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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나락한알'에 홍철님이 올린 글입니다.
http://cafe.daum.net/narakhanal"서브시스턴스 없는 저항 없고, 저항 없는 서브시스턴스 없다"
'서브시스턴스'라는 개념은, 우리 땅과 자유 학교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계신 동지들은 이미 귀에 익은 개념일 것입니다.
지난번 '서브시스턴스의 관점으로'라는 주제로 <힐러리에게 암소를> 등의 글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아래 글은 이번 <녹색평론> 7-8월호에 실릴 마리아 미스와 일본 사람들의 대담 <서브시스턴스 회복의 가능성>의 일부입니다.
글 속에 나오는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라는 말은, 우리 말로 무리해서 번역하자면 '자율, 자급, 자치의 관점' 정도가 될까요. 아무튼 일부러 외국말 쓰자고 쓴 것이 아니고 도무지 아직 우리말로 적절히 옮길 수 있는 번역어가 없다고 김종철 선생님도 고심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일본사람들도 그냥 일본말로 '사부시스탄스'라고 쓴다네요.
아무튼 아래의 소제목
"서브시스턴스 없는 저항 없고, 저항 없는 서브시스턴스 없다"라는 독일 사람들의 말은, 아주 명쾌하고도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노동운동'과 서브시스턴스 관점에 관해 언급한 대목은 우리의 '연대의 방향'과 관련하여 매우 시사적인 대목이다 싶습니다.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가 함께 쓴 <에코페미니즘> 같은 책을 보면 이러한 사상과 관점의 전모가 좀더 뚜렷이 드러나겠지만, 아쉬운 대로 곧 나올 <녹색평론> 7-8월호를 통해 세계화에 저항하는 투쟁의 길에 나선 우리가 과연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봅니다.
(우리 '땅과자유' 제2, 3신과 이 서브시스턴스의 개념을 연관지어 깊이 사색해 보실 것을 동지들께 권합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한 대목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마리아 미스와 대담 출처 소개 등은 맨 아래에 붙입니다. 번역은 이 목 씨가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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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시스턴스 없는 저항 없고, 저항 없는 서브시스턴스 없다"
후루타 : 그리고 한가지 더 중요한 점은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사회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세번째 질문이 되겠는데요. 이를 위해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미스 씨께서는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는 모델이 아니라고, 그것은 '퍼스펙티브'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문제에 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미스 : 한가지 얘기가 더 있어요. 케냐정부가 세계은행에서 차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 정책 하에서 원래 케냐에 있던 농업을 갈아엎고 커피 생산을 확대시키라는 정책을 부과했습니다. 케냐라는 나라에서는 토지는 남성들의 소유물이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 땅에서 일하는 사람은 여성들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까 케냐 여성들은 커피농장에서 열매를 수확하거나 커피나무를 재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커피가격이 하락했을 때, 남성들은 농장에서 나오는 수입이 없어져 돈이 바닥나고 말았지요. 그리고 농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성들 입장에서는 임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커피를 수확해야 할 이유를 잃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농장 일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남성들은 정부에, 커피를 수확할 수 없다느니 생산된 커피열매가 팔리지 않는다고 호소하며 절망에 빠졌습니다. 절망적이기는 케냐정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은행에서 빌린 융자금의 이자를 지불할 자원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계은행도 커피생산에서 이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화가 나있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은행에서 여성들에게 압력을 넣어 대부금을 주는 대신에 커피생산을 확실하게 하도록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케냐정부는 남성들에게 아내를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가족은 조화를 유지해야 화평해진다는 등등의 말로 권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과 변함없이 여성들은 꿈쩍도 않고 케냐의 커피농원에서 일하기를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또, 정부는 주부의 모델이라는 것을 케냐의 가족들에게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여성 한사람이 남성 한사람에 대해 임금을 받지 않고 노동으로 봉사한다는 모델입니다. 이러한 모델을 억지로 강요했던 것인데, 전통적으로 케냐의 여성들은 집단을 이루어 일하는 일종의 '팀워크' 같은 것이 있어서 이러한 모델을 강요하는 정부의 시도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케냐에서는 커피나무를 베어버리면 7년형에 처한다는 법률이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머리가 아주 비상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만, 커피나무를 잘라내는 대신에 커피나무 사이사이에 콩이나 토마토 따위를 심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커피나무를 그대로 방치해둔 채 물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시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에 가서 커피나무는 베어내게 되었지요. 케냐정부는 대단히 불안정했고, 또 세계은행 역시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했으며, 게다가 시민들 사이에서도 정부에 대한 반대운동이 일어나 나라가 안정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은 커피나무를 잘라내고 그곳을 야채밭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채를 재배하게 되었고, 자기가 먹을 것과 가족들이 먹을 식량을 얻고, 그리고 먹고 남은 야채를 시장에 내다팔 수 있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들은 스스로 마을에서 생명유지를 가능케 하는 서브시스턴스적인 시장을 형성했습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남부와 동해안, 중부까지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점점더 크게 확산되었고 사람들은 환금작물 재배를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여성들이 시작한 운동이며, 여성들은 글로벌한 자본주의를 위한 일, 곧 대가 없는 일을 거부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세가지 교훈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여성들은 세가지 차원에서 여성들을 억압하는 요소에 대항했습니다. 첫번째 차원은 자기 남편, 두번째는 국가, 세번째는 세계은행으로, 다시 말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도에 대항했습니다.
둘째, 여성들은 돈을 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녀들은 프롤레타리아 노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옛날부터 내려온 서브시스턴스적인 생활로 돌아가 그것을 부활시켰던 것입니다. 쓰고 나면 사라져버리는 돈을 요구했던 것이 아니라, 그 대신 자신의 생활보장을 쟁취하려 했다는, 보통 노동조합이 소망하는 것 같은 보장이 아닌 별개의 보장, 자신의 생활을 위한 안전보장을 쟁취했던 것입니다. 그녀들은 진정 프롤레타리아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셋째, 그녀들이 자신의 생산수단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들은 특별히 자신의 토지나 자산의 권리를 자기 명의로 할 것을 호소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있는 것을 쓰는 데서 시작했지요. 토지나 자산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벌였던 것이 아니고 단순히 자신들이 처한 입장에서 행동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곳에 있던 수단은 서브시스턴스적인 생활을 구축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독일에서 나온 슬로건을 가지고 한마디로 정리하면, "서브시스턴스 없이 저항 없다" 즉 서브시스턴스가 없다면 저항을 하더라도 그 투쟁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노동자나 노동조합에서 지금까지 벌여온 것과 같은 운동을 펼친다 하더라도, 글로벌 경제 속에서는 그들의 운동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딘가에서 해결을 본다고 하더라도 다시 또다른 곳으로 문제가 이전될 뿐이며, "임금을 인상하라"거나 "직업의 안정을 보장하라"고 부르짖더라도 지금의 경제체제 안에서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두번째 슬로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항하지 않으면 서브시스턴스는 없다"입니다. 서브시스턴스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 쟁취하고 지켜내는 것입니다. 세계를, 또 글로벌 경제를 응시하면서 싸워나가지 않는다면 서브시스턴스적인 생활마저 지켜낼 수 없다는 얘기지요. 케냐의 여성들의 행동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서브시스턴스 없이는 저항도 없습니다. 저항하지 않고서는 서브시스턴스란 없는 것이지요.
후루타 : 무엇에 대한 저항이냐 하는 문제입니다만,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이고, 지금 같아서는 제2단계로 들어선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라 해도 좋겠군요.
케냐 여성들이 가능한 일부터 했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는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서 시작됐습니다. 힐러리처럼 지위상승을 애써 목표로 삼았던 것이 아니었고, 달리 변신하려 했던 것도 아니었지요. 그저 자신을 사랑해서, 자신의 가치관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는 그런 얘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여성해방사상과 똑같다고, 예상대로 미스 씨는 "일관된 페미니스트로구나" 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라는 것이 역시 모델이 아니라 '퍼스펙티브'라는 사실에 생각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서브시스턴스가 모델이라고 가정한다면, "무엇 무엇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서브시스턴스가 아니다" 하는 얘기가 되겠는데, 그것이 '퍼스펙티브'이기 때문에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그러한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일이 가능하다,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미스 : 그렇습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언제든 시작할 수 있지요. 외부로부터의 혁명이니 뭐니 하는 그런 것들을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전세계에 여러 다양한 장소가 있는데, 각 토지마다 다르다는 얘기지요. 일본이나 독일에서도 제각기 서로 다른 형태의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 그 이상적인 존재형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는, 케냐의 여성들에게서 기본적인 교훈은 얻을 수 있습니다. 혹 시간이 좀더 마련된다면 더 많은 독일의 사례를 나눌 수 있겠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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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현재 독일 쾰른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인 마리아 미스(Maria Mies, 1931-)는, 이미 본지에 몇차례 소개된 저명한 여성 사회학자로서, 오래 전부터 여성, 환경, 제3세계 운동을 펼쳐왔으며, 현재 독일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이다. 특히, 근년에 그녀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subsistence perspective)'라는 개념을 구축하여, 지금 인간과 자연을 근원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세계화' 경제에 맞서는 저항운동으로서 새로운 방책을 제시해왔다. 여기에 소개하는 것은 2001년 12월 7일 일본을 방문한 마리아 미스가 후지와라(藤原) 출판사의 주선으로 행한 대담기록이다. 출전은 일본 잡지《環》2003년 겨울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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