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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외무성, 한 층 강한 선제타격 경고

북 외무성, 한 층 강한 선제타격 경고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4/07 [07:4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은 한반도에서 만약 전쟁이 터진다면 단기속결전으로 조국통일의 숙원을 성취할 것이라고 늘 밝혀왔다.     © 자주시보

 

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의 외무성에서 또 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누가 선제타격했든 미국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상 임의의 순간 북이 미군을 향해 선제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경고이며  그 국제법적, 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총참모부나 국방위원회와 같은 군 관련 기구가 아닌 외무성에서 이런 입장을 피력한 것은 전후 처리 문제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전쟁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3월 30일에도  북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현재 한반도는 언제든 전쟁이 터질 위험해 처해있고 누가 선제타격을 먼저 가했건 그 책임은 먼저 북을 위협하고 있는 미국에게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미국의 위협의 근거로는 미군 핵전략자산 즉, 핵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전폭기, 핵잠수함 등 북에 핵선제타격을 가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장장비들과 북 수뇌부 제거를 노리는 참수작전 수행 특수부대들을 한반도 주변에 끌어들여 훈련을 하며 북을 노리고 있는 점을 들었었다.

 

그런데 1주일 뒤인 6일 북 외무성은 A4용지 7매 분량의 비망록을 통해 누구의 선제타격이건 그 책임은 미국에게 있다는 주장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기하며 대미선제타격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이 밝힌 비망록에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정치, 군사, 경제적 압박과 도발책동의 도수가 위험계선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며 "미국은 불법 무법의 (대북) 제재결의들을 조작해내고 그 리행(이행)을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 강요하고 있다"며 "이것은 벌써 적대 행위의 단계를 넘어 전면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경제제재에 대해서도 문제시하였다.

이어 "미국이 벌려놓고 있는 극히 도발적이며 침략적인 전쟁책동으로 악화 일로를 걸어온 조선반도(한반도) 정세는 오늘에 와서 더이상 통제 불능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키리졸브-독수리 한미합동훈련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특히 비망록은 지난 시기 미국의 대북정책에 반발해 발표한 국방위원회와 외무성, 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들을 나열하며 "(현 상황에서)우리는 미국에 거듭하여 보낸 경고를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며 조선인민군의 불의의 대미선제타격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외무성 비망록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선제타격했든 관계없이 미국이 져야 할 것"이라며 "우리의 자위적 선택은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정의의 대전으로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는 북의 이러한 주장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양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우회적 메시지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는데 시점상 충분히 그런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단순한 외교 압박용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올 키리졸브-독수리 한미합동훈련은 항공모함전단만 3개가 왔고 레인저, 델타포스, 데브그루 등 참수작전 수행을 위한 특수작전부대와 그들이 이용하는 침투전용기 등이 대대적으로 참가하는 등 사상 초유의 무력이 대북압박훈련에 동원되고 있다.

오죽했으면 양욱, 신인균 등 남측의 관변 군사전문가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연일 방송에 나와 미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 북으로 치고 들어갈 수 있고 반나절이면 북을 초토화할 수 있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겠는가. 당사자인 북이 느끼는 전쟁 위기 의식은 절실할 것이다.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대화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기는 하지만 미국의 고위관료들의 입에서 대북선제타격 주장이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다. 의회에서까지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이미 하원은 법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마지막으로 북의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준비가 마감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최후통첩성 경고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이는 더는 미국의 전쟁위협을 받으며 살 수 없다는 강력한 의사표현이다.

수소탄 시험까지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보유하게 되면 미국은 더는 북을 건드릴 수 없게 된다. 북은 핵폭탄과 함께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보유한 완전한 핵보유국임을 만천하에 보여줌으로써 안전을 담보받고 마음 편히 경제발전과 사회주의 이상사회 건설을 더욱 다그쳐나가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정전협정 즉, 전쟁을 잠시 쉬고 있을 뿐 사실상 전쟁 상태에 처해있는 북이 이렇게 미 본토를 핵으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완비했음이 증명되면 미국은 위험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거나 군사적으로 북을 제압하거나 양단 간에 하나의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도 되기 전부터 오바마 정부로부터 제일 먼저 받은 기밀자료브리핑이 바로 북핵문제였던 것이며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일이 되었으며 연일 미국 고위 관료들의 입에서 선제타격이요. 평화협정이요 하는 양 극단을 오가는 말들이 갈팡질팡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시진핑 주석과 회담을 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미국 단독으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미국 혼자서라도 어떻게든지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문제라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 쉽게 북에 선제타격을 가하지 못할 것이며 결국 조만간 북미평화협정체결에 나서지 않겠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물론 단순히 양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전쟁가능성 또한 만만치 않다고 본다. 영토가 작고 종심이 짧은 한반도에서는 미군이 먼저 선제타격을 가한다면 북은 치명상을 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북은 미군이 움쩍만 해도 먼저 선제타격을 가해 상대 공격 거점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주장해온 것이다.

북은 늘 미군이 공격진지를 차지할 때까지 절대로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무조건 북이 먼저 타격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북이 피해를 최소화하며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내놓고 강조해왔따.

 

문제는 미군이 이라크전쟁 때 못지 않은 방대한 무력을 현재 한반도 주변에 집중시키고 있는 상황이기에 북이 미군의 훈련 움직임을 공격 움직임으로 생각하고 선제타격을 가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또 조만간 미국이 북미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군철수에 나서지 않으면 북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단행할 것이 자명한데 그로 인해 미국의 대북제재와 군사적 압박은 극에 달할 것이며 그 와중에 전면전이 발발할 우려도 없지 않다고 본다.

 

한국전쟁 때도 그랬고 일촉즉발의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때도 북의 최고지도자는 사건 발발 직전까지 경제분야 현지지도 하고 있었다. 한반도의 전쟁은 사전에 아무런 징후 없이 평화로운 상태에서 불의의 순간 터지게 되어 있다. 불의의 선제타격 그것이 결정적 승리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핵심 무기를 모조리 파괴하고 전쟁을 시작하는 것과 나의 레이더 등 핵심무기를 파괴당하고 전쟁을 시작하는 것의 차이는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라크전쟁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시진핑 주석과 차를 마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사진의 표정을 보니 시진핑 주석은 웃고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눈동자의 초점이 흐리고 약간 얼이 나간 표정이었다. 선제타격과 평화협정체결,  어느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어서 고민고민하다가 머리의 테잎이 늘어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디 사업가로 크게 성공케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그 냉철한 사고력이 제대로 발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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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불가피하다

[4대강 독립군 미국에 가다] 단군 이래 최대 배임사건 4대강

17.04.07 05:13 | 글:하승수쪽지보내기|편집:김도균쪽지보내기

▲ 낙동강 녹조와 큰빗이끼벌레로 만든 MB를 위한 특별한 레시피. ⓒ 권우성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 처벌받는다고 적폐청산이 끝날까?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권력남용이나 부패에 대한 수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가려 있었지만, 그보다 더 못하지 않은 '거악'에 대한 수사도 필요하다. 그는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테니스에는 전 국가대표 선수들이 함께 했다. 6일 오전 올림픽공원 실내 테니스장에서 같이 치는 전 국가대표 선수가 이 전 대통령에게 공을 공손히 전달하고 있다. ⓒ 남소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면이 되면서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예우를 상실했고 구속이 됐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경찰의 경호를 받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현직 대통령 연봉의 95%를 매달 꼬박꼬박 받고 있다. 서울 삼성동에 있는 빌딩의 한 층을 사무실로 쓰며, 월 1천만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무실 임대료까지 지원받고 있다.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1명도 국민 세금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저지른 잘못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4대강 사업은 점점 더 큰 재앙이 되고 있다. 국민 혈세 22조 원을 들여서 시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강행했는데, 그 결과는 예산 낭비와 환경파괴였다. 강을 살리겠다더니 4계절 녹조가 창궐하고 큰빗이끼벌레와 기생충까지 기승을 부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건 정의가 아니다.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민사회는 4대강 사업의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13년 10월 22일에는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과 국민 4만 명이 4대강 사업 국민고발인단을 구성하고 '22조 원 배임' 혐의로 이명박 전 대통령 외 57명을 고발했다.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권도엽 전 국토부장관, 정종환 전 국토부장관,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장관, 서규용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 박영준 전 대통령 기획조정비서관 및 4대강살리기 TF 팀장 등이 피고발인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고발한 죄목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위반(배임)' 등이었다.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사업이라고 속여 2009년 말부터 2012년 말경까지 22조 원이 넘는 예산을 불법 지출케 함으로써 국가에 대하여 22조 원의 손해를 입히고 건설회사 등에게 같은 금액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했다는 것이 고발의 요지였다. 

그러나 2015년 11월 27일 서울지방검찰청은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고 불기소 처분(각하 또는 무혐의처분)했다. 이 처분이 내려질 당시는 우병우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였다. 환경운동연합 등이 항고를 했지만, 서울고등검찰청은 기각했다. 한마디로 수사 의지 자체가 없었다. 피고발인들에 대한 소환조사조차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의문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우병우씨가 수사 받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4대강 사업에 대한 재수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부실수사로 사건을 덮었지만, 이제는 재수사를 해야 한다. 

단군 이래 최대 배임 사건
▲ 낙동강 유역의 도동서원 앞 도동나루터에서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낙동강에서 뜬 녹조 물을 뿌려보고 있다. ⓒ 권우성

4대강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배임' 사건임이 명백하다. 처음에는 '한반도 대운하'이고 민간자금으로 추진할 것처럼 하다가, 어느 순간에 국민 세금을 쏟아붓는 사업으로 둔갑했다. 국가재정법상 해야 하는 예비 타당성 조사 같은 절차도 생략되었다. 막강한 권력이 개입되지 않았으면 추진될 수 없는 일이다. 

대형건설사들은 그 와중에 입찰담합으로 부당이득을 챙겼다. 한마디로 4대강 사업은 초대형 부패 게이트이다. 대통령에서부터 정부 관료, 정치인, 전문가, 건설회사, 언론들이 총동원된 게이트였다. 

그 정점에 있는 사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국민 세금 22조 원을 쏟아붓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사람은 이 전 대통령뿐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해외자원개발을 둘러싼 의혹 등 이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연루된 부패 의혹들이 수두룩했지만,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낳은 몸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에 가장 공헌한 사람이 누군가?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냥 공헌한 것이 아니라 '부당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이명박 캠프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샅샅이 조사했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랬던 그가 2012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밀어주면서, 이 모든 것들을 덮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정의를 세우자

그냥 덮은 것도 아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대선 불법개입을 했다. '부당거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결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권력이 사유화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래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 '단군 이래 최대 배임' 사건인 4대강 사업에 대한 철저한 수사, 해외자원개발 등 숱한 부패 의혹에 대한 수사,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당거래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야만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다.
 
'4대강 독립군'을 응원해 주세요!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추진한 4대강 사업은 '적폐 청산 1호'입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진행하는 '4대강 독립군 미국에 간다' 기획 보도는 4대강 대안 프로젝트입니다. 4대강 사업처럼 강을 망쳤던 미국이 댐을 해체하고 복원한 현장을 취재합니다. 다시 살아난 미국 엘와강의 아름다움을 보여드리면서 4대강의 희망을 전하겠습니다. 또 '4대강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통해 적폐를 청산할 수 있도록 정치권에 촉구하겠습니다.

4대강 문제를 끈질기게 보도해 온 오마이뉴스를 후원해 주십시오. 매월 1만 원의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이 되어 주시면 됩니다. 010-3270-3828(10만인클럽 핸드폰) 또 이번 현장 취재를 하는데 환경운동연합대구환경운동연합불교환경연대의 도움이 많았습니다. 4대강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해 온 단체들에게도 후원(회원 가입) 마음을 내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위의 단체 이름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하승수 기자는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입니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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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낭자들, 얼음꽃을 피우다

6백여 명 공동응원단, "우리는 하나다" 연호
강릉=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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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7  01: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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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강원도 강릉아이스하키센터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4부리그) 4차전 경기에서 남북이 만났다. 공동응원단이 '통일기'를 들며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6일 남북 낭자들이 얼음을 지치며 얼음꽃을 피웠다. 강릉아이스하키센터를 메운 남북공동응원단은 "우리는 하나다"를 연호했다. 특히, 이날은 유엔이 정한 '스포츠 평화의 날'이라 의미를 더했다.

이날 오후 9시 강원도 강릉아이스하키센터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4부리그) 4차전 경기에서 남북이 만났다. 이날 경기에서 남북 선수들은 빙상을 누비며 하키로 퍽을 주거니받거니 했다. 

몸싸움이 일반적인 아이스하키라 남북 선수들은 서로 몸을 부딪히며 넘어지는 등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누구도 서로를 원망하는 모습이 아닌, 선수 본연의 자세로 경기에 임했다. 경기는 결국 3-0으로 남한의 승리로 끝났다.

   
▲ 남북 선수들이 빙상장에서 퍽을 차지하려고 맞붙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남한 팀이 북한 팀 골대로 향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남한 골대 앞으로 나아간 북한 팀.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경기 시작 전부터 5천 8백여 명의 관중들은 너나할 것 없이 양팀을 응원했다. 특히, 강원도를 비롯해 서울, 부산 등지에서 온 6백여 명의 남북공동응원단은 "우리는 하나다"를 연호하며 경기장을 울렸다.

파란색 한반도가 그려진 흰색 모자달린 옷을 입은 응원단은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우리는 하나다", "이겨라 코리아", "통일조국", "힘을 내자" 등을 외쳤다. 그리고 북한 선수 한명 한명을 연호했다.

그리고 '통일기'를 흔들며 '아리랑', '반갑습니다', '우리는 하나' 등의 노래를 부르며 남북 선수들을 응원했다.

공동응원단에 동참한 벽안의 미국인인 톰 노리스 씨(23세)는 "통일에 관심이 있어서 왔다"며 "경기장 분위기는 사랑하는 분위기이다. 한국사람들이 북한 선수을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사람 파울해도 다 선수 이름을 불렀다.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로 협력하는 것은 좀 어렵다"며 "그런데 스포츠로 남북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스포츠 대회가 많이 있으면 좋겠다"며 '통일기'를 흔들었다.

   
▲ 이날 경기장에는 6백여 명의 공동응원단이 '우리는 하나다'를 연호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공동응원에 참가한 미국인 팀 노리스 씨.[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우리가 남북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경색국면인데 이런 운동경기를 통해서라도, 남북이 막힌 숨통을 트고, 경색국면 남북관계를 발전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더 발전해서 박근혜가 파면되고 구속된 상태에서 동족대결의 적폐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양쪽 선수들이 열심히 경기를 하되 남북이 한 동포라는 생각으로 서로 슬기와 지혜를 겨루면서 민족 모두에게 좋은 선물을 보내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경기를 관람하던 함세웅 신부도 "남북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며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니로 북한 여자선수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잘 하고, 이렇게 남북 청소년의 만남이 일치와 화합을 위한 디딤돌을 위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 정치적 교류로 나아가길 희망했다.

이날 2시간 동안 응원을 이끈 배준경 씨(35세)는 목청 높여 응원하느라 쉰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만나야 통일이고, 우리가 6.15의 약속으로 남에서는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를 응원하고 북에서는 여자축구 선수를 응원하기로 했기 때문에 6.15약속을 실천한다는 생각으로 한 분이라도 더 응원하실 수 있게 마음을 담을 수 있게 열심히 했다."

   
▲ "힘을 내라"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이날 2시간 동안 목이 쉬도록 응원을 이끈 배준경 씨.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유엔이 정한 '스포츠 평화의 날'에 열린 경기라는 점에서 대회 주최측의 관심도 높았다. 르네 파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회장이 시구했고, 경기가 끝난 뒤, 남북 선수들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고,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과 문영성 북측 대표팀 단장은 손을 맞잡고 경기장을 나왔다.

북한팀은 지난 2일 호주와 2-1, 3일 네덜란드와 4-2로 패했지만 5일 영국과 경기에서 3-2로 이겼다. 오는 8일 슬로베니아와의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 '통일기'를 흔들며 "통일조국".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통일기' 물결이 경기장을 압도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우승을 만끽하는 한국 선수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경기가 끝났지만 '통일기' 열기는 식지 않았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남북 선수들의 단체사진.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경기가 끝난 뒤 남북 선수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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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중미 정상, 사드 빅딜 가능성”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4/06 12:13
  • 수정일
    2017/04/06 12: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CBS ‘정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중국에 줄 카드 별로 없다”
▲ YTN 뉴스화면 캡처

6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열리는 시진핑-트럼프 중미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를 ‘빅딜’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전 CBS라디오 ‘정현정의 뉴스쇼’와 전화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의 몇 가지 (경제 분야의)요구를 들어주면서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사드, 이것은 좀 미국이 다시 조정하라는 식의 얘기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제가 빅딜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중미 정상회담에서 5400억 달러에 이르는 대중국 무역적자 해결 차원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미국 공업지대를 관통하는 고속철도 건설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중국은 이에 대한 급부로 사드 문제 해결을 주문할 것이란 관측이다. 

정 전 장관은 “(사드의)일부 부품이 (국내에)들어와 있는데 완전 조립한 건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조립을 해도 운용 시점에 문제가 있다. 바로 (사드)가동이다”라며 “가동을 연기할 수도 있고 그런 문제가 이번에 논의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면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챙겨야 할 것이 많다. 그러면 중국한테도 뭔가 선물을 줘야 될 거 아니냐. 그게 상호주의”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또 중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NBC 방송이 주한미군 오산비행장에서 저녁 메인뉴스를 생방송하는 것에 대해 “가재는 게편 아니냐”면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장외 압박전술이라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즉 “미국이 지금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한테 줄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결국 압박수위를 높이고 북한을 선제타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면, 북한을 선제타격하면 북한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도 어차피 끌려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중국 경제 성장에,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북한의 6차 핵실험설과 관련해 “이번 미중 정상회담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북한이 준비된 6차 핵실험을 마저 하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미북 간에 어떤 간접적인 딜을 하려고 하지 않겠나 그 생각도 안 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미국이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팔목을 비틀어서라도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미사일도 더 이상 발사되지 않도록 만들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우리가(미국이)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강하게 나오면 (북한이)‘할 테면 해 봐라’는 식으로 사고를 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net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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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문재인 죽이기’는 이미 시작됐다

언론의 대선 보도 행태를 통해 그들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임병도 | 2017-04-06 09:31:5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언론사마다 여론조사를 발표하고, 대권 판세를 분석합니다. 대선 뉴스가 쏟아져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언론의 문제점을 알고 있기에 그들의 보도를 마냥 믿을 수는 없습니다.

언론의 대선 보도 행태를 통해 그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안철수가 이긴다는 여론조사의 함정’

 

▲TV조선은 안철수,문재인 두 후보의 양자대결에서 안철수 후보가 앞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TV조선 캡처

 

4월 6일 오전 TV조선은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안철수 후보가 47%로, 40.8%의 문재인 후보를 오차범위를 벗어나 앞섰다고 보도했습니다. TV조선은 다른 언론사의 여론조사를 근거로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인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여론조사를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제대로 신뢰를 받으려면 그 과정이 투명 또는 공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 여론조사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4월 3일 내일신문은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7.2% 포인트 앞섰다는 여론조사를 보도합니다. 안철수 후보가 처음으로 앞섰다는 보도였습니다.

전체 표본의 60%를 차지하는 인터넷 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6% 포인트 앞섰는데, 40% 유선 전화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압도적으로 문 후보를 이겼습니다.

문재인 후보 측은 ‘무선전화 조사가 아예 없었다’는 점을 들어 여론조사의 신뢰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내일신문은 ‘여론조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부족한 억지’라며 문 후보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뉴스타파는 내일신문이 보도한 여론조사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론조사 기관이었던 ‘디오피니언’은 내일신문에 문의하라고 했고, 내일신문 담당 기자는 ‘자신들은 의뢰만 했지 가중치 등에 대해서는 모른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뷰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여론조사 기관인 ‘리서치뷰’는 페이스북에 선거 여론조사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리서치뷰는 선거 여론조사 논란에 대해 ‘여론 조사기관과 그들과 동업자나 다름없는 몇몇 언론사와 엉성한 예측을 남발해온 소위 직업꾼들’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이 ‘반성은커녕 언제 그랬냐는 듯 여론조사로 여론을 만들려는 것 같아 안쓰럽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리서치뷰는 “현재 ‘언론사 의뢰’ 형식으로 공표되고 있는 대선조사 관련 여론조사 비용을 해당 언론사가 ‘과연’ 얼마나 부담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언론사가 여론조사 비용을 제대로 부담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까요? 도대체 누가 여론조사로 여론을 만들려고 할까요? 여론조사를 무조건 신뢰하기보다는 그 안에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앙일보의 심상치 않은 여론조사 보도 행태’

 

▲2012년 대선기간 중앙일보 1면과 2017년 4월 중앙일보 1면

 

중앙일보는 2012년 4월 6일 지면 1면에 <문 38.4 안 34.9, 안 50.7 문 42.7>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는 불과 사흘 전인 4월 3일 월요일에도 <문.안 양강구도, 커트라인은 안철수 35%>라는 두 사람의 구도 기사를 1면에 배치했습니다.

2012년 대선과 비교해보겠습니다. 2012년 11월 1일부터 단일화가 이루어진 23일까지 중앙일보는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 관련 여론조사는 단 한 차례만 1면 지면에 배치했습니다. 그마저도 여론조사 그래프는 아주 작았습니다.

단일화 이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양자 대결이 벌어집니다. 선거 여론조사 공포 마지막 날인 12월 13일까지 두 후보의 여론조사 결과 1면 배치는 3회에 그쳤습니다. 역시나 여론조사 그래프는 항상 작게 배치됐습니다.

지금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를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중앙일보는 두 사람의 양자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크게 1면에 배치했습니다. 2012년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뚜렷한 양자대결 때와는 전혀 다른 보도행태인 셈입니다.


‘언론의 문재인 죽이기는 이미 시작됐다’

 

▲4월 5일 MBC뉴스데스크가 보도한 뉴스 리스트 ⓒMBC뉴스데스크 캡처

 

4월 5일 MBC 뉴스데스크는 <안철수, 첫날부터 광폭행보, 대선 승리자신>이라는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이후 <문재인 잇단 의혹.. 노 친인척비리 은폐했나?>라는 뉴스를 보도합니다.

안철수 후보 뉴스는 ‘광폭’,’자신감’이라는 키워드를 문재인 후보에게는 ‘잇단 의혹’,’비리’,’은폐’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언론이 누군가를 띄워주고 누군가를 죽일 때 사용하는 보도 행태입니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일이 현실과 다른 것은 아닙니다. 안 후보에게는 낮았던 지지율이 올라갈 여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런 현상이 마치 ‘대선 결과’처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입니다.

언론은 그 무엇보다 선거 보도에서 공정해야 합니다. 선거를 움직일 수 있도록 언론을 조작해서는 안 됩니다. 언론 권력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언론 조작은 범죄 행위라고 봐야 합니다.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공정한 언론개혁을 외쳤던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2012년 대선에서 지상파와 종편은 박근혜를 띄워주고 문재인을 죽였습니다. 2017년 언론은 또다시 문재인 후보를 죽이려는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언론사들은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언론 개혁’을 통해 그들의 기득권이 무너질까봐 두렵기 때문에 그를 죽이려고 하나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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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만원행동’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만원행동’
 
 
 
편집국
기사입력: 2017/04/06 [01: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만원행동이 출범했다. (사진 : 민주노총 노동과세계)     © 편집국

 

5일 최저임금 1만원·비정규직 철폐 공동행동(만원행동)’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1만원요구와 비정규직 철폐라는 사회적·시대적 요구를 한국사회대개혁의 핵심과제로 제기하고 공동행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만원행동은 헬 조선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한국사회대개혁의 핵심의제는 빈곤과 소득불평등문제 해결이고 이것은 대표적으로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며 출범의 취지를 설명했다만원행동은 법과 제도로는 재벌독식구조를 개혁하는 과제와 함께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모든 노동자에게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과제가 동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원행동은 향후 ▲ 527일 최저임금 1만원비정규직 철폐 문화제와 ‘4.15 범국민행동 사전대회’ 등의 집회▲ 비정규직 철폐·최저임금 1만원 쟁취재벌체제 해체노동법 전면 개정각계각층 선언운동▲ 비정규직 투쟁 연대 사업▲ 토론회워크샵선전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특히 6월 30일 노동자알바청년자영업자청년학생시민·민중단체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 대형 현수막을 펼쳐 만원행동 출범을 알리는 참가자들. (사진 : 민주노총 노동과세계)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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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행동’ 출범 기자회견문>

 

만원행복 따로 없다만원행동 함께하자.

 

온 국민이 촛불 들어 박근혜는 감옥 갔고

촛불 혁명 승리 했다 모두 함께 만세로다

살랑살랑 봄바람에 정권교체 꽃길 열려

시민혁명 완수하자 소리 높여 외치지만

 

쌔 빠지게 일해 봐야 한끼 밥값 최저임금

차별대우 기본이고 파리 목숨 비정규직

노조하면 해고하는 유명무실 노동 3

헬 조선이 따로 없네 노동지옥 그대로네

 

정권교체 해봤지만 없는 사람 그대로고

대통령은 바꿨지만 살림살이 그대로면

이게 무슨 혁명이냐 세상한번 바꿔보자

촛불승리 환호작약 노동현실 들어보자

 

콜수 부족 실적강요 돈벌이에 눈이 멀어

실습학생 귀한 생명 여지없이 앗아 갔고

만도헬라 비정규직 인간답게 살겠다고

노조가입 하였더니 한순간에 정리해고

 

알바노동 최저임금 이것마저 아깝다고

시간꺾기 임금착취 이게 정말 나라인가

보았는가 무한도전 열정페이 웬말인가

사람잡는 열정페이 공짜노동 너나해라

 

청소하는 노동자의 작은 소망 들었는가

잠시 쉬는 휴게 공간 이것마저 호사더냐

퇴직금이 아깝다고 / 11개월 근로계약

일 시킬땐 노예노동 법 따지면 사장소리

 

장미대선 정권교체 이대로는 못 믿겠다

촛불타령 그만하고 촛불민심 받들어라

이런 세상 바꾸는 게 촛불민심 촛불명령

이런 기회 다시없다 노동지옥 끝장내자

 

최저임금 만원으로 생활임금 확보하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 차별 없이 평등하게

재벌 배만 살찌우는 재벌독식 끝장내고

노동자면 노동조합 권리보장 당연하게

 

노동 없는 민주주의 이빨 빠진 호랑이다

촛불광장 주인들아 헬 조선을 타파하자

일터에서 주인 되고 우리 삶이 달라져야

이게 바로 촛불승리 후회 없는 촛불혁명

 

만원행동 출범했다 우리 모두 함께하자

노동자는 파업으로 알바청년 하루휴업

자영업자 철시하고 청년학생 공동행동

시민단체 민중단체 모두 함께 모여보자

 

퇴진행동 잘했으니 만원행동 다 모이자

촛불의 명령이다 최저임금 만원으로

촛불의 명령이다 비정규직 철폐하자

너도나도 함께하니 새 세상이 오는구나

 

2017년 4월 5

'만원행동출범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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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표적감찰 지시 뒤에 ‘좋은 기사’ 실어준 언론인 있었다

 

‘최연소 민정수석’ 논란 때 “능력있다” 기사 게재… ‘불만 민원’에 10개월 표적감찰, 직권남용죄 못 피해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2017년 04월 06일 목요일
 

“그러나 민원이 통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과 저돌적인 수사력을 높이 평가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 부장을 마친 우 수석을 대검 중앙수사부 과장으로 역진(逆進) 인사를 감행했다.” (2015년 2월2일 주간동아 “40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힘” 중)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강제 수색·폭언·협박까지 동원했던 ‘문체부 공무원 표적감찰’ 혐의 뒤엔 그와 사적인 친분을 맺어온 언론인이 있었다. 우 전 수석이 취임한 해 주간지 편집장을 맡았던 해당 기자는 우 전 수석 취임 직후 그를 ‘띄워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2월19일 청구한 우 전 수석 구속영장청구서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2015년 11월 주간동아 김아무개 편집장의 청탁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백아무개 감사담당관을 표적 감찰하고 부당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은 백 담당관의 신발을 벗기는 등 강제로 신체를 수색했고, ‘안 불면 네가 죽을 수 있다’ ‘여기는 죄가 없어도 죄를 만들어내는 곳’ ‘모두 특수부 출신으로 당신이 부인한다고 해도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등의 폭언 및 협박도 자행됐다.  

 

▲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21일 오후 서울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심사가 끝난 뒤 서울구치소로 가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21일 오후 서울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심사가 끝난 뒤 서울구치소로 가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영장청구서에 따르면 발단은 김 편집장의 ‘불만 제기’다. 2015년 11월 경 문체부 국민소통실 소속 서아무개 사무관과 이아무개 주무관은 2015년 7월부터 10월까지의 ‘위클리공감(정부 정책홍보 주간지)’ 제작비가 과다 계상됐다며 2164만3600원을 감액한 금액을 주간동아 측에 지급했다. 김 편집장은 이에 대한 불만을 우 전 수석에 전달한 것이다. 당시 주간동아는 위클리공감 제작을 문체부로부터 위탁받은 상황이었다.

 

2014년 12월 말 여성동아팀장에서 주간동아팀장으로 옮긴 김 편집장은 2015년 주간동아 편집장을 역임한 후 2016년 12월31일 신동아팀장으로 발령받았다. 특검팀은 김 편집장이 과거 법조출입기자로 근무할 당시 검찰에 재직했던 우 전 수석과 친분을 맺은 것으로 파악했다.  

영장청구서에는 김 편집장이 “피의자 우병우가 민정수석으로 취임한 직후인 2015년 2월2일 경 ‘40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우병우는 유능하고 강직한 검사로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수사에만 매진했으나 타협하지 아니해 적이 많이 생겼고, 노무현 대통령 조사는 그러한 능력을 높게 평가한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 젊은 민정수석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내용의 우호적인 기사를 주간동아에 게재한 사실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 주간동아 2015년 2월2일 ‘40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힘' 기사 캡쳐
▲ 주간동아 2015년 2월2일 ‘40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힘' 기사 캡쳐
 

 

 

백 감사담당관이 표적이 된 연유는 우 전 수석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다. 민정 산하 특별감찰반은 2015년 11월 초순경 우 전 수석으로부터 ‘서사무관과 이주무관을 감찰해 무조건 징계를 받도록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고 백 감사담당관에게 ‘윗 분의 지시이니 담당자를 철저히 조사해 무조건 징계하라’며 동일한 지시를 하달했다.

감찰 결과 특별한 비위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백 감사담당관은 11월 23·26·30일 같은 취지의 보고를 올렸다. 그가 감찰을 세 차례나 진행한 연유는 보고를 할 때마다 특별감찰반으로부터 ‘어떻게든 징계 사유를 찾으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백 담당관은 이를 위해 24일, 30일 두 차례에 걸쳐 직접 김 편집장을 면담해 민원 경위를 들었다. 백 담당관은 특별감찰반으로부터 ‘어떻게든 징계할 명분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으로 감사담당관(백씨)이 위험해진다’는 경고발언을 듣기도 했다.  

백 감사담당관은 민정 측 요구에 따르지 않고 12월 초 서사무관에 대해 ‘구두주의’를, 이주무관에 대해 ‘주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 특별감찰반에 조사결과보고서를 올렸다. 이후 백 감사담당관을 향한 ‘표적 감찰’이 시작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김 편집장은 우 전 수석에 불만을 제기했다. 특검 수사에 따르면 김 편집장은 우 전 수석에게 “문체부의 감찰조사는 제 식구 감싸기”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이후 우 전 수석은 윤아무개 민정비서관에게 “특별감찰반이 직접 문체부 감사담당관실의 온정적인 감찰조사 여부에 대해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특별감찰반의 폭언·협박성 발언·강제 수색 등은 이 즈음 발생했다. 감찰반 5인은 2016년 1월26일 저녁 8시30분 경 백 감사담당관을 특별감찰반 사무실로 불러 ‘왜 그렇게 온정적으로 처분을 했느냐’ ‘안 불면 네가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시인을 강요했다.

이들은 이어 1월 29일 오전 9시부터 저녁 10시 경까지 백 담당관을 조사했다. 특검 수사에 따르면 이들은 “백 감사담당관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한 후 신체를 수색했고 폭언과 욕설을 일삼으며 임의제출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위협해 동의서를 징구(요구)”했고 “백 담당관의 휴대전화를 받아 분석한 후 ‘삭제된 메시지가 복구돼 업무관계자와 골프를 치고 유관기관에서 무료 초대권과 숙박권을 받은 것이 확인됐다. 이 부분에 대해 직무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윤 민정비서관은 3일 후 박아무개 당시 문체부 1차관에게 ‘개인비리가 있다’며 백 담당관 인사조치를 요구했다.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은 “우 전 수석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입게 될 불이익을 우려해” 2월12일 백 감사담당관을 지역발전위원회 지역문화과장으로 좌천시켰다. 

특검은 이를 “사적 친분에 기인한 부당 감찰 지시와 인사조치 요구 직권남용” 범죄로 특정하고 우 전 수석 구속 사유에 포함시켰다.  

처음 표적들도 결국 징계… 우병우, 사적 이해관계 위해 ‘민정수석’ 권한 남용

표적 감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애초 표적이었던 서 사무관은 2016년 7월에 경고조치를, 이 주무관은 8월에 견책 조치를 받았다. 민정 특별감찰반은 우 전 수석의 재조사 지시에 따라 2016년 4월 19일 경부터 6월 말까지 둘에 대한 표적 감찰을 이어갔다.  

특별감찰반의 지시로 재조사에 착수한 문체부 감사담당 강아무개 사무관과 김아무개 담당관은 5월 4일·13일·18일 등 수차례 ‘징계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보고를 올렸다. 특별감찰반은 이 때마다 ‘재조사 내용이 부실하고 달라진 게 없다’ ‘주간동아 측 제출 의견서가 백퍼센트 사실이니 이를 토대로 재조사해라’ ‘중징계를 요구한다는 보고서를 반드시 작성해 오라, 마지막 경고이며 가족과 본인만 생각하며 작성하라’ 등의 경고를 전달했다.  

결국 문체부 감사담당관은 불이익을 우려한 나머지 6월23일 서 사무관에 대해서 ‘경고’ 조치를, 이 주무관에 대해서 ‘징계’ 조치를 하겠다고 보고했다. 특검 수사 결과 김종덕 전 장관은 “정권 실세 수석비서관으로서 장관에 대한 복무평가·사정·직무감찰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우병우 요구를 거절할 경우 입게 될 불이익을 우려한 나머지” 7월5일 서 사무관에 대해 경고 조치를 내렸다. 8월1일엔 이 주무관에게 견책 징계가 내려졌다. 

특검은 이에 대해서도 “중복 감찰조사 지시 및 부당 징계 요구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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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불평등 해소’가 시대정신…“복지 위해 세금 더 낼 것” 65%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4/06 10:37
  • 수정일
    2017/04/06 10:3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공정·불평등 해소’가 시대정신…“복지 위해 세금 더 낼 것” 65%


등록 :2017-04-05 21:04수정 :2017-04-05 22:21

 

-2017 대선 정책 여론조사-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질 ‘5·9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대를 약속하고 있다. ‘적폐 청산’ ‘패권주의 극복’ 등 민심을 얻고 상대를 고립시키기 위한 프레임 전쟁도 뜨겁다. 30여일 뒤 국정농단과 뇌물비리로 파면된 대통령을 대신할 새 지도자를 뽑기 위해 투표소를 향할 국민들이 생각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사회가 되길 바라십니까?”

 

<한겨레>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엠알씨케이(MRCK)에 의뢰해 3월30일부터 4월1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512명에게 던진 질문이다. 권력 사유화와 국정농단에 분노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봤을 이 물음에 응답자의 39.4%가 “빈부격차가 적고 사회보장이 잘 돼 있는 사회”를 꼽았다. “힘없는 사람들도 공정하게 대우받는 사회”라는 응답도 32.1%였다.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7년 봄, 시대정신으로 ‘공정과 불평등 해소’를 꼽은 비율이 70%를 넘긴 것이다. 반면 보수정권에서 주요한 화두로 내걸었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바란다는 응답은 18.8%에 그쳤다.

 

이런 열망은 새로 들어설 정부가 “양극화 해소 및 공정한 분배”에 주력해야 한다는 응답(54%)으로도 확인됐다. 반면 “성장을 통한 경제발전”은 41.9%였다. 성장과 분배라는 전통적인 논쟁에서 분배를 선택한 쪽이 확실한 다수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2012년 5월 <한겨레>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창간 기념 조사(전국 성인남녀 800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5%포인트)에서 “성장과 경제발전” 45%, “양극화 해소 및 분배”가 47.6%로 엇비슷하게 나왔던 상황과 비교하면 확연히 두드러진다.

 

‘더 나은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뜻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65.3%가 “그렇다”고 답했다. 시대정신인 불평등 해소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 요소인 복지 확대를 위해 내 지갑을 열겠다고 흔쾌히 답한 것이다. “세금을 더 낼 생각이 없다”는 답변은 31.5%에 그쳤다. 박근혜 정권은 증세를 죄악시하며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버텼지만 공정한 분배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더 강해진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은 “지난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뭐 하나 제대로 된 것 없다는 인식에서 공정한 사회를 향한 열망이 높아진 것 같다”며 “‘내가 세금을 더 낼 수 있느냐’는 물음에도 기꺼이 내겠다는 응답이 많이 나온 것은 공정한 사회·복지 확대 요구와 맞물리면서 사람들이 실제적인 변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유·무선 전화 임의걸기 방식의 전화면접 조사로 이뤄졌으며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2.5%포인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www.nesdc.go.kr) 참조.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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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응원하고 돌아왔습니다!”

대학생 이한희의 강릉 여자아이스하키 통일응원 참가기
강릉=이한희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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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4  18: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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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희(항공대학교 4학년, 대학생겨레하나 회원)
 

   
▲ 2일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하키 세계선수권 개막전에서 대학생겨레하나 등 남북공동응원단이 북측 선수들을 응원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한희 통신원]

북측의 선수들이 강릉에서 열리는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화통일 동아리 대학생겨레하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는 과거 남북교류가 활발했다고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이 들었지만 먼 역사였고, 통일은 멀게 만 느껴졌습니다. 지난 10년 간 제가 뉴스를 통해 본 남북관계는 얼음장 같았고, 살벌하기만 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저에게 북측선수들이 강릉에 온다는 사실은 너무 신기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학생들은 결심했습니다. 응원단도 없이 타지에 와서 경기를 벌일 북측선수들을 우리가 직접 응원하고 만나야겠다고.

응원을 가기로 결정한 뒤부터 남북이 함께 만나는 것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남과 북이 결정하고, 결심하면, 이렇게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동안 그 어떠한 교류도 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이 참 이상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북측 선수들을 응원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벅차고 설레였습니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 어떤 응원을 좋아할까?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지난 2일, 강릉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강릉하키센터 경기장에 도착하는 순간 남측 사람과 북측 사람의 만남이 쉽지 만은 않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절대로 만나면 안 되는 사람처럼 억지스러운 경찰과 진행요원들이 만든 긴장감이 참가자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경기장 안전 문제를 넘어서는 과도한 2중, 3중의 몸수색과 가방 바닥까지 ‘뒤지는’ 검사를 마치고 나서야 겨우 경기장에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 통일응원 참가자들은 막대풍선을 두드리고 단일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응원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한희 통신원]

통일응원 참가자들이 입장을 마치고 선수들을 맞이하기 위해 통일응원단장의 몸놀림에 맞춰 막대풍선을 두드리고 단일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응원연습을 해보았습니다. 처음 해보는 응원이지만 마치 오랜 기억 속에 있다 나온 것처럼 낯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짝짝짝, “하나다” 짝짝짝. “이겨라” 짝짝짝, “코리아” 짝짝짝. 구호를 외치는 순간 내 마음 속에 있던 작은 분단장벽마저 자연스럽게 허물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응원소리가 울려펴지는 사이 북측의 선수들이 빙판을 가르며, 경기장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반가움에 제 몸이 먼저 반응하고 움직였습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큰 박수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렇게 와서 경기하면 되는데, 이렇게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었는데, 왜 우리는 싸워야만 할까, 수없이 반복되는 생각들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만나면 안 되는 걸까.

   
▲ 2일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 2 그룹 A(4부리그) 대회 1차전에서 북한과 호주가 맞붙었다. 북한팀은 1:2로 패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한희 통신원]

호주팀과의 경기가 시작되고 참가자들의 응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북측 선수들을 환영하는 마음으로 ‘반갑습니다’를 부르고, 골을 넣을 때면 우리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빙판에서 뛰고 있지는 않지만 함께 호흡하고 뛰고 있는 제2의 선수가 되어 열정적으로 응원을 펼쳤습니다.

그 중 제 마음을 울렸던 구호는 20명의 북측 선수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 불러주는 응원이었습니다. “진옥” 짝짝짝, “최은경” 짝짝짝, “김은향” 짝짝짝, “김능금” 짝짝짝, “김향미” 짝짝짝... 선수들의 이름을 불렀을 때 마음속이 뜨거워지면서 아, 우리가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가진 한 민족이었구나! 민족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서로를 부르는 것도 통일이고, 우리 민족이 함께하는 모든 것이 통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한희 통신원]

안타깝게도 경기는 1:2로 호주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경기종료 후 무거운 마스크를 벗자, 뻘겋게 상기되어 있는 북측 선수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북측 선수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통일응원단은 경기 때보다 더 크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통일조국’, ‘우리는 하나다’를 외쳤습니다. 분명 우리의 응원에 보답하고자 꼭 이겨서 웃는 얼굴로 우리와 인사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선수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마주한 북측의 선수들은 하키 스틱으로 빙판을 두드리고 손을 들어 우리에게 흔들어 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고 한 번도 그들을 향해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응원을 하면서 이렇게 눈을 마주치는 것도 통일이고, 서로를 부르는 것도 통일이고, 우리 민족이 함께하는 모든 것이 통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공동응원에 참가한 서울대학생겨레하나 회원들이 경기장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한희 통신원]

남으로는 북측 선수들이 내려오고, 북으로는 남측 여자축구 선수팀이 평양에서 지금 경기를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스포츠로 이어진 남과 북의 만남. 이번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이 평창올림픽에서 평화의 올림픽으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평창 올림픽의 슬로건은 Hello PyeongChang입니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에는 Hello라는 인사조차 편안하게 나눌 수 없는 우리가 있습니다. 2018년 2월, 우리가 만났을 때에는 안녕하세요, 언제 봐도 반갑습니다! 우리말로 편하게 인사할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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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거리 아닌 중거리 미사일 발사…목적은?

 
미중 정상회담 앞두고 무력 시위
2017.04.05 10:21:40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 아닌 IRBM을 발사하면서 수위를 조절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합동참모본부는 5일 "오전 6시 42분경 북한이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며 "비행거리는 약 60여km이며 방향 방위각 93도, 최고고도 189km로 비행했고 북극성 2형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미국 태평양사령부 역시 이날 성명을 통해 초기 분석 결과 북한이 지난 2월 12일 발사한 '북극성 2형'을 시험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령부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의 관측 결과 이번 발사가 북미 지역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 지난 2월 1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12일 북극성 2호가 발사됐다며, 김정은(오른쪽 세 번째) 국무위원장이 이를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달 22일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실패한 것으로 관측된 이후 14일만이다. 당초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과 김일성 생일 등 굵직한 이벤트를 계기로 탄도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이 ICBM이라는 고강도 군사적 행동 대신 IRBM을 선택하면서, 미국과 중국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미중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감행하면서 자국에 가하고 있는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다만 북한이 지난 3월 7일에는 '핵 전투부 취급 질서' 점검을, 그리고 같은 달 18일에는 로켓의 신형 엔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힌 만큼, 이번 발사 역시 자신들의 군사적 필요에 따라 예정된대로 진행한 시험 발사라는 해석도 있다. 또 향후 ICBM 발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8시 30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미사일 발사 상황을 파악하고 대비태세를 점검했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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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제대로 조사하려면 목포 조선소로 가는게 바람직

‘선체는 바로 섰을 때 가장 안정된 구조’ 반드시 복원해야
 
신상철 | 2017-04-04 20:21:1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인양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점에 대하여는 지난 번의 글 - ‘세월호 인양방식을 보며 드는 걱정과 우려’에서 충분히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선체는 바로 섰을 때 가장 안정된 구조’

기본적으로 선체는 바로 세웠을 때 구조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철판의 두께만 비교해 보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거제 삼성조선소에서 신조선 감독으로 근무하며 25,000톤급 컨테이너선을 건조할 당시 더블버톰(double bottom, 이중저-선저하부) 외판의 두께는 대략 36mm였습니다. 그것도 고장력강(High-tensile steel)을 써서 그렇습니다. 고장력강이란 열처리를 거쳐 인장강도가 높아진 철판이라는 뜻입니다. 그에 비해 좌우현측외판은 18∼22mm 철판으로 연강(mild steel)을 씁니다. 열처리가 안 된 일반 철판을 뜻합니다.  

따라서 세월호의 현재 상태는 두껍지도 않고 강도도 높지 않은 좌현 외판이 선체 전체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물 속에서는 그나마 부력으로 인해 중력의 압박이 덜했겠지만 육지로 나온 이후엔 그 중력을 고스란히 떠받치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왜 물 속에서 선체를 바로 세우지 않았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해수부가 전문적인 기술 집단이니 그렇게 인양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Non-Sense!”입니다. 전 세계 해운, 조선, 인양업계에서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회자될 겁니다. 이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중국업체를 투입한 것을 포함, 조선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우리 해수부 스스로 추락시킨 사건입니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선수부위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두 줄의 손상이 나중에 밝혀진 바 인양계획 초기에 와이어케이블을 그곳에 거는 바람에 와이어가 파고들어 생긴 손상이라는 얘기를 듣고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적으로 그 수준은 아마추어 인양업자도 하지 않을 작업입니다.

▲ 지난달 26일 완전히 떠오른 세월호 선수. 특히 세월호 좌현선수에 생긴 두 줄의 손상은 초기 인양 계획 당시 와이어케이블이 선체를 파고 들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이치열 기자

 


해수부의 진의

 

해수부의 계획 (1)누워있는 그대로 인양 (2)목포신항으로 이동 거치 - 이 두 일련의 계획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제가 알고 있는 그 어떤 항해, 조선, 인양 전문가들 어느 누구도 모르는 ‘해수부만의 깊은 뜻’이 있는지 나름 열심히 검색을 해 보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작년 7월 해수부 관계자는 선체를 세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선체가 수직으로 세워지게 되면 그 안에 있는 화물이나 또 여객실 부분에 있는 자재들이 흐트러지고 유실될 우려가 있어서”라고 말합니다. 이 기사 내용에 달린 댓글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직으로 세운다고 왜 유실의 우려가 있을까? 뒤집히는 것도 아닌데. 이쪽에서 저쪽으로 횡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제자리에서 방향만 바꾸는건데. 옆으로 눕힌 채 인양하면 화물과 자재들은 층층이 쌓인 꼴이 되어 자체로 무너질 수도 있고 수색 자체가 안 되고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것임. 

똑바로 세울 수 있다면 세우는 것이 최선임. 어느 정도 움직임이 있겠지만 그건 감수해야 함. 이미 화물들은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진 상황인데 더 이상 흐트러뜨릴 수 없다며 눕힌 채 인양한다는 것은 이상함. 똑바로 세워 인양하면 선체 수색도 용이하고 선체를 절단할 이유도 없음. 똑바로 세우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위험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유실방지를 위해 눕힌 채 인양하는것이라면 말이 안 됨."  - 항적사수(출처 : http://actachiral.blog.me/220777576701) 

블로거의 지적과 같이 화물이나 자재의 흐트러짐을 위해 혹은 유실을 우려하여 선체를 세우지 않고 인양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것을 우려하여 눕혀 인양하는 것보다 세워서 인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훨씬 더 크고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니기 편하고, 수색하기 편하고, 조사하기 편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체는 바로 섰을 때 강도가 가장 강하다는 것을 간과한 처사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해수부가 왜 그러한 결정을 했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결과적으로 (1)제대로 된 선체조사가 이루질 수 없도록 지장을 초래하고, (2)형식적인 조사 이후 절단 및 해체하여 고철로 실어 나르기에 매우 용이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해수부장관을 포함, 세월호 인양과 관련된 관계자들의 집을 90도 옆으로 눕혀서 살아보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 상태로 과연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지... 수 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최악의 사고를 겪은 나라에서, 그 사고의 원인을 조사해야 할 선박의 선체를 90도 옆으로 눕혀놓고 조사한다고 하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해외토픽감입니다.  

선체를 눕혀놓고 조사를 하라고 하는 것은 사고원인 조사를 하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더라도 대충 하라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번에 선체조사위원으로 선정되신 분들의 고민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밥 줄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해수부가 선체를 옆으로 눕혀놓고 선실 수색이 어려우니 선실만 절단해서 직립시켜 수색하자는 ‘꼼수신공’ - 그것이 선박 해체 수순의 신호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말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조사위라면 그분들께서 공정하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할 것이라고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디 조사위가 중심을 잘 잡고 대응하시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 목포 인근 대형조선소로 이동하라

세월호 사고가 난 바로 다음 날 ‘Air Pocket’을 이야기하며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을 즉각 투입하라는 글을 여기저기 올릴 때의 다급했던 심정이 지금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왕지사 옆으로 누워서 올라온 배 그대로 둘 것인가, 그리고 이왕지사 목포신항에 들어온 배 야적장으로 올릴 것인가. 천만에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모든 계획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짚어봐야 합니다. 늦었다 싶을 때가 가장 이른 때입니다.

(1) 미수습 희생자에 대한 수색 

미수습 희생자 가족분들께서 선체를 바로 세우고 수색을 하는 데에 동의해 주신다면 그렇게 계획을 수립하면 되지만, 만약 지금 상태에서 수색을 우선해달라고 요구하신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그렇게 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로 선 것만큼 수색이 용이하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접근가능하고, 어차피 객실 내부의 뻘을 모두 걷어내어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상당부분 사람의 손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세월호를 육상으로 올리지 않고 현재 반잠수선에 올려진 상태 그대로 수색을 해야 합니다.  

(2) 목포 인근 조선소로 이동 

미수습 희생자에 대한 수색과 수습이 완료가 되고 그에 대해 모든 유가족분들께서 동의를 하신다면 세월호는 현재 위치인 목포신항 인근에 있는 대불공단내 조선소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목포 대불공단에는 대형 조선소들이 많습니다. 영암의 현대삼호중공업과 해남의 대한조선이 있고 그 외 여러 수리 조선소들이 즐비합니다. 한때 조선산업의 호황을 누리던 목포 지역 조선소들은 2013년을 기점으로 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수주가 많아 들어갈 자리가 없어 걱정할 일은 없다는 얘깁니다.

▲ 현대삼호중공업 전경 사진=현대삼호중공업 홈페이지

조선소에는 선박의 건조, 수리 및 검사와 관련한 모든 설비와 인력이 완비되어 있습니다. 고장난 배는 육상 야적장으로 올라가야 할 것이 아니라 수리 조선소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3) 조선소의 설비와 인력이 필요한 이유 

세월호를 수리해서 새 배를 만들어 운항에 투입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제대로 하려면 부분적으로 설비의 가동 혹은 전원의 복구 등이 필요할 수 있으며 관련 전문인력과 기술진의 입회와 자문이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조선소에는 수십 만톤의 선박을 건조하기 위한 총체적인 기술진과 전문인력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설비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수백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선박에 대한 조사를 그러한 조력없이 맨 손으로 맨 눈으로 한다는 생각 자체가 무모한 겁니다.  

조선소로 이동해서 선체 바로 세우고 (조선강국이며 건설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선체 바로 세우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니 염려마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확실하게 조사한 후 그리고 세월호를 복원해야 합니다.  

(4) 세월호 - 반드시 복원해야 한다 

진상규명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월호는 복원해야 합니다. 운항가능할 정도의 복원이 아니라 영원히 보존가능하고 접근가능하고 교육가능할 수준으로의 복원을 말합니다. 물론 물에 떠야 하며 자력으로 이동 가능한 수준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세월호는 팽목항 인근 혹은 안산 인근에 있어야 합니다. 자력이동이든 Tug Boat 예인이동이든 왔다갔다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초유의 사건’입니다. 대서양에서 야간에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경우 2천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대형 해난사고였지만, 승조원과 여객 모든 분들이 최선을 다했던 ‘안타까운 재해(災害)’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사건은 섬이 빤히 보이는 연안에서 선박이 전복한 이후 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최악의 인재(人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보며 교훈을 얻고 학습함으로써 동일한 사고를 두 번 다시 겪지 않도록 그 중심에 세월호가 온전한 모습으로 자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희생된 우리 어린 자녀들과 최선을 다하였으나 고인이 되신 분들을 추모하고 가족 분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서로 기대고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공간으로서 세월호가 곁에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월호 복원을 수리조선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할 방법이 있는가요?

신상철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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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박근혜 ‘옆방’으로

 

[김종철 칼럼] 광주민중항쟁 능멸하고 국가의 ‘민주화운동’ 규정을 모독한 ‘회고록’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cckim999@naver.com  2017년 04월 04일 화요일
 
전두환이 지난 3일 출간한 ‘회고록’이 1980년 5월 ‘광주 학살’ 희생자 유족들의 가슴에 다시 불을 질렀다. 그 민족적 참극의 ‘주범’인 그가 민중항쟁 37주년을 앞둔 시점에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주장한 까닭은 무엇일까?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이런 말도 했다. “내란으로 판정됐던 광주사태는 어느 날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되더니 어느 순간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치적으로는 신화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민주화운동이라는 인식에 어긋나는 어떠한 이의도 용납되지 않는다.” 
 
전두환은 새로운 ‘학설’도 제시했다. “우리 사회 저변에는 군수공장과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한 시민군이 국군을 공격했던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런 의문을 증폭시키는 새로운 진술과 정황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공론화하는 길은 봉쇄된 것 같다.” 
 
전두환은 1931년 1월 18일 생이니 올해 만 86세이다. ‘회고록’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망발’을 단순히 그의 ‘고령(高齡)’ 탓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김영삼 정권 시기인 1996년 말에 구속된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적용된 ‘죄목’은 무려 13개나 되었다. ‘반란 수괴’ ‘반란모의 참여’ ‘상관 살해’ ‘내란 수괴’ ‘내란목적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1심에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징역 22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의 선고 내용인 ‘전두환 무기징역과 2205억원 추징’, ‘노태우 징역 17년과 2628억원 추징’을 확정 선고했다. 그런 ‘대역죄’를 저지르고도 전두환과 노태우는 겨우 2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김영삼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 전두환씨가 지난 2015년 11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전두환씨가 지난 2015년 11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3권으로 이루어진 <전두환 회고록>은 마치 그런 사실들이 전혀 없었다는 듯이 역사를 왜곡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날조하고 있다. 이런 대목이 바로 그렇다. “맨손에 태극기를 들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친 기미 독립선언을 ‘3·1운동’이라고 부른다. 빼앗은 장갑차를 끌고 와 국군을 죽이고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으로 국군을 사살한 행동을 3·1운동과 같은 ‘운동’이라고 부를 순 없다.” 1980년 5월 18일 시작된 광주민중항쟁 기간에 “전두환은 물러가라”, “김대중을 석방하라”고 외치던 시민들에게 무기로 먼저 공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전두환이 실질적으로 지휘하던 계엄군이었다. 시민들과 학생들은 ‘자위책’으로 지서와 파출소, 예비군 무기고에서 꺼낸 총칼로 계엄군의 양민 학살에 맞섰을 뿐이다. 그런데 전두환은 37년이나 지난 지금 그것을 ‘폭동’으로 몰아붙이면서 터무니없이 3·1운동에 견주어 극도로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나는 광주사태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희생자”, “계엄군 발포 명령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겨레> 4월 4일자 1면 기사(‘전 각하, 자위권 발동 강조 군 기록 나와’)는 “80년 5월 2군사령부가 작성한 문건을 기무사가 보관하다 국방부 과거사위원회에 제출”한 문건에는 “‘전(全) 각하(閣下) 난동 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명시돼 있다”고 보도했다. 전두환은 이 기사 내용에 대해 어떤 반박을 할 수 있을까? 
 
전두환은 국가가 법으로 ‘5·18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한 광주민중항쟁을 ‘폭동’이라고 매도함으로써 그 운동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친 이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유족과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 따라서 그는 헌법과 형법, 그리고 민법에 따라 사법적 처리를 받아야 마땅하다. 전두환의 ‘회고록’에 대해 5·18 관련 단체들과 정치권에서는 ‘지독한 자기합리화를 위해 저지른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고, 광주시장 윤장현은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들과 함께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전문가들이 전두환을 사법적으로 응징하는 운동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전두환은 1996년 12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등 혐의로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뒤 2015년 11월 10일 기준으로 겨우 50.86%인 1121억원 만을 납부했다. 그런데도 그는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면서 국민을 우롱했다. 
 
전두환은 박정희가 1961년 5월 16일에 일으킨 군사쿠데타를 지지하는 ‘육사 생도들의 시가행진’을 주도한 이래 그의 총애를 받았으며, 장교가 된 뒤에는 영남 출신 중심의 ‘하나회’를 이끌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불의의 죽음을 당한 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탈취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1980년 5월 ‘서울의 봄’이 전두환 일파의 쿠데타로 무너지지 않았다면, 한국사회는 신속하게 민주화의 길로 치달았을 것이다.  
 
전두환은 1987년에 ‘호헌’이라는 구실로 장기집권을 꾀하다 6월항쟁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뒤에도 ‘광주 학살’이나 쿠데타에 대해 단 한 마디 사죄도 하지 않다가 이번에 펴낸 ‘회고록’을 통해 반민주적이고 파렴치한 본질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가 아무리 고령이라 하더라도 주권자들은 ‘적폐 청산’을 위해 이런 인물을 더 이상 ‘자유롭게’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전두환은 이번 사건으로 엄정한 사법처리를 받고 서울구치소의 박근혜 ‘옆방’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박정희의 유신 잔재를 청소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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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이순덕 할머니, 일본 정부의 사죄 끝내 못 받고 4일 영면

"화병에 돌아가신 어머니, 나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이순덕 할머니, 일본 정부의 사죄 끝내 못 받고 4일 영면

17.04.05 05:27l최종 업데이트 17.04.05 08:35l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최고령이었던 이순덕 할머니가 4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글은 지난 2007년 고 이순덕 할머니를 직접 찾아 뵙고 인터뷰한 내용으로, 이국언 <빼앗긴 청춘 돌아오지 않는 원혼>(시민의 소리, 2007)에 소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재작성했음을 알립니다. - 기자 말
 

 빈소에 마련된 고 이순덕 할머니 영정 사진
▲  빈소에 마련된 고 이순덕 할머니 영정 사진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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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최고령이었던 이순덕 할머니가 4일 끝내 일본정부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한 많은 삶과 이별했다. 향년 100세. 1918년 전라북도 익산 모현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작고하시기 전까지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이었다.

평생 고단한 삶이었다. 어릴 적 기억이라고는 단칸방 초가집 한 채에 소작지 하나 없는 가난한 살림뿐. 남의 집 삯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시절, 감히 학교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길쌈을 해 시장에 내다 팔고 오는 길에 장에서 공책하고 연필을 사다 주더라고. 그런데 아버지는 여식을 가르쳐 놓으면 나중에 시집가서 친정에 편지한다고 연필을 바로 분질러 버리더라고. 공책은 부엌에서 불 질러 버리고. 그래서 완전 까막눈이었지."

집안일을 돕고 있던 1937년 봄 어느 날이었다. 열아홉 살 때였다. 가난한 농촌에 먹을 것이 없는 농민들은 할 수 없이 쑥을 뜯어다 보리밥에 섞어 허기를 때우고 있었다. 그 해는 또 유난히 흉년이기도 했다.

"저녁이라도 준비한다고 혼자 논두렁에서 쑥을 캐고 있는데, 30, 40대 가량 보이는 남자가 오더니 이런 고생하지 말고 배불리 먹을 것도 주고 좋은 신발도 주는 곳을 알아봐 준다고 자기만 따라오라는 거야."

된장국에 밥 한 끼 어디서 얻어먹으면 그나마 다행인 시절, 배불리 먹을 데가 있다는 그 한마디는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유혹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서고 만 것이다. 

안면부지의 남자를 따라 철길을 따라 걸어가던 중 그녀는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 아버지를 뵙고 인사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집에 잠깐 들렀다 가겠다고 그랬지. 그런데 여기까지 왔는데 안 된다는 거야. 그러더니 시간이 없다면서 덥석 손목을 틀어잡더라고."

순간 깜짝 놀라고 당황해 했다. 손목으로 전해 오는 힘은 완강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 사내는 그의 뺨을 후려 갈기더니 강압적으로 길을 재촉했다. 태도도 이전과는 180° 바뀌어 있었다. 

익산 읍의 여관까지는 한 시간 반쯤 걸음이었다. 여관에 도착하니 이미 14, 15명의 처녀들이 도착해 있었다. 모두 그녀와 같은 처지의 농민의 딸들이었다. 같이 저녁을 먹고 한 방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두려움에 밤새 잠 한 숨 잘 수 없었다. 모두 무엇 때문에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고 밤새도록 울기만 했다. 그러나 방문 바깥은 이미 자물쇠로 잠겨있어 도망 갈 수도 없었다.
 

 트럭을 타고 이동 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  트럭을 타고 이동 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 독립기념관 '잃어버린 청춘 떠도는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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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카키색 군복을 입고 다리에는 각반을 찬 일본군 3명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에는 총을 두르고 있었다. 이어 이들의 지시에 의해 행선지도 모르고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도착한 곳은 중국 상해(上海)역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곧바로 트럭 한대에 태워졌다. 3시간 정도 달려간 곳은 한 일본 육군의 주둔지였다. 군용텐트와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자라고는 없었다. 이어 인솔자들은 여기 저기 서 있는 오두막 같은 곳에 끌고 온 처녀들을 한 사람씩을 따로 따로 떼어 들여보내고 있었다.

오두막은 다다미 2, 3장 쯤 넓이로 침대 형식의 잠자리는 낙엽 위에 대나무로 엮을 깔개가 마련돼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국방색의 모포가 깔려 있었다. 전시 중 야전에 마련된 임시 거처인 셈이라 비 단속도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비만 오면 빗물이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사흘간은 아무것도 없이 오두막에서 쉬고 있었다. 군복과 같은 색의 상의와 몸뻬를 지급받았다. 그 사이 혈액검사와 606호라 불리는 주사를 맞았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지 못했다.

같은 처지의 조선 처녀들끼리는 서로 얼굴도 볼 수 없었다. 각자 떨어져 있었고, 식사는 군인이 오두막 앞에 가져다 놓고 문 밖에서 종을 울려 표시를 했다. 그러면 각자 식사를 챙겨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먹는 것이었다.

4일째인 어느 날. 군복에 별이 3개가 붙어있던 '미야자키' 또는 '미야자와'라는 이름의 노 장교가 오두막에 들어왔다. 그리고 겁에 질려 있는 그녀에게 잠자리를 강요했다. 부대에서 제일 직급이 높아 보이는 그 장교는 그로부터 사흘 밤 매일 오두막을 찾았다. 그는 토요일에는 자기가 올 것이기 때문에 다른 병사를 상대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미야자와가 돌아간 다음날부터 오두막에는 병사들이 행렬이 이어졌다. 저항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일어나면 때리고 다시 일어나면 발길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줄선 일본군 병사들
▲  일본군 위안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줄선 일본군 병사들
ⓒ 독립기념관 '잃어버린 청춘 떠도는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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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전선 병참사령부 위안소 게시판에 적힌 위안소 이용 주의사항
▲  중국전선 병참사령부 위안소 게시판에 적힌 위안소 이용 주의사항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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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죽이기를 파리 죽이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어. 한번은 어떤 놈이 술을 처먹고 와서 갑자기 같이 있던 어떤 친구의 목을 내리쳐 버렸어. 그 자리에서 목이 떨어져 나가더라고. 피가 얼마나 솟구치던지, 아휴~ 끔찍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지. 말도 못해 그 놈들."

평일에는 8, 9명, 일요일에는 15, 16명의 병사를 상대해야 했다. 평일에는 아침 9시부터, 일요일은 그보다 이른 아침 7시나 8시경부터 병사들이 몰려왔다. 심지어 생리기간에도 남자를 상대해야 했다. 

606호라는 주사는 2주에 한 번씩 맞는 것 외에 검진은 따로 없었다. 당시에도 '샤크'라 불리던 일종의 콘돔기구가 지급되고 있었지만 모든 병사들이 이것을 착용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을 전혀 만날 수 없었지. 군인들이 항상 문 밖에서 지키고 있었으니까. 우리들끼리 만나면 어디 도망가자고 모의할까봐, 식당에서 만나도 얘기도 못 붙이게 했어. 얘기 하다 걸리면 맞아 죽다시피 했지. 가막소도 그런 가막소가 없었어." 

처음에는 일본 말을 못한다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 1년쯤이 지나자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해방 한두 달 전 어느 날이었다. 한 장교가 들어오더니 왜 자기 이외에 딴 남자랑 잤느냐며 군화발로 배를 걷어찼다. 그리고 갑자기 긴 칼을 꺼내더니 그녀의 등을 그대로 내리쳤다. 그 자리에서 졸도해 버렸다. 다시 정신을 차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바닥이 흥건하게 피에 젖어 있었다. 

"아마 머리를 바로 내리쳤다면 나도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야. 그런 놈들은 내가 뜯어 먹어도 시원치 않아. 징그러운 놈들."

양쪽 가슴과 엉덩이에는 그때의 상처가 또렷이 남아있었다.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서까지도 한동안 치료를 해야 했다. 
 

 중국과 미얀마 국경지대 구덩이에 버려진 사체들. 이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로 기록되어 있다.
▲  중국과 미얀마 국경지대 구덩이에 버려진 사체들. 이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로 기록되어 있다.
ⓒ 독립기념관 '잃어버린 청춘 떠도는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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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어느 날이었다. 오두막 뒷길에 조선인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해방이라며 환성을 올리고는 어서 가자고 일러줬다. 그러고 보니 일본 병사들은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다 돌아온 것도 아니야. 해방이 됐어도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 사람도 있었어. 내가 같이 가자고 해도 자기는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는 거야.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하더라고. 참 불쌍한 사람이었는데."

조선인들을 따라 지붕도 없는 화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며칠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집 문 앞에 들어서면서 '어머니' 하고 불렀더니, 어머니는 안 보이고 이모가 뛰어 나오더라고. 내가 없어진 후 찾아 헤매다 화병에 부모님 모두 다 돌아가셨다는 거야. '너 때문에 죽었다'고 그러더라고."

산소에 올라가 몇날 며칠 '어머니'를 불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남동생마저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1년여 후 주위의 소개로 17살이나 많은 김제의 한 남자의 후처가 되었다. 애가 없었지만 남편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활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8년여 후 남편이 병사한 뒤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그 집을 나와야 했다. 

두 번째 만난 사람은 광주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사별한 남자의 후처였다. 광주시 서구 쌍촌동에서 그런대로 알뜰살뜰 살아가고 있었지만 종내 애는 생기지 않았다. 고심 끝에 산부인과를 찾아갔지만 애를 갖기는 어렵다는 대답이었다. 의사는 과거에 무슨 무리한 일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첫 번째 남편이나 재혼한 두 번째의 남편에게는 자신의 과거를 끝내 말하지 못했다. 두 번째의 남편과도 사별한 할머니는 이내 가족도 자식도 없이 혼자가 되고 말았다.
 

 1994년 3월 14일 관부재판 첫번째 당사자 본인 신문을 위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법원으로 향하는 원고들. 왼쪽 두번째가 고 이순덕할머니.
▲  1994년 3월 14일 관부재판 첫번째 당사자 본인 신문을 위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법원으로 향하는 원고들. 왼쪽 두번째가 고 이순덕할머니.
ⓒ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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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말수도 없이 한없이 조용한 모습이었지만, 꼭 그런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1992년 12월 당시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의 도움을 받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7명 등 도합 10명의 원고들과 함께 시모노세키 지방재판소에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어느 해 증인심문 참석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일본정부는 정부의 사과대신, 일종의 국민기금 형태로 위안부 문제를 마무리 지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일본의 취재기자들이 할머니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의향을 물어왔다.  

"내가 거지인 줄 아느냐. 여기저기서 돈을 모아서 주게. 일본정부가 정식으로 사죄하면서 주면 모를까, 나는 그런 식의 돈은 받을 수 없다."

취재기자들의 간담까지 서슬 퍼렇게 만든 할머니의 단호한 대답이었다. 관부재판은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1심에서 처음으로 30만엔의 배상 판결을 거뒀으나, 이어 2001년 히로시마 고등재판소에 뒤집어진 뒤, 2003년 최고재판소에서도 기각판결을 내림으로서 12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광주에서 혼자 의지할 데 없이 살아오던 할머니는 그 뒤 서울에 올라가 최근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병마와 다투며 그의 마지막 여생을 보내왔다.  

"말 못하고 지금까지 숨기고 살았지. 부끄러워서 지금도 말 못해."

100세를 일기로 끝내 고단한 삶을 내려 놓은 이순덕 할머니. 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는 38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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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시민의 선택]‘대권 문’ 열려면…경선 갈등·보수중도층 비호감 극복해야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ㆍ‘대선 직행’ 티켓 잡은 문재인의 과제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수도권·강원·제주 순회경선에 참여한 대의원들이 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수도권·강원·제주 순회경선에 참여한 대의원들이 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의 19대 대통령 후보로 3일 문재인 후보가 확정됐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대세론을 타고 있다지만 대선을 ‘문재인의 시간’으로 만들려면 당 추스르기와 중도·보수층의 ‘문재인 비토론’ 극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문 후보를 겨냥한 비문연대도 넘어서야 할 과제다.

■ 가장 큰 숙제는 당내 통합 

문 후보의 가장 큰 숙제는 당내 통합이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45%로 압도적 1위다. 문재인(31%), 안희정(14%), 이재명(8%) 등 세 경선 후보의 지지율 합은 53%다(세부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당 지지율과 안·이 후보 지지율만 온전히 흡수하면 무난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장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 간 감정의 골이 깊게 파였다. 안 후보는 문 대표 측을 겨냥해 “질리게 한다”고까지 했다. 이 후보 지지자 일부는 경선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물론 안·이 후보는 “경선 승복”과 “한 팀”을 강조하고 있지만, 두 후보 지지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당내 비문재인 정서도 여전하다. 

 

상대편에 대한 문 후보 측 일부 지지자들의 과도한 공격과 그로부터 증폭된 상호불신도 치유가 필요하다. 문 후보의 임종석 비서실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문자폭탄이나 18원 후원금 등은 함께해야 할 동지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며 “이제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자”고 적었다.

■ ‘문재인 비토론’ 넘어서야 

당 바깥에선 ‘문재인 비토론’을 넘어서는 게 과제다. 문 후보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데도 본선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측의 논리가 ‘문재인 비토론’이다. 30%대의 견고한 지지층이 있지만, 비호감층이 많고 중도·보수층의 거부감도 뚜렷하다는 것이다. 안 후보가 경선 때 줄곧 공격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당내 경선 때 적폐청산을 앞세워 지지층을 묶어세운 문 후보는 본선에선 ‘통합’을 좀 더 강조하며 중도·보수층 공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맞춰 ‘통합대통령’ ‘일자리대통령’ ‘안보대통령’을 주된 표어로 활용할 공산이 크다. 문 후보는 첫 행보로 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물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다.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도 참배한다. 통합 행보 일환으로 풀이된다.

■ 비문연대도 변수 

다른 당 후보들의 비문재인 연대 흐름도 변수다. 문 후보의 최대 라이벌은 국민의당 안철수 경선후보라는 게 중론이다. ‘문재인 대 안철수’ 구도를 기본으로 홍준표·유승민 등 보수정당 후보와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등 비문재인 흐름이 안 후보 측에 얼마나 결집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확고한 지지층을 확보한 문 후보로선 다자구도일수록 유리하지만, 안 후보와의 양자 구도에선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문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비문연대·반문연대는 적폐연대”라며 견제했다. 비문연대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중도·보수층이 안철수 후보의 손을 들어줄 경우 만만치 않은 승부가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문 후보에게 최악의 상황은 당내 균열과 중도·보수 확장 실패, 중도·보수 세력 결집이 서로 맞물리면서 문 후보의 세력 축소와 안 후보의 세력 확대가 추세를 형성하는 경우다. 달리 말하면 문 후보가 당내 통합을 이루고 외연 확대에 성공할 경우 비문연대는 큰 변수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내 통합과 외연 확장, 비문재인 연대는 서로 물고 물린 변수들이다. 그래서 선순환의 사이클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당내 통합은 그 첫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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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비극, 불평등 사회가 만든 감정절벽

우리나라를 정상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평등의 구조를 바꾸어나가는 것
 
박찬운  | 등록:2017-04-03 13:16:30 | 최종:2017-04-03 13:38:5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목포신항을 찾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겠다 해놓고 별다른 설명 없이 현장을 떠나버렸다. 약 한 시간을 차가운 바닥에서 농성하며 황 총리를 기다린 유가족들은 분노하며 오열했다. 지난 토요일 일어난 일이다.

사진 출처: 아시아경제

나는 절망감을 느낀다. 나 또한 분노에 손발이 떨린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국민을 섬긴다는 공복 중 제1 우두머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휴일 아침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심리적 배경은 무엇인지, 이 시대는 어떻게 저런 괴물ㅡ나는 감히 박근혜나 황교안을 이 시대가 만든 괴이한 인물, 곧 괴물이라고 말하겠다ㅡ을 탄생시켰는지.

박근혜가 3년 동안 세월호 유족들을 지속적으로 박해하고 황교안이 그에 동조해 온 것은 그들의 비정상적 (인권) 감수성ㅡ공감능력의 부재ㅡ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에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어야 할 어진 본성(이것을 仁이라 함)이 결여되어 있다. 맹자가 말한 仁이 있다는 단서로서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심리상태는 박근혜나 황교안에게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방해한 세력들(몇몇 특조위원, 관련 공무원, 국회의원, 정치인들의 선동에 동조한 극우단체 등)에게서도 공히 발견된다. 이들도 모두 인권 감수성이 없거나 부족하다. 이들에게서 측은지심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찌해서 이들에게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성 결여 현상이 생겼는가.

나의 판단으론 이들과 비극의 희생자들 사이에 ‘감정절벽’이 있고, 이 절벽이 있는 경우엔 맹자의 인간본성론이 수정된다는 것이다. 박근혜와 황교안 그리고 이들 추종세력은 비극의 희생자들을 보아도 특별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슬피 울어도 그것이 가슴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전달되긴 커녕 귀찮을 뿐이다.

감정절벽은 상대가 같은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때 생긴다. 계급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노예제 사회에서 상대가 노예라 생각해 보라. 노예의 주인은 노예와는 전혀 다른 감정세계에서 산다. 나는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계급화 되어가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양극화는 은연중에 우리 사회를 신분사회로 만들어버렸다. 요즘 학생들의 친구관계를 보아도 강남학생들은 강북학생이나 지방학생들과 교류가 적다고 한다. 사회경제적으로 자신들과 맞지 않는다는 내면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나와 같은 부류로 여기지 않는 심리기제가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 근저엔 계급화되어 가는 불평등 사회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것이 세월호 사고 이후 이 비극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박근혜와 황교안은 불평등 사회구조를 대변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를 정상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힘쓸 일은 불평등의 구조를 바꾸어나가는 것이다. 양극화 사회에서 탈출해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너도, 나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세월호와 같은 비극이 없어질 것이라 믿는다.

박찬운 /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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