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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동시다발 미군기지 기자회견 "코로나 부대 주한미군 철수하라!"

하인철 통신원 | 기사입력 2021/02/2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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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회원들이 20일 오후 2시 전국 곳곳에서 ‘전쟁훈련 폐기, 주한미군 철수’를 외쳤다.  

 

▲ 동두천 미군기지 앞에서 풍물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인철 통신원

 

▲ 동두천미군기지 앞에서 한 회원이 스티브 길랜드 미2사단 사단장에게 장난감 총을 겨누고 있다.     ©하인철 통신원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미 당국은 오는 3월 둘째 주에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현재 주한미군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0일 오후 5시 기준으로 738명이다. 주한미군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올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진연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이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를 확산할 수 있다며 전쟁훈련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전국에서 동시에 연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은 용산 미군기지, 평택 캠프 험프리스, 동두천 캠프 케이시, 부산항 8부두, 군산 미군기지, 대구 캠프워커 앞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 평택 캠프 험프리스 앞에서 경기인천대진연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인철 통신원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의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가영 회원은 “현재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런 나라에서 들어오는 주한미군에게 더욱 강력한 방역수칙을 적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주한미군은 강력한 방역수칙 적용은커녕, 너무도 쉽게 이 땅에 들어온다”라며 대한민국 방역의 구멍으로 주한미군이 될 수 있음을 짚었다. 

 

이어 그는 “기지 내 감염이 된 주한미군 확진자들은 그들의 자유성을 보장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받지 않고 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최소한의 방역수칙마저 지키지 않는 주한미군은 이 땅에 있을 이유가 없다”라며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했다.

 

▲ 군산 미군기지 앞에서 광주전남대진연이 몸짓을 추고 있다.     ©하인철 통신원

 

군산 미군기지 앞에서 발언한 박승주 회원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라 하지만 훈련에서 사용하는 작전계획 5015는 북을 ‘선제타격’ 하거나 지휘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벌이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미 당국은 북을 대상으로 선제공격과 전면전을 가정한 전쟁훈련을 하는 것이다”라며 한미연합군사훈련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어 그는 “한미연합군사훈련 때문에 한반도에 지난 1월부터 전략무기가 배치되고 있다. 전략무기는 곧 전쟁무기이다. 결국 우리 땅에 지속해서 전쟁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라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위험성을 언급했다. 

 

▲ 용산미군기지 앞에서 서울대학생진보연합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인철 통신원

 

부산항 8부두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현승민 부경대진연 대표는 “세균무기 실험실을 폐쇄하기 위해 부산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100일 만에 무려 19만 7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해주었다. 이는 명백히 우리 부산 시민들의 명령이고, 주권국가로서 당당하게 말해야 할 권리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진연은 모든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에 항의서한문을 전달하려 했으나, 경찰에 가로막혀 전달하지 못했다. 

 

------------------------아래---------------------------

 

항의서한문

 

3월 둘째 주, 한미연합전쟁훈련이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한미 전쟁 훈련은 남과 북의 두 정상이 세 차례에 걸친 회담을 통해 약속한 ‘서로에 대한 적대 행위 중단’에 명백히 위배된다. 미국은 한미연합 전쟁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전쟁 무기를 강매하고, 북을 적으로 규정하며 북 지도자에 대한 참수 작전을 벌이는 등 우리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연합전쟁훈련은 방어용 훈련이 아닌 공격을 위한 훈련이며,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고조시킬 뿐이다.

 

군사적 적대 행위는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이며, 한반도의 평화를 가로막고 있다. 외국 군대와 상대를 침략하는 전쟁 훈련을 하며 통일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한미연합전쟁훈련은 우리 국민의 목숨을 인질로 삼아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한미연합전쟁훈련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

 

심지어 주한미군 코로나 확진자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시기에 한미연합전쟁훈련을 강행하려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주한미군 코로나 확진자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으며, 우리 국민의 16배에 달하는 발병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최근 수도권 외 지역의 방역 단계를 ‘브라보’ 단계로 낮추는 등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노 마스크 댄스 파티를 벌이는 등 상식 이하의 만행을 저지르며 대한민국의 방역에 구멍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군기지는 치외법권이라는 이유로 대한민국 방역 지침을 따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방역 지침에 한참 못 미치는 주한미군 자체 방역 지침을 따르고 있으며, 이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 주한미군의 실정이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들어왔다면서 방역수칙 하나 제대로 지키지 않는 주한미군은 필요없다. 코로나 부대 주한미군은 당잘 철수해야 한다.

 

미국 국방부는 한미연합전쟁훈련을 실시할 것을 압박하고, 주한미군은 방역 지침을 어기며 우리 나라의 주권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한미연합전쟁훈련과 코로나로 우리 국민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강력히 규탄한다. 한미연합전쟁훈련을 폐기와 코로나 부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요구이다. 한미연합전쟁훈련과 코로나로 우리 국민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강력히 규탄한다.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며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주한미군은 당장 이 땅을 떠나라.

 

한반도 평화 저해하는 한미연합전쟁훈련 즉각 폐기하라!

코로나부대 주한미군 지금당장 철수하라!

 

2021년 2월 20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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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백기완 마지막 길, 앞서서 나가니 그를 따르는 산자들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처럼 떠났다... 마석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옆 안장21.02.19 17:16l최종 업데이트 21.02.19 18:22l글: 김종훈(moviekjh)사진: 유성호(hoyah35)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가 엄수되고 있다.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가 엄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차가 떠나고 있다.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차가 떠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자신이 직접 지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처럼 떠났다. 그러나 '불쌈꾼(혁명가)' 백기완을 추모하는 시민들은 그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보내지 못했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백 소장의 영결식에는 1천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가슴 한편에 '남김없이'라고 적힌 리본을 가슴에 걸고 '노나메기 세상(너도 나도 일하고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 여섯 글자가 새겨진 흰색 마스크를 쓴 채 함께했다.

1천여 시민들 리본을 가슴에 걸고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노제가 엄수되고 있다.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노제가 엄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고 백기완 선생 영결식이 열린 19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노제를 지내며 영정이 연구소를 돌아보자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 고 백기완 선생 영결식이 열린 19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노제를 지내며 영정이 연구소를 돌아보자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19일 오전 고인이 생전에 매일 찾아 커피를 마시며 사색했던 서울 종로구 학림다방에서 유가족이 영정 앞에 커피를 올리고 있다.
▲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19일 오전 고인이 생전에 매일 찾아 커피를 마시며 사색했던 서울 종로구 학림다방에서 유가족이 영정 앞에 커피를 올리고 있다. ⓒ 유성호
 
앞서 이날 오전 8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이하 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는 백 소장 발인식이 엄수됐다. 위원회는 이어 유족과 함께 백 소장이 생전에 매일 찾아 커피를 마셨던 서울 종로구 '학림다방'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충렬 학림다방 대표는 고인의 넋을 기리며 직접 내린 커피를 백 소장 영정 앞에 마지막으로 올렸다.

학림다방을 나온 위원회와 유족들은 백 소장의 통일문제연구소를 거쳐 대학로 소나무길에서 노제를 진행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4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해 고인을 추모했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소나무길에서 열린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노제에서 운구행렬이 들어서고 있다.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소나무길에서 열린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노제에서 운구행렬이 들어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대학로로 이동하고 있다.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대학로로 이동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날 노제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특히 많이 참석했다. 비정규직을 대표해 조사를 맡은 김수억 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장은 2013년 사망한 기아차 윤주형 해고노동자의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백 소장과의 일화를 전했다.

"(2013년) 윤주형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축 늘어진 어깨로 영장 앞에 앉아 있던 날, 백발의 선생님이 빈소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수억아, 어깨를 펴! 고개 들어!' 선생님은 말 그대로 '빛'이 돼 주셨다. 선생님이 오신 날 동지들이 다시 달려왔다. 이로 인해 윤주형은 해고자가 아닌 노동자로 저세상에 갈 수 있게 됐다."

김 전 지회장은 "선생님이 마지막 일주일 온힘을 짜내서 쓴 '노동해방', 오늘 이 자리에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길을 따르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사 말미 김 전 지회장이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라고 외치자 수백 시민들도 "산자여 따르라"라고 따라 외쳤다.

김 전 지회장이 언급한 고 윤주형씨는 2007년 기아차 화성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뒤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하다 2010년 해고된 노동자다. 2012년 임단협 투쟁을 거쳤지만 복직되지 못했다. 2013년 1월 부당한 해고로 인한 고통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를 따르는 산자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대학로로 이동하고 있다.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대학로로 이동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날 오전 9시 45분께 노제를 끝낸 위원회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영결식을 위해 발길을 돌렸다. 이화사거리와 종로, 세종로를 거쳐 서울시청까지 이어진 추모행진은 백 소장의 뜻을 기려 전통 장례 형태로 재현됐다.

운구 행렬에는 백 소장의 위패와 영정, 운구차,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백 소장을 형상화한 대형 한지 인형이 섰다. 그 뒤를 수십 개 만장과 꽃상여, 풍물패가 함께했다. 행진에는 6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했다.

오전 11시 30분께 서울광장에서 시작된 백기완 소장의 영결식은 눈물 바다였다. 가장 먼저 조사를 읽은 노구의 문정현 신부는 눈물을 훔치며 "백기완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제가 백기완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백기완 선생님은 제게 '신부님, 우리말 고맙습니다 하시지요'라고 하셨다. 이렇게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문 신부는 "이제 뜨거운 가슴에서 터지는 불호령을 더 들을 수 없게 되었다"면서 "앞서서 나아가셨으니 산 저희들이 따르겠다. 안녕히 가시라. 뒤따라가 곧 만나 뵙겠다. 백 선생님 계시던 바로 그 자리에 가서 앉겠다"라고 목놓아 외쳤다.

영결식에 참석한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노나메기' 세상을 꿈꾼 백기완의 뜻을 이어 받아 말을 보탰다. 그중에는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도 있었다. 

김씨는 "아들 용균이 장례식장에서 백기완 선생이 손자뻘 되는 용균이에게 큰절로 두 번 절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감정은 원통함과 복받치는 설움뿐이었다"면서 "장례식장에서 열린 원로기자회견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셨던 백 선생님은 저에게 천군만마였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라고 말했다.

"'김진숙 김미숙 힘내라'라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셨다 들었다. 저도 힘내서 선생님께서 평생 낮은 곳을 향해 힘을 주셨던 것처럼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발맞추며 따르겠다.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다. 저세상에서 용균이 만나면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꼭 한 번 안아주셨으면 좋겠다."

흐느낀 문정현 신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유성호
 19일 고 백기완 선생의 영결식장이 마련된 서울광장에 서울대 장례식장을 출발해 노제를 마친 행렬이 입장하고 있다.
▲ 19일 고 백기완 선생의 영결식장이 마련된 서울광장에 서울대 장례식장을 출발해 노제를 마친 행렬이 입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려 이재명 경기지사와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고 있다.
▲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려 이재명 경기지사와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엄수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 1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엄수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서울광장 영결식 현장도 대학로에서 열린 노제와 마찬가지로 수백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백기완 소장은 생전에 "말을 하고 구호를 외칠 때가 아니다.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고 올바르게 대책을 세워서 노동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할 때"라고 수없이 강조했다.

조사를 맡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백 소장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김진숙 복직'이었다"면서 "간절함을 실행에 옮기겠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노동자 민중의 삶을 걱정해주신 선생님의 격려에 부끄럽지 않은 민주노총이 되겠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영결식 현장에는 노란색 옷을 입은 세월호 유가족들도 함께 했다. 단원고 희생학생 이창현군의 어머니 최순화씨는 "백기완 선생님은 세월호 유족에게 버팀목이었다"면서 "집회 때마다 맨 앞에 자리하고 계셨다. 시대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외치고 또 외치고 또 외쳤던 선생님의 외침은 우리 귓전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라고 백 소장을 추억했다.

실제로 백기완 소장은 생전에 세월호 참사 후 진상규명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2017년에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우며 추모 연작시 '쫓빛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백 소장의 빈소를 찾았을 때 백 소장 유족은 "아버님이 세월호 구조 실패에 대한 해경 지도부의 책임이 없다며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 많이 안타까워하셨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백기완 소장의 딸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영결식 말미에 진행된 유족 인사에서 "어머니(김정숙씨)가 오셨어야 했는데 오지 못하셨다"면서 어머니 김정숙씨가 아버지 백기완 소장을 향해 18일 저녁에 쓴 마지막 편지를 대독했다.

"백기완 선생님, 봄이 지나가기 전 '불러보세, 우리의 봄노래' 하는 노래 가사를 함께 부르려 했는데 이제는 부를 수 없으니 다음에 다시 만나면 꼭 같이 불러요. 언제나 기억할 거 같은 우리 남편 만나 나는 행복했어요. 멋진 목도리 휘날리며 바위고개 그 언덕에서 기다리세요. 잘잘(백기완 선생이 생전에 만든 말, 잘있어요 잘가요 줄임말), 우리 신랑 백기완씨. 아내 김정숙"

이날 영결식에서 가수 정태춘씨가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는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불렀다. 영결식에 함께한 시민들은 백기완 소장이 생전에 좋아했던 '민중의 노래'를 함께 합창했다. 지난 15일 89세의 일기로 영면한 백기완 소장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석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무덤 옆에 안장됐다.

백 소장은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1950년대부터 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67년에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인 '백범사상연구소' 설립을 시도했다. 1974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고문을 당한 뒤 구속됐다. 이후 1986년에 '권인숙 성고문 사건 진상 폭로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다시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에도 다시 대선에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노동문제와 통일문제 등에 힘써오며 언제나 투쟁 현장의 최전선에서 '불쌈꾼'으로 살다 갔다.
 
 1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故)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 1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故)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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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민중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 유성호
 서울광장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열린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백선생님을 추모하는' 민중가수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서울광장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열린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백선생님을 추모하는' 민중가수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고(故)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고(故)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고(故)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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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주상복합 ‘좌원상가아파트’의 세월

등록 :2021-02-20 04:59수정 :2021-02-20 09:14

 

[토요판] 커버스토리

가난의 자리에 서서 이주의 성쇠를 보다

세운상가보다 1년 앞선 66년
남가좌동에 들어선 4층 건물

수재민·철거민 손으로 일군
모래내시장 번성기 함께하고
‘원주민’ 사라진 가재울뉴타운
낡아진 몸으로도 꿋꿋이 지켜

55년 세월과 사람들 방치에
가장 위험한 안전진단 E등급

‘도시재생 뉴딜’ 사업 선정돼
34층 주상복합으로 변신 예정
정부와 공공시행사 LH는
‘사람을 내쫓는’ 개발 피할까
모래내(홍제천)가 흐르는 가재울(서울 남·북가좌동) 가난한 동네에 1966년 4층짜리 건물이 들어섰다. 이름은 좌원상가아파트,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다. 흔히 최초라고 알려진 세운상가아파트보다 1년 먼저 지어졌다. 좌원상가아파트는 사라호 태풍 이주민과 후암동 철거민이 정착했던 가재울과 잘 어울리는 인연이었나 보다. 이들 이주민이 일군 모래내시장이 서울 4대 시장으로 손꼽힐 정도로 확장되면서 좌원상가아파트도 함께 활기를 뽐냈다. 2000년대 들어 이 일대가 가재울 뉴타운으로 재개발되면서 모래내시장은 크게 쪼그라들었고, 좌원상가아파트도 세월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복잡한 소유 관계로 방치되다시피 한 좌원상가아파트는 지난해 정밀안전진단에서 가장 위험한 수준인 E등급을 받았다.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으로 선정돼 2025년 지하 6층, 지상 34층 주상복합으로 변신할 좌원상가아파트엔 가재울의 어떤 미래가 담길까.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모래내(홍제천)가 흐르는 가재울(서울 남·북가좌동) 가난한 동네에 1966년 4층짜리 건물이 들어섰다. 이름은 좌원상가아파트,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다. 흔히 최초라고 알려진 세운상가아파트보다 1년 먼저 지어졌다. 좌원상가아파트는 사라호 태풍 이주민과 후암동 철거민이 정착했던 가재울과 잘 어울리는 인연이었나 보다. 이들 이주민이 일군 모래내시장이 서울 4대 시장으로 손꼽힐 정도로 확장되면서 좌원상가아파트도 함께 활기를 뽐냈다. 2000년대 들어 이 일대가 가재울 뉴타운으로 재개발되면서 모래내시장은 크게 쪼그라들었고, 좌원상가아파트도 세월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복잡한 소유 관계로 방치되다시피 한 좌원상가아파트는 지난해 정밀안전진단에서 가장 위험한 수준인 E등급을 받았다.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으로 선정돼 2025년 지하 6층, 지상 34층 주상복합으로 변신할 좌원상가아파트엔 가재울의 어떤 미래가 담길까.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가재울은 드라마틱한 동네다. 모래내(홍제천)로 가로막힌 지형 때문에 예부터 가난했고, 가난했기에 수재민부터 철거민, 고향을 떠나 상경한 이들, 도시빈민 등 수많은 이주민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렇게 모인 이들이 모래내시장을 일구고 키웠다. 가재울뉴타운이 되면서도 이주민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기존 이주민과 어울려 살던 이전과 달리, 뉴타운 이주민은 살던 이들에게 자리를 잘 내주지 않았다. 55년 동안 이런 세월을 지켜본 좌원상가아파트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공공시행사로 해 공공성이 강한 형태로 재개발된다는 건 상징적이다. 좌원상가아파트와 모래내시장, 가재울뉴타운의 역사와 현재를 대비해 재개발의 의미를 짚었다.
 
“이거 재개발만 믿고 갖고 있었는데, 분양한다는 아파트가 왜 이렇게 작아요? 30평대, 40평대는 왜 안 만듭니까? 강남에선 여기보다 덜 오래된 아파트들도 넓은 평수로 조합원한테 분양하던데, 이럴 거면 뭐 하러 이런 데 집을 수십년씩 갖고 있었겠어요?”(주택 소유주)“철거가 언제 되나요? 이렇게 재개발을 한다고 하면 살던 가구들은 갑자기 당황스러워서 어떡해요. 여기서 나가면 보증금 1천만원 빼서 어디 시골에 집을 구해야 하는데…. 그 돈으로 집이라도 구할 수 있게 철거 일정이라도 미리 알려주세요.”(세입자)아파트를 가진 이와 가지지 못한 이의 간극은 컸다. 지난해 11월11일 오후 서울 남가좌동의 서대문구 사회적경제마을자치센터에서 열린 좌원상가아파트 재개발 관련 공청회에 모인 주택·상가 소유주들은 “평수가 얼마나 되나”, “용적률(800%)을 왜 더 안 올려주나”에 관심을 보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월세 세입자 가운데 질문을 하는 이는 드물었다. 그나마 마이크를 잡은 이는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될까 불안해할 뿐만 아니라, 재개발 계획의 기본 정보조차 부족해 보였다.좌원상가아파트는 서울 서북부와 경기 고양시를 잇는 수색로 대로변 남가좌동 쪽에 자리잡은 4층짜리 건물이다. 수색로에 접한 건물 앞쪽의 너비(가로)가 41m, 모래내시장으로 향하는 건물 뒤쪽까지 깊이(세로)가 46m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다. 건축물대장상 대지면적 2928㎡(약 886평)에 연면적이 8677㎡(약 2625평)에 이르는 큰 규모에 1~2층 상가, 3층 사무실과 아파트, 4층 아파트 등 점포 74개와 아파트 150호로 이루어져 있다. 수색로 건너 경의중앙선 가좌역을 마주하고 있는 이 건물은 얼핏 흔한 낡은 건물처럼 보이지만, ‘국내 최초 주상복합아파트’라는 타이틀을 가졌다. 초기 한국 주상복합으로 유명한 세운상가아파트(1967년)보다 1년 이른 1966년 준공돼 사용승인을 받았고, 낙원상가아파트(1969년)나 유진맨숀·상가(1970년)보다도 먼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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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세월을 버텨온 좌원상가아파트는 지난해 정밀안전진단에서 E등급을 받았다. E등급은 건물에 심각한 결함이 있어 즉각 사용을 금지하고 개축을 해야 하는 수준으로, 언제 내려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안전상 문제가 크다. 이 때문에 좌원상가아파트 재건축은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으로 선정됐고, 현재 서울시 재정비위원회에서 ‘가재울정비촉진지구 지구단위계획’(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심의하고 있다. 변경안이 통과돼 고시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시행사를 맡아 재건축을 추진하게 된다. 서대문구청은 이르면 3~4월께 변경안이 고시돼 올해 상반기에는 재개발 절차가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계획대로 내년 말 착공해 2025년 말 완공되면 이 낡은 건물은 지하 6층, 지상 34층, 연면적 3만8035㎡(약 1만1500평)의 고층 주상복합으로 변신하게 된다. 2층까지가 임대와 분양이 더해진 상가고, 그 위는 아파트(분양 166가구, 임대 73가구)와 오피스텔(70호)로 구성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공시행사로 자금을 대는 대신, 2층에 만드는 공공체육시설 등 생활편의시설은 서울시에 기부채납할 예정이다.
빈민과 이주민의 동네
국내 최초 주상복합이라는 의미가 무색하게도 좌원상가아파트는 낯설다.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짓고 한국 현대 건축의 선구자인 김수근이 설계한 세운상가아파트, 고급 주상복합으로 유명했던 유진맨숀·상가에 비하면 좌원상가아파트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여기엔 이 건물이 들어선 가재울의 역사가 깔려 있다.
1966년 준공된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좌원상가아파트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지난해 정밀안전진단에서 가장 위험한 수준인 E등급을 받아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통한 공공적 성격의 재개발이 진행될 예정이다. 양복점, 기원, 문구점, 콜라텍 등이 자리한 2층.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966년 준공된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좌원상가아파트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지난해 정밀안전진단에서 가장 위험한 수준인 E등급을 받아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통한 공공적 성격의 재개발이 진행될 예정이다. 양복점, 기원, 문구점, 콜라텍 등이 자리한 2층.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가재울은 남·북가좌동 일대를 일컫는 옛 이름이다. 1949년 서울시에 편입되기 전까진 경기 고양군 연희면 가좌리였다. 가재울이라는 이름은 북한산에서 발원해 한강으로 흘러드는 홍제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제천에 가재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는 설, 홍제천 가장자리 마을이라 그렇게 불렀다는 설 등이 있지만 명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홍제천의 옛 이름은 모래내·사천(沙川)으로, 하천에 모래가 많이 쌓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좌원상가아파트 뒤쪽의 모래내시장, 홍제천 좌우 남가좌동과 연희동을 잇는 다리 사천교는 모두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다.가재울은 한양도성과 멀지 않지만 홍제천으로 가로막혀 교통이 불편했다. 이 때문인지 이곳엔 오랫동안 가난했던 이주민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1663년 ‘강희2년 계묘식년 한성부북부장호적’엔 가재울에 사는 이들의 79%가 노비라고 기록돼 있다. 17세기 후반, 한강 광나루~양화진(합정) 구간을 일컫는 경강을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하면서 인근인 가재울에도 전국 곳곳의 빈민들이 모여들었다. 이후 18~19세기엔 한성부가 확대돼 근교농업지로 발전하면서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이가 늘어났다.한국전쟁 이후 가재울 인구가 증가한 것은 역대 최악의 태풍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 1959년 ‘사라’호와 관련이 있다. 당시 정부는 사라호로 이재민이 된 서울 이촌동 주민 2200여명을 남가좌동 소나무숲 언덕으로 이주시켰다. 가재울뉴타운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서울역사박물관이 이 지역의 생활문화 자료를 모아 2008년 펴낸 <가재울: 그리운 가재울>(이하 <가재울>)에는 트럭에 실려가 그 숲속에 군용 천막과 무허가 판자촌을 짓고 살았던 수재민들의 증언이 채록돼 있다. “삼성아파트(래미안 남가좌 2차, 가재울뉴타운 3구역 근처) 지은 자리가 하꼬방 판자로 된 걸로 방 하나, 부엌 하나 만들어놓고 사는 말할 수도 없는 동네였어. 나 오기 전부터 집도 아닌 집을 지어서 살고 있었어. 낮에는 못 하게 하니까, 밤에 벽돌 몇 개 쌓아놓고 나무때기 걸쳐서 지어놓고, 그러면 못 쫓아낸다(고 하니), 하룻저녁에 집 한 채 지어서 살았던 집이야.”(이경숙씨) 근처에 공동묘지도 있어, 집을 지으려 땅을 파다 유골을 발견했다는 회고도 있다.이듬해엔 철로를 확장하면서 삶터를 잃은 서울 후암동 철거민들이 남가좌동 홍제천 지류인 앞냇물 제방 쪽으로 이주했다. ‘대부둑’이라 부르던 제방을 따라, 당시 서울시는 도심지 철거민 정착촌을 만들었다. 한 동에 5평씩 12가구가 살도록 한 공동주택이었다. 이곳은 현재 가재울뉴타운의 ‘대장주’로 불리는 4구역 디엠시(DMC) 파크뷰자이 일대로 변신했다. 앞냇물도, 철거민촌을 정비해 1981년 지었던 2동짜리 백조아파트도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들다.
가재울 옛 지도를 펴놓고 변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홍기윤 모래내·서중 양대시장 재개발조합 총무이사. 11대째 가재울을 지킨 이 동네 토박이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가재울 옛 지도를 펴놓고 변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홍기윤 모래내·서중 양대시장 재개발조합 총무이사. 11대째 가재울을 지킨 이 동네 토박이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가재울과 시내를 가로막고 있던 홍제천에도 변화가 생겼다. 1962년 사천교가 개통하면서 “무거운 짐을 이고 물을 건너거나 위험한 철교를 건너지 않아도 되면서 가재울은 비로소 서울의 외곽이나마 서울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됐다.(<가재울>) 11대째 가재울을 지키고 있는 화가 홍기윤(69, 모래내·서중 양대시장 재개발조합 총무이사)씨는 “예전엔 신촌이나 서울역 쪽으로 가려면 홍제천 물을 건너거나, 철도 사고를 무릅쓰고 경의중앙선 철로로 다녔다. 그땐 열차에 부딪쳐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도 많이 났는데, 사천교가 생기면서 달라졌다”고 말했다.가좌역 맞은편, 쓰레기 매립지와 논밭이 1966년 모래내시장으로 탈바꿈하면서 가재울은 더욱 북적거리게 된다. 1992년 <서대문구지>를 보면, 1960년 7495명이던 남·북가좌동 인구는 1965년 2만8553명, 1970년 6만3852명, 1975년 8만1668명으로 급증한다. 두 차례 대규모 이주와 사천교 개통, 모래내시장을 계기로 사람이 모여든 것이다.특히 좌원상가아파트와 같은 해에 한복집, 기름집, 방앗간 등 점포 103곳으로 문을 연 모래내시장은 가재울의 핵심이었다. 수색로와 사천교를 따라 경기 고양시 능곡·일산 일대 농산물이 모래내시장으로 내려와 종로·여의도까지 팔려나갔다. 간이역이던 가좌역이 1969년 열차가 서는 보통역으로 승격되면서 모래내시장은 날개를 달았다. 신촌이나 서울역까지 가서 농산물을 팔던 능곡·일산 사람들이 가좌역에 내려 보따리를 풀었다. 포목, 주단, 한복, 이불도 불티나게 거래됐다. 모래내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서중시장, 삼거리시장, 오금석시장 등 주변 골목으로 이름을 달리한 시장이 확산됐다. 통상 이를 통틀어 모래내시장으로 불렀는데, 가장 커졌을 땐 현재 가재울뉴타운 4구역 일대까지 시장이 이어졌다고 한다. 서울 서북부와 경기 고양시의 중심 상권으로 자리잡으면서 모래내시장은 한때 서울 4대 시장으로 손꼽히기도 했다.모래내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먹고살 길을 찾아 떠난 이들이 가재울에 모였다. 시장 안 상가는 1층 가게, 2층 살림집 형태로 지어진 게 많았다. 시장이 아니어도, 아현동 셋방살이 할 돈이면 가재울에 작은 집을 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이 일대 집값은 쌌다. 그조차 구할 수 없던 이들은, 툭하면 범람하던 홍제천 옆에 일제강점기 때 쌓은 제방을 따라 빼곡히 늘어섰던 판잣집에 들어갔다. 고추방앗간을 운영했던 강춘송씨의 얘기다. “친구하고 다니다가 모래내시장 쪽이 새로 개발됐으니까 와보라고(하는 얘기를 들었다). 황톳길로 시골길처럼 왔는데, 노점에 포장 이렇게 쳐놓고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사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전부 몸뚱이 하나만 갖고 와서(장사하면서 살더라). 여기서는 (장사를 해볼) 자신이 있더라.”(<가재울>)
가재울 이주민들이 일군 모래내시장은 한때 서울의 4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번성했지만 도시개발과 뉴타운 등의 영향으로 지금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까 말까 한 두개의 골목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색로에서 이어지는 골목에 줄지어 선 점포들이 시장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가재울 이주민들이 일군 모래내시장은 한때 서울의 4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번성했지만 도시개발과 뉴타운 등의 영향으로 지금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까 말까 한 두개의 골목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색로에서 이어지는 골목에 줄지어 선 점포들이 시장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아파트, ‘생활의 근대화’
좌원상가아파트에서 맞춤양복점을 하고 있는 이강현(73)씨도 모래내시장이 번성하던 그 무렵 가재울에 자리를 잡았다. 고향인 충남 서천군에서 스무살 때 상경해 명동 양복점에서 재단 일을 배웠다. 부유층이 맞춰 입는 양복이니, 양복점에서 재단사로 1년만 일하면 팁만으로도 집을 산다던 시절이었다. “내 사업을 해야겠다” 싶은 통에, 먼저 가재울에 양복점을 연 친구한테서 장사가 잘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23살 때인 1971년, 좌원상가아파트에 세를 얻어 가게를 열고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모래내시장이라고 하면 옛날엔 진짜 알아줬다. 직원 열댓명을 두고 3층에 따로 공장까지 운영했는데도 기술자가 없어서 일을 못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렇게 돈을 벌어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아 키웠다. 점포도 하나둘씩 사서 세를 주고, 집도 방 4개짜리로 늘렸다.
좌원상가아파트에 거주하며 2층에서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강현씨. 이곳에서 아들 셋을 낳아 기르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좌원상가아파트에 거주하며 2층에서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강현씨. 이곳에서 아들 셋을 낳아 기르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971년 몇몇 일간지에 실린 좌원상가아파트 분양 광고를 보면 ‘생활의 근대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그에 걸맞게 ‘냉·온수 상시 사용, 텔레비 종합 안테나, 씽크대, 자동 교환전화, 세면기, 양변기, 샤워기, 자동 화재경보기’ 등을 갖추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강현씨는 “내가 처음 이 건물에 왔을 땐 지금 한의원 자리가 다방이었는데 거기 전화교환원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다들 연탄을 때던 시절에 좌원상가아파트는 기름보일러를 갖춘 곳이기도 했다.주거공간인 3~4층 아파트는 6~8평형 원룸과 16·18·25평형 ‘고급 맨션아파트’가 섞여 있었다. 다양한 집의 크기만큼, 1인 가구부터 이 상가나 모래내시장의 상인·교사·군인·의사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살았다고 한다. 좋게 보면 소셜믹스, 나쁘게 보면 양극화가 한 건물 안에서 이뤄지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은 두 집 사이 벽을 터 하나로 합친 집도 적지 않아, 이보다 집 크기가 더 다양해졌다.한 가지 이상한 건 1966년 준공된 건물의 분양 광고가 왜 1971년에 났느냐다.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당시만 해도 아파트가 별로 인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1958년 대한주택영단(대한주택공사의 전신. 대한주택공사는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함께 한국토지주택공사로 통합됐다)이 지은 서울 종암동 종암아파트를 필두로, 정부는 도시 인구 과밀로 인한 주택난을 해결하려고 아파트 건설을 정책적으로 추진했다.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킨 지 다섯달 만에 착공해 1년 만에 지은 서울 마포아파트 준공식에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본 아파트가 혁명한국의 한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주택 부족 해소를 위한 아파트 건설은 정부의 절실한 과제였다.
1971년 7월21일 &lt;경향신문&gt;에 실린 좌원상가아파트 분양 광고. 신문 갈무리
1971년 7월21일 <경향신문>에 실린 좌원상가아파트 분양 광고. 신문 갈무리
하지만 1960년대 한국인들이 원하는 집은 ‘마당 딸린 단독주택’이었다. 김장독 묻을 곳도 없는데다, 서민을 대상으로 좁은 면적으로 지은 집이 아파트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이다. 1970년, 준공된 지 석달여 만에 무너져내린 와우아파트 사고로 아파트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더욱 강해졌다. 1971년 이효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가 진행한 연구를 보면, 서울 아파트 거주에 만족한다는 사람은 응답자의 2%도 채 되지 않았다. 좌원상가아파트라고 이런 상황을 피해 가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홍기윤씨는 “이 동네에 넓게 집 지을 데가 얼마나 많았는데 굳이 거길 들어갔겠나. 거기 들어갈 돈이면 단독주택을 짓고 살지. 사람들이 아파트엔 관심이 없어서 분양도 잘 안됐다”고 전했다.아파트가 중산층 이상의 주거 형태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건 1971년 서울 동부이촌동, 1974년 서울 반포동 등에 고급·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이후다. 한강변을 따라 형성된 강남 일대와 잠실 아파트 단지엔 생활편의시설도 집중적으로 배치됐다. 아파트 단지와 일반주택가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 전선이 땅에 묻혀 있느냐 시선을 가로막느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거 환경의 격차는 점점 커졌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도시 미화’ 차원에서 아파트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전국적으로 아파트 건설 붐이 일고 부동산시장이 달아올라 투기까지 일어나면서 1980년대 후반 들어 아파트 가격은 전반적으로 상승했다.1981년 350만원으로 좌원상가아파트 3층 안쪽에 집을 사서 들어온 전숙희(72)씨는 그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우리 막내가 돌 때 여기 이사 왔는데, 그때만 해도 이 아파트에 같이 애 키우는 내 또래들이 많았다.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했고, 점심땐 수제비라도 해서 복도에 내가 이웃들끼리 나눠 먹으면서 재밌게 살았다. 큰 집에 살든 작은 집에 살든 다 섞여 놀았지. 여름엔 가운데 있는 집도 맞바람이 칠 수 있게 같은 줄에 있는 집들이 다 문을 열어놓기도 했다. 더우니까 밤엔 옥상에 올라가서 돗자리 깔고 자기도 하고.(좌원상가아파트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 때문에 대체로 가로세로로 3개씩 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집이나 상가가 바둑판처럼 배치돼 있다. 이 때문에 안쪽은 창이 없어 어둡고 환기가 잘 안된다.) 그러다 88올림픽 지나고 많이들 이사 나갔다. 그때는 하룻밤 지나면 집값이 오를 때였는데, 주로 사우디 같은 외국에서 돈을 벌어 오거나 건축 일 하면서 수입이 늘어난 사람들이 여기를 떠났다.” 가재울에서 열심히 목돈을 마련한 이들이 더 좋은 아파트를 찾아 떠나곤 했다는 이야기다.
떠난 이가 더 많은 뉴타운
다른 지역과 달리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가재울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그리 들어서지 않았다. 밀집한 주택들은 노후화했다. 1992년 일산 새도시가 개발되면서는 모래내시장으로 오던 농산물이 줄고, 시장도 축소되기 시작했다. 홍기윤씨는 “급속도로 팽창했던 모래내시장이 그 무렵부터 쪼그라들게 됐다. 나쁜 자재로 날림공사를 한 시장 건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판매하는 물건이 줄어드니 손님도 줄어 시장이 슬럼화해, 1995년부터 모래내시장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래도 진척이 없던 재개발은 2003년 가재울 일대 107만7760㎡(약 32만6천평)가 2차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속도가 붙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이 조리용 등으로 이용하는 엘피지 가스통이 옥상에 줄지어 서 있는 모습 뒤로 가재울 뉴타운으로 생긴 대단지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이 조리용 등으로 이용하는 엘피지 가스통이 옥상에 줄지어 서 있는 모습 뒤로 가재울 뉴타운으로 생긴 대단지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8구역과 모래내·서중 양대시장 정비사업지구로 이뤄진 가재울뉴타운은 현재 6구역까지 입주가 끝났다. 7구역은 조합설립 인가 절차를 밟는 중이고,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8구역은 기존 건물 철거를 추진하고 있다. 모래내·서중시장 쪽은 내년 입주를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서대문구청과 최선 서울시의원을 통해 서울시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뉴타운이 가재울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가 드러난다. 1980년 이후 2007년까지 10만~11만명 규모를 유지하던 가재울 인구는 2008년 8만3934명으로 갑자기 훅 줄어든다. 그해 전출이 1만8248건(1만4521가구)으로 전입 9908건(7346가구)보다 두배 가까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체 2008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2008년은 가재울뉴타운 3·4구역의 주민 이주와 기존 주택 철거가 시작된 때다. 남가좌1동이 4300가구 규모의 4구역, 북가좌1동이 3300가구 규모의 3구역으로 부지가 넓고 사람이 많이 살던 곳이어서 원래 살던 이들의 대규모 전출이 일어난 것이다. 북가좌2동 1구역과 남가좌2동 2구역이 2008년과 2009년 각각 준공돼 주민들이 입주했지만, 가구 수가 360여개와 470여개로 적어, 가재울의 인구 변화에 큰 영향은 미치지 못했다.전입 인구가 다시 늘어난 건 3구역 입주가 있었던 2012~2013년, 4구역 입주가 이뤄진 2015~2016년이다. 북가좌1동 인구는 2012년 1만6927명(6187가구), 2013년 1만9709명(7127가구)으로 증가했다. 남가좌1동도 2015년 1만1023명(4089가구), 2016년 1만6538명(5854가구)으로 사는 사람이 늘어났다. 하지만 뉴타운 입주가 완료됐는데도 이전 인구 수준은 회복하지 못했다. 넓은 집과 쾌적한 환경을 만들려고 같은 지역에 거주할 수 있는 가구 수 자체를 줄인 결과다. 애초부터 뉴타운이라는 계획에 ‘원주민 정착’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원주민이 떠난 자리, 인구는 줄었지만 가재울의 ‘재력’은 이전보다 풍부해졌다. 최선 서울시의원을 통해 서울시에서 받은 최근 10년간 서대문구 재산세 현황을 보면, 2010년 28억9300만원이던 남·북가좌동 재산세는 지난해 68억100만원으로 2.5배 가까이 늘었다. 그동안 집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뉴타운이 하나둘 완성되면서 ‘비싼 집’이 동네에 자리잡은 영향이 특히 크다. 가령 3구역 입주 이듬해인 2013년 북가좌1동 재산세는 9억3300만원으로 그 전해(5억7300만원)보다 크게 늘었다. 4구역이 입주한 남가좌1동에서도 똑같은 흐름이 나타나, 2015년 7억7500만원이던 재산세가 2016년 12억4900만원으로 증가했다.
좌원상가아파트 주민들은
매끈하고 윤택해진 동네에서 좌원상가아파트와 흔적만 남다시피 한 모래내시장의 풍경은 매우 이질적이다. 1970년대 수색로를 확장하면서 도로를 높이는 바람에, 좌원상가아파트는 인도에서 갑자기 푹 꺼진 것처럼 보인다. 당시 졸지에 반지하가 된 탓에 1층 상가는 비만 오면 물난리를 겪었다. 이강현씨는 “나도 1층에 점포가 있었는데, 길에 배수로가 잘 안돼 있던 시절인데다 비가 오면 홍제천도 범람해 도로보다 낮은 1층 점포들은 물이 차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좌원상가아파트의 화장실이 없는 집에 사는 이들이 이용하는 3층 공동화장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좌원상가아파트의 화장실이 없는 집에 사는 이들이 이용하는 3층 공동화장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이제 좌원상가아파트에 물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해도, 도시가스도 들지 않는다. 창도, 중정도 없는 건물 안쪽은 대낮에도 어둑어둑하고, 천장엔 각종 배관과 전선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틀어진 나무문부터 디지털 도어록이 달린 철문까지 어느 한 집도 똑같은 문이 없다. 을씨년스러움을 넘어 서늘한 기분마저 들게 하는 분위기 탓에 이곳은 <무뢰한>, <아수라> 같은 누아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생활하기 안락한 곳은 아니라는 얘기다. 몇차례 민간 재개발 얘기도 있었지만, 복잡한 소유관계와 교통영향평가 부적합 가능성 등의 이유로 무산됐다. 그러면서 건물은 관리가 제대로 안 돼 방치되다시피 했다.그럼에도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윤주화(56)씨는 2007년 보증금 5천만원에 전세를 얻어 이곳에 들어왔다. 좌원상가아파트엔 기름값이 무서워 연탄보일러로 개조한 집이 제법 있는데, 윤씨가 사는 집도 그런 곳이다. 처음엔 연탄을 땠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다. 방바닥엔 전기장판을 깔고, 음식은 엘피지(LPG) 가스로 해결한다. 목욕은 동네 목욕탕에서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그마저 쉽지 않아져 요즘은 가스불에 물을 데워 쓴다. 요즘 같은 겨울엔 특히 더 불편하다. 윤씨 집 옆에, 화장실이 없는 사무실을 집으로 개조한 곳에 사는 이들이 이용하는 공동화장실이 있는데 툭하면 수도가 동파돼 복도 전체에 물이 넘쳐 얼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 건 “재개발되면 임대아파트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식당 일을 하고 있고, 같이 사는 딸도 돈을 벌어 보증금을 마련하는 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는 “이 건물에 기초생활수급자도 많이 사는데, 어쨌든 나는 임대아파트라도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분들은 여기서 나가면 정말 갈 데가 없어 어떡하나 싶다”고 말했다.
좌원상가아파트 세입자 윤주화씨. 이곳이 재개발되면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좌원상가아파트 세입자 윤주화씨. 이곳이 재개발되면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서대문구청은 좌원상가아파트 거주자가 118가구(124명)이고, 가옥주 10가구를 제외한 108가구가 세입자라고 파악하고 있다. 세입자는 주로 고령의 1인 가구로 기초생활수급자 등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많다. 신동호 서대문구청 가좌도시재생팀장은 “거기를 떠나선 살 수 없는 사람들한테 임대주택 우선권을 주고, 상가 세입자를 위한 공공임대 상가를 별도로 만들어 이들이 최대한 쫓겨나지 않는 여건을 만들려고 하는 게 이번 재개발의 취지”라며 “일반적인 공영개발에선 찾기 어려운 형태”라고 설명했다. 뉴타운 재개발과 달리, 살던 곳에 계속 살게 할 장치가 준비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보증금 100만~300만원에 임대료 10만~20만원을 내고 있는 이들이 재개발 이후 보증금이 수천만~1억원대에 이르기 십상인 임대아파트에 과연 들어갈 수 있을까?소유자들의 불만도 없지 않다. 이 건물과 토지에 지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소유자는 264명이다. 개발이익을 노려 산 사람도 있고, 이 건물에만 네댓채씩 집을 가진 이도 있다. 3~4층에 집을 여러 채 갖고 있는 김강하(가명·70)씨는 “상업지구에 이 정도로 면적이 넓은 곳이 이 일대에 없는데, 큰 상권이 형성될 수 있도록 상가를 대폭 늘려야 된다. 지금 계획처럼 상가를 2층까지만 만들면 집값이 오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씨 같은 이들은 과연 ‘투자’의 과실을 기대만큼 거둘 수 있을까?두 질문에 답을 내긴 쉽지 않다. 하지만 좌원상가아파트 재개발이 평화롭고 인간적으로 이뤄져 가재울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면 정부와 서울시,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반드시 찾아야 할 답이다.※참고도서: <가재울: 그리운 가재울>(서울역사박물관), <가재울: 삶 그리고 이야기>(서울역사박물관), <가장 도시적인 삶>(황두진 지음, 반비 펴냄), <아파트 공화국>(발레리 줄레조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아파트에 미치다-현대 한국의 주거사회학>(전상인 지음, 이숲 펴냄)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3768.html?_fr=mt1#csidxda9f7a76301f18d923b3d07e4862f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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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 접종 앞두고 ‘괴담’ 또 창궐, ‘신뢰 높이기’ 과제 떠안은 정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2/20 10:37
  • 수정일
    2021/02/20 10:3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1-02-19 21:11:30
수정 2021-02-19 21: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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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월 20일 오전 경북 안동시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을 방문해 코로나19 백신 생산 시설을 시찰하던 중 백신을 들어 보이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는 국민들의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위해 공급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위탁생산하고 있다. 2021.01.20.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월 20일 오전 경북 안동시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을 방문해 코로나19 백신 생산 시설을 시찰하던 중 백신을 들어 보이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는 국민들의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위해 공급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위탁생산하고 있다. 2021.01.20.ⓒ뉴시스
 

지난해 가을,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부담을 가중할 수 있는 독감 유행을 막기 위해 독감 백신 접종을 추진했다. 독감 백신 접종은 매년 이뤄지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중요했다. 정부가 집단면역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양의 독감 백신을 확보했지만 보수야당은 이것도 부족하다면서 예산을 증편해 독감 백신을 추가 확보했다. 정부의 방역에 대한 불안을 부추긴 결과였다.

그러는 사이 언론에선 독감 백신을 맞은 뒤 사망한 사례를 무분별하게 보도하면서 독감 백신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이에 발맞춰 보수야당과 보수의료단체는 독감 백신 접종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사망 사례들은 독감 백신과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결국 확인됐다. ‘독감 백신을 맞으면 죽을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괴담’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괴담’이 독감 집단면역 형성을 위한 백신 접종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독감 무료백신 접종률은 코로나19가 없던 전년보다 오히려 9.1% 하락한 64%에 불과했다. 특히 65세 이상 접종 대상자 가운데 23%는 접종을 하지 않았다. 지난 15일 기준으로 독감 백신은 120억 원어치인 140만 명분이 남아있다. 올해 4월까지 접종 사업이 지속되지만, 상당량의 재고가 남을 전망이다.

독감 백신을 둘러싼 ‘괴담’이 이번에는 코로나19 백신을 두고 퍼지고 있다. 양상도 비슷하다. ‘정부가 확보한 백신 양이 부족하다’, ‘백신 안전성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백신 흔들기’가 계속된다면 11월 집단면역 형성이라는 목표 달성까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와 방역당국이 ‘가짜뉴스’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한 배경이다.

‘자료 미비’에서 불거진 백신 효과 논란
무분별한 언론보도와 근거 없는 소문에
불필요한 불안감만 증폭
결국 한발 물러선 정부

 

정부는 지난 16일 기준으로 총 7천900만 명 분의 코로나19 백신 도입을 확정했다. 그동안 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던 보수야당은 정부의 백신 확보가 늦었다며 비판을 쏟아냈지만 문재인 대통령까지 전방위로 나선 끝에 집단면역 형성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백신을 확보한 셈이다.

올해 4월까지 당장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의 대부분은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이다. 정부는 이를 오는 26일부터 만 65세 미만의 요양병원·시설 입소자 및 종사자에게 우선 접종하고, 다른 백신이 추가로 들어오는 대로 순차적으로 접종 대상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자 ‘백신을 빨리 확보하라’고 다그치던 보수야당은 이번엔 백신 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1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전세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 나라 중 32개 나라가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나머지 5개 중에서도 우리나라가 가장 늦을 뿐 아니라, 안전성이나 효과가 문제 있다고 지적되는 아스트라제네카로 접종을 시작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닌 듯하다”고 비난했다. 안전성과 효과성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을 공당이 나서 거부한 셈이다.

이 논란은 일부 유럽 국가들이 ‘자료 미비’를 이유로 65세 이상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연기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부작용? 백신 맞느니 사표”...일부 의료진 거부〉 〈고령층 접종 주저하는 유럽...아스트라 맞아도 되나?〉 〈“부작용 책임져주냐...백신 맞느니 간호사 관두겠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유럽서 ‘불신’...접종 꺼리는 움직임〉 등의 헤드라인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국내외 일부 반응을 그대로 옮긴 언론보도도 잇따르면서 여론은 더 악화됐다.

아직 백신 접종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고령자에게만 효과가 전혀 없는 물백신을 접종한다’거나 ‘보건당국이 백신 접종 후 사망사고를 은폐했다’는 등 근거가 전혀 없는 황당한 소문까지 유튜브를 비롯해 SNS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는 결국 ‘만 6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해서는 백신의 유효성에 대한 추가 임상 정보를 확인한 후 예방접종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접종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지난 15일 발표했다. ‘만 6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해서는 접종을 유예한 셈이다.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연합(EU), 영국에서 65세 이상에 대해서도 허가 또는 사용이 권고되고 실제 접종에 이를 만큼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됐다는 게 방역당국의 입장이자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대상은 65세 이상을 포함한 18세 이상 전체였다.

정재훈 가천대 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난 1월 9일 발표된 영국과 브라질의 임상 3상 시험 결과 등을 토대로 “아스트라제네카의 단기 안전성은 100만 도즈 단위에서 증명이 거의 끝났다”며 “안전성에 대해서 특별히 우려하지 않는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실제로 영국은 이미 300만 명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고 연령과 무관하게 안전하고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그는 “최소한 현재 국내에서 유행 중인 코로나바이러스와 영국에서 발견된 변이에 대해서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이 65세 이상에 대해서도 효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여론에 등 떠밀리듯 ‘만 6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백신 접종을 유예한 것은 오히려 불안을 더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교수는 “이러한 정부의 판단은 오히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신뢰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릴까 우려된다”며 “정부의 결정은 백신의 효과성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이지만, 국민들에게는 안전성의 문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미룸’이 백신의 신뢰에는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정 교수와 반대로 그동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에 앞장서 문제를 제기하던 국민의힘은 정부가 ‘만 65세 이상’ 우선 접종을 미루는 결정을 하자 이번엔 ‘방역대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래서 접종을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입장이 불분명한 만큼 정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지난 1월 본회의장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실태 및 백신 수급 현황 점검을 위한 긴급현안질문이 끝난 뒤 퇴장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정세균 국무총리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지난 1월 본회의장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실태 및 백신 수급 현황 점검을 위한 긴급현안질문이 끝난 뒤 퇴장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코로나19 백신 접종 초기
신뢰감 높이는 게 관건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백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불안감이 커지면 접종률이 하락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럴 경우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집단면역 형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 정부는 백신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의도하지 않았지만 떠안게 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백신에 대한 안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전 세계적으로 증명됐다. 논란이 되는 건 유효성의 문제인데 ‘만 65세 이상’의 경우 유효성을 판단하기에는 과학적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이것도 맞는 말이고 펜데믹 상황인 만큼 (유예하지 말고) 접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두 가지 중)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며 “정부 입장에선 초기 접종을 할 때 우리가 얼마만큼 국민들에게 백신 접종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할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다. 정부로서는 어느 것이 더 신뢰를 갖게 할 것이냐를 판단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환경이나 보수야당,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어느 쪽이 국민들에게 접종에 대한 신뢰를 부여할 것이냐 하는 걸 선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영국이나 미국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고령층도 백신 접종을 유예하지 않고) 맞췄을 것”이라며 “확진자 수가 여전히 많긴 하긴 하지만 관리 가능한 통제 범위 수준에 있기 때문에 우린 큰 부담 없이 (유예하기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나라의 접종 상황을 보고 우리가 결정하면 된다”며 ”그러면 논란도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는 이번에 유예된 요양병원과 시설의 만 65세 이상 환자와 종사자에 대한 접종을 2분기 안에는 시작할 계획이다. 3월 말 또는 4월 초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추가 임상 자료가 나오면, 바로 접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이 안 되는 경우도 대비하고 있다. 화이자 백신을 비롯해 최근 계약을 확정한 노바백스 백신을 고령층에 접종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화이자와 백신 300만 명분을 ‘2분기 도입’ 조건으로 추가 구매하면서 기구매한 1천만 명분 중 50만 명분을 3월 말 조기 도입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이를 통해 애초 목표로 정한 ‘11월까지 집단면역’을 형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아울러 접종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백신 관련 ‘가짜뉴스’에 더욱 철저히 대응할 계획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9일 코로나19 백신·치료제 상황점검회의에서 “내주 백신 접종을 앞두고 최근 사회 일각에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허위·조작정보가 공공연히 유포되고 있다”며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가짜뉴스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직접 경고하고 나섰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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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취업제한 과도? 미국선 영구퇴출까지

등록 :2021-02-19 04:59수정 :2021-02-19 08:06

 

미, 경영자 일탈 취업제한 고강도 조처
‘트위터 한 줄’에 머스크 의장직 축출
관료에 뇌물·분식회계 등 부정행위
미 당국, 임원 자격 영구금지 등 조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이 열린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이 열린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2018년 7월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주당 420달러에 상장폐지를 고려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직후 테슬라 주가는 6% 이상 급등하는 등 크게 출렁였다. 이게 빌미가 되어 미국의 금융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강한 징계를 받는다. 이사회 의장직에서 즉시 물러나고 벌금 2천만달러(약 224억2천만원)을 물어야 했다. 트위터 한 줄의 후과가 작지 않은 셈이다.지난 15일 법무부가 특정경제가중처벌법(특경가법)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쪽에 취업제한을 통보한 뒤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재계 일각에서 일고 있다. 기업의 고용 여부는 ‘민사적 사안’인데 형법으로 과도하게 규율한다는 취지다. 기업 경영에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총수의 퇴진은 대주주는 물론 소수주주의 이해에도 맞지 않는다는 주장으로도 나아간다.선진 자본시장이 구축된 미국에선 부정 행위를 저지른 상장사 경영진이 어떻게 처리될까.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법제와 자본시장의 성숙도, 사건의 고유한 특징이 달라 동일한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지만 ‘한국의 취업제한 조처’가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려워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누리집에 게시된 여러 사례들은 이런 진단을 뒷받침한다.
 
2007년 에너지 회사 엔론을 파산으로 몬 대규모 분식회계를 주도한 제프리 스컬링 최고경영자(CEO)는 2004년 24년4개월의 징역형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10년 뒤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상장사 임원 자격 ‘영구’ 금지 조처를 받았다. 취업 제한 범위를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로 한정하고 제한 기간도 ‘형 집행 뒤 5년(징역형 기준)’으로 정한 국내 법제보다 강도가 더 높은 조처가 미국에서 내려진 셈이다.2019년 12월엔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한 임원이 계약을 따기 위해 정부 관료에 250만달러(약 27억7천만원)의 뇌물을 줬다고 증권업계에서 영구 퇴출 명령을 받았다. 지난 1월에도 미국 핀테크 기업 롱핀의 시이오 벤카타 미나발리는 매출 조작과 회사 임직원에 부당 이득을 안겨줬다는 이유로, 40만달러(한화 약 4억4천만원)의 벌금과 함께 모든 상장회사의 임원 또는 이사로의 활동이 영구 금지됐다.이런 고강도 조처는 미국의 자본시장 성숙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에선 상장사 핵심 경영진의 일탈 행위가 발생하면 주가가 크게 출렁이며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물리적 압박이 거세게 인다. 미국 금융당국이 일탈을 저지른 상장사 임원에게 ‘영구 퇴출’과 같은 고강도 조처를 할 수 있는 배경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국내 대학 경영학 교수는 “한국 재벌 총수들이 중범죄를 저질러도 이사회가 조처를 취할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엔 상대적으로 미성숙한 시장 환경이 자리잡고 있다”며 “글로벌 무대에서 뛰면서도 정작 부정 행위에 대한 조처는 미성숙한 자본시장을 지렛대 삼아 후진적 행태를 보인다”고 말했다. 채이배 전 의원은 “미국은 전문경영인이 불법행위를 저질러 감옥에 가면 그대로 (해당 기업은 물론 시장에서) 아웃된다”며 “한국 재벌은 총수가 징역을 다녀와서도 경영에 복귀하고, 심지어 공범인 임원도 경영 현장에 복귀한다”고 말했다.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marketing/983634.html?_fr=mt1#csidxaeb90f2302fc0a8a0319112a9a1a7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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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역대 최고의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제2공항 여론조사 결과… 도민 ‘반대’·성산 ‘찬성’
 
임병도 | 2021-02-19 09:07:4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제2공항 여론조사 결과… 도민 ‘반대’·성산 ‘찬성’

제주 제2공항 건설 찬반을 도민에게 묻는 여론조사 결과가 18일 오후 8시 발표됐습니다.

이번 여론조사는 제주 지역 9개 언론사가 여론조사 기관 2곳에 의뢰해 실시했는데, 두 기관 모두 반대가 찬성보다 높았습니다.

한국갤럽 조사에선 반대가 47%, 찬성이 44.1%로 오차 범위 안에서 반대가 찬성보다 2.9% 포인트 앞섰습니다.

엠브레인퍼블릭은 반대 51.1%, 찬성43.8%로 반대가 찬성보다 7.3% 포인트 높았습니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반대는 여성 집단에서, 찬성은 남성 집단에서 높게 나타났습니다. 연령별로는 4~50대에서는 반대가 60대 이상에서는 찬성이 높았습니다.

지역별로 보면 제주시 서부 읍면에서는 반대가 60%로, 공항 예정지 주변인 서귀포시 동부읍면에서는 찬성이 70%로 확연한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30%가 넘은 여론조사 응답률

▲제주 제2공항 여론조사 방식과 응답률.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려온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흔히 여론조사 응답률을 보면 10%대를 넘지 않습니다. 한 자릿수 응답률이 나온 여론조사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론조사는 30%가 넘는 응답률을 보였습니다.

한국 갤럽은 35.3%로 5,688명 중 2,019명이 응답했습니다. 엠브레인퍼블릭도 응답률이 31.5%를 나타냈습니다.

성산읍 주민 여론조사에서는 한국갤럽 43.6%, 엠브레인퍼블릭 46.5%로 모두 40%를 넘었습니다.

제2공항 여론조사 응답률이 높았다는 것은 그만큼 제주도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할 때에는 성별, 연령, 지역에 따라 할당량이 있습니다. 만약 20대 응답자가 적을 경우에는 ‘가중치’를 부여합니다. 대표성과 신뢰성을 채우기 위한 방식입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성별, 연령, 지역별로 할당된 목표를 거의 채웠다고 합니다. 실제로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지만, 성별이나 나이, 지역만 묻고 끊었다는 얘기나 나옵니다. 이미 할당량을 채워서 여론조사를 더 진행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2공항 여론조사에서 응답률이 높게 나오고 성별, 연령, 지역별 할당량이 채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대표성이 높다는 증거이자, 신뢰할만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성산읍 찬성 결과… 갈등의 불씨 되나?

▲성산읍 지역에 게시된 제2공항 반대 현수막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제2공항 여론조사는 제주 도민과 성산읍 주민으로 나누어 실시됐습니다. 도민 조사에서는 ‘반대’가 높게 나왔지만, 성산읍 주민은 ‘찬성’이 훨씬 높았습니다.

한국 갤럽 조사에서는 찬성 64.9%, 반대 31.4%로 엠브레인퍼블릭 조사에선 찬성 65.6%, 반대 33%로 두 조사 모두 찬성이 월등히 앞섰습니다.

제주 도민은 반대하지만, 제2공항 예정지 주민들은 찬성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어떤 식으로 반영할지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도민들 사이에서는 제2공항이 단순히 성산읍 만의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도민 전체 여론 조사 결과를 따라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이에 반해 성산읍 주민들은 두 배 가까이 찬성했다는 결과를 계속 고집하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차이가 나는 여론조사 결과가 제주 도민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제2공항 여론조사를 주관한 제주 9개 언론사는 조사 결과를 19일 오전 중에 제주도와 제주도 의회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이후 제주도와 도의회는 ‘여론조사 공정관리 공동위원회’의 검증을 거쳐 제2공항 찬·반 여론조사 결과를 국토교통부에 전달하게 됩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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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소득격차 악화에 재난지원금 효과 따진 언론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2/19 09:21
  • 수정일
    2021/02/19 09:2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소득 불평등·저소득층 일자리 위기 심화 통계로 확인… ‘살아남은 자사고’에 교육 불평등 심화 우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소득 격차가 악화되고 있다. 근로소득과 사업 소득이 사상 처음 세 분기 연속 감소했다. 특히 자영업자 사업 소득의 전년 대비 감소 폭은 2003년 이래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언론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부진과 일자리 감소가 저소득층에 집중된 탓이라고 분석했다.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농림어가 제외)의 월평균 사업소득은 99만 4000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1% 감소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지난해 2분기 이래 세 분기 연속 감소했다. 서울신문은 감소 폭이 2003년 통계가 작성된 이래 최대라고 지적했다.

▲19일 전국단위 아침 종합일간지 9종 1면 모음.
▲19일 전국단위 아침 종합일간지 9종 1면 모음.

 

지난해 4분기 근로소득도 전년 대비 0.5% 줄었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의 동반 감소도 2003년 이후 지난해 2분기에 처음 발생해 세 분기 연속 이어지고 있다.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 소득이 하위 20%인 1분위의 몇 배인지 보여주는 ‘5분위 배율’ 지표를 보면, 지난해 4분기 4.72배로 1년 전 같은 기간의 4.64배보다 0.08배 포인트 올라갔다. 이 또한 지난해 3분기(4.66배→4.88배)에 이어 연속 악화됐다.

시장소득(근로·사업·재산·사적이전소득)을 기준으로 한 5분위 배율은 7.82배였다. 1년 전 같은 기간(6.89배)보다 0.93배포인트 늘었다. 경향신문은 이에 “그나마 긴급재난지원금을 비롯한 공적 이전소득이 양극화 충격을 완화한 수치”라며 “정부 지원 효과를 제거한 ‘시장소득’의 5분위 배율은 전년 동기(6.89배)보다 1배포인트 가까이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늘었다. 전국 2인 이상 가구 월평균 소득은 516만1000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 대비 1.8% 증가했다. 전 분기인 지난해 3분기(1.6%)에 비해서도 조금 늘었다.

▲19일 경향 1면
▲19일 경향 1면

 

그러나 분위별 증감폭은 달랐다. 소득 5분위 가구 월평균 소득은 1002만6000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 대비 2.7% 증가했지만 1분위 가구 월평균 소득을 164만원으로 1.7% 증가했다.

경향신문은 이를 “근로소득에서 비롯됐다”며 “지난해 4분기 취업자가 44만1000명이나 줄어드는 코로나19 사태 이래 최악의 고용한파로 임시·일용직이 많은 1분위 가구 근로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13.2% 급감했고,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5분위는 전 분위에서 유일하게 근로소득이 1.8%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19일 한겨레 3면
▲19일 한겨레 3면
▲19일 한국 3면
▲19일 한국 3면

 

어감 차이 극명… 조선·중앙 “세금 쏟아 부었는데” “빚으로 지원하는데”

이와 관련 언론이 정부 공적 지원의 영향을 전하는 어감의 차이는 컸다. 한겨레, 경향신문, 서울신문은 긴급재난지원금 등의 공적 지원이 ‘그나마 가계소득을 떠받쳤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세금을 쏟아부었는데 성과는 없었다’는 구도로 전했다. “세금 쏟아 부었지만... 소득격차 더 벌어졌다”(조선일보 1면), “재난지원금 민낯…세금으로 메워도 소득 격차 더 벌어졌다”(중앙일보 8면) 등이다.

서울신문은 “이런(소득 격차 심화) 상황에서 가계 소득을 떠받친 건 지난해 추석 전후 지급된 2차 재난지원금”이라며 “지난해 4분기 가구 전체 소득(530만 5000원)은 1.6% 늘었는데, 2차 재난지원금 지급에 따른 이전소득(22.7%)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한겨레는 “코로나19 경제위기로 가구가 일해서 번 돈(근로+사업소득)은 줄었지만, 정부 지원금으로 전체 소득 감소를 방어했다”면서도 “정부의 코로나19 피해 지원이 규모나 집행 시기·방법 등에서 부족하거나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짚었다.

한겨레는 “14조원 규모의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풀렸던 2분기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이 4.23배로 1년 전(4.58배)보다 줄어 정책효과가 나타났다”면서 “하지만 2차 재난지원금은 총 7조8천억원으로 1차 때보다 금액이 절반가량으로 줄었고, 이마저도 소상공인 새희망자금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등 피해계층 지원금은 4조9천억원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19일 조선 1면
▲19일 조선 1면
▲19일 중앙 8면
▲19일 중앙 8면

 

조선일보는 통계 분석 결과 “세금과 빚으로 지급하는 정부 재난지원금이 피해 지원이 절실한 저소득층에 집중되지는 않았다”며 “정부의 재난지원금이 피해를 입은 식당 주인에게 돌아간 것일 뿐, 장사가 안 돼 식당 일을 그만두게 된 종업원에게 돌아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소득 상위 20~40%(4분위)의 작년 4분기 공적 이전소득이 1년 전보다 9만8200원 오르는 등 2·3·4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 폭이 1분위 가구의 이전 소득 증가 폭을 앞섰다는 이유다. 3분위는 소득 상위 40~60% 가구고 2분위는 소득 상위 60~80% 가구다.

중앙일보도 “정부가 지난해 지급한 재난지원금의 혜택은 고소득층도 누렸다. 그렇다 보니 소득 격차는 더 나빠졌다”며 “재난지원금은 역설적으로 고소득층 주머니를 더 두둑하게 채웠다”고 지적했다. “이전소득 증가 폭이 1분위(16.5%)·2분위(15.9%)보다 3분위(19.7%)·4분위(45.5%)·5분위(36.3%)에서 더 많이 늘었다”고 근거를 덧붙였다.

‘살아난 자사고’에 “서열화 해소 제동”

학교법인 배재학당과 일주세화학원이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낸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18일 승소했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이상훈)은 “자사고 재지정 제도 자체를 폐지하거나 현저하게 다른 형태로 운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인정되지 않는데도 (교육청이) 중대하게 변경된 평가기준을 평가 대상 기간에 소급 적용했다”고 판단했다. “처분기준 사전공표 제도의 입법 취지에 반하고 재지정 제도의 본질과 공정한 심사 요청에 반하므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도 밝혔다.

▲19일 국민 1면
▲19일 국민 1면
▲19일 서울 1면
▲19일 서울 1면

 

이 소송은 2019년 7월 서울시교육청이 경희·배재·세화·숭문·신일·중앙·이대부고·한대부고 등 8개 서울 자사고에 대해 운영성과 평가점수 미달을 이유로 지정 취소를 결정하고 교육부가 이를 승인하면서 제기됐다.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7월 경희·배재·세화·숭문·신일·중앙·이대부고·한대부고 등 서울시 8개 자사고에 운영성과 평가 점수 미달 등을 이유로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8개 학교나 2곳씩 짝을 지어 취소 처분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은 이들 중 가장 처음 선고된 것으로 배재고와 세화고는 한동안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부산 해운대고가 부산시교육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 데 이어 서울 자사고도 잇따라 지정취소 처분 기각 결정을 받아내며 정부의 ‘고교 서열화 해소’ 정책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19일 중앙 1면
▲19일 중앙 1면

 

한겨레는 “2025년 예정된 교육부의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존립 근거가 사라졌다는 이유다. 2019년 11월 교육부는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통해 “학교 간 서열화를 만들고, 사교육을 심화시키는 등 불평등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자사고·외고·국제고”를 2025년부터 일반고로 모두 전환키로 했다.

대상 학교법인들은 시행령이 기본권 침해를 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황이다. 한겨레는 이에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지면 2025년 예정된 일괄 전환이 무산된다”며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한 차기 정부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 정책을 이어받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중앙지법 조직개편에 ‘시끌’… “개혁” vs “코드인사”

서울중앙지법이 형사합의21부와 35부를 ‘경력대등재판부’(대등부)로 추가 지정하며 기존 1곳이던 대등부를 3곳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대등부의 배석판사들은 재판장과 같은 부장판사다. 기존 합의부는 경력이 낮은 판사가 배석판사를 맡는다. 대등부는 판사 3명이 수평적으로 사건을 심리해 사법개혁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19일 경향 10면
▲19일 경향 10면

 

그러나 해당 합의부가 인사 논란이 불거진 재판부란 점에서 법조계를 중심으로 ‘인사 물타기’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미리 부장판사가 있는 형사합의21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건과 울산 선거개입 사건을 맡고 있다. 박남천 부장판사가 속한 형사합의35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직권남용 등 사건을 심리 중이다.

형사합의21부의 김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 3년 넘게 근무했으나 이달 초 법원 인사 이동 후에도 그대로 남게 됐다. 통상 3년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하면 다른 법원으로 이동한다는 관행과 다르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나왔다.

조선일보는 ‘코드인사’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위 인사를 결정한 서울중앙지법 사무분담위원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받는 사람이 송경근 민사1수석 부장판사”라며 “송 부장판사는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당시 법원 내부 온라인망인 코트넷을 통해 “법원이 (양승태 대법원) 수사에 반대하면 국민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주장했다“고 전했다.

▲19일 조선 3면
▲19일 조선 3면

조선일보는 ”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에 문성관·서보민·이세창 부장판사를 배치했다“며 ”문 부장판사는 2010년 미국산 수입 쇠고기 광우병 논란을 다룬 MBC PD수첩 제작진에게 무죄 선고를 했고,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으로 박상옥 대법관 임명에 공개적으로 반대 글을 올렸던 박노수 부장판사는 형사 항소부인 형사 2부 재판장에 배치됐다“고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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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속히 통일될 수 있도록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길..."

87살 송환희망 장기수가 환갑맞은 북의 아들에게 보내는 기막힌 편지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2.19 02:30
  •  
  •  댓글 0
 

"우리나라가 하루속히 통일될 수 있도록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를 바란다. 내가 언제 너를 만나게 될 지는 모르겠다. 만나게 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지만 만나지 못하더라도 만난 것과 같이 잘 생활했으면 좋겠다. 국가에서 임무주는 것 잘 수행하라는 것 밖에 더 요구할 바 없다."

2차 송환을 희망하는 비전향장기수 박희성 선생이 18일 미국대사관앞에서 이날 환갑을 맞은 북의 아들 박동철을 위해 반미1인시위를 벌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2차 송환을 희망하는 비전향장기수 박희성 선생이 18일 미국대사관앞에서 이날 환갑을 맞은 북의 아들 박동철을 위해 반미1인시위를 벌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분단된 조국에서 87살의 아버지가 환갑을 맞은 북의 아들에게 전하는 기막힌 축하메시지이다. 

박동철. 2차 송환을 희망하는 비전향장기수 박희성 선생의 외아들이다. 2월 18일은 아들 동철의 환갑이다.

서울에 있는 아버지는 이날 광화문 광장 미국 대사관 앞에서 평양에 남겨 두고 지금껏 보지못한 북의 아들 환갑을 축하하는 기가막힌 1인 시위를 벌였다.

6개월째 진행중인 '아메리카 NO 국제평화운동(AmericaNO Int’l Peace Action)' 1인시위이다.

1962년 6월 1일 1년 4개월된 아들을 남겨두고 남파공작원을 귀환시키는 연락선의 기관장으로 파견되었다가 체포된 박희성 선생은 경기도 화성 남양만에서 오른 팔과 왼쪽 허벅지에 총 두발을 맞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우여곡절의 27년 수형생활을 했다. 

1988년 출소 후 험악한 남녘생활을 겪으면서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몸과 마음을 추스렸지만 얼마전부터 강철의 심장에도 이상이 생겼다. 

지금까지 두번밖에 빠진 적이 없던 6.15산악회에 작년 11월부터 못다니고 있다. 즐거운 산행길에 공연히 심장마비가 오면 헬리콥터 부르고 다른 회원들에게 누를 끼칠 것 같아 못가고 있다는 것이 박 선생이 지켜온 인격이다.  

갓 돌을 넘긴 아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박 선생은 이날 환갑을 넘긴 아들에게 조국 통일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갓 돌을 넘긴 아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박 선생은 이날 환갑을 넘긴 아들에게 조국 통일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공연히 물었다. 아드님 한분 밖에 없냐고 했더니 "그거 하나. 그것도 겨우 사업하면서 생긴 아이기 때문에..."라며 헛헛한 웃음이 되돌아 왔다.

지난 설명절에는 처음으로 통일부에서 인사가 와서 이제 돌아갈 수 있을지 잠깐 기대도 생겼다.

"우리나라가 지금 남북이 꽁꽁 묶여 있는데,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첫 발자욱은 우리 19명 가려고 했지만 여덟분 돌아가시고 11명 남지 않았나. 그분들 돌려보내게 되면 물꼬가 트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되니까 하루속히 집으로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11명 남은 중에 두번째로 나이가 젊은데 지금 87살이다. 이제 오늘 내일 하지 않나. 사랑하는 부모 형제가 있는 조국에 가서 살다 죽고 싶다는 희망이 있느니까 꼭 우리를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그것 밖에 없다."

박 선생이 자부심으로 기억하는 당생활에 대해 물었다. 1952년 5월 24일 지금은 민통선 안쪽이어서 찾아가기도 어려운 강원도 양구 문득리에서 화선입당했다. 당증번호는 '0466171'. 화선입당이란 후방에서 노동하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중에 하는 것이라 전혀 다르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
당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러 나갈 때 세포위원장에게 당증을 맡겨놓았다가 받아가곤 했는데, 반드시 돌아가 보고하겠다는 집념도 여전하다. 내년 2022년 5월 24일은 박 선생의 화선입당 70년이 되는 날이다.

그때 당증을 받아서 가슴에 다시 품고 보고하겠다는 결의가 열혈 청년을 방불케한다. 얼마전 돌아가신 박종린 선생이 1951년 화선입당했다고 한다. 

부인인 이정자 여사에 대해서 묻자 '얘기 엄마'라고 애틋하게 부르신다. 올해 나이로 82살. 다섯살 차이가 나는 부인과 당의 부름을 받을 때 황해남도 해주시 영당동에서 살았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선이 생기기 전 38선이 지나던 곳이었다.

가족 소식을 들은 바 있느냐고 묻자 박 선생은 "내가 그런 걸 원치 않는다. 왜 그러냐하면 1962년 북에서 나올때 기준으로 모두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내가 여기 나와 있으니 당에서 다 보호해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 잘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만 있다"고 말했다.

양희철 선생(왼쪽)이 
양희철 선생(왼쪽)이 박희성 선생의 1인 시위에 함께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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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기자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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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평] 역대 최대 국방비의 허상?

[조영남의 프레시眼]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21907335591994#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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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오밤중 “강남역 폭탄 설치” 허위신고 40대 남성 검거…경찰관 20여명 출동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입력 : 2021.02.18 09:50 수정 : 2021.02.18 10:01

 

[단독]오밤중 “강남역 폭탄 설치” 허위신고 40대 남성 검거…경찰관 20여명 출동
 

오밤중 강남역에 폭탄을 설치했다고 허위 신고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8일 “강남역에 폭탄을 설치했다”고 허위 신고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A씨를 검거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전 1시30분쯤 “강남역에 폭탄을 설치했다. 내일 아침에 터지게 하겠다”고 112에 신고했다. 이에 경찰관 20여명이 현장에 출동해 강남역 일대를 수색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은 강남역 일대를 수색하던 중 A씨를 발견했다. 경찰이 신분 확인을 시도하자 A씨는 욕을 하고 달려드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경찰이 A씨를 붙잡은 뒤 “허위 신고였냐”고 추궁하자 그제서야 범행 일체를 시인했다. 그는 “조현병 환자다. 경찰이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아 열 받아서 허위 신고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180950011&code=910100#csidx28c5e1514f1af35b3f05e6dec97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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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기고] 백기완 선생님의 눈물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발행 2021-02-18 09:03:56
수정 2021-02-18 09:25:42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2월 15일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그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는 다급한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선배는 선생님의 운명을 전했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기어코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선생님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5년 전 쯤, 민주노총에서 무슨 회의를 하던 중에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회의 중이었지만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선생님은 울고 계셨습니다.

2015년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한겨울 오체투지 행진 중 참가자들이 경찰에 연행되자 눈물 흘리는 백기완 선생 모습.
2015년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한겨울 오체투지 행진 중 참가자들이 경찰에 연행되자 눈물 흘리는 백기완 선생 모습.ⓒⓒ이정용.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내 동생 박래전의 유고시집 [반도의 노래] 중에 나오는 시 한 편을 읽으셨습니다. “어떡할려고 그러니 이노무 새끼들아/난 어떡하라고 두 형제가 다 유치장에 있어/나와라/나와서 이야기 좀 하자/어떡하란 말이냐”(박래전의 유고시 ‘어머니 말씀’ 중에서) 이 대목을 읽으시면서 우시는데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1986년 나는 감옥에 가 있었고, 동생은 노량진 경찰서 유치장에서 구류를 살고 있었습니다. 전두환 독재와 싸운다고 두 형제가 감옥에 가 있는 기막힌 현실, “래군아, 그런 래전이가 그러고도 몸을 불살라 죽었고…어머님 생각 많이 나서 전화했어. 바빠도 자주 찾아뵙고…” 당부의 말씀도 다 끝내지 못하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선생님은 만나실 때마다 어머님의 안부를 묻고는 하셨습니다.

동생 박래전은 1988년에 “광주학살 원흉 처단”을 외치면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 뒤에 장례위원장을 맡으셨던 분이 50대의 백기완 선생님이셨습니다. 동생은 1987년 민중후보 백기완 선거대책본부에서 학생선거대책본부 일을 했고, 그런 동생을 선생님은 기억하셨습니다. 나는 동생의 장례식 그때부터 선생님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마이크를 잡았다 하면 사자후를 토하며 대중들을 격분시키는 천하의 백기완 선생님의 눈물을 나는 자주 보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시대의 전사였던 선생님의 그 눈물을 기억합니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거리로 내몰린 철거민들의 아픔과 분노의 현장에서, 아이들을 잃은 세월호 엄마, 아빠들의 손을 잡아주고 돌아선 뒤에서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강인한 모습이셨지만, 그런 뒤에 흘리시던 눈물은 이 시대의 아픔입니다.

선생님은 늘 거리의 현장에 서셨습니다. 거리의 전사였습니다.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가 이어지던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선생님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던 촛불집회에 매주 나오셨습니다. 맨 앞자리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서 집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살을 에는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를 견디셨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이젠 들어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려도 한사코 그 자리를 지키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선생님은 그날의 집회장에 나오기 위해서 전날부터 물이며 음료수를 거의 마시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워낙 많은 인파가 운집하던 촛불집회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집회에 나오셨다가는 앓아누우셨다가 다시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나오시던 80대 노전사를 기억합니다. 선생님은 촛불집회 그때처럼 투쟁의 거리를 당신이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 지팡이를 짚고 지키셨습니다. 평생 소원이 거리에서 죽는 거라고 말씀하시고 온몸으로 실천하셨던 그 모습을 기억합니다.

 
2017년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규탄과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 촛불집회 참석한 백기완 선생
2017년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규탄과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 촛불집회 참석한 백기완 선생ⓒⓒ채원희.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운명하시기 2년 전부터는 아예 병원에 입원하셔서 밖으로 나오시지 못했습니다. 마침 세상을 덮친 코로나로 인해서 병문안도 여의치 않은 가운데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번갈아가며 병상에 계셨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1년 전부터는 목에 삽관까지 해서 목으로 말도 하실 수 없었습니다. 손은 너무 떨렸습니다. 그런 손으로 병상에서 한 글자 한 글자에 당신이 남은 마지막 숨결까지 불어넣으며 써낸 글씨들을 봅니다.

“유월항쟁은 이제 다시 일어나라는 역사의 함성”
“김진숙 힘내라”
“노동해방”

몇 글자 되지 않는 저 짧은 글귀를 쓰기까지 1주일에서 2주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마지막 남은 힘마저 집중해서 써내셨던 그 글귀를 기억합니다. 저 글귀는 평소 선생님의 우렁우렁한 웅변의 말씀보다 더 진하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실 때까지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의지를 봅니다.

백기완 선생이 2020년 6월10일 병상에서 쓴 글, ‘유월항쟁은 이제 다시 일어나라는 역사의 함성 백기완’
백기완 선생이 2020년 6월10일 병상에서 쓴 글, ‘유월항쟁은 이제 다시 일어나라는 역사의 함성 백기완’ⓒ백기완 선생 장례위원회
백기완 선생이 지난해 7월에 복직투쟁에 나선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쓴 글씨
백기완 선생이 지난해 7월에 복직투쟁에 나선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쓴 글씨ⓒ백기완 선생 장례위원회
백기완 선생이 병상에서 힘겹게 남긴 글씨 중 하나로 지난해 11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보름에 걸쳐 쓴 ‘노동해방 백기완’
백기완 선생이 병상에서 힘겹게 남긴 글씨 중 하나로 지난해 11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보름에 걸쳐 쓴 ‘노동해방 백기완’ⓒ백기완 선생 장례위원회

앞자리에 앉아계신 것만으로도 힘이 되셨던 선생님이 이제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이제 누굴 의지하고 투쟁의 길을 헤쳐가야 할지 암담하기만 합니다. 당장의 현안만이 아니라 멀리 큰 길을 걸어가는 우직한 발걸음을 한시도 늦추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모습, “역사의 허무주의와 싸워라”고 하시던 그런 말씀을 이제 누구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요?

날로 쇠해지시던 노구의 선생님을 걱정하면서 거리의 투쟁 현장으로 불러내는 역할을 많이 했던 한 사람으로 89년 일생의 선생님을, 입관 때 평안히 잠든 듯한 모습의 선생님을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뵈었습니다. 선생님,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그 수고에 너무 많이 빚졌습니다. 선생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선생님을 기억하며 선생님께 진 빚 갚기 위해서 더욱 분투하겠습니다. 역사의 허무주의에 빠져서 한탄하지 말라는 그 말씀 새기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쉬셔도 됩니다.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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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폭등 원인, 2018년 은마아파트에서 벌어진 일

[국회 용역 연구 공개-서울 4개 단지 아파트 등기부등본 분석] 임대주택등록제가 불러온 비극

21.02.18 07:12l최종 업데이트 21.02.18 07:12l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 아파트값이 폭등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실증적으로 밝히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지난 8일 한국도시연구소는 국회사무처의 용역의뢰를 받아 서울 주요지역 아파트 단지의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서울의 강남, 강북 및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의 4개 단지, 총 1만 1155호의 소유권과 실거래가 등을 분석한 결과는 아파트 가격 급등의 원인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연도별 가격상승을 분석한 결과에서 눈에 띄는 사실은 4개 단지 모두 '2018년' 가격이 폭등했다는 점이다. 은마아파트의 경우 2018년 한 해에만 무려 3억 6000만 원(31평 3억 5800만 원, 34평 3억 6265만 원)이 폭등했다. 박근혜 정부 4년간(2013~2016년)의 상승폭 3억 4000만 원보다 더 올랐다.  문재인 정부 4년간 무려 8억 2000만 원(31평 7억 8759만 원, 34평 8억 5738만 원) 상승했는데, 특히 2018년 무섭게 폭등한 것이다.


또 하나 특이한 사실은 가격이 폭등한 2018년 은마아파트의 거래량이 급감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급등하면 차익을 실현하려는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고, 따라서 거래량이 급증한다. 그런데 2018년 은마아파트 거래량은 146채로, 2017년 거래량 322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매우 희한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가격은 폭등했는데 거래는 급감한 희한한 상황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부담금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며 강남 재건축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76㎡는 연초 호가가 최고 16억5천만 원까지 올랐다가 최근 2억원 떨어진 14억5천만∼15억 원에 매물이 나오지만 거래가 잘 안된다. 사진은 2018년 5월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  은마아파트는 문재인 정부 4년간 무려 8억 2천만 원(31평 7억 8759만 원, 34평 8억 5738만 원) 상승했는데, 특히 2018년 무섭게 폭등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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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격이 4억 원 가까이 폭등했는데도 집주인들은 집을 팔지 않았을까? 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2017년 말 은마아파트의 실거주 비율은 35.2%였다. 전체 4421채 중 약 3000채가 실거주가 아니라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 혹은 투기목적의 주택 소유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값이 폭등하는데도 집을 팔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그 특별한 이유는 바로 '임대주택 등록'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13일 '임대주택등록 활성화방안'을 발표하여 임대주택으로 등록만 하면 모든 세금을 거의 안 내게 해주겠다고 공표했다.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이 홍보영상을 통해 "정부가 세제와 금융혜택을 준비했으니 다주택자분들은 보유주택을 임대주택으로 등록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한 발언은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임대주택에 대한 세제혜택은 실로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재산세를 50~100% 감면하고, 임대소득세를 약 90% 감면해준다. 종부세는 전액 감면하고, 시세차익에 대한 양도세도 10년 임대할 경우 100% 감면하겠다고 약속했다. 전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도 임대주택 소유주들에게는 무려 80%를 감면해줬다.

2018년 한 해에만 은마아파트는 무려 162채의 임대주택이 등록되었다. 참고로 그해 거래량은 146채였다. 거래량을 뛰어넘어 임대주택이 등록된 셈이다. 김현미 장관이 권유한 대로 다주택자들이 보유주택을 매도하지 않고, 임대주택으로 등록함으로써 거래량이 급감한 것이다.

다주택자들은 오히려 주택을 추가로 매수하여 임대주택으로 등록했다. 임대주택에 대한 세금특혜로 다주택자의 매도는 급감하고 추가 매수가 발생했으니, 집값이 폭등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다주택자, 매도 대신 추가 매수하며 임대주택 등록
  
은마아파트 등 강남구 아파트값 8개월 만에 상승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2019년 6월 셋째 주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은 지난주 대비 0.02% 올랐다. 강남구 아파트값이 오른 것은 2018년 10월 셋째 주 이후 34주 만이다. 사진은 14일 서울 강남구 한 부동산의 모습.
▲  2017년 12월 13일,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은 "정부가 세제와 금융혜택을 준비했으니 다주택자분들은 보유주택을 임대주택으로 등록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가격이 폭등한 2018년 한해에만 은마아파트는 무려 162채의 임대주택이 등록되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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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분석 대상인 아파트 단지 4곳에서 동일하게 발생했다. 마포 래미안 아파트는 2018년 한 해에만 24평형은 2억4000만 원, 34평형은 3억 9000만 원이나 폭등했는데, 이는 2016~2017년의 2년간 상승폭의 약 2.5배에 달했다. 2018년 거래량은 150채로 전해인 2017년 거래량 312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해 래미안 아파트 단지에는 127채의 임대주택이 등록되었다.

다주택자들이 보유주택을 매도하지 않고, 추가로 매수하여 임대주택으로 등록했고, 그 결과 가격이 폭등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해인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가 '8.2 대책'에서 양도세 중과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당시 청와대 수석이었던 김수현은 "(6개월의 유예기간 동안) 다주택자들에게 주택을 팔 기회를 드리겠다"라며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불과 4개월 후인 12월에 다주택자인 임대사업자들에게 엄청난 세금특혜를 제공했다.

앞에서는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뒤로는 양도세 중과는커녕 '전액 면제'라는 특혜를 베풀었다. 문재인 정부의 제스처를 믿고 내집마련을 미룬 무주택자는 '벼락거지'가 되고, 세금특혜를 노리고 주택투기에 뛰어든 다주택자들은 '벼락부자'가 되었다.

벼락부자와 벼락거지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특혜의 영향은 비단 아파트 가격 폭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향후 아파트 가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2020년 '7.10대책'에서 아파트 임대주택의 만기가 도래하면 임대등록을 종료하여 세금특혜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단계적으로 만기도래하는 아파트가 종부세 부담 등으로 인해 매도가 나오고, 그 결과 아파트 가격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상당기간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다.

임대주택등록제는 4년 단기임대와 8년 장기임대의 두 유형이 있는데, 4년 단기임대는 미미하고 대다수가 8년 장기임대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는 전체 284채의 임대주택 중 77.8%가 장기임대이고, 마포 래미안은 장기임대가 79.6%다.

2018년에 주택을 매수한 이들은 2026년이 되어야 임대기간이 만료되므로 그때까지 종부세 전액 감면 등 엄청난 세금특혜를 누린다. 그런 세금특혜를 포기하면서 매도할 임대사업자는 없을 것이므로 이들 단지의 매도는 급감할 것이고, 아파트 가격의 하락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회용역보고서 "임대주택등록제는 존치할 이유가 없음"
 
 정부가 25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4일 남한산성에서 바라 본 서울 모습. 정부는 서울 등 대도시의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2025년까지 서울에만 32만호 등 전국에 83만6천 호의 주택을 공급을 목표로 한다.
▲  문재인 정부의 제스처를 믿고 내집마련을 미룬 무주택자는 "벼락거지"가 되고, 세금특혜를 노리고 주택투기에 뛰어든 다주택자들은 "벼락부자"가 되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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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여당은 엄청난 세금특혜를 제공하면서 임대주택제도를 유지해야 할 이유에 대해 궁색한 변명을 내놓는다. "전월세 안정"이니 "세입자의 주거안정" 등을 이야기하지만, 이런 긍정효과는 거의 없거나 있어도 미미하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준구 명예교수는 "이 제도의 긍정적 효과는 거의 영(0)에 가깝다"라며 "정부는 아무 실익도 없는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수조원의 조세수입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내놓은 정책제안은 매우 단순하다.
 
"등록임대주택 소유주에 주어지는 과도한 세제혜택이 (7.10대책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어, 수억원에 이르는 불로소득이 제대로 과세되지 않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음."

"임대주택등록제는 존치할 이유가 없음. 아파트 외의 주택유형에서도 장기일반민간임대주택을 폐지할 필요가 있음."


이 연구소는 임대주택에서 발생하는 소득은 불로소득이므로 이에 대한 세금특혜를 전면 폐지하고, 모든 주거 유형에 대한 임대주택제도를 폐지하라고 권고한다.

사실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정상적으로 급등한 집값을 원상회복시키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연구 결과가 명확하게 보여주듯 임대주택에 대한 엄청난 세금특혜를 폐지하지 않으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폭등한 가격에서 하락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 시민의 절반이 넘는 무주택자들이 극심한 고통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멈추기 위해서는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특혜제도가 신속하게 폐지되어야 한다. 객관적인 분석과 정책제안을 제시한 보고서를 받아든 국회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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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사령탑 흔든 민정수석 사의 파동에 신문 모두 1면

[아침신문 솎아보기] ‘모를 리 있나’ 대통령 의중에 쏠린 눈
한국일보, MB국정원 정치인 사찰문건 공개… 요양병원 노인 접종 “연기 말았어야”
 
 

 

18일 아침신문들은 전날에 이어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파동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청와대의 ‘문 대통령은 검찰 고위간부 인사안이 조율된 줄 알았다’는 해명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 모으는 한편 문 대통령의 재가 배경에 제각각 관측과 의문점을 내놨다.

신문들은 1면에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둘러싼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과 신 수석의 사의 표명 과정에 대한 해설 기사를 냈다.

▲18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18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청와대는 17일 신 수석이 검사장급 인사를 두고 박 장관과 갈등을 빚은 뒤 문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사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신 수석은 검찰과 법무부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했는데, 조율이 진행되는 중에 인사가 발표된 탓에 사의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며 “법무장관의 안이 (민정수석과) 조율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에게) 보고가 되고 발표됐다”고 말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청와대 고위 참모의 사의 표명 사실을 사표가 수리되지도 않은 단계에서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신문들에 따르면 신 수석은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서 ‘추미애 라인’으로 꼽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박 장관은 신 수석으로부터 의견을 전달받고도 이 지검장은 유임시키고 심 국장은 요직인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이동시키는 인사안을 문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뒤 재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일보는 검찰 간부 인사의 휴일 단행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대검도 인사 발표 한시간 전쯤 관련 소식을 통지받았으며, 신 수석과 박 장관이 8~9일 최종 조율을 위해 만날 예정이었는데 이 과정이 생략됐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벽에 부딪힌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포용 구상’”에서 “가까스로 수습되는 듯했던 ‘추·윤 사태’가 ‘신·박 갈등’으로 재연되는 모양새다. 조율되지 않은 검찰 고위간부 인사안을 최종 사인한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18일 경향신문 1면
▲18일 경향신문 1면

한국일보는 “검찰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촉발한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표명 후폭풍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할 수밖에 없다”며 “문 대통령은 새해 들어 검찰과의 '화해 무드'를 말했으나, '검찰과 타협할 생각은 없다'는 점을 인사로써 증명했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전현직 (검찰) 간부들은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이 4일 백 전 장관 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인사 조율 실패’의 결정타가 됐을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는 1면 머리 분석기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검찰개혁 과정에서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조직 사이에 누적된 갈등 수위가 그만큼 높다”고 풀이했다. 한겨레는 “검찰과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임기 중 처음으로 발탁한 검찰 출신 민정수석마저 검찰 인사를 둘러싼 정권 수뇌부와의 갈등 끝에 직을 던지겠다고 나선 것부터 심상찮은 신호”라며 “일각에선 신 수석의 사의 표명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아닌 문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문 대통령의 거듭된 만류에도 사의를 굽히지 않고 있다”며 “특히 신 수석이 설 연휴 이후 재차 사의를 표명한 뒤 주변에 ‘자세를 변치 않는다’고 한 건 결국 물러나겠다는 의지”라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국민의례 장면을 찍은 사진을 배치하고 문 대통령과 신 수석만을 컬러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흑백으로 처리했다.

▲18일 동아일보 1면
▲18일 동아일보 1면
▲18일 한겨레 1면
▲18일 한겨레 1면

문 대통령이 인사안을 재가할 당시 해당 사안이 조율되지 않은 사실을 알았는지를 두고도 추측이 나왔다. 청와대는 박 장관이 조율되지 않은 인사안을 문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고, 문 대통령은 신 수석과 조율을 마친 것으로 알고 재가해 발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애초 이번 검사장급 인사를 앞두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전임자인 추미애 장관 시절 누적된 검찰 조직의 불만을 다독이기 위해 윤 총장 쪽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출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며 “하지만 발표된 인사안에선 윤 총장 쪽 의견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한겨레는 “법무장관이 민정수석을 건너뛰고, 그조차 ‘수석과 협의가 된 것처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면 자칫 ‘월권’이나 ‘기망’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취임 전후 윤 총장과의 소통, 허심탄회한 대화 등을 강조한 박 장관 발언에 비춰, 이번에는 ‘윤석열 패싱’ 논란이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고 봤는데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며 “검찰 주변의 대체적 분석은 (인사안이) 박 장관보다는 청와대 의중이라는 데 맞춰졌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1면 상단 기사에서 “신 수석이 설 연휴 전 문 대통령에게 처음 사의를 표명했을 땐 문 대통령이 수리할 뜻을 내비쳤다고 17일 복수의 여권 관계자가 전했다”며 “여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4·7 재·보선에 미칠지 모를 역풍을 우려해 사의 만류 쪽으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고 했다.

▲18일 조선일보 1면
▲18일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서 신 수석이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사찰 의혹에 대해 ‘청와대는 개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지난 16일 청와대 비공개 회의 때 선거법 위반 소지를 이유로 이같이 주장했으며, 문 대통령에게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빨리 지명해야” 하고 “고위공직범죄수사처도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입장도 전달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 관계자가 “신 수석이 갑자기 국정원 이야기를 꺼내서 좀 놀랐다”며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한 상황에서도 자기 의견을 계속 표명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월성원전 비리 의혹과 관련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시점과 맞물리면서 항의 차원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왔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국정사령탑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난맥상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도대체 청와대에 내부 조정 기능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밝힌 뒤 “문 대통령은 신 수석의 사표 부분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 법적으로 검찰 인사는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하도록 돼 있어 신 수석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문 대통령이 박 장관의 의중을 받아들여 인사를 결정했다면 신 수석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민정수석조차 패싱하는 인사 난맥이 계속된다면 검찰개혁의 완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게다가 민정수석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법무·검찰의 이견 조율 아닌가”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검찰 출신인 신 수석은 노무현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근무한 대선 캠프 출신이다. 오죽하면 이런 사람조차 반발하겠나”라며 “정작 중요한 검찰 인사를 보니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윤 총장에 대한 지지 여론을 희석하려고 벌인 쇼에 불과했던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 MB국정원의 배진교 사찰문건 공개

한국일보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의 조직적 정치인 사찰 문건 원본을 공개했다. 한국일보는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인천 남동구청장이던 2011년 국정원 사찰 문건을 이미지 파일과 함께 보도했다.

▲18일 한국일보 1면
▲18일 한국일보 1면

한국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1년 9월15일 생산한 ‘'야권 지자체장의 국정운영 저해 실태 및 고려사항’ 문건에서 “일부 야권 지자체장은 국익과 지역 발전보다는 당리당략ㆍ이념을 우선시하며 국정기조에 역행하고 있어 적극 제어가 필요하다”고 썼다. 문건의 사찰 대상은 광역 지자체장 8명과 기초 지자체장 24명으로, 당시 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과 민주노동당(정의당 전신) 소속이다. 문건은 야권 지자체장 32명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분석한 ‘총론’과 개인별 문제를 나열한 ‘붙임’ 부분으로 구성된다.

한국일보는 “14쪽 분량의 문건엔 이명박 정부가 야당을 어떻게 규정하고 다루려 했는지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며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에 대해 ‘종북’ ‘이념 오염’ ‘주민 현혹’ ‘국가 정체성 훼손’ 등의 표현을 쓴 것은 사찰의 잣대가 ‘색깔론’이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지자체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보수 단체 지원을 축소하고 △‘종북ㆍ좌파’ 인물을 주요 보직에 중용하고 △‘좌파 강사’를 동원한 강연회를 열었기 때문에 나쁘다고 했다. 배진교 당시 남동구청장에 대해서는 “‘부모스쿨’(150명)을 운영하며 강사진에 전교조ㆍ민노총 출신을 배치했다”고 했다.

▲18일 한국일보 5면
▲18일 한국일보 5면

국정원이 정부 부처를 동원해 야당 지자체를 압박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행정안전부에는 교부세 감액과 지방채 발행 중단 등 불이익과 함께 “국정에 협조하는 지자체”에는 특별교부세와 총액인건비 등 인센티브를 주도록 했다. 감사원에는 “종북 단체의 사회단체 보조금 부당사용 여부를 면밀히 점검하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사찰이라고 하지만, 동향 파악 수준 아니었겠냐’는 정치권 일각의 추측을 무색하게 한다. 무엇보다 국정원은 야당 소속 지자체장들의 약점이 될만한 부분을 세세하게 파악해 문건에 표를 만들어 일일이 기록한 것은 물론이고 이들을 압박하기 위한 정부 부처별 ‘액션 플랜’까지 짜서 내려보냈다”고 했다.

최우선에서 후순위 밀린 고령자 접종 ‘연기 말았어야’

중앙일보는 1면 머리기사 “요양병원 노인은 AZ라도 맞고 싶다”에서 보건당국이 요양병원 노인 37만700명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두 달가량 미루면서 고위험 노인들이 여전히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달 국회에서 백신 접종 우선순위로 의료시설 종사자와 요양시설의 고령 환자를 최우선으로 꼽았는데, 오락가락 끝에 요양시설 노인을 후순위로 밀어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질병청은 지난달 28일 AZ백신을 요양시설 환자와 종사자에게 맞히겠다고 했고, 이달 1일 식품의약품안전처 검증자문단도 ‘고령자 투여를 배제할 이유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5일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부정적 의견을, 8일 질병청 브리핑에 참석한 전문가는 강한 긍정 의견을 냈고, 10일 식약처는 ‘의사가 판단하라’는 의견을 낸 뒤 15일 질병청은 보류를 확정했다. 중앙일보는 식약처의 “우리는 자료를 근거로 과학적 판단만 한다. 노인에게 맞힐지 말지는 방역이나 백신 수급 상황을 고려해 질병청이 결정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18일 중앙일보 1면
▲18일 중앙일보 1면

15일 기준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전체 사망자의 40%가 요양병원·요양원 관련 사망자다. 지난해 12월~올 1월 요양병원에서만 219명이 숨졌다. 중앙일보는 “앞으로 두 달간 요양병원·요양원에서 300~400명이 더 숨질 가능성이 크다. 80대는 전체 사망률의 11배, 70대는 3.5배에 달한다”며 “대한요양병원협회가 15일 ‘원하면 AZ백신을 맞게 해달라’고 질병청에 정식으로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칼럼 “고령자 백신접종, 연기하지 말았어야 했다”를 내보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의 150만명 접종 사례를 검토한 결과 특별한 부작용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감염 예방에 중요한 항체 형성 능력은 고령자에서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 정 교수는 “백신의 65세 이상 접종 여부가 특별히 관심을 모은 이유는 유럽 일부 국가에서 자료 부족을 이유로 사용을 보류하였기 때문”이라며 “연구 결과의 대상자 가운데 70세 이상은 단 5%뿐이어서, 과연 노령자에게도 동일한 효과가 있는지가 쟁점”이라고 했다.

▲18일 한국일보 27면
▲18일 한국일보 27면

정 교수는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감염 예방 효과는 74.6% 이상 효과를 보이며 중증화 방지 효과는 매우 좋았다”며 “이미 영국에서 접종 중인 백신이며,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 규제 당국이 승인한 백신이므로 그 효과와 안전성은 최소한의 기준을 넘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 발표에서도 안전성, 면역 형성 능력에 대한 근거는 확보되었다는 표현이 수차례 등장한다. 이 때문에 ‘안전하고 효과적이지만 근거가 모자라서 접종을 연기한다'는 말은 모순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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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의 시기, 국민부터 살리고 평화·번영의 약속 지켜야

민중공동행동,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중단 촉구...'단 한푼도 줄 수 없다'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2.17 16:41
  •  
  •  수정 2021.02.17 16:46
  •  
  •  댓글 0
 
민중공동행동을 비롯한 참가단체들은 17일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진행중인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 협상이 미국의 요구만 반영된 굴욕적인 협상이라며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중공동행동을 비롯한 참가단체들은 17일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진행중인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 협상이 미국의 요구만 반영된 굴욕적인 협상이라며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Special Measures Agreement)이 전년 대비 13% 인상안으로 타결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69개 단체가 망라된 민중공동행동을 비롯한 참가단체들은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타결 임박 소식이 전해진 한미SMA가 미국의 요구만 반영한 굴욕적인 협상이라며,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지금껏 한번도 있어 본적이 없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나라의 형편은 최악의 실업률과 초유의 경제위기에 몰려 있는데,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을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상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나아가 "미국이 중국 침략전쟁을 위해 운용하는 군대에 한국정부가 왜 비용을 지원해야 하는가?"라며 주한미군 주둔비를 지원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미국 무기를 필수적으로 구매하고 국방예산을 의무적으로 늘려야 할 조건을 달면서 13%나 인상하는 것은 외교적 성과가 아니라 '미국 종속적 외교행태'의 반복"이며, "더군다나 이러한 굴욕적인 내용을 다년계약한다는 것은 스스로 미국에 목줄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미국 CNN 방송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5일부터 조 바이든 행정부와 한미 SMA 회의가 재개되어 13%인상안과 다년계약으로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 

13% 인상안은 지난해 3월 한국 정부가 트럼프의 500% 인상안과 조율하기 위해 제시하여 실무선에서는 합의했으나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해 불발된 안.

이 때문에 다년계약이 구체화될 경우 '향후 연간인상률'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9년 말 협정 유효기간이 끝난 후 사실상 표류상태였다가 지난해 3월 한국 정부는 50% 인상안을 내놓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첫해 13%인상, 이후 4년간 7~8%의 상승률을 적용하는 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첫해 분담금이 약 1조 1,739억원이고 마지막 5년차엔 1조5,900억원이 된다. 이렇게 되면 2019년 방위비분담금 1조389억원의 50%인상에 가깝게 되어 트럼프의 50% 인상요구와 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왼쪽부터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은형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윤희숙 진보당 공동대표, 장유진 진보대학생넷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왼쪽부터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은형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윤희숙 진보당 공동대표, 장유진 진보대학생넷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경제가 바닥을 치고 민생이 형편없이 어려워졌는데 주한미군 주둔비를 13%로 인상한다니, 이게 과연 어느 나라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냐"고 하면서 "굴욕적인 주둔비 협상을 중단하지 않으면 국민 촛불이 청와대를 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지난해 56일간의 우기와 3번의 태풍으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었지만 올해 농업예산은 2.9% 증액에 그쳤다"며, "주한미군 주둔비로 13% 인상 운운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 겸 통일위원장은 "지금 코로나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중소영세업체들은 하루에 수십개씩 폐업, 도산되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며, "국가적 대재앙의 시기에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국민부터 살려야 한다. 자주와 평화, 번영의 길로 가자고 했던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희숙 진보당 공동대표는 "정부 협상단은 미국과의 협상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현재 우리 국민들이 당하고 있는 고충을 반영해서 새로운 협상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방위비분담금은 인상이 아니라 삭감되어야 한다. 이것이 국민들의 뜻이다"라고 밝혔다. 

장유진 진보대학생넷 대표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교육개혁 등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정작 정부는 청년학생과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는 남북합의를 통해 줄이기로 한 국방비와 주한미군 주둔비를 인상하려고 하는 것은 합의 위반"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바이든 정부가 방위비분담금협상 조건으로 한국정부에게 무기구매와 국방예산 확대를 조건으로 13%인상안에 동의하는 협상안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중공동행동은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보다 5배를 인상한 50억달러를 요구하면서 기존 항목의 대폭 인상과 더불어 전략자선 전개비용, 연합훈련 비용, 주한미군 수당과 군무원 및 가족지원 비용 등 주한미군 주둔비용 일체를 한국에 요구한 것도 문제지만, 바이든 정부의 협상안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정부는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특정 군사장비를 구매하고 국방예산을 의무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조건으로 13% 인상에 동의하겠다는 협상안을 갖고 있다며, 이는 "예산에 대한 주권 침해이자 우리 세금을 강탈하는 강도짓"이라고 비판했다.

방위비분담금은 인건비를 제외한 주한미군 주둔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협의의 분담금을 의미하는데,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에 근거하여 2~5년 주기로 특별협정(SMA) 협상에 의해 분담액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주한미군 기지에 대한 평택이전 사업이 마무리된 만큼 그동안 한국이 부담해오던 주한미군 주둔비는 오히려 줄여야 하고, 근본적으로 미국이 주한미군을 한반도 방어가 아니라 '인도태평양사령부 소속으로 대중국전략과 연계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방위비분담금의 명분이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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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이 진보 목소리 안 내니 노동자·농민·빈민 다 떨어져 나가”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진보정당이 진보 목소리 안 내니 노동자·농민·빈민 다 떨어져 나가”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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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지난 15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진보정당의 위기를 진단하고 별세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지난 15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진보정당의 위기를 진단하고 별세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80)의 굴곡 많은 인생은 빨치산이었던 부친에서 시작된다. 그가 “평화통일 시대를 여는 것은 가슴에 새긴 아버지와의 약속”이라고 한 것도 그 연장이다. 서울신문 파리특파원을 지낸 그는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언론노조 초대 위원장을 시작으로 민주노총 설립, 민노당 창당을 주도했다. 1997년, 2002년, 2007년 대선에 출마하고, 17~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첫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지 21주년이 되었다. 2000년 1월30일 창당한 민노당이 2004년 17대 총선에서 원내 진입에 성공한 이후 진보정당은 제도권 정치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민노당은 비록 의석수가 10석이었지만 존재감은 무거웠다. 민노당이 주창한 무상급식·경제민주화 등은 정치권의 주요 의제가 됐다.

그러나 지금 진보정당의 위상은 초라하다. 정의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겨우 6석을 건졌다. 비례위성정당 창당 등 거대 양당의 농간 탓이 크지만 스스로 대안정당의 비전과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에는 당을 쇄신하겠다며 기치를 든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까지 터졌다. 진보정당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이 나왔다.

민노당 10석을 이끈 권영길 전 민노당 대표(80)이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권 전 대표는 지난 15일 “진보정당이라면 무릇 민중의 투쟁 현장, 민중의 바다에서 살았어야 하는데, 정의당에는 그런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를 타도하자고는 못하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말을 못하면 진보정당이 아니다. 정의당이 무엇을 가지고 진보정당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정의당에서 부각된 것은 ‘데스노트’라는 것 외에 없다”고도 했다. 평소의 화법보다 더 날을 세운 것이다.

인터뷰 당일 공교롭게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별세했다. 권 전 대표는 “강인한 인상과 우렁찬 대중연설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섬세하고 눈물이 많으신 분”이라며 “(그의 부재로) 외롭다”고 했다. 근황과 더불어 진보정당의 화양연화인 민노당 시절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 2012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 정계은퇴를 했다. 어떻게 지내시나.

“사단법인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를 만들어 남북 철도 연결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2018년 남북 정상이 판문점과 평양에서 만나 남북간 첫번째 이행사업으로 남북 철도 연결·현대화에 합의했다. 그런데 미국의 대북 제재에 가로막혔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거리 두기가 강화되기 전까지 매주 미국대사관과 서울역 앞에서 대북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16일부터 한 달간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라는 1인 시위를 한다. 이번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될 수밖에 없다.”

- 진보정당이 정치권에 자리를 잡은 계기가 2004년 총선이다. 민노당이 원내에 진입할 당시 상황이 어땠나.

“국회에 처음 등원할 때 민노당 10명의 의원이 국회 정문에서 본관까지 횡대로 걸어갔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국회 앞에서 투쟁할 때마다 ‘노동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의원 한 사람만 있었으면…’ 하고 갈망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만든 민노당 의원 10명이 국회에 진입했으니 그 감격이 어땠겠느냐.”

‘진보정당’의 성과와 한계 

민노당, 2004년 ‘10석’ 원내 진입
무상급식 등 주요 어젠다 이끌어
정의당을 왜 진보정당이라 하는지
부각된 건 ‘데스노트’밖에 없는데
 

- 민노당이 원내에 진입한 뒤 국회가 크게 변했다는 평이 많았다.

“거대 정당의 벽은 두꺼웠지만 민노당이 소금 역할을 제대로 했다. 가장 큰 성과는 진보의제를 보편화시킨 것이다. 민노당이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부유세와 함께 내걸었을 때 허황된 소리라고 했다. 지금 무상급식은 전국 어디서나 이뤄지고 있다. 고교 무상교육도 전면 실시된다. 경제민주화는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웠다.”

- 국회도 챙기고 현장도 다녀야 했으니 무척 바빴겠다.

“지금도 초기 감격은 순간이었고 이후 고난의 세월은 길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구속·수배와 단식농성으로 투쟁한 사람들이 의원이 된 뒤에도 또다시 단식농성으로 세월을 보냈다.”

- 그러다 당이 민노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하면서 당세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분당 후 지금까지 당적을 안 가지고 있다. 지금도 정의당과 진보당이 있는데, 민노당 대표를 지낸 내가 어느 쪽에 몸을 담겠느냐. 진보정당이 통합해 하나의 정당이 될 때 그 당에 입당하겠다. 진보정당 당원이 될 날을 지금도 꿈꾼다.”

- 김종철 전 대표가 정의당 대표가 됐을 때 진보정당의 재건을 기대한 사람이 많았는데, 성추행이 터졌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 성추행 사퇴’라는 TV 자막을 보고 한동안 멍했다. 정신을 차리면서 첫번째 든 생각이 ‘진보정당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거지’였고, 두번째는 ‘종철이는 어떻게 되는 거냐’였다. 그리고 세번째로 피해자를 생각했다. 이내 나부터 반성했다. 가장 먼저 피해자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 정의당이 김 전 대표를 제명하고 오는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그 정도로 문제가 치유될 수 있겠느냐. 뼈를 깎는 고통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당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공개 대토론의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진보정당이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또 진보정당은 노동중심 정당이어야 하는데, 지금 정의당에선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를 위해 단식한 것 정도가 전부이다. 또 ‘정의당은 젠더 정당이구나’라는 말을 듣는다. 물론 젠더, 생태, 환경은 중요한 의제지만, 근본은 노동이다.”

- 노동이 안 보인다는데, 무슨 말인가.

“민노당이 출범할 때 ‘거대한 소수전략’을 세웠다. 국회에서는 소수지만, 노동자와 농민, 빈민 등 거대 세력을 등에 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의당의 무대는 민중의 투쟁 현장이다. 이념상으로도 다른 당과 차이가 분명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이익공유제를 이야기했을 때 국민의힘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공격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맞받아치지 못했다. 정의당이 그럴 때 ‘빈부격차 없애고, 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당내에) 외연 확장을 의식해 진보적 목소리를 안 내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니 콘크리트 지지층이 되어야 할 노동자, 농민, 빈민이 떨어져 나간다.”

백기완 그리고 노회찬 

단일화 못한 DJ·YS 한스러워해
“목소리 약하면 표 안 온다” 조언
진보통합 이야기 나누고 뜻 같이해
부재가 아쉽고 너무 가슴 아파
 

- 2000년 대선 출마 때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어록을 남겼다. 2004년 총선 때는 노회찬 전 의원이 “50년 묵은 정치 이제는 갈아엎어야 합니다.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현재 진보정당에 이런 대중의 언어가 없다고 한다.

“모두 즉흥적으로 나온 말들이 아니다.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말은 1997년 대선을 거치면서 터득한 말이다. 당시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께 ‘민노당 누구누구다’라고 소개하니 ‘정치가 밥 먹여주냐. 내 밥그릇 빼앗아가지나 말아라’고 하시더라.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살림살이’ 표현이 나온 것이다. 노 전 의원의 불판 발언은 ‘세상을 바꾸자’는 민노당의 첫 구호에서 나왔다.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보정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움직임이 많이 희석된 거 같다.”

- 노동 외에 진보정당이 내세워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코로나19 이후의 시대가 진보정치를 부르고 있다. 성장, 이윤 창출에만 매몰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비롯된 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했다. 같은 배는 사회적 연대고, 사회적 연대는 진보적 가치의 추구에서 나온다. 또 코로나19 시대와 함께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는데, 자동차 등 각 생산 분야에 로봇이 등장하면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 ‘노동자들은 어디로 가느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이것을 진보정당이 해야 한다.”

- 더불어민주당이 거대여당이 된 뒤 내로남불식 대응으로 비판받고 있다. 이 때문에 범진보진영이 위기를 맞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민주당의 중심세력인 586세대가 군사독재 시절 개인의 영달을 좇지 않고 민주화운동을 한 것은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수구 보수 정당에 대한 비교우위, ‘민주화 투쟁의 선봉장인 우리가 국가를 운영하지 않으면 누가 국가를 운영하겠느냐’는 식의 우월감이 오만과 교만으로 흘러갔다.”

- 2012년 12월 경남지사 보궐선거 때 민주당의 지원을 받으며 무소속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했다. 어떻게 된 건가.

“2012년 총선에 불출마하면서 정치무대를 떠났다. 그런데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의 최측근 인사들이 찾아와 ‘경남지사 후보로 출마해달라. 정권교체를 이뤄야 하는데 승부처가 경남이다’ ‘박근혜 정권이 되면 노동과 진보정치 세력이 어렵게 된다’며 석 달 동안 설득했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다가 결국 수용했다.”

-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면서 나름대로 노동자들을 위한 여러 정책을 펴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여러 사람이 나에게 묻는다. 전국교직원노조 합법화는 대법원 판결로 지난해 이뤄졌다. 전교조 법적 지위 박탈은 박근혜 정부의 행정조치로 취해진 것이다. 대통령 결단으로 합법화할 수 있었는데도 직접 나서지 않았다.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협약, 단결권 및 단체교섭협약, 강제노동철폐협약 등을 담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 백기완 소장이 돌아가셨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백 선생님은 혁명을 꿈꾸는 로맨티스트였다. 노동투쟁 현장 대중연설에서 ‘노동문제는 자본주의 독점자본이 만든 병폐다. 자본을 끝장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1995년부터 매년 설과 추석, 기자촌에 있던 댁에 가서 세배했다. 그럴 때마다 술 한잔 하시고 속내를 털어놓으셨다. 언제부터인가 북쪽에 계시는 어머님, 누님 생각하면서 많이 우셨다. 저렇게 많이 눈물을 흘리시나 했는데, 한두 해 전부터 나도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 나이가 들고 세상을 등질 때가 되면 두고 가는 아들, 손자 생각도 많이 나지만 먼저 가신 부모님을 그리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

- 속내를 털어놓으셨다는데.

“1987년 대선 때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야권 단일화 압박을 받고 사퇴하게 된 경위를 말씀하셨다. 사퇴 후 김대중, 김영삼 두 후보에게 눈물을 흘리며 수없이 단일화를 촉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두 사람에 대한 분노와 한을 삭이지 못한 듯 같은 이야기를 10년 이상 하셨다. 내가 1997년, 200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도 ‘진보 후보로 목소리를 강하게 내라. 적당히 한다고 표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어떻게 

‘한·미 훈련 중단’ 1인 시위 할 것
문 정부서 남북관계 단절될 수도
진보정당 통합하면 입당하고싶다
백 선생님 보며 ‘삶 정리’ 고민도
 

- 백 선생님이 별세해서 이젠 진보진영의 어른이 된 셈인데.

“몇 년 전 백 선생님 주도로 고공농성, 장기투쟁 노동자 지원을 위한 원로모임을 만들었다. 백 선생님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걱정이다. 나도 내 삶을 어떻게 정리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

- 2018년 7월 노회찬 전 의원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부재가 아쉬울 것 같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에게 1997년 대선 출마를 강력하게 권유했던 사람이 노회찬이었다. 1997년 대선 출마, 국민승리21(민노당 전신)을 거쳐 민노당을 창당하기까지 가장 많은 날을 함께 고민했다. 진보통합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뜻을 같이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진보정당이 진보 목소리 안 내니 노동자·농민·빈민 다 떨어져 나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170600005&code=910100#csidxa6dfd989766d9ab8aab6b3a1769b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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