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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09
    <이슬라마바드>그래도 한국인 숙소가 좋다
    제이리
  2. 2006/08/09
    <라호르> 첫날부터 삽질이다(2)
    제이리
  3. 2006/08/09
    <암리차르> 그나마 다행이다(6)
    제이리

<이슬라마바드>그래도 한국인 숙소가 좋다

아침에 호텔을 나와 미리 예약해 놓은 대우 버스를 탄다. 아니 이제 삼미 버스인가.. 여튼 간만에 타보는 안락쾌적한 버스다. 에어콘은 기본에 비디오 청취용 핸드폰을 일일이 나눠주는 안내양 언니가 있는 전형적인 우리에 80년대 버스다. 게다가 샌드위치며 음료수까지 나눠 준다. 차이가 있다면 안내양 언니가 검은 머리 수건을 쓰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인도에서 찢어지는 스피커 소리에 아랑곳없이 틀어대던 음악과 사람들의 소음 속에 버스를 타다가 간만에 조용한 버스를 조금 이상한 느낌마저 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도 우리네 고속도로 비슷하다. 거의 8차선은 되어 보이는 도로가 일직선으로 뻗어있어 차가 도착하는 라왈핀디까지는 300km 정도가 된다는데 시간은 5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다만 창밖으로는 가끔 집들이 두어 채 보일 뿐 끝없는 황토빛 벌판만 계속된다.

 

차는 라왈핀디에 우리를 내려준다. 이슬라마바드에 간다더니 웬 라왈핀디냐고? 그게 말이지 파키스탄 정부가 카라치에서 이슬라마바드로 수도를 옮기면서 이슬라마바드를 우리에 창원이나 분당처럼 계획도시로 만든 모양이다. 그래서 주소도 F구역 15번 거리 홈넘버 39 정도만 가지고 거의 모든 곳을 찾아갈 수 있는데 그러다보니 그전부터 제법 큰 도시였던 이슬라마바드 바로 옆의 도시인 라왈핀디는 그냥 교통의 요지로 두고 이슬라마바드는 행정과 주거를 담당하는 정도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뭐 말은 다른 도시지만 이 두 도시는 차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니 대략 같은 도시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여튼 라왈핀디에 내려 또다른 대우버스를 갈아타고 이슬라마바드로 향한다.


라왈핀디의 대우버스터미널

 

이슬라마바드에도 한국인 숙소가 하나 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배낭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 파키스탄에 잇는 한국인 회사나 비즈니스맨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숙소도 이슬라마바드의 고급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고 식당도 거의 호텔 수준이다. 물론 방값도 거의 한국 수준이다. 인터넷 어디선가 배낭 여행자에게는 약간의 할인이 된다고 해 미리 메일을 보내두었는데 답장을 받아보나 할인이 되기는 해도 그 역시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호르에서의 출혈이 채 가시지도 전에 다시 이곳을 찾은 이유는 그놈의 월드컵 때문이다. 예선전 3경기 중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을 보기 위해 굳이 한국 숙소를 찾아 온 것이다. 하지만 고급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 쾌적한 숙소에는 같이 월드컵을 볼만한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결국 달랑 둘이서 경기를 본다.

 

숙소 주인은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분인데 우리가 저녁을 먹으려고 앉아 있으니 밥한공기를 들고 와 같이 먹으며 두런두런 말을 건넨다. 파키스탄에 오자마자 그냥 시작한 숙소라고.. 이제 5년쯤 되었다고.. 아들이 친구처럼 키가 크다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친구가 숙소가 참 편하다고 했더니 그말이 가장 듣기 좋다며 진짜냐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알다시피 고급주택가에 있다보니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아 배낭여행객들에게는 할인을 해 준다 해도 비싼 걸 안다며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편해서 좋다며 장기여행자들 중에 며칠씩 묵어가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그냥 집같이 편하게 있다 가라신다. 아닌게 아니라 책장엔 한국책도 가득하고, 한국 음식에, TV, 에어컨에 며칠 확 묵고 가고 싶은 욕심도 생기지만 그럴 수야 없는 노릇이다. 쉬는 건 훈자에 가서 하기로 하고 결국 다음날 다시 길을 나선다.


파키스탄의 버스들, 심하게 화려하다.

 

다시 라왈핀디로 나가 길깃행 버스를 탄다. 길깃은 훈자에서 세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도시로 훈자로 가려면 이곳에서 내려 다시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대우버스는 대도시들 사이에서만 다니는 모양이다. 버스는 다시 인도 버스 비스름해져 있다. 3시에 출발한다던 차는 4시가 다 되도록 지붕위에 짐을 싣더니 4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출발한다. 게다가 에어컨 틀어 놨다고 커튼도 못 열게 한다. 살짝 커튼을 젖혀 창밖을 본다. 이 길이 그 유명한 카라코람 하이웨이다. 사실 리왈핀디에서 길깃까지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반이상을 달리게 되는 셈인데 버스가 주로 밤에 달리니 경치를 감상하기는 쉽지 않다. 저녁을 먹으라고 내려 준 식당에도 아침을 먹으라고 내려준 식당에도 도무지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 저녁은 빵으로, 아침은 그냥 음료수 한잔으로 때운다. 14시간 걸린다던 버스는 거의 20시간을 달려 다음날 정오쯤에 길깃에 도착한다. 상태가 말이 아니지만 바로 미니버스-말이 미니버스지 우리네 8인승 봉고를 20인승으로 개조한 거다-를 갈아타고 훈자 밸리의 한 마을인 카리마바드로 향한다.


훈자가는 길

 

훈자가 제법 유명한 여행자이니 거리만 봐도 내릴 수 있겠거니 여유를 부리고 있다가 친구가 내리라고 하는 소리에 정신이 든다. 그냥 마을 어귀인 거 같은데 여기가 우리가 갈려고 숙소인 올드 훈자인이 있는 곳이란다. .. 여기는 아닌거 같은데 하며 부랴부랴 따라내리니 올드 훈자인 간판이 보인다. 간판을 따라 들어가니 웬 할아버지한 분이 이리로 오란다. 올드 훈자인이냐니까 그렇단다. 따라가 보니 옆방에 한국인 부부도 묵고 있고 방도 나쁘지 않아 그냥 묵기로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는 올드 훈자인이 아니라 할아버지 집으로 유명한 하이데르인이다. 할아버지, 버스에서 내리는 모든 여행객들이 말하는 숙소는 죄 여기다 하며 데리고 오신단다^^ 결국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야 간신히 숙소에 도착한다.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한지 꼬박 하루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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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르> 첫날부터 삽질이다

암리차르에서 하루를 묵고 나서 곧장 인도 국경으로 향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서는 날마다 국기 하강식때 일종의 이벤트가 벌어진다고 하는데 이름하여 군사 연극이 그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한때는 한나라였지만 국민감정은 그리 좋지 않다. 이를 대변이라도 하듯 두나라 사이에 유일하게 열려 있는 이 국경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경비대들이 일종의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힘겨루기라고 해 직접 몸싸움을 하는 건 아니고 과장된 몸짓과 동작으로 국기 하강을 위해 움직이면 이를 보고 있는 관중들도 질세라 큰 소리로 함성을 질러 세를 과시하는 것으로 이걸 보기 위해 날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양쪽 국경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이 이벤트를 보기 위해 국경을 넘지 않는 외국관광객들도 찾아와 이 행사만 보고 돌아가기도 한다니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가 국경에 도착한 시간은 낮 2. 국기하강식을 보기 위해선 서너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다 무엇보다 그걸 보고 나면 이미 국경이 닫혀버려 국경마을에서 하루를 자던지 다시 암리차르로 돌아가야 한다. 뭐 그렇게 까지 해서 보고 싶은 건 아니니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국경에 도착해 음료수나 한잔 마시려고 가게에 앉으니 가게 주인이 맥주가 있단다.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가면 당분간 못 마실테니.. 해가며 남은 인도 루피를 털어 맥주를 마신다. -오마니 죄송합니다. 그렇게 술 조금만 마시라고 이르셨거늘.. 마침내 낮술까지^^-  마침 가게에서 군사 연극을 찍은 VCD를 보여 준다. 닭벼슬같은 모자를 쓴 인도 군인이 쿵쿵거리며 국기 근처로 가는 모습이 코메디를 연상시킨다. 아마 판매를 위해 틀어 놓은 모양이다. 친구가 그걸 하나 산다. 나한테도 하나 구워 주겠다는 데 내 노트북엔 CD롬이 없다. 결국 한국에 가서 받기로 하고 군사 연극을 못 보는 아쉬움을 달랜다. 이제 파키스탄으로 넘어갈 시간이다. 해는 여전히 머리 꼭대기에 있고 낮술에 정신은 해롱거리는데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은 뭐가 이리 긴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몇 번인가 여권 검사를 하고 두어장의 종이를 쓰고 나서 결국 낮술이 깰 때쯤에야 라호르행 버스를 탄다

 

라호르에 도착해선 삽질이 시작된다. 라호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게스트하우스인 리갈 인터넷인으로 가기로 하고 릭샤를 잡아탄 것 까지는 좋았는데 릭샤 아저씨 왈 그곳은 호텔이 아니란다. 그러고보니 론리에 있는 리갈 인터넷인이 숙소 편에 있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게 극장이었던가.. 마구 헷갈린다. 파키스탄부터는 사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들어온 데다 가이드북이라곤 <이스탄불 투 터키> 즉 별로 두껍지도 않은 책에 네팔, 인도, 파키스탄, 이란, 터키까지 다섯 나라나 들어있으나 정보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영어로 되어 있으니 눈에 쏙쏙 들어오지도 않고 하는 이유로 대충 도착한 게 화근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하루만 묵고 이슬라마바드 거쳐 훈자로 쏠려고 했으니 그냥 대우터미널로 방향을 돌린다. 어차피 터미널 근처면 숙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곳 파키스탄엔 대우버스가 있는데 가장 시설도 좋고 독자적인 터미널까지 있는 고급 버스이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터미널 근처엔 터미널 이층에 있는 비싼 호텔 달랑 한 개뿐이다. 그나마 ATM도 국내 카드밖에 되질 않아 한참을 은행을 찾아다니다 결국 포기하고 그냥 환전을 하고 만다. 친구와 터미널에 앉아 그냥 밤차로 이슬라마바드로 갈지, 좀 비싸지만 터미널 호텔에 그냥 묵을지 아니면 다시 싼 여행자 숙소를 찾아 다시 돌아갈지 의논을 해 본다. 이슬라마바드로 바로 가기엔 너무 피곤한데다 시간이 고작 다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으니 늦은 시간에 버스를 탄다 해도 새벽에 도착하게 되니 이동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호텔은 아무래도 너무 비싸고-둘이 삼만원 돈인데 이 나라에선 그게 왜 그리 비싸게 느껴지는지- 여행자 숙소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다. 게다가 어차피 내일 아침에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하는데 차비도 만만치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터미널 의자에 널부러져 있다가 내가 결단을 내린다. 근처의 싼 숙소를 찾아보자.

 

론리를 뒤지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스호스텔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으니 거기로 가기로 한다. 릭샤를 잡아타고 지도를 보여 주니 안다는 건지 모른다는 건지 애매한 표정이다. 일단 숙소가 있다는 거리인 후세인 쪼크까지 가기로 한다. 거기서부터 지도에 있는 길이라 추정되는 길을 아무리 헤매도 숙소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릭샤에서 내려 가방을 메고 이리저리 길을 묻는다. 삼십분 남짓 헤매다 결국 찾긴 했는데 이 숙소 없어진지 오래란다. 벌써 연립 주택 같은 것이 들어서 있다. 내가 가자고 했으니 화도 못 내겠고 그저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다. 나는 하릴없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고 친구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묻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친절한 파키스타니들은 인사에 여념이 없다. 하우 아 유? 표정 보면 모르겠냐.. 나 지금 심히 안 좋거든 하는 표정을 짓고 있어도 파인, 오케이 해가며 지들이 대답까지 한다. 몬살아^^그 와중에 한둘은 메이 아이 헬프 유? 하고 다가오긴 하는데 별 도움이 안된다. 결국 이러고 있어 봐야 시간만 흐르니 그냥 비싸더라도 터미널의 호텔에 가기로 하고 다시 릭샤를 탄다.

 

호텔에 짐을 푸니 날이 벌써 어두워져 있다. 거의 서너 시간을 숙소 잡으려고 삽질을 한 셈이다. 간신히 씻고 터미널 매점에서 파키스탄판 KFC를 사다가 숙소에서 대충 저녁을 때운다. 뭐 이런 날도 있지.. 하고 생각하려고 해도 괜히 친구보기도 미안하고 몸도 피곤하고 그러다보니 마음도 우울해져 괜히 파키스탄이 싫어질려고 한다. 게다가 파키스타니들.. 참 사람들에게 관심도 많다. 보는 사람마다. 핼로우에 하우 아 유인데 생각해 보라 하우 아 유에 대답이 얼마나 기냐 말이다. 파인 땡큐에 앤드 유까지 하면 이미 인사한 사람은 지나가고 없다 말이다^^. 게다가 결정적일 때 도움은 전혀 안된다니.. 군시렁군시렁.. 공연한 짜증이 결국 파키스탄을 지나 파키스타니들에게 까지 이어진다.

 

** 뭐 딩연하게도 사진찍을 여력은 전혀 없었으며 고로 사진도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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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차르> 그나마 다행이다

암리차르로 가는 버스에서 결국 문제가 생긴다. 다람살라에서 암리차르로 가기 위해선 중간도시인 빠탄곳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버스 지붕에 올려 둔 가방을 꺼내보니 친구의 배낭 어깨끈 부분이 예리한 칼로 반쯤 찢겨져 있고 허리벨트 부분이 전부 망가져 있다. 누군가가 중간에 버스 위로 올라 가 가방을 가져가려 한 모양인데 첨엔 다른 짐들 사이에 있으니 있는 힘껏 당겼을 테고 -허리벨트는 이때 망가진 게 아닌가 싶다. 다행히 허리벨트 부분은 버스 프레임에 묶여있었다- 그게 여의치 않자 어깨끈 부분을 잘라내려 한 모양이다. 여행 떠나기 전 간혹 가방이 통째로 없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트렁크에 넣든지 지붕 위에 올리든지 할 때는 버스 정차 시간에 꼭 가방의 이상 유무를 살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거의 10개월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잊고 있었는데 누가 인도 아니랄까봐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지 않던 일이 일어난다. 친구의 가방에는 카메라가 무려 세대나 들어 있었는데-그나마 한대는 들고 있었다는^^- 아마 가져갔다면 누군가는 팔자를 고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한 건 그 옆에 내 배낭도 있었는데 그건 건드리지도 않았다는 거다. 도둑들한테는 배낭속이 들여다보이는 모양이다^^

 

거의 40도가 남는 더위에 에어콘도 없는 만원버스를 타고 게다가 난도질 된 가방을 들고 암리차르에 들어서니 녹초가 된다. 황금사원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무료 숙소와 무료 급식을 하는 곳이 있다. 사실 여행자들을 위한 시설이라기보다 순례객들을 위한 시설인데 이 한켠에 여행자를 위한 시설도 함께 마련해 둔 것이다. 하지만 무료 시설이라는 게 보지 않아도 뻔하지 싶어 그냥 일반 숙소를 찾아간다. 론리 첫 줄을 장식하고 있는 숙소임에도 시설이 열악하기 그지 없다. 열악하면 가격이라도 싸면 좋으련만 심지어 가격까지 만만치 않다. 별 수 없이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간 식당은 게다가 채식 식당이다. 씨크교도들은 거의 채식주의자라 도시 전체에서 고기를 찾아보기가 싶지 않다고 한다. 에구 오래 머물 곳은 아니다 싶다. 다행히 식당은 에어컨도 나오는 것이 제법 깨끗하다.


황금사원 입구, 건물이 흰색이어서 누구는 데려다 준 릭샤왈라에게 여기가 아니라고 박박 우겼다는데.. 들어가면 황금색 사원이 있다.


이거다.

 

씨크교는 약 500년 전 구루 나닥이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에 불만을 품고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장점을 모아 만들었다는 종교인데 그러다 보니 이슬람과 힌두교 양쪽으로부터 받은 박해의 역사도 만만치 않다. 특히 1980년대에는 이곳 암리차르를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인도 정부는 황금 사원까지 탱크를 몰고 들어와 피의 진압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인도 전역에서 수천명의 시크교도들이 힌두교도들에게 테러를 당해 사망하기도 했다는데 어디서나 민족 문제와 종교 갈등은 분쟁의 씨앗인 모양이다. 씨크교도 남자는 머리에 터번을 쓰고 머리와 수염을 깍지 않기 때문에 외면적으로도 다른 힌두교도들과는 확 구별이 된다. 아니게 아니라 이 도시에는 거의 모든 남자들이 터번을 두르고 있다. 반면에 여자들의 복장은 다른 인도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씨크교도들만 물안에 들어갈 수 있다.

 

저녁을 먹고 황금 사원을 들러본다. 이곳은 씨크교도의 성지라 그런지 거의 새벽의 두어시간을 제외하고는 문을 닫지 않는다. 게다가 입장료도 없다^^제약이 있다면 반드시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들어가야 하는 건데 별 수 없이 친구와 사원 앞에서 싸구려 손수건을 하나씩 사서 쓴다. 70년대 장보러 나온 가정부 같은 모습이다. 사원 입구에 신발을 맡기고 흐르는 물에 발을 씻고서야 사원 안으로 들어선다. 이곳이 황금사원이라 불리는 이유는 중앙에 있는 사원의 지붕이 750kg이나 되는 금박으로 입혀져 있기 때문이라는데 그 주변이 물로 둘러싸여 있어 저녁 무렵에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사원 안은 성지를 찾은 씨크교도들과 그저 관광하러 온 인도 여행객들로 부산하다. 천천히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본다. 한켠에는 예의 무료급식소가 보이고 조금 더 들어가니 무료 숙소도 보인다. 게다가 사원 코너에서는 순례객과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마실 것을 나눠 주기도 한다. 씨크교도들이 인도 경제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더니 이를 통해 종교 확장과 사회 환원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황금사원의 야경


사원에서 만난 인도소녀와 함께 

 

결국 암리차르에서 하루를 머물고 인도의 국경 마을인 와가로 가는 버스를 탄다. 인도에서 한달을 머물렀지만 간 곳이라고 바라나시, 델리, 다람살라가 고작이다. 뭐 다른 사람들처럼 인도에 대한 이런저런 환상을 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 끝 무렵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님 나중에 다른 기회가 닿으면 천천히 다시 한 번 둘러보고 싶다. 인도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넓으니까.. 못 가본 곳이 많으니까.. 그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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