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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지역본부에서 한 때 열정을 다해 일했던
조훈 동지의 딸 아라가 오늘 낮에 결혼식을 했다.
모처럼 지역의 많은 동지들이 모였고,
내친 김에 술자리가 걸판지게 차려졌다.
아라를 너무 일찍 보냈다고 못내 서운해하던 신부 아빠는
한창 무르익은 술자리에 와서는 애써 웃음을 보였고,
맥주컵에 가득 따른 소주들은 금세 잔이 깨어진 듯 사라졌다.
세월이 흐르니 다들 나이는 먹어서
심심치 않게 주변의 동지들이 주례로 등장을 한다.
민주적 가정을 이루자, 가정 안에서 여성문제를 잘 풀어가라,
오늘 김예준 동지의 짧은 주례사와
새로운 형식으로 진행했던 결혼서약, 좋았다.
오늘 주례를 선 김예준 동지,
어제 다른 결혼식에서 주례를 본 나,
지난 봄에 주례를 했던 날세동 동지,
술김에 번갈아 사진 하나 찍었다.
안개 속에서 긿을 잃다.
그저께, 밤 늦은 시간,
강남에서 유성으로 오는 고속버스를 탔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1시 20분,
거리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불과 50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내 차가 서 있는 사무실 앞까지
유유자적하게 걷기로 했다.
인적 드문 거리에는 택시들이 주로 달리고
24시간 노동하는 편의점, 해장국집, 족발집들과
밤에만 반짝하는 노래방들이 안개 속에 깨어 있다.
혹시라도 달리는 차가 나를 보지 못하면 어쩌나,
짐짓 걱정도 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리를 건너
사무실 앞길로 접어들자 안개 속 아경이 몽환적이다.
왼쪽으로 대학생들을 위한 원룸형 빌딩,
오른쪽으로는 청계천을 꿈꾼다는 유성천,
그 사이로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이
안개의 땅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진을 몇 장 찍었고 곧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어랍쇼, 어느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 낯설다, 아니
익숙한 곳이기는 한데 내가 도달하고자 한 곳은 아니었다.
이게 웬 일이람?
그곳은 사무실을 한참 지나친 곳이었다.
되돌아 보았다.
사무실은 여전히 안개 속에 묻혀 보이지 않고
길 가에 세워둔 내 차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이냐?
오던 길을 다시 걸었다.
곧 백설공주가 사는 성처럼 안개 속에 우뚝 선
사무실 건물을 만났다.
길을 잃을 수도 없는 직선도로 위에서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내가 몽유병이라도 걸렸다는 말인가?
길은 언제나 걷던 그 길이었고,
차는 곧 쉽게 찾아서 움직일 수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안개 속에 찍은 사진들을 꺼내 보았다.
사진 속에는
물에 반사된 건너편 모텔의 네온사인과 가로등,
사무실 앞 가로수, 낙엽이 덮인 길가 잔디밭,
아스팔트를 떠도는 마지막 잎새들,
그런 새벽 풍경들이 맘 편한 자세로 누워들 있고,
저 앞 길 건너편에는
세웠던 그 자리에 내 차가 또렷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어디를 걷고 있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을까?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김 준 동지를 추억하며] 에 관련된 글.
1년전,
장례식을 치르던 그 날만큼 폭우는 아니었지만,
어제도 비가 내렸다.
1부. 제1주기 추모식
2부. 식사 및 추모사업회 출범식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했던 동지여...] 에 관련된 글.
김 준 동지가 떠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11월 25일 오후 3시에 갑산공원묘지에서
동지의 1주기 추모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아래 글은
동지들에게 미리 보낼
리플렛에 담겠다고 해서 썼다.
동지를 땅에 묻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모두가 오열했던 작년의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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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준 동지를 추억하며
노란 은행잎이
연구단지의 가로를 이리저리 몰려다니면
여지없이 가을이 다 가는 것이다...
오래 전에 그렇게 썼었던 것 같고
올해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단풍은 유난히 도드라진다.
붉은 색은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크고
햇빛이 좋을 때 가장 좋다고 했던가,
2주전에 마니산 갔을 때 봤던
단풍나무의 붉은 잎이 생각난다.
10월은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2/3를 서울을 오가면서 지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공간에 잠깐씩 오는 게 힘든 일도 아닌데
소소한 일상들이 그냥 파묻혀 간다.
늘 갖고 다니던 카메라가 고장이 난 것을
바쁘다는 핑계로 두달을 그냥 두었다가
그저께 서울간 김에 수리점에 갖고 갔더니
수리비가 최소 13만원, 최대 18만원 든다고 했다.
노트북도 수리비가 40만원쯤 나온다고 해서
결국 할부로 질러 버린게 얼마 되지 않았고
3년반을 잘 버티어오던 휴대폰도
밧데리가 도저히 감당이 안되어 바꿨는데
이제는 카메라까지...
기계들도 나를 배겨내지 못하는 모양...후후.
그렇게 10월이 간다.
노동연지부의 전면파업은 어느새 40일째 이르고,
용산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도
신문법 방송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나를 딴 세상으로 밀어내고 있다.
10월에 못다한 일들도 많지만
이번 주말은 벼락치기로 보내기보다는
난마처럼 얽힌 생각타래부터
차분하게 하나씩 풀어봐야겠다.
참 오랜만에 미디어충청에 써보낸 글.
2009-10-14 08시10분 이성우
우리 노조 한국노동연구원지부가
9월 14일부터 간부(쟁대위) 파업, 9월 21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거의 한달째 파업인데 조합원들이 참 밝고 꿋꿋하고 한결같이 열심이다.
왜 파업을 하는지는 따로 시간나면 쓰기로 하고
(검색창에 박기성을 치면 기막힌 얘기가 참 많이 나온다)
그저께 난지도에서 있었던
노동조합 창립 18주년 행사에 다녀와서
지부 카페에 올린 글을 여기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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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기념행사에 다녀와서...>
한강이 온 가슴 활짝 열고 있는 난지도 캠프장,
따스한지 따가운지 헷갈리는 가을 햇살의 시샘 듬뿍 받으며
노동연구원지부 창립 19주년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아, 연혁보고를 듣다가 보니
19주년이 아니라 18주년이었습니다.
이은정 동지의 보고대로 91년에 출범한 것이 맞다면요.
가람아 사랑해애~~~ 그리고
생일 축하노래가 울려퍼지면서 기념식이 끝났습니다.
이런 기념식 마무리는 처음이었습니다.
참 여유롭고 분위기 좋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는 잘 먹었습니다.
대천에서 갖고 왔다는 윤미례 동지의 엄마표 김치,
아버님이 주셨다는 정성미 동지의 가시오가피술,
햅쌀에 밤과 강낭콩 듬뿍 넣어 지은 밥(이름을 잊었네요-.-),
차려내는 음식마다
모든 조합원과 그 가족들의 정성이 넘치는 것들이었습니다.
참 잘 놀았습니다.
풍성하게 차린 밥과 고기와 술, 갖가지 음식들을 놓고
그저 즐기면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왁자지껄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는
주변의 10대, 20대들까지 압도해버리더군요.
한잔 주고 두잔 받으면서 참 흐뭇하기만 했습니다.
동지들의 이쁜 아이들도 보고
오래된 조합원들의 사연도 힐끔힐끔 듣고
10년 20년이 되었어도 직원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야유회 한번 제대로 못했다는 기억도 엿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뭉클하고 뜨거운 심장의 박동을 내 가슴에서 느낍니다.
세상을 살리는 파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멋들어지게 지어낸 하나의 구호로 생각했더니 그게 아닙니다.
무수한 박기성들을 양산하는 이 땅의 전도된 상식 앞에서
우리네 소박한 마음들을 하나로 모으고
일터에서 만나는 동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심장과 머리와 손발이 제각기 돌아가는 이율배반의 사회를
물이 아래로 흐르고 산바람 강바람 순리대로 불어오듯이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을 일치하게끔 하는 것,
파업은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래서 내 마음까지 참 넉넉해졌습니다.
노동연지부 동지들 덕분입니다.
김가람 동지의 선창에 따라
동지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사랑해애, 하고 외쳤던
그 느낌이 입술에 팔딱팔딱 살아나는 듯합니다.
이렇게 잠시 흔적을 남기고
이제 내가 속한 생명지부의 조합원 동지들을 만나러 갑니다.
이 저녁 내내 노동연지부 동지들 얘기를 안주 삼아
난지도에서 다 마시지 못한 소주 실컷 마셔볼 생각입니다.
내일, 여의도에서 뵙겠습니다~.^
이삼일 전이었나,
아침 9시 반쯤 차를 운전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큰딸이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 "
가문비 문자였다.
아니 이 시간이면 한참 수업하고 있을텐데
이게 무슨 문자람?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한손으로 급히 답문을 보냈다.
"그럼, 근데 왜?^♡^"
금세 다시 답이 왔다.
"사랑하니까 ♡ ♡ "
뭐야, 이거...이 시간에 학교를 나와서 딴데 있는 건가?
난생 처음 있는 일이라 궁금하기도 하고 슬며시 걱정도 되고...
그래도 나도 바빠서 일단 넘어갔다.
점심시간에 다시 생각이 나서 문자를 하나 보냈다.
"별일 있는 건 아니지? 점심 맛있게 먹었니? 홧팅^.^"
좀 있다 보니까 답이 와 있다.
"그냥 한문시간에 효성 관련 지문 배우고나서 부모님한테 문자보내기 했어~
난 이제 밥먹고 있음!"
에효...그러니까 수업중에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모두가 (금지된) 휴대폰을 꺼내서 일제히 문자를 보냈다는 거?
나중에 가문비한테 물어보니
나처럼 당황스러워하면서 답을 보낸 부모들이 제법 있었던 듯...
아빠, 실내화 안가져왔어. 아빠, 수업료 냈어? 아빠, *월 *일 한겨레 광고 좀 구해 줘.
이런 문자에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는데
사랑 어쩌고 하는 문자가 오는 순간 슬며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고정관념에 찌든 기성세대라는 거겠지? ㅠ.ㅠ
그저께,
그러니까 금요일 저녁이었나,
가문비가 그러더라.
-2학년 5반에 신종 플루 환자가 있어서 그 반만 쉬게 했어.
-우리 교실은 3학년들하고 같은 건물에 있는데, 3학년들한테 전염되면 큰일이라고,
교실을 다른 곳으로 옮겼어.
-아니, 3학년들하고 매점에서도 만나고 복도에서도 만나는데, 층과 벽으로 가로막힌
교실을 왜 옮기는 거야?
뭐, 그렇게 줄레줄레 얘기하고 넘어갔는데
다음날 오후에 아내가 외출했다가 와서는 그런다.
-가문비, 니네 학교 1주일간 휴교했다고 문자 왔어.
=에이, 그거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왜?
=월요일에 학교가라고 깨우면 나 오늘 학교 안가, 하고 놀리려고...ㅎㅎ
3학년들이 감염될까봐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도 1학년과 2학년들만 휴교하는 거,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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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부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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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준동지 미소는 여전한데 머리가 더 썰렁해졌네요^^부가 정보
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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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부>> 밝게 빛나니까 따스해보이지 않으세요?^.~부가 정보
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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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김예준 위원장님 왜이렇게 됐어요? 임익성 동지는 좀 늙어보이고, 날세동은 어딨어요? 또 한 분은 잘 모르겠네요. 아... 세월이 무섭다.부가 정보
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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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같이 늙어가는 처지잖아요.. 날세동? 가운데 오른쪽 사진에서 장발 아저씨!^.^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