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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대추리의 일몰이 더 아름답더이다.
어제와 오늘은 모판에 흙을 담았습니다.
모 파종을 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 모가 무럭무럭 자라 황새울 들녘이
지는 해와 함께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모습을
꼭 보아야겠습니다.
다들 멀쩡해보이는 사람들도 한가지 두가지의 마음의 병이든, 몸의 병이든 앓고 있다는 것 같다. 마음의 병이든, 몸의 병이든, 불면이든, 발가락의 고질적 습진이든 떼어버리려 안간힘을 쓰기보다 서로 돌봐야 다스려지는 듯 하다.
그제 이비에스에서 본 다큐멘타리에 보니 이 세상의 바이러스들, 조류독감이든 HIV든 다들 인간이랑 같이 살아볼려고 그 생난리를 치는 거란다.
숙주인 인간을 죽이는 것도 그네들의 입장에서도 치명적. 그래서 될수 있으면 인간을 죽이지 않고 살짝 더부살이 하다가 다른 인간으로 옮겨가는 기술이 그네들이 평생을 연마해야할 생존기술인 거다. 사람을 아작네는 조류독감이나 HIV는 아직 초보 하발이들이라는 얘기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사람을 보니, 참 '현대 문명인'들이란 이 바이러스보다도 생존능력이 없는 존재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그 자리에서 부시고 빼앗고 모두 자기것으로 만들려고 든다. 제 몸 망치는 줄 모르고...
일본 활동가로부터 긴급 메일을 받았습니다.
다음은 http://antifa815.podzone.org/en/ 의 내용을 번역한 성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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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야스쿠니신사 참배 반대시위에서 '불법' 체포된
4명의 일본 반전 활동가들을 지지하는 성명서
2005년 8월 15일 군국주의와 외국인차별을 기치로 내건 일본의 우익 단체들이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서 6천명의 군중을 동원한 대규모 행사를 진행했다. 이들 우익들 중에는 신조 아베, 신타로 이시하라 등 일본의 핵무기 무장을 지지하는 각료와 의원들도 참가했다. 이들은 종전 60년을 맞이하여 전쟁으로 죽어간 군인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이들의 행동은 과거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을 미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최근의 이라크전 참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행위로서,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전범으로서의 책임을 부정하고 이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망각의 심연으로 빠뜨리는 것이다.
이날, 12시 사이렌이 울리고 군국주의자들이 묵념을 하는 동안 행사장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길에서 전쟁 반대 구호를 외치던 친구들이 경찰에게 체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은 전쟁과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군인들을 추모하는 행위는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어 약 50명의 사람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야스쿠니 신사로 행진하려고 하자 중무장한 전경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이들을 에워싸고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경찰은 심지어 지나가던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결국 4명의 친구들이 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이들의 체포 사유는 “공무집행방해”였다. 도대체 경찰의 그 신성한 “공무”가 무엇이었는지,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해산시키는 것이 진정 경찰의 “공무”인지 묻고 싶다.
일본 경찰이 시위대를 사소한 이유를 붙여 진압하거나, “급진파”니 “극렬분자”니 하며 체포해가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 반전 활동가들은 항시 체포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에게 정치적 행동의 권리와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권리와 자유는 무시되고 소위 ‘법집행’이라는 이름의 탄압은 점점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더욱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은 공공의 평화와 질서를 위협하는 것인 양 왜곡되고 있다. 진정 평화와 질서에 위협이 되는 것은 그들의 ‘법집행’ 행위가 아니던가! 다시 무시무시한 전쟁 시대의 사회 분위기로 돌아가는 것 같아 위기감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는 전쟁과 군국주의에 반대한다. 또, 전쟁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경찰국가 체제를 반대한다. 심판받아야 될 대상은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시민들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탄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세력들이다. 여러분들께 묻고 싶다. 단순히 전쟁반대 의사를 표명한 시민이 “극렬분자”인가, 아니면 폭력적으로 이들의 행동을 제지한 당국이 “극렬분자”인가?
여러분의 지속적인 지지와 지원에 감사드리며,
체포된 반전 동지들을 위한 지지 모임
ANTIFA 815
마석 꼬빌이 출입국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마붑의 친한 친구가 5개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하고 공장을 나왔다.
진작에 그 공장에서 나왔어야 했는데...
지금 이 친구는 피씨방과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핸폰마저 잊어버려서 당장 친구들과 연락할 수도 없게 되었다.
회사에서 6시 땡치자마자 불이 나케 나와 테크노마트 중고폰 가게로 가서
5만원에 애니콜 폰 하나를 사고 나니 7시 30분이 넘었다.
요가학원에 가야하는데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강 테크노마트 지하 푸드코트에서 2천5백원짜리 통만두를 사먹고
또 부리나케 학원으로 향했다.
요즘엔 풀무호흡이라는 걸 배우고 있는데,
15번정도 복식호흡을 강하게 하고 난 다음에
크게 들이쉰 숨을 최대한 오래 참는 호흡법이다.
이때 X꼬를 함께 조여주고 배도 안으로 넣어야 한다.
요가장에는 약 여덟명 가량의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리듬으로
호흡을 한다. 코에서 나는 소리도 서로 너무 다른데,
어떤 이는 색색하는 소리가, 또 어떤 이는 흥흥하는 소리가 난다.
어떤 이는 들어마시는 숨이 태풍같고, 또 어떤 이는 내쉬는 숨이 폭포같다.
풀무호흡을 약 20분정도 하고 어깨를 떨구고 3분 정도 명상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슬퍼지면서 나와 세상에 대한 자비스러운 연민에 휩싸이면서 눈물이 나는 거다. 하루종일 쌓아두고 있는 감정의 형태들이 눈에 잡히는 듯.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는 전세 계약 건이나,
공장에서 나온 마붑의 친구에게 핸드폰을 그냥 주지는 말아야지, 하는 계산과,
꼬빌이야 어차피 캐나다에 가서 살 거니까 도와주거나 신경쓸 건 없어, 하는 합리화 등등
감정 그 자체에만 매몰되던 일상에서 벗어나 감정의 형태와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가지는 "객관적"인 슬픔이라고 하면 말이 되나?
정리해보니
친구이니 뭔가 도와줘야 한다는 심적 압박 VS 손해보지 않겠다는 이기심의 대결이다.
이 감정이 옳다 저 감정이 바르다 라는 판단할 수는 없는 일.
도와줘야 한다는 이타심이 옳고 손해보지 말아야 한다는 이기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도와줘야 한다는 이타적 강박이, 손해보지 말아햐 한다는 이기적 강박을 기르는 경우가 많고, 손해보지 말아야 한다는 이기심이 도와줘야 한다는 이타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음... 정말 써보니 그렇다.
치우침과 강박이 마음의 병을 키우고 몸도 상하게 한다.
너무 착한 척을 하는 건 위선이고, 너무 나쁜 척 하는 것은 위악이다.
위선과 위악 모두 마음과 몸의 균형이 깨졌을 때
어떻게든 그 균형을 찾기 위한 마음의 자구책일 터.
하지만 궁극적인 치유는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까지 살펴보고
그릴 수 있을 때 시작되는 듯 하다.
나중에 듣고 보니 호흡수련이 어느정도 진행되면 수행중 종종 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한다.
처음엔 졸음이 오고, 그 다음엔 눈물이 나고... 허!
호흡과 명상은 대단하다
윤구병의 "잡초는 없다"라는 책을 퇴근하고 밤마다 짬짬히 읽는다.
평소 변산공동체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막연한 생각과 동경들이
그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것들은 탈색되고, 또 어떤 것들은 더 선명해진다.
녹색평론 등에서도 간간히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관한
좋은 글을 접하곤 한다. 그 중에서도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장 어렵고
가장 두려운 부분이다. 공동체가 아닌 작은 모임 하나 꾸리는 데도
조심스레 이 사람 저 사람의 마음자리를 살펴 일을 만들고 나누어야 하는데,
매일 매일 아침에서 밤까지 부대끼며 살아야 공동체에서의 삶이란
얼마나 버겁고 때론 고역스러울까. 사랑이 아닌 증오가 더 크게 자랄 수도 있겠다 싶다.
저 멀리 변산으로 갈 필요도 없이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내 파트너와의 관계만 봐도
공동체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알 수 있다.
나는 아침 7시 반쯤 일어나 늘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반면 내 파트너는 나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방 하나를 함께 써야 하는 우리는 밤마다 작은 전쟁을 치룬다.
12시에 불끄고 자자는 나와, 잠이 안와서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고 싶어 하는 그.
게다가 나에겐 오래전부터 불면증이 있어서 잠에 드는 것이 어렵고
조그만 소리나 빛에도 곧잘 깨곤한다.
이렇게 전쟁을 여러번 치르다 보면 마음에 그를 없애고 싶은 미워하는 맘이 생겨나게 된다.
물론 그가 전적으로 나를 배려해주는 편이긴 하지만
약 7년 남짓을 혼자 살아오면서
남과의 거리 만들기, 적당한 무관심만이 평화라고 믿어왔던 내게
사람과 부대끼며 만드는 적극적 평화란 이토록 힘겹다.
요즘들어, 내 파트너를 거울 삼아 나를 들여다 보게 된다.
뼛속 깊이 느긋한 내 파트너와 달리,
개발주의의 강령이 휩쓸어버린 이 사회의 학교 독, 강박, 소외된 교육, 외로움, 경쟁심, 열등감과 짝패를 이르는 우월감, 자만, 독선이 내 몸과 마음에 얼마나 큰 병을 키웠는지,
그가 11명의 형제들과 부모님과 함께 살아오면서 터득한 공동체의 지혜에 비해
나는 3형제 막내로 태어나서 남의 마음이야 어떻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지금도 한참 마마걸 수준이라는 걸...
부끄럽게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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