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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즈 워드의 복수

 

하인즈 워드 열풍이 일고 있다. 워드 덕(?)에 정치권은 혼혈인 차별을 금지하고 복지를 증진하는 법을 만들겠다 한다. 교육부도 다문화, 다인종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한다. 모든 언론이 워드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경복궁에서 신발 벗고 마루에 올라간 일까지 보도한다. 이 난리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워드 열풍도 곧 식을 것이다. 그러나 워드는, 열풍을 일으킨 다른 스포츠 스타와 달리 한국사회의 웃기는 작태를 가장 잘, 그리고 가장 한국사회다운 방식으로 드러내 준다.

 

 

워드의 어머니인 김영희씨는 펄벅재단 방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단다.

"한국 사람 안 쳐다보고, 생각 안 하고 살아온 30년이었어. 내가 워드 데리고 한국 왔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 놈 거지밖에 안 됐겠지? 여기선 누가 파출부라도 시켜줬을까?… 이제 와서 우리 워드가 유명해지니 관심을 참 많이 가져준다. 좀 그래. 부담스럽지 뭐. 세상 사는 게 다 그런거 아니겠어?"

김영희씨의 말이 있는 그대로의 한국사회의 진실이다. 김영희씨가 하인즈를 혼자 키우게 되었을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면, 하인즈는 지금 이 땅에서 차별받는 여느 혼혈인과 마찬가지로 하류 국민에도 끼지 못한 채 검둥이 소리나 해대는 사장 밑에서 세상의 온갖 불평불만을 안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 초등학교나 졸업했을까?

 

한국사회는 하인즈 워드에게 성공을 위한 경쟁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뻔한 사실이 아닌가. 그랬을 한국사회가 경쟁을 허락한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워드에게 '한국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성공하지 못한 혼혈인은 한국인이 아님을 확인해 주었다.

 

 

이 점은 김영희씨 뿐만 아니라 워드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워드도 한국사회의 추한 모습을 스타다운 여유와 자신감으로 지적하고 있다.

“혼혈인으로 태어난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창피한 것은 혼혈이 아니라 혼혈을 차별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부끄러운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랑스럽다”

정말 자랑스러울까? 슈퍼볼 MVP 이상의 관심과 환대를 보내주는 한국사회가 앞으로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거라서? 그럴수도 있다. 그래나 이건 나중 일인대다가 비지니스는 비지니스니까 상관할 바는 아니다.

 

한국인 이민 사회의 차별, 자신이 의지하는 유일한 가족 어머니의 고통, 부끄러운 자신을 딛고 성공한 워드는, "해 준 게 뭐 있다고 이제와서 지랄이야!"가 아니라, 열광하는 한국사회, 자기를 이용하고 싶어하는 언론과 정치권 등등 앞에서 "자랑스럽다!"는 말로 의연하게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니네가 차별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르지!' 하면서. 무시하는 넘들에게 성공해서 복수하리.

 

 

재미있는 건 이 화려한 복수에 한국사회, 한국의 언론과 정치권의 태도는, '당했다. 쪽팔린다'가 아니다. 이들에게도 여유가 있다. 기회는 찬스다. 적당한 반성의 제스처로 자기 장사에 몰두하고 있다. 이 또한 한국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이 또한 놀랍다. 사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놀란다.

 

정치권의 혼혈인 차별금지법이나 복지증진법이니 따위가 잘 추진될까? 그거 적당히 만들고 말거다. 어쩌면 정치적 이용을 위해 한 2년 국회에서 뱅뱅 돌릴지도 모른다. 아마 이 법 추진이 반가운 사람들과 이들의 이해를 위해 싸우는 각종 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까지 학교에서 적응 못하고 상처만 깊어가는 혼혈아이들을 위한 실질적 조치도 방기했던 한국의 정부와 정치권, 언론이 주둥아리 놀리는 거 말고 뭘 더 하겠는가. 그리고, 혼혈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차별금지법이나 복지증진법을 제정한다고 한들, 이 법들은 지속적으로 '혼혈인'이라는 하류 한국민의 딱지를 붙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도 차별 해소에 대한 국가의 정책이 제대로 진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혼혈인, 나아가 타인종에 대한 시각이 조금씩 열리기는 할 것이다. 하인즈 워드의 성공과 복수가 계기가 됨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작은 변화가 하인즈 워드에서 시작했다고 봐서는 안된다. 한국사회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인종주의에 대한 싸움은 오랜동안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싸움과 함께 한국의 지배계급 또한 단일민족-단일국가 이데올로기가 앞으로 그들의 지배를 위협하리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저임금으로 착취한다 하더라도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바로 이민이고, 이민이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타인종과 혼혈인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배려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인즈 워드의 '금의환향'(한국은 워드의 고향이 아니다!)은 그 자신과 어머니에게는 명예롭고 통쾌한 복수이고,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에게는 장삿거리고, 인종차별이 불쾌했던 자들에게는 민망함이다. 그렇다면 인종차별에 분노하고 투쟁했던 자들에게는 무엇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