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떤 일로 인해 종일 들뜬 채로 보낸 탓인지 -- 신경을 많이 쓴 뒤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숙면을 취하지 못했고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운동한 뇌는 온 몸을 노곤하게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만들어 짝과 함께 먹고 짝의 출타 뒤 버스 시간표를 보며 씻고 가방을 챙겨 외출.
나중에 조우해 간만에 짝과 함께 데이트. 데이트라고 해봐야 커피/차를 마시고 함께 장을 보는 정도지만 꽃개는 이런 데이트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음부턴 씨게 표현할끄야)
감정/애정 표현이라는 것도 훈련을 해야 되는 거지 맘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암만, 말하지 않는데 어찌 아누. 온 인류가 전지적 관점을 갖고 있지 않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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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만든 열무물김치를 오늘 다시 만들었다. 오늘은 한국인그로서리에 몸소 왕림하시어 종자만 한국산인 온타리오산 한국열무를 두 단 구입. 하나에 $0.99. 가격을 보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난 번 것은 (아무리 올가닉이어도) $2.99였다. 또 다른 로컬 상점에서 본 올가닉이 아닌 여름 열무의 가격은 $1.99였다. $0.99라면 도대체 이것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은 얼마일까. 가격이 싸다고 좋은 게 아니다. 질 좋은 품질의 로컬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 것은 기쁘고 감사한 일이 분명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못한 노동의 대가, 의당 그들의 몫이 분명한 일정 부분이 중간에서 과감히 생략된 것이 눈에 뻔한 이 가격의 마법.
간혹 차이나타운을 걷거나 지나다보면 그로서리 앞에 밀집한 일군의 사람들을 본다. 백인, 황인, 흑인 다양하다. 가격이 저렴한 차이나타운그로서리는 도시에서도 유명하다. 중국이나 여타 제3세계에서 수입한 생산물들은 일단 그렇다 치자. 로컬 생산물들이 말도 안되는 가격표를 붙인 채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시리다. 그들의 노동이 눈에 어른어른하다. 그들이 나이고 내가 그들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내 맛에 맞게 맛있게 해먹는 이면에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이런 부분들까지 세세하게 기억하다보면 솔직히 말해 "피곤"하다. 정신이 피로하다는 말이다. 근자에 읽고 있는 책에 따르면 나의 도덕/정의 메카니즘 작동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행위하고 있지 못한" 죄책감이 더 큰 탓이다. 아무렴. 그러나 지금 나는 움직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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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탓인지 초저녁에 잠이 들어 자정 무렵 깼다. 일상이 배배 꼬인 듯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잎사귀에 매달린 이슬처럼 하루하루를 산다.
어린 꽃개가 엄청나게 좋아했던 소유진 여사. 소여사의 남편인 백종원 선생께서 메인을 맡고 계신 어떤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이것은 정말로 신의 은총이다. 80년대, 뽀뽀뽀 뒤에 하던 '오늘의 요리'보다 실용적이다. '노희지의 꼬마요리사'보다 더더욱 쉽다. 신동엽과 성시경이 이빨까는 것보다 한참 더 알차다. 그만큼 인간적이고 이해하기 "쉽다".
아주 옛날. 집에 놀러온 동아리 후배들과 먹고 마시며 떠들다가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 고스톱을 쳤다. 당첨된 남자후배가 산더미같은 설겆이를 하게 됐는데 정말로 그 친구는 그릇"만" 씻었다. 싱크대에 고스란히 남은 고추가루와 음식 쓰레기를 보고 "이건 왜 안 치웠냐"고 했더니 "그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대답을 듣고 기함을 토했던 기억이 난다. 설겆이를 하면서 정말로 이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진짜진짜 눈에 뜨이지 않았다고 했다. 자기는 그릇만 씻기로 한 게 아니었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순간 그 대답의 진실성을 의심했지만 그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이십이 넘게 살면서 설겆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을 산 사람과 이십은커녕 열 살이 넘어서면서부터 설겆이는 물론이고 밥을 차리고 해 먹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의 시야는 서로 이렇게 다르구나, 그 때 깨달았던 것 같다.
요즘 (한국) 남자들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밥을 하고 밥을 먹고 그릇을 치우는 일조차 과거의 한국 남자들은 잘 하지 못하였다-못하였던 것 같다. 꽃개의 아버지는 물론이었고 80-90년대 운동권 남자선배들/동료들도 의당 그런 일은 아내나, 누이나, 여성동지들이 해내는 일로 여기기 일쑤였다. 물론 일부 운동권 남자선배들/동료들 가운데 그런 일을 잘 해내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지만 거의 가뭄에 콩나는 확률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그런 일을 여성들의 일로 치부하는 전통적 젠더롤과 본인 스스로 그러한 젠더롤을 뼈속깊이 받아들이는 탓도 있었지만 대부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탓이 컸다. 모르는 데 어떻게 하랴?
소여사의 남편인 백종원 선생께서 이끄시는 이 프로그램을 접하면 그 무지는 더 이상 사회적인 익스큐스가 될 수 없다는 일단의 "징조"를 보여준다. 일단 음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식재료를 어떻게 고를 것인지, 하나하나 차분히 가르쳐주므로 더 이상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라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통용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늘 깨끗한 소여사의 남편, 백선생의 싱크대를 보면서 느끼는 것도 있을 것이다. 느끼는 것이 없다면 그이는 세렝게티의 하이에나일까?
이빨 까는 요리 프로그램, 맛집 탐방보다 소여사의 남편, 백선생이 이끄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더더욱 더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널린 게 티비 프로그램인데 그런데도 모르겠다, 면 답은 뻔하지 않나? 제발 너 혼자 사세요. 그러니까 안 생겨요.
엊그제는 다른 포스팅을 하려고 했는데.... 얼마 전 한 사람이 경찰의 총에 맞아 즉사했다. 앤드류 로쿠, 마흔 다섯살, 다섯 아이의 아버지, 남수단에서 온 망명자, 젊었을 때 군인으로 강제복무하며 내전을 겪었고 이 경험과 기억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 를 진단받았다. 최근 컬리지에서 건설관련 학업을 마쳤고 고향에 있는 가족과 재조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앤드류는 공공지원을 받는 삼층짜리 아파트 빌딩 2층에 세들어 살았고 최근 3층에 사는 이웃들이 내는 소음 (층간소음으로 추측) 과 여러 다른 이유로 불면증을 호소했다. 사고가 발생한 날에도 앤드류는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학업 및 작업용 연장 중 하나였던 해머를 든 채 3층에 올라가 이웃들에게 제발 잠 좀 자자, 하소연을 했지만 이웃이 부른 경찰은 바로 출동, 두어 번의 경고 끝에 앤드류에게 총을 쐈고 그는 바로 죽었다. 사고를 목격한 주민에 따르면 경찰이 출동 직후, 무기를 내려놓으라, 경고한 뒤 총을 발사하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로컬 신문을 통해 앤드류를 봤을 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사람인데, 하는 생각을 했다. 교회에서 만났었나, 아니면 자원활동을 하던 로컬 단체에서 만났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알고보니 꽃개가 일하는 프로그램에서 클리너로 잠시 일했던 사람이다. 사고가 발생한 약 스무 개의 유닛을 둔 삼층짜리 건물도 꽃개를 고용한 회사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직원 전체 이메일을 보내 이 사건에 대해 언론이 인터뷰를 요청할 시 법을 저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과 함께 장례식/앤드류의 가족을 위한 도네이션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프론트라인에서 일하면서 체득한 습관 때문인지 희생자 개인이 놓인 상황에 먼저 관심이 간다. 또 꽃개의 프로그램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앤드류가 살던 하우징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희생자 및 이번 일로 트라우마를 겪거나 겪었을 사람들이 놓인 상황에 신경을 먼저 쓰게 된다. 전반적인 하우징 정책, 경찰의 과잉대응 (이번 건은 경찰에 의한 "살인"이다), 회사의 대응이 옳았는지 등등 아무래도 마이크로 레벨을 넘어서는 것에 관해선 그 다음에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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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지금은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정리조차 할 수 없을만큼 혼란하고 복잡한 심경이다. 앤드류의 케이스메니저가 앤드류의 불면증과 층간소음 문제를 미리 알았다면, 스무 개가 넘는 유닛를 관리하던 관리인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했더라면, 경찰이 조금 더 훈련받은 - 무기를 든 채 격앙된 사람을 대하는 스킬을 조금 더 잘 체득한 사람이었다면... 사람 개개인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는 것을 넘어 시스템에 대한 의아함과 그의 비판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게 힘들다. 심리적으로 힘들다. 아마 나도 트라우마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나만 안다. 내 스스로 정리하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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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숨지거나 다친 사람들은 대부분 잘 살아보겠다고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일궈보겠다고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거나 이 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리고 절대다수가 "흑인"이거나 "유색인종"이다.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경찰이 터무니없이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 "피의자" 대부분은 여전히 노동자이거나, (비백인) 이주민이거나, 소득이 낮거나, 혹은 정신질환을 알게모르게 앓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공권력의 야만성 이면에 자리한 차별과 편견, 인권 유린의 본질에 대해 또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지만 뭐랄까 이번에는 더더욱 심경이 복잡하다.
"보이는 것만으로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니. 아무도 몰라 (we never know). 어쨌든 알려줘서 고마워"
책상에 앉아서 다른 일을 하는데 이 남자가 밥 먹을 때 쓰는 나이프를 들고 다가왔다. 2초 정도 또 식겁했지만 시선을 다른 데 주고 물었다.
"안녕. 뭐 필요한 거 있어?"
"아까 네게 질문한 건 너를 불편하게 할 의사가 아니었어. 미안해 (my apologies, didn't mean to be offended) "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 괜찮아. 어리석은 질문이란 건 없어 (no stupid questions) "
상황을 요약하자면, 본인 스스로 남자라고 여기며 자신의 외모를 본 사람은 누구든 명백히 자기 자신을 남성으로 인지할 것이라 여기는 이 남자는 꽃개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정말로 궁금했거나 그 질문을 계기로 꽃개를 희롱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희롱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질문 - 그런데 너는 남자야, 여자야 - 을 받고보니 불쾌했나보다. 그리고 그 불쾌함 때문에 상대방도 불쾌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사과한 것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게 요즘 메갈리안지 디씨인지에서 유행하는 미러링인가 싶다. 미러링 맞나?
* 글로 옮기고보니 이상한 게 있다. 내 귀엔 그렇게 들렸는데 문법적으로 틀린 말. 아이 몰라. 수동태로 말하는 게 일상이라서 그런지 내 귀가 잘못된 건지. 다시 물어볼 수도 없고. 젠장.
한국에 있을 때 정신질환에 관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한 것도 아니라 한국의 보건의료 분야에서 정신질환을 어떻게 다루는지, 당사자들-가족/친구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사람들의 관심과 생각 (편견 포함) 은 어떤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사람들이 "정신병자"를 운운할 때 그 단어가 쓰이는 컨텍스트를 헤아려보면 지독한 편견이 횡행하며 당사자를 얕잡고 하찮은 것으로 대상화하여 당사자 개인(들)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것은 알 수 있겠다. 박귾혜 식으로 말하면 "개인의 일탈"이다.
우울증, 조현증, 경계성 인격장애, 소시오패스 등 우리 입과 귀에 익숙한 정신질환 명칭들은 모두 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에 따른 것이다. 조선시대에 그런 명칭들이 이미 있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떠오르는 일로는 정신질환 (정신장애) 을 뭔가 신이 내린 일 내지 귀신이 작용하는 일 - 천형 - 로 여긴 "문화"다. 아주 어릴 때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어른이 동네에 살았는데 어느날 동네가 떠나갈 정도의 큰 굿이 열렸다. 지금 생각으로는 '간질병'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어른의 병이 나았는지 기억엔 없고 무척 큰 규모의 굿이었다는 점, 굿을 한참 구경하고 떡을 먹은 기억 정도만 남아있다.
이런 한국의 고전적인 샤머니즘 문화를 천박하다거나 무지몽매하여 형편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아가 정신질환을 잘 다룰 수 없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당사자의 장애가 당사자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탁월한 접근이었다. 따라서 사람의 힘이 아닌 것을 빌어 그 치료 (treatments) 를 시도한 것은 진단과 처방이 한 박자로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아울러 굿판을 벌여 온 동네 사람들의 다친 마음을 아우르고 음식을 나누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일도 오늘의 관점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공동체적 치료 방식 (community treatment) 이다. 이런 접근과 관점은 비단 한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책을 보면 서구제국주의가 침략하기 이전 아프리카와 아시아 몇몇 나라에서는 "조현증 (정신분열증)" 이라는 병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구 제국주의 + 미국/유럽 주도의 제약자본이 침투하면서 DSM에 따른 정신질환 카테고리가 세분화되었고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상처/정신의 혼란이 서구식 이름을 얻었다. 북미나 남미,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유러피안 백인들이 침략하기 전부터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도 그들 나름의 독창적인 처방과 치료 방법을 갖고 있었다. 북미의 어떤 원주민 종족은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온갖 향료와 야생허브로 치료하면서 부족이 함께 모여 굿을 하고 당사자에게 사색할 시간을 주었다고 한다. 당사자는 며칠동안 혼자 혹은 사랑하는 사람 + 짐승과 함께 지내면서 공동체로 복귀할 준비를 한다. 그가 "건강하게" 돌아오면 온 공동체는 축제를 벌이고 그가 죽거나 "회복하지 못해도" 역시 공동체는 축제를 벌인다. 그의 문제는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미 원주민의 전통을 읽은 리퍼런스를 지금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한국사회의 정신질환에 관한 보건의료계의 현황, 사회의 대응 등은 앞에서 말했듯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 여전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 "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 1999)" 등에서 투사하는 방식으로 정신질환을 대하는 것은 아닐까 심한 우려가 든다. 1968년을 경과하며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폐기된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면서 하지만 서구의료기준의 관점으로 정신장애에 접근한다면 오히려 이것은 "굿을 하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 모두 "이윤/이문을 남기는 것"이 정상인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에 더해 더 좋고 품질이 뛰어난 약물을 있는데도 그것을 처방할 수도/받을 수도 없는 사회라면 답은 뻔하지 않나.
덧 1.
"처음 만나는 자유"는 1999년-2000년 사이에 서울 시내 영화관에 걸렸다.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이효리+수지" 급이었던 위노나 라이더와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안젤리라 졸리가 주조연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입소문을 탔지만 막상 들여다본 영화는 뜨악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처음 만나는 자유"라니? 갸우뚱스러운 제목이지만 또 당시에 유행했던 모 통신회사 카피를 떠올리면 그닥 이상하지도 않다. 오히려 친근하다. 영화수입상과 마케터들의 솜씨가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자, 그 광고를 보자. 한겨레신문 1999년 7월 15일자 12면 전면광고. 므흐ㅛ.
덧2.
위에서 언급한 두 영화는 모두 훌륭한 영화다. 개인적으로 그렇다. 첫째로 두 영화는 모두 언젠가 책에서 읽은 환자 (대안) 공동체를 떠올리게 했다.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자료를 충분히 접한 것도 아니지만 존재한다면 당사자들의 저항과 권력이 저렇게 용솟음쳤으면 좋겠다, 하고 바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영화 속에서 당사자들의 저항은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고 열린 결말로 끝난다. 물론 보기에 따라 "보기좋게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꽃개 눈엔 그렇지 않았다는 거. 울림이 강했다. 둘째, "처음 만나는 자유"는 실화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지만 (젊은)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힘으로 대안과 자아를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노나 라이더와 안젤리나 졸리의 섹시하고 어여쁜 이상을 기대했던 뭇남성 플러스 어렸던 꽃개를 포함 일부 비남성 관객들에겐 멘붕을 초래했지만...) 두 영화 모두 꽃개에겐 인생의 영화다.
408일을 굴뚝에서 보낸 한 노동자가 땅에 닿자마자 경찰에 의해 구치소로 보내졌다. 스타케미컬 해고노동자 마흔 여섯 살 남성 차광호 // 사람은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 동물이다. 날개도 없고 지느러미나 아가미도 없다. 날개가 있고 지느러미나 아가미가 있는 동물도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 차광호 씨가 굴뚝에서 내려오자 의료진은 협심증 소견을 내놓았지만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이미 세워놓은 구속수사 방침을 집행하기 위해 구치소로 입감 조치했다. 경찰이 근거로 든 차 씨의 혐의는 업무방해죄와 건조물침입죄. // 408일을 중력에 맞서 산 사람이 땅으로 내려와 발을 딛었다. 그의 몸은 건강할까. 구치소 생활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경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할 수 있을까. // 경찰이든 누구든 제대로 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408일을 허공에서 살다 내려온 이의 물리적, 정신적 건강을 먼저 따져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심문하고 추후에라도 문제의 소지를 남기지 않는 분명한 조서와 그 결과를 내올 수 있지 않겠는다 말이다. // 차광호 씨는 분명 아프다. 그것은 분명하다. 강호동 할아버지가 와도 굴뚝에서 408일을 살면 당연히 몸과 마음이 아프다. 그게 사람이다. // 그 어떤 대역죄를 졌든 일단 사람을 제대로 고쳐놓고 그 뒤에 따져물을 걸 물어라. 그래야 결과도 확실하다. // 사람 몸을, 사람 정신을 사람 것이 아닌 것처럼 다루는 일에 환장하겠다. 한국내 관련법은 없는 건가, 찾아볼 기운도 없을만큼 속이 터진다. // 차광호 씨에게 변호인단이 있다면 차 씨와 변호인단은 이 일을 나중에라도 분명히 짚고 따졌으면 싶다. 이것은 학대다.
설마 나 혼자는 아니겠지. '세범'이란 글자를 한국에 있을 때 본 것 같기는 하다. 언니들이 쓰던 화장품에 있었던 듯. 화장실에서 'SEBUM CONTROL'이라고 쓰인 작은 화장품 발견. 작년에 한국에 들른 짝이 가져온 것. 어라. 영어로도 세범? 이게 설마 영단어일 거라곤 미처 몰랐다. 네이버에 한글로 '세범'을 치니까 '노세범' 자동완성. 오호 사람 이름인가. 혹시 화장품 발명가? 클릭해서 읽어보고 기절할 뻔. 영어 단어였어. "씨이븸" 비슷하게 읽는. 뜻은 '피지'. 젠장. 노세범, 사람 이름 아닙니다.
1989년에 나온 이이의 노래는 당시 획기적인 히트를 쳤는데 소방차나 박남정, 김완선처럼 퍼진 것은 아니고 라디오 유저들을 통해 알음알음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당시에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이문세의 별밤을 듣진 않았고 이종환의 디스크쇼를 들었던 것 같다. 별밤은 솔직히 말해 한 번도 청취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이문세 때문이었다. (아 유치해)
당시에 같이 어울리던 몇몇 친구들 가운데 밤에만 만나는 녀석들이 있었다. 둘 혹은 서넛이 만나 시민회관 같은 곳 마당에 있는 풀섶에 들어가 음주가무를 일삼다가 흥이 나면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휘젓고 다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전거가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다. 아마 길에 있는 아무 자전거나 탔던 것 같아. 죄송합니다. ) 그 녀석들 가운데 한 친구가 이승환 1집을 들어보라고 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그 음악들을 주구장창 들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당시 나에겐 마이마이 같은 휴대용 카세트테입재생기가 없었으니까 아마도 그 친구가 빌려줬겠지. 아아아 그 친구는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덧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산한 것 같기는 함. 종종 도시의 경계를 넘어 옆 도시들로 원정을 다니기도 했다. 오토바이였으면 딱 폭주족이겠구나. 어흐.
하나님은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시지는 않는다. 오늘 근무를 하는 동안 마음이 몹시 평안해졌다, 면 거짓말이고 그냥 내 마음을 관찰했다. 미국의 동성결혼 대법 판결이 "반대"로 나오기를 애타게 기도하셨다는, 새벽기도를 하며 울부짖었는데도 정반대의 결정이 나와 몹시 절망적이라는 어떤 한국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드렸다. 이민온 지 십 년이 넘은 이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전 같으면 분노에 치를 떨었을텐데 이상하게도 담담했다. 사실 미연방 대법원 판결은 그저 "대세"일 따름이다. 극렬히 반대하는 이성애자들의 삶에는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들의 주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면 될 일이다. 다만 어느 누군가 어떤 이들은 약간의 혹은 큰 행복을 누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행복, 물론 이혼도 포함해서. 달라질 건 그 뿐이다. 이제 결혼 (이혼) 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들의 성정체성과 무관하게 누리고 싶은 그 권리를 누리면 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세"라는 거다. 나는 왜 그들이 타인의 행복할 권리를 애타게 눈물 뿌려가며 기도하며 반대하는지 진실로 궁금하다. 어떤 이익도, 혜택도 돌아오지 않는데 그들은 그들의 소중한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그 훼방전선에 앞장선다. 기이하다. 보수도 대가도 없이 열정을 불사르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정신이다. 나같은 사람이야 결혼제도에 그닥 관심이 없어 뜨뜬미지근했지만 정말로 정말로 관심이 많았다면, 만약에 정말로 그것을 바랐다면 그들처럼 애타게 울부짖으며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기를 무릎이 까지도록 기도할 수 있었을까. 그러한 열정과 바람과 애타는 사모를 나는 과연 품을 수 있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지는 않는다. 그것은 확실하다. * 이것은 어떤 비아냥도 깝침도 아닌 진지한 관찰의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