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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내에서 여성의 당파성은 “보지”다 라는 아나키75의 주장에 대해
이것은 자본주의 내에서의 노동의 내러티브를 성(보지)의 내러티브로 간단하게 바꾸고 변주한 것이입니다. 자본주의 내에서 여성의 보지는 곧 여성의 노동 상품이다라고. 따라서 여성은 자신의 노동 상품을 전유(전유:자기 것으로 만들다)하고 적극적으로 그 자리에서 투쟁해야 한다. 그럴 듯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되면 다른 노동 상품과 달리 성 상품이 가지는 구체적인 결들을 놓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임금 노동의 경우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직접적으로 상품화하지는 않습니다. 노동은 자본가 측에서 보면 비용에 속하는 것이고, 상품은 그 노동의 결과물입니다. 노동자가 소비자앞에서 직접 자신의 노동을 보여주고 호객하는 것은 아니죠. 반면 성매매(여기서 저는 단순히 매매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의 성이 상품화 전반을 의미합니다.)는 노동 그 자체가 상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보여주고 꾸미고 치장하는 여성의 몸 그것 자체가 상품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자기자신을 객체화시켜서 고객의 욕구에 부흥하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죠. 여기서 여성의 몸을 상품으로 만드는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야겠네요. 사회적 가치란 아름다움, 섹시함, 귀여움, 착함 등등이겠죠. 섹스를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보지”가 아닙니다. 이러한 온갖 잡다한 관념들과 환상들이 여성의 몸에 다닥 다닥 붙어있죠. 이러한 관념들과 환상들은 단순히 “자본주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굉장히 구시대적이고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치들이죠. 이러한 비자본주의적인 것들이 자본주의의 생산양식과 맞물리게 된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 문화 현상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그 자체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습니다. 많은 좌파들이 이것을 망각하고 곧잘 경제주의적 환원론에 빠지죠) 따라서 여성의 해방은 이러한 비자본주의적인 것들에 대한 투쟁도 함께 병행되어야 하죠.
두 번째 여성이 보지를 자기의 것으로 전유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장벽이 있습니다. 이것또한 굉장히 비자본주의적인 것입니다. 그 장벽이란 자본주의 생산영역과 그 법의 테두리에서조차 소외된 가정이고, 뒷골목이고, 포주, 기둥서방들로 대표되는 남성들입니다. 단적으로 여성의 성 매매는 뒷골목에서 이루어지죠. 그래서 최근들어 공창화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젠 법의 테두리에서 노동매매와 같이 성매매를 관리하겠다는 것이죠. 노예해방, 농노해방으로 이루어진 도시 임금 노동자 집단의 출현처럼 성매매가 합법화 된다면, 즉 “창녀”들이 해방된다면 자연스럽게 성노동자집단이 당파성을 가지고 출현하게 되겠죠.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파성이란 그냥 가진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조건 하에서 가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성의 성노동은 이렇듯 다른 임금노동과는 달리 이러한 몇겹의 장벽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임금노동의 내러티브를 그대로 성노동의 내러티브로 번역해내는 것은 일견 타당하지만 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아직 한국에서 성매매 노동자는 그 당파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지 그 사회적 조건을 먼저 따져봐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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