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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자> 일행과 헤어지다

훈자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엔 설사가 시작된다. 사실 물갈이성 배앓이 내지는 가벼운 설사 증세야 나라를 바꾸거나 뭐 좀 지저분한 곳에서 음식을 먹었다 싶으면 늘 조금씩은 있어 왔지만 이번엔 제대로다. 인도에서 설사로 고생하는 여행자들을 꽤 여럿 보기는 했지만 그간 큰 증세는 없었기에 이제 만성이 됐나 보다 했더니 그런 게 어디 있나.. 역시 예외는 없는 법이다. 원인은 물인가 싶은데-사실 훈자의 숙소에서는 뿌연 계곡물이 그대로 수도꼭지에서 나온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여튼 딱히 아픈 것도 아닌데 거의 한시간에 한두번 꼴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니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다 입맛도 없으니 그저 방안에 널부러져 있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혹시나 싶어 한국에서 가지고 온 정로환을 먹어봐도 별로 나아지는 기색이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꼬박 이틀을 앓고 나서야 설사가 멈춘다.

 

훈자는 파키스탄의 다른 지역보다는 한국인 여행자가 많은 편이다. 게다가 내가 묵고 있는숙소의 손님은 거의 일본인과 한국인이다. 이제 막 여름 방학이 시작된 탓인지 이삼일에 한번꼴로 한국 여행객들이 들어온다. 우리 옆방에 묵고 있는 부부는 이전에 묵고 있는 한국인들이 주고 갔다며 가스버너와 냄비, 양념 등을 갖추고 하루에 두 끼는 방에서 식사를 해 먹는다. -나머지 한끼는 숙소와 붙은 식당에서 뷔페 형식으로 차려진 저녁을 먹는다. 일종의 의무방어전 같은 건데 안 먹는다고 뭐라 그러지는 않지만 숙소비가 싼 대신 저녁 정도는 그 숙소에서 먹는 것이 관행인 듯 하다. 게다가 음식도 싸고 맛있다- 덕분에 슬쩍 끼어서 찌개며 밥, 라면 등을 끼니때마다 얻어먹는다. 이곳은 중국 국경과 가까워서 중국 라면이며 통조림 등이 들어와 있어 풀풀 날라가는 밥을 제외하면 제법 그럴 듯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이곳 식당 저녁 뷔페의 경우 한국인들을 위해 김치가 나오는데 이 김치는 주로 식당 주인의 부탁에 의해 묵고 있는 한국 손님들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이번에는 이 부부가 김치를 담궈 주고 얻어 온 김치가 있어 심지어 김치찌개를 얻어먹기도 한다.


숙소에서 본 훈자의 전경-


숙소에서 본 훈자의 전경-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하는 일 없이 하루가 간다. 옆집 부부가 떠나며 주고 간 식사도구 일체를 넘겨받아 밥 해 먹고 하루는 식당에 김치도 담궈 주고 그도 모자라 사람들과 함께 방에서 따로 김치를 담아 두고 먹는다. 오후에는 따가운 햇빛을 피해 그저 방에서 책이나 읽고 음악이나 들으며 뒹굴거리다 저녁에는 누군가가 새로 오거나 떠나거나를 핑계로 맥주나 한잔씩 하며 시간을 보낸다. -원래 파키스탄은 술을 팔지 않는 나라이지만 이곳 훈자에서는 가게에서 손쉽게 중국 맥주를 구할 수 있고 훈자워터라고 불리는 밀주를 숙소 식당에서 살 수도 있다. 값이 비싼 것이 흠이긴 하지만 그도 곧 익숙해진다^^- 마침 부부가 떠난 옆방에는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전직 사회복지과 공무원이었다는 여자 친구가 묵는다. 원월드티켓을 끊어 떠났으니 지금쯤은 남미에 있어야 하는 하는데.. 게다가 그전에는 일행이 같이 떠난 여자 친구였는데 어라 이번에는 남자친구다. 사연을 들어보니 같이 떠난 여자친구, 이집트에서 이집트 남자를 만나 9월에 결혼 예정이란다. 그래서 결국 혼자 여행을 계속하다가 지금의 일행을 만나 이 친구도 일정을 바꾸게 된 것이란다. 캄보디아에서 만났으니 거의 10개월 만에 본 셈인데 그사이 둘 다 제짝을 찾은 셈이다. 부러워라..

 

그러다 어느 날 두달 넘게 같이 다녔던 친구가 중국으로 떠난다. 원래 일정이 그렇기는 했지만 훈자에서 꽤 오래 머물 것처럼 보였는데 좀 갑작스럽다. 그래도 갈 사람은 가야 하는 법... 다음날 한국 친구들 몇 명과 근처에 있는 파수 방면으로 트레킹을 갔다가 친구는 국경 마을인 소스트로 가고 나는 다시 훈자로 돌아오기로 한다. 떠나기 전날 혼자 근처에 있는 울타르 빙하쪽을 다녀 온다길래 그런가보다 했더니 제법 어두워져서야 다리를 절며 나타나서는 길을 좀 헤맸다는데 인대가 상한 것 같다며 파수쪽 트레킹도 힘들겠다고 한다. 섭섭한 마음에서인지 공연히 짜증을 부리다 결국은 싸움이 된다. 떠나는 길에 싸우고 헤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럭저럭 수습은 했지만 개운치 않은 상태로 다음날 같이 버스를 타고 가다 나는 파수에서 내리고 친구는 소스트로 떠난다. 파수에서 후세이니 마을로 이어지는 서너시간의 트레킹 코스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여전히 세 시쯤이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소스트행 버스를 탄다. 결국 소스트에서 한번 더 얼굴을 보고 친구는 중국으로 나는 훈자로 돌아온다.

 


파수트레킹 도중 만난 마을


일명 서스펜션 브릿지, 생각보다 많이 무섭다^^

 

두달만에 혼자가 되어서인지 꼭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모든 일이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저 옆방의 친구와 수다나 떨며 지내다가 그 친구마저 떠나고 나서는 그저 방안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나마 목도리도 다 뜨고 나니 친구가 주고 간 이북이 유일한 위안이다. 그렇게 이삼일을 보내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또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을 따라 라카포시로 트레킹을 다녀온다. 훈자 근처에는 레이디 핑거, 라카포시 등 거의 8천미터에 육박하는 이름난 등정 코스들이 있는데 라카포시 트레킹은 그 라카포시봉의 베이스캠프가지 다녀오는 트레킹 코스로 중간에 설산의 눈이 녹아 만들어진 빙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원래는 제대로 간다면 라카포시봉 아래에 있는 미나핀 마을에서 하루, 중간 지점인 하파쿤에서 하루를 자고 디란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오는 2 3일 일정이지만 이 경우 텐트까지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일반적으로는 디란베이스캠프가 아니라 미나핀 마을에서 하루 거리인 라카포시 베이스캠프만 다녀온다고 한다. 그나마 우리는 그냥 지프를 대절해 아침 일찍 미나핀으로 떠나 라카포시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저녁에 다시 지프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아침 일찍 출발한 지프는 미나핀 마을에 있는 디란게스트하우스에 우리를 내려준다. 거기서 아침을 먹고 간단한 점심거리를 챙겨 출발한다. 라카포시 베이스캠프까지는 왕복 8시간 거리다. 저녁 6시에 다시 지프를 타고 돌아가기로 기사와 약속을 하고 가이드 없이 그냥 게스트북에 그려진 지도만 가지고 길을 떠난다. 계곡을 따라 두어 시간을 올라가니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마을에서 길을 물으니 꼬마 둘이 길안내를 해 준다. 두어 시간을 더 올라가니 멀리 라커포시봉과 그 아래 빙하가 보인다. 이제 한두 시간만 더 가면 되려니 했지만 꼬마 가이드 왈 4시간 남았단다.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그냥 따라가 본다. 어느 지점에서 저 등성이만 넘으면 베이스캠프라고 일러주곤 아이들은 다시 마을로 되돌아간다. 어느새 빙하는 발밑에 보이지만 저 등성이는 아득하기만 하다. 결국 시간이 오후 3시가 되어갈 무렵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아무리 내리막길이라도 온 시간을 생각하면 더 올라가는 것은 무리다. 결국 마을에 내려오니 저녁 7시가 훌쩍 넘어 있다. 꼬박 11시간 가까이 걷고도 베이스캠프는 구경도 못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꼬마들이 안내한 것은 라카포시 베이스캠프가 아니라 디란 베이스캠프였던 것이다. 1 2일 걸리는 거리를 당일로 다녀오려 했으니 도착을 못 한 것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가이드해 준 동네 아이들


> 앞에 보이는 것이 라카포시 봉이고 옆에 보이는 것이 미나핀 빙하다.

 

트레킹도 했으니 이제 슬슬 훈자를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또다른 일행을 만난다. 한국에서 포르투칼까지 자전거로 횡단하는 팀인데 숙소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이 중국에서 만난 이 팀을 훈자에서 다시 만났다며 같이 맥주나 한잔 하자고 해서 만나게 된다. 일행은 모두 4명인데 누가 봐도 자전거 아니라 뭐라도 타게 생긴 두 사람과 자전거라곤 동네 오락실에서 오락으로나 타 봤을 것 같은 두 사람이다. 전자의 두 사람은 사실 자전거가 전공이 아니라 산악인들인데 그 중 한 사람은 어느 등정에선가 크레바스에 빠진 후배의 자일을 차마 끊지 못해 10시간 넘게 잡고 있다가 동상으로 손가락 8개를 자른 분이다. -다행히 그 후배도 죽지 않고 살아났단다- 같이 숙소마당에서 백숙을 끓여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쉽게도 그분은 원래 중국까지만 같이 하기로 한터라 그날이 마지막 날이었고 또다른 산악인 청년은 허리디스크 때문에 훈자에서 중도 하차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동네 오락실 청년 둘이 이 여정을 이어가게 된 모양이다. 여튼 이 친구들이 며칠 훈자에서 쉰다며 잡는 바람에-게다가 훈자에 무슨 페스티발도 한다나- 내친김에 이삼일을 훈자에 더 머무른다. 사실 페스티발은 예상했던 대로 안 보는 게 나을 뻔 하긴 했다.


훈자페스티벌, 사람은 많이 모였는데 별 재미는 없었다는^^

 

결국 엉성한 동네 페스티발이 끝난 다음날 아침 일찍 두 사람이 자전거로 떠나고 나머지 사람들로 길깃으로 떠난다. 길깃까지 가서 나는 칼라시 밸리가 있는 치트랄로, 나머지 친구들은 스카루드로 떠날 예정이다. 자전거팀에서 하차한 친구의 자전거며 짐이 많아서 길깃까지는 지프를 대절해 함께 내려온다. 결국 거의 삼주를 훈자에서 뒹굴거리다 내려오는 셈이다. 아마 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훈자에서 한달을 머물렀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부터는 다시 혼자 움직여야 한다. 사실 여행 전체를 통틀어 보자면 혼자 움직인 기간이 훨씬 더 긴데도 어째 쉽사리 적응될 것 같지가 않다. 뭐 딱히 외로운 것도, 무서운 것도 아닌데 이 막막함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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