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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6/22
    어떤 게시판에서...(7)
    손을 내밀어 우리
  2. 2009/06/09
    정희성의 시 두 편 + 하나 더(6)
    손을 내밀어 우리
  3. 2009/06/03
    비를 핑계로 쓴다(4)
    손을 내밀어 우리
  4. 2009/05/29
    글을 읽다가...
    손을 내밀어 우리
  5. 2009/05/23
    유서(10)
    손을 내밀어 우리
  6. 2009/05/17
    지난 일주일...
    손을 내밀어 우리
  7. 2009/05/13
    달력을 넘기다가
    손을 내밀어 우리
  8. 2009/05/07
    어떤 눈물
    손을 내밀어 우리
  9. 2009/04/25
    금요일 밤(6)
    손을 내밀어 우리
  10. 2009/04/22
    일주일(5)
    손을 내밀어 우리

어떤 게시판에서...

우연히 눈에 띄었고, 남겨두고 싶어서 여기 옮긴다.

--------------------------------------------------------------------

 

사랑이란 어떤 완성된 사람, 즉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내었다가 (흔히 시민사회의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렇듯이) 그 사람이 자신이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자 이내 실망해 버리는 어떤 "상"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이를 "형성하고", 발전시키고, 그 사람 이상의 것, 그 사람과는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생산적 태도이다. (...)


-브레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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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의 시 두 편 + 하나 더

두 아이의 학교가는 시간대가 다르고

요즘은 새벽같이 출장가는 일이 좀 드물어져서

아침마다 책읽을 시간이 짬짬이 난다.

 

잠깐식 읽을 때는

시 한두편이라도 읽어가는게 느긋하지.

 

오랜만에 정희성 시인의 최근 시집을 구해서 읽다가

아침부터 키득키득 혼자서 웃었다.

 

 

<시인 본색>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

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서도 오골계(烏骨鷄)!

 

ㅋㅋㅋㅋ...

오골계 드셔 보셨는지?

뼈가 까만 닭이다.

보약으로 곧잘 쓰는데

대학교 때 친구네 하숙집에 갔다가

늦은 밤에 출출해서

주방을 뒤지다가

채 식지 않은 닭백숙 냄비를 보고는

야 맛있겠다 해서 친구랑 열심히 먹었는데

아뿔사

그게 하숙집 주인의 남편을 위한 보양식이었다고....

미안해서

나중에 쌀 한말 사들고 그집에 다시 갔던 기억이 난다.

 

남들은 희디 흰 학이라고 남편을 칭송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속까지 다 검은 닭이다?ㅋㅋ...

뭐 긴 설명이 필요없는, 긴 사연이 담긴 작품이네.

 

내 아내의 입장에서 날 보면

아마 오골계보다 더 할껴...-.-

 

 

또 하나...

 

 

<희망>

 

그 별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모습을 드러낸다

 

 

그 전에 희망에 대해서 내가 주로 인용했던 말이라면

'희망은 결코 절망한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는 말 정도....

 

근데 이 석 줄의 짧은 시에서는

나 자신에게서 희망을 일깨우고 갈무리하는 자세가 보인다.

정희성 시인도 제법 나이가 들었나 보다...

 

내가 이전에 술자리에서 노래 대신에 읆곤 하던 시가

정희성의 "새벽이 오기까지는"이었는데

그 시를 한번 보면 실감이 날 듯하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새벽이 오기 전에

나는 머리를 감아야 한다

한탄강 청청한 얼음을 깨서

얼음 밑에 흐르는 물을 마시고

새벽이 오기 전엔

얼음보다 서늘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저 어질머리 어둠에 불을 지피고

타오르는 불꽃을 확인해야 한다

얼음 위에 불을 피우고

불보다 뜨거운 마음을 달궈야 한다

새벽이 오기까지는

 

나는 보리라

얼음 위에서 어떻게 불꽃이 튀는가를

겨울의 어둠과 싸우기 위해

동지들의 무참한 죽음과

보다 값진 사랑과

우리들의 피맺힌 자유를 위해

 

나는 보고 또 보리라

불이 어떻게 그대와 나의

얼어붙은 가슴을 뜨겁게 하고

저 막막하고 어두운 겨울 벌판에서

새벽이 어떻게 말달려 오는가를

아아 눈보라 채찍쳐

새벽이 어떻게 말달려 오는가를.

 

 

술자리에서 내가 이 시를 외우며 악을 쓰면

사람들은 마지막에 다그닥 다그닥 말달리는 소리를 내면서

술잔을 부딪히고는 했다...ㅋㅋ

 

회의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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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핑계로 쓴다

마알간 아침 하늘,

한 귀퉁이부터 캄캄하게 어둠이 밀려오더니

이내 비가 퍼붓고

우르르 쾅쾅 천둥이 칩니다.

 

천둥이 하늘의 심장인 듯

박동소리가 다부지고 야무진데

내 심장의 미세한 울림과 떨림은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가닿을 수 있을까요?

 

비가 올 때마다

본능처럼 몰아치는 가슴앓이,

우산 버리고

하늘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 아래 서서

온 세상 넘치는 그리움으로 무장하고 싶습니다.

(2009.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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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가...

성공회대 이광일 교수가 참세상에 올린 글을 바빠서 대강 읽고 지나갔는데

오늘 다시 생각이 나서 찾아가 꼼꼼히 정독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renewal_col&nid=53151

 

제목에서부터 '대당'이라고 하는 논리학의 용어를 들이대어서 좀 당혹스러웠고,

글이 꽤 길어서 차근차근 읽지 않으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번에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더라.

(나만의 문제인가~~?^.~)

 

그래도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민주주의의 의미와 실현방안,

이른바 추모 정국이라는 것에서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들,

그리고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것들에 대해서 잘 짚어준 것 같다.

 

또 찾아서 읽게 될 것 같아서 일단 링크를 걸고

눈에 띄는 몇 문장들을 그대로 옮겨다 놓는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의 문제를 지적한 첫번째 인용문은

나를 뜨금하게 만들었다.

지난 번 글에서 나도 편리하게 그런 표현을 차용했으니 말이다.

 

어디 볼까...

 

요즘 많은 저널리스트들, 학자들이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의 관계에 대해 자주 언급합니다. ‘살아 있는 권력’인 이명박정권이 ‘죽은 권력’을 상징하는 노무현정권을 탄압, 조롱하였고 노무현전대통령은 그 상징적 희생양이라는 평가도 들립니다. 물론 이런 대당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것은 주권자를 대상화, 수동화시킨다는 점에서 그 이데올로기의 혐의를 벗어날 없습니다. 왜냐구요? 어떤 사회이건 민주주의를 표명하는 한 ‘살아 있는 권력’은 오직 ‘자기지배를 실현하고자 하는 주권자’에게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정치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삶과 죽음뿐만 아니라 타자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을, ‘민주주의자 노무현’을 살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그것은 과거에 그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여기에 가로 놓여 있는 그 어떤 부당한 장벽들, 경계들을 비판하고 그것에 저항하면서 그것을 허물고 새로운 삶의 관계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해집니다. 민주주의는 과거의 경력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 움직이는 지금 이 순간의 부당한 관계들을 문제시하고 그것을 넘고자 하는 실천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죽은 노무현을 잡고 그를 기억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고통 받는 용산을,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이주노동자들을, 소수자를, 수탈 받는 환경과 생태의 아픔을 안고 함께 싸우는 것이 진정 그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민주주의, 즉 자기지배의 실현은 그 어떤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꿈을 투사하여 이룰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들만이 “이제 저를 버리라.”고 한 ‘대통령 노무현’의 말을 제대로 독해하는 사람이고 그를 넘어섬으로써 그를 살리는 참다운 지지자가 될 것입니다.


개혁자유주의자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계’는 오직 그것을 넘어 나아가고자 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실현되어져 왔다는 역사를 부정하거나 잊지 마십시오. ‘노무현의 꿈’은 열성지지자들인 당신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자, 진보주의자로 거듭날 때만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정말 잊지 말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바보 노무현’을 추모하는 저 촛불이 지금 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는 용산의 착한 이들과 가난한 자들의 삶 속으로 자연히 이어질 때만이, 진정 ‘이 시대의 또 다른 바보들’과 어깨를 할 수 있을 때만이 그 또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요. 이제 당신들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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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1.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 5. 23. 05:21)

 

2.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적들이 투쟁의 제단에 재물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동지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동지들을 잃을 수 없었습니다.
저의 육신이 비록 여러분과 함께 있진 않지만, 저의 죽음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 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 대접 받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큰 나라를 반토막내서 배부르고 등 따신 놈들 미국과 극우보수 꼴통들이 이번 참에 아예 지네들 세상으로 바꿔 버릴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고 합니다.

그 속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안락만을 위해서 투쟁할 것이 아니라 통큰 목적을 가지고 한발 한발 전진하기 위해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 적극적이고 꾸준한 노력과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의 생존권, 민중의 피폐한 삶은 사상과 정견을 떠나서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 민중은 이론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최소한 화물연대 조직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 힘 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해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깜깜할 겁니다. 어떻게 승리하는지 저는 보지 못할겁니다. 그것이 아쉽고 억울합니다.
꼭 이렇게 해야, 이런 식의 선택을 해야 되는지, 그래야 한 발짝이라도 전진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속상하고 분합니다.
이름을 거론하자니 너무나 많은 동지들이 떠오릅니다.
저를 이만큼 건강한 간부로 활동가로 있게 해 준 소중한 분들. 저를 믿고 따라 준 형님, 동생, 친구들. 이 의미있는 투쟁, 힘겨운 투쟁에 끝까지 남아 준 동지들 모두가 저에겐 희망이었습니다.

광주라는 곳도 사랑합니다.
날고 싶어도 날 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행복하고 서로 기대며 부대끼며 살아가길 빕니다.
복잡합니다. 동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그 속에 저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올림.

(2009. 5. 3. 자결 확인된 이후 발견됨)


3.

'특별한 사람'의 유서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의 유서를 뒤덮고 있다.

 

'특별한 사람'의 유서에는 개인의 상처와 고통이 크게 드러나고

'특별하지 않은 사람'의 유서에는 조직(공동체)의 상처와 고통이 오롯이 배어있다.

 

'특별한 사람'은 

언제나 국익을 외쳤지만 국익을 위해 목숨을 저버린 것 같지는 않고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국익의 근본이 노동자 민중의 삶에 있음을 외쳤고 죽음으로 실천했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 전복의 역사 앞에서

나는 모든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관과 무덤에서 되살아와서

산 사람들과 어울려

전복되지 않는 오늘의 역사를 위해서 함께 싸우는 것을 꿈꾼다.

 

'특별한 사람'의 죽음이 미구에 태풍처럼 세상을 휩쓸고 가더라도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듬고 지키며 우리는 그저 싸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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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지난 주일(5/9-10)엔

식구들끼리 예정되었던 1박 2일 여행을 갔었다.

 

꽃이 지고 난 섬진강을  따라서

순천, 광양까지 갔다가

다시 하동, 화개장터, 구례로 거슬러왔고

다음 날에는 곡성을 거쳐서 성삼재를 넘어서 돌아왔다.

 

오자마자 곧바로 대전역 촛불집회에 갔고

밤에는 투쟁하는 동지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월요일(5/11)엔 모임이 있었고

아주 특별한 일들이 이어지면서 밤을 새고 말았다.

 

화요일(5/12)에는 서울에서 집회와 회의(중집위)가 있었고

뒷풀이에 더해서 한잔의 술을 마시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수요일(5/13)에는 오전에는 지역본부 회의,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퇴근하고 촛불집회에 갔다.

서울가는 연맹의 간부들을 대전역까지 태워다주고

가볍게 시작한 저녁밥먹는 자리가

조용한 술자리로 길게 이어져 자정을 많이 넘겼고...

 

목요일(5/14)에는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저지 출근투쟁,

지부에 잠시 들러서 설문조사 얘기 마무리짓고,

오후 4시 회의가 있을 때까지 일하느라 좀 바빴고,

저녁 7시에 서울 회의는 30분쯤 지각했다.

뒷풀이가 유쾌하게 이어졌고

4년만에 택시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금요일(5/15), 오전 10시 회의에 지각했고

좀 일찍 퇴근해서 안양에 갔다.

스승의 날을 전후해서 모이는 초등학교 친구들과

그 때의 담임선생님, 올해 초에 정년퇴임하셨지만

우리랑 여전히 젊고 활기차게 어울리신다.

 

토요일(5/16), 아침부터 마음이 바쁜 날이었고

비는 왔고, 전국노동자대회가 처음으로 대전에서 있었고,

행진이 시작되었을 때 사정상 빠져있었고

밤에 다시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다급한 전화를 여러통 주고 받았고 멀리까지 차로 다녀왔다.

 

일요일(5/17), 오늘이구나...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서울로 가는 도중에

어제 연행된 동지들이 너무 많아서(457명?)

면회투쟁을 같이 해달라는 연맹의 전화를 받고

다시 급히 대전으로 돌아왔다.

둔산경찰서, 대덕경찰서, 다시 둔산경찰서, 왔다갔다 하다가

오후 3시에 점심을 먹고 오후 5시에 회의(민영화저지정책팀)에 갔다.

 

회의 마치고

저녁 같이 먹고

집에 들렀다가

사무실에 왔다.

 

12시 지나면 집에 가겠다고 했는데

일은 끝이 보이지 않고

지난 일주일 생각나는대로 줏어섬기고 있다.

돌이켜 보면

하나하나의 일들이 모두 정리가 필요한 것들이지만

언제 다 정리하고 살겠나.

 

10분 후면, 다시 일주일이 새롭게 시작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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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넘기다가

오전에 지역 회의 하나 끝내고 돌아와

오랜만에 느긋한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았는데

컴퓨터 위에 놓인 달력이 아직도 4월이다.

 

한 장을 넘겨 오늘 날짜를 확인한다.

5월 하고도 13일....

5월이 2주일 지나는 사이에 나는 뭘하고 있었나?

 

오늘 끝내지 못한 일은 내일로 이어지고

그것이 그 다음날로 이어져 기어이 끝을 보고 말아야 할텐데

오늘과 내일과 모레와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

날마다 다른 일정과 다른 일들이 첩첩이 쌓여있고

무어 하나 말끔하게 끝나는 일이 없구나.

 

어디 오라고 해도 가지 말고

사무실에 붙어 있으려고 애 좀 써야 하나.

누구 말마따나

술이라도 끊고 밤낮 일중독자로 전환해야 하나.

 

달력 한장 넘겼는데

한달의 절반쯤을 그냥 잃어버린 것 같아서

투덜투덜 푸념 한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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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눈물

1.

살면서 

어쩌자고

참 많은 눈물들을 만났다.

 

슬픔, 격정, 흥분, 감동, 그 무엇이든

눈물은

구체적이고 실존적이고 솔직하다.

 

어젯밤 늦게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한 동지에게서

또 눈물을 만났다.

 

15년을 친하게 어울렸어도

한번도 만나지 못한 눈물 앞에서

술잔을 연거푸 권하는 것과

손수건을  꺼내드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속절없이 우는 사람은 끝까지 울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눈물을 기억하리라.

 

2.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동지의 눈물을 기억하기 위하여

여기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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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3시간째 이하나의 페퍼민트를 골라서 보고 듣고 있다.

 

오후에 무주에 가야 했는데 못갔다.

그렇다고 해서 밀린 일을 다 끝낸 것도 아니다.

 

10시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는 내리고

무주에서 회의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 도저히 못가겠다고 말했는데

곧바로 다른 곳에서 전화가 왔다.

 

신성동에서, 이제는 보직을 맡고 있는

연구소의 옛 조합원들이 모여서 술마시고 있으니

오랜만에 한번 보자는 전화였다.

시간 나면 술 한잔 하자는 얘기를 이전에 했던 터라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성동으로 차를 몰았다.

어디인지는 그 동네 도착하면 알려주기로 했으므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사람도 저사람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까 통화하고 나서 겨우 30분쯤 지났을 뿐이다.

잠시 후에 전화가 연결되었는데

어랍쇼, 시끄러운 음악에 파묻혀 목소리는 잘 듣기지도 않는데

말의 앞뒤가 어긋난다, 이 사람 취했구나, 생각이 미치는 순간

안녕히 가세요, 하고서 전화를 끊는다.

 

별 도리 없이 집으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차라리 잘 되었지 뭐야, 하면서.

집에 도착하니 술자리의 다른 일행에게서 전화가 왔다.

노래방이라서 전화온줄을 몰랐다면서

나를 초대했던 동료는 많이 취해서 사라졌다고.

그 또한 술을 제법 마신 상태인 것 같아서

다음에 보자고 했다.

 

일주일치의 피로가 몰려오는 듯 잠깐 잠이 밀려온다.

며칠 전에 집으로 배달된 사노준 특보 3호를 한페이지씩 읽어간다.

절반쯤의 내용은 공허하다. 내 의식의 공허함을 반영하는 것인가.

더군다나 노동절을 5.1절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5.1절이지? 왜?

그러고 보니 5.1절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쓰이긴 했지만

새삼 개운치 않다. 유래를 찾아봐야겠다.

노동절이면 충분한 것 아니냐.

 

잠은 금세 달아났고, 내친 김에 사노준 홈피에 첨으로 가봤다.

낯설지 않은 풍경과 낯설지 않은 성명서, 논평들을 읽어가다가

민주노총혁신대토론회 자료집(3월12일)이 눈에 띈다.

다운받아서 읽다 보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대목이 이어진다.

 

여기저기 검색하다가 장기하가 이하나의 페퍼민트에 출연한것이 걸렸다.

이하나, 음, 정부가 싫어하는 행사 사회를 봤다고

졸지에 프로그램마저 도중하차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봤던 적이 있다.

한번 볼까...

 

HD 동영상 4편을 다운받아서 하나하나 봤다.

김창완밴드&크라잉넛&요조
MC몽&린&장근이
바비킴&전제덕&윤하

드렁큰 타이거 & Bizzy
Windy City
임창정 & 김창렬
다이나믹 듀오
킹스턴 루디스카

yb(윤도현밴드)
이하나 & 김광민
클래지콰이
장기하와 얼굴들 

 

모르는 사람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식구들은 모두 잠들었고

나는 아직 음악에 푹 빠져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 차려놓고

서울 회의에도 가야 하고 오후에는 어떤 모임에도 가야 하고

다시 저녁에는 미국에서 온 후배를 만나기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다.

음악도 술처럼 시간을 술술 잘가게 하는 거로구나.

 

만사 제쳐두고

다른 것에 이렇게 몰입하는 것, 참 오랜만이다.

베란다 밖을 살펴 보니 비는 좀 그친 듯하다.

 

언제 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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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15일에 여기에 글을 썼다. 그리고 나서 일주일간 나는 무얼 했던가.

 

16일은 우리 지부 창립 21주년 기념일이었다. 정읍에 가서 조합원들과 낮술 마시고

대전에 와서 다시 조합원들과 저녁술을 마셨다. 그리고 날모동지들을 만나서 술을

더 마시고 취하고 말았다.

 

17일은 아침 10시에 청와대 입구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11시부터는 광화문 정부

중앙청사 뒷문 앞에서 집회가 있었다. 그리고 주요 사업장 투쟁전략회의가 있었고.

연맹으로 달려가서는 정책담당자회의를 했다. 술 한잔 마시고 대전으로 갔다.

 

18일, 토요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전엔 잠시 여유를 부렸다. 오후에는 신랑과

신부가 모두 나로서는 각별한 결혼식이 리베라호텔에서 있었고 그 뒷풀이가 바이젠

하우스에서 있었다. 이른바 하우스 맥주를 배불리 마셨다. 그 술기운이 완전히 가시

고 난 새벽 1시에 장보러 나섰다.

 

19일, 가사노동에 가장 바쁜 일요일이다. 오전에 서둘러 하루치의 일을 어지간히 해

놓고 오후 3시부터 시작되는 '장애인차별철폐대행진'에 참가했다. 어른 반, 아이들 반,

장애인 반, 비장애인 반, 두루 어울려 걸었고, 그리고는 해질 무렵까지 공연을 함께 봤

다.

 

20일, 별일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통폐합되어 신설되는 콘텐츠진흥원의 노동조건을

둘러싸고 노사, 노노 간에 어려움이 있다고, 위원장과 함께 서울로 달려갔다. 고용승계

를 법적으로 보장해놓고도 사직서를 강요하는 사용자의 방침은 일단 막았고, 노사합의

로 노동조건을 변경하기로 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다.

밤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21일, 과학의 날. 과천국립과학관에서 치러지는 기념행사에 이명박이 참가한다고 해서

집회신고도 미리 내고 간부들이 새벽부터 달려갔는데, 나는 가문비가 독서실 등록을

위한 전쟁을 치르는 날이라 따로 출발했다. 가문비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움직이더니

독서실 등록을 무사히 마쳤다. 10시 30분부터 안산 해양연구원에서 중앙위가 있었다.

저녁까지 회의를 하다가 막판에 성원 부족으로 산회했다(이번 집행부에서 처음). 해양

지부 간부들과 저녁을 먹고 대전에 도착해서 지역의 동지들과 술을 마셨다.

 

22일, 오늘. 아침 10시부터 지역본부 대표자회의가 있었고, 오후 4시부터는 용산에서

연맹의 복수노조대응회의가 있었다. 모두 끝내고, 저녁을 먹고, 상암동 DMC(Digital

Media City라나..)에 자리잡은 Culture Contents Center에 와서 20일에 만났던 통폐합

기관의 노동조합 간부들이 밤샘회의를 하는 것을 참관하고 있다. 아니 참관이라기보다는

회의가 혹시 난마처럼 꼬이게 되면 풀어주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다.

위원장과 나, 그리고 2명의 본부 상근자들이 함께 밤샐 작정을 하고 있다. 통합하게

되는 각 기관의 노조 또는 직원대표들(이들도 최근 조합원이 되었지만) 열댓명이 모여

열띤 회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렇듯, 주중에는 대전에 없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내일은 대전에서 2개의 밀린 원고

를 써야 하는데 또 무슨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날지 알수없다. 정책위원장이라면 책상

머리에 붙어앉아서 할 일도 많으련만 허구헌 날 길 위에 있으니 야단이다. 암튼, 내 블

로그가 넘 썰렁해서 중얼거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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