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심경

분류없음 2015/07/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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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다른 포스팅을 하려고 했는데....  얼마 전 한 사람이 경찰의 총에 맞아 즉사했다. 앤드류 로쿠, 마흔 다섯살, 다섯 아이의 아버지, 남수단에서 온 망명자, 젊었을 때 군인으로 강제복무하며 내전을 겪었고 이 경험과 기억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 를 진단받았다. 최근 컬리지에서 건설관련 학업을 마쳤고 고향에 있는 가족과 재조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앤드류는 공공지원을 받는 삼층짜리 아파트 빌딩 2층에 세들어 살았고 최근 3층에 사는 이웃들이 내는 소음 (층간소음으로 추측) 과 여러 다른 이유로 불면증을 호소했다. 사고가 발생한 날에도 앤드류는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학업 및 작업용 연장 중 하나였던 해머를 든 채 3층에 올라가 이웃들에게 제발 잠 좀 자자, 하소연을 했지만 이웃이 부른 경찰은 바로 출동, 두어 번의 경고 끝에 앤드류에게 총을 쐈고 그는 바로 죽었다. 사고를 목격한 주민에 따르면 경찰이 출동 직후, 무기를 내려놓으라, 경고한 뒤 총을 발사하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로컬 신문을 통해 앤드류를 봤을 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사람인데, 하는 생각을 했다. 교회에서 만났었나, 아니면 자원활동을 하던 로컬 단체에서 만났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알고보니 꽃개가 일하는 프로그램에서 클리너로 잠시 일했던 사람이다. 사고가 발생한 약 스무 개의 유닛을 둔 삼층짜리 건물도 꽃개를 고용한 회사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직원 전체 이메일을 보내 이 사건에 대해 언론이 인터뷰를 요청할 시 법을 저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과 함께 장례식/앤드류의 가족을 위한 도네이션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프론트라인에서 일하면서 체득한 습관 때문인지 희생자 개인이 놓인 상황에 먼저 관심이 간다. 또 꽃개의 프로그램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앤드류가 살던 하우징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희생자 및 이번 일로 트라우마를 겪거나 겪었을 사람들이 놓인 상황에 신경을 먼저 쓰게 된다. 전반적인 하우징 정책, 경찰의 과잉대응 (이번 건은 경찰에 의한 "살인"이다), 회사의 대응이 옳았는지 등등 아무래도 마이크로 레벨을 넘어서는 것에 관해선 그 다음에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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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지금은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정리조차 할 수 없을만큼 혼란하고 복잡한 심경이다. 앤드류의 케이스메니저가 앤드류의 불면증과 층간소음 문제를 미리 알았다면, 스무 개가 넘는 유닛를 관리하던 관리인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했더라면, 경찰이 조금 더 훈련받은 - 무기를 든 채 격앙된 사람을 대하는 스킬을 조금 더 잘 체득한 사람이었다면... 사람 개개인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는 것을 넘어 시스템에 대한 의아함과 그의 비판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게 힘들다. 심리적으로 힘들다. 아마 나도 트라우마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나만 안다. 내 스스로 정리하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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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숨지거나 다친 사람들은 대부분 잘 살아보겠다고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일궈보겠다고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거나 이 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리고 절대다수가 "흑인"이거나 "유색인종"이다.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경찰이 터무니없이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 "피의자" 대부분은 여전히 노동자이거나, (비백인) 이주민이거나, 소득이 낮거나, 혹은 정신질환을 알게모르게 앓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공권력의 야만성 이면에 자리한 차별과 편견, 인권 유린의 본질에 대해 또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지만 뭐랄까 이번에는 더더욱 심경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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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의 명복을. 경찰의 학대와 폭력으로 명을 달리한 비백인 희생자들의 명복을.

2015/07/15 12:02 2015/07/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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