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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박정희 경제발전논리와 여성 재생산권-2

  • 등록일
    2005/03/12 14:10
  • 수정일
    2005/03/12 14:10
박정희 경제발전논리와 여성 재생산권-2


이진옥 기자
2004-08-15 19:00:21  
한국의 가족계획이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가족계획어머니회의 존재다. 몇몇 여성학자들은 제3세계에서 진행해 온 인구정책이 여성의 재생산권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실행되기 위해선, 여성들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모임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가족계획어머니회는 그 가능성 여부를 살펴보게 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된 가족계획어머니회

1968년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스웨덴이 보급한 다량의 경구 피임약과 미국 국제개발처의 원조를 받아 당시 인구의 70%가 거주하고 있던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그 해에 1만6천868개의 가족계획어머니회를 조직했다. 가족계획 어머니회의 주 목적은 ‘피임약과 콘돔을 나눠줄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해 현장요원들의 부담을 경감시키며, 피임약 사용을 권장한다’, ‘각 마을에 가족계획 교육과 정보전달 통로로 기능한다’, ‘수치 달성을 위해 새로운 수용자 발굴을 돕는다’, ‘마을의 여성지도자들이 가족계획사업에 우호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게 한다’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가족계획어머니회는 기본적으로 동네 이장들에 의해 추천된 중등교육 수준을 지닌 여성들 중에서 7-8명 가량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어머니회 대표들은 읍 단위 사무소에서 상황 보고와 정보 입수, 훈련 등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각 보건소에 파견돼 피임약을 공급하고 수용자를 감독하고, 후속작업 등에 대한 기록을 책임을 지는 139명의 경구약 행정관과 지역 관리관이 모두 남성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봐, 가족계획어머니회는 남성들에 의해 기획되고 관리되는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회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1970년에는 수직적인 조직 체계가 마련된다. 대한가족계획협회는 면장 협회에서 선출된 어머니회 대표로 구성된 군 지도자회를 결성한다. 대한가족계획협회가 관료적인 위계체계로 통합되어 있는 것을 미뤄봤을 때, 어머니회 또한 수직적 관리 형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여성이 정책결정 과정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상의하달의 통제방식에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조직 체계에 참여한 여성 개개인의 지위는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가족계획어머니회에 대해 연구한 정경균씨는 “어머니회 지도자들의 동의 없이 마을의 어떤 행사나 정치적 활동도 계획되고 실행되기 어려웠다”는 한 면장의 진술을 인용한 바 있다.

유신선포 후 강제성 띤 새마을부녀회로 전환

정경균씨는 연구논문을 통해 어머니회가 가족계획 사업의 문화적 저항감을 피하고, 어머니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며, 지역개발을 위한 협동을 증진시키고, 이런 활동들을 통한 가계수입 창출 등의 효과를 낳는 활동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족계획어머니들의 무노동 자원봉사가 부족한 가족계획 요원을 보충하는 인력으로 사용된 측면이 있지만, 당시 기혼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봉쇄된 것을 고려하면 여성 지위향상 또한 도모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가족계획 자체를 기피하는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한편 어머니회의 활동은 가족계획 사업을 넘어서 무임금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개발에 이바지한 바 크다. 각 마을에 어머니회의 관리를 위해 분배된 기금으로 집단적 소득을 창출하고, 마을회관을 건립하거나 부엌 위생시설을 개선시키고, 노인을 위한 마을잔치를 열거나, 빈곤한 이웃을 지원하는 일에 사용했다. 이는 어머니회가 구성원의 활발한 참여로 이루어졌고 당시 여성들의 다양한 필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여성들의 공적인 활동에 우호적이지 않은 당시 마을사람들에게 이익을 환원함으로써 자신들의 활동을 안착화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가족계획어머니회가 지역 개발에 공헌한 성과는 정부의 주의를 끌기 충분했다. 박정희 정권은 가족계획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있어 어머니회의 효율성과, 여성의 지역사회를 위한 무임금 자원봉사, 수직적 관리체계 하의 여성조직이 국가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이들이 가족계획어머니회의 활동이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박정희는 1972년 대통령령으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규정을 제정했다. 이는 유신체제 선포 이후 당시 여촌야도의 정치적 기반 위에, 어머니회의 적극적 활동을 정권유지를 위한 전국적 계몽운동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중 멤버십을 허용하며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졌던 가족계획어머니회를, 강제성을 띠었던 새마을부녀회로 전환했다.

한국가족계획연구원이 1978년에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당시 가족계획 사업에서 기층 단위들이 국가 기구와 철저히 통합돼 있어 위계적인 관료 체계 하에 실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 가족계획사업 조직구성도를 보면, ‘가족계획어머니회’가 있을 자리에 ‘새마을부녀회’가 위치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논리 맞서 인구정책에 여성의 이해 피력해야

“누구의 이해를 위해, 누가, 무엇으로, ‘필요’를 정의하는가?” <난폭한 습관: 현대사회이론에서의 권력과 담론과 성>의 저자 낸시 프레이저는 ‘필요담론’(needs talk)이란 불평등한 자원을 가진 집단들이 사회적 필요에 대한 각자의 이해를 설파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투는 가운데 생성된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재원이 경제논리로 동원되고, 정권이 시민사회 위에서 기능할 수 있는 힘을 장악한 박정희 체제하에서 여성의 필요담론은 국가에 의해 선점됐다. 따라서 여성의 이해는 국가의 이해에 종속되고 말았다. 또한 가족계획의 성공신화는 다른 여타 국가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여성건강권 운동을 한국사회에서는 상당히 지연시켰다.

2004년 현재 한국사회는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는 “정관, 난관을 묶는 수술을 보험적용에서 제외하고, 정관, 난관을 푸는 수술을 보험적용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출산율 저하에 대한 국가적 위기담론은 국가경쟁력 하락을 우려한다는 점에서, 박정희 시대의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경종과 그리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지금의 시기엔 과거의 전철-여성의 이해가 국가의 이해에 종속되고, 여성들이 재생산권과 건강권을 보장 받지 못한 채 국가의 경제논리에 의해 통제되었던-을 밟지 않기 위한 여성들의 대항적 ‘필요담론’이 시급히 요청된다.

사회가 먼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양육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 양육뿐 아니라 가사노동과 부양노동을 여성에게만 짐 지워선 안 된다는 것, 결혼제도의 틀 안에서만 출산과 입양, 인구정책을 논할 것이 아니라 비혼의 영역까지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 등이 그 예일 것이다. 현재의 국가적 위기담론을 과거의 상황과는 구분 짓고, 여성의 이해를 반영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도록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여성운동의 역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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