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대하여
분류없음 2016/01/30 22:52
제목: 길에 대하여
어제 일하던 중에 "인생의 길"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삶, 너의 삶, 클라이언트들의 삶, 동료들의 삶... 지구 상에 칠십 억의 인간이 살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칠십 억 개의 삶이, 칠십 억 개의 길이 있으리라.
미국인이 사랑하는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의 시, "가지 않은 길" 이란 시도 암송해보았다. 자, 다시 읽어보자.
The Road Not Taken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한국어로 번역한 것과 시인에 대한 것은 여기를 참고.
시를 읽다보니 갑자기 "가리워진 길"이란 노래가 떠오른다. 유재하가 작사작곡했고 1987년에 나온 그의 1집에도 실렸다. 김현식 3집이 1986년에 나왔으니 유재하의 이 곡을 김현식이 세상에 먼저 내놓은 셈. 최근에 아이유도 다시 부른 모양이다.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인생의 그 길이다.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보이지도 않는 안개 속에 쌓인 길. 다가가면 사라지는 무지개와 같은 길.
대학교 일학년 때 심취했던 루쉰 (1881-1936, 魯迅, Lu Xun) 의 글 가운데 이런 게 있었다. 어느 소설에 있었던 것인지,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희망이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길과 같다. 본래 길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Hope cannot be said to exist, nor can it be said not to exist. It is just like roads across the earth. For actually the earth had no roads to begin with, but when many men pass one way, a road is made.
옛날에 책 만드는 일을 할 적에 책 제목을 뭘로 하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루쉰의 저 구절을 떠올려 제목을 정했던 일이 떠올랐다. 사실 대학교 일학년 때에는 루쉰의 구구절절 옳은 말들을 나의 인생의 지침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엔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그렇지 못했다는 그런 반추. 스무 살은 여전히 어리고 그리고 여전히 갑갑한 나이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 인생이란, 살아보니까 그게 인생이 되는 것, 길이 만들어진 것에 진배없는 것 같다. 더 잘 살아봐야겠다. 길을 잘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