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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페트라에서 길을 잃다

이스라엘에서 돌아온 우리는 암만을 그냥 지나쳐 바로 페트라로 향한다. 이제 바이람도 끝났으련만 암만에서 하루를 더 묵고 싶은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는다. 요르단은 그리 크지 않은 나라라 어두워질 무렵 페트라가 있는 마을, 와디무사에 도착한다. 와디무사 역시 페트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보고 사는 마을일 뿐 마을은 별로 볼 것도 없고 인심이 좋지도 않는 소문인데 그나마 게스트북을 읽고 나니 더욱 정이 가길 않는다, 게스트북의 내용이라야 온통 어느 가게는 바가지고 어느 호텔은 어떻게 사기를 치고 하는 내용뿐이다. 어차피 페트라를 보려고 온 마을이니 페트라만 보고 떠나면 그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원래 계획은 그랬다. 페트라의 입장료가 좀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학생할인 된다니 이일권을 끊자. 그리고 나서 오늘은 저녁 늦게 도착했으니 다음날은 마을이나 어슬렁거리다 오후쯤 표를 끊어 페트라에 들어가자. 첫날은 분위기나 살펴보고 어디 한갓진 데 앉아서 일몰이나 보고 나와 그 다음날 나머지 부분을 천천히 둘러보자 뭐 이랬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오후가 되어서 매표소에 도착하니 학생할인제도는 한시적인 거라 지금은 시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일권의 가격도 21디나르 거의 3만원이 넘는 가격이다. 바로 계획이 수정된다. 일몰 보자고 만오천원이나 되는 돈을 더 낼 수는 없다. 결국 다음날 다시 오기로 하고 그냥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에서는 페트라의 배경이 되었다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틀어준다. 언젠가 TV에서 본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다시 보니 이 영화, 배우고 특수효과고 할 것없이 촌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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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무사의 야경

 

다음날 비록 빵나부랭이이긴 하나 점심까지 싸들고 일찌감치 페트라로 향한다. 간만에 맘을 단단히 먹고 나선 길이다. 비록 하루지만 구석구석까지 살펴보리라 맘먹고 매표소에서 나눠준 지도룰 살펴보며 동선까지 짜본다. 음 이렇게 저렇게 다니면 되겠군.. 입구에 들어서 바위로 둘러싸인 좁은 협곡을 지나 그 유명한 신전이 협곡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뭐 굉장한 장면이라도 숨겨져 있을 것 같았으나 보이는 모습은 더도 덜도 아닌 딱 사진에서 본 그대로다. 그럼그렇지 하면서도 드디어 패트라에 오긴 온 모양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협곡을 지나자마자 보이는 검붉은 바위산들로 둘러싸인 페트라는 상상했던 것만큼 넓어보이진 않는다. 첫 번째 포인트인 왕들의 암굴 무덤을 둘러보고 두 번째 포인트인 수도원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페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뒤로 보이는 것이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그 신전이다

 

그저 수도원까지 가는 길이 좀 가파르다는 거 정도였을까.. 하지만 한시간 가량 올라가는 정도니 그리 힘들 것도 없다. 수도원을 돌아보고 다시 되짚어 내려오니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다. 싸가지고 온 빵을 나눠 먹고 나도 아직 두시가 채 안된 시간이다. 세 번째 포인트는 일몰 지점이라는 데 너무 빨리 가도 기다려야 하니 뒤쪽 길로 슬슬 돌아기보자고 제안한 건 나다. 일행들도 페트라가 생각보다 작다고 느꼈는지 순순히 동의를 해 준다. 일단 돌아가는 길이라고 짐작되는 길로 들어서자마자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길은 이어져 있으니 어디로든 닿겠지... 세 번째 포인트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향해 슬슬 걸어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산책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여기는 입장료 내고 들어온 울타리 있는 관광지니 길은 어디로든 통할 거리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시간쯤 시간이 흐르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페트라, 붉은 바위산 곳곳에 왕의 무덤과 신전들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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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따라 한시간쯤 걸으면 수도원이 나타난다

 

아무리 가도 세 번째 포인트로 짐작되는 곳은 나오지 않고 사방은 온통 바위산이다. 시간은 막 네시를 지나고 있으니 한시간 반쯤 지나면 해가 질 시간이다. 가장 현명한 벙법은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는 것이지만 이미 두시간이나 걸어온 우리는 나가는 시간이 엇비슷하게 걸리는 길을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길을 물어볼 만한 사람은 하나도 보이질 않고 우리 일행은 다시 아마 이쪽일거라고 생각되는 지점으로 방향을 잡아 협곡 사이를 계속해서 걸어간다. 협곡의 끝에는 뭐라도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가 되돌리는 발길을 잡은 셈이다. 협곡은 계속 깊어지더니 마침내 몇 개의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바위를 넘는다. 저기 보이는 끝지점까지 가면 큰 길이 나올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하지만 우리가 끝지점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커다란 바위로 가로막혀 있다. 도저히 넘어갈 수도 없지만 넘어본들 그곳에 길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이제 조금 있으면 해가 떨어질 시각이다. 벌써 해는 저녁 특유의 황금빛을 뿌리고 있다. 다들 말을 안 하지만 긴장된 표정이다. 결국 어두워지더라도 아는 길로 가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지금은 다섯 시가 넘었으니 돌아간다면 세 시간 남짓, 어두워지더라도 아는 길이니 헤맬 염려는 없고 여덟시까지 처음 지점으로 돌아가면 아홉시까지는 매표소를 나갈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온 길을 되짚어 나간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느새 주위는 캄캄해지고 되짚어 가는 길이라도 이곳인지 저곳인지 길들이 헷갈리기 시작한다. 다행이라면 그마나 달빛이 좀 있다는 정도일까.. 모두들 말없이 걷기만 한다, 한참을 정신없이 걸어나오다 보니 멀리 큰길이 보인다. 차가 다니는 길이니 아마 매표소로 연결된 길일 것이다.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시계를 보니 7시다., 세 시간에 들어간 길을 두 시간만에 되짚어 나온 셈이다.

 

큰길을 따라 걸으니 익숙한 길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매표소까지는 한 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다. 결국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여덟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나 오전에 패트라를 돌아본 시간을 제외하고도 거의 6시간을 쉬지 않고 걸은 셈이다. 이렇게 매표소까지 버젓이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버라다니.. 그것도 일헹이 넷이나 되면서.. 좀 황당한 생각은 들었지만 그나마 노숙 신세를 면한 개 어디냐 싶다, 다들 매표소를 나오고서야 한마디씩 한다. 입 밖에는 내지는 않았지만 다들 최악의 경우 하루밤 잘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나 역시 이런 날씨라면 춥긴 하겠지만 얼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부터, 물은 얼마나 남았나 그래도 라이타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지나갔으니 말이다. 그때는 노숙 안하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이었는데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대체 페트라에게 길 잃어버린 띨띨한 인간들이 우리 말고 또 있었을까.. 아무래도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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