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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차르에서 하루를 묵고 나서 곧장 인도 국경으로 향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서는 날마다 국기 하강식때 일종의 이벤트가 벌어진다고 하는데 이름하여 군사 연극이 그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한때는 한나라였지만 국민감정은 그리 좋지 않다. 이를 대변이라도 하듯 두나라 사이에 유일하게 열려 있는 이 국경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경비대들이 일종의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힘겨루기라고 해 직접 몸싸움을 하는 건 아니고 과장된 몸짓과 동작으로 국기 하강을 위해 움직이면 이를 보고 있는 관중들도 질세라 큰 소리로 함성을 질러 세를 과시하는 것으로 이걸 보기 위해 날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양쪽 국경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이 이벤트를 보기 위해 국경을 넘지 않는 외국관광객들도 찾아와 이 행사만 보고 돌아가기도 한다니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가 국경에 도착한 시간은 낮 2시. 국기하강식을 보기 위해선 서너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다 무엇보다 그걸 보고 나면 이미 국경이 닫혀버려 국경마을에서 하루를 자던지 다시 암리차르로 돌아가야 한다. 뭐 그렇게 까지 해서 보고 싶은 건 아니니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국경에 도착해 음료수나 한잔 마시려고 가게에 앉으니 가게 주인이 맥주가 있단다.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가면 당분간 못 마실테니.. 해가며 남은 인도 루피를 털어 맥주를 마신다. -오마니 죄송합니다. 그렇게 술 조금만 마시라고 이르셨거늘.. 마침내 낮술까지^^- 마침 가게에서 군사 연극을 찍은 VCD를 보여 준다. 닭벼슬같은 모자를 쓴 인도 군인이 쿵쿵거리며 국기 근처로 가는 모습이 코메디를 연상시킨다. 아마 판매를 위해 틀어 놓은 모양이다. 친구가 그걸 하나 산다. 나한테도 하나 구워 주겠다는 데 내 노트북엔 CD롬이 없다. 결국 한국에 가서 받기로 하고 군사 연극을 못 보는 아쉬움을 달랜다. 이제 파키스탄으로 넘어갈 시간이다. 해는 여전히 머리 꼭대기에 있고 낮술에 정신은 해롱거리는데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은 뭐가 이리 긴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몇 번인가 여권 검사를 하고 두어장의 종이를 쓰고 나서 결국 낮술이 깰 때쯤에야 라호르행 버스를 탄다.
라호르에 도착해선 삽질이 시작된다. 라호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게스트하우스인 리갈 인터넷인으로 가기로 하고 릭샤를 잡아탄 것 까지는 좋았는데 릭샤 아저씨 왈 그곳은 호텔이 아니란다. 그러고보니 론리에 있는 리갈 인터넷인이 숙소 편에 있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게 극장이었던가.. 마구 헷갈린다. 파키스탄부터는 사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들어온 데다 가이드북이라곤 <이스탄불 투 터키> 즉 별로 두껍지도 않은 책에 네팔, 인도, 파키스탄, 이란, 터키까지 다섯 나라나 들어있으나 정보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영어로 되어 있으니 눈에 쏙쏙 들어오지도 않고 하는 이유로 대충 도착한 게 화근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하루만 묵고 이슬라마바드 거쳐 훈자로 쏠려고 했으니 그냥 대우터미널로 방향을 돌린다. 어차피 터미널 근처면 숙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곳 파키스탄엔 대우버스가 있는데 가장 시설도 좋고 독자적인 터미널까지 있는 고급 버스이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터미널 근처엔 터미널 이층에 있는 비싼 호텔 달랑 한 개뿐이다. 그나마 ATM도 국내 카드밖에 되질 않아 한참을 은행을 찾아다니다 결국 포기하고 그냥 환전을 하고 만다. 친구와 터미널에 앉아 그냥 밤차로 이슬라마바드로 갈지, 좀 비싸지만 터미널 호텔에 그냥 묵을지 아니면 다시 싼 여행자 숙소를 찾아 다시 돌아갈지 의논을 해 본다. 이슬라마바드로 바로 가기엔 너무 피곤한데다 시간이 고작 다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으니 늦은 시간에 버스를 탄다 해도 새벽에 도착하게 되니 이동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호텔은 아무래도 너무 비싸고-둘이 삼만원 돈인데 이 나라에선 그게 왜 그리 비싸게 느껴지는지- 여행자 숙소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다. 게다가 어차피 내일 아침에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하는데 차비도 만만치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터미널 의자에 널부러져 있다가 내가 결단을 내린다. 근처의 싼 숙소를 찾아보자.
론리를 뒤지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스호스텔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으니 거기로 가기로 한다. 릭샤를 잡아타고 지도를 보여 주니 안다는 건지 모른다는 건지 애매한 표정이다. 일단 숙소가 있다는 거리인 후세인 쪼크까지 가기로 한다. 거기서부터 지도에 있는 길이라 추정되는 길을 아무리 헤매도 숙소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릭샤에서 내려 가방을 메고 이리저리 길을 묻는다. 삼십분 남짓 헤매다 결국 찾긴 했는데 이 숙소 없어진지 오래란다. 벌써 연립 주택 같은 것이 들어서 있다. 내가 가자고 했으니 화도 못 내겠고 그저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다. 나는 하릴없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고 친구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묻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친절한 파키스타니들은 인사에 여념이 없다. 하우 아 유? 표정 보면 모르겠냐.. 나 지금 심히 안 좋거든 하는 표정을 짓고 있어도 파인, 오케이 해가며 지들이 대답까지 한다. 몬살아^^그 와중에 한둘은 메이 아이 헬프 유? 하고 다가오긴 하는데 별 도움이 안된다. 결국 이러고 있어 봐야 시간만 흐르니 그냥 비싸더라도 터미널의 호텔에 가기로 하고 다시 릭샤를 탄다.
호텔에 짐을 푸니 날이 벌써 어두워져 있다. 거의 서너 시간을 숙소 잡으려고 삽질을 한 셈이다. 간신히 씻고 터미널 매점에서 파키스탄판 KFC를 사다가 숙소에서 대충 저녁을 때운다. 뭐 이런 날도 있지.. 하고 생각하려고 해도 괜히 친구보기도 미안하고 몸도 피곤하고 그러다보니 마음도 우울해져 괜히 파키스탄이 싫어질려고 한다. 게다가 파키스타니들.. 참 사람들에게 관심도 많다. 보는 사람마다. 핼로우에 하우 아 유인데 생각해 보라 하우 아 유에 대답이 얼마나 기냐 말이다. 파인 땡큐에 앤드 유까지 하면 이미 인사한 사람은 지나가고 없다 말이다^^. 게다가 결정적일 때 도움은 전혀 안된다니.. 군시렁군시렁.. 공연한 짜증이 결국 파키스탄을 지나 파키스타니들에게 까지 이어진다.
** 뭐 딩연하게도 사진찍을 여력은 전혀 없었으며 고로 사진도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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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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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이라기 보다는 장기여행자의 페이소스가 느껴지는걸...부가 정보
j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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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왠 페이소스 씩이나.. 한국판 칠리소스나 먹었으면 좋겠소^^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