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지난 주 수요일이었구나, 술 마시고 귀가하는 길에,
아이들이 빵이나 사오래서, 빵집에 들러 이것 저것
줏어담았는데, 엊저녁에 보니까 식빵모양의 작은 것
이 식탁 위에 옆귀퉁이만 약간 베어진 채로 놓여있다.
이건 왜 남겼어?
이건 왜 남겼어, 했더니, 가문비가 말하기를, 그건
아빠 거란다. 내 꺼라구? 왜?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
는 건 다 아빠꺼야, 아내의 설명. 밥도 반찬도 식구
들이 먹다 남기면 모두 내가 해치우니까, 이젠 모두
익숙해졌나 보다. 그래, 니들이 원하는대로 해 주마.
그래서 오늘 출근에 앞서, 평소에는 여간해서 아침에
끓이지 않던 커피까지 끓여서 남은 빵을 먹어치웠다.
그냥 버리는 것보다야 일단 '몸'이라는 거대한 생화
학공장을 거쳐 배설물의 형태로 자연으로 보내는 것
이 훨씬 나으니까.
빵을 먹으면서, 한국에 왔더니 이노무 빵이 며칠을
연구실에 두었는데도 곰팡이도 슬지 않아요, 방부제
투성이라는 얘기지요, 이런 걸 어떻게 사람이 먹고
살아요, 하고 너스레를 떨던 20년 전의 생화학 교수
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 서울하고도 강남의 귀족
들은 배추와 무와 같은 채소류들이 벌레먹은 거래야
농약을 치지 않은 것이라고 오히려 더 비싸게 사먹곤
했고 그래서 풀무원이라는 지금의 큰 식품회사가 저
렇게 성장을 했다지 아마.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나는
농약을 마구 쳐서 다 자란 배추에다가 농약에도 죽지
않는 돌연변이 배추벌레를 양식하는 만화같은 광경을
그려보기도 했다.
인체라는 공장은 가동이 정지될 때까지는 어지간하면
모든 것을 해치운다. 플라스틱이나 금속, 암석과 흙
따위 도저히 소화가 어려운 것도 있지만, 치명적인 독
극물이나 발암물질이 아니라면 중금속, 쓰레기, 조금
은 오염된 물과 음식 무엇이라도 인체에 들어간 이후
24시간 이내에 대체로 배설된다. 지상의 모든 먹을 수
있는 쓰레기들은 인체를 통과해 나가는 순간 자연이
가장 처리하기 손쉬운, 환경친화적인 존재가 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것 말고는 인간이 하는 일
이라는 게 누구도 처치하지 못할, 문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지상에 쌓아올리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부끄러운 자들이여,
어떤 먹거리에도 특별한 불만을 토로하지 말고 그냥
먹어치우는 것이 실천궁행의 모범이요 보시일 수 있
으니, 수명이 다하도록 먹는 것이라도 열심히 챙기기를
권한다.
불량만두속 파동이며 뇌줄중을 일으키는 감기약 성분
(PPA) 소동이 국민들로 하여금 식약청(KFDA)이라는 존
재를 확실하게 인식하게 만든 모양이다. 이를테면, 이
런 전화가 자주 온다는 거다. 어떤 주부, 저기요, 꽁
치랑 오징어랑 같은 날에 사서 냉장고에 두었는데, 오
징어는 썩었는데 꽁치는 괜찮아요, 이 꽁치에 방부제
많이 친 거 아닌지 검사 좀 해 주세요. 식약청 직원,
꽁치에는 혹시 소금쳐서 두지 않았어요? 주부, 네 그
랬지요. 직원, 소금이 꽁치 상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
잖아요.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어떤 아저씨, 내가 변
을 보고 내 몸 상태를 판단하는데, 약을 먹었는데, 그
약이 하나도 소화도 되지 않고 그냥 변에 섞여 나왔단
말이요, 이거 깨끗하게 씻고 말렸는데 가져가서 조사
좀 해 주시오. 직원, 외국의 큰 제약회사에서 나온 약
들 중에는 약성분만 서서히 인체에 흡수되게 하고 부
형제(약모양을 만들거나 분량을 늘이기 위해 첨가하는
무해한 물질. 녹말같은 것)는 먹을 때 모양이 그대로
나오는 게 있어요.
비브리오가 창궐할 때는 횟집을 찾고, 조류독감이 유
행하거든 훈제오리와 치킨 안주를 열심히 먹고, 콜레
라 걸린 돼지나 광우병 걸린 소를 직접 잡아다 내지
않는 한 육류를 피하지 말며, 다시 안갈 집이 아니라
면 음식점에 가서 투덜거리지 말자는 게 음식에 관한
내 개똥철학이다.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
나 많은 오물과 독소-불량식품, 대기중의 오염물, 화
학조미료, 심지어 원한맺힌 가래침(?)까지-들이 내 몸
을 통해서 정화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일일이 따지
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므로,술과 담배 또
한 열심히 마시고 피워서 없애야 할 존재들 아닌가 말
이다.
누군가 한마디 하겠구나, 아무 것이나 처먹어도 별탈
이 없어 그 딴 소리를 하지, 짜샤-. 그래, 아침부터
빵 한 덩이 베어물며 실없는 생각에 그냥 빠져 봤다.
신선한 재료와 맑은 물 길어다가 정성들여 음식 만들
고 동지들 불러 모아 술이나 한잔 했으면 좋겠는데,
시절이 하도 어지러워 하는 일 없이 세월만 축내고 있
던 터.
댓글 목록
kanjang_gongjang
관리 메뉴
본문
먹을게 넘쳐도 걱정입니다.가난한 사람들이 먹거리를 사먹기가 여간 녹녹치 않은 현실입니다.
그래도 굼주리지 않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부가 정보
감비
관리 메뉴
본문
그렇지요? 하루에 한끼를 겨우 먹는 사람이 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는데(정확한 통계치는 나중에 확인하겠음), 먹거리 타령이라니, 면구스럽기는 합니다.-_-
부가 정보
하얀모카
관리 메뉴
본문
그렇게 해서 부자된 풀무원이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고 있습니다.내가 먹은 두부값 다 돌려줘.. 나뿐 놈들아... 씩씩...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