 COVID-19 전염병에 감염자 총수에서 20위 권까지 포진해 있는 숫자는 미국 및 유럽 대륙이 6개국아시아가 7개국중남미가 6개국아프리카 1개국으로서 오늘 자료상 이라크가 유럽의 독일을 제치고 20위로 올라서서 아시아가 7개국유럽 및 북미주 국가가 6개국이 되었다.

 

 

 

COVID-19 전염병 감염국 상위 20개국의 대륙별 분포도

 

북미 및 유럽

6

아시아

7

중남미

6

아프리카

1

 

▲ COVID-19 전염병 감염 상위 20개국 대륙별 분포그래프     ©이용섭 기자

 

 

위 그래프를 보아서 알 수 있듯이 COVID-19 전염병 감염 상위 20위권 내에 유럽 및 북미줒 6개국아시아 7개국중남미는 6개국아프리카 1개국으로서 감염자 상위 20개국의 각 대륙별로 들어있는 수치는 변함이 없다유럽과 북미주의 나라들은 미국러시아스페인을 제외하고 영국이탈리아프랑스 등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중남미 나라들이 10위권 내에 6개국이나 들어가 있다반면 아시아 나라들은 10위권 내에 인도 한 나라만 위치하고 있다아프리카 역시 남아프리카 한 나라만 10위권 내에 들어가 있다.

 

이로 보아 현재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는 중남미계에서 가장 확장이 된 상황이다아시아(중동)의 이라크는 어제까지만 해도 20위권 밖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 감염자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오늘 자료상으로 20위에 올라 있다.

 

 

COVID-19 전염병 사망자 상위 20개국의 대륙별 분포도

북미 및 유럽

9

아시아

4

중남미

6

아프리카

1

 

 

▲ COVID-19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상위 20개국의 대륙별 분포 그래프     ©이용섭 기자

 

 위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듯이감염자 상위 20위 권 내에 유럽 및 북미주의 나라들이 8개국이었으나 사망자에서는 9개국이나 된다.

 

중남미는 감염자와 사망자 모두 20위권 내에 누적 감염자 6개국누적사망자 7개국이 들어있다이러한 통계자료를 보아 현재 중남미가 세계에서 COVID-19 전염병사태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아시아 나라들은 감염자 및 사망자 상위 20개국 내에 각각 7개국 및 3개국이 들어있다이러한 수치는 아시아 나라들이 비록 감염자 발생이 높다해도 사망자 발생을 다른 대륙들에 비해 대단히 저조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유럽 나라들은 감염자 상위 20개국 내에 6개국사망자 상위 20개국 내에 9개 나라가 들어있다이는 아시아와는 반대로 유럽 나라들은 사망자 발생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이 말은 백인계가 아시아계보다 세균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결과는 COVID-19 전염병에 백인계 나라들이 특히 약하며중남미계 인민들 역시 COVID-19 전염병에 약하다고 볼 수가 있다반면 아시아 나라들의 인민들은 COVID-19 전염병에 타 대륙의 인민들에 비해 강하다고 분석할 수가 있다아프리카계는 아직 분석하기에는 감염자 순위가 20위권 내에 들어온 나라가 남아프리카 한 개국밖에 없기에 자료가 부족하다.

 

 

 

3.상위 20개국의 감염자 총수

 

순위

국가

총 감염자

감염 증가

증가 순위

1

미국

6,634,306

44,659

2

2

인도

4,657,379

97,654

1

3

브라질

4,283,978

44,215

3

4

러시아

1,051,874

5,504

7

5

뻬루

710,067

0

20

6

꼴롬비아

702,088

7,424

6

7

메히꼬

652,364

4,857

8

8

남아프리카

646,398

1,960

13

9

스페인

576,697

4,708

9

10

아르헨띠나

535,705

11,507

4

11

칠레

430,535

1,860

14

12

이란

397,801

2,313

12

13

프랑스

363,350

9,406

5

14

영국

361,677

3,539

11

15

방글라데시

334,762

1,792

15

16

사우디아라비아

324,407

687

18

17

파키스딴

300,371

516

19

18

뛰르끼예

288,126

1,671

16

19

이탈리아

284,796

1,616

17

20

이라크

282,672

4,254

10

합계

23,819,353

250,142

 

 

COVID-19 감염자 상위 20개국에 대해서 동시에 분석하고 있다그래야만 유럽국가들은 안정세에 들어서고반면 중남미아시아 일부 나라 그리고 아프리카 나라들이 COVID-19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으며그 심각성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오늘 자료상으로 어제보다 894명 늘어난 97,654명의 감염자 발생1위를 차지하였다인도는 근 한 달 반 이상 감염자가 6만 명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인도는 10여 일째 8만 명 이상의 감염자를 내었다.

 

미국 역시 오늘 자료상으로 어제보다 대폭 늘어난 44,659명의감염자가 발생하여 발생자 순위에서는 2위를 차지하였다.

 

브라질은 오늘 자료상으로 44,215명의 감염자를 내어 감염자발생자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하였다최근 브라질이 하루 감염자가 1만 명대 초중반을 기록하다가 어제 오늘 또 다시 4만 명대로 솟아올랐다.

 

아르헨띠나는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11,507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여 감염 발생자 4위를 차지하였다최근 들어서 아르헨띠나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와 그로 인한 사망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아르헨띠나가 감염자 발생에서 최근 감염자 발생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의 프랑스는 오늘 자료상 어제보다 약간 줄어든 9,406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여 감염자 발생에서 5위를 차지하였다또 프랑스는 누적 감염자 수에서 13위로 뛰어올랐다.

 

꼴롬비아 역시 오늘 자료상 어제와 비슷한 7,424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여 프랑스에 이어 6위를 차지하였다최근 근 한 달 반 동안에 있어 꼴롬비아는 감염자 수에서 한 4, 5위를 차지하고 있다가 최근 며칠 동안 5~7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메히꼬는 오늘 자료상 4,857명의 감염자를 내어 감염자 발생 8위를 차지하였다스페인은 오늘 어제보다 무려 6,056명이나 줄어든 4,708명의 감염자를 내어 감염자 발생에서 9위를 차지하였다그리고 최근 들어서 감염자가 사망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라크가 4,254명의 감염자를 내 감염자 발생 10위를 차지하였다반면 뻬루는 오늘 자료 수집이 안되어 감염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위 도표를 보아서 알 수 있듯이 COVID-19 전염병 감염국 상위 10개국이 감염 증가자를 11위권 아래 위치해 있는 나라들보다 전반적으로 많이 내고 있다하지만 오늘은 11위권 아래에 있는 프랑스와 이라크가 10위권 내에 들었다.

 

COVID-19 전염병 감염자 발생에서 순위와는 관계없이 감염자 발생 절대적인 수치에서는 상위 10위권 국가들과는 비교가 안 되게 적다나머지 11위권 아래에 위치해 있는 나라들은 감염 증가자에서 상위 10위권 국가들보다 감염자가 덜 발생하였다.

 

COVID-19 감염자 상위 20개국 가운데 유럽 및 북미주 나라들이 6개국중남미가 6개국 아시아가 7개국 아프리카가 남아프리카 1개국이다이는 그간 본지에서 끊임없이 강조해온 바이지만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감염확산사태는 중남미와 아시아 일부 나라들에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전과 같이 오늘은 인도미국브라질이 감염자 발생 1, 2, 3위를 차지하였다그동안 감염자가 대폭 늘어났던 유럽 나라들에서 어제에 이어 오늘 자료상으로 어제보다 감염자 발생이 약간 늘어났다.

 

 

그림 3-1. COVID-19 감염자 상위 20개국 그래프

▲ COVID-19 전염병 감염자 누적 총계에서 상위 20개국을 나타낸 그래프  © 이용섭 기자

 

 

그래프의 막대를 보면 미국이 한 부류브라질과 인도가 비슷한 수치로 한 부류그리고 러시아가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으며뻬루꼴롬비아남아프리카까지가 한 부류그리고 스페인 이하 마지막 이라크까지는 감염자 수에서 비슷한 차이를 보이며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다.

 

위 도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위인 미국과 2위인 인도, 3위인 브라질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인도 역시 누적 감염자 수가 4,657,379명으로서 3위 브라질과 그 차이를 점점 더 벌리고 있다.

 

오늘 자료상 누적 감염자 수치에서 얼마 전까지 20위에 있었던 프랑스가 13위로 뛰어올랐다는 점이다.

 

위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COVID-19 전염병 감염국 상위 3위까지의 국가들과 그 아래 국가들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가 종결되는 순간까지 그 순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 확실하다아니 그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질 것이 99.999%이다.

 

 

그림 3-2. COVID-19 감염 증가자 상위 20개국

 

순위

국가

감염 증가자

감염자 순위

1

인도

97,654

1

2

미국

44,659

1

3

브라질

44,215

3

4

아르헨띠나

11,507

10

5

프랑스

9,406

13

6

꼴롬비아

7,424

6

7

러시아

5,504

4

8

메히꼬

4,857

7

9

스페인

4,708

9

10

이라크

4,254

20

11

영국

3,539

14

12

이란

2,313

12

13

남아프리카

1,960

8

14

칠레

1,860

11

15

방글라데시

1,792

15

16

뛰르끼예

1,671

18

17

이탈리아

1,616

19

18

사우디아라비아

687

16

19

파키스딴

516

17

20

뻬루

0

5

합계

250,142

 

 

위 도표를 보면 COVID-19 전염병 감염국 상위 20위권까지의 나라들 가운데 인도가 97,654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여 오늘도 1위를 차지하였으며, 2위 미국은 44,659, 3브라질은 44,215의 감염자가 발생하였다세 나라의 어제 하루 감염자 발생은 그제에 비해 약간씩 늘어났다.

 

유럽 나라들의 어제 하루 감염자 발생 수치를 보면 프랑스가9,406명의 감염자를 내어 감염자 발생에서 5위를 차지하였다스페인인 4,708영국이 어제보다 대폭 늘어난 3,539명의 감염자를 발생시켰다.이탈리아는 1,616명의감염자가 발생하였다.

 

유럽 나라들은 스페인은 어제보다는 대폭 줄어든 감염자가 발생하였다최근 들어 유럽 나라들의 감염자 발생 수치는 한달 전과 비교하여 엄청나게 증가한 수치이다세계 많은 분석가들은 이를 두고 유럽에서 제2차 감염사태가 발생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유럽 나라들이 비록 다른 중남미나 아시아 일부 나라들에 비해 감염자 증가에서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최근 들어서 프랑스스페인영국이탈리아 등이 꾸준히 천 명대 후반에서 9천 명대 후반의 감염자가 발생하다가 오늘 스페인과 프랑스가 1만 명, 9천 명대 중후반의 감염자를 발생시켰다이로 보아 유럽 나라들에서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가 완전하게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유럽의 나라들이 오늘은 감염자가 대폭 늘어나는 상황을 봐서 유럽 역시 감염자 발생이 널뛰기하는 상황이기에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그림 3-3. COVID-19 감염 상위 20개국의 증가자 그래프

 

▲ COVID-19 전염병 감염자 상위 20개 국의 감염자 증가수치를 나나낸 그래프  © 이용섭 기자

 

 

위 그래프를 보면 COVID-19 전염병 감염자 증가자 수에서 1위를 차지한 인도가 한 홀로 한 부류를 차지하고 있고, 2위를 차지한 미국과 3위를 차지한 브라질이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고아르헨띠나 이하 꼴롬비아까지가 비슷한 차이를 보이면서 한 부류러시아부터 영국까지가 한 부류를 차지하고 있으며이란 이하 이탈리아까지가 한 부류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아 파키스딴이 한 부류를감염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뻬루가 한 부류를 차지하고 있다.

 

 

4. 현재까지 사망자 상위 20개국 사망자 총수

 

순위

국가

사망자 총수

사망자 증가

증가자 순위

1

미국

197,361

1,034

2

2

브라질

130,474

899

3

3

인도

77,506

1,202

1

4

메히꼬

69,649

554

4

5

영국

41,614

6

16

6

이탈리아

35,597

10

15

7

프랑스

30,893

80

12

8

뻬루

30,344

0

18

9

스페인

29,747

48

14

10

이란

22,913

115

7

11

꼴롬비아

22,518

243

5

12

러시아

18,365

102

9

13

남아프리카

15,378

113

8

14

칠레

11,850

69

13

15

아르헨띠나

11.148

241

6

16

에쿠아도르

10,836

87

11

17

벨기에

9,917

0

18

18

독일

9,423

4

17

19

카나다

9,163

0

18

20

인도네시아

8,544

88

10

합계

782,103.148

4,895

 

 

오늘은 사망자 발생에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인도가 1미국이 2위를 브라질이 3메히꼬가 4위를 차지하였다.

 

인도는 오늘 자료상으로 1,202미국이 1,034브라질이 899, 메히꼬가 55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5위인 꼴롬비아는 243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였다. 24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아르헨띠나가 611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란이 7위를 차지하였으며남아프리카가 113명의 사망자를 내 8위를, 102명의 사망자를 낸 러시아가 사망자 발생 9위를 차지하였다또 88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네시아가 10위를 차지하였다.

 

미국의 사망자 발생을 매일매일 들쭉날쭉 하고 있다그 폭 역시 대단히 크다이는 미국은 여전히 COVID-19 전염병 사태가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미국은 어제와 비슷한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감염자와 마찬가지로 사망 자에서도 중남미에서 COVID-19 전염병 사태가 진행되고 있으며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다중남미의 20위권 밖에 머물고 있는 나라들 역시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감염자와 사망자 증가가 월등하게 높다.

 

COVID-19 전염병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 상위 20개국의 사망자 증가자 수에서 유럽 나라들이 감염자 증가에서와 마찬가지로 거의 바닥을 칠 정도로 안정화 되어있다.

 

 

그림 4-1, 현재까지 사망자 상위 20개국을 나타내는 그래프

 

▲ COVID-19 전염병 감염자 상위 20개국의 누적 사망자 수치를 나나낸 그래프  © 이용섭 기자

 

 

*** 아르헨띠나의 사망자 수치는 11,148명으로 자료 입력에는 문제가 없으나 컴퓨터가 작동이 안 되어 막대 그래프가 나타나지 않은 점 독자들이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

 

COVID-19 전염병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 상위 20위 권까지의 순위를 나타낸 그래프를 보니 미국과 브라질은 아직까지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망자가 많이 났으며 인도가 3위를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1, 2위인 미국과 브라질 사이에는 아직도 그 차이가 대단히 크다.

 

반면 순위가 바뀐 인도와 메히꼬가 비슷한 차이를 보이면 한 부류를 차지하고 있고영국과 이탈리아가 한 부류 그리고 프랑스 이하 뻬루까지가 비슷한 차이를 보이면서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다또 이란과 꼴롬비아가 한 부류러시아와 남아프리카가 거의 같은 수의 사망자 수치를 보이며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다칠레 이하 이라크까지가 비슷한 차이로 마지막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COVID-19 전염병은 수그러든 것이 아니고 앞서 감염이 발발하였던 나라들에서는 2차 감염이새롭게 전염병 감염이 창궐하는 나라들에서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결론적으로 지난해 12월 말 중국 무한(우한)에서 시작된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는 아직까지고 전 세계적 차원에서 창궐하면서 인간 생활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COVID-19 전염병 감염 사태로 인해 경제가 1930년대 초 겪었던 경제 대 공항을 뛰어넘는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다또 유럽연합과 그 외의 나라들 역시 경제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고 있다영국은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로 인해 2020년 전반기 경제가 무려 20%나 추락하였다경제에서 이 정도의 성장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이는 거의 경제 붕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의 성장률 하락이라고 보아야 한다또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로 인해 미국의 달러 패권이 붕괴 직전에 있다고 전 세계 경제 및 정세 분석가들이 한결같이 전망하고 있다.

 

8월 9일 자 러시아의 스뿌뜨니끄 기사를 보면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무역 거래에서 달러로 결재하는 비중이 46% 아래로 떨어져 달러가 두 나라 사이에서 붕괴가 되고 두 나라 사이에 새로운 금융협력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러시아의 러시아 텔레비전(RT)의 기사를 보면 농담반 진담반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사태로 인해 미국에서 조차 사회주의적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고 전문가가 분석하였다전문가는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로 인해 미국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심지어 인간 통제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적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며이는 미래의 세계가 사회주의로 향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처럼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는 지금까지 유지되어오던 전 세계의 패권 방향을 바꿀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COVID-19 전염병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 10위까지의 나라들 대륙별 분포는 감염자와는 달리 아직까지 유럽 나라들이 5개국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반면 중남미는 3개국아시아 2개국이다.

 

 

그림 4-2, 현재까지 사망자 상위 20개국 증가자

 

순위

국가

사망자 증가

총 사망자 순위

1

인도

1,202

3

2

미국

1,034

1

3

브라질

899

2

4

메히꼬

554

4

5

꼴롬비아

243

11

6

아르헨띠나

241

15

7

이란

115

10

8

남아프리카

113

13

9

러시아

102

12

10

인도네시아

88

20

11

에쿠아도르

87

16

12

프랑스

80

7

13

칠레

69

14

14

스페인

48

9

15

이탈리아

10

6

16

영국

6

5

17

독일

4

18

18

뻬루

0

8

18

벨기에

0

17

18

카나다

0

19

합계

4,895

 

 

 

사망자 증가자 수에 있어서 비록 하위권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유럽과 북미 등 백인계 국가들이 9개국으로 여전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중남미 7개국 아시아는 3개국아프리카 1개국이 사망자 20위권 내에 있다반면 증가자 절대적 수에서는 인도미국브라질메히꼬가 1, 2, 3, 4위를 차지하였다.

 

사망자에서도 COVID-19 전염병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율에서도 중남미와 아시아 일부 나라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이는 중남미와 아시아 나라들에서 COVID-19 전염병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격하게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반면 유럽 나라들은 사망자 발생에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어제 하루 COVID-19 전염병 감염으로 인한 전 세계의 사망 발생자가 어제는 약간 줄어들었으며누적사망자 상위 20위 권 나라들에서도 약간 줄어들었다.

 

 

그림 4-3, 현재까지 사망자 상위 10개국의 사망자 증가 그래프

 

▲ COVID-19 전염병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 상위 20개국의 어제 하루 사망자 발생 수치를 나타낸 그래프   © 이용섭 기자

 

 

COVID-19 전염병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자 상위 20위까지를 나타낸 그래프를 보면 누적 감염자 상하위 순서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그야말로 천양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위 그래프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그래프의 막대가 높이 솟아있는 나라들인 인도가 한 부류미국브라질이 각각 한 부류씩을 그리고 메히꼬가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다이 네 나라의 사망자 발생 수치는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그래프가 치솟아있다.

 

또 꼴롬비아와 아르헨띠나가 거의 같은 수치로 한 부류이란 이하 러시아까지가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고인도네시아 이하 칠레까지가 한 부류그리고 스페인이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다이탈리아 이하 카나다까지가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다.

 

사망자 발생 상위 10개국 가운데 중남미와 아시아 나라들이 7개국을 차지하고 있다이는 본지에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강조해오고 있는 바와 같이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는 아시아와 중남미 나라들에서 감염 및 사망자 발생에서 유럽과 북미주 나라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반면 유럽 나라들은 거의 모두가 바닥에 접근하고 있다어제 유럽과 북미 나라들의 사망자 발생 건수를 보면 프랑스가 80명으로 어제보다 대폭 증가하였고스페인이 48이탈리아 10영국 6독일 4벨기와 카나다는 사망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유럽 나라들의 사망자 발생 수치는 어제보다 약간 줄어들었다하지만 이정도 감소는 통계학상으로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본다유럽 나라들의 사망자 발생 수치를 보면 총체적으로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이는 감염자가 또 다시 폭증하는 것과는 정 반대 현상이다.

 

사망자 증가의 차이가 이 정도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유럽 나라들은 감염 증가자에서도 거의 하위권에 머물러 있듯이 사망 자에서도 역시 바닥을 치고 있는데 이는 유럽 나라들이 이제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가 중남미와 아시아 일부 나라들에 비해 안정된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사망자에 비해 비록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고는 하지만 최근 들어서 유럽 나라들의 감염자 발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이는 여전히 유럽 나라들 역시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의 한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반면 중남미 및 아시아 일부 나라들에서는 COVID-19 전염병 감염자 증가에서도 유럽 나라들을 훨씬 뛰어넘어 엄청난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듯이 사망자에서도 역시 감염자 증가에서와 마찬가지의 추이를 보이고 있다이는 이들 나라들에서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유럽 나라들에서 하루 사망자 증가자가 한 자리 수에 머물러 있는 나라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감염자가 꾸준히 프랑스 스페인과 같이 8천 명대 중반에서 1만 명대 초반가지 발생하는 걸 봐서는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는 여전히 전 세계적 차원에서는 창궐 중이다. COVID-19 전염병 감염사태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월드오메터의 COVID-19전염병 감염 및 사망자 통계자료-----

 

순위

국가

총 감염자 수

감염 증가자

총 사망자

사망자 증가

 

세계

28,637,593

300,298

918,892

5,602

 

 

 

1

미국

6,634,306

+44,659

197,361

+1,034

2

인도

4,657,379

+97,654

77,506

+1,202

3

브라질

4,283,978

+44,215

130,474

+899

4

러시아

1,051,874

+5,504

18,365

+102

5

페루

710,067

 

30,344

 

6

콜롬비아

702,088

+7,424

22,518

+243

7

멕시코

652,364

+4,857

69,649

+554

8

남아프리카

646,398

+1,960

15,378

+113

9

스페인

576,697

+4,708

29,747

+48

10

아르헨티나

535,705

+11,507

11,148

+241

11

칠레

430,535

+1,860

11,850

+69

12

이란

397,801

+2,313

22,913

+115

13

프랑스

363,350

+9,406

30,893

+80

14

영국

361,677

+3,539

41,614

+6

15

방글라데시

334,762

+1,792

4,668

+34

16

사우디 아라비아

324,407

+687

4,213

+24

17

파키스탄

300,371

+516

6,370

+5

18

터키

288,126

+1,671

6,951

+56

19

이탈리아

284,796

+1,616

35,597

+10

20

이라크

282,672

+4,254

7,881

+67

21

독일

259,725

+1,618

9,423

+4

22

필리핀 제도

252,964

+4,040

4,108

+42

23

인도네시아

210,940

+3,737

8,544

+88

24

우크라이나

148,756

+3,144

3,076

+53

25

이스라엘

148,564

+3,038

1,090

+13

26

캐나다

135,626

+702

9,163

 

27

볼리비아

124,205

+860

7,193

+47

28

카타르

121,287

+235

205

 

29

에콰도르

114,732

+1,526

10,836

+87

30

카자흐스탄

106,661

+77

1,634

 

31

도미니카 공화국

102,232

+516

1,941

+15

32

루마니아

101,075

+1,391

4,100

+35

33

이집트

100,708

+151

5,607

+17

34

파나마

100,330

+615

2,140

+13

35

쿠웨이트

93,475

+653

557

+1

36

벨기에

90,568

+877

9,917

 

37

오만

88,337

 

762

 

38

스웨덴

86,505

 

5,846

+4

39

중국

85,168

+15

4,634

 

40

모로코

82,197

+2,430

1,524

+33

41

과테말라

81,009

+703

2,929

+11

42

네덜란드

79,781

+1,270

6,252

+3

43

UAE

77,842

+931

398

 

44

일본

73,901

+680

1,412

+6

45

벨라루스

73,784

+193

738

+6

46

폴란드

73,047

+594

2,169

+10

47

온두라스

65,802

+205

2,049

+5

48

에티오피아

63,367

+789

986

+12

49

포르투갈

62,813

+687

1,855

+3

50

바레인

58,839

+632

208

+1

51

베네수엘라

57,823

 

460

 

52

싱가포르

57,315

+86

27

 

53

나이지리아

56,017

+188

1,076

+1

54

코스타리카

53,969

+1,420

583

+16

55

네팔

51,919

+1,454

322

+5

56

알제리

47,752

+264

1,599

+8

57

스위스

46,239

+528

2,020

 

58

우즈베키스탄

46,160

+687

377

+7

59

아르메니아

45,503

+177

909

+3

60

가나

45,388

+75

285

+2

61

키르기스스탄

44,761

+77

1,063

+2

62

몰도바

42,183

+479

1,114

+8

63

아프가니스탄

38,606

+34

1,420

 

64

아제르바이잔

38,037

+163

557

+1

65

케냐

35,793

+190

616

+4

66

체코

33,860

+1,447

450

+2

67

세르비아

32,228

+92

730

+1

68

오스트리아

31,827

+580

750

+2

69

아일랜드

30,571

+211

1,781

 

70

팔레스타인

29,256

+592

204

+6

71

엘살바도르

26,773

+85

777

+3

72

호주

26,565

+52

797

+9

73

파라과이

25,631

 

485

 

74

레바논

22,983

+546

229

+10

75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22,834

+290

686

+6

76

대한민국

21,919

+176

350

+4

77

리비아

21,908

+969

352

+13

78

카메룬

20,009

 

415

 

79

덴마크

19,216

+292

629

 

80

아이보리 해안

18,916

+47

119

 

81

불가리아

17,799

+201

713

+7

82

마다가스카르

15,669

+45

209

+1

83

북 마케도니아

15,555

+141

642

+5

84

세네갈

14,193

+43

293

 

85

수단

13,470

+33

834

+1

86

잠비아

13,323

+109

306

+6

87

크로아티아

13,107

+190

211

+3

88

그리스

12,734

+287

300

+3

89

노르웨이

12,003

+137

265

 

90

알바니아

11,021

+161

327

+3

91

헝가리

10,909

+718

631

+1

92

DRC

10,361

+18

262

 

93

기니

9,946

 

63

 

94

말레이시아

9,810

+182

128

 

95

프랑스 령 기아나

9,494

+32

63

 

96

나미비아

9,437

+181

98

+2

97

몰디브

8,990

+90

31

 

98

타지키스탄

8,977

+38

72

 

99

가봉

8,621

 

53

 

100

핀란드

8,512

+43

337

 

101

아이티

8,457

+28

216

+1

102

짐바브웨

7,479

+26

224

+2

103

모리타니

7,266

+44

161

 

104

룩셈부르크

7,159

+71

124

 

105

몬테네그로

6,385

+163

115

+1

106

튀니지

6,259

+377

103

+4

107

말라위

5,669

+14

177

+1

108

지부티

5,394

 

61

 

109

슬로바키아

5,252

+186

37

 

110

에스와 티니

5,025

+31

98

 

111

적도 기니

4,990

 

83

 

112

콩고

4,928

+37

88

+5

113

홍콩

4,926

+12

99

 

114

모잠비크

4,918

+86

31

 

115

니카라과

4,818

 

144

 

116

4,749

+2

62

 

117

카보 베르데

4,651

+94

44

+1

118

쿠바

4,593

+42

106

 

119

르완다

4,534

+55

22

 

120

수리남

4,529

+52

93

 

121

우간다

4,377

+86

49

+1

122

자메이카

3,511

+74

40

+2

123

슬로베니아

3,497

+108

135

 

124

시리아

3,476

+60

150

+3

125

태국

3,461

+7

58

 

126

소말리아

3,376

+5

98

+1

127

마 요트

3,374

 

40

 

128

감비아

3,362

+32

100

 

129

앙골라

3,279

+62

131

+1

130

리투아니아

3,243

+44

86

 

131

스리랑카

3,162

+7

12

 

132

과들루프

3,080

+793

24

+1

133

요르단

2,945

+206

21

+1

134

말리

2,912

+3

128

 

135

Aruba

2,898

+79

18

+2

136

트리니다드 토바고

2,825

+127

50

+7

137

바하마

2,814

+93

65

+2

138

에스토니아

2,632

+32

64

 

139

재결합

2,623

+113

14

+1

140

남 수단

2,568

+13

49

 

141

미얀마

2,422

+272

14

 

142

기니 비사우

2,275

 

39

 

143

보츠와나

2,252

 

10

 

144

몰타

2,247

+43

15

+1

145

베냉

2,242

 

40

 

146

아이슬란드

2,161

+4

10

 

147

시에라 리온

2,087

+18

72

 

148

예멘

2,007

+4

582

+2

149

그루지야

1,917

+87

19

 

150

뉴질랜드

1,793

+1

24

 

151

우루과이

1,773

+14

45

 

152

가이아나

1,763

+13

52

+3

153

토고

1,548

+11

37

 

154

키프로스

1,520

+3

22

 

155

부키 나 파소

1,499

+13

56

 

156

라트비아

1,459

+11

35

 

157

벨리즈

1,399

+34

19

+1

158

안도라

1,344

+43

53

 

159

라이베리아

1,315

 

82

 

160

니제르

1,178

 

69

 

161

레소토

1,164

 

31

 

162

차드

1,081

+30

79

 

163

베트남

1,060

+1

35

 

164

프랑스 령 폴리네시아의

953

+96

2

+2

165

마르티니크

939

 

18

 

166

상투 메 프린시 페

906

+5

15

 

167

산 마리노

722

 

42

 

168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712

 

13

 

169

터크 스케이 커스

638

+10

5

 

170

채널 제도

633

+2

48

 

171

신트 마르 턴

530

 

19

 

172

탄자니아

509

 

21

 

173

파푸아 뉴기니

507

 

5

 

174

대만

498

+2

7

 

175

부룬디

469

 

1

 

176

코모로

456

 

7

 

177

페로 제도

416

+1

 

 

178

모리셔스

361

 

10

 

179

에리트레아

361

 

 

 

180

맨 섬

337

 

24

 

181

지브롤터

323

 

 

 

182

몽골리아

311

+1

 

 

183

캄보디아

274

 

 

 

184

세인트 마틴

256

 

6

 

185

부탄

238

+4

 

 

186

케이맨 제도

208

 

1

 

187

바베이도스

180

 

7

 

188

버뮤다

177

 

9

 

189

모나코

168

+3

1

 

190

브루나이

145

 

 

191

세이셸

138

+1

 

 

192

Curaçao

135

+4

1

 

193

리히텐슈타인

109

 

1

 

194

앤티가 바부 다

95

 

 

195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64

+1

1

 

196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62

 

 

 

197

마카오

46

 

 

 

198

피지

32

 

2

 

199

세인트 루시아

27

 

 

 

200

동 티모르

27

 

 

 

201

뉴 칼레도니아

26

 

 

 

202

카리브해 네덜란드

25

 

 

 

203

도미니카

24

 

 

 

204

그레나다

24

 

 

 

205

라오스

23

+1

 

 

206

세인트 바스

21

 

 

 

207

세인트 키츠 네비스

17

 

 

 

208

그린란드

14

 

 

 

209

몬세 라트

13

 

1

 

210

포클랜드 제도

13

 

 

 

211

바티칸 시국

12

 

 

 

212

서부 사하라

10

 

1

 

213

생 피에르 미 클롱

10

 

 

 

214

MS 잔담

9

 

2

 

215

앵 귈라

 

 

 

 

합계:

28,637,593

+300,298

918,892

+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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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수준조차 못 받아들이니, 어떻게 성교육하란 말인가”

2020.09.12 06:00 입력

여성가족부가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이다. 강윤중 기자" style="border: 0px none; display: block; width: 700px; height: auto; margin: 0px; vertical-align: top;" />

여성가족부가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에서 회수한 책 7종. 맨 앞에 펼쳐진 책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이다. 강윤중 기자
■보수 세력 항의에 아예 접은 성교육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논란  지난해 말, 5개 초등학교 도서관에 책 134종이 들어왔다. 아동문학 작가와 평론가, 초등학교 교사가 1년간 기획·심사해 뽑은 책들이다. 몸과 성장에 관한 이해를 높이고,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며, 차별과 편견을 깨는 내용이다. 134종은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어린이 성평등교육문화사업인 ‘나다움 어린이책’에 선정됐다. 최고 권위의 아동도서상인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도 들어갔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책 134종 가운데 7종이 사라졌다. 뒤늦게 문제 있는 책으로 밝혀져서일까? 너무 늦게 ‘문제’가 되긴 했다. 도서관에서 자취를 감춘 책엔 1971년 덴마크에서 출간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도 포함됐다. 덴마크 문화부 아동도서상을 받았다. 해외에서 유아 성교육 자료로 지금도 널리 쓰인다.
 

한국에서 이 책은 ‘회수’됐다. 보수정당과 개신교 세력이 책을 두고 “선정적이다” “조기성애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세기 전 덴마크에서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보수 개신교 성향의 국회의원들이 이 책을 공공도서관에서 회수하라고 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다수는 이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반박했고, 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책이 유아 성교육 도서로 세계적 사랑을 받는 기회로 이어졌다.

2020년 한국에선 달랐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등 ‘나다움 어린이책’ 7종이 “조기성애화, 동성애 조장 우려가 있다”고 말한 건 지난달 25일이다. 1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선정된 책들이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하루다. 다음날 여성가족부는 부처 지원 사업 결과물인 7종 모두를 회수하기로 결정한다.

한국과 덴마크 사이에 50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여전히 한국 교육에서 성은 비밀스러운 영역이다. 공적인 논의를 금기시한다. 학교 안팎에서 온갖 성폭력 문제가 터져나온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최연소 가해자는 12세이다. 지난 7월 초 경찰 발표를 보면 n번방 성착취 불법 영상 구매자 131명 중 20대가 104명(79.4%), 10대가 7명(5.4%)이었다. ‘성교육의 실패’란 비판이 나온다. 이런 현실 앞에서 유아용 성교육 도서를 두고 제기된 ‘조기성애화’ 우려나 주장은 퇴행적이다.

한국 성교육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시간을 가로막는 이들 맨 앞에 보수 개신교 단체가 있다. ‘나다움 어린이책’을 문제 삼기 시작한 단체는 ‘나쁜 교육에 분노한 학부모 연합’(분학연)이다. 지난 총선 때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이끄는 기독자유통일당을 지지했다. 보수 개신교 세력은 한국 성교육을 번번이 발목 잡았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현실은 고스란히 독이 되어 교육 현장으로, 청소년들의 삶으로 퍼져나간다.


 

지난해 7월 서울시내 한 도서관 갤러리에서 ‘나다움 어린이책 전시회’가 열렸다. 여성가족부가 지원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은 지난해 자기긍정·다양성·공존을 주제로 한 국내외 우수 어린이책 134종을 선정해 5개 초등학교에 지원했다. 쌍투창작소 제공. 그래픽 | 성덕환 기자

지난해 7월 서울시내 한 도서관 갤러리에서 ‘나다움 어린이책 전시회’가 열렸다. 여성가족부가 지원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은 지난해 자기긍정·다양성·공존을 주제로 한 국내외 우수 어린이책 134종을 선정해 5개 초등학교에 지원했다. 쌍투창작소 제공. 그래픽 | 성덕환 기자

■초등교사들이 본 ‘나다움 어린이책’ 논란과 성교육 현실

선정적·자극적으로 가해진 공격
정부, 하루 만에 정책 철회·회수
정치적 부담 피하려 ‘회피’ 결정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는 책 7종이 다섯 개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한 사업이 보수단체의 항의에 순식간에 취소·후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회수 배경을 두고 “코로나19로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다른 갈등을 유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회수 결정 전후 현장 학교에서 갈등과 혼란이 증폭됐다.

책 회수 결정은 보수단체의 공격에 ‘기름’을 부었다. 이들 단체는 책을 지원받은 학교엔 항의를 쏟아냈다.

 장기적이고 큰 피해는 따로 있다. 한국 사회가 올바른 성교육을 논의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갈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 피해는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아닐까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책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고 회피하는 결정을 내렸어요. 길을 막아버린 거죠.”(A교사)

지난 3일 어린이책 연구회 소속 초등학교 교사 2명과 인터뷰했다.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사태와 학교 성교육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2단계’여서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이용해 원격 인터뷰를 진행했다.

■취지·맥락 제거, 선정적 프레임으로 공격

가장 논란이 된 ‘아기는 어떻게…’
정작 아이들은 태아 모습에 집중
어른들만 성관계 적나라하게 봐

 -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B교사 =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란 책을 3년 전 도서관에서 봤어요. 처음 보면 놀랄 수도 있겠죠. 여러 교사나 학부모들한테는 좋은 성교육 교재로 검증된 책들입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가해진 공격에 여성가족부가 하루 만에 정책을 철회하고 회수하는 식으로 해결한다면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요.

- ‘나다움 어린이책’에 선정된 책들을 보셨나요.

A교사 = 성인지 감수성·다양성 측면에서 빼어나면서도 어린이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에요. 아이들 반응이 무척 좋아요. 어른으로서 ‘좋은 어린이책 리스트’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은데, 하나의 참고 리스트가 된 거죠. 항의나 반대 가능성을 의식해서인지 해외에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거나 검증된 유명한 책들 위주로 구성했더라고요.

- 가장 논란이 된 책이 성관계를 설명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인데요.

A교사 = 저학년들에게 적합한 책이에요. 아이들은 태아 모습에 집중해서 봐요. “태아가 이렇게 작았어?” “아기가 어떻게 이렇게 커져?” 이런 걸 궁금해하죠. 어른들 눈에는 성관계 장면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는 거예요. 고학년 성교육으로 쓰기에 저는 이 책이 ‘올드’하다고 생각해요. 남성 중심으로 섹스를 설명하죠. 남자가 발기해도 여성이 원치 않으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해요. 또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썼어요. 한부모가정 같은 다양한 가족이 있잖아요. 제가 한부모가정 아이라면 이 책은 다른 의미로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섹스가 뭔지 생각하고, 남자친구의 성관계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이 책으로 성교육을 하면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는 거예요. 1970년대 책이잖아요. 더 나아간 성교육을 고민할 시기인데, 이 책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논의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회수 대상 책 가운데엔 국제앰네스티 추천 도서 <우리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 4권도 들어갔다. 이 시리즈는 전통적 성역할 구분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설명한다. <딸 인권 선언>은 “헝클어진 머리를 해도 될 권리, 마음껏 까불 수 있는 권리” “대통령, 조각가, 외과 의사 등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등으로 구성된다. 권리 선언 중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문제 됐다. 보수 개신교단체와 보수 정당은 “동성애를 조장·미화한다”고 했다.

또 다른 책 <나는 토펭이!>는 토끼와 펭귄 사이에 태어난 토펭이가 따돌림을 당하지만 토끼의 장점과 펭귄의 장점을 살려 늑대를 물리치는 내용을 담았다. 누가 봐도 다문화시대 다른 인종·민족에 대한 차별·편견을 깨는 내용을 담았지만, 나쁜교육에분노한학부모연합(분학연) 등은 이 책이 “수간을 정상적으로 생각하게 한다”고 비난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지만, 논란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회수됐다.

B교사 = “조기성애화, 동성애, 수간” 등 자극적인 워딩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공격했어요. 실제 학교 도서관에는 더 이상한 책이 많아요. 한 학생이 <키다리 아저씨> 같은 성인 남성이 여학생에게 엄청 잘해주는 내용의 책을 가리키며 “이상하다”고 한 적이 있어요. 최근 문제가 되는 ‘그루밍(길들이기) 성범죄’를 연상시키는 책이었죠. 그런 책들도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는 게 현실이에요. 그런 것들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이미 선정 과정을 통해 검증된 책들을 ‘프레임’을 씌워 공격했죠.

A교사 = 이미 학교에선 자신의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동성애’가 나온다는 이유로 회수하는 건 그 친구들을 지워버리는 조치예요. 인권 침해라고 봐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8년 중학생 406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성정체성 또는 성적지향으로 고민해본 학생은 각각 26.1%, 30.7%로 나타났어요.

■성 금기시가 ‘과잉 성애화’ 부른다

비밀스러운 영역에 갇혀버린 성
인터넷 속 온갖 성지식 접하는데
학교가 정확한 정보 제공해야

- 학교 성교육 현실이 궁금합니다.

A교사 = 학교마다 달라요. 보건교사를 둔 학교도 있고, 담임교사가 성교육을 하는 학교도 있죠. 안전, 인권, 진로교육 등 10개의 범교과 과정 중 안전교육에 성교육이 들어가요. 단독 성교육 시간도 정말 짧고, 이 시간에 실제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외부강사가 오면 1~6학년에 다 같은 내용을 방송으로 틀어주는 식이죠.

B교사 = 담임교사로서 고학년 아이들과 성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무리가 있어요. 아이들은 교사 말을 교사의 행동과 일치시켜요. 선생님이 “섹스”란 단어를 말하면, “어머, 선생님이 섹스라고 했어” 이런 식이죠. 고학년 학생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건 어른이 아이에게 성에 관해 말하는 사례가 없기 때문이에요.

A교사 = 실제 아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하고 싶은 체위’ 설문조사를 올리기도 해요. 또 포르노에 자주 나오는 체위가 선호된다고도 해요. 성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는데, 남자아이면 그런 자신이 이상하다고 여기기도 해요. 이런 문제를 두고 학교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가르치는 게 마땅해요. 성교육을 이수하고, 시험도 봐야 한다면 아이들이 과잉성애화되진 않을 거예요. 성이 비밀스러운 영역에 갇혔어요. 그걸 깨려 시도하면 더러운 존재 취급을 받거나 영웅시되는 상황이에요. 아무도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성숙하기 전 일찍 성관계를 하고, 동의 없는 성관계를 하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하길 바라지 않아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태도를 갖고 건강한 관계를 맺길 바라죠. 해외에선 성공한 성교육 사례가 나와요. 한국에선 이(성교육)를 ‘선정적’ ‘동성애’ 등 프레임을 짜서 막는 거죠.

2018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청소년 성교육 수요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34.1%는 ‘학교 성교육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51.1%는 ‘학교 밖에서 성지식과 정보를 얻고 있다’고 답했다. 주 경로는 SNS·유튜브 등 인터넷(22.5%)이었다. 온갖 성지식이 인터넷을 통해 아이들에게 흘러들어간다. 그 결과 중 하나가 ‘n번방’ 사건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청소년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미성년자 등 여성을 성착취해 만든 영상을 판매·유포했다. 가해자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는 12세였다.

■n번방 사건…터질 게 터진 것

정부, 책 회수부터 하기보다는
어떻게 수업하고 담론 만들어 갈지
논의하고 사회 분위기 이끌었어야
결국 학교·교사 부담으로 남게 돼

- n번방 사건은 참혹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 사회 성교육은 실패했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어요.

A교사 = 터질 일이 터졌다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선 끊임없이 산발적으로 터져왔던 사건이죠. 누구 사진을 찍어서 단톡방에 몰래 돌리고, 헛소문을 퍼뜨리며, 원격으로 뭘 시키는 행위들이 이어졌어요. 유튜브에 뜬 ‘참교육’ 시리즈엔 잘못한 사람을 응징하고 처벌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보통 힘 있는 남성이 권력을 휘두르고 약자가 당하는 형식이에요. 따로따로 벌어진 일이 다 연결된 게 디지털 성범죄예요. n번방 사건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면서 “학교에 알리겠다”고 한 점이에요. 학교가 한 번도 이런 일들을 제대로 제재한 적이 없어요. 학교에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어요. 사이버·언어 폭력으로 다룰 수도 있지만, 이것도 학교장 선에서 종결이 가능해요. 불법촬영해서 카카오톡으로 돌려보는 명백한 디지털 성범죄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종결될 수 있는 거죠. 학교 현장엔 가해자를 교육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요.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거죠.

B교사 = 교사들 중엔 n번방 사건을 바라보면서 “피해자들이 왜 일탈계정을 운영했나” “피해자는 왜 그런 행동을 했나”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어요. 취약계층 아이들이 피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교사들 시선도 ‘이상한 애인가 봐’라고 바라보는 거죠. 이런 문제들을 두고 사회나 정부기관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개인에게 미뤄놓기만 하니 너무 지쳐요. ‘나다움 어린이책’ 사건도 마찬가지예요. 정부가 책을 선정해 사업을 했으면, 이 책들로 어떤 수업을 하고 담론을 만들어갈지 나서서 논의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잖아요. 그렇지 못하니 각 학교와 교사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거죠.

A교사는 인터뷰 말미에 “첫 번째 사람”을 언급했다. “아이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말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그는 “우리 사회엔 ‘첫 번째 사람’이 없다. 부모에게 말하면 혼나겠지, 교사에게 말하면 나를 이상하게 보겠지. 이런 상황에서 피해가 더 커진다. 어른들이 섹스의 ‘섹’자도 말 못하게 하는데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그루밍 성범죄에 대해서, 성폭력에 대해서도 책을 통해 더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성교육을 하기 좋은 하나의 교재들인데, 사용하지 말라면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건가요. 그럼 어떻게 성교육을 하란 말인가요.”

이 질문에 관한 답을 찾으려는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픽 | 성덕환 기자

그래픽 | 성덕환 기자

■보수 개신교 공격, 방관하는 교육부…학교 성교육 11년째 제자리
 

“교과서에서 성기 삽화·콘돔 삭제”
6억원 들여 만든 교육부 표준안엔
순결 강조·성소수자 등 빠져 ‘후퇴’


“제가 학교를 다닌 11년, 참 긴 시간입니다. 그동안 저는 키가 50㎝나 크고, 2차 성징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11년 동안의 학교 성교육은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교육이든 그것은 시대에 맞춰서 바뀌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학교 성교육은 계속해서 동그란 트랙을 돌고 있습니다.”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주최로 지난 6월 열린 ‘2020 성평등 문화 만들기 연설 대전’ 영상에 나온 한 청소년 참가자 발언이다.

한국 성교육이 같은 트랙을 뱅뱅 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가족부의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사태는 지속된 학교 성교육 후퇴의 연장선에 있다. 보수 개신교 세력이 후퇴와 퇴보의 중심에 섰다.

여성가족부 ‘나다움 어린이책’ 7종을 문제 삼은 곳은 나쁜교육에분노한학부모연합(분학연) 등 보수 개신교 성향 단체들다.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안티페미협회,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바성연), 우리아이지킴이학부모연대 같은 단체가 들어갔다.

이들은 이전에도 성교육이 포함된 보건교과서 삽화와 내용 삭제를 요구하고 불매운동을 벌였다. 시작은 2007년이다. 그해 학교보건법 개정으로 보건교육이 의무화되면서 2009년 처음 보건교과서를 이용한 보건교육이 시작됐다. 보수단체는 보건교과서를 공격했다.

김대유 경기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극우 종교단체 등이 지속적으로 보건교과서를 제작한 출판사와 저자들을 압박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성기 삽화를 가려라, 콘돔이란 말은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결국 삽화가 축소되거나 삭제됐다. 전문가들이 원하는 수준의 성교육 자료를 게시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당시 보건교과서 공격에 앞장선 단체 중엔 ‘나다움 어린이책’을 비판한 바성연, 우리아이지킴이학부모연대도 포함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보건교과서는 11년 동안 한 차례도 개정되지 못했다. 최근에야 겨우 한 종만 개정됐다. 디지털 성폭력·기후변화와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등 최신 이슈들을 반영했다. 이 교과서도 보수단체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법 개정에 따른 성교육이 공격받는 동안 교육부는 뭘 했을까? 수수방관했다. 김 교수는 “교육부는 문제를 단위학교로 미루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임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성교육이 위축되거나 지장받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2015년 만든 성교육 표준안 또한 성교육을 둘러싼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2년간 6억원을 들여 만든 성교육 표준안엔 “이성친구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남성의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난다” 같은 내용이 들어갔다. “데이트 비용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하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데이트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썼다. 김 교수는 “표준안을 제작하면서 보수성향 단체와 기독교 단체 위주로 의견을 수렴하고, 내용도 종교적 순결인식을 강요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측면으로 서술했다”며 “기존 보건교육에서 시행되는 성교육 내용을 외면하고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여성단체 비판으로 문제가 된 내용 일부는 삭제했지만, 성소수자·자위·성적자기결정권에 관한 내용이 빠졌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초등학교 교사 C씨는 “표준안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할 수 없는 근거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멈춰선 성교육은 빠르게 흐르는 아이들의 시간을 따라잡지 못한다. 질병관리본부의 2019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를 보면 성관계 경험을 한 중·고등학생 비율은 해마다 증가한다.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2017년 5.2%, 2018년 5.7%, 2019년 5.9%였다.

과연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와 같은 사실적 교육은 아이들의 ‘조기성애화’를 불러올까. 연구 결과를 보면 반대다. 유네스코의 ‘국제 성교육 가이드’를 보면 5~12세 아동을 위한 교육 내용으로 “다양한 결혼 방법, 생물학적 성과 젠더의 차이, 성 및 재생산 건강과 관련한 몸의 부분 묘사하기, 성기가 질 속에 사정하는 성관계의 결과로 임신할 수 있음을 알기, 신체적 접촉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 방식 설명하기” 등을 제시한다. 유네스코는 2016년 옥스퍼드대학 연구 결과 성교육을 통해 성행위 시작 시기 지연, 성행위 빈도 감소, 성 파트너 수 감소, 피임 증가 등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유럽 여러 나라에선 유아 시절부터 체계적인 성교육을 실시한다. 스웨덴은 만 4세부터 성교육을 시작한다. 스웨덴 10대 임신율은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독일에선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는다. 성관계에 대해 숨기는 것 없이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명화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장은 “조기성애화라는 말 자체가 순결주의, 금욕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면서 “성에 대한 갈증과 호기심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음담패설·음란물이 아니라 진지한 교육 텍스트로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인간에 대한 존중과 성평등에 기반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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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이름으로, ‘시스템에 숨은’ 어른들을 고발한다

등록 :2020-09-12 09:13수정 :2020-09-12 09:22

 

[토요판] 커버스토리
아동학대, 현장을 고발한다

병원·경찰·아보전 학대 의심에도
고립된 아이 준호 구출에 소극적
경찰은 현장 출동 없이, 훈계·조사
그사이 상처 아물고 멍 지워져

아보전 “준호는 분리 의사 없었다”
전문가 “피해아동이 늘 구석에서
울고만 있는 것은 아냐” 지적
모호한 격리 척도표 산정으로
아이의 목숨을 구할 기회 잃어
지난 9일 ‘정치하는엄마들’이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 책임자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9일 ‘정치하는엄마들’이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 책임자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6월 충남 천안에서 부모의 학대로 숨진 준호(가명)의 비극을 취재하면서 5년 전 취재 자료를 다시 뒤적였다. 당시 한겨레 탐사보도팀은 ‘부끄러운 기록, 아동학대’ 시리즈 기사를 보도했다. 취재를 하면서 준호가 당시 사망 사례로 보도한 연수(가명)의 사례와 매우 닮았단 사실을 알았다. 5년 전 연수의 죽음은 의사, 어린이집 교사 등 어른들의 침묵이 원인이었다. 그때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은 연수가 죽은 뒤에야 학대를 확인했다. 당시 ‘병원이, 교사가 한발만 더 나서줬더라면…’ 하는 생각이 끓어올라 견디기 힘들었다. 이후 의료진, 교사 등 신고의무자 제도는 정비됐다. 아동보호 인력도, 예산도 충분치 않지만 보강됐다. 그런데 준호 사례는 ‘사람’이라는 또 다른 교훈을 남긴다. 연수와 달리 준호를 본 의사는 조금 에두른 방법이었지만 경찰에 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움직였다. 준호는 아동보호의 시스템 안에 들어왔다. 원래대로라면 준호는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그 죽음을 막지 못했다.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사람이 문제였다. 그 책임을 묻는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6월 초 충남 천안에서 새엄마가 아홉살짜리 아이를 여행가방에 가둬 숨진 사건이 알려졌다. 여론은 들끓었다. 특히 아이가 다쳐 병원 응급실을 찾은 한달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니 아이를 학대로부터 구출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에도 국회 등에서 제도 보완을 위한 입법을 외쳤다. ‘정치하는엄마들’이 보는 시선은 달랐다. 아동보호를 책임질 어른들이 제 몫을 다했다면 아이는 살 수 있었다. ‘그들’을 고발하기로 한 이유다.보다 못한 엄마들이 나섰다. 지난 9일 대법원과 대검찰청 등이 위치한 서울 서초동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펼침막을 들었다. “그 아이는 살 수 있었다”는 외침이 담겨 있었다. 지난 6월3일 충남 천안에서 엄마의 학대로 9살 준호(가명)가 세상을 뜬 지 99일 만이었다. 엄마들은 대전지검 천안지청에 제출할 ‘고발장’도 손에 들었다.“정치하는엄마들은 박상돈 천안시장을 직무유기와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주진관 충남아동보호전문기관장을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박종혁 충남천안서북경찰서장 및 성명불상인(담당 경찰)을 직무유기로 고발하니 이를 조사하여 엄벌에 처해주시기 바랍니다.”고발장은 두달간 엄마들이 머리를 맞댄 고민의 결과였다. 엄마들은 괴로워도 두 눈 부릅뜨고 준호를 죽음으로 이끈 책임자를 찾아내는 것이 애도하는 길이며, 또 다른 준호의 죽음을 막는 길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학대 의혹으로 국가의 ‘보호 시스템’ 안에 들어왔음에도 한달 동안 준호를 방치해 숨지도록 내버려둔 게 누군지를 따지는 게 우선이라고 봤다. 그리고 그들을 고발해 심판대에 세우기로 했다.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서면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아동인권위원회가 힘을 보탰다. 김영주 변호사는 “천안 사건을 보면서 법률가 단체가 입법에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는 한계를 느끼는 중이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서는 것을 보면서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EXIT)’의 이윤경 활동가도 결합했다. 이윤경 활동가가 전달한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시스템을 움직이는 어른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국회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해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따졌다. 곳곳에서 준호를 구출할 수 있었던 순간을 발견했다.고발 전 <한겨레>는 정치하는엄마들과 고발을 준비하는 이들을 미리 만났다. 지난 3일 서울 관악구의 엑시트 사무실에서 김정덕·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이윤경 엑시트 활동가와 민변 아동인권위의 김영주·소라미 변호사가 모였다. 기자를 포함한 여섯명의 어른들은 대전지검 천안지청의 공소장, 김상희 의원실에 제출된 아보전 및 경찰의 질의응답 자료 등을 토대로 준호의 학대가 외부에 드러난 5월5일부터 구조를 받지 못하고 숨져간 6월3일까지의 30일을 복기했다._______
준호의 생사를 가른 응급성 판단
시작은 5월4일로 거슬러 간다. 그날 아빠와 엄마(새엄마), 누나, 형 등 식구 넷은 준호만 집에 두고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준호가 말을 듣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였다. 준호는 어린이날을 혼자 맞았다. 부모는 9살 소년에게 하룻밤을 홀로 견디도록 벌을 내렸다. 방임은 학대다. 지난해 벌어진 아동학대로 확인된 3만45건 중 방임은 2885건(9.6%)에 이른다.이튿날 오후 가족여행에서 돌아온 엄마 성아무개씨는 몇시간 남지 않은 어린이날조차 준호를 그냥 두지 않았다. 이날도 준호가 돈을 훔쳤다고 의심해 한뼘이나 될까 한 크기의 쇠막대를 들었다. 도망치는 준호를 뒤쫓아 정수리를 때렸다. 찢어진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성씨가 준호를 데리고 천안 순천향대학교병원 응급실로 향한 건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엄마는 병원에서 “세수를 하다가 넘어져 생긴 상처”라고 거짓말했다. 아이가 세수하다가 넘어져 정수리를 다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게다가 준호의 손과 발, 엉덩이에 멍의 흔적과 부기가 진료기록에 남아 있어 긴급한 구조가 필요한 상태로 판단해 경찰에 곧바로 신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학대 의심으로 병원 사회사업실에 신고를 맡겼다.의료진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지만 머리의 상처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뼈아프다. 지난 3월 발표된 논문 ‘아동보호 공적책임 강화를 위한 아동학대 사망 사례연구’를 보면, 미국에서는 의학적으로 머리의 외상을 질식·중독·방치와 함께 재학대로 인한 결과일 확률이 가장 높은 사례로 꼽는다. 성씨는 나중에 검찰 조사에서 23㎝ 길이의 요가링과 옷걸이 등으로 구타했음을 자백했다. 그날 의사가 직접 신고했다면 아보전과 경찰이 곧바로 병원으로 출동했을 것이다. 준호를 구할 수 있었던 첫번째 기회는 이렇게 사라졌다. 순천향대병원이 경찰 112에 신고한 것은 이틀 뒤인 5월7일이었다.“머리를 다쳐서 응급실에 왔는데 손과 엉덩이에 멍자국이 있어 아동학대가 의심되고, 피해아동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아이를 때려 멍이 들었다며 학대 사실을 인정했다. 관련자들은 귀가한 상태이고 상처는 심하지 않으며 학대 때문인지 훈육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112 신고 내용)지각 신고 뒤 경찰은 확인에 들어갔다. 하지만 충남천안서북경찰서는 피해자나 가해자 대면조사가 아닌 신고자를 먼저 접촉했고, 증거를 문의했다. 아동을 사회가 적극 보호하고 (신고된 경우) 잠정적인 피해자로 보는 태도가 경찰 등에 부족했던 것이다. 아동에게 먼저 피해를 물어보는 일종의 피해자 중심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신고자의 태도는 담당 경찰과의 통화에서 112 신고 때보다 더 모호해졌다. “체벌로 인한 상흔으로 내원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사건 해결에 긴급함을 요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다. 준호가 몸으로 발신한 에스오에스(SOS)는 재차 무시됐다.5월8일 경찰서 내 학대예방경찰관은 엄마인 성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찰관은 “더 이상의 학대는 없어야 하고, 훈육 목적 체벌 행위도 잘못된 행위임을 경고”했다. 이 “더 이상의 학대”라는 말만으로도 경찰이 이미 학대를 인지하고 상습성을 의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곧바로 수사를 진행하는 대신 성씨에게 “수사 담당자의 연락이 갈 것임을 안내”하는 데 그쳤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누가 경찰에게 학대가 있음을 알면서도 곧바로 조사에 나서지 않고 그저 수사 담당자가 연락을 할 것이라는 등 안이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줬느냐”고 반문했다. 엑시트의 이윤경 활동가는 “경찰이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뒤 섣부른 판단을 하게 되면 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제도적으로 신고받은 경찰이 공식적인 수사 개시 없이 학대냐 아니냐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러한 조치를 한 경찰 관계자들을 고발하기로 했다. 대상은 사건을 맡고도 현장에 출동해 준호를 보호하거나 조사하지 않은 성명불상의 사법경찰관과 이를 방치한 박종혁 전 충남천안서북경찰서장이다.
9살 아이를 가방에 가둬 숨지게 만든 엄마 성아무개씨가 지난 6월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9살 아이를 가방에 가둬 숨지게 만든 엄마 성아무개씨가 지난 6월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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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피해자 조사도, 현장조사도 없었다
아보전 담당자가 준호의 집을 찾은 것은 경찰이 성씨에게 훈계를 늘어놓고 아보전에 전화와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을 통해 알린 지 5일 만(5월13일)이었다. 아보전은 경찰에 현장조사 동행을 요구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아보전만 현장에 나갔다.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112로 접수되면, 경찰은 ‘응급’의 경우 신고 접수와 동시에 아보전에 동행을 요청한 뒤 관내 학대예방경찰관과 여성청소년수사팀에 통보해 출동을 요청하거나 지구대 현장 경찰관에게 출동 및 (아동)분리조사를 통보한다. 아보전은 주로 현장에 나가 피해아동 및 가족, 아동학대 행위자를 위한 상담 및 관리를 맡는다.(조사 업무는 올 10월부터 지방자치단체 이관) 준호의 경우도 의사가 직접 신고하고 ‘응급’으로 판단했다면 경찰과 아보전이 현장에 출동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응급성에 대한 판단이다. 원래대로라면 머리에 상해를 입은 경우이니 곧바로 현장에 출동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보전은 국회에 낸 자료를 통해 ‘응급 상황이면 병원에서 신고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등을 출동 지연 이유로 설명했다. 경찰은 같은 자료에서 응급 사례로 분류하지 않은 이유로 “현장에 관련자가 없었고, 신고자의 내용 등을 종합했다”고 했다. 결국 아보전, 경찰 모두 병원의 신고만 믿고 따로 조사하지 않은 채 응급성을 판단했다는 것이다. 아보전 담당자는 결국 경찰 없이 13일 준호의 집에 방문해 준호 가족을 면담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다음은 해당 보고서 내용이다.“아동과 행위자를 분리해 거실에서 아동을 단독조사할 때 부모가 있는 방을 쳐다보며 경계하거나 말을 머뭇거리는 모습이 없었고, 진술 과정에서 불안한 모습이 관찰되지 않은 점,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고 분리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함.”준호는 이날 아보전 관계자에게 “잘 지내고 있고, 가족과 떨어지지 않고 싶다”고 했다. 아보전은 현장 방문을 토대로 준호를 ‘저위험 사례’로 분류한 뒤 준호를 부모로부터 분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목숨을 구할 결정적 기회를 다시 놓쳤다. 당시 작성된 아동학대위험도 평가척도표를 보면 △신체 손상, 정서적 피해 등이 의심 △2회 이상 학대 △아동 스스로 보호능력 미약 등이 인정됐음에도 위험 문항 1개가 모자라 격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준호가 원하지 않았다”는 말로 아보전은 책임을 다한 것일까.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는 “학대의 현장에 있는 아이들이 언론에 등장하는 피해아동처럼 인형을 안고 방구석에 앉아 울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보통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며 “좀 더 정밀하게 준호를 들여다봤어야 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아보전 등이 인력이나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역량을 쌓아야 하는 전문기관이 언제까지 시스템 보완만 주장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고발장에 “법령상 규정된 사실상 보호자로서의 학대 피해아동에 대한 기본적인 보호 의무를 방임한” 주진관 충남아동보호전문기관장과 “피해아동 보호를 위한 조치를 행하여야 할 직무가 있음에도 안전 확보를 위한 보호 조치, 친권 관련 조치, 담당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한 피해아동 보호 등의 업무를 전혀 하지 아니하여 피해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박상돈 천안시장을 포함했다. 이들은 사회적 부모로 세번의 기회를 놓친 책임자들이다.
충남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막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섰다. 지난 3일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왼쪽부터), 소라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김영주 민변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 이윤경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활동가가 카메라 앞에 섰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충남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막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섰다. 지난 3일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왼쪽부터), 소라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김영주 민변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 이윤경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활동가가 카메라 앞에 섰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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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만 이뤄졌더라면
가정방문 닷새 뒤인 5월18일 아보전은 경찰에 방문 보고서와 함께 “별도의 사건 처리보다는 가족 기능 강화를 위해 (상담 등) 서비스 제공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준호 부모를 소환조사하기로 한다. 문제는 피해자 조사였다. 천안서북서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부모의 혐의 특정을 위해서는) 아이의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면서도 “경찰 쪽에서 접근하지 않고 아보전 조사관들이 나가 조사했고, 그 결과를 갖고 혐의 입증을 위해 부모를 조사했다”고 했다. 피해자 조사를 아보전의 현장방문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하지만 아보전은 오히려 경찰의 책임으로 돌렸다. 천안 사건을 잘 아는 충남 아보전 관계자는 지난 6월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직후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경찰이 준호를 조사하지 않은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정말 한번도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아보전도 준호가 숨지기까지 경찰의 직접조사 여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관계자는 “경찰이 대부분 피해아동을 경찰서나 해바라기센터로 불러 피해 정황을 확인하고 진술조사를 한다”며 “경찰 입장에서 학대라고 특정하기 애매모호하더라도 아이를 직접 만나 확인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의견은 참고자료일 뿐이다. 아동복지법에 의해 광의적인 해석을 하(기 위한 자료를 만드)는 것일 뿐 실제 조사는 경찰의 몫”이라고 했다. 경찰이 준호를 불러 조사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할 일을 하지 않아 네번째 기회를 놓친 것만은 분명하다.준호의 죽음 15일 전, 기회는 여전히 있었다. 준호는 ‘학대우려아동’으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보전 관계자는 가정방문 일주일 뒤인 5월20일 성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권유했다. 성씨는 가정방문 당시 협조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노력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상담을 거부했다. 부모의 비협조는 학대를 의심할 수 있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아보전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보전이 감지한 엄마의 비협조는 경찰과 공유되지도 않았다.경찰은 뒤늦게 준호의 부모만 불러 조사했다. 5월21일과 24일 엄마와 아빠를 따로 불러 조사한 과정에서 학대의 심각성도 인지했다. 부모 모두 체벌을 인정했고, 학대가 지난해 10월부터 있어왔다고 했다. 그럼에도 긴급성을 판단하는 경찰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현장조사는 물론이고 준호와 면담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 아동학대 보호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던 준호는 그렇게 방치됐다. 소라미 변호사는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 이후로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 하지만 법 안에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를 담을 수는 없다. 그 의지는 현장 당사자, 그리고 현장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변화돼야 단단해질 수 있다”며 “이번 천안 사건에서도 현장의 주체들이 준호를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면 아마 죽음을 막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어른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이 학대는 계속됐다. 준호가 여행가방에 갇힌 채 사망하기 며칠 전이다. 이즈음 경찰은 부모를 아동학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하고, 아보전은 준호를 다시 한번 직접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곧바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그 틈에 성씨는 “가족들의 칫솔로 욕실 바닥을 닦았다고 여겨 쪼그려 앉아 있는 준호의 등을 발로 차 준호가 넘어지면서 욕조에 눈을 부딪치게 했”다. 또래보다 작은 키(132㎝)에 체구(23㎏)도 작은 준호는 발에 차여 어디로 구른 것일까. 준호가 다친 눈(망막)은 깨진 머리와 함께 아동학대에서 등장하는 대표적 피해 부위다. 제대로 조사돼 제때 격리만 됐다면 일주일 뒤의 참극은 막을 수 있었다.그리고 6월1일, 둘째인 형이 자신의 게임기를 준호가 손댔다며 나무랐다. 준호는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여행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무려 7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엄마는 집 밖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고, 바깥의 누나와 형의 저녁밥을 챙겼다. 그사이 가방 안의 준호는 가방에 들어간 지 3시간 만에 “엄마, 숨이 안 쉬어져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이 정말이냐. 거짓말 아니냐’며 추궁했고, 주눅 든 준호는 “거짓말”이라고 답했다. 가방 속 6시간 만에 준호는 “숨”, “숨”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119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진 준호가 세상을 떠난 것은 6월3일이다. 학대가 어른들에게 인지된 지 30일이 되었을 때였다.아동보호 시스템 정비 못지않게관계자 적극적인 구조 의지 중요사회적 부모로 국가 역할 찾아야“학대 사건 끝까지 책임 묻겠다”_______
막을 수 있었던 죽음
대담자들은 내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에 “한이 맺힌다”고 했다.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를 보면 재학대에 대해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재학대는 최근 5년 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 및 경찰에 신고·접수된 사례 중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가 다시 해당 연도에 신고·접수돼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를 뜻한다. 재학대는 2019년 3431건이다. 전체 학대 행위 3만45건 중 11.4%에 이른다. 3431건 안에 포함된 아이들의 수는 2776명이다. 이 숫자를 내년에 또 봐야 하는 것일까.
장하나 활동가는 “학대 자체를 100%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준호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재학대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중 50%까지만 막아도 우리는 억울하게 학대당하는 1천명이 넘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활동가도 “고발은 이제 시작”이라며 “학대 사건 하나하나를 끝까지 추적해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그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너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한다”고도 했다.천안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시스템 정비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졌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아동학대 재발 여부 확인 요청을 거부하거나 방해한 보호자를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아동학대 피해아동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보호를 받다가 가정으로 돌아간 이후 재학대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천안 사건 직후인 지난 6월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학대 상습 범죄자의 신상 공개와 자녀 살인에 대한 처벌 강화, 민법상 자녀 징계권 삭제 및 체벌 금지 등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해결해보자며 모인 이들이 9월3일 대담을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으며 뒷얘기를 나누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해결해보자며 모인 이들이 9월3일 대담을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으며 뒷얘기를 나누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1866.html?_fr=mt1#csidx7e77a3a0f444464b6385b0f76089ef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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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주민들에게 태풍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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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09/12 09:50
  • 수정일
    2020/09/12 09: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문성혁 해수부 장관께 드리는 편지] 여객선은 그들의 목숨 줄, 대형여객선 운항 빨리 결론내야

20.09.11 16:40l최종 업데이트 20.09.11 17:02l
페이스북에 실린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의 글을 필자의 동의를 받아 싣습니다.  [편집자말]
 육지에서 마이삭 태풍의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울릉도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언론들은 울릉도 피해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도 하지 않았다.
▲  육지에서 마이삭 태풍의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울릉도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언론들은 울릉도 피해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도 하지 않았다.
ⓒ 김윤배 박사 외 울릉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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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장관님!

울릉도 태풍 피해 현장을 방문해 주시고 신속한 피해 복구를 약속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는 울릉도 주민은 아니지만 울릉도 태풍 피해 보도를 도외시한 언론들의 보도 태도에 문제를 제기해 보도 방향을 바꾸었고, 울릉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라는 성명을 발표해 정부의 관심을 이끌어낸 (사)섬연구소의 활동가입니다.

울릉도를 강타해 사상 초유의 피해를 입힌 태풍이 지나갔고 국무총리님과 장관님까지 현장을 방문해 피해 복구를 약속했지만 울릉도 주민들에게는 이제 또 태풍보다 더한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겨울은 울릉도 주민과 울릉도 방문자들에게 동토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혹시 그 이야기를 이번 울릉도 방문 길에 들으셨는지요? 

섬사람들의 생명줄인 여객선의 결항 문제 때문입니다. 지난 2월 말 포항∼울릉 항로를 운항하던 대형 여객선 썬플라워호(2394톤, 정원 920명)가 선령 25년이 차서 운항이 중단했는데 투입되기로 약속됐던 동급의 대체 여객선은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지난 5월15일부터 현재까지는 썬플라워호 대체 선박으로 소형선박인 엘도라도호(668톤, 정원 414명)가 운항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파도가 조금만 있으면 멀미 때문에 소형 선박 탑승객들은 비닐봉지와 쓰레기통을 끌어안고 토사곽란을 해가며 서너 시간 동안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이때는 여객선이 아니라 지옥선입니다. 그런데 지금보다 파도가 더욱 거세지는 겨울이면 어떻겠습니까. 바다를 건너다 다들 중환자가 될 지경에 이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소형 여객선으로는 이 험한 뱃길마저 수시로 끊기게 된다는 점입니다. 겨울이면 소형 여객선이 울릉도로 갈 수 있는 날이 잘해야 한 달 1~2번에 불과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결항률이 이를 증명합니다. 대형 여객선이 다닐 때도 울릉도의 연평균 여객선 결항률은 100~120일쯤 됐습니다. 유배지도 이런 유배지가 없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감옥보다 더한 감옥살이를 했던 것입니다. 육지라면 폭동이라도 났을 테지만 울릉도 주민들은 묵묵히 참고 살아왔습니다.

대형 여객선 썬플라워호 퇴역 후 새롭게 취항할 대형 여객선 우선협상대상자로 대저해운이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새로 취항할 대저해운의 2125톤급 쌍동형 선박은 새로 건조해야 하는 까닭에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새 여객선은 2021년 8월쯤에나 취항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포항 해수청은 대형여객선 취항 시까지 대체여객선으로 (주)대저해운의 소형 선박 엘도라도호(668톤)에 대한 운항을 인가했습니다. 포항 해수청은 인가하면서 '5개월 이내에 썬플라워호(2394톤)와 동급 또는 울릉주민 다수가 동의하는 대형선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당초부터 소형인 엘도라도호의 대체 선박 투입을 반대했습니다. 잦은 결항과 택배, 생필품 등의 공급 난항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포항 해수청이 엘도라도호 취항 5개월 이내에 썬플라워호와 동급이나 대형선으로 교체한다는 인가조건을 달자 주민들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우려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썬플라워호가 운항할 때는 매일 택배, 우편, 신선식품들이 오갔지만 지금은 매주 2차례만 화물선을 이용해야 합니다. 기상악화 시에는 7~10일씩이나 걸려 물건을 보내고 받을 수 있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민은 육지에서 보낸 복숭아 택배를 기상 악화로 열흘 만에 겨우 받았는데 복숭아가 모두 다 썩어 있었다고도 합니다.

여객선은 목숨줄입니다
 
 육지에서 마이삭 태풍의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울릉도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언론들은 울릉도 피해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도 하지 않았다.
ⓒ 김윤배 박사 외 울릉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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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통 때문에 지난 7월 26일에는 울릉 주민 40여 명이 군청 회의실에서 김병수 군수와 대형여객선 투입에 관한 면담을 하다 김 군수가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자, 전격 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엘도라도호 취항 4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대저해운은 아직 대형 여객선을 취항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포항 해수청도 약속했던 것처럼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줘야 하지만 손을 놓고 있습니다. 더구나 포항 해수청은 울릉도 독도 해운이 지난 6월 포항~울릉 도동항 간에 대형여객선인 비스타호(2292톤급. 승선 502명)의 해상여객운송사업 면허를 신청했지만 계류시설 부족을 이유로 반려 시켜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지난 2월까지도 더 큰 여객선인 썬플라워호(2394톤)가 계류하던 도동항 계류 시설 부족으로 허가가 반려됐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조치입니다.

울릉독도 해운은 지난 8월 28일 다시 포항 해수청에 대형여객선 비스타호(2천292톤급) 운항 인가를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포항 해수청은 답이 없습니다. 정작 취항하겠다는 대형 여객선은 운항 허가도 반려한 포항 해수청이 대저해운의 대형 여객선 미취항에는 수수방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저 해운이 대형 여객선으로 대체할 의사가 없다면 비스타호의 운항을 인가해주는 것이 맞습니다. 어느 쪽이든 울릉도 주민들의 뱃길 고통을 덜어주는 쪽으로 결정되어야 마땅합니다.

존경하는 문성혁 장관님! 여객선은 섬사람들의 목숨줄입니다. 지난해 8월 6일에는 심정지로 쓰러진 50대의 울릉도 주민 한 분이 8호 태풍 프란시스코 북상으로 헬기 운항이 어렵게 되자 오후에 출항한 여객선으로 이송 중 배 안에서 사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더 큰 배가 있어서 조금만 더 일찍 떴다면 살았을 수도 있을 목숨입니다. 섬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부지기수입니다. 여객선이 목숨 줄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울릉도 태풍 피해 현장을 몸소 둘러보시고 섬 주민들의 고통을 목격하신 장관님께서 울릉도 주민의 여객선으로 인한 고통도 함께 덜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습니다. 장관님의 도움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0년 9월 11일 (사)섬연구소 소장 강제윤 드림

태그:#울릉도, #해수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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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의 귀향, 부당한 ‘임시귀국조치’ 철회하고 영구귀국 보장하라”

일심회 사건의 장민호 선생 고국방문
김래곤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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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1  14: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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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으로 7년 동안의 옥살이를 마치고 미국으로 추방당해 7년 동안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던 장민호 선생과 부인 김은경 선생이 비록 임시귀국이지만 (사)양심수후원회의 뜨거운 입국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사)정의평화인권을위한양심수후원회(이하 양심수후원회)는 9일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어머님과 누님의 병문안 차 임시 귀국한 장민호 선생과 부인 김은경 선생(미주양심수후원회)의 입국을 환영하는 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당국의 입국조건의 부당성과 결과적으로 ‘일시적 입국금지 해제조치’였다는 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민호 선생은 2006년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일부 간첩죄, 회합통신죄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으나 대법원 최종심에서 대부분의 혐의는 무죄판결을 받고 다만 디지털장치에서 출력한 일부만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적용돼 7년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 10월 23일 만기출소 하였으나 당국은 또다시 장민호 선생이 미국 시민권을 가졌다는 점과 특히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당시 82살 늙으신 어머님 얼굴 한번 못보고 미국으로 강제 퇴거시켰다. 또한 입국불허 5년의 조건이 뒤따랐다. 법무당국의 일방적 연장으로 5년이 지났어도 귀국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님 병환이 악화되고 간병하던 누님조차 쓰러지고서야 장민호 선생은 법부무의 부당한 조치 ‘30일간의 일시적 입국금지해제’라는 입국사증을 발급받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조건이 있었다. 어머님의 병원진단서, 신원보증서, 체류기간 활동계획서(어머님 간병일별, 장소별 만남 대상, 개인 및 단체를 상술하는 등 예비검열)를 요구했다. 이렇게 어렵사리 귀국해 어머님과 누님을 찾아뵌 장민호 선생 내외가 만남의 집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양심수후원회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반갑게 맞을 수만은 없었다. 

   
▲ 권오헌 명예회장이 입국환영 인사말을 통하여 부당한 임시귀국 조치에 대하여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김호현 전 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환영식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제한된 인원만이 참석하여 발열체크를 마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진행되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환영사에서 “양심수후원회는 비전향 장기수의 석방과 후원을 목표로 모인 단체이다. 수십 년 감옥을 살면서도 조국통일에 대한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온 이분들을 양심수로 규정하고 이를 토대로 전원석방과 2000년 9월 2일 63명의 1차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이루어냈다. 또한 양심수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어느 누구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데 반대하고 석방운동을 했으며 어느 누구도 조국통일운동을 하는 이유와 그 일환으로 ‘이북바로알기운동’ 등으로 구속탄압 받는 데 반대하고 석방과 사면복권 운동을 펄쳐 왔다"고 말했다.

이어 권 명예회장은 "감옥 안에서 뿐만 아니라 출소 후의 국가보안법과 관련 불이익을 받는 데 반대하여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 폐지 투쟁과 그 관련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 편에서 활동하고 있다"고는 "장민호 선생이 국가보안법으로 옥고를 치렀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부당한 조치에 반대하고 자유인으로 원상회복되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한 또 인권과 인도주의 측면에서 적극 나설 것이다”라고 밝혔다.   

   
▲ 2차 송환 희망자 양원진 선생이 환영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2차송환 희망자 양원진 선생은 “아무리 권력도 좋고 이념도 좋지만은 사람이 인정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인정을 베풀 수 없는 비정한 사회, 한쪽이 인정을 베풀면 그 사회가 무너진다는 그런 비정하고 냉혈동물들과 같은 그러한 세상을 보면서 정말 참담하기가 그지없었다”고 하면서 당국의 임시귀국 조치를 규탄하였다.

   
▲ 김혜순 회장이 장민호 선생 내외분의 귀국환영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김혜순 회장은 장민호 선생의 험난한 입국과정을 설명하며 어렵게 입국한 장민호 선생 내외분의 귀국을 열렬히 환영한다면서 앞으로 자유로운 고국방문이 될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장민호 선생이 7년 만의 귀향에 대하여 감회 깊이 답례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한편, 장민호 선생 부부는 지난 8월 24일 임시귀국 하여 코로나19로 인한 14일 동안의 자가격리 끝에 병석에 계시는 어머니와 누님을 찾아뵙고 이날 양심수후원회의 귀국환영식에 참석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언제 고국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9월 22일 기약 없이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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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토박이의 네 번째 단식 "제주 온 섬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터뷰] 네 번째 단식에 들어간 제주도 주민 김경배 씨

10일 새벽, 제주도에서 올라온 김경배 씨가 환경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이 김 씨의 네 번째 단식 시작일이었다.

 

김 씨는 제주 제2공항의 활주로가 들어설 예정인 성산읍 난산리에 살고 있다. 그가 사는 곳 근처는 매년 여름마다 천연기념물인 두견새가 찾아온다. 장마철이면 멸종위기 2급 맹꽁이가 울어댄다. 가끔은 멸종위기 1급 송골매도 날아온다. 모두 환경부가 지정한 법정 보호종이다.

 

지난 2015년 제주 제2공항 계획이 발표된 후 지난 5년간 그는 그의 삶의 터전과 함께 생태계 보호를 위해 싸워왔다.

 

▲제주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에 환경부의 '부동의'를 촉구하며 김경배 씨가 10일 단식투쟁이 들어갔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2019년에 이은 네 번째 단식 투쟁이다. ⓒ김경배 씨 페이스북 갈무리

'여름'이 통째로 빠진 환경영향평가


 

국가가 대규모 도시개발이나 공항·철도·도로·항만 등을 건설할 때는 부지를 선정하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하고 예측해 그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다.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에 '동의'하면 건설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부동의'하면 사업은 재검토 단계로 돌아간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을 계획하면서 국토부도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했다. 김 씨가 문제 삼는 부분은 국토부의 환경영향평가에서 여름철인 6, 7, 8월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름철새나 여름에 활동하는 동식물의 생태가 통째로 빠졌다.


 

그는 "여름철을 피해 조사를 하고 서식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평가서에 명시한 건 명백한 허위·거짓조사"라며 "환경영항평가법 제17조 4항에 따라 평가서 반려사유"라고 했다.


 

"처음 조사가 2월과 9월에 두 차례 이뤄졌어요. 6, 7, 8월, 여름 양서류나 철새의 활동기, 번식기가 빠진 겁니다.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전문가들이 이걸 몰라서 그렇게 했을까요? 법정 보호종이 서식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무조건 부동의 해야 하니까 의도적으로 이 동물들이 출몰하는 여름을 빼놨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씨는 직접 두견새 등의 사진과 영상 증거물을 포함한 의견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김 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재조사가 이뤄졌지만 재조사는 8월 말에나 이뤄졌다. 8월 말이면 철새는 이미 남쪽으로 떠난 뒤다.

 

환경부는 국토부의 '민원처리부서'인가


 

김 씨뿐만이 아니었다. 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도 법정 보호종 조사 누락문제와 철새도래지 훼손 문제 등을 제기하며 "제2공항 건설계획은 입지타당성이 매우 낮은 계획"이라는 의견을 냈다.

 

2019년 12월, 김 씨의 세 번째 단식 끝에 환경부는 국토부에 '재보완'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환경부가 보완요구를 할 수 있는 건 단 두 번이다. 마지막 기회였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과 면담까지 하며 '4계절 조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재보완에서도 조사는 5월까지만 이뤄졌다. 이대로라면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에 동의하고 국토부의 계획대로 10월에 제2공항 확정고시가 이뤄지게 된다. 건설 실행 단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건 법정 보호종인 천연기념물이나 멸종 위기종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서에요. 법정 보호종을 지정하는 주체도 환경부에요. 그런데 이제와서 법정 보호종 서식지를 무시하고 학살에 앞장서고 있어요. 환경부가 자신의 책임와 역할을 뒤로하고 국토부의 민원처리부서로 전락해버렸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직무유기죠."


 

▲"나는 제2공항 예정부지 성산읍 난산리 주민 김경배입니다" ⓒ김경배

이미 난개발 심각한 제주도...제주는 이미 '포화상태'


 

2017년 10월 첫 번째 단식 이후 2018년 12월 두 번째 단식이 있었다. 앞선 세 번의 단식으로 그의 몸은 많이 망가졌다. 특히 폐가 많이 상해 일상적인 대화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15일 재보완서 제출을 앞두고 그는 전날 밤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급하게 환경부가 위치한 세종시로 왔다.

 

그는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때묻지 않은 제주만의 자연을 보기 위해 오는 건데 난개발로 제주다운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한 해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1500만 명 정도다. 2006년 특별자치도로 선정된 후 500만 명 정도였던 관광객이 빠르게 증가했다. 때문에 지하수 고갈문제부터 하수처리 용량 문제, 교통문제까지 그는 제주도가 이미 '포화상태'라고 설명했다.

 

"제주도 온 섬이 지금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제주시를 지나서 서쪽으로 가면 한라산 중턱까지 관광서비스 산업 시설이 들어서 있어요. 제주다운 모습을 간직한 곳이 제가 있는 동부지역과 성산이에요. 그런데 이곳마저 제2공항이 들어선다니까 땅값이 엄청 올랐습니다. 확정고시까지 되면 개발 붐이 일어날 거에요. 제주다운 마지막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겁니다."


 

제2공항, 제2의 '강정 사태' 될 수도


 

그가 제2공항을 극구 반대하는 데에는 생태계 보호에만 있지 않다. 김 씨는 "이미 공항이 있는 제주도에 제2공항이 들어설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금 제주공항의 노후화된 관제탑과 활주로를 고치면 제주공항에 오가는 비행기를 늘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2공항은 공군기지 건설로도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제주도의 공군기지 건설 계획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과도 가깝고 중국과도 가깝다는 제주도만의 독특한 위치 때문이었다. 정부는 1987년 송악산 일대 170만 평의 공군기지 건설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제주도민의 반대로 백지화한 후 대신 1992년 민·군 겸용 공항건설을 추진한다. 

 

김 씨는 "당시 관광객이 연간 200만 명이 안 됐을 때였다. 민간 공항을 늘릴 이유가 없었는데 '민군 겸용 공항'을 짓겠다 한 거다"라며 "89년에 도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공군기지를 짓기 위한 말장난"이라고 설명했다.

 

"민군 겸용 공항도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제주공항 한 쪽에 '탐색구조부대'를 설치합니다. 2017년에 정경두 당시 참모총장이 탐색구조부대의 유력 후보지가 제2공항이라고 실토해요. 이상한 거죠. 탐색구조부대는 90만 평 정도의 현 제주공항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는데 제2공항은 170만 평이나 되거든요. 민간공항으로 만들어놓고 결국 공군기지로 사용하려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김 씨는 그 근거로 제주도 특별자치도법 제235조와 제236조를 들었다. 두 조항을 종합하면 서귀포시에 소재한 국유지 일부를 제주도가 이양 받고 그 대체부지를 제공할 수 있다.


 

김 씨는 "활주로가 짧아 공군기지로 사용할 수 없는 알뜨르 비행장을 제주도가 가져오는 대신 제2공항을 공군에 대체부지로 제공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에 강정해군기지가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들어왔습니다. 80명이 구속되고 700명이 사법처리를 받았어요. 그 해군기지를 완성하려면 공군기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항공모함 하나를 받으려 해도 그 전투기들을 내릴 공항이 필요하잖아요. 제2공항이 확정고시되면 공군기지가 들어서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럼 해군기지가 들어설 때보다 더 큰 투쟁과 폭력이 반복될 겁니다."


 

15일 마지막 재보완서가 제출되고 10월 환경영향평가 마무리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40일. 김 씨는 "법정 보호종 보호 문제 외에도 철새도래지문제, 숨골문제, 항공기-조류충돌문제, 동굴문제, 주민소음피해대책문제 등등 환경부가 부동의를 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며 "환경부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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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수납원들의 직고용 투쟁 2차전, 민자고속도로 곳곳서도 소송 시작

창원지법,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불법파견 선고...“직고용 해야”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0-09-10 18:47:34
수정 2020-09-10 19: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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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019년 9월 11일 오후 서울톨게이트에서 귀성길에 오른 차량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이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2019.09.11  (항공촬영 협조:서울지방경찰청 항공대 이용길 경감,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경위 박형식)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019년 9월 11일 오후 서울톨게이트에서 귀성길에 오른 차량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이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2019.09.11 (항공촬영 협조:서울지방경찰청 항공대 이용길 경감,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경위 박형식)ⓒ김철수 기자  
 
공공기관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들에 이어 민간투자고속도로에서 일하는 요금수납원들도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전개하고 있다.

10일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민주일반연맹) 경남일반노조는 원청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상대로 지난 2018년 11월 제기한 근로자지위소송에서 ‘원청이 직접고용 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공공노련) 공공산업희망노동조합(희망노조) 측도 오는 11일 원청 ㈜서울고속도로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전개할 계획이다.

민간투자고속도로는 국가나 공기업이 운영하는 고속도로와는 달리 수익형 민자사업 방식으로 운영되는 고속도로다. 서울고속도로,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경기고속도로, 인천김포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미 도로공사 요금수납원들의 끈질긴 법정투쟁으로 불법파견이 명백해진 사안이지만, 민자고속도로 원청과 대주주 등은 직고용에 대한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노조는 보고 있다.

2019년 12월 노동부 “직고용 해야”
법적 대응 나선 원청, 1차 소송서 패

이날 창원지방법원 제4민사부는 용역업체 소속 130여 명의 요금수납원(민주일반연맹 경남일반노조)이 원청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대해 원청이 직접고용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는 지난 2018년 11월 수납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년 하고도 10개월가량이 걸려 나온 판결이다.

해당 사업장에서의 불법파견은 이미 2019년 12월 고용노동부의 감독으로 드러난 바 있다. 경남일반노조 등에 따르면, 관련 민원을 접수한 고용노동부가 2019년 초부터 약 1년 가까이 근로감독을 진행해 불법파견이 있다고 보고 220명을 직고용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노동부는 1명당 1000만원씩 22억원 상당의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한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법적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회사는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불법파견 시정명령 취소 행정소송, 과태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 등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도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남일반노조 관계자는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원청의 대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에도 가봤지만, ‘상대 주주를 설득하기 어렵고, 원청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등 발뺌하기 바빴다”라고 전했다.

서울고속도로 7개 영업소(고양·통일로·송추·양주·호원·별내·불암산)에서 일하는 용역업체 수납원 및 시설관리 노동자 170여 명(공공노련 희망노조)도 원청을 상대로 오는 11일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시작한다.

공공노련 희망노조 측 관계자는 “원청 측에 소송을 진행한다고 전달하긴 했다”며 “직접 만나서 직고용 관련해서 얘기를 하고 싶었으나, 굳이 만날 필요가 있겠느냐는 입장이어서 만나진 못했다”라고 했다.

한편,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토게이트에서 용역회사 소속으로 일하던 요금수납원들은 2013년 처음 원청인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 2015년 1심과 2017년 2심에 이어 2019년 8월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모두 원청이 직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도로공사는 2015년 이후부턴 불법파견 요소를 없앴기 때문에 따져봐야 한다며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선 직고용을 미뤘지만, 이후 재판에서도 “2015년 이후 입사 수납원도 불법파견이 맞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사실상 논란은 끝났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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