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와배추
분류없음 2016/02/11 16:05
고향에 있을 적엔 감자는 그냥 감자였다. 종류도 맛도 향도 그렇게 다양한지 몰랐다. 모를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일 때에는 해마다 강원도로 농촌활동을 간 탓에 정말 감자를 물처럼 먹었던 때도 있었다. 감자국, 감자밥, 감자조림, 감자전, 옹심이... 여름농활할 적에 수확한 감자가 남으면, 혹은 감자에 상처가 나면 땅에 묻었다가 가을이나 겨울농활할 적에 꺼내어서 이렇게저렇게 떡을 만들거나 사료로 만들어 사람도 먹고 소도 먹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하루 종일 감자밭에 쪼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해도 끝없이 나오는 감자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던 그런 날들이 있었다. 간혹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날 때마다 먹었던 작은 알감자도 생각난다. 언젠가 자줏빛이 감도는 감자를 먹었던 기억도 있는데 그렇게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서유럽 문화가 지배적인 식문화에서 감자는 우리의 밥 (쌀밥) 에 대응하는 격을 갖는다. 로스트비프나 스테이크나 혹은 폭챱 같은 것을 메인디시로 먹으면 반드시 감자를 먹는다. 매시드포테이포나 통채로 구운 감자 따위에 치즈를 곁들여 먹기도 하고 다양한 드레싱을 섞어서 풍미를 더한다. 심지어 햄버거에도 감자가 꼭 따라나온다. 바로 프렌치프라이. 영국인들이나 북해 연안 국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피시앤칩스도 생선요리와 감자튀김이다. 아니면 포테이토칩처럼 군것질거리로 소비하기도 한다. 부활절 (Easter) 이나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을 앞두고 큰 푸대자루에 담긴 감자를 사가는 사람들의 풍경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감자는 서양인들에게 머스트해브아이템오브머스트해프아이템스온더테이블이다.
감자는 유럽인들의 역사를 바뀌어놓기도 했다. 1840년대에 시작한 대기근이 끝났을 때 아일랜드의 인구는 무려 절반으로 줄었다. 감자흉년 때문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고향을 떠난 아일랜드 사람 가운데 많은 이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등 신대륙에 정착했다. 꽃개가 사는 도시 한가운데에 양배추마을(Cabbagetown) 로 불리우는 곳이 있다. 19세기 중후반, 감자 대기근으로 고향을 등진 아일랜드 사람들이 대거 정착한 곳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들은 양배추를 심기 시작했고 양배추가 조석으로 밥상에 올랐다. 재개발 (Gentrification) 이 한창 중인 그 곳에 아직 쫓겨나지 않은 이민자들이 여전히 많이 살고 있지만 오늘날 이민자들의 얼굴 색깔은 19세기 그들의 얼굴 색과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 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 혹은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19세기에 고향을 등진 그들의 후손은 이미 그 곳에 살지 않거나 살더라도 재개발이 끝난 고급주택이나 콘도에 산다. 그리고 양배추밭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감자나 양배추 (배추),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게 또 있다. 바로 김동인 (金東仁) 의 "감자 (1925)". 복녀는 감자와 배추를 훔치다가 왕서방에게 걸리지 않았나. 또 하나,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의 "감자먹는 사람들 (1885)" 이란 그림도 있다. 이 그림은 뒤에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난과 삶의 치열함에 대한 영감을 줬지만 정작 당대에는 외면당했다고 전한다.
종종 감자를 삶아 먹는다. 며칠 전 먹었던 감자가 제법 맛이 좋아 오늘도 감자를 너댓 개 삶았다. 맛이 딴 판이다. 퍽퍽하고 잘 부서진다. 껍질도 딱딱하다. 아마도 매시드포테이토에 걸맞는 그런 품종인 것 같다. 가격을 따져보니 지난 번에 먹었던 노란 감자가 아마도 서너배가량 비싸지 않았나 싶다. 그렇구나. 역시 비싼 게 맛있구나. 싼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그 옛날 아일랜드 민중들과 복녀는 어떤 감자를 먹었을까. 오늘 내가 먹었던 그 퍽퍽한 흰 감자였을라나. 아이고 오늘 산 저 감자를 어찌 다 해치울꼬. 고향에서 먹었던 그 찰지고 달콤한 감자가 그립다.
반가운소식
분류없음 2016/02/09 02:13
제목: 반가운 소식 외
"캐롤 (Carol, 2015)"의 선전에 부쳐
며칠 전 파트너와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 캐롤이 한국에서 개봉하지 못하면 어쩌나, 영화관에 걸리더라도 금방 내려가버리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했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이명박근혜 세상 이후로 시절이 너무도 하 수상하니까. 이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오로지 감정으로만 승부하는 이 이야기를 한국에 있는 괜찮은 사람들이 꼭 봤으면 싶은데... 파트너는, 당신은 그런 생각 - 나처럼 괜한 걱정 - 은 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칸과 오스카 후광 때문인가. 아니면 케이트 블란쳇 (Cate Blanchett) 때문일까. (영화) 자본의 힘 때문이라는 게 맞는 말이겠지. 회사 동료들과 영화 캐롤 이야기를 하다가 "케이트 블란쳇 등짝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숨막혀 죽을 뻔했어" 라고 했더니 우리반 언니 한 명이 배를 잡고 웃었더랬다.
어쨌든 한국에서 선전하고 있는 영화 캐롤 소식이 오늘의 반가운 소식. 스크린을 몇 개 잡고 시작했는지 알 순 없지만 예매율 3위라니까 그럭저럭 잘하고 있는 거 맞지? 허허허. 엊그제 아마존을 통해 쌀을 주문하면서 DVD도 함께 프리오더했다. 쌀도 DVD도 언제 도착할 지 알 순 없지만 흐뭇하다. 쌀은 아마도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한 미국에서 오는 거니까 봄이 가기 전엔 오겠지. DVD도 올해 봄에는 꼭 올 것이다. 너는 나의 봄이다!
한편, 조선일보에 실린 리뷰를 어떤 이유로 읽고는 영 형편없어서 조금은 실망했었다. 그럼 그렇지, 라고 할 순 없고 아마도 이런 방식으로 이 영화를 소화하는 게 한국사회의 대세로서는 최선일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이동진이 뭔가 사고를 쳤다는 소식도 접했다. 이동진은 구구절절 해명이란 걸 했는데 "가장 먼저 말해야 할 것은, 저는 동성애를 논한 게 아니라 '캐롤'이라는 영화를 논했다는 사실입니다" 라는 대목에서 그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진작에 알아버렸다. 아마도 비이성애가 한국사회에 놓인 맥락 (주류적/정상적) 에서 그리고 당일 있었던 라이브톡의 분위기에 "알맞게" 조응하느라 그런 실수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비평가 이동진으로서는 그런 실수를 해서는 안되었고, 했더라도 그런 방식으로 쓸데없는 해명을 해서는 안되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발언력이 큰 양반들이 점잖게 사과하는 게 이토록 어렵구나. 뭐, 그런 걸 재삼 확인했다고 해야 하나.
일단 토드 헤인즈 (Todd Haynes) 의 개인적-영화적 색깔과 영화 캐롤의 원작 소설 및 저자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Patricia Highsmith) 와 각색자 (Phyllis Nagy) 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면 마지막으로 두 가지 핵심 키워드인 시대배경 (전후 50년대 미국 뉴욕) 과 그 시대에서 레즈비언 동성애 (homosexuality) 가 놓인 위치를 알고 있었다면 영화 비평가인 이동진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됐다. 이동진은 분명 영화의 원작소설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이스미스가 왜 이 소설을 가명으로 출판했는지 그 이유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전후 50년대 지독히도 음울한 당시 시대적 분위기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른바 남성동성애자들은 범죄자 취급이라도 받았지만 여성동성애자들은 정신질환자로 취급받거나 존재조차 부정당했던 당시의 분위기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쩐지 이동진의 그 길고 긴 해명이 여전히 껄쩍찌근하다. 이 모든 걸 이동진이 몰랐다면 - 아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 어쩌지. 이런 경우는 생각해보진 않아서...
인디와이어 리뷰를 읽다가 건진 감독 인터뷰. 12:30, 30:20 즈음에 캐롤과 트뢰즈의 관계를 그 시대의 관점에서 대상화하는 표현이 나온다. "언어가 없었다" "설명하는 방식이 없었다" 정도로 이해했는데 이게 참으로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남자인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거 같은데 내가 이상한건가, 그건 동성애라고들 하던데, 범죄라고 하던데, 하나님이 벌 준다고 하던데, 회사에서 짤릴텐데, 그런데 나는 아닌데, 나 그렇게 이상한 사람 아닌데... 남자들은 감방이라도 가고 하나님한테 회개할 여지라도 있고 회사에서 짤릴까봐 걱정이라도 하는데 여자들은 뭥미? 대체 이건 뭐지... 이건... 이 감정은, 이 관계는, 이 세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나 어트게 해야 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당연히 들지 않을까. 사실 캐롤이나 트뢰즈나 매 한가지였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캐롤은 맥락 상 베스트프렌드인 애비 (Sarah Paulson) 와 뭔 사단이 있기는 있었다. (사실 제일 불쌍한 사람은 애비 Abby 같다. 내 눈엔 애비가 여전히 캐롤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 사랑의 방식이 다를 뿐) 갈팡질팡하지만 다만 캐롤은 그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행동해야-적응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자신이 취하는 사랑의 방식을 정의하지 못한다. 트뢰즈 또한 벼락같이 찾아온 (out of the blue) 감정의 정체를 정의하지 못하기에 그 때까지만 해도 가장 유사한 감정적 동질감을 느껴온 남자친구, 리차드에게 묻는다. 아, (씨발) 너 남자 사랑해본 적 있어. 이 질문을 할 때 트뢰즈의 표정은, 정말이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 (씨발) 진짜 사실대로 말해줘. 뭐 좀 알고 있으면 알려줘봐, 제발 (씨바).
이 둘의 사랑을 레즈비어니즘적 사랑이라고 정의하지 않고 그저 인간 대 인간의 사랑이라고 눙치면 이제 이 둘은 어찌해야 할까. 애써 돌고돌아 각자 존재의 정의, 존재의 가치를 찾아냈는데 그래서 그것이 가장 고귀한 것으로 되어야 하는데 그냥 인간 종 (種, species) 으로 되돌리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 가혹하다. 가령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절대적으로 먹고 싶은데 같은 아이스크림 카테고리인 브라보콘이나 쳐먹으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하겐다즈 사먹을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걸어가면 편의점이 널렸는데 말야. 이런 기분을 이성애자들은 정말 알기는 알까?
리뷰를 읽다가 감독이 어디에서 어떤 맥락으로 말한 건지 출처도 알 수 없는 이런 글도 읽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바이든 막론하고) 마지막 질문과 답을, 거봐 감독도 사람과 사람의 사랑이라고 하잖아, 라는 식으로 해석해서 제 논에 물을 대는 것 같다. 만약 그 "사랑"에 방점을 찍는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맥락을 조금 더 잘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
트뢰즈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어쩔 땐 데뢰즈로 들리는 것도 같다) 참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루니 마라 (Rooney Mara) 가 그토록 요상한 매력을 지닌 배우였는지 몰랐다. 인형은 잘 몰라요 기차가 어때요 (!), 왜요? 내가 왜 이상해 보여요? (!) 침대로 가요 (!), 캐롤, 당신이 보고 싶어요 (!) 흐리멍덩한 그 눈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르는 캐롤을 뷰파인더로 들여다볼 때 가장 많은 흰자위를 노출했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잭은 그녀의 왼쪽 어깨를, 캐롤은 그녀의 오른쪽 어깨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녀는 왼편의 유혹을 지나 마침내 오른편의 유혹으로, 그 운명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그녀는 용감하고 씩씩하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강인한 여성이었다. 스스로 사랑을 쟁취한 멋진 여성, 사랑받을 자격, 충분하다. 꽃개도 그런 씩씩한 여성이 되어야겠다.
"제국의 위안부"에 부쳐
얼마 전 "제국의 위안부" 를 PDF로 다운받아 읽다가 파트너의 친구가 한국에서 보내준 페이퍼백을 읽고 있다. 이 생각의 부스러기들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덩어리로 만들어 정리해야겠다 싶은데, 그러다가 페이스북을 통해 박유하와 목수정 등의 (전체 공개로 되어 있는) 글들도 읽었다. 목수정은 박유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박빠"로 일컬었다. 개탄스럽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혹은 키보드로 꾸려지는 말들이 지지리도 궁상인 세상이다. 베갯잇 송사나 일기장에 써야 할 말들과 연단에 올려 나부끼는 말들이 너무나 뒤죽박죽인 칠푼이 세상이다. 이것도 트렌드라면 트렌드일까. 페이스북에서 만난 박유하의 단상들은 오히려 나를 끌어당기고 있더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연례 화재 경보기 테스트에 부쳐
지난밤 오버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오늘이 바로 연례 화재 경보기 점검을 하는 날이다. "연례" 라는 말은 모든 아파트 가가호호 테스트를 한다는 말.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삑삑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어 포스팅을 했고 일정 마쳤다. 아... 밤이, 아니 낮이 길다.
어려운결정
분류없음 2016/02/01 19:21
지금은 일터. 한글을 쓸 수 없어 네이븅에 대충 쳐넣어 쓸 요량. 요즘은 장보는 시간을 내는 게 힘들어 아마존에서 주문을 자주 한다. 대개 덩치가 큰 화장지나 세탁용 물비누, 가습기 필터, 피넛버터, 아, 맞다. 쌀도 샀다. 대충 눈에 뜨이거나 팔고 있는 것 가운데 괜찮은 것을 주문하는 편이다. 미국이면 물건의 양도 종류도 다양할텐데 이 나라는 한국보다 인구가 적으니 뭐 말 다했지...
오늘 아마존에서 온 타전. 신라면 사라고.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찬찬히 뜯어보니 더더더 이상하다.
첫째, 카테고리가 일렉트로닉스 - 유에스비로 되어 있다. 먹는 건지, 아니면 유에스비인지 잘 모르겠다.
둘째, 만일 라면 하나만 파는 거라면 가격이 너무 비싸다. 그람 당 백십칠원 꼴이고 총120그람이니까 이만 오백 원 정도. 이 값을 주고 라면 하나를?
셋째,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배송비가 물경 이만삼천이백 원 정도? 이 제품은 아마존 프리미엄도 적용을 받지 않아 배송비 절감을 받을 수 없다.
여러 모로 미스터리한 신라면이다. 이런 점을 다 따져본 까닭은 신라면을 살 의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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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후기: 역시 사무실에서는 제대로 된 진보넷블로그 접근을 할 수 없다. 일터에는 방화벽이 참 많다. 한글 페이지가 열리는 게 신기할 따름. 집에서 다시 업데이트함.
길에대하여
분류없음 2016/01/30 22:52
제목: 길에 대하여
어제 일하던 중에 "인생의 길"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삶, 너의 삶, 클라이언트들의 삶, 동료들의 삶... 지구 상에 칠십 억의 인간이 살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칠십 억 개의 삶이, 칠십 억 개의 길이 있으리라.
미국인이 사랑하는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의 시, "가지 않은 길" 이란 시도 암송해보았다. 자, 다시 읽어보자.
The Road Not Taken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한국어로 번역한 것과 시인에 대한 것은 여기를 참고.
시를 읽다보니 갑자기 "가리워진 길"이란 노래가 떠오른다. 유재하가 작사작곡했고 1987년에 나온 그의 1집에도 실렸다. 김현식 3집이 1986년에 나왔으니 유재하의 이 곡을 김현식이 세상에 먼저 내놓은 셈. 최근에 아이유도 다시 부른 모양이다.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인생의 그 길이다.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보이지도 않는 안개 속에 쌓인 길. 다가가면 사라지는 무지개와 같은 길.
대학교 일학년 때 심취했던 루쉰 (1881-1936, 魯迅, Lu Xun) 의 글 가운데 이런 게 있었다. 어느 소설에 있었던 것인지,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희망이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길과 같다. 본래 길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Hope cannot be said to exist, nor can it be said not to exist. It is just like roads across the earth. For actually the earth had no roads to begin with, but when many men pass one way, a road is made.
옛날에 책 만드는 일을 할 적에 책 제목을 뭘로 하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루쉰의 저 구절을 떠올려 제목을 정했던 일이 떠올랐다. 사실 대학교 일학년 때에는 루쉰의 구구절절 옳은 말들을 나의 인생의 지침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엔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그렇지 못했다는 그런 반추. 스무 살은 여전히 어리고 그리고 여전히 갑갑한 나이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 인생이란, 살아보니까 그게 인생이 되는 것, 길이 만들어진 것에 진배없는 것 같다. 더 잘 살아봐야겠다. 길을 잘 내봐야겠다.
억울력발동
분류없음 2016/01/22 06:14
1.
정치란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다. 결과가 아니다. "막상 만나서 얘기해보니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서로 한 발 양보하는 선에서 얘길 마쳤어요." 이것은 정치의 결과, 그러니까 "갈등을 조정한 과정의 결과" 다.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상대방이 서로 그 문제(갈등) 를 1) 적정 수준에서 2) 함께 풀어냈다면, 이 과정은, 정치는 잘 한 셈이다. 절반 정도는 성공한 셈이다.
따라서 정치는 자연히 관계의 문제로 된다. 정치라는 행위는 인간이 둘 이상 모여 살아가는 곳이면 노상 발생한다. 커플 사이에서, 친구 사이에서, 일터에서, 동네에서, 버스에서, 식당에서, 꼬마들 놀이터에서도. 그런데 그 개인(들, individuals)-사람들이 처한 처지, 그들 각각의 요구 (니즈, needs)와 각자 지닌 자원 (리소스, resources) 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 각각의 처지, 요구, 자원에 따라 두 사람의 혹은 각 관계의 힘의 크기 (power balances)도 달라진다. 따라서 누군가 말한 "정치는 자원의 효과적인 배분" 이라는 것도 그 말 자체로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2.
약관의 나이에 처음 들었던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노동자 계급 정치" 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분명한 선언으로 다가왔다. 노동자민중이 스스로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주체로 서겠다는 어찌보면 발칙하기까지 한 이 말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어렸고, 기운이 넘쳤고,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좌정관천 ( 坐井觀千) 하는 경향이 컸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분명하고 매력적인 이 말이 닿기 어려운 유니콘의 세계에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미래가 어두워졌고 시쳇말로 "전망을 수립할 수 없는" 그런 당혹감이 커졌다.
아마도 "개인 대 개인" 이라는 주제에서 거대담론으로 급작스럽게 이동한 탓이 아니었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노동자 정치라는 것도 노동자 개인들이 하는 일인데 노동자 개인들이 지닌 각자의 요구와 처지, 그들이 삶에서 겪는 질곡들을 들여다보고 관찰할 여유와 속내를 지니지 못한 채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상현실을 그려낸 셈이다. 당시에 어떤 사람들은 "니가 [노동]현장 경험이 없어서 그래. 먹고사느라 박터지게 일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봐라" 며 현장행을 권하기도 했고 실제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사실은 나도 "먹고사느라 박터지게" 살고 있었다. 그들이 들여다봤을 때는 설렁설렁 얼렁뚱땅해보였을 나의 삶이 사실은 나도 나름대로 "박터졌는데" 그것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 설명했다한들 그들을 설득하여 차이를 좁힐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대 -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다른 정치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3.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를 참 잘 못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의 공공자원을 잘 배치하는 정치를 하기보다는 갈등을 증폭하고-혹은 없던 갈등도 만들어내고 사회의 공공자원을 한 쪽으로 몰빵하는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급정치" 라는 화두로 돌아와 냉정히 생각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녀가 속한 계급 사회에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최고의 계급정치를 하고 있다. 그녀가 지향하는 계급이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주체로 서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갈등과 대립이 필요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갈등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자원의 몰빵이 일어날 것이다. 솔직히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갈등과 몰빵에서 손해보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를 참 잘 못하는 것 같다" 고 말하는 것 뿐이다.
"노동자 계급 정치" 라는 말을 하면 뭔가 구태의연하고 스탈린 담배 피는 시절 소리 같은 그런 늬앙스를 줄 수도 있겠지만 - 따라서 별로 애써 목구멍 밖으로 꺼내고 싶은 말은 아니지만 - "계급정치"를 애써 말하지 않고도 훌륭히 (!) "계급정치"를 구사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보자니 내가 원하는 "계급 정치"는 대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계속 갈등의 희생양 (scapegoat) 이 되어 손해만 보고 살자니 뭔가 대단히 억울하다.
* 이 와중에 심금을 울리는 정희진 여사의 칼럼. 오늘 읽은 아티클 가운데 가장 찝찝하지만 정확한. 그래서 더 억울한.
꽃개의바람
분류없음 2016/01/15 04:24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 글쎄. 좋은 일이면 괜찮으려나 - 직장 상관에게 뭔가를 따로 보고한다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냥 얘기했다. 열정적인 상관은 바로 조치를 취하거나 이런저런 주문사항을 추가하는 것을 목격했고 복지부동하는 상관은 왜 그걸 나한테 얘기해,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면서 봉합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는데 그럴 땐 마치 군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우리나라 군대가 대부분 그런 식이란 걸 익히 들어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 꼭 가봐야 아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은 군대 그 자체이므로.
몇 달 전부터 옳지 않은 일이 회사에서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시프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사람을 직접 케어하는 일이다. 24시간 내내 서비스 이용자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이니 사람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그 가운데에는 근무자들이 인지하는 일도, 인지하지 못하는 일도, 사건사고가 일어나야만 알게되는 일도 있다. 모든 일을 다 근무자들이 인지하고 개입할 순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게 그렇다. 그만큼 "구멍"이 있을 수 있다. 촘촘하게 잔신경을 쏟아 일을 하면 그 구멍이 작아지거나 드물게 된다. 듬성듬성 손놓고 있으면 그 구멍은 어느새 크게 벌어져 블랙홀로 변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서비스유저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이내믹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런 게 참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한편으론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일을 방기하고 대충대충 뭉개는 요령도 원하든 원하지않든 자연스레 알게 되니 그 매너리즘을 경계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몇 달 전부터 일어났던 옳지 않은 일은 서비스유저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근무자들 내의 문제였다. 바로 내 앞의 시프트에서 발생하던 일이라서 나에게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았지만 매니징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편으론 그들에게 내가 알고 있다는 암시를, 매니저가 알 수도 있다는 암시를 여러 번 주었다. 일의 방법과 방편을 여러 번 바꾸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 여름, 누군가가 매니저에게 이 일을 보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니저가 알고 있는 이상 이미 내 손을 떠난 셈이다. 기다렸다. 매니저가 개입할 수 있는 시간과 그가 그의 리소스를 이용해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12월 말이 지날 때까지 가시적인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 달 초 일을 하던 와중에 결정적인 일이 발생했다. 나로 하여금 이젠 매니저에게 직접 리포트할 때가 다가왔다, 는 결심을 굳히게 만든 일이었다. 그 결심을 굳힌 뒤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악몽을 꾸고 과거의 환기-플래시백에 시달렸다. 만약 매니저가 이 건을 심각하게 다룬다면 그 둘은, 나의 동료 둘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매니저에게 리포트함과 동시에 이 건을 스무스하게 다룰 수 있는 두 가지 솔루션을 들고 매니저를 만나기로 했다. 매니저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약속시간을 컨펌하고나니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오늘 낮에 매니저를 만나고 돌아왔다. 미팅에 가져간 주제는 서너 개 정도였는데 첫째 주제를 다루자마자 매니저가 먼저 그 심각한 건에 대해 물었다. 우회할 수가 없었다. 사실을 아는대로 말하는 수밖에. 매니저는 화가 무척 많이 났고 심각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는 근거를 몇 가지 제시했다. 평사원인 나로서는 알지 못했던 근거들이었기에 그냥 가만히 들었다. 이젠 내 손을 완전히 떠났다. 만약 당사자들이 매니저의 결정에 불복해 보다 높은 상급자에게 이 사실을 가져가거나 혹은 소송을 제기하면 아마도 나는 증인 역할을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불편하고 시끄러운 일이 생기겠지. 하지만 변화는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변화를 허락하는 건강한 조직문화에서 일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최소한의 바람이다.
속이 편하지 않지만 이제는 잠을 잘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몹시 찼고 감기기운이 일었다. 걱정이다. 건강하자. 몸도 마음도.
엄마의전쟁
분류없음 2016/01/07 13:51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한국 텔레비젼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들을 이 곳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케이블 서비스에 더해 따로 서비스를 신청해야 했는데 이젠 랩탑만 있으면 된다. 우리집엔 텔레비젼은 아예 없고 랩탑이나 아이패드를 통해 몇몇 애정하는 프로그램들을 곧잘 보곤 한다. SBS 스페셜 "엄마의 전쟁" 이 하도 going viral 하기에 보고 싶어 찾아봤는데 이 프로그램은 서비스를 하지 않는지 별도로 어둠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지 아직까지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두어 군데 웹사이트에서 보며 속이 터졌던 캡쳐 버전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참 이해하기 힘들다. 멀쩡히 고등교육까지 받은 여성이 (게다가 연봉이 6천. 크헉) 저렇게 정신적으로 얻어터져가면서 인격적 모욕과 수모를 감수하고 살아간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내 눈을 의심하는 순간.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아니면 저렇게까지 살아야하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 개인의 사정을 나로선 알 수 없으니 거기까지는 그저 그렇구나,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다. 마치 내가 당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마음이 많이 아프다. 연봉이 6천이면 이혼을 하고 혼자 아이를 키워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은데 -- 타인의 삶을 내 기준으로 이러쿵저러쿵 재단하고 설계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기에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
얼마 전에 이 곳에서 만난 어떤 중년 여성 분과 대화를 하다가 그 분의 남편, 시집살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똑똑하고 멀쩡한 그 분이 부당한 시집살이를 했을 거라곤 짐작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여느 평범한 "반도의 기혼여성"과 그리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치셨다. 한참 들으면서 대화를 하다가, 실례지만 이런 거 여쭤봐도 될까요. 선배님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저는 솔직히 잘 상상이 안돼요. 선배님께서 그런 일을 겪으셨다는 게. 그토록 아저씨를 사랑하셨던 건가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상대방의 대답이 압권이었다. 저도 제가 그렇게 살 거라곤 그런 일을 겪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저는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여겼죠. 나한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정말 오만했어요. 인생을,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본 거죠.
인생이라는 게, 삶이라는 게 그렇게 생각처럼 "되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엄마의 전쟁"에 나오는 저 여성처럼 후려침을 당하고 인격적 모욕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한둘은 아닐 것이다. 이른바 "코르셋"을 단단히 조이고 대부분 여성들이 이렇게 산다, 면서 자신의 삶을 정당화(justification) 하면서 혼자 잘 살아가면 뭐 큰 문제는 없겠는데, 정작 문제는 이러한 기준을 자신 외부의 사람들에게 강요하거나 정상인 것처럼 주장할 때 발생한다. 마치 군대 다녀온 예비역들이 우리나라 군대의 문제를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 그리고 본인이 누구보다 잘 겪었으면서도 - 여전히 "군대갔다와야 사람된다"는 지론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이치.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하니 그냥 일단 해보라는 이성애자 기혼자들의 공범자 만들기 논리와 비슷한 이치.
방송화면 캡쳐에 아직까지는 "전통적"으로 엄마가 육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저 아저씨는 아마도 자기 생각을 저렇게 당당히 말하는 게 뭐가 문제인지 모를 가능성이 높다. 저런 사람은 정말 한 대 "정통"적으로 맞지 않는 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저 아저씨에겐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전쟁, 이라는 타이틀보다는 아마도 엄마는 식민지, 여자는 식민지라는 타이틀이 더 맞지 않나, -- 어느 트위터리안의 지적처럼 --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코르셋으로 단단히 무장한 "여성들"이나 아니면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오만한 "여성들"이 대다수이기에 그 세상이 유지되지 않겠는가 싶다. 저런 아저씨들이 억울하다고 섭섭하다고 "당당히" 말해도 괜찮은 그런 세상이 잘 유지되고 잘 돌아간다. 식민지는 식민지를 구성하는 인민들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초과착취 없는 식민지는 이미 식민지가 아니다.
4차핵실험
분류없음 2016/01/07 11:19
북한이 그들 주장에 의하면 "수소 폭탄"이라고 주장하는 4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이 뭔 짓을 저지를 때마다 페이스북 친구 가운데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의 계정을 가장 먼저 살피는 일이 언제부터 습관으로 되어버렸다. 한국 정부나 국가정보원의 발표는 대개 하나마나한 소리이거나 신빙성없고 가치없이 들린다. 그리고 이들이 떠드는대로 받아쓰는 한국발 언론도 대부분 그저 그렇다. 대북정보를 담당하는 국가정보원은 댓글다는 일 따위는 아주 전격적이고 조직적으로 잘하는데 정작 밥값을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하지 않아도 월급이 따박따박 잘 나오니까. 따라서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어쩌면 더 빠르고 정확하게 느껴지고 이런 일을 몇 차례 겪다보니 인식이 아예 그렇게 굳어져버렸다.
어쩔 수 없다. 고향땅에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고 연을 잇고 싶은 지인들이 고향땅에서 살고 있다. 한반도에 뭔 일이 날 때마다 혹은 고향 생각을 할 때마다 그들의 안위가 염려된다. 나 또한 이 먼 타지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
북한 정부 이 웬수놈들아, 작작 좀 해라. 니덜은 어쩌면 그렇게 박귾혜 좋아하는 일만 시의적절하게 딱딱 맞춰서 해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