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메의 거울
라벨, 모음곡 <겨울> 중 제4곡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
실제 연주자는 노하라 미도리
주말 이틀을 모두 쉰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주말에 하루 이상 출근하는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된다(심지어 지난 주엔 금요일까지 업무를 모두 끝내겠다 싶었는데... 엄마 수술 때문에 하루 결근하고, 토요일까지 일했다). 어제도 거의 밤 12시가 되어 퇴근. 후배 진군이 맡은 신자유주의에 관한 논문집 마감인데... 눈문 30편이 모여 있으니... 어찌나 챙길 게 많은지... 목욜쯤인가 벌써 지쳐 Y군에게 "신자유주의가 나를 잡는다"고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러니... 주어진 조건에 대한 수용성, 내 업무 전반에 대한 조직력, 스스로 휴식시간을 확보하는 능력까지... 신체적인 힘듦(은 작년 상반기보다 낫다)보다는 상황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새벽에 끙끙거리고 일어났다 새벽 시간 케이블에서 틀어준 에로영화 좀 보면서 아몬드 두 줌 씹어 먹고, 다시 꿈나라행. 10시쯤 아버지한테 전화가 와서 겨우 일어나 라면 하나 끓여먹고, 사과 반 개 먹고, 11시 반쯤 나갈 준비는 끝났는데... 괜히 틀어놓은 TV에서 <노다메 칸타빌레 인 유럽>을 틀어준다. 그것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2부다. 얼마 전에야 인터넷으로 본 19권에서도 오클레르 교수의 끝없는 요구에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노다메가 고민을 하지만... 드라마 속에선 유학 생활 초기라 향수병과 치아키 센빠이의 부재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닫느라 노다메는 한참 폐인이 된다. 뭐 그래도 계속 파고 들어서... 그럭저럭 감이 올 때까지 피아노를 붙들고 있다가...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루아르에서의 연주회. 주요 레파토리인 모차르트가 끝난 후에, 라벨의 <거울: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를 연주한다. 거울이 반사되듯이, 그렇게 강한 느낌으로 연주했다면서.
금욜에 만난 조광제 샘이 매체철학 이야기를 꺼내셔서는... 데카르트의 성찰은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 확산된 거울 이후의 인식론 변화를 반영한다고 하셨다. [뭐 내가 데카르트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이 연주는 노다메의 자기 성찰 이후의 단단해진, 그래서 하나의 거울면을 이룬 내면에서 되쏜 음악에 대한 감응의 빛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금 조금 든다. 노다메한테 참 힘을 많이 받는다. 백수 시절에도, 이직해서 적응 못하고 헤맬 때도, 적응 끝나 일 많아진 다음에도. 오늘도 덕분에 회사 가서 차분히 원고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도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서 내 거울을 다시 닦으면... 좋겠지?
(참, 이 글은 낭만적 편집자의 푸념이 아니다. 출판노동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선택 역시 불가피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전에 잡지사에서 교정보는 일을 했었는데 선배가 말하기를 3년 정도 되면 대각선으로 한번만 쫙 훑어도 오탈자가 툭툭 튀어나온대요. 정말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