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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태양절 열병식에 전략미사일 시위

김정은 참석..최룡해 "우리식의 모든 선택안 다 가지고 있다"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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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5  22: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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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태양절을 맞아 15일 김일성광장에서 전략로켓군의 다수 미사일을 선보이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여러 [캡쳐사진-조선중앙TV]

북한이 고 김일성 주석의 105번째 생일(태양절)을 맞아 15일 오전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많은 미사일을 선보이는 무력시위용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열병식)를 벌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열병식은 오전 10시 5분(서울시간)께부터 시작되어 낮 12시 50분께 마쳤으며, 약 2시간 40분 동안 관영 <조선중앙TV>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김낙겸 전략로켓군 사령관이 지휘차를 타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비롯해 3종 이상의 미사일을 선보였고, 또 다른 전략 미사일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과 지난 2월 궤도식 이동발사대에서 발사한 개량형 ‘북극성-2’도 처음으로 열병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주석단에 자리 잡은 김정은 위원장은 전략로켓군의 미사일이 나타나자 유독 밝은 표정으로 경례를 올리며 열병 종대를 격려했다.

중계 아나운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1999년 7월 3일 혁명무력의 중추를 이루는 주체적 전략 로켓군의 창설을 온 세상에 선포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전략군을 소형화·정밀화된 핵타격 수단을 갖춘 강위력한 군종으로 발전시켜 주었다”며, “조국을 세계적인 핵 강국의 대열에 당당히 올려 세워 준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업적 중 가장 거대한 업적”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미국의 압력에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되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도발적 방식은 피하고 열병식에서 적극적으로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이 열병식에서 처음 선보였다. [캡쳐사진-조선중앙TV]
   
▲ [캡쳐사진-조선중앙TV]
   
▲ 궤도식 이동 발사대에 실려있는 '북극성-2'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도 선보였다. [캡쳐사진-조선중앙TV]
   
▲ 대륙간탄도미사일 KN-08 개량 추정 미사일.[캡쳐사진-조선중앙TV]
   
▲ 대륙간탄도미사일 KN-08 추정 미사일. [캡쳐사진-조선중앙TV]

이날 열병식은 김정은 위원장이 김일성광장에 도착해 도열하고 있는 인민군 육해공군과 노농적위군 등을 사열한 것을 시작으로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검은색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와 넥타이 차림으로 열병식에 참석해 특별한 연설 없이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열병 종대에 경례로 답례하고 옆 자리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박영식 인민무력상의 열병보고에 이어 최룡해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축하연설이 있었다.

   
▲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정은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축하연설을 통해 미국이 무모한 도발을 해 온다면 즉시 섬멸적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캡쳐사진-조선중앙TV]
   
▲ 김기남, 최태복, 리수용, 리만건, 오수용, 곽범기, 김영철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주석단에 자리했다. [캡쳐사진-조선중앙TV]

최 부위원장은 최근 미국 정부의 군사적 압박을 겨냥해 “미국의 새 행정부는 주권국가에 대한 군사적 폭력을 끊임없이 감행하면서 세계 평화와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조선반도에 핵전략자산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광란적인 핵전쟁도발책동을 벌리면서 일촉즉발의 위험한 전쟁국면을 조성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우리 공화국은 평화애호적인 사회주의 국가로서 누구보다도 평화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지만 결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피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며, “우리는 우리식의 모든 선택안들을 다 가지고 있으며, 미국이 추구하는 그 어떤 선택에도 기꺼이 대응해 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일 미국이 무모한 도발을 걸어온다면 우리 혁명무력은 즉시 섬멸적 타격을 가할 것이며,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에로, 핵전쟁에는 우리 식의 핵 타격전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근 북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열병식은 오전 11시를 넘겨 고 김일성 주석의 ‘태양상 초상기’를 선두로 근위부대의 열병 행군이 이어졌다. 30분에 걸친 열병 종대의 행군이 마무리되면서 김일성광장 상공에 항공군 비행편대가 김일성 주석 탄생 105돌을 상징하는 ‘105’ 숫자를 새기는 비행과 함께 장갑차를 앞세운 ‘기계화종대’가 들어섰다. 포병부대와 방사포, 항공군 로켓종대, 전략로켓군의 미사일이 뒤를 이었다.

이날 주석단에는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박봉주 내각총리, 최룡해·김기남·최태복·리수용·김평해·리만건·오수용·곽범기·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오른쪽으로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리명수 총참모장, 박영식 인민무력상, 최부일 인민보안상,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윤정린 호위사령관, 김명식 부총참모장 등이 자리했다.

   
▲ 포병부대의 장갑차. [캡쳐사진-조선중앙TV]
   
▲ 방사포부대. [캡쳐사진-조선중앙TV]
   
▲ 로켓종대. [캡쳐사진-조선중앙TV]
   
▲ 전략로켓군 행렬. [캡쳐사진-조선중앙TV]
   
▲ 항공군의 '105' 비행. [캡쳐사진-조선중앙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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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위해 친구의 죽음을 이용했던 남자

 

[프레임 전쟁] 1화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청년들의 사회변혁 열망을 “운동권의 자살방조” 사건으로 덮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7년 04월 16일 일요일

“사건번호 2014도2946 피고인 강기훈. 검사 상고를 기각한다.”

 

저 한마디를 듣기 위해 싸웠던 시간이 24년이었다. 사법부의 치욕이자 언론의 치욕으로 남은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그렇게 허탈한 마침표를 찍었다. 강기훈은 대법원 무죄확정판결이 난 2015년 5월14일 언론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1991년 사건 당시 그를 취재했던 김의겸 한겨레 기자가 강기훈에게 전화를 걸어 왜 안 나왔는지 물었다. “그냥…들러리 서기 싫어서….” 1991년 5월 김의겸 기자와 인터뷰에서 “승리는 진실로 무장하고 있는 우리의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던 이 청년은 이제 간암투병으로 쇠약해진 중년이 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체제는 역설적으로 반동적인 노태우정부와 함께 시작했다. 노동운동·통일운동진영이 노태우정부의 폭압에 맞서 연일 투쟁수위를 높여가고 있던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백골단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다. 공권력의 과잉진압은 전국적 분노를 일으켰다. 대학생들이 연달아 분신했다. 6월29일까지 스스로 목숨을 던진 이만 13명이었다. 노태우정부 반대시위는 87년 이후 최대 규모로 이뤄졌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있었다. 노태우정부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 국면을 떠올리며 노심초사했다.

 

 
▲ 1991년 5웡5일자 조선일보 김지하 칼럼.
▲ 1991년 5웡5일자 조선일보 김지하 칼럼.
 
그 때 조선일보와 시인 김지하는 구원투수처럼 등장했다. 시인 김지하는 5월5일자 조선일보 1면 칼럼을 통해 “젊은 벗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고 외쳤다. 이 시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출발점”이라고 강조하며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부독재와 싸웠던 시인의 칼럼은 역설적으로 노태우정부의 다급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5월8일 오전 8시쯤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몸에 불을 붙인 뒤 노태우 퇴진을 외치고 투신했다. 옥상에선 유서 두 장이 발견됐다. 동아일보는 사건을 목격한 서강대생 증언을 토대로 “어떤 사람이 갑자기 옥상위에서 혼자 팔을 치켜들고 구호를 외친 뒤 갖고 있던 라이터로 온 몸에 불을 붙이고 곧바로 뛰어내렸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준비나 한 듯이 이 사건이 계획됐다는 프레임을 곧바로 들고 나왔다. 김지하 칼럼이 운동권의 비인간성을 주장하는 선언이었다면, 검찰수사는 선언을 뒷받침하는 과정이었다.

조선일보는 5월9일 지면에서 “강경대군 치사사건 이후 일어난 4건의 연쇄분신사건이 방법이 유사하고 호남-영남-경기-서울 분포를 이루고 있다”고 전하며 “검찰이 분신사건에 적극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것은 이들 분신사건이 우발적이라기보다 계획적일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물론 조선일보는 “검찰이 분신사건의 계획성에 수사의 초점을 맞출 경우 운동권을 고립시키기 위한 전략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자초할 소지도 크다”고 덧붙이며 검찰의 의도 또한 눈치 채고 있었다.

정구영 검찰총장 등 검찰 관계자는 5월8일 기자들과 만나 이 사건이 계획적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한겨레 5월9일자 지면에서 대검 관계자는 “시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운동권에서 내부적으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자살을 기도한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8일 박홍 서강대 총장의 발언과 묘하게 이어졌다. 박홍은 “우리 사회에 죽음을 선동·이용하는 반생명적 세력이 분명히 있다”며 “이 세력의 정체를 폭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홍은 끝내 배후세력에 대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은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썼다. 조선일보는 5월10일자 사설에서 “교육자다운 용기 있는 발언”이라며 박홍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조작사건 당시 언론보도.
▲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조작사건 당시 언론보도.
 
제도언론은 검찰발 기사 쓰기에 급급했다. 5월9일자 조선일보는 <분신현장 2~3명 있었다 : 목격교수 진술, 검찰 자살 방조 여부 조사>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같은 날 동아일보에는 <옥상엔 혼자 있었다 : 서강대 운전사 경찰에 밝혀, 목격 교수들 “2~3명 있었다고 말한 적 없다”>라는 정반대의 기사가 실렸다. 바로 다음날인 10일자에서 조선일보는 문제의 목격교수인 윤여덕 서강대 교수의 반박을 담았다. 윤 교수는 맞은 편 본관 옥상에서 흰 점퍼자림의 누군가를 봤는데 정황상 사건 직후 옥상에 올라가 상황을 살펴본 서강대생들이었다. 검찰 주장을 철썩 같이 믿었던 조선일보가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검찰 뜻대로 움직였다. 박홍 발언에 무게감을 얹고 사건에 미스터리를 주입하는 식이었다. 예로 5월9일자 중앙일보는 “분신직후 다른 사람이 즉시 유서를 공개하거나 현장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본관 5층 옥상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전날 저녁부터 잠겨있었음에도 외부인인 김씨가 올라갈 수 있었다”며 외부인의 ‘조력’ 가능성을 강조했고, 박홍 총장의 발언에 대해선 “검찰은 사회민주화에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 박 총장이 자칫 재야운동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민감한 발언을 한데 대해 주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남대생 윤용하는 김기설에 이어 5월10일 분신을 시도하며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누가 분신을 배후조종한단 말인가.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그 누가 버리라고 한단 말인가.” 잇따른 청년들의 죽음은 노태우정부에 의한 엄연한 타살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국면을 자살방조사건으로 몰고 가며 운동권의 메시지를 패륜으로 덮어버리려 했던 노태우정부는 서서히 안도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내놓은 카드는 ‘유서 대필’이었다.

국민일보는 5월18일자 지면에서 “검찰은 김씨가 남긴 유서 필적이 자필과 다른 사실을 밝혀내 유서를 대신 써준 사람을 찾아내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5월19일자 지면에서 “검찰이 자살방조혐의의 유력한 용의자로 전민련간부를 지목하고 신병확보에 나선 것은 잇따른 분신사건에 배후세력이 있다는 가설을 입증해주는 것이어서 전율을 느끼게 한다”고 보도했다. 언론은 이 소설 같은 상황에 깊이 몰입했다. 전민련측 반박은 검찰 주장과 비교할 수 없이 작게 처리됐다.

 

▲ 1991년 5월, 강기훈씨(가운데)가 유서대필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필체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1991년 5월, 강기훈씨(가운데)가 유서대필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필체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19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연쇄자살 사건이 크게 실렸다며 기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요지는 이랬다. “젊은이들의 자살이 그 어떤 경로를 통해 중앙에서 명령을 받은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이 지령이 실의에 빠지고 고립된 북한으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은밀히 암시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런 지령이 운동이 점점 무력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급진주의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기사보다 창작에 가까운 대목이었다. 조선일보는 뉴욕타임스의 권위를 빌려 독자를 흔들었다.

 

이 신문은 “만약 자살의 의도가 87년처럼 한국의 중간계층을 다시 한 번 거리에 끌어들여 급진파 학생들의 말처럼 전정권보다 나을 것이 없는 정부를 쓰러뜨리는데 있다면 자살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노정권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안전한듯해 보인다”고 전했다. 너희가 아무리 목숨을 바치더라도 노태우정부는 안전하다고, 언론이 대신 대변한 꼴이었다. 당시 언론사가운데 오직 한겨레만이 검찰발 주장을 반박하며 강기훈측 주장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검찰은 박홍 기자회견 사흘 뒤인 5월11일 김기설 필적이 있는 업무일지 제출을 전민련 측에 요구한 뒤 13일 김기설의 애인 홍아무개를 불러 100시간 넘게 조사했다. 그리고 16일 강기훈을 유서대필 혐의자로 지목했다. 5월21일자 조선일보는 “강기훈이 김기설 분신직후 수사에 대비하기 위해 김기설의 애인 홍아무개를 만나 수첩에 김기설이라는 글자와 전민련 전화번호를 써줬다”고 보도했다. 자신의 필적을 김기설의 필적으로 제출하게끔 했다는 것이었다. 전민련측은 “홍아무개를 만난 건 사실이나 수첩에 글씨를 써주진 않았다. 검찰의 강압수사에서 (홍아무개가) 착오로 진술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 1991년 6월22일 언론과 인터뷰중인 강기훈씨(가운데). ⓒ연합뉴스
▲ 1991년 6월22일 언론과 인터뷰중인 강기훈씨(가운데). ⓒ연합뉴스
 
하지만 강기훈을 향한 마녀사냥은 멈추지 않았다. 언론은 강기훈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이자 공권력이 실추됐다고 강조했으며, 강기훈에게는 “결백하면 수사에 응하라”고 주장했다. 강기훈을 대변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향해서는 “과잉옹호”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5월25일, 검찰은 전민련이 제출한 김기설의 수첩이 조작됐으며,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이 유서를 대필했다고 공식발표했다.

 

검찰은 김기설 필적과 유서 필적을 감정한 결과 필적이 다르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결과를 핵심근거로 내세웠다. 그리고 강기훈이 1985년 경찰서에서 쓴 자술서와 유서가 동일필적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한겨레만이 “사설감정기관에 의뢰한 결과 전민련이 제출한 김씨 수첩과 유서가 동일필적으로 나타나 국과수 감정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문제의 수첩에는 숨진 김씨밖에 쓸 수 없는 내용이 다수 들어 있다”며 ‘고군분투’했지만 수사결과를 바꿔놓지 못했다.  

김기설의 필체를 찾아다니며 강기훈의 억울함을 풀고자 했던 김의겸 기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김기설의 새로운 필체가 나타날 때마다 ‘이제는 검찰이 수사를 끝내겠지’하고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매번 좌절이었다. 검찰은 어떤 증거가 발견돼도 다 조작이라고 했다. 특히 김기설이 쓰던 전민련 수첩이 발견되었을 때가 그랬다. 수첩은 누가 봐도 유서와 같은 필적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검찰이 ‘수첩의 절취선이 맞지 않는다’며 그 수첩마저 강기훈이 급하게 조작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검찰은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를 앞세워 강기훈이 김기설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7월12일 기소했다. 7월13일자 한국일보는 “결정적 증거 없이 이 빠진 공소”라고 지적했고 세계일보 또한 “검찰도 (강씨를) 연행한 이후 수사에 진척이 없다고 인정했다”며 “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이 유일한 증거”라고 보도했다. 검찰은 대필 일시와 장소도 밝히지 못했다. 대신 검찰은 1심 첫 공판에서 “혁명을 위해선 자신의 아버지도 죽일 수 있는 것이 공산주의자”라며 강기훈이 친구의 죽음을 혁명을 위해 이용했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이후 8월12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추가됐고 법원은 강기훈에게 징역3년형을 선고했다.  

 

▲ 1992년 3월26일 구속수감된 강기훈씨가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 ⓒ연합뉴스
▲ 1992년 3월26일 구속수감된 강기훈씨가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 ⓒ연합뉴스
 
법원은 판결문에서 “김영형 등 감정인들이 검찰 의도대로 감정했다는 증거가 없고 변호인이 김기설의 필적이라 제출한 자료는 많은 부분 조작된 흔적이 있다”며 “체제타도를 목적으로 자살을 방조하는 것은 엄벌에 처해 마땅하지만 대필경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중형을 선고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필적감정논란과 법적 다툼으로 지면이 채워지며 다른 주요 사건들은 묻혔다. 무엇보다 노태우정부 비판여론이 지면에서 크게 줄었다.

 

당시 권영길 언론노조위원장은 “김씨가 전민련의 부추김에 의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선동적이지도 않은 짤막한 유서까지 남에게 대신 쓰게 해가며 선전효과도 적은 아침 8시에 범행을 벌였는지 하는 정반대 의심이 오히려 가능하다”고 반박하며 “검찰에는 대필이 입증되지 않으면 사건을 미궁에 빠뜨려 책임을 피하고 시국냉각이라는 정치적 효과에 만족하는 퇴로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강기훈 변론을 맡았던 이석태 변호사는 훗날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건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던 동료가 죽으려고 마음먹었을 때 말리지 않고 유서를 대신 써줄 수 있는 조직으로 국가가 전민련을 몰면서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불신감을 깊이 드러낸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은 대필의혹이 밝혀져야 한다면서도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소홀했다. 의도적으로 소홀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른다.  

이 와중에 조선일보는 5월27일자 지면에서 김기춘 신임 법무부장관을 두고 “깔끔한 외모에 업무처리가 빈틈없고 치밀해 완벽주의자라는 평을 듣는다”, “검찰의 위상을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박홍 총장은 이 무렵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어둠의 세력은 실존단체가 아니라 죽음을 선동하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밝힌 뒤 “목적을 위해 생명을 도구화하는 영혼의 그늘은 단호히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재야운동의 도덕성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 1991년 5월24일자 중앙일보 기사.
▲ 1991년 5월24일자 중앙일보 기사.
 
이런 가운데 국과수의 김기설 유서 필적감정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MBC보도가 1992년 등장했다. 당시 홍순관 MBC기자는 6개월간의 취재 끝에 국과수 문서분석실장 김형영이 수많은 문서를 허위감정 해왔다고 보도하며 국과수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줬다. 하지만 MBC는 해당 기사를 축소시켰다. 김형영 구속이 임박했던 2월14일 MBC <뉴스데스크>는 이 사건을 14번째 아이템으로 배치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뇌물수수사건으로 몰고 갔다.

 

강기훈은 김형영의 구속사실을 교도소에서 접했다. 그는 훗날 1994년 8월17일 만기 출소한 뒤 언론노보와 인터뷰에서 “(국과수 필적감정조작이) 예상대로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또 한 차례 언론에 대한 불신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언론은 권력의 눈치를 보는 나약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하나의 권력이 되어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하다”고 비판한 뒤 “이제 상품가치가 없는 나를 신문들이 찾겠나”라며 씁쓸해했다. 

이 사건은 잊혀졌다. 하지만 강기훈 본인만큼은 이 사건을 잊을 수 없었다. 2007년 참여정부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진실이 드러났다. 국과수 감정결과는 조작된 것이었다. 김기설의 필적이 담겨 있던 노트를 분석한 결과 국과수 및 7개 사설감정기관은 김기설 유서의 필적과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노태우정부의 유서대필조작사건은 김형영이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강기훈은 2009년 9월 서울고법에서 재심 개시결정을 받을 수 있었다.  

2014년 1월16일 법정 최후진술에서 강기훈은 말했다. “지난 20여 년 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꿈속에서도 무한 반복되는 장면으로 고통을 겪었다. … 누구를 욕해야 할지 모르겠다. … 끝없이 지속됐던 불면의 나날과, 여러 사람들을 저주하며 보냈던 시간과도 이별하고 싶다.” 그해 2월13일 서울고법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법은 강기훈의 필적과 유서 필적 중 ‘ㅎ’과 ‘ㅆ’의 필법이 다른 점에 주목했다. 유서의 ‘ㅆ’은 제2획이 없는 독특한 글씨체였지만 강기훈 글씨는 그런 특징이 없었다. 23년 전에도 누구나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2015년 5월14일 대법원의 무죄확정판결이 난 다음날,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증거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마다 다를 수는 있다. 궁극적 진실은 강씨 본인이 아는 것이다”라며 엉뚱한 주장을 폈다. 이 신문은 “모든 법관은 자신들의 판단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게 된다는 사실을 무겁게 봐야 한다”고 적었다. 어디 법관뿐이랴. 검찰 측 주장을 확대재생산하며 한 인간의 삶을 망가뜨린 공범치고는 예의가 없었던 사설이었다. 모든 언론은 자신들의 기사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게 된다는 사실을 무겁게 봐야 한다.  

 

▲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확정판결을 받은 뒤인 5월27일, 1991년당시 전대협 집행부들이 광화문 광장 앞에서기자회견을 열고 조작사건 관련자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확정판결을 받은 뒤인 5월27일, 1991년 당시 전대협 집행부들이 광화문 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작사건 관련자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조작사건이 국과수 김형영 개인의 일탈이었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언론이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파헤쳤다면 아마 노태우는 대통령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을 수 있다. 1992년 대선에선 김영삼이 당선되지 못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아무 죄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이 지금처럼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청년들의 죽음이 가리켰던 ‘사회 변혁’의 열망을 ‘유서 대필 공방’으로 몰고 가며 체제유지에 가담했다. 언론은 이 거대한 사기극의 공범이었다.

 

이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수십 년 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1894년 프랑스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종신유형을 선고받고 유배를 당했다. 드레퓌스는 결백을 주장했으나 프랑스 군 검찰은 필적감정 결과를 조작했다. 하지만 작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 한다>란 글을 통해 드레퓌스가 누명을 썼고 군 고위층이 범죄를 은폐했다고 주장했고 드레퓌스는 1906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한국사회는 이 조작사건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법무부장관 김기춘은 박근혜정부 ‘왕실장’으로 불리며 2017년 촛불이 등장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건재했다. 곽상도 검사는 2013년 민정수석이 되어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만나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관련 정보를 넘겨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조작사건에 가담했던 이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반복했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제 1991년의 과거로 되돌아갈 순 없다. 청년 강기훈의 눈빛이 우리에게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뉴스의 시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의제(어젠다·agenda)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여과를 거친 의제는 복잡한 이슈를 찬반 양자택일 구조로 형성하고 여론이 기술적이고 감정적인 문제에만 몰두하게 했다. 또한 언론은 인간의 자유를 파괴할 힘조차 미화시켜 역사적 국면마다 흉기로 둔갑하곤 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미디어오늘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체제 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史에서 언론·국가·자본권력이 첨예하게 갈등하거나 야합했던 주요한 사회적 모멘텀(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꾸는 장면)을 제공했던 사건들을 프레임(개념 틀) 전쟁이란 관점에서 14회에 걸쳐 연속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언론의 바람직한 모습을 성찰하고 되짚어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겠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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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대표 인터뷰]“이제는 이명박이 감옥 갈 차례입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4/16 11:15
  • 수정일
    2017/04/16 11:1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글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환경재단 최열 대표.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환경재단 최열 대표.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인터뷰 | 미세먼지 첫 한·중 국가 상대 손배소 낸 최열 환경재단 대표
“7명이서 우선 시작했습니다. 소장 내고 1시간쯤 지나니 언론보도가 나옵디다. 그걸 보고 여기저기서 참여하겠다고 연락이 와요. 더 참여시킬 것인가 논의를 해보니 7명이면 숫자가 적고, 어느 정도 숫자가 되면 합의부가 다룬다는 거예요. 그래서 소송인단을 100명으로 늘리자고 결정했습니다.”

 

4월 12일, 환경재단에서 최열 대표를 만났다. 일주일 전인 4월 5일, 식목일 최 대표와 강원도 춘천의 안경재 변호사, 주부 등 7명이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미세먼지 피해 소송을 냈다. 미세먼지 관련 국가를 상대로 한 첫 손배소다. 소장에서 중국 정부를 향해서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오염물질을 수인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리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염원을 관리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중국은 이와 관련한 상세한 설명과 자료를 제출해 줄 것’을 요구했다. 대한민국 정부에는 인간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명시되어 있는 헌법 10조를 근거로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미세먼지의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석명을 요구했다. 

 

중국 쪽에서도 반응이 나옵니까. 
“환구시보라고 중국 매체가 있습니다. 한국 소송 보도 이후 긴급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중국발 미세먼지 피해소송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2000여명이 참여했는데 95%가 ‘이해할 수 없다’이고, 5%가 ‘충분히 이해한다’는 답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를 같이 소송한 것은 우리가 중국에 무언가를 요구하려면 우리가 잘 하면서 요구해야지, 우리가 못하면서 요구하는 것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우리가 석탄화력발전을 계속하고 디젤차에 ‘클린디젤’이라는 딱지를 붙여주고 아무런 개선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중국에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미세먼지 원인에 대한 기존 환경운동단체들의 캠페인을 보면 원인에서 우리 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석탄발전 문제 등을 거론해 왔는데요. 
“국토는 한국과 중국으로 나뉘어 있는지 모르지만 오염물질은 이미 국경과 관계없이 퍼지고 있습니다. AI 등 인수공통전염병을 일으키는 철새의 이동도 마찬가지이고 바다쓰레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세먼지에는 경계가 없어요. 현재의 법체계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한·중 간에 미세먼지 협정도 없고, 같이 공동조사하자는 협의가 있더라도 형식적입니다. 아무리 공동조사를 해도 효과가 없으니 안 해야 할까,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운동은 안 되는 것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고 전략을 마련하며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소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빨리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최열 대표는 1949년생이다. 조용필보다 한 살 많다. 환갑이 지나 70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운동’을 말하고 있다. “1인당 손해액을 우선 정신적 피해로 300만원씩 잡았는데, 7명이 하면 총 피해액 규모가 2100만원으로 약식재판을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100명이 소송을 하면 3억원이 아닙니까. 물론 재판은 길어지겠지요. 환경운동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순발력과 지구력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공익 목적의 소송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소송할 때만 반짝 관심이 있고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만 생고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요.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소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도 필요합니다.” 환경재단과 ‘미세먼지 소송모임’은 후속 프로그램으로 ‘미세먼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제로 4월 2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긴급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미세먼지가 기후변화 문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표님 기고를 보니 시리아 난민문제에 대해 기후난민이라고 언급하신 것이 인상적이던데요. 
“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난민을 550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아요. 다보스포럼에서 해마다 인류가 해결할 과제를 계속 제시하는데, 2000년대 들어 계속 나오는 것이 세 가지입니다. 빈곤, 양극화, 그리고 기후변화. 최근에 나오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인데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양극화와 빈곤이 연결되어 있고, 기후변화는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뿐만 아니라 기온 자체가 양극화되고 있어요. 비가 많이 오는 데는 더 많이 오고 안 오는 데는 더 안 옵니다. 시리아가 대표적이에요. 2005년부터 2010년 사이에 비가 거의 안 왔어요. 그러니 농사를 짓지 못한 사람들이 도시로, 다마스커스로 몰린 겁니다. 독재정권인데 가난한 젊은 청년들을 때리니 도화선이 되어 IS가 생긴 거예요. 북아프리카 재스민 혁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는 군사안보보다 기후안보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기온이 1도 올라가면 식량생산이 10% 줄어듭니다. 미세먼지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기후변화로 기류가 바뀌니 공기 이동을 차단시키는 것 아닙니까. 이전에는 바람으로 날아가던 것이 한반도 상공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공기는 생존권 문제입니다. 대기오염물질로 피해가 나타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특히 65세 이상된 사람들이 조기사망하는 원인일 수도 있어요.” 

 

최 대표를 찾는 전화로 대화는 간간이 끊겼지만 기후변화, 4차 산업혁명, 국제정세와 한국 대선을 넘나들며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문득 궁금했다. 어느 쪽이든 정권교체가 되면 영입 1순위의 무게감을 갖고 있지 않을까. 총리나 장관을 맡으면 뜻을 펴기 더 쉬울 텐데. “안 해요. 정치는 할 사람이 따로 있고, 저는 한 길만 갈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된 후 4대강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2008년 가을부터 9년간 탄압을 받았는데, 다른 단체가 그 정도 대통령으로부터 탄압당하면 조직이 사라지지만,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 살고 나왔을 때 기자에게 소감을 이렇게 밝혔어요. 이명박과 내가 임무교대를 할 때가 분명히 온다고. 권력은 5년이고 환경운동은 영원해요. 이번 대선은 인수위도 없는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국내외적 정세가 누가 해도 힘들게 되어 있어요. 대선캠프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나눠 먹기 식으로 가면 망합니다.”

그러면 대표님은 무엇을 하시려고요?

“다보스포럼이 있고, 또 사회운동을 중심으로 세계사회포럼이 있는데, 환경포럼을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2000명 이상 타는 환경친화적 배를 만들어 선상에서 토론하고 결론도 도출하는 겁니다. 늦으면 2022년, 빠르면 2021년까지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70대가 되면 나도 배에서 놀면서 좋은 사람들을 모아 프로그램하는 데 보조원으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배 타는 게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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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침략적 제국주의 발상을 멈춰세워야”

청년학생단체, “평화를 바탕으로 한 통일의 경로가 제시되어야”
 
박해전  | 등록:2017-04-15 09:47:29 | 최종:2017-04-15 09:49: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미국 침략적 제국주의 발상을 멈춰세워야”  
청년학생단체, “평화를 바탕으로 한 통일의 경로가 제시되어야” 

 
▲청년학생단체들이 14일 서울 미국대사관 앞에서 ‘사드반대 평화실현 청년학생 평화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박해전 기자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 없고,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언제, 어디서든 마음대로 전쟁을 하겠다고 하는 미국의 침략적 제국주의 발상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미국 핵항공모함 칼빈슨호 전단이 한반도 해역으로 이동하는 등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사드철회 청년학생긴급행동’은 14일 오전 11시 서울 미국대사관 앞에서 ‘사드반대 평화실현 청년학생 평화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은 백해무익한 사드와 전쟁무기들을 가지고, 당장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렇게 촉구했다.

청년학생들은 ‘평화대통령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군사위협 규탄한다’ ‘전쟁광 트럼프는 전쟁도발을 중단하라’ 표지판을 들고 발표한 <한반도 평화실현, 사드배치 반대 청년학생 평화선언문>을 통해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를 상상하기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검증하고, 전쟁을 소꿉장난처럼 쉽게 생각해 버리는 전쟁불감증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이에 평화를 원하는 우리 청년들은, 19대 대통령선거에 나온 후보자들에게, 북미간 군사적 대결을 종식시키기 위한 대화를 제안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도적으로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박근혜 정권의 실패한 대북정책과 사드배치를 폐기하고, 새로운 사회에 걸 맞는, 평화와 통일의 비전을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며 “새롭게 뽑힌 평화대통령과 함께 강한 통일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것을 선언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평화통일과 관련해 “정부의 통일정책 방향이 국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기에, 우리는 늘 정부의 정책방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역할을 기대하였다”며 “교류와 협력을 강조하였던 민주정부 10년의 통일정책에서, 우리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통일된 나라를 상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새로운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권의 적폐 중 하나인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하고,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대화와 교류를 통한 평화실현과, 평화를 바탕으로 한 통일의 경로가 제시되어야 한다”며 “국가간 외교대립과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사드배치는 당장 철회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드철회 청년학생긴급행동은 2016년 7월 한반도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청년단체들이 긴급히 모여, 사드반대 기자회견, 문화제, 거리행진, 성주․김천지역 연대투쟁과 전쟁연습반대, 한반도 평화실현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대학생 겨레하나, 민중연합당 흙수저당, 서울청년네트워크, 진보학생넷, 청년 민중의꿈, 청년하다, 평화나비 네크워크, 한국청년연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단체의 ‘평화선언문’은 다음과 같다.

<한반도 평화실현, 사드배치 반대 청년학생 평화선언문>

세상 그 누구도 전쟁을 바라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전쟁은 나의 삶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와 우리의 미래를 파괴하는 불필요한 요소입니다. 평화만이 인류의 가치이며 우리가 지키고 갈 통일의 방향입니다. 특히 분단되어 살아오고 있는 우리 민족에겐 평화실현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정부의 통일정책 방향이 국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기에, 우리는 늘 정부의 정책방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역할을 기대하였습니다. 교류와 협력을 강조하였던 민주정부 10년의 통일정책에서, 우리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통일된 나라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평화와 통일보다는 대결과 전쟁의 먹구름에 갇혀, 민족공멸의 위기 속에 있습니다. 미국은 전략자산 등의 전쟁무기를 동원한 선제타격, 참수작전 등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며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 없고,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언제, 어디서든 마음대로 전쟁을 하겠다고 하는 미국의 침략적 제국주의 발상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연장선상에서 미군과 탄핵된 정부는 한반도 전쟁위기 조성으로 사드 조기배치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절차도 무시하고, 명분도 없는 사드배치를 전쟁과 안보프레임으로 알박기 하겠다는 것은, 여전히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미국은 백해무익한 사드와 전쟁무기들을 가지고, 당장 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를 상상하기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검증하고, 전쟁을 소꿉장난처럼 쉽게 생각해 버리는 전쟁불감증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명박근혜표 대북정책은, 전쟁위기와 무기증강만 부추기는 실패한 정책이었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권의 적폐중 하나인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하고,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대화와 교류를 통한 평화실현과, 평화를 바탕으로 한 통일의 경로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또한 국가 간 외교대립과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사드배치는 당장 철회되어야 합니다. 대등한 위치에서 한반도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한미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합니다.

이에 평화를 원하는 우리 청년들은, 19대 대통령 선거에 나온 후보자들에게, 북미간 군사적 대결을 종식시키기 위한 대화를 제안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도적으로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합니다, 더불어 박근혜 정권의 실패한 대북정책과 사드배치를 폐기하고, 새로운 사회에 걸 맞는, 평화와 통일의 비전을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뽑힌 평화대통령과 함께 강한 통일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것을 선언합니다.

2017년 4월 14일
평화대통령을 바라는 509명의 청년들

<사람일보 박해전 기자>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169&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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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펼친 노란우산 얘들아, 하늘에서 잘 보고 있니?

 

[큰사진] "이제 집에 가자"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

17.04.15 13:52l최종 업데이트 17.04.15 13:52l
글·사진: 서영석(seok76000)

 

운동장에 뜬 세월호 노란우산 배_in 인천 석남중 '우리는 같이 있고, 우리는 가치있다.'
인천 석남중학교 학생들과 선생님, 학부모님들과 함께 만든 세월호 노란우산 배모양입니다.
▲ 운동장에 뜬 세월호 노란우산 배_in 인천 석남중 '우리는 같이 있고, 우리는 가치있다.' 인천 석남중학교 학생들과 선생님, 학부모님들과 함께 만든 세월호 노란우산 배모양입니다.ⓒ 서영석
저는 세월호 기억 노란우산 프로젝트 제안자입니다. 지난 2014년 5월 8일 유가족들이 KBS에 항의 방문을 했을 때부터 유가족과 함께 새벽을 맞이하고, 주말마다 가족과 광화문에 가고, 생업도 뒤로 한 채 싸워 왔습니다. 누군가는 1000일 넘게 1인시위를 이어 왔습니다. 세월호를 온전히 인양하여, 아홉 분의 미수습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고, 세월호의 온전한 진실 규명을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 사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세종시로 이사도 했습니다. 초등학생 막내가 사춘기를 맞았고, 큰 아이가 '세월호 새내기'(16학번)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 무수한 시간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었습니다. 여전히 세월호는 바다 속에 있고, 권력은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있고, 사람들은 도리어 '그만해라, 지겹지도 않냐'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생각만 하면 입에 고구마를 잔뜩 문 것처럼 답답하고, 찬 겨울 바람에 살이 에이듯 가슴 아픈 이야기가 바로 세월호인데 말입니다. 

"진실규명을 막는 그들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도 꿋꿋이 변치 않았습니다. 잊지 않고 있습니다. 0416 "

그들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변하지 않은 게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그들이 억지로 우리에게 '망각'을 강요해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았다는 겁니다. 저처럼 거리로 나와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키워야 해서, 취업을 해야 해서, 학업 때문에, 미래를 생각해서, 살아야 해서... 많은 분들이 삶의 전선으로 뛰어 갔지만 그럼에도 모든 분의 마음 속에 세월호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노란 우산을 들어주는 시민들의 응원을 보면 아주 확실한 걸요!).

그리고 지난 11일 마침내 세월호가 인양되었지만, 여전히 아홉 분의 미수습자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침 흘리며 졸고, 춤추며 놀고, 공부하고, 낙서하던 책상과 의자는 사라졌습니다. 한여름 폭염을 보내는 것조차 버거웠는데, 유가족들의 사계절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세월호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는 너무 많습니다.

아주 우연한 시작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팽목 '사람먼저'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9분이
기다리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하며
노란우산을 들었습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팽목 '사람먼저'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9분이 기다리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하며 노란우산을 들었습니다ⓒ 서영석
세월호 기억 노란 우산 프로젝트는 아주 우연히 시작됐습니다.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해수부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데 갑자기 비가 와서, 2년 전 구입했던 노란우산을 씌워주려고 펼쳤더니, 손잡이가 고장이 나 있던 겁니다. 그때, '함께 하는 분들과 세월호 기억 노란우산을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부러진 노란우산 노란우산 프로젝트의 첫 시작
▲ 부러진 노란우산 노란우산 프로젝트의 첫 시작ⓒ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노란우산 우리는 기억하고 있고
잊지 않기 위해
노란우산을 들고 행동합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노란우산 우리는 기억하고 있고 잊지 않기 위해 노란우산을 들고 행동합니다.ⓒ 서영석
공장에 문의해 보니(정말 이런 것 처음 해 봤어요) 기본 제작 수량이 100개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고작 10명뿐인데... 어떻게든 해 보자는 마음으로 주문서를 만들고, SNS에 공동구매 글을 올렸습니다. 100개나 팔리면 다행이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다음날, 주문서를 보고 좌절했습니다. 왜냐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마음 속에 세월호를 간직하고 사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무려 주문이 1000개나 들어 왔으니까요! 말이 1000개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정말 놀랐습니다. 주문 내역을 찬찬히 살펴보니 전국에서 한두 개씩 구매하는 사람들이 모여 1000개가 된 것이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잊으라 하지만, 여전히 세월호를 기억하고, 진실규명을 위해 행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생각하니 감동이었어요. 세월호를 잊지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걸 실감을 하고,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아래는 노란 우산에 기억 메시지를 받으러 다니다 저를 뭉클하게 만든 문구입니다.

"힘내세요! 옆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힘내세요!함께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란 우산에 기억 메시지를 받으러 다니다 저를 뭉클케한 문구입니다.
         “힘내세요!함께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 “힘내세요!함께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란 우산에 기억 메시지를 받으러 다니다 저를 뭉클케한 문구입니다. “힘내세요!함께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영석
기억에서 기적으로_in 제주 기억에서 기적을 만드는 노란우산 프로젝트
누군가 한 명이라도 함께 우산을 들어주고 싶다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 기억에서 기적으로_in 제주 기억에서 기적을 만드는 노란우산 프로젝트 누군가 한 명이라도 함께 우산을 들어주고 싶다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서영석
노란우산을 보급하는 것도 힘이 되는 일이지만, 노란우산을 가지고 아이들이 가고자 했던 제주와 광화문, 그리고 안산에서 사진과 영상을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노란우산프로젝트'를 하자고 주변에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첫 시작은 지난해 6월 18일, 제주였습니다. 노란우산을 판매한 금액으로 다시 우산을 사서, 국회의원을 만나고 시민들을 만나면서 우산 위에 저마다의 기억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SNS뿐 아니라, 제주에 직접 가서 시민들과 단체들을 만나 시민들과 함께 노란우산을 들자는 홍보도 했습니다. 

바람도 돌도 많다던 제주... 행사 당일까지 과연 사람들이 노란우산을 들기 위해 올까 생각했습니다. 200여 명의 시민들이 성산일출봉이 바라보이는 신양섭지코지 해변에서 노란우산을 들었습니다. 아장아장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온 아이, 노란우산을 들어주기 위해 파주에서 오셨다는 모녀,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아들까지. 모두 자기 일처럼 노란우산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시더군요. 제주에서의 노란우산프로젝트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 후 인천에서, 광주에서, 대전에서, 경주에서, 안산에서, 저 멀리 캐나다에서 노란 우산을 들고 기억행동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자발적인 시민들이 늘어나며 희망을 보았습니다. 매일 '4월 16일'을 사는 우리에게, 노란 우산이 위로와 기다림, 기억, 분노, 그리고 다시 희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올해 진행한 노란우산프로젝트 사진들입니다. 별이 된 아이들이 하늘에서 보면, 잘 보이겠죠? 아니, 잘 보고 있겠죠?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창원 사람 먼저 보고 싶다
세월호 안에 있는 미수습자 먼저 찾아주세요.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창원 사람 먼저 보고 싶다 세월호 안에 있는 미수습자 먼저 찾아주세요.ⓒ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대구 미수습자 9분이 꼭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구시민들과 함께 노란우산을 들었습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대구 미수습자 9분이 꼭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구시민들과 함께 노란우산을 들었습니다ⓒ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거제 '이제 집에 가자' 거제 학동 몽돌해변에서
거제 시민들과 함께 노란우산을 들었습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거제 '이제 집에 가자' 거제 학동 몽돌해변에서 거제 시민들과 함께 노란우산을 들었습니다ⓒ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호평중학교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남양주시 호평중학교 학생들과 노란우산을 들었습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호평중학교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남양주시 호평중학교 학생들과 노란우산을 들었습니다.ⓒ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호평중학교 호평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노란우산으로 만든 노란리본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호평중학교 호평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노란우산으로 만든 노란리본ⓒ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충북고등학교 14일 충북고등학생들이 노란우산을 펼쳤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충북고등학교 14일 충북고등학생들이 노란우산을 펼쳤다.ⓒ 서영석
2016.04.16. 진실의 문을 열어라!_in 전주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 2016.04.16. 진실의 문을 열어라!_in 전주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서영석
미수습자 아홉분을 가족의 품으로_in 팽목항 바닷물을 다 퍼내서라도 세월호를 어머니들 가슴에 띄우라
▲ 미수습자 아홉분을 가족의 품으로_in 팽목항 바닷물을 다 퍼내서라도 세월호를 어머니들 가슴에 띄우라ⓒ 서영석
세월호를 인양하라_in 성남시청 세월호 안에는 돌아오지 못한 아홉분이 남아 있고,
우리 가슴 속엔 인양하지 못한 진실이 남아있어
여기 노란우산을 들고 서 있습니다.
▲ 세월호를 인양하라_in 성남시청 세월호 안에는 돌아오지 못한 아홉분이 남아 있고, 우리 가슴 속엔 인양하지 못한 진실이 남아있어 여기 노란우산을 들고 서 있습니다.ⓒ 서영석
304+기억_in 춘천 304명의 고귀한 희생자, 별이 된 그들의 삶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 304+기억_in 춘천 304명의 고귀한 희생자, 별이 된 그들의 삶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세종시 해양수산부 '세월호의 슬품이 피운 꽃'  세월호의 슬픔이 피운 꽃을 가슴 깊이 새깁니다. 노란우산은 기다림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세종시 해양수산부 '세월호의 슬품이 피운 꽃' 세월호의 슬픔이 피운 꽃을 가슴 깊이 새깁니다. 노란우산은 기다림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강정평화대행진 강정평화대행진 때 함께 한 노란우산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강정평화대행진 강정평화대행진 때 함께 한 노란우산ⓒ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부산  파도가 밀려와도 세월은 간다
부산 노란우산프로젝트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부산 파도가 밀려와도 세월은 간다 부산 노란우산프로젝트ⓒ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해외에서도 진행되는 노란우산프로젝트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해외에서도 진행되는 노란우산프로젝트ⓒ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광주 '진실' 우리의 결실은 세월호의 진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광주 '진실' 우리의 결실은 세월호의 진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양평 강가의 우산_하늘에서 보고 있을 304명의 별들을 향해 노란우산을 듭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양평 강가의 우산_하늘에서 보고 있을 304명의 별들을 향해 노란우산을 듭니다.ⓒ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인천 석남중학교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을게요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인천 석남중학교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을게요ⓒ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서울시청광장 우리의 기억으로 만들어 가는 세월호의 노란 색은 제주의 유채꽃보다도 놯습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서울시청광장 우리의 기억으로 만들어 가는 세월호의 노란 색은 제주의 유채꽃보다도 놯습니다.ⓒ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나들목교회 '이웃+사랑' 사랑해요 우리도 잊지 않고 있어요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나들목교회 '이웃+사랑' 사랑해요 우리도 잊지 않고 있어요ⓒ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토론토 캐나다 토론토에서 함께 한 노란우산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토론토 캐나다 토론토에서 함께 한 노란우산ⓒ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성주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성주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영광 노란배가 흘러 갑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영광 노란배가 흘러 갑니다.ⓒ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경주 흔들림없이 언제나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경주 흔들림없이 언제나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제주 잊지 않고 기다립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제주 잊지 않고 기다립니다ⓒ 서영석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해수부 앞 '진실마중대' 뜨거운 여름 팽목에서 광화문까지 함께 한 진실마중대 분들과 함께
해수부 앞에서 노란우산을 들었습니다.
▲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_in 해수부 앞 '진실마중대' 뜨거운 여름 팽목에서 광화문까지 함께 한 진실마중대 분들과 함께 해수부 앞에서 노란우산을 들었습니다.ⓒ 서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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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으로 올라온 세월호 그리고 3주기..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족들 “미수습자 수습 우선”…해수부, 18일에 세월호 선내 수색계획 발표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서울과 안산, 목포를 비롯한 전국 91개 지역과 해외 11개국‧40개 도시에서 집중 추모 행사가 열린다.

전야인 15일 오후 5시30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미수습자 수습과 철저한 선체조사,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22차 범국민행동을 시작으로 오후 7시부터 북측광장에서 ‘4월16일의 약속, 함께 여는 봄’이란 주제로 전야 기억문화제가 열린다.

   

 

   

3주기 당일인 16일에는 안산 화랑유원지 내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추모제인 ‘기억식’이 열린다. 기억식은 오후 3시 안산시 전역에 울리는 추모 사이렌과 함께 묵념으로 시작, 추모제가 끝나면 참석자들은 분향과 헌화를 한다.

이에 앞서 오후 1시부터는 안산 중앙역, 안산역, 와동체육공원 등 3곳에서 동시 출발해 시청, 단원고 등을 거쳐 합동분향소까지 각 4km가량을 행진하는 시민 걷기 행사를 진행한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머물렀던 진도 팽목항에서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진혼무와 씻김굿 등이 열린다. 이날 미수습자 가족들도 행사에 참석해 지금까지 물심양면 도움을 주고 있는 진도군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예정이다.

다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목포신항 부근에서 예정된 세월호 3주기 추모 행사와 관련해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는 “미수습자 가족들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을 찾는 일이 최우선인 만큼 그 자체로 고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고 전했다.

세월호 선체는 참사 3주기를 1주일여 앞둔 지난 11일 뭍으로 올라왔다.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 침몰한 지 1090일 만이다. 세월호는 올라왔지만, 9명의 미수습자들은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진상규명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에 SNS상에서도 9명의 미수습자 수습과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목포신항에서는 세월호 선체 세척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완료되는 대로 본격적인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 조사에 돌입한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해수부 이철조 현장수습본부장은 14일 목포신항을 방문한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미수습자 9명을 찾기 위한 세월호 선내 수색계획을 18일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내일(15일) 오전까지 세월호 외부 고압 세척 작업을 마치고, 선내 방역을 할 것”이라며 “일요일과 다음주 월요일 작업자들이 선내에 살짝 들어가 위해도‧안전도 검사를 완료하고 화요일(18일)에 구체적인 수색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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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토마호크 참수작전에도 여명거리 준공식 참석

김정은, 토마호크 참수작전에도 여명거리 준공식 참석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4/14 [22:1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3일 여명거리 준공식 참석을 위해 승용차를 타고 나타난 김정은 국무위원장     © 자주시보, 연합뉴스 동영상 화면복사

 

▲ 여명거리 준공식을 위해 차에서 내리는 김정은 위원장     © 자주시보

 

▲ 여명거리 준공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외신 기자들이 바로 앞에서 촬영하고 있다.     © 자주시보

 

▲ 여명거리 준공식 단상이란 것이 사람 키보다 낮았다. 정 중앙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 자주시보

 

13일 오전 연합뉴스에 평양에 들어간 외신기자들에게 빅 이벤트를 볼 준비를 하라는 북의 안내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전 세계가 북을 주시했다. 국방부도 긴장해서 북 인민군의 특이동향이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예의주시했다.

전에도 외신기자들을 잔뜩 평양으로 불러놓고 인공지구위성을 발사한 바 있기 때문에 무슨 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단행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추측들이 많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빅 이벤트는 여명거리 준공식이었다.

하지만 외신 기자들은 그리 허탈해하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바로 앞에 나와 준공테이프를 끊었고 이를 근접촬영하는 절호의 기회를 만났기 때문이다. 러시아 언론 스푸트니크에는 그래서 매우 선명한 화질에 김정은 위원장의 표정이 생생한 사진과 배경흐림기능을 잔뜩 사용한 사진들이 여러장 올라와 있다.

 

▲ 여명거리 준공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자주시보, 스푸트니크 촬영

 

▲ 박봉주 내각총리가 준공사를 읽는 동안 단상 위에서 황병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며 만면 가득 미소를 짓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아마 안전문제로 긴장해 있는 황병서 부위원장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대화로 보였다.     © 자주시보, 연합뉴스 동영상 화면복사

 

13일 연합뉴스 관련기사에서도 "김정은이 외신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근거리 촬영을 허용한 것은 이례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생각해보면 미국은 시리아공군기지를 수천km 떨어진 함선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발사하여 격납고, 대공포, 유류탱크 등을 1미터 오차도 없이 족집게 타격으로 완전 소멸하였다. 특히 격납고의 두꺼운 콘크리트 지붕을 뚫고 들어온 토마호크미사일이 수리대기중이던 미그23기 등 전투기 15기를 완전히 녹여버렸다. 이번 공습은 위성유도와 광학유도 등으로 격납고 지붕마다 모조리 한 가운데를 정확히 뚫고 들어간 토마호크의 위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순항미사일을 전문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개발된 러시아의 판찌르 s1 대공미사일은 한 방 제대로 쏘아보지도 못하고 제일 먼저 순항미사일에 산산조각이 나 배를 하늘에 대고 처참하게 나뒹굴었다.

 

미국은 그런 미사일 수십, 수백기씩 장착하고 다니는 잠수함과 구축함들이 현재 한반도 주변에 급파되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만 내리면 바로 대북선제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연일 으름짱을 놓고 있었다.

한반도로 다시 급파된 칼빈슨호 항공모함에는 참수작전을 수행할 델타포스, 데브그루 등 미 특수부대원들이 가득 실려있다. 이들이 북으로 침투할 때 사용할 전용 침투기와 수직이착륙헬기도 함께 실려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면 가득 미소를 안고 승용차에서 내려 200여명의 서방 외신기자들 바로 앞으로 걸어와 준공 테이프를 자르고 사람 키보다 낮은 단상 위에 서서 근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명거리 준공식을 함께 하였다.

박봉주 내각총리가 준공사를 하고 있는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안전 문제 때문에 긴장한 황병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안심시키려는 듯 만면에 미소 가득한 얼굴로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기도 하였다.

 

미국이 이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북이 빅 이벤트를 이미 공지하여 외신기자들이 트위터 등을 통해 여기저기 알렸기에 미국의 모든 정찰자산들이 총동원되어 평양을 감시하였을 것이며 빅 이벤트가 준비되고 있던 현장은 특별 감시하였을 것이다.

백령도 연평도 인근 잠수함 기지에서 미국의 엘에이급 공격형 잠수함이 토마호크 미사일을 쏘면 2분 30초면 평양에 떨어진다.

 

그런 미국의 정찰자산 앞에 보란듯이 만면 가득 미소를 지으면 나타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 시간 가까이 외신 기자들과 함께 야외 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정말 빅 이벤트 중에 빅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준공식에 참석하기 직전 인민군 특수작전부대 훈련 경기를 현지지도하였다. 참수작전을 수행할 사소한 기미라도 보이면 북이 먼저 미군 수뇌부를 요정내겠다는 북의 언론보도도 있었다.

 

▲ 2012년 3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진행 되던 시기 판문점을 방문하고 있는 김정은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해 최전방 갈리도를 고무보트를 타고 찾아가는 모습이라고 보도한 남측 언론 보도 

 

▲ 갈리도를 찾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아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번 공개 행사에 나오기 전에 전파교란장비를 이용하여 북 주변의 위성통신을 교란하는 등 안전장치를 가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도 위험한 노출임은 분명하다. 두만강, 압록강 국경을 통해 얼마든지 미국의 요원들이 평양으로 침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그렇게 침투한 미국 cia요원들이 종종 체포되어 지금도 북에 구금되어 있는 상황이다.

북에서 쿠데타를 모의했던 장성택 일파는 군부와도 연계가 있었다. 저격무기를 자체로 준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북의 간부들은 저격무기를 직접 소유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지도자들이 선물로 주기도 해왔다.

 

그래서 이번 행사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배짱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만은 다시 증명되었다고 본다.

전에도 대낮에 판문점에 나타나 만면 미소 가득 남측 자유의 집과 경비를 서는 미군들을 살펴보고 간 적이 있고 지난해에는 작은 고무 모터보트를 타고 연평도에서 4.5km, 서해 분계선에서는 2.5km  앞의 작은 섬 갈리도 초소 현지지도를 단행하는 등 담력과 배짱을 과시해왔었다. 이정도면 기관총 사거리 안에 든다.

 

옛 병서에서도 용장 아래 약졸이 없다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럴진대 인민군대들이 어떨지야...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그리고 북 인민군대도 쉽게 볼 상대가 아닌 것 같다. 연일 대북선제타격 소리가 커져가고 있는 미국에서 특히 신중하게 이번 일을 살펴야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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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미국 북한 선제타격 집중 조명

뉴욕타임스 미국 북한 선제타격 집중 조명

 


-한국 정부, ‘근거 없다. 현혹되지 말아야’
-문재인 ‘ 한국 동의 없이 어떠한 선제타격도 안돼’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를 맞아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북폭설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가운데 뉴욕타임스가 이를 주목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한반도 위기와 북폭설이 나돌게 된 배경들을 살펴보며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응과 대선 유력 후보들의 반응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뉴욕타임스는 11일 ‘South Korea Seeks to Assure Citizens U.S. Won’t Strike North Pre-emptively-한국 정부, 미국은 북한을 선제 타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사를 실고 전쟁위기설 진화에 나선 한국 정부의 발표를 제목으로 뽑았다. 특히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 즉 문재인 후보는 ‘ 미국을 포함한 외국 어느 나라도 한국에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한국정부와 먼저 논의하지 않고 북한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 관계자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 지난주 발생한 사건들은 일부 시민들로 하여금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에 군사적 공격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했다.’고 전한 뉴욕타임스는 ‘”미국에 이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한국의 안전은 미국의 안전만큼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의 동의 없는 어떠한 선제타격도 있어선 안 된다.”는 문재인의 강경한 발언을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주변국들이 한국의 대통령 공석 상황을 이용해 정작 한국을 배제하고 자기들 이해대로 한반도 문제를 처리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문 후보는 트럼프 행정부를 지목해서 비판하지는 않은 채로 말했다.’고 집중적으로 문재인의 발언을 조명했다.

한국 전쟁에서부터 지난 94년 영변 폭격을 직접 반대한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한반도와 북핵을 둘러싼 과정들을 소개한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약 12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북한을 선제공격하기에는 1994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뉴욕타임스는 북에 대한 합의 발표없이 끝난 미-중 정상회담과 트럼프의 트윗, 4.15 김일성 탄생일을 앞둔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 항공모함 칼 빈슨 호의 한반도 행, 미국의 군사공격 가능성 확산 등의 과정을 정하며 화요일 한국 정부가 그 소문이 ‘근거 없다’고 다시 일축했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한달도 안남은 대선 정국에 대북정책이 지배적인 대선 캠페인이 되었다고 분석한 뉴욕타임스는 보수의 지지를 받는 안철수는 전 정권의 사드배치 결정의 존중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한국이 “미국에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 문재인 후보는 당선되면 미사일시스템 배치 결정을 재검토할 것이라 약속했다고 두 후보의 정책을 비교했다.

특히 문재인 후보는 화요일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동결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온다면, 소위 고고도방어체계 또는 사드의 배치는 보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만약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핵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한다면, 사드 배치는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이하로 대기자)

다음은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뉴스프로가 전문 번역한 것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nyti.ms/2o0mcKj

South Korea Seeks to Assure Citizens U.S. Won’t Strike North Pre-emptively

한국 정부, 미국은 북한을 선제 타격하지 않을 것

By CHOE SANG-HUN
APRIL 11, 2017
Photo

Pyongyang, the North Korean capital. Twitter posts on North Korea by President Trump on Tuesday contributed to concern in South Korea about the possibility of pre-emptive strikes.CreditWong Maye-E/Associated Press

북한의 수도 평양. 지난 화요일 북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글들은 국내에 선제 공격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SEOUL, South Korea — South Korea’s government said on Tuesday that there would be no American pre-emptive military strike against North Korea, with a leading presidential candidate warning that no foreign countries, including the United States, should bring war to the Korean Peninsula.

한국 서울 – 한국 정부는 화요일 미국이 북한을 선제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했으며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는 미국을 포함한 외국 어느 나라도 한국에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Although officials in South Korea said the United States would never attack the North without first consulting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 confluence of events in the last week has led some people to fear that the Trump administration might launch military strikes against the North’s nuclear and missile facilities.

미국이 한국 정부와 먼저 의논하지 않고 북한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국 관계자들이 말했지만, 지난주 발생한 사건들은 일부 시민들로 하여금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에 군사적 공격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했다.

“I make this clear to the Americans,” said Moon Jae-in, a leader of the main opposition Democratic Party, in a Facebook post that was widely cited in South Korean news media on Tuesday. “The safety of South Korea is as important as that of the United States. There should never be a pre-emptive strike without South Korean consent.”

“미국에 이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라고 주요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지도자 문재인이 지난 화요일 페이스북에서 한 말은 한국 언론에 널리 인용 보도되었다. “한국의 안전은 미국의 안전만큼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의 동의없는 어떠한 선제타격도 있어선 안 된다.”

Mr. Moon is one of the two leading contenders, along with another opposition leader, Ahn Cheol-soo, for the May 9 presidential election to choose the successor to former President Park Geun-hye. Ms. Park, who was impeached by Parliament in December, was formally ousted in a Constitutional Court ruling in March. Prime Minister Hwang Kyo-ahn is serving as an acting president.

문재인 후보는 또다른 야당 지도자 안철수와 더불어, 지난 12월 국회에서 탄핵당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지난 3월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후임을 뽑기 위한 5월 9일 대선의 유력한 후보이다.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대행을 수행하고 있다.

“Neighboring countries are taking advantage of the absence of a president in South Korea to try to exclude us and handle issues on the Korean Peninsula according to their own understanding,” Mr. Moon said, without blaming the Trump administration by name.

“주변국들이 한국의 대통령 공석 상황을 이용해 정작 한국을 배제하고 자기들 이해대로 한반도 문제를 처리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문 후보는 트럼프 행정부를 지목해서 비판하지는 않은 채로 말했다.

Twitter posts on North Korea by President Trump on Tuesday contributed to the concern in South Korea. Frustrated over what he views as China’s inaction in pressuring North Korea, Mr. Trump said if the Chinese would not help, “we will solve the problem without them!”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지난 화요일 트윗글은 한국 국내에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일에 아무런 행동도 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 답답해하며, 만약 중국이 돕지 않으면 “중국 없이 해결하겠다!”라고 그는 말했다.

Donald J. Trump

도널드 트럼프의 트윗

✔️@realDonaldTrump
North Korea is looking for trouble. If China decides to help, that would be great. If not, we will solve the problem without them! U.S.A.

북한은 문제거리를 만들고 있다. 만약 중국이 돕기로 하면, 대단히 좋을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우리는 그들 없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미국
9:03 PM – 11 Apr 2017

Although South Koreans generally consider the United States their most important ally in deterring North Korea, they remain deeply wary of any American attempts that they fear will raise tensions and even rekindle war. The Korean Peninsula remains technically at war because the 1950-53 Korean War was halted by an armistice, not a peace treaty.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북한을 저지하는 데 있어 미국이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라고 여기지만, 긴장을 심화시켜서 전쟁까지도 재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미국의 시도에 대해 우려한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한국 전쟁이 평화협정이 아닌 휴전으로 중단되었기 때문에 한반도는 엄밀히 말해서 여전히 전쟁 중에 있다.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would together win any war against North Korea, but many fear catastrophic devastation to South Korea, especially Seoul. The capital city — home to 10 million people and surrounded by satellite cities with another 10 million residents — lies within the range of North Korean artillery, rockets and short-range missiles amassed along the border.

한국과 미국은 함께 협력하여 북한을 상대로 치르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겠지만 많은 이들은 한국, 특히 서울이 재앙과 같이 황폐화될 것을 우려한다. 천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또다른 천만 명이 주변 여러 위성 도시들에 거주하는 한국 수도 서울은 북한이 국경 인근에 집결된 대포와 로켓, 단거리 미사일 등의 사정거리 안에 놓여있다.

In 1994, not long after the nuclear crisis first flared with North Korea, President Bill Clinton considered launching a surgical attack on the North’s main nuclear complex in Yongbyon north of Pyongyang, according to the South Korean president at the time, Kim Young-sam. Panic swept through South Korea, with people stocking up on food. Mr. Kim later said he had personally protested to Mr. Clinton, persuading Washington to drop the plan to strike Yongbyon.

김영삼 당시 한국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북한이 처음 핵무기 위협을 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4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평양 북부의 용변에 위치한 북한 주요 핵무기 종합 발전소에 정밀 공격을 개시하는 것을 고려했다. 한국은 공포에 휩싸였으며 국민들은 식량을 비축하였다. 후에 김 대통령은 직접 클린턴 대통령에게 반대했고 미 백악관 측에 용변 군사 작전을 포기하도록 설득하였다고 밝혔다.

There is no such panic reported in South Korea today. But the South Korean reaction to even the possibility of Washington carrying out a military action highlighted the sensitivity of the issue.

현재 1994년과 같은 공포 상황이 보고된 바는 없다. 그러나 미 백악관이 군사 작전을 개시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조차 한국인들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문제의 민감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After conducting five nuclear tests since 2006, North Korea is now widely believed to have several to as many as a dozen nuclear weapons, making a pre-emptive strike far riskier than it was in 1994. The North is also one of the world’s largest owners of chemical and biological weapons and apparently has no qualms in using them, as in the Feb. 13 assassination in Malaysia of Kim Jong-nam, the estranged half brother of the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Malaysia has said Kim Jong-nam was killed by the nerve agent VX.

2006년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핵 실험을 실시한 후, 현재 북한은 열두 개에 달하는 핵 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널리 믿어지며, 따라서 선제 공격을 가하는 것은 1994년 당시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또한 북한이 세계 최대 핵 무기와 생화학 무기 보유국 중 한 곳이며 이러한 무기를 사용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은 지난 2월 13일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의, 사이가 소원해진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지아에서 암살된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김정남이 신경독극물 VX로 살해되었다고 밝혔다.

Few South Koreans considered a pre-emptive military strike realistic until top aides to Mr. Trump began publicly asserting in recent weeks that “military options” were not off the table in their efforts to stop the North’s attempt to build long-range missiles capable of delivering nuclear warheads to North America.

트럼프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들이 최근 몇 주, 북미까지 발사가 가능한 핵탄두 탑재 장거리 미사일을 제작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멈추게 하기 위해 “군사적 대응책”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주장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 중 선제 군사 공격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American soldiers during a joint exercise with the South in Pohang, South Korea, on Tuesday. South Koreans generally consider the United States their most important ally in deterring the North. CreditAhn Young-Joon/Associated Press

화요일 한국의 포항에서 진행한 합동 군사훈련에 참여한 미국 군인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북한을 저지하는 데 있어 미국이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라고 생각한다.

Since Kim Jong-un took power five years ago, North Korea has conducted three nuclear tests and nearly 50 ballistic missile tests. And in his New Year’s Day speech, Mr. Kim said his country was in the “final stage” of preparing for its first test of an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5년 전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이후, 북한은 3차례의 핵실험과 거의 50번의 탄도미사일 시험을 실시했다. 그리고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은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준비하는 “최종단계”에 와있다고 말했다.

Mr. Trump retorted at the time: “It won’t happen!”

트럼프는 “그런 일은 절대 없을거야!”라고 응수했다.

Mr. Trump’s summit meeting with his Chinese counterpart, Xi Jinping, ended last week without announcing a coordinated approach on how to stop North Korea. Later, Secretary of State Rex W. Tillerson said the United States was “prepared to chart our own course if this is something China is just unable to coordinate with us.”

지난주 트럼프와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은 북한을 어떻게 막을지에 대해 조율된 접근법을 발표하지 않은 채 끝났다. 나중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만약 이 사안에 대해 중국이 협조할 수 없다면, 미국은 우리 자신의 길을 갈 준비가 되어있다”고 밝혔다.

Some South Koreans feared that alternative was foreshadowed when Mr. Trump ordered a missile attack against Syria last week over the use of chemical weapons against Syrian civilians. Then, over the weekend, the Pentagon redirected warships led by the aircraft carrier Carl Vinson to head toward the Korean Peninsula, amid fear that North Korea might attempt a nuclear or long-range missile test to celebrate crucial anniversaries this month, like the April 15 birthday of Kim Jong-un’s grandfather, Kim Il-sung, the North’s founder.

일부 한국인들은 트럼프가 시리아의 민간인에 대한 화학무기 사용을 두고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지시했을 때, 이 대안의 조짐을 보고 두려워했다. 그런 다음 지난 주말, 미 국방부는 4월15일 김일성 탄신일과 같은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북한이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 항공모함 칼 빈슨 호가 이끄는 군함들을 한반도로 향하게 했다.

Rumors of a possible American military strike began spreading in social media in South Korea.

미국의 군사공격 가능성에 대한 소문이 한국의 소셜미디어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On Tuesday, the government again called those rumors “groundless.”

화요일 정부는 그 소문이 “근거없다”며 다시 일축했다.

“The United States makes it clear that it will not take a new policy or measure without consultations with us,” Cho June-hyuck, a spokesman of the South Korean Foreign Ministry, said on Tuesday when asked by reporters about the rumors.

화요일, 조준혁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기자들이 소문에 대해 묻자, “미국은 우리와 협의하지 않고 새로운 정책이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Moon Sang-gyun, a Defense Ministry spokesman, also warned that South Koreans should not be “deluded” by unfounded rumors spreading online.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도 한국민들이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는 근거없는 소문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Defense analysts said there were too many constraints for the United States to launch a pre-emptive strike against North Korea without expecting a major retaliation.

방위 분석가들은 미국이 심각한 반격에 대해 예상하지 않고 대북 선제공격을 개시하는 것에는 수많은 제약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North Korea keeps most of its crucial military assets in tunnels, and it remained unclear whether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n military planners had located them all.

북한은 대부분의 핵심 군사 자산들을 터널들 속에 배치하고 있고, 미국과 한국의 군사 전략가들이 그들의 위치를 모두 파악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There are also 200,000 American civilians, as well as 28,500 United States troops, living in South Korea, and their neighborhoods would probably be among the first targets of any North Korean retaliation.

한국에는 28,500명의 미군들뿐만 아니라 200,000명의 미국 민간인들도 살고 있으며 이들이 사는 지역이 북한 반격의 우선순위 목표가 될 것이다.

On Tuesday, North Korea’s main state-run newspaper Rodong Sinmun said that if the United States tried a pre-emptive strike, it would be “as foolish as putting its own neck on the chopping block.”

화요일 북한의 국영 신문인 노동신문은, 미국이 선제공격을 시도한다면 “작두 날(역주: 영문은 도마이지만 북한 노동신문의 원표현을 따라 작두 날로 번역함)에 목을 들이미는 것과 같은 미련한 짓”일 것이라고 비난했다.

With less than one month left before the presidential election in the South, how to deal with North Korea has become a dominant campaign issue.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대북정책이 지배적인 대선 캠페인 주제가 됐다.

Mr. Ahn, the presidential candidate of the centrist People’s Party, has recently surged in popularity to rival Mr. Moon in a neck-and-neck race. Many conservative voters who were disappointed by Ms. Park’s conservative camp were supporting Mr. Ahn, whom they considered tougher on North Korea than Mr. Moon, political analysts said.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는 최근 상승세를 타고 문 후보와 대등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정치 분석가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보수 진영에 실망한 많은 보수 유권자들이 안 후보를 지지하고 있으며 안 후보가 문 후보보다 북한에 대해 더욱 강경한 입장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Mr. Ahn said that if elected, he would honor the contentious decision by Ms. Park’s government to allow the United States to deploy an advanced antimissile defense system in the South.

안 후보는 당선된다면 미국의 새로운 미사일방어시스템의 한국 배치를 허용한 박근혜 전 대통령 정부의 논란 많았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China has vehemently opposed the deployment, calling it a threat to its own security, and South Korean shops, movies and TV dramas have been boycotted by many Chinese in recent months.

중국은 미사일방어시스템 배치가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 주장하며 격렬하게 반대했고, 많은 중국인들이 최근 수개월 간 한국의 상점들과 영화 및 TV드라마 등을 보이콧했다.

Mr. Moon, who has said South Korea should learn to “say no to the Americans,” vowed to review the deployment if elected.

한국이 “미국에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 문재인 후보는 당선되면 미사일시스템 배치 결정을 재검토할 것이라 약속했다.

On Tuesday, Mr. Moon said if North Korea froze its nuclear weapons program and returned to negotiations, the deployment of the so-calle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or Thaad, could be suspended. But if North Korea conducts its sixth nuclear test and advances its nuclear weapons program, he warned, the deployment will become “inevitable.”

화요일 문 후보는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동결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온다면, 소위 고고도방어체계 또는 사드의 배치는 보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만약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핵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한다면, 사드 배치는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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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설립인가를 취소하고 재산을 몰수하라!"

민권연대, 전경련 설립인가 취소 및 재산몰수 주장
 
편집국
기사입력: 2017/04/13 [23:4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권연대 회원들이 전경련에 대한 설립인가 취소와 재산환원을 촉구했다.     © 편집국

 

재벌대기업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을 통해 박근혜에게 뇌물을 줬다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13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는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전경련 설립인가를 취소하고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덕범 민권연대 회원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박근혜를 끌어내렸지만 아직 과제들이 많다며전경련 해체가 그 중 하나라고 이야기 했다홍 회원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시민들이 아직 할 일이 많다며박근혜 정권에 뇌물을 갖다 바치고 관제데모를 후원한 전경련 해체를 위해서도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일 민권연대 사무총장은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정황이 발견되자 국정원은 셀프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그 이후 흐지부지 되었다며전경련 역시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지난달 전경련은 해체가 아니라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이름을 바꾸겠다며 혁신안을 내놓은 바 있다김 총장은 간판만 바꿔단다고 이전의 죄악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며 전경련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정부가 나서 설립인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피켓을 들고 전경련 해체를 주장하고 있는 참가자들.     © 편집국

 

민권연대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재벌대기업들은 전경련이 주관하는 모금을 통해 특정 재단 등에 수십억대의 자금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해 왔고전경련이 박근혜가 관제데모를 조직하는데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고 지적하며, “전경련은 국정농단의 공범이며정경유착과 비리의 온상으로 해체만이 답이다고 주장했다.

 

민권연대는 정부는 이번 국정농단사태에 대한 반성과 주권자인 국민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마땅히 국정농단의 공범인 전경련의 설립을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나아가 민권연대는 전경련의 재산에 대해 재벌대기업들이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내고중소기업·상공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결과 축적된 돈이라며 각종 불법정치자금을 목적으로 부도덕하게 모인 돈이다전경련이 재산은 당연히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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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정부는 전경련 설립인가를 취소하고 재산을 몰수하라!

 

그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한국사회의 적폐중의 적폐인 정경유착의 주요 고리역할을 해왔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서 밝혀진 것과 같이 재벌대기업들은 전경련이 주관하는 모금을 통해 특정 재단 등에 수십억대의 자금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해왔다.

 

재벌총수들은 현재 청와대의 강요에 의해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죄’ 혐의로 구속된 것만 봐도 전경련의 변명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삼성은 4세 경영승계를롯데는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SK는 최태원 회장의 특별사면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이런데도 대가성 없이 청와대에 돈을 건넨 것이라 운운할 것인가.

 

더군다나 전경련은 박근혜가 관제데모를 조직하는데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특검은 전경련이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보수단체 20여곳에 건넨 금액은 총 68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힌 바 있다주옥순 '엄마부대대표는 작년 1~10월 전경련 간부와 40여 차례에 걸쳐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60, 70년대에나 있을법한 관제데모가 전경련의 후원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렇듯 전경련은 국정농단의 공범이며정경유착과 비리의 온상으로 해체만이 답이다.

그런데도 전경련은 스스로 해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전경련은 지난달 24일 혁신을 운운하며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했다전경련 해체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간판만 바꿔단다고 이전의 죄악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나서 설립인가를 취소해야 한다더구나 며칠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발표에 따르면 전경련은 최저임금위원회 등 중앙행정기관 8, 12개 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전경련이 이들 위원회에서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일을 했을지 불보듯 뻔하다.

정부는 이번 국정농단사태에 대한 반성과 주권자인 국민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마땅히 국정농단의 공범인 전경련의 설립을 취소해야 한다.

 

나아가 해산된 전경련의 재산은 국가가 환수해 국민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전경련의 재산이란 것이 무엇인가재벌대기업들이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내고중소기업·상공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결과 축적된 돈이다각종 불법정치자금을 목적으로 부도덕하게 모인 돈이다전경련의 재산은 당연히 환수해야 한다.

 

국민들은 박근혜 한명 때문에 촛불을 든 것이 아니다이번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한국사회의 고질병적폐중의 적폐인 정경유착을 뿌리째 뽑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전경련 설립인가를 취소하고 재산을 몰수하라!

 

2017년 4월 13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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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철거한 미국... 손해 본 건 하나도 없다

 
[4대강 독립군 미국에 가다] 올림픽 국립공원 엘와강의 교훈

17.04.14 05:23 | 글:이철재쪽지보내기|편집:손지은쪽지보내기

▲ 엘와강댐 ⓒ 올림픽 국립공원

"댐은 장벽(Barrier)이었다. 모든 걸 차단했다. 연어가 강에 오르는 것을 막았고, 연어가 다른 생물들과 만나는 것을 가로 막았다. 또 연어가 우리 부족과 만나는 것을 막았고, 우리 부족의 문화적인 전통 가치를 후대들이 접하는 것을 막았다."  

미국 서북부 워싱턴 주 포트앤잴리스의 원주민 클랄람 부족 프란시스 찰스(France  Charles)부족장은 단호했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올림픽국립공원 내 엘와댐(Elwha Dam)의 흔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다. 하지만 댐을 허물면서 장벽에 가로막힌 100년 동안의 고통도 함께 허물어 내린 듯했다.   

이날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 취재팀은 엘와강 일대를 조사했다. 비가 오락가락했다. 가는 비가 내리다가 금세 굵어졌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비가 내렸다. 취재팀이 클람람 부족과 함께 찾은 엘와강은 양쪽 경사진 둔치를 사이로 쪽빛이 감도는 물줄기였다. 급경사인 여울에서도 쪽빛 포말이 일면서 시원한 물소리가 쏟아졌다. 

자연스러운 계곡형 강의 모습이지만, 2011년까지만 해도 이런 풍경은 볼 수 없었다. 이곳의 거센 물살을 33m 높이의 엘와댐이 가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댐은 1913년 건설됐다. 1925년에는 엘와댐 상류에 64m 높이의 글라인스 캐니언댐도 들어섰다. 두 댐 모두 하류에 위치한 제지공장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목적이었다. 

어도조차 만들지 않은 댐
 
▲ 엘와댐 ⓒ 올림픽 국립공원

지난 100여 년 동안 엘와댐과 글라이언스 캐니언댐은 강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원주민과 생물들에게 재앙이었다. 올림픽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만난 브라이언 윈터 감독관은 "댐을 건설할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두 댐은 법률에 규정된 형식적인 어도조차 만들지 않았다. 당시에도 클랄람 부족은 댐 건설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미국 내무부 소속 인디언국은 이런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아니, 무시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당장 회귀성 어종인 연어들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는 원주민 부족이 연어 50%를 잡을 수 있도록 연방정부와 맺은 조약(Treaty)을 어긴 것이다.

엘와강이 있는 올림픽 반도는 태평양 연어 5종의 주요 산란지이자 서식지였다. 100파운드(약 45kg)에 달하는 시누크 연어가 강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곳이었다. 댐이 들어서자 연어 산란지 및 서식지 90%가 막혔다. 연어들이 급감했다. 핑크 연어는 댐 건설 전 연간 28만 마리였지만, 댐 건설 뒤에는 200~500마리 수준에 머물렀다. 다른 연어도 마찬가지였다.

엘와강은 원주민 부족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프란시스 찰스 부족장은 "강 줄기 따라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며 "방사성탄소 측정 결과 주거지 터는 800년, 조상들의 무덤은 2천 년이 넘게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연어는 주요 먹거리이자 생계수단이었다. 또한 전통 문화 그 자체였으며, 풍요의 상징이었다. 

엘와강 원주민과 낙동강 어민들, 동병상련
 
▲ 엘와강을 트레킹하고 있는 4대강 독립군과 클랄람 부족 ⓒ 정대희

연어의 감소는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까지도 해체시켰다. 엘와강 생태 시스템이 원주민을 부양할 수 없었다. 수천년간 이어져 온 공동체가 붕괴됐다. 원주민들은 선사시대 이래 삶의 터전이었던 엘와강을 버리고 타지로 가거나 벌목꾼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4대강 사업이 떠올랐다. 그들의 과거는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였다. 댐을 허물기 전 엘와강 원주민들의 피폐한 삶의 전철을 우리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해 4대강 사업 논문 등을 준비하면서 낙동강 유역 어민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4대강 사업 전 낙동강 어민들은 고기잡이로 풍요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았다. 윗대부터 내려온 경험적 지식은 장어 등 고가의 물고기가 어디에 서식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게 했다. 산란철에는 물고기들의 사랑싸움에 시끄러워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가을이면 튀어 오르는 숭어 떼 때문에 헬멧을 써야 했다. 겨울에는 먹구리 장비로 들어가 맨손으로 고기를 잡았다. 

4대강 사업으로 8개의 '보'라 불리는 댐이 들어서자 이런 일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물에는 고기 대신 썩은 펄과 녹조만 잔뜩 올라왔다. 생계를 위해 젊은 어부들은 도시의 일용직으로 떠나야 했고, '수위 자리도 쓰지 않는' 나이든 어부만 습관적으로 배를 몰고 강으로 나가지만, 돌아오는 건 그저 깊은 한숨뿐이었다. 이렇듯 자연 개조의 피해는 어디서나 힘없는 약자들 몫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낙동강은 여전히 8개의 댐으로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반면, 엘와강은 2011년부터 2년 6개월 동안 두 개의 댐이 철거돼 자연스럽게 회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 환경보호청(EPA) 자료에 따르면, 엘외댐 등의 철거 비용은 2690만 달러(약 305억), 강 복원에는 수력발전소 매입 비용, 어류 산란장 개설 등 총 3억2470만 달러(약 3676억)가 들어간다고 한다. 

엘와강에 댐이 철거되자 연어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클랄람 부족 주민이자 어류 연구 담당관 마이크 맥헨리는 "현재는 수 천 마리에 불과하지만, 30년 후면 20만 마리가 돌아올 것"이라 말했다. 엘와강 상류까지 연어가 올라가 산란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장어 등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생물종도 돌아오고 있다. 

엘와강에서 댐이 철거된 이유는 연어 복원이 가지고 있는 생태계 서비스 이익과 강 복원이 가지고 있는 경제성 때문이었다. 2011년 한국을 방문해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는 국제적 하천 전문가인 독일 칼스루헤 대학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는 유럽과 북미 지역의 댐 철거에 대해 "연어는 단지 한 종이 아니라 자연성 회복이 가져올 경제적 이익이 크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엘와댐은 1978년 댐 안전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 철거 논의의 단초였다. 앞서 1963년에는 멸종위기종법이 통과돼 일부 연어가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됐다. 이를 바탕으로 원주민들과 시민단체의 철거 운동이 거세졌다. EPA에 따르면 1990년대에 거의 대부분의 환경 검토 보고서는 댐 철거만이 연어 등 회귀 어류와 강 복원 방법으로 제시됐다. 

이를 바탕으로 1992년 엘와강 생태계와 어장 복원을 위한 법(아래 엘와강 복원법)이 통과됐다. 이어 4가지 복원 시나리오가 담긴 보고서가 미 의회에 제출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1995년 복원 관련 최종 환경영향평가는 두 댐을 철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1996년 평가에서는 댐에 쌓인 퇴적토가 하류의 자연적인 침식에 도움이 될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댐이 철거되자 하구가 형성돼
 
▲ 엘와강 삼각주 ⓒ 클랄람 부족

댐 철거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었다. 댐에 가깝게 살수록 반대 의견이 높았다는 것이 브라이언 감독관의 말이다. 댐이 철거 되면 필요한 전력도 못 얻고, 경제가 낙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댐에서 생산된 전력은 지역의 수요와 발전용량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브라이언 감독관은 "댐 철거 전후 경제성을 자세히 비교하는 자료는 없지만, 지금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 말했다. "필요한 전력은 다른 지역에서 공급되고 있으면서도 강의 흐름이 자연적으로 복원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에 따라 반대하던 주민들도 우려했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도하고 있다는 귀띔이다. 

댐이 철거되고 강이 복원되자 엘와강이 바다로 만나는 지점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댐으로 막혀 있던 퇴적토가 내려오면서 '산 후안  데 푸카(Strait of Juan de Fuca)' 해협으로 이어진 자연스러운 유사 흐름이 복원됐다. 하구에 350만㎥의 퇴적토가 쌓이면서 삼각주가 형성됐다. 

취재팀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드넓은 퇴적토에 도요새, 꼬마물떼새, 갈매기 등 다양한 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삼각주로 자연스럽게 해변이 형성됐고, 조개류 등이 살 수 있게 됐다. 퇴적토가 밀려 내려오면서 일시적으로 탁도 문제가 대두됐지만 2015년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는 것이 마이크 담당관의 말이다. 

"댐은 무조건 문제를 몰고 온다"


댐 퇴적토를 인공적으로 준설하려고 했지만, 비용 문제로 이를 포기하고 자연력에 의해 천천히 흘려보내는 계획을 했다. 엘와강 복원의 특징은 침식에 의한 하도 변화를 꾸준히 관찰하고 있다. 댐 철거 이후 만년설에서 내려오는 유량과 유속의 변화에 따라 침식 현상이 활발해졌다. 

엘와댐 상류 8km 지점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강 좌안은 미국 측백나무, 우안은 오리나무 군락지가 형성돼 있는데, 침식에 의해서 나무들이 하도로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이크 담당관은 "침식 과정에서 쓰러진 나무들은 다른 생물들의 먹이 및 서식처 기능을 하는 등 생태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강 복원은 인간의 과도한 간섭보다 강의 흐름에 맡겨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이다. 

브라이언 감독관은 한국의 4대강 사업에 대해 "자세한 맥락을 몰라 뭐라 하기 어렵다"면서도 "댐은 무조건 문제를 몰고 온다"고 지적했다. 댐을 지을 때 악영향을 경감시킬 수 있는 사전조치가 필요한데, 그것이 잘 안 돼 미국도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내 댐 철거 정책에 대해 "지역마다 다르다. 댐을 필요로 하는 지역도 있다"면서도 "안전과 경제성 등 때문에 최근 대형댐을 짓지 않는 추세는 맞다"고 밝혔다.  

미국의 댐 정책은 탐험, 개발, 복원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서부 개척시대 강은 탐험과 모험의 대상이었다. 이를 통해 금광 등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어 정착민들이 생기자 무수히 많은 댐이 들어서는 개발의 시대가 이어졌다. 1800년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부터 1990년대까지 매일 하루에 하나씩의 댐이 생길정도였다. 

이후 1990년대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 내무부 연방개척국장 댄 비어드가 "댐의 시대는 갔다(The era of dams is over)"고 말했다. 더 이상 댐을 지을 공간이 없어진 측면도 있지만, 강의 고유한 유황(계절에 따른 유량과 유속 변화)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인식이, 다시 말해 강을 복원하는 시대가 왔다. 유럽도 비슷한 경향성을 보였다. 

사실 한국도 같은 흐름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은 홍수를 강의 일부로 인정하는, 선진국형 물 정책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명박식 4대강 사업은 국제적 하천 정책의 흐름과 정반대로 진행됐다. 4대강 사업을 '강 살리기'라는 것을 두고 국제적 하천 전문가들이 코웃음 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브라이언 감독관은 "엘와강 복원에 관계된 모든 이들의 공통된 생각은 '강은 반드시 와일드 해야 한다' 것"이라 말했다. 때론 거친 역동성과 생명을 품는 안정성이 존재하는 강이 더 많은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이 결국에 사람에게, 자연 그 자체에게도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강 복원의 경제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복원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엘와강 사례처럼 경제적이면서도 강 복원에 따른 생태계 서비스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4대강 사업과 같은 잘못된 정책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면 이를 바로 잡는 복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강을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것이 곧 돈을 버는 일이다. 그것도 건강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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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박근혜 시대로 회귀하나”

퇴진행동, 15일 오후 ‘세월호 3주기 22차 범국민행동의 날’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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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3  1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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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오는 15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22차 범국민행동의 날 대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오는 15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22차 범국민행동의 날 대회가 개최된다.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수습과 철저한 선체조사, 책임자 처벌, 철저한 박근혜 수사와 처벌·공범자 구속·적폐청산-세월호 3주기 22차 범국민행동의 날’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과 4월16일의약속 국민연대(4.16연대)가 공동 주최하는 22차 범국민행동의 날은 오후 5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진행된다.

퇴진행동은 13일 오전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대회가 박근혜 구속까지 이끌어낸 촛불의 성과를 확인하면서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미수습자 수습과 세월호 진상에 대한 철저한 조사,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박근혜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 그리고 그의 공범자인 우병우와 재벌총수들에 대한 구속을 요구하는 기조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사드 철회를 비롯해 한반도 전쟁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평화 요구와 함께 촛불의 요구와 많이 동떨어진 대선 후보들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제기할 것이라고 별렀다.

지금까지 촛불 대회와 달리 도심행진은 없으며, 낮 시간 사전대회와 캠페인은 전과 같이 진행된다.

오후 3시 광화문 해치마당 인근에서는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 공동행동(추) 주최로 ‘만원행동’ 광장사업이, 오후 4시~5시 20분까지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는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 등 주최로 ‘미국의 한반도 위기조장 중단 긴급 평화행동’ 등이 계획되어 있다.

범국민행동의 날 대회가 끝나면 잠깐 사전무대를 갖고 저녁 7시부터 ‘세월호 참사 3년 전야 기억문화제’가 진행된다.

   
▲ 세월호3주기 22차 범국민행동의 날. [사진제공-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지난 3년 동안 외쳐 온 미수습자의 수습과 선체에 대한 조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구체적으로 호소하고 다짐하며, 세월호 생존자와 형제·자매의 글, 가족협의회 대표의 발언과 호소문이 낭독될 예정이다.

‘기억문화제는 국내 91개 지역, 해외 11개국 40개 도시에서도 함께 한다.

신경림 시인과 가수 권진원·한영애·이승환, 4.16가족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시와 노래를 부르고 참가자들은 ‘잊지 않을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등 대합창을 부르며, 추모의 의미를 담아 노란빛 소등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3주기인 16일에는 안산에서 추모안전공원 설립 등의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세월호 참사 3년 기억식, 안산 봄길 행진’이 열린다.

안산 봄길 행진은 오후 1시부터 안산역과 중앙역, 와동체육공원에서 각각 출발해 2시 30분에 분향소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진행되며, 오후 3시부터 기억식과 분향소 헌화가 진행된다.

   
▲ 세월호참사3년, 서울수도권 전야 기억 문화제 4월16일의 약속, 함께 여는 봄. [사진제공-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한편, 퇴진행동은 주요 대선주자들이 최근 장미대선 운운하며, 강력한 적폐청산과 평화를 요구하는 촛불의 요구와는 달리 사드배치가 가능하다는 등의 주장까지 하고 있고 적폐세력이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면서 29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퇴진행동은 12일 운영위원회를 통해 기존 요구인 △황교안 퇴진, 우병우 등 공범자 구속 및 박근혜 적폐 재벌총수 처벌 공범자 처벌, △사드배치 철회, 세월호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 적폐 청산 및 개혁입법 해결에 추가하여 △한반도 평화촉구, △사회대개혁과 촛불민심 적극 관철을 추가했다.

또 앞으로 사업방향으로는 △국정농단 세력의 재집결과 재집권을 적극 저지하고 △한반도평화, 불평등 해소 등을 위해 적극적 투쟁에 나선다고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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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철거민이 될 수 있다


도시빈민의 삶과 투쟁(4) : 철거민 문제의 해법은 무엇인가?
  • 최인기 빈해련 집행위원장
  • 승인 2017.04.13
  • 댓글 1
▲ 사진제공: 빈민해방실천연대

‘집’이라는 이름의 권력

도시공간의 발전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공사판이 벌어지고 도로는 파헤쳐지고 있다. 과거를 돌아볼 공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선 지 오래다.

집은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집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평범한 동네가 유명해지면서 갑자기 대규모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고 임대료가 치솟자 기존의 가게와 주민들은 임대료나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게 되는 일은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주택을 가진 사람은 광주에 살고 있는 60대로 2312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2014년 기준). 10대 이하 임대사업자도 전국적으로 817명에 달한다. 주택을 둘러싼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신도시 그리고 아파트

‘신도시’와 ‘아파트’는 한국의 현대 도시를 특징짓는 핵심 단어다. 80년대 이후 수도권에 분당, 일산 등의 신도시와 아파트가 건설된 것을 필두로 전국에 걸쳐 다양한 개발이 진행되었다. 서울은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주택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자 1980년 택지개발촉진법이 제정되었다. 당시 군사독재정권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자 대규모의 신도시와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여 신속하고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하고자 했다.

택지개발은 1981년 11개 지구가 지정된 이래 현재까지 전국에 총 723개가 지정되었고, 2014년 말에 총 603개 지구가 준공되었다. 우리나라 도시지역 인구의 약 23.5%가 택지개발사업으로 공급된 곳에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도시화 과정은 택지개발을 통해 고층의 아파트 단지와 신도시 건설이라는 특징으로 귀결된다. 

특히 군사독재정권이든 문민정부든 민주정부든 가리지 않고 역대 정권은 ‘도시재생’, ‘뉴타운’ 등의 이름으로 자본의 지속적 축적과 재생산을 위한 개발을 반복해 왔다. 한쪽에서 개발을 통한 이익을 취하고 있으면, 다른 한편에서는 삶의 공동체가 파괴되고 도시 바깥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압축적 도시화는 ‘용산 참사’와 같은 수많은 갈등과 죽음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누가 철거민이고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과연 누가 철거민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떠나 부유(浮游)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수도권 지역 서민들 대부분은 자각하지 못할 뿐이지 항시적으로 철거의 위협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무려 12년 동안 주거권 쟁취를 외치며 투쟁하는 방승아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2005년 6월 경기도 과천 3단지 재건축 조합이 결성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려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방씨는 이렇게 오랜 세월을 싸우게 될 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녀를 버티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철거용역깡패였다. 2006년 11월에는 용역 300여 명이 들이닥쳐 강제철거를 하였다. 이로 인해 한 사람이 용역의 폭행으로 실신하였다. 저항하는 이들에게 2007년 2월 과천시청은 업무방해금지 및 확성기 금지 가처분소송을 냈다. 이 와중에 32명이 연행되어 벌금이 총 2600만원에 다다르기도 했다. 철거로 생계가 망막한 이들에게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로 인해 과천 3단지 철거민 전원이 실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과정 속에서 철거민들은 하나둘 떠났다.

하지만 방씨는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2009년 12월부터 재건축 개발사 삼성물산에 맞서 삼성본관 1인 시위와 집회투쟁을 진행했다. 삼성측은 이건희 회장이 출퇴근하는 시간에 1인 시위와 집회를 못하게 멱살을 잡고 얼굴을 가격 하는 등 폭행하였고 명예훼손과 집시법 위반으로 고소고발과 민사소송도 반복됐다.

방씨는 “이런 지긋지긋한 투쟁이 12년째 전개되고 있습니다. 재개발이 휩쓸고 간 자리는 삶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철거민들의 신음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기약을 알 수 없는 오랜 투쟁으로 건강조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규제는 더욱 완화되었고 경기부양이라는 미명 아래 삼성자본은 끝없이 살찌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 철거용역깡패에 맞서 싸웠지만 본질은 삼성이라는 거대자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발 정책이 계속되어도 저와 같은 서민들의 삶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침몰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되돌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한사람의 사례를 살펴보자. 마포구 신수동 이순복씨다.

2010년 7월 신수1구역재건축조합이 결성되었다. 사업 승인처는 마포구청이며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사를 맡고 이주관리용역업체는 철거현장에서 악명을 떨쳐 왔던 다원과 경비는 찬마루가 맞고 있다.

이씨는 2015년 7월부터 철거민대책위를 구성하여 현재 전국철거민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전체 300여 세대 중 100여 세대가 남았고 그 중 30여 명의 주거세입자와 상가세입자들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투쟁이 시작되자 조합에선 재건축법상 전혀 없다던 이주비 등을 조금씩 지급하며 주민들을 하나둘씩 내보내기 시작했다. 대신 굳건히 버티고 있던 철거민대책위에는 명도소송으로 협박을 하였다. 명도소송은 철거절차의 마지막 단계다. 이전에 사업 승인처인 마포구청에 항의도 했다. 이주대책 마련 없이 생존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업승인 철회를 요구했으나 합법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마침내 2015년 11월18일 1차 강체집행과 철거를 위해 약 50여 명의 용역과 경찰이 동원됐다. 2015년 11월28일에는 3층에 자리 잡았던 가게에 사다리차 3대와 100여 명의 용역이 동원되었다. 이들은 유리창을 부수고 소화기를 쏘며 들이닥쳤다. 60세의 여성이 용역들에게 마구잡이로 끌려 나왔다. 소화기를 쏜 것과 폭력적인 법 집행에 항의 하던 상가위원장과 회원을 연행해 공무집행방해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6년 1월12일 3차 상가철거 때는 100여명이 넘는 용역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전기를 끊고 철거민들이 상주하는 건물에 난입을 시작했다. 쇠톱을 사용하여 뒷문과 앞문을 뜯고 소화기를 난사하며 주민들을 상대로 달려들었다. 1월 한겨울의 날씨는 영하 15도였다. 한겨울 강제집행은 사실상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폭력적이고 살인적이 집행이라는 말은 이제 상투적인 표현이 될 정도로 주민들은 처참히 내몰렸다.

그 후로 지금 이 시간까지 마포구청 앞에서 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눈이 내려도 천막조차 짓지 못한 상황에서 침낭과 비닐에 몸을 의지한 노숙투쟁이 시작되었다. 한겨울 천막은 뜯겨나기 일쑤였고 추위를 피해 구청 안 의자에 앉아있어도 끌려 나왔다. 이 와중에 함께 투쟁하던 철거민 문성관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되었다가 얼마 전 풀려 나왔다. 그렇게 동절기와 여름을 넘기고 다시 봄을 맞이하고 있다.

  
▲ 사진제공: 빈민해방실천연대

도시 개발정책의 맹점과 해법

최근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강제철거의 현장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서울시도 고민한 흔적은 엿보인다. 서울시는 2016년 말 강제철거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물론 2009년 용산참사 이후 ‘도시분쟁위원회’와 같은 갈등조정기구를 둔 적이 있고 동절기 철거 금지 등 사업 시행이나 정비계획에 세입자 의견수렴과 이주대책 등의 개선책을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 행정지침 수준이고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이번 ‘강제철거예방대책’ 가운데 사전협의체도 아직은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높지 않다. 전국철거민연합 김소연 활동가는 서울시의 제반 대책에 대해 “재건축 지역과 미 해당자의 문제에는 적용이 되지 않고 민간사업 시행자에 의한 강제철거 외에는 자치구와 같은 관의 강제 집행에는 아직도 속수무책”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자니 끝은 보이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은 다양한 이해당사자간의 충돌로 얽혀 있다. 현행법으로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있다. 이 법은 2002년 9월 김대중 정부 때 발의되었는데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불과 2개월이 걸렸을 정도로 입법과정이 허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법 38조 사업시행자는 주택정비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토지·물건 및 그밖에 권리를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일정 조건을 만족한 민간사업시행자에도 수용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감이 없는 재개발조합이나 건설사가 사유재산을 강제 수용하게 만든 이 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 행복추구권, 거주이전의 자유 및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우리 헌법 제37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지만, 제한하는 경우에도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법의 매도청구제도는 헌법이 정한 위와 같은 한계를 벗어난 ‘강제수용법’이다.

강제퇴거 문제에 대해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용산참사 이후 대안적인 입법으로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법이 강제퇴거금지법안입니다. 개발 현수막이 동네에 나부키는 순간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세입자들이 불법이 되었거나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제퇴거금지법은 개발로 대책 없이 쫒아내는 것, 강제퇴거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 법의 취지입니다.” 이 법안은 몇 년째 국회에서 표류되어 있는 상태다. 용산참사 이후 주춤했던 철거가 다시 활기를 띄면서 강제퇴거금지법도 시급히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 사진제공: 빈민해방실천연대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이 돼야 할 ‘지역’

가난한 이들에게 집은 삶의 모든 것일 수 있다. 따라서 함부로 내쫓을 수 있는 폭력을 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허용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법과 제도 이전에 먼저 도시 자체가 이윤추구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이들이 두 발 뻗고 쉴 수 있는 곳, 나아가 차별 없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이야기의 끝은 다시 원론으로 돌아와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는 주체 형성과 지역과 공간에 기반을 둔 실천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경제적 토대 즉, 생산과정에 대한 변혁뿐 아니라 작업장으로 한정되어 규정되고 있는 현장의 개념을 지역이란 재생산 공간으로 넓히고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지역적 연대를 구축하고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으로 지역과 도시 공간을 주목해야 한다. 모든 권리는 애초부터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권리로 여겨졌던 것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새로운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인기 빈해련 집행위원장  minplusnews@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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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미 “전두환, 사실상 군 통수…계엄군 과잉반응도 의도”

[단독]미 “전두환, 사실상 군 통수…계엄군 과잉반응도 의도”

최민지·이유진 기자 ming@kyunghyang.com

 

ㆍ경향신문, 미 정부 군사·외교 비밀문서 분석

<b>▲미 국방정보국 비밀문서</b> 계엄군의 폭력적인 진압이 ‘전두환의 게임 플랜’이었다고 분석한 미 국방정보국(DIA)의 1980년 6월4일 기밀문서.

▲미 국방정보국 비밀문서 계엄군의 폭력적인 진압이 ‘전두환의 게임 플랜’이었다고 분석한 미 국방정보국(DIA)의 1980년 6월4일 기밀문서.

경향신문은 미국의 언론인 팀 셔록이 최근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제공한 미국의 외교문서 3800쪽에 대한 분석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3600쪽가량은 1996년 셔록의 보도 직후 미국 정부가 한국에 제공한 자료들과 겹치며 당시 국내 언론에도 소개됐다. 당시 공개되지 않았거나 그 후 추가 공개된 국방정보국(DIA)·중앙정보국(CIA)·국무부 문서들에서도 5·18 당시 정황을 담은 유의미한 외교기록들이 목격되고 있다. 

■ “계엄군의 과잉진압은 전두환의 ‘게임 플랜’”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자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서울에 있었을뿐더러,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군에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의 시각은 달랐다. 전씨가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하며 사실상 군통수권자인 대통령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당시 미국의 판단이다. 1980년 5월 작성된 여러 건의 DIA·국무부 문건은 계엄군을 움직이는 조종자로 전씨를 지목하고 있다. 

<b>▲미군 태평양 합동정보센터 기밀문서</b> 미 태평양사령부 산하 합동정보센터(JICPAC)가 공개한 광주 5·18 당시 일본 자위대의 동향을 담은 문서.

▲미군 태평양 합동정보센터 기밀문서 미 태평양사령부 산하 합동정보센터(JICPAC)가 공개한 광주 5·18 당시 일본 자위대의 동향을 담은 문서.

 

미국 DIA의 한국 내 요원이 1980년 6월4일 보고한 ‘한국 혼란 업데이트’에는 5·18 당시 발생한 시민에 대한 계엄군의 발포와 학살의 배후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있음을 적시했다. 이 문서에는 한국군 관계자로 추정되는 복수 정보원의 얘기가 인용돼 있다. 한 정보원은 “5월17일 광주에 배치된 7공수여단은 초반에 (임무를) 잘 수행하지 못했다”며 “(군이) 과잉반응을 보인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 ‘과잉반응’이 전두환의 ‘게임 플랜(game plan)’의 일부”였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1980년 5월20일 작성된 ‘광주 상황 업데이트’에서는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대응을 전하며 “군대는 그들의 힘을 자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당시 광주시민에 대한 군의 대응이 지나치게 폭력적이었음을 뒷받침한다. 

<b>▲글라이스틴 대사가 보낸 외교문서</b> 1980년 5월9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가 본국에 보낸 기밀문서.

▲글라이스틴 대사가 보낸 외교문서 1980년 5월9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가 본국에 보낸 기밀문서.

폭력진압에 열의를 보인 당시 한국 군인들의 태도도 보고서로 전달됐다. 5월8일 작성된 문서에서 요원은 전국의 대학생 시위 진압에 파견된 한국 공수부대원들에 대해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특수부대에서 파견된 군인과 남성들은 기꺼이 ‘머리를 깨부술(breaking heads)’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묘사했다. 

1980년 6월9일 작성된 DIA 문서에는 5·18 당시 한국군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한국군 관계자들의 신랄함과 비통함이 담겼다. 이 문서는 계엄군의 잔인한 대응을 “전두환과 노태우 등 군사정권의 지배자들이 베트남전에서 얻은 전투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5월22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이 내부 치안 유지를 위해 추가적인 군 투입을 요청할 경우 전두환 일당의 편집증을 고려해 그들에게 훈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5월18~27일 사이 작성된 DIA 문건에도 “전두환은 광주와 관련해 극도로 격렬한 태도를 보였다”며 “광주사태의 성공적인 처리에 그의 미래가 달렸다”는 분석이 실렸다.

■ “광주는 폭도 아닌 자유시민의 도시…‘보스턴 차 사건’과 비슷”

미국은 5·18 당시 광주를 “폭도가 아닌 자유시민의 도시”로 묘사하고 ‘보스턴 차 사건’에 비유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6월10일 본국에 보고한 ‘광주사태에 대한 내부 정보원의 기록’ 문서에서 “5·18사태는 공산주의자가 선동하거나 개입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당시 광주에 체류했던 익명의 정보원 증언을 글라이스틴 대사가 정리한 글로 5월18~27일 광주 상황을 서술했다. 글라이스틴은 이 문서를 “가장 균형 잡힌 기록이자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이 정보원은 5월21일자 기록에서 “5·18사태는 광주시민 전체의 문제이며 일부 학생들의 문제로 논의돼서는 안된다”면서 “우리가 광주에서 본 것은 (공권력에 의해) 극도로 몰아붙여진 시민들의 시위였다. 이 시위는 정책과 계획이 없는 폭력적 분노였으며,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의 일시적인 무법이었다”고 했다.

[단독]미 “전두환, 사실상 군 통수…계엄군 과잉반응도 의도”

그러면서 “5·18사태는 ‘보스턴 차 사건’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보스턴 차 사건은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1773년 보스턴 시민들이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 판매권 독점에 항의하자 영국 정부가 무자비하게 진압해, 결국 미국 독립혁명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다. 광주의 시위는 “정책과 계획이 없는, (평소에는)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의 일시적인 무법”이며 “자유로운 시민들이 짓밟힘을 거부하면서 생긴 자발적 연소”라는 것이다. 

이 정보원은 ‘광주 공산주의자 개입설’을 부정하기도 했다. 그는 “5·18을 두고 공산주의자가 선동하거나 개입했다고 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정보이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군은 민간인 사상자를 최소화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공산주의자 혹은 북한 개입설을 반박하는 내용은 국무부 문서뿐 아니라 DIA와 CIA 문서에도 등장했다. 1980년 6월2일 DIA 요원이 정보원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문서에는 “공산주의자가 광주사태에 개입했는지를 묻자 정보원이 ‘공산주의자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시민들이 보인 행동의 동기는 공산주의가 불어넣은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공산당의 노리개가 아니었다’고 답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한 CIA 요원은 1980년 5월21일 문서에서 “북한이 전두환이 계엄령을 확대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진압한 것을 비난했지만 남한 상황에 개입할 어떠한 의도도 부인했다”고 적었다. 글라이스틴 대사 역시 같은 달 문서에서 ‘남한에 난관이 생기더라도 개입할 의도가 없으며, 남한 당국이 남한 내부의 위기를 우리와 연결시켜선 안된다’는 북한 성명을 소개하며 “북한의 발언은 걸러 들어야겠지만 그럼에도 위안이 된다”고 했다. 

<최민지·이유진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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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생명안전이 존중되는 일터와 사회 요구

민주노총, 생명안전이 존중되는 일터와 사회 요구
 
 
 
편집국
기사입력: 2017/04/12 [22:3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주노총이 대선을 앞두고 각정당들에게 생명과 안전이 존중되는 일터와 사회를 위한 개혁과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진 : 민주노총 노동과세계)     © 편집국

 

민주노총이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과 후보들에게 생명과 안전이 존중되는 일터와 사회를 위한 개혁과제를 요구하고 나섰다민주노총은 12일 오전 1130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요구안을 밝히고 각 정당에 전달했다.

 

민주노총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매년 2,400여명이 죽는 산재 사망메르스 사태가습기 살균제 참사지진 등 한국사회의 반복적인 노동자시민의 죽음이 이어졌다며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의 광폭 행보와 정권의 방조로 인한 엄청난 손실이 오로지 노동자와 시민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민주노총은 “1,700만 촛불 시민이 만들어낸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생명 안전 공약을 적극적으로 내거는 후보는 찾을 수가 없다며 최소한의 노동자시민의 생명안전이 존중되는 일터와 사회를 위해 대선 후보들은 강력한 개혁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 반복적인 산재사망과 재난참사를 끝장내기 위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위험의 외주화 중단과 생명안전 업무 인력 확충원청 책임 강화▲ 모든 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전면 적용과직업병 인정기준 확대 등을 요구했다.

 

▲ 민주노총의 생명안전 존중 일터를 위한 입법과제. (자료 : 민주노총)     © 편집국

 

한편 13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는 세월호 가족협의회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반올림 등 피해자 단체와 142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2017 대선 캠프 초청 국민생명안전 대 토론회와 대선후보 국민생명안전 약속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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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생명안전이 존중되는 일터와 사회를 위한 민주노총 대선 요구

 

지난 15년간 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만 36천명에 달하고, 136만명이 산재를 당했으며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만 241조 1,200억에 달한다이는 2,500만원 연봉 노동자 964만 4천명의 고용이 가능한 금액이다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매년 2,400여명이 죽는 산재 사망메르스 사태가습기 살균제 참사지진 등 한국사회의 반복적인 노동자시민의 죽음이 이어졌다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의 광폭 행보와 정권의 방조로 인한 엄청난 손실이 오로지 노동자와 시민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1,700만 촛불 시민이 만들어낸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생명 안전 공약을 적극적으로 내거는 후보는 찾을 수가 없다대선 후보들은 개혁의 방향과 세부 대책이 없는 안전한 국가를 구호로만 외치고 있다.

 

촛불 시민혁명으로 박근혜 퇴진과 구속을 이루어 냈지만 최소한의 노동자시민의 생명안전이 존중되는 일터와 사회를 위해 대선 후보들은 강력한 개혁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에 민주노총은 19대 대선에서 다음과 같이 요구하는 바이다.

 

첫째반복적인 산재사망과 재난참사를 끝장내기 위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

기업 살인법이 제정된 영국은 1명의 산재사망에 기업벌금 15억을 부과했고미국은 현대자동차 하청 노동자 산재사망에 30억 벌금을 부과했다그러나한국은 이천 냉동창고 40명 건설노동자 산재사망에 1명당 50만원 꼴인 2,000만원을 부과했다기업과 정부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징벌 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

 

둘째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고생명안전 업무 인력을 확충하며원청 책임을 강화하라

국정농단의 공범이었던 재벌 대기업은 위험의 외주화의 주범이다재벌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무차별적인 외주화로 하청 노동자 사망이 줄을 잇고시민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위험업무시민안전과 직결되는 생명안전 업무의 외주화를 금지하고원청 책임을 강화하라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안전전문가 선임을 확대하고안전인력을 확충하라

 

셋째모든 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라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구멍이 숭숭 뚫려 기업의 산재예방 책임에 수많은 적용제외를 남발하고 있다적용제외의 남발과 방치로 방사선 취급지자체 청소도로보수학교 급식 현장의 노동자들이 기본적인 안전교육안전관리자 선임노동자 참여 등이 방치되어 왔다특히 건설기계퀵 서비스등 운수사업 분야는 특수고용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되고 있다위험한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오히려 법에서 적용제외 되어 있는 것이다민주노총은 모든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면적용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넷째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전면 적용하고직업병 인정기준을 확대하라

250만명에 달하는 특수고용 노동자해외파견 노동자소규모 건설공사 노동자등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이 전면 적용되어야 한다또한, ILO 가입국가의 3분의 2가 시행하고 있는 출 퇴근재해 산재도 전면 적용직업성 암뇌심질환정신질환 등 직업병 인정기준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또한입증책임의 전환으로 산재심사 과정에서 흘리는 산재노동자의 고통과 분노의 눈물은 끝장내야 한다.

 

민주노총은 19대 대선 후보에게 생명과 안전이 존중되는 일터와 사회를 위한 개혁과제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이며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동자시민이 함께하는 투쟁을 지속할 것이다.

 

2017년 412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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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시민의 선택]‘응답 1000명’ 아닌 ‘조사 1000건’ 숫자보다 흐름 읽어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4/13 11:13
  • 수정일
    2017/04/13 11: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ㆍ외국선 여론조사 어떻게

지난해 미국 대선 전 여론조사 결과들을 종합·분석해 공개한 정치사이트 538닷컴(fivethirtyeight.com)의 웹페이지. 이 사이트는 여러 조사를 취합해 자체적으로 만든 지지율 추이를 실시간 발표했다. 모든 조사를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기관(1)마다 등급(2)을 매겼다. 표본 수(3)와 과거 조사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가중치 점수(4)를 주는 식이다. 이 사이트의 이름은 미 대선 선거인단 수(538명)에서 따왔다.

지난해 미국 대선 전 여론조사 결과들을 종합·분석해 공개한 정치사이트 538닷컴(fivethirtyeight.com)의 웹페이지. 이 사이트는 여러 조사를 취합해 자체적으로 만든 지지율 추이를 실시간 발표했다. 모든 조사를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기관(1)마다 등급(2)을 매겼다. 표본 수(3)와 과거 조사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가중치 점수(4)를 주는 식이다. 이 사이트의 이름은 미 대선 선거인단 수(538명)에서 따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다음달 9일 대선을 앞두고 최근 한 여론조사에 관한 검토에 들어갔다. 여론조사 방식과 응답자 구성 비율 등을 놓고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선거 민심을 반영하는 동시에, 선거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여론조사는 늘 논란거리다. 여론조사 방식이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세계 어디에서나 나온다. 여론조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이런 비판은 끊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 정치 사이트들과 언론들은 개별 조사 결과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추세를 분석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 여론조사, 결과보다 흐름이 중요 

우유 배달을 해 받은 돈으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신문을 만들던 조지 갤럽이 1935년 ‘미국여론연구소’를 세우고 이듬해 미 대선 여론조사를 시작했다. 당시에도 여론조사가 없지는 않았지만,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알프 랜든에게 질 것이라던 기존 조사 결과를 뒤집고 루스벨트 승리를 예견함으로써 갤럽의 시대를 열었다. 그 후 갤럽은 여론조사라는 하나의 ‘정치 장르’를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7 시민의 선택]‘응답 1000명’ 아닌 ‘조사 1000건’ 숫자보다 흐름 읽어라

미국에서는 대선 1년여 전부터 수천 건의 여론조사가 진행된다. 지난해 대선 하루 전날인 11월7일에만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양자 대결, 혹은 두 사람을 포함한 4자 대결 등 다양한 구도를 놓고서 전국 조사 21건, 주별 조사 24건 등 45건이 발표됐다. 여론조사들의 정확성과 정치적 편향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지만 워낙 조사가 많고 투명하게 공개되다 보니 표심 흐름을 전반적으로 반영해 보여준다는 평가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들을 모아 보여주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닷컴 같은 사이트가 활성화돼 있다. 이 사이트는 여러 조사 결과들을 종합한 자체 지수를 만들어 흐름을 보여준다. 조사에 따라 오차가 생길 수 있지만 흐름에 주목한다면 정치 현상을 해석하는 도구로 유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 예비경선 전부터 1년 넘는 기간 동안 수천 건의 여론조사가 진행되며, 리얼클리어폴리틱스닷컴 같은 사이트들을 통해 매일 공개된다. 이 사이트는 양자 대결이나 4자 대결 등 다양한 구도(1)로 이뤄진 조사 결과들을 기관별(2)로 취합해 후보들의 지지율(3)과 격차(4)를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여러 결과들을 종합한 자체 지수를 만들어 여론 추이를 알 수 있게 한다.

미국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 예비경선 전부터 1년 넘는 기간 동안 수천 건의 여론조사가 진행되며, 리얼클리어폴리틱스닷컴 같은 사이트들을 통해 매일 공개된다. 이 사이트는 양자 대결이나 4자 대결 등 다양한 구도(1)로 이뤄진 조사 결과들을 기관별(2)로 취합해 후보들의 지지율(3)과 격차(4)를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여러 결과들을 종합한 자체 지수를 만들어 여론 추이를 알 수 있게 한다.

여론조사 방법은 기본적으로 전화 조사다. 대체로 4~7일간 조사한다. 표본(응답자) 수는 1000명이 넘어야 신뢰도를 인정받지만, 조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중요한 것은 트렌드 분석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많이 인용된 ‘538닷컴’은 1년여에 걸쳐 총 1106개의 조사를 취합했다. 각각의 조사에 같은 비중을 두는 게 아니라 표본 수, 조사 시점, 해당 조사기관의 과거 조사 정확도 등을 감안한 가중치를 둬서 트렌드를 추적했다. 

그중 지난해 11월에 이뤄진 여론조사는 22개였다. 그 가운데 ABC·워싱턴포스트 공동조사는 11월3~6일 나흘간 진행됐다. 응답자는 2220명이었다. 과거 정확도가 높아 8.72의 가중치 점수를 주고 A+등급을 매겼다. 구글컨슈머서베이 조사는 조사기간이 7일이나 됐고 응답자 수도 2만6574명에 이르렀다. 신뢰도는 B등급이었으나 표본 수가 많아 가중치는 7.63으로 높게 잡았다. 11월1~3일의 폭스뉴스 조사는 표본 수 1107, 신뢰도는 A였다. 가중치는 2.21에 불과했다.

■ ‘폴 트래커’로 경향성 추적 

언론들도 여론조사 추이를 따라잡는 ‘폴 트래커(poll tracker)’들을 만들어서 추이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일간 USA투데이의 ‘내셔널 폴 트래커’는 주(州)별 조사 결과를 보여주고, 이를 종합한 그래프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후보 지지율을 알 수 있게 했다. 8월6일에는 클린턴 43% 대 트럼프 36.7%로 클린턴이 앞섰다. 11월8일에는 클린턴 3.2%포인트 우세로 격차가 줄었다. 실제 대선 투표 결과는 클린턴 48.2%, 트럼프 46.1%로 2.1%포인트 차였다. 

미국에서도 유선전화 조사가 갖는 한계가 늘 지적된다. 크레이지라쿤스라는 회사가 만든 ‘집(Zip)’이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받아 대선후보 지지도를 조사했다. 회사 측이 밝힌 사용자는 하루 평균 10만명이다. 웹사이트와 유선전화 조사에서 클린턴이 7~8%포인트 우세했던 지난해 8월 이 앱은 트럼프 승리를 예측했다.

문제는 여론조사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해석’이다.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은 트럼프에 박빙 우세에 그쳤지만 뉴욕타임스는 클린턴 승리 가능성을 선거 전날까지도 90% 이상으로 예측했다. 선거인단 간접선거제도와 승자독식 시스템이 맞물리면서, 과도한 ‘정치공학적 분석’이 오히려 정확한 예측을 막은 꼴이다. 주류 언론 대부분이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가 망신을 당했다. 실제 투표 결과와 가장 가깝게 예측한 사이트는 TPM 폴 트래커로, 클린턴이 1.9%포인트 앞설 것으로 봤다. TPM은 저널리스트 겸 블로거인 조슈 마셜이 2000년 만든 온라인 정치 사이트다. 하지만 이 사이트 역시 주별 선거인단 수에서 클린턴이 앞설 것으로 예상했다. 

■ ‘잘못된 표본’의 한계 

[2017 시민의 선택]‘응답 1000명’ 아닌 ‘조사 1000건’ 숫자보다 흐름 읽어라

지난해 6월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에 이뤄진 여론조사들은 신뢰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당시 유고브, 입소스 등 여러 기관들이 조사했으나 미국처럼 수없이 조사를 되풀이한 것은 아니었다. 유선전화 조사가 많았고, 간간이 온라인 조사도 했다. 1월부터 6월까지 120여건의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국민투표를 앞두고 6월1~22일에 실시된 것은 30건이었다. 조사기간이 한 달에 이르는 것도 있었지만 대개 2~3일 정도로 짧았다. 

특히 유선전화 조사에서는 유럽연합(EU) ‘잔류’가 온라인 조사에서보다 높게 나왔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탈퇴’가 3.8%포인트 많았다. 투표에서 젊은층, 고학력층, 전문직 종사자들은 잔류 지지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이들과 저임금·미숙련 노동자 계층의 탈퇴 지지 흐름이 여론조사에 적게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프랑스는 오는 23일 대선 1차 투표를 치른다. 미국처럼 양자 구도가 아니라 11명이 도전장을 내 변수가 너무 많다. 이달 들어서만 지난 10일(현지시간)까지 22차례의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유력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과 마린 르펜의 지지율이 거의 동률이어서 판별력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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