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감도

분류없음 2016/01/03 16:07

 

제목: 폭력의 민감도 

 

 

아무래도 하는 일이 경찰과 빈번히 접촉하는 일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들 (service users) 이 형법을 위반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 일상적으로 혹은 비상 상황을 겪을 때마다 폭력이란 무엇인지 되새김질하게 된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하고 지나쳤을 상황들이 지금 나의 조건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이 태반이다. 쟤는 술을 마셨으니까, 쟤는 원래 그런 나라에서 이민왔으니까, 쟤는 원래 좋은 집안 출신이니까, 쟤는 고등교육을 받고 박사학위까지 있으니까, 쟤는 우리 매니저가 데려온 클라이언트니까... 사람의 행위와 회사의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닌 백그라운드로 그 당사자를 판단하는 일, 그래서 그 사람의 잘못이 잘못 아닌 것으로 되는 일. 그런 갈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원칙으로 회귀한다. 나는 그렇게 지루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편으론, 폭력의 체감도, 민감도가 높은 사람과 시프트 파트너가 되어 일할 때,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일할 때 피로도도 덩달아 높거나 낮다. 가령 폭력의 기준이 상당히 얼척없는 나라에서 이민온 사람과 일할 때는 클라이언트들이 욕을 하고 뭔가를 집어던져도 별 것 아닌 것으로 된다. 그럴 땐 폭력을 저지른 당사자보다 시프트 파트너를 설득하는 일이 더 힘들다. 이게 왜 폭력인지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 자기는 전혀 위협을 못 느꼈다고 하면 - 공감능력이 제로인 이 남자들에게 혹은 여자들에게 - 일일이 설명하고 호소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위협을 느꼈는지 알아, 그럼 그 가운데 일부는 말한다. 알았어 그럼 니가 경찰 불러.

 

반면 폭력의 체감도, 민감도가 높은 사람과 시프트 파트너가 되어 일하면, 오히려 내가 설득의 대상이 된다. 꽃개야, 우리는 이걸 용인하면 안돼. 바로 경찰을 부르고 도움을 요청하자. 껄쩍찌근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시프트 파트너는 자기 감정을 털어놓는다. 이 국면에서 나는 깨닫는다. 아, 이이가, 이 양반이 힘들었구나. 알았어. 그래. 내가 부를께. 911 다이얼을 돌리면서 후회하거나 깨우침을 얻는다. 아 이건 폭력이야. 맞아맞아. 나는 왜 이걸 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했을까.

 

 

 

최근 들어 살이 많이 빠져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 나라에 온 뒤 살이 빠졌네, 살이 쪘네... 나의 면전에서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오직 한국인밖에 없었다. 한국을 떠난 지 십 년이 넘었든, 이십 년이 넘었든 상관없었다. 심지어 나는 그들과 친한 관계가 전혀 아니었다. 인사치레로 말하는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해줘야 하나. 타인의 외모에 대해서, 특히 바디쉐이프 (body shape) 에 대해서 상대의 동의없이 묘사하는 건 실례입니다. 말해주면 알까. 알면 다행이겠지만 알 턱이 있...을까? 그들은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왜냐면 옛날에 내가 그랬으니까. 뭐야 너, 생리 중이냐? 발기부전이야? 삐쩍 꼴아서 삐쩍 꼴았다고 하는데 뭐가 문제야.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다. 깨달음의 연속이다. 

 

 

 

 

 

2016/01/03 16:07 2016/01/0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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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깼다

분류없음 2015/12/23 22:57

 

 

 

두 명의 클라이언트끼리 언쟁이 붙는 사고가 있었다. 서로 욕을 하고 싸우다가 그 중 한 명 (A)이 사무실로 와서 "저 인간은 미쳤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라며 자신을 변호했다. 당연히 나머지 한 명 (B)도 사무실로 와서 "나는 당장 경찰을 부를거야" 라고 소리를 지른다. 졸지에 성난 둘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 둘은 나를 사이에 두고 또 싸우기 시작. "너네 당장 니들 방으로 가. 안 그러면 둘 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할 거야. 경찰 부르는 거는 니네들 권리니까 니들이 알아서 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계속 언성을 높이며 싸우던 둘. 그러다가  B가 A를 팔꿈치로 살짝 밀쳤다. 상당히 은연 중에 발생한 일이고 '한국적' 가치관으로 보자면 '폭력' 축에도 못 미치는 일이지만 먼저 상대에게 손을 댄 사람은 B다. 상황이며 이유 불문하고 이럴 땐 당연히 B가 문제로 된다. A가 부른 경찰이 왔고 경찰은 그들, 그리고 나를 따로따로 인터뷰 했다. 나는 내가 본대로 진술했다. 어찌저찌하여 상황 종료. 말싸움이야 그렇다치고 무조건 먼저 상대방의 몸에 손을 대면 '지는 거다'. 간혹 한국인을 비롯해 이민온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떠나온 나라에서 하던 습관대로 상대를 때리거나 밀치거나 을르다가 철창행 신세를 지는 사람들 (대다수는 남성이다) 을 본다. 얄짤없다. 아무리 억울해도 먼저 때리거나 밀치거나 '죽여버린다' 따위의 말을 하면 경찰은 그 사람에게 수갑을 채운다 (uttering threats charge; death threats charge; assault charge). 혹시라도 캐나다 이민이나 단기체류를 고려하는 남성분들은 명심하시길 바란다. 특히 부부나 사실혼 (common-law)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은 가정폭력 (domestic assault charge) 이 되고 가정폭력은 나중에 판결을 받아도 가중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으니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가령 집행유예 (Probation) 를 받아도 보통 폭력이 1년이라면 가정폭력은 2년, 3년을 받는다. 보석 (Bail) 으로 나와도 줄줄줄 서류 한 장 가득 조건을 달고 나올 수 있다. 한국에서 하던 식으로, 자기 나라에서 하던 식으로 여자를 때리거나 상대를 협박하면 '진다'. 이 나라 경찰, 검찰은 술 마셨다고, 나중에 의사가 될 거라고 봐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나라에 오실 남성분들, 이것만 명심하고 살아도 경찰신세질 일이 거의 없다. 억울할 일도 없다. 싸우실 땐 양손을 팔짱 끼고 싸우면 된다. '죽여버린다'는 말 대신에 '폭풍방귀를 뀌어버리겠어' 라고 말하는 건 어떨까. 어찌되었든  "먼저 손대거나 협박하면 진다." 이게 이 나라의, 이 나라 사람들의 메뉴얼이다.  

 

 

언젠가 이 나라에 이민오신 지 십여 년 된 한 분께서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충 "한국사람들은 개개인은 참 똑똑하고 뛰어난데 모아놓으면 엉망진창이고 캐나다 사람은 개개인은 참 별로고 느려터진 데다가 해결능력도 떨어지는데 시스템으로 따지면 한국이 절대 따라갈 수 없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지난 번에 강아지가 지하철 선로에서 구출된 사례를 봐도 그렇고 이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아주 잘 안다. 지하철 선로에 강아지가 드러누워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가령 한국이었다면 의로운 개인 (용감한 시민)이 나서서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거나 역무원을 다그쳐 강아지를 구출하라고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지하철 안와서 나 늦으면 니네가 책임질거야?! 시민들의 호통과 성화가 들불처럼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역무원들도 지하철 운행 중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119와 수의사를 부르고 역장은 운행 중단 결정을 내려 종합사령실에 보고를 하여 시민들의 협조를 안내하는 그런 상황을 기대하기가 참으로 요원하다. 메뉴얼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비상 메뉴얼이 있어도, 분기에 한 번씩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훈련 (예. 예비군 훈련)을 해도 그 비상 메뉴얼이 비상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세월호 사건만 봐도 그렇다. 십오 분 안에 충분히 탈출할 수 있는 비상메뉴얼이 있었다. 있었을 것이다. 버스, 기차, 선박 등 여객운수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당장 그 이상징후를 해결할 '판단'을 해야 한다. "그래서, 다 내리라고 했는데 아무 이상 없으면 네가 책임질거야? 손해를 네가 책임질 거냐고!" 책임은 그렇게 소리치는 그 사람이, 혹은 그 관리자가 져야 한다. 역할 분담과, 책임 분장이 치밀하지 않으면 일반 시민, 개개인은 스스로 나서서 자기를 지키려고 애쓴다. 혼란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무너진 시스템은 바로 그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무너진다. 확인사살이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은 과연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무너진 시스템, 작동하지 않는 메뉴얼, 용감한 시민 (예. 의인 김동수 씨) 이 나서거나 개인이 나서서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답이 없는 그런 엉망진창인 나라가 되어버렸을까. 슬프다. 세월호는 다만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닥칠 일들을 생각하면 무섭고 또 무섭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 잘 살 수 있을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비명횡사하기 전까지는. 급사하기 전까지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그 삶을 "잘 사는 것" 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그 불안감마저 벗어던지고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죽기 전까지는 어쨌든 살아있는 거니까. 그래서 안전불감증이 사라지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 아침 일찍, 자다가 깼다. 꿈을 꿨는데 꿈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다만 포스팅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15/12/23 22:57 2015/12/2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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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키스외

분류없음 2015/12/17 14:26

 

호치키스 

 

오늘 일터에서 "Can you pass me that stapler?" 라고 말한다는 게 "Can you pass me that 호치키스?"라고 말해버렸다. 순간 너무너무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동료는 "eh?" 하더니 당황한 나를 보고 더 당황해한다. 서류를 든 내 손에 잠시 눈길을 주더니 "ah, stapler?" 하더니 바로 준다. 맥락으로 대화가 통한 순간. 집에 오는 길에 한참을 생각했다. 사오년 근래 집에서도 저 단어를 써본 적이 없다. 입 밖으로 내어 본 적도, 생각한 적도 없는 저 단어가 불쑥 튀어나오다니. 대체 "호치키스"가 뭐냐. 구글에 "hochikiss" 라고 두들겼더니 "Hotchkiss"를 찾는 거냐고 묻는다. 그건가. 벤자민 호치키스. 연속발사포 (기관포) 를 발명한 사람이다. 몹쓸 사람이네. 이 사람 이름을 딴 고등학교도 있다. 호치키스 고등학교. 우하하하. -- 웃고 있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강아지 구출 지하철 연착 

 

어제 낮 출근길 지하철. 이 도시에서 가장 붐비는 지하철 역에서 북쪽으로 가는 한 정거장 사이 지하철 운행 임시 중단. 두 역 사이를 오가는 셔틀 버스를 타라는 안내 방송. 퇴근길 러시가 시작될 때쯤이라 고생들 하시겠네, 했지만 나는 그냥 계속 서쪽으로 가니까 잊어버렸다. 오늘 출근길에 읽은 무가지에 그 사연이 자세히 실렸다. 케이티라는 이름의 네 살짜리 저먼셰퍼드 강아지가 지하철 터널 선로 밑에서 발견된 것. 지하철 공사는 역 근방의 수의사와 시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국 직원을 호출하여 케이티를 안전하게 무사히 구출해냈다. 들것에 실려 밖으로 나간 케이티는 결국 주인의 품에 안겼다는 해피앤딩. 하지만 그동안 -- 두 시간 동안 두 역 사이의 지하철 운행은 중단되었다. 시민들도 별 말 없이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셔틀을 타거나 우회. 

 

만약 한국에서, 서울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면 케이티는 안전하게 구출될 수 있었을까? 확률은 반반일 것이다. 우선, 당연히 안전하게 구출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더 빨리. 하지만 아마도 119 소방담당 직원과 수의사들이 호출되어 그들의 구조에 의해 들것에 실려나가기보다는 지하철 공사 직원 (역무직이든, 기술직이든, 그게 누구든) 혹은 용감한 시민에 의해 구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반의 확률은? 별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만약 두 시간 동안 강아지를 구출하기 위해 지하철이 연착되었다면,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강남역 선로에서 강아지가 발견되어 역삼역과 강남역 운행을 잠시 중단하오니 승객 여러분은 셔틀버스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지하철공사는 과연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상하는 일이 어렵진 않지만 역시 쉽지도 않다.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을까? 

 

 

 

영화 "캐롤" [스포일러 있음] 

 

간만에 파트너와 영화관 데이트. 시간이 맞지 않아 VIP 관에서 관람. 기프트카드 다 썼어 ㅠㅠ. 리플리 증후군의 창시자 (?),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Patricia Highsmith) 의  "The price of Salt (소금의 가치)" 가 원작. 무엇보다 케이트 블란쳇 (Cate Blanchett) 이 나오는 영화라서 선택. 사실 스토리라인은 뻔하지만 묵직한 분위기, 음악, 두 배우의 연기가 참 좋았다. 루니 마라 (Rooney Mara) 의 약간 흐리멍덩해 보이는 눈이 케이트 블란쳇 (Cate Blanchett) 의 터질 것 같은 눈길에 더더욱 대비되어 빛났다. 감정이 잘 드러나는 캐롤에 비해 루니 마라가 분한 데레즈는 그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아직 어린 데레즈는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주욱 따라가다보면 데레즈의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 어떻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지 그 흐름이 보인다. 아마도 내가 이십대에 이 영화를 봤다면 데레즈의 그 마음을 읽어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롤은 절제와 폭발을 어떻게 잘 적절히 혼융하는지 아는 "어른"으로 나온다. 나는 아마도, 아무리 내 딸을 사랑하고 현재 이 사랑하는 사람을 아무리 지켜주고 싶어도 내일 아침이면 떠나야 할 상황에서 오늘밤 당장 그렇게 처연하고 담담한 얼굴을 하진 못할 것 같다. 나는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레닌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어떤 양반이 운영하는 납골당 (The Charnel-House) 에 작년인가 올라온 것. 올해 시즌을 맞이하여 페북에 다시 링크하셨길래 덩달아 재링크. 레닌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좋아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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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hecharnelhouse.org/2014/12/24/creepy-christmas-lenin-%D0%BB%D0%B5%D0%BD%D0%B8%D0%BD-%D0%BD%D0%B0-%D1%91%D0%BB%D0%BA%D0%B5/

 

위의 굉장한 주소를 클릭하면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은 물론 레닌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당연히 스탈린의 작품이다. 

 

 

그런데 엊그제 직접 자신의 페북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시간차를 두고 주렁주렁 사연을 담아 홈페이지에도 올리니 아마도 곧? 한국에도 잘 알려진 마거릿 버크화이트 (Margaret Bourke-White) 가 소련을 방문했을 때 찍은 것으로 보인다. 많아야 너댓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들이 머리에 나비모양 장식을 하고 춤을 추고 있다. 아마도 솜씨자랑대회나 학예회 같은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뒷부분에 있는 레닌-스탈린 깃발이 압권이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 아닌가? 조금, 아니 많이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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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14:26 2015/12/1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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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소회

분류없음 2015/12/15 02:00

 

 

가치 (values) 와 직업윤리 (ethics) 가 확연히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은 몹시 피곤하다. 아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직장만이 아니라 사람들과 부딪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전자 (가치, values) 는 다소 개인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다. 따라서 그 드러냄을 최소로 하고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 된다. 누군가 어떤 이유로 소나 돼지를 먹지 않는다고 하면 으응, 그렇구나, 하고 대체할 수 있는 식재료, 닭고기 따위가 있는지 찾아보면 된다. 억지로 소나 돼지를 먹으라고 혹은 소나 돼지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설교하는 것은 “오버”다. 서로 얼굴을 붉힐 일로, 불쾌한 일로 된다. 사이가 틀어지거나 관계가 어긋날 수도 있고 무척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감정이란 건 상당히 날카로운 구석이 있어서 자칫 삐걱하는 순간 그대로 할퀸다. 

 

 

직업윤리 (ethics) 로 넘어가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직장 동료가, 클라이언트가 소나 돼지를 어떤 이유로 – 종교적인 이유일 수도, 알러지가 있을 수도,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등등 – 먹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최대한 존중받아야 하고 가금류, 콩, 달걀 등 대체단백질 공급원을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하면 미안하다고, 너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한다. 억지로 소나 돼지를 먹으라고 혹은 소나 돼지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설교하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을 넘어 직업윤리를 위반하는 것으로 된다. 자칫 잘못하다간 커뮤니티에서 배척당하거나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이것은 그저 간단한 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에는 내가 어떻게 대접받고 싶은지 그것만큼만 상대를 대하면 된다. 이 간단한 걸 알아내느라 너무 많은 애를 썼다. 

 

 

 

http://16quotes.com/talk-to-people-the-way-you-want-to-be-talked-to/

 

이미지 출처: http://16quotes.com/talk-to-people-the-way-you-want-to-be-talked-to/

 

2015/12/15 02:00 2015/12/15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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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자랑

분류없음 2015/12/13 15:40

 

드디어 -- "한국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다는데, 진짜냐"고 묻는 세번째 사람을 만남. 물론 아시안을 비하하려는 목적으로, 비아냥거릴 목적으로 질문했던 사람은 제외하고. 그건 당연히 질문이 아니니까. 

 

 

토요일에 같이 일하는 파트너. 같이 페어가 되어 일한 지 5개월만에 드뎌 저 질문을 하심. 얼마나 물어보고 싶었을까. 이란에서 이민오신 이 아저씨는 이민오기 전 자기 나라에서 사이코테라피스트로 일했다. 한국에서도 요즘엔 종종 거론되는 직업일 것 같다. 공부도 할만큼 하셨지만 북미대륙 밖에서 획득한 학위나 자격증은 캐나다에서 잘 인정해주지 않아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예컨대 한국에서 의사자격증을 따서 이민을 와도 다시 이 나라에서 자격증을 따야 한다. 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건 아닌데 그 자격증을 따는 일이 대학을 다시 다니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 자격증을 따면 인턴, 레지던트도 다시 해야 한다. 박사 학위를 받아서 이민을 와도 대부분 마찬가지. 학위나 자격증보다는 커리어, 일한 경력/영어실력/적응능력을 더 쳐주는 경우가 많다. 딱 하나, 한국에서 발행한 자격증을 거의 90% 인정해주는 게 딱 하나 있다. 한국 국기원에서 발급한 태권도 단증 혹은 지도자 자격증. 

 

 

어쨌든 성격도 식성도 나와 완죤 비슷한 이 아저씨와 시프트파트너가 되면서 토요일 근무가 상당히 즐거워졌다. 지난 주에 갑자기 정색을 하고 저 질문을 하셨다. 미안해하는 티가 역력했다. 혹시 너도 먹어? 먹어 봤어? NOPE! 나의 단호한 대답에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화르르 웃는다.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옛날엔 단백질을 구할 데가 부족해서 개를 키웠다가 잡아먹기도 하고 그랬다는데 지금은 먹을 게 천지에 널렸잖아. 왜 여전히 개를 먹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한테 먹으라고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이상 별로 난 반대하지 않아. 그것도 다 그 사람들 취향이니까. 유통과정이 상당히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똥을 먹든, 기생충을 먹든 다 그들이 스스로 결정한 건데 내가 뭘 어쩌겠어. 하지만 찬성하는 것도 아니야. 어쨌든 나는 개를 무척 사랑하니까. 

 

 

알다시피 이란은 시아파 무슬림 정교일치 국가다. 당연히 돼지고기는 먹지 않고 소고기 약간, 양고기, 닭고기가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다. 이 아저씨는 육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매번 같이 일할 때마다 양상치 혹은 로메인 상치 파인 컷, 직접 만든 식초 베이스의 드레싱, 곱게 간 비트 샐러드를 가져오셔서 반은 나에게 준다. 또 티를 상당히 즐겨 마신다. 잎과 꽃잎이 함께 들어간 자스민 티를 좋아하시는데 일전에 내가 가져갔던 Deep Green Embrace 티를 매우 좋아하셨다. 티의 맛과 향을 음미하면서 느낌을 서로 나누는데 뭐랄까, 영혼의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어쩌면 이런 아저씨가 세상에 다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아저씨들이 이 아저씨만 같으면 전쟁 같은 건 절대 안 일어나겠다 싶었다. 

 

 

이 아저씨는 개를 먹는다는 것 자체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솔직히 말해 나도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사실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냥 뭐랄까. 일종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 아저씨는 "절대 이해못해 어떻게 개를 먹을 수 있어" 이런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잘 지내려는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예의다. 그런 모습이 좋고 나도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가까우면서도 절대 가깝지 않은 적당한 거리. 그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존중하는 것이 가장 오래 가는, 지속가능한 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토요일 밤 퇴근 때마다 지하철 역에 데려다 주신다. 덕분에 40여 분만에 집에 도착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이렇게 친절하고 나이스한 아저씨에게 홀리데이 카드라도 보내드려야겠다.

 

 

감사합니다. 

 

2015/12/13 15:40 2015/12/1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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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겸일기

분류없음 2015/12/08 01:58

 

1. 새 일터와 감흥 

 

지난 주 금요일, 새로 시작한 일터에서 첫 시프트 근무를 했다. 파트너는 매니저의 업무를 거의 대행하다시피하는 중년 백인 여성. 정신병원에서 커리어를 쌓고 보다 커뮤니티에 근접해 일하는 그곳으로 옮긴 지 십 년. 말이 아주 많고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역시... 대단히 부지런하고 우리 매니저는 이러저러하게 일하는 걸 좋아해. 몇몇 팁도 주신다. 그녀의 인도에 따라 클라이언트 병원 기록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얻어걸린 클라이언트 파일을 열자마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살인미수와 강간 및 공무집행방해가 그(녀)의 죄목. 아직 대면하지 못한 그(녀)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고 다만 인종과 문화, 성장배경, 교육, 고용 등등 그(녀)를 가늠할 수 있는 스토리를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안타깝다. 

 

나도 누군가에겐 살인범 이상의 공포와 분노와 미움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흉기로 사람을 직접 위협하고 찌르거나 총을 쏴야만 상처를 주거나 목숨을 앗는 게 아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어쩌면 직접적인 살해위협과 폭력 이상의, 그 무엇의 함의를 지닐 수 있다. 나의 인종, 문화, 자라온 배경, 나의 교육과 고용, 나는 왜 이 먼 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가. 그런 것들을 곱씹어봤다. 이른바 "이상한" 사람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간혹 선천적인 사이코패스, 공감능력을 절대적으로 결여한 문제적 인간이 아주 낮은 확률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만들어진다. 그(녀)들의 환경이 그의 행동을 낳는다. "유적 (類的) 존재로서 인간" 을 회고하건대 - 인간을 개별 개체로 파악하지 말고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만 그 주체적 인간 (대안) 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접근이 참으로 중요함을 깨닫는다. 사실이 이럴진대 뛰어난 효능을 지닌 약물을 투여하면 (Medical approach) 그 인간은 참인간이 될 수 있을까? 가령, 나도 약을 잘 먹고 혼자 도를 잘 닦으면 마침내 참꽃개가 될 수 있을까? 글쎄. 부정적이다.  

 

 

2. 1에서 언급한 "말의 상처"를 더 언급하기 위해 

 

말은 정말이지 조심해야 한다. 일기장에 쓰는 게 아니라면 정말 정말 두세 번 생각하고 뱉어야 한다. 어제 도시 북쪽에 있는 샵에 중요한 물건을 사러 갔다가 인근에 위치한 한국인 식당을 발견했다. 꽤 오래된, 유명한 것 같기는한데 실물로 보는 것 (?) 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허기를 해결할 심산에 중국음식점에 들렀는데 나와 파트너가 먹을만한 것이 딱히 없었다. 저기 한국식당에 한 번 가볼까요? 들어가니 어느 한 켠에 가라오케 룸이 있는지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가족룸처럼 꾸며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노래도 부르도록, 한국인 문화와 정서에 최적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다. 음식이 꽤 괜찮았고 드문드문 백인들, 남아시안들도 있었다. 밥을 먹고 화장실에 들러 용변을 본 뒤 손을 씻는데 어떤 사람이 접근한다. "Do you know, this is [a] women's washroom?" 전형적인 한국인 액센트다. 주저하지 않고 "Yes, I do. I know it very well."이라고 답한 뒤 페이퍼타월에 손을 닦고 나왔다. 고개를 갸웃갸웃 오버액션을 하고 나를 몇 번 쳐다보고는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 "너 여기 여자화장실인 거 알아?" 라고 직역할 수 있겠다. 맥락은 "이봐, 너 화장실 잘못 찾아왔어. 너 여자야, 남자야?" 가 될 수 있겠다. 딴에는 교양있게 묻고 싶어 "Are you boy or girl?" 이라고 묻지 않았겠지만 사실 그게 그거다. 그런데 그 양반은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보기엔 그냥 아줌마처럼 보이지만 내 눈엔 그리 여성스럽게 생기지도 않았고 (예쁜 것은 둘째치고) 오히려 아저씨에 가깝다. 언뜻 보면 트랜즈젠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섣불리 젠더를 짐작할 순 없다. 다만 여자화장실에 들어왔으니 저 양반에게는 여자화장실이 더 편하구나, 라고 짐작할 순 있겠다. 

 

화장실에서 남성용 라면 (신라면?) 을 끓여먹는 것도 아닌데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대놓고 저렇게 묻는 것은 대단한 실례다. 물론 안다. 하도 "이상한" 남자들이 많고, 심지어 그들이 화장실에 몰카도 설치하니까 남자 (로 보이는 사람이 혹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사람이) 가 여자화장실에 있는 게 몹시 신경쓰일 수 있다는 것은 안다. 그 마음은, 염려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질문의 내용과 태도가 대단히 틀렸다. 이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고 명백히 틀렸다. 적어도 "I was wondering, this is for women?" 라고 물었다면, 혹은 "Yes" 라는 대답을 얻은 뒤 그 사람을 일단 믿었다면, 혹은 그래도 영 못 미더우면 밖에서 기다리거나 시큐리티/식당 스탭/사태를 핸들링할 수 있는 적당한 사람에게 리포트하는 게 올바른 태도다.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아량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객관적 인지능력도, 불편한 그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도, 그 어느 것 하나 깜냥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조건 일단 "들이박는" 혹은 "뱉는" 사람들의 태도에 질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 양반만의 잘못이 아니다. 사람을 예의없고 뻔뻔하게 키워내는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교육과 문화가, 혹은 헤테로노마티버티 (heteronormativity) 를 추앙하는 이 사회가 이상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노말리즘"을 부르짖는 그들 자체가 "애브노말"하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모른다.

 

화장실 사건은 비단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이 도시에 온 첫 해 여자화장실에서 "This is a women's washroom, W-O-M-E-N. You know English?" 라는 말에 손도 못 닦고 쫓겨난 적이 있다. 컬리지에 다닐 때에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층을 피해 학장과 교수들 연구실이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다. 

 

한 번은 코리아타운에서 담배를 태우고 바닥에 꽁초를 던져 비벼 끄는 중인데 건너편에서 한국인 아줌마가 "학새--엥"하며 크게 불렀다. 뽄새를 보아하니 담배피지 말라고, 혹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지 말라고 훈계를 하려는 것 같아서 "Excuse me?"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니야, 됐어. 외국인이네. 담배를 왜 거기에 버려" 라며 혼잣말을 하고 사라졌다. 어맛, 외국인? 대체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학생이라고 단정하는 그 무식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담배꽁초를 비벼끄는 것만으로도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린다는 섣부른 예단은 대체 어느 뇌구조에서 튀어나오는 걸까? 한국인이면 훈계를 해도 되고 외국인 (비한국인) 이면 훈계를 단념하는 그 이중잣대는 또 무엇인가? 왜 몇몇 사람들은 이다지도 저열한 식민지적 근성을 갖고 여전히 살아가는 걸까? 영어를 안해도 좋으니 그냥 한국어로 비한국인에게 훈계하면 안 되나? 대체 이 심리는 무엇일까?

 

 

3.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는지 

 

언젠가 한국인 클라이언트를 인테이크해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중등과정의 전반부를 마치고 이 나라에 온 그 친구는 영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말하는 태도, 습관, 제스처, 사고방식 등은 캐나디언도 한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였다. 보통의 캐나디언에게도, 정신질환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보수적인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말할 때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한다거나, 쓸데없이 자주 웃는다거나 (특히 쑥쓰러울 때), 미안하다/고맙다/실례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거나, 퍼스널스페이스에 대한 개념히 희박한 점 등은 명백히 "한국인" 같았다. 그것 때문에 정말 미치겠어요. 저는 아무 생각없이 그러는 건데 그럴 의도가 없는데 왜 사람들은 저를 오해하죠, 이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그런 모습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예요, 한국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여기선 정말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잘 아시잖아요... 사실 그이는 그 행동 때문에 오해를 받아 (?)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고 또 그 행동 때문에 폭력 행위로 입건/체포/조건부석방 처분을 받았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지극히 정상이었을 사람이 이 나라에 와 어떤 이유로 순식간에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나는 아마도 형편없는 사람으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대로 한국사회에서 살았다면. 그러나 그게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 전혀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렇게 자랐고, 문제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고, 나에 대한 연민이 깊었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익숙하지 못했다. 찬찬히 관찰하고 사색하기보다 나불나불 떠드는 일을, 뱉는 일을 더 잘했다.  

 

 

4. 각오 

 

이번 주에 두번째 시프트가 있다. 이번엔 아마도 그 다음 번 클라이언트 파일을 읽게 될 것이다.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약간의 용기와 자신감이 든다. 

 

 

2015/12/08 01:58 2015/12/08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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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브리그

분류없음 2015/12/04 03:02

 

제목: 스토브리그 중간점검 2 

 

 

이글스가 이번에 방출한 선수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몇몇이 있다. 투수 ㅂ 과 포수 ㅈ 이다. 그리고 사상 최초 FA 기간 중에 방출당한 ㅎ 선수. 갸웃갸웃. 왜 이들을 보류선수로 묶지 않았을까. 정말 이상하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역시 잔재주에 능한 김성큰 감독님. 훌륭한 전술이다. 현행 규약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전술을 구사하는 이런 기술은 마치 삼땡의 모건히 휘하 사단을 연상케 한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누구도 이글스 팀을, 김감독을 욕할 수 없다. "편법"이나 "선수신분세탁" 등을 거론하는 건 그냥 개소리다. 거론한 선수들이 탐나면 나름대로 쓸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서 잡으면 그만이다. 방출선수이므로 보상선수를 내어줄 필요도 없다. 간단하다. 시장법칙. 

 

ㅂ 선수는 많이 탐난다.  

2015/12/04 03:02 2015/12/0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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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지정책

분류없음 2015/12/02 15:02

 

 

 

지난 선거에서 집권한 자유당 정부가 공언한대로 시리안 레퓨지를 받아들이기 위한 플랜이 시작됐다. 애초에 자유당은 25,000명의 레퓨지를 연내에 받아들여 정착시킨다고 했으나 여러 이유로 일정이 수정되어 12월 안으로 10,000명, 그리고 내년 3월 말까지 15,000명이 토론토와 몬트리올 공항을 통해 입국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일정이 자세히 나오진 않았지만 차차 이런 방식으로 내년까지 약 50,000 명의 레퓨지를 받아들인다는 게 연방 정부의 계획이다. 아마도 50,000 명 가운데 대부분은 (70%) 시리안 레퓨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규모에는 연방정부가 정착을 후원하는 (GARP: Government-Assisted Refugee Program) 프로그램과 개인(들)이 정착을 후원하는 (PSRP: Private Sponsorship of Refugees Program) 프로그램이 섞여 있다. 전자는 연방정부가 펀딩을 내고 비영리에이전시가 그 운영을 도맡는다. 연방정부 (국세청) 로부터 사업허가를 받아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에이전시들이 연방정부를 대신해 레퓨지들의 정착을 돕게 될 것이다. 레퓨지들이 영구 주택을 얻기 전까지 임시주택, 먹을 것, 옷 등을 제공하고 일자리를 얻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돕는다. 취학을 해야 할 아동이 있다면 어린이들이 그들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물론이다. 이에 반해 PSRP 는 그야말로 개인들이 연방정부의 허가를 받아 레퓨지 개인을 스폰싱하는 제도로 레퓨지 개인이 일 년 동안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물리적, 재정적으로 돕는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 PSRP 가운데 꽃개에게 친숙한 제도로 Group of Five 가 있다. 이 나라의 영주권 혹은 시민권을 소지한 개인 다섯 명 이상이 스폰싱 그룹을 이뤄 신청서를 내고 허가를 받아 개인을 초대하는 방식인데 중동이나 아프리카, 캐리비안 지역에서 LGBT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핍박을 받는 개인들이 이 제도를 통해 레퓨지로 입국하는 경우를 왕왕 봤다. 꽃개가 적을 두고 있는 교회는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용해 LGBT 레퓨지를 스폰싱하고 있다. 

 

 

벌써부터 도시 곳곳은 시리안 레퓨지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로 들썩거린다. 두 부류로 나뉘는데 첫째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옷을 모으는 등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독려하는 "환영" 그룹이다. 둘째는 예상했다시피 "반발 (backlash)" 그룹이다. 자유당이 큰 폭의 지원을 얻어 집권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캐나다 사람들 60% 이 레퓨지 유입에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이슬람포비아는 대단히 인스티튜셔널하게 (내밀하게) 확산되어 있으므로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이유로 잡히지 않는다. 즉 다시 말해 공식적으로 "이슬람포비아"는 없는 셈으로 된다. 하지만 다른 이유, 즉 공공주택 공급의 부족함이나 소득부조 서비스의 한계 등을 언급하면 이야기는 다소 달라진다. 가령 캐나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지닌 사람이 공공주택에 어플라이를 하면 적어도 평균 일 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일 년은 평균이고 어떤 사람은 삼 년 이상을 기다리기도 한다. 당연히 불만이 쌓인다. 캐나다 역사 상 양차대전 뒤로 가장 많은 레퓨지를 받아들였던 것은 1979-1980년 "보트피플" 60,000여 명이다. 대부분 베트남에서 온 이들은 평균적으로 볼 때 (아시안 특유의 높은 교육열과 맞물려)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이 캐나다로 올 때 국내 경제는 세계경제 호황과 맞물려 "좋은" 편이었다. 공공주택의 불안정한 공급, 불충분한 소득부조는 이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보트피플"을 반대하면서까지 불만을 토로하는 뻔뻔함이 널리 장려되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상황이 사뭇 달라졌다. 이슬람포비아아는 이제 제노포비아로까지 번질 기세다. 벌써 "내국인부터 고용하라"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년, 내후년, 앞으로 몇 년간은 이 백래쉬들과 다투는 그런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들이 나름대로 정교한 근거를 들고 나올텐데 단지 "인정"에 호소하거나 "캐나디언의 가치"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한편, 1990년대부터 들어온 동아프리칸 레퓨지 사례로 볼 때 이번에 들어오는 시리안 레퓨지 어린이들이 어떻게 성장할는지 관심을 두게 된다. 아마도 생애연구를 도맡아 하는 사회학자들이 그들의 연구주제로 벌써 세팅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남여차별이 우세하고 젠더롤 구별이 현저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경향이 이러한 곳에서 온 사람들 가운데 남성들의 자립도와 적응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양육의 과정에서도 남아들의 높은 부적응도가 (형사) 범죄로 이어지는 경향이 높았다. 두고 볼 일이다. 

2015/12/02 15:02 2015/12/0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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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브리그

분류없음 2015/12/01 01:34

제목: 스토브리그 중간점검 

 

 

이진영이 팀을 떠났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이듯이] 팀을 떠났다. 주지하다시피 (나만 주지했나?) 이진영은 2015시즌 주장이었다. 사실 2015 시즌을 맞이하면서 이진영이 주장을 맡았다고 했을 때 뜬금없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김성큰 감독님이 계시는 팀 같으면야 주장의 역할이 그닥 크지 않겠지만서도) 왜지? 왜 대갈장군이 주장을 맡은 거지? 어쩐지 시험대, 아니면 스케이프고트? 예상은 적중했다. "읍참마속 (泣斬馬謖)"의 심정으로 "국민우익수"를 떠나보낸다고 찌끄렸는데 그 말이 맞다. 애초에 이진영은 "마속"이었다. 꽃개는 개인적으로 이진영 선수가 트윈스 케미스트리에 들어맞는 선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는 쌍방울 – SK 를 거치면서 김성큰 스타일로 조련된 플레이어다. 다만 나이가 들었을 뿐이다. 

 

 

한편, 야생마 이상훈이 코치로 온다는 소문이 횡행하다. 적극 환영이지만 잘 모르겠다. 선수 시절과 지도자로서의 삶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정수근이 코치로 온다고 치자. 정수근이 과연 그가 그토록 칭송해마지 않던 제리 로이스터처럼 할 수 있을까? 그가 코치나 감독이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전혀 그렇지 아니하다. 그래서 타고난 게 중요하다. 성장과정이 중요하다. 철학이 중요하다. 이상훈을 코치로 맞이하는 2016년은 그래서 또다른 의미로 그에게, 팀에게 독배다. 여전히 트윈스는 세대교체, 앙시엥레짐이냐 혁명이냐를 한 해 더 시험하게 됐다. 그래서 조금 슬프다. 

 

 

이동현은 드디어 그의 인대를 바칠 수 있게 되었다. 착한 에프에이. 딴에는 정우람을 데려왔으면 했는데 아무래도 내팽겨쳐버린 프랜차이즈들에게 [보다는 팬에게] 많이 데인 것 같다. 이동현은 좋다. 확실하다. 백을 기대하면 백만큼 한다. 하지만 백이상은 하지 않는다 [아니면 못한다]. 서울팀에서 굴러먹은 근성이 어디 갈까?

 

 

정상호는 진짜 뜬금없어 보인다. 이렇게 또다시 유강남의 성장을 미루는 것인가? 아무래도 트윈스 프런트에는 "배터리앙마"가 끼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토록 오래도록 "강한 포수"를 구하거나 만들지 못하는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나는 사실, 김동수도, 김정민도 믿지 않는다. 믿지 아니한다. 나는 오히려 주심을 믿으련다. 하지만서도… 포수를 데려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센터라인의 소중함을 깨달은 현장과 프런트의 대오각성에 한차례 박수는 보내주고 싶다.

 

 

이 와중에 이진영과 함께 집을 떠난 나성용, 김선규를 주목한다. 사람들이 "탈쥐효과"를 말하면, 언급하는 걸 보면 죽도록 싫었다. 이게 꽃개의 아킬레스건이다. (가령 나중에 인펄슨으로 꽃개를 봤을 때 꽃개를 약올리고 싶으면 박병호나 박경수 따위를 거론하면 된다.) 나성용은 전형적인 "트윈스의 무덤"에서 필 꽃이다. 김선규… 쏠쏠한 그의 활약을 다시 NC에서 보게 된다면 묵묵히 박수를 쳐줄 것이다.  

 


이 와중에서 SSC (심수창) 가 치킨 댁으로 가서 그의 에너미와 조우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 2016시즌을 기다리게 만드는 또 하나의 매력을 심쿵- 던져주시는구랴. 
 

 

* 이진영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그는 2014년, 2015년 2년동안 팀 주장을 맡았던 모양이다. 나의 기억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만, 변명하자면 - 엠비씨청룡으로 팀이 출발한 1982년부터 팬이었던 나로서는 이진영이 팀을 떠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더 하나 분명히 알게 된 셈이다. 씁쓸. (이곳 시간으로 12월 1일 밤에 추가) 

 

2015/12/01 01:34 2015/12/0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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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일들

분류없음 2015/11/28 01:59

 

신비한 메갈리안

 

 

소라넷을 없애달라는 아바즈 청원을 주도한 메갈리안의 행동이 성과를 보였는지 드디어 이 주제가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됐다. 현재까지 이 청원에 팔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고 국회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직접 이 일을 거론한 새정치연합 진선미 국회의원은 하루만에 천만 원이 넘는 정치자금을 모았다. 한두 사람이 목돈을 쾌척한 것도 아니고 삼백여 명 정도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진선미라는 정치인, 국회의원을 후원했다. 이틀이 채 되기도 전에 천만 원을 후원받은 진선미 국회의원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 라고 생각하기 전에 이 일을 도모한 그리고 언급한대로 이루어낸 메갈리안이라는 데가 진실로 진실로 신비하게 느껴진다.

 

 

한편, 그간 (메갈리안을 위시로) 여성들이 느낀 분노가 얼마나 컸을까. 여성혐오라는 것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상에서 퍼져있었는지 절감하는 순간이다. 나 또한 가해자로, 피해자로, 중첩적인 아이덴터티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저글링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혹자는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은 옳지 않다, 메갈리안의 방식은 곧 그 역치에 도달할 것이다, 출발부터 한계가 있는 방식이다, 여성판 일베다 등의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지켜봐야 한다는 차이 혹은 공통점 정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 공부나 관련 분야를 정치-사회학 계통 내에서 학습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몫이 많이 커졌다. 이게 어디까지 어떻게 갈는지 잘은 모르겠다만 이 신비한 메갈리안의 운동, 상처받았으되 쓰러지지 않고 혹은 쓰러졌다가도 일어나서 분노하는 사람의 마음,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메갈리안의 운동에서 배울 것이 버릴 것보다는 많아 보인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어떤 침묵

 

 

지난 번에도 잠깐 생각하다가 말았는데 소라넷이 음란사이트여서 혹은 포르노를 유통하기 때문에 혹은 이상성애를 확산하기 때문에 폐쇄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소라넷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소라넷을 매개로 범죄에 동조하고 확산한 사람들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생각엔 띠끌만큼의 변화도 없다.) 다만, 사람들이 소라넷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그들의 욕망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채우기 위해 인간을 얼마나 끔찍한 방식으로 도구화하는지, 즉 여성 개개인의 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 개인정보를 그들의 동의없이 얼마나 흉악한 방식으로 훼손하는지 그런 토론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참 요원해보이긴 하다만.

 

 

한편으론 서버가 미국에 있어서 운영자를 처벌하기 곤란하다, 는 말이 얼마나 허황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무슨 이런 개소리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하고 앉아있나. 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 아닌 굳이 공부까지 할 것도 없고, 인간의 자율의지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을 훼손하는 게 무엇인지 감이라도 잡고 있는 사람이라면 소라넷에서 벌어지는 일들 (가령 여자친구에게 의식을 잃게 만드는 약물을 몰래 먹인 뒤 의식불명의 그녀를 강간할 남자들을 공개모집한 뒤 그 행위를 도둑촬영하여 파일을 공유하는 행위, 혹은 공중화장실, 공공장소, 심지어 집에서까지 여성들을 도둑촬영하고 이 이미지를 파일로 공유하는 행위 등) 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내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도 괜찮은 일인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대체 왜 그 많은 전문가들, 지식인들, 진보입네 하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이 정도는 나같은 사람도 알고 있는데.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조작된 정보를 수용한 것인가.

 

 

회원이 백만 명이라는 데에서는 기함을 토했지만 (범죄행위에 연루했을 수도 있는 사람이 백만 명이라는 말이 될 수도 있으니까) 회원 수에 기초해서 한국인 남성 열여섯 명 가운데 하나는 소라넷을 한다는 추론엔 사실 별 감흥이 없다.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소라넷을 그들만의 은어로 언급하고 "야동"을 끼죽거리며 거론한 게 바로 어제까지의 일상이었다. 알다시피 소라넷은 성인인증 없이도 가입할 수 있고 따라서 소라넷이 포르노그라피 입문을 위한 "게이트웨이" 역할을 한다는 것은 눈을 감고도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야동" "포르노그라피"를 소비한다는 팩트에 사실 나는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은 그들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지, 왜 여자친구를, 누이를, 엄마를 혹은 나완 대체 아무런 상관도 없는 타인 (여성) 을 그들 의사와 무관하게 그들의 육체를 이미지화하여 소비하려 하는가 (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소유하고 통제하려 하는가) 이다. 그리고 "동의" "컨센트" 가 왜 중요한지 이것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그것을 얘기하고 싶은 게 나의 관심이다. 침묵은, 현재의 침묵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위험해 보인다.

 

 

11월 26일 일기 가운데 일부 

 

 

2015/11/28 01:59 2015/11/28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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