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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오> 드디어 감기몸살이다.

급기야 콧물에 재채기까지 전형적인 감기 증세가 옴 몸을 휘감는다. 그래 양수오에 가면 싱글룸을 잡아서 한 며칠 뒹굴거려야겠다며 마침 국경절이니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 할 거 차라리 잘 된 거라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양수오로 떠난다. 내가 기대한 양수오는 조금 번잡하기는 해도 제법 시골티가 나는 한적한 곳 일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스가 도착한 순간 나의 그러한 기대는 산.산.조.각. 난다. 이건 거리만 똑 따놓고 보면 카오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가장 안 중국적인 여행자 거리였던 것이다. 물론 배경은 확실히 중국 산수화인데 말이다. 사실 내가 여행자 거리를 싫어한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고 아직은 적당히 복잡한 여행자 거리가 맘이 더 편한 것도 사실인데 그냥 뒹굴거리기엔 생각보다 번다해 보인다는 거다.    


그래도 조금은 익숙한 거리의 느낌 때문일까, 마음은 편안해진다. 몇군데 숙소에 들어가 싱글룸을 알아보니 가격도 가격이지만 너무 어둡거나 너무 좁거나 맘에 드는 게 한 군데도 없다. 그래서 다시 나를 타이른다. 여긴 쉴만한 곳이 아니니 싱핑에 가서 그때 쉬자고.. 그때까지 아픈 거 잠시만 보류하자고.. 그리곤 익숙하게 다시 유스호스텔로 간다. 가격이 정말 착해진다, 하루에 20원. 한사나흘 머무르려던 계획을 바꿔 이틀만 있기로 한다. 리셉션에선 10월 1일에는 방이 연장이 안되니 반드시 체크 아웃을 해야 한다고 다짐을 둔다. 양수오에서 30km 쯤 떨어진 싱핑이란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 막상 방이 없으면 어쩌나 싶다가도 설마 나 하나 잘 데 없겠어 하며 걱정을 접는다.


시제(西街)


시제의 카페 , 카오산 저리 가라다.


주변을 이리저리 쏘다니다 도저히 몸상태가 영 엉망이라 그냥 숙소에 들어온다. 씻고 안마나 받은 뒤 약 먹고 일찍 자기로 한다. 일단 나가서 두 시간짜리 발과 바디 마시지를 받는다. 아 정말 좋다. 이렇게 하고도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이 안 된다. 딴 건 몰라도 마사지 받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까운데 자꾸 이래도 되나 맘이 불편해진다. 여행에 무슨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행을 잘하고 있나 하는 강박도 참 버리기 힘든 병이지 싶다. 숙소로 돌아와 처음으로 사온 감기약을 먹는다. 우리나라 감기약이야 또 수면제가 다량 함유되어 있지 않은가? 양수오에 와서 초저녁부터 잠만 자고 있는 나를 도미토리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며 신기한 듯 쳐다본다.


담날 일어나니 온 몸이 개운했다..라면 얼마나 좋을까? 뭐 현실은 바램과 달리 그냥 견딜만한 정도였다. 양수오에 도착하면서 만난 수십명의 삐끼 아주머니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냥 자전거나 타기로 한다. 동굴 투어는 사진 보니 중간 중간 기어가기도 하고 머드천 같은데서 진흙 범벅이 되기도 하던데 그거 라오스에서 다해본데다 혼자 얼마나 뻘쭘할 것이냐.. 누구 머드 묻힐 사람도 없고.. 그래서 포기. 배는 싱핑에서 탈 거니까 두 번 탈 필요는 없지.. 또 포기. 그래서 자전거만 타기로 한다.. 이번에는 제법 큰 자전거다. 발이 간신히 닿는다. 양수오에서 한 시간쯤 걸린다는 월양산을 목적지로 잡고 왕복 두 시간, 산에 올라가는데 한 시간, 그럼 오후에는 뭐하지 하면서 페달을 밟는다. 


월양산 가는길


월양산 가는길2

 

월양산에는 아직도 칼을 든 강도가 출몰하니 절대 일행과 떨어지지 말라는 경고가 론리에 나와 있다. 헉 그냥 강도도 아니고 칼을 든 강도라니 좀 아니 많이 무섭다. 그래도 그렇지 입장료도 받는 곳에서 것도 대낮에 강도가 출몰한다는데 대체 공안은 뭐하고 있단 말인가. 아마 가이드북 쓸 당시에 그런 일이 한 건쯤 있었겠지 하면서도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참 혼자 가지는 못하고 같이 올라갈 만한 사람을 기다려본다. 이 사람 많은 중국에서, 게다가 이 유명한 관광지인 양수오에서, 심지어는 내일부터 지들의 2대 명절인 국경절인데, 어찌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이다지도 없단 말인가. 십 여분을 기다리다가 그냥 혼자서 올라간다. 어째 내려오는 사람도 없는지 어디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흠칫 놀란다. 결국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어 혼자 정상까지 간다. 근데 무서우니까 힘을 확실히 덜 드는 것 같다. 숨차는 줄도 모르고 오르다가 정신차려보니 정상이다. 근데 이건 또 뭔 조화속인지 밑에서 그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사람들이 정상에 있으니 속속 들이닥친다.


월양산. 달모양의 구명이 있어 월양산라고 불린단다.


 

월양산에서 바라본 전경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론리에서 하루쯤 일정을 잡고 떠나라고 했던 위룽허로 가는 비포장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저기나 갈까.. 잠시 망설이다 그 길에 들어선다. 한 100m 쯤 비포장도로를 가니 더 이상은 갈 수 없다고 이쯤에서 자전거를 돌려 나가야 한다고 머리는 말하는데 다리는 계속 페달을 밟고 있다. 자전거만 타면 무슨 춤추는 분홍신을 신은 여자애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달리게 된다. 뭐 다행히 해가 질 무렵 쯤 되면 멈추기는 한다^^한구비를 돌아 달리면 달릴수록 그림 같은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제 돌아 나갈 수도 없을 만큼 들어왔는데 바람 한점 그늘 하나가 없다. 그저 땡볕에 비포장도로를 묵묵히 달리는 수 밖에.. 가끔 내려 담배 한대피면서 어디를 둘러봐도 달력그림 같은 마을에서 그냥 한참씩 쉬었다 간다. 오후 내내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달렸더니 아직도 엉덩이가 얼얼하다.


달력6월

 


달력7월


달력8월


그러다 마을을 만난다. 도시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이며 지나는 집들 언저리로 보이는 남루한 살림살이들도 정겹다. 그러나 마을엔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개도 산다. 송아지만한 개들이 그냥 돌아다닌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대개는 못 본 척 지나치면 되는데 어느 마을에선가 집안에서 맹렬히 짖으며 뛰어나오는 개 두 마리와 부딪힌다. 엄마, 아부지, 하느님, 부처님 순식간에 별 생각이 다 난다. 다행히도 대문 앞에 멈춰 서서 더는 나오지는 않는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담부턴 마을만 나오면 긴장이 된다. 차라리 그냥 논길을 가는 게 마음이 더 편해진다.


결국 어스름이 되서야 양수오로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멍이 아니라 화상이다. 화이트닝은 커녕 피부가 화끈거려 이삼일 지나면 벗겨질 판이다. 어쩌자고 그 땡볕을 대책도 없이 달렸단 말인가? 오이라도 하나 사서 붙여볼까 하다가 도미토리 꼴불견 10위안에 들어갈까봐 참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굶었고 가이드북에서 봐둔 피쥬위라는 요리를 먹기로 한다. 양수오에 있는 리강이라는 강에서 잡은 민물고기에다 맥주를 먹였다나 아님 맥주에 담궜다나 하는 요린데 반을 남기더라도 이건 먹어야지 하면서 식당으로 들어선다. 론리의 영향은 대단해서 메뉴보고 고민할 것도 없이 맨 앞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이거주세요 밥이랑 맥주랑.. 좀 기다리니 요리가 쟁반에 나온다. 이걸 다 먹으라고? 물론 다 먹었다^^


 피쥬위.. 맛있겠지?


너무 심하게 달린 탓이지 감기도 다 나은 듯싶다. 이리되면 싱핑에서 쉴 핑계가 하나 사라지는 셈인데.. 하면서도 살짝 앓고 지나가 준 감기가 고맙다. 낼은 싱핑으로 간다. 정말 뒹굴뒹굴의 세월이 올지 그 뒹굴뒹굴을 내가 견딜 수 있을 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여기보다는 조용한 곳이겠지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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