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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호텔을 나와 미리 예약해 놓은 대우 버스를 탄다. 아니 이제 삼미 버스인가.. 여튼 간만에 타보는 안락쾌적한 버스다. 에어콘은 기본에 비디오 청취용 핸드폰을 일일이 나눠주는 안내양 언니가 있는 전형적인 우리에 80년대 버스다. 게다가 샌드위치며 음료수까지 나눠 준다. 차이가 있다면 안내양 언니가 검은 머리 수건을 쓰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인도에서 찢어지는 스피커 소리에 아랑곳없이 틀어대던 음악과 사람들의 소음 속에 버스를 타다가 간만에 조용한 버스를 조금 이상한 느낌마저 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도 우리네 고속도로 비슷하다. 거의 8차선은 되어 보이는 도로가 일직선으로 뻗어있어 차가 도착하는 라왈핀디까지는 300km 정도가 된다는데 시간은 5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다만 창밖으로는 가끔 집들이 두어 채 보일 뿐 끝없는 황토빛 벌판만 계속된다.
차는 라왈핀디에 우리를 내려준다. 이슬라마바드에 간다더니 웬 라왈핀디냐고? 그게 말이지 파키스탄 정부가 카라치에서 이슬라마바드로 수도를 옮기면서 이슬라마바드를 우리에 창원이나 분당처럼 계획도시로 만든 모양이다. 그래서 주소도 F구역 15번 거리 홈넘버 39 정도만 가지고 거의 모든 곳을 찾아갈 수 있는데 그러다보니 그전부터 제법 큰 도시였던 이슬라마바드 바로 옆의 도시인 라왈핀디는 그냥 교통의 요지로 두고 이슬라마바드는 행정과 주거를 담당하는 정도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뭐 말은 다른 도시지만 이 두 도시는 차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니 대략 같은 도시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여튼 라왈핀디에 내려 또다른 대우버스를 갈아타고 이슬라마바드로 향한다.
라왈핀디의 대우버스터미널
이슬라마바드에도 한국인 숙소가 하나 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배낭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 파키스탄에 잇는 한국인 회사나 비즈니스맨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숙소도 이슬라마바드의 고급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고 식당도 거의 호텔 수준이다. 물론 방값도 거의 한국 수준이다. 인터넷 어디선가 배낭 여행자에게는 약간의 할인이 된다고 해 미리 메일을 보내두었는데 답장을 받아보나 할인이 되기는 해도 그 역시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호르에서의 출혈이 채 가시지도 전에 다시 이곳을 찾은 이유는 그놈의 월드컵 때문이다. 예선전 3경기 중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을 보기 위해 굳이 한국 숙소를 찾아 온 것이다. 하지만 고급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 쾌적한 숙소에는 같이 월드컵을 볼만한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결국 달랑 둘이서 경기를 본다.
숙소 주인은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분인데 우리가 저녁을 먹으려고 앉아 있으니 밥한공기를 들고 와 같이 먹으며 두런두런 말을 건넨다. 파키스탄에 오자마자 그냥 시작한 숙소라고.. 이제 5년쯤 되었다고.. 아들이 친구처럼 키가 크다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친구가 숙소가 참 편하다고 했더니 그말이 가장 듣기 좋다며 진짜냐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알다시피 고급주택가에 있다보니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아 배낭여행객들에게는 할인을 해 준다 해도 비싼 걸 안다며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편해서 좋다며 장기여행자들 중에 며칠씩 묵어가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그냥 집같이 편하게 있다 가라신다. 아닌게 아니라 책장엔 한국책도 가득하고, 한국 음식에, TV에, 에어컨에 며칠 확 묵고 가고 싶은 욕심도 생기지만 그럴 수야 없는 노릇이다. 쉬는 건 훈자에 가서 하기로 하고 결국 다음날 다시 길을 나선다.
파키스탄의 버스들, 심하게 화려하다.
다시 라왈핀디로 나가 길깃행 버스를 탄다. 길깃은 훈자에서 세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도시로 훈자로 가려면 이곳에서 내려 다시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대우버스는 대도시들 사이에서만 다니는 모양이다. 버스는 다시 인도 버스 비스름해져 있다. 3시에 출발한다던 차는 4시가 다 되도록 지붕위에 짐을 싣더니 4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출발한다. 게다가 에어컨 틀어 놨다고 커튼도 못 열게 한다. 살짝 커튼을 젖혀 창밖을 본다. 이 길이 그 유명한 카라코람 하이웨이다. 사실 리왈핀디에서 길깃까지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반이상을 달리게 되는 셈인데 버스가 주로 밤에 달리니 경치를 감상하기는 쉽지 않다. 저녁을 먹으라고 내려 준 식당에도 아침을 먹으라고 내려준 식당에도 도무지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 저녁은 빵으로, 아침은 그냥 음료수 한잔으로 때운다. 14시간 걸린다던 버스는 거의 20시간을 달려 다음날 정오쯤에 길깃에 도착한다. 상태가 말이 아니지만 바로 미니버스-말이 미니버스지 우리네 8인승 봉고를 20인승으로 개조한 거다-를 갈아타고 훈자 밸리의 한 마을인 카리마바드로 향한다.
훈자가는 길
훈자가 제법 유명한 여행자이니 거리만 봐도 내릴 수 있겠거니 여유를 부리고 있다가 친구가 내리라고 하는 소리에 정신이 든다. 그냥 마을 어귀인 거 같은데 여기가 우리가 갈려고 숙소인 올드 훈자인이 있는 곳이란다. 어.. 여기는 아닌거 같은데 하며 부랴부랴 따라내리니 올드 훈자인 간판이 보인다. 간판을 따라 들어가니 웬 할아버지한 분이 이리로 오란다. 올드 훈자인이냐니까 그렇단다. 따라가 보니 옆방에 한국인 부부도 묵고 있고 방도 나쁘지 않아 그냥 묵기로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는 올드 훈자인이 아니라 할아버지 집으로 유명한 하이데르인이다. 할아버지, 버스에서 내리는 모든 여행객들이 말하는 숙소는 죄 여기다 하며 데리고 오신단다^^ 결국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야 간신히 숙소에 도착한다.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한지 꼬박 하루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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