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감도
분류없음 2016/01/03 16:07
제목: 폭력의 민감도
아무래도 하는 일이 경찰과 빈번히 접촉하는 일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들 (service users) 이 형법을 위반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 일상적으로 혹은 비상 상황을 겪을 때마다 폭력이란 무엇인지 되새김질하게 된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하고 지나쳤을 상황들이 지금 나의 조건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이 태반이다. 쟤는 술을 마셨으니까, 쟤는 원래 그런 나라에서 이민왔으니까, 쟤는 원래 좋은 집안 출신이니까, 쟤는 고등교육을 받고 박사학위까지 있으니까, 쟤는 우리 매니저가 데려온 클라이언트니까... 사람의 행위와 회사의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닌 백그라운드로 그 당사자를 판단하는 일, 그래서 그 사람의 잘못이 잘못 아닌 것으로 되는 일. 그런 갈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원칙으로 회귀한다. 나는 그렇게 지루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편으론, 폭력의 체감도, 민감도가 높은 사람과 시프트 파트너가 되어 일할 때,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일할 때 피로도도 덩달아 높거나 낮다. 가령 폭력의 기준이 상당히 얼척없는 나라에서 이민온 사람과 일할 때는 클라이언트들이 욕을 하고 뭔가를 집어던져도 별 것 아닌 것으로 된다. 그럴 땐 폭력을 저지른 당사자보다 시프트 파트너를 설득하는 일이 더 힘들다. 이게 왜 폭력인지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 자기는 전혀 위협을 못 느꼈다고 하면 - 공감능력이 제로인 이 남자들에게 혹은 여자들에게 - 일일이 설명하고 호소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위협을 느꼈는지 알아, 그럼 그 가운데 일부는 말한다. 알았어 그럼 니가 경찰 불러.
반면 폭력의 체감도, 민감도가 높은 사람과 시프트 파트너가 되어 일하면, 오히려 내가 설득의 대상이 된다. 꽃개야, 우리는 이걸 용인하면 안돼. 바로 경찰을 부르고 도움을 요청하자. 껄쩍찌근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시프트 파트너는 자기 감정을 털어놓는다. 이 국면에서 나는 깨닫는다. 아, 이이가, 이 양반이 힘들었구나. 알았어. 그래. 내가 부를께. 911 다이얼을 돌리면서 후회하거나 깨우침을 얻는다. 아 이건 폭력이야. 맞아맞아. 나는 왜 이걸 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했을까.
최근 들어 살이 많이 빠져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 나라에 온 뒤 살이 빠졌네, 살이 쪘네... 나의 면전에서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오직 한국인밖에 없었다. 한국을 떠난 지 십 년이 넘었든, 이십 년이 넘었든 상관없었다. 심지어 나는 그들과 친한 관계가 전혀 아니었다. 인사치레로 말하는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해줘야 하나. 타인의 외모에 대해서, 특히 바디쉐이프 (body shape) 에 대해서 상대의 동의없이 묘사하는 건 실례입니다. 말해주면 알까. 알면 다행이겠지만 알 턱이 있...을까? 그들은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왜냐면 옛날에 내가 그랬으니까. 뭐야 너, 생리 중이냐? 발기부전이야? 삐쩍 꼴아서 삐쩍 꼴았다고 하는데 뭐가 문제야.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다. 깨달음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