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전쟁
분류없음 2016/01/07 13:51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한국 텔레비젼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들을 이 곳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케이블 서비스에 더해 따로 서비스를 신청해야 했는데 이젠 랩탑만 있으면 된다. 우리집엔 텔레비젼은 아예 없고 랩탑이나 아이패드를 통해 몇몇 애정하는 프로그램들을 곧잘 보곤 한다. SBS 스페셜 "엄마의 전쟁" 이 하도 going viral 하기에 보고 싶어 찾아봤는데 이 프로그램은 서비스를 하지 않는지 별도로 어둠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지 아직까지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두어 군데 웹사이트에서 보며 속이 터졌던 캡쳐 버전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참 이해하기 힘들다. 멀쩡히 고등교육까지 받은 여성이 (게다가 연봉이 6천. 크헉) 저렇게 정신적으로 얻어터져가면서 인격적 모욕과 수모를 감수하고 살아간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내 눈을 의심하는 순간.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아니면 저렇게까지 살아야하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 개인의 사정을 나로선 알 수 없으니 거기까지는 그저 그렇구나,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다. 마치 내가 당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마음이 많이 아프다. 연봉이 6천이면 이혼을 하고 혼자 아이를 키워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은데 -- 타인의 삶을 내 기준으로 이러쿵저러쿵 재단하고 설계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기에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
얼마 전에 이 곳에서 만난 어떤 중년 여성 분과 대화를 하다가 그 분의 남편, 시집살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똑똑하고 멀쩡한 그 분이 부당한 시집살이를 했을 거라곤 짐작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여느 평범한 "반도의 기혼여성"과 그리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치셨다. 한참 들으면서 대화를 하다가, 실례지만 이런 거 여쭤봐도 될까요. 선배님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저는 솔직히 잘 상상이 안돼요. 선배님께서 그런 일을 겪으셨다는 게. 그토록 아저씨를 사랑하셨던 건가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상대방의 대답이 압권이었다. 저도 제가 그렇게 살 거라곤 그런 일을 겪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저는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여겼죠. 나한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정말 오만했어요. 인생을,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본 거죠.
인생이라는 게, 삶이라는 게 그렇게 생각처럼 "되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엄마의 전쟁"에 나오는 저 여성처럼 후려침을 당하고 인격적 모욕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한둘은 아닐 것이다. 이른바 "코르셋"을 단단히 조이고 대부분 여성들이 이렇게 산다, 면서 자신의 삶을 정당화(justification) 하면서 혼자 잘 살아가면 뭐 큰 문제는 없겠는데, 정작 문제는 이러한 기준을 자신 외부의 사람들에게 강요하거나 정상인 것처럼 주장할 때 발생한다. 마치 군대 다녀온 예비역들이 우리나라 군대의 문제를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 그리고 본인이 누구보다 잘 겪었으면서도 - 여전히 "군대갔다와야 사람된다"는 지론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이치.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하니 그냥 일단 해보라는 이성애자 기혼자들의 공범자 만들기 논리와 비슷한 이치.
방송화면 캡쳐에 아직까지는 "전통적"으로 엄마가 육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저 아저씨는 아마도 자기 생각을 저렇게 당당히 말하는 게 뭐가 문제인지 모를 가능성이 높다. 저런 사람은 정말 한 대 "정통"적으로 맞지 않는 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저 아저씨에겐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전쟁, 이라는 타이틀보다는 아마도 엄마는 식민지, 여자는 식민지라는 타이틀이 더 맞지 않나, -- 어느 트위터리안의 지적처럼 --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코르셋으로 단단히 무장한 "여성들"이나 아니면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오만한 "여성들"이 대다수이기에 그 세상이 유지되지 않겠는가 싶다. 저런 아저씨들이 억울하다고 섭섭하다고 "당당히" 말해도 괜찮은 그런 세상이 잘 유지되고 잘 돌아간다. 식민지는 식민지를 구성하는 인민들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초과착취 없는 식민지는 이미 식민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